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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서 전사한 미군 3만 6574명 첫 호명식

    한국전서 전사한 미군 3만 6574명 첫 호명식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동료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25일 낮 12시(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 서쪽 링컨기념관 앞에 위치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한국전 참전 용사인 글렌 윈호프가 3분간 미군 전사자 90명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한국전기념공원 건립 2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열린 전사자 호명식에서 참전 용사 10여명은 전사한 동료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윈호프는 “동료 전사자들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어 행복하다. 한국전쟁 후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이 보여준 우정에 감사한다”며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이 이곳에 건립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개최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이병희 이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추모의 벽’ 건립을 미 의회에 요청했으나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며 “기념공원 건립 20주년을 맞아 미군 전사자 3만 6574명의 이름을 부르는 행사를 열어 의회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전사자들의 명예를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8시까지 진행된 호명식은 정전 62주년이자 기념공원 건립 20주년 기념일인 27일 낮 12시까지 사흘간 열린다. 한국전기념공원은 미 25보병사단 소속 참전 용사들이 1985년 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한·미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추진됐다. 역시 참전 용사 출신인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미군사령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5년 완공됐다. 기념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전 용사 19명의 동상이다. 실물보다 큰 2m 10㎝ 정도 높이에 완장을 하고 적을 향해 움직이는 이들의 얼굴에는 비장감이 흘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쟁의 긴박함을 느끼게 한다. 이들 19명은 육군 14명과 해병대 3명, 해군·공군 각각 1명을 상징하는데 이들 중 육군 1명의 동상은 한국전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윌리엄 웨버 육군 대령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에서 오른 팔다리를 잃은 웨버 대령은 “실제 모델이 된 것도 기쁘지만 19명에 백인뿐 아니라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모든 인종을 포함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당초 38선의 의미를 담기 위해 동상 38개를 추진했으나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에 따라 절반으로 줄였다고 한다”며 “대신 동상 옆 벽화에 이들 동상이 비춰 결과적으로 38개 동상을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 이사는 “한국전쟁이 베트남전쟁보다 먼저였지만 무관심으로 인해 한국전기념공원이 베트남기념공원보다 10여년 늦게 생겼고, 베트남공원에는 있는 추모의 벽도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한국전쟁 참전 용사 인터뷰 등 관련 자료를 디지털화해 온 한국전쟁유업재단은 이날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제1회 미 역사·사회 교사 콘퍼런스’에서 미 중·고교 교사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가르칠 때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쟁 관련 디지털 자료를 활용하는 ‘한국전쟁 디지털 교과서’의 시안을 발표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마녀사냥자’ 루터는 왜 코페르니쿠스를 욕했나?

    [이광식의 천문학+] ‘마녀사냥자’ 루터는 왜 코페르니쿠스를 욕했나?

    -천년 이상 지식인의 머리를 옥죈 성구 '한 문장' 천문학의 발전에 있어 최악의 장애물을 하나 꼽자면 다른 것도 아닌 다음의 한 문장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에게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않았느냐.” '구약 성서' 중 여호수아 10장 12~13절의 내용이다. 이 성구만큼 중세 지식인들의 정신을 옥죈 고문 도구도 없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이 1000년 이상 두고두고 문제가 되어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강요했다. 브루노가 로마 광장에서 화형을 당하고, 갈릴레오가 피렌체 자택에 종신연금을 당한 것도 이 한 문장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서는 천국으로 가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지 하늘의 운행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란 갈릴레오의 항변도 이 한 마디로 무력화되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코페니르쿠스에게 '멍청이'라고 욕한 것도 이 한 문장에 기댄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만약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여호수아가 태양에게 멈추라고 명령할 수 있겠는가. 결국 지동설은 성서에 대한 해석과 진리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비난한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코페르니쿠스라는 어떤 신출내기 점성술사가 나타나, 이 하늘, 해, 달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것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이 멍청이는 이제까지의 모든 천문학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신성한 성경에서 이르기를, 여호수아는 지구가 아닌 태양에게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였다.”​ 하긴 루터만 탓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800년 전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발표했을 때도 독신죄에 몰렸었는데, 코페르니쿠스 시대야 더 말해 무엇하랴. 21세기에 사는 미국 인구 중 21%가 아직도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고 믿으며, 7%는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인간이란 원래 완고한 법이다. -루터와 천문학자 간의 악연 그러니 16세기 사람인 루터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하등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루터가 천문학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더욱이 마녀사냥의 열렬히 지지자였던 루터는 평소 어느 누가 마녀 혐의가 나오더라도 무조건 태워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마녀몰이에 또 피해를 입은 사람이 16세기 천문학의 영웅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라는 혐의를 받고 투옥당해 몇 년 동안 재판을 받았는데, 케플러는 어머니에게 씌워진 마녀 혐의를 벗기기 위해 재판정으로 관공서로 뛰어다니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천문학의 입장에서 볼 때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루터를 비롯한 중세인들의 머리에는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고귀하며 당연히 우주의 중심에 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간 중심의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었고, 따지고 보면 이런 오만함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양산해내고 천문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할 수 있다. 천문학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우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다. 기원전 3세기에 걸출한 천재인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정확히 말하고 최초로 행성들의 배치를 정확하게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그후 1,800년 동안 인류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로 군림해왔다. 서구인들은 인간만이 신의 은총을 받은 존재인 양 행세하며, 이단 박멸, 이교도 말살 같은 깃발을 올리고 십자군 전쟁도 여러 차례 일으켰다. ​-​'만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이런 잘못된 우주관을 뒤엎은 사람이 바로 지동설을 들고 나온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다. 그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지구를 가차없어 끌어내리고 태양을 거기다 갖다놓았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어째서 대명천지에서 1,800년이나 지나서야 지동설이 다시 나온 걸까? 인류 지성이란 게 무색해지는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뒤에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 교회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신은 사람을 저능화한다. 이 분야에서 집단 저능화 현상이 나타나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내로라 하는 천재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 면에서 지동설을 세상에 내민 코페르니쿠스는 진정 영웅이었다. 하지만, 무척 조심스런 영웅이었다. 그는 자신의 태양중심 우주론을 담은 첫 저서 ‘소론’을 완성하고도 바로 출판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자면, 획기적 학설을 담은 베스트셀러를 쓰고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몇몇 필사본이 돌아다니는 정도였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사실 프로 천문학자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의학과 함께 잠시 천문학을 공부한 적은 있지만, 본업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행정직원이자 의사였다. 그는 평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우주론에 커다란 불만을 갖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대로 정말 지구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면 화성의 역행 같은 현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한 금성과 수성이 실제로 지구 둘레를 돈다면 가끔씩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현상이 전혀 관측되지 않았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오랜 탐구 끝에 마침내 수많은 원들을 필요로 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버리고 1,700년 전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로 되돌아갔다. 그가 이러한 결론에 이른 것은 아리스타르코스처럼 태양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한 결과에서가 아니고,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행성들이 돈다고 생각하면 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수학이 더욱 아름답고 간단해지며, 행성의 역행 운동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원래의 원고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를 언급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나중에 선을 그어 지워버렸다). 어쨌든 신에게 특별히 은총받은 인간의 지구가 우주 중앙에 딱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불덩어리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혁명적인 주장을 담은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입소문을 타고 삽시에 번져나갔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큰 화제가 되고 열띤 토론거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코페르니쿠스는 그런 자리에 일절 나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몸조심한 거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해 비판과 반발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비판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직접 자기 눈으로 마귀를 보았다는둥, 툭하면 마귀 얘기를 꺼내곤 했는데, 귀머거리, 장님, 절름발이 등 장애인들은 그의 기준으로 볼 때 무조건 마귀에 씌인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귀로 몰려 참혹한 죽음을 당한 것은 기독교의 대표적 흑역사에 속한다.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재판에서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어쨌든,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을 담은 책이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그가 70살의 나이로 눈을 감기 바로 직전이었다. '소론'이 나온 후 30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만큼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와의 마찰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인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란 책을 받아본 것은 바로 임종 때였다.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책을 쥐어주자 잠깐 눈을 떴다가 영면했다고 한다. 향년 70세.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616년에 '배교적 저술'로 금서목록에 올랐다가 1999년에야 풀려난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코페르니쿠스의 유명한 문장이 있다. “만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전체를 동시에 밝혀주는 휘황찬란한 신전이 자리잡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자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떤 이는 그것을 빛이라 불렀고, 또 어떤 이는 영혼이라 불렀고, 다른 이는 세상의 길라잡이라 불렀으니, 그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태양은 왕좌에서 자기 주위를 선회하는 별들의 무리를 굽어본다.” 코페르니쿠스는 각각의 천체들은 제각기 고유한 무게를 갖고 있으며, 이 무거운 천체들은 자체의 중심으로 향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생각이 궁극적으로는 만유인력에 이르게 되지만, 당시의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문제에 답할 만한 ‘물리학’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답은 뉴턴이 출현하기까지 200백 년 이상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근대과학은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에서 지구를 치워버린 해인 1543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고가 하나의 원리로서 확립되었다. 이미 오래 전 노자(老子)가 한 말처럼 천지불인(天地不仁), 곧 자연은 인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릴레오가 코페르니쿠스를 가리켜 지동설의 부활자로 일컬었듯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의 최초 주창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지동설은 중세의 암흑시대를 벗어나 근대과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을 가져왔던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다. -이 같은 중세의 우주관을 폐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코페르니쿠스. 괴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찬사일 것이다. “모든 발견과 견해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 인간 정신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다시없을 것이다.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엄청난 특권의 포기를 요구받기 이전까지, 지구는 둥글고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것이라는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인류에게 이보다 더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그토록 많은 것들이 연기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정복군을 이끌고 폴란드 코페르니쿠스 생가를 방문했을 때 위대한 과학자를 기념하는 동상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동상은커녕 무덤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코페르니쿠스 유해가 사후 5세기 만에 발견되었다. 그가 재직한 폴란드의 프롬보르크 대성당 지하묘지에서 발견됐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책에서 나온 두 올의 머리카락 DNA 검사를 통해 유해임이 확인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유해는 아무 묘비도 없이 무명으로 묻혔다가 사망한 지 5세기 만에 최고의 예우를 갖춰 ‘영웅’으로 재안장됐다. 대성당측은 코페르니쿠스의 사망 467주기 다음날 치르진 장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코페르니쿠스를 국민영웅으로 칭송하는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새로 세워진 검은 화강암의 묘비에는 지동설을 표시하는 태양계의 도형을 새겨넣어 500년 전 그의 업적을 기렸다. 역시 조심스러운 영웅의 부활답다고나 할까.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디즈니홀 무대에 오르다, 클래식 보컬그룹 IBK 유엔젤보이스

    디즈니홀 무대에 오르다, 클래식 보컬그룹 IBK 유엔젤보이스

    해외에 불어 닥친 K-POP 열풍 못지 않게 K-CLASSIC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이라고 하면 고전적이고 중후해 쉽게 즐기기는 힘든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클래식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이들이 있다. 바로 클래식 보컬그룹 ‘유엔젤보이스’다. 유엔젤보이스는 2010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콘서트를 통해 영국 음악전문일간지 The Herald에서 별 4개 등급을 획득한 실력파 클래식 보컬그룹이다. 2011년에는 한국관광공사의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결성 이후 꾸준히 국내는 물론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공연을 이어가며 한국 클래식을 전파하고 있다. 매년 약 100여회의 공연으로 K-CLASSIC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들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공식 응원가 ‘우리는 기쁨(We are Joy)’의 녹음에 참여한 바 있다. 또한 지난 4월 16일에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에서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등 의미 깊은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유엔젤보이스가 지난 7월 11일에는 미국 LA 디즈니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음악회 ‘한국의 얼’에 참여했다. 이 날 무대에 오른 유엔젤보이스는 LAKMA Choral & Orchestra(지휘 윤임상), 영 엔젤러스 코랄(Young Angeles Choral)과 함께 코리아 환타지를 공연하고, 한국의 남성 부채춤을 선보이며 K-CLASSIC의 위상을 또 한 번 높였다. 인상 깊은 무대를 선보이며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유엔젤보이스는 오는 12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또 한 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또한 2016년 8월 초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Korean-American Youth Orchestra(지휘 김승주)와 함께하는 공연도 준비 중이다. 수려한 외모와 검증된 실력으로 K-CLASSIC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유엔젤보이스는 2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유수의 음악 인재들이 모여 결성된 그룹이다. 현재 유엔젤보이스가 세계를 무대로 K-CLASSIC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함께할 새로운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많은 성악전공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엔젤보이스의 새로운 단원은 바리톤과 베이스 부문의 성악전공자를 대상으로 오디션 형식을 통해 선발될 예정이다. 단원 모집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재단법인 유엔젤보이스(이사장 박지향, www.uangelvoice.com)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추모앨범 발매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추모앨범 발매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오는 23일 밴드 ‘에이프릴 세컨드’가 싱글 ‘에이미’(Amy)를 발매한다. 22일 소속사 칠리뮤직코리아에 따르면 이번 싱글은 지난 2011년 7월 23일 세상을 떠난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기리며 만든 곡으로 그의 기일에 맞춰 발표한다. 작곡한 보컬 김경희는 “밴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팬이었다”며 “’에이미’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의미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에 소속사 측은 “’에이미’는 전보다 깊어진 보컬의 허스키한 음색과 함께 후반부의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이라며 “특유의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에이프릴 세컨드, 에이미 와인하우스 추모앨범 발매

    에이프릴 세컨드, 에이미 와인하우스 추모앨범 발매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오는 23일 밴드 ‘에이프릴 세컨드’가 싱글 ‘에이미’(Amy)를 발매한다. 22일 소속사 칠리뮤직코리아에 따르면 이번 싱글은 지난 2011년 7월 23일 세상을 떠난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기리며 만든 곡으로 그의 기일에 맞춰 발표한다. 작곡한 보컬 김경희는 “밴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팬이었다”며 “’에이미’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의미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에 소속사 측은 “’에이미’는 전보다 깊어진 보컬의 허스키한 음색과 함께 후반부의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이라며 “특유의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에이미 와인하우스. 남편과 행복한 한 때 ‘에이프릴 세컨드..추모앨범 발매’

    에이미 와인하우스. 남편과 행복한 한 때 ‘에이프릴 세컨드..추모앨범 발매’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오는 23일 밴드 ‘에이프릴 세컨드’가 싱글 ‘에이미’(Amy)를 발매한다. 22일 소속사 칠리뮤직코리아에 따르면 이번 싱글은 지난 2011년 7월 23일 세상을 떠난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기리며 만든 곡으로 그의 기일에 맞춰 발표한다. 작곡한 보컬 김경희는 “밴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팬이었다”며 “’에이미’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의미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에 소속사 측은 “’에이미’는 전보다 깊어진 보컬의 허스키한 음색과 함께 후반부의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이라며 “특유의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요절한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에이미’가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첫 공개된다. 런던 북부 출신의 평범한 유대인 소녀였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3년 데뷔 앨범 ‘프랭크’를 내놓으며 스타덤에 오른다. 2006년 두 번째 앨범 ‘백 투 블랙’으로는 2008년 그래미시상식에서 5관왕을 이룬다. 그러나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사진 = 서울신문DB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프릴 세컨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전주형무소 민간 희생자 추모 사업 본격화

    전북 전주시가 6·25 전쟁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추모 사업을 추진한다. 전주시는 21일 ‘6·25 전주형무소 민간인 학살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오는 10월 추모상을 건립하고 추모제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6·25민간인학살조사연구회가 최근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주형무소 민간인 희생 규명을 위한 연구포럼’을 개최하고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전주형무소 민간인 학살 사건은 연합군이 서울 탈환을 앞둔 1950년 9월 26~27일 이틀 동안 북한군이 전주형무소(당시 전주교화소)에 수감돼 있던 우익인사 1000명 가운데 500명을 곡괭이와 삽 등으로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대한민국 건국 초기 지도자급 인사인 손주탁 반민특위위원장, 오기열·류준상 초대 제헌국회의원, 이철승 건국학련위원장의 부친 등이 함께 희생됐다. 학살당한 인사 중 300여명의 시신은 가족 품에 돌아갔지만 175명의 시신은 1955년 전주시 서노송동에 합동 매장된 뒤 1976년 전주 효자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이인철 6·25민간인학살조사연구회장은 “건국 초기 우리 지역의 다양한 애국지사가 희생된 사건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름 없이 돌아가신 선열들에 대한 예를 최대한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7월, plus 혜택이 쏟아진다!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 신상품 출시

    7월, plus 혜택이 쏟아진다!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 신상품 출시

    7월 풍성한 혜택이 더해진 상조상품이 출시됐다.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회장 박헌준)가 맞춤형 상조서비스 ‘프리드 plus’ 시리즈를 선보인 것이다. 프리드 plus는 상조서비스에 금융, 보험, 리조트 등 다양한 제휴혜택을 더하고, 상품 선택의 폭을 넓힌 신개념 상조 상품이다. 월 납입 금액에 따라 1만원대, 2만원대, 3만원대 상품으로 구성되어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상조를 선택할 수 있다. ◆ 월 17,500원으로 한화리조트 멤버십까지 ‘5호 플러스’‘프리드 5호 plus’는 월 납입금 부담을 만원대로 대폭 줄이고, 고객들이 많이 찾는 주요품목을 업그레이드한 최적의 상조상품이다. 월 1만7,500원 또는 월 2만5,000원으로 납입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5호 plus’는 상조서비스뿐만 아니라 가입 즉시 이용 가능한 프리드-한화리조트 멤버쉽이 10년간 총 100박이 제공된다. 상조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이 많이 찾았던 주요품목들을 추가했다. 총 8명의 장례전문가가 파견되며, 리무진 및 장의버스 서비스도 왕복 300Km까지 제공된다. 부부형 가입 시 두 번째 행사에서 30만원이 할인되며, 월 5천원의 청구할인이 제공되는 프리드-신한카드로 결제하면 최대 120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 월 2만원대로 누리는 최고의 품격 ‘7호 플러스’ 가족이 많거나 보다 세심한 장례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라면 프리미엄 상조 서비스 ‘프리드 7호 plus’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 2만9,500원 납입으로 장례에 관한 고품격 인적, 물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프리드 7호 plus는 국내 400만 원대 상조서비스 상품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9명의 장례전문가 파견과 함께 궁중수의, 고급 오동나무 2단관 등 고인용품 일체와 함께 고급 리무진 및 장의버스 서비스가 왕복 400km까지 제공된다. 또한 제단꽃 장식비가 35만원까지 지원되며, 30년간 제공되는 기일 안내 서비스와 사이버 추모관 개설 등 세심한 사후 서비스도 돋보인다. 프리드 7호 plus고객에게는 총 100박의 프리드-한화리조트 멤버쉽 외에도 프리드투어 10만원 여행 할인권도 함께 증정된다. 부부형 할인혜택과 최대 80만원의 제휴카드 할인도 따라온다. ◆ 필수품목만 엄선한 알뜰형 상조 ‘2호 플러스’‘프리드 2호 plus’는 장례행사에 꼭 필요한 필수 물품과 서비스만을 엄선해 300만원 대 가격에 선보이는 알뜰한 상조서비스다. 장례행사 발생 즉시 7인의 장례전문가 파견과 함께 50여 가지 장례용품, 리무진 및 장의버스 왕복 200Km 서비스 등 장례관련 인적,물적 서비스가 제공된다. 1등 상조의 부족함 없는 상조서비스를 월 3만원으로 만날 수 있는 ‘2호 plus’는 부부형 할인혜택과 최대 66만원의 제휴카드 할인도 제공한다. ◆ AIA생명 무배당 대중교통상해보험 제공 프리드라이프는 우리은행과 소비자피해보상금 지급보증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고객이 납입한 선수금에 대해 완벽한 보호를 제공하게 됐다. 고객들은 이제 상조에 대한 불안감을 걷고, 다채로운 혜택으로 한 단계 진화한 상조서비스를 누리면 된다. 또한 이번 프리드plus가입 고객에게는 AIA생명의 무배당 대중교통상해보험 가입 혜택이 제공된다. 플러스 상품은 전국 150여 개의 프리드라이프 영업본부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며, 프리드라이프 홈페이지(www.preedlife.com)를 통해 가장 가까운 본부를 검색해 볼 수 있다. 유선(1588-3740)으로 문의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세월호 추모집회 주도’ 인권활동가 박래군 구속

    ‘세월호 추모집회 주도’ 인권활동가 박래군 구속

    세월호 추모집회 당시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구속수감됐다. 서울중앙지법 이승규 영장전담판사는 16일 박 위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범죄 사실의 주요 부분에 대한 소명이 있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역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김혜진 4·16연대 운영위원 대해서는 “확보된 증거자료와 심문결과,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춰 보면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앞서 경찰은 이달 14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이들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과열 양상이 빚어진 올해 4월 11일·16·18일과 5월 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과 박 위원이 소장으로 있는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사람 사무실과 김 위원이 대표로 있는 서울 영등포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4·16연대는 두 사람에 대한 영장 신청에 대해 “세월호 진상규명을 꺾으려는 탄압”이라고 반발했었다. 지난 1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희생자 안산 단원고 2학년 7반 고 이민우 군 아버지 이종철씨는 “두 사람은 희생자 가족들을 대신해 앞장서 왔다”며 “정부는 이들에게 화살을 겨누지 말고 유가족을 잡아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박 위원은 1988년 동생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인권운동에 나섰으며, 지난 수년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희망버스 등에 앞장섰다. 경찰은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발생한 폭력 등 불법 행위를 직접 저지른 참가자뿐 아니라 집회를 주최한 단체 대표에게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4·16연대 등 관련 단체와 대표들을 대상으로 9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80여년 전 당긴 방아쇠 현재를 관통하다

    80여년 전 당긴 방아쇠 현재를 관통하다

    #1.“두 사람 죽인다고 해방이 되고, 독립이 되나?”(하와이 피스톨) #2.“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안옥윤) #3.“어쨌든 미안하다.”(강인국) #4.“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염석진) #5.“우리 잊지 마.”(영감) 영화 ‘암살’ 속 각자 다른 인물이 발화하는 다섯 개의 대사는 영화 속에 담긴 여러 역사적 사회적 메시지를 함축한다. 특히 영화의 시점을 과거 역사 속 한 대목으로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과 갖는 현재적인 교감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와의 교감을 염두에 둔 1933년 조선 독립군 ‘친일파 암살 작전’ 기록 대사 #1, #2는 민족, 독립 등 거창한 대의의 이면에 있는 현실적 무망함에 대해 회의를 품는 당대 또는 후대의 심경을 대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 속에 자신을 던진 이들이 이름 없이 스러져 가는 순간까지 가슴에 품었던 당당한 사명감이 묻어난다. 반면 대사 #3, #4는 친일파 혹은 일본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자신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반성하지 않은 채 ‘어쨌든’으로 뭉뚱그리며 내뱉는 진정성 없는 사과와 함께 그들의 비루한 역사의식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대사 #5는 독립운동에 헌신, 해방된 조국을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역사도, 후세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들에 대한 영화적 추모이자 해방 70년을 맞은 후대들에게 건네는 당부다. ●만주·경성 등 오가며 벌이는 총격전·추격신 등 볼거리 가득 ‘암살’은 친일파와 함께 한 하늘을 지붕 삼을 수 없는 조선 독립군 암살단이 벌인 1933년 암살 작전의 기록이다. 일제 부역자 강인국(이경영)과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가 암살 작전의 대상이다. 항일무장투쟁세력이 중국 상하이, 항저우, 만주, 경성, 충칭 등 대륙을 오가며 벌이는 선 굵고 호방한 스케일의 대작이다. 그렇다고 묵직하기만 하고 앙상한 역사적 교훈의 메시지만을 던지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염석진(이정재), 하와이 피스톨(하정우)로 대표되는 등장인물들의 중층적이면서 꿈틀거리는 캐릭터는 영화 서사의 흐름을 쉼 없이 크고 작게 굽이치게 만든다. 또한 후반부에 밝혀지는 안옥윤(전지현)의 가족사는 단순한 극적 장치라기보다 역사적 단계 전환을 위해 불가피한, 살부(殺父)의 신화철학적 배경에까지 닿으며 절제된 비장미를 풍긴다. ●탄탄한 시나리오에 전지현의 액션, 이정재·하정우의 명품 연기까지 이 밖에 속사포(조진웅), 황덕삼(최덕문) 등 암살단원들 역시 인물의 상투적 전형성에 머물지 않고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생각케 하는 생생함을 갖고 있다. 이뿐 아니다.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김홍파)는 우직하면서도 정교하게 계산하는 모습이고, 의열단 단장으로서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약산 김원봉(조승우)은 외려 모던하고 댄디한 신사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렇듯 역사 속에서는 주연이지만 영화에서는 조연인 인물조차 역사적 전형성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전지현이 몸을 던져가며 벌이는 총격전, 섬광이 번뜩이는 전투장면, 1930년대 경성 거리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 장면 등 볼거리는 오히려 덤이다. ●판타지적 결말의 아쉬움… 여전한 우리 사회의 과제 일깨워줘 최동훈 감독은 지난 13일 오후 언론시사회를 마친 뒤 간담회에서 “시나리오 작업에만 1년을 매달렸다”면서 “너무 써지지 않아서 자괴감과 고난의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흥행 여부를 떠나 결과물은 그의 노고를 보상하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대목은 판타지적 결말, 혹은 역사적 당위성으로 치달아 아쉬움의 여운을 남긴다. 해방 70년이 됐건만 여전히 친일파의 후손이 정·재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제도적· 문화적 친일 잔재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반세기 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반민특위)가 해내지 못한 일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현실적 과제로 남아 있는 탓이다.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경찰, 세월호 불법 집회 손배訴…“시위대 폭력에 9000만원 피해”

    세월호 1주년 추모집회에서 발생한 폭력 행위와 관련해 경찰이 주최 측을 상대로 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경찰청은 “지난 4월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발생한 경찰 측 피해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4·16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3개 단체와 박래군·김혜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당시 시위대의 폭력 행위로 경찰버스 및 경찰 장구류 등 7800만원 규모의 파손 피해가 난 것으로 집계했다. 경찰은 여기에다 부상 경찰관 40명에 대한 위자료 1200만원(1인당 30만원)을 합쳐 총 9000만원을 배상액으로 산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5월 1일 노동절에 발생한 불법 집회 피해액 3000만원도 집회 주최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 13일 박·김 두 위원장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박 위원장 등은 지난 4월 11일, 16일, 18일과 5월 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일어난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팽목항 주민들 “분향소·리본 철거” 탄원서

    “관광객이 없어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마을 주민들이 팽목항 주변에 설치된 세월호 유가족 분향소와 추모 리본을 철거해 달라고 국민권익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팽목항 주민 대표 김모(55)씨 등 마을 주민 33명이 지난달 말 접수한 탄원서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와 국무조정실, 해양수산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섬 주민들은 굶어 죽으란 말이냐”며 “관광객들이 팽목항을 찾을 수 있도록 유가족 분향소와 노란 리본들, 팽목항 등대 부착물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김씨 등은 “정부는 어업인만 보상한다고 하고 팽목항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은 외면하고 있다”며 “팽목항 주민들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팽목항 주변의 조도 등대와 전망대, 관매도 명품 마을을 보기 위해 하루 20~30대의 관광버스가 오던 것이 지금은 하루 1~2대만 찾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같은 부모 입장에서 아픔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마을에 있는 사춘기 아이들 20여명이 매일 노란 리본을 보다 보니 위축된 생활을 하고 있다”며 “4월 16일 이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돌려줄 것을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과거사 외면한 죄… 돌팔매질 당한 세르비아 총리

    과거사 외면한 죄… 돌팔매질 당한 세르비아 총리

    ‘과거사’를 외면해 온 알렉산다르 부시치 세르비아 총리 일행이 성난 군중에 쫓겨 보스니아에서 줄행랑쳤다. 로이터는 “총리가 얼굴에 돌을 맞아 안경이 부서졌고 군중은 울타리를 부수고 달려들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11일(현지시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레브레니차 학살’ 2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가 수천 명의 군중으로부터 봉변을 당한 부시치의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이번 사건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유럽연합(EU) 대표단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날아온 수만명의 추모객 앞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배경에는 비극적 역사와 이를 외면해 온 세르비아 정부의 오만이 자리한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5년 유고연방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이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000명 넘는 무슬림 남성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 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집단학살로 꼽힌다. 여전히 1000명 이상이 실종자로 처리돼 있다. 2007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를 세르비아군에 의한 계획적 집단 학살 범죄로 판결했으나 세르비아는 여태껏 인정하지 않았다. 세르비아의 후견국인 러시아는 지난 8일 스레브레니차 사건을 학살 범죄로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역 무슬림들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부시치는 화해의 뜻을 전한다며 추모식 참석을 강행했고 결국 돌 세례를 받았다. 부시치가 헌화하자마자 수천명이 야유를 보냈고, 일부 추모객은 신발과 물병, 돌을 던지며 몰려들었다. 총리 일행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세르비아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지역 평화를 이끌기 위한 노력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으나 주변국 어느 곳도 동조하지 않고 있다. “성난 민심의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사설] 아베, ‘징용은 강제노동’이란 ILO 보고서 봤나

    유네스코가 지난 5일 일본의 23개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후 일본 조야의 말 바꾸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나가사키조선소, 하시마탄광 등에서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 노동에 동원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면서다. 지난 10일 한·일 의원연맹에서 일본의 지한파 인사들마저 “일본인도 동원돼 강제 노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정부가 그간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봤다는 느낌이 든다.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 노동 사실 반영을 놓고 한·일은 한반도 출신자 등이 “노동을 강요당했다(forced to work)”는 표현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됐다”고 자평한 배경이다. 그러나 그런 자화자찬이 무색해졌다. 일본 측이 등재 직후 강제 노동을 인정한 게 아니라면서 ‘일하게 됐다’는 표현으로 번역할 때만 해도 우경화한 자국 내 여론을 의식한 ‘물타기’려니 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징용된 ‘경우도 있다’는 의미”라며 아전인수식 재해석에 나선 걸 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물론 이런 언동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여하한 궤변도 징용자들이 지하 1000m 탄광 막장에서 생명을 걸고 노동을 강요당한 역사의 진실을 바꿀 순 없다. 아베 총리는 국제노동기구(ILO)의 1999년 보고서를 직시해야 한다. 일본이 식민지 국민을 징발해 강제 노역을 시킨 것은 명백한 불법 노동행위라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사망률이 28.6%에 달한 참혹한 현장도 있었다니, 강제로 동원되지 않고 제 발로 걸어서 들어갈 리가 만무한 생지옥이었다는 얘기다. 특히 일본의 한 박물관에서 입수됐다는, 야마노탄광의 물자명세서를 보라. 미쓰비시사의 이 탄광 합숙소에 “반도인의 도망을 막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2m 10㎝ 높이의 철조망까지 쳤다는 기록은 강제 노동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닌가. 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자마자 강제 노역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전방위 홍보전을 펴는 일본 측의 태도가 쉽게 바뀔 리도 없다. 이러다간 등재 과정에서 약속했던, 강제 노역의 참상을 기록한 홍보센터 설립 등도 유야무야하며 무산시키려 들까 걱정스럽다. 그렇다면 정부도 일본의 왜곡된 홍보전에 맞서 긴 호흡으로 체계적인 국제 여론전을 준비하길 바란다. 일본 정부가 강제 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 등 약속을 이행하도록 일본 내 양심세력을 포함한 세계 여론을 환기하는 지속적 노력을 펴야 한다.
  • DJ 김광한 별세, “평소 심장질환 있었다” 향년 69세… 누구? ‘팝음악 전성시대 이끈 DJ’

    DJ 김광한 별세, “평소 심장질환 있었다” 향년 69세… 누구? ‘팝음악 전성시대 이끈 DJ’

    DJ 김광한 별세, “평소 심장질환 있었다” 향년 69세… 누구? ‘팝음악 전성시대 이끈 DJ’ ’DJ 김광한 별세’ 1980~90년대 스타 DJ 김광한(69)이 심장마비로 9일 별세했다. 69세. 김씨는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이날 오후 9시 37분쯤 숨졌다. 앞서 그의 부인은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한 김광한은 1982~1994년 KBS 2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1999년)등을 진행하며 이종환 김기덕과 ‘3대 DJ’로 이름을 떨쳤다. 2013년에는 CBS 표준FM ‘라디오 스타’ 진행했다. 사진 = 방송 캡처 (DJ 김광한 별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DJ 김광한 별세, 사인은 심장마비 ‘팝음악 전성시대 함께한 DJ’ 팬들 애도물결

    DJ 김광한 별세, 사인은 심장마비 ‘팝음악 전성시대 함께한 DJ’ 팬들 애도물결

    김광한 별세, 심장마비로 쓰러져 결국… 김광한 누구? 알고보니 ‘국내 3대 스타DJ’ ‘DJ 김광한 별세’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라디오 DJ 김광한(69)이 9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김광한씨는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이날 오후 9시 37분쯤 숨졌다. 고인은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8일 김광한의 부인은 한 매체를 통해 “김광한 씨가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며 “호전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지금 상황이 아주 안 좋다”고 밝힌 바 있다.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김광한은 1982~1994년 KBS 2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진행하며 이종환, 김기덕과 ‘3대 DJ’로 청취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현재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진=MBN 뉴스캡처(DJ 김광한 별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광한 별세, 심장마비로 쓰러져…‘팝스다이얼’ ‘골든팝스’ 팬들 애도

    김광한 별세, 심장마비로 쓰러져…‘팝스다이얼’ ‘골든팝스’ 팬들 애도

    ‘DJ 김광한 별세’ DJ 김광한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1980~90년대를 풍미한 유명 라디오 DJ 김광한씨가 심장마비로 9일 별세했다. 69세. 김씨는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이날 오후 9시 37분쯤 숨졌다. 앞서 그의 부인은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광한은 KBS 2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1982~1994년)과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1999년) 등을 진행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MBC 라디오의 김기덕과 함께 양대 DJ로 거론되며 국내 팝음악의 전성시대를 함께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경순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 02-2210-3423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전설의 DJ 김광한, 하늘에서 마이크 잡다

    [부고] 전설의 DJ 김광한, 하늘에서 마이크 잡다

    1980~1990년대를 풍미한 유명 라디오 DJ 김광한씨가 심장마비로 9일 별세했다. 69세. 김씨는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이날 오후 9시37분쯤 숨졌다. 김광한은 KBS 2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1982~1994년)과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1999년) 등을 진행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김씨는 ‘최연소 팝송전문DJ’로 유명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1966년 우리나라 첫 FM 전파를 내보낸 서울 FM방송에서 DJ를 시작했다. 현재는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앞서 부인 최경순씨는 지난 8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MBC 라디오의 김기덕과 함께 양대 DJ로 거론되며 국내 팝음악의 전성시대를 함께 이끌었다.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 발인은 11일 오전 10시. (02)2210-3423.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DJ 김광한 별세, 사인은 심장마비…‘팝스다이얼’ ‘골든팝스’ 팬들 애도

    DJ 김광한 별세, 사인은 심장마비…‘팝스다이얼’ ‘골든팝스’ 팬들 애도

    ‘DJ 김광한 별세’ DJ 김광한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1980~90년대를 풍미한 유명 라디오 DJ 김광한씨가 심장마비로 9일 별세했다. 69세. 김씨는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이날 오후 9시 37분쯤 숨졌다. 앞서 그의 부인은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광한은 KBS 2FM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1982~1994년)과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1999년) 등을 진행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MBC 라디오의 김기덕과 함께 양대 DJ로 거론되며 국내 팝음악의 전성시대를 함께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경순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 02-2210-3423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DJ 김광한 별세,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사인은?’

    DJ 김광한 별세,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사인은?’

    DJ 김광한(69)이 9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김광한씨는 지난 6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중환자실에서 투병하다 이날 오후 9시 37분쯤 숨졌다. 고인은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 2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사진=MBN 뉴스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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