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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에 「김일성 분향소」

    ◎학생회관에/초상화·촛대·검은 리본도 발견/「사망 애도」 유인물 4종 압수/경찰,주동자·배후 검거 나서 【광주=남기창기자】 김일성사망과 관련한 「조문발언」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대학교 안에 김의 사망을 추도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되고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유인물등이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5일 상오 4시 (주)금호노조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남대에 10개중대 1천2백명의 정·사복경찰을 투입,농성근로자들의 해산과 압수수색을 하던중 제1학생회관 2층의 한 사무실에서 김일성을 추도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분향소에서 검은테가 둘러진 김일성초상화(가로25㎝×세로30㎝)와 제단으로 사용된 널빤지(가로60㎝×세로50㎝)1개,받침대로 사용된 널빤지(가로80㎝×세로30㎝) 3개,향로용 물컵 1개,향촉 2갑,촛대 2개,국화 20송이,검은 리본 20개등을 증거물로 수거했다고 말했다.이 사무실은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산하 조국통일위원회사무실로 사용돼 왔으나 올해초 남총련본부가 조선대로 옮겨가면서 비어있었다.경찰은 또 이 대학 총학생회사무실에서 「주체의 기치따라 참된 삶을 지향하는 한국민중」명의의 애도문,김사망 발표문,「남한 애국민중」의 애도행동강령등 다수의 불온유인물과 책자등을 수거,공개했다.경찰은 『분향소에는 촛대등이 놓여 있었으나 불이 켜져있지는 않았고 분향소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남대총학생회는 『남총련은 그동안 김일성 사망과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밝힌 적이 없다』면서 『대학구내에서 김일성 초상화와 촛대등이 발견됐다는 경찰의 주장은 남총련을 이적단체로 만들려는 비열한 음모』라고 밝혔다. 한편 전남대생 1백여명은 이날 경찰의 학내진입이 학교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며 총장실과 교무처장실에 난입,유리창 수백장을 깨고 집기를 부수는등 난동을 부렸다. ◎보안법 적용키로 경찰청은 15일 앞으로 학생들이 대학에 김일성의 분향소를 설치하거나 애도하는 유인물 및 추모행사를 가질 경우 즉시 공권력을 투입,주동자와 배후세력을 검거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경찰은 전남대 교내 김일성분향소 설치에 참여한 학생들을 모두 검거,사법처리하기로 했다.
  • 「애도 수위」 고심하는 한총련/김학준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요즘 한총련 관계자들은 8일 사망한 김일성에 대한 애도 표현의 수위및 방법등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개인적으로는 「통분」에 가까운 슬픔을 표시하면서도 정작 공식적인 애도는 자제하고 있다.한총련은 김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연일 회의를 열어 추모의 형식과 수위를 논의했지만 아직 공식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각 대학 총학생회별로 분향소설치등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민정서를 감안할때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각종 집회때 김의 사진을 걸어놓고 흠모에 가까운 정을 표시해온 운동권의 행태로 보아 이례적이다.학생들이 「낮은 수준」의 애도조차 망설이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 우려되기때문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고의 애국자 김일성」과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동족상잔의 원흉 김일성」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또한 일반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없는데 일반학생들 사이에 전혀 김일성추도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는 것도 자제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대해 운동권 학생들은 정부의 정보통제와 언론의 극우적인 편향보도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한총련관계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해보면 김주석이 독립운동과 조국통일에 헌신해온 뛰어난 선각자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면서 냉전논리속에 여론이 조작돼 일반인들의 김일성에대한 인식이 잘못돼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김에대한 객관적인 평가자료라는 것이 대부분 북측의 선전용자료의 수준에 그치지 못한다는데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대남방송에서나 들을 수있는 김일성우상화나 신격화의 자료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온 이들의 「객관성」운운은 아무래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내세워 수백만 동족의 살상을 서슴지않은 전쟁을 감행한 그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나 평가없이 「통일의 화신」「만고의 애국자」등의 찬양은 어떤 부연설명이 추가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없다는 건 뻔한 이치다. 보다 균형감각이 있는 역사의식을 갖고 북한을 바라보는 성숙한 지성이 아쉬운 순간이다.
  • 울부짖는 평양… “주체 공황”/김일성사망발표 사흘째 이모저모

    ◎3일새 평양주민 80% 추모행사에/북 당정 고위간부들 “김정일에 충성” 김일성 사망이 공식발표된지 하루가 지난 10일에도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김일성동상 앞에 몰려들어 애도를 표하고 있으나 하루전의 충격에 비하면 다소 평온을 되찾은 듯한 분위기며 평양시내의 시민들 왕래도 9일보다 자유롭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북한은 또 이날부터 당정간부들을 동원해 김정일에 대한 지지와 충성을 다짐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최상의 미사여구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방송을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외신들은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김일성동상에 몰려와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평양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은 AFP 북경지사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시내 곳곳에서 떼를 지어 모여든 수천,수만의 시민들이 헌화·애도하는 광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2∼3일 새에 80% 이상의 평양시민이 동상애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 평양주재 외교관은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울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사망발표의 첫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같다』고 전언.이 외교관에 따르면 평양거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애도음악이 이어지고 있으나 교통·상점등 생활의 기본서비스는 예전과 변동없이 베풀어지고 있다. 평양시내는 평온하고 시민들의 왕래도 자유로워 보안이 강화되는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북한주민들은 10일 이른 아침부터 인근에 있는 김일성동상을 찾아가 그의 사망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중앙방송은 이날 아침방송에서 『전당 전민 전군이 끝없이 경모의 마음을 안고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면서 『전체 주민들이 이 시각에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특히 김일성의 대형동상이 세워져 있는 평양 만수대 언덕에는 『어버이를 잃은 평양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동상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 중앙방송은 또 김일성동상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눈물은 비통한 슬픔만이 아니었다면서그들의 눈물은 『수령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오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완성할 맹세의 눈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 ○…북한방송들은 10일부터 북한청소년 사회단체조직인 사로청위원장 최용해와의 인터뷰를 내보낸데 이어 정무원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국가계획위원장 홍석형 등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들을 연이어 보도. 북한의 사로청 위원장 최용해는 이날 고위간부로는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우리는 오늘 이 비통한 마음과 크나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높이 받들어 나감으로써 김일성동지가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해는 또 소년단을 포함해 모두 8백만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을 『김정일동지를 최선봉에서 결사 옹호하는 총폭탄으로 준비시키겠다』고 다짐. 북한정무원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과 노동당 정치후보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 홍석형은 『김정일동지가 있는한 주체의 혁명위업은 빛나게 계승,완성될것이며 승리는 확고히 담보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 당·정 고위간부들은 김정일을 『우리의 운명이고 미래의 탁월한 수령』이라고 높이 찬양하면서 김정일을 위해 일생을 충신으로 살 것임을 강조. ○…북한방송들은 김일성 사망발표 하루가 지난 10일 밤부터 사망과 무관한 일반적인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는 등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 평양방송은 이날 밤 10시 종합보도를 통해 최근 광주에서 열린 한총련 2기 출범식 관련 소식을 전함으로써 김일성사망이후 최초로 사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을 보도.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은 또 9일 정오뉴스이후 매 시간 정각에 사망 부고를 재방송 해왔으나 10일 정오뉴스부터는 일체의 부고 보도를 하지않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김일성사망소식을 처음 보도한 9일 정오뉴스이후 부고,추모음악,국내외 반응,각국 축전만을 소개하던 보도태도에서 벗어나 북한이 의외로 신속하게 김일성사망으로 인한 충격을 수습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 「6·25」 호국영령 추모 줄이어/어제 국립묘지

    ◎해외 참전용사 등 참배 6·25전쟁 발발 44주년인 25일 서울·부산등 전국에서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려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이날 상오 10시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해외 참전용사 2천여명을 비롯,전몰군경 유가족등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향군인회가 주최하는 6·25 추모제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추모행사가 끝난뒤 버스를 타고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으로 이동, 「민족평화통일을 위한 대회」에 참석했다.
  • 재클린 케네디 추모(뉴욕에서/임춘웅칼럼)

    고 존F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여사가 지난 19일 임파선암으로 세상을 떠나 23일 알링턴국립묘지에 묻히기 까지,그리고 또1주일이 다되도록 미국민들은 또한번 케네디 추모분위기 속에 묻혀 살았다.그동안 미국의 신문 TV들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재클린여사의 일생과 그의 죽음을 통해 본 케네디가의 영광과 좌절,케네디의 죽음을 재조명했다. 연일 수백명씩의 관광객과 뉴욕의 시민들은 재클린여사의 유해가 안치돼있던맨해튼 그의 아파트앞에 몰려들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추모대열 속에는 케네디 대통령이나 재클린 퍼스트 레이디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젊은세대들도 끼어있었다. 23일 고인의 영결식은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CBS TV와 CNN이 각각 생중계를 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도 알링턴국립묘지 영결식에 직접나와 고인을 회상했다.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 미망인도 사후 이처럼 대대적인 국민의 추모를 받아본 일이 일찍이 없다.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퍼스트 레이디였던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미망인 엘리노어여사 까지도 이런 대접을 받지는못했다. 재클린여사에 대한 이러한 추모는 재클린 개인의 인기도 작용하고 있다.텔리비전시대가 만들어낸 최초의 스타 퍼스트 레이디,그녀의 우아함과 지성미가미국민들에게 심어준 강력한 인상,그 엄청난 비극들의 주인공에 대한 연민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재클린에 대한 이러한 미국민의 관심의 뿌리는 역시 「케네디」에 있다.이는 이번 재클린여사에 대한 각종 추모행사에서도 중심은 케네디 대통령,케네디가문과 재클린의 관계에 있었던것만 봐도 알수있다.케네디대통령은 고인이 된지 31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어느 현직대통령도 케네디만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매년 11월(케네디가 암살된 달)이 되면 어김없이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케네디가 회상되며 그의 죽음 10주년·30주년 하는 특별한 계기가 되면 그 요란함이란 외국사람들이 상상키 어렵다. 「케네디」가 이처럼 미국민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살아남아있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그의 극적인 죽음이나 인간적인 매력때문이 아니라 한 치인으로서 케네디가 미국역사에 남긴 비전과 용기때문일 것이다.미국은 가장 빛나는 역사를 가진 나라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50∼60년대에 걸쳐 미국사회는 적지않은 문제점을 안고있었다. 끊임없는 흑백간의 인종분규,빈부문제,냉전에의 대응등이 그런 문제들이었다.케네디는 이런 문제점들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했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했다.그는 핵전쟁을 무릅쓰고 쿠바미사일 위기를 극복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미국의 오랜 지배체제에대한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다. 대통령이 되기전 케네디는 「용기있는사람들」이란 책을 썼었다.그리고 보스턴에 세워진 케네디기념도서관은 90년부터「케네디 용기상」을 제정해 수여하고 있다.제1회 수상자는 인종문제에 너무 진보적이란 이유로 재선에 실패한앨라배마주출신의 하원의원을 지낸 칼 엘리옷이었다.미국민들은 케네디를 통해 미국의 꿈을 그리고 있는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루어지지 않고있는 꿈의 실현을 위해 케네디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5·18」 그날의 뜻 기리며…/어제 14주

    ◎국민대회·추모식 4만인파/대학생 1천여명 한밤 격렬시위 【광주=최치봉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4주기를 맞은 18일 광주에서는 망월동 추모제,범국민대회등 각종 추모행사와 기념행사가 잇따랐다. 이날 하오4시 전남도청앞 광장에서는 재야인사와 시민·학생등 3만여명(경찰 1만5천,주최측 5만여명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민중항쟁 14주기 기념식및 국민대회가 5시간 진행됐다. 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전남도청∼광주은행4거리∼구공용터미널∼광주역에 이르는 4㎞구간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횃불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이날 상오 망월동묘역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14주기 추모식이 강신석행사위원장을 비롯,강영기광주시장,유준상민주당최고위원등 각계인사와 유족·시민등 1만여명(경찰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5월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그날의 뜻을 되새겼다. 강신석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5월정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항쟁과 나눔의 정신이었다』면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강영기시장은 추모사에서 『영령들의 애국충정과 희생정신은 민주발전과 개혁의 물꼬를 트는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면서 『이제는 더이상 과거의 아픔에 젖어 있기보다는 이들의 숭고한 넋을 받들어 21세기를 향한 힘찬 광주를 만들어가는 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5·18 추모행사/질서유지 호소/광주기관장들

    【광주=최치봉기자】 강영기광주시장,구용상전남지사,심상명광주지검장,안병욱전남지방경찰청장등 이지역 기관장들은 16일 상오 10시 광주시청 상황실에서 5·18 14주기행사와 관련,호소문을 발표하고 『추모행사를 경건하고 질서있게 치르기 위해서는 시·도민의 협조와 학생들의 사려깊은 행동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 총리실서 부처업무 평가/5·18편승 불법시위 불허/이영덕총리 지시

    이영덕국무총리는 1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14주기에 즈음하여 우려되는 과격시위와 관련,『각종 추모행사에 편승한 일부 학생들의 불법폭력시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내무부 법무부 교육부등 관련부처에 강력한 대책을 세우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총리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학생들의 폭력시위의 명분은 사라졌다』고 지적하고 『불법시위로 국민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치안대책을 세우는 한편 행사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도록 유도하라』고 내무부에 시달했다. 이총리는 또 『법무부는 과격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법질서 확립차원에서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고 교육부 역시 각 대학당국이 학생들의 가두폭력시위를 자제하도록 선도하라』고 지시했다. 이총리는 이에 앞서 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총리실은 앞으로 각부처의 업무추진평가를 주요 기능으로 해야 할 것』이라면서 『각부처 담당관은 해당부처의 업무를 깊이 있게 파악하고 그 추진상황을 철저히 점검하는 체제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 사라진 레닌 추모 열기/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 코너)

    ◎70주기 쓸쓸… 박물관철거 준비 분주 21일은 레닌의 70주기였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이날을 전후해 보름간은 그를 기념하는 각종 추모행사가 소련 전역에서 행해졌다.그러나 이날 모스크바시내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영하 15도의 추위에 눈발이 날린 이날 크렘린광장의 레닌묘소앞에는 평소에 비해 조금 많은 수의 꽃다발이 놓여져 있을뿐 공식추모행사는 없었다.일반시민들중에는 이날이 레닌의 사망일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모스크바의 명물중 하나인 붉은광장 초입의 레닌박물관은 지금 철거작업이 한창이다.95년부터 의사당 건물로 쓰기로 결정됐기 때문에 내달까지 박물관을 모두 비우고 대대적인 수리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다.방부처리돼 묘소에 안치된 레닌의 시신은 조만간 그의 고향땅에 매장키로 결정이 내려져있다.그동안 레닌의 시신을 관리해온 사체 방부처리 전문가들이 실직에 대비,자신들의 기술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물색해왔으나 고객이 없어 울상이라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이날도 레닌박물관 안은 전시품등을 싸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수십개나 되는 레닌의 동상들이 포장상자에 넣기 위해 조각조각나 팔·다리·머리들이 곳곳에 굴러다니고 있었다.작업인부들조차 이 동상들이 러시아땅 어딘가에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한때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이곳에서 일했던 1백40명의 직원중 절반은 이미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고 했다. 박물관 철거를 담당하고있는 것도 독일회사이다. 한때 러시아인들이 가장 무서운 적으로 간주했던 것이 「파시스트」이고보면 독일인이 레닌박물관의 해체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준다. 매주 금요일엔 관광객등 일반참배객의 레닌묘 내부입장이 금지된다.그러나 지난해까지도 그의 기일만큼은 일반참배객의 입장이 허용됐는데 금년에는 기일이자 금요일인 이날 일반참배객의 방문이 금지됐다.다만 겐나디 주가노프당수를 포함한 공산당 간부 몇명만이 참배를 했고 22일에는 공산주의자 5만여명이 레닌의 장례식날 그의 시신이 도착한 파벨레츠키역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하지만이 정도의 추모식도 금년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혁명 뒤 70년동안 이 나라에서 레닌은 「신」이었다.그러나 70주기를 맞은 오늘 이「신」은 러시아인들 모두로부터 잊혀져가고있다.
  • 모택동·등소평 관계분석/중국현대사 큰사건 풀이

    ◎솔즈베리저 「… 황제들」 번역서 출간/두사람의 인간면모·고뇌 상세묘사/“왕조시대 황제같은 통치자”로 평가 지난달 26일은 모택동탄생 1백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을 전후해 중국 곳곳에서는 모택동추모행사가 성대하게 열려 중국의 현대사를 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이에 곁들여 「혁명의 천재이며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모택동과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백성의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한 부국의 선각자」인 등소평(90)을 놓고 누가 더 위대한가를 비교하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공산당이 개최한 「모택동 탄생 1백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등소평이 「일부러」 예년보다 한달 빨리 북경을 떠나 휴가길에 올랐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모택동과 등소평은 중국혁명을 함께 이끈 동지이면서 혁명후에는 현대화방법론을 놓고 심하게 갈등한 정적사이였다. 그 두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중국현대사의 큰 사건들을 풀이한 책이 「새로운 황제들」이란 제목으로 나왔다.(다섯수레 간) 지은이 해리슨 솔즈베리는 뉴욕타임스의 모스크바특파원을 지낸 구소련및 중국문제전문가로 지난 84년에는 모택동과 홍군이 50년전 치른 대장정코스를 되밟아 중국오지를 7천4백마일 여행했다. 이와 함께 모택동과 등소평의 가족,측근은 물론 적대세력과도 폭넓은 인터뷰를 함으로써 모와 등의 인간적인 면모,각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그들이 겪은 고뇌,그리고 택한 행동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솔즈베리가 본 모와 등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모택동이건,등소평이건 역대 중국의 통치자들과 한치도 다름없는 「황제」라고 평가했다. 왕조시대의 황제들이 고전과 사서에 의존해 백성을 다스렸듯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얇은 베일 뒤에 숨은 모와 등도 똑같은 통치이데올로기를 사용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모와 등은 「새로운」황제라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그러나 「황제」라는 칭호가 억압적인 통치자의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11세기에 편찬된 사서 「자치통감」에 나오는 『폭력을 방지하고 해악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님으로써 백성의 생활을 보호하며,선행을 보상하고 악행을 벌함으로써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자,이런 사람이라면 가히 황제로 불릴만하다』는 대목을 인용,그들의 역할을 긍정했다. 이 책은 발간이후 전문가들로부터 「모와 등 두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기술을 통해 중국현대사를 전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번역은 박병덕전북대교수와 박월라씨(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설 지역정보센터 중국담당)가 나누어 맡았다.
  • 건국의 아버지 모택동/부국의 선각자 등소평/누가 더 위대한가

    ◎모 탄신 100주년 계기 중국서 논란/“민중해방 시킨 혁명가” 모 찬양/학생층/“중국사상 첫 기아 추방” 등 칭송/장년층 『모택동과 등소평중 누가 더 위대한가?』­요즘 중국신문들을 보면 오는 26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는 모와 내년이면 90장수를 누리게되는 등간에 누가 더 위대한가를 놓고 경연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최근 들어 모에 관한 연구토론회 미술전 기념서적발행등 각종 추모행사들이 쏟아져나오면서 그동안 등의 독무대였던 중국신문들의 지면을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11월중순까지만해도 중국신문들 지면은 등소평에 관한 기사로 홍수를 이루었다.82년 이후 등의 각종 연설 담화문을 모은 「등소평문선(제3권)」이 나오면서 매일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며 등이론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소 동구와는 달리 망당망국의 위기로부터 중국사회주의를 구출한 등의 선견지명에 모두가 감사의 박수를 보내는것 같았다.그래서 일부 서방신문들은 등에 대한 신격화를 추진하고 있지않은지 의심하기도 했다.이보다 앞서 2∼3개월동안은 또 등의 막내딸이 쓴 「나의 아버지 등소평을 각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발췌,연재하며 등의 과거를 미화하는데 정신 없었다. 그러던중 11월 중순부턴 모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주로 『모택동과 티베트』『내 마음속의 모택동』등과 같은 제목의 토론회로부터 시작된 모추모사업은 『일대의 위인 모택동』이란 제목의유화 전시회,모 관련 영화 감상평가회,각종 기념도서출판,『중국에 모택동이 나타나다』란 제목의 기록영화 제작 방영,『모사상 연구토론회』등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각 신문마다 경쟁적으로 모에 대한 회상록등을 게재해 오고 있다. 모에 대한 찬양은 그가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는데도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그래서 19세기 중엽부터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주의 노예상태나 다름없던 민중들을 해방시킨 그 공적은 아무리 찬양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식이다.다만 그가 집권후반 10년동안 문화혁명을 통해 중국사회,중국전통을 초토화시켜버린 과오에 대해서는 그다지큰 목소리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의 20대 젊은학생들은 모의 혁명사상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문화혁명을 경험하고 굶주림을 경험한 장년층에서는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기아를 추방하고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될만큼 중국의 경제력을 키워놓은 등의 업적을 더 높이 평가하는것 같아 보인다. 어쨌든 모에 대한 추모행사가 줄을 잇는 가운데 『모택동과 당외친구들』을 비롯한 모관련 서적 수십권이 쏟아져나와 북경에서 가장큰 왕부정 신화서점에서는 「모서적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전시판매하고 있을 정도이다. 사회주의 우방인 북한이 모탄신 100주년기념우표를 발행한데 이어 반공의 선봉에 서 왔던 한국에서도 「모택동탄신1백주년기념」이란 글이 새겨진 2천원짜리 공중전화카드를 5백장 발매했다고 이곳 광명일보가 보도했다. 모의 얼굴이 새겨진 접시나 시계 기념메달 사진포스터등도 발매되고 있는데,등소평이 개혁개방을 통한 잘살기운동을 벌인 덕분에 중국 주민들이 이것들을 사들일 여유가 생겼다고 한 홍콩 신문은 지적했다. 그러나 1백주년기념행사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중공고위 간부 전원이 참석하는 24일밤의 문화예술제에 이어 26일 인민대회당 기념대회때 강택민총서기의 연설이 될것 같다.그런가하면 모의 고향인 호남성의 소산에서는 지난 20일 모동상 제막식을 비롯,지금까지 무려 27차례나 각종 기념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모에 대한 이같은 대대적인 추모행사에 비하면 모를 흠모하는 열기가 그렇게 높은것 같지만은 않다.모두가 등이 제창해온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매달려 돈벌이에 정신을 쏟다보니 그런지도 모른다.그런데도 이같이 많은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한 중국기자는 『모는 정신적 측면의 사상가인 반면에 등은 물질적인 경제의 반영을 중시하는 지도자다.요즘 중국사회가 너무 물질만능주의로 나가니까 당중앙에서는 정신분야의 영양보충을 통해 균형을 잡겠다는 생각이 든것 같다』고 풀이했다. 어쨌든 모는 『혁명의 천재요.건국의 아버지』인 반면에 등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한 『부국의 선각자』라는 두지도자의 서로 다른 역할이 모탄신 1백주년을 맞아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 우리말·글 통해 나라사랑 실천/외솔 최현배선생(이달의 문화인물)

    ◎기념문집·추모행사등 다양 「10월의 문화인물」에 우리말과 글을 통해 나라사랑을 실천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선생(1894∼1970년)이 선정됐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아릅답게 가꾸기 위해 한글날이 들어있는 10월을 맞아 그를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외솔은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태어나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뒤 1910년 일본인들이 학교운영의 주도권을 잡자 주시경선생이 있던 조선어강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그곳에서 우리말과 글로 교육하는 것이 우리 겨레의 소망이라는 신념을 갖게된 그는 연희전문과 이화여전에 재직하며 배달말과 배달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심는데 힘썼다.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해방직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있으며 황무지였던 국어교육의 터전을 마련하는 한편 한글의 체계화와 과학화에 진력했다. 그의 저서로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우리말본」「글자의 혁명」「나라사랑의 길」 등이 있다. 문화체육부가 외솔회 한글학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 관련단체와 함께 펼칠 기념행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솔의 국어학과 그 영향」주제의 강연회 23일 상오10시 한글학회강당 ▲「국어학자 및 사회사상가로서의 외솔」주제 특별강연회 28일 하오2시30분 연세대 ▲「외솔문법과 맞춤법 통일안」주제 학술발표회 16일 하오3시 문예진흥원강당 ▲제15회 외솔상 시상식 30일 한글회관강당 ▲외솔추모행사 19일 경기도 양주군 장현리 묘소▲기념문집과 글모음 어록집 발간 등.
  • 아웅산참사 10주/현지서 추모행사

    정부는 다음달 9일 미얀마 아웅산참사 10주기를 맞아 미얀마 현지에서 승려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를 갖는등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갖기로 했다. 정부는 또 성남 세종연구소 본관에 가로,세로 각각 1m크기의 추모동판을 세우기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6일 『미얀마측은 그동안 우리정부의 추모행사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거부해왔다』고 전하고 『그런데 이번 10주기 행사의 경우에는 불교국가인 만큼 승려들의 추모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내 추모행사도 지금까지는 순국외교사절 묘역 참배행사만 있었으나 이번에는 현충관 추모행사,외무부장관 초청 유가족 위로만찬 행사등이 잡혀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에따라 다음달 9일 상오 9시 현충관앞에서 관련부처 과장급 이상 간부 1백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처음으로 합동 추모행사를 갖고 이어 하오 7시에는 외무장관 공관에서 유가족을 위한 추모만찬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 러시아,KAL기격추 책임없다니(사설)

    승객과 승무원 2백69명을 태운 대한항공(KAL)747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옛소련 전폭기에 격추당한지 오늘로 꼭 10주년이다.민간여객기를 격추하는 행위를 서슴지않았던 공산독재의 옛소련은 이미 붕괴되고 이를 승계한 러시아는 오는 30일로 우리와의 수교 3주년을 맞는다. 상식적으로 지금쯤 양국관계는 모든 문제를 해소하고 순조로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KAL기사건의 깨끗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차관상환문제와 관련된 러시아의 의무불이행으로 우리정부의 차관제공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우리는 이같은 상황전개의 주된 책임이 러시아측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KAL기사건의 경우 블랙박스를 조사한 국제민항기구(ICAO)의 지난 6월 최종보고서 결론은 사고 KAL기 항로이탈및 영공침범 책임은 조종사들에게 있으나 이를 요격한 옛소련전투기들은 민항기여부 식별에 대한 충분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바 있다.사실이 그러하다면 그 처리와 청산의 방향은 분명하다.공동책임의 보상밖에 없는 것이다.따라서 우리정부가 러시아에 배상을 요청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반응은 그런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의도적으로 KAL조종사들의 책임만 강조한 러시아정부 자체조사보고서는 배상책임의 전가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고있다.뿐아니라 10주년 추모행사도 의도적으로 격하하는등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물론 1차적 원인제공은 KAL측 조종사들에게 있다고 할수도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민간여객기에 대해 충분한 식별노력이나 강제착륙등 인도적 노력을 전혀 외면한채 무자비하게 격추시켜버린 만행의 책임이 면제되는것은 아니다. 특히 러시아는 사건이 냉전의 고조기에 발생한 것으로 옛소련 공산정권이 책임져야할 일이며 러시아가 배상할 성질이 아니라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러시아는 이미 옛소련의 계승자로 모든 국제적 권리와 의무의 승계를 선언한 바 있다.이제 러시아는 권리만 계승하고 책임은 외면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차관문제에 대한 대응도 그런 비난을 면키어려울 것이다. 러시아는 당장의 어려움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여 보다 크고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희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것이다. KAL문제에 대한 대응은 민주러시아의 국가적 체면과 양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뿐아니라 한국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극동우방이 될수있는 잠재국의 하나다.우리는 양국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을 희망한다.러시아의 현명한 대응이 있어야 할것이다.
  • KAL기 배상 강력 촉구/오호츠크해 조업 협조도

    ◎한외무,방한 러외무차관 접견 한승주외무장관은 31일 방한한 러시아 게오르기 쿠나제외무차관의 예방을 받고 KAL기 배상,대러시아 경협차관 상환및 추가지급 동결,구제정러시아 정동대사관 부지 문제등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한장관은 이 자리에서 KAL기 격추사건 10주기 추모행사에 러시아측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사의를 표명한뒤 『유족들에 대한 배상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사건이 해결된다』면서 러시아측에 배상을 촉구했다. 한장관은 오호츠크해역의 조업과 관련,『오는 10월까지는 조업을 중단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북단 경제수역에서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고 쿠나제차관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양국 외무차관은 이와함께 대러시아 차관의 추가지급 중단문제는 다음달 양국간 실무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 “KAL희생자 유해·유품 공개”/「러」정부,“한국과 반환협상용의”

    ◎새달 피격10주기 맞아 사할린서 추모행사 러시아정부는 KAL 007기 격추사고 10주기를 맞아 다음달 1일 사할린 네벨리스크시 현지에서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갖는등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모비는 석재로 크기와 비문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정부는 또 그동안 수거해 놓은 유해와 유품을 유족들에게 최초로 공개하는 한편 유족들이 원할 경우 반환을 위한 한·러시아 실무협의를 개최할 용의가 있음을 우리정부에 알려왔다. 정부는 이에따라 추모행사에 참가한 유족대표들이 귀국하는 대로 이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유해및 유품반환협상을 벌일 방침이다. 러시아정부는 이와함께 KAL기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감을 표시하는 뜻에서 오는 31일 부산항에 입항할 예정인 러시아함대에 조기를 게양하고 8백명의 선원이 일제히 묵념을 올리기로 했다. 정부는 그러나 러시아측의 이같은 조치를 외교적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우리측이 요구한 배상문제와는 별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알려졌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28일 『정부는 지난 19일 주러시아한국대사관을 통해 우리의 배상요구를 공식 전달한 바 있다』면서 『다음주중으로 러시아측의 공식답변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현재 우리측의 입장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최종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라 구소련측이 민간항공기에 대한 적절한 요격절차를 생략한 만큼 책임이 있다는 입장인 반면 러시아측은 KAL조종사의 과실이 인정됐으므로 KAL측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 6·25종군 사망기자/워싱턴서 추모행사

    【워싱턴=이경형특파원】 한국전쟁휴전 4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사망종군기자 추모식이 25일 상오(한국시간 26일 상오)워싱턴의 알링턴국립묘지에서 한국전쟁종군기자단과 한국참전용사협회 주관으로 거행됐다. 이날 우천관계로 원형극장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대동강철교 남하장면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맥스 데스퍼(79)씨를 비롯,40여명의 종군기자들이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참석해 「잊혀진 전쟁」을 취재하던 옛 동료들의 넋을 위로했다.
  • 초여름문단 개인전집발간 붐/생존작가작품 중간결산/작고작가들 재조명

    ◎평론가 김현,시인 김지하·고은,소설가 박완서 등 상재/생존작가 대상·상업주의엔 비난의 소리 개인전집발간이 붐을 이루고 있다.최근 발간된 것만 해도 평론가의 경우 김현,김우창전집이 나왔으며 시인으로는 김지하,고은전집이 상재됐다.소설가는 이문열,박완서등의 전집류가 선보였다.이들은 각기 해당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개인전집발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전집은 작가 또는 평론가의 흩어져 있는 작품을 한데 모으고 그 작품세계에 대한 중간결산을 겸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그러나 외국의 경우 전집발간이 대개 작가사후에 이뤄지고 있는점에 비춰볼때 한창 창작활동중인 생존작가의 전집발간은 다소 무리라는 지적도 따르고 있다. 또 이같은 전집발간현상에 대해 문단일각에서는 온갖류의 전집을 내고 있는 일본의 풍토를 그대로 베껴 먹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사실 작가들은 전집발간을 꺼리지만 상업성을 앞세운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이들 인기작가들의 전집 묶음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번에 나온 전집중 「김현문학전집」「김우창전집」「김지하시전집」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사거 3주기인 지난 27일에 맞춰 완간된 「김현문학전집」의 경우 고인이 몸담았던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펴냈다는 점에서 다른 전집류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지난 27일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도곡리묘소에서 거행된 추도식에는 문학평론가 김병익,김치수씨등 동인들과 정과리,이인성,황동규,황지우씨등 선후배문인 70여명이 참석해 추모행사와 함께 전집 봉정식을 가졌다. 「김현문학전집」은 우리 문학비평의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왕성한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사유에 몰두했던 김현의 정치한 문학세계를 아우르고 있다.91년 6월 1차분 3권이 나온이래 3년만에 16권으로 완간된 큰 작업이었다.이번에 나온 마지막 간행분은 그의 예술기행과 에세이를 모은 「김현예술기행/반고비 나그네길」(13권),짧은 평론및 산문들을 모은 「우리 시대의 문학/두꺼운 삶과 얇은 삶」(14권),유고일기집「행복한 책읽기」(15권),화보와 연보,추모글등이 실린 「자료집」(16권)등 4권이다. 최근 3권짜리로 완간된 김지하시인의 「김지하시전집」(솔출판사)도 김지하시인의 이본시집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많은 오자와 원문과의 불일치,초기시들을 둘러싼 오해,편집상의 잘못등을 바로 잡은 결정본 내지 정본이라고 부를만 하다.지난63년에 발표된 최초의 시「저녁이야기」이후 첫시집 「황토」와 70년대의 서정시편,80년대초·중반에 걸쳐 쓴 연작시 「애린」의 초기 시편을 모두 묶었다.출판사측은 『정밀하고 체계적이며 믿을 만한 결정본시전집이 없었기 때문에 김지하 시의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었다』고 전집발간이유를 밝혔다. 이밖에 이문열의 2권짜리 「중·단편집」(열린책들),박완서의 3권짜리 「박완서소설전집」(세계사),「고은 시전집」1·2(민음사)이 선보였다.이가운데 이문열의 중·단편집은 79년이후 발표된 작품을 발표순으로 묶었을 뿐이며 「박완서전집」의 경우도 「휘청거리는 오후」와 「도시의 흉년」등 2편을 수록하는데 그쳤다. 올해로 시력35주년에 환갑을 맞은 고은시인의 「고은시전집」1·2는 지난 83년도에 나온 「고은 시전집」의 증보판.83년판과 다른 점은 새로쓴 증보판서문과 책뒤에 붙은 작가연표에 83년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행적을 추가한 정도에 불과하다. 이영준민음사주간은 『전집발간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우리의 문학적 역량이 축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상업적 인기에 편승한 생존작가의 전집묶음은 재고해 봐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공초문학상 시상식·추모제/서울신문사 주최

    ◎이형기시인 수상… 추모시 등 낭독 공초 오상순(1894∼1963)선생의 사거 30주기와 탄신 1백년을 기념하는 추모행사가 5일 상오 11시부터 문인·제자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수유리 북한산기슭 빨래골 묘역에서 엄수됐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고 공초 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구상)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설창수,구상,박노석,이원섭,문덕수,성찬경,이형기,박희진,이근배씨등 생존당시 선생을 따랐던 원로·중진급 시인들과 김낙준출판문화협회회장,이정연공초문학상운영위원장(서울신문 제작이사)·김인근화백등이 참석,고인의 넋을 기렸다. 분향제배,헌화,추모시낭독,감사패증정,추모사등의 순서로 1시간 30분동안 계속된 이날 추모식에서 구상숭모회회장(75)은 『선생은 가셨으나 그 넋은 여전히 살아 곁에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그동안 숙원사업이던 공초문학상을 30년이 지난 올해에야 제정,첫 수상자를 내게돼 마치 숙제를 마친 학생의 심정』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한편 이날 하오4시 한국프레스센터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회 공초문학상시상식에서는 박두진심사위원장,김종길,김광림시인등 1백여명의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상자로 선정된 이형기시인(60·동국대 국문과 교수)에게 상금5백만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이한수서울신문사장은 개식사를 통해 『한국문학사에 우뚝 솟은 그분의 업적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상을 만들게 됐다』고 제정취지를 밝히면서 『공초문학상이 국내 최고수준의 문학상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이어 2부순서로 선생의 문학과 생애를 재조명하는 추모문학제가 진행됐다.
  • 제1회공초문학상/이형기씨 선정/서울신문사주최 공초선생 숭모회 주관

    ◎5일 30주기 맞아 성대한 추모행사/“초윤리의 사상가·시를 체험한 시인”평/후배문인들 91년 기금1억 마련 근대 신시운동의 선구자이자 자신이 즐겨 피우던 담배연기처럼 살다간 기인 공초 오상순시인(1894∼1963)이 우리곁을 떠난지 5일로 30주기를 맡는다.올해는 또 선생의 탄생 99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사와 공초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구상)는 선생의 설흔번째 기일을 맞아 3일 상오11시 문인·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수유리 빨래골 묘소에서 기제를 올린다.이와함께 하오4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올해 처음 제정한 「공초문학상」시상식을 개최한다.제1회 수상자로는 이형기시인이 선정됐다. 이어 열릴 추모행사에서는 수상자인 이형기시인이 「공초의 시와 공사상」이란 공초론을 발표하며 시인 이원섭씨(숭모회 부회장)가 「공초의 생애와 사상」강연등 성대한 행사를 치를계획이다. □공초문학상제정배경및 취지 「공초문학상」은 지난91년 10월 공초선생의 제자인 구상숭모회회장 주도로 서울갤러리에서열린 「공초문학상기금마련 희사작품전」의 수익금으로 제정됐다.숭모회측은 구상·박두진·서정주·조병화·설창수·홍윤숙씨등 문인들과 화가 김기창·김영주·박고석·이대원씨등 모두 1백5명이 내놓은 자작친필과 소장품 1백32점을 팔아 모은 기금 1억1천5백만원을 지난4월 서울신문사에 기탁해 온 것이다. 이에따라 「공초문학상」은 서울신문사 주관으로 매년 시부문 1명을 시상하며 시상대상자는 20년이상의 문단경력을 가진 작가로 작품의 우수성뿐만아니라 수상자의 인품을 고려하는등의 운영규정을 정했으며 매년 6월중 시상식을 갖게 된다. □공초의 생애와 사상 오상순은 1894년 8월9일 서울 시구문안(지금의 장충동2가)에서 태어났다.비교적 개방적인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경신학교를 거쳐 19세에 일본유학길에 올라 경도의 동지사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인텔리였다. 1920년 변영노·남궁진·김억·염상섭과 함께 한국신시운동의 선구가 된 동인지 「폐허」의 창간동인이 되었다. 「허무혼의 선언」「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등 명시를이때 발표했다. 청춘기의 공초는 만년의 트레이드마크인 빡빡깎은 머리와는 달리 길게 드리운 올백머리의 멋쟁이 청년이었다.그는 40대에 대구에서 연하의 과부와 잠시 동거생활을 한 이외에는 평소 지론이던 독신주의를 지켰다. 그는 살아생전 혈육한점,머물 지상의 집한칸,시집 한권 내지 않았다.공간을 초월,시간속에 영원히 산다고 해서 「공초」라 했던가.그득한 담배연기속에 묻혀 살았다고 「꽁초」라고 불리었던가.그의 삶은 세속을 떠난 성자의 그것이었다. 6·25를 전후해 서울 푸라워,대구 아리스,부산 금강,서울 명동 청동,서라벌등 다방을 무대로 문학을 교리처럼 설파한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며 신화다.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담배불을 꺼뜨리지 않았다.제자의 결혼식 주례에서도,세수할때도 담배는 항상 손에 있었다.하루평균 1백80개비(20개들이 9갑)를 연기로 만들었다.다방에서 제자들에 둘러싸여 「청동산맥」이라는 서명첩을 내놓고 「연기는 사라져 어디로 가나」같은 선문답문제를 내 제자나 방문객들이 나름대로의 단상을 적은 「청동문집」1백98권이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다. 무일푼,무소유로 일관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원종신회원,예술원상,서울시문화상등 상복이 따랐다.1963년 6월3일 노환으로 입원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제자들의 간호를 받으며 운명했다.그는 무교리의 종교가,초윤리의 사상가,시를 몸소 체험한 유일한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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