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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시험 앞으로 한달… 마무리 이렇게

    ◎“점수대 변화 큰 영역 집중 공략하라”/언어­교과서밖 지문 많이 접하는게 중요/수리탐구­어려운 문제보다 기본원리 이해를/외국어­회화 자주 상요하는 표현 암기 필요 「모의 수능시험에서 점수대의 변화가 큰 영역을 집중 공략하라」 한달 앞으로 다가온 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한 마무리전략의 요점이다. 사설 입시전문기관인 중앙교육진흥연구소는 13일 최근 서울소재 A고교출신 대학 1년생 33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모의 수능점수와 실제 점수를 비교·분석한 결과,『점수대의 변화가 큰 영역이 수능점수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며 이같이 충고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400점 만점기준으로 모의 수능점수와 실제 점수 사이에 적게는 15점,많게는 45점까지 차이가 났다.평소 점수가 들쭉날쭉한 영역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 15∼45점까지 수능점수가 높거나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능점수가 250∼299점 사이의 중위권의 경우 모의 수능점수와 0∼45점까지 큰 편차를 보인 반면 350점 이상의 고점자들은 0∼15점의 낮은 편차를 보였다. 중위권의 이같이 큰 편차는 수능문제가 예상외의 범위에서 출제되거나 어려워졌을 경우 점수대가 고르지 못한 영역에서 제 점수를 따지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시험결과를 분석,점수변화가 컸던 영역을 다시 점검하고 목표점수대를 수정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모든 수험생들이 입시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만큼 누가 먼저 마음의 안정을 찾느냐가 마무리 단계에서 성적향상의 변수로 작용한다.또 학부모들이 수험생의 학습 및 생활태도,건강관리등에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자칫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일선 입시지도교사들은 지적한다. 다음은 입시학원들이 권하는 영역별 마무리전략이다. ▲언어영역=사회과 교과서는 물론 교과서이외의 지문을 접할 기회를 많이 갖는게 좋다.「시간확인」훈련도 중요하다.듣기와 쓰기문제에 대한 적절한 시간 배분을 항상 고려해야한다. ▲수리탐구Ⅰ=올해 처음으로 주관식 문제가 출제되는 만큼 수험생들이 다소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너무 어려운 문제보다는 기본원리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한다.복잡한 계산 문제보다 이해·추론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수리탐구Ⅱ=사회탐구분야는 통합교과문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각 사회과목을 요점정리하면 통합교과문제도 풀 수 있다.과학탐구 분야는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과 도표의 내용을 검토하고 시험에 임해야 한다. ▲외국어영역=듣기·말하기평가가 전체의 31%(17문항)나 된다.연음 억양 강세 등에 유의해 테이프를 반복해 듣고 따라 한다.회화에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아예 암기하자.독해력의 경우 한 지문을 1분안에 읽고 답을 찾는 연습을 한다.다양한 분야의 지문이 출제되므로 다독이 필수적이다.〈주병철 기자〉
  • 「위대한 김일성…」아직도 곳곳에 구호·초상화(북한은 지금…:6)

    ◎김정일 「유훈통치」로 권력보전 3년째/「인덕정치」 등 새용어로 통치철학 부각 안간힘/속도전론으로 경제개입… 성장 되레 뒷걸음질 김일성은 죽었어도 그의 통치이념은 여전히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땅에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구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지교시를 철저히 관철하자」 등의 김일성의 구호와 그의 대형초상화가 곳곳에 내걸려 북한주민을 「독려」하고 있었다. 연길에서 만난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남조선 해방」과 「미제국주의 분쇄」라는 논리로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반대세력을 숙청하는 방법을 통해 북한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관측한다.『주체사상의 출발은 지난 50년대 옛 소련시절 스탈린 격하운동과 60년대 중반의 중·소분쟁에 위기의식을 느낀 김일성이 「홀로서기」를 강조하며 고안한 하나의 외교노선에서 시작됐다』고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심지연 경남대교수는 분석한다. 그는 『「사상의 주체」 「경제의 자립」 「국방의 자위」 등을 추가하면서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해 주체사상으로 끌어올렸다』고 덧붙인다.김정일은 바로 이 혁명소조운동을 통해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후계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한 덕분에 주체사상을 수정이나 격하할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중국 사회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카리스마가 없는 김정일로서는 섣불리 새로운 통치이념을 내세우기보다 유훈통치라는 「김일성의 우산」아래 숨는 게 권력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항일투쟁경험이 없다는 게 김정일우상화의 최대약점』이라며 『이 점을 아는 북한당국이 주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베푼다는 「인덕정치」등 새로운 용어를 발굴,김정일의 통치철학으로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김정일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통치이념을 강조하기보다 주민에게 밥을 배불리 먹여주는 경제난해결이다.그러나 김정일이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북한경제는 오히려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다.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북한경제전문가는 『김정일은 60년대 후반 북한학계의 통설이던 경제규모가 커지면 발전속도가 느려진다는 「균형발전론」을 비판하며 인민의 혁명적 열의만이 발전을 가져온다는 「속도전론」을 내놓으면서 경제에 개입했다』며 『속도전론은 74년 벌어진 「70일 전투」를 통해 실물경제에 도입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호위주의 속도전론은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기술혁신의 바탕인 창의력을 말살함으로써 경제난을 부채질하는 근본원인이 된 탓에 개혁·개방 없이는 경제난해소가 요원한 상태다. 북한의 대남정책도 색깔이 없는 듯했다.북한은 유화와 강경(전)을 적절히 구사하는 「양면전략」으로 성과를 거뒀다.겉으로는 남북공존을 강조하면서,속으로는 통일전선전술로 남조선해방노선을 강화하고 한반도문제는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푼다는 이중적인 대남정책을 추진해온 것이다. 북한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정일이 체제유지의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 강경한 입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한다.그가 75∼78년 사이에 대남비서를 지내는 동안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등의 사건주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같은 맥락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동조사에 참가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김정일은 남한에 대해 강경기조 아래 공작을 시도해야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가 주도한 대남정책은 장기구상이라기보다 즉흥적인 발상이 더 많은 것같다』고 분석한다. 김정일의 통치이념은 앞으로도 김일성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같다.부자승계 자체가 기존이념의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인 데다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 여러 정책의 입안·집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등 그의 정책노선은 김일성노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일성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점도 체제변화를 막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여교수 시각/대남정책의 방향/정치적 긴장 조성/경제교류는 확대/이중노선 견지/한석태 경남대교수·한국정치 남북한의 국력격차가 점차 현격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정책은 과거 공세적 정책에서 수세적 내지 공존적 정책으로 변모하고 있다.그리하여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남한과의 교류와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변화를 보여주었다. 비록 최근 북한이 나진·선봉 투자포럼에 남한측의 참가를 무산시키기는 했지만,그동안 경제 회생의 일환으로 남한 기업인들의 참여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구사해 왔다.서방 자본으로부터의 수혈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남한 자본의 유치가 갖는 「전략적 가치」를 고려할 때 그와 같은 북한의 태도에는 앞으로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 이면에 북한은 여전히 「남조선 해방」을 통한 통일이라는 종전의 정책목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이 무력통일이나 남조선혁명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실례라 할 것이다. 그러면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양면적 태도는 어디에서 연유하며,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선 이와 같은 북한의 「양면적 태도」는 대미수교를 의식,미국이 점차 북한의 주적 범위에서 제외되는 상황에서 체제단속과 주민통제를 위해 외부와의 적당한 긴장과 대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제 북한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적대적 의존관계」는 주로 남한에 집중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북한이 끊임없이 대남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남한과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유지 필요성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체제유지 및 생존전략상 남한과 무조건 긴장관계를 유지하거나 사실상 남한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즉 북한체제를 위기로 몰고 있는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남한과의 일정한 관계개선과 경제특구에의 남한 참여가 필요하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따라서 북한의 대남정책이 「이중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한간의 유화­경색국면이라는 일진일퇴가반복되겠지만,남한과의 정경분리 차원의 교류·협력 또는 제한적 개방은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 전문가 분석/공비들 왜 왔나/테러…침략루트 개척…남한 좌익 지원

    ◎하수인 이광수 진술 의존 말아야/대북 혁명 진술 그대로 유지 입증 북한 무장공비의 침투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대다수 북한 및 군사문제 전문가들은 공비들이 잠수함을 타고왔다는 점,또 공비들이 모두 장교인 점등을 감안할때 「특수한 목적」을 띠고 침투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공비들의 침투목적과 관련,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최평길 연세대교수=북한 공비의 침투목적은 세갈래로 관측된다.첫째는 북한이 어떤 큰 전략적 목적을 세우고 그 루트를 개척하고 우리의 방위태세 전반을 살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둘째는 현재 남한을 근본적으로 교란시킬 힘이 없는 북한이 한총련 등 남한내에서 북한 동조세력을 고무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히트 앤드 런 식으로 강릉비행장의 군용기는 아니더라도 민간기를 탈취하거나 폭파하려 했는지도 모른다.셋째,북한의 강경 군부세력이 김정일에게는 통상활동이라고 보고하고 이런 도발을 감행,나진·선봉 개발 등 개방파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고 강경주장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침투 잠수함의 일부 승조원이 사살된 것도 기밀누출을 두려워한 행동일 수 있다. ▲장명순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공작원들의 목표는 비밀유지를 위해 운송요원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게 상례다.폐쇄적인 북한사회에서는 더욱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공작조원도 목적을 자세히 모를수 있으며 조장 정도가 최종 침투목적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때문에 생포간첩 이광수의 진술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정밀한 검토가 요구된다.잠수함에 탄 인원의 구성과 그들이 가졌던 화기 등을 보다 정밀하게 따져봄으로써 침투목적이 추론될 수 있을 것이다.해상처장이 잠수함에 탔던 것 등을 북한 군편제 등에 대입시켜 정밀분석하는 작업을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동해안에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의 임무는 남한을 무력으로 뒤집어엎을수 있는지의 여부를 점검하러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따라서 이번 침투사건은 북한이 아직 대남혁명전략전술을 버리지 않았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남한과 북한은 이미 체제경쟁이 끝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엄밀하게 말하면 아직도 남한체제에는 취약성이 있다.북한에 동조하는 좌익세력이 엄존하고 있고,한총련과 같이 화염병을 던지며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도 있다.따라서 북한이 보기에 남한은 살짝만 밀어도 넘어질 정도로 취약한 존재일 수도 있다.북한은 무력으로 남한을 침공하면,북한에 동조하는 남한내 좌익세력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날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마치 6·25전쟁을 앞두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남한의 남로당이 총궐기할 것이라고 오해했던 것과 같다. ▲김창순 북한연구소 이사장=북한공비들 가운데 침투 파괴요원 숫자가 얼마되지 않는다.그러나 지난 83년 아웅산 테러사건도 북한 정찰국이 주도한 점을 감안하면 테러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북한정찰국은 기본적으로 정찰 업무를 맡고 있다.독자적으로 비행장을 포함해 침투시 파괴대상이 뭔지를 파악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대남전선을 재건하기위해 고정간첩망을 통해 지령을 하달하는 임무도 있을 수도 있을 것같다.또한 한·미관계를 약화시키고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것으로도 분석된다.이런 차원에서 도발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예를들어 연대규모의 군사시위나 국지적인 군사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북한의 대남전략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다.이번에 침투조들이 와서 클로즈업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더 약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북한 공비들이 단순한 해상침투를 목표로 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그보다는 공격목표를 설정하거나,나아가 특수전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 침투했을 가능성도 있다.테러 파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북한 특수공작조는 하룻밤에 1백리를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앞으로 특수장비들이 발견된다면 침투목적으로 보다 정확히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 북 잠수함 왜 무리한 접안 시도했나

    ◎거물간첩 월북·요인납북 기도 추정/공작대상은 노출되면 안되는 거물/대좌 직접 현장지휘 “최소 이선실급”/“대좌사살도 공작대상 감추기 위한 것” 분석 북한 잠수함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해안접안을 시도했을까. 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 잠수함이 좌초되면서 표면화됐다.만약 통상적인 수법대로 잠수함을 해안에서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 정박시켜 놓고 침투와 귀환을 반복했더라면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포된 공비 이광수의 진술로 볼 때 북한 잠수함은 지난 15일부터 3차례에 걸쳐 강릉시 남쪽 해안 30∼40m 지점까지 접근했다.특히 17일 밤에는 해안에 잠수함을 붙이는 접안을 시도하다가 모래와 바위에 걸려 좌초되면서 18일 0시20분쯤 택시운전기사 이진규씨에게 발각됐다. 잠수함의 접안시도는 전례 없던 일이다.북한이 간첩을 남파할 때 잠수함이나 잠수정을 해안에서 1백m이상 떨어진 곳에 정박시킨 뒤 소형 상륙정이나 헤엄을 쳐 상륙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안에서 사람이 직접 잠수함에 직접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육지에 바짝 붙이려 했다.3백t이 넘는 잠수함을 해안선에 3번이나 바싹 근접시켰고 마침내 접안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대남 전문가들은 거물급 간첩의 월북이나 남한의 요인 납치공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육지에서 해상의 잠수함으로 옮겨타기까지 노출시간을 최소로 줄여야 할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 이번 공작대상에 포함됐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 19일 청학산 정상에서 발견된 11명의 시체 가운데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장인 대좌(대령급)와,부처장인 상좌(중령급)가 포함된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대남 해상침투업무의 실무 최고 책임자인 해상처장이 직접 지휘를 하거나 영접해야 할 정도로 거물이 공작대상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은 6·25이후 최고의 거물급 간첩으로 꼽히는 북한 연락부 부부장급인 이선실이 강화도 해상에서 월북할 때도 이번과 비슷한 「영접」을 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탑승자 전원이 장교인데다,승조원들이 출발 때부터 한국산 청바지와 운동화로 위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청학산 정상에서 사살된 채 발견된 11구의 시체 가운데 대좌·상좌 등 고급장교들이 포함된 것도 공작대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비밀 공작내용은 해상처장과 부처장,침투조 3명 등 5명 정도만 아는 극비사항일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러한 추론이 사실이라면 생포된 이광수는 「공작내용」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 무장공비 11명의 집단자살/양승현 정치부 차장(오늘의 눈)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강릉 청학산 능선 해발 3백여m에 자리한 빈터 남쪽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무장간첩 11명의 집단 자살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40대 책임자가 1명씩 쏴죽이고 자신이 마지막에 자살한 것 같다고 한다.현장정황에 따른 추론이지만 현재로는 달리 설명할 뾰족한 묘안이 없다.도주중인 무장공비들이 자기들의 안전한 탈주를 위해 위장하려고 집단사살한뒤 옮겨놓은 흔적도 없고,그렇다고 권총이 한자루 밖에 없었으니 나란히 서서 동시에 자살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찌됐건 이 과정에서 적어도 한두명쯤은 반항했을 법도 한데,그런 흔적 또한 없다고 한다.한사람 한사람이 차례를 기다리면서 옆자리 동료의 죽음을 지켜봤다는 얘기밖에 안된다.그들도 북녘땅에 부모형제가 있고 어떤이는 사랑하는 처자까지 있었을 텐데….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키 어려운 충격적인 「현실」이다. 좌초된 잠수함에서 이들이 쓴 김정일을 향한 「충성서약결의문」이 발견됐다고 한다.『우리 영웅들은 절대로 죽지않고… 명령은 곧 승리였고… 적화통일의 그날을…』이라는 내용을 보면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 같다. 자유사회에서도 간혹 이런 일이 벌어져 사회전반에 충격을 주곤 한다.우리나라에서도 지난 87년 30여명이 집단자살한 이른바 「오대양사건」이 있었고,세계적으로는 93년 미 텍사스주 와코에서 다윗파교도 80여명이,94년엔 스위스 한 농가에서 태양사원 광신도 48명이 그릇된 「믿음」을 위해 스스로 불을 질러 집단자살한 적이 있다.그러나 상상을 초월한 이러한 탈선은 자유주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모두 「집단히스테리」 증세에 빠진 사교집단의 광신교도들이나 저지르는 경악스런 행각일 뿐이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몇몇 대학생을 빼놓고 북한이 이미 사교집단화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그런 점에서 이들의 집단자살은 북한의 광신적 교조주의가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드문 실례인 셈이다.죽음을 불사하는 그들의 체제에 대한 맹목적 「광신」의 깊이와 그 해악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를 깨우쳐준다. 우리의 「민족우선」을적용할 수 있는 북한의 봄은 언제쯤일까 안타깝다.
  • 김일성 별장 관리인·주방장 자살설/김 사망 의혹 캘 “열쇠”

    ◎정부,최근 방북 일 소식통서 첩보 인수/김정일과 격론중 쇼크사 가능성 높아/「부자간 알력」 목격자 제거 타살일수도 지난 94년 북한 김일성의 돌연사의 원인은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그의 2주기가 지나도록 생전에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지연되고 있는 것도 미스터리다. 이처럼 북한권부의 깊숙한 속사정을 파악하기는 「숨은 그림찾기」보다 어렵다.하지만 이같은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될 의미있는 첩보가 최근 정부당국에 입수됐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26일 『김일성별장인 묘향산 특각의 관리책임자와 주방장등이 집단자살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북한을 방문하고 온 일본측의 한 유력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충격적인 첩보다.이 소식통은 이에 앞서 북한당국은 김일성사망직후 묘향산별장의 기쁨조·호위병 등을 포함한 근무자 전원을 교체했다고 귀띔했다. 김일성별장을 무대로 한 일련의 특이동향들은 김일성의 돌연사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추론이다.그가 죽기 전해인 93년부터 북한권부에 형성된 몇갈래 심상찮은 기류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우선 김일성의 실제 김영주가 18년만인 93년 하반기 일약 부주석으로 재기한 사실이 그 하나다.그는 70년대 중반 김정일과의 후계경쟁에서 밀려난 이후 장기 은둔중이었다. 또 김정일에게 권한을 대부분 이양했던 김일성도 94년 봄부터 죽기 직전까지 경제문제는 물론 핵문제까지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그가 정상회담 준비를 직접 진두지휘하는 동안 김정일은 이례적으로 활동이 뜸했었다. 더욱이 핀란드대사로 나가 있던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이 김일성사망직전 돌연 평양에 들어왔다.이로 인해 김일성이 김정일의 국정수행 및 정권장악능력에 회의를 품고 전면에 재등장했다는 일부 관측이 제기됐었다. 김일성사후 북한당국은 그의 사인을 심근경색에 의한 쇼크사로 발표한 바 있다.물론 일각에선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근거가 희박했다. 정부의 다른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김일성은 평양의 주석궁(금수산 의사당)이 아닌 묘향산 특각에서 죽은 게 확실한 것 같다』고 밝혔다.당시김일성은 이 별장에서 당정치국회의를 소집,남북정상회담 등 현안을 논의중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 자리에는 김정일도 참석했고 「격론」을 벌이던 중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게 지금까지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한 당국자가 재구성한 시나리오다.이같은 시나리오는 김일성사망직후에도 한때 나돌았으나 이번에 묘향산 별장 관리인과 주방장의 자살이 전해짐으로써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이들이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에 자살했는지 아니면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구본영 기자〉
  • 김정일 체제는 확고한가/김일성 사망 2년… 북은 어디로 가고있나

    ◎국가 주석없이 아직도 유훈통치/당·군 장악 방편으로 3년째 「후광」 의존/「권좌」 등극은 식량난 등 현안 해결이후 8일로 50년 가까이 한반도 북반부에서 무소불위의 철권을 휘두르던 김일성이 죽은지 2주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망령은 아직 북한을 떠나지 않고 있다.주체사상이나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 등 그가 남긴 유산이 아직도 북한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권력 장악력이 「유훈통치」라는 이름으로 아들인 김정일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생전에 후계자로 지명했던 김정일의 공식 1인자 등극절차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당 우위사회인 북한의 최고 권력직인 당총비서와 대외적으로 국가수반임을 나타내는 국가주석직이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김일성이 죽을 때까지 갖고 있던 또 다른 요직인 당중앙군사위원장직도 아직 「세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다.김정일이 과연 확고한 권력기반을 갖고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김의 권력장악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게 다수설이다.권오기 통일부총리도 최근 북한체제에 대해 『북한의 언저리는 무너지고 있으나 (김정일이) 당과 군을 틀어쥐고 있어 그런대로 통치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이 이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안병준 교수(연세대)는 한 세미나에서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와 관련,『아직도 김일성 후광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족통일연구원의 정영태 박사도 비슷한 견해였다.『김정일의 권력기반 이상을 감지할 만한 결정적 징후나 북한내 권력이동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분석의 이면에는 김정일이 필요에 의해 승계 시점을 자의로 늦추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그로선 경제난 타개도,이렇다할 대외적 업적도 없는 현상황에서는 이른바 「유훈통치」에 기대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그의 승계 시점은 북한이 당면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이후가 될 것이다.3년상 운운하는 것은 구실일 뿐 식량난 해결 등 여건의 호전을 기다리고 있다는 추론이다. 현재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최고사령관 등 군사직위로만 국정전반을 지도하고 있다.주요 활동도 군관계 행사에만 치중하고 있다.지난해초부터 올6월까지 50여회의 김정일의 공식활동 중 30여회가 군 행사였다. 이 때문에 김이 확고하게 북한 권부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수설도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심지어 아무런 카리스마도,군경력도 없는 김이 군부 강경파의 등에 업혀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나아가 더 주목할 만한 지적도 있다.북한의 중요 정책이 당 정치국 및 인민군 핵심 인사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이른바 「당적지배체제」가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북한의 기득권 세력들이 체제붕괴나 공멸을 막기 위해 김을 명목상으로 받들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폐쇄회로」체제인 북한의 특성상 이같은 견해들의 진위를 당장 가리기는 어렵다.다만 김정일체제의 공식 출범도 군부가 아닌 당·정 중심의 평시체제로 환원될 때까지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구본영 기자〉 ◎김일성 사후 주요 북한일지 ◆94.7.8 김일성,82세 일기로 사망 ◆7.19 김일성 장례식 거행 ◆8.5 북­미 제네바 3단계회담 시작 ◆8.13 북­미 관계개선­북핵동결 합의 ◆12.22 북한,영공개방 방침 발표 ◆95.1.9 북한,미국상품반입 및 미국선박 입항허용 발표 ◆2.25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4.10 북­미 직통전화 개통 ◆5.26이성 국제무역촉진위원장,일본에 쌀 요청 ◆5.30 북,86우성호 나포 ◆6.13 북­미 준고위급회담,경수로협상 타결 ◆6.21 남북 북경차관급회담,대북 쌀제공 합의 ◆7.8 김일성사망 1주년,시신공개 ◆8.18 북,사상최악의 수재공표 ◆10.10 김정일,당창건 50주년기념 군열병식 참석 ◆12.26 북,우성호 생존선원 유해 송환 ◆96.2.14 조명길 북한군하사,평양주재 러 무역대표부 난입 ◆2.22 외교부대변인,대미 평화협정전단계인잠정협정 제의 ◆4.4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DMZ 관련 임무일방 포기선언 ◆4.5 무장 북한군 1개중대판문점 공동 경비구역 북측구역 투입 ◆6.14 북경비정 3척,서해북 방한계선 침범 ◆6.14 북­KEDO 경수로 관련 통행­통신 의정서 타결 ◆6.17 남북 유엔군축회의 가입
  • 21세기 경제장기구상서 나타난 「2020년 생활상」

    ◎음성으로 PC 조작… 청소·간호로봇 등장/암·치매 정복… 도로 지능화로 정체 사라져/안방서 해저관광·여행은 자가용비행기로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고 누구든지 말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다.전화기를 들면 자동통역시스템이 작동돼 지구촌 어느 나라 말로도 대화를 나눌수 있다.모든 도로가 지능화돼 나들이를 할때 교통사고와 체증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주말 여행엔 국산 자가용 비행기가 사용된다.지방질이 많아 걱정인 사람은 극소형 휴먼 로봇을 핏줄에 들여보내 콜레스테롤을 제거시킬수 있고 인공장기와 각종 치료제 개발로 인간의 수명이 대폭 늘어난다. 이상은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니라 「21세기 경제 장기구상」의 과학기술 부문 계획을 맡은 「과학기술반」이 구체적인 국가 연구개발 계획에 의거,2020년의 생활상을 밝힌 것이다.각계 전문가들이 21세기 핵심 전략과제를 중심으로 정리한 「주요 과학기술분야별 2020년의 생활상」을 소개해 보면. ◇정보·전자 기술분야=음성인식 컴퓨터가 개발돼 키보드없는 컴퓨터가 실용화됨으로써 남녀노소누구든지 컴퓨터를 쓸수 있게 된다.슈퍼컴퓨터보다 4천배이상 빠른 광컴퓨터와 1백만개 이상의 뉴런(신경망)으로 사람처럼 추론을 하는 신경망 컴퓨터가 개발된다.가상현실 기술이 실용화돼 의대생들이 시체없이도 해부학 공부를 하고 집안에서 우주 여행이나 깊은 바다속 관광을 즐길수 있다.지구 위치 측정시스템(GPS)이 완전 실용화돼 시계0 상태에서도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시각 장애인의 길 안내 역할까지 하게된다. ◇기계·설비 기술분야=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에너지를 얻는 전지를 쓰는 무공해 전기자동차가 거리를 달리고 시속 4백㎞급 한국형 고속전철이 전국을 1일 출·퇴근권으로 연결한다.도시내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자기부상 열차가 이용된다.공장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로봇이 이용돼 청소로봇,간호로봇의 서비스를 받게 된다. ◇소재·물질·공정기술 분야=상온초전도체가 개발돼 에너지 손실이 전혀없는 초전도 송전시스템이 실용화된다.자동차 항공산업에 필수적인 초고강도,초내고온 복합 재료가 개발돼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이 크게감소된다.생분해성 고분자재료,생리 활성 무공해 농약 사용으로 토양오염이 줄어든다.꼭 필요한 곳을 찾아가 작용하는 지능형 약물전달 시스템이 개발돼 질병치료 효율성이 높아진다 ◇에너지·자원기술분야=차세대 경수로가 실용화되고 방사성폐기물 처리기술이 개발돼 원자력이 주요 에너지원으로 정착된다.동시에 풍력발전,태양광발전,조력발전,파력발전등 대체 에너지 발전사업이 농어촌지역에서 각광을 받아 새로운 사업계층이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역이동,활기찬 지역 사회를 형성한다.심해저 고품위 광물과 석유개발,지하공간 실용화등 자원기술 이용이 활발해지고 40% 이상의 변환 효율을 갖는 적층 태양전지가 보급된다. ◇의료·보건 기술분야=암이 정복된다.각종 난치병과 노인병 치료법이 개발돼 치매로 인한 노인의 푸대접이 사라진다.인공 피부,인공혈액등 뇌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인공장기가 개발되고 원격 자동 진단기능을 갖는 의료복지 전산망이 구축돼 어디서나 병원을 이용할수 있다. ◇환경기술분야=오존층 파괴물질인 프레온가스의 대체품이 실용화되고 도시쓰레기 소각로,수질정화기술,고효율 폐기물 소각로가 개발돼 쾌적한 환경으로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된다. ◇생명공학기술분야=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꽃을 피워 인터페론과 같은 희귀 의약품과 백신 호르몬 효소 면역제품과 같은 신약들을 양산한다.초능력 미생물(슈퍼 버그)의 개발로 물을 광분해,무공해 에너지원인 수소가스 생산과 대체에너지 개발이 이루어진다.고생산성 생물자원의 생산및 이용기술이 등장해 제2의 녹색혁명이 일어난다. ◇교통기술 분야=도시교통 흐름을 최적 제어하는 도로 교통 관제시스템이 실용화돼 차량 정체현상이 사라진다.대용량·초고속 충전 전지가 개발돼 전기자동차가 거리를 달린다.자동운전과 충돌사고 방지 기능은 물론,내부 결함을 자동적으로 알아내는 기능을 갖춘 지능형 자동차가 나온다.선박의 부력과 수중익의 양력,공기압을 적절히 조합한 선박이나 속도가 증가되면 공기의 양력에 의해 수면위를 활공할수 있는 새로운 선형의 고속선이 승객과 화물을 싼값으로 신속히 수송한다. ◇거대과학기술분야=1백인승 국산 중형 제트 여객기와 속도 마하 4,정원 3백명으로 태평양을 2시간 이내로 횡단할수 있는 국산 여객기를 이용해 국내외 여행을 하게된다.국산 경항공기가 국내 장거리 여행에 이용되며 자가용 항공기 시대가 도래한다.국내에서 각종 인공위성을 쏘아 항공·우주 선진국에 진입한다.해양 도시가 건설돼 인간의 생활이 바다로까지 확대된다.〈신연숙 기자〉
  • 미·소데탕트 냉각틈타“남침 충동”/북「대남도발 기도」75년 정황

    ◎유신이후 반독재투쟁 가열 “호기” 판단/김일성,「75년 월남공산화」로 크게 고무 김일성이 지난 75년 남침을 기도하려다가 중·소등의 반대로 포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사실은 22일 경남대와 미국의 아메리컨대가 시내 힐튼호텔에서 공동개최한 「21세기 한국의 통일전략」이라는 국제학술회의에서 발레리 데니소프 러시아 외무부 아주국 제1부국장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그가 한반도 이면사에 정통한 인사라는 점에서 상당한 신빙성을 지닌다. 물론 그의 증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이 75년을 전후한 시기가 제2의 한국전 발발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로 보고 있다.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상황이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의 유혹을 느끼게 할 소지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우선 국제적으로 70년대 초반에 시작된 미·소간의 데탕트가 70년대 중반이후 역류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73년의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미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실종되다시피한 미국의 약세를 틈타 북한의 맹방이었던 구소련이 세계 도처에서 군사적 모험을 감행했다.75년 앙골라내전이 그 신호탄이다. 70년대 초반의 국제적 데탕트 기미와 더불어 시작된 남북관계의 「반짝 화해국면」도 73년8월 북한의 일방적 대화중단성명으로 긴장국면으로 회귀했다. 71년말부터 시작된 적십자회담과 비공개접촉의 결과로 남북은 역사적 「7·4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등 3원칙을 우리측과 전혀 달리 해석한데서 알 수 있듯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한 대남 혁명전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확인됐다. 북측은 「7·4남북 공동성명」상의 자주원칙을 주한민군 철수로,평화원칙을 남한의 군현대화중지로,민족대단결을 남한사회의 민주화 및 각계각층 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보장으로 해석했다.60년대초에 시작된 4대 군사노선으로 70년대초에 이미 전쟁준비를 완료하다시피한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당연히 남침의 기회를 노린 분위기조성에 다름 아니라는 관측을 낳았다. 여기에다 당시 남한의 어수선한 국내사정이 김일성의 「오판」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72년 유신체제가 단행됨에 따라 74년이후 대학가의 반정부시위와 야당측의 반독재 장외투쟁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이에 따라 긴급조치가 잇따라 선포되고 급기야 75년 휴교령이 내려지는등 정국불안이 극도로 가중됐다.당연히 북측은 호기를 맞았다는 자체판단을 했다는 추론이다. 특히 75년 월남의 공산화는 김일성을 결정적으로 고무시켰다.이후 돌연 중국 북경을 방문하는 등 김의 발빠른 대응이 이를 짐작케 한다.나아가 72년을 기점으로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압도하기 시작하자 김일성은 더욱 초조감을 느꼈음직하다는 분석도 있다.이를테면 김덕전안기부장이 학자시절 발표한 한 논문에서 『북한의 경제적 열등감은 북측으로 하여금 남북교류에 저항적 자세를 보이게 했다』고 지적한 점이 이같은 시각을 대변한다.〈구본영 기자〉
  • 북한 군부 입김 세졌다/뺏겼던 군수사권 회수·평양출입도 통제

    ◎김정일 업고 사실상 통치의 축 부상 관측 『군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3일 이같은 냉소적 유행어가 최근 북한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북한의 오랜 주민선동용 구호가 최근 이렇게 변용되고 있다는 것이다.김일성 사후 북한군부의 입김이 강화됐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이처럼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요즈음 북한군부의 위상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이를테면 북한 인민무력부가 그동안 정무원 사회안전부의 권한에 속했던 군수사권을 회수한 사실이 그것이다. 한 당국자는 13일 최근 방북자들의 말을 인용,『사회안전부가 그동안 가졌던 군에 대한 수사권 및 재판권이 최근 인민무력부로 인계됐다』고 귀띔했다.이에 따라 『군인은 현행범이라고 하더라도 체포 즉시 해당군 수사기관으로 이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민군들의 강·절도등 범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범죄군인의 군수사기관 이첩과정이 복잡하고,실제 처벌되는 경우도 거의 없어 사회안전부가 범죄 군인들의 체포에 극히 소극적인 탓이다. 이와 함께 과거 사회안전부가 맡았던 평양 입출입 통제도 근래에 들어 인민무력부 산하 호위사령부가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또 제2경제(군수사업)부문은 군부가 완전한 독자노선을 걷는 바람에 당·정이 재정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등 통제불능 상태라는 얘기도 들린다. 때문에 김일성 사후 권력과도기를 틈타 군부가 김정일을 등에 업고 사실상의 통치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심지어 미 일리노이대학의 고병철 교수와 단국대 김학준 이사장등 일부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은 국가 최고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북한헌법에도 없는 「임시위원회」의 존재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이 임시기구에서는 군부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김일성 사후 최고인민회의나 당중앙위 전원회의 등이 전혀 열리지 않고 있음을 근거로 한 추론이다.〈구본영 기자〉
  • “중국의 5·4운동은 사상과 지식혁명”(해외사설)

    「5·4운동」77주년이 막 지났다.인민일보는 기념사설을 실었고 북경대학에선 「5·4」청년절 기념식이 열렸다.이 기념식에는 북경 65개 대학의 당 및 학생회 간부 2천여명이 참석했으며 정치국위원겸 국무원부총리 이람청은 「조국의 미래와 청년의 역사임무」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청년들은 1919년에 애곳,북경에서 젊은지식인들에 의해 벌어졌던 한 감동적인 운동을 되새겼을 것이다.당시 북경의 학생들은 베르사유조약과 국권상실의 치욕을 반대하는 의거를 시작,시위·파업·철시 그리고 군벌정부의 체포학생 석방과 내정 및 외교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다. 「5·4」운동의 의의는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는 애국주의 운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더 큰 의의는 사상과 지식 혁명이라는데 있다.대규모 현대화운동이며 전통의 비판과 옛것에 대한 재평가,민주와 과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현대적이고 문명적인 중국을 건설해 보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5·4」운동 전후의 전통봉건 및 유교타파 현상을 놓고 문화혁명과 같은 의미에서 평가하는 시도도 있다.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이 운동이 지식사상 혁명이며 이성과 설득,논리적인 추론으로 맹목적 숭배와 교조주의를 대체하려는 운동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5·4운동정신」의 요체는 전통 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이성과 지식을 소중히 하고 이를 보편화하려한 노력에 있다.이견과 이의를 포용하고 학생과 지식인이 제기한 당국자와 다른 의견도 포용하는 것이 바로 5·4운동 정신이 지향한 점이다.오늘날까지 이 운동을 기념하고,전진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4운동 77주년인 바로 그날,우리는 당국자와 이견을 지닌 북경대 대학원생이었으며 89년 민주운동 기간중 북경의 대학생 자치연합회 지도자였던 한 젊은이가 만기출옥한 뒤 공안의 감시와 핍박으로 집도 직업도 없이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미국으로 탈출했다는 슬픈 소식에 접했다. 북경대의 기념식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이 소식을 알았다면 류강,그 자신이 물었던 질문을 똑같이 되풀이 했을지 모르겠다.「중국은 이처럼 거대한데 왜 일개 서생조차도 수용할 수가 없는가」하고.
  • 4자회담과 평양­워싱턴 접촉 전망(한반도 새질서 구축될까:4)

    ◎북,대미 대화채널 확대 노릴듯/미사일회담이어 내주 유해송환 협상/외교·국방당국자 인적교류 빨라잘듯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6일 제주도 정상회담을 통해 제안한 4자회담은 미국과 북한 접근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지난 93년 북한핵 문제가 터져나온 이후 북·미간의 관계개선은 남북관계와 「조화,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한·미간에 합의된 원칙이었다.그러나 정부는 클린턴 대통령 방한전날인 15일 발표한 「제주도 3원칙」을 통해,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이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북·미 접근에 제동을 걸지 않겠다는 변화된 입장을 밝혔다. 현재 미국과 북한간에는 94년 10월의 제네바합의에 따라 ▲연락사무소 설치등 전반적 관계 개선을 논의하는 뉴욕 채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 외교부,원자력총국간의 경수로사업 협의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경수로 사업은 이미 정치적 합의를 거쳐 기술적,실무적인 궤도에 오른 상황이어서,KEDO채널을 통해 북·미간의 관계 개선 논의가 이뤄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북·미 관계 개선의 가장 상징적인 조치가 될 워싱턴∼평양간의 연락사무소 설치는 실무선에서 기술적 협의를 끝낸 상황이지만,북한 외교부와 군부간의 이견 때문에 최종 합의가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향후 북·미관계 개선의 단기적 가늠자는 20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대량파괴무기 방지에 관한 회담」,즉 미사일협상이 될 것 같다.정부 일부에서는 여전히 『베를린 회담의 의제는 미사일과 생·화학무기의 확산방지가 될 것이며,그외의 문제는 논의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실무선에서는 이미 북한이 평화협정등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미국측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 협상에 이어,다음주중 미국 뉴욕에서는 한국전 참전 미군유해 송환과 관련한 북·미협상이 벌어진다.미국측에서 국방부의 제임스 울드 부차관보,북한측 김병홍 군축연구소장이 참석하는 이 회담은 지난1월에 이어 두번째 열린다.이 회담은 북·미 군당국자간의 채널이 유지된다는 의미를 갖는다.북한측은 이 회담에서 판문점에서의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군장성간 회담을 갖자는 제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회담 성격의 채널과 함께 양국 외교,국방 당국자간의 인적 교류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초 워싱턴을 방문하려다 취소했던 이형철 외교부 미주국장의 방미등 고위당국자간의 접촉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미국과의 접촉에서 4자회담의 수용가능성을 계속 시사하면서,미국과의 직접대화 채널을 확대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테러지원국 제외등 북·미관계 개선을 반영하는 조치들이 잇따를 수 있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때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4자회담의 나머지 두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을 「소외」시킨 일방적인 독주는 되지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남한을 포기하겠느냐』고 그러한 가능성을 일축했다.이 당국자는 『북·미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미국이 일관되게 제시하는 핵동결 유지와 유해송환,미사일 통제,테러포기,인권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면서 『남북대화가 해결되지 않으면,북·미 관계는 실질적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당국자는 또 『정부가 4자회담에 중국을 포함시킨 것은 북·미관계의 일방적 개선을 견제하기 위한 뜻이 담겨있다』고 말했다.〈이도운 기자〉 ◎북한/4자회담 놓고 딜레마에/수용땐 경제혜택 크나 체제동요 걱정/거부하면 국제사회서 고립 불가피 한·미 양국이 공동제의한 4자회담에 대해 북한당국이 수용이냐,거부냐의 갈림길에 섰다. 북한은 한·미 두나라가 4자회담을 제의한지 사흘째인 18일 그 현실성을 검토중이라는 공식반응을 보였다.북한 외교부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과의 회견에서 『4자회담 제안이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유보적 반응은 북한당국이 득실 계산에 골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즉 수용 또는 거부했을 때의 손익계산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이처럼 전례없는 중간발표 형식의 입장표명을 했다는 추론이다. 북한은 당면한 식량위기나 경제난 해결을 위해서는 개방을 선택해야 하나,체제동요를 우려해 이를 결행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4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어정쩡한 반응이야말로 그같은 진퇴양난의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북한이 4자회담을 수용한다면 많은 「당근」이 기다리고 있다.미국은 이미 북한의 수용여부에 따라 미국 현지법인의 북한투자 허용,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에 미기업 진출등 추가 경제제재조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대북 투자 상한선 확대등 경협확대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북한이 미·중이 포함되는 4자회담을 거쳐 궁극적으로 남북 당사자간 대화에 응하다면 그들에게 절실한 식량 추가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우선 김정일이 김일성 생전의 노선을 포기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인 탓이다. 독재체제 유지에 필요한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정일은 지금까지 죽은 김일성의 후광에 기대는 이른바 「유훈통치」에 의존해왔다.따라서 이를 하루 아침에 포기한다면 군부등 강경파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 강경세력은 외부사조,특히 남한사정이 북한내에 전파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따라서 남한을 계속 「주적」으로 묶어두면서 고의적 위기조성으로 체제결속을 도모하는게 낫다는 편리한 생각을 버리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북측이 끝내 개혁·개방의 대세를 거부한다며 대외적 고립과 최악의 경제난이 더욱 심화되어 체제와해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때문에 북측은 4자회담 제의를 정면 거부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변형된 제의라는 국면전환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지적이다.이삼로 태국주재 북한대사가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회견에서 『평화협정에 한국을 옵서버로 참가시키는 문제를 미국과의 회담에서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그같은 술수를 예고하고 있다. 나아가 북측이 최종입장은 유보한 채 다른 편법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계속적으로 대화성사 가능성을 내비치며 미국과는 미사일회담과 미군 유해송환협상을 통해 대화채널을 확보하는등 사실상의 북·미 양자 구도로 끌고가려는 기도이다.〈구본영 기자〉
  • 전두환­김석원씨 어떤 비록있나

    ◎「성곡」 은혜입은 전씨,아들에 각별한 애정/화끈한 보스기질 비슷… 개인적으로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석원 쌍용그룹 고문과의 관계는 뭘까.전씨의 비자금 1백43억원을 지난 93년 김씨가 변칙 실명전환해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사람의 인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사람은 93년 11월의 골프장에서 만났다.이 자리에서 전씨가 88억원의 채권매입을 김씨에게 부탁했고,이게 여의치 않자 다시 채권의 실명전환을 부탁했다.김씨측은 「평소의 의리를 생각해」 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리」가 형성된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두가지 가설이 있다.대통령과 재벌회장 시절의 관계가 하나이고 개인적 친분이 또 하나이다. 전씨는 재임시절 경제발전에 남다른 공을 들여 재벌과의 관계가 좋았다.자연히 재벌총수들과의 회동이 잦았고,그 중 「화끈하고 보스 기질을 갖춘」 김회장과 마음이 통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재산상속을 둘러싸고 잡음을 빚은 일부 재벌 2세들을 전씨가 야단쳤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체의 잡음이 없던 김회장은 높은 점수를 받았을것이다.김씨가 2세 총수들의 친목회 리더였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개인적 인연에 비중을 두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김씨의 선친인 김성곤 전 의원과 전씨와의 인연이 대물림됐다는 얘기다.70년대 공화당의 재정위원장을 지내고 김용태씨 등과 함께 「4인방」으로 불린 성곡은 당시 TK의 대부였다. 그는 TK 정치인은 물론 하나회 중심의 군 인사도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그 은혜를 못잊는 전씨가 성곡이 몰락한 뒤 김씨를 동생처럼 각별히 아꼈다는 후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김씨가 「형님처럼」 느끼는 전씨의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박선화 기자〉
  • 미 극우단체 민병대 “기승”/제2의 「오클라호마」 우려 고조

    ◎오늘 참사 1주년… 조직 809개로 늘어나/호전적·점조직화… 연방당국 대책 부심 1백68명의 생명을 앗아간 미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 건물 폭발사건이 19일로 1주년을 맞는 가운데 미국내 민간무장조직인 민병대들의 활동이 한층 호전적·지하조직화하고 있어 사회적인 두통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USA투데이지에 따르면 미국내 반정부 기치의 극우단체는 1년전 이들의 이념에 적극 동조한 두 미국시민에 의해 연방건물이 무참히 폭파된 이래 줄어들리라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50개주 전역에서 늘어났다.현재 8백9개의 극우단체가 조직,활동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중 강한 군사조직 성향으로 반사회적 활동이 염려되는 민병대는 4백41개라고 이들에 관한 전문연구기관은 밝히고 있다.이들 민병대는 미국의 헌법이 음모자들에 의해 찬탈,유린되고 있어 이를 정상대로 복원해야 된다는 생각이며 폭력과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는 대부분이 연방정부와 맞싸울 군사적 대비에 열심인채 반유태·백인우월주의를 신봉한다. 동조세력이 1만명에서 많게는 5백만명으로 추산되는 민병대 조직은 연방건물폭파 사건이후 상당수 온건성향의 지지자들이 떨어져나가 열성·핵심분자만으로 정예화됐는데,문제는 이 핵심적 극단주의자들이 미국내 테러행위를 획책하면서 지하 점조직화한다는 것이다.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폭파는 사건당일로부터 정확히 2년전에 있었던 연방FBI의 텍사스 와코 다윗파 진압과정에서의 72명 몰살에 대한 「복수」가 동기인 것으로 현재 추론되고 있다.연방정부의 「전횡」에 대한 시민의 「응징」이란 것인데,미국 민병대의 근원에 비춰보면 전연 엉뚱한 생각만도 아니다.독립전쟁 당시 영국군과 싸우기 위해 조직된 시민의용군인 미국의 민병대는 독립직후 「자유 국가의 안보상 필수적」이라며 시민의 총기휴대권과 함께 불가침의 헌법적 권리로 인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달 25일부터 몬태나주 요르단에서 「프리맨」이란 반정부 민병대와 지금까지 대치중인 FBI도 이들의 반정부 성향에 대해선 「감히」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한채 오로지 금융기관 사기혐의자를 체포하러 왔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워싱턴=김재영 특파원〉
  • 국민은 「안정속 개혁」 택했다/여 선전 배경과 의미

    ◎「이·박 카드」 적중… 수도권 예상밖 성과/지역감정의 높은 벽 못넘어 아쉬움도 15대 총선이 안정속의 개혁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한국당의 사실상 승리로 막을 내렸다.집권여당이 고전하리라던 당초 예상을 깨고 안정적 정국운영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 결과를 놓고 야권의 공천헌금 비리,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로 인한 안보위기등 돌발변수들에 힘입은 것으로 주장한다.그러나 장학로 축재사건등 여당의 악재도 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적은 분석이다. 따라서 안정을 바탕으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문민정부의 노선을 국민들이 외면치 않았다는 게 적실한 해석일 것이다.즉 다수 국민들이 집권당의 패배로 개혁포기나 과거로의 회귀를 원치 않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가 지난 3년간 추진해온 개혁작업의 방법론에 기득권세력등 일부 국민이 이의를 제기해온 것은 부인키 어렵다.이번 총선에서도 일부 그같은 여론이 반영됐다. 하지만 국민들이 정부의 개혁노선에 적어도 큰 방향에서는 우호적 태도를 보내고 있음이 선거결과가 뒷받침해준다.특히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한 서울에서 여당이 선전함으로써 서민과 젊은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이 사정등 반부패 드라이브와 금융실명제등 경제정의 구현 의지에 지지를 보냈음을 짐작케 한다.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여당후보가 당선되는등 지역주의에 반하는 작은 흐름도 눈여겨 볼만하다.국민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합리성을 바탕으로한 새 정치문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거시적 차원에서 G­7 진입과 21세기를 앞둔 유권자 의식이 선진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도 3김에 대한 유권자들의 애증과 맞물려 지역감정의 벽이 아직 두텁다는 것을 보여줬다.지역분할구도에 기초한 3김정치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현실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등 주요 정당들은 자당 총재의 출신지인 부산·경남과 호남,충청권등에서 다수 의석을 휩쓴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반면 뚜렷한 지역연고가 없는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건지지 못했다. 따라서 수도권과 경기등 중부지역에서의 선전이 여당 승리의 원동력이었다.여당이 철저히 당선위주의 공천을 한 것도 먹혀들었으나 수도권이 지역연고가 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소지가 적은 것도 승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무대를 통해 다수의 정치신인이 등장한 사실은 3김정치가 이제는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특히 대권욕을 앞세운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는 수도권에서 두드러졌다.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등이 내세운 젊은 정치신인중 일부만 당선됨으로써 정치판의 물갈이가 충분하지는 못했다.하지만 다수 거물이 신인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그 가능성의 싹은 보였다. 물론 선거 막판에 불거져나온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즉 이른바 DMZ변수가 신한국당의 선전을 어느 정도 도왔다는 관측도 있다.유권자들의 안정희구 성향을 더욱 부추긴 것으로 짐작되는 까닭이다. 전략적으로는 「이회창·박찬종」카드로 야권의 두김씨를 맞서도록 한 점이 적중했다는 분석이다.또 김윤환대표와 이만섭고문등을 통해 새정부 출범 이후 무주공산처럼 떠돌던 대구·경북(TK)정서를 여당지지로 회귀시키는 노력을 편 점도 여당 승리에 일조했다. 역대 총선에 견주어 낮은 투표율에도 서울등에서 신한국당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야당성향의 20∼30대 「모래시계 세대」가 대거 기권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수도권의 젊은 유권자들이 야당에 등을 돌린 것은 정치적 허무주의가 심화된 탓으로 풀이된다.고질적인 공천헌금 비리 및 DJ의 정계은퇴선언과 명분없는 복귀,민주당 분당등이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은 수도권에서 어필하지 못한데다 경북과 강원지역에서도 목표의석에 미달했다.이는 반드시 「역사 바로세우기」등 신한국당의 개혁노선에 대한 이 지역 유권자들의 심정적 지지를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분명한 것은 자민련이 충청지역당적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구본영 기자〉
  • 평양 러 대표부 총격전/불투명한 「북 권력」의 앞날

    ◎북한체제 붕괴 결정적 징후/김정일 집무실서 2백m… 보완 구멍/권력핵심 불안정… 체제결속 나설듯 북한체제의 해체가 이미 시작된 것일까.최근 북한을 둘러싼 갖가지 이상 동향들은 이같은 근본적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게 다수 북한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4일 상오 발생한 무장 북한인의 평양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부 침입 사건이야말로 최근 잇단 북한 이상징후의 결정판으로 여겨진다. 북한체제의 심장부인 이른바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그것도 김정일집무실을 불과 2백여m앞에 둔 철통보안 구역에서 정치적 망명을 위한 총격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북한당국에 의한 조작극이 아닐까 싶다』.이 소식을 처음 접한 귀순자 강명도씨의 첫 반응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무원총리의 사위로서 북한체제의 내부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그의 상식으로도 믿기 어려운 일은 사실로 밝혀졌다.이타르통신의 보도에 이어 서울 주재 러시아대사관측이 3명의 사상자가 생긴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 발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이 아니라도 북한체제가 서서히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징후는 오래전부터 감지된 바 있다.지난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한 식량난에 이어 북한주민들의 탈북대열이 끊이지 않은 사실이 그것이다. 특히 사건발생 시기가 북한최대의 명절 격인 김정일의 생일(2월16일)을 앞두고 경축행사가 요란한 시점이라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더욱이 그의 전 동거녀 성혜림씨의 망명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이러한 일이 터져나왔다는 사실도 김정일체제의 앞날에 불길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으로 북한체제가 당장 붕괴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무엇보다 지난 50년간 다져온 북한체제 특유의 주민통제 메커니즘이 쉽게 허물어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특히 이번 사건으로 체제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북한 당·정·군의 기득권 세력들의 결속력이 적어도 당분간은 더 강해질 개연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장기적으로 북한체제의 내구력에 상당한 생채기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한·소 수교 이후 남북등거리 노선으로 돌아선 과거 북한의 「혈맹」 러시아가 이번 사건이후 북한과 더욱 소원해질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이상징후들이 북한체제의 안위에 곧장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북한정권의 지속에 계속적 의문부호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더라도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이 북한정권이 연내에 폭발적 변화의 기류에 휩싸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요컨대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세계사의 대세에 동참하지 못할 경우 멀지않아 결정적 체제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인 셈이다.하지만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는 개혁·개방이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체제유지를 위해서 이를 단행할 수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시간이 문제일 뿐 북한체제가 다단계 해체과정을 밟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탈북자대책을 비롯해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당 특수부 경비보안요원 이란/외교단지 경비 전담… 엘리트 장교중 선발/보위부·호위총국 소속… 고도훈련 거쳐 14일 평양 러시아 무역대표부를 무대로 망명극을 벌인 북한 청년이 누구인지에 대해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타르타스통신은 익명의 러시아 외교관의 말을 인용,「북한노동당 본부의 특수부 경비를 맡고 있는 보안요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북한 노동당의 고유 직책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나 호위총국등에서 평양 외교단지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요원을 가리킨다는 게 우리 당국자들의 해석이다.북한사정에 정통한 한 귀순자도 『러시아무역대표부를 포함한 러시아공관의 경비는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대사관총국이 담당한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이번에 망명극을 벌인 괴청년은 호위총국이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의 소장 장교일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특히 경비병 3명을 권총으로 사살할 정도라면 통제구역인 평양 외교단지내 지형지물을 잘 아는 고도로 훈련받은 인물일 공산이 크다.그런 만큼 그가 북한체제내에서 선택받은 기득권층의 일원일 것이라는 추론을 낳고 있다.
  • 「전씨 신당」 어디까지 진척됐었나

    ◎“90년부터 5년간 준비… 「창당 주비위」 구성”/지구위장도 내정… 법절차 마무리 직전까지 간듯 전두환전대통령이 창당하려했던 「원민정당」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창당작업이 구체화됐을까. 검찰이 밝힌대로라면 「원민정당」은 전씨 자신이 총재 또는 대표를 맡기로 하고 지역별로 지구당위원장까지 거의 내정한 상태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지난해말 전씨 및 측근들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았다면 총선을 2달정도 앞둔 지금쯤은 수면위로 부상할 만큼 골격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전씨측이 신당창당 움직임을 가시화한 3당합당 직후인 90년 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5년여동안의 준비과정을 통해 「창당주비위」까지 구성했던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즉 신당창당에 따른 법적절차를 거의 마무리짓기 일보직전에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 불거지면서 느닷없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 들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씨가 관리해 왔다고 진술한 여·야정치인과 언론인 등 각계인사 2백여명도 지구당창당에 따른 최소한의 필수인력이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이다. 돈과 정치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전씨가 이 과정에서 정치자금으로 뿌린 돈은 확인된 액수만 자그만치 8백80억원이다. 8백80억원은 돈의 성격에 따라 대략 90년 2월 전과 후로 나눠 다르다. 13·14대에 2백30억원을 지원한 것과 88년 11월 5공청산과정에서 여·야정치인과 언론계 중진 인사들에게 살포한 1백50억원 등은 엄밀히 말하면 전직대통령의 신분으로 자신이 창당했던 민정당소속 의원들을 국회의원에 한명이라도 더 당선시킬 목적과 함께 백담사로의 「유배」를 막아 보려는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0년 2월이후부터 구속직전까지 뿌린 5백억원은 전씨가 본격적으로 신당창당만을 위한 돈이었음이 분명하다.검찰은 『전씨가 5공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6공세력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2백여명의 정치권인사들에게 구속직전까지도 골프회동과 비밀집회 등을 통해 돈을 지원해 온 것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전씨에게 돈을 받은 인사 2백여명이 누구이며 얼마씩을 지원받았는지에 대해 전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러나 전씨로부터 돈을 받은 인사 2백여명은 ▲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한 당시 민정당의원 ▲92년 14대 총선에 나선 민자당소속 민정계의원 ▲88년 11월 당시 신문·방송에 몸담고 있던 언론계 중진인사 ▲장세동·안현태씨 등 핵심측근등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 통일정책/권오기부총리 인터뷰(올해 국정 이렇게)

    ◎“북 개방 등 체제변화 유도 힘쓸터”/북 주민 생활개선 포함 거시적 입장 중요/경수로 분담규모 국민적 합의 바탕 결정 □대담=황병선정치부장 분단 반세기를 막 넘기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고 있는 96년 새해를 맞아 대북 정책 관련부서의 좌장인 권오기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을 만났다. 권부총리는 1일 서울신문 황병선정치부장과의 인터뷰에서 남북한 관계를 우리 전래의 설화 「콩쥐 팥쥐」로 풀어 나갔다.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올해 통일정책의 주안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우회적 답변이었다. ○통일 후유증 최소화 권부총리는 올해가 쥐띠 해인 점을 염두에 둔듯 『북한에는 팥쥐(당간부 등 기득권 계층)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콩쥐(피억압자로서의 일반주민)들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다.『팥쥐어머니(북한당국)와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콩쥐들의 상황을 시야에 넣고 북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느 외국인에게 남북한 관계를 설명하면서 인용했다는 이 콩쥐 팥쥐 비유는 북한당국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그가 취임초 정의한 「복안」적 대북 정책 추진기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한마디로 북한주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고,통일 후유증을 미리 최소화하는 등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거시적 통일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새겨질 수 있을 듯하다. -최근 식량난 등 북한내부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북한을 도와줘야 되는지,그들의 돌발적 행동을 걱정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경제가 저렇게 어려운 북한이 감히 어떻게 전쟁을 도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상식적 추론이 있는가 하면 그렇기 때문에 이판사판으로 전쟁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습니다.요컨대 북한 관찰자들의 공통언어는 「불가측성」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한 50년간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한체제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우리 나름의 선은 있습니다.올해도 정부는 한반도의 긴장을 푸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그래서 북한이 안정 속에서 자발적으로 변화와 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펼 생각입니다.물론 상대방이 우리 뜻대로 대응해주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요. -잠비아 주재 북한외교관이 망명하는 등 탈북자가 속츨하고 있는 것과 관련,북한 내부정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김일성 사후 군부가 득세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글쎄요.북한경제가 그렇게 어렵다면 군사비를 좀 줄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군부의 입김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의 통제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일부에서 얘기하듯 북한이 당장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또 최근 일련의 탈북사태가 관심을 끌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체제동요가 심화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불가측” 공통의견 -취임사에서 북한당국 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 시야에 넣는 「복안적 시각을 강조했는데,종교·학술·문화·언론·체육 등 민간부문의 남북 교류를 확대시킬 방도가 있겠습니까. ▲잘 아시는 「콩쥐 팥쥐」얘기로 비유하자면 북한의 콩쥐(주민)들을 배려하는 정책도 많이 발굴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가 북한에 무엇인가를 지원하고자 할 때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투명성」을 말하는 것도 바로 그런 취지입니다. 남북간 교류협력은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질서있게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따라서 다면적·기능적 접촉 확대 방안들을 개발해 내고 학술·문화 등 민간차원의 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되도록 최대한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남북교역이 3억달러에 이르렀는데 교역 뿐만 아니라 남북경협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은 없습니까. ▲지난해 우리가 일본·중국에 이어 북한의 3대 교역국이 되었습니다.또 대북 직접 투자의 물꼬도 텄습니다.앞으로 경수로 지원사업의 진전 추이 등을 봐가며 경협확대를 탄력적으로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그러나 남북경협사업은 사람과 재화가 함께 오가는 일이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만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경협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면 당국간에 절차와 방법 등의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북한당국에 설득할 생각입니다.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미·일 등 국제사회의 시각과 우리 정부의 평가가 다르게 비쳐지고 있는데…. ○투명성 보장이 전제 ▲북한의 식량부족에 대해선 대체로 견해가 같습니다.하지만 북한정보가 명확치 않은데다 평가기준이 다른 탓인지 서방의 국제기구들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보는 반면 사회주의권인 러시아·중국은 다른 의견입니다. 정부로선 지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3백45만t인데 비해 올해 수요량이 사료·종자용을 포함해 6백73만t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북한당국이 「애국미」라는 이름으로 22% 정도 줄여서 배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추수기까지 2백33만t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배급기준량 대로 하루 1만5천t을 배급하더라도 6월중순까지 지탱할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대북 곡물지원에 대한 정부의 원칙에 변화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북한의 태도에 따라 검토해 볼 문제입니다.우리는 이미 북한의공식적 지원요청,한반도내 회담,대남 비방 중지 등을 요구해 왔습니다.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도 북한주민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장기적 관찰 자세를 -대북 경수로 사업비용을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우리측 재정분담 규모는 어떻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경수로 총공급비용과 우리의 분담액은 금년 하반기에나 윤곽이 잡히리라고 봅니다.경수로 비용의 적정부담과 재원조달 방식에 대해선 국회와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로 결정해 나갈 것입니다.다만 앞으로 사업 추진과정에서 건설요원과 장비의 왕래에 대한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측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공세에 매달리고 있는데,우리측이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요. ▲남북기본합의서 5조는 현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이 공동노력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는 이미 합의한 사항부터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김이 현재로선 당·정·군을 장악,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어 승계에 장애는 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지 않습니까.올하반기쯤 북한에서 김일성 탈상절차를 밟는다고 하니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권부총리는 『남북관계는 스냅사진으로 보지 말고 비디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때그때 한 국면만을 볼것이 아니라 장기적 연속적 시각으로 관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당장의 남북 경색국면도 통일로 가는 긴 여정속의 한 정거장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듯 했다. ◎북녘 변화 유도 어떻게 할까/경수로 이행사업 주민접촉 확대/「자유의 집」 개축,출입국 센터 활용 「접촉을 통해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한다」. 벽돌을 한장씩 쌓아가듯 상호 신뢰구축과 교류협력의 확대로 점진적,평화적으로 통일 대장정을 이룩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캐치프레이즈이다.우리측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오늘의 남북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기도 하다. 권오기부총리겸 통일원장관도 북한의 태도변화 유도에 올해 통일원 업무 추진계획의 최우선 주안점을 둔다는 방침을 밝혔다.이를테면 종교·학술·문화·체육 등 남북간 각종 민간교류 지원 및 경협 확대 방침 등이 그것이다. 국제기구 및 제3국을 통한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 등 「이산가족 찾기사업」을 지원한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이는 체제동요를 염려해 북측이 이산가족 교류를 거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우회적 인적 교류 확대 정책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올들어 구체화될 경수로 사업 이행과정에서 남북주민간 접촉을 통해 남북간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의 경수로 건설현장에서 우리 기술진과 북한 근로자들간의 접촉 과정에서 신뢰분위기를 구축,북한주민들의 대남 적대감 해소에 주력한다는 복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전제로 북한경제의 자생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경수로사업 이외의 다른 「민족공동발전계획」도 구체화해 나간다는 입장이다.예컨대 북한의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키 위해 북한농업 생산 증대를 위한 우리측의 기술지원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북한이 남북경제공동위 가동에 호응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다. 물론 이같은 방안들은 접촉 기회 확대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이같은 소프트 웨어들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기념비적 「하드웨어」 건설을 개시한다.지난 1월말부터 설계 공모에 들어가 오는 7월께 첫삽을 뜨게 될 판문점 「자유의 집」의 증·개축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연건평 1천5백평에 지하 2층,지상4층 규모로 오는 97년말에 완공될 이 건물은 앞으로 남북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되면 「남북출입국종합관리센터」로 활용될 예정이다.남북 경협확대와 경수로 지원사업,미­북 연락사무소 설치등으로 남북은 물론 제3국인의 왕래가 잦아질 경우에 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건물이 완전히 헐리고 새로 단장될 「자유의 집」에는 ▲이산가족 면회소실 ▲남북 연락사무소 ▲통관­검역시설 ▲프레스센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남북분단의 상징적 명소였던 흰색 팔각정 지붕을 가진,기존의 「자유의 집」은 오는 6월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지난 65년 우수 국산품 전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어졌던 이 건물은 71년 적십자회담 연락사무소가 들어서면서 70년대 이후 남북접촉 장소로 25회 정도 이용된 바 있다. 그러다가 지난 89년 「평화의 집」이 준공되면서 이 건물은 사실상 용도가 폐기됐다.그러나 「자유의 집」은 바야흐로 본격적인 남북교류 협력시대 개막을 앞두고 올들어 새로운 면모로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 「암흑물질」 구조 첫 추론/일 천문학자들 보고

    【도쿄·런던 로이터 교도 연합】 일본 천문학자들이 우주 물질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 「암흑 물질」의 두가지 가능한 구조를 처음으로 추론해 냈다고 1일 발표했다. 동경대 이케베 야스시 교수를 포함,사이타마(기옥)현의 물리화학연구소,가나가와(신나천)현의 우주비행과학연구소 연구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과학전문지 네이처 2월호에 실린 보고서에서 「암흑 물질」이 은하계 성단의 중심 은하 근처에 집중돼 있거나 은하계 성단 전체에 걸쳐 퍼져있는 등 두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보통 물질에 주는 중력 영향을 통해 간접적으로 「암흑 물질」의 존재를 추론해 낼 수 있다는 이론에 따라 우주비행과학연구소의 X­선 위성 「아스카」를 사용해 초고열 가스,즉 플라스마(전리 기체)의 분포를 조사하는 방법으로 지구에서 6천만광년 떨어진 은하계 성단 포르낙스(Fornax)에서의 「암흑 물질」의 분포상태를 추적했다.
  • 본고사 난이도 작년 비슷/전기대 입시 모두 끝나

    ◎후기 새달 5∼8일 원서접수 한국외국어대 동국대 숭실대 단국대 아주대 등 38개대학이 18일 본고사 및 면접을 실시,전국의 1백40개 전기대 입시가 모두 마무리됐다. 이날 본고사를 치른 대학은 한국외대 동국대 등 5개대이며 나머지 33개대는 면접 및 구술고사를 치렀다. 한국외대는 인문·사범계열만 실시한 영어시험에서 연설문 광고문 신문기사 등 실용적이고 시사적인 글을 통해 정보를 종합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중점적으로 측정했다. 주·객관식 문제가 50대50으로 출제됐으며 난이도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학교측이 예상한 평균점수는 1백점 만점에 50∼60점이다. 논술 한과목만 치른 동국대는 「사회의 개혁이 의식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과 의식개혁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인문계)는 시사성이 강한 문제와 「인간복제가 세계관과 윤리의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논술하라」(자연계)는 문제를 출제,수험생들로부터 대체로 평이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숭실대는 인문계 논술에서 세계무역기구(WTO)출범과 기업의 경영혁신바람 등 시사적인 내용을 예문으로 제시한 뒤 자유경쟁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도록 했으며 인문·자연계 공통인 영어는 주·객관식을 혼합,난이도별로 상급 30% 중급 50% 하급 20%의 비율로 출제했다.한양대 건국대 울산대 등 19개 후기대는 2월5∼8일 원서를 접수하며 2월10일 일제히 시험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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