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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성 주지, 청우동국상 수상

    박현성(朴玄惺·현성정사 주지)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장은 청우 최재구선생 추모사업회 제정 ‘청우동국상’수상자로 선정돼 18일 오후 7시 장충동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상을 받는다.
  • 청뇌 이강훈 선생 어제 영결식/독립운동 거목 가시는 길… 온 국민 애도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지난 12일 타계한 전 광복회장 청뇌(靑雷) 이강훈 선생의 영결식이 16일 서울 보훈병원에서 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명예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이종찬 장례집행위원장,김우전 광복회장,안주섭 국가보훈처장 등 각계 인사와 원로 애국지사,광복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영결식은 이 위원장의 약력보고와 조사·추모사 낭독,김 전 대통령의 애도사,고인의 육성녹음 근청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은 애도사를 통해 “선생은 일생을 통해 여러가지 압력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국권회복,민주주의 실현,민족정기 보존,사이비 애국자 척결을 위한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선생과 영원히 작별하는 이 자리에서 온 국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이어 “위대한 애국자이자 선각자인 선생은 해방된 조국에서 도리어 3년에 걸친 옥고와 평생을 따라다니는 궁핍을 면치 못했다.”면서 “선생이 살아계신 동안 합당한 평가와 예우를 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고 아쉽게 생각한다.”고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고인과 지난 1988년을 전후해 인연을 맺었고,고인이 대장암으로 입원한 2000년 이후 수차례 문병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했으며,김영삼·노태우·최규하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고인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한편 항일운동을 방해하려는 일본 고위관리를 살해하려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고인은 100세로 현존 최고령 독립운동가였다.1903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나 중국 만주 등지를 돌며 무장 항일운동을 펼쳤으며,광복 후 귀국해 독립운동사 편찬위원,독립운동유공자 공적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했다.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으며,1988년부터 5년간 제10·11대 광복회장을 역임했다.저서로 해외독립운동사,항일독립운동사,독립운동대사전,마적과 왜적,무장독립운동사,청사에 빛난 선열 등이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새달9일 10만 노동자대회”/한진重노조위원장 추모집회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자살로 노동계가 총력투쟁을 선언한 가운데 22일 부산에서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와 거리시위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2시 부산역광장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과 부산·경남지역 금속노조 조합원,민주노총 영남권 간부 등 3000여명이 집결한 가운데 한진자본과 노무현정권 노동탄압 규탄대회가 열렸다. 집회는 김주익 위원장에 대한 분향과 유가족 인사에 이어 단병호 민주노총위원장의 대회사,유서낭독,추모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한진중공업 전국투쟁대책위는 “한진재벌과 노무현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이 김 위원장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며 “정부는 노동탄압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손배가압류와 구속수배를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투쟁대책위는 또 “회사는 진심으로 고인 앞에 사죄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성실 교섭에 임하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까지 노동운동 탄압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한편 전국투쟁대책위는 25일 부산역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파병반대투쟁을 노동탄압 규탄대회로 전환하기로 했으며 이번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11월9일 10만명이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몽양 여운형 서거 56주기 추모식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사업회(회장 呂澈淵)는 19일 오후 1시 서울 우이동 선생 묘소에서 몽양 서거 56주기 추모식을 갖는다.(02)554-5006.
  • 백범 김구선생 54주기 추모식

    백범 김구 선생 54주기 추모식이 26일 오전 서울 효창원공원에서 고인의 가족과 박관용 국회의장,민주당 정대철 대표 등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박 의장은 추모사에서 “북한핵 문제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지고 있는 데도 국론 분열은 점점 더 심해지고 국민은 불안감속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국민의 애통한 가슴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준 선생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추모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으며,민주당 이만섭·이재정·문석호·이희규 의원과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신상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이 참석했다. 이지운기자 jj@
  • ‘효순·미선이’ 다시는 없기를 수만명 평화행렬 / ‘여중생1주기’ 전국서 추모의 물결

    13일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 행렬은 한반도의 평화와 반전을 염원하는 물결이 되어 흘렀다.시청앞과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서는 2만 5000여명이 1주기의 의미를 되살렸다. 대다수 집회 참가자들이 미 대사관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이들은 밤 11시쯤 정리집회를 마친 뒤 자진 해산했다. ●경찰,시위대 밤늦도록 숨바꼭질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추모대회를 마친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8시50분쯤 촛불을 들고 일제히 미 대사관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그러나 경찰이 시청옆 태평로를 차단,전경버스와 살수차,병력으로 이중·삼중의 차단벽을 설치하고 이를 막았다. 비슷한 시각 경찰의 경계망을 뚫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시청 사이 샛길을 통해 광화문네거리로 이동한 한총련 소속 대학생 2000여명은 광화문 우체국과 교보빌딩 사이 차도를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했다.한때 대학생들이 거세게 밀어붙이자 경찰은 10여 차례 소화기 분말을 뿌리는 등 공방전을 펼쳤다.이 과정에서 일부 대학생과 김낙희(53·여)씨 등이 경찰 방패와 소화기에 부딪혀 머리와 팔 등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대학생들은 또 소형 종이 성조기 2000여장을 일제히 촛불로 태웠다. 이어 대학생과 민노총 소속 근로자 등 집회 참가자 1만 5000여명이 이곳에서 종로2가까지 차도에 늘어서 구호를 외치거나 문화행사를 가졌다.한총련 소속 대학생 5000여명은 무교동을 통해 안국사거리 쪽으로 행진하며 산발적으로 미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대학생 300여명은 종로경찰서 부근에서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서울 도심에 모두 98개 중대 1만여명,버스 300여대를 배치해 미 대사관 진출을 원천 봉쇄했다.이날 광주 YMCA 앞길에서도 시민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1주기 추모 문화제’와 촛불행진이 열렸다.경북 포항·구미에서는 종이학 접기와 살풀이춤 등의 행사가 진행되는 등 추모의 열기가 전국을 달궜다. ●“효순·미선의 죽음을 잊지 말자” 촛불행진에 앞서 추모대회가 열린 시청앞 광장 무대 앞에는 가로 20m,세로 50m의 대형 한반도기가 깔렸다.두 여중생을 본뜬 5m 높이의 스티로폼 조각상이 세워진 가운데 자발적으로 참여한 문화인들의 거리예술이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두 여중생을 위한 임시분향소도 설치됐다. 광장 중앙에 모인 참가자 1000여명은 모형 비둘기로 한반도 모양을 만들어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켰다.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벌이는 ‘오키나와-한국 민중연대’ 소속 활동가 3명도 ‘非戰(비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참석했다.효순·미선양의 아버지 신현수(49)·심수보(49)씨는 “이렇게 잊지 않고 많은 시민들이 모여줘서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군,해외인사도 애도 참여 주한 미2사단은 이날 오후 사단장 존우드 소장과 지역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낭독,찬송,지휘관 조사,고인 및 유가족을 위한 기도순으로 1시간 동안 추모예배를 열었다.리언 J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 한글 사이트(usfk.or.kr)’에 실린 추모사를 통해 “오늘은 두 여중생의 희생에 슬픔과 깊은 애도를 드리고 우리의마음을 모아 한국 사회·친구·이웃에게 다가가는 날”이라면서 “하느님께서 여중생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평화위원회는 연대 메시지를 통해 여중생 범대위측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독일·미국·일본·프랑스 등지의 교포들도 현지 시각으로 오후 7시에 맞춰 소규모 모임을 가졌다. 유영규 박지연 이두걸기자 whoami@
  • [오늘의 눈] 상생으로 승화하는 5·18

    광주 5·18국립묘역에 하얀 국화송이가 늘고 있다.뇌리에서 잊혀져 있다가도 장미가 울타리를 넘는 5월마다 묘역은 광주의 한(恨)을 가슴에 묻은 유족이나 시민들 곁으로 진행형으로 다가선다. 영령들이 가신 지 23년째인 올해 이곳 묘역은 절망과 한에서 상생의 장으로 승화하고 있다.15일 부산 출신 국회의원 10명이 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부산시의회 의장 등 시의원 10명도 동행했다.영·호남 지역갈등의 골이 파일 대로 파인 이후 영남쪽 의원들이 대거 참배하기는 처음이다.이들은 기념탑 참배 이후 묘역을 순례하고 유영봉안소(영정 384위 안치)를 찾았다.‘묘지참배’라는 추모사에서 “낡은 지역감정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동·서 화합을 통해 21세기 화합의 새 조국을 만들자.”며 참배가 정권 차원이 아닌 순수한 마음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도 헌화했고 17일에는 민주당내 유력 대통령 주자였던 이모 의원도 묘지를 찾는다.이달 들어 이곳을 다녀간 국회의원만도 10여명이다.18일 기념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 40명 안팎이 참석한다. 신당 창당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도 묘역에서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던 계획을 접었다고 한다.민주당 내 ‘열린개혁 포럼’의 ‘5·18 정신에 입각해 희생자 넋을 추모하고 그 뜻을 계승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해석될 만한 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존중키로 했다 한다.올 초에는 5공 때 경호실장을 지낸 장세동씨가 대선출마에 앞서 묘역을 찾아 용서를 빌었다.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도 대선을 앞두고 2번이나 묘역을 찾았다. 그동안 광주만의 아픔을 상징하던 5·18 국립묘지가 이제는 모든 이를 보듬어 안는 화해의 마당으로 자리잡고 있다.여·야 정치인들도 이번에 헌화하면서 다시 한번 국가의 백년대계를 다지는 각오를 추슬렀으면 한다. 남기창 전국부 기자kcnam@
  • ‘정절의 표상’ 도미부인 노래 나왔다

    ‘한번 맺은 사랑을 위해/…/쉬운 만남,쉬운 이별,쉬운 인연은 향기 없는 사랑이라고/…/오직 당신만이 사랑인 걸 어떡해/바꿀 수 없어….’ 임금의 수청을 거부한 죄로 남편의 두 눈을 잃게 만든 백제판 성춘향 도미(都彌)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트로트풍 가요가 나와 화제다. 도미부인 추모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강동구는 동상·노래 공모작을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구는 지난 3월 초부터 한달 반에 걸쳐 현상공모를 실시했다.추모공원(조감도)이 들어설 천호공원은 서울시립이어서 곧 시 위치선정위원회를 거쳐 오는 7월 초 착공한다.공사비는 1억 5000만원.늦어도 내년 초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김동찬 작사,박은표 작곡인 추모곡 ‘도미부인’은 따라 부르기 쉬운 느린 곡조의 트로트풍 가요로, 처음 곡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김충환 강동구청장이 “구민들에게 널리 알리면 틀림없이 히트칠 것”이라고 장담했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했다. 도미부인은 백제시대 초 품행이 방정하기로 나라 안에서 소문난 인물.이를 궁금하게 여긴 백제 4대 개로왕이동침을 요구하자 하인을 대신 들여보냈다가 들통났다. 화가 난 왕은 도미부인 남편의 눈을 뽑는 끔찍한 중벌을 가했다.이 얘기는 삼국사기 열전 등을 통해 설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 / “제주 4·3사건 인명피해 3만명”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4·3 진상조사 보고서’는 이 사건을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보고서는 사건으로 2만 5000∼3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됐기 때문에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집단 인명피해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고,미 군정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다음은 보고서 내용 요약.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촉발 4·3사건은 광복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와 실직,생필품 부족,콜레라 발생,흉년 등의 악재 속에 47년 3·1절 발포사건이 도화선이었다.3·1절 발포 사건은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해 6명 사망,8명 중상의 피해를 입혔고,희생자 대부분이 구경하던 일반 주민이었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 반경(反警) 활동과 ‘3·10총파업’을 벌였다.총파업은 관공서·민간기업 등 제주도내 전 직장 95% 이상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민·관 합동 총파업이었다.4·3사건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고,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결국 1948년 4월3일 오전 2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인명피해 2만 5000∼3만명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 4028명이지만 미신고·미확인 희생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돼 정확한 규모파악은 어렵다.위원회는 당시의 인구 변동 통계 등을 감안,인명피해를 2만 5000명∼3만명으로 추정했다. 위원회는 “1950년 4월 김용하 제주지사가 밝힌 피해자 2만 7719명 등을 감안한 숫자지만 향후 더욱 정밀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 사건으로 전사한 군인은 180명,경찰은 140명 안팎으로 추정됐다. ●대량 희생의 최종 책임은 ‘이승만’ 48년 10월부터 49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전체 희생자의 80%가량의 희생자가 나왔다.이 기간에 작전을 지휘한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1차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미국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사건 등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해야 미국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지방 토색 및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 법의 존엄성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강경작전을 지시했다. ●미 군정 개입도 밝혀져 사건은 미 군정 아래에서 시작됐으며,미군 대령이 제주지구 사령관 자격으로 직접 진압작전을 지휘했다.미군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미간의 군사협정에 의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계속 보유했고,제주 진압작전에 무기와 정찰기 등을 지원했다. 중산간마을을 초토화한 9연대의 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했다.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이 송요찬 연대장의 활동상을 널리 알리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한 기록도 있다. ●미완의 진상규명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평가다.경찰 등 주요기관의 관련문서 폐기와 군 지휘관의 증언거부,미국 비밀문서 입수 실패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게 위원회의 지적이다.보고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로하고 적절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4·3사건 이승만前대통령에 책임”진상규명위 최종보고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高建 국무총리)는 6일 이 사건과 관련,이승만(李承晩·사진) 전 대통령을 집단 인명피해의 최종 책임자로 규정한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배포했다. 보고서는 지난 2000년 1월 관련 특별법이 제정된 뒤 지난 3월29일까지 진상규명위의 활동 결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사건배경과 피해상황 등 580여쪽에 달한다. ▶관련기사 11면 보고서는 “1948년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전체 희생의 80% 이상이 발생했다.”면서 “집단 인명피해의 지휘체계를 볼 때 이 기간 작전지휘를 맡은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1차 책임이 있지만 최종 책임은 강경작전을 지시한 이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제주도,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 색원해야 미국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기술했다.4·3사건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이 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조성된 제주사회의 긴장상황을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설명했다.보고서는 또 “4·3 사건은 미군정 하에서 시작됐으며 미군 대령이 제주지구사령관으로 직접 진압작전을 지휘했다.”며 미군정도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4·3사건의 사망·실종 등 희생자와 관련해서는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수는 1만 4028명이나,여러 자료와 인구변동 통계 등을 감안해 잠정적으로 인명피해를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며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盧·손학규등 제정구의원 추모식 참석/제2의 전성기 ‘통추’ 멤버들 다시 모였다

    ‘상종가 통추,다시 한자리에.’ 고 제정구 전 의원의 4주기 추모식이 열린 7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이날 지방 일정을 취소하고 행사장에 나왔다.그러나 ‘통추 정권’이란 말이 돌 정도로 최근 뜨고 있기 때문일까.이들은 숙연함을 잃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노 당선자를 포함,민주당 김원기 개혁특위위원장,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한나라당 이부영·김부겸 의원,손학규 경기지사,김원웅 개혁당 대표 등 한때 통추 깃발 아래 모였던 정치적 실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특히 통추 멤버는 아니었지만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 등 500여명이 참석해 통추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줬다.노 당선자는 추모사를 통해 “지방자치연구소를 할 때 형편이 어려웠는데 정구형이 많이 도와줬다.”면서 “97년에 서로 갈라졌지만 존경하면서 지내왔다.”고 소회를 밝혔다.이어 “고인을 기억한 채 권력을 갖고 지배하고 증오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겠다.”고 덧붙였다.통추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회의 창당에 반발,민주당에 잔류한 범개혁 그룹이 지난 96년 지역통합과 정치개혁을 내걸고 만든 모임.그러나 멤버들이 15대 총선에서 지역구도에 밀려 대부분 낙선하고,97년 대선 직전 각기 국민회의와 한나라당행 열차를 나눠타면서 공식적으로는 해체된 상태다. 그러나 통추는 이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느낌이다.주최측은 행사에 대해 “연례적인 추모식”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개혁신당의 모태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다.이두걸기자 douzirl@
  • ‘여중생 사망’ 추모대회양주서 유족등 300여명 참석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고 신효순·심미선양 추모 촛불대회’가 18일 오후 6시30분부터 3시간여 동안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1운동 기념비 앞 광장에서 열렸다. 유가족과 효촌2리 청년회,광적면 농업인 후계자,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이날 촛불 추모대회는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주관해 마련했으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및 재판 무효화를 주장하는 결의문 낭독,추모사,촛불 점등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효촌2리 박용안(54) 이장은 “온 국민이 하나돼 요구하는 SOFA 개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추모대회를 개최했다.”고 말했다.신효순양의 아버지 현수(48)씨는 “미선·효순이뿐 아니라 미군들에 의해 희생된 모든 영혼들을 위한 추모제로 생각한다.”며 “아이들의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불평등한 SOFA가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서윤복 추모사 “당신은 한국마라톤 버팀목 이셨습니다”

    ■서윤복 추모사 당신은 진정한 한국 마라톤의 든든한 버팀목이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1947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저 머나먼 미국땅으로 향하기 전 선생님께서는 항상 ‘민족혼’을 강조하셨습니다.‘나는 태극기를 달고 뛰지 못했지만 너희들은 이제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으니 마음껏 달려 세계를 제패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립니다.우리는 선생님의 피 맺힌 그 말씀을 가슴에 묻었습니다.그리고 보스턴 하늘에 선생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하시던 그 말씀의 힘으로 저는 미국땅 보스턴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한 지난 시절이 눈에 잡힐 듯 아른거립니다.춥고 배고픈 시절,한국마라톤을 살리려고 몸부림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집니다. 선수들의 끼니를 위해,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서울시내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던 때가 그립습니다.비록 많은 기부금을 모으진 못했지만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낙담해 청진동 어귀 선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막걸리로 지친 목을 축이시며 껄껄껄 웃으시던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선생님은 그 막걸리 잔에 선생님의 인생을 담으셨습니다.몇 잔의 막걸리로 시름을 달래신 선생님은 다시 모금을 위해 지친 다리를 끌고 목적없는 길을 떠나시곤 하셨습니다.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그토록 좋아하시던 술 한 잔 더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게 이제는 큰 후회로 남습니다.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며 홀로 앉아 막걸리로 목을 축여보지만 선생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희뿌연 액체만이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선생님. 한국 마라톤은 선생님의 든든한 가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선생님께서 걱정하셨던 만큼 이제는 혼자서도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으십시오.우리 모두는 맥박이 뛰는 한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그리고하늘나라에서도 한국 마라톤을 지켜봐 주시고 후배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황영조가 본 손기정옹/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 “친할아버지나 다름없었는데….” 한국 마라톤의 ‘대부’ 손기정옹의 사망 소식을 접한 황영조(32·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92바르셀로나 마라톤 우승으로 손옹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월계관을 되찾아온 황영조는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인 손옹의 죽음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전국체전 관계로 제주에 머물던 황영조는 지난 14일 손옹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병원을 찾았다.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황영조는 눈시울을 붉혔다.그게 손옹의 살아생전 뵙는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황영조는 “할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예전과 지금의 마라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신 인간적이고 외로운신 분”이라면서 “단순한 마라토너가 아닌 우리역사 그 자체이며 마라토너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나에게 많은영향을 끼치신 분”이라고 말했다. 황영조는 올림픽마라톤 금메달리스트라는 공통분모 외에도 손옹과 각별한 인연이 많았다. 36년 8월9일과 92년 8월9일.56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같은 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황영조가 한국 마라톤 영웅의 바톤을 넘겨받은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은 원래 36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지어진 경기장이어서 감격은 더했다. 특히 손옹은 바로셀로나올림픽 주경기장에서 1위로 골인한 황영조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이후 황영조는 손옹을 친할아버지처럼 따랐고 손옹도 황영조에게 애틋한 정을 주었다. 손옹이 98년 ‘황영조 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황영조에게 힘을 실어 줬고 황영조 역시 99년 ‘손기정의 생애’라는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올 1월 창단된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에서 황영조가 감독,손옹이 고문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손옹의 병원출입이 부쩍 잦아지면서 황영조는 늘 마음이 편치않았다.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손옹은 주위의 도움으로 통원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자주 병원입원실을 드나들었다. 황영조는 “할아버지는 마라토너로서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도 귀감이 되는 분이었다.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이봉주가 본 손기정옹/ “항상 든든한 후원자” “그분을 볼 때마다 항상 든든한 후원자를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손기정옹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보스턴의 영웅’ 이봉주(32·삼성전자)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봉주는 “돌아가시기 이틀전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면서 “그게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이어 “지난해 찾아뵜을 때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잘한다.’고 하신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고 말하는 이봉주는 아직 손옹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닮고 싶은 마라토너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봉주는 늘 입버릇처럼 “손기정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그만큼 이봉주에게 손옹의 존재는 든든한 바람막이였으며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다.이봉주는 손옹의불굴의 정신력을 가장 높이 샀다.그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동경하며 꿈을 키워왔다.”면서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자주 손옹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했다.2년 가까이 선생님을 못뵌 것이 죄송스러워 지난 12일에도 병원을 찾았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다.특히 이봉주는 지난해 4월 보스턴 우승 직후 곧바로 손옹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당시 손옹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기를 입원실에서 밤잠을 설치며 지켜봤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이봉주는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우리 후배들은 그분의 뜻을 이어 한국마라톤을 다시 세계 정상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과 마라톤 역사/ 한국 마라톤의 ‘시작과 끝' 한국마라톤은 손기정의 올림픽 제패 뒤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육상은 불모지였지만 마라톤만은 한민족의 끈기를 말해 주듯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로 한국마라톤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이 대회에서 손기정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지난해 2월 작고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따내자 세계는 일제 치하의 약소국 코리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손기정의 우승을 시발로 한국마라톤은 황금기를 맞았다.베를린의 두 영웅 손기정·남승룡이 코칭스태프를 맡은 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한국은 우승을 일궈냈다.서윤복이 세계기록(2시간25분39초)을 세우며 우승,마라톤 한국의 기개를 다시 한 번 세계에 펼쳤다.한국마라톤의 역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3년 뒤인 50년 함기용이 또 보스턴마라톤을 제패,명실상부한 마라톤 강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이후 한국 마라톤은 긴 침체에 빠졌다.한국전쟁 뒤 국민들은 먹고살기에 바쁜 나머지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이런 와중에 세계 마라톤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그러나 한국마라톤은 긴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40여년이 흐른 뒤 한국마라톤은 거대한 용틀임을 재개했다.지난 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월계관을 쓰면서 재도약의 전주곡을 울렸다.그뒤 한국마라톤은 세계와의 격차를 무서운 속도로 줄이기 시작했다.4년 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이봉주는 은메달을 따냈다.2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민족은 여자마라톤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북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정성옥은 지난 99년 세비야 국제육상대회에서 세계 철녀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했다.한민족 여자마라톤이 세계로의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 어록 “일장기 달고 우승 울고싶었다” ◆비극의 시대였다.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에 내가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희망을 향한 탈출구라도 좋았고,끝내는 파멸로 향한 길이라도 좋았다.한시라도 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나는 마치 공기를 숨쉬듯 눈덮인 언덕,얼어붙은 자갈길을 뛰고 달렸다.(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중에서) ◆나 오늘 천당 갔다 온 기분이야.너무 너무 기분이 좋아(2000년 8월9일 양정고에서 열린 ‘베를린마라톤 제패 64돌’ 축하행사에서) ◆왜정 때는 아무리 잘 뛰어도 제대로 칭찬 한 번 못받았지.그래서 일장기말소 사건도 나온 것이고….마라톤을 하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모든 것이 한국 마라톤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니 결코 포기하지 말고 뛰어 주길 바라요.(97년 동아마라톤에 앞서) ◆마침내 우승은했으나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1936년 베를린마라톤 우승 직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무리 아파도 세계를 제패한 다리만은 자를 수 없다(2001년 1월 서울삼성병원 입원 치료중 의료진의 발가락 절단 진단을 듣고) ◆눈을 감기 전에 보고싶은 게 두 가지가 있다.첫번째는 살아 생전 고향(신의주)땅을 밟아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황영조가 마라톤을 다시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뤘다.(1998년 3월 ‘황영조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오늘 내 국적을 찾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다.내가 노래를 잘 한다면 운동장 한복판에 나가서 우렁차게 악을 쓰고 싶다.(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우승한 직후) ◆코스도 모르고 뛰었던 마라톤 데뷔전. 1932년 3월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경영(경성∼영등포)마라톤대회 전날 코스답사를 하다가 길을 잃었다.광화문에서 반환점인 영등포까지 차비도 아낄 겸 걸어서 갔다 오기로 하고 나섰다가 해가 저물어 전차를 타고 그냥 돌아온 것.다음 날 서울역을 지나 삼각지까지는 선두를 달렸으나 이리저리 갈래를 뻗은 삼각지에서 어느쪽이 코스인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변용환에게 추월당했고 이후 그의 꽁무니만 쫓아 다녔다.
  • 오늘 ‘사육신 추모제향’ 봉행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사육신 순절 제546주년을 맞아 9일 낮 노량진1동 사육신 묘지 의절사에서 ‘사육신 추모제향’을 봉행한다. 사육신 현창회(회장 김의재 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가 주관하는 추모제향에는 사육신후손·유림·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사육신의 투철한 선비정신을 기린다.추모제향은 추모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헌작례,추모사,송축사,일동배례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최용규기자
  • 국내 최대 납골추모사찰 해인사 ‘미타원’ 13일 개원

    해인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납골 추모사찰인 미타원을 경기도 고양시 대자산 자락에 마련해 오는 13일 문을 연다.미타원은 1만 3000기의 납골 수용시설을 갖춘 추모관으로 현대식 건축의 법당과 납골당,요사채 등을 갖춘 해인사의 말사격 사찰이다. 대림산업이 150억원을 들여 완공,해인사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문을 여는 이곳은 화장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납골시설 1만 3000기 가운데 대림산업이 1만기를 직접 분양,건립에 소요된 비용을 충당하게 된다.1년 안에 1만기가 모두 분양되면 남은 3000기의 분양은 해인사가 맡는다. 개원 법회는 13일 오전 11시에 열리며 법회가 끝난 뒤 장례문화 서명식과,관 속에 직접 들어가 명상하는 죽음체험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 北대표단 서울 첫날/ 김단장에 붉은악마 티셔츠 선물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민족통일대회에 참석한 북측 일행은 첫날 남측 관계자의 따뜻한 환영 속에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일부 단체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한총련,범민련 남측본부 등 진보단체의 자제와 경찰의 철통 같은 경비로 첫날 일정이 진행됐다. ◇도착 및 환영- 북측대표단은 예정시간을 45분 넘긴 오후 1시15분쯤 인천부터 동행한 우리측 대표단 40여명의 안내를 받으며 워커힐 호텔 현관 앞에 도착했다.경호원과 취재진,호텔직원 등 100여명이 모인 호텔 앞에는 ‘남남(南南)갈등’을 우려,대회 불참을 선언한 범민련 관계자도 개인자격으로 나와 대표단을 맞았다. 김영대 북측 대표단장은 승용차에서 내려 호텔 직원이 건넨 꽃다발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호텔로비로 들어섰다.이어 여원구 부단장은 몸이 불편한 듯 여성 2명의 부축을 받으며 김 단장의 뒤를 따랐는데 환영인파가 인사를 건네자 밝은 미소로 화답하기도 했다. 7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도착한 나머지 대표단은 한반도기와 ‘민족자주’,‘자주통일’이란 글자가 적힌 수기를 흔들며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미전향 장기수 10여명도 이날 호텔 환영장에 나와 눈길을 끌었다. ◇오찬- 이들은 호텔에 도착한 뒤 곧장 오찬장인 1층 무궁화볼룸으로 직행,양식 뷔페로 점심을 들었다.한편 이자리에는 여운형추모사업회 고문이자 평생동지인 이기형 시인이 여원구 부단장을 만나 “56년 만에 딸을 만났다.”며‘반갑습니다,잘오셨습니다.’란 제목의 시를 건넸다. 오후 5시 가야금홀에서 시작될 예정이었던 축하공연은 여원구 부단장의 묘소 참배 논란으로 1시간30여분 늦게 시작되었다. 김 단장은 민주당 한광옥·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등과 한 테이블에 앉아 축하공연을 지켜보며 담소를 주고받았다. 김 단장은 “같은 민족이라 그런지 통하는 느낌”이라며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김 단장은 또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나오자 “저 사람은 많이 본 사람”이라고 말하며 관심있게 지켜봤다.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은 붉은악마 티셔츠와 월드컵 때응원사진을 김 단장에게 선물했다.이어 8시30분부터 시작된 만찬에서 김 단장은 남측의 한상렬목사 이부영 의원과 한자리에 앉았다.김 단장은 “이런 행사가 지속되도록 남측 통일단체가 힘써주길 바란다.”며 온겨레의 건강을 위한 건배제의를 했다. 한편 여원구 부단장은 부친 묘소참배를 마치고 30여분 늦게 만찬장에 도착했다.감회를 묻는 질문에 “57년 만에 아버지 묘소를 참배한 기분 말로 다하겠느냐.”면서 “눈물만 흐르더라.”고 말했다.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관련단체 움직임-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 등 통일단체가 독자적인 거리집회를 자제해 진보단체와 보수단체 사이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식행사에 참가하지 않은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는 이날 오후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의 한 축인 통일연대와 함께 건국대에서 ‘8·15대회 성사 축하 한마당’을 열었다.행사에는 노동자·농민·학생 등 1만 5000여명이 모였으며,우려됐던 인공기 게양 등은 일어나지 않은 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한편 자유시민연대는 이날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갖고 “서해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도 없이 열리는 8·15 행사는 북의 대남교란 책동에 불과하며 김정일 체제를 강화하는 데만 이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진상 구혜영 박지연기자 jsr@
  • [현장] “못다핀 영혼 평안히 잠들어라”

    “효순아 미선아,우리 모두 너희를 가슴에 묻었다.평안히 잠들어라.” 31일 오전 10시40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 2리 마을회관. 미군 장갑차에 피지도 못한 채 희생된 두 여중생의 어린 영혼을 보내는 49재가 처연함과 숙연함 속에 치러졌다. “자식을 못 지킨 부모로 아무 할말이 없습니다.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49)씨가 말끝을 잇지 못하자 35가구가 사는 효촌2리와 행사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이날 49재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소속 시민단체 회원과 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분향에 이어 추모사와 추모시 낭송,살풀이 순으로 진행됐다. 같은 시간 미선양의 어머니 이옥자(48)씨와 몇몇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을 영원히 떠나 보내는 곳에 차마 있지 못하겠다.”며 의정부의 한 사찰에서불공을 드렸다. 주민 윤훈자(34)씨는 “아이들이 희생된 이후 마을 주민 전체가 일손을 놓고 고통과 충격에 빠졌다.이제 두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이날 행사장엔두 여중생의 장례가 치러진 직후인 지난6월17일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2사단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유순득(45·여)씨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숨진 미선양의 오빠 규진(18·경민고 3년)군의 친구인 아들 정현구(18)군으로부터 두 여중생의 죽음을 전해 들은 후 시위를 시작한 유씨는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미군 책임자가 처벌돼 어린 영혼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49재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1㎞ 떨어진 사고 현장까지 “살인미군 구속하라,양키 고홈”을 외치며 행진했다. 사고 현장에 흰색 국화가 놓여질 때 멀찌감치 도로변에는 효순양의 어머니 전명자(48)씨가 홀로 풀숲에 머리를 떨군채 오열하고 있었다.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장상 총리 인사청문회/ “”시부모가 그동안 재산관리””

    ■부동산 투기·재산신고 ◆(한나라당 심재철의원) 80년 6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7차 아파트,85년 서초구 반포동 구반포주공아파트,87년 2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등 3곳의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서 주민등록만 이전한 것은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아닌가. (청문회)준비를 하면서야 잠원동과 반포에 간 것을 확인했다.잠원동 것은 주소이전을 한 지도 몰랐다.이전에 서대문구 대현동 무궁화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이것이 부도가 나서 24가구가 길에 나앉게 됐고,어디든 가야 할 상황이어서 시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 같다.3년전까지는 시어머니가 (재산관리를) 총지휘했다.이후 주민들이 힘을 합해 청원서를 냈고,(입주민들이) 은행빚을 떠안기로 하면서 대현동 아파트가 다시 살아나 이사갈 필요가 없게 됐다.그 다음에 (반포동 아파트에) 3개월 가 있었다는 부분은 모르겠다.목동아파트에서는 나와 큰 아들이 큰 수술을 받았고,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1년간 살 수도 없었다. ◆반포와 목동이 어떤 곳인가.시세차익이 짭짤했던 곳 아닌가. 목동은 미달된 곳도 많았다.목동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목동은 미달 분양이었다. ◆(한나라당 이주영의원)장·차남의 정기예금의 원금 출처는. 봉급을 시어머니께 드렸고,시어머니는 20여년간 매월 일정액을 손자들을 위해 적금으로 불입해 줬다.어릴적부터 세뱃배돈이나 용돈 등을 저축해 현재의 금액이 통장에 예치돼 있는 것이다. ◆부부의 예금은. 한 사람의 봉급은 저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재산은 재산신고 사항에 등재된 것이 전부다. ◆예금을 분산 예치한 것 아닌가. 거주중인 아파트와 경기도 양주의 땅을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금융기관을통해 관리해 왔고,금리와 형편에 따라 조건이 나은 계좌에 예치한 것일 뿐의도적인 분산예치는 아니다. ◆(한나라당 박종희의원) 위장전입 등 곤란한 부분은 시모에게 다 떠넘기는데 시모는 당시 70대였다. 시모께서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으나 상당히 총명하고 건강한 분이었다.3년전누우시기 전까지는 가계부를 쓸 정도로 건강하셨다. ◆(민주당 전용학의원) 80년 6월∼87년 2월 5차례에 걸친 주민등록 이전은시부모가 한 일이라 모른다고 해서는 해명이 안된다. 저희 두 사람은 밖에서 생활해 시부모께 월급 전부를 맡겼고,아이들도 키워주시는 등 살림을 도맡으셨다. ◆현재 아파트를 개조한 건 불법 아닌가. 3세대가 거주해야 하고 노모를 모시는 입장에서 시공사에 방이 여러 개인 주택을 주문하자 ‘꼭대기층에 입주하면 2채를 터서 출입문을 설치할 수 있으며 위법도 아니다.’라고 해서 입주했다. 이지운기자 jj@ ■이희호여사 친분설 ◆(민주당 전용학의원) 59∼62년 대한YWCA연합회 총무로 일할 때 이희호 여사를 처음 만났다고 했는데 그럼 40년동안 개인적 친분이 없었다는 말은 잘못된 거 아닌가. 그때 처음 만났고 이후 10년동안 미국 유학생활을 했다. 한국 와서도 공적으로 만났을 뿐 개인적 친분은 아니다. ◆(한나라당 박승국의원) 총리 지명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나 이희호(李姬鎬) 여사와의 친분을 굳이 숨긴 이유는 뭐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대학총장으로서 공식행사 참석 등을 통해 몇차례 뵌 것이 전부이고,‘사랑의 친구들’은 단체의 설립목적이 좋아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 이병석의원)‘사랑의 친구들’ 최초 발기인에 아태재단 상임이사 이수동씨가 들어 있다.이수동씨는 사무실 공동기증자이기도 한데,제2의 아태재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금시초문이다.아태재단과 ‘사랑의 친구들’의 관계를 모르고 있어 답변할 수 없다. ◆‘사랑의 친구들’이 각계에서 총 45억원이란 엄청난 기부금을 모았는데 이희호 여사의 영향력이 작용해 거의 강제적인 거 아니냐. 쉽게 말할 수 없다.회비를 정할 때 ‘2만원으로 뭘 할 수 있느냐.’는 얘기가 나온 것은 기억한다. 기부금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장남 이중국적·영주권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졌다.부모가 취득해 준 것이 아닌가. 그렇다.77년 2월28일 귀국했다.4월 이중국적을 처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73년쯤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는가. 그렇다. ◆(당시는)유신 직후여서 미국 국적을 요청,망명을 요구하는 붐이 일었다.미국 영주권 취득은 미국시민이 되겠다는 예비단계가 아닌가. 아니다.73년 아이가 태어나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내가 ‘잡(직장)’을 갖고 ‘론(대출)’을 하기 위해서였다. ◆섣불리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총리될 자격이 없다. 77년 귀국 당시는 유신 말기였는데 심각했다.미국 교수들도 가지 말라고 한데 대해 내가 “자기 나라에서 살지 못하면 살 데가 없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자민련 안대륜 의원)영주권 문제가 불거졌는데. 영주권을 안 가졌다고 한 적은 없다.직원들의 착오라고 생각한다.73년 영주권을 취득했으며 1년에 한번 (미국을) 여행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는데 여행하지 않아 소멸됐다.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장남이 호적에선 제적됐으나 주민등록이 남아 있는 이유는 행정착오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지금은 모르겠다.(주민등록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불찰이다. ■학력 허위기재 ◆ (민주당 전용학 의원)취임승낙서를 보면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 출신으로 돼 있는데. 비서출신도 (내 학력을)제대로 몰랐다는게 안타깝다.(비서)한 사람이 잘못해서 이 문제가 확대재생산돼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 ◆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총리서리가 되기 이전의 대부분의 자료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이대 총장이 되면서 신문에 (학력이 잘못)보도된 것도 보았을 텐테. (언론에 보도된 내 학력을)봤을 것이다. 사석에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 “장 선생 프린스턴대 나왔지요.”라고 물으면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나왔다.”고 답변해 왔다. ◆ 그러면 신문에 잘못 보도된 것에 대한 시정을 요청한 일은 없나. (적극적으로 요청한 일은)없다.(하지만 학력 게재 등)무언가 (신문사로부터 자료가)왔으면 시정했다. ◆ 총리로 지명되는데 예일대와 프린스턴대를 나왔다는 게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본다.(이번에 프린스턴대를 졸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자)대통령내외도 실망했을 것으로 보는데. 프린스턴대나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나 모두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 (자민련 안대륜 의원)지난 82년 이대 교학과장 시절 학술진흥재단으로 보낸 이력서에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는데. 처음 듣는 얘기다.(내가)직접 하지 않았다. ◆ 그 이력서에는 장 서리가 날인한 것으로 돼 있다.조교나 비서가 담당 교수의 승인없이 날인을 할 수 있느냐. (프린스턴대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붙어 있어서 오류가 생겼다고 본다.안좋은 관행인데….중요하지 않은 일로 (문서가)나갈 때에는 비서가 한다. ■김활란 추모사업 ◆ (한나라당 이주영의원) 이화여대 총장 재임 당시 김활란 기념사업을 주도한 것은 친일청산에 역행한 것 아니냐. 그 분의 친일행적에 대해선 비판하되 한국 여성의 고등교육 등에 공헌한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민주당 강운태의원) “김활란씨가 본질적인 친일은 안 했고 오히려 반일적”이라고 말했다는데. 총독부가 끌고 다니며 원고를 써서 읽게 했다고 한다. 안 하면 이화여대 문닫는다고.나중에 심각한 안질환을 앓으면서 “죄가 있어 실명해도 마땅하다.”고 본인이 말했다.친일을 두둔하려는 건 아니다. ◆ (민주당 조배숙의원)98년 김활란상 제정 토론회에 참석,“김활란 박사가한국이 낳은 유일한 여성지도자”라고 말했다.후보의 역사관,민족관이 의심스럽다. 99년이 김활란 탄생 100주년으로 기념사업의 여론이 높았다.학술제를 통해 친일을 짚고 넘어가는 자리를 마련,반대자를 다 초청했다. 김활란은 1920년대 이미 세계 무대로 나가 민간외교관 역할을 했다.그러나 이화가 생각하는 것과 사회정서가 거리가 있다는 걸 느끼고 상 제정을 유보하고 모금액은 장학금으로 돌렸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청산 활동을 하면서 교수들의 지지서명을 받았는데 서명했나. 나는 서명을 쉽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확신이 설 때만 한다.특히 역사적인 평가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균형있게 이뤄지느냐를 검토해야 한다. 곽태헌 박정경기자 tiger@ ■국정수행 능력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금강산관광을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대북화해협력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하나의 정책이고 방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민주당 정세균 의원)아파트값이 폭등해 서민들이 고통받는 것을 알고 있나.어릴 때 주택 문제로 고통을 겪은 적 있나. 이대 앞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생활비가 떨어지면 고구마만 삶아먹은 적이 있다. ◆총장 시절 어떤 생각으로 주5일제 근무를 추진했나. 노조가 몇년 동안 요청했다.다른 대학들도 많이 하고 있는데다 강의에도 지장없고 난방비가 3억원이 절약된다고 해서 시작했다.하지만 일률적 획일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조배숙 의원) 국정업무에 대학총장의 경영마인드만으로는 부족한데. 국무총리를 연습한 사람은 없다.조직 장악력이 있으면 가능하다. ◆(민주당 강운태 의원)마늘협상 파문이 발생한 원인은. 피해농가와 국민에게 매우 죄송하다.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떨어뜨렸다. ◆대선에서 공직자 중립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방법론은 좀 더 검토해야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의 자세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강운태 의원)소득격차 해소방법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성공적으로 병행하려면생산적 복지와 사회통합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강운태 의원)공적자금에 대한 생각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던 것 자체는 유감이다.하지만 과감한 투입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큼 외환위기를 단시일에 극복한 효과는 있었다.국민 입장에선 정말 잘 썼는지,미회수분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등이 의문이다. 김재천 박정경기자 patrick@
  • 이범진열사 순국비 러서 제막

    대한제국 시절 러시아 주재 초대공사 등을 지내다 국치를 견디다 못해 자결한 이범진(李範晋·1852∼1911) 열사의 추모행사가 러시아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러시아 정부와 공동으로 29∼30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사의 순국비 제막식과 공동학술회의 등을 연다.제막식에는 이재달(李在達) 국가보훈처장과 야코블레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등 300여명이 참석,추모사와 함께 열사의 뜻을 기린다.순국비는 약 2m 높이로 열사의 독립운동 활동을 한글과 러시아어로 각인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열리는 추모 학술회의에는 러시아와 국내 역사학자 등이 참석,‘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과 ‘이범진 열사와 아관파천’등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열사는 서울 태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어명을 받고 러시아 공사와 협의,아관파천을 주도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행사 / 여운형선생 추모비 제막식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 추모사업회(회장 呂澈淵)는 몽양 서거 55주기를 맞아 18일 오전 11시 경기 양평군 양서면 선생 생가터에서 추모비 제막식을,19일 오후 1시 서울 우이동 묘소에서 최창규 성균관장,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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