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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할린 추모단 귀국

    소련 사할린 해역에서 첫 추모제를 마친 KAL007기 희생자 유족 94명등 추모단 일행 1백29명이 2일 하오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귀국했다.
  • 사할린 해상에 한맺힌 절규만…/KAL기 피격 8주기

    ◎유족들 소 영해서 첫 추모제/진상규명·사과·배상 촉구/유족대표/“억울한 넋들에 용서 빌뿐”/사할린 주지사 【유지노사할리스크=외무부공동취재단】 83년 9월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숨진KAL기 희생자 2백69명을 위한 추모제가 1일낮 12시20분(한국시각 상오 10시20분) 소련 사할린의 모네론섬 앞바다에서 열렸다. 유족들은 이날 소여객선 유리트리노프호 선상에서 8년전 사할린 상공에서 영문도 모른채 사라져간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번 오열했다. 홍현모유족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 바다속에서 채 눈감지 못하고 있을 어린자식들의 눈이라도 감겨주고,동강난 육신이라도 찾아주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말하고 『생전에 사랑하던 고향산천과 정든 가정으로 이제 넋이라도 우리와 함께 돌아가자』며 흐느꼈다. 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도 『우리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용서를 빌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가신 님들에 대한 추억이 영원히 간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추모제는 국민의례와 묵념,추도사에 이어 「고르바초프대통령께 드리는 글」「생명을 사랑하는 세계민들께 드리는 글」의 낭독,결의문 채택,헌시,고별사,분향및 헌화 순으로 1시간 20분동안 계속됐으며 유가족 94명외에 공로명주소대사,키레예프 소외무부본부대사등 양국 정부및 국회관계자 40여명도 함께 참석했다. 유족들은 이날 시종 눈물을 감추지 못했는데 특히 김수지양(22·피격당시 교체기장 김희철씨의 딸)이 고별사를 통해 『아버지,허전해질때 마다 그리워지는 아버지….그해 중학 2학년이던 철부지는 이제 대학 4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되었습니다』하며 울먹일 때에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준비해간 꽃들을 바다에 던질 때에는 갑판의 난간을 붙잡고 몸부림쳤다. 유족들은 또 유가족회 부회장인 유인학의원(신민)의 선창에 따라 소련정부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해 진상규명및 배상과 블랙박스의 내용 공개를 촉구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유족들은 결의문에서 항로이탈을 알고서도 추적노력과 인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반성과 배상을 요구했으며 이윤만을 추구하는비인간적 기업행위로 사고야기에 책임이 있는 대한항공측의 반성과 성의있는 유족돕기도 촉구했다.
  • KAL기 희생자 선상 추모제 80분

    ◎8년전 그 바다 위에 진혼의 꽃다발만…/소 악대,「고향의 봄」 연주속 유족 통곡/소복차림 미망인,난간 붙잡고 절규/소 관계자도 눈시울… “진상조사 적극 지원” 약속 【유지노사할린스크=외무부공동취재단】 사고후 8년만에 처음으로 1일 사고현장에서 거행된 KAL기 추모제는 북위 1백41도 21분 동경 46도 32분 추락지점에서 유족들의 눈물바다를 이룬채 1시간20분가량 진행됐다. 소련측이 제공한 대형여객선 유리트리노프호(4천5백t급)선상에서 거행된 이날추모제는 비통한 분위기속에서 엄수됐으며 일부 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고 시종 목놓아 통곡했다. ○…이날낮 12시20분쯤(한국시각 상오 10시20분) 소련군악대의 한소 양국 국가연주로 시작된 추모제는 고인들에 대한 묵념,추도사에 이어 분향및 선상 헌화순으로 진행. 소련작가의 이름을 딴 홈스크항을 떠나 두시간여 항해끝에 사고해역에 도착,뱃고동 소리와 함께 닻을 내리자 소련 육군 군악대는 「고향의 봄」과 양국의 전통 조곡을 연주하기 시작. 이어 한소 양국 정부대표의 추도사와 홍현모유족회장의 추도사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고 사고비행기의 교체기장 고 김희철씨의 딸 김수지양(22)의 고별사에 이르자 유족들의 비통함은 절정에 달했다. 추도사는 공로명주소대사,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홍유족회장의 순으로 진행됐는데 한결같이 KAL기사건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 한국정부를 대표한 공대사는 『냉전대결 상황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진상이 소련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춰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표도로프 주지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어떤 새로운 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 홍회장은 『잦아진 왕래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해명과 사죄없이 사건을 얼버무리고 있어 우리의 아픈 상처를 더욱 깊게 한다』며 『이 바다속에 검은 머리결을 물결에 너울거린채 아직도 눈을 감지못하는 희생자들의 얼굴을 쓸어내려주고 싶다』고 애도. ○…공대사와 소련측 대표들이 분향을 마치자 유족들은 소련군악대가 전통 러시아 조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선상 2층으로 내려와 차례로 헌화. 헌화는 권정달전의원을 비롯한 유족들이국화·백장미·백합등을 들고 갑판으로 내려오자 배의 선원과 사할린 거주 한인등 남녀 5명씩 10명이 대형화환 2개를 10여m아래 바다에 띄우면서 시작. 유족들이 뱃고동 소리와 함께 꽃송이를 던진 뒤에도 한동안 고인의 이름을 크게외치면서 통곡하자 이를 지켜보던 소련 관계자및 선원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20여분간의 선상헌화가 끝난 이날 하오 1시40분쯤 여객선이 큰 고동을 울리며 홈스크항으로 뱃머리를 돌리자 일부 유족들은 『잘있거라』 『다시 찾아오겠다』고 오열을 터뜨리며 난간을 부여잡고 애통해 했다. ○…추모제의 시작을 알리는 소련군악대의 「고향의 봄」연주가 울려퍼지자마자 일부 여자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고 통곡. 윤정임씨(여)는 사고로 숨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식아,내가 어찌 여기있단 말이냐』라고 울부짖었고 하얀 소복차림의 임매심씨(70)와 석수원씨등 연로한 몇몇 여자 유족들도 목놓아 절규해 보는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던 유족들도 홍유족회장이 비통한 어조로 추도사를 낭독하자 대부분눈물을 떨구면서,추모제 현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사할린거주 한인대표로 참석한 서옥재씨(여·51)등 4명의 여자 한인들도 『유족들의 비통한 모습을 보니 우리도 눈물이 난다』며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사고로 아들 부부와 손자등 일가족 4명을 잃었다는 박윤섭씨는 꽃다발과 함께 과자꾸러미를 바다에 던지며 오열. 사고비행기의 부기장이었던 선동휘씨의 미망인 유행자씨는 집 앞뜰의 대추나무에서 따왔다는 대추 한접시를 바다에 뿌리며 고인의 넋을 위로. 선부기장의 아들 재곤씨(26)는 『기장복을 입고 집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글썽. 기장 천병인씨의 미망인 김옥희씨는 시종 눈물을 흘리며 『진실이 반드시 규명돼야 고인도 눈을 편히 감을 것』이라고 진상규명을 촉구. ○…정재문(민자)이수인(신민)박찬종의원(민주)등 국회 대한항공기 피격사건진상규명 청원심사소위 위원들은 추모제가 시작되기전 선상에서 소련 연방정부의 키레예프 외무부본부대사와 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등과 면담을 갖고 사건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회서한을 전달했다. 키레예프대사는 이 자리에서 국회서한을 판킨 외무장관에게 전달할 것을 약속했고 표도로프 지사는 『연방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할린지역의 조사활동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 KAL기 희생 추모/유족 오늘 소로 떠나

    지난 83년 소련공군기에 의해 격추된 KAL007기 희생자 유가족 및 국회 외무통일위원 등 관계자 1백29명이 사할린 현지에서 열리는 해상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31일 상오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출국한다.
  • KAL기 희생자 원염 풀렸으면…/희생자유족회 홍현모회장

    ◎소측에 정식으로 배상요구 방침 『사고해역에서의 추모제가 이제야 치러지게 되었지만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들의 영령과 유족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달래졌으면 합니다』 오는 1일 있을 대한항공기 피격8주기 선상추모제에 참석하기위해 유족들을 인솔하고 소련으로 가기에 앞서 희생자 유족회장 홍현모회장(54)은 밝혔다. 홍회장은 『지난달 31일 소련 고르바초프대통령으로부터 추모제를 허가받은뒤 지난 20일 소련에 가 사고현장을 답사하고 추모제에 대한 모든 협의를 마쳤다』면서 『이번 추모제는 전과는 달리 희생자유족94명과 관계공무원 등을 포함,1백29명이 희생자들의 영혼이 떠돌고 있는 사고해역 사할린 모네론섬근처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측은 이를 위해 미쉬카 사할린주 부지사를 위원장으로 추모제 행사 준비위원회를 구성,추모행사의 세부적인 사항을 시행할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추모제에 필요한 선박과 군악대의 조곡연주,공항시설이용료등 모든 시설과 경비는 소련측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홍회장은 또 『지금까지의 보상요구는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공허한 외침정도밖에 안되었다』고 말하고 『최근의 소련정세변화와 개방화에 따라 사고당시의 숨겨진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만큼 배상도 정식으로 요구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건립문제에 대해 『사고 당시 해군대위로 잔해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네벨리스크시의 알라초프시장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으며 사고해역이 바라다보이는 공원언덕에 2천여평 규모의 대지를 마련,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있는 탑과 같은 모양으로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령탑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가 제일 크지만 소련의 만행에 대한 소련인들의 잘못과 뉘우침을 상징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 KAL기 참사 추모제/소 사태불구 예정대로/한·소 재확인

    한소양국은 최근 소련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도 불구,「KAL기 피격 8주기 해상 추모제」를 당초 예정대로 오는9월1일 사할린 근해 모네론섬 부근에서 치르기로 재확인했다고 외무부가 27일 밝혔다.
  • KAL희생 위령비/건립계획 차질없어/소 관리 약속

    소련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실각에도 불구하고 지난 83년 9월1일 사할린근해 상공에서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 007기 희생자 2백69명의 유족들이 추진해온 위령비 건립과 사고해역에서의 선상추모제 거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3일 KAL기 희생자 추모제를 준비하기 위해 출국,사할린을 방문한후 20일 하오 귀국한 KAL기 피격 희생자유족회 홍현모회장(55)은 김포공항에서 『네벨리스크이고르 파블로비치 시장이 위령비 건립에 필요한 부지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 제2차범민족대회/북측 통일각서 개최

    【내외】 북한은 15일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에서 제2차 범민족대회를 개최한데 이어 판문점 통일염원합토비앞에서 이른바 희생된 남조선의 애국열사들을 추모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고 평양방송이 이날 하오2시 뉴스를 통해 보도했다.
  •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검토/외무통일위

    ◎KAL기 피해배상 청원 심의/고르비,“새로운 사실없다” 서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 5일 예레멘코 주한대사대리를 통해 KAL기격추사건 한국유가족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소련측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KAL기격추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모제를 거행키 위한 한국측 유가족의 사고현장방문을 허용한다』고 말했다고 외무부가 8일 밝혔다. 홍현모 유가족회장이 지난 3월28일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 대한 이 답신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그러나 『KAL기사건의 진상은 지난 89년 소련당국이 발표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출한 내용이외에 새로운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외무통일위는 이날 상오 유종하외무차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청원심사소위(위원장 정재문의원)를 열어 KAL기격추사건의 진상규명및 피해배상에 관한 청원을 심의했다. 이날 소위에서는 정부측이 외교경로를 통해 오는 10월말까지 KAL기사건의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한뒤 소련측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단구성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유엔안보리재심의등의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 “15일까지 명동성당서 철수/「대책회의」/더이상 머무를 명분없어”

    ◎경찰선 수배간부 검거 총력 재야단체들의 모임인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는 11일 상오 현재 자리하고 있는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12일과 15일 사이에 철수하기로 하고 상설기구인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성당측이 밝힌 입장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성당에 머무를 명분이 없어지고 시기적으로도 또 다른 「국민대회」 등을 개최할 여건이 안 돼 있는 데다 장기투쟁을 위해서는 15일까지는 성당을 떠나기로 했다』면서 『구체적인 철수시기와 방법은 신변보호 차원에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대책회의」의 철수는 12일 「김귀정양 장례식,13일 청년단체결의대회,14일 「민교협」 주최의 공청회,15일 「민주열사 합동추모제」를 주관한 뒤 이뤄질 것으로 보이나 김양의 장례만 마치면 곧바로 철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조직될 「국민회의」는 광역의회의원선거에도 야당과 연대해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관계자는 밝혔다. 한편 경찰은 「대책회의」의 명동성당 철수계획 발표가 있자 성당 주변에 전경 20개 중대 2천4백여 명을 배치하고 「대책회의」 관계자들의 도피에 대비하고 있다.
  • 「6·10집회」 취소사태/각 대학,참가학생 거의 없어

    ◎「대책회의」도 대회 취소 시위국면이 진정되고 있다. 지난 주말의 제5차 국민대회를 고비로 집회와 시위열기가 가라앉으면서 재야와 학생들이 집회와 시위를 자제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23일째 장기농성중인 「범국민대책회의」는 10일 하오에 개최예정이던 「6·10항쟁기념대회 및 민주열사추모제」를 취소했으며 서울시내 대학가도 서울대·고려대·외국어대·중앙대 등 7개 대학에서 「6·10항쟁기념식 및 10인 민주열사추모식」이 학생이 모이지 않아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서울대에서는 10일 하오 1시 도서관 앞뜰에서 「6·10항쟁 4주년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학생들이 모이지 않아 집회가 취소됐다. 학생들은 이에 따라 교내집회 대신 지하철역 등지로 나가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는 「홍보전」을 열어 이날 행사를 대체하기로 했다. 또 중앙대도 이날 하오 2시 「민주열사 합동추모식 및 6·10대회 출정식」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성원이 되지 않아 행사가 무산됐다. 이날 「6·10집회」가 이루어진곳은 감리교 신학대뿐으로 참가인원은 1백여 명에 불과했다.
  • 「6·10대회」 철회의 저변/황성기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재야 쪽의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10일 하오 갖기로 했던 「6·10항쟁 기념대회 및 민주열사 추모제」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취소됐다. 이 집회는 지난 87년 제5공화국 말기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냈다는 「6·10투쟁」을 기념하는 재야쪽의 유일한 행사였기 때문에 재야와 운동권학생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사는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사망사건으로 때를 만난 「대책회의」가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양의 사망사건을 호재로 활용하면서 「6·10」을 맞이한다는 구도 아래 추진됐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책회의」 쪽에는 악재가 잇따라 겹쳐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주말인 지난 8일 전국적으로 추진했던 이른바 「제5차 국민대회」는 참가자들이 적어 거의 무산되거나 열렸더라도 국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확인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따라서 주최측 참가자 몇십명만 모아놓고 텅빈 집회장소에서 공허한 구호만 외쳐대는데 그칠 것이 뻔한 집회는 아예 갖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아 보인다.『「6·10기념대회」는 지난 8일에 치렀던 「국민대회」로 대신한다』는 「대책회의」 한 관계자의 궁색한 변명은 이같은 말못할 사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책회의」는 미련을 못 버린 듯 「국민회의」라는 상설기구로 전환,강도높은 대정부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도의 국민들이 이제 「명분」은 물론 「실리」조차 없는 소모적인 「투쟁」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도 아니다. 바로 「대책회의」 스스로가 철없는 운동권학생들을 앞장세워 다 낡아빠진 공상적 이데올로기의 강변과 한탕주의식 폭력시위를 조장하고 반윤리적 시투를 감행해온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을 여론조작의 결과라고 항변한다면 그 항변이야말로 여론조작을 위한 궤변이 될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이같은 진실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을 「대책회의」 관계자들은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 시위로 얼룩진 「5·18」/44개 시군서 장례… 추모… 파업

    ◎한밤 광주로 운구… 망월동 안장/「노제」 충돌 끝에 공덕동서 치러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며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은 온통 군중집회와 격렬한 시위로 얼룩졌다. 이날 강군의 장례행사는 무사히 치렀으나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밤늦게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곳곳에서 경찰관서 등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또 상·하오에 걸쳐 전남·광주 등지에서 남녀 3명이 또 분신,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강군의 「노제」는 「대책회의」측이 경찰의 설득으로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거행됐으며 이어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 앞∼국립묘지 앞∼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휘문고교에서 잠시 들른 뒤 하오 10시10분쯤 고속도로로 진입,광주로 향했다. 19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곧바로 5·18묘역으로 가 시신을 안장했다. 「대책회의」측은 이날 집회와 시위에 서울에서 7만여 명을 비롯,광주·부산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8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또 「전노협」은 이날 9만여 명이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노동부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9개 도시의 32개 노조 1만2천5백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부터 서울에서는 「대책회의」측 장례행렬이 이화여대 입구에서 서울역 쪽으로 향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장시간 공방전을 벌였다. 광주에서는 상오 10시 망월동 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열린 것을 비롯,하오 금남로에서 「5·18정신」의 계승 등을 주장하는 「국민대회」와 종교단체·근로자·학생들의 추모집회가 잇따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이밖에 부산 전주 인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고 군청소재지에서는 이른바 「농민대회」 등이 열렸다. 이들은 곳곳에서 도심진출을 기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하자 주요간선도로 등을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막다 서울에서 53명을 비롯,전국적으로 73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가운데 91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18일 강군운구 도착해도 광주에선 추모제 어렵다”/광주 대책회의

    ◎「5·18」 기념행사 겹쳐 곤란 【광주=최치봉 기자】 「고 강경대 열사 폭력살인규탄 및 박승희 학생 분신 광주전남대책회의」는 16일 강군의 장례일과 관련,『5·18 11주기를 맞아 추모제와 각종 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19일 강군의 시신이 광주에 도착하더라도 추모행사를 실질적으로 갖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이날 『강군의 장례일이 5·18행사와 겹쳐 혼란이 우려되므로 장례일정 조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범대위」측에 대표 2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 강군 「노제공방」 며칠 끌듯/경찰의 「여의도」제시 대책회의서 거부

    ◎장례 「5·18」 전­후 놓고 부심/대책회의/경찰,오늘 노제장소 다시 협의키로/대책회의,「국민운동본부」로 개편 14일 치르려던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강군의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시국의 긴장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경찰과 재야·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측은 14일 하오 신촌로터리에서 「6인 합동추모제」를 지낸 뒤 강군의 운구행렬을 시청 쪽으로 돌리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연세대로 되돌아가 철야농성을 한 뒤 15일 상오 『시청 앞 노제가 허용될 때까지 강군의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혀 경찰과의 정면대립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날 상오 이상연 내무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강군의 장례행렬이 과격시위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청 앞 「노제」는 계속 불허한다』는 강경방침을 재확인,별도의 타개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계속적인 충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 「대책회의」측과는 별도로 「전대협」과 「전노협」도 18일을기해 동맹휴학과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집회 및 시위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긴장분위기는 「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인 18일을 전후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여지며 이에 따라 경찰은 진압대책을,재야 쪽에서는 가두시위계획을 각각 세워놓고 있다. 한편 강군의 사망 이후 줄곧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를 주도해온 「대책회의」측은 이달 안에 이 기구를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확대하고 18일의 전국적인 집회뿐만 아니라 6월까지 차원높은 투쟁을 벌여 정권퇴진운동을 확산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 시위시국은 점점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대책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 발족되는 국민운동본부는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갖춰 지금까지의 사복체포조 해체 등 부분적 투쟁에서 정권퇴진운동으로 확대시켜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임금인상을 위한 전국노동조합투쟁본부」는 18일 하룻동안 4백60개 노조의 40만명을 동원,총파업을 벌인 뒤 「2차 국민대회」에 참가하기로하는 등 「대책회의」측의 집회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러나 9일 이전에 쟁의발생신고를 한 40여 개의 노조 말고는 일방적으로 파업을 단행할 경우 주동자들을 모두 의법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전대협」은 15일부터 18일까지 4일 동안을 「1백만 청년학도 결사투쟁기간」으로 선포하고 총학생회 간부 등이 대학별로 시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15일 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7일쯤 강군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밝혔다. 강씨는 이날 『아들의 장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오해를 씻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면서 『시청 앞에서 노제가 거행된다면 그 날짜는 18일 이전이라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범국민대책회의는 유족의 뜻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기본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아 18일 이전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장지인 광주에서도 5·18행사 준비문제로 장례를 그 이전에 치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책회의는 이에 앞서 이날 하오 10시부터 상임대표자회의를 열어 장례문제를 포함한 향후의 일정을 논의했으나 16일 상오 2시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수호 집행위원장은 16일 0시 유족들의 의사를 타진키 위해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강군 빈소를 찾았으나 마침 강씨가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다. 한편 15일 하오 8시30분쯤 이택천 서대문경찰서장이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만나 노제 장소로 여의도광장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책회의측으로부터 거절당했으며 16일중으로 경찰 고위간부가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노제 장소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한밤까지 곳곳서 산발 공방/어제 강군 영결식

    ◎신촌·이대 앞서 화염병·최루탄 대결/운구행렬 반나절 노상대치/경찰 4만5천명,도심진입 차단/대책회의,장례 연기… 1천명 연대서 철야농성 명지대생 강경대군 장례식날인 14일 「대책회의」측의 서울시청앞 「노제」 강행과 경찰의 봉쇄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명지대에서의 영결식과 신촌로터리에서의 추모집회를 마친 강군의 운구행렬은 시청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연세대로 가 농성에 들어갔으며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의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가두시위에 나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 시민들은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영결식과 추모제가 열린 신촌·연희동 주변 상가는 아침부터 미리 철시했으며 이 일대는 물론 도심 곳곳에서 교통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영결식◁ 강군의 유족과 「대책회의」 관계자 조문객 등 80여 명은 이날 상오 9시 명지대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가졌으며 하오 9시45분쯤 대운동장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장례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는 조사에서 『오늘은 강군을 땅에 묻는 날이 아니라 71년 6월7일 시작됐던 생의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출발하는 날이니 강 열사의 장도를 비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강군의 어머니 이덕순씨(43)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으며 명지대 총학생 부회장 김홍석군은 조사를 읽다가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할께요』라는 대목에 이르자 오열하기도 했다. 또 이날 참석한 김대중 총재는 조사를 읽다가 학생들로부터 『보수야당 물러가라』는 야유를 받았으며 낮 12시15분쯤 연희동 교차로 근처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많이 마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상오 10시30분쯤에는 이상연 내무부 장관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강군의 명복을 비는 조화를 보내왔으나 모두 접수를 거절당했다. 영결식에서는 「서울노동자 문화예술단체」 회원등 5백여 명이 부활굿·조가합창·풍물놀이 등 문화행사가 펼쳐졌고 『경대는 살아 돌아온다』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깃발 등 3백여 개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대학생 2천여 명이 영구차와 운구행렬을 경호했다. ▷합동추모제◁ 당초 낮 12시30분에 신촌로터리에서 가질 예정이던 합동추모제는 영결식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 운구행렬이 명지대를 나와 신촌로터리 쪽으로 가던 길에 남가좌동 홍남교 네거리에서 경찰과 2시간 동안 대치하면서 돌과 최루탄으로 공방전을 벌이느라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시50분쯤에야 치러졌다. 신촌로터리 주변에는 이날 상오부터 시위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하오에는 모두 7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제공방◁ 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은 하오 6시35분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청앞 쪽으로 가다가 이화여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기중이던 경찰이 최루탄으로 저지하자 이에 맞서 화염병·돌멩이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선봉대」 3천여 명이 이대입구 부근에서 경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유가족과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에서 신촌쪽 6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3시간여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하오 9시30분쯤 대책회의측은 장례를 연기,연세대에 들어가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강군의 사체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다시 안치하려 했으나 병원측으로부터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학생회관 1층 로비에 옮겨놓고 밤을 보냈다. 하오 8시쯤 시위대는 이대입구에서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페퍼포그차량 3대에 화염병을 던져 모두 불태우기도 했다. 「전대협」 2천여 명은 하오 8시30분쯤 종로2가와 3가로 진출해 경찰에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했으며 하오 6시에서 9시 사이 종로 퇴계로 명동성당 신세계백화점 앞 등에서 1만5천여 명의 시위대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또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도심으로 빠져나온 시위대 중 4천5백여 명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경비◁ 경찰은 신촌에서의 합동추모제까지는 허용하되 시청앞 노제는 불허한다는 방침 아래 신촌에서 이화여대 앞까지 50개 중대,공덕동로터리 일대에 40개 중대 1만여 명으로 저지선을 치고 대로변 골목 입구마다 철제바리케이드나 경찰버스 등으로 도로를 봉쇄,도심 진입을 막았다.
  • 「강군장례」 주요도시서 시위/경찰 봉쇄로 시청앞 노제 무산

    ◎운구행렬 연대로 되돌아가/야 총재도 참석/전국서 10만명 추모집회·시위 전경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숨진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는 서울 시청앞 노제를 둘러싸고 당국과 강군사건 대책회의측이 끝까지 대립,또다시 서울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이 밤새 계속됐다. 강군의 장례식은 14일 상오 8시30분 명지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시작으로 영결식을 마치고 하오 5시50분쯤 서울 신촌 로터리에서 추모제를 가진 뒤 서울 시청앞에서의 「노제」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측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에 대책회의측은 『시청 앞에서 노제를 반드시 치르겠다』는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 등 유가족의 의사 등을 받아들여 하오 9시30분쯤 운구행렬과 함께 일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가 농성에 들어갔다. 대책회의측은 이어 『현 정권이 평화로운 장례행렬을 폭력으로 가로막고 있는 이상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서 강경대군 장례식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6인 열사의 장례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현재의 대책회의를 확대,「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명칭을 바꿔 투쟁수위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해 강군사건으로 빚어진 시국의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날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의 7만여 명(경찰추산 3만5천여 명)을 비롯,전국의 주요도시에서는 모두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강군을 추모하는 집회와 시위에 참가,도심진출을 시도하며 경찰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영결식에는 신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소속의원 및 당직자 4백여 명과 함께 참석,본격적인 장외투쟁을 시작했으며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도 소속의원 등 2백여 명과 영결식에 참석한 뒤 한 동안 운구행렬을 뒤따랐다. 이에 앞서 전국 1백여 개 대학 학생 4만2천여 명은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도심지 시위에 합세했다. 경찰은 이날 지방의 전경까지 차출해 신촌로터리에 1만여 명을 비롯,서울에 2만4천여 명 등 전국적으로 4만5천명을 배치했으며 파출소 민자당사 등 피습가능성이 큰 공공건물의 경비도 강화했다. 한편 경찰은 신촌로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과격한 시위를 벌인 유민우군(연대 행정학과 3년) 등 17명을 연행했다. 서울시경은 이날 서울에서 경찰 27명이 시위진압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 고 이철규군 2주기/조선대생 추모집회

    【광주=최치봉 기자】 조선대생 1천여 명은 6일 하오 4시30분 교내 민주로에서 「고 이철규 열사 정신계승 및 학원자주화투쟁 4주기 계승대회」를 갖고 『열사의 반미·반독재투쟁을 계승해 노정권 퇴진투쟁에 앞장설 것』을 결의한 뒤 5백여 m 떨어진 전남대병원 앞까지 평화행진을 벌였다. 이에 앞서 조선대 총학생회(회장 윤영덕·21·정외과 4년)는 이날 상오 11시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서 학생과 시민 등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철규 열사 추모사업회」(회장 문병란 조선대 교수)와 공동으로 「고 이철규 열사 2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 대학가 「4·19」 31돌 행사

    서울대·고려대 등 서울시내 11개 대학생 1만6천여 명은 4·19의거 31주년을 맞아 18일 각 학교별로 기념식과 함께 수유리 4·19묘지 등까지의 마라톤대회를 가졌다. 고려대학생 8천여 명은 이날 상오 11시 학생회관 앞에서 「4·19 31주년 기념식」을 가진 뒤 이들 가운데 1백여 명은 낮 12시50분부터 수유리 4·19묘지까지 왕복 16㎞ 구간에서 마라톤대회를 가졌으며 7천여 명은 하오 1시15분쯤부터 도로를 따라 4·19묘지까지 도보행진했다. 이날 4·19묘소에는 고려대·성균관대·덕성여대 등 서울시내 8개 대학생 1만여 명이 학교에서 행진을 하거나 버스 편으로 찾아와 헌화와 묵념으로 참배했으며 하오 5시50분쯤에는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4·19유족회 등 3개 유족단체 회원 30여 명도 찾아 참배한 뒤 추모제를 가졌다.
  • 유엔가입·북의 핵문제가 핵심/한·소 제주정상회담 어떤 얘기 오갈까

    ◎한국 유엔정책에 명시적 지지 요청/한·중­일·북 수교 관련,깊숙한 논의 예상/동북아 정세 검토·경협방안도 모색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오는 19일 제주 한소정상회담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의 본격적인 태동의 신호가 될 것 같다. 한소 양국 정부는 제주회담과 관련,이미 의제를 합의했고 이들 의제에 일관하게 흐르는 맥락은 바로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의 샌프란시스코회담,12월의 모스크바회담에 이어 10개월여 만에 3번째 갖는 이번 회담에서는 『동북아 나아가 아태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이 핵심과제』라는 공동인식을 재확인하는 바탕 위에서 각 의제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회담의 의제는 대체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남북대화 등 남북한 관계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한소 양국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 강화 ▲동북아 전반의 안정과 평화,지역정세 검토 및 아태 협력문제 등 5개 의제로 절충되었다고 청와대측은 밝혔다. 이들 의제는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리시켜 논의하기보다는 동북아 평화정착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1∼2개의 의제를 묶어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한반도 평화와 통일,남북한 관계개선,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 등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차원에서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의제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될 문제는 첫째 한국의 유엔가입 실현,둘째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화해질서를 구축하는 첩경임을 강조하고 북한이 끝내 동시가입을 거부한다면 한국이라도 먼저 가입하는 것이 이러한 목표를 앞당기는 현실적인 방도임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 동안 한국의 유엔가입에 대해 묵시적 지지를 견지해온 소련이 차제에 명시적 지지를 표함으로써 안보리에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도 같은 입장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음을지적할 것 같다. 소련측은 이미 유엔의 보편성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북한이 주장하는 유엔의 「단일의석」 가입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진전된 입장 천명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촉구 문제에 관해서는 양국 정상의 의견이 거의 일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을 수행하고 있는 이그나텐코 대통령궁대변인,마르티노프 소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 등은 이미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모든 핵연료와 핵관련 협조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소련은 북한이 지난 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으면서도 1년6개월 이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핵안전협정 가입을 계속 미뤄오자 지난해 핵폭탄 제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핵 재처리 기술진을 모두 철수시켰고 기타 기자재 지원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련은 대북 핵안전협정 가입 촉구 입장을 공식화하지 않았는데 이번 제주회담을 계기로 한 번 더 공식표명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중국도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촉구에 관한 한 이미 소련과 같은 보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사찰 문제와 관련,소련측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문제를 다시 한 번 꺼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는 소련측이 산발적으로 제안해온 동북아 집단안보체제 문제와 함께 미국 등 다른 나라와도 연관된 문제이고 특히 중국 등 주변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만이 비핵화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우리의 입장이 감안돼 원칙적인 언급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대화 등과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그 동안 팀스피리트훈련 등으로 중단된 남북고위급회담의 재개,그리고 남북 관계개선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이 개방화·민주화할 수 있도록 소련측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관측된다. 소련측은 노 대통령의남북한 관계개선 노력을 평가하고 최선의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최근의 소­북한 관계에 비추어 북한에 대한 설득이나 영향력 행사에는 한계가 있음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 강화문제에 대해서는 양국 정상이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하면서 구체적인 문제는 양국 외무장관회담·경제장관회담에서 논의토록 할 것 같다. 동북아 전반의 안정과 평화,아태지역의 협력문제는 최근의 이 지역 정세검토와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구축되고 있는 화해의 새로운 질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아태지역에도 구축되어야 한다는 공동인식 위에서 일소정상회담의 결과를 논의하고 5월 중순에 있을 소중정상회담과 관련,깊숙하게 의견교환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 긴장완화·냉전종식을 위한 소중의 공동노력 내용,한중 수교,일­북한 국교정상화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도 병행될 것 같다. ◎“소서 추가경협 요청 없었다”/「제주회담」 준비차 귀국 공로명 주소대사/“KAL기 사건해명에 적극적 자세/이번은 실무방문… 별도 공식방문 있을 것” 『이번 한소정상회담은 양국간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의제 등을 정해놓고 대화하기보다는 양국 협력관계 증진방안과 아태지역 평화정착 및 긴장완화 구축문제 등 전반적인 상호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것입니다』 제주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지난 15일 일시귀국한 공로명 주소 대사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을 사흘 앞둔 16일 외무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 동안 모스크바에서 소련 외무부측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협의를 하면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면서 회담의 의미와 전망 등에 대해 주재국 대사로서 견해 등을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이 제주도로 결정된 데 대해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회담장소는 소련측이 먼저 제의해와서 노태우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양국 정상이 교환한 메시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번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은 공식 국빈방문이 아니고 실무방문(Working Visit)인만큼 언젠가는 공식방문을 하게 될 것이며 소련측도 그렇게 알고 있다』 ­소련측이 한소정상회담 개최사실을 북한에 통보했는지. 『통보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소련은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는 한 대북 핵개발기술 및 원료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마르티노프 소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 등이 도쿄에서 한 발언은 소련의 입장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양국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으며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에 외교채널을 통해 수시로 얘기해왔다. 소련측은 그 동안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해야 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이번 제주정상회담에서 소련의 대북 핵원료 공급중단 등에 대한 공동선언이 있을 것인지. 『공동선언(코뮈니케)은 없을 것이다. 회담 후 양국 대변인이 회담내용을 설명할 것으로 안다. 핵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인만큼 이 문제가 정상간 거론될 것이며 진일보된 설명이 있을 것이다』 ­KAL기 사건에 대한 소련측 입장은. 『소련은 기본적으로 KAL기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데 호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사할린 추락지점에서 가까운 한 도시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운동도 비공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오는 9월1일 8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기리는 뜻에서 유족들이 추진하고 있는 해상추모제에 대해서도 방문인원 및 방법 등을 통보해 달라고 했으며 우리측은 곧 소측에 알려줄 것이다』 ­소련측에서 추가경협 요청이 있었나. 『없었다. 다만 대소 경협이 빨리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소련 경제는 올 여름부터 내년까지가 어려운 고비라고 본다. 여태껏 제도가 나빠 소 경제가 침체됐지만 언젠가는 부흥할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데. 『소련 내부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도 있지만 막상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대신할 인물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소련은 현재 일종의 혼란스러운 전환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파와 개혁파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다』 ­주소 대사관과 소련 외무부와 협력은 잘 이뤄지고 있나. 『우리가 면담을 요청하면 소련 외무부 직원들은 곧잘 응해와 접근이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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