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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용서할때, 하지만…”/ 13일로 ‘1주기’ 효순·미선양 부모 마르지않은 눈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요.가슴에 묻은 딸아이들 명복을 위해서도 그래야 하고요.하지만….” 1년 전 6월13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못다핀 꽃’으로 스러진 고(故) 신효순·심미선양의 부모들은 1일 오후 사고 현장 옆인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국도56호 도로변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애써 울음을 참는 듯했다 ●SOFA 제대로 고쳐져야 미움 다 털텐데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온전하게 고쳐져야 미움도 분노도 다 털어버릴 것 같아요.”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49)씨와 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49)씨는 “추모비를 세운 미군도,정치하는 이들도 ‘인권의 존엄성을 일깨운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제까지 결과는 너무 미흡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추모비 앞에는 전국에서 온 참배객들이 놓고간 수천마리의 종이학과 장미·백합·해바라기꽃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화강암 추모비문 마지막에 적힌 ‘미2사단 일동’이란 문구는 누군가가 지워버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추모비 수천마리 종이학·꽃 원혼달래듯 추모비에 새겨진 딸의 사진에 시선을 멈춘 미선양 어머니 이옥자(46)씨는 “이젠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가 봐요. 이모나 외삼촌 꿈에는 보인다는데 제 꿈엔 안보여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효순양의 어머니 전명자(40)씨는 “미선이가 엄마를 힘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며 이씨를 다독거리면서 “들일을 하고 오면 시키지 않아도 저녁밥 지어놓고 기다리던 효순이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 잊고 싶은지 이젠 꿈에도 안보여 심씨는 “너무나 억울해 인터넷에 아이들의 죽음을 띄우고 여야 3당 대표에게 사고 현장 방문을 요청했지만 월드컵 열기에 묻혀 외면당할 때는 너무 막막하고 외로웠다.”며 당시의 안타까운 심정을 회고했다. 신씨는 “월드컵 끝나고 아이들의 죽음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SOFA가 뭔지 처음 알았다.”면서 “힘이 있다고 우리땅에서 미군들이 자기들 법대로 한다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월드컵이 끝나고 딸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부모들은 사고 현장과 효촌리 마을,서울시청앞에서 열린 추모제와 촛불시위 등에 참석하고 조문객들을 맞느라 경황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참다가 밤이면 집 뒤의 풀숲에서 남몰래 오열해야 했다. ●두 아이 죽음 국론분열 빌미되지 않기를 “국민 모두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죽은 자식들과 저희에게 보내준 애도와 격려가 없었다면 무너져 내리는 심신을 추스를 수 없었을 겁니다.” 지난 1년 동안 효순네와 미선네 집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애도와 격려 편지가 쇄도했다.지난 설날엔 낯모르는 대학생 3명이 세배를 다녀갔다.그날 미선이네 3년생 토종견은 수캉아지 2마리를 낳아 집안에 잠시나마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심씨는 “남북대치 상황이란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치하는 이들이 미국을 상대로 우리 자존심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해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통을 되새김질하지 않도록 지나친 관심은 자제해 달라.”면서 두 아이의 죽음과 이후의 파장이 자칫 국론분열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효순이와 미선이 부모들은 두 딸의1주기 관련 집회 등엔 가능한 참석할 뜻을 밝힌 뒤 “고추밭과 콩밭에 할일이 산더미”라며 발길을 돌렸다. 추모비 뒤쪽 언덕의 자그마한 나무에는 추모객들이 가지에 걸어 놓은 메모지 수십개가 바람에 꽃잎처럼 흔들리며 ‘이승의 고통을 넘어 저 세상에서 행복하거라.’,‘미안하다,꼭 복수해 줄게.’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비문 뒷면에 새겨진 추도시는 비문의 주인공들에게 ‘바람부는 이곳 서낭당 고개에 누워 새소리 듣느냐,바람 소리 듣고 사느냐.’고 묻고 있었다. 글·사진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가슴속 조국 안고 갑니다” 이범진 열사 외증손녀 루드밀라 여사

    *“盧대통령 취임식 참석 가문의 자랑” “외증조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독립을 위해 애쓰다 돌아가신 조국,한국의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해 너무나 기쁩니다.두고 두고 가문의 자랑거리가 될 겁니다.” 대한제국의 주 러시아 초대 공사로 독립운동에 애쓰다 한일 합병이 되자 이에 저항해 자결한 이범진(李範晋·1895∼1911) 열사의 외증손녀 루드밀라 예피모바(67) 여사가 우리 정부 초청으로 지난 25일 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26일 모스크바로 돌아가기 직전,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가슴 속 조국 한국을 이번 방한 기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공사의 둘째 아들이자,고종의 헤이그 밀사중 한 명인 이위종(李瑋鍾) 선생의 외손녀 루드밀라 여사는 딸 율리아 피스쿨로바(33)와 함께 왔다.피스쿨로바는 모스크바 국립대 동아시아·아프리카 연구소(IAAS)연구원에서 한국 역사를 담당하고 있다.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구하고자 한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위종 선생이 러시아 귀족의 딸과 결혼,이어진 혈통이어서 외모에선 좀처럼 한국인의 분위기는 나지 않았지만 이날 6촌 누나와 자리를 함께한 이범진 열사의 증손자 이원갑(65)씨와 나란히 보니 피를 나눈 형제란 게 확연해 보였다. “지난 95년,누님이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처음 만난 이후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범진·이위종 열사 기념사업회 창설을 추진중인 이원갑씨는 “지난해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공관 건물에 기념 현판이 걸리고 묘역에 이범진 열사 추모비가 세워지던 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면서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뤄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는 작업을 국가 차원에서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피스쿨로바는 한국학 학자이자,독립투사의 후예답게 한·러 관계 증진을 소원했다.그녀는 “러시아의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의 문화와 역사 경제에 관심이 많은 만큼 인적교류에 좀더 신경쓰면 양국관계는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애도의 날’ 弔鐘… 울음삼킨 대구

    대구 지하철 참사 엿새째이자 ‘시민 애도의 날’인 23일 달구벌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노래방을 포함해 대부분의 상가가 영업을 전면 중단,추모행렬에 동참했다.사건 현장인 중앙로역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지하2층 입구에는 시민들이 두고간 국화꽃 수만 송이가 쌓여 숙연함을 더했다. ●실종자 가족 항의농성 지하철 중앙로역 복구공사에 반발하며 지하1층에서 이틀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실종자 가족 300여명은 지하철운행 전면중단과 사건 현장보존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이들은 “새벽 2시쯤 지하3층 승강장에서 이번 사건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을 발견했다.”면서 “대구시와 지하철공사측이 현장수습을 서둘러 유골과 유류품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모비 위치 놓고 신경전 피해자대책위측과 대구시가 추모비 위치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대책위측은 “사건현장인 중앙로역 근처에 추모비를 세워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고 시민을 위한 안전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그러나 대구시측은외곽공원에 추모비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감식 직원 과로로 실신 사건 전동차가 옮겨진 월배차량기지에서 유골 및 유류품 수습 작업을 하던 김상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물리분석실장이 새벽 3시쯤 숙소에서 실신,병원으로 옮겨졌다.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김 실장이 이틀간 밤샘조사를 벌여 피로가 쌓인 것 같다.”고 전했다. 대구 박지연기자 anne02@
  • 한국인 美이민 100주년 기념행사 다채

    1903년 1월13일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고국을 떠난 한인 102명이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내리면서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이 13일로 100주년을 맞아 하와이 현지에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가졌다. 미주지역 동포 한인들은 13일 오전 9시30분(이하 현지시간) 하와이 힐튼호텔에서 기념식을 연 것을 필두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가졌다. 기념식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와이키키 나이키타운을 출발해 카피올라니 공원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를 펼쳤다.퍼레이드에는 린다 링글 하와이 주지사를 비롯해 제레미 해리스 호놀룰루 시장,한국계인 리 도너휴 호놀룰루 경찰국장,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 등의 인사와 한국의 해군밴드 및 해군사관생도,한인 단체와 동포 등 2000여명이 참가했다. 이오영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장은 “한인들이 한마음으로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해 성대한 잔치가 됐듯 향후 100년도 이처럼 한마음으로 뭉쳐 준비하면 21세기는 한민족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2일 오후 1시 파와아 공원에서는 정부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한명숙여성부장관과 박관용 국회의장,김창원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장,재일본대한민국 민단 김재숙 단장 등 200여명의 국내외 인사가 참가한 가운데 100주년 기념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에서 김창원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선조들의 애국심과 개척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이민 100주년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이민 100주년을 미주 한인들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계원조형예술대 박부찬 교수가 제작한 100주년 기념조형물은 가로 7m,세로 4m,높이 3m의 화강암 조각으로 초기 이민자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한인들의 의지를 형상화했다.박 교수는 또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 공동묘지에 가로 9m,세로 5m,높이 3.5m의 화강암과 청동으로 만든 추모비도 세웠다. 한편 미주 한인이민 100년의 문화를 담은 영문 문화사전 ‘호랑이의 한 세기’가 11일 하와이대 출판부에서 출간됐다.‘미국의 한국문화 100년 1903∼2003’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의하나로 하와이 한인들의 지원을 받아 출간했다.한인 작가 및 미술인·학자 등이 쓰고 그린 시·사진·그림 등을 시대별로 나누어 수록했다.책은 인터넷(www.hawaii.edujournal)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연합
  • 대선후보 ‘SOFA 변수’ 대응책 부심 - “韓·美관계 재정립” 한목소리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무죄평결 이후 번지고 있는 반미(反美) 기류가 연말 대선 레이스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한·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전향적 개선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이는 젊은 층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한 대응책의 성격도 띠고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미군장갑차 사건과 SOFA 개정 문제 등에 더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일에는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면담하고 미국 정부에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했다.그는 “사태의 본질은 어린 학생의 희생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데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즉각적인 SOFA개정 착수 등을 요구했다. 8일 오전에는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 국민서약서에 서명했다.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 “미국과 한국 정부는 주권국가로서 자존심의 심각한 훼손에 대한 인식에 매우 미온적이었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이어 저녁에는 고 효순·미선양의 경기 양주군 광적면 집을 찾았다. 이 후보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그 후의 처리도 말도 안되는방향으로 가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유족들이 “초기대응을 제대로 했다면 범국민운동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자 이 후보는 “진실을 밝히고 평결이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도록 강하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이 후보는 추모비로 이동,두 희생자의 사진 위에 쌓인 눈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지운 박정경기자 jj@ ★盧””정부 재판권 이양문제 무성의””선거악용 비쳐질까 말아껴... “대통령이 되면 이른 시일내에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만나 SOFA 개정만이 한·미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길이라고 역설하겠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관련,“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명확히 사과해야 한다.”며 SOFA 개정을주장했다.이어 “한국정부도 그동안 미국의 재판권이양문제 등에 대해 대단히 형식적이고 성의없이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 후보는 SOFA 개정의 수위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형사재판관할권 수정을 포함,최소한 미국이 일본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맺고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최근 반미기류가 전국적으로확산되자 대선후보로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은 보이나,SOFA개정에 대한 전문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선거를 앞두고 너무 나서면 억울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그동안 할 말을 아꼈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또 “시민단체 간부,정당의 대표라면 부담없이 말할 수 있으나,대통령후보의 발언은 바로 외교적 문제가 되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홍원상 기자 wshong@
  • 한많은 열사부모들의 축제 ‘장터’

    “가슴에 묻은 자식 잊지 못해 13년째 서울대를 찾고 있습니다.” 가을 대동제가 한창인 서울대 학생회관 앞마당에서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 조찬배) 소속 회원들이 교내 가톨릭학생회와 함께 지난 89년부터장터를 열고 있다.대부분 60을 넘긴 부모님들이 장터를 찾는 학생들에게 순대와 떡볶이를 팔면서 먼저 보낸 자식 생각에 한(恨)맺힌 가슴을 어루만진다. 지난해까지 유가협 회장을 맡았던 고(故)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朴正基·73·서울 마포구 토정동)씨는 매년 봄·가을 서울대 대동제 때마다 ‘장터지기’를 자청하고 나선다. 박씨는 “독재와 공권력에 억울하게 죽은 학생들중 서울대 출신이 21명이나 된다.”면서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도 잊혀지고 열사들의 삶도 잊혀지는것 같아 안타깝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유가협 장터가 열리는 대학이 서울대 밖에 없다는 현실이 못내 가슴 아프다는 박씨.장터를 찾는 하루 100여명의 학생들도 대동제 행사중 열리는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저 애꿎은 세월 탓만할 뿐이다. 박씨에게 이번 장터는 다른 해보다 각별하게 다가온다.이번 장터의 수익금으로 유가협 16년의 역사가 담긴 백서를 발간하고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위해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백서는 유가협 회원들의 터전인‘한울삶’의 역사나 마찬가지다.자식먼저 보내고 어디 한 곳 마음 붙일 데 없어 가슴만 쓸어내리던 시절, 배은심(이한열 열사 어머니) 여사와 전국을 돌며 유가협 활동을 알리다 주위의 도움으로 서울 동대문 근처에 차린 보금자리다. 이번 장터가 끝나면 서울대측에 ‘열사 합동 추모비’ 건립을 건의할 생각이다.박씨는 “서울대는 암울했던 우리 사회를 외면하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의로운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면서 “재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선배들의 뜻을 기리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장갑차 희생 여중생 사고현장에 추모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고 신효순·심미선양의 추모비가 17일 완공됐다.미2사단측은 사건발생 후 부대내에서 2만 2000달러(2600여만원)를 모금,사고 현장인 효촌리 지방도 56호선변 50평 부지에 가로 1.5m,세로2m 크기의 화강암으로 추모비를 건립했다. 추모비 앞면에는 미2사단 장병 일동 명의의 ‘심미선과 신효순을 추모하며’란 제목의 추모시가 새겨져 있다.추모시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준 그대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적고 있다. 뒷면에는 이들이 졸업한 효촌초등학교 도기종 교장의 ‘아! 봉숭아가 졌구나’란 제목의 추모시가 영·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미2사단측은 추모비 제막식을 유가족과 마을 주민,부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식으로 열 예정이다.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행사 / 여운형선생 추모비 제막식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 추모사업회(회장 呂澈淵)는 몽양 서거 55주기를 맞아 18일 오전 11시 경기 양평군 양서면 선생 생가터에서 추모비 제막식을,19일 오후 1시 서울 우이동 묘소에서 최창규 성균관장,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갖는다.
  • 아웅산 테러현장 대형 추모비-미얀마,한국언론에 첫 공개

    지난 83년 10월9일 17명의 우리 정부 인사들이 북한의 폭탄테러로 희생된 장소인 미얀마 아웅산 묘소의 새로 단장한 모습이 한국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아웅산 묘지는 지난 83년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미얀마(당시 버마)방문을 수행한 서석준(徐錫俊) 부총리와 이범석(李範錫)외무장관 등이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로 희생된 현장.묘지의 주인공인 아웅산 장군은 독립 영웅으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아버지.미얀마 군사정부는 이 장소가 민주화 시위를 촉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내외국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측에는 지난 90년 테러 희생자 유족들의 추모행사를 위해 단 한 차례 공식 공개했을 뿐이다.미얀마 군사정부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언론인교류 행사차 지난 4일 미얀마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에게 이례적으로 참배와 사진촬영을 허용했다. 폭탄테러 당시 아웅산 장군 묘지 위에 세워진 기와집 모양 건물은 테러당시 파괴된 뒤 아예 철거,흔적조차 사라졌으며,다만 묘소뒤로 검붉은색의 가로 20∼30m,세로 10m가량의 직사각형 대형 콘크리트 추모물이 세워졌다. 북한 테러범 3명 중 신기철 대위는 현장에서 사살되고 체포된 진모 소좌와 강민철 대위는 미얀마 최고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진소좌는 사형에 처해졌고,테러사실을 자백한 강민철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미얀마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주 미얀마 한국 대사관측은 강씨를 가끔식 면회,근황을 챙기며 한국 신문 등을 넣어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한나라 내분 정면대결 양상

    [도쿄 강동형 특파원 진경호기자] 비주류 중진들의 잇따른반발과 탈당 움직임 속에 일부 개혁파 의원들이 당내 민주화와 인적 쇄신 등을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한나라당의 내분사태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원웅(金元雄) 김홍신(金洪信) 등 비주류측 개혁파 의원들은 13일 회동을 갖고 지도부 전면개편 등 당내 인적 쇄신과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당무 퇴진을 요구할 것으로알려져 파장이 주목된다. 이와 별도로 오세훈(吳世勳) 원희룡(元喜龍) 의원 등 초선급 원내외 위원장으로 이뤄진 미래연대와 2∼3선 의원모임인 희망연대,나라발전연구회 등 당내 의원모임들도 12일 잇따라 회동,내분 수습책을 논의했다. 미래연대 의원들은 모임에서 당의 화합과 안정을 위해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일본을 방문중인 이 총재는 도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측근을 둔 적이 없으며 당직을 맡아 일을 하고 있는 동지일 뿐인데 이를 두고 가신(家臣)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인적 쇄신 요구에 부정적인뜻을 밝히면서도 “귀국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이 총재의 한 측근은 “5월 전당대회 이후 당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 총재는 정권 교체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해이 총재가 귀국 후 집단지도체제 조기도입 요구 등을 일부 수용할 가능성을 내비쳤다.한편 일본 방문 사흘째인 이날 이 총재는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JAWOC)를 방문,엔도야스히코(遠藤安彦) 사무총장 등으로부터 대회준비 상황을 브리핑받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오후에는 지난해 1월 일본 도쿄(東京)의 JR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李秀賢·당시 26세)씨의 추모비를 방문해 헌화했다. yunbin@
  • “살신성인 숭고한 정신 영원히…”

    지난해 1월26일 일본 도쿄(東京)의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李秀賢·당시 26세)씨의1주기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추모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씨가 운영하던 홈페이지에는 그를 기리는 글이 올들어 100여건 올랐다.지난 1년간 오른 글은 무려 2만 2400여건.올초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수현씨를 통해 사랑의 실천에 눈을 뜨게 됐다.”면서 “해가 바뀌어도 영원히 깊은 뜻을 간직하겠다.”고 애도했다.사이버 분향소가 마련된 ‘장래 닷컴’에도 사이버 분향과 헌화가 쇄도하고 있다. 도쿄와 서울·부산에서는 위령제와 추모 음악회,사진전 등다양한 사업이 펼쳐진다. 이씨가 다니던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赤門會)에서는 26일‘이수현 장학회’를 발족한다.이씨의 아버지 이성대(李盛大·62)씨가 기증한 1000만엔(한화 1억원)과 일본인들의 성금으로 조성됐으며 해마다 120여명에게 장학금을 줄 예정이다. 이수현 장학회는 이씨의 부모를 초청해 위령제를 열고 이씨가 숨진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사고 지점에 헌화할 예정이다. 26일에는 한일음악교류협의회 주최로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27일에는 ‘수사(秀史)문화제실행위원회’의 주최로 도쿄 산토리홀에서 추모음악회가 열린다. 이씨의 모교인 고려대 서창캠퍼스도 26일 분향소를 설치한다.3월에는 모금한 돈으로 추모비를 건립할 예정이다.이 대학 무역학과 학생회장 장수형(張秀衡·24)씨는 “선배의 행동은 어떤 사람보다도 강렬하게 우리의 가슴을 울렸다.”면서 “추모비를 건립해 선배의 정신을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박종철씨 15주기 추모식 열려

    지난 87년 1월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보안분실)에서 고문 끝에 숨진 고(故)박종철(朴鍾哲)씨의 15주기 추모식이 13일 오후 모교인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렸다. 서울대 선·후배들로 이뤄진 ‘박종철열사 추모사업단’이 처음 마련한 이날 추모식에서는 학생과 사회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박씨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 ‘투쟁하는 동지 박종철’의 상영으로 막을 올린 뒤 서울대인문대 노래패 ‘함성’의 노래공연과 추모시 낭독,박씨의 넋을 달래는 살풀이 춤으로 이어졌다. 사업단 기획단장 김희준씨(26·공대 98학번)는 “종철 형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히 이뤄졌지만 형이 남긴 희생의 의미는 정작 시간과 함께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형이 전한 교훈을 실천해가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단은 추모제에 앞서 이날 오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방문했다.기일인 14일 오후 2시에는 ‘박종철 기념사업회’(회장 金勝勳 신부)와 함께 교내 추모비 앞에서 추모식을 갖는다. 윤창수기자 geo@
  • 천주교계 6·25순교자 추모비 세운다

    6·25전쟁 기간중 순교한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평신도들을 한 데 거둬 기리는 추모비가 건립된다. ‘6·25 순교자 준비위원회’(지도신부 김병일,공동준비위원장 봉두완 대한적십자부총재 등)는 앞으로 1년여의 준비작업을 거쳐 천주교 위령의 날인 내년 11월 2일 서울 명동성당(예정)에 6·25전쟁중 순교한 사제,수도자,평신도들의추모비를 건립키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천주교계는 이에 따라 오는 11월2일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건립추진위를 정식 발족한다. 준비위에 따르면 조각가인 박중흠 전 이화여대 교수가 비석 건립의 자문을 맡고 사제인 형님을 6·25 때 잃은 구상시인이 비문을 쓰기로 했다.비용은 전국의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모금한 성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천주교계가 6·25 순교자 추모비 건립에 나선 것은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대주교가 지난해 위령일 강론에서 전쟁중교회를 지키다 숨진 천주교 성직자들을 추모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 그 시작.이후 김병일 신부(월곡동 본당 주임)가추모비 건립을 계획했고,수도자와 평신도까지 포함시켜야한다는 원로 사제들의 뜻을 좇아 여규태 평신도협의회장과박광순 가톨릭 경제인회장 등이 비석 건립에 동참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추모비 건립장소로 명동성당과 용인 천주교 묘지,절두산순교성지들이 거론됐으나 명동성당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비 건립 추진위는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주축으로 한 ‘순교자 평결기관’을 설치,순교자 신청을 받는 한편 대상자의 생사 및 배교 여부를 철저하게 가리는 작업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6.25 순교 사제는 평양교구장을 지낸 홍용호 주교(1906∼?) 등 84명.여기에 수도자와 평신도를 합치면 그 수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홍 주교의 경우,5대 평양교구장으로 활동하던 1949년 북한 공산정권과의 면담 예정일에 납치돼 평양 교화소 특별정치범 감옥에 수감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또 광주교구 4대교구장이던 미국인 안 파드리치오 몬시뇰(1901∼?)은 1950년 인민군의 신자 명단 요구를 거절했다 연행된 뒤 학살된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함께 조문국 바오로 신부(1921∼?)는 진남포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중 1950년 북한 정권에 체포된 뒤 자강도의 금강에서 강제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행방을 알 수 없다. 이재현 요셉 신부(1909∼?)는 성신중학교 교장으로 재직중 전쟁을 맞아 피난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있다가 피랍된 뒤행방불명됐다. 김성호기자 kimus@
  • 고이즈미 ‘空手來 空手去’

    1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7시간30분동안 머물며 7건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날 오전 일제침략과 탄압의 상징인 ‘서대문 독립공원(구 서대문형무소)’을 방문,추모비에 헌화한 뒤 약 15분간 과거사에 대해 발언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앞서 오전 8시20분 서울도착 직후 국립현충원을 방문했으며,곧바로 9시15분쯤 서대문 독립공원에 도착해 유관순 열사의 투옥장면과 물고문 등 일제의 잔학행위를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역사의 현장을 12분간 진지하게 둘러봤다. 총리는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평소 마음과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는 논어 구절을 인용해 적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정상회담 직전,삼청동 일본 대사관저에서 지난 1월 도쿄 지하철역에서 시민을 구하려다 숨진 고이수현씨 아버지 이성대씨(62)와 어머니 신윤찬씨(51),여동생 수진씨(25),지도교수,고교·대학 동창 등 6명과 만나 이씨의 의로운 행동을 치하하고 위로했다.고이즈미 총리는 이수현씨 부모에게 “아드님의 행동이 일본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와 김 대통령은 카메라 기자의 취재허용 범위를 놓고 약간의 신경전을 폈다. 고이즈미 총리가 단독정상회담에 앞서 “카메라 기자들이들어와도 되느냐”고 묻자 김 대통령은 “카메라 기자들이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막았다가는 큰일 난다”고조크로 받아 넘겼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신경이 쓰이는 듯 “회담끝까지 사진기자들이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청산리대첩 기념탑 제막 현지 르포

    “나가 나가,싸우려 나가!…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려 나아가세!” 지난 31일 1920년 청산리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청산리항일대첩 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된 중국 지린성(吉林城)허룽쓰(和龍市) 룽청?x(龍城面) 칭산춘(靑山村)에는 당시독립군들의 노래가 다시 메아리치는 듯 했다. 제막식에 참석한 김유길(金柔吉·82)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투사들과 유족들,지린성의 중국 동포 등 400여명은 기념탑과 주변의 격전지를 둘러보며 “선열들의 함성과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북로군정서 여단장으로 참전했던 최해(崔海·48년 작고)선생의 아들인 기룡(騎龍·73)씨는 “기념탑 부조 속의 독립군 가운데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탑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았다. 청산리 대첩 81년만에 세워진 기념탑은 청산리 바로 뒤 야산에 28m 높이의 158개 하얀색 화강암 계단 위에 옆이 둥글게 파인 사다리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다.탑의 높이만 17.6m에 이른다.광복회의 모금 운동에 중국 동포들이 힘을 보태지??해 4월 착공한 지 16개월만에 위용을 드러냈다. 1920년을 기념하기 위해 19.20m 높이로 쌓으려 했으나 중국 정부와 협의가 잘 되지 않아 높이를 낮췄다.탑 아래 부분에는 소총과 기관총 등을 쏘며 일본군을 격퇴하는 독립군의 모습을 담은 가로 4.8m,세로 2.5m 크기의 하얀색 화강암부조가 있어 당시의 격전을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청산리는 천지에서 북동쪽으로 180㎞ 가량 떨어진 백두산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산마을.당시 독립군들은 이름만큼이나 푸른 청산리 골짜기에서 일제·마적단·굶주림과 싸우면서도 총을 놓지 않았다. 김좌진(金佐鎭)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 2,000여명은 대포와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일본군 5,000명 가운데 2,000여명을 사살,항일 무장투쟁 가운데 가장 큰 전과를 올렸다. 윤병석(尹炳奭·71) 인하대 명예교수는 “청산리대첩은 1919년 3·1 만세운동이 20·30년대의 격렬한 무장투쟁으로 이어지는 전기를 마련한 큰 승리”라면서 “동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끌어낸 승리?? 더욱 값지다”고 설명했다. 제막식에는 청산리에 사는 동포 여성들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자부심과 애정을 보여줬다.청산촌장 최경렬(崔京烈·52)씨는 “이제 후손들에게 선열들의 자랑스런 항일투쟁을 마음껏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념탑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라며 상기된 모습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광복회(회장 尹慶彬)는 오는 10월에는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斷指同盟碑)’를,우스리스크에는 고종의 헤이그 밀사로 러시아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을주도한 이상설 선생의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 청산리 전영우기자 anselmus@
  • 전역앞둔 병장 ‘살신성인’

    만기전역을 4개월 남기고 군 휴양소 수상 안전요원으로 근무중이던 육군 동해 모 부대 정상훈(23 충남 청양군)병장이 익사 위기의 고교생을 구하고 실종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2시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해수욕장인근 군부대 휴양소에서 근무중이던 정 병장은 익사직전의서울 모 고교 1학년 윤모군(17)을 구한 뒤 파도에 휩쓸려실종됐다. 정 병장은 이날 오후 윤군이 갑자기 덮친 파도에 휩쓸려해변에서 30여m까지 밀려나자 최종헌(22)일병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윤군을 해변으로 끌고나오다 변을 당했다. 정 병장은 앞서 지난 6월 모범사병으로 뽑혀 부대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중대장 황경태(30) 대위는 “정병장은 귀찮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온 모범사병”이라고 말했다.육군은정 병장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고현장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 노주석기자 joo@
  • [오늘의 눈] 日이여, 용서할수 있게 해달라

    ‘고개 숙여 용서를 빕니다.-일본의 한 노인이’ 중국 난징(南京)시에 있는 ‘난징대학살기념관’의 담 밑에 늘어선 10여개의 추모비 중 하나에 새겨진 문구다.이곳은 최근 극우로 치닫고 있는 일본이 역사 교과서에서조차소개하지 않은 ‘대학살’의 현장이다. 난징 대학살은 일본군이 지난 1937년 12월13일부터 38년초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0여만명을 무참히 살해한 역사상 유례없는 만행이다.피살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의 기관총 세례를 받았고 ‘살인게임’ 희생양이 돼 목이잘려 나갔다.어떤 이들은 산 채 불태워지기도 했다.몇달 동안이나 시내에 역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기념관 안내원은 “피살자들이 손을 잇고 늘어선다면 322㎞나 됐을 것이고 흘린 피만 1,200t에 달한다”고 당시의참혹상을 설명했다. 기념관 한켠에 마련된 유골 보존구역에는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아이들의 유골이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무더기로 전시돼 있다.대부분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시달린 듯 입을 벌린 채 반쯤 흙에 묻혀 있다. 기념관 귀퉁이에는일본인 방문객들이 중국인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남긴 수천 마리의 종이학과 편지,엽서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현장을 본 사람이면 양심의 가책을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새 역사교과서에서 난징 대학살 자체를 전면 부정했다.그뿐 아니다.꽃다운 처녀들을 전쟁터로끌고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았던 만행도,조선인 수천명이숨진 관동대학살도 외면했다.입으로는 세계 평화를 떠들면서 정작 평화의 전제조건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모른척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인 중국인들은 기념관 곳곳에 ‘용서하자,하지만 잊지는 말자’라는 문구를 남겨 놓았다.세계 평화를위해 가해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 관람을 마치고 기념관을 나서는 순간,‘정작 일본은 대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용서할 수 있는지’,‘가해자가 반성은 커녕,과거사를 미화하는데 무작정 용서해야하는가’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일본이여,극우 세력이여,제발 과거사를 인정해 우리가 당신들을 용서하게 해달라!중국 난징에서 박록삼 사회팀기자youngtan@
  • 日서 이수현씨 추모비 제막

    [도쿄 황성기특파원] 지난 1월 일본 전철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사망한 고 이수현(李秀賢)씨의 용기를 기리는 추모비가 생전 이씨가 다니던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赤門會)’에 세워졌다. 아카몬카이측은 이날 이씨의 부모와 학원생들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비 제막식을 갖고 이씨의 의로운 행동을재삼 기렸다. 기념비는 아카몬카이 건물 앞에 있는 ‘이수현 기념공원’의 벽면에 이씨의 흉상을 새겨넣은 모양을 하고 있다. marry01@
  •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 배경 논란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는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고향은 어디일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아름다운 서정성과 고향에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노랫말로 북한 주민들도즐겨 부르는 ‘국민동요’다. 노래를 만든 아동문학가 이원수(李元壽) 선생(1911-1981) 타계 20주년을 맞아 경남 창원시와 양산시가 노랫말의 배경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노랫말의 배경이 창원시 소답동으로 알려진데 대해 양산시가 이의를 제기했다.선생이 양산시 북정동에서태어나 양산공립보통학교(현 양산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으므로 어린시절 뛰놀았던 북정동이 고향이라는 주장이다. 양산시와 문화원은 86년부터 추모사업을 준비하면서 선생의 옛친구와 주민들로 부터 이같은 사실을 확인,현재 선생의 생가복원사업을 추진중이다.기념관과 추모비를 건립하고 주변에 꽃동산도 조성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창원시 주장은 다르다.선생이 75년 텔레비젼대담프로 ‘명작의 고향’에 출연,‘고향의봄’은 창원읍소답리(현 창원시 소답동) 일대를 배경으로 노랫말을 만들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창원시는 최근 선생 타계 20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노랫말의 배경은 창원시 소답동임을 재확인하고 ‘이원수문학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문인연보’는 선생이 1911년 11월 양산읍 북정리에서태어나 2살 때인 1912년 창원읍 중동으로 이사,1916년 창원읍 소답리에서 서당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창원 이정규기자jeong@
  • 어린이 안전공원 30일 문열어

    ‘어린이들에게 다시는 씨랜드 사고같은 참사의 아픔을안겨주지 맙시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된 ‘어린이 안전공원’이 국내 처음으로 곧 개장된다. 송파구는 관내 마천동 산1의10 일대 천마근린공원에 2,916㎡ 규모의 어린이 안전공원을 조성,오는 30일 씨랜드참사2주기에 맞춰 개장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15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해 조성된 이 공원에는광장과 안전체험교육장,안전놀이터와 산책로,녹지와 씨랜드 참사 희생어린이들을 위한 추모비가 함께 들어서 있다. 송파개발공사가 수탁 운영할 이 공원에는 안전교육 전문가 등 7명의 인력이 상주,1일 최고 360명의 입장객을 대상으로 매일 3회의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안전교육 프로그램에는 가스·전기·놀이·실내 안전 등가정안전 프로그램을 비롯해 도로·교통·건물·횡단보도안전 등 사회안전 프로그램,화재대피·연기체험·소화 및대피훈련 등 화재안전 프로그램,인공호흡과 응급처치 및신고요령 등 응급구조교육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어린이들의 안전의식과 사고 대응능력을 고취시키게 된다. 심재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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