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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미르 하이웨이의 참극, IS 공격에 목숨 잃은 사이클리스트 넷

    파미르 하이웨이의 참극, IS 공격에 목숨 잃은 사이클리스트 넷

    그들은 길 위에서 삶을 마칠줄 알고 있었을까? 지난달 29일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하이웨이를 사이클로 돌아보다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난 4명의 사연은 안타깝기만 하다. 모두 6명이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이 가까운 곳에서 의도적으로 뒤에서 덮친 자동차 공격을 받았다. 이들이 자전거에서 추락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괴한들이 흉기를 휘둘렀다. 결국 4명이 세상을 떠났고 2명이 다쳤다. 아예 한참 뒤처져 있던 한 명은 변을 면했다. 희생자 모두 아시아 자전거 투어의 행적을 꼼꼼이 온라인 블로그에 기록하며 길 위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먼저 미국 워싱턴 DC 출신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1년 넘게 여행을 이어 온 로렌 지오게간과 제이 오스틴(이상 29) 커플. 이번 아시아가 세 번째 대륙 탐험이었다. 지난 4월 모로코에서 오스틴은 ‘물론 나쁨은 있기 마련, 그러나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님’ ‘대체로 사람들 친절해. 때로 이기적이고 때로 근시안이지만 친절’ ‘관대하고 대단하고 친절해. 우리 여정 가운데 이보다 더 대단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지’ 등의 글을 남겼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거쳐 지난 5월 카자흐스탄에 발을 들여놓았다.미국 정부에서 일했던 그녀는 이렇게 돈이 적게 드는 여행을 계획한 데 대해 ‘삶은 짧고 세계는 넓다. 젊음과 건강이 가버리기 전에 가장 잘 활용하고 싶어서’라고 적었다. 지오게간 부모들은 성명을 내 딸이 “삶에 주어진 기회들을 열정적으로 껴안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장소들을 마음을 열어 받아들였고,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열심”이었다고 추모했다. 마르쿠스 훔멜(스위스)은 중국 시안에서 키르기스스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밟는 여정으로 “꿈이 이뤄졌다”고 블로그에 적었다. “실크로드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하이웨이를 빠뜨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여행하던 친구는 부상 당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르네 보케(56·네덜란드)도 세상을 등졌고, 그의 파트너이며 병원 행정직인 킴 포스트마(58)는 다쳤다. 암스테르담 출신인 둘은 지난 2월 태국을 떠나 9월 이란 테헤란에 도착한 뒤 귀국할 계획이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北, ‘정몽헌’ 기일 맞춰 현대그룹과의 인연 강조

    北, ‘정몽헌’ 기일 맞춰 현대그룹과의 인연 강조

    북한이 정몽헌 전 회장의 기일에 맞춰 방북하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당일인 3일 현대 일가와의 인연을 특별히 강조하고 나섰다. 이날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현대 일가가 받아 안은 영광’이란 제목의 글에서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망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전을 보내고 조의 대표단에 조화를 들려 보낸 일화를 소개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월 말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 명예회장을 ‘민족이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라고 내세웠다고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05년 7월 원산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정몽헌 전 회장의 사망을 애도하고 “우리는 북남관계에서 당국보다 훨씬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시작하였다”고 말했다며 ‘첫사랑’이란 표현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북과 남의 군사 무력이 첨예하게 대치된 최전연(최전방) 지역에 위치한 금강산지구에 대한 관광사업은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었다”라며 김정일 위원장이 ‘대용단’을 내려 현대그룹에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째로 맡겼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 전 회장의 10주기를 맞아 현대그룹에 구두 친서를 보내 “정몽헌 선생은 김정은 동지의 민족 우선, 민족 중시 사상에 떠받들려 영생하는 삶을 누리고 있다”고 밝힌 일화도 소개했다. 현정은 회장과 이영하 현대아산 대표 등 15명은 금강산에서 정 전 회장의 15주기 추모행사를 치르기 위해 3일 방북하며, 앞서 통일부는 1일 이들의 방북을 승인했다. 정 전 회장의 추모식은 3년 만에 열리는 것으로, 현대그룹은 정 전 회장 사망 이후 매년 금강산 추모비 앞에서 추모식을 열었으나 2016년부터는 남북관계 경색 등으로 열지 못했다. 북한이 이처럼 현 회장의 방북 당일 현대그룹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8세 생일 날 英 스노보더 엘리 수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18세 생일 날 英 스노보더 엘리 수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18세 생일인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스스로 삶을 마감한 영국 스노보드 대표 엘리 수터의 아버지가 딸이 생전에 일류 선수들과 경쟁하느라 압박감을 느껴 힘들어 했을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수터는 영국 서리주 옥스테드에서 태어나 알프스로 이주해 그곳에서 훈련해왔다. 지난해 터키에서 열린 유스올림픽 윈터 페스티벌 스노보드 크로스 동메달을 땄는데 영국 선수로는 유일한 메달이었다. 지난 주 프랑스 알프스 레제(Les Gets)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주위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의 아버지 토니 수터는 BBC 사우스이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딸의 죽음 이후 처음 입을 열어 가장 좋은 친구이며 “완벽한 단짝”이며 “삶을 지키는 바위”를 잃었다고 탄식했다. 이어 딸이 “최고가 되고 싶어” 했으면서도 “다른 누구를 거꾸러뜨리길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정신건강에 약간 문제가 있었는데 엘리트 선수로서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해져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이어 불행히도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영국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지내다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그들과 날 실망시킬 것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비극적이게도 그런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 때문에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밀어뜨렸다. 왜나하면 어린이에겐 엄청난 압력이었기 때문이다.” 토니 수터는 다른 어린 선수들을 돕는 행동이 필요하다며 “정신건강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공적으로 돌아봤으면 한다. 유족들은 그녀의 이름을 따 재단을 만들어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어린 동계 스포츠 선수들을 돕기로 했다. UK 스포츠 대변인은 “참담하게 슬픈 상황이며 엘리의 유족, 친구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한다”며 “올림픽과 패럴림픽 프로그램들과 정신건강과 관련한 자선재단 ‘마인드’와 함께 적절한 지원이 주어질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스키·스노보드연맹은 “엘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기 있었고 대표팀에서나 나라에서나 위대한 자질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멤버”라고 추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어미 범고래의 애끓는 모정 1주일 째…죽은 새끼 못보내

    어미 범고래의 애끓는 모정 1주일 째…죽은 새끼 못보내

    최근 죽은 새끼를 보내지 못하는 행동으로 안타까움을 준 어미 범고래가 여전히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1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 지 등 해외언론은 어미 범고래가 1주일 째 죽은 새끼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물 위로 계속 띄우며 바다를 다니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이 범고래는 20살로, 지난 24일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 빅토리아 앞바다에서 죽은 새끼와 함께 발견됐다. 당시 어미 범고래는 출산 직후 30분 만에 죽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새끼를 계속 수면 위로 띄우는 행동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범고래의 행동을 어미 스스로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 죽은 새끼를 추모하는 모습으로 해석했다. 미국 고래박물관 소속 해양생물학자인 제니 애킨슨 박사는 "어미 범고래가 여전히 죽은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며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미 범고래는 새끼를 잃으면 종종 이같은 행동을 하는데 이는 추모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이탈리아 돌고래 생물 및 보존 연구소가 발표한 연구결과도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연구소 측은 고래와 돌고래가 마치 사람처럼 동료나 가족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애도할 줄 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일부 어미는 죽은 새끼의 사체를 버리지 못하고, 사체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1주일 가까이 등에 업고 함께 헤엄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애도의 행동은 어미 한 마리만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무리 일부가 참여해 함께 동료나 가족의 사체를 지키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연구진은 고래의 이러한 행동이 실제로 죽음의 의미를 인지해 나타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감정적인 애착을 나누던 존재가 사라짐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애도의 방식으로 표현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범고래는 특유의 외모 때문에 인기가 높지만 사실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다. 사나운 백상아리를 두 동강 낼 정도의 힘을 가진 범고래는 물개나 펭귄은 물론 동족인 돌고래까지 잡아먹을 정도. 이 때문에 붙은 영어권 이름은 킬러 고래(Killer Whale)다. 특히 범고래는 지능도 매우 높아 무결점의 포식자로 통하며 사냥할 때는 무자비하지만 가족사랑만큼은 끔찍하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8월 호국인물에 연해주 독립군 이끈 이범윤 선생

    전쟁기념관이 8월의 호국인물로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이범윤 선생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856년 경기 고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정부 간도관리사로 파견됐고, 농민들과 ‘사포대’(개인이 관리하는 부대)를 조직해 현지에 거주하던 한인 7만여명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사포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함께 반일 군사작전에 참가했다. 이듬해 러시아 노보키예프스크를 활동 기지 삼아 항일 단체인 ‘창의회’를 결성해 소위 ‘연추의병부대’(이범윤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안중근 의사도 이곳에서 우영장(참모중장)을 맡았었다. 이후 선생은 191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권업회’ 총재로 추대됐다. 권업회는 시베리아 일대의 최대 한인 기관으로 최재형·최봉준이 부총재, 이상설이 의장, 홍범도가 경찰부장을 맡았다. 이어 그는 1919년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의군부’를 조직해 총재를 맡았고 1921년에는 대한독립군에 참여했다. 평생을 항일 운동에 몸바쳤으며 1940년 10월 20일 서거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2일 오후 2시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를 연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박운대 부산경찰청장 31일 취임....시민안전과 행복보호 앞장

    박운대 부산경찰청장 31일 취임....시민안전과 행복보호 앞장

    “고향인 부산의 치안을 맡게 돼 영광이지만 한편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신임 박운대(58) 부산경찰청장은 31일 오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보다 사람이 먼저’ 라며 인간미 있는 치안활동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선현장에서 승진 등 고과 평가를 위해 단속과 실적에 치중하는 등 국민보호라는 경찰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 단속 실적과 평가측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닌 만큼 단속보다는 계도와 예방 치안에 경찰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박 청장은 이를 위해“ 경미한 범법자에 대해서는 범죄심사위원회 등에 심사토록 해 전과자 양산을 방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고 최근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족 해체로 인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경찰이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안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치안활동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앞서 이날 오전 9시 부산경찰청 후문 광장에 있는 부산경찰 추모공간을 찾아 순국·순직경찰관들에 대해 참배한 후, 별도의 취임식을 생략하고 간부 등과 간담회를 하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부산경찰청장 취임식은 부산경찰청 1층 대강당에서 경찰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었다. 박 청장은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실패는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지속성의 부족 때문”이라는 아인슈타인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주민들을 위한 좋은 정책들을 단기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부산경찰의 힘을 모아달라”고 취임사를 대신했다. 부산출신인 박 청장은 부산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으며 1987년 경사공채로 경찰에 입문해 부산경찰 홍보담당관,부산경찰청 2부장,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인천지방경찰청장 등을 역임하고서 이번에 제29대 부산경찰청장으로 취임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가수 윤형주, 횡령 혐의로 송치 “필리핀서 귀국 예정…결백”

    가수 윤형주, 횡령 혐의로 송치 “필리핀서 귀국 예정…결백”

    가수 윤형주가 4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30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면서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로 윤형주를 수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KBS 보도에 따르면 윤형주는 2009년 시행사를 사들여 투자금 100억 원을 유치했다. 하지만 사업은 10년 가까이 진척되지 않았고, 결국 시행사 관계자들로부터 횡령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7개월간 수사를 벌인 결과, 윤형주에게 횡령과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윤형주는 물류단지를 조성하겠다며 시행사를 인수해 투자금을 모은 뒤 법인 자금 31억원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인출해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이와 별도로 회삿돈으로 서울 서초구에 고급 빌라를 구매해 인테리어를 하고 지인을 회사 직원으로 등록해 급여를 지급한 혐의도 받는다. 윤형주 측은 “회사에 빌려준 차입금이 있어 회삿돈을 썼을 뿐이며 횡령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며 횡령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에서 해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봉사활동차 필리핀에 머물고 있는 윤형주는 “공인으로 50년 동안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명예를 걸고 결백을 밝힐 것이다. 현재 오지 빈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봉사를 하기 위해 필리핀에 나와 있는데 주말에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형주는 1947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의예과와 경희대 의학과를 중퇴했다. 1960~1970년대 송창식 조영남 이장희 김세환과 함께 포크송 그룹 쎄시봉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1400개의 CM송을 작곡했다. 껌과 과자 등 유명 CM 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윤형주는 시인 윤동주의 6촌 동생으로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려고 했으나 아버지 윤영춘 교수가 반대해 실현되지 못했다. 윤동주 서거 70주년인 지난 2015년 추모 리사이틀을 연 바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3회]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 학생선도·치안확보 등 호국 활동”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3회] “인민군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 학생선도·치안확보 등 호국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한영희는 1934년 10월 20일 인천 답동 5번지에서 태어나서, 인천서림국교를 졸업하고, 인천여자상업중학교 3학년 때 인천학도의용대 용동분대 대원으로 호국(護國)활동을 하다가, 후발대를 따라서 1950년 12월 24일 원저호를 타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신봉순 교육대장의 보살핌으로 5개월 머무르다가 1951년 5월 인천으로 귀향하였다. ■한영희 인터뷰 일시 1998년 10월 2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편집실 대담 한영희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6·25 사변의 발발과 지옥 같았던 인공 치하 인천여자상업중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맞은 나는 북한 인민군(人民軍) 치하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겪었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우익학생 이계송(고려대 2학년생)의 주도로 인천학도의용대가 생겨나서, 우리 동네에 조직되어 있는 용동 분대에 가입하여 호국활동(학생선도, 치안확보, 피난민 안내 등)을 하였다. 당시 용동 분대장은 인천동산중 6학년 신현기였고, 감찰부장은 인천공업중 5학년 최기준이었다. 대원으로는 인천해성중 3학년 한세창이 기억난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남하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UN군이 갑작스런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후퇴를 거듭하여 1950년 12월 중순이 되었을 때 인천학도의용대가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인천학도의용대가 남하하기로 결정되었으니 남하 집결 장소인 인천축현국교로 1950년 12월 18일 날 모두들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교에 가보니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약 3000명이 모여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이 남학생 대원들과 같이 따라간다고 말하면서 가는 것을 봤지만 나는 따라가지는 않았다.1950년 12월 24일 배(윈저호)를 타고 남하 남자 대원들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며칠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와 여학생들이 인천항에서 윈저호라는 배를 타고 부산을 향하여 후발대로 남하하는데 나에게 같이 남하하자고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남하 할 준비를 하고 인천항에 나가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와 여학생들과 같이 배에 올라탔다. 이후 서해 바다를 거쳐 남해를 지나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극장 옆에 있는 가마니 공장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추운 겨울 가마니 창고 안에서 가마니를 바닥에 한 장을 깔고 한 장은 덮고 자면서 지냈다. 그렇게 며칠 지나려니까 이번에는 부산육군통신학교로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부산육군통신학교에는 우리들보다 먼저 내려와 자원입대한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이 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병 교육을 받고 있을 때였으며 그때 우리 여학생 대원들은 육군통신학교 옆의 농림부 관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사실 그때 부산까지 내려온 여학생들은 딱히 머물 곳이 없었는데, 마침 다행히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신봉순 교육대장님이 계셨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신봉순 선생님의 도움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었던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공립인천상업중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을 하시다가 뜻하신 바 있어 교직을 사직하시고 육사 8기로 임관하여 그때 마침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교육대장으로 근무 중이셨다. 그런 인연으로 오갈 데 없었던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신 잊지 못할 선생님이셨다. 5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다 나와 이인숙(인천여중 1학년), 전전숙(박문여중 2학년), 박경순(박문여중 4학년), 이은영(인천여중 3학년) 등 5명은 인천항에서 원저호를 함께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같이 행동했던 여학생들이었다. 당시 우리들이 숙소로 쓰던 방은 부산육군통신학교 장교 침실 일부로 칸을 만들어 주어 그곳에서 지냈으며 여자들이 입는 군복과 담요로 만든 자주색 잠옷도 보급 해 주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은 비교적 편하게 지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면 장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후 군산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아버지로부터 인천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여러 여학생과 같이 고철을 실어 나르는 한양호라는 배를 부산항에서 타고 인천으로 왔다. 그때가 1951년 5월 말쯤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슬픈 일 1951년 2월 부산육군통신학교 옆 농림부 관사에 머무를 때 있었던 일이었다. 3년 선배 언니가 간호장교 시험을 치를 때 나도 그 간호장교 시험을 치러서 합격하였다. 그때 사정으로 내가 가지를 못 하고 박문여자중학교에 다니는 박경순이 나 대신 간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철원 전쟁터에서 포위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많은 죽음이 항상 곁에서 발생했던 어두운 시대였는데, 가까운 친구의 죽음은 세월이 48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프다. 자원입대하여 전사한 친구들 인천학도의용대 용동분대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학생들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몇 명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그때도 많이 슬펐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지금까지도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전사 학생은 이중수이다.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 이 중수 인천영화중학교 4학년(당시 대건고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마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해병 6기로 지원하여 입대 후 참전하여 1952년 6월 12일 서부전선 문산지구전투에서 전사하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서-16-911)에 묻혀있다.남기고 싶은 말 너무 오래전이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6·25 당시 인천 중학생이던 우리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나름 호국활동(학생선도, 치안확보, 피난민 안내 등)을 했었고, 자원입대하여 많이 전사했다. 웬일인지 다른 지역의 학도병들은 많이 알려져 있고 기념관도 있다는데, 인천은 기록도 없고, 기념관도 없고… 늦었지만 나와 같은 인천서림국민학교를 졸업한 이경종 동창생과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들의 슬펐던 옛날 일을 기록하여 준다니 기쁘기 그지없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4회 계속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디에서나 인류는 장례 문화를 갖췄고, 권력자들은 살아서건 죽어서건 장대한 분묘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로마의 석관, 조선 왕릉이나 고구려 벽화고분도 같은 범주다. 하지만 이는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생전의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에 불과했다.누구에게는 권력과 위계를 만천하에 보여 주는 일이 중요했고, 누구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절절한 애도가 필요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비통을 숭고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고,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예수를 바라보는 애통한 심정을 묘사한 제단화도 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죽은 자를 직접 묘사한 경우가 없다. 단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그것은 석가모니의 열반이다. 열반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하며 미술로 재현했다. 일본 고야산(高野山) 곤고부지(金剛峰寺)의 ‘석가열반도’(1086년)에는 열반을 애도하는 다양한 군상이 그려졌다. 사라나무 아래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온갖 짐승과 사람, 천인, 보살들이 에워쌌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반을 대한다. 석가모니 왼편 아래에는 인간적으로 흐느껴 우는 왕과 대신들이 있고, 발치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왕이 있다. 왼편 위쪽의 보살은 세속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열반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슬퍼하는 대신 평온하게 미소 짓는다. 화면 하단 오른편 구석에는 슬픔에 못 이겨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사자도 있다. 높이가 267.3㎝에 이르는 이 대형 불화는 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억하고 애도하게 한다. 그림 속 군상처럼 누군가는 통곡을 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쳤을지도 모른다. 일본 호류지(法隆寺) 오중탑에도 8세기에 만든 열반 조각이 있다. 석가모니의 열반을 슬퍼하는 여러 형상의 군중이 보인다. 이들은 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들인지라 감정의 기복이 매우 잘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석가모니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도 제자들의 얼굴은 막상 스승의 죽음을 맞닥뜨리자 놀랍고 당황스러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심장이 터질 듯한 슬픔에 일그러졌다. 누구는 소리를 내어 통곡하고, 누구는 머리를 쥐어뜯고, 또 누구는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쾅쾅 친다. “오호, 애재라!” 하던 ‘조침문’ 문구와 달리 비통에 빠진 인간의 자학적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두 손으로 막 닦으려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 이 조각상의 온몸에서 절절이 배어 나오는 슬픔이 보는 이들 맘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조각가는 최선을 다해 애도하는 감정을 드러냈다. 목까지 차오르는 스승을 여읜 슬픔을 1000년 전의 예술가는 어찌 이리도 애절하게 묘사했고, 또 21세기의 우리는 그 애곡함에 공감하는가? 슬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소리를 지르든, 통곡을 하든, 조용히 눈물을 훔치든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다. 애도의 미학은 우리를 그 시간과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 北, 정몽헌 금강산 추모식 승인…현정은 회장 새달 4년 만에 방북

    현대그룹은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 추모 행사를 금강산에서 개최하기 위한 방북 요청을 북한이 승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정 전 회장의 금강산 추모 행사가 3년 만에 재개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이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정 전 회장의 추모식과 관련해 방문 동의서를 받았다”면서 “이에 따라 즉각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통일부가 방북을 승인할 경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해 임직원 15명은 다음달 3일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에서 15주기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2003년 8월 4일 정 전 회장이 타계한 이후 매년 금강산 특구 온정각 맞은편 추모비 앞에서 추모식을 열었으나 2016년에는 남북 관계 경색으로 처음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북측이 방북 요청을 거부하면서 행사가 무산됐다. 현 회장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북측 관계자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아산은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북측으로부터 전력사업,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 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수자원, 명승지 관광사업 등 7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을 받았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이산상봉, 국군포로 송환까지 이어졌으면…형님 만나고 싶어요”

    “6·25전쟁 때 학도병 자원입대한 형님 한국군 포로로 北 생존 소식 알게 돼 한국 정부가 도와주길 간절히 바라” 北 국군포로 6만명… 생존자 500여명 “저는 미국 남가주에 살고 있는 82세 시니어입니다.” 전날 본지 1면에 실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다룬 기사(“북·미 갈등 얘기만 나오면 피가 말라, 6·25 때 헤어진 세 언니 못 만날까 봐”)를 읽었다며 미국에서 김모씨의 이메일이 왔다. 정중하게 서두를 시작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통일의 희망이 멀리서 나마 보이는 듯한 이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니 반갑다”며 “6·25 전쟁 때 포로가 된 국군포로들의 송환문제도 이 기회에 이뤄졌으면 한다”고 바랬다. 그는 헤어진 형님(86)에 대해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대구로 피란을 갔고 한 달 만인 7월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이듬해 12월에 평안북도 신안주의 박천 전투에서 행방불명 됐고, 1952년 7월에 육군본부로부터 전사자로 통지받았다. 이후 그는 매년 현충일에 국군묘지의 무명용사 비석 앞에서 형을 추모했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뒤 외려 미 국방성에서 형님이 한국군 포로로 북측에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북한 국군포로는 약 6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현재 생존자는 500명 정도로 예상되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80세를 넘었다. 10명 중 6명이 80세를 넘은 이산가족과 마찬가지로 가족 상봉이 시급하다. 더 나아가 국내 송환 협의도 서둘러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북한은 국군포로 문제에 유독 민감해 해왔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몇 차례의 남북 적십자 회담 합의문에 국군포로 가족상봉 문제가 명시된 적이 있지만, 당시에도 국군포로를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로 명시했다. 특히 북측에 국군포로가 자의적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면 인권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22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회담의 공동보도문에도 국군포로 가족상봉은 공동보도문에 명시되지 않았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인류는 장례 문화를 갖췄고, 권력자들은 살아서건 죽어서건 장대한 분묘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로마의 초상 조각과 석관까지 죽음을 매개로 한 서양 미술품은 많다. 아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 왕릉이나 신라 고분 출토 공예품, 고구려 벽화고분도 이 범주에 있다. 죽은 자를 기리려는 것이라기보다 그가 지녔던 생전의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동과 서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는 권력과 위계를 만천하에 보여 주는 일이 중요했고, 누구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애도가 필요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비통을 숭고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고,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예수를 바라보는 애통한 심정을 묘사한 제단화도 있다. 성경이나 신화 속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처절하게 죽음을 직시하는 그림들도 그려졌다. 아시아는 어떤가. 아시아에서는 죽은 자를 직접 묘사하거나 그가 죽음을 맞는 상황, 즉 죽음을 마주하며 이제까지의 ‘생’과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을 표현한 경우가 없다. 단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그것은 석가모니의 열반이다. 열반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했고, 미술에서도 그렇게 재현했다. 일본 고야산(高野山) 곤고부지(金剛峰寺)의 ‘석가열반도’(1086년)에는 열반을 애도하는 다양한 군상이 그려졌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온갖 짐승과 사람, 천인, 보살들이 에워쌌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반을 대한다. 석가모니의 왼편 아래에는 눈물을 훔치며 인간적으로 흐느껴 우는 왕과 대신들이 있고, 발치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왕이 있다. 왼편 위쪽에 그려진 보살은 세속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열반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슬퍼하는 대신 평온하게 미소를 짓는다. 온몸으로 비통해하는 사자도 있다. 화면 하단 오른편 구석에서 슬픔에 못 이겨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다. 높이가 267.3㎝에 이르는 이 대형 불화는 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억하고 애도하게 한다. 그림 속 군상처럼 누군가는 통곡을 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일본 나라 호류지(法隆寺) 오중탑에도 8세기에 만들어진 열반 조각이 있다. 석가모니의 열반, 곧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러 형상의 군중이 보인다. 이들은 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들인지라 감정의 기복이 매우 잘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석가모니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도 제자들의 얼굴은 막상 스승의 죽음을 맞닥뜨리자 놀랍고 당황스러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슬픔에 일그러졌다. 어떤 이는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하고, 어떤 이는 머리를 쥐어뜯고, 어떤 이는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쾅쾅 친다. “오호, 애재라!” 하던 ‘조침문’ 속 점잖은 글월과 달리 비통에 빠진 인간의 자학적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막 닦으려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 이 조각상의 온몸에서 절절이 배어 나오는 슬픔이 보는 이들 맘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조각가는 최선을 다해 애도의 감정을 드러냈다. 목까지 차오르는 스승을 여읜 슬픔을 1000년 전의 예술가는 어찌 이리도 애절하게 묘사했고, 또 21세기의 우리는 그 애곡함에 공감하는가. 슬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소리를 지르든, 통곡을 하든, 조용히 눈물을 훔치든 저마다의 애도 방식이 있다. 애도의 미학은 우리를 당시의 시간과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글: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현대그룹 “북, 정몽헌 15주기 행사 금강산 개최 승인…방북 신청서 제출”

    현대그룹 “북, 정몽헌 15주기 행사 금강산 개최 승인…방북 신청서 제출”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금강산 추모 행사가 3년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이 고 정몽헌 회장 15주기(8월 4일) 추모 행사를 금강산에서 개최하기 위해 제출한 방북 요청을 북한이 승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그룹 측은 “현대아산이 오늘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정몽헌 전 회장의 추모식과 관련해 방문 동의서를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방북 승인 의사를 통보해 옴에 따라 현대그룹은 우리 정부에 방북 신청서를 제출했다. 앞서 현대그룹은 추모식 개최를 위해 이달 초 통일부에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제출해 승인을 받아냈으며, 이후 북측과 협의를 진행해왔다. 방북 승인이 결정되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영하 현대아산 대표, 이백훈 그룹 전략기획본부장 등 임직원 15명은 다음달 3일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에서 15주기 추모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현대그룹은 2003년 8월 4일 정몽헌 전 회장 별세 이후 해마다 금강산 특구 온정각 맞은편 추모비 앞에서 추모식을 열어왔다. 그러나 2016년 남북 관계가 심각하게 경색되면서 처음으로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북측이 방북 요청을 거부했다. 현정은 회장이 남편인 정몽헌 전 회장의 금강산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2009년과 2013년, 2014년 등 모두 3차례였다. 방북이 이루어지면 현정은 회장이 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북측 고위 관계자들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협의할 자리가 자연스럽게 마련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주사업자이자 개성공단 개발사업자로, 남북 경협이 본격화할 경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현대아산은 북측으로부터 전력 사업, 통신 사업, 철도 사업, 통천 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 수자원, 명승지 관광 사업 등 7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권을 받은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서울포토] 고 노회찬의원 국민격려에 대한 정의당 감사인사

    [서울포토] 고 노회찬의원 국민격려에 대한 정의당 감사인사

    30일 오전 정의당 이정미대표등 관계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고 노회찬의원의 추모기간중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에 대한 ‘국민께 드리는 감사인사’를 표했다. 김명국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노회찬 추모 열기… 정의당 지지율 창당 이래 최고

    홍준표 “자살 미화 안 돼”… 거센 역풍 정의당의 기둥이었던 노회찬 의원에 대한 추모 열기로 정의당 지지율이 2012년 10월 창당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의당의 정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1% 포인트 오른 11%를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과 같고 더불어민주당(48%)의 뒤를 이었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의당 지지율은 6·13 지방선거 이후 탄력받기 시작하면서 7월 2주 들어 마의 10%대를 뚫었다. 지난 23일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그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 가자는 추모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지지율이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모 분위기 속에 미국에 체류 중인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28일 페이스북에서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해 여권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비판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도 “타국에서 잔혹한 노이즈 마케팅이나 벌이는 홍 전 대표는 자중자애하라”고 지적했다. 이에 맞선 홍 전 대표는 29일 “맞는 말도 막말이라고 폄훼하는 괴벨스공화국이 돼 가고 있다”면서 “참으로 개탄할 일”이라고 반박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그날 이후, 아들 대신해 민주주의자로 사셨습니다”

    “그날 이후, 아들 대신해 민주주의자로 사셨습니다”

    文대통령, 페이스북에 장문의 추모글 검·경 수장 모두 부산행 ‘속죄의 조문’ 1987년 담당 검사 최환도 빈소 다녀가 임종석 “고단한 여정” 조국 “모두의 父” 향년 89세… 작년 척추골절 수술 악화 아들 잃은 뒤 31년간 민주화 운동가로“잘 가라. 아무 할 말이 없다”던 아버지는 큰 발자취를 남기고 거짓말처럼 조용히 31년 만에 아들 곁으로 떠났다. 29일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시민장례식장에는 이틀째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고문에 의한 사망’ 사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당시 최환 검사가 빈소를 다녀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87년 1월 14일 박 열사의 시신을 화장하려던 경찰을 막아선 뒤 부검을 하도록 이끌었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가 그 역할을 열연했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는 그는 “우리 아들딸들이 고문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다시는 없게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살아 있는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드님 곁으로 가시어 영면하시옵소서”라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박 열사는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단순 사고사로 위장 발표해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이날 오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임 실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버님, 참으로 고단하고 먼 여정이었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추모했다. 조 수석도 페이스북에 “아버님은 종철의 아버지를 넘어 저희 모두의 아버님이셨다”며 “아버님, 수고 많으셨습니데이. 그리고 억수로 고맙습니데이. 종철이 만나거든 안부 전해 주이소”라고 썼다. 조 수석은 박 열사의 부산 혜광고와 서울대 선배다. 28일 조화를 보내 명복을 빈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비보를 듣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 때로는 아들 이상 민주주의자로 사셨다. 그해 겨울 찬바람을 가슴에 묻고 오늘까지 민주주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셨다”고 애도했다. 이어 “박종철 열사가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는 독재의 무덤이고,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지난 6·10 기념일에 저는 이곳을 ‘민주 인권 기념관’으로 조성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1954년 부산수도국에 들어가 정년퇴임 후 목욕탕을 차리는 게 꿈이던 고인은 막내아들 종철을 잃은 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등 민주화 운동에 애썼다. 400여일에 걸친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을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뤄 냈다. 지난해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은 뒤 최근 상태가 악화돼 부산 수영구 남천동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28일 오전 5시 48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유족으론 부인 정차순(86)씨와 아들 종부, 딸 은숙(55)씨가 있다. 발인은 31일 오전 6시이며 아들 종철씨가 잠든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영면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문재인·트럼프 사진 내건 주중 北대사관

    문재인·트럼프 사진 내건 주중 北대사관

    ‘친교 두터이’ 설명 등 붙여 ‘사진 외교’북한이 그동안 체제 선전 장소로 써 온 주중 북한대사관 옥외 게시판에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내걸었다. 29일 베이징 차오양구 북한대사관 정문 옆의 대형 게시판에는 최근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 도배했던 사진들이 일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난 사진들이 새로 게시됐다. 이 게시판에는 지난 4월 1차 북·중 정상회담 사진이 걸리기 전만 해도 광명성 4호 위성과 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 등 군사 무기를 뽐내는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북한이 드러내고 싶은 메시지를 사진으로 보여 주는 게시판 성격에 비춰 볼 때 한국과 미국 지도자의 사진들이 처음으로 걸린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남·북 관련 사진은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장면부터 함께 산책하는 장면, 부부 동반 기념사진이 걸렸다. 아울러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세기의 악수 장면, 단독 회담부터 공동성명 서명 장면, 산책 사진들도 게시됐다. 주중 북한대사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산책하는 사진에 “트럼프 대통령과 산책을 하며 친교를 두터이 하는 김정은 동지”라는 설명도 달았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지난 3월, 5월, 6월 세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하는 사진은 게시판의 정중앙을 차지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7일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한 것과 동시에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조문했다. 특히 마오쩌둥의 아들로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마오안잉의 묘소에 특별히 화환을 놓고 추모해, 중국에 대한 각별한 예우를 표시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홍준표 “자살 미화 풍토” 글에 정치권 일제히 비판…홍, 반박글 올려

    홍준표 “자살 미화 풍토” 글에 정치권 일제히 비판…홍, 반박글 올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9일 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겨냥해 ‘자살 미화’, ‘책임 회피’라고 표현해 올린 글이 정치권의 거센 비난을 샀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일제히 홍준표 전 대표를 비판했다. 그러나 홍준표 전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시 반박글을 올려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면서 “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또다른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썼다. 전날인 27일에 고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국회장으로 엄수된 다음날 쓴 글이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오죽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일견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자살은 생명에 대한 또다른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의 자살은 그래서 더욱 잘못된 선택”이라면서 “아울러 그러한 자살을 미화하는 잘못된 풍토도 이젠 고쳐져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이 글은 금세 뜨거운 비판을 불러왔다. 정의당은 28일 홍준표 전 대표의 글에 논평을 내고 “그 누구도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죽음을 미화하지 않았다”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라고 비판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수많은 막말의 어록을 남긴 홍 전 대표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촌철살인 어록의 정치인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막말을 하나 더 얹었다”면서 “‘자살을 미화하는 사회 풍토가 비정상’이라고 한 것은 무능한 홍 전 대표의 막말”이라고 했다. 이어 “누구도 노 원내대표 죽음을 미화하지 않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도 홍준표 전 대표의 글에 “습관을 버리지 못 하고 예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즉각 논평을 내 비판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회찬 의원의 사망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은 고인의 생전의 삶의 궤적을 볼 때 상식”이라면서 “죽음을 미화한다느니, 그런 것은 정상사회가 아니라느니 훈계조로 언급하는 것은 한 번도 약자와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아보지 못하거나 그런 가치관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갖는 콤플렉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1야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라면 응당 노회찬 의원의 비운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면서 “홍준표 전 대표는 그렇게 잊히는 게 두렵나. 타국(미국)에서 잔혹한 노이즈 마케팅이나 벌이는 홍준표 전 대표는 자중자애하시라”고 비판했다. 박경미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제발 일기는 일기장에 쓰시길 바란다”면서 “정치가 그립고 권력이 고픈 그에게 영화 속 유명한 대사를 들려드린다.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라고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전에 노회찬 의원님에게 홍준표 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표준은 아니신 분’이라고 답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정말 그렇네요”라고 했다. 민병두 의원도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거론하며 “반성하고 죗값을 치렀어야 할 홍준표가 고 노회찬 의원을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어처구니없는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전재수 의원은 트위터에 “평생을 도덕성, 청렴, 이런 것들과 담쌓고 살아온 홍준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노회찬의 고뇌와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나. 참 당신들, 가혹하고 잔인하다”라고 썼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 역시 페이스북에 “정치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국민과의 공감 능력”이라며 “홍준표 전 대표는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철근 대변인은 “논평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며 “미국에 가서는 페이스북을 끊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나 지키길 바란다”고 썼다. 바른미래당의 이준석 전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도 “홍준표 대표는 최근의 추모 분위기가 자살에 대한 미화라고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대중은 정치판에 꼭 필요했던 사람이 사라진 것에 대해 추모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어쩌면 그렇게 표독한 말씨를 골라 쓰는 천재적 소질이 있는지. 더위를 더 덥게 만드는 그에게 그래도 고인은 너털웃음으로 대하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우리의 오랜 미덕 중 하나는 망자에 대한 후덕함”이라며 “고 노회찬 대표의 비극에 그 누구도 미화한 국민은 없다. 추모객 수만명은 그의 삶에 애도했을 뿐”이라고 적었다. 이렇게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자 홍준표 전 대표는 또 다시 글을 올렸다.홍준표 전 대표는 “같은 말을 해도 좌파들이 하면 촌철살인이라고 미화하고 우파들이 하면 막말이라고 비난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면서 “맞는 말도 막막이라고 폄훼하는 괴벨스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라고 썼다.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홍준표 전 대표는 지금은 평당원이고, 해당 글은 개인의 입장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홍준표 전 대표가 일부러 논란을 예상하고 글을 올렸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병준 비대위 출범으로 자유한국당이 ‘좌클릭’ 움직임을 보이자 강성 우파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타이밍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박지원, 홍준표 겨냥 “표독한 말씨의 천재”

    박지원, 홍준표 겨냥 “표독한 말씨의 천재”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겨냥, “어쩌면 그렇게 표독한 말씨를 골라 쓰는 천재적 소질이 있는지 더위를 더 덥게 만드는 그에게 그래도 고인은 너털웃음으로 대하시리라 생각한다”고 29일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노회찬 원내대표의 비극에 그 누구도 美化(미화)한 국민은 없다”며 이렇게 밝혔다. 최근 노 원내대표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휘말려 투신 사망한 뒤 추모가 잇따르자 홍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 사회가 아니다”라고 해 막말 논란이 일었다.이와 관련 박 의원은 “(국민들은) 그의 삶에 애도했을 뿐”이라며 “우리의 오랜 美德(미덕) 중의 하나는 亡者(망자)에 대한 후덕함”이라고 했다. 이어 “노회찬 (원내)대표님! 그냥 편히 영면하소서”라고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홍준표, 고 노회찬 영결식 다음날 “자살 미화 정상 아니다”…민주 “잔혹한 노이즈 마케팅”

    홍준표, 고 노회찬 영결식 다음날 “자살 미화 정상 아니다”…민주 “잔혹한 노이즈 마케팅”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별세와 관련해 ‘자살 미화’, ‘책임 회피’ 등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면서 “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또다른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썼다. 전날인 27일에 고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국회장으로 엄수된 다음날 쓴 글이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오죽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일견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자살은 생명에 대한 또다른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의 자살은 그래서 더욱 잘못된 선택”이라면서 “아울러 그러한 자살을 미화하는 잘못된 풍토도 이젠 고쳐져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이 글을 29일 다시 한번 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해 올렸다. 정의당은 홍준표 전 대표의 글에 논평을 내고 “그 누구도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죽음을 미화하지 않았다”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라고 비판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수많은 막말의 어록을 남긴 홍 전 대표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촌철살인 어록의 정치인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막말을 하나 더 얹었다”면서 “‘자살을 미화하는 사회 풍토가 비정상’이라고 한 것은 무능한 홍 전 대표의 막말”이라고 했다. 이어 “누구도 노 원내대표 죽음을 미화하지 않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도 홍준표 전 대표의 글에 “습관을 버리지 못 하고 예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즉각 논평을 내 비판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회찬 의원의 사망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은 고인의 생전의 삶의 궤적을 볼 때 상식”이라면서 “죽음을 미화한다느니, 그런 것은 정상사회가 아니라느니 훈계조로 언급하는 것은 한 번도 약자와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아보지 못하거나 그런 가치관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갖는 콤플렉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1야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라면 응당 노회찬 의원의 비운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면서 “홍준표 전 대표는 그렇게 잊히는 게 두렵나. 타국(미국)에서 잔혹한 노이즈 마케팅이나 벌이는 홍준표 전 대표는 자중자애하시라”고 비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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