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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라 모토유키 日목사,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사죄의 연주

    노무라 모토유키 日목사,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사죄의 연주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13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주변에서는 플루트에 실린 가곡 ‘봉선화’(홍난파 작곡)의 음률이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대사관 건너편에 세워진 ‘평화비’(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일본 야마나시현 베다니교회의 노무라 모토유키(81) 목사가 연주한 것이다. 노무라 목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1970~8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과 경기 화성 등지에 빈민자활공동체의 탁아소를 세우는 등 한국의 빈민 구제활동에 헌신, 한때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렸다. ●‘봉선화’ 연주 절정 이르자 무릎 꿇고 눈물 노무라 목사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로하고, 일본 정부의 조속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평화비를 찾았다. 두툼한 검은색 배낭에서 악보대와 플루트를 꺼내 든 노무라 목사는 입고 온 점퍼를 벗은 뒤 평화비를 마주 보고 서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기도와 묵념을 올렸다. 이어 플루트를 잡고 한 음, 한 음 차분하게 ‘봉선화’를 연주했다. 곡이 절정에 이르자 연주를 잇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은 노무라 목사는 장미꽃 한 송이를 평화비에 바친 뒤 다시 일어나 ‘진혼가’와 ‘우리의 소원’을 연주했다. 악보 파일에는 ‘애국가’와 ‘아리랑’, ‘아침이슬’ 등의 악보도 들어 있었다. 노무라 목사는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조센진’(조선인)이라 부르며 차별하는 것을 보아 왔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면서 “한국인에 대한 그런 마음을 연주에 담고 싶었고,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연주했다.”고 밝혔다. 또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봉선화’라는 곡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곡”이라고 말했다. ●“일본인으로서 당연한 일 하는 것” 노무라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봉사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일본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연주 때문에 대사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을지도 모르지만 각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무라 목사는 당초 주한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를 촉구할 예정이었지만 “개인 자격으로 왔을 뿐인데 예상보다 취재진이 많이 몰려 대사관 측이 당황했을 것 같다.”며 연주만 마치고 같이 온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노무라 목사는 12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고 제정구 전 의원의 1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0일 입국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노을 밸런타인데이 콘서트 ‘달콤한 청혼’ 2월 10일 오후 8시, 11일 오후 7시 서울 연세대학교 대강당. 실력파 남성 4인조 보컬 그룹 노을의 밸런타인데이 콘서트. 노을이 연인을 위해 ‘청혼가’를 직접 불러주고, 솔로 관객들을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도 준비했다. 8만 8000~9만 9000원. 1566-5490. ●MBC ‘나는가수다’ 콘서트 2월 17일 오후 8시, 18일 오후 3시·8시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인순이, 장혜진, 신효범, JK 김동욱, 조규찬, 테이, 자우림 등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10여개 팀이 참여하는 전국 투어 콘서트. 정상의 가수들이 미션과 순위의 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5만 5000~12만 1000원. 1566-5490. 클래식·국악 ●모스크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내한공연 2월 4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노태철, 피아니스트 에프게니 브라흐만 협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 5만~15만원. (02)581-5404. ●청춘가악 2월 1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과 해금 문새한별, 판소리 장서윤, 아쟁 김승철 등 국악 신예들이 꾸미는 공연. 공수받이(김영재 작곡), 범피중류와 한일섭류(김희조 편곡), 아쟁산조협주곡, 산바람(이준호 작곡), 나비의 꿈(곽수은 작곡) 등 연주. 2만~3만원. (02)399-1181~2. 미술·전시 ●‘져버려진 곳의 품 안에서’전 2월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핑크갤러리. 무스타파 아크림, 제네비브 추아, 리처드 휴만, 리즈완 미라즈, 하니선 라우혹싱 등 개념미술을 하는 신진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070-8887-6388. ●백남준 6주기 추모식 29일 오후 4시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메모라빌리아홀. 백남준이 중학생 시절 작곡한 ‘조가’, ‘먼후일’ 등으로 구성한 추모공연 등. (031)201-8512. 연극·뮤지컬 ●연극 ‘풍찬노숙’ 2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우리 사회의 ‘혼혈’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졌다. 지난해 연극 ‘됴화만발’에서 독특한 무대를 보여준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객석의 경사를 이용해 구릉을 만들어냈다. 남산예술센터 2012년 시즌 첫 프로그램으로, 허를 찌르는 풍자와 유머가 4시간 동안 이어진다. 2만 5000원. (02)758-2103. ●뮤지컬 ‘광화문 연가’ 2월 7일~3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 ‘붉은 노을’ 등 히트곡과 함께 세 남녀의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해에 이은 앙코르 공연이다. 5만~13만원. 1666-8662.
  • [발언대] 윤봉길 의사 의거는 전투행위다/윤주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연구위원

    [발언대] 윤봉길 의사 의거는 전투행위다/윤주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연구위원

    오늘은 윤봉길 의사의 순국일이다. 일부 사람들이 윤 의사의 의거 성격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선동 의원은 지난 11월 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행한 최루탄 폭력을 윤 의사의 의거에 비유하는가 하면, 심지어 인터넷 포털 일각에서는 윤 의사의 의거를 테러 운운하고 있다. 윤 의사의 의거는 테러가 아니고 침략전쟁에 맞서 싸운 전투행위이다. 테러는 폭력을 써서 적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이고, 전쟁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무력에 의한 투쟁이다. 행위 주최가 국가 사이의 무력투쟁이면 전쟁이고, 개인이 적 또는 적대 기관에 가한 폭력행위는 테러이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중국을 침략한 일제가 개최한 전승기념식 이동사령부를 기습 공격하여 침략군 대장 시라카와 등 전쟁범죄자 수괴를 섬멸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한 특공대 한인 애국단원이 정부의 승인 및 작전에 따라 일본군 사령부를 공격해 세계를 놀라게 한 전과(戰果)를 올린 반침략전쟁이다. 일본 육군성이 1932년 9월에 작성한 ‘상하이 천장절 폭탄 흉변사건’이란 문서에 ‘천장절 및 전승기념식장’을 전장(戰場)으로 규정했고, 또한 시라카와 대장이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것이 아니라 상하이 전장 훙커우공원에서 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일제는 윤 의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공대원으로 간주해 군인으로 다루어 비공개 군사재판에서 단심으로 형을 확정한 다음 군 형무소에 가뒀다가 군부대 영내에서 총살형을 집행했다. 이처럼 일제도 윤 의사의 의거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인이 기습 공격한 전투행위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윤 의사 의거를 테러로 격하시키는 궤변을 삼가고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말처럼 중국 30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전과를 이룩한 전투행위로 평가하여야 한다. 19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윤봉길 의사 묘전에서 거행되는 ‘윤봉길 의사 순국 제79주기 추모식’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으면 좋겠다.
  • [연평도 포격 1주년] 땅에서 울고 하늘도 울었다

    “정우야! 그리고 광욱아! 가슴에 너희를 묻으며 약속한다. 내 조국, 우리나라 이 땅, 이 바다, 우리가 기필코 지켜 내겠다고.” 23일 연평도 해병대 박성요 하사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년 전 북한의 포격 도발로 숨진 고(故)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 하사의 추모글이 낭독되자 추모객들도 흐느꼈고, 하늘도 비를 뿌렸다. 추모식 내내 유족들은 군복을 입은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특히 헌화·분향하던 서 하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수차례 목놓아 불러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정부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김황식 국무총리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같은 당 유승민·김장수 의원, 전사자 유가족, 해병부대원 등 3000여명이 참석해 서 하사와 문 일병을 추모했다. 김 총리는 추모사를 통해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킨 전사자들과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떠한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다.”면서 “굳건한 안보 위에 이 땅을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호국영령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전현충원은 2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 서 하사와 문 일병 묘역 앞에서 진혼곡을 연주한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추모식 도중 비가 내리자 형형색색의 비옷을 나눠주고 입게 해 추모 분위기를 반감시켰다. 비가 내리자 비옷을 꺼내 입은 추모객들조차 빨간색이나 초록색 비옷을 확인한 뒤 눈살을 찌푸렸다. 한 추모객은 “엄숙해야 할 추모식장에 빨간색, 초록색 비옷을 나눠줘 입을 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비가 온다는 예보에 현지에서 비옷을 구입했는데 3500장이나 대량으로 구입하다 보니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호암 이병철 24주기… 범삼성家 한자리에

    호암 이병철 24주기… 범삼성家 한자리에

    호암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24주기 추모식을 맞아 범삼성가(家)가 한자리에 모였다. 18일 오전 11시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린 추모식은 삼성가와 삼성그룹 사장단, CJ, 신세계, 한솔 등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원래 호암의 기일은 19일이지만 올해는 토요일과 겹쳐 이날로 앞당겼다. 추모식에는 이건희 회장과 이인희 한솔 고문, 이재현 CJ 회장 등 삼성가 오너들이 대부분 참석해 고인의 창업 정신을 기렸다. 호암의 3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 맏사위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와 둘째 사위인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과 함께 선영을 찾았다. 이 회장은 2007년과 2008년 건강 문제로 불참했지만, 2009년에 이어 3년째 추도식에 참석했다. 호암의 장손인 이재현 CJ 회장도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선영을 찾았다. 최근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추도식 현장에서 앙금을 풀고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과 최지성·이은우 삼성전자 부회장 및 신종균·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등 미래전략실 및 계열사 경영진과 임원도 다수 참석했다. 행사는 추모식 이후 간단한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눈 뒤 1시간여 만에 끝났다. 호암의 막내 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외손자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이날 추도식에는 가지 않고, 기일인 19일 선영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지난 5일 사망한 스티브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이 잡스가 사망하기 직전 마지막 말에 대해 언급했다. 모나 심슨은 30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잡스가 숨을 멎기 직전 가족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 와우’(OH WOW)라고 말했으며 이를 3번 반복했다.”고 밝혔다. 심슨은 “마지막까지 잡스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스티브는 ‘죽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또 잡스가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던 1985년을 회상하며 “당시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스티브가 당시 실리콘밸리 지도자 500명과 현직 대통령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지 못해 상처받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6일 미국 스탠포드 대학 내 메모리얼 교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잡스의 추모식에는 모나 심슨 등 가족 외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팀 쿡 애플 CEO,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빌게이츠 전 MS회장, 델 마이클 델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또 24일 29개국에 동시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발매하자마자 각국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해 영향력을 입증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시민 박원순’ 택했다] 잔정 많지만 일할 땐 엄격… ‘꼼꼼 원순씨’

    [‘시민 박원순’ 택했다] 잔정 많지만 일할 땐 엄격… ‘꼼꼼 원순씨’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의 선거 명함에는 노인과 격없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이지만 한번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두 얼굴의 사나이”란다. 일상생활에서는 한달에 한번 직원들의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직접 장을 봐 요리를 해주는 인자하고 잔정 많은 모습이지만 일할 땐 매우 엄격하고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거대 여당을 무너뜨리고 무소속 범야권 단일후보로 서울시장 자리를 꿰찬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누구인가. 선거 기간 내내 그의 곁을 지키며 ‘입’ 역할을 한 11년지기 송호창(변호사) 대변인은 그를 “천재지만 너무 착한 바보”라고 규정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과감히 선택하고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 줄 아는 ‘아이디어맨’이지만 토론에서 상대 후보를 찌를 ‘공격 아이템’을 쥐여 줘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건 순전히 그의 성품 탓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별명도 많다. 10년 전에는 ‘불도저’, 지금은 ‘넓적부리도요새’ ‘원순씨’다. ‘불도저’란 별명은 아름다운 재단 출범 초기의 추진력 때문에 붙었고, ‘넓적부리도요새’는 멸종 위기 동물들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명함에 적어 다녀 붙은 별명이다. 새말이 ‘작고 멀리 나는 새’로 박 당선자를 지칭한다. 인생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종횡무진하다 붙은 ‘이사’ ‘변호사’ ‘대표’ 등 각종 호칭을 대신해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조한 ‘원순씨’로 최종 통일했다. 밤샘을 즐긴다는 ‘꼼꼼 원순’ 박 당선자는 화를 내지 않는 대신 준비나 방향 제시가 미흡하면 “준비가 제대로 된 거예요.”라며 한마디만 던진단다. 그 나직한 ‘카리스마’를 본 직원들은 얼어붙는다는 후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10대 핵심 공약을 직접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기획부터 발표까지 총지휘한 것은 대표적인 단면이다. 이념·정체성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는 ‘중도 진보주의자’다. 스스로는 “현장주의자”라고 한다. 보수, 진보의 한계를 넘어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당선자는 유언장에 “내가 살면서 이룬 작은 성취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바른 생각들이 아이들의 유산이 됐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박 당선자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2남 5녀 가운데 차남(여섯 번째)으로 태어났다. 경기고 3학년 때 결핵성늑막염으로 1년 늦게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1975년 대학 1학년 시절 긴급조치 9호로 서울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박 당선자는 입학 석 달 만인 1975년 6월 유신체제에 반대 시위를 벌이다 숨진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4개월간 투옥됐다가 결국 학교에서 제명됐다.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박 당선자는 이후 1979년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겨 사법고시에 매진해 1980년 합격했다. 긴급조치 9호는 뒤늦게 위헌 판결이 났지만 서울대로의 복학은 늦은 상황이었다. 사법연수원 시절 박 당선자는 경기고 선배인 조영래 변호사를 동기로 만난다. 서울대 수석 졸업에 운동권 내 명성이 자자했던 조 변호사는 박 당선자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박 당선자는 연수원 수료 직후 대구지검 검사로 발령 나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박 당선자는 “사형 집행 참관이 싫었다. 1년을 채우라는 부장 검사의 권유에 따라 1년 뒤에 사직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1984년 인권 변호사로서 조 변호사와 함께 본격적인 공익 소송에 나선다. 5년 만에 승소로 이끈 망원동 수재(水災) 사건을 비롯해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 ‘말지’ 보도 지침 사건, 부산 미 문화원 점거 사건 등 사회를 들썩인 사건들의 변론을 맡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주도했다. 박 당선자는 “조 변호사는 법률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가고 혼자 힘이 아닌 다양한 세력과 연대해 풀어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야권 단일후보로 선거에 나온 박 당선자가 조 변호사의 말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조 변호사가 숨진 이듬해인 1991년 박 당선자는 영국과 미국으로 건너가 머물며 시민단체를 경험하고 1994년 시민단체 ‘참여연대’를 만들었다. 1995~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은 뒤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국회의원 낙선운동 등을 벌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국세청 앞에서 처음으로 ‘1인 시위’를 벌여 시위 문화로 발전시켰다. 변호사 생활은 1996년 끝이 났다. 2002년 아름다운 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하면서 ‘모금 운동가’를 자처, 이명박 대통령, 대기업들과 함께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공을 인정받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여성인권상과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애플 잡스 추모행사 축제 분위기속 성료

    애플의 공동 창업주인 고(故)스티브 잡스를 기리는 사내 추모식이 19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본사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1시간 30분동안 진행된 추모식은 사내 통신망을 통해 전세계 애플 매장에 생중계됐다. 애플 직원들은 식이 진행되는 동안 매장 문을 닫았으며,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외부인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추모식은 본사 직원들과 인근 애플 사무실 직원들을 포함해 수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축제같은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잡스의 후임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애플 이사회 멤버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빌 캠벨 인튜이트 회장 등이 고인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고, 영국 출신의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유명 여성가수 노라 존스가 공연을 펼쳤다. 팀 쿡은 잡스와의 우정을 회고하면서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잡스의 신임을 받았던 애플의 디자인 담당 수석부사장 조너선 아이브는 여행중 묵는 호텔을 매우 까다롭게 고르는 것 등을 비롯한 잡스의 특이한 취향 몇 가지를 공개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캘리포니아 드림 이룬 선지자”

    애플사의 공동창업주인 고(故)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이 16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 교회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추도식은 대학 정문부터 경찰과 애플 보안요원들의 철통 보안으로 외부인은 물론 언론들도 출입이 원천 봉쇄된 가운데 진행됐다. 참석자들도 초대장과 신원 확인을 최대 5번을 거쳐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 이뤄졌다. 스탠퍼드대는 잡스가 지난 2005년 졸업식 축사에서 “남의 인생을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라.”, “항상 갈구하고, 우직하라.” 등 주옥 같은 명연설을 남긴 곳이다. 또한 부인 로런을 처음 만난 곳으로 잡스와 인연이 깊다. 추도식은 오후 6시 30분부터 2시간 30분 동안 대학 본관 중앙에 있는 ‘메모리얼 처치’에서 열렸다. 교회 내부는 1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이날 추도식에는 정보기술(IT) 업계 유명인사들과 잡스의 지인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애플 이사회 임원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인터넷 회사 5, 6곳의 창업자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과 특허소송을 진행중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사장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의 초청으로 추도식에 참석했다. 이 사장은 전용기로 이동해 오후 6시 6분쯤 대학 본관 앞에 도착한 뒤 수행원 없이 애플 안내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곧바로 추도식장으로 들어갔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앞서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지사는 16일을 ‘스티브 잡스의 날’로 명명했다. 그는 “잡스는 아주 특별한 선지자로서 ‘캘리포니아 드림’을 실현한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한편 애플은 19일 쿠퍼티노 본사에서 회사 차원의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 애플은 일반인이 참여하는 공공 추모식에 대한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빌 클린턴 65세 생일파티 입장료 6500弗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할리우드 연예계 인사를 포함한 저명 인사들과 함께 화려한 65세 생일 파티를 치렀다고 현지 방송이 14일 (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부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함께 금요일인 13일 밤에 이어 토요일까지 이틀 동안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명 배우와 가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생일 파티 겸 기금 모금 행사를 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생일은 8월 19일이지만, 클린턴 부부는 생일 파티를 뒤로 미뤘다가 지난 주말 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요란한 생일 파티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로이스홀에서 유명한 자선사업가 고 에디 워시먼 추모식으로 시작됐다. 워시먼은 미 영화계의 거물인 류 워시먼 유니버설영화사 전 회장의 부인으로, 자선 사업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생일인 지난 8월 19일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할리우드 팔라디엄으로 자리를 옮긴 클린턴 부부는 칵테일 파티와 기금모금 경매 행사, 그리고 만찬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생일상을 받았다. 배우 제인 폰다·펠리시티 허프먼·제시카 알바와 전설적인 복싱 선수 슈거 레이 레너드 등이 눈에 띄었다. 이날 파티의 부부 동반 입장료는 6500달러였다. 토요일 파티에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록그룹 U2의 보노·엣지, 가수 어셔·케니 체스니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할리우드에 막강한 인맥을 자랑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번 생일 파티를 통해 ‘빌 클린턴 재단’에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연합뉴스
  • 故최진실 3주기 추모식

    고 최진실씨 3주기 추모식이 2일 오전 경기 양평 갑산공원 묘원에서 열렸다. 오전 10시 40분쯤 시작된 추모식에는 고인의 어머니 정옥숙씨와 진실씨의 두 자녀를 비롯해 동료 연예인 이영자·홍진경·조연우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1시간 동안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식 추모 예배로 진행됐다. 가족과 친구들은 추모 예배 동안 차분하게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른 뒤 옆에 있는 동생 고 최진영씨의 묘소를 찾아 누나에 이어 작년에 세상을 떠난 고인을 기렸다. 최진실씨 측 관계자는 “작년보다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면서 “진실씨의 자녀들도 예전보다 많이 편해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프로야구] 사직에 부활한 최동원… 롯데 PO직행 응원

    [프로야구] 사직에 부활한 최동원… 롯데 PO직행 응원

    30일 부산 사직구장. 전광판에 스물여섯 청년 최동원의 얼굴이 비쳤다. 순식간에 시간은 1984년 10월 9일 한국시리즈 7차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무리인 것은 알지만 올해의 마지막 경기다. 꼭 이겨야 하니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최동원은 그날 완투하며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둔 단 한 명의 투수, 고(故)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추모식과 영구 결번식이 프로야구 롯데와 두산의 경기 전 열렸다. 롯데는 이날을 ‘최동원 데이’로 정하고 고인의 현역 시절 등번호인 11번을 구단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했다. 고인의 어머니 김정자씨와 동생 최원석씨, 부인 신현주씨, 장남 최기호씨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영상이 흐르며 행사가 시작됐다. 경남고 후배인 임경완은 롯데 선수들을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선배님의 야구에 대한 열정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선배님의 영전에 우승을 바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추모사가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 김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장병수 사장이 영구결번을 선포한 뒤 1루 외야 펜스 위에 11번 유니폼이 그려진 깃발이 게양됐다. 3루 외야 펜스에는 주황색 원 안에 ‘11’이라는 숫자를 넣은 기념판이 설치됐다.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자체 제작한 대형 현수막과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레전드를 추모했다. 이날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는 최 전 감독과 고(故)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을 2011 일구대상 공동 수상자로 정했다. 부산시는 제54회 부산문화상 수상자로 최 전 감독을 선정해 어머니 김씨에게 상패를 전달했고, 롯데장학재단은 아들 기호씨에게 대학 장학금을 전달했다. 기호씨는 아버지의 11번을 등에 새긴 채 시구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야구를 했던 기호씨는 꼭 아버지처럼 빠른 공을 낮게 던져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롯데는 두산을 6-3으로 꺾고 2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롯데는 남은 3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면 무조건 2위를 확정한다. SK는 문학에서 삼성을 2-0으로, 넥센은 목동에서 한화를 3-0으로 각각 이겼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서울시장 예비후보 24시] 박원순은 누구

    박원순(55)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전 상임이사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세대’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시절이던 1975년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한 뒤 유신 반대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2년 검사로 임용돼 대구지검에서 근무했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이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좌파 인사들이 참여해 1986년 설립한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면서 시민운동에 적극 나섰다. 이후 2000년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를 세웠고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데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여겨지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국가보안법 연구’(3권), ‘야만시대의 기록’(3권) 등의 저서를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설해 왔다. 부인 강난희씨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시장 출사표’ 박원순 그는…

    ‘시장 출사표’ 박원순 그는…

    박원순(55)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내 시민단체 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한 박 이사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세대’다. 1975년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제적된 뒤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겼다. 1980년 사법시험(22회·연수원 12기)에 합격,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 근무하다 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권인숙 성고문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에 참여한 것은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하면서부터다. 그는 2000년 비영리법인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기부문화 확산에 힘썼다. 2006년에는 한국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데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브레이비크 “2개조직 더 있다” 공범 가능성 시사

    93명의 사망자를 낸 노르웨이 연쇄 테러 용의자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에 대한 첫 심리가 25일 오후(현지시간) 열려 35분 만에 끝났다. 브레이비크는 이날 오슬로 시내 법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심리에서 폭탄 테러 및 총기 난사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나는 무슬림(이슬람교도)으로부터 서유럽을 구하고 싶었다.”면서 무죄를 강변했다. 특히 지금까지 단독 범행을 주장해 오던 것과는 달리 “우리 조직에는 2개의 소규모 조직이 더 있다.”고 밝혀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이와 함께 집권 노동당이 “무슬림을 대거 수입했다.”면서 “국가를 배신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정보다 1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된 심리는 35분 만에 초고속으로 끝났으며 심리를 진행한 킴 헤거 판사가 테러범의 진술 내용을 4시쯤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헤거 판사는 브레이비크에 대해 8주간의 구금을 명령했으며 “선임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외부로부터의 편지는 물론 언론과 방문자와의 접촉도 금지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심리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법원은 브레이비크가 공개 심리를 테러 합리화와 반(反)이슬람 사상 전파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했다. 브레이비크 법원 출정과 심리는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오후 1시 50분쯤 법원에 도착한 그는 무장한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타고 법원 건물 후문을 통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바람에 일반에 노출되지 않았다. 곧이어 심리가 시작됐고 그로부터 35분쯤 뒤인 오후 2시 30분쯤 법원 경비가 밖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심리가 끝났고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고 알렸다. 테러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브레이비크를 취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오슬로 법원 건물 앞에 몰려 들었던 수십 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끝내 테러 용의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법원 앞에는 오슬로 시민 수백명도 운집해 장사진을 이뤘다. 브레이비크는 테러 전 인터넷에 올린 선언문에서 재판정 출두를 연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법정에서 할 연설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법정에 출두할 때 제복 입기를 원한다는 뜻을 변호사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의 변호사는 어떤 제복인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브레이비크가 추종하는 단체 ‘템플 기사단’의 제복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테러 용의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 측은 심리 시작 전 기자들에게 비공개 결정을 미리 알렸다. 심리를 주재한 헤거 판사는 이에 대해 ”용의자에 대한 공개 심리가 특별하고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구체적 정보가 있어 심리를 비공개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이날 테러 현장에서 가까운 오슬로 대학에서 희생자 추모식을 주재했다. 추도식에는 하랄 5세 국왕 부부와 이웃 나라 덴마크·스웨덴 대표도 참석했다. 테러 현장인 정부 청사 건물 주변에는 저지선이 처져 일반인의 출입이 여전히 통제되고 있으나, 시내 대부분의 거리에선 통행이 허용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아프간 대통령 동생 추모식 자폭테러 18명 사상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이복동생으로 지난 12일 경호원에게 암살당한 아메드 왈리 카르자이의 추모객을 겨냥한 자폭테러로 고위 성직자를 비롯한 3명이 숨졌다. 아프간 칸다하르주 관리들은 14일 수도 카불에서 내려온 장관들이 방문 중이던 이슬람 사원서 테러범이 폭탄을 터트려 3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내무부의 시디크 시디키 대변인은 왈리 카르자이의 추도식이 열리는 모스크의 모퉁이에서 자폭테러가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국방·법무 장관 등 정부 대표단과 국회의원 15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내무부는 칸다하르주 종교평의회의 히크마툴라 히크마트 의장이 희생자에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아프간 최고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칸다하르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왈리 카르자이가 암살된 뒤 현지에서는 권력의 공백으로 인한 불안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연평해전 故윤영하 소령 추모식

    지난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고(故) 윤영하 소령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가 28일 오전 윤 소령의 모교인 송도고에서 열렸다. 윤영하기념사업회(이사장 박상은 의원)는 추모 행사와 함께 송도고에 ‘윤영하 장학기금’을 설립하고 후원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행사에는 윤 소령의 부친 윤두호씨를 비롯해 이승준 인천해역방어사령관, 전종호 인천보훈지청장, 김광식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등 각급 기관단체장과 장학금을 후원한 조용민 ㈜한진해운홀딩스 대표, ㈜STX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 [나와 통일] (21) 정준호 배우·통일부 홍보대사

    [나와 통일] (21) 정준호 배우·통일부 홍보대사

    영화배우 정준호는 연예계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스스로 “오지랖이 넓고 감투 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가 맡은 홍보대사만 50여개다. 2009년부터 맡고 있는 통일부 홍보대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냥 얼굴만 내미는 홍보대사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통일과 북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 같았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국정원 요원으로 출연해 남북한 갈등을 표현했던 그는 “무조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논리로 북한과의 거리를 좁혀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화예술인으로서 또 정치인으로서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솔직한 생각도 들려주었다. 그가 겪은 북한, 북한사람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울 한남동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배우 정준호와 통일은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통일부 홍보대사를 맡은 계기가 있나. -단체나 기관, 지자체 홍보대사를 50개 정도 맡아서 했다.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하기도 하고 내 시간을 조금 할애해서 도움이 된다면 굳이 안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서울대에 있는 국제백신연구소(IVI)라는 국제기구의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통일부와 빈민국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또 처음으로 내가 주연, 제작한 영화가 ‘동해물과 백두산이’였는데 북한군 병사 2명이 낚시를 하다가 바닷물에 쓸려 동해 앞바다에 표류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일부 홍보대사를 의뢰받아 호기심도 있고 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브 앤드 테이크로 北과 거리 좁혀야 →북한에 가거나 북한 사람들과 만나 본 적이 있나. -2006년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부탁으로 고 정몽헌 회장의 추모식 겸 음악회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당시는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여서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북한에 갔다. 개성은 북한의 3대 도시이고 북한에 처음 간다는 생각에 떨림과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너무 형편이 없었다. 마치 1960년대 지방의 소도시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묵었던 특급호텔은 화장실에 물이 줄줄 새고, 현관에는 대형 곤로가 있었는데 새까만 연기와 휘발유 냄새가 진동했다. 개성을 보고 나서 북한을 생각하는 내 자세도 달라졌다. 우리는 배불리 먹는데 밥을 남기는 것조차 너무 미안했다. 이들과 남한 사람들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부담스러워하고 걱정스러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라고 본다. 김일성·김정일 세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가고 곧 세대교체가 된다. 지금 자라나는 10대, 20대는 다르다.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정보 공유는 막을 수 없다. 북한에서도 아이리스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한다. 이미 우리 문화에 눈을 뜬 이상 막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교류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적절한 문화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다 보면 서로의 체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은 연예인이 나서야 北주민 설득 →드라마 ‘아이리스’를 찍으면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원래 아이리스 첫 장면을 이병헌과 내가 훈련 도중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둘이 동시에 서울이 핵폭탄으로 초토화되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핵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자고 했다. 결국 CG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못했다(웃음). 북한은 인명을 담보로 핵무기를 만들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라를 지키려는 방어수단으로 삼고 있다. ‘아이리스’에 광화문 폭파 장면이 있었는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민들이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유명 영화배우로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이 느끼는 괴리감이 클 것 같다. 우리가 도와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코드가 뭐겠나. 나처럼 대중적으로 친근한 사람들이 나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해시켜주면 좋을 것 같다. 교수나 정치인이 설명하는 것보다 배우 정준호가 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남북협상을 할 때도 꼭 정치인만 할 필요 있나. 영화배우, 가수, 무용인이 나가서 ‘영화 합작합시다’ 이런 얘기는 왜 못하나. 정치인들이 나가면 서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니까 만날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콘텐츠를 공유하자는 거다. ●외국 가면 꼭 북한식당 들러 →북한이랑 의외로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외국에 나가면 꼭 북한식당에 간다. 연예인 축구팀의 단장을 하면서 탈북자 모임 행사도 하고 자연스럽게 만날 일이 많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북한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많이 깨달았다. 그들은 우리가 잘 산다고 해서 우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 →통일이 돼서 문화부 장관 같은 것 하면 잘 할 것 같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관심 있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 보는 게 취미였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탓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지랖이 넓고 감투도 많이 쓰다 보니 주변에서 “너 같은 사람들이 정치해야 한다.”고 자주 그런다. 선거 때마다 제안을 받기도 했다(웃음). ●전국민이 통일부 홍보대사 해야 →정준호에게 정치란. -철저하게 정치는 봉사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무릎 밑에서 놀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정치를 해선 안 된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게 가식이든 진심이든 나처럼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런 사람이 되면 좋은 일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말을 잘한다. -다른 배우라면 이런 인터뷰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배우로서 하고 싶은 말을 왜 못하나.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이렇게 하면 금방 친해진다. 만나기 전부터 탐색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 된다. 너나 나나 모두 통일부 홍보대사가 되어야 한다. 탈북자들을 내 식구, 내 가족처럼 대해서 빨리 정착하고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글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천안함 폭침 1주기] 이대통령 “천안함, 세월 가도 잊지 않겠다”

    [천안함 폭침 1주기] 이대통령 “천안함, 세월 가도 잊지 않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바로 엊그제 같은데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면서 “세월이 가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피격 1주년인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용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추모식에 앞서 청와대 천안함 유족 초청 행사에서 1억원을 성금으로 냈던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와 천안함 46용사의 묘역을 매일 수습하는 고(故) 임재엽 중사의 어머니 강금옥씨 등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윤씨에게 “지난번 청와대에 와서 보내주신 돈으로 무기도 샀다.”면서 “가족들 모두 한이 맺혔을 텐데 어머니가 거꾸로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윤씨가 “아들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자 “이 사람들(희생자)이 죄가 있느냐. 우리가 못 지켜준 것으로, 다 우리 잘못”이라면서 “앞으로는 진짜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천안함 46용사와 구조작업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 대통령은 젊은 나이에 숨진 병사들의 묘비를 일일이 돌며 어루만지고, 유족들이 올려 놓은 가족사진을 비롯한 유품을 보면서는 아무 말 없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 대통령은 또 민 상사의 묘비 앞에서 어머니 윤씨가 “피눈물 흘리는 줄 알겠죠.”라고 눈시울을 붉히자 “어머니,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라며 다독였다. 한 준위의 묘비 앞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된 아들 상기 씨에게 “당시 날씨도 차고, 어렵다고 했었는데 후배를 건지려고 그런 것”이라면서 “우리의 영웅이었다.”고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관련 희생자의 묘역을 참배한 뒤 즉석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사망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등 해병대원들이 묻힌 곳도 찾아 헌화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신한은행 창업 주역 이희건 명예회장 별세

    신한은행 창업 주역 이희건 명예회장 별세

    신한은행의 창업 주역인 이희건 명예회장이 지난 21일 일본 오사카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4세. 주주총회가 끝날 때까지 별세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유지를 받들어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23일 서울 태평로 본점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 명예회장의 별세 사실을 알렸다. 주주들은 묵념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오사카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신한은행은 유족들과 협의해 조만간 국내 추모식을 갖기로 했다. 고인은 1917년 경북 경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현해탄을 건너 오사카에서 타이어 장사를 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소외되던 재일 한인 상공인을 위해 1955년 일본에 신용조합 대판흥은(大阪興銀)을 설립하며 금융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오사카 재일동포 상공인의 대부로 떠오른 이 명예회장은 모국에서의 금융업 진출을 추진, 1974년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만들었다. 이어 이 명예회장은 1982년 7월 일본 전역에 있던 340여명의 재일동포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집해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이 명예회장은 한·일 양국 관계 개선에도 헌신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100억엔(약 520억원)을 모아 한국 정부에 지원한 공로로 무궁화훈장을 받았다. 1992년에는 한국 상품을 사자는 ‘바이 코리안’ 운동을 일본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일본에서 국내 송금 운동을 주도했고, 2008년에는 장학사업 등을 목적으로 현금 6억원과 주식 80만주를 출연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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