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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한 앨리샤 키스 “영웅을 잃었다”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한 앨리샤 키스 “영웅을 잃었다”

    팝 가수 앨리샤 키스가 미국 프로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했다. 27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는 제62회 그래미 어워드(2020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침통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앨리샤 키스는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 우리는 또 한 명의 영웅을 잃었다”며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안나를 언급했다. 앨리샤 키스는 이어 “코비 브라이언트가 저희의 마음 속에, 영혼 속에 기도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간에도 함께할 것이다. 여러분 잠시만 그들을 마음 속에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과 함께 힘을 합쳐 달라. 쇼를 이렇게 시작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 조금이라도 설명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 모여서 같이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함께 끌어 모아서 즐깁시다. 가장 아름답구 강력한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자.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는 것은 음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코비 브라이언트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당국에 따르면, 추락사고는 이날 오전 10시쯤 발생했다. 사고 당시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안나을 포함해 5명이 헬기 안에 탑승해 있었다. 당국은 생존자는 없으며 현재 사고 원인 등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코비 브라이언트 헬리콥터 추락 사망, 딸 지아나도 함께

    코비 브라이언트 헬리콥터 추락 사망, 딸 지아나도 함께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41·미국)가 26일(현지시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딸 지아나(13)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브라이언트 부녀는 이날 아침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중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칼라바사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쪽으로 48㎞ 떨어져 있다. 연예 전문 TMZ 닷컴은 이번 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지만 나중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관리들은 조종사와 탑승객 8명 등 9명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코비 부녀는 칼라바사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우전드 오크스에 있는 맘바 아카데미에 농구 경기를 하러가다 변을 당했다. ESPN은 이 경기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다른 선수와 부모가 헬리콥터에 동승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브라이언트는 아내 바네사, 지아나를 비롯해 나탈리아, 비앙카, 카프리 등 네 딸을 뒀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실은 트위터를 통해 신속대응팀이 현장에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으며 생존자는 없다고 밝혔다. 칼라바사스 시(市)도 트위터를 통해 브라이언트의 사망을 확인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추락 헬기는 시코르스키사의 S-76 기종이라면서 FAA와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NBA 선수였던 조 브라이언트를 아버지로 둔 코비 브라이언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6년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니츠의 지명을 받은 후 곧바로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돼 2016년 은퇴할 때까지 20년을 줄곧 LA 레이커스 유니폼만 입었다. 팀을 다섯 차례 NBA 정상에 올려놓았고, 18차례 올스타팀에 선발됐으며, 두 시즌 득점왕에 올랐다. 2008년 정규리그 MVP, 이듬해와 2010년 플레이오프 MVP, 올스타 MVP 4회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NBA 통산 득점은 3만 3643점으로 카림 압둘 자바(3만 8387점), 칼 말론(3만 6928점)에 이어 세 번째였다가 공교롭게도 하루 전 르브론 제임스(레이커스)가 그를 넘어서 NBA 역대 네 번째로 많은 득점 기록을 갖게 됐다. 레이커스는 브라이언트의 선수 시절 등번호 8번과 24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이날 그의 비보를 듣고 마크 큐번 댈러스 구단주가 자신의 팀에서 한 번도 뛰지 않은 코비의 등 번호 24번을 영구결번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브라이언트는 생전 마지막 트윗으로 “그 게임(농구)을 ‘킹 제임스’(르브론)를 향해 지속해서 더 진전시켜가면서, 내 형제에게 많은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자신의 득점 기록을 넘어선 제임스에 찬사를 보내며 격려한 것이다. 제임스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코비)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당신이 정녕 위대해지길 원한다면, 그리고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위해 끝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제임스는 또 “그(코비)는 공격적으로 제로 결점의 선수였다. 당신이 그를 막아서면 그는 3점슛을 때렸고 당신이 몸으로 그를 밀쳐내려 해도 그는 당신의 주변을 돌아 미들레인지에서 득점했다. 그의 기술과 선수로서의 열정 덕분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트와 제임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대표로 함께 뛰었다. 샤킬 오닐, 데론 윌리엄스, 토니 파커 등 NBA 레전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육상 레전드 우사인 볼트 등이 믿기지 않는 브라이언트의 죽음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 레이커스의 홈 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 앞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보를 접한 팬들이 몰려와 추모의 꽃을 바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금요칼럼] 사연댐과 반구대, 덕동댐과 고선사/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사연댐과 반구대, 덕동댐과 고선사/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지난해 설 연휴엔 포항 오어사를 찾았다. 오어사는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에 있다. 그런데 마을 이름이 흥미롭다. 항사(恒沙)란 한역(漢譯)된 불경에 등장하는 항하사(恒河沙)의 준말이다. 항하란 인도의 갠지스강이니 항하사는 갠지스강 모래알만큼 많다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 신라 진평왕 시대 세워진 이 절의 애초 이름은 항사사였다. ‘삼국유사’에는 ‘항하사처럼 많은 사람이 속세를 벗어났으니 항사동이라 이름하였다’고 했다. 절집을 휘감아 도는 신광천의 흰모래가 아름답다. 이 물줄기에 부처가 발을 적신 갠지스강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천수백년 전 신라사람들의 이 같은 이름 짓기는 세계문화교류사에 기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오어사로 바뀐 이유 역시 ‘삼국유사’에 나온다. 항사사에는 혜공이 살고 있었는데, 원효가 종종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어느 날 두 스님은 시내에서 함께 물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누었는데, 이때 누군가가 했다는 말이 여시오어(汝屍吾魚)다. ‘너는 똥을 누었을 뿐이지만 나는 물고기로 되돌려 놓았다’쯤의 뜻이다. ‘도통하려면 수행을 더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오어사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혜공은 원효보다 한 세대쯤 앞선 인물이다. 일연은 ‘어떤 사람은 여시오어가 원효의 말이라 하지만 이는 잘못’이라고 했다. 훗날의 원효가 이룬 무애(無碍)의 경지가 어떤 수행 과정을 거친 결과인지 짐작하게 한다. ‘삼국유사’에는 원효에게 가르침을 준 고승이 여럿 등장하는데, 사복 또한 그렇다. 원효가 고선사 시절 사복의 어머니를 장사 지내며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했다. 사복은 “말이 너무 번거롭다”면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괴로우니라”로 고쳐 주었다고 한다. 경주는 자주 찾게 되는데, 시내에서 기림사나 감은사터, 대왕암으로 방향을 잡아 토함산을 넘어갈 때면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난다. 원효가 만년을 보낸 절 고선사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고선사 주변에서는 1912년 서당화상비 조각도 발견됐다. 통일신라시대 원효를 추모하고자 세운 비석이다. 서당은 원효의 어린 시절 이름이었다. 고선사 터는 1970년대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겼다. 탑은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됐고, 수몰이 결정되자 1975년 절터 발굴조사도 벌였으니 이 절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고선사 탑과 귀부, 금당과 회랑의 하부구조를 이루었을 초석과 장대석은 국립경주박물관 뒷마당으로 옮겨졌다. 절터는 동서 100m, 남북 80m에 이른다. 회랑을 두른 금당과 역시 회랑을 두른 탑이 나란한 절집은 우리나라에 고선사가 유일하다. 토함산 중턱, 정신문화에 한 획을 그은 원효의 흔적이 뚜렷한 폐사지에 9m가 넘는 고선사탑이 우뚝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고선사의 처지는 사연댐을 지은 뒤 물에 잠기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떠올리게 한다. 울산시는 올해 10대 과제의 하나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및 세계유산 등재’를 선정했다고 한다. 이제 지역에서도 제대로 된 보존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선사도 새로운 보존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본다. 현재 덕동댐이 감당하고 있는 물 수요의 대안을 마련하고 고선사를 제자리에 돌려주는 것이 최선이다. 덕동댐 주변에 절터를 복원하는 방법도 차선은 된다. 수몰 당시 절터 발굴조사는 중요한 지역 일부에서만 이뤄졌다. 절터의 제 모습을 알려면 일정 기간 덕동댐의 물을 빼고 사역 전체를 발굴조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조금 과장하면, 지금 경주에는 무엇을 해도 좋을 만큼의 문화재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경주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도 큰 몫을 해낼 고선사 터의 복원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역사 가르치는 용산… 세대별 맞춤 강좌 운영

    서울 용산구는 청소년·청년·중장년별 맞춤형 역사 강좌를 운영한다고 23일 밝혔다. 먼저 다음달 18~27일 겨울방학 청소년 역사 특강 ‘고고 용산 속으로’ 1기 강좌를 운영한다. 교육은 총 4회차로 나눠져 구 평생학습관,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백범김구기념관과 효창공원에서 각각 진행된다. 강의 주제는 초중등 교과과정과 연계해 ▲나라는 잃었지만 희망은 잃지 않았다 ▲온 나라에 퍼진 ‘대한독립만세’ ▲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삶 ▲백범이 꿈꾸던 나라로 정했다. 실내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탐방을 병행해 청소년들이 역사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구성했다. 현장 탐방은 두 개로 나눠 소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 근대역사카드게임, 유관순 열사 추모비 헌화와 자원봉사 시간이 인정되는 효창공원 환경정화 활동도 벌인다. 모집 대상은 지난해 기준 초등학교 4~6학년에 해당하는 청소년과 학부모 25팀이다. 수강료는 5000원이고, 구 교육종합포털 사이트에서 신청하면 된다. 앞으로 청년 대상 3·1절과 광복절에 열리는 ‘역사를 통해 미래를 꿈꾸다’와 중장년층 대상 용산 역사 활동가 양성 과정도 운영할 예정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역사학교 운영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지역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2차대전 참전 108세 할머니 앤 롭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2차대전 참전 108세 할머니 앤 롭슨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영국군 출신 가운데 가장 오래 생존한 여성으로 여겨지는 앤 롭슨이 10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고인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BBC가 23일 보도했다. 다음달 말 추모식이 열리길 희망하고 있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2018년 성탄 전야에 덤펌린에 주둔하고 있는 154 왕실 병참 대대에 초대돼 자신의 나이 ‘107’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제식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병사들과 함께 보여줄 정도로 정정했다. 1911년 9월 14일 스코티시 보더스의 던스에서 태어나 글래디스 앤 로건 맥와트로 불리던 그는 원래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나중에 교사가 됐다. 1942년 여군 의용대(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해 체력훈련 조교로 소령까지 진급했다. 그는 2018년 12월 인터뷰를 통해 “전쟁이 시작된 뒤 곧바로 참전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한 몇 년 있다가 했다”며 “군에서도 이제 막 여성들의 체력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등병으로 입대해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 있는 장교가 됐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재빨리 장교가 됐다. 첫 근무지는 런던 지구였다. 공습이 여전했고 ‘두들버그(doodlebug, 런던 시민들이 독일군의 V1 로켓에 붙인 별명)’가 떨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봤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창문 밖으로 쳐다봤다. 번쩍하자 갑자기 몸을 던져 엎드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2년을 더 복무하다 전역해 런던에 있는 애브리 힐 사범대학에서 일했다. 1953년 결혼해 뉴캐슬로 이사 와 롱벤튼 중등학교 교감을 맡았다. 남편 잭이 1972년 먼저 세상을 떠나자 세인트 앤드루스로 옮겨왔다가 다시 에딘버러 요양원으로 옮겼다. 롭슨의 여조카 캐서린 트로터는 이모가 전쟁 경험을 얘기하며 매우 행복해 했다면서도 “결코 뻐기지 않았다”고 했다. 힘을 북돋는 친척이었다며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았지만 한 번도 불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머 감각도 유지하고 있었고, 내 생각에 그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영국 왕립여군단협회(WRACA)는 생전의 롭슨과 자선 활동을 많이 펼친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애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이슈있슈] 김학철이 쏘아올린 장례식장 먹방 논란

    [이슈있슈] 김학철이 쏘아올린 장례식장 먹방 논란

    “내용이 중요” vs “장소 부적절” 드라마 ‘태조 왕건’ ‘야인시대’ 등에 출연한 배우 김학철(61)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장례식장에서 유튜브 방송을 촬영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김학철은 지난 21일 ‘김학철 TV’에 ‘#신격호회장장례식장 #롯데 #신격호문학청년’ 이라는 제목으로 7분 51초 영상을 올렸다. 김학철은 장례식장에서 북엇국을 먹으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학철은 카메라를 향해 그릇을 들어 보이며 “보이십니까? 소박하고 정갈한 북엇국이다. 호화롭지 않다”고 소개한 뒤 맥주를 마셨다. 김학철은 고인에 대해 “재계의 거물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문학성이 있는 CEO였다”라며 연예계를 대표해 조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 밖에 고인과 관련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던 김학철은 최근 모 설렁탕집에서 찍은 먹방 영상이 조회수 30만을 넘었다며 1인 미디어의 위력에 놀랐다고 했다. 중간 중간 고인에 대한 추모도 잊지 않았다. 김학철은 “한 노인의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면서 “신격호 회장님은 동심을 잃지 않았다. 문학 청년 기질을 잃지 않았다. 사업이란 게 돈만을 추구해선 재미가 없다. 문화가 같이 가줘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자영업자가 부자가 되는 날까지 김학철의 먹방쇼는 계속된다”며 영상을 껐다. 이 영상은 23일 기준 3만 2000명이 시청했다. 김학철은 장례식장 촬영이 부적절하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경제계의 신화같은 거목을 조문한 자리를 담았다. 2, 3초 보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먹방’을 찍으려면 ‘먹방쇼’라고 붙였을 것이다. 악플도 관심”이라고 뉴스1에 해명했다. 일부는 댓글 등을 통해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른들의 대화다”, “영상을 보면 논란이 될 수 없다”라고 김학철을 옹호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례식장에서 개인 촬영은 예의가 아니다” “내용을 떠나 어떻게 문제가 안 된다고 할 수 있냐”라며 이를 반박하는 의견을 나타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유용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장, 2020년 동작 지역 예산 2143억 확정

    유용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장, 2020년 동작 지역 예산 2143억 확정

    사당종합체육관 옆 부지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물놀이장이 조성되고, 흑석동에는 남산도서관 절반 규모의 공공도서관이 만들어진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유용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동작4)은 제290회 서울시의회 정례회에서 동작구 관련 2020년 예산으로 서울시 예산 1957억 원과 서울시교육청 예산 186억 원 총 2143억 원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유 위원장에 따르면, 이번 예산 편성 중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동작역에서 여의나루역에 이르는 한강변 보행로 조성이다. 해당 구간은 그동안 좁고 어두워 낙후된 공간으로 방치돼 있어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했다. 서울시는 이에 보행접근성을 높이고 부족했던 녹지, 문화시설 등을 확충할 계획이다. 실제 2019년 동작구 1인당 평균 공원공급면적은 11.50㎡로 서울시 평균인 17.23㎡에 미치지 못해 공원이 부족한 지역이다. 시는 총사업비 84억 7000만 원을 투입해 올 7월 착공하고 내년 6월 준공할 계획이다. 올해 편성된 주요 동작구 관련 사업 예산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사회교육복지 분야에 ▲대방동 지하벙커를 활용한 청소년문화의 집 건립 23억 ▲노후어린이집 시설 보강 10억 ▲거점형 키움센터 설치 4억 등 총 19개 사업에 약 314억 원이 반영됐다. 환경보전 분야는 ▲현충근린공원 내 물놀이장 조성을 포함한 시 공원 유지관리 11억 ▲서달산 등산로 정비 2억 ▲현충, 상도, 까치산공원 등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보상사업 273억 ▲현충근린공원 배드민턴장 정비 등 12억 ▲사당, 이목 배수분구 하수관로 종합정비 83억 등 46개 사업에 약 503억 원이 편성됐다. 도로교통 분야는 ▲사당로 확장 83억 ▲노들 남북고가차도 철거 112억 ▲노들로 구조개선(대방~본동 일대) ▲노들 남북고가차도 철거 112억 ▲어린이 보호구역 개선 2억 ▲지하철역 승강편의시설 설치(사당역 8번, 남성역 2번, 장승배기역 5번) 25억 ▲지하철역 화장실 확충(사당, 숭실대입구, 신대방삼거리, 상도, 남성역) 등 10개 사업에 640억 원이 반영됐다. 주택도시 및 도시안전관리 분야는 ▲동작역에서 노들역에 이르는 한강변 보행네트워크 조성 25억 ▲백년다리 조성(한강대교 남단 보행교) 93억, ▲임대주택 시설투자비(흑석청호, 한강 등) 100억 ▲흑석 빗물펌프장 이전 및 용량증대 사업 40억 등 25개 사업에 435억 원이 편성됐다. 산업경쟁력제고 및 문화관광진흥 분야는 ▲남성사계시장 주차장 건립 4억 ▲중앙대 캠퍼스타운 추진(흑석동) 17억 ▲흑석동 복합도서관 건립 17억▲사육신 추모대제 등 지원 2억 등 12개 사업에 64억 원이 반영됐다. 교육 분야는 ▲은로초 필로티 천장 마감재 개선 4800만 원 ▲흑석초 조회대 신축 및 교사외부도장 9700만 원 ▲동작중 친환경 운동장 조성 2억 6000만 원 ▲중대부중 LED 및 천정재 교체 2억 7000만 원 등 총 148개 사업에 약 186억 원이 지원된다. 유 위원장은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동작구청(이창우 구청장)과 강희용 더불어민주당 동작을 지역위원장, 김병기 국회의원을 비롯한 4명의 시의원(김정환, 김경우, 박기열, 유용)이 함께 노력한 결과 좋은 성과가 나왔다”라며 “앞으로도 더불어 잘사는 동작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두 아들 배웅 받으며… 123층 롯데타워서 마지막 길 떠나

    두 아들 배웅 받으며… 123층 롯데타워서 마지막 길 떠나

    신동주 “고객과의 약속 위해 평생 헌신” 신동빈 “조국 발전에 기여, 실천하신 분” 서미경 모녀·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 불참 “오늘의 롯데가 있기까지 아버지가 흘린 땀과 열정을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지난 19일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신 명예회장의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던 이곳에 롯데그룹 임직원 1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아들 정열씨가 영정사진을,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유열씨가 위패를 들고 걸어 나오며 영결식이 시작됐다. 부인 시게미츠 하쓰코 여사와 신동주·동빈 회장, 장녀 신영자 롯데복재재단 이사장 등 유가족이 영정사진을 뒤따랐다. 신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였던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도 불참했다. 명예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홍구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고인을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선각자’라고 애도했다. 이어 “(고인은) 사업을 일으킨 매 순간 나라 경제를 생각하고 우리 국민의 삶을 생각한 분이었다”며 “당신의 큰 뜻이 널리 퍼지도록 남은 이들이 더 많이 힘쓰겠다. 이제는 무거운 짐 털어내시고 평안을 누리라“고 명복을 기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해외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으나 사회자가 대독한 추도문을 통해 “우리 삶이 어두웠던 시절 경제 성장의 앞날을 밝혀주었던 큰 별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신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신동주 회장은 “아버님은 자신의 분신인 롯데그룹 직원과 롯데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힘써오셨다”며 “저희 가족들은 앞으로 선친의 발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는 우리나라를 많이 사랑하셨다. 타지에서 많은 고난과 역경 끝에 성공을 거두시고 조국을 먼저 떠올렸고, 기업이 조국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평생 실천했다”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기업인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배웠으며 역경과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아버지의 태산 같은 열정을 떠올리며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 운구 차량은 롯데월드타워를 한 바퀴 돈 뒤 장지인 울산 울주군 선영으로 떠났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전태수 2주기-유니 13주기…우울증이 앗아간 스타들

    전태수 2주기-유니 13주기…우울증이 앗아간 스타들

    배우 전태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됐다. 가수 유니도 13년 전 같은 날짜에 생을 마감했다. 故 전태수는 2년 전인 지난 2018년 1월 21일 34세의 짧은 일기를 마감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전태수는 평소 우울 증세로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다. 복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를 해오던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이가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전태수는 지난 2007년 투썸 뮤직비디오 ‘잘 지내나요’로 연예계에 데뷔, 하지원의 동생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2007년 OCN ‘키드갱’을 시작으로 SBS ‘사랑하기 좋은 날’ ‘왕과 나’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은 그는 KBS 2TV ‘성균관 스캔들’,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 SBS ‘괜찮아 아빠 딸’, MBN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 JTBC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MBC ‘제왕의 딸 수백향’ 등에 출연했다. 하지원은 동생을 떠난 보낸 뒤 “아름다운 별. 그 별이 한없이 빛을 발하는 세상에 태어나기를. 사랑하는 나의 별. 그 별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별이 되기를. 사랑한다”라는 글로 동생을 추모했다. 한편 이날은 유니의 13주기이기도 하다. 유니는 지난 2007년 1월 21일, 인천광역시 서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25세. 유니는 1996년 KBS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드라마 ‘TV소설 은아의 뜰’, ‘납량특선 8부작’, ‘용의 눈물’, ‘왕과 비’, 영화 ‘세븐틴’, ‘질주’ 등에 출연했다. 이후 2003년 6월 솔로 가수로 변신해 1집 ‘가’를 발표했고, 2집 ‘콜콜콜’을 내놨다. 2006년 1월에는 일본에서 정식 데뷔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3집 발매를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은 악성 댓글로 인한 우울증으로 전해졌다. 당시 유니의 소속사 측은 “유니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 때문에 유니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밝혔고, 유니 어머니 또한 “일찍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마음도 여리고 내성적인 아이라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겉으로는 강한 척하다 보니 우울증이 심해졌던 것 같다”며 애통해했다. 우울증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스타들의 비극은 계속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가수 설리(25)와 구하라(28)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긴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부고] 우성목씨 모친상, 오재환씨 모친상, 이강주씨 모친상

    ●우성훈(청구고등학교 교장)·우무영(기아자동차[000270] 영봉대리점 대표)·우성목(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국 교수)·우성규(대명GEC 팀장) 씨 모친상, 김창규(전 안동병원 과장) 장모상, 20일, 대구 모레아장례예식장 103호실, 발인 22일 오전 7시. 053-801-9999 ●오재환(한국예탁결제원 부산업무부 수석업무역)씨 모친상, 20일, 충남 아산충무병원 국화원 특실, 발인 22일 오전 7시, 장지 천안추모공원. 041-541-4448 ●이강주(포천 예원플라자 회장)씨 모친상, 20일 오전, 경기도립의료원 포천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2일 오전 10시 30분. 031-539-9446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이름 난 ‘주먹’이 올레길 ‘산파’로, 서동철 시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이름 난 ‘주먹’이 올레길 ‘산파’로, 서동철 시인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제주 조직폭력 ‘땅벌파’ 두목이었으나 제주 올레길의 숨은 산파로 변신한 시인 서동철 씨가 이승의 강을 건넜다. 향년 61.  섬 여행가 강제윤 시인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2007년 친누나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이 올레 길을 내겠다고 귀향하자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올레길을 만드는 탐사대장으로 활동했던 서씨가 세상을 떠나 전날 제주 빈소에 다녀왔다고 알렸다. 고인은 14일 오후 제주 서귀포의료원에서 숨을 거뒀고 18일 오전 발인했다. 중앙 일간지 가운데 딱 하나, 한겨레신문만 그의 부음을 전했다. 보고 들은 게 적은 기자는 19일 저녁에야 부음을 접했다.  어줍잖게 서 시인의 삶을 요약하기보다 강 시인의 글을 옮긴다.  ‘또 한 생이 레테의 강을 건넜다. 가파도에 살던 나의 형, 서동철 형이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한때 제주 조폭 두목이었다. 세상에 좋은 조폭은 없다. 그래서 조폭 시절의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개심한 뒤 그는 제주를 위해 또 세상을 위해 아주 귀한 일을 했다. 제주 올레를 만든 것이다. 세상은 서명숙 이사장만을 기억하지만 실상 그는 서 이사장과 함께 제주 올레의 공동 창시자다. 단언컨데 그가 없었다면 제주올레는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서이사장도 인정한다.  서동철 형은 서 이사장이 처음 제주에 걷기 길을 만들기로 했을 때 그 뜻을 이해하고 함께한 첫 번째 동지였다. 그는 제주 올레 초대 탐사대장으로 서 이사장과 함께 올레길을 개척했다. 다들 가망없는 시도라고 반대할 때 그만 적극 찬성하며 서 이사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의 적극적인 노력이 아니었다면 제주올레가 마을길들을 통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드센 마을청년회원들을 밤낮으로 만나 술까지 사주며 설득한 것은 그였다. 어둠을 위해 쓰던 힘을, 빛을 위해 썼고 그러자 그 힘은 더욱 강력했다. 제주올레의 핵심은 길 그 자체다. 길을 내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가 그 물꼬를 터주었다. 제주도 지사도, 공무원들도 설득할 수 없는 이들을 그가 설득했다. 서 이사장도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했다. 그가 없었다면 제주올레도 없었을 것이다. 제주 올레와 서명숙 이사장이 세상의 조명을 받을 때 그는 뒤에 물러나 숨어 살았다.  자신의 과거가 누이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이주빈 아우와 제주로 건너가서 서명숙 누이와 함께 그를 추모하고 돌아왔다. 봄이 오면 그와 같이 도모하기로 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끝내 봄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누군가 겨울을 사는 덕에 누군가는 봄을 산다. 형이 영원한 안식의 봄이 돼서 산하에 깃들기를 기원한다.’  서 시인은 2012년 가파도에서 길을 내다 가장 심하게 반대한 51년 물질의 해녀 강수자 씨를 만나 여섯 번째로 결혼해 가파도에서 죽 투병해왔다. 강씨는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 ‘숨비’ 주인공이다. 마침 병석에 누운 그녀를 살뜰히 보살피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듬해 12월 한국 국보문학 64기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1985년 다른 폭력조직 선배의 밀고로 악명 높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그는 이북 출신 아버지에 제주 출신 어머니, 유신 반대에 앞장 선 누이 등 정권이 간첩으로 몰기에 최상의 인적 자원을 갖고 있었다. 마침 사상이 의심스러운 재일교포와 만날 참이었다. 해서 주전자 안에 유리병 조각을 넣어 던졌다. 함께 연행돼 조사받던 조직의 부하들까지 자해하겠다고 수사관들을 겁박해 어머니를 면회해 재일교포 에게 피신하라는 메모를 건넸다.  전기고문 끝에 그는 간첩이었다고 거짓 실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형사가 쓴 진술 조서를 신발 밑창에 숨겼다. 교도소는 물론 검찰에 가도 고문 끝에 거짓 자백을 했음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정에 가서야 원본은 따로 있고 자신은 거짓 자백을 남긴 것이라며 형사가 쓴 조서를 증거 보전 신청했다. 그렇게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아는 것이 많았다. 순전히 ‘꼬붕’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국립대학’(교도소)에서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어 제주의 역사, 사투리, 희귀한 동식물 이름까지 뚜르르 뀄다. 제주 목사가 섬을 한 바퀴 도는 탐라 순력을 할 때 시흥(始興)에서 시작해 종달(終達)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 올레의 시작점 1코스로 누나에게 추천했다. 두 마을은 해녀의 바다 구역과 농지를 두고 오랜 세월 반목해온 사이였으니, 평화를 지향하는 ‘올레 정신’과도 맞아떨어졌다.  고인은 올레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난데 없이 끝말 잇기를 하자며 ‘제주’를 외치곤 했다. 제주-주전자-자리돔-돔구장-장소-소름 하면 끝이었다. ‘름’ 자로 시작하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강제윤 시인은 올레길에서 누군가 불쑥 나타나 끝말 잇기를 하자고 하면 틀림없이 서동철 시인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를 만날 일은 없게 됐다.  그가 어떻게 생과 작별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명복을 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호주 산불에 희생된 동물들 추모…해변에 ‘거대 코알라’ 등장

    호주 산불에 희생된 동물들 추모…해변에 ‘거대 코알라’ 등장

    호주의 한 예술가가 최근 산불로 희생된 수많은 야생동물을 추모하기 위해 모래사장에 특별한 작품을 남겨 관심을 끌고 있다. 18일 데일리메일 호주판에 따르면, 최근 빅토리아주 질롱에 있는 한 해변에는 어느 한 예술가가 거대한 코알라 그림을 남겨놨다. 이는 코알라 한 마리가 산불 때문에 불에 타고 있는 나무 한 그루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브리드 어 블루 오션’(Breathe a Blue Oce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익명의 예술가가 그린 것이다. 이번 그림처럼 지금까지 모래 사장 위에만 언젠가 지워지는 그림을 그려온 이 예술가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도구를 제외하고는 로프 같은 어떤 보조 기구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지난 13일 그는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해당 작품을 하늘 위에서 촬영한 사진 두 장을 게시하고, 이는 동물 생태의 엄청난 손실에 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호주세계자연기금(WWF Australia)에 따르면, 지금까지 호주에서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계속된 대규모 산불로 인해 야생동물 약 10억 마리가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행동이 느린 코알라 수천 마리가 불길에 휩싸여 희생됐는 데 그 피해는 캥거루 섬에 사는 개체들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알라는 이번 산불 피해 이전에도 서식지 파괴와 삼림 벌채, 교통 사고 그리고 맹견 피해 등으로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간 개체 수가 3분의 1로 급감했다. 호주 코알라재단은 코알라 개체 수가 현재 예측대로 5만 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면 기능상 멸종 상태로 돌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들 유대류가 인간의 도움 없이는 독자적으로 먹이를 찾거나 자연 속에서 번식하며 생존할 수 없는 상태임을 뜻한다. 한편 세계자연기금(WWF) 호주지부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르면 2050년쯤 코알라가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사진=브리드 어 블루 오션/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세월호 비하 논란’ 김기수 불기소…‘세월호 행사 방해’ 한국당도

    ‘세월호 비하 논란’ 김기수 불기소…‘세월호 행사 방해’ 한국당도

    경찰 “동시 집회 상황, 고의 방해 보기 어려워”고소인 “유가족 모욕했는데…‘봐주기’ 수사”세월호 참사와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했다며 고소·고발당한 김기수 전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비상임위원이 혐의없음을 의미하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또 ‘세월호 촛물문화제 방해’ 혐의로 고발 당한 자유한국당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8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등이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김 전 특조위원을 고소·고발한 사건을 수사한 끝에 지난달 17일 불기소 의견(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가족협의회 등 4개 시민단체는 김 전 특조위원이 운영하는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프리덤뉴스’가 세월호 참사 등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서경찰서에서 수사하도록 내려보냈다. 한국당은 지난해 8월 변호사인 김 전 특조위원을 추천했다. 당시 김 전 특조위원은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 ‘프리덤 뉴스’의 대표로 있으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 ‘여전히 세월호 타령, 이제 그만하라’ 등 내용의 영상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됐다.김 전 특조위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발로 지난 13일 사퇴했다. 김 전 특조위원은 사퇴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 추천 특조위원이 공석이 된 지 반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나를 특조위원으로 임명했다”면서 “그러나 대통령이 임명한 합법적인 특조위원의 회의 참석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사태가 3차례나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대통령의 신임 행위까지 송두리째 무시할 수 있는 특조위는 법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냐”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문 대통령의 임명장도 함께 반납했다. 김 전 특조위원은 사퇴 직후 한국당에 입당해 대구 동구갑 예비후보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지난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촛불문화제를 방해했다며 시민단체가 고소한 사건을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등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집회방해금지) 혐의로 한국당을 고소한 사건을 수사한 끝에 최근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4·16연대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민생경제연구소는 등은 지난해 5월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열린 ‘5·25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한국당 측이 방해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당시 한국당은 촛불문화제 장소와 인접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현 정부 규탄집회를 열었는데,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 스피커 출력을 높게 하는 등 집회 진행에 피해를 줬다고 이들 단체는 지적했다. 4·16연대 등은 고소장에서 “한국당은 세월호 촛불집회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집회를 했는데 이 집회에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패륜적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경찰은 당시 가까운 장소에서 양측 집회가 동시에 열린 점을 고려하면 한국당이 고의로 집회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인 측은 당시 한국당의 행위에 따른 피해가 명확했음에도 수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고소인 측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국당 측의 스피커 출력이 너무 크고 지속적이었던 탓에 무대 위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고, 불편을 넘어 고막의 고통까지 호소한 사람이 많았다”면서 “정치권을 의식해 불공정한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박완서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작가의 말’

    박완서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작가의 말’

    박완서(1931~2011) 작가의 타계 9주기를 추모하며 그가 생전에 쓴 ‘작가의 말’을 모은 책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작가정신)은 말 그대로 박완서의 모든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소설, 산문 , 동화의 서문과 발문에 실린 ‘작가의 말’ 67편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소회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그에 대한 고찰을 솔직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그가 남긴 ‘작가의 말’에서 두드러지는 한 가지는 시대의 변화를 목격한 자로서의 책임감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온 작가는 전력을 다해 시대를 증언하고자 하는 냉철한 목격자였다. 동시에 온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았던 따듯한 서술자이기도 했다. “6·25의 기억만은 좀처럼 원거리로 물러나주지 않는다. 아직도 부스럼 딱지처럼 붙이고 산다”라고 얘기하면서도 “나의 부스럼 딱지가 개인적인 질병이 아닌, 한 시대의 상흔”(‘목마른 계절’(1978) 후기)이라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경유하는 식이다. 소설집 ‘꽃을 찾아서’(1996)에서는 1985년에 계간 ‘창작과비평’이 폐간되면서 ‘창작사’란 출판사 이름으로 나왔다가 1996년에 다시 ‘창작과비평사’로 펴내게 된 사연을 적었다. 그는 “야만적인 시절”에 대한 곡절을 풀어내며 창작의 자유가 그토록 ‘대견’한 것인 줄 몰랐던 자신의 안이함을 반성한다. 그 밖에 새마을운동, 급격한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이식, 전체주의,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세상에의 관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대문호에게도 예외없었던, 창작에의 고통을 다룬 구절도 눈에 띈다. “써지진 않는데 원고 독촉은 빗발칠 때는 아유, 지긋지긋해, 소리가 입에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이 노릇을 안 하나, 쓰는 노릇에서 놓여날 것을 상상만 해도 황홀한 해방감을 맛볼 수가 있었으니까요.”(‘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책 뒤에) 마감에의 압박은 그에게도 여지없이 몰아쳤다. 그러나 마흔 살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데뷔, 세상을 뜨기 전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를 구원하는 것도 역시 문학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뜻하지 않게 닥쳐온 무서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겨우 발견한 출구도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이어지는 작가의 고백이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나야 하고, 자기가 지닌 것 중 가장 괴로운 것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고, 자신을 극복하고 갱신해야 하는 일”이며, “그 길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지나가신 선생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는 최은영 작가의 말처럼, 문학으로 한 시절을 살다간 이의 생생한 육성이 오롯이 담겼다. 208쪽. 1만 4000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레슬러 출신 배우 ‘더 록’의 부친 로키 존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레슬러 출신 배우 ‘더 록’의 부친 로키 존슨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레슬러 출신의 할리우드 액션 배우 드웨인 ‘더 록’ 존슨의 부친이며 전직 프로 레슬러 로키 존슨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세계 레슬링 엔터테인먼트(WWE)는 15일(이하 현지시간) 본명이 웨이드 더글러스 볼스인 고인이 스러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영국 BBC가 16일 전했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대 WWE의 인기를 끌어올리며 ‘솔 맨(Soul Man)’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최초의 흑인 태그 팀으로 WWE 우승을 차지했던 레슬러로도 기록된다. 1991년 은퇴한 뒤 아들 드웨인을 훈련시켜 WWE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육성했다. 드웨인은 부친이 WWE 명예의전당에 헌액됐을 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영원히 추앙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4년 8월 24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앰허스트에서 자란 고인은 10대 때 토론토로 옮겨와 곧바로 레슬링을 시작했다. 10대 시절 복서로 훈련 받으며 무함마드 알리, 조지 포먼 등과 스파링을 한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레슬링을 직업으로 택해 1960년대 중반 전국 레슬링 연맹(NWA)에 가입했다. 이 때 얻은 링네임이 ‘로키 존슨’이었다. NWA에 18년을 몸 담으며 태그 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WWE에 합류하면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WWE는 성명을 통해 “토니 아틀라스와 ‘솔 패트롤’ 팀을 결성하며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두 남자는 1983년 12월 10일 ‘와일드 사모안스’를 물리치며 WWE 역사에 처음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태그 팀 우승을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마치 중력을 부정하는 듯 높이 날아 날리는 드롭킥이 팬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2017년 한니발 TV 인터뷰를 통해 고인은 선수로 뛰며 늘 인종차별 공격을 받았지만 링에서의 자리를 “결코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 고집대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남부 사람들은 그 옛날 노예들에게 했던 대로 TV에서 내가 채찍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난 ‘아니, 난 선수로서 왔고 선수로 떠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은 날 존중해줬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수많은 현역, 옛 레슬러들이 추모의 뜻을 잇따라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트리플 H, 맷 하디, 윌리엄 리걸, 디본 두들리 등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국회서 발목 잡힌 ‘가습기 특별법’ 개정안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국회서 발목 잡힌 ‘가습기 특별법’ 개정안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참위는 16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개정안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길이 열리는 법안”이라면서 “국회는 20대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참위가 언급한 특별법(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자의 입증 책임 완화, 정부의 추모사업 예산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사위원들의 반대가 없었는데 자유한국당 의원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법무부, 기획재정부 등 유관기관의 반대 의견이 제출됐다면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같은 당의 정점식 의원도 개정안을 소위원회로 돌려보내자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릎까지 꿇으면서 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했다. 사참위는 “법안심사 소위원회로 넘기지 않고 전체회의에 한 차례만 계류시켜 차기 회의에서는 처리하겠다는 법사위원장의 발언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회가 여야 대립 국면이고 사실상 총선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과연 특별법 개정안이 무사히 처리될지 우려가 훨씬 큰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법안 내용에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은 피해자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노출)과 피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기업(사업자)이 증명하지 못하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로 인정하고,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자료가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에게 있어 증명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는 법원에 그 자료의 제출을 명령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이에 사참위는 “법무부의 반대 의견은 사실상 가해기업의 개정안 반대 입장과 차이가 없다”면서 “법무부가 과연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발생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한 기초지식은 있는지,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는 있는지 의심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는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구제급여를 추가로 지원할 수 없고,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해 추모를 정부가 지원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사참위는 “(현재 피해자에게 지급되고 있는) 요양생활수당은 요양(치료)기간 동안의 소득활동 감소, 휴업 손해 등에 대한 급여이고, (개정안에 포함된) 장해급여는 건강 기능 상실, 노동 능력 상실 등에 대한 급여”라면서 “기재부의 주장과 달리 둘은 성격이 전혀 다른 급여”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특별법을 반대한 전력이 있다.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국회의 추경예산(추가경정예산안)을 전액 삭감하고, 피해 구제 관련법 제정 반대를 주도해 법 제정을 무산시킨 부처”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도 참석했다. 피해자 방성훈씨는 “정부와 면담하는 과정 과정에서 벽을 확인했다”면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법을 꼭 통과시켜 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조오섭씨도 “10여년 만에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지연을 시키고 통과를 못 시키냐”면서 “우리는 호소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고 울먹였다.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위안 지폐 실린 첫 여성 트랙터 운전자 량준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위안 지폐 실린 첫 여성 트랙터 운전자 량준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중국 최초의 여성 트랙터 운전자로 1위안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인민 영웅’ 예우를 받은 량준이 아흔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15일 전했다. 고인은 여러 질환으로 힘겨워했으며 의식이 오락가락해 침대에만 누워 지냈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아들 왕얀빙은 하얼빈 뉴스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13일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아들은 “어머니가 잘 이겨냈다. 본인은 중국 최초의 트랙터 운전자란 사실을 말할 때 항상 가장 행복해 하셨다”고 전했다. 량준은 1930년 헤이룽장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대부분을 농장 돕는 일에 쓰면서 시골 학교에서 공부했다. 1948년 지역 학교가 트랙터 운전자 교육 과정을 개설하자 그녀는 기회를 움켜잡았다. 한 학급에 70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량준이 유일한 여성이었다. 결국 어렵게 훈련 과정을 이수한 뒤 여성으로는 처음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일년 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농업 기계에 대한 더욱 많은 것을 배우도록 베이징의 학교에 파견됐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그녀는 “누구도 나 만큼 트랙터 운전을 잘할 수 없었다. 이런 삶을 살아온 데 후회도 없다”고 털어놓았다.공부를 마치고 헤이룽장 성에 돌아와 농업기계연구소에 취업했다. 1962년 트랙터를 모는 그녀의 모습이 1위안 지폐에 새겨졌다. 이들 지폐 도안은 위안화로 세 번째 도안이었으며 1962년 4월 20일 발행돼 2000년 7월 1일까지 사용됐다. 38년 동안 유통돼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된 위안화로 평가된다. 그만큼 인쇄 품질이 좋았다. 공산당으로선 특히 여성 인력을 사회주의 건설에 동원하기 위해 그의 이미지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녀 얘기는 교과서에도 실렸고 수많은 여성들이 트랙터 운전을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그녀는 하얼빈시 산하 농업기계 부서의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다 1990년대 은퇴했다. 소셜미디어 웨이보 등에선 량준을 추모하는 이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이용자는 “그녀는 남자들 못지 않게 여자들도 뭐든지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적었다. 어떤 이는 “마오쩌둥이 갈파한 대로 하늘 아래 절반을 자처했던 이 여인과 작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해 그 세대의 영웅이 됐다. 안녕 량준, 잘 가요!”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형주 “세월호 추모곡 발표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임형주 “세월호 추모곡 발표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과거 세월호 참사 추모곡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13일 임형주는 SBS plus 예능프로그램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추모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발표했다. 그 일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임형주는 8명의 전현직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를 만큼 국가 행사에 자주 불렸던 음악인이었지만,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당시 모든 스케줄이 중단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임형주는 “당시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갔는데 본선무대 녹화 전날, 방송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녹화 전날에, 그것도 본선무대 직전에 취소되는 경우가 어디 있나. 납득이 안갔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이건 말이 안 된다 싶어 이유를 물었다. 처음에는 말을 못하다가 나중에 말을 해줬는데, 청와대에서 ‘임형주를 빼면 좋겠다’라는 전화가 왔다더라.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출연이 불발된 이유에 외압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임형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추모한 거 뿐인데 내가 무슨 큰 죄를 졌다고. 그 후로 방송 섭외가 뚝 끊겼고, 잡혀있던 스케줄도 다 취소가 됐다. 국가행사 섭외도 끊겼다”며 “주위에서 다들 그 노래 때문이 아니겠냐고 했다”라고 말했다. 사진=SBS plus ‘밥은 먹고 다니냐’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란 유일 여자 올림픽 메달리스트 알리자데 “위선의 나라 망명”

    이란 유일 여자 올림픽 메달리스트 알리자데 “위선의 나라 망명”

    이란 여자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올림픽 메달을 딴 태권도 대표 키미아 알리자데(21)가 망명하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동메달을 딴 그녀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위선적이며 거짓말쟁이이며 부정의하고 겉치레뿐인” 이란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아며 이란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알리자데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네덜란드에서 훈련 중이라고 여러 보도가 있었다고 영국 BBC는 12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란 여성으로는 처음 올림픽 메달을 따 역사를 새로 썼지만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자신의 성공을 선전 도구로만 다뤘다고 소셜미디어에 공박했다. 그녀의 망명 발표는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테헤란 부근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11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실수로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시켰다고 털어놓아 반정부 시위가 이틀째 진행되는 가운데 나와 더욱 주목된다. 알리자데는 “수많은 세월 이란을 위해 뛰었지만 억압 받는 수백만 여성 가운데 한 명”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뒤 “그들이 내게 되풀이했고 명령했던 것을 무엇이든 따랐다. 그들이 내게 명한 문장을 난 하나하나 따라 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그저 도구였다”고 비난했다. 이어 정부는 그녀의 선수로서의 성공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해 먹었는데도 관리들은 자신에게 “다리를 쭉 뻗는 것은 여자의 미덕이 아니다”는 말로 모욕을 주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유럽 국가의 초청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초청을 시도했다거나 해서 망명을 결심한 것은 아니라며 어느 나라에 망명할지도 아직 밝히지 않았다. 이란인들은 지난주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반관영 ISNA 통신으로 알리자데가 네덜란드로 이주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알리자데가 오는 7월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길 희망했지만 이란 국기를 가슴에 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다른 계획은 일절 밝히지 않았는데 다만 자신은 어디에 있던 “이란의 아이”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인 압돌카림 호세인자데는 이란의 “인적 자원이 달아나게” 허용한 “능력 없는 관리들”을 규탄했다. 한편 이날 테헤란의 샤히드 베헤쉬티 대학에 학생 수백 명이 모여 여객기 격추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정부에 항의한 뒤 평화롭게 해산했다고 ISNA 통신이 전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시위 참가자들은 “그들(정부)은 우리의 적이 미국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우리의 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외쳤다. 앞서 전날 오후 테헤란, 시라즈, 이스파한 등에서 대학생 수천 명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려고 모였다. 집회는 나중에 반정부 시위로 바뀌었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규탄하는 구호도 나왔다. 롭 매케어(53) 이란 주재 영국 대사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철야 집회에 참석한 뒤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가 석방돼 영국 정부와 거센 마찰을 빚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이란의 민간 항공기 격추/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란의 민간 항공기 격추/전경하 논설위원

    이맘 호메이니. 1979년 팔레비 왕가를 몰아내고 이란을 신정(神政) 국가로 만든 이슬람혁명 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별칭이다. ‘이맘’은 이슬람교에서 영적 지도자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의 이름을 딴 테헤란 국제공항에 세계인의 시선이 쏠려 있다. 지난 8일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우크라이나 민간 항공기가 2분 만에 격추됐다. 3일 동안 격추 사실을 부인했던 이란 정부는 우크라이나, 캐나다 등이 피격임을 보여주는 각종 증거를 공개하며 압박하자 혁명수비대의 실수라고 발표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는 것을 절대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민항기가 격추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자국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격추된 사례는 처음이다. 신정국가의 ‘정예군’이 참혹한 실수의 당사자가 되면서 이란 내 추모 집회가 반정부 시위가 됐다. 범인은 유력한 데 당사자가 부인하는 민항기 격추도 있다. 2014년 7월 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말레이시아 보잉777기는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역에서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자 298명 전원이 숨졌다. 국제사고조사팀은 여객기가 반군에 제공된 러시아 미사일에 피격됐다고 했지만 러시아는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친러시아 반군이 사고 지역 접근을 막아 블랙박스 회수는커녕 제대로 된 조사도 못했다. 러시아가 범인이지만 아무 조치도 못한 민항기 격추도 있다. 바로 1983년 9월 1일 격추된 대한항공(KAL) 007편이다. 뉴욕을 떠나 서울로 오던 이 비행기는 항법장치 이상으로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사할린 부근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격추됐다. 탑승자 269명이 모두 숨졌다. 블랙박스는 찾지 못했고 그나마 일본 감청시설이 소련 전투기 교신 내용을 잡아 격추를 입증했다. 러시아는 이 여객기가 미국의 감시 비행 임무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훈련 중 발사된 미사일에 민항기가 격추된 경우도 있다. 200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출발해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가던 시베리아항공 여객기가 흑해 상공에서 우크라이나의 유도미사일에 맞아 탑승자 78명이 전원 사망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조사 결과를 받아들여 사과는 물론 배상까지 했다. 민항기 격추는 보통 국가 간 군사적 긴장이나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 등이 격화되는 과정에 발생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민간인에게 넘어간다. 민항기 격추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과 배상 등을 둘러싸고 국제적인 파장이 크고 오랫동안 지속된다. 전쟁수단이 발전하는 만큼 민항기 식별 수단은 같이 발전할 수 없는 걸까.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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