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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의 네 번째 문신 “Remember 0416”

    선생님의 네 번째 문신 “Remember 0416”

    폭탄머리를 방불케 하는 파마머리, 검은 뿔테 안경. 범상치 않은 외모에 공인 유도 4단이란다. 몸에는 문신이 무려 네 개나 있다. 지난 7일 인터뷰를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쌩~’하고 지나가는 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서해안을 따라 오토바이 여행 중이라고 했다. 대로변에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걸터 앉아 전화를 받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분 정말 선생님 맞아?” 평범하지 않아 보이던 이 사람은 바로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하나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유성호(37) 교사다. 유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문신’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교사가 몸에, 그것도 훤히 드러나는 양 팔과 다리에 문신이 네 개나? 특히 그 중에 하나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서 사연이 궁금해졌다. 유 교사의 오른쪽 팔 안쪽에는 검은 글씨로 ‘Remember 0416’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세월호 1주기를 보낸 뒤 지난 5월 문신을 새겼다.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에 제가 그 배 안에 있었다면 저는 아이들보다 저를 먼저 챙겼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두고 도망갔을지 몰라요. 그래서 이 글귀를 새겼어요.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혹시 겁이 나서 먼저 도망가려다가 이 문신을 보게 되면 아이들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러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보다 오래 살아남지는 말자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교사로서 바라본 세월호 사건은 훨씬 더 아프게 와닿았다고 한다. 마침 하나고 학생들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2주쯤 뒤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교통편을 아직 확정하진 않았지만 배를 타고 갈 가능성이 높았다. 유 교사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보다 한 살 어린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단원고 학생들이 무사했다면, 그래서 예정대로 하나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진행됐다면, 그리고 세월호를 타게 됐다면….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SNS에 딱 두 줄을 적었다.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나는 아이들을 살렸을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난해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유 교사는 그 주 금요일인 17일 수업을 모두 마친 뒤 저녁에 차를 몰기 시작했다. “언론도, 정부도 믿지 못하겠다”면서 “직접 가서 보고 듣고 오겠다”고 오후 8시 30분쯤 SNS에 남겼다. 그리고 곧바로 출발해 새벽에 전남 진도에 도착했다.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 현장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분노’가 치밀었다. 진도에서 사흘을 머물고 돌아오는 길 단원고가 위치한 경기 안산에도 들렀다.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선생님 강모 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마침 입관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가족들과 조문객들이 쉼 없이 우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봤다. 유 교사는 “스승이라는 이름의 무거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유서에 적힌 “시신을 찾지 못한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글귀는 유 교사의 감정을 분노에서 교사로서의 책임감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후 유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교내에서 세월호 추모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 4월 세월호 사건 1주기 때에는 아이들 각자 세월호에 대한 느낌과 고민, 염원 등을 담은 메시지를 모아 합동분향소에 전달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추도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 가르쳤던 학생이 학생회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이었다. 학생들의 동선을 따라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적은 현수막과 메모 등이 붙여졌다. 유 교사는 “아이들은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어른들에 대한 불만을 갖기도 했고 언론이나 정치인에 대한 분노를 갖기도 했다”면서 “동시에 자기에 대한 성찰도 깊이 했다. ‘내가 어른이 됐을 때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더 나은 세상이 오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09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화재 대참사 때 추모미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세월호 사건을 두고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면서 “세월호에 대한 아픔과 슬픔을 품는 것은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교단에 선 지 11년째. 유 교사는 앞으로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하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교사라는 존재가 아이들 앞에서 ‘멋있는’ 존재가 되기 쉬운데,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때 내가 가지 못한 길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나머지 문신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유 교사의 원래 꿈은 작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왼쪽 팔에는 “뼛 속까지 내려가 써라”는 뜻의 문장을 새겼고 오른쪽 다리에는 “명예롭게 죽자”는 의미를 남겼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평화 말할 자격없다” 야유받은 아베… 19년 이어온 ‘비핵3원칙’ 무시했다

    “평화 말할 자격없다” 야유받은 아베… 19년 이어온 ‘비핵3원칙’ 무시했다

    “너, 평화를 말할 자격 없어.” “‘전쟁, 그만둬.” 원자폭탄 투하 70년을 맞아 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희생자 위령식 및 평화 기념식은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야유와 시위로 얼룩졌다. 아베 총리가 행사에서 “오늘 아침, 나는 다시 평화의 고귀함을 생각한다”며 인사말을 시작하는 순간, 일반인 초대석에서 “너,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어”라는 고성이 터져 나오자 경호원들이 달려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아베 총리가 인사말을 이어가자 다시 일반석에서 “전쟁, 그만둬”라는 고성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참석자들이 고성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며, 연설이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이어졌다. 일본에서 총리가 참석하는 기념식 등에서 야유와 소란이 발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근엄하고 정중하게 진행되는 원폭 희생자 위령식 행사에서의 이 같은 소동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평화기념공원 주변에서는 집단자위권 용인 등 안보 법제 개정과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시민 5000여명이 “아베 퇴진” “정권 타도” “법안 중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추도식 행사를 계기로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고성과 야유, 시위로 표출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이런 소동 속에서 2분가량의 연설을 통해 “일본은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할 중요한 사명과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세대와 국경을 넘어 확산시킬 의무가 있다”면서 “올가을 유엔 총회에서 새로운 핵 병기 폐기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1996년 이후 역대 정권이 19년 동안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에서 줄곧 천명했던 ‘비핵 3원칙’(핵무기 보유·제조·반입 금지) 견지 입장을 언급하지 않았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쿠마 구니히코(70) 이사장은 “비핵 3원칙은 국시”라며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 시장은 ‘평화 선언’에서, 원폭 투하 추도식 사상 처음으로 “원폭 투하로 그해 연말까지 히로시마에서 목숨을 잃은 14만명 가운데 한반도와 중국, 동남아 사람들과 미군 포로 등도 포함돼 있었다”고 말해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공식 거론했다. 아베 총리와 마쓰이 시장의 메시지에서 핵무기의 폐해와 핵 폐기 필요성 등이 강조됐지만 재앙의 출발점인 일본의 침략 전쟁 등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담기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의 사람’으로 알려진 마쓰이 시장은 ‘전쟁 가능한 일본’을 만든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집단자위권 법안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 지점에 건설된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희생자 유족, 아베 총리, 대사 등 100개국 사절 등 5만 5000명이 참석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와 로즈 고테몰러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담당 차관이 참석했다. 일본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추모 행사에 미국 정부가 본국의 고위급 인사를 파견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와 칭융화 주일 중국대사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전날 히로시마 민단과 히로시마 총영사관 주관으로 위령제를 가졌고 중국 등 일부 국가는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로서 일본의 반성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피폭자로서의 희생과 피해만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오전 8시 시작돼 원폭 투하 시간인 오전 8시 15분 유족 대표들이 ‘평화의 종’을 울리는 가운데 참석자 묵념과 진혼의 기도가 이뤄졌다. 또 원폭 투하로 폐허가 된 ‘원폭 돔’을 배경으로 비둘기 수백 마리를 날리면서 평화의 염원을 모았다. 위령식에 앞서 일본 전역과 전 세계에서 평화 운동가, 학생 등 수만명이 지난주부터 몰려들어 히로시마 곳곳에서 반핵, 평화운동과 관련된 각종 행사와 기념식 및 이벤트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NHK는 이날 현존하는 일본의 피폭자 수는 18만 3519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9200명 줄었으며 평균 연령은 80.13세라고 전했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로 인구 33만명이던 히로시마에서 하루 만에 7만명이, 그해 연말까지 화상 및 원폭 후유증으로 14만여명이 사망했다. 또 3일 후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7만 4000여명이 희생됐다. 히로시마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고인 의회주의 신념은 영원한 자산”

    “고인 의회주의 신념은 영원한 자산”

    김대중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민주당 대표를 지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영결식이 6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추모객의 애도 속에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 소속 의원 및 당직자 등 40여명과 유족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문 대표는 조사에서 “박 상임고문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고인의 국가 사랑과 의회주의 신념, 당에 대한 열정은 우리 당의 정신적 자산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명복을 빌었다. 이 원내대표도 “박 상임고문이 평생 꿈꾼 민주주의, 의회주의 가치가 국민의 희망이 되는 그런 정치를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병종 고흥군수가 고인의 업적을 읊을 때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짧은 울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후 침묵 속에서 직계 유가족과 의원들의 헌화가 이어졌고, 헌화를 마친 김현 의원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유족은 고인이 현역 의원이 아니어서 장례식장에서 별도 영결식 후 국회 노제(路祭)를 계획했지만 새정치연합이 박 고문 예우 차원에서 당 차원의 국회 영결식을 제안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을 마친 뒤 고인은 장지인 경기 광주 가족추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경남,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월부터 월 70만원 지원

    경남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오는 10월부터 생활보조금으로 매월 70만원을 도에서 추가로 지원받는다. ‘경상남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조례’가 오는 13일 공포·시행되는 덕분이다. 이에 따라 경남도에는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매달 70만원의 생활보조비를 지원하고, 사망하면 조의금 100만원을 전달할 계획이다.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48명 중에 경남에는 7명이 거주한다. 창원시에 4명, 통영시·양산시·남해군 각각 1명이다. 현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매달 169만 3000원을 간병비와 치료비로 연간 최고 1590만원까지 지원받는데, 경남에서는 이런 지원에 추가로 70만원의 생활보조금을 지원한다. 추경으로 예산 편성을 하는 탓에 시행 시점이 10월이다. 도는 또 오는 14일을 전후해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기념·홍보 행사를 개최,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도가 주관해 기림일 기념행사를 할 계획이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 13~30일 ‘기념의 초상, 역사에 묻힌 상처와 인권’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남해군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추모를 위해 최근 건립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한다. 이미 하동군에 ‘평화의 탑’(2007년), 통영시에 ‘정의비’(2013년), 거제시에 ‘소녀상’(2014년) 등 모두 4개 시·군에 추모비·추모상이 건립됐다. 창원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녀상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시립추모시설 화장료 9만→16만원 인상 추진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시립승화원, 서울추모공원 등 시립추모시설의 화장료를 현재 9만원에서 16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공단은 대구시 시립추모시설 화장료가 18만원, 세종시는 16만원, 홍성군은 30만원, 인천시는 16만원 등으로 서울시도 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단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 5월 기준으로 총 54억 8000만원의 수입이 발생했는데 목표액의 43.5%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인건비 등 지출액은 124억원으로 이미 올해 예산의 절반가량을 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단은 시와 협의를 마치면 시의회 조례 개정을 거쳐 내년부터 화장료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시 추모시설은 수익보다 공공 편익을 위한 시설이기 때문에 인상을 검토한 바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월드피플+] 야구장서 사망한 9살 배트 보이의 죽음 그후…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캔자스주 남부 위치타의 한 야구장. 이날 아마추어 야구팀인 '리버럴 비 제이스'와 '샌디에이고 웨이브스' 간의 전미야구회의(NBC) 월드시리즈 경기가 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않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리버럴 비 제이스팀의 배트 보이로 일하던 9살 소년 카이저 찰리가 스윙하며 몸을 풀던 한 선수가 휘두른 배트에 머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목격자에 따르면 이날 찰리는 앞선 타자가 삼진을 당하자 그라운드에 떨어진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가다 이 배트에 머리를 강타당했다. 헬멧을 쓴 상태였으나 충격에 쓰러진 소년은 안타깝게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4일. 리버럴 비 제이스팀의 홈경기가 시작되기 전 한 소녀가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 포수를 향해 힘차게 공을 던졌다. 이 소녀의 이름은 키어스 찰리(7), 바로 숨진 카이저의 여동생이다.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지는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행동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아빠 채드와 유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또한 수많은 관중들은 물론 그라운드의 선수들까지 숙연한 모습으로 박수를 치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사실 이번 게임이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가족의 힘이 컸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불의의 사고로 30명 선수 누구도 배트와 글러브를 잡고싶지 않았던 것. 이에 시구까지 나서며 경기를 계속하라고 힘을 불어 넣어준 것이 바로 유가족이었다. 아빠 채드는 "아들의 죽음이 가슴이 찢어질만큼 슬프고 아프다" 면서도 "우연히 벌어진 사고였을 뿐 누구를 원망하거나 욕하고 싶지않다" 며 눈물을 삼켰다. 구단 대변인 로이 알렌은 "카이저는 생전 자기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최고의 배트 보이였다" 면서 "카이저는 올해 30명의 형들을 얻었고 그 형들이 모두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며 추모했다. 한편 이날 경기장 한 켠 평소 카이저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배트와 헬멧이 주인을 잃은 채 놓여있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지병으로 별세 ‘DJ와 특별한 인연’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지병으로 별세 ‘DJ와 특별한 인연’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민주당 전 대표 및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4일 오전 별세했다. 박상천 전 대표는 그간 지병으로 인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이날 오전 11시경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상천 전 대표는 서울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20년간 판·검사 생활을 역임했다. 박상천 전 대표는 13대 총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다. 박상천 전 대표는 정계에 입문한 뒤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정부 초대 법무장관, 새천년민주당 및 민주당 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야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이회창-김대중 후보간 TV토론을 성사했다. 박상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기는 13대~16대 국회 내리 4선에 당선된 시기다. 박상천 전 대표는 의원 재임 시절 법조계 출신답게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을 주도해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대 총선을 앞두고선 정계은퇴를 선언해 후배 정치인에게 길을 열어주는 훈훈함도 잊지 않았다. 유족은 부인 김금자(65)씨와 1남2녀.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사진 = 서울신문DB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5선+법무장관 역임’ 사인은? 알고보니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5선+법무장관 역임’ 사인은? 알고보니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민주당 대표를 지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박 전 대표는 그간 지병으로 인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이날 오전 11시 끝내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 전 대표는 서울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년간 판검사 생활을 지냈다. 그러다 지난 13대 총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다. 정계에 입문한 뒤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정부 초대 법무장관, 새천년민주당 및 민주당 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야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박 전 대표는 13대~16대까지 내리 4선에 당선되며 정치적 절정기를 달렸다. 박 전 대표는 의원 재임 시절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을 주도해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 때 ‘정통모임’을 만들어 사수파 수장으로서 역할을 했고, 분당 후엔 대표직을 승계해 어지러운 당 상황을 수습하는데 공을 들였다. 유족은 부인 김금자(65)씨와 1남2녀. 빈소는 서울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02)2258-5940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사진 = 서울신문DB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5선+법무장관 역임’ 사인은? 알고보니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5선+법무장관 역임’ 사인은? 알고보니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민주당 대표를 지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박 전 대표는 그간 지병으로 인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이날 오전 11시 끝내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 전 대표는 서울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년간 판검사 생활을 지냈다. 그러다 지난 13대 총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다. 정계에 입문한 뒤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정부 초대 법무장관, 새천년민주당 및 민주당 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야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박 전 대표는 13대~16대까지 내리 4선에 당선되며 정치적 절정기를 달렸다. 박 전 대표는 의원 재임 시절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을 주도해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 때 ‘정통모임’을 만들어 사수파 수장으로서 역할을 했고, 분당 후엔 대표직을 승계해 어지러운 당 상황을 수습하는데 공을 들였다. 유족은 부인 김금자(65)씨와 1남2녀. 빈소는 서울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02)2258-5940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사진 = 서울신문DB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서울은 지금…흙에 살어리랏다] 노원구 ‘상자 텃밭’ 분양

    [서울은 지금…흙에 살어리랏다] 노원구 ‘상자 텃밭’ 분양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오모(45)씨는 4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구청에서 상자텃밭 분양 신청을 받기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씨는 “서울의 북쪽에다 수락산도 있어 노원구에 텃밭으로 활용할 공간이 많을 것 같지만,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이라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상자텃밭은 집 베란다와 옥상 등에서 쉽게 키울 수 있어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도시농업의 하나로 친환경 상자텃밭 분양 접수를 오는 16일까지 받는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에 분양되는 상자텃밭은 50ℓ형 1000개, 30ℓ형 200개 등 총 1200개다. 50ℓ형은 가로 63㎝, 세로 50㎝, 높이 30㎝이고, 30ℓ형은 가로 50㎝, 세로 30㎝, 높이 26㎝다. 50ℓ형은 1개당 8000원, 30ℓ형은 개당 6000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구 관계자는 “아파트 베란다와 옥상 등에서 키울 수 있는 사이즈로 제작됐다. 흙을 담았을 때도 너무 무겁지 않게 느껴질 것”이라면서 “상자텃밭 비용을 받는 것은 실제 작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대상은 노원구 주민이나 단체로 가구당 4개까지 가능하다. 상자텃밭 외에 배양토와 배추모종, 무 씨앗, 가이드북도 준다. 신청은 구홈페이지(www.nowon.kr)에서 하면 된다. 선정 결과는 전산 추첨해 18일 오후 6시 구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문자메시지로도 전송된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친환경 도시농업을 통해 도심 콘크리트 속에서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녹색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발인은?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발인은?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민주당 대표를 지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박 전 대표는 그간 지병으로 인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이날 오전 11시 끝내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 전 대표는 서울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년간 판?검사 생활을 지냈다. 그러다 지난 13대 총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다. 유족은 부인 김금자(65)씨와 1남2녀.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02)2258-5940 사진 = 서울신문DB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부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부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민주당 대표를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박상천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암 투병을 해온 고인은 지난 4월부터 서울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전남 고흥 출신인 고인은 13대, 14대, 15대, 16대, 18대 등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변인, 원내대표, 당 대표, 법무장관 등 정치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의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서울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년 간 판사 생활을 한 뒤 1966년 광주지검에서 출발해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퇴임할 때까지 20년 간 검사로 봉직했다. 그는 1987년 민주당 비민주법률개폐특별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뒤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 내 재야 출신 모임인 ‘평민연(平民硏)’ 몫으로 공천을 받았다. 이후 16대까지 고향에서 내리 4선에 성공했다.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97년 대선을 앞두고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여당 후보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TV토론을 성사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꼽힐 만큼 소신이 분명하고 주관이 강했고,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길 만큼 신뢰를 받았다. 고인은 물리적 충돌보다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철저한 의회주의자로도 통했다. 고인은 동갑내기 법조인 출신으로 정당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 당 대변인, 원내총무를 맡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영원한 맞수’로 불렸다. 박 전 의장은 자신의 책에서 고인을 “공격적 맞수가 아닌 협력적 맞수”라고 회고했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로 유명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금자(65)씨와 딸 유선(SBS)·민선(제일모직), 아들 태희(SK텔레콤)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사위로는 김욱준(검사), 김용철(의사)씨가 있다. 가수 출신인 박진영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고인의 5촌 조카이기도 하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02-2258-5940)이며,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연합뉴스
  • [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하)모스크바~베를린

    [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하)모스크바~베를린

    예카테린부르크를 떠난 열차가 바이칼 호의 끝자락을 빠져나오자 밤이 깊이 파고들어 왔다. 흔들리는 열차는 잠을 초청하는데 수면제 같은 역할을 한다. 적당한 소리와 흔들림이 잠으로 빠져들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눈을 떠 보니까 새벽녘이었다. 여전히 자작나무 숲과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산이 아닌 평야가 펼쳐진다. 얼마를 달렸을까. 11시가 넘은 정오 가까운 시간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한국-러시아 ‘윈윈’할 수 있는 사이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철도 운행 스케줄에 따라 잠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일행은 그 틈을 놓칠세라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삼성전자의 칼루가 현지 공장을 방문했다. 현지법인으로 공장을 지어 8년째라고 하는 1만평 이상 규모의 공장은 첨단 전자제품 생산 공장으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그런데 자동화된 공장도 공장이려니와 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방문한다는 소문을 들은 칼루가 주지사와 경제상공 장관이 달려와 주정부의 투자유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해 준 점이다. 이른바 투자 유치를 위한 러브콜을 하기 위해 두 사람이 온 것이다. 칼루가 주에 투자하면 토지를 무상으로 주고 세제 혜택을 10년 이상 준다는 장황한 이야기였다. 토마스 홉스의 이론을 조금 활용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러시아는 우리들의 ‘사이’이며 ‘관계’이다. 일행이 정차하는 역에는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나와 환영을 해 주었는데 이런 모습이 좋은 의미의 사이이며 관계라는 이론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제재를 가하고 있어 지금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이때에 대한민국 국민 240여명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이 서방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제스처가 될 수 있으며, 우리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이이며 관계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공간에 신체가 있고 그 옆에 다른 신체가 있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지금의 현상이 러시아와 우리의 사이이며 관계일 수 있다는 이론이 홉스의 물체이론이다. 칼루가 주지사의 러브콜은 물질론이나 신체론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공감 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삼성 현지공장을 뒤로하고 모스크바 시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고려인, 한인이 마련한 환영파티에 참석, 점심을 먹었다. 한인 총연합회장, 모스크바 한인회장 등 많은 고려인과 한인 간부들이 주관한 환영회는 열기가 있었고 민족이라는 따뜻한 동질감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러시아에서 국가 1급 훈장을 받은 아니타 최라는 국민 가수가 자신의 밴드 그룹을 데리고 나와 4~5곡을 열창했는데 호소력 깊은 성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마치 신기를 초월하는 괴력무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환영 겸 환송파티가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수난의 역사 간직한 폴란드를 가다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대사관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한반도 면적 크기의 옛 소련권 국가인 벨라루스의 브레스트 역에 도착했다. 환상적인 색채형상으로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가 마르크 샤갈의 고향이기도 하다. 면적에 비해 인구는 962만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당히 엄격한 경계를 받으며 비자 심사를 받고 아름다운 역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밖에는 나갈 수가 없었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였다. 일행이 점심을 먹는 동안 철도 폭이 넓은 TSR에서 전 세계의 철도가 통합된 폭이 좁은 TCR로 차량이 바뀌었다. 바뀐 열차를 타고 2시간쯤 달렸을까. 그 짧은 시간이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어찌 되었든 열차는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120여년 이상의 긴 세월을 외세의 침략으로 한때는 독일, 그리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는 나라가 세 동강이 나는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그럼에도 수도 바르샤바는 아름다운 고도였다. 폴란드에는 위인도 많았다. 피아노 작곡의 거장인 쇼팽이 폴란드 출신인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인 쇼팽은 살아서 조국 폴란드에 돌아오고 싶었으나 독일의 탄압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을 조국에 묻어 달라고 했지만 시신을 폴란드로 옮길 수가 없어 누나가 심장만 숨겨 들고 와서 바르샤바의 성당에 안치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심장이 존재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상징적인 돌기둥이 성당 안에 서 있다고 한다. 바르샤바 곳곳 쇼팽이 활동했던 보도 위에는 그가 작곡한 음악이 기록된 돌로 만든 벤치가 놓여 있다. 한쪽 끝에 버튼이 있어서 그 버튼을 누르면 쇼팽의 피아노곡이 울려 퍼져 그의 곡을 쉬면서 들을 수 있다. 폴란드 국민의 쇼팽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구 시가지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서 있고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으로 추천한 대주교의 동상도 역사적인 성당 건물 앞에 있다. 구 시가지의 야경이 장관이다. ●개성 등 북한지역에 더 많은 공단 조성해야 독일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유대인 집단 거주지인 게토 지역에 자리 잡은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묵념을 했다. 독일이 폴란드에 사과하고 화해한 태도와 일본이 우리나라에 제스처만 보이는 태도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바르샤바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세미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그제고슈 스헤티나 폴란드 외무장관의 기조연설과 우리 측 학자 2인, 폴란드 측 학자 2인의 발표로 의미 있게 진행됐다. 마지막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까지 도착하여 세미나를 더욱 뜻깊게 했다. 의미 있는 세미나를 마친 열차가 마지막 종착지인 베를린을 향해 출발했다. 베를린 도착 후 하룻밤을 지낸 유라시아 친선 팀은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 알리안츠 포럼 건물에서 열린 ‘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 문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베를린 자유대학 학생과 서울대 학생 각 8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외교부 장관과 전 독일 총리의 기조연설이 세미나를 더욱 진지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 많은 것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우선 통일이라는 단어보다 남북이 하나 되기 위한 의미의 다른 단어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동독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담화도 유라시아 대륙의 물류 길을 연다면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냄으로서 경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제 선진국이 된다면 북한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돕고 소통하며 민간 차원의 생활문화를 교류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성과 같은 여러 곳에 공단을 많이 지어서 북한 국민의 생활이 향상된다면 남북이 하나 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물론 기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통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공터에는 돌로 만든 유대인 학살 추모 기념 모뉴먼트가 미로처럼 설치되어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비싼 금싸라기 땅이란다. 독일 의회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로 높낮이가 각기 다르고 사람이 앉거나 누워도 좋을 만한 1000여개가 넘는 직사각형의 기념비적 모뉴먼트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결과물이란다. 이 작은 돌 위에 안거나 누워서 자신들의 과거사를 뒤돌아보는 진정한 독일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의 형식적인 모습과 달리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 게토 지역의 추모 기념비 앞에서 갑자기 땅에 엎드려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 숙여 가슴 아파한 광경은 모든 사람들을 당황시킬 정도로 놀라운 장면이었다고 한다. 많은 기자들의 질문에 브란트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니 전후 일본 총리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통일을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겠지만 작금의 일본 총리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하루속히 북한과 하나 되어 부산과 목포에서 평양을 거쳐 베를린까지 우리의 생산품을 싣고 열차가 달릴 날을 기대한다. ●베를린서 울려 퍼진 금강산… 통일을 기약하다 세미나가 끝나고 브란덴부르크 문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음악회는 베를린에서 치른 한국의 밤 같은 무대였다. 백건우씨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5번은 엄청나게 모인 관중을 감동시켰다. 또한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연에 관중들이 매료되었으며 끝으로 조수미가 부른 ‘그리운 금강산’은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참가인 중 몇 사람은 눈시울을 적시었다고 한다. 베를린이라는 장소 또한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끝으로 윤병세 장관을 비롯해 김창범 단장, 임수석 심의관 등 외교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프로젝트 준비팀의 노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의 각 도시 정차 역에서 치러진 환영식과 크고 작은 행사 등등 치밀한 준비가 돋보였다. 또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가 성사되도록 러시아철도공사와의 협의에 최선을 다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과 공사 측 직원들의 노력에도 감사를 표한다.
  • “짐바브웨서 또 다른 미국인도 불법으로 사자 사냥했다”

    “짐바브웨서 또 다른 미국인도 불법으로 사자 사냥했다”

    미국의 한 치과의사가 짐바브웨에서 ‘세실’이라는 이름의 사자를 사냥해 거센 비난을 사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미국인이 인근 지역에서 불법 사자 사냥을 한 혐의가 포착됐다고 미국의 인터넷 웹진 매셔블이 짐바브웨 관리의 말을 인용해 3일 보도했다. 짐바브웨 관리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머리스빌에 거주하는 얀 카스미어 시에스키라는 남성이 지난 4월 짐바브웨 황게 국립공원에서 불법적으로 사자를 사냥했다. 사냥은 사파리 소유회사 오너인 짐바브웨인 시반다 헤드만이 준비했으며, 당국의 허가는 받지 않았다. 시반다는 체포되어 사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매셔블은 전했다. 불법 사냥 혐의를 받고 있는 시에스키는 ‘세실’을 사살한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팔머가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의 활과 화살로 사자를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미네소타에 거주중인 치과의사 팔머는 ‘세실’ 사냥이 합법인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거센 역풍에 직면해 있다. 그의 사무실은 ’세실’ 사살에 대한 항의시위와 의 추모의 장소가 되어 있으며, 웹사이트는 엄청난 양의 악평으로 가득 차 있다. ‘세실’ 사냥에 관련된 짐바브웨인 2명은 현재 체포된 상태로, 짐바브웨 당국은 미국에 팔머를 넘겨줄 것을 원하고 있다. 사진= 매셔블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포토] 그 소녀를 추모하며…

    [포토] 그 소녀를 추모하며…

    이스라엘에서 열렸던 동성애 퍼레이드에서 발생한 흉기난동사건으로 부상당한 16세 소녀 시라 반키가 2일(현지시간) 끝내 사망하여 사람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예수살렘에서 열린 동성애자 행진대열에서 반키를 비롯한 6명을 다치게 한 용의자는 극우 유대교 신도로 비슷한 범행으로 복역하다가 수주 전에 출옥한 것으로 드러났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인 된 선생님 위해 단체 전통춤 선보인 전교생 ‘감동’

    고인 된 선생님 위해 단체 전통춤 선보인 전교생 ‘감동’

    고인이 된 선생님을 추모하고자 고등학교 전교생이 선보인 전통 춤이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뉴질랜드텔레비전(TVNZ) 등 현지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북섬의 파머스톤 노스 남자 고등학교 전교생은 유명을 달리한 스승 ‘도슨 타마테아’(Dawson Tamatea·55)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하카‘(Haka)를 헌정했다. ‘하카’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용사들이 전쟁에 출전하기 전 승리를 기원하며 춘 춤이지만, 현재는 특별한 사람을 환영하거나 추모하는 의식으로 춘다. 공개된 영상에는 학교 정문에 영구차 행렬이 들어서자 1,700명에 이르는 재학생들이 하카 의식을 치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마음으로 하카를 펼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선생님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진다. 한편 교사 ‘도슨 타마테아’는 이 학교에 1986년 부임 이래 지난 30여 년 간 학생들에게 체육과 수학을 가르쳐 왔다. 선생님께 바치는 학생들의 단체 하카 춤 영상은 현재 418만 건에 이르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누리꾼의 찬사를 받고 있다. 사진·영상=PNBH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사자 ‘세실’ 새겨진 황금 스마트폰 출시, 상술 논란

    사자 ‘세실’ 새겨진 황금 스마트폰 출시, 상술 논란

    짐바브웨의 국민 사자 세실의 죽음을 둘러싼 분노와 논쟁이 아직 분분한 현 시점에 한 업체가 세실을 ‘추모’하겠다며 내놓은 초고가 스마트폰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IT 전문지 씨넷 등 외신은 31일(현지시간) 영국 회사 골드지니(GoldGenie)가 세실의 모습이 새겨진 2470달러(한화 약 290만원)짜리 금도금 스마트폰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원래 골드지니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16만4000달러(약 2억 원)가격의 특수 한정판 애플와치 등 사치스러운 제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 이번 제품은 HTC사의 ‘원M9’ 모델을 기초 삼아 제작한 것으로, 24캐럿 금으로 도금되어 있다. 뒷면에는 세실의 모습이 음각돼 있고 ‘세실과 그의 왕국을 위해’(for Cecil and his Kindom)라는 문구도 같이 새겨져 있다. 이 스마트폰은 99대만 한정적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골드지니는 판매금액의 10%를 세실이 살던 짐바브웨 황게 국립공원의 보전과 관리에 힘쓰는 ‘황게의 친구들 재단’(Friends of Hwange Trust)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사는 제품 설명에서 “이번 제품은 야생동물의 아름다움과 그 보호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해줄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IT정보 미디어 더 버지(The Verge)는 이를 두고 “세실의 죽음을 이용해 제품을 팔겠다는 아이디어는 구제불능일 정도로 옳지 못한 생각”이라며 “소비자들은 이런 위선적인 중간 기업을 거치지 말고 직접 재단에 기부하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미러 또한 “세실이 이런 제품 판매에 과연 동의할지 의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골드지니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탄생 140주년·서거 50주기 이승만 기념우표 美서 발행

    탄생 140주년·서거 50주기 이승만 기념우표 美서 발행

    미국 우표 제작 대행사인 골든애플즈가 30일(현지시간)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 탄생 140주년 기념 및 서거 50주기 추모 미국 우표를 발행했다. 이번에 제작된 우표는 한 시트에 20개가 인쇄됐으며 제작 수량은 2종 3시트씩 모두 120장이다. 이번 우표는 일반에 판매되지 않고 한국의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에 기증될 예정이다. 아들 이인수씨는 우표 발행에 맞춰 “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70주년”이라며 “아버지는 평생을 대한민국 건국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헌신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민간도 우체국 승인을 받아 우표를 제작할 수 있다. 그동안 한인 교포 사회 주도로 서재필 박사 탄생 150주년, 세월호 영웅 최혜정·박지영씨 추모,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맞춰 기념우표가 발행된 바 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메르스 종식 선언] “끝났다고요? 일상은 꿈도 못 꿔요”

    윤정희(30·여·가명)씨는 메르스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달 17일 엄마를 잃었다. 5월 19일 대상포진으로 경기 평택성모병원에 들렀다 메르스에 감염된 어머니는 홀로 격리병동에서 숨을 거뒀다. 어머니가 숨지기 닷새 전 자가 격리 조치에서 해제된 윤씨는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 ●“왜 대처가 그렇게 늦었는지 의아하다” 분통 “기자들이 찍어 신문에 나온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이 생전 마지막일 줄은 진짜 몰랐어요.” 28일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는 이제 눈물도 마른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메르스에 묶여 있어요. 집안에 우울과 침묵뿐인 상황이 너무나 견디기 힘드네요.” 윤씨는 어머니가 메르스를 이겨 낼 줄 알았다. 평소 건강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병원에서 위독하다고 했어요. 산소를 못 받아들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그럼 가족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게 해 줘야 했던 것 아닌가요.” 숨을 거둔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은 두꺼운 방진복을 입은 채 영안실에서 이뤄졌다. “한 명만 영안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식구들을 가로막아 울다 울다 결국 아버지랑 둘이 들어갔어요. 보호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 말만 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정부 사과해야” 윤씨 어머니는 장례업체들에도 냉대를 당했다. 메르스 사망자라는 이유로 장례식마저 거부당했다. “무슨 질병으로 돌아가셨냐고 묻더라고요. 메르스라고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전화를 끊어 버리고….” 결국 어머니는 사망 당일 화장해 그날 저녁 평택의 한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윤씨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그 하루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정부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밉다’는 말만 반복하던 그녀는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했다. “아직도 저는 어떻게 엄마가 감염됐는지도 모르고, 대처가 왜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유가족한테 사과도 없었어요.” 메르스는 끝났지만 윤씨는 여전히 진실을 알지 못하고 그 누구로부터 따뜻한 위로도 받지 못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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