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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라디오·예능 정상화 수순···보도·시사교양은 ‘아직’

    MBC 라디오·예능 정상화 수순···보도·시사교양은 ‘아직’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난 13일 이사회를 열어 김장겸 MBC 사장 해임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MBC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파업 철회 이후 일부 업무에 복귀하면서 MBC가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다만 보도·시사 부문 조합원과 아나운서 부문 일부 조합원은 새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제작·업무 중단을 이어나가기로 했다.20일 MBC 노조에 따르면 MBC는 이날부터 라디오 정규 방송을 재개했다. 오전 5시 표준FM(95.9㎒) ‘건강한 아침 이진입니다’를 시작으로 간판 프로그램인 ‘시선집중’ 등이 방송됐다. FM4U(91.9㎒)도 오전 5시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로 시작해 ‘배철수의 음악캠프’, ‘정유미의 FM데이트’ 등이 정상적으로 전파를 탔다. 특히 ‘부당노동 행위’로 피소된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이 ‘시선집중’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시선집중’ 진행자는 변창립 아나운서로 바뀌었다. 이날 시선집중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시작으로 방송을 재개했다. 앞서 노조는 ‘세월호 유족 얼굴 사용 금지’ 등 경영진의 ‘보도지침’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적이 있다. 지난 18일 진행된 세월호 미수습 희생자 합동추모식와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등에 대한 소식을 전한 유 위원장은 이날 출연에 대해 “세월호 참사 앞에서 거듭나겠다는 MBC 구성원들의 약속을 지키는 출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업으로 결방이 불가피했던 MBC TV도 이번주부터 본격 정상화에 돌입한다. 지난 18일까지 ‘스페셜 방송’으로 재방송을 내보냈던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오는 25일 다시 시청자들과 만난다. 지난 15일 ‘라디오스타’도 정상 방송됐다. 드라마는 대부분 외주 제작이라 파업 여파가 크지 않았다. 다만 보도·시사교양 부문은 현재 공모 중인 MBC 신임 사장 선임을 시작으로 추후 경영진 재편과 맞물려있어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비록 김 전 사장은 물러났지만, MBC의 ‘보도 자율성 침해’를 현장에서 지휘한 데스크(간부)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뉴스데스크는 이상현·배현진 앵커 체제가 당분간 이어지고, 시사 프로그램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등은 결방 사태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안전대국 건설이 세월호 잊지 않는 길이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생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와 일반 승객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가족이 그제 전남 목포신항을 떠났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1313일 만이다. 이들 가족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비통하고 힘들지만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목포신항을 떠나기 앞서 추모식을 가졌다. 이어 안산과 서울에서 3일장을 치르고 오늘 유품을 화장한 뒤 가족공원 등에 안장한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의 철수 결단은 세월호를 묻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은 가족을 잃은 자신들의 고통보다는 참사 뒤 생긴 국민 간 갈등을 걱정하고,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의 비원을 담아 철수를 결정했다.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이다. 국회에서는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오늘 본회의에 상정돼 24일 표결에 부쳐진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찬성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된 과정과 특조위 위원 9명의 여야 구성 비율을 놓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해 총체적이고 온전한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할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각 당은 법안 통과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선체조사위도 선체를 똑바로 세워 내년 3월까지 선내를 조사한다. 3년 반 전의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사고 직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기운이 드높아져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는 듯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안전보다는 속도, 효율을 우선시하는 고질병이 참사의 기억을 비웃듯 머리를 드밀고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규모 5.4의 포항 지진에서 보듯 내진설계가 의무화된 아파트가 건설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는 등 3000채 가까운 건물이 피해를 봤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의 교훈을 전혀 살리지 않은 채 포항 지진을 맞은 모습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동네의 조그만 건설현장에도 보행자 안전 통로 하나 제대로 만들지 않는 우리다. 시공자, 허가관청, 지나는 시민들조차 이런 안전불감증을 당연히 여긴다. 일본 같으면 안전보행을 유도하는 요원만 여러 명이 배치됐을 것이다. 일본도 대형 사고가 많았지만 수십년간 민관이 노력해 안전한 나라의 대열에 들어섰다. 안전대국 건설에는 돈도 들고, 의식 개혁과 법 정비도 필요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정부의 내년도 지진 방재 예산이 500억원 이상 삭감된 것은 우리의 후진적 현실을 잘 보여준다. 훗날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의 안전대국을 일구는 거름이 됐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를 우리 사회가 잊지 않고 의미 있게 기억하는 길이다. 사회 구성원과 정부가 합심해야 한다.
  • 가슴에 묻고… 마지막 배웅

    가슴에 묻고… 마지막 배웅

    1312일 만에 목포신항 떠나 유해 대신 유품 ‘한 줌의 재’로 인천과 평택 추모공원에 안장세월호 미수습자 5명이 참사 1312일 만에 목포항을 떠나 영면했다.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박영인·남현철군, 단원고 양승진(당시 59세) 교사, 부자지간인 권재근(당시 51세)씨와 혁규(당시 7세)군 등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합동 추모식이 지난 18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엄수됐다. 추모식은 오전 9시 30분 양승진 교사, 남현철·박영인군,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영정을 제단에 차례로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입관식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고인을 기리는 묵념, 천주교·원불교·불교·개신교의 종교의식, 헌화, 추모시 낭송 등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고인에게 국화꽃을 바치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영정을 어루만지고,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사무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세월호 4·16가족협의회,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이주영 참사 당시 해수부 장관, 국민의당 박지원·천정배 의원, 정의당 심상정·윤소하 의원, 시민 200여명 등이 미수습자 5명의 가족 곁을 지켰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미수습자 5명의 영정과 유품을 실은 운구차는 세월호 선체를 한 바퀴 돈 뒤 수색 작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포신항을 떠났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세월호 미수습자 장례식이 열린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 총리는 박영인군의 빈소에서 오열하는 유족의 모습을 보고 분향을 하지 못한 채 침통한 표정으로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이어 분향을 마친 후 박군 어머니의 손을 잡은 이 총리는 박군의 어머니가 흐느끼며 울음을 터트리자 함께 눈물을 흘렸다. 유품은 수원 연화장과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서 화장된다. 재로 변한 박영인·남현철군, 양승진 교사의 유품은 다른 세월호 희생자가 잠든 평택 서호공원으로 간다. 권재근씨·혁규군 부자의 유품은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는 인천가족공원으로 옮겨진다. 앞서 선체 수색 과정에서 돌아온 조은화·허다윤양, 이영숙씨, 고창석 교사 등의 유해는 서호공원과 인천가족공원 추모관, 국립현충원에 각각 안장됐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끝내 돌아오지 못한 5명…세월호 미수습자 합동추모식 엄수

    끝내 돌아오지 못한 5명…세월호 미수습자 합동추모식 엄수

    세월호 선체 인양 후에도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의 유해는 사고 해역 및 선체 수색 과정에서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탑승했던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참사 발생 1312일째 되는 18일, 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식에 참석해 어렵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합동 추모식이 이날 전남 목포신항에서 엄수됐다. 앞서 유가족들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떠나보낸 가족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아픔을 뒤로한 채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족들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 더이상의 수색은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지해주시는 국민들을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너무나 아픈 시간들이었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렵기만 하지만 국민 여러분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열심히 살아가겠다”며 흐느꼈다. 이날 입관식은 유해조차 거두지 못한 고인들이 생전에 사용했거나 수색 과정에서 찾은 유품으로 치러졌다. 추모식은 애초 오전 9시에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발인 과정에서 유가족들의 상심이 커 마음을 추스리느라 늦어져 오전 9시50분쯤 시작했다. 추모식은 고인들의 영정을 제단에 차례로 올리며 시작됐다. 고인을 기리는 묵념, 천주교·원불교·불교·개신교의 종교의식, 헌화, 추모시 낭송이 이어졌다. 오전 10시 30분쯤 유가족들이 영정 앞에 헌화했다. 유가족들은 고인들에게 국화꽃을 바치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영정을 어루만지고,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사무친 그리움을 드러냈다. 5명의 고인의 영정과 유품을 태운 운구 차량은 세월호 선체를 한 바퀴 돌아 수색 작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포신항을 떠났다.추모식을 마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각각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치른다. 유품은 수원 연화장과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서 화장한다. 재로 변한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의 유품은 다른 세월호 희생자들이 잠든 평택 서호공원으로 간다. 권재근씨·혁규군 부자의 유품은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는 인천가족공원으로 옮겨진다. 조은화·허다윤양, 이영숙씨, 고창석 교사 등 선체 수색 과정에서 돌아온 미수습자 유해는 앞서 평택 서호공원과 인천가족공원 추모관,국립현충원에 각각 안장됐다. 추모식에는 시민 200여명과 함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 국민의당 박지원·천정배 의원, 정의당 심상정·윤소하 의원, 김금옥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이 함께했다. 그런데 추모식 사회자가 예정보다 시간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에게만 헌화를 하도록 하고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시민들은 배제해 시민들에게 씁쓸함을 안겼다고 뉴스1은 보도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건희·이재용 불참 속…‘조촐한’ 호암 30주기 추모식

    이건희·이재용 불참 속…‘조촐한’ 호암 30주기 추모식

    호암 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의 30주기 추모식이 기일 이틀 전인 17일 오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렸다.추모식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이자 이병철 선대회장의 며느리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두 손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이 가족 대표로 참석했다. 오전 8시 40분쯤 선영에 도착한 이들은 약 20분 동안 참배를 하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인 이 회장과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오후에는 범삼성가 인사들이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손경식 CJ 회장, 이채욱 CJ 부회장 등 CJ계열사 임원진이 선영을 찾았다. 조동길 한솔 회장,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 이갑수 이마트 대표 등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날 추도식에는 불참했지만, 기일인 19일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별도로 기제사를 주재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4년 만에 참석한 지난해 제사 때는 건강상의 문제로 직접 주재하지는 못했다. 삼성그룹은 매년 호암의 기일인 11월 19일 용인 선영에서 추모식을 열어 왔다. 올해는 19일이 일요일이어서 이틀 앞당겼다. 2012년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 사이에 상속 분쟁이 불거진 이후에는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그룹별로 진행하고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전태일 47주기 맞아 노동계 ‘사회적 선언’

    전태일 열사 47주기인 13일 전국 각지에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이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전국 100여개 노동 단체로 구성된 ‘노조 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기본권과 노조를 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정부와 재계에 촉구했다. 운동본부는 사회적 선언문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노동 존중은 기만이고 껍데기”라면서 “여성, 청년,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등한 세상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욱동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전태일 열사를 기리면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모였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를 할 권리를 선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사회적 선언에는 교수 128명, 문화예술인 143명, 법조인 86명, 시민사회·노동사회·민중단체 소속 448명, 정당인 189명, 종교인 84명, 학생 90명, 노동자 246명, 온라인 서명 참여자 464명 등 사회 각계 인사 1878명이 이름을 올렸다.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에서 열린 47주기 추모식에서도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는 이어졌다. 추모식에는 전태일 열사의 유가족인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장을 비롯해 같은 당 이용득 의원, 정의당 노회찬·심상정 의원,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등이 참석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이번 정부가 노동 존중 사회를 목표로 내걸면서 전태일 열사를 더욱 뜻깊게 돌아보는 한 해다”며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높은 광고탑이나 굴뚝에 올라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 직무대행은 “노조 조직율이 낮고, 노동 3권이 없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다”며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며 “온전하게 노조를 할 권리가 확보되는 등 노동 존중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파리 연쇄 테러 2주기…차분한 분위기 속 추모식 열려

    파리 연쇄 테러 2주기…차분한 분위기 속 추모식 열려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2주년 추모식이 테러 현장과 파리시청 광장에서 13일(현지시간) 진행됐다.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이번 추모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해 고인들을 기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먼저 이날 아침 일찍 파리 북부 교외의 생드니의 축구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를 찾아 헌화했다. 스타드 드 프랑스는 2015년 11월 13일 저녁 파리 바타클랑 극장 등과 함께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난 곳 중 하나다. 독일과 프랑스 대표팀의 친선 경기 전반전이 진행되던 중 경기장 진입을 시도하던 테러범 3명은 여의치 않자 경기장 입구 바깥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렸다. 버스 운전기사 1명이 폭탄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파리 시내 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세력의 총격·폭탄 테러로 시민 총 130명이 희생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스타드 드 프랑스 추모식 후 곧바로 파리 10구의 바타클랑 극장으로 이동해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함께 헌화한 뒤 묵념했다. 바타클랑 극장은 2년 전 파리 연쇄테러 당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장소다. 무장괴한들의 무차별 총기 난사로 90명이 숨을 거뒀다. 이어 파리 11구청으로 이동한 마크롱 대통령은 테러 희생자 유족들과 포옹하는 등 위로하고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풍선들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추모식에는 파리 연쇄 테러 당시 국정을 이끌었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파리시청 앞 추모식에는 2년 전 테러 당시 바타클랑 극장에서 콘서트를 했던 미국의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Eagles of Death Metal)이 깜짝 등장했다. 이 밴드는 듀란듀란의 히트곡 ‘세이브 어 프레이어’(Save a prayer)와 자신들의 히트곡 ‘아이 러브 유 올 더 타임’(I love you all the time)을 부르고 군중들에게 흰 장미를 선사했다.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은 테러 당시 무대 뒷문을 통해 무사히 탈출했지만, 스태프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아버지...’…박근령씨,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 참석

    [서울포토] ‘아버지...’…박근령씨,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 참석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박근령씨.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박근혜대통령님을 굽어 살펴 주옵소서!!’…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

    [서울포토] ‘박근혜대통령님을 굽어 살펴 주옵소서!!’…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이 박근혜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

    [서울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참배를 위해 묘역으로 올라가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푸대접 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

    [서울포토] 푸대접 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이 박 전 대통령 묘역 옆에 놓여져 있었지만 일부 참배객들의 훼손 시도가 있자 현충원 직원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현충원에 도착한 대통령의 화환

    [서울포토] 현충원에 도착한 대통령의 화환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 38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이 박 전 대통령 묘역 옆에 놓여져 있었지만 일부 참배객들의 훼손시도가 있자 현충원 직원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추모의 민망한 나르시시즘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추모의 민망한 나르시시즘

    고인을 추모하는 조사(弔詞)를 하거나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이제 우리 세대도 앞 세대 분들을 떠나보내며, 고인이 남긴 고유한 빛과 빚을 기억하고 짊어져야 하는 나이에 온 것 같다. 그런데 조사를 맡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지 않을 것이다. 먼저 조사는 이미 언어를 잃어버린 고인을 대신해 고인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을 대변하는 행위다. 물론 고인과 시간을 함께했던 조객들이 그 자리에 있으니, 사실의 왜곡이나 생략이나 과장은 듣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조사에는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미화가 용납되는 법이다. 어쩌면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 모두가 그러한 과장과 미화를 자임하고 있는 이들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결식이나 추모식은 떠나간 한 사람에 대한 순연하고도 아름다웠던 기억에 대한 일방적 승인의 자리이지 고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의 자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훌륭한 조사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런데 정말 듣기 민망한 추모사는 이처럼 고인에 대한 애정 어린 기억의 과장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인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고인보다는 정작 조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드러내는 유치한 자기 노출 때문에 주로 발생하곤 한다. 물론 고인에 대한 고유한 경험과 기억을 술회하는 데 일인칭의 관점과 어법은 불가피할 것이다. 고인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분이었는지, 그리고 그분과 얼마나 시간과 열정을 공유했는지, 또 자신은 그분에게 무엇을 드렸는지를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면, 추모의 자리는 정말 훈훈한 기억으로 충일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경우는 조사를 하는 분의 인격에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사례들이다. 그 하나는 고인이 살았을 때 그다지 가까웠거나 심정적 연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경험자이자 목격자인 양 증언을 하는 경우다. 살아 계실 때 어떠한 정성도 살가움도 없었던 사람이 고인의 가장 가까이서 그분의 고독과 함께했던 사람처럼 말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법만 겸손함과 애통함을 띠고 있을 뿐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는 셈이다. 그분을 증언하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살아온 자신을 더욱 강조하려는 조사를 들을 때마다 비록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민망한 나르시시즘에 불편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고인이 반박하거나 교정할 수 없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는 두 사람만의 개인사를 이야기할 때다. 물론 우리는 훌륭한 조사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비밀을 알게 되고 다시 한번 고인을 추억하게 된다. 그런데 고인이 생전에 이룬 성취를 칭송하는 과정에서 조사를 하는 사람이 자신이 직접 고인의 삶을 디자인했고 심지어는 고인의 반대를 설득해 그 성취를 이루게 했다는 증언을 하는 경우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런 경우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데, 다만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고인의 오롯한 성취가 자신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조사의 형식을 빌린 자화자찬일 뿐이다. 또한 고인이 TV에 나가게 된 것도 자신이 연출자에게 귀띔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면, 자신이 천거하지 않았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 텐데 자신의 혜안으로 그러한 특별한 기회가 고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추모의 본뜻을 모르거나 아니면 언제나 자신을 행위 주체로 세워 버릇한 지독한 나르시시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부재하는 한 사람에 대한 추모를 위해 정작 증언하는 자신은 흐릿한 후경으로 물릴 줄 아는 지혜와 겸손을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뚜렷하고도 우호적인 기억을 들려주면서도 자신은 음각으로 처리하고 고인을 앞세워 드리는 추모의 진정성이 그분의 부재를 슬픔 가득한 추억의 자리로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이봉창 의사 85주기 추모식

    이봉창 의사 85주기 추모식

    10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이봉창 의사 묘역에서 열린 제85주기 이봉창 의사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월 도쿄 경시청 앞에서 육군 관병식에 참석하러 가던 히로히토 일왕 일행을 향해 폭탄을 던진 후 현장에서 체포돼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이 의사의 유해는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1946년 6월 30일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에 안장됐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서울포토] 제85주기 이봉창 의사 추모식

    [서울포토] 제85주기 이봉창 의사 추모식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이봉창 의사 묘에서 제85주기 이봉창 의사 추모식이 열려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seaworld@seoul.co.kr
  • 사망 50년 지나도…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쿠바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가 세상을 떠난 지 9일로 50주년이 됐다. 그의 시신이 묻혀 있는 쿠바 산타클라라에서는 8일(현지시간) 5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에스캄브레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추모식에는 6만~7만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참배객들은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사진 등을 들고 그의 혁명 정신을 기렸다. 게바라의 혁명 동지이자 오랜 친구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참석해 묘지 앞에 흰 장미를 헌화했다. 이날 추모식은 국영 TV로 생중계됐다. 1928년 아르헨티나 부유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게바라는 의사로서의 안정적 삶을 박차고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겠다는 뜻을 품는다. 첫 번째 부인 일다 가데아의 소개로 쿠바의 망명 정치가인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56년 쿠바로 건너간 게바라는 게릴라전으로 1959년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혁명에 성공했다. 이후 카스트로 정부의 각료로 활동했지만 1965년 돌연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난다. “쿠바 혁명이 내게 준 임무를 완수한 것 같다. 작별을 고한다. 다른 나라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콩고에서 6개월간의 혁명 노력이 실패한 뒤 볼리비아로 건너간 게바라는 레네 바리엔토스 군부 정권을 무너뜨린 뒤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려고 47명의 게릴라 부대를 조직해 무장투쟁을 벌였다. 7개월간의 게릴라 활동 끝에 1967년 10월 8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조력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돼 다음날 처형당했다. 비밀 무덤에 묻혔던 그의 시신은 30년이 지난 1997년 전기작가 존 리 앤더슨에 의해 발견돼 쿠바에 다시 안장됐다.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던 피델은 게바라를 “혁명의 모범”이라 묘사하며 “지킬 명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고 추모했다.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영국 BBC는 이날 게바라가 민중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영웅이지만, 일각에서는 잔혹하고 피에 목마른 무장투쟁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게바라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혁명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힘입어 사회주의 운동가에서 저항의 표상으로 진화했다. 이 때문에 게바라는 1968년 프랑스 ‘68혁명’ 이후 진보적 젊은이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후 게바라의 반항적 이미지는 그의 사진을 복제한 앤디 워홀의 작품 ‘체 게바라’를 시작으로 티셔츠와 시계, 맥주, 남자 향수 등의 마케팅에 널리 이용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사회주의 혁명가가 사후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서게 된 셈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3년만에 세월호 떠나는 조은화·허다윤양

    3년만에 세월호 떠나는 조은화·허다윤양

    세월호 안에서 3년 만에 수습된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양의 유골이 많은 이들의 배웅 속에 23일 목포 신항을 떠났다.안개가 잔뜩 낀 이날 오전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현장 작업자들은 작업 시작을 늦추고 세월호 앞에 나란히 서서 은화 양과 다윤 양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작업자들은 운구차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며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길 기원했다. 미 수습자인 남현철 군 어머니와 양승진 교사 부인 유백형씨, 권재근씨 친형(권혁규 군 큰아버지) 권오복 씨도 한쪽에서 조용히 아이들이 떠나는 길을 바라봤다. 지난 3년 반 동안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리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운구차는 천천히 세월호가 놓여 있는 목포 신항을 한 바퀴 돌고 북문으로 나왔다. 북문 밖에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과 수녀, 시민들이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허다윤양 아버지 허흥환씨와 어머니 박은미씨는 멈추지 않는 눈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 유가족은 다윤양 운구차 조수석 창문 사이로 흰 국화꽃을 건네자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던 박씨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조은화 양 아버지 조남성씨와 어머니 이금희씨도 눈물 자국을 채 지우지 못한 얼굴로 그동안 도움을 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씨의 손에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뜨개질 감이 있었다. 이씨는 추위를 많이 타던 딸을 위해 관 바닥에 깔아줄 연분홍색 ‘털실 이불’을 만들어주려고 지난 주말부터 틈날 때마다 뜨개질을 해왔다. 이씨는 “나는 서울 도착할 때까지 내내 뜨개질만 해야 한다. 한 타래도 안 남았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은화·다윤 양의 유골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지며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24일까지 이틀간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이별식을 한다. 가족들은 애초 공개된 장소에서 장례나 추모식을 하는 것은 남은 미 수습자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 수습자 수습을 위해 힘써준 국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실내에서 이별식을 하기로 했다. 이별식 후에는 단원고에 들러 작별을 고하고 다른 세월호 희생자들이 잠든 평택 서호 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세월호 미 수습자 9명 중 은화·다윤 양과 이영숙씨, 단원고 교사 고창석씨의 유해 일부만 수습됐다. 현재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의 유해를 수색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프타임] 롯데 내일 최동원 6주기 추모식

    프로야구 롯데는 1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KIA와의 경기에서 창단 첫 우승을 이끈 영웅이자 한국프로야구를 상징하는 ‘무쇠팔’ 최동원의 6주기 추모행사를 갖는다. 행사는 오후 3시 사직구장 광장에 있는 최동원의 동상에 김창락 대표이사와 이윤원 단장, 조원우 감독, 이대호 선수가 헌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기 시작 전에는 전광판을 통해 추모 영상을 상영하고 전 선수단과 입장 관중이 함께 묵념하는 시간을 가진다. 또 최동원의 모친 김정자 여사가 시구한다.
  • 죽은 딸 생일 날, 딸 출산한 엄마…운명적 만남

    죽은 딸 생일 날, 딸 출산한 엄마…운명적 만남

    앨리스 가이스트(29)는 매년 8월 4일이면 미국 위스콘신주에 있는 리버사이드 공원에서 고작 다섯 달의 짧은 삶을 마치고 떠난 딸 젠타비아 웨스트의 생일을 기려왔다. 그러나 올해 앨리스는 딸의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뜻밖에 찾아온 손님’ 때문이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NBC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죽은 딸의 생일날 앨리스는 예상치 못한 출산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출산 당일 날 가이스트는 여느 때처럼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과 공원에 모여 죽은 딸 젠의 4번째 생일을 기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심한 복통과 극도의 피로를 느꼈다. 결국 참다못한 가이스트는 딸의 추모식 직전 남자친구 캐시디 렉터(24)와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가이스트는 2.8㎏의 아이를 낳았다. 가이스트와 렉터 둘 다 눈치채지 못했던 임신이었기에 딸아이 ‘미라’의 탄생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이었다. 가이스트는 “임신 9개월 동안 어떠한 증상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라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서 그랬던 것 같다. 젠을 잃은 후 또 다른 아이는 갖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만약 미라가 우리에게 올 줄 알았다면 나는 9개월 동안 전전 긍긍하며 지냈을 것 같다”고 출산 소감을 밝혔다. 렉터도 “출산 당시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던 딸은 마치 우리가 자신을 반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음을 예상한 것 같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어 “미라의 탄생은 이해할 수 없기도 혹은 설명할 수도 없는 기적처럼 느껴졌기에 우리 부부는 딸의 이름을 기적을 뜻하는 미라클(Miracle) 줄임말인 ‘미라’(Mira)라고 지었다. 그것은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이스트의 임신은 처음이 아니다. 젠이 태어나기전 아들 제키아 가이스트(8)를 낳았고, 2013년 둘째 딸 ‘젠’을 낳았지만 젠은 중이염을 앓다 2014년 1월1일 태어난지 5개월만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들 커플은 매년 죽은 딸과의 약속을 이번에는 지키지 못했지만, 9월 3일로 연례모임을 미뤄 추모식과 출산 축하 파티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가이스트는 “앞으로도 젠은 우리의 일부이자 우리의 기억 속에 함께 살아갈 것”이라며 딸을 잊지 않을거란 의지를 밝혔다. 사진=엔비씨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내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문재인 대통령 내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앞서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국립서울현충원은 이날 오전 10시 현충관에서 유가족과 정관계 인사, 추모객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단법인 김대중 평화센터’ 주관으로 진행되는 고(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행사를 지원한다.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처음 민의원에 당선됐다. 제6·7·8·13·14대 국회의원과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2009년 8월 18일 85세로 서거해 8월 23일 국장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주화와 국가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고인의 숭고한 정신이 계승·발전될 수 있도록 이번 추모식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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