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추모사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고증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독보적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각성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박성준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37
  • 미군 궤도차량에 숨진 효순·미선양 14주기 추모제

    2002년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고(故) 신효순·심미선 양 14주기 추모제가 14일 오전 경기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사고 현장에서 열렸다. 미선효순추모비건립위원회 등 10여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민주노총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마을 어귀에서 사고 현장까지 추모 행진, 헌화, 추모공연, 추모사, 추모공원 조성계획 발표, 기억의 나무와 꽃 심기 등 순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시민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촛불집회를 연다. 앞서 이들은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 의정부 미2사단 캠프 레드클라우드 정문 건너편에서 추모 음악회를 열었다. 미선·효순 양은 2002년 6월 13일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려고 인도가 없는 56번 지방도 2차로를 따라 걷다가 인근 파주 무건리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졌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시민단체는 두 여중생의 넋을 위로하고 불합리한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매년 사고 현장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6일 조계사에서 도의국사 다례재

    조계종은 오는 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종조(宗祖) 도의국사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는 다례재를 거행한다. 도의국사는 육조 혜능 스님의 법을 이은 서당지장 스님에게 법을 받아 남종의 조사선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해 구산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을 연 개산조이다. 도의국사는 통일신라 말~고려 초 불교사상 흐름을 화엄에서 선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다례재는 육법공양, 개회, 삼귀의례 반야심경, 추모사, 청법게, 법어, 사홍서원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 50여일 만에 與 두 달짜리 지도부 출범… ‘복당’ 첫 숙제

    50여일 만에 與 두 달짜리 지도부 출범… ‘복당’ 첫 숙제

    최고위 역할 겸해 오늘 첫 회의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2일 공식 출범했다. 이로써 4·13 총선 참패 이후 50일 넘게 이어온 당 지도부 ‘공백 사태’가 일단락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최고의결기구인 전국위와 상임전국위를 잇따라 열어 혁신비대위 구성안을 의결했다. 지난달 17일 ‘정진석 비대위원장 및 김용태 혁신위원장 체제’ 구성안이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발로 무산된 이후 보름여 만이다. ●김 위원장 “당명만 빼고 다 바꿔야” 김 위원장은 수락 인사말에서 “당명만 빼고는 모두 다 바꿔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면서 쇄신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3일 상견례를 겸한 첫 회의를 소집할 계획이다. 혁신비대위는 오는 7∼8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총선 패배에 따른 당 쇄신안 등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대 전까지는 혁신비대위가 최고위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 탈당파의 복당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복당 여부를 놓고 계파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져 난항도 우려된다. 지난달 24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최경환 의원 간 3자 회동에서 논의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 문제도 다뤄질지 주목된다. 당 대표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차기 전대에서 당권 경쟁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진석 비대위원’ 7명 중 6명 교체 김 위원장은 전국위 개최에 앞서 비대위원 1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당내 인사로는 당연직 위원 3명(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권성동 신임 사무총장) 외에 수도권 3선인 김영우·이학재 의원이 선임됐다. 김 의원은 김무성 대표 시절 수석대변인,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 당시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각각 비박계와 친박계를 배려한 ‘화합형 인선’으로 평가된다. 두 사람은 총선 직후 당의 개혁을 요구했던 ‘새누리당 혁신모임’에도 나란히 참여하기도 했다. 당초 정진석 비대위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내정됐던 7명 중 김 의원만 재발탁됐고 나머지는 제외됐다. 외부 위원으로는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유병곤 전 국회 사무차장,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민세진 동국대 교수, 임윤선 변호사 등 5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각각 경제계와 정계, 관계, 여성계, 법조계를 대표하는 정책 전문가로 평가된다. ●김무성 “다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김 위원장은 이날 당직 인선도 마무리했다. 권 신임 사무총장 외에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 지상욱·김현아 대변인, 김선동 혁신비대위원장 비서실장, 최교일 법률지원단장 등으로 꾸려졌다. 당의 정상화를 계기로 비박계 좌장인 김 전 대표와 친박계 핵심인 최 의원이 ‘자중 모드’에서 탈피해 정치 일선에 재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대표와 최 의원을 향해 각각 대권, 당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김 전 대표는 이날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열린 상월원각대조사 제42주기 열반대재에서 추모사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총선을 치렀는데도 패배했다”며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놨다. 최 의원 역시 전날 경북 지역 의원들과의 오찬 회동에 이어 이날은 대구 지역 의원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최 의원은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 순수하게 밥 먹는 자리”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사실상 정치 활동 재개로 받아들여진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서울시의회 오경환의원 “5.18민주화운동 계승은 민주주의-민생 실천”

    서울시의회 오경환의원 “5.18민주화운동 계승은 민주주의-민생 실천”

    5.18민주화운동 제36주년기념 서울행사위원회(위원장 : 박석무)가 주관하고 5.18서울기념사업회(회장 : 최병진)가 주최한 5.18민주화운동 제36주년기념 서울행사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박원순 서울시장, 박래학 서울시의회의장,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처장을 비롯하여 유가족, 각 시민단체 및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1부 기념식행사에서는 헌화, 분향, 기념사와 추모사를 거쳐 기념공연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였으며, 이어진 2부에서는 5.18골든벨(5.18기념 제12회 서울청소년대회)과 시민 추모분향이 진행되었고, 서울시민청 갤러리에서는 부대행사로 5월 23일까지 오월치유사진전이 열릴 예정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오경환 서울시의원(마포구 제4선거구, 기획경제위원회, 더불어 민주당)은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성지이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이정표가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오경환 의원은 “광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전환의 시점마다 흔들리지 않는 역사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하지 못하게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5.18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오경환 의원은 “5.18민주화운동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정신과 의의를 되살리고, 경제민주화 실현을 이룩해 민생을 살려내는 것이 5.18민주화운동의 계승”이며 “앞으로 이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구현을 하는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육사 ‘청포도’ 시 썼던 성북구 딸과 함께 탄생 112주년 문화제

    이육사 ‘청포도’ 시 썼던 성북구 딸과 함께 탄생 112주년 문화제

    “아버지께서 교과서에 실린 시 ‘청포도’를 쓴 서울 종암동에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 서울 성북구는 18일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시인 이육사는 성북구 종암동에 살면서 1939년 8월 ‘청포도’와 1940년 1월 ‘절정’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18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성북구청 4층 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화제는 시인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75)씨가 제안했다. 이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네 살 때 청량리에서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여 중국으로 압송돼 가던 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이라며 “아버지의 육 형제 가운데 네 분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협회 이사인 그는 ‘시인 이육사, 그리고 아버지’란 제목으로 문화제에서 강연한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가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절정’) 상황에서도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청포도’)하고 독립의 그날을 고대하던 시인의 뜻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사일사/이육사가 시 ‘청포도’를 쓴 곳은 서울 성북구 종암동

    사일사/이육사가 시 ‘청포도’를 쓴 곳은 서울 성북구 종암동

    “아버지께서 교과서에 실린 시 ‘청포도’를 쓴 서울 종암동에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 서울 성북구는 18일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를 연다. 시인 이육사는 성북구 종암동에 살면서 1939년 8월 ‘청포도’와 1940년 1월 ‘절정’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18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성북구청 4층 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화제는 시인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75)씨가 직접 제안했다. 이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네 살 때 청량리에서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여 중국으로 압송돼 가던 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이라며 “아버지의 육 형제 가운데 네 분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협회 이사인 그는 ‘시인 이육사, 그리고 아버지’란 제목으로 문화제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이씨는 시인 이육사가 종암동에 거주하며 시를 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탄생 112주년을 맞아 문화제를 제안했다. 교과서 밖 이육사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성북구와 성북문화원의 협력으로 올해 처음 문화제가 열리게 됐다.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는 딸이 아버지를 추억하는 강연 외에 박수진 성북문화원 향토사연구팀장이 ‘성북구와 이육사’에 대해 소개하고,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시인의 시에 직접 곡을 붙여 부르는 공연과 시낭송을 한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가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절정’) 상황에서도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청포도’)하고 독립의 그날을 고대하던 시인의 뜻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많은 독립운동가가 성북구 곳곳에서 저항운동을 펼쳤는데 이러한 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민족저항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육사는 1939년부터 약 3년간 가족과 함께 성북구 종암동 62에 살면서 여러 대표작을 ‘문장’지에 발표했다. 본명은 원록으로 육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치른 옥고 때 수인번호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2년 계속된 기도… “시신이라도” “온전히 선체 인양을”

    2년 계속된 기도… “시신이라도” “온전히 선체 인양을”

    시신 미수습 가족 등 2000여명 해수부 장관·野 당선자 등도 참석 세월호 참사 2주년 추모식이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렸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등 추모객 2000여명이 참석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 천정배·주승용·박지원·박준영·황주홍·김동철·장병완·김경진·권은희·윤영일 당선자 등이 자리를 지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인 강난희씨와 비공개 일정으로 팽목항 분향소와 방파제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이낙연 전남지사·박홍률 목포시장·이동진 진도군수 등이 참석했다. 임시 분향소에서 헌화·묵념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발생 2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족 임시 숙소와 등대길을 걸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시신이라도 찾아달라’고 호소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참석자들은 노란 풍선을 날리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통한 미수습자 수습을 기원했다. 김영석 장관은 추모사에서 “정부는 세월호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인양해 아홉분 모두 여러분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단원고 학생인 미수습자 조은하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2년 전 이 시간에 우리 딸이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을 것”이라며 “온전하게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미수습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팽목항에는 이날 수천명의 추모객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진 가운데 종교단체들의 추모 의식도 잇따랐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16일 세월호 참사 2주년 진도 팽목항 추모식, 박원순 서울시장과 천정배 의원

    16일 세월호 참사 2주년 진도 팽목항 추모식, 박원순 서울시장과 천정배 의원

    세월호 참사 2주년 추모식이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렸다. 9명의 시신 미수습자 가족들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등 추모객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 천정배·주승용·박지원·박준영·황주홍·김동철·장병완·김경진·권은희·윤영일 국회의원 당선자 등이 자리를 지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인 강난희 여사와 비공개일정으로 팽복항 분향소와 방파제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이낙연 전남지사·박홍렬 목포시장·이동진 진도군수 등이 참석했다. 임시분향소에서 헌화·묵념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발생 2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족 임시숙소와 등대길을 걸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시신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시신이라도 찾아달라’고 호소해 눈시울을 붉게 했다.참석자들은 노란 풍선을 날리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통한 미수습자 수습을 기원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정부는 세월호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인양해 아홉분 모두 여러분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단원고 학생 미수습자 조은하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2년 전 이 시간에 우리 딸이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을 것”이라며 “온전하게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미수습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팽목항에는 이날 추모객들 수천명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지는 가운데 종교단체들의 추모의식도 잇따랐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비 내리는 팽목항, 세월호 2주기 추모식…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비 내리는 팽목항, 세월호 2주기 추모식…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식이 16일 전남 진도국 팽목항에서 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추모식에는 시신 미수습자 가족들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등 정치인, 추모객과 진도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임시분향소에서 헌화 및 묵념을 한 뒤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부터 2년동안의 흔적이 남아있는 가족 임시숙소와 등대길 등을 걸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추모 영상으로 시작된 추모식에서는 시신 미수습자의 가족들이 일부 참석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참석자들은 함께 노란 풍선을 날리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통한 미수습자들의 귀환을 기원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추모사를 통해 “정부는 세월호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인양해 아홉분 모두 여러분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면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양안전 제도와 형태와 의식을 혁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단원고 학생 미수습자인 조은하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2년 전 이 시간에 우리 딸이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내년 3주기 때는 온전하게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미수습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팽목항에서는 추모객들 수천명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종교단체들도 추모 의식을 이어나갔다. 추모식을 마친 뒤 오후에는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의미로 깃발을 매단 차량 304대가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차량 행렬을 갖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슈&이슈] 대부도 수도권 해양관광 메카로 부상

    [이슈&이슈] 대부도 수도권 해양관광 메카로 부상

    경기 안산시의 ‘보물섬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대부도가 수도권 해양관광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4번째로 큰 섬 대부도는 100㎞의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변과 다양한 갯벌생태 환경, 철새들의 휴식처로 유명하다. 이런 곳에 마리나항 조성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섬 전체의 친환경에너지 시설과 문화를 결합한 휴양자원으로 가꾸는 ’보물섬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고 있다. 게다가 마리나항을 완공하면 1조원이 넘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돼 안산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7일 안산시에 따르면 마리나항이 조성되는 곳은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 지역이다. 해양수산부와 안산시는 지난 2월 24일 대부도 방아머리 마리나항 개발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방아머리 마리나항 사업은 국비 300억원 등 997억원을 투입해 대부도 시화방조제 전면 해상 11만 4993㎡에 300척 규모의 레저선박 수용시설과 호텔, 상업시설, 도로, 친수공간 등 편의시설을 포함한 복합해양레저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세월호 추모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해양안전체험관도 인근에 함께 건립될 예정이다. 안산시는 방아머리 마리나항 조성을 위한 타당성 조사, 기본조사 용역을 시행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앞서 실시한 지방재정영향평가와 중기지방재정계획을 반영해 행정자치부에 전체 사업에 대한 중앙투자심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기본조사 용역에서는 사업계획안 검토, 측량, 해상 시추, 사전재해영향평가, 민간투자제안 검토 등을 진행한다. 시는 이런 결과를 토대로 최종 사업계획을 마련, 해양수산부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다. 타당성조사 용역은 오는 6월까지, 기본조사 용역은 11월까지 이뤄진다. 안산시는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뒤 내년 1월부터 12월까지 마리나항에 대한 실시설계, 사업 인허가 절차를 마칠 예정이다. 이어 2018년 사업 착공, 2019년 준공할 계획이다. 해양안전체험관은 올해 상반기까지 행정절차를 완료한 후 해양안전체험 프로그램과 건축설계 공모 등을 거쳐 오는 7월 공사에 들어가 2019년 완공할 예정이다. 안산시는 마리나항만 조성으로 1500억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와 6만여명의 고용유발 효과, 그리고 전체적인 부가가치가 1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안산시가 보물섬으로 생각하는 대부도는 아직 정갈하게 다듬어 지지는 않았지만, 갯벌과 바다 연안생태, 해솔길, 노을 등 자연 그대로의 멋과 시골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아머리 마리나항 건설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대부도 보물섬 프로젝트’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제종길 안산시장의 핵심 공약인 ‘보물섬 프로젝트’의 근간은 ‘카본 제로 도시’를 위한 친환경 에너지원 구축이다. 탄소 배출 없이 대부도의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대부도에는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시화호조력발전소가 있고 누에섬과 방아머리섬 등에 초대형 풍력발전기가 가동 중에 있다. 대부도 대송습지는 20만 마리의 철새가 찾고 천연기념물 11종, 멸종위기 9종이 서식하는 경기도 최초의 생태관광지역이다. ‘동주염전’을 비롯해 대부도 포도로 만든 ‘그랑꼬또 와인 공장’, ‘베르아델승마클럽’, 탄도항에 들어선 ‘어촌민속박물관’ 등도 대부도의 대표 관광 자원이다. 안산시는 이런 보물섬에 자전거도로를 확충하고 시화호 뱃길 조성, 친환경 바이오플락 첨단양식 단지조성 등 블루이코노미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에코 에너지 타운, 신재생에너지 기술단지, 대부도 해양환경 숲 조성 등 지속 가능한 탄소제로 도시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술관 스트리트 조성, 황금산 복원, 자연 음악당 조성, 생태관광마을 시범단지 조성, 해솔길 투어(7개 코스 74㎞)를 통한 슬로 관광 등도 추진하고 있다. 안산시는 대부도를 안산의 미래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보물섬으로 만든다는 방침에 따라 ‘대부도 보물섬 프로젝트 정책추진단’을 가동하고 있다. 또 최근에 2017 생태관광 및 지속가능 관광 국제 콘퍼런스(ESTC·Ecotourism and Sustainable Tourism Conference 2017)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ESTC는 생태관광 및 지속가능 관광 분야에서 135개국 1만 40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생태관광협회(TIES)가 매년 개최하는 국제회의로, 전 세계 생태관광인들의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대구지하철 참사 재단 이달 출범

    대구지하철화재 참사 희생자 추모사업 등을 전담할 재단법인 ‘2·18안전문화재단’이 이달 중 출범한다. 대구시는 국민안전처가 재단 설립을 지난 11일 허가했다고 14일 밝혔다. 재단 임원진은 이사 11명과 감사 2명 등 13명으로 구성했으며 이사장은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맡았다. 재단은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과 위령탑 건립, 희생자 묘역 조성 등 추모사업를 추진한다. 또 대구 동구 안심차량기지에 남은 사고 전동차 처리 방안 등을 마련한다.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장학 및 안전복지사업, 안전·방재 관련 학술연구기술 지원사업, 안전주간 운영 등 안전의식 고취를 위한 사업 등을 전담한다. 재단에는 모금한 국민성금 670억원 가운데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들에게 지급하고 남은 109억원이 귀속된다. 이달 중 재단 법인설립 등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마련한다. 대구시와 피해자 단체들은 지난해 2월 재단 설립에 합의했으나 설립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를 결론 내리지 못하다가 지난해 9월 대구시 명의로 국민안전처에 재단 설립 허가를 신청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日 출연 10억엔, 위안부 할머니들에 나눠 줄 듯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괄 거출하기로 한 10억엔(약 100억원)을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개별 보상에 활용키로 정부가 가닥을 잡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위안부 피해자 추모사업은 피해자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라며 “(일본 정부 출연금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 지원 방안에 대해 “간병인 비용이나 의료비 지원, 위로금 같은 것”이라며 “세부적인 부분은 좀더 정밀하게 협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최근 개별 거주 피해자 21명을 면담한 뒤 이같이 가닥을 잡았다. 이 관계자는 “(할머니들이) 불필요한 사업을 하지 말고 개별 피해자들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상당수 할머니들이 (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형평성 차원에서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도 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반발도 예상된다. 일본은 12·28합의 이후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등 연일 합의 정신을 훼손하는 언행을 이어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 예산을 피해자들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 과거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당시와 같은 ‘수령 거부’ 움직임이 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90년대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일부 할머니들 사이에서 “일본의 사죄가 먼저”라는 목소리가 나오며 지원금 수령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일본에 “물질적 요구를 하지 않을 테니 진상규명 등을 하라”는 원칙을 내세워 협상에 도덕적 우위를 점했지만 결국 물질적 보상으로 끝난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제종길 안산시장 “생태·환경 조화 이루는 숲의 도시 만들겠다”

    제종길 안산시장 “생태·환경 조화 이루는 숲의 도시 만들겠다”

    제종길 경기 안산시장은 5일 생태와 환경이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숲의 도시를 만들어 안산의 브랜드가치를 상승시키고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 시장은 이날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숲의 도시는 단순히 나무가 울창한 도시를 말하지 않는다. 숲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고 시민들의 심리적 안정과 육체적 치유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 시장은 “2030년까지 이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펼치겠다. 시민이 참여하고 교감하는 공동체의 숲을 다양하게 조성해 생물다양성을 제고하는 한편 숲도시 생태계를 잘 관리하고 숲길을 조성해 시민 누구나 숲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대부도를 보물섬으로 만들기 위한 블루이코노미 전략도 밝혔다. 제 시장은 “대부도는 안산을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 요충지이자 안산의 미래 먹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방아머리에 국가거점 마리나항과 해양안전체험센터를 유치하는 등 해양과 해양스포츠 관련시설을 설치하고 국제적인 힐링컴플렉스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사람 중심의 안전하고 공정한 도시’,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 ‘안산 사이언스 밸리 구축’, ‘시화호 뱃길 조성’, ‘KTX 역사 유치를 포함한 화랑역세권 개발’ 등 안산의 전략사업들을 역점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피해 유가족 대책과 관련해 제 시장은 “정부의 무관심과 정치권의 편 가르기로 인해 세월호 피해 시민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정부가 약속한 트라우마센터 건립 사업비는 3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줄었고 추모사업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안산의 공동체 회복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는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곁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유럽 출판계 불붙은 ‘안네의 일기’ 저작권

    유럽 출판계 불붙은 ‘안네의 일기’ 저작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고발한 ‘안네의 일기’ 가 저작권 시효 논란에 휩싸였다. 책의 저자인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쓴 일기 원본을 소유한 네덜란드의 ‘안네프랑크재단’과 출판권을 보유한 스위스의 ‘안네프랑크기금’이 저작권을 놓고 충돌한 가운데 프랑스의 대학 강사와 국회의원이 지난 1일(현지시간) 네덜란드어판 원본을 각자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면서 논란에 불을 댕겼다. ●佛강사 “안네 사후 70년 저작권 소멸” 3일 AFP와 더치뉴스 등에 따르면 안네의 일기는 최근 유럽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안네가 죽은 뒤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1889~1980)가 딸의 일기를 편집해 발간한 이 책은 1947년 첫 출간 이래 3000만부 넘게 팔렸다. 반(反)나치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저작권법을 둘러싼 출판 자유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논란을 키운 두 주역은 프랑스 낭트대 강사인 올리비에 에르츠샤이드와 국회의원인 이사벨 아타르다. 이들은 새해 첫날 네덜란드어판 원본을 자신들의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했다. 에르츠샤이드는 “저자 사후 70년이 지난 올해 1월 1일에 책은 공공의 소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저자 사후 70년 뒤 저작권 소멸을 규정한 유럽연합(EU)의 저작권법이 자리한다. 저자인 안네는 15세 때인 1945년 2월 독일 하노버의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로 숨졌다. ●기금 측 “부친이 재서술… 아직 유효” 이에 스위스 바젤에 있는 ‘안네프랑크기금’은 자신들이 출판권을 갖고 있기에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안네의 일기를 둘러싼 저작권 다툼은 지난해 말까지 재단과 기금의 전유물이었다. 기금 측은 아버지 오토를 공동 저술자라고 주장하며 그가 죽은 1980년 이후 70년간 저작권이 보호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책의 수익금 전액을 사회에 기부했다”면서 기금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안네와 관련된 추모사업을 벌이는 기금은 지난해 재단 박물관을 상대로 안네의 일기를 포함한 관련 기록물과 사진에 대한 반환 소송을 벌여 독일 법원에서 승소한 상태다. ●재단 측 “원본 개정판 기준 2037년까지” 반면 재단은 기금과 수차례 소송을 벌여 지난달 29일 암스테르담 법원으로부터 ‘학술적 목적’의 안네의 일기 출판권을 인정받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네덜란드어판 원본 일기는 ‘네덜란드전쟁기록연구소’ 소유지만 암스테르담의 재단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곳은 안네 일가가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까지 머물던 옛 가옥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공교롭게도 재단과 기금은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가 각각 1957년과 1963년 출범시킨 기관으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이들은 저작권 시효 논란이 불거진 직후에는 안네의 일기의 개정증보판이 발간된 1986년부터 최소 50년 뒤인 2037년까지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광석 어느덧 20주기, 여전한 그리움

    김광석 어느덧 20주기, 여전한 그리움

    ‘가객’(歌客) 김광석 20주기가 다가온다. 김광석 팬들과 대중음악계 선후배 동료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다시 모인다. 김광석 추모사업회(회장 김민기)는 내년 1월 6일 다섯 번째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를 개최한다. 내년 재단 설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다. 2012년 ‘김광석 따라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김광석의 노래를 참가자들이 저마다 개성대로 부르며 그를 추모하는 시간이다. 그간 모두 230개 팀이 예선에 참가, 47개 팀이 본선에 오르는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무대가 꾸려져 왔다. 아마추어 뮤지션이 참가하는 대회였으나 지난해부터는 프로 뮤지션에게도 문을 열며 ‘김광석 노래 부르기’가 됐다. 이번 대회는 가창 없이 연주만으로도 참가가 가능해 보다 신선한 재해석 무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심을 거친 10여개 팀이 김광석의 20주기인 새달 6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본선 무대를 장식한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1000회 공연을 기록했던 곳이다. 해마다 기일 즈음 팬들이 찾아와 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오는 28일 오후 6시까지 학전 웹하드에 김광석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한 동영상이나 음원을 신청서와 함께 올리면 예선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김광석상’ 수상자는 부상으로 마틴 기타와 내년 2월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 추모사업회는 내년 중 재단을 설립해 새로운 문화 사업을 꾸릴 예정이다. 2008년 이후 매년 진행하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등을 통해 적립해 온 설립 기금이 3억 4700만원가량 쌓였다. 추모사업회 관계자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꾼이 되길 바랐던 김광석의 꿈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며 “단순하게 그를 추모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대중음악을 비롯한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독일 슈미트 전 총리, 함부르크에서 영면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이 23일 함부르크 미헬 교회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수도 베를린이 아닌 함부르크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것은 슈미트 전 총리의 유언 때문이었다. 고인은 2010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미헬 교회에서 영면에 들기를 생전에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참석자가 1800명에 달한 장례식에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옌스 슈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등 뿐 아니라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인사들이 참석했다. 고인이 총리를 지내던 1974~1982년 프랑스 대통령이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등이 슈미트 전 총리를 배웅했다. 한국에서는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참석했고, 이경수 주독일대사를 대신해 장시정 함부르크 총영사가 정부 대표로 조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어려운 과업에 맞닥뜨려서 옳다고 생각하면 정치적 결과가 따르더라도 최고의 희생을 각오한 채 책임을 다했던 권위있는 인물”이라고 고인을 회고한 뒤 “그의 타계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리 테러를 거론한 메르켈 총리는 “동기는 다르지만 테러가 여전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며 테러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92세인 키신저 전 장관은 “양심 없는 정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던 고인의 전 총리 어록을 인용하며 독일어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완벽주의자이며 분위기 있고 끝없이 탐구하고 영감이 풍부하며 항상 신뢰할 수 있었던 특별한 친구”라고 슈미트 전 총리를 기억했다. 시민들도 추도글을 남기며 슈미트 전 총리를 기억했다.  독일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슈미트 전 총리는 오일쇼크, 환율 위기 등 경제적 위기 뿐 아니라 적군파 테러, 구소련의 핵미사일 유럽향 배치 등 안보 위기 속에서 타협의 묘수를 이끌어내왔다. 유로화 체제의 초기 제안자이기도 하다. 총리직을 떠난 뒤엔 시사주간지 차이트의 공동발행인으로 변신, 현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추모사] 당신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 남기고

    [추모사] 당신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 남기고

    신념과 결단으로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해 주신 김영삼 대통령님! 크나큰 감사와 사무치는 회한으로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님의 일생은 신념과 행동의 완전한 합일이었습니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나 그 열매로 쟁취한 집권 이후의 통치 과정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님의 그 모든 결단은 신념에서 비롯되고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남겨진 것 같던 의원직 제명 때나 목숨을 잃을 것 같았던 단식 막바지 때도 님이 흔들리지 않았던 덕에 동지들과 국민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대통령 취임사의 빛나던 한 구절을 기억합니다. 불굴의 신념을 받쳐 주던 정치 철학이 담겨 있는 구절이기에 나라의 앞길을 밝혀 주는 불기둥으로 삼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 이어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하셨지요. 저희는 취임 이후 내리셨던 전광석화 같던 그 모든 결단들이 평화 통일을 위한 정상회담 준비 작업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위협 요소였던 하나회 척결, 공정 분배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금융실명제 실시, 공직사회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 된 공직자 재산등록제 등등이 모두 수미일관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남북한 자유총선거에서 자유민주세력의 승리를 보장하기 어려운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김 주석과의 담판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준비를 했고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기회를 만들었건만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혁에 대한 무한 감사와 함께 회한이 밀려오는 이유입니다. 이제 님은 당신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을 남겨주시고 떠났습니다. 저희는 님이 밝히신 민족에 대한 철학을 가슴 깊이 새기고 평화, 상생 통일을 향해 굳건히 전진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선친 생전에 매일 기침(起枕)하자마자 전화 문안을 올리셨던 님의 효심은 남기신 자녀들과 자라나는 세대들이 본받고 이어 갈 것입니다.
  • 용산에서 부활하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혼

    용산에서 부활하는 유관순 열사의 애국혼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게 유일한 슬픔이라고 유언을 남겼던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를 이태원에 세웁니다.” 15일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에 가로 0.8m, 높이 2m, 세로 0.25m의 주탑 1개와 가로 0.6m, 높이 1.5m, 세로 0.25m의 보조탑 2개로 이뤄진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세운다”면서 “오는 23일 오후 3시 제막식을 포함한 추모제를 연다”고 밝혔다. 추모비 주탑에는 유 열사 유언을 새겼고, 보조탑에는 각각 추모비 건립 취지와 유 열사의 연보를 넣었다. 지난해 10월 66명의 주민과 전문가로 구성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추모비 건립을 추진한 이후 1년여 만의 완성이다. 추모제에는 주민 300여명이 참석해 유공자 포상, 추념사, 추모사, 추모비 개막식, 헌화 및 분향 등을 한다. 또 추모행사로 헌시 낭독, 살풀이 공연, 만세삼창을 진행한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유 열사 추모 예술전도 용산아트홀에서 연다. 추모비를 세우는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은 유 열사의 시신이 마지막으로 잠들었던 이태원 공동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다. 유 열사는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4월 1일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해 투옥됐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같은 해 10월 14일 새벽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하지만 1936년 일본이 이곳에 군용기지를 조성하기 위해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시신이 사라졌다. 현재 이태원 공동묘지 자리는 주택가다. 성 구청장은 “유 열사는 1962년 건국훈장 3등급(독립장)에 추서됐는데 대통령 헌화는 1등급(대한민국장), 2등급(대통령장)인 경우에만 진행한다”면서 “이번 추모비 건립이 유 열사의 훈격 상향 및 역사적 재평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가족 전사하는 고통 그 누구도 다시 겪지 않기를”

    “가족 전사하는 고통 그 누구도 다시 겪지 않기를”

    “전쟁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공포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제 남편이 13개월의 한국 근무 만기를 일주일 앞두고 전사했을 때 저는 3살, 6살, 그리고 8살 된 어린아이들의 엄마였습니다. 저는 한국군이나 미군의 어떠한 가족도 또다시 제가 겪은 고통과 고초를 겪지 않기 바랍니다.” 18일 오전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캠프 보니파스 플라자’. 1976년 ‘8·18 도끼 만행 사건’의 희생자인 아서 보니파스(위·당시 33세) 소령과 마크 배럿(아래·당시 26세) 중위를 위한 추모식에서 이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보니파스 소령의 부인 마샤 보니파스(73)가 미국에서 보낸 추모사를 당시 JSA 경비대대 한국 측 중대장(대위)이던 김문환(68)씨가 대독했다. 추모식은 인성환 한·미연합사단 부사단장, 브라이언 메네스 미 2사단 부사단장 등 양국 주요 인사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마샤는 추모식 메시지를 통해 “2주 전 두 한국 군인을 부상당하게 한 북한군은 오늘 우리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을 시작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보니파스 소령(당시 대위)은 1976년 8월 18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초소 앞에서 한·미 장병 10명과 함께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한국인 노무자들을 경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던 북한군 장병 수십명이 미리 준비한 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러 보니파스 소령과 배럿 중위를 살해했다. 이 사건 이후 JSA 내부에 군사분계선(MDL)이 표시됐고 경비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은 상대방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 현재 미국 델라웨어주에 거주하고 있는 마샤는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해 남편의 한국군 측 동료였던 김씨와 만나 남편을 회상했다. 당시 8살이던 첫째 딸 베스(47)는 간호사로, 6살이던 아들 브라이언(45)은 소방관, 3살이던 막내 딸 메건(42)은 가정주부로 장성했다. 김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보니파스 소령의 부인이 이번 추모식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4일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이전에도 한·미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 국민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