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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4·19 혁명 56주기를 하루 앞둔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 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열린 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를 찾은 유가족 및 관계자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2016. 0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4.19혁명기념일 전날인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2016. 0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4.19혁명기념일 전날인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초헌관인 정중섭 4.19유족회장이 절을 하고 있다. 2016. 0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서울포토]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

    4·19 혁명 56주기를 하루 앞둔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 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열린 4.19 혁명 희생영령 추모제를 찾은 유가족 및 관계자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2016. 04. 18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현장 블로그] 30분 기다려 헌화… “매년 올게” “그간 무관심해 미안”

    “분향을 위해 30분을 기다렸어요. 1년, 그리고 또 1년을 한결같이 기다려준 아이들에게 묵념으로 저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거죠.”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맞은 지난 16일 경기 안산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앞에서 만난 시민의 말입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만여명이 추모제를 찾았고, 분향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분향소 안에 들어가서도 100여명은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헌화를 하고도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를 데려온 한 시민은 304명의 영정 앞 단상에 놓인 유족의 편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들 생일 축하해.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청년은 내내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는데 9명의 시신 미수습 희생자 사진 앞에서 결국 눈물을 떨궜습니다. 이곳을 찾은 김효선(24·여)씨는 “처음 안산을 찾았는데 그동안 무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추모객이 몰린 것을 보고 놀랐다”며 “매년 이곳을 찾아 추모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오후 2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 만장과 304개의 인형탈을 앞세운 조문객 3000여명이 노란 비옷을 입고 안산 거리에 나서자 분향소를 못 찾은 시민들이 추모에 동참했습니다. 5㎞ 거리를 2시간 동안 걷는 행진 행사가 끝날 무렵 단원고 앞에 이르자 70대 할아버지가 슬리퍼를 신고 집 앞으로 나와 행진을 하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내가 먼저 무관심해지다니 너무 미안합니다.” 저녁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때아닌 폭우가 쏟아졌지만 추모 열기를 덮지는 못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1만 5000여명의 시민은 참사를 당했던 아이들을 더욱 뚜렷하게 떠올리는 듯했습니다. 행사 마지막 즈음 단원고 학생이었던 고 남지현양의 언니 남서현(25)씨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날 하루 행사는 모두 조용하고 차분했습니다. 경찰도 차벽을 설치하지 않았고 문화제가 변질될까 해서 대비시키던 경찰 인원도 크게 줄였습니다. 날씨 탓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유족의 아픔을 나누고 감싸는 데 집중하는 따뜻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내년 4월 16일에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던 시민들의 마음은 빗물에도 씻기지 않고 광장에 남았습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비 맞으며 마이크 잡은 김제동 “아이들이 곧 국가다” 울컥

    세월호 추모제, 비 맞으며 마이크 잡은 김제동 “아이들이 곧 국가다” 울컥

    세월호 참사 2주기인 16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가 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등의 주최로 열린 문화제에는 1만 2000여명(경찰 추산 4500명)이 참가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진상 규명 등을 촉구했다. 이날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 방송인 김제동 씨가 단상에 ‘깜짝’ 등장했다. 김씨는 우산도 없이 우의도 입지 않은 채 장대비를 맞으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메시지를 건넸다. 김씨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우리에게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있다”면서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며 그들 몫까지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며 참석자들에게 거듭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이 배지를 지키는 열정만큼 304명을 지키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세월호 희생자를 두고)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도 아닌데 왜 신경을 쓰냐’, ‘대체 국가가 무엇이냐’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아이들이 바로 국가다. XXX들아”라고 일침을 가했다. ‘세월호 변호사’로 지난 4·13 총선에서 당선된 박주민 변호사(더불어민주당)도 단상에 올라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 ‘기레기’로 불린 언론, 권력 눈치를 본 수사기관 등이 압축적으로 나타난 참사”라고 주장했다.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는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를 악착같이 지우려 하고 망각의 무덤 속에 넣으려 하지만 정부의 기도는 파탄났다”면서 “4·16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운동의 주인이 우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기간과 인력, 예산, 권한을 보장하고 특별검사를 시행해야 한다”면서 “인양하지 못한 이들을 완전히 찾고, 민간 잠수사나 자원활동가에게 까지 피해자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제에서는 유로기아와 친구들, 이소선 합창당, 송경동 시인, 우리나라 등의 무대도 이어졌다. 광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문화제를 지켜보며 희생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The Best 시티] 서울 속 이방인 동네? 역사의 숨결 숨쉬는 동네!

    [The Best 시티] 서울 속 이방인 동네? 역사의 숨결 숨쉬는 동네!

    성장현 구청장 ‘역사 바로세우기’… 유관순길 등 조성 거리에 즐비한 외국 음식점과 간판들,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 관광객, 미군부대 등에서 새어 나온 이국적 문화들. ‘용산’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울 속 이방인 동네’쯤 된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용산에는 백범 김구 등 항일 투사들이 잠들어 있는 효창원과 6·25의 아픔을 추모하는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역사를 기리는 시설이 많다. 용산 향토사학자인 김천수씨는 “김구 선생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의 묘소를 효창원으로 모셔온 건 용산의 역사성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의 특성에 맞춰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여럿 진행해 왔다. 지난해 9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순국한 뒤 용산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지만, 일제가 군용기지 조성을 위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난 5일에는 충청남도 천안의 유 열사 생가터 인근에서 소나무와 흙을 가져와 추모비 인근에 심기도 했다. 오는 9월에는 유 열사 순국 96주년을 맞아 추모제를 개최한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퀴논시는 베트남 중남부의 해안도시로 베트남전 때인 1965~1972년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구는 1997년 퀴논시와 자매결연한 뒤 관계 회복 노력을 해 왔다. 성 구청장은 매년 1월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효창원의 의열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열사는 백범 김구 등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요인 7명의 영정이 안치된 곳이다. 구는 또 지난 3월부터 구민들에게 용산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는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성 구청장은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잘 지키면서 여기에 스토리를 더한다면 용산의 매력이 더 커질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용산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올해도 설레는군 ‘벚꽃 1번지’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올해도 설레는군 ‘벚꽃 1번지’

    36만여 그루 왕벚나무 꽃 장관… 여좌천 야경 등 도시 전체 ‘활짝’ 에어쇼·불꽃쇼 등 다양한 행사… 해사·해군사령부 일반 개방도 봄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벚꽃축제에 가는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화사한 벚꽃을 보면 각박한 삶 속에서 날 선 마음이 저절로 풀어진다. 여러 벚꽃축제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진해군항제’가 다음달 1일부터 10일까지 벚꽃과 군항의 도시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진해군항제는 올해 54회째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향토문화축제다. 이미지가 전혀 다른 군항과 벚꽃을 테마로 개최하는 점도 이채롭다. 진해구는 해마다 4월 초면 36만여 그루의 왕벚나무 꽃이 활짝 피어 도시를 하얗게 뒤덮는 장관을 연출한다. 벚꽃비가 날리는 가운데 열흘 동안 도시 곳곳에서 다채롭고 풍성한 행사가 펼쳐져 관광객들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선사한다. 진해군항제는 1952년 4월 13일 북원로터리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을 하고 추모제를 지낸 게 시초다. 추모제만 지내다 1963년부터 진해군항제로 이름을 붙여 벚꽃구경과 여러 문화행사를 동시에 즐기는 향토문화 관광축제로 발전했다. 2014년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축제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올해 경남도 지정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되는 등 대한민국 명품축제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축제에 걸맞게 올해도 다양한 공연, 전시, 경연, 체험행사가 열린다. 올해 군항제는 꽃, 빛, 희망을 주제어로 정하고 ‘꽃으로 전하는 희망! 군항을 울리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벚꽃이 어우러진 황홀한 야경을 배경으로 31일 저녁 중원로터리 특설무대에서 개막행사와 축하공연 등 전야제가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띄운다. 다음달 7일 시가지 일대에서 시민과 군악·의장대가 펼치는 충무공 승전 축하 재현 시가행진도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평소에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미 해군 진해함대지원부대 등 해군부대 영내도 축제 기간에 개방된다. 관광객들이 부대 안 곳곳에 우거진 아름드리 벚꽃 숲을 걸으며 부대시설을 구경하고 함정 승선을 비롯해 갖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다음달 1일 군악연주회와 불꽃놀이를 비롯해 2일에는 개교 70주년 기념식과 의장대 시범, 헌병기동대 퍼레이드, 취타대 공연 등의 행사가 열린다. 7~10일 4일간 진해공설운동장과 중원로터리 등에서 열리는 진해군악의장페스티벌은 축제 기간에만 볼 수 있는 행사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군악대 및 의장대, 몽골 중앙 군악대, 미8군 군악대, 염광고등학교 마칭밴드 등이 주야간 합동의장사열과 군악대 연주, 거리 퍼레이드, 의장대 시범 등 절도 있고 화려한 공연을 선보인다.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올해 처음 선보이는 새로운 볼거리도 있다. ‘체리블라쏭 페스티벌’이다. 해외 유명 DJ 8개 팀과 국내 DJ 24개 팀이 참가해 2, 3일 이틀간 진해공설운동장에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합작공연을 펼쳐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또 5일 밤 진해루 앞바다에서 20여분간 해상 불꽃쇼가 펼쳐져 바다와 불꽃, 벚꽃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군특수비행팀이 8일 진해공설운동장 상공에서 펼치는 블랙이글 에어쇼도 재미와 생동감을 더해 줄 행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진해는 발길 닿는 곳마다 벚꽃 천지이지만 특히 해군사관학교 및 해군기지사령부, 장복산공원, 안민도로, 여좌천, 제황산공원,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경화역 등은 한 번은 꼭 둘러봐야 할 벚꽃 명소다. 장복산공원 산허리에 있는 마진터널에서 산 아래 검문소에 이르기까지 1.5㎞에 이르는 2차선 산속 길은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장복산공원은 높고 전망이 좋아 벚꽃이 덮인 시가지와 진해 앞바다를 볼 수 있다. 안민도로는 성산구 안민동에서 시작해 장복산 고개를 넘어 산허리를 돌아 진해구 태백동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벚꽃길이다. 진해 시가지와 멀리 진해 앞바다 거가대교까지 내려다보이는 진해 쪽 5.6㎞ 구간에는 양편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늘어서 있다. 도심 여좌천 벚꽃 거리에는 축제가 열리는 동안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도록 경관 조명을 설치한다. 드라마 ‘로망스’의 촬영 현장으로, 축제 기간에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낮보다 밤경치가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철길을 따라 벚꽃이 터널을 이루는 경화역 주변도 촬영하기 좋은 곳이다. 올해부터는 안전을 위해 열차 운행을 하지 않는 대신 기관차와 객차를 전시해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다. 도심에 있는 제황산공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모노레일을 타거나 365개 계단으로 정상에 오르면 군함 모양의 9층 진해탑이 있다. 탑 내부에는 진해박물관이 있다. 승강기를 타고 전망대로 이동하면 진해 시가지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해탑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으며, 박물관을 제외한 시설은 군항제 개막에 맞춰 1일 다시 문을 연다. 창원시는 군항제 기간 토·일요일엔 도심 교통 혼잡을 막기 위해 안민고갯길과 장복산길 등 진해 지역으로 진입하는 자가용 차량을 통제하고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군항제에는 해마다 250만~3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외국인 관광객도 4만여명에 이른다. 안상수 창원시장은 최근 창원시를 방문한 주한 중국대사 부부를 만나 “진해군항제 기간에 열리는 창원시와 중국 지방정부 경제·관광 협력 콘퍼런스에 참석해 벚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창원을 꼭 관광하시길 권한다”며 군항제를 소개했다. 진해가 벚꽃 도시가 된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한 뒤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다. 당시 일본은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곳곳에 벚꽃을 심었다. 광복된 뒤 벚꽃이 일본 잔재로 여겨지면서 한때 베어 없애는 분위기가 퍼져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식물학자인 박만규·부종유 박사가 1962년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사실을 확인한 덕분에 인식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진해 벚꽃을 다시 살리는 활동이 벌어져 세계 최대 벚꽃 도시가 됐다. 창원시는 벚나무 보존을 위해 벚꽃 연구실을 운영하며 기후와 토질에 맞는 벚나무 개량·증식 사업을 한다. 창원시는 벚꽃 도시의 명성을 이어 가기 위해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한 맺힌 할머니들 “끝까지 싸운다”… 정대협 “소녀상 계속 설치”

    한 맺힌 할머니들 “끝까지 싸운다”… 정대협 “소녀상 계속 설치”

    “우리에게는 묻지도 않고 왜 멋대로 ‘타결됐다’고 합니까. 이건 우리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겁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습니다.” 30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올 마지막 수요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는 피를 토하듯 이같이 절규했다. 1211번째인 이날 집회에는 지난 28일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 타결 이후 첫 번째 집회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자리를 함께한 700여명의 시민, 학생 등 참석자들은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박수와 함성으로 이 할머니를 응원했다. 또 한 명의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8) 할머니가 이 할머니의 옆자리를 지켰다. 수요집회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는 “보통 100명에서 200명 정도 오는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직후 열린 집회여서 그런지 정말 많이 오셨다”고 말했다. 집회는 올 한 해 돌아가신 9명의 피해자를 기억하는 추모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황선순 할머니, 이효순 할머니, 김외한 할머니….” 사회자가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기구했던 삶의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할머니는 이틀 전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 정부를 향해 “협상 전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이런 협상이 어디 있느냐. 우리 정부는 뭣하는 거냐”고 분노를 쏟아냈다. “끝까지 싸울 테니, 먼저 하늘에 가신 238명의 할머니 한을 풀 수 있게 여러분이 좀 도와주세요. 내 나이 여든여덟은 활동하기에 딱 좋은 나이입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18명의 이화여고 합창단은 추모 공연 직후 각자 품고 있던 손팻말을 펼쳐 ‘굴욕 합의 반대한다. 할머니들 힘내세요’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시민과 학생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베와 일왕 무릎 꿇고 사죄하라’, ‘소녀를 지킵시다’라고 쓴 손팻말, 혹은 할머니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집회에 동참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평화비(소녀상)를 계속 설치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전국 각지의 평화비를 중심으로 릴레이 수요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시민단체와 연대해 위안부 문제를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모임 ‘평화나비 네트워크’ 김샘 대표도 “28일 회담 결과를 듣고 2년간 매주 수요시위에 나왔던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25년간 싸우신 할머니들이 얼마나 마음 아프고 화가 나셨을지 모르겠다”며 “대학생들이 끝까지 할머니들과 싸워 갈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헌화하는 것으로 집회가 마무리됐다. 참석자들은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할머니 사진이 새겨진 현수막 앞에 꽃을 내려놓았다. 몇몇 시민과 학생은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지 소녀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은 26일 오후 1시 25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2시에 열리는 영결식을 마친 뒤 46년간 보금자리를 틀었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私邸)를 한 바퀴 둘러본다. 행정자치부는 25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 계획을 밝혔다. 영결식엔 1만여명이 초대됐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영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경복궁~광화문~세종대로~충정로~공덕오거리~서강대교를 거쳐 국회 영결식장에 도착한다. 영구차가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며 입장하면 조악대 연주와 함께 영결식에 들어간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는다. 집행위원장인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고인 약력 보고,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4대 종단이 참여하는 종교의식은 고인과 유족의 종교인 개신교에 이어 불교, 천주교, 원불교 순으로 엄수된다. 고인과 가까웠던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가 개신교 의식을 치른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를 상영하며 차분히 넋을 기린다. 노제와 추모제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영결식을 마친 영구차는 상도동 사저에서 15분간 머문 뒤 인근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서행하며 고인의 넋을 다시 한 번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4시 안장식이 열리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3묘역 우측 능선에 도착해 헌화 및 분향, 하관, 예배, 허토(許土·장례를 치를 때 봉분하기에 앞서 상주들이 흙 한줌씩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로 국가장 절차를 모두 마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하나 되어 기리는 만해 한용운의 삶

    하나 되어 기리는 만해 한용운의 삶

    서울 성북구·서대문구, 충남 홍성군, 강원 인제군·속초시 등 전국 5개 지방자치단체가 ‘만해 한용운’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들 지자체는 모두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였던 한용운과 관련한 유적을 보유한 지역으로 그동안 추모제, 축제 등 각각의 방식으로 만해를 기렸다. 지난 16일 성북구청에서 모인 지자체들은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행정협의회’를 구성하고 앞으로 협력을 다짐했다. 성북구에는 한용운 선생이 직접 지어 말년을 보낸 자택인 심우장이, 서대문구에는 만해가 3·1운동 때 갇힌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홍성군에는 만해의 생가가 있으며 인제군과 속초시에는 만해가 수계한 백담사와 승려로 원적을 둔 신흥사가 각각 있다. 각 지자체는 이번 협의회 구성을 계기로 인적·문화적 교류를 통해 상호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만해 한용운 순례길’ 등 관련 사업의 개발과 운영, 문화행사에서 협력할 예정이다. 특히 만해의 삶과 사상이 종교와 시대의 차이를 초월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는 데 뜻을 모은 5개 지자체는 각 교육지원청의 협력까지 끌어냈다. 여기에 만해와 관련한 다양한 학술적 자료를 보유한 동국대 만해연구소와도 협조체계를 구축했다. 성북구와 홍성군, 인제군, 속초시 등 4개 지자체는 지난 8월 만해 한용운 순례길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서대문구는 이번 협약식을 계기로 순례길 운영에 참여할 계획이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만해 한용운의 삶과 관련이 있는 지방정부들이 뜻을 모은 만큼 만해의 사상을 청소년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영웅’에 대한 그들의 예우…英 전사자 추모제 참여 상이군인 모습

    ‘영웅’에 대한 그들의 예우…英 전사자 추모제 참여 상이군인 모습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전역에서 영국군 전사자들을 기리는 ‘전사자 추모일’(Remembrance Day)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두 개의 의족에 의지한 채 행사에 참여한 한 남성의 모습이 현지 시민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영국 블랙풀 지역의 전몰장병 기념비(Canotaph)를 향해 어렵게 발걸음을 내딛어 애도 화환을 바친 남성은 모여선 추모객들의 무수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남성의 이름은 릭 클레먼트, 5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다리를 완전히 잃은 35세 영국 상이군인이다. 17세에 처음 영국 육군에 입대해 중사까지 진급했던 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6개월 만이었던 지난 2010년 5월 27일, 도보정찰 중 도로에 매설된 급조폭발물 지뢰를 밟아 두 다리와 왼쪽 팔꿈치에 큰 부상을 입었다. 클레먼트는 긴급히 수송헬리콥터로 이송되던 중 2번에 걸쳐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후방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후에도 군의관들은 그의 생존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예상을 뒤엎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두 다리를 잃은 피해는 무시할 수 없었다. 의사들은 부상의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의족 사용마저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었다. 그러나 클레먼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걸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는 결국 정부에서 내놓은 보상금 57만5000파운드(약 10억 원)와 영국 프레스턴 지역 소재 특별재활센터(Specialist Mobility Rehabilitation Centre)의 도움에 힘입어 5만 파운드(약 8700만 원) 상당의 맞춤형 특수 의족을 마련할 수 있었다. 클레먼트는 이 의족을 마련한 지난해 12월부터 이번 전사자 추모일 행사 참여를 목표로 사력을 다해 재활에 힘써온 것. 이러한 그의 노력은 과거에도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었고, 영국 국민들은 물론 해외에서도 그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5년 11월 8일, 클레먼트는 비록 몇 걸음에 불과했지만 성공적으로 걸어 기념비 앞으로 다가가 헌화를 마쳤다. 그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감정이 복받쳤지만 결국 해내서 기쁘다”며 “내가 걸은 몇 걸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스러져간 내 전우들, 그리고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모든 영국군을 위한 것 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가까운 친구들을 언급하며 “매일 그들을 생각하며 침대를 박차고 나와 노력했다. 먼저 간 동료들이 나의 의지를 보고 자랑스러움을 느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그는 다른 상이군인들을 돕기 위한 자선재단 ‘병사의 여정’(Soldier’s Journey)을 만들어 모금에 힘쓰고 있다. 그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며 “보상금이 충분해 집을 구매할 수 있었고 연금도 받고 있기 때문에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 재단에 온 정성을 기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재단운영 이외에) 다른 열망이 있다면, 사람들이 해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일을 계속해서 해냄으로써 다른 상이군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法“세월호 집회 금지 탄원서 진위 의심된다”... 집회금지 취소

     경찰이 세월호 관련 집회를 불허하며 내세웠던 인근 주민의 탄원서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며 집회금지 처분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이승한)는 김모씨가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옥외집회 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6월 7일 종로경찰서에 ‘세월호 진상규명 및 참사 추모제’를 3일 뒤인 10일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앞 인도에서 열겠다고 신고했다.  종로경찰서는 “인근 주민과 자영업자들로부터 집회·시위로부터의 보호 요청서, 탄원서 등을 제출받았다”며 집회금지 통고를 했다. 김씨는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앞은 주거지역이 아니고, 주민 등이 거주지 보호를 요청한 적도 없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인근 주민들이 집회로부터 보호를 요청했다는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재판 시작 전인 올해 1월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인근 주민들이 지난해 6월 8일 제출한 탄원서와 연명부가 분실되는 바람에 지난해 10월 초 주민들로부터 동일한 내용의 탄원서 등을 다시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차 변론 이후 경찰은 분실했던 주민 연명부를 올해 6월 말에 다시 발견했다고 말을 바꿨다.  재판부는 “이 증거는 연명부라는 제목 아래 인근 주민 80명의 인적사항과 서명이 기재된 것에 불과해 집회 관련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과연 인근 주민들이 연명부를 작성해 집회금지 처분이 있기 전인 지난해 6월 8일 피고에게 제출했는지 의심스러운 만큼, 집회금지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세상이 다 잊어도 엄마는 잊지 않을게”

    “세상이 다 잊어도 엄마는 잊지 않을게”

    ‘세상이 다 잊어도 엄마는 잊지 않을게.’ 안개가 하얗게 뒤덮인 하늘 아래 노란 플래카드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가슴이 울컥한다. 성수대교가 보이는 위령탑 앞에서 어머니 황모씨는 흐느껴 울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등교하던 그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아침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나갔는데….” 다시 볼 수 없는 딸을 그리며 황씨는 붉은 눈으로 오래도록 성수대교를 바라봤다. 21일 오전 11시 성수대교 북단 위령탑 앞에서 ‘성수대교 붕괴 사고’ 21주년을 맞아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유가족끼리 매년 조촐하게 지내던 행사였다가 올해부터 성동구와 함께하기로 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유가족과 정원오 구청장을 비롯한 구 관계자 등 총 40여명이 참석했다. 정 구청장은 방명록 앞에서 펜을 들고 고심하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적었다. 희생 영령에 대한 묵념과 헌화 및 분향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김경자 무학여고 교장도 함께했다. 당시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중에는 등교 중이던 무학여고 학생 8명도 포함됐다. 무학여고 희생자 학부모 중 유일한 참석자인 황씨 부부는 헌화와 추도사 내내 눈물을 흘렸다. 김학윤 유가족 대표의 추도사와 위령비문 낭독 후 위령제는 끝이 났다. 적막이 돌았다. 당시 사고로 막내동생을 잃었다는 김양수(56)씨는 “조금만 빨리 구조됐어도 살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세월이 흘러도 계속 맴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동생의 죽음으로 어머니도 뇌졸중을 앓았다”면서 “가족의 슬픔은 시간이 간다고 줄어들지 않는데 이제라도 구청에서 관심을 가져 주니 고맙다”고 밝혔다. 정 구청장은 지난해 취임 후 20주년 추모제 행사에서 유가족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지난 4월 횡단보도 등을 설치했다. 위령탑과 주차장 사이에 횡단보도가 없어 추모 행사나 시설 유지·관리 작업 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또 화단 가꾸기와 주차장의 무단 장기 주차 점검 등 관리도 하고 있다. 정 구청장은 “합동 위령제를 계기로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성수대교 참사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에 일어났다. 성수대교 제5·6번 교각 사이 상판 약 48m가 갑자기 잘리면서 한강 위로 내려앉아 다리를 건너던 시내버스 1대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차량 6대가 한강으로 추락했다. 등교하던 여고생 등 32명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관악, 역사 알린다

    관악, 역사 알린다

    관악구는 오는 17일 인헌제에서 이름을 바꾼 ‘2015 낙성대 강감찬 축제’를 낙성대공원에서 연다. 1988년 시작된 낙성대 인헌제는 올해부터 강감찬 장군의 시호 대신 이름을 넣은 강감찬 축제로 명칭이 변경됐다. 유종필 구청장은 13일 “강감찬 축제가 거란대군에 맞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의 용맹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는 축제 준비를 위해 강감찬 장군 동상을 청소하고, 낙성대공원 환경도 새롭게 정비했다. 올해는 ‘북두칠성 네 번째 별’이란 주제로 기념식과 강감찬 장군 추모 제향, 우리놀이 체험과 공연 등으로 구성된 전통문화예술축제로 준비했다. 문곡성이라 불리는 북두칠성 네 번째 별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지상으로 떨어졌다는 설화가 있으며, 이 탄생설화를 따서 낙성대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북두칠성 네 번째 별은 일곱 개의 별 가운데 가장 흐리다. 축제는 17일 오전 10시 강감찬 장군의 사당으로 낙성대공원에 있는 안국사에서 시작된다. 강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식에 이어 구민들의 붓글씨 솜씨를 뽐낼 수 있는 휘호대회가 열린다. 낙성대공원 야외 광장에서는 풍물공연, 태평소밴드 연주, 전통무예 시범 등과 함께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닭싸움, 제기차기와 같은 전통놀이 한 마당도 열린다. 야외공연은 지역 청소년과 예술가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무대로 마련됐다. 축제가 마무리되는 저녁에는 가수 나윤권, 남성듀오 옴므가 출연하는 야외 음악회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 열린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을미사변의 치욕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을미사변의 치욕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을미년 8월 20일 일본인이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하니 그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다음과 같다.(중략) 새벽녘에 서문에 이르러 훈련대와 일본군이 서로를 앞뒤로 호위하며…(중략) 광화문에 도착해 바로 근정전으로 들어가니,…(중략) 연대장 홍계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궁궐로 난입한 훈련대를 큰소리로 꾸짖다가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 또한 일본 병사의 칼에 죽었다.”(박은식의 ‘한국통사’ 중에서) 1900년 9월 남산 아래 장충단이 생겼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홍 장군과 이 대신, 부령 염도희, 영관 이경호 등을 배향해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5년 뒤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08년 8월 일제에 의해 장충단이 폐사되면서 제향도 맥이 끊겼다. 이것을 1988년에 중구가 복원해 매년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8일 중구는 남산공원 장충자락(옛 장충단공원)에서 120주기 추모제향을 거행했다. 이날 최창식 구청장이 초헌관을, 이경일 중구의회 의장이 아헌관을, 이도철 참령의 증손인 이해권 제천문화원장이 종헌관을 각각 맡아 봉향했다. 제례위원은 후손들과 15개 동 자치위원장으로 구성했다. 이날 장충단제는 추모제향에 이어 추모시 낭송, 한국무용, 추모곡 및 판소리 연주 등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헌화에는 선열의 후손들과 일본인 등이 참석했다. 수염을 붙이고 제관복을 갖추며 초헌관을 충실히 재현한 최 구청장은 “추모제향은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다지는 소중한 기회”라며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과거 뼈아픈 역사를 잊으려 하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용산에서 부활하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혼

    용산에서 부활하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혼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게 유일한 슬픔이라고 유언을 남겼던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를 이태원에 세웁니다.” 15일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에 가로 0.8m, 높이 2m, 세로 0.25m의 주탑 1개와 가로 0.6m, 높이 1.5m, 세로 0.25m의 보조탑 2개로 이뤄진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세운다”면서 “오는 23일 오후 3시 제막식을 포함한 추모제를 연다”고 밝혔다. 추모비 주탑에는 유 열사 유언을 새겼고, 보조탑에는 각각 추모비 건립 취지와 유 열사의 연보를 넣었다. 지난해 10월 66명의 주민과 전문가로 구성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추모비 건립을 추진한 이후 1년여 만의 완성이다. 추모제에는 주민 300여명이 참석해 유공자 포상, 추념사, 추모사, 추모비 개막식, 헌화 및 분향 등을 한다. 또 추모행사로 헌시 낭독, 살풀이 공연, 만세삼창을 진행한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유 열사 추모 예술전도 용산아트홀에서 연다. 추모비를 세우는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은 유 열사의 시신이 마지막으로 잠들었던 이태원 공동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다. 유 열사는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4월 1일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해 투옥됐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같은 해 10월 14일 새벽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하지만 1936년 일본이 이곳에 군용기지를 조성하기 위해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시신이 사라졌다. 현재 이태원 공동묘지 자리는 주택가다. 성 구청장은 “유 열사는 1962년 건국훈장 3등급(독립장)에 추서됐는데 대통령 헌화는 1등급(대한민국장), 2등급(대통령장)인 경우에만 진행한다”면서 “이번 추모비 건립이 유 열사의 훈격 상향 및 역사적 재평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광복 70돌 숭고한 희생 기억” 전국 261개 기념 행사 풍성

    일제강점기 때 박상진(1884~1921) 선생은 양정의숙(1905년 설립된 사립 법학전문학교로 현 양정고 전신)을 거쳐 판사시험에 합격하고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15년 대한광복회를 결성, 총사령에 올랐다.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해외에서 무기를 사들여 일본인 고관과 한국 친일파들을 처단한다는 강령을 실천에 옮겼다. 1918년 체포돼 변호사 선임을 거부하고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됐다. 신현상(1905~1950) 의사는 1929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으로 임시정부 군자금 조달의 지령을 받고 국내로 잠입,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미곡거래상을 포섭한 뒤 천안 호서은행 지점에서 5만 8000원을 강제 조달했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지점을 순회하면서 독립운동가들에게 군사자금을 나눠 줬다. 1930년 3월 톈진 일본영사관을 습격하기 위해 무기를 구입하려다 미행하던 일본 경찰에 잡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70돌을 기념하는 행사가 15일을 전후로 전국에서 261개나 마련된다. 참가 인원만 248만여명에 이른다. 울산시 문화예술회관에서는 14~15일 오후 7시 30분 박상진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창작 오페라가 무대 위에 오른다. 예산군 신례원초등학교에선 15일 오전 9시 신현상 선생 추모제가 열린다. 전북 고창군은 15일 오전 9시 아산면 공설묘지에서 김공삼(1865~1909) 의병장 추모 행사를 한다. 행정자치부는 15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우리 모두 대한민국’을 주제로 경축식을 개최한다. 독립유공자 및 유족, 주한외교단, 파독 근로자, 실향민 거주지인 강원 속초시 ‘아바이마을’ 주민 등 3000여명이 참석한다. 경축 공연 1막 ‘그날의 아침’은 1905년 을사늑약부터 광복 이전까지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그렸다. 2막 ‘위대한 여정’에서는 6·25전쟁에 따른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과정을 연출한다. 이어 3막 ‘새로운 도약’은 통일 대한민국을 실현하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담는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전주형무소 민간 희생자 추모 사업 본격화

    전북 전주시가 6·25 전쟁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추모 사업을 추진한다. 전주시는 21일 ‘6·25 전주형무소 민간인 학살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오는 10월 추모상을 건립하고 추모제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6·25민간인학살조사연구회가 최근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주형무소 민간인 희생 규명을 위한 연구포럼’을 개최하고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전주형무소 민간인 학살 사건은 연합군이 서울 탈환을 앞둔 1950년 9월 26~27일 이틀 동안 북한군이 전주형무소(당시 전주교화소)에 수감돼 있던 우익인사 1000명 가운데 500명을 곡괭이와 삽 등으로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대한민국 건국 초기 지도자급 인사인 손주탁 반민특위위원장, 오기열·류준상 초대 제헌국회의원, 이철승 건국학련위원장의 부친 등이 함께 희생됐다. 학살당한 인사 중 300여명의 시신은 가족 품에 돌아갔지만 175명의 시신은 1955년 전주시 서노송동에 합동 매장된 뒤 1976년 전주 효자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이인철 6·25민간인학살조사연구회장은 “건국 초기 우리 지역의 다양한 애국지사가 희생된 사건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름 없이 돌아가신 선열들에 대한 예를 최대한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현장 블로그] 삼풍 20주기 공식 추모제 취소 논란

    [현장 블로그] 삼풍 20주기 공식 추모제 취소 논란

    ‘엄마의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X반 이○○이에요.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지켜주세요.’ 2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삼풍참사위령탑’ 주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긴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불러 본 적도 없을 ‘엄마의 엄마(할머니)’에게 남긴 한 초등학생의 편지였습니다. ‘삼풍 참사’ 20주년인 이날 위령탑 한구석에는 백발의 한 노모가 돌에 새겨진 딸의 이름자를 연신 쓸어내리며 북받치는 슬픔을 꾹 누르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오늘’ 딸을 잃은 아버지 윤모(78)씨는 위령탑 한쪽에 앉아 무심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서울 서초동 1685-3번지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며 502명의 애꿎은 목숨이 희생된 지 꼭 20년입니다. 매년 참사일이면 500~600명의 유족들이 모여 희생자를 기렸던 추모식과 달리 이날은 유가족 50여명만 모였습니다. 지난 15일 삼풍유족회 집행부가 회원 500여명에게 “서초경찰서에 집회 허가를 요청했지만 메르스 탓에 자제 요청이 있었다”며 “섭섭하지만 이번만은 공식적인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행부의 말을 확인해보니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났습니다. 서초경찰서 측은 “추모제는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니며 삼풍유족회 측도 집회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확인했습니다. 추모식이 취소되면서 상당수 유가족들은 분노했습니다. 현장에 온 유가족들은 “유족회 현 임원진이 새 임원 선출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추모제를 취소했다”고 반발했습니다. 현장에서 현 유족회 임원들을 ‘비토(거부)’하고 집행부를 새로 선출하자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현장에 있던 임원진과 일부 유가족 간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습니다. 추모하러 왔던 일부는 고개를 저으며 떠났습니다. 유족회 운영 방식과 공금 등을 둘러싼 유족 간 불신과 갈등이 터져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이 먼저 떠난 희생자들을 추모할 시간마저 빼앗은 것인지 씁쓸했습니다. 글 사진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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