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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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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위로 얼룩진 「5·18」/44개 시군서 장례… 추모… 파업

    ◎한밤 광주로 운구… 망월동 안장/「노제」 충돌 끝에 공덕동서 치러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며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은 온통 군중집회와 격렬한 시위로 얼룩졌다. 이날 강군의 장례행사는 무사히 치렀으나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밤늦게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곳곳에서 경찰관서 등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또 상·하오에 걸쳐 전남·광주 등지에서 남녀 3명이 또 분신,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강군의 「노제」는 「대책회의」측이 경찰의 설득으로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거행됐으며 이어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 앞∼국립묘지 앞∼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휘문고교에서 잠시 들른 뒤 하오 10시10분쯤 고속도로로 진입,광주로 향했다. 19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곧바로 5·18묘역으로 가 시신을 안장했다. 「대책회의」측은 이날 집회와 시위에 서울에서 7만여 명을 비롯,광주·부산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8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또 「전노협」은 이날 9만여 명이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노동부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9개 도시의 32개 노조 1만2천5백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부터 서울에서는 「대책회의」측 장례행렬이 이화여대 입구에서 서울역 쪽으로 향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장시간 공방전을 벌였다. 광주에서는 상오 10시 망월동 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열린 것을 비롯,하오 금남로에서 「5·18정신」의 계승 등을 주장하는 「국민대회」와 종교단체·근로자·학생들의 추모집회가 잇따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이밖에 부산 전주 인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고 군청소재지에서는 이른바 「농민대회」 등이 열렸다. 이들은 곳곳에서 도심진출을 기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하자 주요간선도로 등을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막다 서울에서 53명을 비롯,전국적으로 73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가운데 91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18일 강군운구 도착해도 광주에선 추모제 어렵다”/광주 대책회의

    ◎「5·18」 기념행사 겹쳐 곤란 【광주=최치봉 기자】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규탄 및 박승희 학생 분신 광주전남대책회의」는 16일 강군의 장례일과 관련,『5·18 11주기를 맞아 추모제와 각종 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19일 강군의 시신이 광주에 도착하더라도 추모행사를 실질적으로 갖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이날 『강군의 장례일이 5·18행사와 겹쳐 혼란이 우려되므로 장례일정 조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범대위」측에 대표 2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 강군 「노제공방」 며칠 끌듯/경찰의 「여의도」제시 대책회의서 거부

    ◎장례 「5·18」 전­후 놓고 부심/대책회의/경찰,오늘 노제장소 다시 협의키로/대책회의,「국민운동본부」로 개편 14일 치르려던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강군의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시국의 긴장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경찰과 재야·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측은 14일 하오 신촌로터리에서 「6인 합동추모제」를 지낸 뒤 강군의 운구행렬을 시청 쪽으로 돌리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연세대로 되돌아가 철야농성을 한 뒤 15일 상오 『시청 앞 노제가 허용될 때까지 강군의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혀 경찰과의 정면대립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날 상오 이상연 내무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강군의 장례행렬이 과격시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청 앞 「노제」는 계속 불허한다』는 강경방침을 재확인,별도의 타개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계속적인 충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 「대책회의」측과는 별도로 「전대협」과 「전노협」도 18일을기해 동맹휴학과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집회 및 시위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긴장분위기는 「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인 18일을 전후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여지며 이에 따라 경찰은 진압대책을,재야 쪽에서는 가두시위계획을 각각 세워놓고 있다. 한편 강군의 사망 이후 줄곧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를 주도해온 「대책회의」측은 이달 안에 이 기구를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확대하고 18일의 전국적인 집회뿐만 아니라 6월까지 차원높은 투쟁을 벌여 정권퇴진운동을 확산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 시위시국은 점점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대책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 발족되는 국민운동본부는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갖춰 지금까지의 사복체포조 해체 등 부분적 투쟁에서 정권퇴진운동으로 확대시켜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임금인상을 위한 전국노동조합투쟁본부」는 18일 하룻동안 4백60개 노조의 40만명을 동원,총파업을 벌인 뒤 「2차 국민대회」에 참가하기로하는 등 「대책회의」측의 집회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러나 9일 이전에 쟁의발생신고를 한 40여 개의 노조 말고는 일방적으로 파업을 단행할 경우 주동자들을 모두 의법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전대협」은 15일부터 18일까지 4일 동안을 「1백만 청년학도 결사투쟁기간」으로 선포하고 총학생회 간부 등이 대학별로 시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15일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7일쯤 강군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밝혔다. 강씨는 이날 『아들의 장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오해를 씻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면서 『시청 앞에서 노제가 거행된다면 그 날짜는 18일 이전이라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범국민대책회의는 유족의 뜻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기본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아 18일 이전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장지인 광주에서도 5·18행사 준비문제로 장례를 그 이전에 치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책회의는 이에 앞서 이날 하오 10시부터 상임대표자회의를 열어 장례문제를 포함한 향후의 일정을 논의했으나 16일 상오 2시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수호 집행위원장은 16일 0시 유족들의 의사를 타진키 위해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강군 빈소를 찾았으나 마침 강씨가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다. 한편 15일 하오 8시30분쯤 이택천 서대문경찰서장이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만나 노제 장소로 여의도광장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책회의측으로부터 거절당했으며 16일중으로 경찰 고위간부가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노제 장소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한밤까지 곳곳서 산발 공방/어제 강군 영결식

    ◎신촌·이대 앞서 화염병·최루탄 대결/운구행렬 반나절 노상대치/경찰 4만5천명,도심진입 차단/대책회의,장례 연기… 1천명 연대서 철야농성 명지대생 강경대군 장례식날인 14일 「대책회의」측의 서울시청앞 「노제」 강행과 경찰의 봉쇄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명지대에서의 영결식과 신촌로터리에서의 추모집회를 마친 강군의 운구행렬은 시청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연세대로 가 농성에 들어갔으며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의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가두시위에 나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 시민들은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영결식과 추모제가 열린 신촌·연희동 주변 상가는 아침부터 미리 철시했으며 이 일대는 물론 도심 곳곳에서 교통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영결식◁ 강군의 유족과 「대책회의」 관계자 조문객 등 80여 명은 이날 상오 9시 명지대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가졌으며 하오 9시45분쯤 대운동장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장례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는 조사에서 『오늘은 강군을 땅에 묻는 날이 아니라 71년 6월7일 시작됐던 생의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출발하는 날이니 강 열사의 장도를 비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강군의 어머니 이덕순씨(43)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으며 명지대 총학생 부회장 김홍석군은 조사를 읽다가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할께요』라는 대목에 이르자 오열하기도 했다. 또 이날 참석한 김대중 총재는 조사를 읽다가 학생들로부터 『보수야당 물러가라』는 야유를 받았으며 낮 12시15분쯤 연희동 교차로 근처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많이 마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상오 10시30분쯤에는 이상연 내무부 장관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강군의 명복을 비는 조화를 보내왔으나 모두 접수를 거절당했다. 영결식에서는 「서울노동자 문화예술단체」 회원등 5백여 명이 부활굿·조가합창·풍물놀이 등 문화행사가 펼쳐졌고 『경대는 살아 돌아온다』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깃발 등 3백여 개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대학생 2천여 명이 영구차와 운구행렬을 경호했다. ▷합동추모제◁ 당초 낮 12시30분에 신촌로터리에서 가질 예정이던 합동추모제는 영결식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 운구행렬이 명지대를 나와 신촌로터리 쪽으로 가던 길에 남가좌동 홍남교 네거리에서 경찰과 2시간 동안 대치하면서 돌과 최루탄으로 공방전을 벌이느라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시50분쯤에야 치러졌다. 신촌로터리 주변에는 이날 상오부터 시위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하오에는 모두 7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제공방◁ 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은 하오 6시35분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청앞 쪽으로 가다가 이화여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기중이던 경찰이 최루탄으로 저지하자 이에 맞서 화염병·돌멩이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선봉대」 3천여 명이 이대입구 부근에서 경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유가족과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에서 신촌쪽 6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3시간여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하오 9시30분쯤 대책회의측은 장례를 연기,연세대에 들어가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강군의 사체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다시 안치하려 했으나 병원측으로부터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학생회관 1층 로비에 옮겨놓고 밤을 보냈다. 하오 8시쯤 시위대는 이대입구에서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페퍼포그차량 3대에 화염병을 던져 모두 불태우기도 했다. 「전대협」 2천여 명은 하오 8시30분쯤 종로2가와 3가로 진출해 경찰에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했으며 하오 6시에서 9시 사이 종로 퇴계로 명동성당 신세계백화점 앞 등에서 1만5천여 명의 시위대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또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도심으로 빠져나온 시위대 중 4천5백여 명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경비◁ 경찰은 신촌에서의 합동추모제까지는 허용하되 시청앞 노제는 불허한다는 방침 아래 신촌에서 이화여대 앞까지 50개 중대,공덕동로터리 일대에 40개 중대 1만여 명으로 저지선을 치고 대로변 골목 입구마다 철제바리케이드나 경찰버스 등으로 도로를 봉쇄,도심 진입을 막았다.
  • 「강군장례」 주요도시서 시위/경찰 봉쇄로 시청앞 노제 무산

    ◎운구행렬 연대로 되돌아가/야 총재도 참석/전국서 10만명 추모집회·시위 전경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숨진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는 서울 시청앞 노제를 둘러싸고 당국과 강군사건 대책회의측이 끝까지 대립,또다시 서울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이 밤새 계속됐다. 강군의 장례식은 14일 상오 8시30분 명지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시작으로 영결식을 마치고 하오 5시50분쯤 서울 신촌 로터리에서 추모제를 가진 뒤 서울 시청앞에서의 「노제」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측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에 대책회의측은 『시청 앞에서 노제를 반드시 치르겠다』는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 등 유가족의 의사 등을 받아들여 하오 9시30분쯤 운구행렬과 함께 일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가 농성에 들어갔다. 대책회의측은 이어 『현 정권이 평화로운 장례행렬을 폭력으로 가로막고 있는 이상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서 강경대군 장례식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6인 열사의 장례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현재의 대책회의를 확대,「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명칭을 바꿔 투쟁수위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해 강군사건으로 빚어진 시국의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날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의 7만여 명(경찰추산 3만5천여 명)을 비롯,전국의 주요도시에서는 모두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강군을 추모하는 집회와 시위에 참가,도심진출을 시도하며 경찰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영결식에는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소속의원 및 당직자 4백여 명과 함께 참석,본격적인 장외투쟁을 시작했으며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도 소속의원 등 2백여 명과 영결식에 참석한 뒤 한 동안 운구행렬을 뒤따랐다. 이에 앞서 전국 1백여 개 대학 학생 4만2천여 명은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도심지 시위에 합세했다. 경찰은 이날 지방의 전경까지 차출해 신촌로터리에 1만여 명을 비롯,서울에 2만4천여 명 등 전국적으로 4만5천명을 배치했으며 파출소 민자당사 등 피습가능성이 큰 공공건물의 경비도 강화했다. 한편 경찰은 신촌로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과격한 시위를 벌인 유민우군(연대 행정학과 3년) 등 17명을 연행했다. 서울시경은 이날 서울에서 경찰 27명이 시위진압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 고 이철규군 2주기/조선대생 추모집회

    【광주=최치봉 기자】 조선대생 1천여 명은 6일 하오 4시30분 교내 민주로에서 「고 이철규 열사 정신계승 및 학원자주화투쟁 4주기 계승대회」를 갖고 『열사의 반미·반독재투쟁을 계승해 노정권 퇴진투쟁에 앞장설 것』을 결의한 뒤 5백여 m 떨어진 전남대병원 앞까지 평화행진을 벌였다. 이에 앞서 조선대 총학생회(회장 윤영덕·21·정외과 4년)는 이날 상오 11시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서 학생과 시민 등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철규 열사 추모사업회」(회장 문병란 조선대 교수)와 공동으로 「고 이철규 열사 2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 대학가 「4·19」 31돌 행사

    서울대·고려대 등 서울시내 11개 대학생 1만6천여 명은 4·19의거 31주년을 맞아 18일 각 학교별로 기념식과 함께 수유리 4·19묘지 등까지의 마라톤대회를 가졌다. 고려대학생 8천여 명은 이날 상오 11시 학생회관 앞에서 「4·19 31주년 기념식」을 가진 뒤 이들 가운데 1백여 명은 낮 12시50분부터 수유리 4·19묘지까지 왕복 16㎞ 구간에서 마라톤대회를 가졌으며 7천여 명은 하오 1시15분쯤부터 도로를 따라 4·19묘지까지 도보행진했다. 이날 4·19묘소에는 고려대·성균관대·덕성여대 등 서울시내 8개 대학생 1만여 명이 학교에서 행진을 하거나 버스 편으로 찾아와 헌화와 묵념으로 참배했으며 하오 5시50분쯤에는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4·19유족회 등 3개 유족단체 회원 30여 명도 찾아 참배한 뒤 추모제를 가졌다.
  • 유엔가입·북의 핵문제가 핵심/한·소 제주정상회담 어떤 얘기 오갈까

    ◎한국 유엔정책에 명시적 지지 요청/한·중­일·북 수교 관련,깊숙한 논의 예상/동북아 정세 검토·경협방안도 모색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오는 19일 제주 한소정상회담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의 본격적인 태동의 신호가 될 것 같다. 한소 양국 정부는 제주회담과 관련,이미 의제를 합의했고 이들 의제에 일관하게 흐르는 맥락은 바로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의 샌프란시스코회담,12월의 모스크바회담에 이어 10개월여 만에 3번째 갖는 이번 회담에서는 『동북아 나아가 아태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이 핵심과제』라는 공동인식을 재확인하는 바탕 위에서 각 의제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회담의 의제는 대체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남북대화 등 남북한 관계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한소 양국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 강화 ▲동북아 전반의 안정과 평화,지역정세 검토 및 아태 협력문제 등 5개 의제로 절충되었다고 청와대측은 밝혔다. 이들 의제는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리시켜 논의하기보다는 동북아 평화정착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1∼2개의 의제를 묶어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한반도 평화와 통일,남북한 관계개선,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 등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차원에서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의제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될 문제는 첫째 한국의 유엔가입 실현,둘째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화해질서를 구축하는 첩경임을 강조하고 북한이 끝내 동시가입을 거부한다면 한국이라도 먼저 가입하는 것이 이러한 목표를 앞당기는 현실적인 방도임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 동안 한국의 유엔가입에 대해 묵시적 지지를 견지해온 소련이 차제에 명시적 지지를 표함으로써 안보리에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도 같은 입장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음을지적할 것 같다. 소련측은 이미 유엔의 보편성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북한이 주장하는 유엔의 「단일의석」 가입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진전된 입장 천명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촉구 문제에 관해서는 양국 정상의 의견이 거의 일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을 수행하고 있는 이그나텐코 대통령궁대변인,마르티노프 소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 등은 이미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모든 핵연료와 핵관련 협조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소련은 북한이 지난 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으면서도 1년6개월 이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핵안전협정 가입을 계속 미뤄오자 지난해 핵폭탄 제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핵 재처리 기술진을 모두 철수시켰고 기타 기자재 지원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련은 대북 핵안전협정 가입 촉구 입장을 공식화하지 않았는데 이번 제주회담을 계기로 한 번 더 공식표명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중국도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촉구에 관한 한 이미 소련과 같은 보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사찰 문제와 관련,소련측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문제를 다시 한 번 꺼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는 소련측이 산발적으로 제안해온 동북아 집단안보체제 문제와 함께 미국 등 다른 나라와도 연관된 문제이고 특히 중국 등 주변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만이 비핵화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우리의 입장이 감안돼 원칙적인 언급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대화 등과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그 동안 팀스피리트훈련 등으로 중단된 남북고위급회담의 재개,그리고 남북 관계개선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이 개방화·민주화할 수 있도록 소련측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관측된다. 소련측은 노 대통령의남북한 관계개선 노력을 평가하고 최선의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최근의 소­북한 관계에 비추어 북한에 대한 설득이나 영향력 행사에는 한계가 있음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 강화문제에 대해서는 양국 정상이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하면서 구체적인 문제는 양국 외무장관회담·경제장관회담에서 논의토록 할 것 같다. 동북아 전반의 안정과 평화,아태지역의 협력문제는 최근의 이 지역 정세검토와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구축되고 있는 화해의 새로운 질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아태지역에도 구축되어야 한다는 공동인식 위에서 일소정상회담의 결과를 논의하고 5월 중순에 있을 소중정상회담과 관련,깊숙하게 의견교환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 긴장완화·냉전종식을 위한 소중의 공동노력 내용,한중 수교,일­북한 국교정상화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도 병행될 것 같다. ◎“소서 추가경협 요청 없었다”/「제주회담」 준비차 귀국 공로명 주소대사/“KAL기 사건해명에 적극적 자세/이번은 실무방문… 별도 공식방문 있을 것” 『이번 한소정상회담은 양국간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의제 등을 정해놓고 대화하기보다는 양국 협력관계 증진방안과 아태지역 평화정착 및 긴장완화 구축문제 등 전반적인 상호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것입니다』 제주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지난 15일 일시귀국한 공로명 주소 대사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을 사흘 앞둔 16일 외무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 동안 모스크바에서 소련 외무부측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협의를 하면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면서 회담의 의미와 전망 등에 대해 주재국 대사로서 견해 등을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이 제주도로 결정된 데 대해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회담장소는 소련측이 먼저 제의해와서 노태우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양국 정상이 교환한 메시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번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은 공식 국빈방문이 아니고 실무방문(Working Visit)인만큼 언젠가는 공식방문을 하게 될 것이며 소련측도 그렇게 알고 있다』 ­소련측이 한소정상회담 개최사실을 북한에 통보했는지. 『통보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소련은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는 한 대북 핵개발기술 및 원료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마르티노프 소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 등이 도쿄에서 한 발언은 소련의 입장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양국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으며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에 외교채널을 통해 수시로 얘기해왔다. 소련측은 그 동안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해야 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이번 제주정상회담에서 소련의 대북 핵원료 공급중단 등에 대한 공동선언이 있을 것인지. 『공동선언(코뮈니케)은 없을 것이다. 회담 후 양국 대변인이 회담내용을 설명할 것으로 안다. 핵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인만큼 이 문제가 정상간 거론될 것이며 진일보된 설명이 있을 것이다』 ­KAL기 사건에 대한 소련측 입장은. 『소련은 기본적으로 KAL기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데 호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사할린 추락지점에서 가까운 한 도시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운동도 비공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오는 9월1일 8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기리는 뜻에서 유족들이 추진하고 있는 해상추모제에 대해서도 방문인원 및 방법 등을 통보해 달라고 했으며 우리측은 곧 소측에 알려줄 것이다』 ­소련측에서 추가경협 요청이 있었나. 『없었다. 다만 대소 경협이 빨리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소련 경제는 올 여름부터 내년까지가 어려운 고비라고 본다. 여태껏 제도가 나빠 소 경제가 침체됐지만 언젠가는 부흥할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데. 『소련 내부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도 있지만 막상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대신할 인물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소련은 현재 일종의 혼란스러운 전환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파와 개혁파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다』 ­주소 대사관과 소련 외무부와 협력은 잘 이뤄지고 있나. 『우리가 면담을 요청하면 소련 외무부 직원들은 곧잘 응해와 접근이 쉬운 편이다』
  • KAL기 희생자/사할린에 추모비/한·소 잠정합의

    한소 양국은 최근 외교경로를 통해 오는 9월1일 KAL기 격추 8주기를 맞아 사할린시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우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오는 19일 한소 제주정상회담과는 별도로 가질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공식 발표할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지난 4월초 방한한 로가초프 소외무차관은 유종하 외무차관과 가진 회담에서 오는 9월 KAL기 희생자 유족들이 사할린 해상에서 합동추모제를 갖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추모비를 사할린시에 건립하겠다는 소정부 입장을 전달해 왔다』며 『양국은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 협의를 진행중이며 오는 19일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한국유엔가입 지지/로가초프 「KAL기격추 조종사 진술」조사”

    ◎한·소 외무차관회담 유종하 외무부 차관과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은 4일 하오 정부종합청사에서 공식회담을 갖고 KAL기 피격사건을 비롯,한국의 유엔가입,양국 경제협력문제 등을 협의했다. 유 차관은 이 자리에서 KAL기 피격사건에 대한 소련측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강력히 촉구하고 최근 KAL기 격추 소 조종사가 일본 TV와의 인터뷰에서 격추과정을 진술한 녹화필름도 참고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로가초프 차관은 이에 대해 『새로운 물증이나 정보를 찾지 못했으나 TV필름을 관계기관에 전달,조사를 재촉하겠다』고 말했다고 배석했던 권영민 구주국장이 전했다. ◎KAL기 추모제 추진 로가초프 차관은 『오는 9월1일 KAL기 피격 8주기를 맞아 사할린 해상에서 공동추모제를 갖겠다는 유가족의 제의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유 차관은 이날 우리의 유엔 가입 정책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소련측의 이해와 적극적인 지지를 당부했으며 로가초프 차관은 『남북한의 협의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지만 기본적으로 유엔의 보편성 원칙에 따라 자격이 있는 모든 나라가 유엔에 가입돼야 한다』고 말해 우리의 유엔 가입을 사실상 지지했다. ◎고르비 연내 방한 못해 로가초프 차관은 이어 『오는 16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는데 소련 국내사정 등으로 인해 이번에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는 방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로가초프 차관은 이에 앞서 ESCAP총회가 열리고 있는 롯데호텔에서 이상옥 외무장관을 예방,1시간여 동안 개별 면담을 가졌다. 로가초프 차관은 이어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련은 대북한 무기제공을 위한 새로운 협정 등은 체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최근 소중 외무장관회담에서도 남북한이 대화를 갖고 유엔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 새달 1일 한·소 외무차관회담서/「KAL기」 진상규명 요구

    정부는 지난 83년 대한항공 보잉 747기를 격추시킨 소련공군기 조종사가 최근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KAL기가 민간기임을 알고도 격추시켰다고 밝힘에 따라 격추과정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25일 잔해 및 사체인양 등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자료를 전달해 줄 것을 소련정부측에 거듭 촉구하도록 공노명 주소대사에게 지시하는 한편 오는 4월1일 서울에서 열릴 한소 외무차관 회담을 통해 소측이 분명한 입장표명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조종사의 인터뷰 녹화테이프를 확보,본국으로 보내도록 주일대사관에 지시했다. 공대사는 지난 21일 로가초프 소련 외무장관과 만나 KAL기 격추와 관련,새로운 정보와 자료를 입수했는지를 문의했으나 소측은 관련당국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고만 밝히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이날 전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로가초프차관은 오는 9월1일 KAL기 피격 8주기를 맞아 사할린 해상에서 추모제를 갖게 해달라는 KAL 유족회의 요청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검토하겠다」며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 KAL기 희생자/해상 추모제 추진/정부,소와 협의

    정부는 오는 9월1일 대한항공 보잉747기 피격 8주기를 맞아 희생자에 대한 사할린 해상추모제 개최문제를 소련 정부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이상옥 외무장관이 8일 밝혔다.
  • 3·1절 「파고다 추모제」/광복회,올해부터 중단

    ◎유족회선 반발,강행키로 대한광복회(회장 이강훈)는 28일 매년 3월1일 파고다공원에서 실시해오던 「3·1운동 희생자추모제」를 올해부터 치르지 않기로 했다. 광복회는 이와함께 지금까지 광복회 주관으로 실시해오던 추모제를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해 매년 을사조약 체결일이자 임시정부에서 선열추모제날로 정한 11월17일에 성대히 치러주고 구서대문형무소자리에 선열추모비를 건립해 줄 것 등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33인 유족회 권혁방회장은 『광복회가 정부의 경비지원이 끊겨 3·1절 추모제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유족회 자체적으로 파고다공원에서 추모제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어제 순국선열 추모제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종갑)는 17일 상오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이강훈 광복회 회장과 광복회원ㆍ시민 등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1회 순국선열추모 대제전을 가졌다. 이날 추모제전에서는 1906년 전북 순창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순국한 최산흥선생 등 올해 건국훈장이 추서된 무후선열 10인의 봉안식이 올려졌다.
  • 백범 묘소 찾는 귀국동포/서동철 사회부기자(현장)

    ◎중국서 영주 귀국… 「그때」기억 생생히 『영구 귀국한뒤 세번째 참석하는 백범선생 추모제이지만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나오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26일상오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백범 김구선생 41주기 추모예전에 참석한 유수송씨(53ㆍKBS교향악단 트럼펫주자)는 외아들 승남씨(25ㆍKBS교향악단 트럼펫부수석)를 추모제에 나온 백발이 성성한 노독립투사들에게 소개하기에 바빴다. 유씨의 부친 평파씨(지난47년 43세로 작고)는 중동임시정부의 경호대 대부(부장)이자 김구선생의 경호부관을 지냈다. 이 때문에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는 지난 88년2월 중국 상해에서 트럼펫 주자로 일하던 유씨를 한국에 초청했고 유씨는 귀국하자마자 영주 귀국을 신청,그해 6월23일 영주권을 받은뒤 부인 하유신씨(51ㆍ중국기공의사)까지 불러 KBS교향악단 주자로 일하며 고국생활을 시작했다. 유씨는 이때 아들 승남씨도 같이 불렀으나 당시 상해교향악단의 트럼펫 주자로 있던 승남씨는 『89년 일본순회연주를 마친뒤 귀국해 달라』는 악단측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지난해 10월 이 교향악단의 일본연주가 끝날 때까지 귀국을 늦춰야만 했다. 이 연주가 끝나자 바로 귀국한 승남씨는 아버지가 평단원으로 있는 KBS교향악단에 부수석으로 들어갔고 현재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트럼펫 연주자로는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씨에게는 김구선생이 「위대한 독립운동가」로보다는 「자상한 큰어른」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유씨는 『지난45년 중경임시정부의 주석이던 백범선생이 중경교외에 있던 우리집으로 자주 찾아와 어머니의 요리를 맛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백범선생은 당시 유씨의 어머니 송정헌씨(76)가 만든 만두와 국수를 특히 좋아해 자주 찾아 왔었다는 것이었다. 이날 추모식장에 나온 중경임시정부시절 백범선생의 비서 선우진씨(69ㆍ김구선생 추모사업협회이사)는 유씨를 만나자 『백범선생은 수행원들과 함께 유대부의 집을 자주 찾아가 음식을 들며 광복군의 입국항전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말하곤 했다』면서 『당시 겨우 국민학교 2∼3학년이던수송씨를 여기서 다시보니 마치 유대부를 다시보는 것 같다』고 반가워 했다. 이날 추모제에 처음 참석한 승남씨는 『여기에서 주위분들로부터 백범선생과 할아버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백범 선생 41주기 추모제/각계 5백여명 참석

    「백범 김구선생 41주기 추모예전」이 26일 상오11시 서울 효창공원 선생의 묘역에서 이강훈광복회장과 박영준독립유공자협회장,김대중평민당총재 등 5백여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우종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은 이날 추념사를 통해 『선생의 조국광복전 목표와 광복후 건국운동의 목표는 민족자주ㆍ민주ㆍ완전독립이었다』고 상기시키고 『이제 동구제국의 변화와 독일ㆍ예멘의 통일 등 세계정세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한국의 통일은 민족ㆍ자주에 의해 이룩되어야 하며 강대국은 간섭의 마수를 거두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 「드골이즘」에 들뜨는 불/탄생 1백돌 행사 “팡파르”

    ◎대독 저항방송 개시 50주년 맞아 막 올라/기념우표 발행ㆍ추모제 등 연말까지 계속 프랑스의 국부로 추앙되고 있는 샤를 드골장군 탄생 1백주년을 기리는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18일을 기해 프랑스 전국에서 일제히 시작된다. 2차대전 영웅중의 한사람인 드골장군은 전쟁중 영국으로 탈출,런던에서 「자유 프랑스」운동을 조직,고투끝에 조국광복의 선봉장 역할을 해내 국민들로부터 「프랑스 구제자」로 높이 받들어지고 있다. 그는 또 종전후 프랑스 현 제5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을 역임하기로 했으며 「드골이즘」으로 표현되는 그의 통치철학은 공화국연합당(RPR)을 주축으로 한 우파정치 이념으로 정착되는등 프랑스 현대정치사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18일은 바로 50년전(1940년)드골 장군이 망명지 런던에서 조국을 향해 「자유 프랑스」방송의 첫 전파를 띄운 날. 『나,드골 장군은 지금 런던에 있습니다』로 시작하여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불꽃은 꺼질 수 없고 소멸돼서도 안된다고 강조,조국의 반 나치 지하운동을 고무하면서 전쟁에서의 승리를다짐한 이 방송은 그뒤 줄곧 나치점령의 질곡에서 헤메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생명의 소리였다. 드골 장군의 탄생일은 11월 22일이지만 그에 앞서 18일부터 기념행사가 본격화 되는 것은 바로 이 「자유 프랑스」방송 개시일을 함께 기념하기 위한 것. 이날 상오 노테르담 성당에서 자유프랑스협회 주최로 추모예배가 올려 지는 것으로 드골 장군탄생 1백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되며 당일 하오에는 개선문에 첫 방송내용을 새긴 동판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헌액된다. 파리 시청 청사 전면에는 첨단기술이 동원된 특수영상기법으로 초대형 드골 초상화가 등장되며 각시도는 이날 별도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파리의 중심부인 콩코드 광장에는 전쟁중 희망의 소리를 전해준 당시의 라디오방송국및 송신탑을 그대로 본 따 제작된 임시방송국이 설치되어 자유프랑스 방송의 첫 방송내용과 당시 프로그램을 재생하게 된다. 또 이날 하오 6시부터 11시까지는 센강 연안에서는 「경의」라는 주제로 빛의 추모제가 화려하게 펼쳐져파리의 밤 하늘을 수놓게 되며 자유프랑스 방송 기념우표도 이날부터 발매된다. 이밖에 각 신문ㆍ방송ㆍ잡지들은 이미 드골장군에 대한 특집물 연재물을 제작ㆍ보도했거나 계획하고 있으며 각 도시마다 드골장군의 대형초상화가 곳곳에 내걸리는등 갖가지 기념행사 계획이 연말까지 꽉 짜여있다.
  • 전국서 「6·10계승대회」/경찰 원천봉쇄/일부 가두진출 격렬시위

    「민자당일당독재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은 10일 하오2시 성균관대 학생회관 앞에서 재야인사와 학생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합동추모제 및 6월항쟁계승 국민대회」를 갖는 등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8개도시에서 집회를 가졌다. 「국민연합」측은 성균관대 집회를 마친뒤 하오5시30분쯤 87년 6월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군 등 지난 70년부터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숨진 1백12위의 영정을 들고 가두행진에 나서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교문앞에서 화염병 1천여개와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편 성균관대 집회를 참가하지 못한 「서총련」소속 학생 5백여명은 이날 하오2시30분부터 한양대에 모여 「국민대회 저지 규탄대회」를 갖고 하오4시부터 교문밖으로 나가 화염병 5백여개를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성균관대 주변에 7개중대 1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모두 70개중대 1만명을 서울시내에 배치,검문검색을 강화했다.
  • 「6월 항쟁」 3돌 집회/국민련,9ㆍ10일 개최

    「전민련」 등 전국57개 재야단체들로 만들어진 「민자당일당 독재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은 8일 「6ㆍ10대회」 3주년을 맞아 오는 9일과 10일 이틀동안 서울 등 전국 18개도시에서 「민족민주열사추모 및 6월민주항쟁계승 국민전진대회」를 동시에 갖기로 했다. 「국민연합」은 또 10일 하오2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지난70년에 분신자살한 전태일씨 등 민주화과정에서 숨진 1백12명에 대한 합동추모제를 열고 신촌로터리까지 평화대행진을 하겠다고 말했다.
  • 차분한 광주… 빗속의 추모/어제 「5ㆍ18」10주

    ◎도청앞 5만인파 평화적집회/시민들,“질서”외치며 자진해산/일부대학생은 밤늦게까지 산발시위/상오 망월동엔 3만여명 몰려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인 18일 광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거행됐다. 이날 상오10시 망월동 5ㆍ18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시민과 전남대ㆍ조선대등 「남대협」소속 대학생들은 하오3시쯤부터 광주시내 카톨릭센터를 중심으로 금남로 2∼3가와 충장로ㆍ도청앞 광장주변에 모여들어 하오8시까지 3시간 넘게 「광주5월 민중항쟁 10주년 계승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가 시작된 하오5시부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파가 5만여명까지 몰렸다. 시민ㆍ재야단체회원과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해체민자당」「노태우퇴진」등의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의 노래를 부르며 50∼1백여명씩 짝지어 대회장소로 모였으며 대회주최측은 대형 마이크로 「질서」「앉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참가자들을 정리시켰다.이날 집회는 오종렬「민주연합공동의장」의 대회사,유가족대표의 인사말순으로 진행,하오8시쯤 별다른 충돌없이 무사히 끝났다. 오의장은 대회사에서 『광주는 10년전 외형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이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비폭력 평화집회임을 강조하면서 질서유지 담당요원 50명을 편성,자체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나 구호등을 외치지 않도록 통제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3만여명은 집회가 끝난 하오8시쯤부터 금남로에서 광주역ㆍ무등산장입구ㆍ공명터미널 등 세방향으로 나뉘어 북구 중흥동 민자당광주전남시ㆍ도지부 사무실 앞까지 3㎞구간을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10분만에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대림동 등 도심 곳곳에서 1백∼2백명씩 몰려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기념식은 17일 집회개최시간의 엄수와 연사들의 반체제적 발언금지등 7개항을 조건으로 경찰당국의 허가를 받아 열렸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에 시작된 망월동묘역 추모행사는 「추모제」「기념식」「씻김굿」등 3부로 나뉘어 빗속에서 4시간동안 진행됐다. 「5ㆍ18유족회」 전계량회장(54)은 추모사를 통해 『아직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애써거부하는 닫힌 가슴들을 열지 못했으며 참혹했던 학살의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애도했다. 또 「5ㆍ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노근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가슴 아프지만 이에 얽매이지 말고 광주항쟁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 실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추모제는 유가족들의 분향과 각 단체 대표들의 헌화순으로 경건하게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 행사는 내용이 다채롭고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어느 해보다 차분하고 질서있게 치러졌다. 경찰은 이날 5ㆍ18묘역 3㎞지점에서 2.5t이상 차량을,5백m 지점에서는 추모식 준비위원회 소속직원 10명이 행사준비차량 및 시내버스ㆍ일부 보도차량만을 통과시켜 예년과 같이 혼잡한 상황은 벌이지지 않았다. 또 추모제가 시작된 상오10시 광주시내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타종을 했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전남대ㆍ조선대 등 「남대협」소속 19개 대학생들은 이날 상오11시부터 각 대학별로 「5ㆍ18광주민중항쟁」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또 서울 등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 5천여명은 하오2시 광주대학에 모여 「5ㆍ18계승 및 광주 5적처단결의대회」를 갖고 망월동 묘역까지 16㎞를 도보행진으로 참배했다. ㅁ임시취재반 ▲사회부=오승호ㆍ성종수기자 ▲제2사회부=임정용기자 ▲사진부=유재림ㆍ김경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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