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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DJ 대통령 시절 두 차례 방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만델라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1995년, 2001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6일 발표한 애도 성명에서 “만델라 대통령의 삶은 남아공을 넘어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면서 “만델라 대통령의 서거에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델라 대통령은 남아공의 흑인 차별 철폐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27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분노와 보복이 아닌 화해와 관용을 선택했고, 정적의 손을 잡고 대통령에 당선돼 민주주의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인연도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직접 번역해 출판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측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됐을 때 만델라 전 대통령은 둘째 딸인 진드지 만델라 여사를 서울에 보내 자신이 감옥에서 차던 시계를 선물했다”면서 “이 시계는 현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전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자유와 평화, 상생을 이룬 위대한 분”이라며 만델라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지난 4월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9개월째 요양 중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애석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김기수 비서실장이 전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굿바이 마디바”… 노래하고 춤추며 이별 고해

    “굿바이 마디바(만델라의 애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대한 영웅이자 민주화 역사의 살아 있는 신화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에 전 국민은 뜨거운 눈물로 이별을 고했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남아공 국민들은 특유의 추도 풍습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마치고 눈감은 만델라를 추모했다. 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요하네스버그 하우튼 지역에 있는 고인의 자택 밖에는 전날 밤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짙은 어둠을 뚫고 달려온 수백명의 추모객과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간 폐감염증을 앓으며 입·퇴원을 반복한 만델라를 지켜보면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 온 국민들은 그가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된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추모객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만델라 만세”, “평화롭게 잠드소서 마디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그가 앞장섰던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의 노래도 불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응원 도구로 전 세계에 알려진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요하네스버그 신흥 도심 샌톤에 있는 ‘넬슨 만델라 광장’에서는 만델라가 추구한 다문화·다인종 국가인 ‘무지개 공화국’을 상징하듯 흑인, 백인, 인도계 등의 사람들이 만델라 동상 아래에 서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들 가운데 백인인 소냐 포콕(46)은 “만델라가 석방된 이후 지난 23년간 나는 그의 길을 따랐다”면서 “그는 나의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만델라가 한때 거주한 소웨토 지역에서는 그가 이끌었던 현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깃발과 국기를 몸에 두른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노래와 춤으로 곡절 많은 만델라의 삶을 위로하는 동시에 국부(國父)를 잃은 슬픔을 달랬다. 한 추모객은 “우리는 만델라를 애도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모든 업적을 기념하고, 칭송하고,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그의 안식을 기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굿바이 만델라 1918~2013… 자유 향한 여정 마치고 ‘세기의 거인’ 잠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 밤(현지시간)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마치고 영원히 잠들었다. 만델라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가 그의 삶을 추모하며 안타까워했다. AFP·AP통신 등에 따르면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우리 민주국가의 기틀을 세운 대통령인 존경하는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가 떠났다”며 지병을 앓아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발표했다.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가 이날 저녁 8시 50분쯤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면서, “만델라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으니 작별인사도 함께 보내자”고 애도했다. 주마 대통령은 이어 6일 TV 연설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지는 만델라의 장례식이 오는 15일 그의 고향 쿠누에서 열리며, 15일까지 10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해 조기를 게양한다고 밝혔다. 또 오는 10일 요하네스버그 FNB경기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지며, 11~13일 그의 시신이 프리토리아 정부 청사에 안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델라는 고령으로 몸 상태가 쇠약해져 2011년 이후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왔다. 특히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 고비를 맞았다가 3개월 후인 9월 퇴원했으나 자택에서 치료를 계속 받아왔다.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는 용서와 화합 정신을 실현한 지도자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이날 만델라의 타계 소식에 각국 정상들은 일제히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애도 성명을 통해 “만델라 전 대통령의 위대한 뜻이 세계 평화의 기틀이 되고 전 세계인의 가슴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며 “저와 한국 국민들도 그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유유제약 유특한 회장 추모식

    ㈜유유제약은 6일 서울 중구 신당동 유유빌딩 본사에서 유특한 회장 14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유 회장은 생전에 유유제약을 창립해 치료 의약품 원료 국산화에 앞장서며 제약보국의 일념으로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1941년 일제강점기에 ㈜유유제약의 전신인 유한무역주식회사를 창업했다.
  • 오바마 “지구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인물 잃었다”

    오바마 “지구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인물 잃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타계하면서 전 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AP, AFP통신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용기 있으며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며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만델라는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냈다”며 “만델라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고 경의를 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이 시대의 위대한 빛이 졌다”며 “고인과의 만남은 인생의 큰 영광 중 하나”라고 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해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철폐 투쟁 운동으로 남아공과 전 세계 역사를 만든 우상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이날 고인을 기리고자 전국에 조기를 게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만델라는 온갖 역경을 견뎌내면서 생애 마지막 날까지 인도주의와 정의에 충실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09년 만델라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그는 정의로운 거인이었고 우리에게 감화를 주는 소박한 사람이었다”면서 “인류의 존엄, 평등, 자유를 위한 그의 투쟁은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태어난 환경과 피부색 때문에 처벌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일깨워 줬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유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그는 “친애하는 친구이자 용기, 원칙, 정직함의 상징이던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터넷에서도 그의 타계를 애도하는 글이 봇물 터지듯 쇄도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거인’의 떠나는 길을 추모했다. 트위터에는 만델라 타계 소식이 전해진 뒤 불과 2시간 만에 300만 개에 달하는 추모글이 올라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거인’ 넬슨 만델라 영면…남아공 현지 분위기는

    ‘거인’ 넬슨 만델라 영면…남아공 현지 분위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5일 밤(현지시간) 이 나라 역사과 국민을 ‘통합’의 키워드로 묶어낸 한 영웅의 운명에 울었다. 이날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마치고서 9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은 남아공 전역을 일순 깊은 슬픔과 추모의 열기로 몰아넣었다. 당장 요하네스버그 하우튼 지역에 있는 고인의 자택 밖에는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애도객과 취재진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애도했다. 일부 추모객의 손에 들린 촛불이 검은 밤을 뚫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매튜 라마카차 라는 이름의 시민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뉴스를 보고 달려왔다.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했다. 만델라가 한때 거주한 소웨토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노래와 춤으로 그의 죽음을 추도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요하네스버그 신흥 도심 샌톤에 있는 ‘넬슨 만델라 광장’에도 흑인, 백인, 인도계 등 많은 이들이 만델라 동상 밑에 서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생전에 만델라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남아공의 주요 인사와 단체들은 언론을 통 해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아파르트헤이트(흑인분리정책) 기간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자 1993년 만델라와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F.W. 데 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CNN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위대한 통합자”라며 “그의 가장 큰 유산은 화해를 강조한 것”이라고 칭송했다.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스먼드 투투 주교는 “마디바(만델라의 경칭)는 우리에게 함께 살고 서로 신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며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제이콥 주마 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다”며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깊은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만델라가 이끌었던 현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남아공과 세계가 ‘거인’을 잃었다”며 “그의 삶은 우리에게 가난과 배고픔을 끝내고 발전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넬슨 만델라 재단, 넬슨 만델라 어린이 재단, 만델라 로즈 재단 등 만델라와 관련 있는 재단도 “어떤 말로도 (그의 타계로) 남아공과 세계가 받은 거대한 상실감을 적절하게 나타낼 수 없다”며 슬퍼했다. 인터넷 공간도 추모의 글로 가득했다. 남아공 영문 일간지 ‘더스타’와 주간지 메일앤드가디언 등의 인터넷 부고기사에는 몇 시간 만에 수백건의 댓글이 달렸다. “거인의 타계를 애도한다”, “만델라의 명복을 빈다”, “그가 그리울 것”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주마 대통령이 만델라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글도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시 보는 2010 월드컵’ 점쟁이 문어, 부부젤라, 그리고 이니에스타.

    운명의 월드컵 조추첨이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약 10시간 후, 토요일 새벽 1시에 펼쳐지는 조추첨 결과에 따라 전세계 32개국의 국민들이 웃고 울게 된다. 한편, 조추첨을 불과 1일 앞둔 시점에서 지난 월드컵 주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이자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가 사망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념하며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추억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조추첨을 앞두고 지난 2010년 월드컵의 3가지 키워드를 돌아봤다. 1. ‘점쟁이 문어’ 파울, 이번 월드컵에는 어떤 동물이? 2010년 월드컵의 최고 스타 중 하나는 선수가 아닌 독일의 해양생물박물관에 살던 한마리의 문어였다. 파울이라는 이름의 이 문어는 월드컵 8경기의 승부를 정확히 맞히며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파울이 자연사한 후, 유럽 곳곳에서 파울의 ‘후계자’ 동물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코끼리, 돼지, 수달, 오랑우탄 등의 다양한 동물에 비슷한 시도가 이어졌지만, 아직 그 어떤 동물도 파울의 신통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2014년 월드컵에는 선수 이외에 또 어떤 이슈가 있을지 기대된다. 2. ‘전통이다 VS 시끄럽다’ 부부젤라 2010년 월드컵을 보는 시청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다름아닌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입장에서는 전통악기를 불면서 자신의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의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세계 축구팬들을 성가시게 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어떤 문화적인 측면을 보여줄 것인지도 기대되는 바이다. 축구장을 찾는 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브라질인만큼, 중계카메라를 통해 경기와 동시에 많은 미녀를 보게 되길 기대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3. 이니에스타의 116분 월드컵 결승골과 감동의 세리머니 “Fabregas, now it’s Iniesta. This is it, that’s the goal, Spain have surely won the World Cup!”(파브레가스, 이니에스타에게 패스, 걸렸습니다. 골! 스페인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BBC 중계 내용)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이니에스타는 이 골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리는 선수이지만, 특히 월드컵 결승전에서 터뜨린 그의 골과 감동의 세리머니는 그를 확고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각인시켰다. 0-0으로 이어지던 월드컵 결승전, 종료 4분이 남은 상황에서 모두가 승부차기를 예감하고 있을 때 이니에스타는 스페인에 우승컵을 안기는 결승골을 넣었으며, 득점 직후 전세계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장마비로 사망한 스페인 선수 다니 하르케를 추모하는 세리머니를 펼쳐 월드컵 결승전에 나온 골을 더욱 감동스럽게 장식했다. 유니폼을 벗어젖힌 이니에스타의 하얀 내의에는 ‘다니 하르케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니에스타 결승골 동영상> 이성모 스포츠 통신원 London_2015@naver.com
  • “국가는 아들을,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다” 각국 정상들 만델라 추모 트윗

    “국가는 아들을,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다” 각국 정상들 만델라 추모 트윗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철폐시킨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95세)가 지난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이에 세계 각 국 정상들도 추모의 뜻을 밝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제이콥 주마(Jacob Zuma) 대통령은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고 국가는 가장 큰 아들을 잃었다”며 “그가 평화 속에서 편히 쉬길 희망 한다”고 CNN을 통해 밝혔다. 미국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만델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다”며 “지구에서 가장 용기 있고 선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그의 인류 평등, 존엄, 자유를 위한 투쟁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했다. 트위터를 통해 애도를 표한 정상들도 많았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트위터로 “우리 시대의 위대한 빛이 꺼졌다”고 밝혔고 캐나다 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 총리는 “전 세계는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도덕적 상징을 잃었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벨기에 엘리오 디 루퍼(Elio Di Rupo)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온 유일한 영웅 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생했고 1942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해 반인종차별 활동을 했으나 1956년 내란죄로 구속돼 27년간 복역했다. 1990년 석방 뒤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이듬해 남아프리카대통령으로 당선돼 1999년까지 재임했다. 이후 최근까지 폐 감염으로 투병했다. 사진=위키피디아·트위터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이희호 여사 “넬슨 만델라 타계 애도”…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

    이희호 여사 “넬슨 만델라 타계 애도”…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타계한 데 대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희호 여사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운동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추모했다. 이희호 여사는 이날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전 인류에 자유와 인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영면했다”면서 “증오를 넘어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희호 여사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정적의 손을 잡고 대통령에 당선돼 민주주의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면서 “그의 삶은 남아공을 넘어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지난 1993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2001년 3월 청와대를 방문해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한 메시지’를 발표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서전인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우리말로 번역한 인연도 있다고 김대중평화센터는 소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영 칼럼] 대한민국의 뉴 프런티어 어디서 찾나

    [구본영 칼럼] 대한민국의 뉴 프런티어 어디서 찾나

    얼마 전 영면한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의 전우애가 큰 울림을 줬다. “전우들 곁에 잠들고 싶다”던 생전의 유지대로 건군 이래 장군으로는 최초로 한 평짜리 사병 묘역에 묻히면서다. 마침 50주기(周忌)를 맞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국제적인 추모 물결이 일던 터였다. 서로 깎아내리는 데만 익숙해진 각박한 우리 풍토에서 영웅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베트남전서 산화한 무명용사 모두가 영웅으로 꼽아도 좋을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월남전 참전 한국군은 총 32만명으로, 이 중 전사자만 5000여명에 이르렀다. 그들이 흘린 피땀은 자원도 자본도 없는 이 땅에 산업화의 싹을 틔운 밑거름이었다. 파병의 정당성 논란은 일단 제쳐 두자. 참전용사들이 송금한 달러와 미국의 군사원조, 그리고 국내 기업의 월남 특수로 번 돈을 포함한 50억 달러는 박정희 정부의 1, 2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종잣돈이었지 않은가. 최근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지형이 격변하고 있다. 중국이 이어도 해역을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일방 선포하면서 우리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어느새 G2(주요 2개국) 반열에 오른 중국의 굴기(?起)와 이를 견제하려는 미·일의 대응이 동북아에 격랑을 몰고 오고 있다. 핵카드를 흔들며 협박하고 있는 북한이란 고약한 동족까지 곁에 둔 우리다. 가히 3각 파도를 맞이한 꼴이다. 게다가 내부적으로 경제 성장동력도 소진되어 가고 있다. 어느 논객은 주변 열강의 침탈에다 조정마저 친중·친일·친러 등으로 갈려 국권을 상실한 구한말 상황에 비견하기도 한다. 독립 이후 이만큼이나 국력을 키운 대한민국을 노환으로 뼈만 앙상했던 대한제국에 빗대는 것은 지나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꽉 막혀 있는 듯한 형국이다. 하긴 우리에겐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순간마다 돌파구를 열어온 저력은 있다. 한·일 수교로 받은 5억 달러 유·무상 청구권자금으로 포항제철과 발전소 등을 지어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는 해외 건설현장에서 흘린 땀방울로 이겨냈다. 당시에는 낯설었던 열사의 땅 중동이 한국경제에 숨통을 틔워준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사후 50년이 된 케네디에게 미국민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암살되는 통에 획기적 업적도 남기지 못한 그인 데도 말이다. 답은 더 이상 개척할 서부가 없던 미국인에게 ‘뉴 프런티어’(변경)를 제시했던 데서 찾아야 할 듯싶다. 우주개발 청사진과 전 세계에 평화봉사단 파견으로 미국민에게 도전정신을 심어 줬던 그가 아닌가. 까닭에 우리가 개척해야 할 새로운 변경은 어디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내부자원이 고갈되었다면 진취적으로 신천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지난 십수년간 한반도 평화관리라는 미명으로 추구해온 분단고착화 노선 대신 적극적 통일정책을 모색할 때이다. 위험부담이 따르겠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참여하는 등 보다 모험적인 개방도 감수해야 한다.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라면 이 과정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일도 분명 있을 게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도 임기 중 욕먹을 각오로 그런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우리는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인지도 모른다. 하루속히 비상구를 찾아야 하는 마당에 영일 없는 정쟁으로 에너지를 소진해선 안 될 말이다. “인간은 흔히 작은 새처럼 행동한다.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머리 위에서 독수리가 내리 덮치려 하는 것도 모르는 참새처럼 말이다.” 자신의 조국 피렌체공화국이 반목과 질시로 쇠락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마키아벨리가 남긴 말이다. 청와대는 물론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드잡이만 하고 있는 여야 지도자 모두가 새겨야 할 경구다. kby7@seoul.co.kr
  • [부고] 세계 최대 선교방송 설립자 크라우치 목사

    [부고] 세계 최대 선교방송 설립자 크라우치 목사

    미국에서 세계 최대의 선교방송을 세운 폴 크라우치 목사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79세. 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에 따르면 크라우치 목사는 지난달 30일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오래 앓아 온 심장병으로 숨졌다. 그의 손자 브랜든은 “할아버지는 뛰어난 기업인이자 개척자였고 먼 미래를 내다보신 분이었으며 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크라우치 목사가 1973년 아내 잰과 함께 세운 선교트리니티방송은 84개 위성방송 채널과 전 세계 1만 8000개 계약 방송사를 거느린 ‘방송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신앙을 위해 신심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면 신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보상해 준다는 내용의 트니리티 선교방송이 미치지 않는 곳은 남극대륙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한진重 회장 부인 자택서 숨진채 발견

    조남호(62) 한진중공업 회장의 부인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사하고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일 오후 1시 30분쯤 조 회장의 부인 김모(62)씨가 용산구 한남동 빌라 자신의 침실에서 쓰러진 채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고 2일 밝혔다. 당시 조 회장은 김씨가 여러 차례 전화를 받지 않아 경비원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 확인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과 의료진은 A씨가 기도 폐쇄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목을 매거나 외부 충격을 받은 흔적이 없고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타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는 김씨가 마신 것으로 보이는 빈 소주병 2개가 있었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는 평소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최근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한진중공업 측은 김씨의 자살설을 부인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소주병이 발견됐다, 자살을 수차례 시도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사실무근”이라면서 “김씨가 가족들 외에는 밝힐 수 없는 지병이 있어 평소 건강이 악화돼 있다가 갑자기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후 늦게 “검찰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통보받았다”면서 부검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최초 발견 당시 김씨 주변에 토사물이 있었다는 점과 소방당국, 의료진이 사망 원인을 질식사로 추측하고 있는 점을 들어 김씨가 술을 마시고 구토를 하다가 질식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편 조수호 한진해운 전 회장의 7주기 추모식이 있은 지 일주일 만에 한진가(家)의 차남인 조 회장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한진가는 침통한 표정이다. 미국 출장 중인 한진가의 장손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제수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상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개성공단 입주기업 직원 1명 숨진 채 발견

    개성공단 입주기업에서 근무하는 우리 측 직원 한 명이 현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1일 부검을 실시했다. 통일부와 파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7시 25분쯤 개성공단 입주기업 ‘아트랑’의 직원 추모(54)씨가 현지 숙소에서 숨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동료가 아침식사를 같이하려고 방에 갔다가 숨져 있는 추씨를 발견했다”면서 “이 동료가 곧바로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관리위는 현지 주재 의료진을 통해 추씨 사망 사실을 확인한 뒤 북측과 협의를 거쳐 같은 날 오전 10시쯤 시신을 남쪽으로 송환 조치했다. 평소 특별한 지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추씨의 시신에 외상 흔적은 없었다고 통일부 측은 전했다. 부검 결과는 2주 후에 나올 예정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외상이나 질병이 없어 심혈관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추씨는 섬유업체인 아트랑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해 왔으며 아트랑은 지분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개성공단 직원 숙소서 숨진 채 발견…경찰 수사

    개성공단 입주기업에서 근무하는 우리 측 직원 1명이 30일 오전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통일부와 파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25분쯤 개성공단 입주기업 직원 추모(54)씨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동료가 아침식사를 같이하려고 추씨의 방에 갔다가 숨진 것을 발견했다”면서 “이 동료가 곧바로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관리위에서는 개성공단 주재 의료진을 통해 추씨 사망을 확인한 다음, 북측과 협의를 거쳐 오전 10시께 추씨 시신을 남쪽으로 송환 조치했다. 추씨 시신은 일산백병원에 안치됐다. 평소 특별한 지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추씨의 시신에는 외상 흔적은 없었으며 구체적 사인에 대해서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육안 검시에서 사후 경직 정도로 미뤄 30일 오전 1~2시 사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면서 “외상이나 질병이 없어 심혈관 이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건을 수사 중인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육안 검시에서 사후 경직 정도로 미뤄 30일 오전 1~2시 사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며 “외상이나 질병이 없어 심혈관 이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족 조사를 마친 후 숨진 추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를 불러 발견 경위 등을 조사했다. 이 동료는 추씨가 전날 일을 마치고 정상적으로 1인 1실인 숙소에서 혼자 잠들었으며 이날 아침 방에서 숨진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유족 측 동의를 얻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부검 결과는 이르면 당일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사 27명이 들려주는 성철 스님 이야기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1912~1993) 열반 20주기를 맞아 저명인사 27인이 스님을 추모하는 글을 한 권으로 묶은 에세이집 ‘참선 잘하그래이’(김영사)가 출간됐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이 기획한 책에는 고은 시인의 추모시를 비롯해 전 동국역경원장 무비 스님,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박성배·고준환·김형효·고영섭·김호성·황순일 교수, 한승원·김성동 소설가, 홍신선·정호승·고형렬 시인, 이계진 전 국회의원, 스님 동상을 조성한 조각가 강대철씨의 글이 들어 있다. 책에서는 10년 동구불출(산문 밖을 나오지 않은 채 수행에 매진), 8년 장좌불와, 3000배의 만남 등 숱한 이야기를 남겼던 성철 스님과의 다채로운 인연담이 새록새록 풀어진다. 특히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소개돼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성철 스님이 보조 스님의 화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는 무비 스님은 성철 스님을 이렇게 추모하고 있다. “성철 스님이 보조지눌 국사를 엄청 비난했던 것은 보조의 오류가 아니라 당신의 오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조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백련불교문화재단 측은 성철 스님 20주기 다례재에 즈음해 ‘백일법문’ 증보판을 펴낼 예정이다. ‘백일법문’ 증보판에는 성철 스님 법문 중 기존에 빠졌던 선 관련 법문 100여쪽이 새로 추가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예술인 107명, 박권수 화백을 기억하다

    예술인 107명, 박권수 화백을 기억하다

    “목숨보다 그림을 더 사랑했던 사내! 하늘로 올라가서도 붓을 놓지 않았을 사내!”를 위해 쟁쟁한 문화예술인들이 뭉쳤다. 영화배우 최민식과 소설가 박인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개그맨 전유성, 탤런트 이효정, 성우 배한성, 연극배우 이호성, 행위예술가 심철종, 영화감독 이만, 화가 오만철, 연극연출가 기국서, 시인 송현 등 107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박·그·사)이 29일 창립 모임을 갖는다. 고(故) 박권수 화백의 추모 유작전이 열리는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3층 전시실에서다. 유작전은 다음 달 12일까지 이어지는데 1990년대 후반 건강이 악화돼 화단과의 관계가 끊긴 가운데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은 고인의 예술혼을 오롯이 담아 ‘죽음보다 그림’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크고 작은 화면을 이어 붙인 ‘유년의 기억 속에서’ 등 100여점이 선보인다. 이날 오후 5시에는 행위예술가 김백기의 ‘박권수를 기리는 퍼포먼스’와 국악인 장사익, 가수 최백호의 공연이 마련된다. 고 박 화백은 1950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77년 홍익대를 졸업한 뒤 82년 서울미술회관 전시를 시작으로 31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86년 미국 뉴욕 바자렐리센터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을 해외에 수출한 그는 연방 해체 직전인 90년 모스크바 프롤레타리아 뮤지엄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대전을 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스페인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을 오가며 치열하게 활동하던 그는 2005년 병으로 쉰다섯 짧은 생을 마감했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 말고는 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생계를 이으려 홍익대 입구에 차린 디자인 가게에서 최민식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최민식은 화가인 형 최찬식과의 인연으로 박 화백과 가게를 꾸리면서 호형호제했다. 최민식은 지금도 인터뷰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고인을 꼽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생사고락 함께한 파월 장병 1평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

    “나를 파월 장병들의 묘역에 묻어 달라.” 지난 25일 작고한 채명신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은 베트남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들이 묻힌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27일 “장군 묘역 안장 혜택을 포기하고 죽어서도 월남전 참전 전사자와 함께하겠다는 고인의 숭고한 뜻과 월남전에서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국립서울현충원 사병 묘역 안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국방부는 장례를 육군장으로 치르고, 관례대로 대전현충원의 장군 묘역(26.45㎡·8평)에 안장할 계획이었지만 고인의 뜻을 존중해 28일 발인을 마친 뒤 서울현충원의 사병 묘역(3.3㎡·1평)에 안장키로 한 것. 김형기 서울현충원장은 “고인의 묘지와 비석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다”면서 “고인이 베트남참전 유공전우회 회장 시절 추모행사를 진행해 왔던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유족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장군이 사병 묘역에 안장되는 건 현충원 설립 사상 처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씨와 1남 2녀가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故채명신 장군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현충원 첫 사례

    故채명신 장군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현충원 첫 사례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지난 25일 별세한 채명신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이 생전 이 같은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27일 고인이 남긴 이 유언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결과를 유족에게 통보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 별세한 장군은 현충원에 마련된 장군 묘역에 안장된다. 그러나 고인은 별세하기 전 유족에게 사병 묘역에 묻히길 희망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다. 고인이 묻히게 될 묘지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은 3.3㎡이다. 김형기 서울현충원장은 “고인의 묘지와 비석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다”면서 “파월참전자회장을 맡아왔던 고인이 추모행사를 해왔던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방문, 유족들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할 계획이다. 베트남전의 영웅인 고인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육사 5기)를 졸업하고 이듬해 6·25 전쟁에 소위로 참전했다. 1953년에는 미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65년 주월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1969년까지 4년 가까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 2군사령관을 거쳐 1972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군 복무기간 전투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과 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씨와 1남2녀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남남갈등 없애야 北 제2 연평도발 막는다

    그제는 북한이 3년 전 서해 연평도를 포격한 날이다. 무려 170여 발의 포탄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공격한 만행을 국민은 잊지 못한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순국한 장병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안보의지를 다지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유가족을 비롯한 4000명 남짓 참석자들은 그러나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적 기습 도발에 대비한 우리 군의 육·해·공 합동 훈련에 전날 북한 서남전선사령부가 ‘3년 전에는 연평도에 국한됐지만 이번엔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소식은 전북 군산에서 들려왔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어느 신부가 ‘일본이 독도에서 훈련하려고 하면 쏴버려야 하는 것처럼 북방한계선(NLL)에서 한미군사연습을 계속하면 북한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북한에서 쏴야 하지 않느냐.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도 적절치 못한 발언이다. 가정이지만 그의 주장처럼 독도 해역에서 일본군함이 불법행위를 할지라도 일본군함에 대한 직접 공격에 앞서 경고대응을 하는 게 순리이지 다짜고짜 일본 본토를 포격하지는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서해 5도 일대는 남북한이 전력을 경쟁력으로 강화하면서 긴장이 더욱 높아졌다. 우리 군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면서 병력 1200명을 추가 배치했다. 포격전 당시 유일한 대응수단이던 K9 자주포를 늘리는 한편 다연장 로켓, 신형 대포병레이더, 코브라 공격헬기, K10 탄약운반차량도 늘리거나 새로 배치했다. 지난 5월 전력화가 마무리된 스파이크 미사일은 갱도에 숨어 있는 북한 해안포를 정밀 타격하는 성능을 갖췄다. 북한군의 동향을 24시간 감시하는 전술비행선 도입 사업도 추진한다. 북한 역시 방사포와 지대함 미사일을 늘리고 헬기, 공기부양정, 잠수정 전력도 강화했다. 사소한 충돌이 자칫 대규모 충돌로 번져갈 위험성 또한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에 불러내 긴장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당면 과제다. 하지만 북한은 그럴수록 호전적 태도를 오히려 강화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의 선택은 북한이 스스로 도발을 포기할 때까지 대응 태세를 굳건히 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온 국민의 합심 협력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온 NLL을 부인하면서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발언이 돌출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장 보수성향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강력 반발하고, 시민의 의구심도 커져가고 있다. 이런 문제조차 이견이 난무하며 남남갈등이 깊어진다면 연평도는 물론이거니와 어딘들 제대로 지켜낼 수 있겠는가.
  • 전영중 사망에 네티즌 “그리워해요”…이언·함효주·강대성·김형은·김민수

    전영중 사망에 네티즌 “그리워해요”…이언·함효주·강대성·김형은·김민수

    개그맨 전영중(27)이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숨진 가운데 과거 사고로 팬들의 곁을 떠난 스타들이 팬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개그맨 전영중씨가 21일 오전 3시쯤 오토바이를 타고 서강대교 방면에서 여의2교 방향으로 운행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 마주오던 소나타 택시와 충돌했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전영중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고인의 시신은 여의도 성모병원에 안치됐다. 이러한 가운데 과거 비슷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스타들이 재조명되며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배우 이언은 지난 2008년 드라마 ‘최강칠우’ 종방연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지난 2008년 4월 먼데이키즈 멤버 김민수는 서울 신림동 신림중학교 앞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다 가로수와 충돌해 사망했다. 앞서 2007년에는 개그우먼 김형은이 용평 스키장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강원도로 급하게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김형은의 동료인 심진화와 김원효는 지금도 틈틈이 김형은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9월에는 모델 겸 탤런트 김태호가 춘천 우두동 도로에서 도로변에 주차돼 있던 1톤 냉동탑차에 추돌한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배우 강대성은 서울 압구정동 성수대교 남단 사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중 버스를 피하려다 근처 가로수길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또 지난해 8월에는 MBC 드라마 ‘무신’에 출연 중이던 배우 승규가 귀가 중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가장 최근인 6월 개그우먼 함효주가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편도3차로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네티즌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스타들, 팬들이 그리워해요”, “가족들이 그리워해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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