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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의 역사의 창] 새로 쓰는 국사는?

    [이덕일의 역사의 창] 새로 쓰는 국사는?

    고구려 영양왕(嬰陽王)은 재위 11년(600) 태학박사 이문진(李文眞)에게 고구려의 고사(古史)를 요약한 ‘신집’(新集) 5권을 편찬하게 했다. 이를 전하는 ‘삼국사기’ 영양왕 11년 조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개국 초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할 때 어떤 사람이 역사 사실을 ‘유기’(留記) 100권에 기록했는데, 이에 이르러 다듬고 수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국 초에 100권에 달하는 역사서를 쓸 만큼의 내용이 있느냐는 점에서 의문이 따른다. 그래서 ‘유기’는 고구려의 전사(前史)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유사’ 왕력(王歷) 조는 시조 동명왕에 대해서 “성은 고(高)씨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인데, 다른 본 ‘일작’(一作)에는 추모(鄒牟)라고도 한다. 단군(壇君)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연이 본 다른 역사서는 추모왕을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쓰고 있었다는 뜻이다. 추모왕을 단군의 아들로 보면 고구려의 국시(國是) 다물(多勿)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동명왕은 개국 이듬해(서기 전 36) 비류국 송양이 나라를 들어서 항복하자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임금으로 봉했다. ‘다물’이란 용어에 대해 “고구려 말에 옛 땅을 수복하는 것을 다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건국한 고구려에 수복할 ‘옛 땅’이 어디였을까? 이 역시 고구려인들을 시조 추모왕을 “단군의 아들”로 여긴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국시는 단군 조선의 옛 강역을 회복하는 ‘다물’이었고, 그래서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한나라와 충돌했다. 한나라가 고대 요동에 설치한 낙랑·현도군 등을 서남쪽으로 밀어내며 강역을 되찾았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 고구려 조는 “고구려인들은 그 성질이 흉악하고 급하며, 기질과 힘이 있어서 전투에 능하고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라고 비판한다. 고구려인들이 한나라에 맞서 자주 군사를 일으켰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에는 단군 기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또한 오해다. 고구려는 동천왕 20년(246) 2월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의 침략으로 수도 환도성(丸都城)이 일시 함락되는 곤욕을 치렀다. 동천왕은 함락당했던 곳을 다시 수도로 삼을 수 없다고 도읍지를 옮기는데 그곳이 평양(平壤)이다. ‘삼국사기’ 동천왕 21년(247) 2월 조는 “평양이란 곳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옛 터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인 왕검’이란 물론 단군왕검을 뜻한다. 동천왕이 천도했던 평양성은 장수왕이 재위 15년(427)에 천도한 평양성과는 다른 곳으로 요동에 있던 곳이다. 평양은 특정 지역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구려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고구려는 단군 조선을 계승한 국가라는 의식에서 국난을 극복한 후 단군 조선의 옛 터로 수도를 이전했던 것이다. 고구려가 국사 ‘신집’을 편찬한 때는 중원을 통일해 크게 기세를 떨치던 수(隋) 문제(文帝)의 30만 침략군을 궤멸시킨 다다음해였다. 중원의 패자 수나라를 꺾어 천하의 패자로 우뚝 선 고구려의 위상을 ‘신집’으로 나타낸 것이다. 백제와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백제는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高興)이 ‘서기’(書記)를 편찬했고, 신라도 세력을 떨쳐 나가던 진흥왕 6년(545) 대아찬 거칠부(居柒夫)가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모두 국력의 융성기에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담은 국사를 편찬했다. 우리 사회는 그간 국사를 반성의 거울이 아니라 정권의 도구로 생각하는 바람에 국사 자체가 정쟁의 도구가 되었다. 정작 국정은 물론 검인정 국사 교과서도 그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덮였다. 국정, 검인정을 막론하고 현재의 국사 교과서는 극도의 중화 사대주의 사관인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새로 편찬할 국사 교과서는 좌우를 떠나 우리 2세들이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역사관과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폐 중의 적폐인 식민사학 적폐 청산 소리는 들리지 않는 지금 상황으로 봐서 과연 그런 교과서가 나올까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우리 자니’로 통했던 프랑스 록가수 할리데이 폐암으로 운명

    ‘우리 자니’로 통했던 프랑스 록가수 할리데이 폐암으로 운명

    프랑스인들이 ‘우리 자니’라고 불렀던 록스타 자니 할리데이가 폐암과의 투병 끝에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라에티시아는 6일 성명을 내 “믿기지 않는 상태에서 이 단어들을 적고 있다. 그러나 사실이다. 내 남자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한다. 자니 할리데이가 평생을 살아왔듯이 용기있고 위엄있게 오늘밤 우리 곁을 떠났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을 인용해 영국 BBC가 보도했다. 고인은 1960년 가수로 데뷔해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명성을 날렸고 1억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 19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서 레종 도네르 훈장를 수여받았다. 본명이 장 필립 스멧이었던 그는 1957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가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수많은 팬들은 그에게 ‘프랑스의 프레슬리’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의 부음을 접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그에게 헌정된 앨범 타이틀을 인용해 “우리 모두의 안에 약간의 자니가 있다”는 추모사를 남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세대를 넘어 그는 프랑스 사람들의 삶에 자신을 새겼다. 공연 중에 여러분이 본 대로 관대함으로 우리 모두를 매혹시켰다. 그렇게 넓은 공간을 누비면서도 작은 지점까지 소홀히 하지 않는 정말 획기적이고 친밀한 공연을 즐겼다“고 애도했다. 미국 기타리스트 레니 크래비츠, 팝스타 셀린 디옹 등이 즉각 트위터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음악 전문기자 필리페 르 코레는 “그는 프랑스에 로클롤을 소개한 인물이다. 무대에만 올라가면 짐승이 되는 몇 안 되는 가수 중의 한 명이었다”며 “그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연령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1950년대까지 샹송 일변도였던 프랑스 음악계에 로큰롤을 처음 소개했으며 프랑스어로 가사를 붙여 로큰롤 음악을 최초로 부른 가수였다. 프랑스에서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미국이나 영어권 시장에서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일간 USA 투데이는 한때 그를 “당신이 결코 들어본 적 없는 가장 위대한 록스타”라고 일컬었다. 고인은 한 번 음악작업에 들어가면 끝을 볼 때까지 매달렸고 순회 공연에 나서면 거의 쉬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또 파티를 즐겨 술과 담배, 약물을 좋아했고 다섯 차례나 결혼하며 악동 이미지를 풍겼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군위 ‘김수환 추기경 공원’ 이달말 만난다

    고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체험을 통한 산 교육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간인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이 경북 군위에 들어섰다. 군위군은 국비 등 총사업비 123억원을 투입해 군위읍 용대리 일대 3만 2000여㎡ 터에 조성 중인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조성 사업’을 이달 말 준공한다고 4일 밝혔다. 군위 용대리는 김 추기경이 5살 때 가족을 따라 이사를 온 뒤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대구가톨릭대 전신)에 진학할 때까지 약 8년간의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추기경은 1993년 3월 이곳을 찾아 어린 시절을 회상했으며, 2007년엔 추기경이 어릴 적 살았던 집을 직접 그린 뒤 ‘김수환 옛집’이라고 제목을 달기도 했다. 사랑과 나눔 공원은 크게 문화시설과 청소년 수련시설로 구분됐다. 문화시설로는 추모전시관(지상 2층·940.95㎡),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추모정원, 잔디광장 등이 마련됐다. 또 추기경의 1920~30년대 옛집과 우물, 아버지가 이웃과 함께 옹기를 굽던 옹기굴(길이 8m)을 복원해 어려웠던 시대상을 재현했다. 폐교인 군위초교 용대분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청소년 수련시설로는 100명 동시 수용이 가능한 수련원(지상 2층·1983.24㎡), 운동장, 야외집회장, 모임광장 등이 있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앞으로 추기경의 삶과 생활철학 정신이었던 소중한 사랑과 용서, 나눔의 마음을 일깨울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화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낚싯배 희생자들 추모 묵념

    낚싯배 희생자들 추모 묵념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왼쪽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쟈니 윤 쇼’라는 방송을 했다. 그때까지 내게 코미디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짓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쟈니 윤의 코미디는 전혀 다른 식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가서 미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코미디를 했다고 하니 더욱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사사로운 자리에서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 나는 그가 심형래를 능가하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다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웃음부터 날 것 같아 긴장했다. 하지만 내 우려는 완전히 빗나갔다. 쟈니 윤은 우스운 사람이 아니었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는 시종일관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살짝 머금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가 보일 정도로 웃는 일은 없었다. 그는 행동이 무척 신사적인 사람이었고 기대와는 달리 말하는 내내 가벼운 농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날 이전까지 내 머릿속에 있던 쟈니 윤의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졌다. 여전히 나는 그의 본 모습을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인으로서 그는 우스운 연기를 하지만, 실제 쟈니 윤은 로버트 드니로처럼 멋진 신사라고 믿는다. 그 만남이 있은 후부터 나는 쟈니 윤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배우 찰리 채플린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됐다.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소한 체격에 허름한 양복, 윗옷은 자기 치수보다 작아 꽉 끼지만 바지는 헐렁하다. 커다랗고 다 낡아빠진 구두는 발에 매달려 있는 수준이라 걸을 때면 오리처럼 뒤뚱거린다. 우스운 차림이지만 대나무 지팡이까지 있어서 신사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춘 모습이다. 채플린은 매번 똑같은 차림으로 영화에 출연했고 그가 맡은 배역은 언제나 말썽을 몰고 다니는 떠돌이 방랑자 역할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많이 웃었고, 또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채플린이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렇게 전 세계를 웃겼던 사람의 삶이 실은 전혀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많은 사람의 증언을 보더라도 영화 밖의 채플린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다. 채플린과 비슷한 시기에 무성영화에 출연한 배우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버스터 키튼은 경쟁자였던 채플린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그가 가장 우습지 않을 때는 영화를 제작할 때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고 명석하고 면밀한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나비의 날개를 다루는 곤충 채집가의 꼼꼼함에 비견된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사람 채플린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서 정작 자신은 가장 우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채플린은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내고야 마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배우 섭외에서부터 촬영, 연기지도, 시나리오 작성, 필름 편집은 물론 나중에는 영화에 들어갈 음악까지 독학으로 공부해 직접 작곡했다.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촬영장에 의무적으로 분장사를 고용해야 했을 때도 특유의 ‘떠돌이 찰리’ 분장은 언제나 스스로 했다. 이 놀라운 인간은 자서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다. 보통 유명인들의 자서전인 경우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으며 쓰는 일이 많은데 채플린은 삶의 후반기 여러 해 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을 직접 썼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만 해도 본문 분량이 1000쪽이 넘어가는 책이다.워낙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평전이나 연구서도 꽤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 분량이 비교적 적은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제목은 ‘나의 아버지 채플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중앙신서에서 문고본 시리즈로 펴낸 작은 책이다. 서지를 보니 1978년에 초판을 낸 이래 1981년까지 다섯 번을 더 찍었으니 나름 잘 팔린 책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글을 쓴 사람은 찰리 채플린의 아들인 것이 분명하니 더욱 인기를 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평론가나 전문 작가보다 아들의 위치는 채플린과 더욱 가깝다. 그래서 이 책에는 좀더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 있다. 책의 저자는 찰리 채플린의 두 번째 아내인 리타 그레이의 아들인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인데 채플린은 그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리타 그레이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해 자녀를 본 직후인 1927년에 이혼했다. 아내와 함께했던 날은 만 3년뿐이었지만 자녀들과는 이후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채플린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채플린 주니어는 바로 이 책 ‘나의 아버지 채플린’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은 채플린이 ‘키드’, ‘모던 타임즈’, ‘독재자’를 만들 때 작업장에 함께 있었다. 이 때문에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연기 지도자였던 채플린을 누구보다 생생한 모습으로 책에 그려 내고 있다. 채플린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았고 모든 걸 직접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한번 믿음을 준 사람에겐 모든 걸 맡겼다. 책 속에는 채플린의 집에서 일하던 세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집사, 운전사 그리고 요리사였는데 꼼꼼한 채플린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큰 신뢰를 얻었다. 진주만 공습의 여파로 집에 일본인을 두지 못하게 됐을 때도 채플린은 이들에게 때마다 봉급을 줬다. 재미있는 일화도 꽤 있다. 채플린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공로로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를 전문가 몇 명이 평가해서 상을 수여하는 것에 반감이 있던 것이다. 채플린은 평론가들의 의견보다는 더 많은 영화팬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웃어 주는 게 더 값지다며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아카데미 특별상 트로피는 채플린의 집으로 배달됐고 그는 한동안 이 ‘물건’을 문이 닫히지 않도록 틈에 고정해 두는 도구로 사용했다. 떠돌이 방랑자 캐릭터가 워낙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여기저기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도 많이 열렸던 모양이다. 채플린은 미국의 한 동네에서 열린 닮은꼴 경연대회에 신분을 숨긴 채 본인이 직접 참가했던 일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본인이 직접 참가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에서 진짜 채플린은 3등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아들이 쓴 책에 따르면 아버지로부터 경연대회 결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나치가 정권을 잡았던 독일에서는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금지되었던 때가 있다. 히틀러와 채플린은 외모도 닮았지만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는 점 때문에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숱한 이야기가 양산됐다.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성장한 것도 같다. 나중에 채플린은 아예 히틀러와 똑같은 분장을 하고 그의 연설 장면을 흉내 낸 영화 ‘독재자’를 만들어서 크게 히트시켰다. 이처럼 아들이었기 때문에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채플린의 여러 모습이 이 작은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지만 아들이 쓴 책의 마지막 장은 채플린이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인 우나 오닐과 결혼해 스위스에 정착한 것에서 멈췄다. 이때 채플린은 방대한 자서전의 첫 부분을 쓰고 있었다. 얘기가 이렇게 끝난 것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 채플린’은 1960년 롱맨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판됐고 채플린 주니어는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떠돌이 찰리 채플린은 1974년에 자서전 ‘My Life in Pictures’를 펴냈고 197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배우가 죽었을 때 영국 신문 가디언지는 그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구리에 ‘박환서 문학관’ 2020년까지 건립

    구리 토평동에 ‘박완서 문학관’이 2020년 까지 건립된다. 토평도서관 옆 1720㎡ 부지에 3층 규모로 건립하며, 고인이 생전에 남긴 유작 등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백경현 경기 구리시장은 고 박완서 작가의 유족과 문학관 건립을 위한 기본협약(MOU)를 체결했다고 1일 밝혔다. 박완서 작가는 1998년 부터 구리 아치울 마을에 정착, 장자호수공원 등을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등 구리시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리시는 박 작가를 기리고자 매년 소설 낭송 등 추모 공연을 열고 있다. 백 시장은 “선생의 수많은 작품세계를 기리는 문학관이 건립되면 그 분을 추억하는 장소로서 뿐 아니라, 강력한 문화자원으로서의 활용 역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업계소식] 한성기업,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음악회

    [업계소식] 한성기업,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음악회

    제11회 ‘유엔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가 지난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이날 행사에는 한·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한한 터키 전몰장병 유가족과 전후 복구 지원국인 독일 의료지원단 및 가족, 유엔참전용사·가족, 주한 외교사절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국가보훈처와 호국문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음악회는 6·25전쟁 당시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행사로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이날 행사에서 임우근 호국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한성기업 회장)은 “지금의 우리는 호국선열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으로 지금과 같은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강철비’ 배우 김의성, 故 김주혁 사고 이후 편치않았던 삶 고백 [전문]

    ‘강철비’ 배우 김의성, 故 김주혁 사고 이후 편치않았던 삶 고백 [전문]

    ‘강철비’ 배우 김의성이 故 김주혁 사고 이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29일 영화 ‘강철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우 김의성(53)이 자신의 SNS에 지난달 유명을 달리한 동료 배우 故 김주혁을 추모하며 심경을 전했다. 김의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랫동안 글도 못 쓰고 책도 못 읽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하던 날,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고비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순박하게,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던 그가 황망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냥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멍하니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어딘가에 추모의 글을 올릴 경황도,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의 빈소에 찾아가 사진 속의 얼굴을 보고, 절하고, 소주 몇 잔을 마시고 나니 비로소 그의 부재가 실감이 나더라”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의성은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꽤 오랫동안 우울감이 머릿속을 채웠고, 불면증도 심해지더라. 하지만 어쩌겠나. 시간은 모든 걸 희미하고 만들고, 나는 또 내게 주어진 일들을 덤덤하게 해 나가고 있더라”라며 슬픈 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故 김주혁을 떠나보낸 뒤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던 시간을 회고하며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김의성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11월은 거의 쉬는 날 없이 전국을 돌며 일을 했다. 몸은 힘들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게 마음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책을 읽읍시다’ 프로젝트는 이 정신 없는 일정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다시 시작하겠다. 혹시 기다리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날이 차다,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의성이 올린 글은 지난달 30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소식을 접한 뒤 편치 않았던 그의 삶을 짐작게 하고 있다. 김의성이 한동안 우울증 등으로 심적 고통을 느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페이스북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를 응원하는 글이 다수 게재됐다. 네티즌들은 “안면이 없는 팬들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동료 배우로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김의성 배우님,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모습으로 뵙길 바랄게요”, “김의성 씨 글 보니 눈물이 나네요.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항상 힘내세요”라며 그를 다독였다. 한편 故 김주혁은 지난 10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 수많은 팬과 동료들은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슴 아파하며 추모의 뜻을 표했다. 다음은 김의성 페이스북 글 전문 오랫동안 글도 못쓰고 책도 못 읽었습니다.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 하던 날,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고비에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순박하게,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던 그가 황망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냥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추모의 글을 올릴 경황도,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의 빈소에 찾아가 사진속의 얼굴을 보고, 절 하고, 소주 몇잔을 마시고 나니 비로소 그의 부재가 실감이 나더군요. 충격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꽤 오랫동안 우울감이 머릿속을 채웠고, 불면증도 심해 지더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시간은 모든걸 희미하게 만들고, 저는 또 제게 주어진 일들을 덤덤하게 해 나가고 있더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11월은 거의 쉬는 날 없이 전국을 돌며 일을 했습니다. 몸은 힘들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게 마음에는 도움이 되는것 같아요. 책을 읽읍시다 프로젝트는 이 정신없는 일정들이 마무리 되는대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기다리셨던 분들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날이 찹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사진=김의성 SNS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KAL 폭파사건 30주기…유족들 “역사의 증인, 김현희 나오세요”

    KAL 폭파사건 30주기…유족들 “역사의 증인, 김현희 나오세요”

    1987년 발생한 ‘KAL858기 폭파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유족들이 29일 폭파 사건 30주기를 맞아 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KAL858기 가족회’(이하 가족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KAL858기 사건 30주기 진상규명대회·추모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가족회는 “다시 한 번 정부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기관을 구성해 진상을 규명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가족회는 KAL858기 사건의 배후에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작이 있었다면서 “국정원은 공작의 전모를 밝히고 국정원 서버에 담긴 테러범 김현희와 관련한 자료까지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현희에 대한 수사와 재판 내용은 물론 당국의 발표, 김현희의 주장은 심각한 모순과 문제투성이”라면서 김현희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와 신원 확인을 위한 북한 현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진상규명대회·추모제가 열린 기념관 단상 위에는 “역사의 증인 김현희 나오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가족회는 가칭 ‘KAL858기 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전문가 집단을 구성하고 진상규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KAL858기 폭파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중동 건설현장에 나갔던 노동자를 비롯해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서울로 돌아오던 대한항공 858편 항공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거리로 나온 특성화고 학생들

    거리로 나온 특성화고 학생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학생들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이민호군 추모문화제에서 ‘왜 실습하다가 죽어야 합니까’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이군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 청룡영화제 김혜수, 故 김영애·김주혁 등 추모에 눈물

    청룡영화제 김혜수, 故 김영애·김주혁 등 추모에 눈물

    ‘청룡영화제’ 진행자 김혜수가 故 김영애, 김지영, 윤소정, 김주혁을 추모하며 눈물을 보였다.25일 오후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는 제38회 청룡영화제가 열렸다.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대에 오른 차태현은 “2017년은 안타깝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아주 가슴 아픈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소중한, 존경하는 선배님 사랑하는 동료를 떠나보냈다. 잘 지내고 계시겠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차태현은 “난 아직 그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언제나 따뜻하게 배려해주셨던 그 인자함 또한 잊혀지지가 않는다. 미처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큰 날벼락 같은 이별에 사실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선배님들의 수고에 큰 박수를 보내드린다. 정말 행복했던 추억들 영원히 간직하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훌륭했던 영화인이셨던 걸 꼭 기억하겠다. 부디 아프지 마시고 평안하시길 빌겠다. 정말 많이 보고싶다. 사랑한다”고 말해 뭉클함도 더했다. 차태현은 마지막으로 “사랑해요. 형”이라며 절친 김주혁을 떠나보낸 마음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故 김주혁, 김지영, 김영애, 윤소정의 사진이 영상으로 보여졌다. 김혜수는 끝내 눈물을 쏟으며 “우리에게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거 같다. 진심으로 네 분의 평안을 기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38회 ‘청룡영화제’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유족이 알리지 말라 했다”지만…해수부 앞뒤 안 맞는 해명

    “유족이 알리지 말라 했다”지만…해수부 앞뒤 안 맞는 해명

    ‘세월호 유해 수습 은폐’ 논란에 대한 해양수산부의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씻기지 않았다. 해명의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적잖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24일 해수부에 따르면 김영춘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조은화양의 가족이 ‘뼈 확인 소식을 언론에 실시간으로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현장 책임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조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희 가족과 (허)다윤이네 가족이 이별식(9월 23~25일)을 하기 전에 그런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요청한 사실 자체는 거짓이 아니지만 은폐 논란을 덮을 수 있는 이유로는 부족하다.이씨가 이런 요청을 한 이후인 지난달 10~11일에도 세월호 기관 구역에서 사람 뼈가 잇따라 발견됐고, 당시 대응은 이번과 판이하게 달랐다. 당시에는 현장 매뉴얼대로 곧장 미수습자 가족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공개하고 유해를 즉각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식을 의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3년 7개월 동안 기적을 바라 온 미수습자 5명(단원고 양승진 교사, 남현철·박영인군, 권재근·혁규 부자)의 가족들에게는 정작 22일까지 관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또 해수부 조사에도 불구하고 현장수습본부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이 현장 매뉴얼에 따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한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김 부본부장 등은 “지난 17일 발견된 유해가 9월에 유해를 수습해 장례를 치른 허·조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단했다”고 진술했다. 유해가 객실 구역에서 발견됐고 지금까지 객실에서는 허·조양과 이영숙씨의 유해만 발견됐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현장 책임자들이 유해 발견 후 사흘이 지난 20일까지 김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도 여전히 의문이다. 김 장관조차 “저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인정하는 대목이다. 김 부본부장은 “장례 일정에 혼선을 초래하고 2주가량 DNA 확인을 하는 동안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고 설명한 게 고작이다. 20일 미수습자와 유가족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라는 김 장관의 지시가 묵살된 배경에도 의혹이 일고 있다. 이 본부장은 “18일 추모식에서 강풍에 제단이 쓰러져 정신없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18일 이후부터 20일까지 사흘 내내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故김주혁 대표작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무료 상영...예매는?

    故김주혁 대표작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무료 상영...예매는?

    故김주혁이 어설픈 노총각 역할로 열연했던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가 관객들을 다시 만난다.24일 명필름아트센터는 故김주혁의 대표작 중 하나인 ‘광식이 동생 광태’를 이번주 일요일 하루 동안 무료로 상영하겠단 뜻을 밝혔다. 명필름 측은 이날 “고 김주혁 배우를 추모하며 ‘광식이 동생 광태’를 무료 상영한다”며 “마침 이 작품이 관객들을 만난 지 12주년을 맞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의 따뜻하고 선한 모습과 무엇보다 뛰어난 연기를 잊지 않겠다”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명필름은 김주혁이 출연했던 영화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등의 제작사다.지난 2005년 개봉한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는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여자를 놓칠 위기에 처한 노총각 광식과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바람둥이 동생 광태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김주혁은 이 영화에서 어리숙한 노총각을 연기해 많은 공감과 사랑을 얻었다. 명필름이 준비한 무료 상영은 오는 26일 오후 5시 15분 경기 파주 명필름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예매는 명필름아트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사진=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믈라디치 ‘뒤늦은 단죄’… 유족들 22년 한맺힌 눈물

    믈라디치 ‘뒤늦은 단죄’… 유족들 22년 한맺힌 눈물

    22일(현지시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동부의 스레브레니차 마을, 1995년 7월 집단학살의 광풍이 휩쓸었던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당시 잔인하게 살해된 희생자 유가족들은 인근 포토차리에 건설된 학살 추모 센터에 함께 모여 대형 스크린을 숨죽인 채 주시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한 순간 마을은 주민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센터에 모인 유가족들도 손뼉을 치며 환호했으며 일부 여성들은 회한과 기쁨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스레브레니차에서 남편과 아들,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은 네드치바 살리호비치라는 “내 아들을 죽인 믈라디치가 이제 헤이그에서 죽게 됐다”며 “정의가 실현돼 기쁘다”고 말했다. 학살 당시 42명의 일가친척을 잃은 아이사 우미로비치는 “그가 저지른 잔악 행위에 비하면 종신형 선고도 충분치 않다”고 분노했다.‘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2년부터 3년 동안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의 대표적인 인종 청소 사건이다. 1995년 7월 당시 유엔은 이곳을 안전지역으로 선포했으나 믈라디치 군사령관이 이끄는 세르비아계군은 이슬람계 남성 주민 8000여명을 무자비하게 몰살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학살로 꼽혔다. 보스니아는 내전이 끝난 뒤 스레브레니차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발굴하고 희생자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여 왔지만 아직도 1000여명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스레브레니차를 비롯해 보스니아에서는 내전으로 20만명이 숨지고, 18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믈라디치는 보스니아 대학살을 저지른 지 무려 22년 만에 죗값을 치르게 됐다. 그는 올해 74살이다. 믈라디치는 1965년 유고연방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마케도니아에서 소대장으로 군 경력을 시작했다. 1990년 당이 해체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원의 신분을 유지했던 그는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연방군을 이끌고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지는 못했다. 이후 보스니아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이어 1992년 유고 연방에서 탈퇴해 독립을 강행했다. 그러나 보스니아에 거주하고 있던 세르비아계와 연방의 중추였던 세르비아가 이에 반발하며 내전이 벌어졌다. 국제사회가 보스니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자 믈라디치의 신분은 유고연방의 정부군에서 반군 사령관으로 바뀌었다. 그는 내전이 한창이던 1994년 당시 23살 딸 아나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하자 대학살을 지시하는 잔혹한 학살자로 돌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나의 자살 원인은 자신의 만행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설과, 전쟁으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믈라디치는 전쟁 직후인 1995년 유엔전범재판소에 넘겨졌지만, 16년 도피 생활 끝에 2011년 5월 체포됐다. 믈라디치가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세르비아 정부의 비호 덕분이었다. 내전 종식 이후 줄곧 학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 오던 세르비아는 스레브레니차 학살 등 내전 뒤처리 미숙을 이유로 유럽연합(EU) 가입 승인이 거부당하자 적극적으로 전범 체포에 나서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군이 운영하는 온천·사냥 리조트에서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하던 믈라디치는 2011년 세르비아 북부 라자레보에서 세르비아 사법부에 의해 검거됐다. EU는 그동안 그의 체포를 세르비아의 EU 가입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세르비아는 EU 가입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2018학년도 수능] ‘행정학 + 경제학’ 국어 27~32번이 ‘킬러 문항’

    [2018학년도 수능] ‘행정학 + 경제학’ 국어 27~32번이 ‘킬러 문항’

    수학 가형 20·21·30번 어려워 한국사 전태일 사건 문제 등 눈길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킬러 문항’(변별력을 가르는 고난도 문제)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국어 영역은 2016학년도 ‘불수능’보다 어려워 ‘용암수능’이라 불린 지난해와 비슷한 난도로, 긴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들이 수험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국어 영역에서는 환율의 오버슈팅 현상(단기 급등락)과 정부 정책 수단을 소재로 출제된 27~32번 문항(홀수형 기준)이 어려웠다는 평가다. 수능 출제본부 측은 “정부 정책 수단의 특성에 대한 행정학 설명과 오버슈팅이라는 경제학 설명을 혼합한 글을 읽고 통합적 이해 능력이 있는지 측정하려는 취지였다”고 밝혔다. 특히 30번 문제는 통화량 증감에 따른 환율과 금리 변화를 그래프와 연결해 이해해야 하는 문제로 수험생들이 어렵다고 느꼈다. 디지털 통신 시스템과 관련된 과학기술 지문(38~42번 문항)은 제시문과 문항이 모두 어려웠다. 특히 지문을 바탕으로 한 날씨 데이터 전송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41번 문제는 부호화 기술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풀 수 있는 문제여서 변별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난이도 문제라는 것을 입증하듯, 교육과정평가원의 ‘문제 및 정답 이의신청 게시판’에는 이 문제에 대한 이의제기가 올라와 있다. 수학 영역에서는 ‘1등급과 2등급을 가르는 문제’로 불리는 객관식과 주관식 마지막 문제가 상당히 난해한 것으로 꼽혔다. 손태진 풍문고 교사는 “자연계 학생이 주로 보는 가형에서는 20번과 21번, 30번이 신유형이자 고난도 문제였다”면서 “21번은 로그함수와 역함수 미분, 29번은 좌표공간에서 평면과 구의 위치관계, 30번은 주어진 조건에 따른 함수 그래프의 모양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풀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민기 판곡고 교사는 “인문계 학생이 주로 보는 나형은 ‘함수의 합성’ 개념을 토대로 함수의 정의역을 추론하는 21번과 정적분 계산과 함수 그래프 추론 등을 통해 정답을 도출해야 하는 30번이 새로운 유형이자 어려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사 영역에서는 시사 이슈와 관련된 문제가 눈길을 끌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전태일 분신 사건 등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일어난 사건임을 추론하고 이 시기 경제정책을 고르는 문제(18번)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이후 추모 집회 사진과 지문을 보고 당시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고르는 문제(20번)도 있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세월호 유해 은폐 파문] “발견 안 된 미수습자 뼈라면 큰 사고”

    [세월호 유해 은폐 파문] “발견 안 된 미수습자 뼈라면 큰 사고”

    19일 미수습자 가족 장례식장서 김 부본부장 만났지만 얘기 안 해김창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장은 23일 유해 수습 은폐 의혹과 관련, “김현태 현장수습본부 부본부장이 미수습자 가족들의 추모 행사(장례식)를 하루 앞두고 있어 자기 판단에는 끝나고 말씀드리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더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부본부장이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17일에 손목뼈 1점을 수습했는데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고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부본부장이 유해를 발견하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김 부본부장으로부터 지난 21일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다. 김 위원장은 보고받는 자리에서 “너무 놀라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에 빨리 (가족들에게)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다. 아직까지 발견 안 된 미수습자 유해라면 큰 사고가 나는 거 아니냐고 했다”면서 설득했지만, 김 부본부장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김 부본부장이) 좀 일찍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선체조사위 차원에서 유해 발견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현장수습본부에서 발견했고 이런 사실을 알리는 것은 해양수산부 책임이라 선체조사위가 나서기는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22일 (은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정식으로 해수부에 유감 표명을 보내고 사건 경위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9일 권재근씨·혁규군 부자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아산병원에 들렀다가 김 부본부장을 만났지만 당시에는 수습 사실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장례식장에서) 김 부본부장을 만났는데 ‘부본부장으로서 책임이 있어 왔다’고만 하더라”고 말했다. 김 부본부장이 유해 발견 사실을 장례식장에서도 숨긴 이유에 대해 그는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어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던 듯하다”면서 “바로 말씀드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전문] 세월호 미수습자 유골 은폐 조사결과 발표문

    [전문] 세월호 미수습자 유골 은폐 조사결과 발표문

    류재형 해양수산부 감사관이 23일 오후4시 발표한 ‘세월호 유골 은폐’ 1차 조사 결과 발표 전문 세월호 유해 발굴 사실 지원조치와 관련하여 금일 08시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1차 조사 결과를 말씀드리겠다. 우선 현재까지 김현태 부단장 등 총 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다. 먼저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최초 발견된 시점은 11월 17일 오전 11시 20분경이며 최초 발견자는 상하이셀비지 소속 작업자다. 같은 시각 현장을 순찰하던 국방부 유해발굴단 소속 백상기 중사가 사람 뼈인 것으로 확인하고 현장수습반 팀장 해양수산부 김인철 사무관에게 유선으로 통보하였다. 11시 30분경 현장수습반 팀장이 최초로 실물을 확인했다.김현태 부단장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11월 17일 13시30분경 현장수습반장 해수부 김철호 과장으로부터 유해 발굴 사실을 보고받고 미수습자 가족들의 추모식과 장례식 일정의 차질을 우려하여 발인 및 삼우제 이후에 유해발굴 사실을 전파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현태 부단장이 현장수습반에 유해 발굴 사실을 비공개하도록 지시했다. 유해 발굴 사실 지원 전파에 관한 사항을 세월호 후속대책추진단장 이철조와 사전 협의한 정황도 확인하였다. 유해발굴 사실을 고 조은화 양 및 선체조사위원장 김창준에게 알린 시점은 언론보도와 같이 11월 21일 14시에서 15시경이다. 11월 20일 월요일 17시경 이철조 단장이 유해발굴 사실을 장관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인 조치 지시 받고 이루어진 사항이다. 이상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를 말씀드렸다. 다만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위법, 부당행위 여부와 고의성 여부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며 최종 조사가 마무리되는 즉시 그 결과를 별도로 다시 한 번 발표하도록 하겠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수부 “유해 발굴 은폐, 김현태 부단장이 이철조 본부장과 사전 논의”

    해수부 “유해 발굴 은폐, 김현태 부단장이 이철조 본부장과 사전 논의”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미수습자 유해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고도 닷새나 알리지 않은 ‘유골 은폐 사건’은 김현태 부단장이 이철조 선체수습본부장과 사전에 논의한 뒤 이를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해양수산부는 23일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세월호 유골 은폐 사건에 대해 이 같은 내용의 1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수부는 김현태 부단장 등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고 뉴시스가 보도했다. 현장 책임자였던 김현태 부단장은 세월호 유골을 발견하고도 이철조 본부장과 사전 논의한 뒤 비공개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특히 김 부단장은 미수습자 장례식 전날이고, 유골은 앞서 수습된 미수습자 중에 한명일 것으로 예단했다. 이후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통보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현장 책임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세월호 유골이 은폐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현장 책임자가) 17일 장례식 바로 전날이었기 때문에 유골 주인이 전에 수습되었던 몇 분 중에 한 분 일거다라고 짐작하고 예단했다고 한다”며 “가능성이 크지 않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서 장례 일정에 혼선을 초래하고 고통의 시간을 더 보내게 하는 것이 현장 책임자 입장에서는 참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이어 “어제 긴급히 발표한 사안에 대해 세월호 수습을 주관하는 주무부처의 장관으로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미수습자 가족 분들과 유가족분들, 그리고 모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앞서 지난 17일 오전 11시30분쯤 세월호 선체 객실구역에서 나온 지장물에 대한 세척작업 중 유골 1점이 발견됐다. 수거된 진흙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현장수습본부는 1차 현장 감식결과 사람의 유골로 추정되는 뼈 1점을 발견하고도 닷새가 지난 21일 미수습자 가족들과 선체조사위에 알리고, 22일 국과수에 DNA 감식을 의뢰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지난 18일 합동추모식을 치렀다. 이 때문에 정부가 철수하기 바로 전날이라 의도적으로 숨기려 한 게 아니냐는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남은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와 아들 권혁규 군 등 5명이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 전 유골 추가 발견하고도 ‘은폐’한 해수부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 전 유골 추가 발견하고도 ‘은폐’한 해수부

    끝내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고인들의 합동 추모식이 지난 18일 엄수됐다. 이날 입관식은 유해조차 거두지 못한 고인 5명이 생전에 사용했거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유품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추모식이 열리기 전날 세월호 선체에서 수거된 진흙에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양수산부가 의도적으로 은폐한 정황도 드러나면서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2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11시 30분쯤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 현장에서 사람의 손목뼈 1점이 발견됐다. 뼈는 세월호에서 수거된 진흙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국방부에서 파견된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사람의 뼈임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골 수습을 보고받은 해수부 현장수습본부 김현태 부본부장은 이 같은 사실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통보하지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다른 유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심지어 김 부본부장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질테니 유골 수습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16일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면서 가족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아픔을 뒤로한 채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난 5월 이영숙씨의 유골 발견 이후 소득없는 수색 작업에 계속되면서 더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수부는 미수습자 유족들의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 유골을 발견하고도 숨긴 것이다. 결국 미수습자 유족들은 지난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을 열고 이어 오후엔 각각 서울과 안산에서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렀다. 김현태 부본부장 등 해수부 고위 관료들은 영결식과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가족들에게 유골 발견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언론 취재가 들어가자 해수부는 이날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17일 세월호 객실구역에서 나온 지장물 세척작업 중 뼈 1점이 발견됐고 오늘 오전 국과수에 정밀분석을 의뢰했다”고 늑장 발표를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기 화성시, 문화예술체육인 특화묘역 조성한다

    경기 화성시, 문화예술체육인 특화묘역 조성한다

    경기 화성시에 문화예술체육인을 위한 특화묘역이 조성된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22일 매송면 문화예술체육인 특화묘역 사업부지에서 사업성공 기원식을 열고 오는 2019년 말까지 문화예술체육인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묘역(가칭 하늘숲갤러리)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문화예술체육인 특화묘역은 화성시 매송면 숙곡2리에 조성 중인 광역화장장 ‘함백산메모리얼파크’내 2000㎡ 부지에 200위를 안치할 수 있는 규모로 건립된다. 화성시는 오스트리아 빈 ‘중앙묘역’이나 프랑스 파리 ‘예술인 묘역’처럼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예술인과 체육인들을 추억하고 전시공연을 즐기는 문화특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특화묘역 안장 대상은 ‘화성시 문화체육예술인 특화묘역 조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에서 규정한 대로 상훈법에 따른 문화포장·체육포장 이상의 훈격을 받거나 이에 준하는 활동으로 국가와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이 해당한다. 화성시 출신의 한국 민속무용의 대가인 고(故) 이동안 선생과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김원기 선수를이곳에 안장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날 성공기원식에는 고인들의 유족이 참석해 화성시에 유품을 기증했다. 고 이동안 선생의 아들 이건호씨는 “아버지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할 훌륭한 기회를 준 화성시에 감사하다”면서 “한국 민속무용의 계승·발전에 화성시 특화묘역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 배우 최불암, 최종원, 도지원, 엄용수, 염정아 등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해 특화묘역 조성사업에 지지를 나타냈다. 사업 성공을 기원하는 시를 낭독한 배우 최불암씨는 “문화예술체육인들이 모여 단합할 수 있는 공간인 특화묘역 조성사업에 지지를 표하며, 많은 콘텐츠가 모여 훌륭한 문화특구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성공기원식에는 특화묘역 조성을 위해 화성시와 지난 7월 업무협약을 체결한 한국예총,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한체육회 등 국내 문화예술체육단체 대표와 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인 김응용 전 야구국가대표 감독,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선수,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특화묘역 조성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화성시는 특화묘역이 완공되면 2022년 준공될 매홍문화공원과 연계해 다양한 기획전시와 추모힐링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할 계획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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