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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안산 세월호 촛불집회 열려..어버이연합·자유대학생연합은 왜?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안산 세월호 촛불집회 열려..어버이연합·자유대학생연합은 왜?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자유대학생연합’ ‘어버이연합’ 토요일인 1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무사 귀환을 바라는 집회가 열렸다. 천도교·원불교·천주교·불교·기독교 평신도가 연대한 ‘5대종단 시국공동행동’은 오후 5시 청계광장에서 경찰 추산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부실대응을 규탄하는 연합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불법 부정선거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또 희생자, 실종자 가족의 뜻을 받아들여 진상 규명 특검과 청문회를 실시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아래 원탁회의)는 이날 오후 6시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이라는 주제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모와 청소년 등 시민 5000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1700명)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참석했다. 앞서 오후 2시와 4시 홍대입구와 명동성당에서는 경희대 재학생 용혜인(25·여)씨가 기획한 ‘가만히 있으라’ 3차 침묵 행진이 열렸다. 검은색 옷과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200여명(경찰 추산)의 참가자들은 노란 리본이 묶인 국화와 ‘가만히 있으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희생자의 유족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행진 후 자유발언에서 “동생이 떠났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동생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다”며 “내 동생뿐 아니라 희생당한 모든 분을 위해 해야 할 행동이라고 믿는 행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7시 경기도 안산 고잔역으로 이동해 안산합동분향소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과 신촌시민사회단체는 각각 서울역과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문화행사를 열고 행진했다. 보수성향 단체인 어버이연합도 오후 6시쯤부터 동아일보사 앞에서 희생자 추모집회를 진행했다. 자유대학생연합은 앞서 5시쯤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사건을 이용해 정치 선동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한편 안산에서도 촛불추모제가 이어졌다.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사회연대가 준비한 추모행사가 오후 6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다. 행사에는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 등 주최 측 추산 2만명(경찰 추산 8000명)이 참석했는데 이들은 길이 300여m, 폭 50여m에 달하는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촛불을 들고 슬픔에 빠진 도시의 밤을 밝혔다. 추모행사는 경기 굿 위원회의 살풀이춤으로 시작해 가수가 꿈이었던 단원고 학생 희생자의 생전 노래 음성,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과 단원고 학생 희생자 2명의 유족 발언을 듣고 구조 작업에 실패한 정부를 규탄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이번 사고로 숨진 박모 군의 아버지는 ‘희망이란 끈을 놓으면서 하늘로 보내는 애비의 편지’에서 “못난 땅에 태어나게 한 무능한 애비로서 무릎 꿇고 사죄한다”며 울먹였다. 추모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이에 앞선 오후 3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에 마련된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에 모였다. 노란 리본을 매듭짓고 분향소 주변으로 둥글게 늘어서 인간띠를 만든 뒤 묵념하고 ‘하늘에서는 부디 편안하길’ 등의 글귀가 새겨진 풍선 수천 개를 일제히 하늘로 띄워 보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슬픔 나누고 희망 모으자” 세월호 아픔 힐링

    “슬픔 나누고 희망 모으자” 세월호 아픔 힐링

    세월호 참사 이후 종교계가 이른바 ‘힐링 모드’로 급속하게 선회하고 있다. 4~5월 중 예정된 기념행사를 대폭 축소, 혹은 취소하는 한편 희생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국민들과 함께 극복의 총력을 모으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불교계와 원불교, 개신교계는 그동안 흩어졌던 기도와 봉사의 구심점을 갖춰 희생과 아픔의 현장에 모여드는 추세여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의 주요행사인 연등회와 봉축 법회를 대거 바꿔 ‘실종자의 생환 기원’과 ‘국민 고통·슬픔 함께 나누기’로 선회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올해 연등회는 화려한 장엄무, 가무를 지양하고 국민의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함께 모으는 경건한 행사로 전환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6일 오후 동국대 운동장서 열리는 어울림마당은 기존 연희단의 공연 대신 희생자들을 위한 천수경 독경과 석가모니불 정근,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축원의식으로 진행된다. 같은 날 오후 7시 동국대∼동대문∼종각사거리 구간의 연등행렬에서도 화려한 장엄등 대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백색 장엄등과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적색 장엄등을 선두로 스님 300여명이 백색등을 들고 행진한다. 오는 5월 6일 조계사에서 열리는 봉축법요식도 추모법회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봉축 행사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희생자 추모와 유가족 돕기의 움직임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조계종은 재난구호봉사단을 사고 현지에 급파해 구조대원과 유가족 지원에 매달리고 있으며 부산불교연합회는 연등연합대회와 제등행렬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적절한 시기에 추모제를 열기로 했다. 태고종도 전국 시·도 교구 종무원과 사찰에서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매일 봉행 중이며, 진각종도 전국의 심인당(법당)에서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강도불사’를 열고 있다. 원불교는 최대 경절인 오는 28일 대각개교절(창교일) 기념식을 축소하고 대각개교절을 기념한 놀이잔치 등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지난 21일부터 진도 교당에서 매일 두 차례씩 실종자 가족들이 동참한 가운데 실종자와 구조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독경을 진행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에 재난재해구호대와 원봉공회를 파견했으며 진도실내체육관에 자원봉사센터를 마련, 구호대원·가족에게 차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최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관에서 긴급 교단장 회의를 열고 다음 달 11일까지를 ‘슬픔을 당한 가족과 함께하는 공동기도주간’으로 선포했다. NCCK는 회원교단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 “한국교회가 단 한 사람의 생존자까지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당부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회원 교단장들은 소속 교회에 새벽기도회나 주일 예배에 세월호 관련 주제를 놓고 특별기도 시간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교인과 시민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처를 교회별로 마련토록 독려하고 있다. 앞서 문화사역 단체인 마커스 미니스트리는 설립 11주년을 맞아 대규모로 준비했던 행사를 취소했다. 이와 맞물려 천주교도 교구별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회를 차례로 열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월호 추모 연등회 열린다…세월호 침몰 사고 위로

    세월호 추모 연등회 열린다…세월호 침몰 사고 위로

    ‘세월호 추모’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사고로 석가탄신일(5월6일)을 전후한 불교계 최대 축제인 연등회(燃燈會, 중요무형문화제 제 122호) 행사가 예년의 축제 분위기가 아닌 추모제 형태로 진행된다. 전국 대부분의 사찰은 봉축행사는 진행하되 연등 문화제는 축소하거나 취소하고 연등행렬은 추모 분위기로 바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로 했다. 사찰 앞에도 화려한 연등 대신 백(白)등을 달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할 예정이다. 21일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오는 25~27일 종로 일대에서 예정됐던 연등회 문화제 행사를 취소하고 연등행렬만 추모제 형태로 열기로 했다. 26일 저녁 7시 연등행렬은 동국대 운동장에서 연등회 기념법회후 종로, 조계사로 이어지며 백등을 앞세워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될 예정이다. 조계종은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 예정됐던 연등 문화제는 취소하고 조계사 앞에서만 체험행사를 갖기로 했다. 한편 연등회 보존위원회 부처님오신날봉축위원회는 지난 16일 불기2558년 부처님오신날 연등회의 시작을 알리는 점등식을 광화문 광장에서 가졌다. 위원장 자승스님은 기원문을 통해 “진도 앞바다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는데,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기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최근 잠시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조랑말은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춤을 췄다. 가수 싸이의 말춤이다. 전 세계가 삽시간에 ‘코리아표’ 조랑말에 흥분했다. 역사상 말로 세계를 지배한 칭기즈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반도에서 시작된 말춤에 세계인들이 열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마민족의 유전자가 확 폭발하며 빛을 낸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마전술과 사냥술을 갖고 있다. 그 원류는 고구려의 기마술이다. 특히 호랑이를 잡는 기마 사냥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상상할 수 없는 문화였다. 고분벽화 속의 수렵도에 고스란히 그 흔적이 그려져 있다. ●기마민족 아니었으면 싸이 말춤 성공했겠나 고성규(54)씨는 고구려 기마무예를 20년째 홀로 외롭게 연구하고 있다. 수렵도에 그려진 기마술에 반해 몰두했다. 본인이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창을 던지는 무예까지 스스로 터득했다. 그냥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중심을 잡기 힘든데 그는 전사, 측사, 후사 등 각 방면으로 고난도의 활쏘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마무예는 물론 말에 대한 이론도 척척박사다. 아시아·유럽 등 세계 각국의 말을 직접 사 들여와 키우며 연구한 결과다. 지난달 27일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집 입구에는 ‘마구간’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잘생긴 하얀 말이 낯선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히힝” 인사를 한다. 고씨가 마구간을 안내하면서 말을 일일이 소개한다. 말들이 저마다 표정을 지었기에 마치 말과 인터뷰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안, 미국의 아메리칸 포니 등은 연구용으로 수입해 왔다. 그 뒤를 이어 몽골 말, 내몽골 말, 러시아 아무르강 출신 말, 한라말. 일송정 해란강의 만주 말, 호주 말, 네덜란드 말 등 출신 성분도 다양하다. 모두 23마리를 소개받았다. “칭기즈칸이 유럽까지 원정 가서 싹쓸이하다시피 이긴 까닭을 아시나요. 그건 바로 몽골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덩치는 유럽 말에 비해 작지만 거친 땅에서 자라 공격성이 강하고 아주 민첩하지요. 회전력이 유럽 말에 비해 2~3배 더 빠릅니다. 일제 때 일본 경찰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호주 말을 타고 왔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조랑말보다 몸집이 더 큰 말을 사용하면서 심리적 공포를 주기 위해 칼까지 차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날쌘 조랑말을 길들여 풀어놨더라면 호주 말들을 모두 쓰러뜨려 역사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20년째 수렵도 속 활쏘기 등 무예 독학 조랑말은 우리의 전통 말인 과하마(果下馬)와 몽골 말의 교배로 태어난 말로 발 뒤차기가 정교하고 민첩한 특징을 지녔다고 고씨는 설명한다. 과하마는 키가 작아 말을 타고서도 능히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구려와 동예의 특산물이었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朱蒙)이 타고 다니면서 전승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는 이 같은 사실에 흥미를 느껴 고구려 벽화 속 수렵도를 연구하는 한편 직접 말을 키워 여러 실험을 통해 활쏘기와 창던지기 등의 무예를 익혔다. “수천년 전 고구려의 마사희(馬射戱)라고 하는 살벌한 마상궁술도 ‘희롱할 희(戱)’를 쓸 만큼 ‘놀이’로 즐겼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 말을 타고 격구(擊毬) 놀이로 이어졌지요. 또한 윷놀이의 말판도 말을 타고 다니는 형태로 볼 때 우리 민족은 달리고 싶은 욕구를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던 ‘말뚝박기’, 학창 시절 운동회 때의 ‘기마전’도 그런 것이고요. 아이들이 태어나면 걸음마를 할 때까지 목말을 태우고 다니듯 알게 모르게 우린 끝없이 말을 타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고씨는 “왜 우리 민족에게 ‘빨리빨리’의 습성이 생겼는지 아느냐”고 반문한다. 설명이 그럴듯하다. 말은 속도를 대변하는 동물이며 말을 타고 광활한 북방 대륙을 누비던 우리 민족이 말에서 내려 좁은 한반도에 유배를 당해 살다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빨리빨리’ 서두르게 됐으며 끝장을 빨리 봐야 하는 민족이 됐다는 것이다. 또 반문한다. 싸이의 말춤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나라가 어디인 줄 아느냐고 했다. 그것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호주, 몽골, 브라질 등 말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들이라고 했다. 싸이의 말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유치한 안무 트렌드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신성한 동물인 말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싸이가 각 나라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 우리나라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홍보했더라면 효과가 아주 좋았을 것이란 거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기마문화 콘텐츠를 살려 전통 가치를 계속 유지, 상승시키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기운을 말에게 불어넣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여기에 있는 말 중 절반 이상은 제 손으로 직접 받고 키워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다 낙마 사고도 많이 당했습니다. 말과 함께 넘어지거나 밟혀 골절상 등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요. 어느 말이 마상무예에 적합한지 일일이 교육을 시켜 봐야 하거든요. 서양 말은 긴 창을 이용하기 편하고 동양 말은 활과 창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런 훈련과 함께 2002년 7월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을 시작으로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제주~임진각),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 충무공 탄신제 마상무예 격구 시연, 서울 하이 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런 활동들을 통해 기마문화의 우수성을 꾸준히 선보였다. 또한 2011년 주한외교사절단(대사 부부) 50여명을 초청해 고구려 기마무예의 세계화를 위한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구려 기마 사냥에 쓰였던 활의 크기는 80㎝ 정도였고, 말의 키는 130~150㎝로 작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투마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쌨습니다. 고구려 말처럼 작은 말은 이미 13세기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고구려는 4~6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마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 기마문화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최고의 마필 조교술과 사냥술을 가지고 있었지요.” ●초등 4학년 때부터 승마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 말에 대한 역사, 장점, 고구려의 마상무예 등의 얘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말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짐수레를 끌고 다니는 말을 처음 접했다. ‘언젠가는 저 말을 꼭 타봐야지’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해 대관령 목장에서 말을 타고 실습을 했다. 축산고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라고 만든 학교였다. 어쨌거나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 보니 말의 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에 대한 자랑을 다시 늘어놓는다. “비너스 같은 몸매와 역동적인 근육, 탄력적인 엉덩이 곡선 등 말은 어느 동물과도 비교되지 않는 신이 내린 몸매를 자랑하지요. 남녀노소, 낙마의 공포감만 없다면 누구나 타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뿐인가요. 인류를 위해 가장 희생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전장에서 죽은 주인과 함께 순장하기도 했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이 고주몽의 58대손이라고 한다. 다시 그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시절이었다. 신문에서 승마를 대중화한다는 기사를 보고 주말마다 파주, 원당, 일산, 포천 등 승마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말 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10번 정도 타면 되는 줄 알았더니 100번 이상은 타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무렵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당시 부인은 서울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승마를 함께 배우자는 말에 부인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말 타는 법을 익혔다. 부인은 경희대에서 승마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고씨도 그동안 여러 개의 타이틀을 땄다. 대한청년기마대장을 비롯해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경기도승마연합회 부회장,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고구려기마보존협회 회장 등이 그것들이다. ●고궁에서 마상무예 하는 그날을 꿈꿔요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버킹엄궁전 앞에서 기마대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우리도 광화문 앞에서 고구려 기마문화를 재현하면 외국인들이 많이 오게 돼 있어요. 문화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계속 유지하면 돼요. 창경궁에서 마상무예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일본은 원래 말이 없었는데도 말을 동원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TV 사극을 보세요. 전부 서양 말을 타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고구려 기마무예로 인간문화재로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동안 이렇게 솔직한 얘기를 자주 해 왔으리라. 마구간의 말에게 간다. 무슨 말을 하는지 상상하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마상무예 앞장서는 고성규씨는 >>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축산고 재학 시절 대관령 목장에서 실습을 하면서 말에 매력을 느꼈다. 고교 졸업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신문에 난 ‘승마 대중화’ 기사를 보고 본격적으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무용총 수렵도를 보고 고구려 기마무예를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20년째다.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2002년),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2002년),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2002년), 서울하이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2005년),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2005년), 월드컵 4강 진출 및 토고전 승리 기원(2006년), 미8군 제2사단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공연(2007년), 서울 중구 충무공 이순신 탄신제 마상 퍼레이드(2008년), 일본 대사관 앞 독도영유권 주장 규탄대회 기마무예소년단 총감독(2008년), 주한 외교사절 대사 부부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세계화추진 공연(2011년) 등의 활동을 펼쳤다. 2012년에는 국무총리표창을 받았고 대한민국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 대가야 옛 영화 살린다

    1500년 전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옛 영화가 오는 10~13일 4일간 경북 고령군 고령읍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일원에서 되살아난다. ‘2014 대가야체험축제’를 통해서다. ‘악성 우륵의 꿈’을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대가야 시대의 생활과 문화, 예술은 물론 당시 대가야인의 생활을 재조명한다. 대가야 성열현 출신인 우륵(?~?)은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을 만들고 작곡, 연주도 한 것으로 전한다. 축제장에서는 대가야인이 사용했던 움집과 생활 토기, 가야금 등 대가야 당시의 유물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등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 많다. 관광객들이 갑옷·투구·칼을 제작하며 대가야의 용사가 돼 보는 용사체험도 재밋거리다. 연계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우선 대가야왕릉제가 눈길을 끈다. 42년부터 562년 멸망까지 520년간 대가야를 다스린 16명의 왕을 추모하고 축제 개막을 알리는 행사다. 또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악성우륵추모제, 고천원제 및 학술대회, 마당극 ‘풍동전’ 등이 펼쳐진다. 축제장 인근에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지난해 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고령읍 지산리 고분군, 국내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테마 박물관인 우륵박물관, 선사시대 암각화,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순장 묘인 지산리 44호분을 재현한 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관, 산림녹화기념숲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가야 후기의 맹주국이었던 대가야의 산물인 고분군과 산성 등이 최근 국내는 물론 세계의 우수 문화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면서 “축제에 오셔서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성범죄에 또 관용…‘자살’ 여군 대위 성추행 소령 집행유예

    성범죄에 또 관용…‘자살’ 여군 대위 성추행 소령 집행유예

    육군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강원도 화천군 모 부대 소속 여군 A대위 자살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B소령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고 20일 밝혔다. 육군에 따르면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이날 열린 1심 공판에서 “B소령이 사망한 A대위의 직속상관으로서 그에게 가했던 직권남용 가혹행위, 욕설과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어깨를 주무르는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추행 등이 인정된다”면서 이같이 선고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군의 영관장교인 B소령이 소속 부하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지나친 질책과 여군을 비하하는 성적 언행 등을 지속해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서 “군의 기강과 사기를 저하시킨 점 등이 양형에 고려된 것 같다”고 전했다. 군 검찰은 형량이 낮다며 항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A대위 측을 지원해온 인권단체 군 인권센터 관계자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려면 양형을 참작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전과가 없다는 게 전부였다”며 “전형적인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B소령은 A대위 측과 합의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하는 등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며 “국방부가 군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인권센터는 A대위 측의 항소심을 지원하는 한편 오는 24일 서울 도심에서 시민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A대위는 작년 10월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 인근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육군본부에 대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A대위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성관계 요구까지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산서 3.15의거 기념식…3,15 의거의 의미 되짚어보니

    15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제54주년 3.15 의거 기념식이 열렸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이날 3.15 의거 기념식에는 정홍원 국무총리,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홍준표 경남도지사, 3·15 의거 유공자와 유족 등 1천2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민주주의 고귀한 희생, 국민통합으로 꽃 피우자’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국민의례, 변승기 3·15 의거 기념사업회장의 경과보고, 국무총리 기념사, 기념 공연, 3·15 의거의 노래 제창 순서로 30분 동안 이어졌다. 정 총리는 기념사에서 “3·15 의거는 부정선거에서 비롯됐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고 꽃이라고 할 수 있다”며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가 되도록 엄정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기념식에 앞서 3·15 민주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방명록에는 “3·15 의거의 정신을 새겨 품격 높은 민주국가를 이룩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전날에는 3.15 의거 희생자 유족회를 중심으로 추모제가 개최됐고 오는 24일과 29일에도 마라톤대회와 백일장 대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3.15 의거는 지난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반발해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에서 장기집권을 위해 선거준비 과정에서부터 부정행위를 했다. 이를 목격한 마산 시민들은 이에 항의했고, 경찰은 무차별 발포로 맞섰다. 결국 이날 수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고, 4월 11일 28일동안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되면서 마산 시민들의 2차 시위와 함께 전국민적인 공분이 일면서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3.15 의거가 일어난지 43년만인 2003년 3월, 국립 3.15 묘지가 준공됐고, 2011년부터 총리가 참석하는 정부 주관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15 의거 기념행사 개최…54년 전 ‘3.15 의거’는 어떤 사건?

    15일 3.15 의거 54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국가보훈처는 정홍원 국무총리와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산 3.15 아트센터에서 제54주년 3.15의거 기념식을 개최한다. 전날에는 희생자 유족회를 중심으로 추모제가 개최됐고 오는 24일과 29일에도 마라톤대회와 백일장 대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3.15 의거는 지난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반발해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에서 장기집권을 위해 선거준비 과정에서부터 부정행위를 했다. 이를 목격한 마산 시민들은 이에 항의했고, 경찰은 무차별 발포로 맞섰다. 결국 이날 수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고, 4월 11일 28일동안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되면서 마산 시민들의 2차 시위와 함께 전국민적인 공분이 일면서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3.15 의거가 일어난지 43년만인 2003년 3월, 국립 3.15 묘지가 준공됐고, 매년 3월 15일을 전후로 전국적인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역 고가에서 “박근혜 퇴진” 또 분신

    서울역 고가에서 “박근혜 퇴진” 또 분신

    지난해 12월 고(故) 이남종씨가 박근혜 정부 퇴진을 외치며 분신해 사망한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15일 또 다른 남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20분쯤 서울역 고가도로 밑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김모(47)씨가 자신의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경찰은 곧바로 김씨의 몸에 붙은 불을 진화했다. 김씨는 손목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몸에 불이 붙자마자 진화해 부상 정도는 가벼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분신을 하기 전 ‘관권개입 부정선거’,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 3개를 다리 밑으로 펼친 뒤 자신의 양옆 페인트통에 불을 붙이고 시위를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을 지켜본 일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김씨는 분신의도가 없었지만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불이 있는 곳으로 넘어져 불이 붙었다”며 과잉 진압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씨가 몸에 불을 붙일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앞으로 조사할 계획”이라며 “다만 본인이 직접 현장에 불을 피워놓고 시위를 한 만큼 경찰은 현장에 진입해 불을 꺼야할 의무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열린 ‘고 이남종 열사 추모제’에 맞춰 이씨가 분신한 장소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외국계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계기로 시민사회 활동을 시작한 뒤 2009년 회사를 그만둔 뒤 전업 활동가로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김씨는 이씨의 영결식 당시 이씨의 영정을 들었으며 이후 관련 집회에서 사회를 보는 등 특히 이씨와 관련된 집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기제사 어떻게 지내시나요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기제사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사가 계속될 것인가, 중단될 것인가, 변형될 것인가.’ 제례(祭禮) 문화가 어떻게 변모할까.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들의 덕을 기린다. 또 기일(忌日)이 되면 제사(祭祀)를 지내며 돌아가신 분을 추모한다. 오랜 세월 가족의 구심점으로 구성원 간 결속력을 다져온 제례의식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횟수가 줄고 음식도 간소화되고 있지만 제사는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의 맏아들, 맏며느리들에겐 여전히 부담이다. 유교문화의 마지막 세대로서 부모세대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지만 한편으론 전통의식이 희박한 신세대 자식들에게 제사를 잇게 해야 하는 의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낀 세대’의 고민이다. 제사는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국가도 저절로 통치된다고 보고 효를 강조했다. 효는 제사를 통해 실천하고, 제사는 가정에서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장남 등 가부장이, 국가 차원에서는 왕이 집전하도록 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속돼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보다 더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에 따르면 기제사는 제주부터 2대조까지로 하되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 제주의 가정에서 지내게 돼 있다. 제수(祭需)는 평시의 간소한 반상(飯床)음식으로 부담 없게 차리도록 했다. 차례는 명절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고 돼 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정3품 이상의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만 부모, 조부모를 넘어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 4대 봉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좋은 집안이 되려는 심리가 작용, 일반인들도 4대 봉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머니, 할머니 등 배우자까지 모시면 제사횟수가 8번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제사일자에 맞춰 많은 친척들이 모이기 어려워지면서 제사횟수는 자연스레 조정되고 있다. 바라봄사진관 나종민(51) 대표는 “종갓집이어서 어머니가 3대 봉사를 해왔으나 몇 년 전 하나로 합쳤다”면서 “조상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제사음식도 간편해지고 있다. 종전에는 ‘붉은색 과실은 동쪽, 흰색은 서쪽에 둔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예법을 따졌으나 최근에는 정성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제사 음식은 형제들끼리 분담해 가져오고 제사상을 업체에 주문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경기 수원에 사는 이모(51·여)씨는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3년 전부터 제사상을 주문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았지만 이젠 시댁 식구들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설의 경우 제사상 차림이 전년보다 10%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퇴계 이황 종가는 지난달 문중운영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자정에서 저녁 6시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퇴계 종가가 제사 문화의 롤 모델인 만큼 제사 현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28일(음력 7월 2일) 퇴계의 권씨 부인 제사와 내년 퇴계 불천위 제사는 초저녁에 지내게 됐다. 불천위는 큰 공이 있거나 도덕성 및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제례문화의 간소화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고향, 문중 등 전통사회의 개념이 해체돼 친척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면서 기제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5대조 이상 제사를 모시는 시제(時祭) 때 후손들에게 장학금이나 여비를 지급해 참석을 독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가부장 중심의 유교문화가 퇴조기미를 보이면서 가정살림을 책임지는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남아선호사상도 엷어지고 있다. 장묘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것도 제사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최근에는 수목장이나 바다장까지 나올 정도다. 부모세대들도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후 화장을 당부하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김모씨는 설을 쇠러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죽으면 화장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납골당에 합사하고 봉분을 없애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퇴계의 16세손인 이근필(82) 종손도 ‘죽으면 납골당에 가겠다’는 뜻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제사에 대한 장남이나 장손의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집안 전통에 따라 여전히 예법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경기 과천에 사는 이모(55)씨는 제사상을 차리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장손이어서 제사를 지내지만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작은아버지 등 집안 어른들이 제수가 잘못됐다는 등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이씨는 “친척들의 눈이 있는데다 맏이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나까지는 감당하겠지만 아들에게 제사를 계승시킬 자신은 없다”면서 “미래의 며느리가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지내려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유모(57)씨는 딸만 둘이다. 그는 절에서 집안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동생 가족들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고 있다. 아들을 둔 제수씨가 자식대에 가서 제사가 넘어오지 않도록 정리해달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진흥팀 김미영 팀장은 “50~60대는 과도기적 세대이다 보니 제사 문화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친척 등을 의식해 과감하게 나서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조상을 숭배하는 제례적 측면보다는 가족 간의 결속과 단합을 도모하는 기능이 강해져 기제사가 사라지고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반드시 장남이 제사를 모실 것이 아니라 기제사는 맏이가, 추석과 성묘는 동생이 담당하는 등 가족 간 대화를 통해 윤회봉사(輪回奉祀)를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16세기 학자 유희춘(柳希春)이 친필로 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보면 ‘오늘은 큰 누님 댁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딸들이 제사를 지내는 외손(外孫)봉사도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제사를 합사해 합동추모제를 지내거나 시제를 10월 셋째 주 일요일 등으로 정례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도 “제사가 조상의 덕을 기리는 것에서 가족 간의 만남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가족들끼리 의논해 기일을 2월 마지막 주 금요일로 정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박환영 교수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려는 의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제례문화는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될 것”이라면서 “차례는 친척들이 참여하지만 기제사는 형제 등 직계 가족들 중심으로 치러지도록 이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stslim@seoul.co.kr
  • “사랑의 정치 실현한 ‘김근태 정신’이 그립습니다”

    “사랑의 정치 실현한 ‘김근태 정신’이 그립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제2주기 추도식 및 추도미사가 지난 28일 서울 창동성당에서 열렸다. 김 전 고문 계보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의원들과 함세웅 신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장영달 전 의원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들은 이후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모란공원으로 이동해 김 전 고문의 묘역을 참배했다. 묘역 참배에는 문재인 민주당 의원과 김 전 고문의 서울대 동기인 손학규 상임고문 등이 함께했다. 김 전 고문의 서울대 동기인 손 고문은 추도사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사랑의 정치를 실현한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퇴보하는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김근태 정신으로 투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어 이날 저녁 추모 문화제가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야권 인사들을 비롯해 유족과 지인, 시민 등 5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선배는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런 시기에 더욱 그리운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은 “김근태의 언어 ‘희망’을 잃지 않고 모두 열심히 싸워 2014년을 반드시 점령하자”고 강조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추모제에 들러 인 의원에게 인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로 주변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아 행사장에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진주 귀곡 실향민 44년 만에 한자리에

    경남 진주시 남강댐 공사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어언 반세기 만에 고향 근처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진주 귀곡 실향민회는 12일 오전 10시 진주 진양호 선착장 인근 망향비 광장에서 모임을 갖는다. 일명 ‘까꼬실’ 주민들은 1969년 남강댐 건설 공사로 마을이 물속에 잠기는 바람에 타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모임에는 당시 주민 400여명이 참석한다. 외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바쁘게 살아온 이들은 44년 만에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나눈다. 함께 수몰된 귀곡초등학교에 다니던 학생과 교직원도 초청된다. 사물놀이와 초청 가수 공연을 시작으로 고인이 된 옛 이웃에 대한 추모제례, 고향에 얽힌 시와 수필 낭송, 마을 대항 노래자랑, 실향민 장학금 전달, 고향 사랑하기 결의문 낭독, 윷놀이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까꼬실 주민들은 2001년 실향민회를 구성해 고향 사람을 찾으려고 애썼다. 까꼬실 사람을 소재로 한 소설과 시집 등의 책자를 펴내고 2003년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진양호 옆에 망향비도 세웠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동의보감 400주년… 약초 비빔밥 400인분 쏜다

    동의보감 400주년… 약초 비빔밥 400인분 쏜다

    강서구는 12~13일 가양동 구암공원에서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의성(醫聖) 허준 축제’를 개최한다. 허준이 태어난 가양동엔 허준박물관과 동의보감 집필 장소로 널리 알려진 허가바위, 허준의 아호를 딴 구암공원 등이 있다. 12일 오전 10시~낮 12시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거리 퍼레이드가 공항대로에서 허준박물관까지 2㎞ 구간에서 펼쳐지며 행사의 시작을 알린다. 서낭당공원에서 공항대로~양천로~허준박물관을 잇는 행진에서는 서자로 태어나 어려움을 겪은 허준의 유년 시절부터 의원의 길, 임진왜란 피란, 동의보감 탄생까지 허준의 삶을 보여 준다. 청사초롱을 든 초등생 80명이 선두에 선다. 또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라는 의미를 담아 황기와 오가피, 뽕잎, 당귀, 산야초 등 10여 가지 약초를 넣은 비빔밥 400인분을 즉석에서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 준다. 허준 테마 그림이 그려진 400개의 이음연 날리기도 곁들여진다. 특히 오후 2시 한의사협회에서는 한국 의학의 자주적 기초를 마련해 준 동의보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국가별 참여자가 ‘동의보감의 영향과 활용’을 주제로 동의보감이 나라별로 갖는 의미와 영향, 연구에 대해 발표한다. 13일엔 오전 10시 허준 추모 제례를 필두로 오후 1~4시 30분 ‘약선 요리 대전’이 펼쳐진다. 임현식과 이계인 등 연예인 7명이 출연해 동의보감에 나오는 재료의 효능을 바탕으로 7가지 약선 요리(전복 삼계탕, 오리부추 불고기, 매실 떡갈비, 토란탕 등)를 놓고 솜씨를 겨룬다. 오후 5~6시에는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마당극이 펼쳐진다. 가수 에일리·케이윌을 비롯해 백지영, 심수봉, 남진 등 인기가수 콘서트도 이틀간 무대를 빛낸다. 노현송 구청장은 “허준 축제는 선생의 역사적·사상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동의보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도록 꾸몄다”면서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계기로 강서구가 한방 허브도시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서울 플러스]

    [서울 플러스]

    압구정로데오거리 상징물 제막 강남구(구청장 신연희) 4일 신사동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상징조형물 ‘I Love You’ 제막식을 연다. 유명조각가 김경민씨의 재능 기부로 들어섰다. 작품 콘셉트는 ‘젊음·패션·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로데오다. 하트를 든 모습은 로데오가 한국을 넘어 세계의 중심지로 역할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지역경제과 3423-5490. ‘아름다운 미소사진전’ 공모 광진구(구청장 김기동) 오는 15일까지 ‘제15회 아름다운 미소사진전’의 작품을 공모한다. ‘미소 부문’과 ‘광진구 부문’으로 나뉜다. 금상에는 상금 500만원을 준다. 오는 25일 심사 후 입상자를 선정해 26일 구 홈페이지에 발표한다. 문화체육과 450-7577. 공영주차 요금 5분 단위로 성동구(구청장 고재득) 이달부터 공영주차장 요금을 10분에서 5분 단위로 매긴다. 조례 개정안에 따라서다. 1~2분 초과해도 10분 단위 요금을 무는 것에 비해 합리적으로 바뀐 것이다. 직영 27개소, 위탁 4개소 모두에 적용된다. 도시관리공단 2204-7960. 약 봉투에 복약안내문 서비스 송파구(구청장 박춘희) 약사회와 함께 ‘따라가는 복약지도 서비스‘를 추진한다. 약 봉투에 인쇄된 복약안내문을 보고 약품 효능, 주의사항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70개 약국이 참여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받아볼 수도 있다. 의약과 2147-3531. 9일 사육신 추모제향 행사 동작구(구청장 문충실) 주민, 유림대표 등 1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는 9일 낮 12시 노량진 사육신공원에서 사육신 순절 557주년 추모제향 행사를 갖는다. 문 구청장이 초헌관, 사육신현창회 이철주 이사장이 아헌관, 홍운철 구의회 의장이 종헌관을 맡는다. 홍보전산과 820-1250.
  •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쏟아지는 지자체 브랜드, 관광·구매·거주 니즈를 충족시켜라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쏟아지는 지자체 브랜드, 관광·구매·거주 니즈를 충족시켜라

    지역을 상징하는 브랜드라면 1970년대 말 한 디자이너가 휴지에다 써갈긴 구상 스케치에서 태어난 ‘아이 러브 뉴욕’(I ♥ NY)을 빼놓을 수 없다. 더 뺄 것 없는 간결한 문장이 주는 차가움과 애정을 드러내는 빨간 하트의 뜨거움은 그 자체로 뉴욕이 가진 강한 자부심으로 읽혀 다른 지역 브랜드에는 신화와도 같은 문구가 됐다.이후 수많은 도시들이 나름의 지역 브랜드들을 개발해왔다. 영국 런던의 ‘비지트 런던’(Visit London)처럼 아주 실용적이고 간결한 것도 있고, 덴마크 암스테르담의 ‘아이 암스테르탐’(I amsterdam), 독일 베를린의 ‘비 베를린’(Be Berlin)처럼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를 활용한 구호도 등장했다. 이런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하이 서울’(Hi Seoul),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 같은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지역 브랜드가 우리나라에 등장하는 데 기폭제가 된 것은 지방자치제 실시였다. 지역마다 자기 지역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저런 이벤트성 사업이나 캐릭터 사업들을 계속 개발해냈다. 이는 결국 축제, 특산품, 이미지를 내세운 이런저런 브랜드들이 쏟아지도록 했다. 워낙 다양하게 나오다 보니 국가브랜드위원회와 한국생산성본부가 조사 발표한 브랜드 분류만 해도 지역·도시·공동·인증·축제·장소·개별브랜드 등 여러 가지로 나눠질 정도다. 문제는 의욕 과잉 때문에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숱하다는 것. 너무 많다 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 2012년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등록한 것만 따져도 특산물 브랜드는 737개, 축제 브랜드는 758개에 이른다. ‘살고 싶은 지역’ 평가단위가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는 230개나 된다. 따라서 서울신문이 개발한 지역 브랜드 평가지수 SNI에서는 우선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1차로 대상을 추출한다. 올해엔 건국대 강순주(건축학과), 숙명여대 김경아(미술학과), 경기대 박세종(관광개발학과), 성결대 임형백(지역사회학과) 교수 등 지역문제 전문가 52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를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벌여 100개를 추출해냈다. 그 결과 축제의 경우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대표 축제로 꼽히는 진해군항제,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보령머드축제, 함평나비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수원화성문화제, 울산고래축제, 강릉단오제 등이 고루 선정됐다. 진해군항제는 원래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일종의 추모제로 시작됐으나 1963년부터 본격적인 군항제로 성격이 바뀌었다. 벚꽃이 만발한 가운데 4월 초쯤 진행되는 군항제는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는 축제다. 지방자치제 실시 직후인 1996년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아시아 영화제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광주항쟁의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 역시 한국과 아시아의 대표적인 비엔날레 행사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강원이 14개로 가장 많았고 전남(10개), 부산·경기(각 9개), 충남·전북(6개) 등이 뒤를 이었다. 축제의 성격으로 봤을 때는 지역특산물이 27개, 관광축제 25개, 전통역사 16개 등 순으로 많았다. 지역특산물로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것도 무려 737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전문가 평가를 통해 100개를 뽑았는데 전국적 명성을 지닌 대표적 지역 특산물 대부분이 포함됐다. 횡성 한우, 안동 간고등어, 의성 마늘, 이천 쌀, 청양 고추, 순창 고추장, 안흥 찐빵, 영광 굴비, 한산 모시, 양양 송이 같은 것들이다. 어디 가면 뭘 먹어봐야 한다거나, 이걸 써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밥상머리에서 주고받던 얘기에 늘 등장하는 것들이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21가지, 전남 16가지, 강원·충남 각 12가지다. 과일채소류가 19가지로 가장 많았고, 식량작물·수산물 12가지 등이 뒤를 이었다. 특이한 점은 경기·충북지역 복숭아 브랜드인 ‘햇사레’처럼 지방자치단체나 단위 농협에서 자체 개발한 브랜드도 18가지나 선정됐다는 점이다.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애쓴 지역단위의 노력이 나름대로 결실을 본 것으로 풀이된다. ‘살고 싶은 지역’ 브랜드는 보다 넓은 의미다. 축제브랜드가 관광을, 특산물브랜드가 구매를 뜻한다면 살고 싶은 지역은 거주를 의미한다. 어떤 시설이나 볼거리, 먹을거리 차원보다는 시공간과 관계의 차원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다른 브랜드에 비해 조금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지역단위 개발정책의 기본 목적이 바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로 가장 근본적인 평가대상이기도 하다. 100대 지역을 추출한 결과 역시 최근에 뜬다는 곳이 대거 포함됐다. 부산 해운대구, 제주 서귀포시와 제주시, 경남 통영시, 강원 춘천시와 강릉시, 대전 유성구, 경북 경주시, 경기 여주시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명은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박사는 “최근 여가생활에 연관된 관광, 레저, 문화 영역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살고 싶은 지역 평가에는 이런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아시아나機 사고] 슬픔에 잠긴 中, 숨진 여고생 2명 촛불 추모제

    [아시아나機 사고] 슬픔에 잠긴 中, 숨진 여고생 2명 촛불 추모제

    아시아나 비행기 착륙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여고생 왕린자(王琳佳·17·왼쪽)와 예멍위안(葉夢圓·16)에 대한 애도 물결이 중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9일 ‘절친’이던 두 학생이 생전에 다니던 저장(浙江)성 장산(江山)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말을 인용해 두 여학생은 백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우수한 인재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왕린자는 서예와 문학에서 재능을 보인 ‘문학소녀’로, 예멍위안은 이 학교의 영어와 물리 대표로 반장과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방학 중임에도 학교와 인근 쉬장(須江) 공원에서 두 학생의 넋을 기리는 촛불 추모제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현재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두 여고생에 대한 추모의 글만 각각 20만건을 돌파할 만큼 중국인들의 슬픔이 깊어지고 있다. 언론들은 또 중국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 두 여고생에게 각각 140만 위안(약 2억 6000만원)의 배상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언론들은 이번 사고로 중국 항공사들의 경쟁력 부재로 외국 항공사들이 저가 항공권을 앞세워 중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과거 5년간 사내 문책 조종사가 30명이 넘는데 이는 안전관리에 구멍이 있다는 것으로 많은 중국 여행객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이라며 한국 국적기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중국 최대 항공티켓 사이트 관계자 셰청왕(携程網)은 “9일 오후 3시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한국 국적기에 대한 항공권 예약 취소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잔인한 전쟁 너머 ‘휴머니즘’의 속살

    정전 60년을 맞아 한국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한국전쟁’과 권헌익 영국 캠브리지대 석좌교수의 ‘또 하나의 냉전’이다. 전자는 적국의 시선으로 본 한국전쟁이란 점에서, 후자는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한국전쟁과 그 전후의 고통과 폭력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한국전쟁] 왕수쩡 지음/나진희·황선영 옮김/글항아리/1000쪽/4만원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999년 중국에서 초판이 출간됐고,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에선 첫 번역 출간이다. 14년의 시차에 담긴 의미는 꽤 함축적일 터이다.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불렀다. 적군인 미군을 향한 대항적 성격으로 한국전쟁을 규정하는 하나의 관점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제정치적 맥락이나 이념적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하는 태도에서 벗어난다. 이는 저자가 정치학자나 군사학자가 아니라 팩트를 추적하는 논픽션 작가라는 지점과 맞닿아있다. 치밀한 자료 수집과 수많은 관련자 인터뷰 등 방대한 취재량이 압도적이다. 저자는 한반도에 진입했던 중국국 소속 15개군이 전후에 정리한 전쟁사, 전쟁 종식 뒤 귀국한 참전 장병이 쓴 수많은 회고록, 전쟁 당시 한반도 전장에 있던 중국군 지휘부와 베이징의 지휘자들 간에 교환한 모든 문서와 전보를 열람했다. 또한 미국 역사학자 모리스 이서먼의 ‘한국전쟁’을 비롯한 서구의 다양한 관련서와 더글러스 맥아더의 회고록 등도 참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정전 협정까지의 긴박하고 참혹했던, 때로는 무기력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복원해낸다. 1950년 10월 8일 중국이 ‘중국인민지원군’을 출병하는 대목에서 출발한 책은 전장에 버려진 서적을 통해 적군의 작전 의도를 파악하려는 치열한 정보전과 피말리는 심리전, 각국이 구사하는 전술·전략의 유래와 전개 양상 등에 대한 꼼꼼한 기술을 거쳐 또 다른 전쟁의 양상을 보였던 정전 협상의 체결에서 끝을 맺는다. “병사란 전쟁 속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전쟁’을 집필하는 유일한 동력이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대령 계급의 국가 1급 작가라는 저자의 또 다른 타이틀은 중국 중심의 서술이란 한계를 피할 수 없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중국 내부의 자료들을 통해 한국전쟁의 한 축이었던 중국의 당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이 책만의 장점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또 하나의 냉전] 권헌익 지음/이한중 옮김/민음사/256쪽/1만 8000 세계사에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간 냉전의 역사선상에 놓인다. 1945년 조지 오웰이 처음 언급한 ‘냉전’은 실제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지만 정치·외교·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냉전이 “오랜 평화이자 상상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해방공간이 분단으로 이어지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에게 이 시기는 과연 냉전일 수 있을까. 2010년 컬럼비아대에서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즉 한반도 해방공간의 역사가 세계 냉전사와 틀을 같이하는가 달리하는가,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 책은 한국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제주 4·3사건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폭력전 내전과 그와 관련된 반공주의 역사라는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냉전을 내전으로 경험한 사회에서 냉전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를 인류학의 핵심 조사방법인 참여관찰법을 이용해 접근한다. 저자는 제주 4·3사건으로 분열된 하귀리 마을 사람들이 최근에서야 학살자들을 기리는 추모제를 자유롭게 열 수 있게 되면서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한다. 또한 베트남전쟁 당시 형은 혁명군에, 동생은 미국편에 가담해 총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가족이 어느 한 명을 추모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고통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말한다. “한반도의 해방공간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 안에도 있고 또 밖에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가 세계사의 영역에서는 생경해지는 상황은 불행한 일이며 이제는 이 잘못된 구도가 고쳐져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냉전의 역사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또 하나의 냉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7쪽) 베트남전 양민학살을 종교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 ‘학살, 그 이후’와 전쟁의 후유증을 기록한 ‘베트남전쟁의 영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자는 최근 한국전쟁의 새로운 연구 틀을 형성하고자 하는 ‘한국전쟁을 넘어서’국제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NLL-연평해전’ 따스한 추모영화를 기대하며/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NLL-연평해전’ 따스한 추모영화를 기대하며/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5월의 마지막 날이다. 6월에는 현충일을 시작으로 6·25전쟁과 2차 연평해전 추모일이 기다린다. 하기야 우리 해군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선제공격에 나선 북한 경비정을 격파하였던 1차 연평해전도 1999년 6월 15일에 있었다. 2차 연평해전을 소재로 영화 ‘NLL-연평해전’을 제작 중인 김학순 감독에게 ‘따스한 추모 영화’(memorial film)를 만드시라고 주문하였다. 여러 감독이 연평해전의 영화화에 관심을 나타냈으나 아무도 제작에 이르지 못했던 이유는 투자자가 나서지 않아서일 것이다. 김 감독도 영화진흥위원회의 ‘3D 영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우여곡절 끝에 제작비 일부를 조달하였으나 더 이상 번듯한 투자사를 구하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제작진은 해군의 배려로 진해 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으니 오픈세트 제작비 수십억원을 절약한 셈이라고 서로 위로하고 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벌어졌다. 월드컵 3, 4위전을 응원하느라 전국이 분주하던 바로 그날 우리 해군이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사건이다. 윤영하 소령을 위시하여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이 전사하였고 18명이 크게 다쳤다. 40여일 후 심해에서 인양된 참수리 357호에는 한상국 중사의 시신이 그때까지 조타키를 움켜쥐고 있었다고 한다. 조천형 중사는 100일이 안 된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떴고, 박동혁 병장은 100여개의 파편을 품고 84일 만에 숨을 멈추었는데 그의 유골에서 나온 쇳덩이 무게가 3kg이었다니 고통이 어떠했으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해전 다음 날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일본으로 날아갔다는데 이후에도 추모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참모진이 ‘우발적 충돌’로 보고했을 터이나 참모진의 행태도, 대통령의 행보도 독해가 곤란하다.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청와대로 돌아와 비상태세를 갖추었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정권이 두 번 바뀐 6주기에 비로소 정부주관 행사로 격을 올렸고, 10주기 추모행사에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였다. 해군 출신인 김 감독은, 정부도 국민도 희생자를 외면하던 황망한 분위기에서 해마다 추모제를 찾아 유족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영화계 주변을 얼쩡대던 나는 20년 전 뉴욕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영화 강의를 하던 김 감독이 미국 로케 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1993, 이석기 감독)에 현지 스태프로 참여한 것이 인연이었다. 김 감독은 작은 체구에 붐 마이크를 들고, 국내 스태프들에게 익숙하지 않던 현장음(ambience)까지 일일이 챙겼다. 그래서 그 영화는 우리 녹음기사들의 분석 교재가 되었다고 들었다. 그는 귀국하여 대학에 자리를 잡았으나 촬영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다큐멘터리로 여러 번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저예산 영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는 영화기자들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적인 추모 현장을 자주 발견한다. 조그만 시골 군청 벽면에서든 대학 캠퍼스 모퉁이에서든, 언제 어느 전쟁에서 산화하였다는 젊은이의 이름이며 사진을 접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파렴치한 현상의 희생자로서든 그 사회를 지키다가 스러진 젊은이로서든, 그들의 터무니없는 죽음에 대한 공동체의 최소한의 예의인 셈이다. 김 감독은 전쟁영웅에 무감각한 우리 풍토를 아쉬워한다. 연평해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는 김 감독의 의욕을 대하며 과연 크랭크인이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북한의 호전성에 대하여는 무조건 접어주어야 한다는 특이한 멘털리티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기 때문이다. 2차 연평해전 발발 당시 권력의 핵심에서 벌어진 행태는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영화 ‘NLL-연평해전’이 이념 과잉의 영화는 아니기를 바란다. 존재 그 자체로서 만만치 않은 사회적 가치를 보여줄 영화, 희생자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하는 따스한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 나는 대가야 산성 지키는 장수!

    매년 4월이면 1500여년 전 백제와 신라의 강대국 사이에서 호령했던 대가야인들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옛 대가야의 수도인 경북 고령에서 펼쳐지는 ‘대가야 체험축제’ 장(場)이다. 올해 축제는 11~14일 고령읍 지산리 고분군 일대에서 ‘대가야의 산성’이란 주제로 다채롭게 열린다. 총 58개의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다. 이 중 43개가 체험 위주다. 대가야를 주제로 한 유물 및 생활, 용사(勇士), 토기 체험 등이다. 부대 행사도 풍성하다. 대가야왕릉제, 가얏고음악제, 악성 우륵 추모제, 딸기 수확 체험 등이 선보인다. 대가야를 주제로 한 공연도 진행된다. 500여년 동안 고령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가야국의 건국 신화를 주제로 한 ‘대가야의 산성을 지켜라’와 마당극 ‘풍동전’, 오는 9월 공연 예정인 실경 뮤지컬 ‘대가야 혼 가얏고’ 출연진의 갈라쇼 등은 축제의 흥미를 더하게 된다. 고령 여행에서 고분군 트레킹도 절대 놓칠 수 없다. 최초로 순장 풍습이 확인된 44호 고분 등 주산 능선을 따라 늘어선 고분 700여개를 둘러보는 데 2시간쯤 걸린다. 이 고분군은 경북도와 고령군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록이 추진 중이어서 각계의 관심이 새롭게 모이고 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사람들 관심 시들하네요, 부모 속은 새까만데…”

    “사람들 관심 시들하네요, 부모 속은 새까만데…”

    “공교롭게도 천안함 용사 기일과 개구리소년의 실종일이 3월 26일로 똑같아요. 그래서인지 이젠 언론의 관심도 시들하네요. 정말 잊혀지나 봐요. 암요, 22년인데요. 그래도 부모들 속은 여전히 까만데….” 25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주봉(56)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 대표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이튿날 대구 와룡산 세방골에서 치를 개구리소년 추모제를 준비하러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누워 있던 현장에서 매년 추모제를 지내요. 이렇다 할 지원도 없이 사비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 사는 부모님들을 떠올리면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22년이 지났다. 1991년 도롱뇽 알을 줍겠다며 뒷산으로 올라간 김영규(당시 11세)군 등 대구 소년 5명은 그 후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된 지 11년이 흐른 2002년 9월 차가운 유골로 발견됐다. 나 대표가 밥벌이 안 되는 실종자 찾기에 매달린 건 개구리소년 때문이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전국을 돌면서 뽕짝 테이프를 팔았어요. 인천 월미도에서 신나게 공연하다가 맞은편에 울면서 전단지를 뿌리는 개구리소년 부모를 만났죠. 어차피 떠도는 신세니까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전단지 500부를 받아서 전국에 뿌렸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500부를 배포하고 난 뒤 짠한 마음이 들어 사비로 2만부를 더 제작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추가 30만부를 만들었고, 이후엔 생업을 포기한 채 개구리소년 아버지들과 3년 8개월 동안 방방곡곡 시장·터미널 등을 돌며 전단지를 돌렸다. 그러다 본인도 자식을 잃어버렸다며 엉엉 우는 부모 280여명을 만났다. “가족이 없어지면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니까 집안이 풍비박산 되더라고요. 식구들끼리 책임 전가도 하고, 끝내 이혼해서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나 대표는 2001년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을 직접 만들고 실종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2011년), 이형오군 유괴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그 놈 목소리’(2007년)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공소시효 연장 및 폐지운동, 범죄피해자 구조법에 실종자 포함운동, 실종자 찾기에 필요한 법 제정 촉구 등에도 활발하게 나섰다. 그는 개구리소년 사건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아주 많다고 했다. 2002년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곳은 54사단의 사격장 근처. 현장에서는 여러 개의 실탄도 발견됐다. 경북대 법의학자들은 개구리소년들의 사인을 ‘예리한 발사체에 의한 타살’이라고 발표했다. 나 대표는 진실 규명을 위해 갈 데까지 가볼 작정이다. “개구리소년 실종은 일반인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조직적인 힘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확신합니다.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할 겁니다. 아이들의 주검을 이렇게 묻어버려서는 안 되죠.”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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