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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윤소정의 영결식 “마지막 길조차 쿨하게...황망하다 못해 원망”

    故 윤소정의 영결식 “마지막 길조차 쿨하게...황망하다 못해 원망”

    배우 故 윤소정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오늘(20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故 윤소정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배우 길해연이 추모사를, 그리고 배우 손숙이 조사를 낭독했다. 길해연은 “‘쿨’한 분이셨던 윤소정 선생님은 마지막 가는 길조차 ‘쿨’하게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슬프고 황망하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고 슬픔에 잠겼다. 손숙은 “네가 친구여서 든든하고 고마웠다”고 영면에 들어가는 친구를 향한 인사를 건넸다. 이날에는 남편 오현경과 딸 등 고인의 가족을 비롯해 배우 명계남, 손숙, 길해연, 오달수, 양희경, 신소율, 이승준 등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고,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지난 16일 오후 7시 12분 패혈증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196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뒤 연극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후 천안묘지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영화 ‘로키’의 존 아빌드센 감독 타계, 스탤론의 추모사는

    영화 ‘로키’의 존 아빌드센 감독 타계, 스탤론의 추모사는

    영화 ‘로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존 G 아빌드센이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아들 앤서니는 이날 부친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췌장암으로 타계했다며 “내 관점에서 부친은 아주 빼어난 남성이었다. 재능도 뛰어났고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세 손해도 많이 봤지만 때때로 이득이 될 때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영화 ‘가라데 키드’ ‘파워 오브 원’도 연출한 고인은 ‘언더독’을 유독 좋아해 할리우드의 제작 트렌드를 앞장 선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 유족으로는 3남1녀를 뒀다. 영화 ‘로키’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오스카 7개 부문 후보로 지명돼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유명 감독 프랭크 캐프라가 197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 영화를 봤을 때 ‘이것 봐라.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잖아’라고 말했다”고 고백한 일은 유명하다. 고인은 생전에 캐프라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았다.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는 각본을 쓰고 당시 다른 작품을 연출하고 있던 고인에게 메가폰을 맡긴 일화로 유명하다. 마침 그 영화의 제작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고인이 이 영화를 연출할 수 있었다. 지인이 보낸 각본을 읽던 고인은 나중에 “3페이지에 그 친구(로키)가 거북에게 말을 거는 대목에서 훅 낚였다”며 “위대한 캐릭터 연구 사례였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복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출하겠다고 작심했다. 제작에는 100만달러도 들지 않았고 28일 만에 완성했다. 고인은 “40~50명의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다들 끝내준다고 했다. 고무적이었다. 영화관 근처 골목에 줄이 형성된 것을 본 순간 대박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스탤론은 고인이 자신을 믿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난 모든 것을 고인에게 빚졌다. 그의 연출과 열정, 감각과 따듯함은 영화 ‘로키’가 만들어질 수 있게 했다”며 “그는 내 인생을 바꿨고 영원히 난 그에게 빚진 느낌을 가질 것이다. 내 친구가 해준 것보다 더 내게 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영화 ‘로키 ’의 존 아빌드센 감독 타계, 스탤론의 추모사는

    영화 ‘로키 ’의 존 아빌드센 감독 타계, 스탤론의 추모사는

    영화 ‘로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존 G 아빌드센이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아들 앤서니는 이날 부친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췌장암으로 타계했다며 “내 관점에서 부친은 아주 빼어난 남성이었다. 재능도 뛰어났고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세 손해도 많이 봤지만 때때로 이득이 될 때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영화 ‘가라데 키드’ ‘파워 오브 원’도 연출한 고인은 ‘언더독’을 유독 좋아해 할리우드의 제작 트렌드를 앞장 선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 유족으로는 3남1녀를 뒀다. 영화 ‘로키’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오스카 7개 부문 후보로 지명돼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유명 감독 프랭크 캐프라가 197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 영화를 봤을 때 ‘이것 봐라.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잖아’라고 말했다”고 고백한 일은 유명하다. 고인은 생전에 캐프라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았다.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는 각본을 쓰고 당시 다른 작품을 연출하고 있던 고인에게 메가폰을 맡긴 일화로 유명하다. 마침 그 영화의 제작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고인이 이 영화를 연출할 수 있었다. 지인이 보낸 각본을 읽던 고인은 나중에 “3페이지에 그 친구(로키)가 거북에게 말을 거는 대목에서 훅 낚였다”며 “위대한 캐릭터 연구 사례였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복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출하겠다고 작심했다. 제작에는 100만달러도 들지 않았고 28일 만에 완성했다. 고인은 “40~50명의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다들 끝내준다고 했다. 고무적이었다. 영화관 근처 골목에 줄이 형성된 것을 본 순간 대박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스탤론은 고인이 자신을 믿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난 모든 것을 고인에게 빚졌다. 그의 연출과 열정, 감각과 따듯함은 영화 ‘로키’가 만들어질 수 있게 했다”며 “그는 내 인생을 바꿨고 영원히 난 그에게 빚진 느낌을 가질 것이다. 내 친구가 해준 것보다 더 내게 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영상] 제25회 공초문학상 시상식…김후란 시인 수상

    [영상] 제25회 공초문학상 시상식…김후란 시인 수상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제25회 ‘공초(空超)문학상’ 시상식이 13일 오전 11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제25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는 김후란(82) 시인으로 수상작은 지난 2월 펴낸 시집 ‘고요함의 그늘에서’에 실린 ‘지는 꽃’이다. 시상식은 김영만 서울신문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근배 심사위원장의 심사평 및 추모사, 공초 시 낭송, 시상, 수상작 낭송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이번 공초문학상 수상작 ‘지는 꽃’은 공초 선생의 정신세계와 맞닿는 시일 뿐만 아니라 시에서 가장 중요한 말미 부분의 날렵한 반전과 결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후란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고요함의 그늘에서’에는 저 나름대로 삶의 진정성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세월이 침적된 깊은 숨결을 지닌 작품을 쓰려는 시인으로서의 고민이 담겼다”고 말했다. 공초문학상은 시인으로 살다간 공초 오상순 선생의 업적과 행적을 기리고자 지난 1992년에 제정됐다. 등단 20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지난 1993년 이후 매해 고은, 신경림, 정호승, 신달자 등 당대 걸출한 시인들을 수상자로 선정해왔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6·10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문 대통령이 정치분야에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숙단계에 올라섰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으로서의 민주주의’인 경제 민주화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본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새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경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키워드로는 ‘통합’을 제시했다. 지역과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이 전제되지 않고는 실질적 개혁과 진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의미가 기념사에 녹아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5·18 기념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 현충일 추념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천명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4·19 혁명부터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고,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경제 민주화’ 대신 ‘경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썼다. 10년 전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6·10 항쟁은 아직 절반의 승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30주년 기념사에서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따라 탄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혁명’으로 미완의 6월 항쟁이 완수됐다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고,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온 민주세력과 문재인 정부가 맥을 같이 함을 강조함으로써 새 정부의 정통성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보다 강조한 대목은 6월 항쟁이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며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실질적 민주화의 방향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압축 표현했다.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양대 요소인 △제도와 △실질적 내용에 있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진전을 가져오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후퇴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등 우리사회 시스템을 형성하는 핵심기관들과 제도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해나가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보다 무게를 둔 것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내용상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유지하기 함들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자리 문제를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꼽았다.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시스템을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며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6월 항쟁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저출산 문제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의 현실적 한계도 고백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바꿔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는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여전히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응축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룬 민주화 운동의 전통과 유산이 특정 지역만의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이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영·호남의 민주화 열사의 이름을 나란히 열거했다. 지난달 5·18 기념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전남대생 박관현, 노동자 표정두, 서울대생 조성만, 숭실대생 박래전’의 이름을 부르며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이들도 함께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유산이 특정 지역의 전유물일 수 없고 시민들이 지역의 틀을 넘어 연대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문 대통령 자신과 친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대통령 취임 한달] 경호원 장막 걷고 참모와 노타이 토론… 소통의 문 열었다

    [文대통령 취임 한달] 경호원 장막 걷고 참모와 노타이 토론… 소통의 문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 달은 ‘탈(脫)권위’와 ‘소통’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에게 대통령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알려줬다.●무릎 굽혀 꼬마와 눈높이 맞추고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대통령으로서의 첫 출근길을 지켜보러 나온 주민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통령은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춰 한 꼬마와 눈높이를 맞췄다.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안전펜스 너머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전임 대통령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11일 신임 수석비서관 등과의 오찬 자리에 들어설 때 양복 재킷을 벗는 것을 도우려는 청와대 직원에게 “제 옷은 제가 (벗을게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는 추모사를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가던 5·18 희생자의 딸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 주기도 했다. ●5·18 유족 스스럼없이 안아주기도 지난달 22일 휴가 중 모친이 살고 있는 부산 영도구로 이동할 때는 방탄 차량 대신 청와대 직원들과 25인승 미니버스를 탔다.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였다.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그동안 5부 요인들이 앉던 자리에 목함지뢰 사고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앉았다. 대통령은 청와대 기술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견학 온 방문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거나 차에서 내려 ‘폴더인사’를 했다는 목격담이 인터넷에 퍼지기도 했다. 참모진과 언론을 향한 적극적인 소통 노력도 주목받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첫 인선 발표를 포함해 한 달 동안 3번 춘추관을 찾았다. 지난달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선을 발표할 때는 사전에 약속하지 않았던 질문·답변 시간을 가졌다. 집무실을 참모진이 근무하는 여민관에 꾸리고 ‘노타이’ 차림의 대통령과 참모들이 직접 커피를 타 마시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낮은 경호 주문에 경호실은 곤혹 문 대통령이 ‘낮은 경호’, ‘열린 경호’를 주문해, 경호실장이 곤혹스러워할 정도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노무현 8주기 추도식] 1만5000명 최대 추모 열기… 1004마리 나비 날리기도

    관례 깨고 文대통령 4번째 소개 추모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측근 안희정·이광재 등 총집결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나비야 날아라.”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공식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그 어느 해보다 추모 열기로 뜨거웠다. ‘노무현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불과 2주 만에 열린 추도식에는 이른 아침부터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주최 측 추산으로 역대 최대인 1만 5000여명이 몰렸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날 추도식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과 오찬을 함께했다. 권 여사는 직접 육개장 300인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국회의장,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등도 식사를 함께했다. 오후 2시 공식 추도식에 맞춰 문 대통령이 사저를 나서자 지지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좌(左)희정 우(右)광재’라고 불릴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모습을 나타냈다.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추도식은 국민의례와 내빈 소개로 문을 열었다. 박 아나운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 여러분, 노무현재단 회원 여러분, 김해 봉하마을 주민들 그리고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추모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보통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서 내빈 소개를 할 때 대통령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게 관례이지만, 이날 문 대통령은 네 번째 순서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으며 임 전 국회의장의 추모사를 듣던 중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는 대목에서 손뼉을 치기도 했다. 또 1004마리의 함평 나비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순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상록수’가 울려 퍼지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문 대통령의 오른편에 앉은 권 여사는 추도식이 진행되는 내내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권 여사가 눈물을 멈추지 않자 문 대통령이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김 여사는 시인인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를 읽자, 검은 뿔테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노무현 대통령님도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 가운데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며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야 기분 좋다’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식을 마치고 봉하마을에 오던 날 연설 말미에 “정말 마음 놓고 한마디 하고자 한다”면서 외친 말이다. 건호씨는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오늘 같은 날엔 막걸리 한잔하자고 하셨을 것 같다”면서 “사무치게 뵙고 싶은 날이다”라고 했다. 이날 건호씨는 삭발한 모습으로 자리했다. 그는 추도사에 앞서 “정치적인 의사 표시나 사회에 대한 불만도 아니고 종교적인 의도도 아니다”라면서 “탈모가 여러 군데에서 일어나 방법이 없었다”고 운을 뗐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특별영상이 상영되자 추모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영상에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 제16대 대통령 취임사를 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참석자들은 지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추도식을 마치고서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추미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권 여사를 예방했다. 이날 추도식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인 노무현·문재인 지지자들은 정권 교체의 감격을 나누기도 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전의 추도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부산에서 온 최용호(52)씨는 “민주화의 꿈이 좌절됐다 풀리는 느낌으로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김해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서울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文대통령, 유가족 추모사에 눈물

    文대통령, 유가족 추모사에 눈물

    文대통령 기념사 23차례 박수… 역대 최대 1만여명 ‘눈물 바다’ 기념식 참석했던 50대男 쓰러져… 대통령 탄 차량, 구급차에 길 양보 자신이 태어나던 날 계엄군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37)씨는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장에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슬픈 생일’이란 제목의 편지를 낭독하다 눈물을 쏟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편지 낭독을 들으며 손수건으로 연방 눈가를 훔치다 김씨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벌떡 일어서 김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김씨는 대통령이 뒤따라온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선 고개를 돌렸고, 문 대통령은 흐느끼는 김씨의 손을 잡고 “울지 마세요. 아버지 묘역에 같이 참배하러 가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김씨를 가만히 끌어안아 다독였다.37년간 가슴 한편에 한을 묻고 살아온 광주 시민과 오월 영령에 문 대통령은 이렇게 위로를 건넸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문 대통령은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재평씨의 묘역을 찾아 “아버지는 숭고한 일을 하셨다. 그동안 혼자 찾아 뵙을 텐데, 힘든 일 다 극복하시라”고 유족들을 거듭 위로했다. 대통령과 포옹한 김씨는 “아빠 품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9년 만에 제창 형식으로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기념식장에 울려 퍼졌다. 문 대통령은 이 노래를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정세균 국회의장 등 내빈들의 손을 잡고 함께 불렀다. 제창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2007년 기념식 이후 처음이다. 시민들은 민주묘지 초입부터 도로변을 따라 ‘당신들의 희생정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은 노란 리본을 달았다. 노란 리본 물결 사이로 문 대통령이 입장하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차를 탄 채 행사장에 들어갔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민주의 문’ 앞에 내려 시민들과 교감하며 200~300m 떨어진 행사장까지 걸어서 입장했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기념식에는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정부, 여야 지도부, 5·18 유공자·유족, 세월호 가족 등 역대 최대 인원인 1만여명이 참석했고, 문 대통령이 기념 연설을 하는 동안 23차례 손뼉치며 환호했다. 기념사를 마치자 일부는 기립 박수를 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행사가 끝나고서 근처 식당에 들러 5·18 유가족들과 비빔밥을 먹었다. 배석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유가족들이 ‘한이 풀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광주시민들은 “지난 9년 동안 ‘일베’ 등 5·18을 폄훼하는 세력들이 판을 치면서 자존심에 멍이 들었다”면서 “새 대통령이 진상 규명을 약속하고,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넣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해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모(51)씨는 “문 대통령이 광주·전남 주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갔다”면서 “감성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통령을 가진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통령 참석 행사는 통상 출입증 역할을 하는 ‘비표’를 사전에 발급받아야 입장할 수 있지만, 이날 기념식은 비표 없이도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국민개방 행사로 치러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나중에 대통령이 (주영훈)경호실장에게 ‘오늘 경호하시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국민이 좋아하지 않으시던가요’라고 물으시더라”고 전했다. 한 50대 공무원은 “문 대통령이 유가족을 껴안는 모습을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면서 “기념식 중계가 끝나는 순간, 서울의 딸도 감격스럽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차명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면서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기념식에는 새 정부의 ‘통합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진보, 보수 단체 가리지 않고 자리를 함께했다. 공연행사에 참석한 예술가도 전국 17개 대학교수로 꾸렸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가수 전인권씨는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상록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했다. 한편 문 대통령 탑승 차량과 경호 차량은 기념식 후 이동하다 119구급차를 보고선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길을 양보해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구급차에는 5·18 기념식장을 빠져나오다 쓰러진 50대 남성 A(54)씨가 타고 있었다. A씨는 1980년 5월 계엄군에 연행돼 고문을 받고 풀려났지만,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다 이날도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양보로 A씨는 병원으로 무사히 옮겨져 안정을 취했다. 광주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서울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김소형씨 “대통령 품 아버지 같아 울었다”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김소형씨 “대통령 품 아버지 같아 울었다”

    오늘 5.18기념식에서 추모사를 읽은 광주민주화운동 유족 김소형씨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위로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김소형씨는 이날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5월 18일 자신의 생일, 그리고 3일 후인 21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막 태어난 딸을 두고 3일 만에 광주에서 희생됐다. 김소형씨는 “완도 수협을 다니던 아빠는 시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 저를 낳기 위해서 광주로 왔는데 길가에 계엄군이 총을 난사를 해서 유리창문을 솜이불로 가리려고 일어났는데 총탄이 창문으로 날아와서 하악골을 맞고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모사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오늘은 되게 대통령님이 말씀하실 때부터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또 앞에 유족 어머님들이 눈물을 훔치시고 계신 모습을 보니까 같이 눈물이 나왔던 것 같다”고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동안 제창되지 못하다 오늘 기념식에서 다시 불려진 것에 대해서도 “그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다. 유족들도 마찬가지로 함께 부르면서 한을 달랬던 노래고 그랬던 노래를 오늘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추모사를 읽고 퇴장할 때 문 대통령이 꼭 안아줬던 것에 대해서 김소형씨는 “전혀 몰랐다. 대통령님께서 나와서 안아주실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고,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멀리서 팔벌려서 오시는 모습을 보니까 그냥 목놓아서 울고 싶어서 저도 한동안 그렇게 기대고 울었던 것 같다”고 벅찬 마음을 전했다. 이어 그는 “같이 공감해 주고, 손 잡아주시면서 울지 말라고 해 주었고, 아빠 묘에 참배 가자고 말씀해 주시니까 너무 감동이었다”면서 “대통령님이 안아주셨을 때 꼭 아빠 품 같아서 정말 많이 울었다. 결혼식 때 손잡고 입장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서울포토] 눈물 흘리는 추미애…눈 감은 정우택

    [서울포토] 눈물 흘리는 추미애…눈 감은 정우택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가족의 추모사를 듣던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른쪽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광주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계룡건설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 별세

    계룡건설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 별세

    충청 지역 대표적 건설업체 계룡건설의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이 1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1931년 대전 동구 효평동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대전고와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때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제13·15대 국회의원(대전 대덕)을 지냈다. 이 명예회장은 1970년 계룡건설을 창립, 현재 전국 시공능력 평가 17위의 1등급 건설회사로 성장시켰다. 1992년에는 계룡장학재단을 설립, 1만 4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 명예회장은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과 일본 백제문화유적 탐사,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등을 진행했다. 유족으로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1남 8녀가 있다.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042)600-6660.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15일 오전 별세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15일 오전 별세

    계룡건설의 창업자 이인구 명예회장이 1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계룡건설은 충청권의 대표적 건설업체다. 이 명예회장은 1931년 대전시 동구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계룡건설을 창립해 현재 전국 시공능력 평가 17위의 1등급 건설회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제13·1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정에도 참여했다. 1992년에는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26년간 1만 400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줬다.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 삼학사비 중건, 일본 백제문화유적 탐사,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경로효친대상 제정, 유림공원 사생대회 등을 통해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유성구 봉명동에 5만 7400㎡ 규모의 ‘유림공원’을 조성, 대전시에 기부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복구활동, 대전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 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등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써 왔다. 유족으로 이승찬 계룡건설 사장 등 1남 8녀가 있으며,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5월 17일, 장지는 세종시 금남면 국곡리 선영. ☎ 042-600-6660, 070-4470-7110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어르신의 날 제정·어린이종합타운 건설…용산, 미래를 키운다

    [자치단체장 25시] 어르신의 날 제정·어린이종합타운 건설…용산, 미래를 키운다

    “두발자전거는 서 있으면 넘어집니다. 잘 굴러갈 때 페달을 더 힘차게 밟아야지요.” 성장현(62) 서울 용산구청장은 용산의 구정을 두발자전거에 빗대어 말했다. 최근 몇년 새 서울에서 가장 떠오른 자치구지만 방심한 순간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엿보인다. 그는 “주목받는 지역이다 보니 구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행정 수준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지역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고민을 6년째 하는데 여전히 재밌다”고 말했다. 그런 열정이 10년 전만 해도 ‘미군부대의 음습한 문화가 흘러나와 고인 동네’ 정도로 인식됐던 이태원 등 용산 전역을 바꿔놨다. 성 구청장은 19일 구청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구학적으로 볼 때 노인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면서 “이들이 살 만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남은 임기 동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으로부터 ‘잘나가는 동네’ 용산의 비결을 들어봤다. “우리 구청 앞에서는 장기간 하는 천막농성을 볼 수 없어요.” 성 구청장에게 “임기 동안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용산에 분쟁이 없다니 의외였다. 용산은 면적의 5%(101만 5859㎡)가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 중인 ‘개발의 도시’다. 돈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고 보통 다툼이 생긴다. 성 구청장은 “행정 처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나 구민과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려 한다”면서 “각자 불만이 있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많이 참고 양보한다”고 말했다.●“개발 속도보다 상생할 방법 찾는게 우선” 사실 용산은 개발 과정에서 악몽을 겪었다. 용산참사다. 2009년 1월, 재개발을 위한 철거에 반대하던 입주민과 경찰이 대치하다 불이 나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숨졌다. 이후 트라우마 속에 수년간 개발이 멈췄다. 참사 2년여 뒤 취임한 성 구청장은 “개발 속도도 중요하지만 각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상생할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깨달음 속에 성 구청장은 지역 분쟁의 중재자로 여러번 나섰다. 2012년 용산역 앞 집창촌 철거 당시 인근 포장마차들과 협의했던 게 대표적이다. 성 구청장은 “포장마차들은 무허가라 철거에 따른 보상을 해줄 근거가 없었다”면서 “대신 당장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부지에서 포장마차 25개가 3년간 영업할 수 있도록 해줘 분쟁을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각에서는 ‘포장마차 상인들이 약속과 달리 3년 뒤에도 안 나가고 버티면 어떡할 것이냐’고 우려했지만 상인들이 약속을 지켰다”면서 “신뢰한 덕에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산은 ‘청춘의 핫플레이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정주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노년층이 많다. 용산 구민 중 노인(65세 이상) 비율은 14.7%(3만 5900명)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4위다. 성 구청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어르신들의 편한 노후를 돕는 건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2014년 실버세대를 위해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어르신의 날’을 만들었다. 이듬해부터 매년 5월 용산가족공원에서 기념행사를 연다. 올해도 다음달 13일 행사를 연다. 성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1년 중 이날 하루만큼은 주인공이 돼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념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식사는 물론 치과·안과 등 건강검진, 미용 서비스 등 노인들이 바라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용산구는 미래 주역인 아동·청소년을 위한 정책 마련에도 적극적이다. 120억원을 투입해 원효로 옛 구청사 터에 짓는 어린이청소년종합타운이 대표적이다. 청소년상담지원센터와 원어민외국어교실, 도서관, 청소년문화의 집은 물론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장난감도서관 등을 갖추며 올해 11월 완공된다.공공 보육시설 늘리기도 성 구청장의 역점 사업이다. 그는 “수년 내 ‘인구절벽’(저출산 탓에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예상되는 만큼 저출산 대책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말했다. 용산구의 전체 어린이집 대비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은 19.4%(2016년 기준)다. 이를 3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문제는 돈이다. 구립어린이집 1곳을 새로 짓는데 20억~30억원이 든다. 성 구청장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용산구는 지난해 9월 성심여고 내 공간을 활용해 8억원만 들여 구립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올해에는 민간어린이집을 사들여 구립어린이집으로 바꾸는 등 5곳을 새로 문 열 계획이다.성 구청장은 매년 1월 간부급 공무원과 함께 효창원 의열사를 참배한다. 백범 김구 등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요인 7명의 영정이 안치된 곳이다. 그는 “용산 하면 ‘외국인이 많이 사는 이국적 동네’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아픔이 서린 시련의 땅”이라고 말했다. 성 구청장이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꾸준히 벌여온 이유다. 용산구는 내년 말까지 ‘이봉창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이 의사의 옛집 터인 효창동 118 인근에 조성되는 역사공원에 60㎡ 규모의 작은 기념관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성 구청장은 “이 의사가 자손이 없는 까닭에 다른 독립운동가처럼 추모사업이 활발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고향인 용산에서라도 나서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15년 9월에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했다.●전국 첫 국가유공자 우선주차제 도입 추진 성 구청장은 또 전국 최초로 ‘국가유공자 우선주차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는 “나라를 위해 팔다리를 바치기도 한 유공자를 일상에서 예우할 다양한 제도가 필요하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용산구는 조례를 만들어 오는 7월부터 주차규모 100대 이상인 공영·부설주차장의 주차공간 중 1%를 유공자 우선주차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이태원 축제 등 활용… 동남아 관광객 유치 총력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용산은 올해 호재와 악재를 두루 안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객실(1730개)을 갖춘 용산관광호텔이 9월 문 여는 건 호재다. 하지만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노골화하면서 관광시장 큰손인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사라져 고민이 커졌다. 성 구청장은 대신 무슬림·동남아 관광객을 매혹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을 짰다. 그는 “한남동 이슬람사원에는 금요예배 때마다 무슬림 1500명이 모여든다. 자연스럽게 음식점과 여행사, 무역사무실 등이 밀집한 이슬람거리도 생겼다”면서 “이곳을 찾는 무슬림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 재방문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지구촌축제와 베트남 퀴논거리, 세계음식거리 등을 활용해 동남아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성 구청장은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정치인이다. 25세 때 신민당에 가입한 뒤 1991년부터 8년간 용산구의회 의원을 거쳐 3선 구청장이 됐다. 30년 가까이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이기에 올해 초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지켜보며 생각이 복잡했을 법했다. 그는 “기초지자체를 이끌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치적이나 명예를 위해 조급증을 내며 억지 부리면 반드시 탈이 나고, 일 처리할 때 반드시 주권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대통령 탄핵 탓에 중앙정부가 흔들렸는데도 시민들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었던 건 지방정부가 튼튼하게 뿌리내린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개헌 논의할 때 무늬만 지방자치가 아닌 실질적 자치가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文 “2기 특조위 구성” 安 “진실 밝히자”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은 16일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년, 기억식’에는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4당 대선 후보들이 참석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주요 5당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불참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추모사에서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그저 세월호를 덮으려 했고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세월호를 지우려 했다”면서 “그러나 정권 교체로 들어설 새 정부는 다르다. 끝까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는 곧바로 제2기 특조위를 구성해 모든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면서 “국회에서 법 통과가 안 돼도 대통령 권한으로 특조위를 재가동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추모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일에 국민 모두가 끝까지 함께 나서야 한다”면서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반드시 책임지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로 순직에서 제외된 김초원·이지혜 교사를 순직으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추모사에서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분노, 부끄러움을 남겼다”면서 “하루속히 미수습자들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사유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대통령 탄핵 사유는 세월호”라면서 “세월호를 외면하고는 대한민국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홍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정치권에서 세월호 사건을 얼마나 많이 울궈(우려) 먹었느냐”면서 “정치권 인사들이 거기서 얼쩡대며 정치에 이용하려는 행동은 더는 안 했으면 하기에 저는 안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세월호 진상규명 끝까지 힘 보탤 것”

    “세월호 진상규명 끝까지 힘 보탤 것”

    “잠시 잊고 지냈다” 미안함 토로 안산 ‘기억식’에 2만여명 참석 고교생 같은 반 전원 분향도 미수습자 가족 “함께해 달라”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수많은 시민이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를 추모했다. 3년간의 외로운 싸움 끝에 세월호 선체를 뭍에서 만나게 된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잠시나마 참사를 잊고 지냈다며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끝날 때까지 힘을 보태겠다는 이들도 꽤 만날 수 있었다.이날 오후 3시 경기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4·16가족협의회, 안산시, 안산지역 준비위원회의 주관으로 ‘기억식’이 열렸다. 5000개의 좌석이 마련됐지만 2만여명(주최측 주장·경찰 추산 8000명)의 추모객이 모여들면서 많은 시민들이 바닥에 앉아 함께 추모했다. 유준희(32·여)씨는 “유가족이 그들을 비난해 온 소수의 목소리에 상처받지 않기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으니까 외로워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안산시교육청에 마련된 ‘4·16단원고 기억교실’에는 1000명이 훌쩍 넘는 추모객이 찾았다. 평소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학생들의 사진이 담긴 앨범과 유가족의 글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서지연(45·여)씨는 “아파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유가족에게 우리 사회가 진상 규명의 짐까지 떠넘긴 것 같아 죄송하다”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매월 16일에 동네 주민들과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직장인 하모(28)씨는 “분열을 조장한다고 세월호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를 봤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았는데 인양도 됐으니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한다”는 소망을 남겼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분향소에도 추모객의 줄이 이어졌다.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 교복을 입은 학생,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을 달거나 시민단체들이 나눠 준 노란 풍선을 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전재인(24)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해서라도 진실이 오롯이 밝혀져야 한다. 책임자가 처벌받을 때까지 유가족과 함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인천생활과학고 조리학과 1학년 2반 학생 전원(11명)이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이 학교 학생 강근화(17)양은 “아직 밝혀져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국민 모두가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다”며 “매년 4월 16일을 잊지 않고 유가족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승희(46·여)씨는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미수습자 모두가 돌아올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이웃이 되겠다”고 말했다. 신주희(20·여)씨는 “참사를 겪어 보지도 않고 유가족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비정하다. 끝까지 힘내시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전남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서는 미수습자 가족과 진도 군민 등 1000여명이 추모식을 진행했다. 미수습자 다윤(단원고)양의 아버지 허홍환씨는 추모사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와 함께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에도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들이 모였다. 김승수(15)군은 “막상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강신 기자 xin@seoul.co.kr 서울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진도·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초·중·고 16일까지 세월호 추모 기간

    교육부는 11일 세월호 참사 3주년을 맞아 이날부터 오는 16일까지를 전국 초·중·고교 추모 기간으로 정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학교들은 이에 따라 세월호 3주년과 관련한 학교별 추모 행사와 희생자에 대한 애도 시간을 갖는다. 학생 안전문화를 확산하는 내용의 계기교육도 시행한다. 교육부도 이날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 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세월호 사고 3주년 추모 행사를 했다. 추모 행사는 묵념에 이어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추모사 낭독,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의 안전 주제 강의 등으로 진행됐다. 행사 뒤에는 장차관 등 주요 간부가 심폐소생술 실습 교육에 참여했다. 이 부총리는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 안심하는 학교가 되도록 온 힘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각 교육청도 16일까지를 자체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4·16 추모 특강, 세월호 추모지 방문, 학생 안전체험 교육, 안전 관련 전문가 세미나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연다. 경기도교육청은 12일 남부청사 정원에 ‘4·16 세월호 참사 추모 조형물’을 설치하고 14일에는 ‘0416 우체통’ 추모의 글 남기기, 추념식 등을 하는 ‘노란 리본의 날’ 행사를 진행한다. 서울시교육청도 추모 기간에 전 직원이 노란 리본 배지를 착용하도록 하고 추모 묵념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13일에는 교육감 이하 간부공무원 10여명이 세월호 추모지인 목포신항을 방문해 분향소에서 분향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교육부, 세월호 3주기 추모행사…초·중·고교 16일까지 추모기간

    교육부, 세월호 3주기 추모행사…초·중·고교 16일까지 추모기간

    교육부는 세월호 3주기를 앞둔 11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전 직원이 참여하는 추모행사를 연다. 교육부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미수습자 9명이 조속히 돌아오길 바라는 취지로 이번 추모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추모행사는 추모 묵념에 이어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추모사 낭독,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의 안전 주제 강의 등으로 진행된다. 행사 후에는 장·차관 등 주요 간부가 심폐소생술 실습 교육에 참여한다. 교육부는 또 11일부터 세월호 3주기 당일인 16일까지를 전국 초·중·고교 추모기간으로 정해 운영한다. 이에 따라 각 학교에서는 학교 실정에 맞게 세월호 3주기와 관련한 추모행사와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고, 학생 안전문화를 확산하는 내용의 계기교육을 하게 된다. 이준식 부총리는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 안심하는 학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 48주기 추모재, 12일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 48주기 추모재, 12일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의 추모재가 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민족사에서 치욕이었던 일제강점기속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운암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운암 김성숙선생 서거 제48주기 추모재’를 개최한다. 이번 추모재에서는 유족, 관련단체장,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하며 개식, 국민의례, 운암 김성숙 선생 약사보고, 내빈추모사, 합창단 추모곡, 헌화 및 분향, 조총발사 및 묵념, 그리고 운암 김성숙 선생 묘소 참배 순서로 진행되며 부천 석왕사합창단, 역사어린이합창단,국방부의장대, 국방부 군악대가 참여한다. 특히 정세균 국회의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 이경근 서울보훈지청장,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기식 상산김씨대종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기념사업회에 전달한 추도사에서 “운암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싸우던 분열된 독립운동 통합을 위해 애썼고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독재를 극복하고 통일국가의 초석을 놓으셨다”라고 밝혔다. 한편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났으며 19세에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출가했으며, 1919년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뿌려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운암선생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투쟁을 조정하시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도 활동한 선생은 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서 통일을 위해 헌신했으며, 신민당 창당의 주축으로 지도위원을 맡아 활동하시다 1969년 4월 12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민성진 기념사업회 회장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시며 항일독립운동을 앞장서시고, 해방 후 정치가로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되는 인물이시다”라면서 “운암 선생의 재평가와 함께 2017년에는 선생께서 주창하시던 평화통일의 초석을 다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7주기 추모식…“명예와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

    천안함 7주기 추모식…“명예와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

    천안함 7주기를 맞아 용사 추모식이 26일 열렸다. 해군 2함대사령관 부석종 소장은 이날 오후 ‘7주기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통해 “천안함 용사들의 명예와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적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서린 전우들의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이 애절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당시 천안함 승조원·천안함 재단·국가보훈처 관계자·공재광 평택시장 등 400여 명과 독수리(FE) 훈련을 함께 한 미 육군 2사단과 해군 15전대 소속 장병들이 참석했다. 유가족들은 헌화와 분향을 할 때 아들의 사진을 쳐다보며 울먹였다. 천안함 전시실에 마련된 추모벽화에는 “사랑한다 아들아, 많이 보고 싶다,3월이 되면 너무 보고 싶다”는 등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용사들의 희생을 통해 튼튼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추모식에 참석한 천안함 생존 장병 정다운 대위(해군본부 정훈공보실 근무)는 “7년 전 천안함 전우들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며 “전우들이 목숨 바쳐 사수한 NLL을 우리가 반드시 사수하겠다”고 말했다. 정 대위는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휴전상태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며 “북한이 끊임없이 도발하고 군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꼭 알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모식은 ▲전사자에 대한 묵념 ▲작전 경과보고 ▲헌화 및 분향 ▲함대사령관 추모사 ▲NLL 수호 결의문 제창 순으로 30여분 만에 끝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의회 김용석의원 “세월호 참사 추모사업 서울시 지원 추진”

    서울시의회 김용석의원 “세월호 참사 추모사업 서울시 지원 추진”

    서울시의회 김용석 의원(더불어민주당․도봉1)은 24일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사업 시행을 골자로 하는「서울특별시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번 조례안은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서울시장이 희생자 추모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고, 추모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존엄에 대한 시민의식 함양과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례안의 주요내용은 ▲ 서울시장의 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시책 마련 ▲ 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계획 수립·시행 ▲ 희생자 추모공간 조성·운영 등 다양한 추모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김용석 의원은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그 동안 서울시는 ▲사망자 장례 및 유족과 구조자(환자) 및 가족에 대한 현장지원 ▲ 긴급복지지원 및 긴급생계비지원 ▲수색구조 ▲분향소 운영 ▲세월호 기억공간 ▲세월호 천막 지원 등으로 2015년까지 13억원을 지원했으나, 2016년부터는 예산 지원내역은 전무한 상황이다”라고 지적하고,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세월호가 온전히 인양되고, 세월호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서울시가 추모사업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본 조례안을 발의하게 되었다”라고 대표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김 의원은 “광화문광장 분향소 등 추모공간은 세월호참사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철거되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하고 “서울시가 조례 제정을 계기로 더 다양한 방법과 공간에서 추모사업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의원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하고 “세월호참사 발생 1073일만에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가 온 국민들의 바람대로 무사히 인양되고, 아홉 분의 미수습자들이 하루속히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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