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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소녀와 충격적인 교감 ‘앵귀시’ 예고편

    죽은 소녀와 충격적인 교감 ‘앵귀시’ 예고편

    오컬트(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작품) 호러 무비 ‘앵귀시: 소녀의 저주’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앵귀시: 소녀의 저주’는 신경 안정치료를 위해 조용한 마을로 이사 온 ‘테스’가 우연히 교통사고로 죽은 또래 소녀 ‘루시’의 추모비를 보게 된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예고편은 2008년 일리노이주 르몬트를 배경으로, 루시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불안, 우울, 파괴적 행동장애, 환각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지닌 테스가 이곳으로 오게 된 후 극한의 공포를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우연히 루시의 추모비를 발견한 뒤, 환청과 환영으로 고통을 느끼는 테스의 모습과 함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카피가 눈길을 끈다. 또한 테스를 괴롭히는 것이 단순한 정신질환인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인지 의문이 생길 무렵, 루시 엄마의 “지금 제 딸이 테스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라는 대사가 긴장감을 높인다. 죽은 소녀와의 충격적 교감을 통해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된 테스가 ‘아픔, 괴로움, 절망, 고통’에 괴로워하며 변하는 모습은 루시의 영혼이 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을지 공포를 자아낸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 ‘테스’ 역은 ‘레볼루셔너리 로드’, ‘싱글 맨’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라이언 심킨스가 맡았다. 그는 데이빗 린치 감독이 기획하고, 그의 딸인 제니퍼 챔버스 린치가 연출을 맡아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 ‘서베일런스’로 2008 뉴욕 호러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 이력이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앵귀시: 소녀의 저주’는 2016 ‘판고리아 체인쏘우 어워즈’ 여우주연상, 각본상, 베스트제한상영상 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오는 6월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91분. 사진 영상=엔케이컨텐츠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미군 궤도차량에 숨진 효순·미선양 14주기 추모제

    2002년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고(故) 신효순·심미선 양 14주기 추모제가 14일 오전 경기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사고 현장에서 열렸다. 미선효순추모비건립위원회 등 10여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민주노총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마을 어귀에서 사고 현장까지 추모 행진, 헌화, 추모공연, 추모사, 추모공원 조성계획 발표, 기억의 나무와 꽃 심기 등 순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시민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촛불집회를 연다. 앞서 이들은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 의정부 미2사단 캠프 레드클라우드 정문 건너편에서 추모 음악회를 열었다. 미선·효순 양은 2002년 6월 13일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려고 인도가 없는 56번 지방도 2차로를 따라 걷다가 인근 파주 무건리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졌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시민단체는 두 여중생의 넋을 위로하고 불합리한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매년 사고 현장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김영삼 前대통령 묘비 제막… 화합 뜻 받들어 정치권 총출동

    김영삼 前대통령 묘비 제막… 화합 뜻 받들어 정치권 총출동

    ‘김영삼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전·현직 국회의장들과 여야 대표들이 추모비에 덮인 막을 걷어내고 있다. 오른쪽 앞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수한 전 국회의장, 정의화 국회의장,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 묘비는 전직 대통령 법규정에 따라 2개로 만들어졌다. 묘소 좌우에 각각 대통령 묘비와 김영삼 민주주의 기념비로 이뤄졌다. 대통령 묘비 후면에는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을 그렸으며, 측면엔 약력과 가족사항이 새겨져 있다. 김영삼 민주주의 기념비 전면에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등의 김 전 대통령 어록이, 측면에는 친필 휘호가, 후면에는 김정남 전 대통령문화수석이 작성한 추모글이 담겼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정부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새달 설립”

    민관 참여 준비위 발족하기로 “사망·생존자 모두 지원 대상” 지난해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후속 조치인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과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상반기 중 재단 설립을 목표로 관련 준비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능한 한 조속하게 이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재단 설립 전에 준비위원회도 발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중 발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의 정관 작성이나 설립 등기, 운영 방향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준비위는 또 일본이 재단에 일괄 거출하기로 한 10억엔(약 100억원)을 가지고 재단이 향후 어떤 구체적인 사업을 이어 갈 것인지 등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준비위에는 민관 출신 구성원들이 두루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인선은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 멤버들은 상당수가 추후 재단 활동에도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출연금은 피해자 직접 지원에 활용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또 생존자와 이미 사망한 피해자 모두 지원 대상으로 삼아 구체적인 집행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총 238명으로 이 중 생존자는 44명(해외 거주 3명 포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념사업, 기념관, 추모비 등도 포함돼야 하겠지만 피해자 지원을 중심으로 할 것”이라면서 “건물을 짓는 게 아니며 재단 운영 임차료, 인건비 등 행정비용도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외교부와 여성가족부 등 위안부 피해 지원 주무 부서들은 지난달 19일부터 지난 2일까지 약 2주간 자택에 개별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29명 전원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과 가족 등에게 12·28 위안부 합의의 의미, 지원재단 설립 및 운영 방향 등을 설명하고 관련 의견을 수렴했다. 29명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피해자 할머니 및 가족이 추후 지원재단이 추진할 사업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새 역사’ 앞에 선 ‘Mr. 역사’

    ‘새 역사’ 앞에 선 ‘Mr. 역사’

    학생·성인 역사 탐방 수업… ‘유관순 길’ 조성 등에도 심혈 “여기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왜(倭)나라가 우리를 빼놓고 협상했던 곳이에요.”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한 정자에서 특별한 역사 강의가 열렸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일일 교사로 나서 청파초등학교 5학년생 20명에게 정자인 ‘심원정’에 담긴 사연을 들려줬다. 심원정은 한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유서 깊은 정자로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전쟁을 멈추자는 취지의 강화회담을 벌인 곳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당사국인 조선은 이 회담에서 배제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인데도 아이들은 할아버지 구청장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성 구청장은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 당시 정전협정할 때 썼던 테이블도 있다. 우리 지역에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많다”면서 “여러분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용산구의 역사탐방 프로그램인 ‘나도 용산 역사문화 전문가’의 첫 수업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를 정확히 알리려는 취지로 기획됐는데 전문 해설사가 아이들과 함께 지역의 주요 역사·문화유적지 10곳을 돌며 기원 등을 설명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안에 지역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역사탐방 수업을 벌일 예정이다. 탐방코스는 ▲서울성곽길 ▲유관순 열사 추모비 및 이태원부군당 ▲옛 용산철도병원 ▲연복사탑중창비 ▲새남터성당 ▲용산신학교 및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심원정터 ▲효창공원 등이다. 성 구청장의 역사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2010년 구청장 취임 이후 지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했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구는 이달부터 성인인 구민을 대상으로 용산의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출발! 해설이 있는 용산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성장현 용산구청장, “용산구 전체를 역사박물관으로 만들겠다”

    “여기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와 왜(倭)나라가 우리를 빼놓고 협상했던 곳이에요.”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한 정자에서 특별한 역사 강의가 열렸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일일 교사로 나서 청파초등학교 5학년생 20명에게 정자인 ‘심원정’에 담긴 사연을 들려줬다. 심원정은 한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유서깊은 정자로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전쟁을 멈추자는 취지의 강화회담을 벌인 곳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은 당사국인 조선은 이 회담에서 배제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인데도 아이들은 할아버지 구청장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성 구청장은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 당시 정전협정할 때 썼던 테이블도 있다. 우리 지역에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많다”면서 “여러분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용산구의 역사탐방 프로그램인 ‘나도 용산 역사문화 전문가' 첫 수업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를 정확히 알리려는 취지로 기획됐는데 전문 해설사가 아이들과 함께 지역의 주요 역사·문화유적지 10곳을 돌며 기원 등을 설명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안에 지역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역사탐방 수업을 벌일 예정이다. 탐방코스는 서울성곽길, 유관순 열사 추모비 및 이태원부군당, 옛 용산철도병원, 연복사탑중창비, 새남터성당, 용산신학교 및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심원정터, 효창공원 등이다. 성 구청장의 역사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2010년 구청장 취임 이후 지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했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구는 이달부터 성인인 구민을 대상으로 용산의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출발! 해설이 있는 용산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간토대지진 학살 조선인 첫 추도제, 93년 만에 열린다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학살당한 우리 선조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회를 올 8월에 엽니다. 참사가 발생하고 93년 만에 열리는 최초의 추도제입니다.” 씨알재단 관재추도위원장 함인숙(66·여) 목사는 24일 “광복 70주년이 지났지만 아직 정부 차원에서 간토대지진 학살 희생자에 대한 진상 조사나 추모 노력이 없었다”며 “이번 추도제가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비극적인 역사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도식은 민간단체인 ‘1923년 학살당한 재일한인 추도모임’이 주관해 오는 8월 2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이 모임은 함 목사와 김광열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재일동포 영화감독 오충공씨 등이 모여 지난 2월 출범했다. 간토대지진 학살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자 일본 군·경 및 자경단이 조선인 수천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추도제에서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은 조선인 희생자의 넋을 담은 종이 인형 ‘넋전’을 상여에 싣고 영결식을 진행한다. 학살 사건을 다룬 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숨겨진 손톱자국’과 ‘불하(拂下)된 조선인’ 등이 상영된다. 홍난파의 가곡 ‘울 밑에 선 봉선화’에서 이름을 따온 일본 시민사회단체 ‘봉선화’가 학살이 있었던 도쿄도 아라카와강 주변에 추모비를 세운다. 조선인 희생자의 유족들도 초청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내일 개관

    세월호 참사 2주년이 되는 16일 인천가족공원에 안치된 일반인 희생자들의 추모관이 문을 연다. 리본 모양을 형상화한 추모관은 지상 2층, 연면적 486㎡ 규모다. 사업비는 30억원이 투입됐다. 추모관에는 단원고 학생·교사를 제외한 일반인 희생자 45명 중 41명의 봉안함이 안치된다. 희생자들의 유해가 모시는 안치단은 추모관 1층에 추모공간, 제례실과 함께 들어선다. 추모관 1층은 2.2m 크기의 세월호 모형과 희생자 유품 등으로 꾸며진다. 2층에는 유족 사무실이, 추모관 밖에는 추모비가 설치된다. 학생들을 구조하다 희생된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와 양대홍 사무장의 봉안함도 추모관으로 옮겨졌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The Best 시티] 서울 속 이방인 동네? 역사의 숨결 숨쉬는 동네!

    [The Best 시티] 서울 속 이방인 동네? 역사의 숨결 숨쉬는 동네!

    성장현 구청장 ‘역사 바로세우기’… 유관순길 등 조성 거리에 즐비한 외국 음식점과 간판들,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 관광객, 미군부대 등에서 새어 나온 이국적 문화들. ‘용산’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울 속 이방인 동네’쯤 된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용산에는 백범 김구 등 항일 투사들이 잠들어 있는 효창원과 6·25의 아픔을 추모하는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역사를 기리는 시설이 많다. 용산 향토사학자인 김천수씨는 “김구 선생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의 묘소를 효창원으로 모셔온 건 용산의 역사성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의 특성에 맞춰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여럿 진행해 왔다. 지난해 9월 유관순추모비를 건립하고 유관순길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순국한 뒤 용산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지만, 일제가 군용기지 조성을 위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난 5일에는 충청남도 천안의 유 열사 생가터 인근에서 소나무와 흙을 가져와 추모비 인근에 심기도 했다. 오는 9월에는 유 열사 순국 96주년을 맞아 추모제를 개최한다. 또 한국과 악연을 가진 베트남 퀴논시를 기념하는 테마거리를 이태원에 오는 10월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퀴논시는 베트남 중남부의 해안도시로 베트남전 때인 1965~1972년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구는 1997년 퀴논시와 자매결연한 뒤 관계 회복 노력을 해 왔다. 성 구청장은 매년 1월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효창원의 의열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열사는 백범 김구 등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요인 7명의 영정이 안치된 곳이다. 구는 또 지난 3월부터 구민들에게 용산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는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성 구청장은 “용산의 역사적 가치를 잘 지키면서 여기에 스토리를 더한다면 용산의 매력이 더 커질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용산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The Best 시티] 빗장 풀린 금단의 땅, ‘서울의 허파’ 꿈꾸다’

    [The Best 시티] 빗장 풀린 금단의 땅, ‘서울의 허파’ 꿈꾸다’

    우리 땅이지만 100년 넘게 온전히 우리 것일 수 없던 터. 한국 근현대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껴안은 곳. 200년 된 느티나무 군락지와 사라진 한강의 지천이 원형대로 있는 땅. 무질서한 개발 탓에 맥이 끊겨버린 서울의 녹지축을 다시 이어줄 마지막 고리…. 서울 용산구 면적의 9분의 1(242만 6748㎡)을 차지한 주한미군기지 터는 우리에게 셈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이 주둔지로 택한 이후 일본군, 미군 등 외국군이 군복만 갈아입으며 점해온 금단의 땅이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이 터는 내년부터 주한미군이 경기 평택으로 모두 옮겨가면 자연생태와 역사를 품은 ‘용산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용산구는 용산공원 조성을 발판 삼아 녹색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이다. 폐철로를 걷어낸 자리에 만든 경의선 숲길공원, 용산역 앞 널찍이 자리잡을 리틀링크, 용산참사 터에 들어설 용산파크웨이 공원 등이 효창공원과 용산가족공원, 응봉공원 등 기존 공원들과 어우러져 ‘서울의 허파’가 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미군기지 때문에 구민들은 건축물 고도 제한, 개발 배제 등 피해를 봐왔다”면서 “이 터를 살아 숨쉬는 생태 환경으로 복원해 시민에게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용산구 녹색 비전의 핵심은 당연히 용산공원 조성이다. 현재 용산구의 시민 1명당 누릴 수 있는 공원 면적은 7.2㎡(약 2.2평)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6번째로 적다. 도봉과 은평, 노원 등과 달리 도심이라 남산 일부 외에는 마땅한 산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 1인당 공원면적 2배로 늘린다 성 구청장은 “242만㎡인 용산공원이 만들어지면 인구 1인당 공원 면적이 16.89㎡(약 5.1평)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공원 부지는 여의도 면적의 84%나 되고 서울숲(115만㎡)보다 2배가 넘는다. 특히 산에 있는 서울의 주요 공원·녹지와 달리 평지에 자리잡는 까닭에 시민들이 일상에서 누리게 된다. 뉴욕 중심부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 비견되는 이유다. 공원 조성 공사는 2019년 첫 삽을 뜨고서 9년간 이어진다. 청계천 복원 공사 기간(2년 3개월)보다 4배 길다. 공원을 다 지으려면 앞으로 10년 이상 남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공사가 모두 3단계에 걸쳐 진행되는데 각 단계 때마다 공원을 조금씩 시민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이르면 2019년부터 초대형 도심 공원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2019년부터 3년간 진행될 1단계 공사 때는 기름 등 화학물질로 오염된 토지를 정화하고 미군이 쓰던 시설 중 야구장 등 체육시설과 녹지 등 고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임시 개방한다. 2단계(2022~2024년) 공사 때는 본격적인 공원 조성에 들어가 미군기지 터의 생태를 복원한다. 용산기지 안에는 서울의 옛 도심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200여년 된 느티나무 20여 그루 등 식물 군락지와 한강 지천인 만초천 등이 제대로 된 꼴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 3단계 공사 때는 한미연합사령부 등 용산에서 이전하지 않는 시설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주변지역과 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마무리 공사한다. 공원 조성 때 생태 복원만큼 중앙정부와 용산구가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이 역사성 살리기다. 용산구 향토사학자인 김천수(39)씨는 “용산기지 안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명과 암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130여개나 있다”고 말했다. 1908년 지어져 일본군 장교 숙소로 쓰이다 해방 뒤에는 소련군 숙소, 국군 본부 등으로 활용됐던 현 주한미군 합동군사업무단 건물, 일제의 만주사변 전사자 충혼비를 재활용해 만든 한국전 전사자 추모비, 의병대장 강기동부터 장군의 아들 김두한, 시인 김수영,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까지 수많은 이들이 거쳐 간 위수감옥 등이 대표적이다. 성 구청장은 “공원 안에는 새 건물은 거의 짓지 않고 기존 역사 유적들의 가치를 시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꾸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용산공원 주변으로는 새 도심형 공원들이 들어선다.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발생했던 용산 4구역에는 용산파크웨이가 생기고 용산역 앞을 빼곡히 메웠던 자리에는 리틀링크가 만들어진다. 성 구청장은 “이 공원들이 용산역부터 용산공원,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녹지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맡는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크기의 용산파크웨이(1만 7615㎡)에는 만남의 광장과 소규모 공연장, 정원 등이 들어차는데 2020년 완공된다. 공원 앞으로는 지상 31~43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5개 동이 들어선다. 용산역 앞 공유토지 1만 2000㎡(3630평)에 2020년까지 조성되는 리틀링크는 대규모 공원 또는 광장이 자리잡을 지상층과 지하광장이 조성되는 지하층으로 이뤄진다. ●무차별 ‘개발’보단 ‘삶의 질’ 택하다 용산공원과 주변부 공원이 생기면 그동안 허리가 잘렸던 서울의 남북 녹지축이 복원된다. 최윤종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장은 “북한산부터 북악산, 남산을 거쳐 한강, 관악산까지 이어져야 할 녹지축이 빌딩숲이 된 용산 등 도심에 가로막혀 왔다”면서 “녹지축이 살아나면 서울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 북서지역(가좌~홍대~대흥~공덕~효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경의선 숲길공원 6.3㎞ 중 용산 구간 약1㎞의 조성이 오는 5월 끝난다. 한편에서는 용산에 공원 조성보다는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등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지역 개발 공약이 쏟아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용산과 서울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의 김인수 소장은 “미국 뉴욕에서 1850년대 센트럴파크를 만들 당시 ‘비싼 땅에 무슨 공원을 짓느냐’는 반대가 들끓었지만 이후 뉴욕을 명품도시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면서 “‘센트럴파크가 없었다면 100년 뒤 그만한 크기에 정신병원이 들어섰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시민들의 삶과 휴식에 공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영등포공원이나 서울숲 조성 이후 주변 부동산 가격이 높아졌던 사례를 보면 시민들이 삶의 쾌적성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2004년 미군으로부터 아리랑택시 부지를 돌려받았을 때처럼 행정가적 역량을 발휘해 공원 조성 때 구민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기억합니다 반성합니다

    기억합니다 반성합니다

    걸림돌/키르스텐 세룹-빌펠트 지음/문봉애 옮김/살림터/248쪽/1만 3000원독일사 산책/닐 맥그리거 지음/김희주 옮김/옥당/684쪽/2만 8000원 ‘유럽 공동체(EU)를 이끌고 있는 강대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송두리째 무너진 나라’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나치’…. 독일을 말할 때 떠올리는 인상들이다. 그중에서도 나치의 만행과 세계대전의 주범국은 가장 흔한 오명으로 기억된다.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끔찍한 인종 학살 만행을 저질렀던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었을까. 신간 ‘걸림돌’(살림터)과 ‘독일사 산책’(옥당)은 분열과 통합, 창조와 파괴라는 양극을 넘나들었던 나라 독일을 기억과 반성 측면에서 풀어낸 책들로 눈길을 끈다. ‘걸림돌’이 선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걸림돌 프로젝트’를 통해 기억과 반성을 다루고 있다면 ‘독일사 산책’은 문화재를 통해 독일인들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을 부각시킨 독특한 구성이다. 모두 ‘잊지 않겠다’는 기억의 화두에 천착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유대인 학살은 대체로 나치만의 만행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그 만행 와중에 많은 독일인들은 방관과 침묵, 동조로 일관했다. 그래서 전후 이래로 줄곧 이어졌던 독일의 사죄와 반성은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는다. 실제로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다하우의 옛 나치 포로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대다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감았다’고 사죄했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넋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건립해 놓았다. 그런 국가와 정부 차원의 사죄, 반성과 달리 독일에서는 개인과 소규모 집단의 ‘잊지 말자’는 운동결 몸짓들이 번지고 있다. ‘걸림돌’은 행위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199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감동적인 추모 방식을 소개해 도드라진다. 나치 정권에 희생된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저항 시민, 장애인의 집 앞에 가로, 세로 10㎝ 크기의 황동판을 깔아 나가는 독특한 추모 예식이자 운동이다. 책은 희생자의 이름과 내역을 간략히 적어 깔아 놓은 황동판 속 주인공에 얽힌 사연들을 소설처럼 재구성해 풀어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 소녀의 감동적인 만남과 이별, 유대인과 독일인 부부의 갈등과 파국, 집도 무덤도 없이 끌려가 집단 학살된 집시들, 반나치 조직에 가담해 비참하게 처형된 반정부 운동가…. 그 희생에 감춰진 독일인들의 방조와 침묵이라는 불편한 진실들이 실감 나게 전해진다. 뎀니히의 황동판 걸림돌 표석은 지난해 말까지 유럽 18개 나라에서 5만 3000개가 깔렸고,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유럽인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과거 청산의 몸짓에도 걸림돌은 적지 않다고 한다. 뮌헨의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해 제작된 200개의 걸림돌이 보도에 박히지 못한 채 방치돼 있고 쾰른의 한 변호사는 제 집 앞에 깔린 걸림돌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다고 소송을 걸었는가 하면 뎀니히는 18년간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세 번이나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았다. 걸림돌 프로젝트 반대자들이 100개가량의 걸림돌을 파헤치기도 했단다. 그와 관련해 추천사를 쓴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일갈이 예사롭지 않다. “독일 거리의 표석은 불행한 과거사의 화해를 가로막은 걸림돌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과 독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독일사 산책’은 전 영국박물관장이 직접 건물과 물건, 인물, 장소를 중심으로 독일과 독일인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한 책으로 주목된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박물관장의 지론은 이렇게 요약되는 듯하다. ‘부끄러운 역사조차 분명히 밝히고 단호히 질책하며 미래로 이끄는 자세를 견지했기에 국제사회가 독일을 수용하고 큰 역할을 맡겼다.’ 실제로 저자는 승리의 순간만을 떠올리게 하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띠는 뮌헨 개선문에 주목한다. 나폴레옹전쟁 당시 프랑스와 연합해 독일의 다른 국가들을 공격한 바이에른 군대에 헌정된 뮌헨 개선문에는 ‘승리에 헌정되고 전쟁으로 파괴돼 평화를 역설하는’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 차례 파괴된 사실을 알려주면서 독일의 일부가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함께 담은 것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합일성을 찾을 수 없었던’ 독일의 역사를 더듬어낸 저자의 메시지는 독일 역사학자 미하엘 슈튀르머의 명언과 포개진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역사의 목적은 그런 일이 절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13년 만에 알려진 문재인·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의 ‘인연’… 왜?

    13년 만에 알려진 문재인·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의 ‘인연’… 왜?

    盧대통령 당선자 때 유족 찾아 일일이 위로하며 법률 대책 조언 朴위원장, 13일 文자택 들러 해후 “더민주 입당해 총선 출마 도전”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연이 13년 만에 공개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박성찬(5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문 전 대표가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3개월간 유가족을 조용히 도왔다’고 뒤늦게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제1야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하는 문 전 대표의 13년 전 행적이 뒤늦게 알려지자 일부 야당 지지자는 “역시 문 전 대표는 정치인에 맞지 않는다”면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게 재빨리 알려야 할 정치인이 사골 국물 우려내듯이 수십 차례 우려낼 일을 13년씩이나 감추고 있었다니…”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이런 사연을 올린 박 위원장을 지난 19일 만났다. 그의 기억에 당시 유가족들은 희생자대책위원회가 마련한 대구시민회관에 모여 있었고 국회의원, 장관 등 많은 정·관계 인사가 찾아왔다. 이들 대부분이 대책본부 사무실에 들러 유가족 대표들만 만나고 돌아갔지만 문 전 대표는 행보가 달랐단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충격에 넋을 잃은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하면서 사고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진행될 법률적 절차 조언도 했다. 박 위원장은 “당시 문 전 대표가 누구인지 몰랐다. 대구 모 경찰서 정보 형사가 문 전 대표를 가리키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도운 분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유가족들이 건의한 희생자 추모비와 위령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희생자재단 설립 등을 국무조정실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마 문 전 대표의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월 25일 이후에 문 전 대표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대구 지하철 참사는 민정수석실 업무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 전 대표에게 제안했던 일들은 유가족 간 의견 대립 등으로 여전히 미완인 상태다. 대구 지하철 참사 13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8일 유가족들이 모였을 때 박 위원장은 “항상 회색 양복을 입고 저를 비롯한 유가족들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하던 문 전 대표의 모습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갔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박씨는 지난 5일과 13일에 문 전 대표를 찾아 경남 양산으로 갔다. 5일에는 허탕을 치고 13일에야 면담을 했는데 “세월호 참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 폭력에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백남기 농민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지난 1일 더민주 대구지구당에 입당했다. 그는 “문 전 대표와의 인연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내친김에 비례대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직능별 비례대표에서 사회안전 부문에 배정된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의 공천권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내 손에 있다”고 하는 마당에 그가 13년 전 문 전 대표와의 인연을 밝혔다고 이른바 ‘친노’(친노무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25일 전화통화에서 “현재 당 대의원 500명을 상대로 분주히 뛰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13년 만에 밝혀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인연

    13년 만에 밝혀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인연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들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인연이 13년 만에 공개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다. 박성찬(5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서 ‘문 전 대표가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3개월간 유가족을 조용히 도왔다’고 뒤늦게 올리면서 시작됐다. 제1야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하는 문 전 대표의 13년 전 행적이 뒤늦게 알려지자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역시 문 대표는 정치인에 맞지 않는다”며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 재빨리 알려야 할 정치인이 사골국물 우려내듯이 수십차례 우려낼 일을 13년씩이나 감추고 있었다니?”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이런 사연을 올린 박 위원장을 지난 19일 만났다. 그의 기억에 당시 유가족들은 희생자대책위원회가 마련한 대구시민회관에 모여 있었고, 국회의원, 장관 등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찾아왔다. 이들 대부분 대책본부 사무실을 들러 유가족 대표들만 만나고 돌아갔지만, 문 전 대표는 행보가 달랐단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충격에 넋을 잃은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하면서 사고 대책을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진행될 법률적 절차 조언도 했다. 박 위원장은 “당시 문 전 대표가 누구인지 몰랐다. 대구 모 경찰서 정보 형사가 문 전 대표를 가리키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도운 분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유가족들이 건의한 희생자 추모비와 위령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희생자 재단설립 등을 국무조정실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마 문 전 대표의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월 25일 이후에 문 전 대표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대구지하철 참사는 민정수석실 업무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당시 문 민정수석에게 제안했던 일들은 유가족 간 의견 대립 등으로 여전히 미완인 상태다. 대구지하철 참사 13주기를 앞두고 지난달 28일 유가족들이 모였을 때 박 위원장은 “항상 회색 양복을 입고 저를 비롯한 유가족들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하던 문 전 대표의 모습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갔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박씨는 지난 5일과 13일에 문 전 대표를 찾아 경남 양산으로 갔다. 5일에는 허탕을 치고 13일에야 면담을 했는데 “세월호 참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문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 폭력에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백남기 농민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일 더민주 대구지구당에 입당했다. 그는 “문 전 대표와 인연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내친김에 비례대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직능별 비례대표에서 사회안전 부분에 배정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의 공천권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내 손에 있다”고 하는 마당에 그가 13년 전 문 전 대표와 인연을 밝혔다고 이른바 ‘친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25일 전화통화에서 “현재 당 대의원 500명을 상대로 분주히 뛰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용산구 새내기 공무원들 의열사 참배로 새해맞이

    용산구 새내기 공무원들 의열사 참배로 새해맞이

    용산구의 새내기 공무원들이 순국선열에 참배하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성장현 구청장은 7일 오후 신임 9급 공무원 28명(행정직 26명, 세무직 2명)에게 발령장을 주고서 지역 내 효창원의 의열사를 함께 참배했다. 의열사는 백범 김구 등 일제강점기 상하이임시정부 요인 7명의 영정이 안치된 곳이다. 신임 직원들이 새해 의열사를 참배한 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성 구청장이 새내기 직원들에게 역사의식 갖기를 강조한 건 ‘호국 도시’로서 용산의 위상을 고려한 조치다. 구에는 효창원 외에 전쟁기념관과 유관순추모공원 등 여러 추모 시설이 있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구 예산으로 유관순추모공원 안에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건립하고 인근 도로명을 ‘유관순길’로 바꿨다. 유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순국한 뒤 용산의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일제가 군용기지 조성을 위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성 구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직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공복으로서 소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농어촌청소년대상-본상] 농업 허동수씨, 장수사과 브랜드 확립·봉사도 솔선수범

    [농어촌청소년대상-본상] 농업 허동수씨, 장수사과 브랜드 확립·봉사도 솔선수범

    ●농업 허동수씨 장수사과를 재배하며 지역사회 브랜드 확립과 품종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1500평 농장에서 연 80t의 사과를 생산해 3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전북 장수군 4H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일일주막과 과제포 운영으로 2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하는 등 봉사에 앞장섰다. 해마다 이경해 열사 추모비를 가꾸는 봉사도 하고 있다. 2013년에는 농업인학습단체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 위안부 할머니 특별 묘역·추모비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특별 묘역과 추모비가 국립 ‘망향의 동산’에 조성된다. 여성가족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39분의 묘소가 있는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약 1652㎡(500평) 규모의 특별 묘역을 조성하기로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마쳤다고 16일 밝혔다. 망향의 동산에는 납골당에 봉안된 22위와 매장 묘역에 안장된 17위 등 모두 39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잠들어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6명만 남은 상태다. 여가부는 이 묘역에 숨진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비(조형물)도 세울 계획이다. 이미 이곳에 안장된 39분에 대해선 유가족 동의를 얻어 이장하고, 생존자는 희망 시 이곳에 묘를 조성하기로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내년 3~4월쯤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 제막식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망향의 동산은 일제 침략으로 고국을 떠난 뒤 숨진 재일동포 등 해외 한인들의 안식을 위해 1976년 세워졌다. 일본·중국·대만·홍콩·러시아 등 세계 각국의 동포 영령을 위로하는 위령탑과 묘역·봉안당 등이 있다. 한편 여가부는 내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현재 1인당 월 104만 3000원인 생활지원금을 126만원으로 26% 인상하고, 간병비는 75만 7000원에서 39% 인상된 105만 5000원으로 늘린다. 건강치료비는 35만 6000원에서 37만 9000원으로 늘어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세월호 아이들의 교실 어떻게 할까요

    세월호 아이들의 교실 어떻게 할까요

    오는 6일이면 세월호 참사 발생 600일을 맞는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안산 단원고의 희생 학생 교실을 학교 밖으로 옮기는 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2학년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존치하자는 유가족들과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30일 경기도교육청과 4·16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도교육청은 교실의 책걸상과 칠판, 집기, 유품 등을 학교 인근으로 옮겨 원래 교실 모습대로 재현하는 방안을 유가족 측에 제시했다. 내년 1월에 있을 명예졸업식 이후 안산교육지원청의 별관으로 이전했다가 2년 후 단원고 진입로 옆 시유지(도로부지)에 5층 규모의 가칭 ’4·16민주시민교육원’을 건립해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명예 3학년) 교실 10개와 교무실 1개는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왔다. 학생들이 쓰던 기자재와 유품, 방문자들이 학생들에게 남기고 간 쪽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교실들에서는 시민단체 4·16기억저장소가 주말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추모 프로그램 ‘기억과 약속의 길’을 진행해 왔다. 교실 이전안을 내놓은 교육청 측은 “(해당 교실을 존치할 경우) 교실이 모자라 신입생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논리를 편다. 올해까지는 참사 때문에 3학년 학생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탓에 교실 운영이 가능했지만 12개 반을 새로 구성할 내년부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실이 그 자리에 유지됨으로써 재학생이 공부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학부모들과 단원고 측 입장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명예 3학년 교실을 재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돌려 달라”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청의 제안에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협의회 측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고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44)씨는 “전체 구성원들의 논의를 거쳐야 하지만 현재 각 단위에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존치’가 우세한 상황”이라며 “해당 교실은 기억과 추모의 공간인 동시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상징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반성하는 역사적 현장”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교실 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학습된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박씨는 “교육청 측에서 지역사회와 충분한 협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4·16민주시민교육원 건립을 밀어붙이는 현실이 우려된다”며 “정부가 호언장담하던 세월호 인양도 아직까지 완료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지금껏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당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 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유가족들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로 구성된 4·16교실지키기시민모임도 발족됐다. 권용찬 4·16교실지키기시민모임 실무단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들도 있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유가족들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6일부터 시민모임이 벌인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30일 현재 총 520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단원고 교실 존치 논란’에 시민들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대학원생 이모(25)씨는 “굳이 교실까지 보존해 가며 새로 들어올 학생들에게 불편을 끼칠 필요가 있느냐”며 “그보다는 희생을 애도하는 추모비 등을 세우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부 김모(49)씨는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는 유가족들 마음을 정부 당국이 좀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탈리아 대표팀 ‘39번 영구 결번’ 그 진짜 이유는?

    이탈리아 대표팀 ‘39번 영구 결번’ 그 진짜 이유는?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대표팀 번호 중 39번을 영구 결번 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영구 결번은 팀을 위해 희생하고 불세출의 기록을 남긴 선수 또는 감독의 등번호를 영구히 사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스포츠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특히 축구에서는 영구결번이 나오기 힘들다. 프로축구의 경우 어느 정도 허용이 되고 있지만, 국가대표의 경우 2002 한일 월드컵 이후로 바뀐 FIFA 경기 규칙에 따라 영구결번이 사실상 힘들어졌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경기 규칙 17조 3항에 따르면 ‘모든 선수 유니폼의 번호는 1-23번까지의 번호만 사용하고 3명의 골키퍼 중 한 명이 1번을 골키퍼 번호로 사용한다.’라고 정확하게 명시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1-23번까지의 번호를 피하고 39번을 영구 결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39번을 영구 결번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축구에 관한 지식이 많은 팬이라도 쉽사리 39번을 달고 뛰었던 이탈리아 선수나 39번과 관련 있는 일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다른 의미에서 39번을 영구 결번을 결정했다. 1985년 5월 29일 유러피언 컵 결승전 리버풀 대 유벤투스 경기가 있던 그 날 39명의 (대다수가 이탈리아)팬들이 벨기에 헤이젤스타디움에서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30년이 지난 오늘 카를로 타베키오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의 제안으로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팬들을 기리기 위해 아주리 구단의 39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 39번은 바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팬들을 위한 영구결번이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지난 12일(현지 시간) 목요일 밤 벨기에와 친선전을 위해 브뤼셀에 도착했다. 헤이젤 스타디움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찾은 이탈리아 대표팀은 영구 결번된 39번 유니폼과 헌화를 남겼다. 이날 행사에는 이탈리아 대표팀, 벨기에와 이탈리아 축구협회 대표, 유벤투스 클럽과 헤이젤 참사 희생자 모임 대표가 방문해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이날 추모식 외에도 이탈리아 축구 협회와 벨기에 축구 협회는 금요일 친선전을 앞두고 헤이젤 참사 추모 30주기를 위해 여러 뜻깊은 행사를 준비했다. 경기가 있는 금요일 당일에는 이탈리아와 벨기에 양 팀 선수들이 헤이젤 참사를 추모하는 특별한 플래카드를 함께 들게 된다. 경기 도중에도 특별한 추모식을 하게 된다. 전반 39분에는 선수들이 경기를 잠시 멈추고 경기장 스크린을 통해 헤이젤 참사로 세상을 떠난 팬들의 이름을 보여줄 예정이다. 헤이젤 참사가 있은지 어느덧 30주년이 지났다. 많은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이를 잊지 않고 목숨을 잃은 팬들과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함께하는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노력이 돋보인다. 최용석 유럽축구통신원 fcpoint@hotmail.com
  • “일본 과거 침략 사죄가 우선…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자”

    “일본 과거 침략 사죄가 우선…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자”

    “진정한 애국심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하토야마 유키오(68) 전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이 한국 등 주변국에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5일 오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과 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열린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에 한·일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 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일본의 전·현직 총리가 서울대에서 강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강연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을 제안하면서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받은 국가에 대한 일본의 사죄가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광복 70주년을 앞둔 지난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해 화제를 모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당시 사죄와 관련해 한국에서는 호의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일본에서는 ‘도게자(土下座·땅에 엎드려 조아림) 외교이며 굴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일본에는 아직도 과거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정치적 엘리트층 사이에는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반(反)지성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월 발표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와 관련해서도 쓴소리를 쏟아 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담화에 ‘침략’, ‘반성’, ‘사죄’ 등의 단어가 포함됐지만 아베 총리 스스로는 사죄의 마음을 전하지 않았다”며 “‘러일전쟁은 식민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구절은 그 결과로 식민지가 된 한국인들에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상식은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 연행이 있었는지 여부를 넘어 윤리성이나 위안부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느냐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이미 배상했다고 해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어 “동아시아가 우애의 이념에 입각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각국이 분쟁을 해결하고 대화할 수 있는 ‘동아시아 의회’ 창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 “국가가 교과서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국정화 작업은 시대를 역행하는 게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故 정연승 특전사 상사 추모비 고향서 제막

    故 정연승 특전사 상사 추모비 고향서 제막

    지난달 교통사고 피해 여성을 돕다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고 정연승(35) 특전사 상사의 추모행사가 28일 그의 고향인 충북 충주시 금가면 면사무소 앞 광장에서 열렸다. 추모행사는 금가면 직능단체장과 금가초등학교, 중원중학교, 충주공고 등 정 상사의 출신학교 동문들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이들은 “우리 마을의 의인을 추모하자”며 800만원을 모았다. 300만원으로 2m 크기 추모비를 제작했고, 나머지 성금은 위로금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추모비에는 “어려운 근무 여건에서도 열심히 봉사활동하고, 박봉을 쪼개어 소년소녀 가장을 후원한, 강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특전용사였다”고 기록됐다. 추모비는 면사무소 앞에 있는 역대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공적비 옆에 세워졌다. 어린 시절을 충주에서 보낸 정 상사는 1999년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해 제9공수여단에서 근무했다. 금가면에는 부모가 산다. 고인은 최근까지 경기 시흥의 한 양로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 매월 10만원씩 후원도 했다. LG복지재단은 최근 정 상사를 ‘LG의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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