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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국영이 부활했다”, 16주기 AI 기술로 다시 만난 ‘그리운 얼굴’

    “장국영이 부활했다”, 16주기 AI 기술로 다시 만난 ‘그리운 얼굴’

    만우절,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이 16년 만에 중국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부활’했다. AI의 힘을 빌려 ‘부활’한 장국영은 그의 인기곡 ‘천천궐가’(千千阙歌)와 ‘파리지정’(玻璃之情) 두 곡을 불렀다. 영상 속 그는 녹음실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표정, 동작, 눈빛이 과거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담겨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두 곡을 부르면서 각기 다른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데, 노래 중간 독백으로 팬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꺼꺼(哥哥:오빠), 우리 곁을 떠난 지 16년이에요. 아주 먼 곳을 여행 중이라면서요. 우리 모두 당신을 그리워해요. 당신이 여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6분가량 노래를 부르고 끝나지만, 누리꾼들은 “너무 닮았다”, “눈물이 난다”, “너무나 그리운 장국영”이라는 등의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이번 장국영의 ‘부활’ 영상은 중국 유명 동영상사이트 비리비리(哔哩哔哩·bilibili)의 크리에이터인 퀀텀 류(QuantumLiu)의 작품이다. 유명 시각 특수효과 업체에서 기술을 담당하는 그는 북방지역 한 남성의 얼굴에 장국영의 얼굴 데이터를 입혀 장국영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북방 남성의 노랫소리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동영상은 직접 연구개발한 AI 얼굴변환 기술을 사용했으며, 선명도와 복원력이 모두 업계 최고 수준으로 해상도는 1080P에 달한다”고 전했다. 홍콩 배우 겸 가수였던 장국영은 80~90년대 아시아를 풍미했던 최고의 스타였다. 하지만 2003년 4월 1일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투신해 47년 생을 마감했다. 이후 매년 만우절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사진=신쯔웬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향군, 추모의 벽 건립 5억 2000만원 모금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은 지난해 10월 15일부터 지난달까지 ‘추모의 벽 건립 성금’을 모금한 결과 약 5억 2000만원을 모았다고 1일 밝혔다. 향군 관계자는 “김진호 향군회장이 개인적으로 1000만원을 기탁했으며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상돈 국회의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여했다”며 “이상용, 신수지 등 향군상조회 홍보대사들도 성금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월남전참전자회(2000여만원), 대한항공(1000만원), 삼성물산(900만원) 등도 참여했다. ‘추모의 벽’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 내에 둘레 50m, 높이 2.2m의 유리벽을 설치하고 6·25 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전사자의 이름을 새기는 사업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트럼프를 탐욕의 상징이라고 멸시한 여인

    트럼프를 탐욕의 상징이라고 멸시한 여인

    “트럼프는 1980년대 탐욕의 진정한 상징”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부시의 일기장 속 나온 내용이다. 바버라 부시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 같은 표현까지 써가며 진정 경멸했었다고 AP 통신등이 1일 전했다. 지난해 4월 92세로 세상을 떠난 바버라의 일기에는 2016년 트럼프와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경쟁을 펼쳤던 아들 젭 부시 후보를 조롱하는 트럼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내용을 포함해 트럼프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얘기들이 담겼다. 이러한 내용은 생전 바버라를 인터뷰한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 워싱턴지국장 수전 페이지가, 바버라가 1948년부터 써온 방대한 분량의 일기장을 전달받아 발췌한 뒤 2일 시중에 발간하는 책 ‘모계사회:바버라 부시와 미국 왕조의 탄생’에 실었다. 남편과 아들 조지 W.부시 전 대통령이 모두 공화당 소속인 바버라는 젭을 포함해 부시 전 대통령의 이라크전의 업적마저 멸시하는 ‘공화당원’ 트럼프를 끝까지 싫어한 감정이 일기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 때문에 심장병이 악화했다는 바버라는, 별세하기 몇달 전 지금도 공화당원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평생 공화당원이었지만 “(트럼프 시대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바버라는 지난 미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트럼프와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길 것으로 보고, 대선이 끝난 후인 2016년 11월 트럼프에 보낼 ‘조롱의 편지’를 써놨다고 한다. 그러나 개표 다음 날 아침 대다수의 투표인과 자신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승리한 ‘끔찍한 뉴스’를 바버라가 접했기 때문에 그 편지는 우체통으로 결코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바버라는 몇 주 후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 여사에게 ‘선배 퍼스트레이디’의 자격으로 편지를 보냈다. 당시 뉴욕의 트럼프타워에 있는 펜트하우스에서 백악관으로 멜라니아가 거처를 옮길 것인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을 때, 바버라는 스스로와 어린 막내아들 배런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충고가 든 편지를 멜라니아에게 보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바버라의 장례식 때 트럼프는 참석하지 않고 추모 트윗만 올렸으나, 멜라니아는 직접 참석했다. 바버라는 체코 모델 출신인 첫째 부인 이바나와 트럼프가 이혼한 것에 관해 실린 뉴스에서 이바나가 계약한 2500만 달러의 혼전 합의금은 아마도 부족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하면서 “오늘날 트럼프라는 단어는 탐욕, 이기주의, 추한 것들을 의미하게 됐다. 참 슬픈 일”이라고 적었다. 이바나는 트럼프와 1977년 결혼해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장녀 이방카를 낳은 뒤 1982년 세간의 관심 속에서 헤어졌다. 이바나와 마찬가지로 모델 출신인 멜라니아는 2005년 트럼프의 셋째 부인이 돼 배런을 낳았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오세훈 “돈 받고 목숨 끊은 노회찬” 정의당 “극악무도…사자명예훼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일 4·3 보궐선거가 열리는 창원에서 지원 유세에 나서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해 “돈 받고 스스로 목숨 끊은 분”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정의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도 오 전 시장의 발언을 성토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오전 창원 반송시장에서 진행한 유세에서 “상대방 후보인 정의당이 유세하는 것을 보니 노회찬 정신을 자주 이야기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자랑할 바는 못 되지 않냐”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 선거가 다시 열리고 있느냐. 돈 받고 스스로 목숨 끊은 분 정신을 이어받아 다시 정의당 후보가 창원 시민을 대표해서야 되겠냐”고 했다.  정의당은 “오 전 시장이 극악무도한 망언을 쏟아냈다”며 반발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고 노회찬 의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망언으로 일베 등 극우 세력들이 내뱉는 배설 수준의 인신 공격과 판박이”라며 “합리적 보수라고 불리던 오 전 시장도 이제 망언이 일상화된 자유한국당색에 푹 빠져 이성이 실종된 채 망언대열에 합류한 것”이라고 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여야 대표가 고인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겠다고 했는데 선거 때라고 해서 고인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나”라며 “오 전 시장 본인에게도 좋을 게 없는 발언”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현 평화당 대변인 역시 구두논평에서 “오 전 시장은 당장 노 전 의원 영정 앞에서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고 질타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벨라루스 홀로코스트의 비극, 나치에 당하고 소련에 또 당하고

    벨라루스 홀로코스트의 비극, 나치에 당하고 소련에 또 당하고

    홀로코스트가 막을 내린 지 칠십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벨라루스 브레스트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1000여구의 유대인 주검을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새 아파트의 터를 다지던 인부가 사람뼈가 나오자 놀라 당국에 신고했고, 젊은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현지시간) 전했다. 군인 팀을 이끌던 드미트리 카민스키는 “두개골에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 팀은 원래 옛 소비에트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해왔는데 이곳에서는 아기를 보듬어 안은 여인, 십대 아이들의 작은 두개골 등 완전히 다른 유해들을 수습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머리 뒤쪽에 총탄을 맞았고, 나치가 참호를 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면 그 위에 포개듯 사람들에게 다시 총격을 가하는 식으로 처형이 진행됐다. 1차 세계대전 전에 브레스트 인구 5만명의 얼추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나치가 1941년 6월 침공하자 5000명에 이르는 남성들이 즉각 처형됐다. 남은 이들은 철조망을 두른 담장으로 에워싸인 게토에 수용됐다. 이듬해 10월 이들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게토 안의 유대인들이 기차로 끌려간 곳은 100㎞ 떨어진 브론나야 고라 숲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이들은 처음에 숨는 데 성공했다가 나중에 발각돼 처형된 이들이 함께 묻힌 게토 안의 구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 현장을 지켜보던 미하일 카플란은 “우리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시내는 절반이 텅 비어 있었다”며 어린 시절 식탁 주변에 둘러선 고모들과 삼촌들, 조카들의 흑백사진을 보여줬다. 모두 나치에 학살된 친척들이었다.전쟁이 끝난 뒤에도 누구도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알았지만 누구도 공식적으로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독일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망가뜨렸지만 소비에트는 그저 침묵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브레스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지하 방 한 칸에 전쟁이 끝난 뒤 정착한 유대인 공동체가 꾸며놓은 것 밖에 없다. 전시된 것들은 마룻바닥이나 담 뒤에 숨어 기적처럼 살아남은 유대인 몇몇에 대한 얘기뿐이다. 1942년 10월 15일 독일은 1만 7893명의 유대인이 브레스트에 거주한다고 기록했는데 다음날 이 숫자는 지워졌다. 유대 공동체 지도자인 에핌 바신은 “게토가 언제 말살됐는지 우리가 알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많은 유해를 발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우리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인 처형이 시내 어느 곳에서나 이뤄졌기 때문이다. 에핌은 몇년 동안 문서 보관소들을 뒤졌다. 증인들의 증언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운명은 벨라루스 전체가 맞은 총체적 재난에 섞여 들어갔다. 에핌은 “관리들은 잊지 말자는 주문만 되뇌이지만 유대인 대목은 씻겨나갔다”며 전쟁에 대한 기억은 소련 인민에게만 맞춰지고, 반유대 주의와 “한 나라”를 강조하는 소비에트 정권을 결속하는 데만 중점을 뒀다. “그러나 그건 매우 공격적이었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다. 그저 유대인이란 이유로 죽어나갔다.” 유대인 시나고그 위에 극장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유대인 공동묘지는 나치가 파괴하고, 다음에는 소련 군대가 파괴했다. 그 위에는 스포츠 경기장을 지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우버 택시로 착각하고 탔다가…美 여대생 숨진 채 발견

    우버 택시로 착각하고 탔다가…美 여대생 숨진 채 발견

    지난 29일(현지시간) 새벽 귀가중 실종됐던 미국 여대생이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미국 컬럼비아경찰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4학년 사만다 조셉슨(21)이 실종지점에서 약 145km 떨어진 클래런던 카운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컬럼비아경찰서장 홀브룩은 30일 밤 기자회견에서 “시신은 조셉슨이 마지막으로 목격된지 14시간 만에 클래런던 카운티 도로 옆 수풀에서 사냥꾼들이 발견했다”고 전했다. 홀브룩 서장은 조셉슨 납치 및 살해 혐의로 20대 남성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조셉슨은 지난 금요일 새벽 룸메이트들과 외출에 나섰다가 홀로 무리를 빠져나왔다. 귀가를 위해 ‘우버’(승객과 택시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호출한 그녀는 검은색 ‘체비 임팔라’ 차량 뒷자리에 올라탔고 그 이후로 연락이 두절됐다. 먼저 자리를 떠난 조셉슨이 아침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그녀의 룸메이트들은 오후 1시30분경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은 인근 CCTV에서 사만다가 차에 탑승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추적에 나섰다. 금요일 오후 4시경 콜롬비아 남동부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은 시신의 신원이 조셉슨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실종 14시간 만에 시신이 발견되면서 경찰은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전환하고 용의자를 쫓는데 집중했다.다음날인 토요일 새벽 3시 경찰은 조셉슨 납치 및 살해 혐의로 나다니엘 데이비드 롤랜드(24)를 검거했다. 검거 당시 롤랜드는 경찰의 검문검색을 뚫고 도주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홀브룩 서장은 롤랜드의 임팔라 차량 내부에서 조셉슨의 휴대전화를 수거했으며 조수석과 트렁크에서 조셉슨의 혈흔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셉슨은 롤랜드의 차량을 ‘우버 택시’로 착각하고 탑승했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범행 차량이 어린이 안전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뒷좌석에 탄 조셉슨이 문을 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현지 언론은 경찰의 기소장을 토대로 조셉슨이 머리와 목, 얼굴 및 상반신과 다리, 발 등 곳곳에 상처가 심했다고 보도했으나 자세한 범행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다. 조셉슨의 사건이 보도되자 그의 모교와 컬럼비아 현지 주민들의 애도가 잇따르고 있다. 조셉슨의 모교인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은 31일 추모식을 열어 조셉슨의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추모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헨리 맥마스터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장 해리스 파스타이즈 역시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진=컬럼비아경찰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만우절 거짓말처럼 떠난 장국영…죽음 둘러싼 루머들

    만우절 거짓말처럼 떠난 장국영…죽음 둘러싼 루머들

    중화권 톱스타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6주년이 됐다. 장국영은 1976년 가수로 데뷔한 뒤 1978년 ‘홍루춘상춘’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고, 87년 ‘영웅본색’을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천녀유혼’ ‘아비정전’ ‘종횡사해’ ‘패왕별희’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노래와 연기,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홍콩 연예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46세. 만우절 거짓말로 믿고 싶던 그의 죽음은 사실이었고 그의 팬들은 매년 4월 1일 장국영을 그리워하고 있다. 장국영은 호텔에서 투신하기 전 “한 명의 20대 청년을 알았다. 그와 탕탕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아주 괴롭다. 그래서 자살하려 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당시 장국영의 죽음과 관련해 가장 많이 거론됐던 소문은 대만 폭력조직 삼합회가 장국영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홍콩 영화계가 삼합회와 여러 모로 얽혀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고, 장국영은 생전 삼합회가 홍콩영화계에 관여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장국영이 삼합회에 살해당한 뒤 자살로 위장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장국영이 투신한 호텔은 중간 부분이 튀어나온 구조였는데 시신이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점, 혈흔이나 외상이 너무 적은 점 등 투신 현장과 관련된 여러 의문점이 쏟아졌다.사건 당시 연인이자 유산상속인이었던 당학덕의 행적을 둘러싸고도 의문의 시선이 모아졌다. 장국영이 사망하던 날 당학덕은 장국영과 배드민턴을 치기로 약속했다고 알리바이를 댔지만 그가 말한 시간은 이미 장국영과 매니저가 약속을 잡아 놓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장국영이 사망하기 얼마 전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같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장국영 사망 며칠 전 당학덕과 장국영이 심하게 싸우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나타났다. 또한 당학덕은 평소 삼합회의 행사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었다. 결과적으로 당학덕은 장국영의 재산 460억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장국영 사망 직후 조카 알리사가 “평소 장국영이 우울증을 앓아왔고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고 밝혔고, 2013년 장국영의 사망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장국영의 매니저였던 ‘진숙분’이 장국영이 죽기 직전 자신의 입으로 “편하게 가는 방법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 등 현재는 자살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브라질은 과거사 논쟁중...보우소나루 군부 쿠데타 옹호 후폭풍

    브라질은 과거사 논쟁중...보우소나루 군부 쿠데타 옹호 후폭풍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가 1964년 군부 쿠데타를 기념하는 행사를 강행하기로 하면서 브라질 사회가 때아닌 ‘과거사’ 논쟁으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 변호사협회가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유엔에 고발한 상황에서 사법부는 보우소나루 정부의 돈을 들어줘 인권단체와 법조계, 학계, 언론계 등에서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브라질 연방법원 마리아 두 카르무 카르도수 판사는 30일(현지시간) “브라질 정부가 31일 개최할 군사쿠데타 기념식을 금지시킬만한 객관적인 이유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앞서 하급심 법원이 29일 “민주주의의 재건과 회복과정에 적합하지 않다”며 군사쿠데타 기념식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을 뒤집은 것이다. 육군 대위 출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방부에 오랫동안 중단됐던 군부쿠데타 기념행사를 31일 개최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구체적인 행사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당연히 기념해야 할 일이며 군인들이 이날을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브라질에서는 1964년 3월 31일 군부쿠데타가 일어났고, 당시 대통령은 유혈 충돌을 우려해 남부 히우 그란지두술주를 거쳐 인접국 우루과이로 망명했다. 군사정권은 1985년까지 21년간 계속됐으며, 이 기간에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체포·구금되거나 사망·실종되고 일부는 외국으로 추방당했다. 군사정권은 1979년 사면법을 제정해 군사정권 시기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처벌을 금지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2010년 사면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석했으나 브라질변호사협회와 미주기구(OAS) 인권위원회 등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었다. 브라질에서는 좌파 노동자당(PT)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정부 때까지 군부 쿠데타 발생일에 기념행사가 치러졌으나 룰라 후임자인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11년부터 사실상 중단됐다. 호세프 대통령은 2012년 5월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가진실위원회를 설치했고, 진실위는 2014년 말 군사정권 시절 인권범죄가 조직적으로 자행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활동을 마감했다. 당시 진실위는 인권범죄 희생자 434명과 인권범죄에 연루된 377명의 명단을 발표했으며, 이를 계기로 인권단체와 법조계에서 인권범죄 연루자 처벌을 촉구하는 주장이 나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논란이 지속되자 28일 “군부쿠데타를 기념하자는 게 아니라 기억하자는 취지”라면서 “잘못된 과거를 되돌아보고 브라질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를 생각하자는 뜻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브라질 변호사협회는 29일 쿠데타 지지 발언을 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유엔에 고발했다. 고발장 작성에는 군사독재정권 시절(1964∼1985년)인 1975년 정보요원들에 의해 피살된 언론인 블라디미르 헤르조그를 추모하기 위해 2009년 6월 설립된 비영리단체 ‘블라디미르 헤르조그 연구소’도 참여했다. 파비앙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군부 쿠데타 지지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부고] 김재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씨 모친상

    △ 고선예 씨 별세, 김재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 겸 경기도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씨 모친상. 28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망우로 삼육의료원 서울병원 추모관 지하 1층 B-206호, 발인 30일 오전 10시 30분. 02-2215-4444
  • [부고] 김재철(코스닥협회 전 회장)씨 모친상(종합)

    △ 고선예씨 별세, 김재철(에스텍파마 대표이사, 코스닥협회 전 회장)씨 모친상, 배선희(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관리실장)씨 시모상. 28일, 삼육의료원 서울병원 추모관 B-206호, 발인 30일 오전 10시 30분. 02-2210-3426
  •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김재희 감독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은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기억”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김재희 감독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은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기억”

    “‘노사모가 태극기부대처럼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켜 드렸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셨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의 김재희(43) 감독은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인터뷰 주인공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한 김영부씨다. 김 감독은 “인터뷰 중간에 (김씨가) 눈물이 나니까 밖으로 나가셨다. 그때 그분의 따님이 ‘아빠, 울지 마…’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혼재된 많은 감정을 함께 느꼈음을 전했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광주 시민군 출신의 김영부씨를 비롯해 일반 회사원, 자영업자, 대학교수, 가정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고 추억하는 작품이다. 제작 배경에 대해 김 감독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다”라고 답했다.영화는 2018년 4월 말 촬영을 시작해 올 2월 말까지, 총 10개월간 진행됐다. 김 감독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주, 진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만난 사람만 총 84명이다. A4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는 ‘노무현이라는 큰 바보와 그를 따랐던 작은 바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 감독은 작품의 서사구조에 대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봄과 여름은 2002년 국민참여경선부터 16대 대통령 당선까지의 이야기이고, 가을과 겨울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며 “봄, 여름 전반부가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인 가을, 겨울은 성찰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언론 보도가 많이 등장한다. 이 지점에 최근 기사들의 인용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종합부동산세나 경제 관련 기사들의 경우,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가져다 썼다”며 “과거와 같은 공격 패턴을 보이고 있기에, 그런 것들을 빗대어 성찰의 의미로 후반부를 구성했다”고 밝혔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2000년 부산 총선 과정을 중심에 둔 전인환 감독의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년)에 이어 2002년 국민참여경선 과정을 중심에 둔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2017년)가 있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세 번째 영화다. 김 감독은 “기존 작품과 이야기 방향을 또 다르게 만들었다”며 새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완성했음을 전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미공개 영상들이 공개될 예정이다. 여러 영상 중 김 감독은 최초로 공개될 노 전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10분 전, 집 대문을 나오신 후 10여 미터를 걷다가 화단에 있는 풀을 뽑는 장면이 있다”며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화면을 대표로 소개했다. 김 감독에게 영화 속 명대사를 묻자, 그는 “‘나는 봉화산이야. 산맥이 없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라고 답했다. 이어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그런데 봉화마을에 가서 드론을 띄웠더니, 김해평야에 정말 산맥 없이 봉화산만 있었다. 외로운 처지가 그 말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2009년 경남미디어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김 감독은 ‘노무현과 바보들’이 스크린 데뷔작이다. 2019년 이 시점에,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기록하고 말을 거는 영화의 역사적 의미를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기득권들이 문재인 정권도 과거와 같은 패턴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또 방치할 건가,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활정치가 될 수 있고, 투표가 될 수도 있다. 각자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작품을 출발시킨 진짜 의미를 덧붙였다. 한편,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기 추모작 ‘노무현과 바보들’은 오는 4월 18일 개봉한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입 속의 검은 잎, 만나다 - 광명 기형도 문학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입 속의 검은 잎, 만나다 - 광명 기형도 문학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中에서> 기형도는 1989년 3월 7일 새벽, 파고다 극장에서 죽었다. 사인(死因)은 뇌졸중. 1980년대 이미 한물간 수동식 ‘로열영사기’를 ‘최신식’으로 자랑하던 후미진 3류 극장 한켠에서 그는, 그의 삶을 쓸쓸히 내려 놓았다. 30살. 탑골공원 주변의 낡고 음습한, 그리고 어수선하고도 그로테스크한 풍광 속으로 그는 사라진 셈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형도스럽게 죽었다고. 광명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이다.그는 죽은 지 30년 지났지만, ‘시인 기형도’는 젊은 예술인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고뇌의 길목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있다. 그의 시는 독특하다. 그는 고독을 삶의 목표로 삼은 듯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낯설고, 어둡고, 우울하다. 그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듯이 ‘악몽같은 빌딩’이 가득한 도시에서도 여전히 담겨 있었고,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나섰으나 결국 길을 잃었다. 숨 쉬는 것조차도 검열받아야 한다는 조롱만이 지배하던, 답답한 80년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은 곧 그의 얼굴이었다. 이렇듯 그의 삶은 시대의 한 가운데 있었고, 그의 시는 낭만 가득한 희망따위는 품지 않았으며 현실에는 정직하였다.“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中에서>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은 위치부터가 기형도스럽다. 어색하고 낯설고 어울리지 않기에 기형도 문학관 자리로는 가장 제격이다. 그의 등단 작품인 <안개>에 나오는 표현처럼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누며 만든 물건들을 세상에서 제일로 잘 팔고 있다(?)는 글로벌 기업인 ‘이케아(IKEA)' 매장이 기형도 문학관 바로 옆집이다. 그것도 한 집 건너 옆집이 아니라 그냥 옆집이다. 모든 것들이 기형도 작품에 나오는 풍광처럼 부자유스럽게 자연스럽다.기형도는 광명시 소하동에 살았었다. 문우(文友)들은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바리톤 낮은 음색으로 한껏 얼굴 찌푸린 채 노래 잘 부르던 친구 기형도, 모든 사람들에게 수줍게 다감다정스럽던 그를 위해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광명시 중앙도서관의 ‘기형도 특별코너’ 설치, 광명시민회관의 추모 공연, 기형도 시비 건립 등 그를 기리는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마침내 2017년 11월 기형도 문화 공원 내에 기형도 문학관이 건립되었다.문학관 내에는 시인 기형도를 알리는 여러 전시물들이 다채롭게 배치되어 있다.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 담긴 자료부터 그의 필사본, 그가 읽었던 책과 더불어 신문 기자 시절의 행적, 그의 각 작품에 담긴 여러 의미들의 해석 등이 있어 기형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시금 그를 느끼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형도 문학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문학에 관심 있다면, 광명 이케아 매장에 들린다면 시간을 내어서라도. 2. 누구와 함께? - 중, 고교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자녀와 같이. 교과서에도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수능에도 나오는 유명한 시인임. 3. 가는 방법은? - 광명 이케아 매장 주차장 바로 옆.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268 - 1호선 광명역에서 버스 3, 3-1, 12, 17, 505, 5627, 5633번 4. 감탄하는 점은? - 다른 문학관에 비하여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느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적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것은? - 시인의 육필 원고들, 다른 시인들이 들려주는 시의 설명.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이케아 매장내 음식 코너, ‘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 ‘홍익돈까스’ , 짬뽕 ‘명품’, 불고기 ‘송연정’, ‘개성손만두’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kihyungdo.co.kr/main.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광명동굴, 광명시장, 충현박물관, 광명 아케아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기형도 문학관은 일반인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곳일 수 있다. 1980년대를 관통하며 살아왔던 시인이자 기자였던 기형도의 삶을 통해 당시 젊은 세대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적극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길고 긴 군악대 생활… 어머니는 함포탄에, 동생은 총탄에 목숨 잃어”

    “길고 긴 군악대 생활… 어머니는 함포탄에, 동생은 총탄에 목숨 잃어”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김탁수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11일 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치과 3층) 대담 김탁수(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 대원)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원장(이경종 큰아들)6·25 사변과 어머니의 죽음 1950년 5월 3일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를 졸업하였던 그해, 6월 25일 사변이 터졌다. 내가 당시 살던 곳은 금곡동이었으며 10남매의 장남인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과 같이 살았다. 1950년 9월 15일 UN군 전함들은 인천 시내를 향해 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 함포탄은 우리 집 근방에도 날아왔으며 급기야는 우리 집에도 함포탄이 떨어져 그때 피란을 안 가시고 홀로 집을 지키시던 어머니께서 그 함포탄 파편 때문에 돌아가셨다.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 창설 이때 나는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나의 모교 인천상업중학교 밴드부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조직된 인천학도의용대의 군악대로 창설되어서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원으로 9월 말일부터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군악대는 인천학도의용대 지대 창립식에 동원되었으며 위문행사와 선무공작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통일이 되는 줄 알았던 우리나라가 갑작스런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또다시 시국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들리는 소식은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과 겨울철로 접어들어 우리 국군의 전투력 부족으로 인하여 국군과 UN군은 날마다 밀리고 있다는 뉴스만 들리는 것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드디어 인천학도의용대가 부산을 향해 남하(南下)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군악대원들, 윈자호 수송선 타고 남하 1950년 12월 24일, 전황은 더 급박(急迫)하게 움직여 군에서 마련해준 윈자호라는 수송선으로 우리 군악대 25명과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 대원 150여명은 같이 지금 인천역에 있는 파라다이스(오림포스)호텔에서 가까운 부두에서 부산을 향해 출항하였다. 3박 4일을 배 안에서만 지낸 우리들은 1950년 12월 27일 부산항 부두에 도착했다. 이날 축 늘어진 모습으로 부산부두에 올라선 우리들은 부산극장 옆에 있는 어느 큰 창고에 여학생들과 같이 묵고 있다가 동대신동에 있는 육군통신학교 부속 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잠자리는 해결이 되었는데 며칠 동안은 각자 가지고 간 돈으로 먹는 것은 해결하였지만 그 돈이 떨어지니까, 이제는 끼니를 때우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1951년 1월 초 그렇게 고생스럽게 부산 생활을 하던 중에 고향 인천은 또다시 북한 공산군에게 점령(占領)당하게 되었다.군악대원 모두 육군종합학교 군악병 입대 오갈 데가 없게 된 우리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부산 동래에 있던 육군종합학교 심유권 소위였다. 그때 심유권 소위가 말하기를 “지금 육군종합학교에는 군악대가 없어서, 군악대가 필요한데 너희들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는 갈 곳이 없으니까 숙식(宿食)이 해결되는 육군종합학교 군악대로 입대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이 1951년 1월 12일이었다. 그때쯤은 이미 고향 인천은 인민군에게 또다시 점령당해 돌아갈 수도 없어 군에 들어갈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육군종합학교에 입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인천에서 수송선을 타고 같이 남하했던 여학생 대원 150여명은 육군통신학교에 계셨던 인천상업중학교 은사님이신 신봉순 교육대장님 배려로 부산육군통신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동래 육군종합학교에서의 군악대 생활 육군종합학교로 간 우리들은 10여일 간 간단한 제식훈련만 받고 1951년 1월 23일 자로 군번을 받았다. 정식으로 군번을 받고 군인이 되어 바로 육군종합학교 행사에 동원되어 군악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때의 행사는 주로 장교후보생을 졸업시켜 소위로 임관시키는 임관식과 간부후보생 입교 행사였다. 당시는 전방에 장교가 부족해서였는지 매주 월요일에는 입교식이 있었으며 임관식은 토요일마다 있었다. 1951년 12월 육군종합학교는 전 부대가 부산에서 수송선을 타고 목포로 갔으며, 목포 송정리 후락산에 새터를 잡아 학교 명칭도 육군보병학교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군악대 군악병 생활 목포 송정리 후락산에는 육군보병학교, 육군통신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기갑학교, 77육군병원 등이 집단으로 주둔하였으며 이 5개 부대를 통틀어 상무대(尙武臺)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상무대는 육군의 교육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육군 교육총감부 직속하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군악대의 명칭도 상무대 군악대로 바뀌었으며, 행사 범위가 커지면서 상무대 군악대의 바쁜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1955년 2월에 나는 상무대에서 서울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로 전속되었다. 그곳에서 2년 가까이 군악대 생활을 하다가 길고 긴 6년 8개월의 군 생활을 육사에서 마치게 되었다. 동생 김윤수, 무전기 찾아 나오다 전사 내 동생 김윤수(金潤洙·큰 사진 빨간 원안)는 1934년 5월 11일 용동에서 태어나서, 인천창영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때 부산까지 걸어가서 1951년 1월 10일 육군통신병(군번 0240856)으로 자원입대하였다. 무선통신병으로 강원도 전투지역인 5사단 35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때 오대산 누그미 전투에서 609무전기를 등에 지고 전투하며 전진하던 중에 적의 기습으로 갑작스런 후퇴로 잠깐 땅에 내려놓았던 무전기를 미처 간수하지 못하고 후퇴하여 후방에 와서 보니까 지휘관이 큰 소리로 “군에서 전투 중 통신병이 통신기재를 분실하면 즉결처분으로 총살이다!”라고 고함치니까 내 동생 김윤수는 다시 그 지역으로 가서 그 무전기를 찾아가지고 나오다가 적의 총탄에 맞고 전사했고, 유해는 그만 찾지 못하고, 무덤도 없이 동작동 국립 현충원 봉안관에 위패(6-7-118)로만 봉안되어 있다. 감사의 말과 남기고 싶은 말 이상이 내가 걸어온 중요한 줄거리이다. 중학생으로 자원입대하여 채 피지도 못하고 강원도 산골에서 외롭게 하늘나라로 간 내 동생 김윤수의 넋이 편안하게 잠들기를 빌 뿐이다. 무덤도 없는 동생의 행적을 글로나마 남기게 해주어 무겁던 내 마음을 다소나마 덜어 준 이경종규원 2부자(父子)에게 고마울 뿐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참전기 21회를 마치며 69년 전, 인천에 형과 아우가 살았었습니다. 해방이 된 지는 5년 만에, 정부 수립 3년 만에 국가 멸망의 위기가 닥쳐서 2형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형은 하인천부두에서 배를 타고, 동생은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2형제는 부산에서 자원입대하였습니다. 동생은 중학교 3학년 16살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어린 나이였지만 자원입대하여, 전사하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생으로 나라를 위하여 죽은 동생에 대한 형의 슬픔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가 있겠습니까? 조국과 고향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김윤수는 이제 고향 인천에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에 전사(戰死) 학생(學生)으로 기록합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김부용 최재훈 “故 이원진 서지원 죽음 충격..20년간 안 봐”

    김부용 최재훈 “故 이원진 서지원 죽음 충격..20년간 안 봐”

    가수 최재훈과 김부용이 故 이원진 서지원 등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추억했다. 26일 방송한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는 8090 음악여행을 떠났다. 이날은 홍석천과 김부용의 요리대결에서 김부용이 13대 1로 완패를 했다. 거북이마을 주민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들은 홍석천 요리에 한결같이 ‘맛있다’며 표를 던졌고, 김부용 요리는 대체로 ‘짜다’는 평을 남겼다. LP 수집가인 최민용은 휴대용 턴테이블과 ‘불청’ 가수들의 LP판을 준비해 대청마루에서 ‘별이 불타는 밤에’ 추억의 음악실을 열었다. 이날 최고의 1분을 장식한 주인공은 구본승이었다. 그의 히트곡 ‘너 하나만을 위해’가 흘러나오자 홍석천은 구본승의 ‘출까말까 춤’을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몰래 온 손님’으로 뒤늦게 합류한 최재훈과 김부용에 얽힌 20년 전 못다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보고 싶었다”고 인사를 전한 두 사람은 20년간 만나지 못한 이유를 털어놨다. 동 시대에 활동했던 최재훈과 김부용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수 서지원, 최진영, 이원진 등을 떠올렸다. 김부용은 “당시 어렸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충격을 많이 받았다”면서 “다같이 술 마시고 노래하던 형들이 가셔서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어울리던 이들을 보면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생각나서 힘들었다고. 이에 최재훈은 “한 명씩, 한 명씩 그렇게 되고 안 보게 됐다”면서 “보면 밝은 이야기를 하는 게 죄책감이 들더라. 기억을 떠올리기 싫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서지원은 지난 1996년 1월 1일 사망했다. 김부용은 “사망 전날 서지원, 강태석과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같이 있던 친구인데 미안했다”면서 “내가 지원이에게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도 갔는데 그게 공황장애였다”고 고백했다. 이후 김부용은 제작진에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면서 “아직도 내 옆에 있는 것 같고 많이 생각이 난다”고 덧붙였다. 김부용은 “그 친구 마지막 앨범 녹음할 때 녹음실에 갔었다. 내 눈물 모아. 그 노래가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난다“라며 불청 콘서트의 스페셜 스테이지를 위해 최재훈과 함께 ‘서지원’의 추모곡을 준비하는 모습을 예고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故 김윤식 교수 부인에 감사패

    故 김윤식 교수 부인에 감사패

    국립한국문학관을 위해 전 재산 30억원을 기증한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 교수의 부인 가정혜(왼쪽)씨가 국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6일 서울 용산구 문체부 서울사무소 제4회의실에서 김 교수의 유산을 기부한 가씨와 고 하동호 교수 소장자료를 기증한 아들 하태석씨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교수를 지낸 국문학 연구의 권위자이자 대표적인 문학평론가다. 그의 부인인 가씨는 지난 15일 고인이 남긴 유산 30억원을 국립한국문학관에 기부했다.<서울신문 3월 21일자 2면> 고인의 생전 뜻이 담긴 기부 내용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고인을 추모했다. 하 교수는 공주대 교수를 지낸 우리나라 서지학 권위자이자 국내 대표 문학자료 소장가다. 지난해 8월 10일 아들인 하씨가 고인이 평생을 바쳐 수집한 문학 관련 자료 약 4만여점을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했다. 이날 감사패는 하씨를 대신해 고인의 부인 조옥선씨가 받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 헌화하는 日 추모객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 헌화하는 日 추모객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에서 스가와라 도시노부(왼쪽 두 번째)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국제교류협회장이 헌화하고 있다.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관한 추모식에는 안 의사 외손녀 황은주씨와 시민·학생 500여명, 일본 인사 20여명이 참석했다. 뉴스1
  • 천안함 9주기 사무치는 그리움

    천안함 9주기 사무치는 그리움

    천안함 용사의 유가족이 26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9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에서 추모비에 새겨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한·벨기에 정상회담 협력 방안 논의

    한·벨기에 정상회담 협력 방안 논의

    文대통령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동참을” 필리프 국왕 “한국 정부 평화 정착 노력 지지”문재인 대통령은 26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우호 증진 및 실질협력 강화 방안,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필리프 국왕의 방한은 벨기에 국왕으로서는 27년 만이며, 문 대통령 취임 후 유럽왕실 인사의 첫 방한이다. 필리프 국왕은 왕세자 시절 다섯 차례나 방한할 만큼 ‘친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왕세자 시절에 5차례 방한 ‘친한’ 인사 문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벨기에는 다른 언어와 문화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높은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나아가 유럽연합(EU) 통합까지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며 “‘통합이 힘이다’는 벨기에의 국가 모토는 평화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참으로 공감이 가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비롯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에 대해 설명한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인 벨기에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를 보내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여정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필리프 국왕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지하고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리프 국왕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역할에 대해서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필리프 국왕의 국빈 방문에는 공식대표단을 비롯해 기업 최고경영자(CEO) 90명과 주요 대학 총장 등 총 250여명의 대규모 수행단이 동행했다. ●국왕 6·25전쟁 참전 벨기에 용사 추모식 참석 앞서 필리프 국왕 내외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참전 벨기에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했다. 추모식에는 레이몽드 베르 벨기에 한국전 참전협회장을 비롯한 참전용사 등 50여명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 우리 군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벨기에는 1951년 1월 보병 1개 대대 규모의 전투병력을 파병했다. 106명이 희생됐고, 9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제암 학살 100주년’ 세계평화연대 도시와 국제심포지엄

    ‘제암 학살 100주년’ 세계평화연대 도시와 국제심포지엄

    경기 화성시가 제암·고주리와 같이 학살의 아픔을 겪은 세계 도시와 평화를 논하는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화성시는 화성 3·1운동과 제암·고주리 학살 100주년을 맞아 내달 14일 수원과학대학교 내 신텍스에서 ‘화성 4·15, 평화와 번영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시는 지역에서만 국한돼 알려진 화성 독립운동사를 전 세계 도시들과 공유하고,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돌아보기 위한 취지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심포지엄에서는 화성 3·1운동과 4·15의 가치, 세대와 지역 간 역사 공유의 가치 등의 주제발표가 예정돼 있으며 토론자와 연구원, 대학생 등이 참여하는 종합 토론도 진행된다. 아울러 심포지엄에는 세계평화연대 의장도시인 프랑스 덩케르크를 비롯, 오라두르 쉬르 글란, 체코 리디체, 독일 로스토크, 러시아 볼고그라드, 폴란드 그단스크, 중국 위해시, 필리핀 마닐라 총 8개 도시 대표단이 초청됐다. 세계평화연대 도시단 대표는 ‘역사는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역사를 쓴다’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또 ▲화성 3.1운동과 4.15의 가치 ▲세대와 지역 간 역사 공유의 가치 등의 주제발표가 진행되며 종합토론에서는 토론자와 연구원, 대학생 등이 참여한 가운데 화성 독립운동사를 심도 있게 다룬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서철모 화성시장은 “그간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이라는 일제의 극악무도한 만행에 가려져 화성 독립운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며,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그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화성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함께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심포지엄 다음날인 15일에는 제암리 순국유적지에서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100주년 추모제가 열리며 해외대표단도 참석할 예정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눈부시게 시린 57세 벚꽃왈츠… 진해군항제 31일 팡파르

    눈부시게 시린 57세 벚꽃왈츠… 진해군항제 31일 팡파르

    페스티벌 백미 군악의장 볼거리 새달 5일 하늘 위 블랙이글스 쇼 여좌천·제황산선 벚꽃 낭만 야경 창원시 “관광객 300만명 예상”세계 최대 벚꽃도시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해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오는 31일 시작된다. 창원시는 25일 제57회 진해군항제가 이날 개막해 다음달 10일까지 열린다고 밝혔다. 군항제는 1953년 4월 13일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한 게 계기다. 추모제를 거행하다 1963년부터 민·관·군 화합을 위해서 군항제를 시작해 올해로 57회째를 맞았다.31일 오후 6시 중원로터리 특설무대에서 식전행사와 개막식, 축하공연 등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11일 동안 벚꽃으로 뒤덮인 진해구 일원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31일 오후 속천항 바다 위에서 멀티미디어 불꽃쇼가 하늘을 수놓으며 군항제 개막을 알린다. 이 충무공 호국정신 계승행사로 추모대제(4월 1일)·승전행차(5일)·호국퍼레이드(6~7일)가 차례로 열리고 중원로터리와 경화역에서 매일 다채로운 문화·체험 행사가 이어진다. 군항제 기간에 맞춰 해마다 열리는 ‘진해 군악의장 페스티벌’도 볼거리로 꼽힌다. 다음달 5~7일 3일 동안 각 군 군악대와 의장대, 미8군 군악대 등이 참여해 진해공설운동장과 창원 NC파크 마산구장, 창원교육단지 등에서 절도 있는 의장시범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5일에는 공군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만개한 벚꽃 위 하늘에서 화려한 비행쇼를 펼친다. 벚꽃 명소 가운데 한 곳인 여좌천 벚꽃길에는 조명을 설치해 환상적인 벚꽃 야경을 연출한다. 제황산 공원에도 불빛 벚꽃거리를 조성하고 매일 대한민국 해군 호국음악회가 열린다. 평소에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진해기지사령부, 해군교육사령부, 미해군 진해함대 지원부대 등 군부대도 축제 기간에 개방해 아름드리 벚나무가 우거진 부대 안으로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군 부대마다 군악연주회, 함정공개, 해군체험, 박물관 개관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창원시는 올해 벚꽃 피는 시기가 빨라질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군항제 준비를 일찍 완료하고 관광객맞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수면 생태공원, 여좌천, 경화역, 진해탑, 진해루 등은 진해 지역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로 군항제 기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시는 지난해 군항제를 찾은 관광객이 320여만명으로 집계됐으며 올해도 3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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