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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구리 소년 ’실종 30년… 대구 사건 현장에 추모비

    ‘개구리 소년 ’실종 30년… 대구 사건 현장에 추모비

    30년 전 실종된 ‘대구 개구리소년’의 추모비가 사건 발생 현장에 세워진다. 대구시는 다음달 26일 달서구 성서 와룡산 선원공원에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를 설치한다고 24일 밝혔다. 추모·기원비는 5명의 실종 아동을 추모하고 고령의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설치된다. 또 어린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가로 3.5m, 세로 1.3m, 높이 2m 크기로 화강석을 이용해 만들었다. ‘자유롭게 날아가라’는 뜻을 형상화해 어머니 품에 안긴 새와 꽃바구니의 모습으로 제작됐다. 시 관계자는 “추모·기원비의 설치 장소와 디자인은 유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결정했다”며 “실종 아동들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대구 성서초등학교 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도롱뇽 알이 개구리로 와전되면서 개구리소년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자식을 잃고 큰 고통의 세월을 지내 온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아이들과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대구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60년 만에 충남과 다리 놓여요”…금산군 방우리 소원 풀렸다

    “60년 만에 충남과 다리 놓여요”…금산군 방우리 소원 풀렸다

    “충남에 편입된지 60년 만에 그 쪽으로 다리가 놓여요. 지금은 전북 무주를 거쳐 금산으로 가거든요”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이장 설광석(70)씨는 “마을 아이들이 무주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고, 지금도 무주 5일장에 장 보러 가지만 부리면사무소 등 금산에 볼일이 있으면 무조건 무주를 거쳐 돌아가 어지간히 불편한 게 아니다”며 이 같이 말했다.28일 금산군에 따르면 2022년 말 방우리와 수통리를 잇는 교량이 건설된다. 이 다리가 만들어지면 수통리까지 2.62㎞ 도로를 거쳐 곧바로 금산에 갈 수가 있다. 교량은 두 개로 길이 180m와 150m짜리다. 폭이 모두 5m로 상당히 좁다. 안한빈 군 주무관은 “관광버스 등 대형차를 막고 마을버스만 갈 수 있도록 폭을 좁혔다. 교량이 모두 잠수교인데 어류를 보호하고 사업비도 줄이려는 차원”이라며 “금산이 1963년 11월 전북에서 충남으로 편입된지 60년 만에 연결 교량이 놓이는 것”이라고 했다. 교량 건설이 번번이 무산된 것은 환경 문제였다. 방우리 앞 금강 상류에는 수달, 쉬리, 감돌고기, 수리부엉이, 돌상어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한다. 습지도 있어 생태계가 매우 우수하다. 마을 뒤는 절벽으로 이뤄진 산이어서 방우리를 ‘금산의 섬’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10㎞ 거리인 금산읍 등을 곧장 가지 못하고 무주로 돌아 4배쯤 더 멀리 돌아가는 불편을 겪는 실정이다. 안 주무관은 “10년 전 4대강사업 때도 금산 연결 교량건설 계획이 있었는데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환경단체를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내년 봄 공사를 시작할 때는 이 물고기들을 상류로 옮겨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주로 가는 교량이 건설되기 전에는 배를 타고 무주를 갔다. 1976년 6월에 배가 전복돼 방우리와 무주군 내도리 주민 18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대부분이 무주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무주군 내도리에 모윤숙 시인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설씨는 “가을에 나락(벼)을, 여름에 보리를 뱃삯으로 줬다”면서 “대선 때 투표장 가기 불편해 안 가니까 도지사까지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농지에 강물을 대려고 산에 굴을 뚫는 이야기를 담은 1963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쌀’의 배경이 될 정도로 오지다. 그나마 한 때 50 가구에 이르던 주민도 20 가구, 30명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논농사, 인삼, 고추 등 농사로 생계를 잇는다. 주민들은 강에서 다슬기, 빠가사리를 잡을 수 있는 어업권이 허가돼 소득이 높아지길 바라고 있다. 설씨는 “무주가 생활권이고 전북 지역번호 전화를 쓰지만 금산 길이 생기면 비로소 충남 주민이 되는 것”이라고 기뻐했다.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연평도 10주기 맞아 평화 염원 상징물

    연평도 10주기 맞아 평화 염원 상징물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맞아 남북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상징물이 22일 설치됐다. 서해5도평화운동본부는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맞아 가로 7m, 세로 14m 규모의 한반도 모양의 평화 상징물을 설치했다. 연평도 함상공원에 자리한 이 상징물에는 ‘서해 평화 한반도 평화’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도 함께 있다. 서해5도평화운동본부는 연평도에서 평화순례 행사도 열었다. 이날 행사는 시민 10여명이 함께 연평도 포격전 위령탑과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에서 헌화하고, 망향전망대에 올라 북측을 관측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박태원 서해5도평화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서해5도, 특히 연평도 주민들에게 평화는 생존이고 인권이며 자유”라며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맞아 서해 평화가 진척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와 주변 해상을 포격하면서 발발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이인영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평화 다시 설계합시다”(종합)

    이인영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평화 다시 설계합시다”(종합)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개소식“판문점 내 이산가족 상봉·자유왕래도 제안”“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척 만반의 준비”“연락 채널복원 희망”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으로 지난해 10월 중단됐던 판문점 견학이 4일 재개됐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 열린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개소식 현장에서 “미국의 대선 결과가 새로운 (한반도) 정세의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상황이 되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착실하게 진척시켜나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미 대선 이후의 한반도 정세 전망’을 묻는 취지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남북관계 또한 변곡점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관은 “북한이 10월 10일 당 창건 행사, 11월 3일 미국 대선,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 등 이런 큰 정치 일정을 통해서 현상을 변동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런 측면들에 주목하면서 (정부는) 지금까지 대처해왔고, 아직까지는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파국으로 몰고가는 것보다는 개선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 장관은 “평화를 향한 ‘세 가지 작은 걸음’을 내딛자는 제안을 하며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기를 소망한다”면서 세 가지 제안 중 하나로 연락 채널 복원을 언급했다. 이 장관은 “지금은 응답하지 않는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의 통신이 복구되기를 바란다”면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빠른 시간 안에 반드시 복원되고, 재가동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시 소통 채널을 마련하는 것은 남북관계 복원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문점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과 판문점 내 남북의 자유 왕래도 제안했다. 이 장관은 “판문점은 9·19 군사합의가 지켜지고 있는 합의 이행의 현장”이라면서 “지금 남북의 시간은 잠시 멈춰 있고 신뢰와 관계복원을 위한 과제들도 남겨두고 있지만, 판문점은 ‘작은 평화’의 시작이자 ‘큰 평화’를 열망하는 희망의 근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측 주민들을 향해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이라고 칭하고 “이 길을 따라 더 큰 왕래로 갑시다. 남과 북이 새로운 평화의 시간을 다시 설계해 나갑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 장관은 “(당장에) 완연하게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니다. 두 가지 측면들을 다 보면서 최선을 다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의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이 미 대선 이후 방미를 추진 중이라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지난해 10월 중단됐던 ‘판문점 견학’ 오늘 시범 견학 통일부는 이날 판문점 견학 지원센터 개소식에 이어 일반 시민과 취재진 등으로 구성된 시범견학단 80여 명을 대상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견학 참가자들은 자유의 집→T2(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2018년 남북 정상의 기념 식수 현장→도보다리→고 장명기 상병 추모비 순서로 둘러본다. 견학은 지난해에는 하루 4차례, 회당 80명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에 13개월 만에 재개되면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루 2차례, 회당 40명으로 줄었다. 11월 한 달간 당초 닷새만 견학을 진행하려 했지만, 신청 당일에 예정된 인원(400명)이 모두 마감되는 등 관심이 높아 엿새를 추가했다. 추가 모집한 480명에 대한 접수도 2∼3일 만에 마감됐다. 한편 견학은 엄격한 방역 조치 속에 이뤄진다. 음식물 반입이나 견학코스 내 흙이나 돌의 반출은 금지되며, 안내소와 견학관을 비롯한 견학 장소들에는 방역 매트와 대인 소독기, 체온계, 손 소독제, 마스크 등 방역 물품도 배치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춘천 의암호 희생자 ‘추모 나무’ 심는다

    강원 춘천시가 의암호 선박사고로 희생된 공무원과 기간제 근로자들을 위해 ‘추모 나무’를 심는다. 춘천시는 지난 8월 6일 의암호 선박사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시청 광장에 추모나무를 심고 추모비와 쉼터를 조성한다고 2일 밝혔다. 추모행사는 오는 4일 오후 1시 20분 시청 광장에서 이뤄지며 사고로 숨지거나 실종된 기간제 근로자 3명과 공무원 1명 등 4명을 기리는 소나무를 추모수로 심는다. 묵념과 취지설명을 시작으로 추모수 가족시삽, 이름표 달기, 추모비 제막, 쉼터 설치 순으로 열린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영웅 위한 비행

    영웅 위한 비행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상공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오는 27일 열리는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 추모비행을 위한 사전 연습을 하고 있다. 이 추모행사는 6·25전쟁 70주년과 장진호 전투 7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판문점 견학 가능” 통일부에...野 “왜 민심에 역주행만”(종합)

    “판문점 견학 가능” 통일부에...野 “왜 민심에 역주행만”(종합)

    오는 20일부터 온라인 신청…1일 80명통일부 “DMZ 평화의 길 개방 확대 노력” 정부가 전염병 방역 차원에서 잠정 중단했던 판문점 견학을 다음달 4일부터 소규모로 재개하고, 개인·가족 단위도 판문점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 야당은 이와 관련 “정부·여당은 왜 민심에 역주행만 거듭하느냐”고 비판했다. 19일 통일부에 따르면 판문점 견학은 오는 11월4일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개소식 및 시범견학 이후 6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시범견학단은 일반 국민을 포함한 80여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견학을 신청한 국민들은 임진각 판문점 견학 안내소에서 집결하고 신원 확인 및 방역 조치를 거친 뒤 JSA(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로 이동한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났던 판문점 자유의 집을 비롯해 군정위 회의실(T2), 기념 식수 장소, 도보다리, 장명기 상병 추모비 순으로 이동하며 판문점을 돌아보게 된다. 견학을 희망하는 국민들은 신설된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누리집(www.panmuntour.go.kr)을 통해 오는 20일 오전10시부터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과거에는 단체 단위(30~40명) 견학만 허용됐다. 이제는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를 통해 개인·가족 단위(최대 5명)로도 자유롭게 신청이 가능해졌다. 견학 신청 기간도 최소 60일 전에 이뤄져야 했지만 2주 전으로 대폭 줄었고, 견학 신청 가능 연령도 만 10세 이상에서 만 8세 이상으로 낮아진다.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견학 규모와 횟수는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종전 1일 4회, 회당 80명(버스 2대)이었지만 1일 2회, 회당 40명(버스 2대)으로 축소 운영하고 방역 상황을 살피며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 통일부는 판문점 견학 중단 기간 동안 이용객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신청 창구를 일원화하고 신청 단위, 기간, 연령 제한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돼지 열병·코로나로 중단…1년 만에 재개 판문점 견학은 지난해 10월 경기 지역에 ASF가 발생함에 따라 중단됐고 올해 1월 코로나19(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상황이 겹쳐 중단된 지 1년여 만에 재개된다. 정부는 지난 6월 판문점 견학을 재개하기 위해 준비해 왔지만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따라 추진을 잠시 미룬 바 있다. 판문점이 있는 경기도 파주 지역은 지난 6월 이후 ASF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 코로나19 방역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현장에 체온계,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시설과 차량에 대해 정기적으로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견학 과정에서 발열 점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도 철저히 준수할 방침이다. 정부는 새로운 체계의 판문점 견학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합의한 대로 판문점의 비무장화와 자유 왕래를 실현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아직까지 북측과 합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우리 측과 유엔사 간에는 관련 협의를 계속 해오고 있다”며 “판문점을 시작으로 ‘DMZ 평화의 길’ 개방 확대 등 비무장지대(DMZ)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국민의힘 “판문점 견학, 北 조난자 사살에 우리는 다 열어” 국민의힘은 19일 코로나19와 공무원 피살 사태에도 오는 11월4일부터 판문점 견학을 재개하기로 한 것과 관련 “정부·여당은 왜 민심에 역주행만 거듭하느냐”고 비판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남북관계가 최악이며, 민심의 분노는 차오른다”며 “국민 혈세 180억원이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잿더미가 돼도 통일부는 배상요구조차 못했다. 우리 국민이 무참히 피살돼 소훼돼도 해경은 지금도 망망대해에서 수색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와중에 통일부는 판문점 견학을 내달부터 재개하겠다고 한다. (여당은) 우리 국민의 북한 주민 접촉 절차를 간소화하는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청와대의 종전선언 분위기 조성에 들러리로 나섰다”며 “북한이 코로나 방역 차원으로 조난자를 사살했다며 북한을 두둔하기에 급급했던 정부였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모두 열어젖히겠다고 한다.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진행 중이라고 하는 국제기구와 농민들의 염려도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방화벽을 넘으라고 독려하다 못해 허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배 대변인은 “국가의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헌법 전문부터 다시 읽고 국정에 임하라”고 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포토] 파란 하늘 수놓은 블랙이글스 곡예비행

    [포토] 파란 하늘 수놓은 블랙이글스 곡예비행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오는 27일 열리는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행사’의 추모비행을 위한 사전 연습을 하고 있다. 2020.10.19 연합뉴스
  • 녹아내린 빙하에서 76년 전 추락한 美 폭격기 모습 드러내

    녹아내린 빙하에서 76년 전 추락한 美 폭격기 모습 드러내

    기후 변화로 녹아내린 아이슬란드 빙하에서 76년 전 추락한 미국 폭격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23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아이슬란드 남부에 있는 에이야프야틀라이외쿠틀(Eyjafjallajökull) 빙하에서 미국 B-17 폭격기 잔해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1651m 높이의 에이야프야틀라이외쿠틀는 화산을 품은 빙하인 ‘빙모’(산 정상이나 고원을 덮은 돔 모양의 영구 빙설, 氷帽)로 아이슬란드에서 6번째로 큰 빙하다. 잔해는 아이슬란드전기인연합회 회장 출신인 그뷔드뮌뒤르 군나르손이 지난 12일 트래킹 도중 발견했다. 군나르손은 “에이야프야틀라이외쿠틀 등반 도중 1050m 지점에서 미군 폭격기를 발견했다. 프로펠러와 바퀴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체 일부는 물론 옷가지와 신발, 낙하산도 나왔다. B-17은 제2차세계대전 말기 맹활약한 미군 폭격기다. B-10 후계기로 개발돼 유럽 하늘을 누볐으나, 작전 중 30%가 격추됐을 만큼 완벽한 방어 수단은 아니었다. 군나르손 일행이 발견한 폭격기는 1944년 9월 16일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에서 재급유 후 영국으로 향하던 중 빙하에 부딪혀 추락했다. 열악한 기상조건 탓이었다.다행히 푹신한 눈 위에 떨어져 승무원 10명 모두 기적적으로 생존했으나 불이 붙은 폭격기는 얼음땅에 파묻혔다. 그달 말 미군이 사고 현장에서 잔해 일부를 회수했지만, 나머지는 얼음땅에 완전히 파묻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70년 넘는 세월 만년설에 묻혀 있던 폭격기는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현지언론은 2000년까지만 해도 300개 넘는 빙하가 있었던 아이슬란드는 지구온난화로 벌써 50개가 넘는 빙하가 녹아 없어졌다고 설명했다.특히 면적이 7700㎢에 달했던 아이슬란드 바트나이외퀴들에 있는 빙하는 30년 새 두께가 평균 20m 줄었다. 지난해에는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크예퀴들’(Okjokull) 빙하가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아 추모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취중생]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끝나지 않은 노근리의 비극

    [취중생]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끝나지 않은 노근리의 비극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2020년은 ‘노근리양민학살사건(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국내 미군 관련 학살 사건 중 한미 양국이 함께 진상조사에 나선 유일한 사건이자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유일한 미군 관련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가 중심이 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노근리에 70주년이란 특별한 숫자만큼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노근리 유족회 등이 주관하던 노근리 사건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도로 열리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노근리에 방문한 것입니다. 노근리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 정부가 드디어 노근리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씻을 수 없는 한국사의 비극…노근리 사건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마지막주 미군의 공중 폭격과 사격에 의해 한국 민간인 수백명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만 226명(사망자 150명, 행방불명자 13명, 후유장애인 63명)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1994년 사건의 피해자인 정은용(2014년 사망)씨가 펴낸 장편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정씨의 소설을 읽은 미국 AP통신 기자가 1999년 이를 특종 보도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노근리 사건을 주목하게 됐습니다. 미국 언론들이 연일 노근리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루자 미국 정부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내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진상규명을 지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움직이자 뒤이어 한국 정부도 뒤늦게 진상규명에 나섰습니다. 2001년 1월 12일 한미 양국은 드디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에서 미군이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 입힌 사실은 인정하나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하진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이 직접 민간인 학살을 인정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지만 미국이 학살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성과는 절반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날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표명 성명서와 함께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서에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희생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총 400만 달러 규모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마치 노근리 피해자들이 미국의 사과를 받고, 보상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러나 노근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교묘히 적은 추모비와 장학금의 대상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국전쟁 동안 사망한 모든 민간인(all other innocent Korean civilians killed during the war)’을 대상으로 적었습니다. 노근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노근리 사건 하나로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모든 미군 관련 사건을 해결하고 끝내겠다는 뜻입니다. 정은용 씨의 아들인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노근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노근리와 달리 진상조사조차 하지 못한 다른 미군 관련 사건 피해자들이 진상을 규명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됐을 것”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내놓은 400만 달러는 2006년 미국이 전부 다시 가져갔습니다.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는 무효” 정 이사장은 미국이 내놓은 대책이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의 뜻과는 다른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위안부 합의)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습니다. 같은해 12월 TF는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 접근을 결여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 보고서의 발표에 따라 입장문을 내고 “위안부 합의는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면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밝힙니다. 정 이사장은 노근리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미국이 내놓은 대책에도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피해자 중심 접근을 결여했다고 바라봤듯이 노근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과거사 소송 시효도 문제입니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지만 현재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2심 모두 패소하고 대법원에 계류하고 있습니다. 당시 법원은 노근리 사건의 시효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종료일인 2010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그러나 노근리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등장 이전부터 별개의 특별법에 따라 진상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노근리 사건 등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노력으로 선제적인 진상 조사가 시작된 과거사 사건들은 오히려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노근리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거창 사건)의 변호인이자 거창 사건의 유족인 임재인 변호사는 “국가가 과거사 소멸 시효를 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노근리 사건, 거창 사건 등 별개의 특별법이 있는 사건들이 소멸 시효가 모호해지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불을 붙여 다른 사건들이 진상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포문을 연 사건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손해배상에 난항을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책임 외면해온 한국 정부…학살 70년만에 노근리에 첫 발 노근리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 국가는 미국이지만 한국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노근리 사건을 포함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은 1950년 7월 26일 미8군이 내렸던 “언제 어떠한 피난민도 방어선을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피난민 소개 및 이동 통제에 관한 지침이 배경이 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침은 전날인 7월 25일 임시 수도였던 대구에서 한국 정부, 미 대사관, 국립경찰, 유엔, 미8군 대표자들이 모여 개최한 회의에서 결정됐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 초기 피난민을 통제할 책임이 있는 한국 정부가 피난민 통제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 한 책임도 있습니다.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동안 노근리 사건을 외면해 왔습니다. 노근리 사건이 미군 관련 사건으로 유감 표명을 받은, 한국 역사상 의미가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미국의 눈치를 보기 바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4년 제정된 노근리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고, 주관 부처는 행정안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위원장인 국무총리나, 행안부 장관 누구도 노근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노근리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년 노근리 유족회 등이 주관하던 노근리 사건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열리고 진영 행안부 장관이 노근리에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충북 영동 노근리평화공원에서 노근리 70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진 장관과 더불어 이시종 충북지사, 박세복 영동군수, 양해찬 노근리 유족회장 등 100여명이 함께했습니다. 진 장관은 추모사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 오신 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번 희생자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코로나19로 행사는 축소됐지만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4세로 별세…‘할리우드 황금기’ 마지막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젊은 시절

    104세로 별세…‘할리우드 황금기’ 마지막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젊은 시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사랑을 받았던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10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드 하빌랜드의 홍보 담당자인 리사 골드버그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이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104세로 세상을 떠난 드 하빌랜드는그동안 ‘할리우드 황금기’의 여배우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평가돼왔었다.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그녀는 3살 때 부모가 이혼한 이후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드 하빌랜드는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눈에 띄어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성격을 지닌 멜라니 역을 소화해 큰 호평을 받았다. 1949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는 제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 제2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드 하빌랜드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에 출연했던 고(故) 조앤 폰테인(2013년 별세)으로, 자매가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록을 세웠지만 사이가 나빠 의절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장례식은 비공개로 진행되며 추모비는 파리에 있는 아메리칸 대성당에 기부될 예정이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옆구리 총탄 자국도 70년째”… 과거사 해결에 시효는 없다

    “옆구리 총탄 자국도 70년째”… 과거사 해결에 시효는 없다

    “올해 95세이신 우리 어머니의 팔꿈치와 옆구리엔 지금도 총탄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아들과 딸을 잃은 한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입니다. 많은 사람이 전쟁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피해자들의 상처는 그대로입니다. 고난의 역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정구도 노근리평화재단 이사장)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딱 한 달이 되던 1950년 7월 25일, 충북 영동읍 임계리에 모인 인근 주민 500~600명은 미군의 지시에 따라 남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주민들은 남한을 도우러 왔다는 미군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날 밤 비극은 시작됐다. 소변을 보겠다고 일어나기만 해도 미군은 머리에 총을 쐈다. 그렇게 7명이 죽었다. 다음날 피난민들을 이끌던 미군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피난민들은 남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서송원리쯤에 이르자 사라졌던 미군이 나타났다. 미군들은 피난짐 속에 혹 무기가 없는지 몸수색을 했다. 그리고 피난민의 행렬을 국도가 아닌 경부선 철도로 바꾸게 했다. 다시 미군은 사라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공중에서 폭격을 퍼부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근처 노근리 쌍굴 안으로 도망쳤다. 이때부터 29일 새벽까지 약 70시간 동안 미군은 쌍굴 안으로 기관총을 쏘고, 심지어는 박격포도 쐈다.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일어난 이 사건은 ‘노근리양민학살사건’(노근리 사건)이라 불린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만 226명으로 이 중 70% 이상이 여성과 아이들이다. 피해자였던 정은용(2014년 사망)씨가 1994년 펴낸 장편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정씨의 소설을 읽은 AP통신 기자가 이를 특종 보도하면서 전 세계가 노근리 사건을 알게 됐다. 노근리 사건은 한미 양국이 함께 진상조사에 나선 유일한 국내 미군 관련 학살사건이자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유일한 미군 관련 사건이다. 국내에서는 노근리 특별법(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도 제정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많은 과제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서울신문은 노근리 사건 70주년을 맞아 지난 20일 정씨의 아들이자 노근리 사건을 알리는 동료였던 정구도(65)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을 충북 영동 노근리평화공원에서 만났다.●피할 수 없는 한국 정부… 왜 외면하나 1999년 AP통신이 노근리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자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한국도 부랴부랴 진상규명에 나섰다. 하지만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대통령도, 국민의 정부를 이끈 김대중 대통령도 사건보다는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2001년 1월 12일 한미 양국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같은 날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표명 성명서와 함께 대책을 발표했다. 추모비를 건립하고 희생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총합 400만 달러 규모였다.그러나 노근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명서에 표기된 추모비와 장학금의 대상 때문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 동안 고통을 당하고 사망한 모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주장했다. 노근리 사건 하나로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모든 미군 관련 사건을 해결하고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사건 중 미군 관련 사건만 368건이다. 정 이사장은 “노근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노근리와 달리 진상조사조차 하지 못한 다른 유사 사건 피해자들의 조사 기회도, 피해구제권리도 잃게 됐을 것”이라며 “그건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노근리에는 1달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 이사장은 가해 국가인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책임도 강조했다. 노근리 사건을 포함한 민간인 학살사건은 1950년 7월 26일 미8군이 내렸던 피난민 소개 및 이동 통제에 관한 지침이 배경이 됐다. “언제 어떠한 피난민도 방어선을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침은 전날인 7월 25일 임시 수도였던 대구에서 한국 정부, 미 대사관, 국립경찰, 유엔, 미8군 대표자들이 모여 개최한 회의에서 결정됐다.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노근리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다. 또 주관 부처는 행정안전부다. 정 이사장은 “위원장인 국무총리나 행안부 장관 그 누구도 지금까지 노근리를 찾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는 29일 열리는 노근리 사건 70주년 행사에도 국무총리가 방문해 주길 요청했으나 답을 주지 않았다. 노근리 피해자와 가족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5년 시작된 소송은 현재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2심 모두 패소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당시 법원은 과거사 관련 소송 청구 시효를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종료일인 2010년 6월 30일에서 3년 이내로 제한했다. 정 이사장은 “과거사 소송 대부분이 진상과는 상관없이 소멸 시효 때문에 패소했다”면서 “과거사 소멸 시효에 대해 국회와 법원 등이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평화·인권 현장이 된 노근리… 적극 교육해야 노근리 사건은 피해자가 중심이 돼 활동해 온 사건이다. 사건의 피해자였던 아버지는 문학으로, 전쟁 후 태어난 아들은 증거와 기록을 갖고 학문으로 쌓아올렸다. 미국 대통령의 이례적인 유감 표명까지 이끌어냈지만 한국에서 소외된 역사다. 과거사를 규명하는 이유에는 희생자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과거의 비극을 제대로 배우고 기억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연간 약 15만명이 찾는 역사 교육 현장이 됐다. 공원 내 교육관은 매년 1만 4000여명이 찾아와 평화·인권 교육을 받는다. 정 이사장은 “서대문형무소 같은 일제 침탈 장소에 찾아가 뼈아픈 역사를 다시 배우듯이 노근리평화공원도 다시는 고난의 역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후세 교육의 현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은 아직도 미군의 총탄이 박혀 있어 역사의 비극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국민이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미군 관련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이 노근리 사건을 소홀히 하는 사이 세계에서는 중요한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일본의 잘못에 대해선 국민적 공감대가 있고, 공분도 하지만 미국의 잘못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미국이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우리나라의 평화에 기여한 공만큼 그들의 과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영동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우리 동네 이거 알아?] 경리단길에서 유관순 열사를 만나다

    서울 망리단길과 송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인천 평리단길 등 전국 ‘~리단길’의 원조 이태원 경리단길은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경리단길에서 이태원까지 이어지는 골목을 걷다 보면 용산의 매력에 더욱 빠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 길 어딘가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은 이국적인 식당이나 이색적인 카페만은 아닙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대한민국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영면에 든 유관순 열사를 만나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가 세워진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입니다. 1919년 3ㆍ1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유관순 열사는 이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열사의 시신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된 후 유실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용산구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2015년 옛 묘지터가 잘 내려다보이는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에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역사공원 앞 도로는 유관순길이라고 이름을 지었고요. 열사의 순국일인 매년 9월 28일 추모제를 지내며 정신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19로 모두들 지쳐만 갑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의미 있는 나들이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5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답니다. 전 세계인이 모이는 문화관광의 중심지 이태원에서 역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을 추천합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름 가족, 그 폭력의 상흔

    그리움과 두려움의 이름 가족, 그 폭력의 상흔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냉전 세력이 벌인 갈등이자, 미국과 중국 간의 국제분쟁이기도 했다. 조금 더 시야를 좁혀 보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서로를 부정하는 두 정치세력이 각자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1950~1953년 민간인 학살이 200만명이나 된 배경은, 세력 간 교전이라는 관습적인 전쟁사의 시각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전쟁과 가족’은 이를 설명한다. 냉전체제 연구의 권위자로서 지난해 최고의 인류학자에게 수여하는 프랑스 레비스트로스상을 받은 그는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친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폭력이 가해졌는지, 그리고 이후 긴 세월 동안 어떻게 국가적 규율 행위의 핵심이 됐는지를 좇았다.해방 이후 양쪽에 각각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남한 정부는 계엄령으로 자신의 국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남한의 점령지에서 민족 해방의 대의를 내걸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린치를 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밀려난 뒤 일어난 일은 적군에 협조했다고 지목된 자들에 대한 응징이다. 한쪽의 공격에 대한 상대편의 보복이 반복되면서 양민을 향한 폭력은 규모와 정도가 심해지고, 폭력의 악순환으로 지역 공동체가 초토화됐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이념 때문에, 누군가는 그저 살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남으로 혹은 북으로 이동했다. 이산가족이 생겨났고, 이후에도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연대책임을 져야 했다. 이들은 헤어진 가족과의 결합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때문에 죄인 취급을 받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저자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족과 친족이 공적인 공간에서 해체되는 현상과 전혀 다른 일이 한국전쟁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사회학·인류학 담론이 ‘시비타스’(civitas·공민사회)와 ‘소시에타스’(societas·민간사회)를 구분하고, 현대의 정치에서는 가족과 친족이라는 환경이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고 가정해 온 관념을 반박한다. 한국전쟁에서 가족과 친족은 공적세계에서 독립해 존재하는 사적 영역도 아니었고, 공적세계에서 물러나 찾을 수 있는 온전한 은신처도 아니었다.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가리느라 급급했다고 역설한다. 연좌제가 폐지된 1980년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가족과 친족은 그리움이자 두려움·혐오의 대상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2003년 초 마을 위령비를 새롭게 완공한 제주 애월의 하귀리 사례를 들어, 공동체를 사회와 분리하는 근현대 세계의 경향을 이겨내고 한국에서 시비타스와 소시에타스가 겹쳐지는 놀라운 일이 이어진다고 봤다. 이곳은 4·3사건 당시 반란 진압작전에 동원돼 전사한 경찰과 반공청년단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서 있던 자리다. 자신의 가족과 마을에 폭력을 자행한 자들을 묻은 묘지와 추모비에 이를 바로잡는 위령비를 세운 이들을 통해 저자는 전쟁의 감춰진 상흔을 용기 있게 대면하는 노력을 유가족의 발언을 따 ‘소리 없는 혁명’으로 지칭한다. 어쩌면 우리는 고속성장이라는 그늘에 가려 억지로, 혹은 의도적으로 한국전쟁의 상처를 잊은 것은 아닐까. 참상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세대가 지나가는 지금, 저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였느냐?’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자치광장] 홍범도 장군, 효창공원에 잠들기를/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홍범도 장군, 효창공원에 잠들기를/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지난 16일 햇살이 따갑게 내려쬐던 여름 초입.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국회의원,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효창공원을 찾았다. 정확히는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삼의사 묘역과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터를 둘러본 것.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제101주년 행사에서 카자흐스탄에 안치돼 있는 홍범도 장군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7일 봉오동 전투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재차 강조했다. 문제는 유해를 모셔올 장소를 찾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 현충원에 더이상 묘역을 조성할 공간이 없어 대전 현충원까지 검토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 용산구는 우리나라 근현대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충혼의 도시다. 그중에서도 효창공원은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상징적인 면에서 국립묘지인 현충원과는 결이 다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은 물론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선생, 국무위원 조성환 선생(군무부장)·차리석 선생(비서장),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역, 안중근 의사 가묘가 있다. 용산구는 효창공원 의열사를 재정비하고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은 물론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한 역사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일환으로 2024년까지 서울시와 함께 효창공원을 효창독립 100년 공원으로 조성한다.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동시에 역사를 기억하고, 주민들이 일상의 휴식을 느낄 수 있도록 성소(聖所)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또한 용산구 관내에는 백범 김구기념관, 유관순 열사 추모비는 물론 1911년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勸業會) 초대 회장 최재형 선생의 기념사업회도 있다. 오는 10월이면 이봉창 의사 기념관도 문을 연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 1920년 항일독립전쟁 최초의 승리로 기억되는 봉오동 전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이끌었던 대한독립군의 정신을 계승해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그만큼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용산구는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효창공원에 안장할 것을 제안한다.
  • 6·25 참전 소년·소녀병도 국가유공자 되나

    6·25 참전 소년·소녀병도 국가유공자 되나

    강대식 의원 개정법안 대표발의재일학도병과 형평성 문제제기“헌신·희생에 합당한 예우해야”미래통합당 강대식(대구 동을) 의원이 6·25 전쟁 70주년을 앞두고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예우·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24일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국가유공자단체에 6·25 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를 추가하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단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6·25 전쟁 당시 병역의무대상이 아닌 17세 이하 소년·소녀들은 자원 또는 강제로 징·소집돼 대한민국 수호에 공헌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연령대인 재일학도의용군인의 경우 모두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있는 것에 비해 6·25 참전 소년·소녀병은 전사자·전상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강 의원이 발의한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은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해 보상 및 교육·취업·의료 지원 등에 있어 예우를 갖추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유공자단체법 개정안은 이들을 위한 위령제, 추모비 건립 등 보훈 활동을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강 의원은 “6·25 전쟁 당시 꽃다운 나이에 목숨 바친 소년·소녀병들이 백발의 노인이 다 됐고, 이제 2000여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21대 국회에서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야가 한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유공자법·국가유공자단체법 개정안에는 곽상도, 김상훈, 김승수, 김용판, 류성걸, 서정숙, 신원식, 양금희, 유의동, 윤재옥, 윤창현, 이명수, 이종배, 전주혜, 조수진, 조태용, 추경호, 홍석준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테러 맞서 스러진 英경관 추모비에 ‘실례한’ 남자 긴급 체포

    테러 맞서 스러진 英경관 추모비에 ‘실례한’ 남자 긴급 체포

    그냥 단순히 남자로서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을 흘린 것이 아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에 만들어진 경관 순직자 키스 팔머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 위에 몹쓸 짓을 대놓고 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일어난 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데 런던경시청은 다음날 문제의 남자를 출두하도록 한 뒤 체포해 현재 에식스에 구금하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혐의는 공중도덕법 모독(Outraging public decency)이다. 팔머 경사는 지난 2017년 3월 22일 웨스트민스터 테러 사건 때 칼리드 마수드가 휘두른 흉기에 애꿎은 목숨을 잃은 5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48세였던 팔머 순경은 무장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13일 문제의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자 바스 자비드 경위는 “우리도 한 남성이 팔머 경사 추모비에 방뇨를 하는 것 같은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것을 알고 있다. 팔머의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이 어떤 기분일지 느껴진다. 우리는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증거들을 모아 적절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팔머 순경이 흉기에 찔린 뒤 팔리아먼트 광장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구호 조치를 했던 토비아스 엘우드는 남성의 방뇨 사진이 “질색할 만했다”고 말했다.웨스트민스터 궁의 캐리지 게이트에는 추모석이 놓여 팔머 경사가 습격을 받았던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경찰 추모 트러스트 재단은 팔머 경사의 희생과 영웅정신을 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헝가리 유람선 참사 1년… 올해 말까지 희생자 25명 추모비 건립

    헝가리 유람선 참사 1년… 올해 말까지 희생자 25명 추모비 건립

    가해 선장 2차 사전재판 9월 이후로 연기 1년 전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사고로 숨진 한국인 희생자 25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건립된다. 26일(현지시간)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사고 1년이 되는 오는 29일 충돌 현장인 부다페스트 머르기트 다리 인근 선착장에서 추모식을 연다. 최규식 주헝가리대사, 시야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 커러초니 게르게이 부다페스트시장, 현지 취재진 등 30여명이 참석한다. 사고 유람선인 ‘허블레아니’호를 운영했던 선사 ‘퍼노라머 데츠크’도 별도로 추모식을 연다. 헝가리 정부와 부다페스트시 당국이 사고 직후부터 건립 비용을 대겠다며 제안했던 추모비도 올해 내에 세운다. 본래 29일까지 추모비 사업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추모비 모양, 크기, 문구 등은 현재 논의 중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사고 당시 수습하지 못한 마지막 실종자 1명을 찾기 위해 현지 최대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사고 발생 시점부터 2개월간 한국과 헝가리 당국이 합동수색을 벌였고, 이후 헝가리 측은 일상적 순찰로 전환해 현재까지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가해 선박인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허블레아니호에는 한국인 관광객과 선원 등 33명이 타고 있었으며, 야경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막 출발한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에 후미를 받혀 침몰했다. 헝가리 사법 당국은 가해 선박의 유리 카플린스키 선장을 인명 손상 혐의 및 사고 후 구조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했지만 그는 지난 3월 1차 사전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2차 사전재판은 코로나19로 인해 오는 9월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마지막 실종자는 다뉴브강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실종자는 다뉴브강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남은 1명을 찾으려 현지일간지 광고헝가리측 현재도 일상 순찰로 수색5월29일 사고현장서 1주기 추모식추모비 연내 건립··· 현지국 비용부담1년전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사고로 숨진 한국인 희생자 25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건립된다. 마지막 실종자 1명을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된다. 26일(현지시간)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사고 1년이 되는 오는 29일 충돌 현장인 부다페스트 머르기트 다리 인근 선착장에서 추모식을 연다. 최규식 주헝가리 한국대사, 시야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 커러초니 게르게이 부다페스트 시장, 현지 취재진 등 30여명이 참석한다. 사고 유람선인 ‘허블레아니’ 호를 운영했던 선사 ‘퍼노라머 데츠크’도 별도로 추모식을 연다. 헝가리 정부와 부다페스트시 당국이 사고 직후부터 건립비용을 대겠다며 제안했던 추모비도 올해 내에 세운다. 본래 오는 29일까지 추모비 사업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추모비 모양, 크기, 문구 등은 현재 논의 중이다.외교부는 지난해 사고 당시 수습하지 못한 마지막 실종자 1명을 찾기 위해 현지 최대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사고 발생 시점부터 2개월간 한국과 헝가리 당국이 합동수색을 벌였고, 이후 헝가리 측은 일상적 순찰로 전환해 현재까지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가해 선박인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허블레아니호에는 한국인 광객과 선원 등 33명이 타고 있었으며 야경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막 출발한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에 후미를 받혔 침몰했다. 헝가리 사법당국은 가해선박의 유리 카플린스키 선장을 인명 손상 혐의 및 사고 후 구조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했지만 그는 지난 3월 1차 사전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2차 사전재판은 코로나19로 인해 오는 9월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문 대통령, ‘서해수호 55용사‘ 기리며 코로나 극복의지

    문 대통령, ‘서해수호 55용사‘ 기리며 코로나 극복의지

    “초유의 위기 앞에 군이 앞장서 애국 실천”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27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참석해 제2연평해전(2002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이상 2010년)로 희생된 서해수호 55용사의 넋을 기렸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기념식 당시에는 베트남 국빈방문 중이었고, 지난해 기념식이 열린 날에는 전국 경제 투어의 일환으로 대구를 방문했다. 법정기념일인 서해수호의날은 매년 3월 셋째주 금요일로 지정돼 있다. 취임 후 두 번의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야권에서는 ‘북한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2018년 6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개최된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후 천안함 용사·제2연평해전 전사자·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등 서해수호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보훈의 가치를 지키며 순직 장병들에 예우를 다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는 의미다.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의식해 보훈·안보 행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으나 청와대는 선을 그었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정부는 강한 군대, 철통같은 국방력을 바탕으로 강한 안보와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면서 “서해수호 영웅들이 지켜낸 북방한계선(NLL)에서는 한 건의 무력충돌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선 북한의 책임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은 북한 관련해선 “2018년 남북 간 9·19 군사합의로 서해에서 적대적 군사행동을 중지했다”고만 밝혔다. 그러면서 “서해수호 영웅들이 지켜낸 NLL에서는 한 건의 무력충돌도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천안함46용사 추모비’가 세워진 평택 2함대 사령부와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서, 후배들이 굳건히 우리 영토와 영해를 수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후 남북 대화·교류가 소강상태인 상황에서 북한의 책임론을 직접 언급해서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군과 함께 하는 코로나19 사태 극복 의지도 피력했다. 임관 직후 코로나19로 큰 피해가 발생한 대구로 달려간 간호장교와 군의관, 미얀마에서 수술용 가운 8만벌을 수송한 공군 수송기 사례를 언급하며 “서해수호 영웅의 정신이 장병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연대와 협력으로 우리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 힘은 국토와 이웃과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애국심으로부터 비롯됐다”며 “서해수호 영웅의 애국심이 이어지고 국민의 기억 속에 애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한 우리는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순직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지킨 애국심을 이어받아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보훈 가족 예우에 대한 의지도 드러내며 ‘순직유족연금 지급률 43%로 상향, 유족 가산제도 신설’에 이어 ‘전상수당 내년까지 5배 인상’까지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는 군의 충성과 헌신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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