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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벗 잃은 校庭’ 애도·탄식만 가득

    인현동 ‘호프 러브’ 화재 참사로 학생들을 잃은 인천시내 30여개 학교들은 1일 급우와 교사들의 애도와 탄식,자성의 목소리로 가득했다.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자체 애도행사를 갖고 조위금을 걷는가 하면,학교 내 분향소 등에 이들의 조문행렬과 흐느낌이 이어졌다.학교장들은 학생들이 유해업소에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 나서기로 다짐했다. 광성고 1학년 김현경군(16)과 박문여중 3학년 이아름양(15)의 ‘만남 백일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양측 친구 11명 중 광성고생 7명과 박문여중생 2명 등 9명이 숨진 가운데 두 학교 학생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졸지에 급우를 잃은 충격에 할 말을 잊은 듯 무거운 분위기였다. 박문여중 3학년 신(信)반 구명수(43)교사는 “학생 지도를 잘 하지 못한 죄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학생들은 교내 2층 시청각실에마련된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아름이가 바른생활부장을 하며 우리들의 고민을 들어줬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광성고 학생들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뜻으로 검은 리본을 달고 오후에 희생자가 생긴 학급의 학생 전원이 영안실을 찾아가 조의를 표했다.김군의 담임차상삼(車相三·41) 선생은 “이번 중간고사에서 김군의 성적이 많이 올라칭찬해줬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황미선양(18)의 생일파티를 위해 3학년 학생 9명이 난생 처음 호프집에 들렀다 모두 함께 변을 당한 인천여상은 이날 오전 교내방송을 통한 추도행사를 가진 후 ‘친구들이 죽은 것은 어른들 때문’이라며 울부짖는 학생들을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고 3학년5반 이정미양(18)은 친구 김태연양(18)의 죽음을 슬퍼하다 실신,인하대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한편 인천시 교육청은 이날 시내 82개 고교 교장단회의를 열어 유족들에게사과한 뒤 ‘5자 순찰대’(학부모회,학교운영위,민간단체,자원봉사자,교사)를 활성화해 매월 2차례씩 경찰,구청과 합동단속을 하기로 했다. 특별취재반
  • 朴전대통령 20주기 4,000여명 추모행렬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서거 20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김수환(金壽煥)추기경,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을 비롯,일반 참배객 4,000여명이 몰렸다. 특히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제외하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3명이 참석,고인을 추모해 눈길을 모았다.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자민련 박철언(朴哲彦)·박구일(朴九溢)·이건개(李健介)의원,한나라당 양정규(梁正圭)의원 등 여야 의원 4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김총리는 길전식(吉典植) 민족중흥회 부회장이 대신 읽은 인사말을 통해 “어른께서 씨뿌려 가꾸신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열매가 이제 하나둘씩 결실되어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좌표가 세계 속에 우뚝 선 것을 생각하니 어른의높은 경륜과 선견지명에 새삼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대통령의 맏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 동생 서영(書永)·지만(志晩)씨와 함께 참석,“올해는 선친의 기념사업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첫 걸음을 내디딘 뜻깊은 해”라면서 “기념사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 (하) 인물평가의 두 시각

    -유신시절 고초 설훈의원 유신 시절 여러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국민회의 설훈(薛勳)의원은 아무래도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이다.‘박통(朴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의 이미지’라고 말했다.다음은 설 의원과의 일문일답.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민주주의 개념의 부재(不在)를 들 수있다.유신독재는 우리의 민주주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민주주의는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연계되어있다.막대한 악영향이 아닐 수 없다. ?고도 경제성장을 가져온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도 많은데 공은 인정한다.그러나 IMF국난의 뿌리인 재벌경제 성장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으로 성장에만 집중,‘IMF국난’을 잉태시켰다.‘IMF국난’이 재벌경제의 폐해가 극치에 달해 발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 않는가.분배의 원칙에도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의 경제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다.그본질은 과(過)는 작아지고 공(功)은 커진 느낌이 짙다.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70년대 이후 세대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50·60대들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독재를 비판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또 그 뒤를 이은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등의 독재 횡포가 더 극심했다.결국 단점은 약하게 인식되어지고,공로는 돋보이게 됐다.박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착근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부분도 객관적이고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추모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면이 있다면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국민은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쌓여 있었다.‘엽전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신감을불어넣어 주었다.수출 증진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인정할 만하다.주현진기자 jhj@ -맏딸 박근혜의원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맏딸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25일 “아버지는 가난의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공산주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생각하신 분이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10·26 20주기를 맞은 소감은 돌아가신 아버지 시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재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관이 건립되는 시점에 20주기를 맞아 감회가 깊다. ?10·26을 평가해달라 10·26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문턱에서 꿈이 좌절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어떻게 보나 장기 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장기 집권은 생각지도 않았고 물러날 계획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다.독재라는 용어는 부정부패와 연결되고 권력을 개인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위해 썼다는뜻인데 아버지의 경우 개인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계획은 무엇이었나 아담한 산을 마련,나무를 가꾸면서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큰 업적을 든다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킨 것과 가난을물리친 것이다.또 국민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들고 싶다. ?현정권 들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지 과거 정권의 매도가 심했다.정권적인 차원에서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다.국민이 IMF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재평가한 것이다.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여권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을 어찌 보나 정치적 차원에서 총선을 겨냥해서는 안된다.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는 차원이어야 한다.잘하는 일이지만 한편에서 선친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최광숙기자 bori@ -3共 주요인사 현주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3공화국 당시 각료와 집권당의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타계했거나 일선에서 은퇴했다.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丁一權)씨는 94년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다.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朴鐘圭) 당시 청와대경호실장도 85년 고인이 됐다.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자랑했던 이후락(李厚洛)전 중앙정보부장은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서 지내다 최근 서울에 올라와 칩거하고 있다.이씨는 민족중흥회 고문을 맡고 있지만 건강이 나빠져 바깥 나들이는 거의 안하고 있다. 신현확(申鉉碻)전 경제부총리는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다.신씨는 광화문의 한·일협력위원회와 무교동의박정희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일주일에 3∼4차례 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안하고 있다.79년 10월27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눈물을쏟으며 처음 공식 발표했던 김성진(金聖鎭) 당시 문공장관은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김씨는 5년 전 ‘박정희시대’라는 추모집도 발간했다. 69년부터 무려 9년3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했던 김정렴(金正濂) 당시 비서실장도 현재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다. 남덕우(南悳祐) 당시 경제부총리는 산학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거의 매일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한다.공화당 의장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의 백남억(白南檍)씨는 자동차보험 회장을 거쳐 지금은 민족중흥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3공에서 공화당 원내총무·대변인을 지낸 김재순(金在淳)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월간 ‘샘터’ 발행인이다.61년 5·16때 민간인으로 참여,5선 의원을 지낸 김용태(金龍泰)씨는 동서문화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중이다. 대통령공보수석,문공장관을 거친 윤주영(尹胄榮)씨는 20년 넘게 전문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윤씨는 공화당 사무국 출신 모임인 은행나무동우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검찰총장,법무장관,중정부장,대통령 법률담당특보를 지낸신직수(申直秀)씨는 81년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활동을 안한다. 이밖에 김재춘(金在春)전 중정부장은 5·16민족상 이사장,길전식(吉典植)전 공화당 사무총장은 민족중흥회 상임부회장이다.10·26 당시 궁정동 술자리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계원(金桂元)전 비서실장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기념사업과 10·26행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것처럼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난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비민주적인 권력자의 일방적인 업적 위주 홍보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념관 건립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에서 추진하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에 기념사업비 지원을 위한 100억원을 책정,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후보지로는 서울 근교와 구미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건립 기본계획이 결정되지 않았다.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뒤 내년 초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기념관 건립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기념회측은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있는 그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줘 후손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20주년을 맞아 각종 추모행사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2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을 담은서적 ‘우리도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총재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과 구여권 인사,그리고 일반시민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26일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리는박정희 전 대통령 20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수기자 sskim@ - 재조사 전망@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 및 유신체제하에서 수많은 의혹사건들이 발생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건들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 75년 발생한 장준하씨 의문사는 유신체제에서 일어난 대표적 의혹사건이다.그후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당시유신독재 반대투쟁에 앞장선 재야 지도자였던 장씨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약사봉 등산길에서 하산도중 사망했다.그러나 검찰은 사건발생 3일 만에 단순변사로 처리,사건을 조기 매듭지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최종길 서울법대교수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인혁당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념조작사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지난 74년 ‘유신독재’가 절정으로치닫던 때 공산혁명을 꾀했다는 이유로 관련자 8명을 사형시킨 사건으로 사법관행상 이례적으로 판결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지난 98년 ‘인민혁명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가 구성됐지만 진상규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60년대 말 고(故) 이응로 화백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연루된 것으로 발표된 동백림사건도 재조명이 요구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도 대표적 미제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지금까지 이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역대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그러나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혹사건에 대한진상규명 활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특히 여당은 지난 8월 대통령 소속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이번 정기국회에서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여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열리게 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3공과 유신 시절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박준석기자 pjs@
  • 자민련 ‘朴正熙 전대통령 받들기’

    자민련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으로 통칭되는 ‘근대화세력’의 본류를 자임하고 나섰다. 박 전대통령과 깊은 인간적 관계를 맺었던 인사들이 수뇌부에 포진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내년 총선을 앞두고 TK 민심 사로잡기 차원의정치적인 뜻이 배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또 최근 당이 중심없이 표류하고 있는 만큼 박 전대통령 서거 20주기를 계기로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주력하자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박태준(朴泰俊)총재가 지난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6·25를 비롯한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안전하게 수호하면서 근대화와산업화에 매진해왔다”면서 “자민련 동지들은 피땀어린 고난의 발걸음에 참여했던 ‘시대의 증언자’로서 역사 수호의 막중한 책무가 두 어깨에 걸려있음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 김종필(金鍾泌)총리와 박총재,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 등 당 수뇌부는 박전대통령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할 예정이다.오는 2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박전대통령 어록 출판기념회에는 당 지도부와 함께 현역의원 및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대거 참석한다.또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서거 20주기 추도식에도 거당적인 지원을 할 방침이다. 박총재는 이에 앞서 23일 호암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인간 박정희’ 연극을 관람한다.22일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전대통령 20주기 추모 특별사진전에 참석,테이프커팅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해임건의안 표결처리로 부득이 불참했다. 한종태기자 jthan@
  • [대한광장] 새미골의 여자 陶工

    경상남도 하동읍 진교면 백연리 사기마을에 갑년(甲年)의 문턱을 서성이는한 여자 도공이 있다. 산죽으로 지붕을 인 꺼질 듯한 초가와 집 둘레를 에워싼 대숲의 사각거리는 바람소리를 자연의 소리로 귀기울이면서 너구리 장작가마 앞에서 불을 지피는 여인.희끗희끗한 백발의 머리카락을 흙묻은 손으로 쓸어올리며 청량한 하늘과 금싸라기로 빛나는 밤하늘의 별 기운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갈갈 논개구리 울음소리,늦매미 울음소리,호박잎 쌈에 풋고추도 껄죽한 찐된장 얹어한 입 가득 물기도 하면서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녀가 바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밥그릇인 막사발에 전생을 건 장금정(張今貞)여사이다.일명 새미골(井戶)인 벽지의 사기마을에 그녀가 파묻힌 햇수는어언 25년.막사발의 질박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만취해서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지대한 조선적 천민집 정짓간 대살강 위에 막굴리듯얹혀져서 밥그릇 국그릇으로 쓰여지다 이 빠지면 개밥그릇이 되다가 울밑에던져져 걸뱅이들의 동냥그릇도 되던 막사발,투박하고 그지없이 소박한 그 그릇에 그녀의 혼을 앗기고 말았다.나머지 인생을 걸고 400년전의 그 그릇을재현하고 싶었다.이유는 또 있었다.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이도다완(井戶茶碗)’이란 이름으로 국보가 되어있음에 비해 국내에서는 거의 방치되고있었기에 원조인 조선에서 400년전 그 그릇의 맥을 이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 사망후에 혼자 키우던 자녀 둘을 이모집에 맡기고 전 재산을처분하여 ‘이도다완’의 원산지인 하동 새미골(샘골·임란때 이곳에서 붙들려간 도공들이 만든 그릇이라 하여 이도다완이라 함)로 내려가 가마가 묻혔던 땅을 사들였다.매화나무 대나무로 꽉 차있는 옛 가마터에는 깨어진 막사발 파편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박혀있고,거두는 이 없는 이름모를 도공의 무덤도 몇 구 있었다. 이어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새미골 도공의 후예가 산다는 ‘하기시’에서 2년여 도예공부를 하다가 새미골로 다시 돌아와 광기들린 여인처럼 온몸으로 흙을 빚으며 가마에 매달렸다.주변의 사람들이 조소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힐끔거렸다. 예부터 이 나라는 여자가도공이 되는 것을 금기사항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여자가 가마에 불을 지피면 부정을 타서 그릇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는편견 따위에 그녀는 관심조차 없었다.오로지 스스로를 막사발의 본질인 겸허하고 질박하고 순수한 성정으로,또한 천연의 자연인으로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동화시키려고만 노력했다.흙의 심성인 순수한 도공의 성향으로 돌아가려끊임없이 자신을 단근질하며 비워냈다.도예는 불과 흙과 유약을 다스리는 기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음을,도공의 투명한 혼이 그릇에 살아 있어야 하고흙과 장작의 숨결이 고루 스며들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막사발이 만들어졌다.조선시대 막사발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는평이 쏟아졌다.그녀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그냥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이후,그녀는 겸허한 자연인 도공의 심성을 잃지 않으면서 주변의 간절한 권유로 두 번의 막사발 전시회를 새미골 그 가마터에서 가졌다. 자지러질듯 젊은 과수댁의 열정을 막사발에 쏟아 반생을 지낸 흙을 닮은 여인,여자가 가마 앞에 앉으면 부정을 탄다는 1,000년전 금기를 과감히 깨뜨리고 조선조 옛 도공이 되어 지금도 가마앞에서 불을 지피는 여인,그 여자 도공의 처절한 인내와 성취의 삶을 최근 ‘막사발’이란 제목으로 어느 작가가펴냈다. 도예의 극치로 손꼽히는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아닌, 서민 천민의 혼이 배인 막사발에 넋을 얹어 전생을 투신하고 있는 자연인 여자도공. 세상인심이 하도 얄팍하여 조석변절이 죽끓듯 성하고 첨단의 도시화 세련됨에 목숨을 걸 듯 하는 인종도 많은 세상에.뿐인가,어설픈 작품 한 점 만들어놓고 자기 선전에 혈안이 되는 세태에 경상도 벽지 새미골 여자도공의 삶이유독 선하면서 질박하고 강인한 고향의 정으로,장이의 참모습으로 가슴에 닿아옴은 필자만의 느낌일지 새삼 떠올려 보았다. [金芝娟 작가]
  • 경실련 ‘언론개혁 대토론회’ 주제발표 요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6일 서울 목동 CBS공개홀에서 CBS와 함께 ‘언론개혁 대토론회’를 열었다.이날 발제된 김학천(金學泉) 건국대교수의 ‘김대중정부의 언론정책 평가’,이효성(李孝成)성균관대 교수의 ‘언론개혁의 방향과 과제’등 논문 2편을 요약한다. ■김대중정부의 언론정책 평가 언론개혁은 언론,즉 신문과 방송이 매우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위상을 되찾자는 뜻을 갖고 있다.지금껏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파행적인 것이었고,권력지향의 불공정한 언론들이 경영의 타개책으로상업주의를 택해왔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방송 대부분은 정치적인 공정성의 귀감이 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방송 이용자인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신문도 자본의 크기와 신문의 공익적 기능과는 무관하게 사세확장에만 정성을 쏟았고 경제·문화적으로,기우뚱거리는 사회에 대한 심층보도나 추적,감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문은 족벌경영,세습에도 불구하고 타기업과 달리 조세통제조차 받지않는형편이었다.특히 IMF사태 등으로 언론이 책임을 나누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구조적인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언론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개혁이 필요하고,이 필요성은 교체된 정부의 정치 실적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필연성으로나타났다.그러나 아직 개혁의 단계에 접근하지 못한 것은 물론 건강한 변화의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방송의 경우 구방송법이 날치기로 통과된지 10년이 가까워도 아직 실현된 것이 별반 없고 신문은 그야말로 원론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그동안 언론개혁은 시민의 힘 등 외부의 힘이 압력으로 작용하기전에 언론 스스로 추진해나가길 기대했지만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결국 언론개혁은 ‘여론’의 적극성과 위력을 내보이는 해결방법밖에는 없다고 여겨진다. ■언론개혁의 방향과 과제 언론개혁은 첫째,사회의 힘있는 조직이나 개인에대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와 비판 기능을 제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신문의 경우 서로의 허물에 침묵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방송에 의한 신문의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둘째,언론개혁은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자율성을 높이고 공정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언론개혁은 언론의 다원성을 보장하고 소수 언론의 지나친 여론독점을 막아야 한다.방송의 경우는 지상파 3사에 의해서,신문의 경우는 서울에서발행되는 3개의 메이저급 전국 일간지에 의해 시장이 과점되고 있다.넷째,언론개혁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성과 윤리성을 제고하는 것이어야 한다.우리 언론들은 언론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광고를 강요하거나 촌지를 수수하는 등의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다섯째,언론개혁은 언론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행위 등을 바로잡아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어야 한다.방송 3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독립제작사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해왔고,몇몇 일간지들은 자본력이 크다고 덤핑을 하거나 과도한 경품을 제공하는 등의 탈법적 방법으로 시장질서를 흐리면서 시장을 장악하려 하였다.이런 행위들은 마땅히 규제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같은 언론을 누가 개혁하느냐이다.불행히도 우리 언론이 스스로개혁한 적이 거의 없다.‘백년하청’격인 언론의 자율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면 언론개혁을 위해 제3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그리고 현실적으로 언론개혁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세력은 정부뿐이다.언론의 통제와 간섭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독립성,다양성,책임성,공정경쟁 등과 같은건전한 발전을 지향하는 일이라면 정부가 언론개혁을 국가정책으로 추구할필요도 있다.만일 공익을 추구해야 할 정부가 언론과 같이 중요한 사회적 제도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양식이나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려 하지 않고 방관만 한다면,이는 언론과 적당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언론을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리 김미경기자 chaplin7@
  • 벨기에 감기 백신실험 성공

    [브뤼셀 연합] 한번 접종으로 평생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 감기 백신 실험이 벨기에에서 성공했다. 벨기에대의 명예교수 발터 피어스 연구팀이 이 감기 백신을 쥐에게 실험한결과 효과가 입증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5일 전했다.피어스 교수는 “백신이 개발되면 평생 감기를 막을 수 있다”면서 “어린시절 한번만 접종하면되는 소아마비나 간염 예방접종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현재의 감기백신은 감기의 80%에만 효과가 있고 기간도 1년에 지나지 않는다.감기 백신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인체가 면역성을 갖추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감기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운 백신을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연구팀은 바이러스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인 M2라는 단백질을 발견해 냈으며새 백신은 인체가 이에 대해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그림자이용 위성안테나 개발

    위성신호 수신의 핵심인 안테나 각도를 안테나 표면에 비친 태양의 그림자를 이용,사용자가 쉽고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위성안테나가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발됐다. 기존 위성안테나와 달리 안테나 각도를 맞추기 위한 별도의 설치비를 들일필요가 없고 화질도 훨씬 선명해 연 100억달러 이상인 세계 위성안테나 시장(4,700만대)에서 돌풍이 예상된다.서울대 천문학과 박수종(朴洙琮)교수팀과위성방송 수신기업체 SKS시스템(대표 尹在重)은 위성안테나 ‘솔라셋’을 공동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이 안테나는 중앙에 해시계처럼 막대가 설치돼 있어 안테나 표면에 표시된 눈금 가운데 목표위성과의 정확한 각도를 가리키는눈금에 그림자를 맞추도록 돼 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의열 독립투쟁](7) 백정기 의사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은 한민족의 민족해방운동 방법론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투쟁방략 중 하나였다.그러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는 일찍이 무정부주의사상(아나키즘)을 수용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선각자였다. 일제하 한국인 무정부주의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는 물론,소수의 특권계급(공산당 등)이나 일당독재,약탈적 경제제도,사회적 불평등,노예적 문화·사상 등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였다.따라서 이런 한국인들의 무정부주의운동은 독립운동의 주체가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이라고 설파하고,민중이주체가 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혁명론적 투쟁방법론을 제창한 사실은주목된다.일제에 대항할만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조직적 기반 등이 별로 없는 식민지의 민중입장에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쓴 의·열투쟁은 오히려 정당한수단이 되는 것이다.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같은 곳에서 윤 의사와 거의 동시에일제 침략세력을 응징코자 한 영걸이 있었으니,그가 바로 백정기 의사이다.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백의사는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공원 출입증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도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백의사는 1896년 1월(음력)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본관은 수원으로 뒷날 호를 구파(鷗波)라 하여 ‘백구파’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활달하여 14세 전후에는 사서삼경에 통달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또 신학문도 배워 정치·경제·사상사에 대한 식견을 갖추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서울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의 진전상황을 목격하고 고향의 3·1운동을 주도하였다.이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상경,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일제기관의 파괴를 꾀했으나,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 펑톈(奉天,현 瀋陽)으로 망명했다.이곳에서 후일 ‘육삼정 의거’에 같이 참여하게 되는 동지 이강훈(李康勳·전 광복회장)을 만났다. 1920년 겨울부터 1923년 후반기까지는 군자금 조달과 주요 기관·시설파괴등을 목적으로 국내와 일본 도쿄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1923년 말 우여곡절 끝에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간 백 의사는 그곳에서 신채호(申采浩)·이회영(李會榮)·김창숙(金昌淑)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큰 영향을 받았다.특히 이때 이들과 교유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그리하여 1924년 4월 이회영·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정화암(鄭華岩)·유자명(柳子明)등과 함께 재중 한인 최초의 무정부주의 조직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게 된다.이 연맹은 중국·일본·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참여한 조직이었다. 1930년 4월에는 유자명·정화암 등과 함께 역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했으며 그해 10월말 정화암 등과만주로 건너가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특히 백 의사는 이곳에서 일부독립운동가들의 민중 억압을 비판하는연극을 공연하여 재만 한인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지병이 악화로 1931년 5월경 상하이로 돌아온 의사는 몸을 요양하는 한편,영국인 전차회사의 매표원으로 일하며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독립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동지들을 부양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평소의 소신을 펼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고 있던 백 의사는 마침 일본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항일투쟁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중국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有吉明)에게 4천만 엔(圓)이란 거액을 지원,중국정부의 고관들을 매수하기 위해 상하이의‘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리집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백 의사를 비롯해 정화암·이강훈·원심창(元心昌)등 10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933년 3월5일 상하이에 있는 백 의사의 아파트에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의거에 나서겠다고 해 제비뽑기로 주동자를 뽑게 되었다.추첨결과 백정기와 이강훈이 결정되자 일본에서 건너온 무정부주의자 원심창도 동행을 자청,최종 3인이 선정되었다. 마침내 운명의 1933년 3월 17일.중국인 동지 왕야차오(王亞樵)로부터 입수한 권총과 수류탄,고성능 폭탄을 품에 간직한 백정기와 이강훈 등은 밤 8시경 육삼정 건너편 송강춘(松江春)이란 음식점에서 아리요시 등이 회합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의거를 눈앞에 둔 순간 미리 거사정보를 입수하고 대비하고 있던 일본·중국 관헌에게 세 사람 모두 붙잡혀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육삼정 의거’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거사 직후 ‘상하이시보(上海時報)’를 비롯해 중국 신문은 물론 국내의 주요신문들도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였다. 현장에서 피체된 백 의사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사하야(諫早)감옥에서 복역중 1934년 6월 5일 영양실조와 병고로향년 39세로 순국하였다.백 의사의 유해는 해방 이듬해 김구 선생의 지시로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그리고 1963년 3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장세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 운동사硏 연구원‘文博 *‘육삼정 의거' 나머지 2人은 ‘육삼정 의거’의 주역 3인 중 나머지 두 동지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우선 두 동지 가운데 청뢰(靑雷) 이강훈(李康勳) 선생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생존 애국지사 가운데 최고령자이다. 이 선생은 올해 96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애국선열 관련 행사에는 빠지지않고 참석하고 있다. 금년 백범 50주기 추도식에서도 자필로 쓴 추도문을 낭독했다.젊어서 백야김좌진(金佐鎭)장군을 곁에서 모셨으며 백 의사와 함께 체포된 후 15년형을선고받고 일본감옥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일본 현지에서 백의사등 3의사의 유해 봉환에 앞장섰으며 60년까지 재일거류민단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4·19혁명후 귀국해서는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60년대말부터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 편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자서전 ‘민족해방운동과 나’를 비롯,독립운동 관련 저서도 여러권 남겼다.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과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원심창(元心昌,일명 元勳) 선생 역시 백 의사와 같이 체포되어 무기징역을언도받고 복역중 8·15해방을 맞아 투옥 22년만에 일본 가고시마형무소에서석방됐다. 해방후 민단(民團)창립에 참가,11·12대 중앙단장을 지냈다.71년 7월 4일 일본에서 타계후 ‘의사’로 추존돼 재일한국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7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백정기 의사 유족근황과 추모사업 백정기 의사는 의거 당시 기혼자였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순국했다.현재 백 의사의 유족으로 등록된 백계현(白械鉉·65)씨는 백 의사의 동생 백진수(白珍守·46년 작고)씨의 아들로 백 의사에게 양자로 입양된 사람이다.백의사의 동생 진수씨도 국내 항일 공적으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백 의사의 양자 계현씨는 한 때 공직생활과 개인사업을 하였으며 광복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백의사 추모사업은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주로 추진되고 있다.정읍시는 수년전부터 시 예산으로 백 의사의 사당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IMF사태 이후 자금난으로 모두 중단된 실정이다.현재 정읍에는 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회장 朴在福·전 정읍시의회의장)가 구성돼 추모사업을 해오고 있으며매년 4월 13일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서 공동추모제가 열리고 있다.기념물로는 58년 전북도민의 성금으로 정읍에 세워진 ‘순국기념비’와 독립기념관경내의 ‘어록비’ 등이 있다. 정운현기자
  • 「새해 예산안」주요내용(I)

    재정규모는 99년 예산보다 5%(4조4,000억원) 늘어난 92조9,000억원으로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 8%보다 3%포인트 낮으며 92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조세부담률은 18.8%로 선진국보다 낮다.정부가 21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과학기술·정보화 촉진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정부예산의 4% 수준으로 확대하고 보건·환경 등 국민복지와 직결된 부문의 연구개발을 강화한다.환경 및 에너지 기술개발 투자확대로 환경·에너지문제를 해결하고 건설기술개발 강화로 국민생활 안전성을높인다.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사업우선순위 조정결과를 적극 반영한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를 선도할 수 있도록 초고속망 구축에 2,205억원을 지원한다.전국 107개 지역으로 연결된 광케이블을 144개 지역으로 넓히고 회선용량을 현재 64Kbps에서 155Mbps로 확대한다.공공부문의 정보화를 강화,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예산보다 25%가 늘어난 6,714억원을 배정했다. 첨단화물 운송시스템 구축,국가 안전관리시스템 정보화,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시스템 구축,대민서비스 개선부문 등에 많은 예산을 투여한다. ■미래지향형 교육투자초중고 교육·전산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한다.학교신설을 위해 국고·지방비 9,000억원을 투자한다.특히 농어촌 통합학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2,000억원을 새로 반영해 통학버스,교실,강당 등 교육시설의 확충한다.학급당 학생수를 2000년 38명으로 줄이고 2,500개 초·중·고에 전산망을 구축해 수업에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817억원을 배정했다.또 PC 15만8,000대를 보급하고 한 학교당 실습실 1개를 갖추도록 한다. 산업기술 인력양성을 위한 전문대학 지원을 확대한다.장애인을 위한 국내최초 특수전문대학 설립에 167억원을 지원한다.입학정원 390명에 사회복지과,물리치료과,보장구과,점자도서관과 등 12개학과를 둔다.세계수준의 대학원육성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고,연구활성화를 위한 학술연구조성비를 1,000억원에서 1,200억원까지 확대한다.대학의 경영혁신 촉진 인센티브 500억원을신규 반영해 행정조직 및 인력 축소 등구조조정 실적을 평가한다. ■문화관광산업 지원문화예산을 일반회계예산 대비 1%로 높인다.게임,애니메이션,영화,방송,음반 등 5대 문화산업을 합한 문화산업 창업보육지원센터를 조성해 창업기반 및수출증대 도모에 439억원 배정한다.국내영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영화진흥금고를 500억원까지 축적하고 문화산업진흥기금은 2003년까지 총 2,500억원 조성한다. 가야 역사문화유적,백제역사재현단지 등 지역특성을 살린 역사문화권 개발에 511억원을 지원하고 진도 신비의 바닷길,남원 춘향테마파크 등 자연경관과 지역별 특색을 살린 다양한 문화이벤트의 발굴을 적극 지원한다.경복궁·창덕궁 등 조선왕궁을 원형대로 조기복원,관광자원화하는데 144억원을 지원한다.새천년준비위원회에서 채택한 밀레니엄사업에 100억원을 반영, 기념조형물로 ‘천년의 문’을 세우고 각 시·도별 새천년거리모델 만든다.남해안을 부산도시관광권,해양레저·스포츠관광권,종합휴양 관광권,역사문화관광권등 4개 권역별로 특화개발하기 위해 신규로 500억원을 반영한다. ■맑고 깨끗한 환경 보전 무공해 천연가스 버스를 월드컵 개최도시를 중심으로 1,500대를 우선 보급하고 2002년까지 모두 5,000대를 보급한다.고가버스 도입이 요금인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334억원을 지원한다.4대강 상수원 지역의 수질개선을 위해 녹조방지 사업비를 2배 정도 늘어난 75억원을 배당하고 특히 2005년까지 팔당호를 1급수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한강 수계 하수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에 300억원을 신규지원한다.낙동강 하수처리시설비를 1,000억원 반영하고 해양오염 방지를 위해 1,600억원을 지원한다. 쓰레기의 안정적 처리를 위해 25% 늘어난 1,328억원을 지원한다.지방자치단체의 재활용품 집하 선별장 설치에 30억원을 배정하고,국립공원 및 자연생태계 보전 등 환경친화적 투자에 695억원을 지원한다.청소년의 자연체험학습교육을 위해 12억원을 신규 지원한다. ■벤처·중소기업 지원의 내실화벤처기업 지원을 융자에서 투자위주로 전환하기 위해 벤처투자조합 출자예산을 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창업보육센터를 142개에서 222개로확대한다.미국 실리콘밸리에 코리아벤처지원센터를 설치,국제화를 지원한다. 중소기업 구조개선에 7,000억원,지식기반 신산업에 2,260억원 등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둔다.기술력이 우수한 중소기업 회생 지원에 300억원을 신규 지원하고 무역실무교육,해외시장 정보제공,수출상담 등을 통해 300여개 내수기업의 수출기업화를 지원한다.중소수출기업의 전시공간 확충을 위해 228억원을 배정한다. ■농림어업 지원의 효율화농어촌 투융자 예산을 30%로 높이기 위해 1조1,000억원을 반영한다.도매시장은 인천 등 5개소,물류센터는 대전 등 4개소를 완공한다. 유통개혁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통해 5단계 거래에서 3단계 거래 위주로 전환한다. 유통마진은 2002년 13조원 수준으로 축소한다.농·축·인삼협의 통합 추진에 420억원을 지원하고 부실조합 정비 등 수협 자체개혁 지원에 535억원을 배정한다. 농진공·농조·농조연이 농업기반공사로 내년 1월 통합됨에 따라 자립경영기반 구축에 400억원을 지원한다.농어민 연대보증 대출자금을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 보증으로 전환하고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에 3,000억원을 출연한다.자금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업성에 기초한 대상자 선정으로 사업 부실화를 예방한다.한·일 어업실무협정 후속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기르는 어업을 육성한다. ■SOC투자의 지속적 확충 인천국제공항(2000),서해안고속도로(2001),경부고속철도(2004) 등 대형 국책사업의 공기내 완공에 중점을 둔다.SOC 관련 정보화,연구개발 등을 각각 102%,46% 늘려 적은 비용으로 효율성을 높인다. 서해안·대전∼진주·영동고속도로 등 주요 간선고속도로의 2001년 9월 이전 개통을 추진해 2001년 추석부터 귀성길 교통정체를 대부분 해소한다.지하철건설을 완공위주로 8,307억원을 집중투자하고 신규노선 건설은 중단한다.서울지하철 6,7호선은 2000년,부산지하철 2호선은 아시안게임(2002년) 이전 완공을 지원한다.지하철운영비에 대한 재정지원을 3,332억원으로 늘린다.인천국제공항의 2000년 완공,2001년 개항을 위해 완공에 2,878억원,개항에 716억원 지원한다. 경부고속철도는 내년말까지 시험선 전구간 개통으로 시속 300㎞에서 시험운행하고 2000년에는 전구간에 걸쳐 공사를 본격 시행하고 호남선 송정리∼목포 복선화(2002년 완공),경부선 수원∼천안 2복선 전철화(2002년 완공),전라선 개량(2003년 완공),경춘선 복선전철을 본격 추진한다.민자유치 촉진을 위해 5,000억원의 ‘인프라펀드’를 조성하고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최저수익률을 보장한다. ■생산적 복지 지원 2000년 10월 ‘기초생활보장법’ 시행에 따라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저소득층의 생계비를 지원한다.지원대상을 54만명에서 154만명으로 확대한다.한시적 생활보호자를 적정수준으로 감축한다. 지역의료보험 지원을 늘리고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적용대상 지원을 강화한다.99년 1,329억원에서 1,447억원으로 늘린다.2000년 7월부터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4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대상을 현재의 749만7,000명에서 914만4,000명으로 늘린다. 저소득층 5세 자녀 2만3,000명의 유치원 학비를 보조하고 5세 이하 자녀 12만7,000명의 보육료도 지원한다.중고교생 40만명의 학비를 새로 지원,수혜대상을 300만명에서 340만명으로 늘린다.대학생 학자금 융자대상을 30만명으로 확대하고 저소득층 자녀 초중등학생에 대한 중식지원을 201억원에서 384억원으로 늘린다.2000년 2월 ‘평생교육법’ 발효를 계기로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한다.직업훈련 바우처(카드)제도도 2000년부터 전국으로 확대,20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 [현장] 추도식장의 ‘씁쓸한 빈자리’

    21일 오전 7시.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정문 앞에 6대의 버스가 멈추자검은 상복을 입은 300여명의 사람들이 내렸다.지난 18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 폭발사고로 숨진 고 김태영(29)·김영환(金永煥·25)·홍영걸(洪永傑·23)씨의 장례 행렬이었다. 행렬은 영정을 앞세우고 빗속을 뚫고 공과대로 향했다.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학교측이 정문 통과를 허락하지 않아 학교 밖에서 기다렸다. “널 보내기 싫다고 수십번도 더 말하고 싶지만,이제는 너를 보낼 시간이구나.이젠 아픔 없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모두 하면서 편히 잠들렴…” 사고가 난 공학관 31-1동 가건물 앞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학생대표 최윤호씨(석사과정 1년)가 추도시를 읽자 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숨진 ‘과학도’들의 어머니들은 아들의 영정을 보며 통곡했다.애써 울음을참던 아버지들도 끝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어미만 남겨두고 갔단 말이냐” 땅을 치며 오열하던 가족들은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소복차림 여학생의 살풀이 춤에 더욱슬픔이 북받치는 듯해 보였다.추도식에 참여한 교수와 동료,선후배들도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 추도식이 끝나자 행렬은 다시 정문 밖의 운구차로 향했다.고 김영환씨의 어머니는 추도식에 앞서 이날 오전 6시부터 빈소인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열린합동 영결식에서 두 번이나 실신한 뒤끝이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러나 오열 속에 치러진 추도식장에는 이기준(李基俊)총장과 송병락(宋丙洛)부총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서울대 병원에서의 영결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 명의로 돌린 영결식 안내 유인물의 식순에는 이총장이 추도사를 하게 돼 있었다.또 이총장과 송부총장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명시돼 있었다.영결식에서 총장 명의의 추도사는 우종천(禹鍾天)대학원장이대신 읽었다. “미래의 에너지를 개발하겠다”며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렸던 김태영씨,국제학술지에만 9편의 논문을 발표한 김영환씨,어머니가 한림대 청소원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과학도의 길을 걷고자 했던 홍영걸씨. 사고가 난 대학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과 그를 보좌하는 부총장이 참석하지않은 영결식과 추도식을 보며 기자는 왠지 더욱 서글퍼졌다. [사회팀 전영우기자 ywchun@]
  • 추석음식 두배로 맛있게 즐기기

    추석이면 으레 등장하는 음식으로 송편,토란탕,전,적,갈비찜,나물,잡채 등을 들수 있다.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도 거의 변화가 없다.갈비찜에는 밤이나 감자,고구마를 넣는다.그리고 북어포로는 북어 보푸라기 무침 등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공식아닌 공식이 정해져 있다.이번 추석에는 매년 대하는 음식이라도 색다른 아이디어로 변화를 주어 보는게 어떨까.요리연구가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은 추석때 많이 나오는 토란을 갈비찜이나 닭찜에 넣어보라고 제안한다.의외로 맛이 서로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토란의 맛을 경험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그는 “요리는 조금만 발상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며 명절에 흔한 과일 재료를 이용한 생채와 북어포 초회를 추천했다.상큼 새콤한 이들 음식은 전,구이 등 기름진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토란갈비찜] 재료(4인분) 쇠갈비 1㎏,통마늘 5쪽,굵은 파 1대,토란 100g,당근 ½개,은행 10알,소금·설탕 약간씩,조림간장(간장3큰술,설탕 1½큰술,맛술 ½컵,,물엿 3큰술,물 ½컵,마른고추 2개,통마늘 10쪽,저민마늘 1작은술,굵은 파 1대,통후추·녹말가루 약간) 만들기 ①냉동갈비는 녹여 찬물에 20∼30분 담가 핏물을 뺀다.②냄비에 갈비가 잠길만큼 물을 붓고 통마늘과 굵은 파를 넣고 30분간 삶는다.(물량을잘맞춘다)③삶은 갈비는 건져서 결방향으로 칼집을 2∼3번 넣는다.갈비 삶은 물은 마른 면보자기에 내려 맑게 거른다.④토란은 껍질을 벗겨 큰것은 반으로 가르고 작은 것은 통채로 쌀뜨물에 소금을 약간 넣어 살짝 삶아서 건진다.그래야 미끈하고 아린 맛이 없어진다.⑤은행은 프라이팬에 볶아서 껍질을벗긴다.⑥맛술을 먼저 냄비에 넣고 끓인 후 분량의 조림간장재료를 모두 넣어 약간 걸쭉하게 국간보다 약간 센정도의 간으로 끓여 조림장을 만든다.⑦냄비에 ③의 국물을 넣고 조림장을 푼 뒤 손질한 갈비를 넣어서 끓인다.먼저 센불에서 끓이다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서서히 30분간 끓인다.⑧토란 삶은것과 당근,은행은 끓기 시작한 다음 15분이 지나서 넣는다.⑨먹기 전에 그릇에 담는다. [북어포초회] 재료(4인분) 북어포찢은 것70g,실파 3뿌리,양파 ¼개,깻잎 10장(미나리를 사용해도 좋다),홍고추 2개,소금,초회소스(고추장 2큰술,고춧가루 1큰술,다진마늘 1큰술,설탕 3큰술,식초 2큰술,깨소금,참기름) 만들기 ①북어포를 물에 씻어 물기를 꼭 짜서 참기름을 넣고 무쳐 놓는다. ②깻잎은 씻어서 물기를 제거하고 1㎝ 폭으로 썬다.홍고추는 가늘고 어슷하게 썰어 씨를 털어낸다.③제시한 분량대로 초회소스를 만들어 골고루 섞는다.④초회소스를 ①과 ②섞은 것에 넣어 버무려 간을 맞춘다. [과일생채] 재료(4인분) 붉은사과·파란사과·배 각 1개씩,밤 3개,대추 6개,소금 설탕 약간씩,촛물(식초 2큰술,설탕 1큰술,소금 ½작은술) 만들기 ①사과는 껍질을 벗기지 말고 반으로 갈라 씨를 도려낸 후 3㎜ 두께로 채썰어 설탕물에 담가둔다.②배는 껍질을 벗긴 후 사과와 같은 굵기로채썰어 설탕을 뿌리거나 설탕물에 담가둔다.③밤은 껍질을 벗겨 채썰고,대추도 물에 씻어 물기를 닦아 돌려깎은 후 채썬다.④큰볼에 준비한 과일을 담고 소금을 약간 넣어 밑간을 한다음 냉장고에 넣어 차게식힌다.⑤분량의 재료를 넣어 촛물을 만든 뒤 ④에 넣어 버무린다. 강선임기자
  • 安重根의사 추도가

    안중근(安重根) 의사 거사 90주년을 앞두고 안의사 순국 후 연해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추도가’ 가사와 안의사가 거사 전에 동지들과 결성한 ‘단지동맹(斷指同盟)’ 결성장소가 처음 발굴,확인됐다. 조사단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입수한 문건자료 가운데 포함된 ‘대한의사안중근씨추도가(大韓義士安重根氏追悼歌·사진)’라는 긴 이름으로 된 이 추도가는 모두 4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자와 연대는 모두 미상이다. 1절 첫머리를 ‘우리 안공(安公) 높은 의(義)/일월(日月)같이 밝으며’로시작하여 4절 ‘조국광복 속히 해/선열 위로 해보세’로 끝나는 이 추도가는 국한문 혼용으로 당시 연해주지역 한인들의 안 의사에 대한 추모의 정을 흠뻑 느끼게 하고 있다. 한편 조사단은 안중근의사가 1909년 3월2일 동지 12명과 함께 연추(煙秋·노보키예프스크)인근 한인마을에 모여 왼손 무명지를 끊고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했던 장소를 찾아냈다.조사단은 “관련 문건과 포시에트박물관 위스콜체트 관장의 증언을 참고로 현 크라스키노 주하노프카 마을 앞이당시 안의사가 ‘단지동맹’을 결성한 현장임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또 “현재 이곳은 1937년 러시아정부의 한인강제이주 이후 마을이 폐허로 변했으나 한국식 우물 등이 남아있고 당시 한인학교의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재벌개혁 초일류기업으로 가자](상)

    재벌정책 목표는 21세기 초일류 전문기업 육성국민의 정부는 출범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위해 재벌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대한매일은 재벌개혁의 성공을 위해세차례 특집을 싣는다. 재벌개혁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며 언제까지 계속되는가.재벌해체와는 어떻게 다른가.순수한 소유구조의 개선인가 아니면 특정 재벌을 겨냥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가.매듭은 없이 늘 새롭게 시작만 하는가.재계는 물론 독자들로부터 데스크에 쏟아지는 주요 질문들이다. ■선단식 경영의 시정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특정 재벌을 겨냥한 사정(司正)식 개혁이나 인위적인 재벌해체는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그동안 여러차례 재벌개혁의 목표가 몸집을 굴리기조차 힘겨운 공룡과도 같은 ‘선단식(船團式) 경영’의 시정에 있다고 천명했다.강봉균(康奉均) 재경부장관도 6일 국민회의 의원연수회 특별강연에서 “경쟁과 견제라는 시장원칙을 작동시켜 문어발 식의 방만한 사업경영과 이를가능케 하는 총수 1인지배체제를 바꿔나가려는 것”이라며 재벌개혁의 목표가 선단식 경영의 타파에 있음을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그룹총수가 황제처럼 군림하며 모든 것을 재단하거나,세상은 변하는데도 족벌경영 체제를 세습하는 재벌의 잘못된 기업윤리와행태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고치자는 것”이라며 “재벌의 인위적인 해체가아니라 재벌체질 강화를 염두에 둔 개혁”이라고 확인했다. ■세계일류의 경쟁력으로 경제발전 선도 정부의 청사진에 따르면 재벌개혁이 성공하면 우리나라 재벌들의 주력 계열사들은 저마다 세계일류의 경쟁력을 갖춰 경제발전을 선도하게 된다.강 장관은 “예컨대 삼성전자가 번 돈이삼성자동차에 흘러가지 않게 되면서 삼성전자는 차세대 개발투자를 증대,세계 일류기업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된다”고 재벌개혁후 미래상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재계는 정부의 재벌정책에 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을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재벌개혁의 목표와 진정한 지향점이 어디인지에 관한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한 재계 고위인사는 “올들어 정부의 압박에 따라 현대와 LG반도체의 통합에 이어 삼성자동차 법정관리와 이건희(李健熙) 삼성회장의 사재출연,대우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착착 이뤄졌고,최근에는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삼성 이회장의 변칙상속에 대한 세무조사 검토 발언 등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그는 “하나의 시나리오에 의해 차례로 ‘재벌사냥’이 진행되는인상”이라고 재계일각의 불안한 분위기를 전했다. ■재벌정책 시나리오는 없다 이에 대해 정부의 믿을만한 소식통은 “재벌개혁을 완수하면 재벌도 살고 나라도 산다”면서 “과거와는 달리 국민의 정부는 정경유착으로 재벌에 빚진 일이 없기 때문에 재벌정책이 상대적으로 과감하고 충격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재벌사냥 시나리오는없으며,특정기업을 타깃으로 삼는 식의 정책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없다”고 단언했다./정종석 경제과학팀장
  • [굄돌] 채소밭을 가꾸며

    나는 내 세대로서도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자연의 생태에 대해 아주둔감한 편이다.그런 때문에 농사나 숲속 생활 따위를 묘사하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꽃밭 가꾸는 이야기나 하다 못해 꽃집에 잠시 머무는 상황 설정도 하지 못한다.청년시절에는 오히려 그런 것보다도 훨씬 현대적인 이야기가 널려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하고 당당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나는 초조해졌다.나는 부지런히 변화무쌍한 현대를 호흡하고 다루어 왔음에도 불구하고,그럴수록 자연생태에 관한 나의 체험과 지식의 부족이 그것과 상관없이 문학을 해온 나 자신을 한없이 위축시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방학 때 나는 도시에서 살아온 한 사내가 자기 가족이 함께 가꾸던 주말 농장을 찾아가 말년에 그곳의 주인이던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는 사연을담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상추와 배추도 구분을 잘 못하는 내가 이번 소설에서는 쑥갓과 열무,깻잎,파,방울토마토까지 나열해 놓고 몇가지는 모양새도그럴 듯하게 묘사해 두었다. 그것은 올들어 우리 구의 여성민우회에서 관리중인 음식물 쓰레기 퇴비장을 주말 농장으로 제공해주는 걸 아내가 신청해서그 중 한 평을 얻어낸 덕분이었다. 그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야산 기슭에 있다.처음에 산책 삼아 갔다가 씨앗을 뿌려 보니 그 다음주에 곧바로 상추와 쑥갓을 뽑아올 수 있었다.초여름부터 내내 우리는 무공해 채소를 마음껏 먹었다.장마가 끝나고 지난 일요일에는 가서 무성해진 잡초를 뽑고 밭을 다시 갈아 열무 씨를 뿌렸고,다음 주에는 김장용 배추 씨를 뿌릴 예정이다.나는 점점 더욱 자신있게 채소가 자라고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있다.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 [재벌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정부·경제전문가 좌담

    재벌개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정부는 순환출자 억제와 사외이사제 도입등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현대의 주가조작의혹 수사,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의 변칙증여혐의 조사 등으로 재벌들을 압박하고 있다.그러나 개혁정책에 대한 재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이근경(李根京) 재정경제부 차관보와 이한구(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최운열(崔運烈)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의 좌담을 통해 마무리 단계인 재벌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을 들어본다. ■이한구 사장 현대전자의 주가조작의혹이나 삼성 이건희회장의 우회증여 혐의 등은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법대로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이를 재벌개혁의 압력수단으로 이용한다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재벌개혁은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자는 것인 만큼 일부 재벌및 관계자들의 불법행위를 놓고 재벌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등 감정적으로 대응할 경우 당초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근경 차관보 그 문제는 법집행에 관한 문제인 만큼 이 자리에서 논의하기는 부적절합니다.재벌개혁과 관련해 세가지 원칙이 새로 제시됐습니다.제2금융권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재벌 지배를 차단하는 것,순환출자와 부당내부거래를 억제하는 것,변칙적인 증여와 상속을 방지하는 것입니다.재벌개혁의 원리는 투명성,책임성,재무구조 건전성입니다.이 원리들이 현실에 적용되면 기업을 둘러싼 당사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게 될 것입니다.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재벌개혁의 기본 취지는 과도한 차입을 통한 무모한 확장을막고,국민을 볼모로 부실을 치유함으로써 경제 전체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의고리를 끊는데 있습니다. ■최운열 교수 제가 보기엔 재벌개혁이라는 용어 자체가 거부감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차라리 기업 개혁이라고 했으면 저항이 덜했을 것입니다.개혁의 목표는 처벌이 아니라 기업 체질을 강화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우는데 있습니다.글로벌시대에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어렵습니다.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왔습니다. ■이사장 저는 재벌정책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점이 몇가지 있다고 봅니다.먼저 기존 재벌구조로 인한 경제문제를 개선하려는 건지,새로운 환경을맞아 새롭게 행태가 변하도록 유도하는 건지 불투명합니다.또 기업의 재무에 초점을 맞추느냐,영업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시책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이 부분도 모호합니다.특히 외환위기 때문에 부채가 갑자기 늘어났는데도무조건 부채를 줄이라고만 강요하면 영업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기업에 대한 간섭을 어떤 범위에서 할 지에 대해서도 분별이 없습니다.지배소유구조와 재무구조,사업구조는 구별해야 합니다.지배소유구조는 사회적 가치관이 반영되는 것이므로 간섭할 수도 있겠지만 재무나 사업구조에까지 정부가 나서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사업구조는 더 큰 문제입니다.사업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는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데 지나치게개입하고 있습니다.수술을 하다 환자를 죽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최교수 말씀하신 것들을 모두 독립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재무구조 등과 기업의 업종다각화 등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는 없습니다.또 기업의주채권단이 은행이고,부실은행에 대한 정부 출자가 많아 주주 입장에서라도재무구조 개선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때문에 이를 반드시 간섭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사장 그러나 부채비율이 기업마다,업종마다 다르고 도산가능성도 모두다른데 외부에서 판단해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주주는 은행이 제역할을 못할 경우,경영진을 바꾸면 되지 부채비율이나 여신에까지 간섭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요. ■이차관보 정부가 채권은행과 재벌간의 약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도록 한 것은 재벌이 망하면 금융기관 손실로 이어지고 이는 국민의세금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같으면 빚을 다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이제는 빚이 일정수준을 넘으면 시장에서 신뢰하지 않습니다.기업의 부실이 국민경제의 손실로 연결되기 때문에 정부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사장께서 사업구조에 대한 정부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재벌이 문어발로 다각화돼 중소기업의 설 땅이없어지는 것을막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또 핵심역량 집중작업은 재벌간의 자율합의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이사장 문제는 부채비율을 맞추면 안전하고 못 맞추면 안전하지 않은가 하는 문제입니다.어떤 업종은 부채비율이 높아도 현금이 많이 돌아가 문제가없고,어떤 기업은 부채비율이 낮아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획일적으로밀어붙이면 병이 드는 경우가 생깁니다.금융기관들이 능력이 없다고 하지만권한만 주면 왜 능력이 없겠습니까.금융기관이 능력을 갖지 못했다면 정부는 지금까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선진국도 직접금융 중심 국가와 간접금융 중심 국가가 다릅니다.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 현금 흐름이 좋아지고 부채비율도 낮아지게 돼 있습니다.정부는어떻게 이를 뒷받침할 지에 치중해야 합니다. ■이차관보 시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지금까지는 정부가 은행·재벌이 망하지 않도록 암묵적인 보증을 해왔지만 그런 보증이 끊어진 마당에 시장은 기업의 재무상태를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그런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면 스스로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최교수 제조업의 평균 금융비용 부담률이 5.8∼5.9% 정도 되는데 이는 다른 나라보다 두,세배 높은 수치입니다.직접금융이 우위에 있는 미국의 제조업 평균 부채비율이 100∼150% 안팎이고 간접금융 중심의 일본이 200% 가량입니다.국내 기업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전에 400%였던 것이 1년뒤 500%까지 올라갔습니다.이 정도면 기업 스스로도 어렵다고 판단할 것입니다.예전에는 금융의 행태가 부도를 내지 않는데 맞춰져 있어 빚이 많아도 부도가 안났지만 이제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부채비율을 스스로 낮출 수 밖에 없습니다.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할 것입니다. 계열사를 30∼40개씩 거느리고 있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한 그룹내 기업들이상호지급보증 형태로 운명을 얽어매고 있기 때문에 부실기업이 우량기업까지 동반몰락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독립경영으로 가는 것만이 그룹 전체가사는 길입니다. ■이사장 저도 일찍부터 상호지보의 위험성을 지적해 왔습니다만원인과 형태도 따져보지 않고 똑같이 없애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신규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신용도가 떨어진다면 상호지보를 해야 합니다.모든 것을 정부가 획일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또 사업영역의 다각화는 외국과의 경쟁에서 아직 유용합니다.부작용이 있다면 이를 없앨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지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하면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부채비율도 그렇습니다.물론 낮추면 경쟁력이 올라가지요.하지만 경쟁력은마케팅력,기술력 등 여러 요소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차관보 정부의 지시 이전에 적어도 재무 건전성만큼은 재벌 스스로 달성해야 합니다.상호지보도 금융기관들이 기업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결정하면문제 될게 없지만 위험을 줄이려는 금융기관과 금리를 낮추려는 재벌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정부가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선단식 경영에 대해서도 정부는 매우 부정적입니다.총수의 경영 전횡에 대한 견제가 없어 무모한 의사결정과 그로 인해 자원이 낭비되는 사례도있었습니다.재벌이 자금시장과 사업 영역을 독식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설 땅이 좁아졌습니다. ■이사장 제 생각은 다릅니다.재벌이 중소기업의 입지를 좁혔다지만 시장이완전 개방돼 외국기업들이 밀려오는 판에 대기업 진입을 막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부정책이 재벌을 살리는 것이냐,죽이는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 해체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일부 정부 인사들이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해체론에 불을 붙였습니다.이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차관보 정부는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수많은 기업에 진출하는 것을 원치않습니다.재벌은 앞으로 은행과 재벌의 약정에 따라 핵심 역량에 주력해야합니다.정부가 정유·철도차량·항공산업 등에서 재벌의 과잉 투자를 조정한 것은 이를 위한 조치입니다.또 순환출자를 억제하고 상호지보는 금지해 그룹 내부의 지나친 결속에서 오는 국가경제의 위험을 줄여보자는 것입니다. ■최교수 저는 단순히여러 기업을 한 그룹에서 경영하는 것을 선단식으로보지는 않습니다.수많은 기업의 의사결정이 한사람의 지시에 따라가는 것이선단식이지 단지 한 그룹 안에 10개,20개의 기업이 있다고 해서 선단식으로부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우리 재벌은 순환출자를 고리로 공동운명체가 돼있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기업이 전체 주주의 이득을 극대화하지 않고 총수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총수가 지배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관련부처가 사전 의견조율을 해서 재벌해체나 선단식 경영과 같은 용어를분명히 정의해야 혼선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명확한 의미도 전달되지 않은 채 사회적 파장만 주고 있는 설익은 아이디어 남발은 하지 않았으면좋겠습니다. ■이사장 정부의 지시가 너무 심하다보니 심지어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가 어느 정도까지여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자본주의 시스템의 장점을 살리려면 기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나 조직에게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차관보 기업을 잘 아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는 정부도 공감합니다.그 결정은 정부가 아니고 시장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 사유재산 침해 등 이념의 문제를 들먹이고 있지만 재벌개혁은 헌법질서와 시장원리의 테두리내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정부가 추진하는 것은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재무구조를 건전화해 두번 다시 환란과 같은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일 뿐입니다.그것이 결국 국가경제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일 뿐 아니라 재벌에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손성진 김태균기자 sonsj@
  • [미행정부 Y2K대비 어떻게] (4)통신워킹그룹·연방항공국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통신·교통 대국 미국이 이들 분야에 있어서의 Y2K해결 노력은 남다르다. 우선 통신분야를 위해 연방정부는 워킹그룹(TWG)을 구성,주관하도록 했다. 이는 물론 백악관 2000년 전환위원회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TWG는 정부서비스국(GSA)과 함께 ‘네트워크 안전성 및 상호통화위원회’(NRIC)를 다시 구성,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 통신의 Y2K문제도 모두 일괄해해결을 꾀하도록 했다. 미국내에는 대형 통신회사들이 많지만 지방에도 소형 민간통신회사가 많아이를 일관되게 정리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수 없기 때문이다. NRIC는 통신을 공공·민간 구분 대신 국내·국제 통신으로 구분,해결토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하에 국내통신을 담당하는 연방기술서비스(FTS)라는 소그룹을 구성하는 한편 국제 통신부문은 국제통신연맹(ITU)이 맡아 해결토록 했다. FTS는 연방통신위원회(FCC)와 함께 지난해초 태스크 포스를 구성,유선을 비롯한 무선,위성,국제케이블망,방송망 등의 Y2K해결을 위해 진단을 내리도록했다. 이들이 2000년전환위원회와 의회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90%의 해결진척률을 보이고 있고 나머지만 민간부문의 해결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미국내에는 모두 1,200개의 중소 지방연결업체가 있어 이들 모두가문제해결을 마치기 전에는 통신부문의 Y2K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현재 이 중 654개 업체(55%)가 해당업체에 주어진 일정에 맞춰 해결해오고있으며 나머지 업체는 해결능력이 모자라 아예 전환위원회에 의해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부문의 Y2K해결에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민간 통신업체들이 전환위원회의 감독을 받을 수는 없다는 점.이 때문에 정부는 해당업체의 감독권을 갖는 기관으로 하여금 중간단계의 감독,해결그룹을 만들어 이들을 독려하는 해결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통신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는 교통부문의 Y2K해결에서도 비슷한 기관들이 눈에 띤다. 역시 관련부문의 민간업체가 많기 때문에 강제력을 동원하기 보다는 그간감독 역할을 담당한 기관들을 중간그룹으로 동원,해결을 독려해왔다. 정부가 교통부문 해결을 위해 구분지은테두리는 항공,철도,고속도로,해양운송,위험물운송 등 5개 분야이다.위험물운송을 따로 떼어 내 특히 강조한사실이 주목된다. 항공분야는 연방항공국(FAA),철도는 전미철도협회(AAR),고속도로교통분야는 연방고속도로국(FHA),해양부문은 미해양국(MA)등이 중간에서 감독기능을 해오고 해결책을 주선하는 주관기관들이다. 교통수단별로 가장 문제소지가 많은 것은 역시 항공기와 선박.예민한 기기들이 많이 갖춰진 것이 문제거니와 민간제조업체가 많아 서로의 이익을 앞세우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 가장 큰 애로였다. 따라서 중간감독기관들의 신중성과 공공안전을 앞세운 설득력이 가장 큰 효과를 본 요인이다. 특히 항공기와 선박은 위성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GPS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위성회사들의 협조 역시 Y2K해결의 핵심요건 가운데 하나였다. 위성을 비롯한 항공기,선박 등 제조회사들의 문제해결 참여의식을 높이기위해 정부가 한 일은 단순한 감독이나 독려 보다는 완벽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사익을 앞세우는 민간업체라 하더라도 사회전체의 이익을 전제한 타당성을갖춘 가이드라인은 이들 업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사전에 막는 역할을 했다. 지난달말 백악관 2000년 전환위원회 의장인 코스키넨은 Y2K가 임박한 시간인 올 12월31일 오후6시 자신은 집을 나서 항공기 여행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Y2K 해결의 총책임자가 새해를 항공기내에서 맞으면서 몸소 그 해결을 과시하는 동시에 민간업체로 하여금 호소력 있는 대안을 갖추도록 독려하기에 충분한 제스처였던 것이다. hay@
  • 청와대 ‘재벌구조 不容’확대해석 서둘러 진화

    청와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이제는 시장이 재벌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 “재벌 집단이 아닌 개별기업이 독자적으로세계 초일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사실상의 ‘재벌해체’로 해석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결론부터 말하면 재벌의 구조개혁에 대한 의지일 뿐 재벌해체를 선언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16일 “김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을 재벌해체로 이해하는 사례가 있으나 그런 뜻이 아니다”며 “지난해 재계와 약속한투명성 제고 등 5개 개혁원칙의 연장선상에서 재벌의 금융지배 개선,상속 및 증여세 강화,계열기업간 상호출자 제한 등 3개 원칙을 추가한 것”이라고설명했다.재벌의 구조조정과 업종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기업과 국가모두에 이익이 되도록 한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기호(李起浩)경제수석 역시 “정부는 재벌 대주주의 소유구조를 개편할계획이 추호도 없다”고 전제하고 “선단식 경영방식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없기 때문에 개별기업으로 경쟁력을높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러기 위해 재벌의 금융지배 등을 막아 독자적으로 전문적인 영역을갖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로 예정된 청와대 정·재계간담회에서 재벌의 참여를 배제하고 정부와 채권단 대표만 참석,재벌개혁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서도“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형식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청와대는 정·재계간담회에 재벌총수를 참석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정부가 내세운 경영책임과 원칙 측면에서 볼 때 재벌총수보다는 합법적인 경영진을 참석시키는 것이 옳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그만큼 재벌개혁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재벌해체로 비춰짐으로써 재벌이 동요하고 이 과정에서 사태가 정부와 재벌의 대결로 비화할 것을 우려,소유구조를 바꾸는 선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기업측에 알리려는 측면이 강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 [義烈 독립투쟁](1-2) 李在明 의사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지 채 두 달이 못돼 국내에서는 한 애국청년이 ‘을사오적’의 하나인 이완용(李完用)을 노상에서 습격,치명상을 입힌 의거가 일어났다. 을사조약 체결로 한국은 일제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하였고 한국 땅에는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어 사실상 한국정부를 대신하였다.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황제가 강제 폐위당한 데 이어 한국군의 해산 등 일제의 한국침략은 갈수록 강도를 더해 갔다.이에 전국에서 의병이 궐기해 일제에 대해무력항쟁을 시도했으나 병력과 물자에서 역부족이었다.여기서 돌파구로 모색된 것이 바로 개별단위의 의열투쟁이었다.이는 일제의 침략 주동자와 친일적신들을 처단함으로써 그들의 침략의지를 분쇄시키고 동시에 동포들에게 구국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이완용처단의거도 그 연장선상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1909년 12월22일 오전 이완용은 5일 전인 12월17일 사망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이 열리고 있는 서울종현(鐘峴) 천주교회당(현 명동성당)내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었다.11시 30분경 식이 끝나자 이완용은 저동(苧洞) 자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력거에 올라 교회 오른쪽 언덕길을 막 오르려던 참이었다.이때 갑자기 한 청년이 인력거 뒤에서 달려오더니 품 속에서 단도(短刀)를 꺼내 순식간에 이완용의 왼쪽 어깨(左肩)를 내리 찔렀다. 졸지에 습격당한 이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고꾸라지자 청년은 따라내려가 그를 타고 앉아 이번에는 오른쪽 허리(右便腰部)를 찔렀다.이완용은 이내 의식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졌다.이를 지켜보던 인력거 차부(車夫) 박원문(朴元文)이 달려들어 제지하려 하자 청년은 그의 어깨를 찔러 쓰러뜨리고는(박원문은 왼쪽 폐를 찔린 후 나중에 사망함) 다시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오른쪽 신장(腎臟)부분을 난자하였다(이완용의 생질로 그의 비서관을 지낸 김명수(金明秀)가 1927년 간행한 이완용의 전기 ‘일당기사(一堂紀事)’에서 인용).길바닥은 유혈이 낭자하고 순식간에 일대는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판단한 청년은 그때서야 ‘대한독립 만세!’를외쳤다.때마침 인근에서 호위하던 순사들이 달려들어 체포하려 하자 청년은칼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일경의 칼에 하체에 상처를입고 붙잡히고 말았다.이 의거로 결국 이듬해 처형된 청년이 바로 이재명(李在明)의사로 검거 당시 23세였다. 이 의사는 평양 출신으로 13세때 예수교에 입교하였으며 평양 일신(日新)학교를 졸업하였다.1904년 미국 노동이민회사의 이민모집에 응모,하와이에서농부로 일하다가 1906년 3월 재미한인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활동하기도 했다.1907년 공립협회에서 매국적(賣國賊) 숙청을 결의하자 자원,그 해 10월 배로 일본을 거쳐 귀국했다.귀국 후 중국과 노령(露領,러시아령) 등 각지를 돌며 동지를 규합하고 일제의 침략 원흉들과 매국노의처단을 결심한 이 의사는 1909년 1월 순종황제의 서도(西道,평안도) 순시때이토(伊藤博文)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평양역에서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동지 몇 사람과 정거장에서 대기했다.그러나 이토가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우려해 순종황제에게 붙어다니므로 이토를 향해 발포하다가 자칫 순종황제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도산 안창호의 만류로 이 계획은 미수에그치고 말았다.그러나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원산을 거쳐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기회를 엿보던 중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그를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다. 일제와의 무력항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제 침략괴수보다는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국권수호의 첩경이라고 생각한 이 의사는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처단 대상으로 지목하였다.그들 가운데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은 첫번째 대상인물이었다.거사 1개월 전인 11월 하순경 이 의사는 동지들과 숙의끝에 자신은 이동수(李東秀)·김병록(金丙祿)과 함께 이완용을,김정익(金貞益)·조창호(趙昌鎬)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李容九)를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12월7일 최종모임에서 일행은 역할분담을 확정하였다.거사 결행자 이외에 오복원(吳復元)·박태은(朴泰殷)·이응삼(李應三) 등 3인은 거사자금 조달을,조창호·전태선(全泰善)은 거사에 필요한 권총·단도를 준비하여 서울로운반하는 책임을,그리고 김용문(金龍文)은 먼저 서울로 올라가서 이완용과이용구의 동정을 탐지하기로 했다. 12월12일 상경한 이 의사는 당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기사를 통해이완용이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거사 당일 아침 군밤장수로 변장,성당 정문 앞에서 군밤을 팔며 동태를 살폈다.오전 11시30분경 추도식을 마친 이완용이 인력거에 오르자 이 의사는 그를 응징하고는 현장에서 체포돼 이완용 저택 보호순사실로 끌려갔다. 의거현장에서는 이 의사 이외에 여인 2명도 같이 체포되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이 의사의 부인 오인성(吳仁星)여사였다.권총을 휴대한 채 성당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동수와 조창호는 이 의사가 체포된 후 현장에서 도주하였다.이 사건으로 이 의사 등 13명이 이듬해 3월13일 정식 기소되었다. 첫 공판이 열린 5월13일 오전 9시30분경 이 의사 등 일행을 태운 3대의 호송차가 신축한 지방재판소에 도착하였다.중키에 짧게 깎은 머리,흰색 죄수복을 입은 이 의사가 동지 일행과 함께 출정하자 10시5분 개정에 이어 검사의기소장 낭독이 끝나고 재판장의 심문이 시작됐다. 문:공모자는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답:한 사람도 없다. 문:찬성자도 없었는가?답:2천만 동포가 모두 찬성자다. 문:거사는 언제부터 준비했나?답:을사조약 체결 후 미국에 있을 때부터 준비했다. 문:왜 이완용을 죽이려고 했나?답:죄목은 8개조(條)다.그 첫번째가 을사조약 체결이다. 거사현장에서 압수된 권총·단도 등 거사용품을 가리키며 재판장이 물었다. 문:행흉(行凶)에 사용된 무기는 이것들인가?답:행흉이라니,나는 행의(行義)를 했다.(‘일당기사’에서 인용) 18일 선고판결에서 이 의사에게는 ‘교(絞)’,즉 교살형이 선고되었고 김정익·김병록은 징역 15년,자금조달책인 이응삼에게는 최저형인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6월30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열린 2심 공판에서 검사는 “1심판결은 ‘완전무결’한 것”이라며 1심대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하였다.8월 최종선고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이의사는 “너희 법이 불공평하여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만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해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며 엄숙히 경고하였다. 9월13일 사형집행에 앞서 기독교 신자인 이 의사는 “내가 보던 찬미(讚美,찬송가)책이나 갖다 달라”고 하여 207장 ‘예수가 나를 기다리심’을 1절부터 끝까지 읽고는 조용히 순국하였다. 한편 이 의사의 습격을 받은 후 다량 출혈로 사경을 헤매던 이완용은 일제당국의 각별한 치료 덕분에 이듬해 2월14일 퇴원하였다.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의 병실이 있던 대한의원(현 서울대병원 구관)에는 통감부 소속 일본인 고관을 비롯해 고종·순종황제가 보낸 칙사,한국정부 고관,심지어 한국거류 일본인들의 병문안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퇴원 후 내각 총리대신으로 복귀한 이완용은 이 의사 순국 20여일 전인 8월22일 한국통감 데라우치(寺內正毅)와 마침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강토와 국권을 일제에 내주고 말았다.금산(錦山)군수 홍범식(洪範植)은 이 소식을 듣고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 자결하였고 매천 황현(黃玹)은 ‘절명시’를 남기고 음독,순국하였다.1910년대 의열투쟁은 이로써 또하나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대한포럼] 중산·서민층 정당의 출현을 고대하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일 국민회의의 재창당과 관련해서 신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그러기 위해서는당은 건전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이념적 정체성과 일관된 정책의 틀을 갖추도록 창당준비위에 특별히당부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은 매우 적절한 때에 매우 적절한 구상을 내놓았다고 판단된다.다만 새 당이 과연 대통령의 주문대로 이념적 정체성이 선명한서민정당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없지 않다. 새 정부와 국민회의는 집권 후 몇 가지의 기초적 장벽과 싸워야 하는 짐이있었다.첫째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다.무리한 부채경영에 의존했던 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대량실업과 감봉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중산층의 한 축이 무너지고 서민층에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가 됐다. 때문에 IMF 관리체제가 전 정권의 정책실패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많은 서민 지지층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부는 IMF 체제를 잘 극복해가고 있는 것 같다.이 점은 세계가 공히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IMF 체제 극복 효과가 중산·서민층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반면에 부유층은 초기 고금리 시절과 증권시장 활성화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중·서민층에 심대한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심어 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민련과의 공동정부라는 짐이다.자민련은 잘 알려져 있듯이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이다.국민회의가 자민련과 공동정부를 구성했다는것은 정책실현에 숙명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권은 국민대화합을 위해 영남권의 유신세력과도 화해를 시도하고있다.하지만 아직은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지 않다.반유신세력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며 유신세력은 어리둥절해 있다. 중산층 퇴락현상의 주인(主因)은 그것이 비록 IMF 체제 때문이었다고 해도사회안정이나 국가 장래를 위해 매우 위험한 신호다.사회복지체제가 정비돼있지 않은 사회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게 되면 그것은 바로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더구나 우리사회는 기득권층의 도덕성을 인정치 않는다. 따라서 중산·서민층을 대변하고 정책적으로 보호할 정치세력의 필요성이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김대통령은 일찍이 대중경제론을 주창했고 그의 개혁성향으로 보나 정치역정으로 보아서도 그가 이끄는 정당이 중산·서민층을 대표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망국적 병폐로 지목되고 있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길도 종국엔 이념 중심의 정책정당의 출현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것 같지 않다.아직은 지역주의의 위세가 너무나 크지만 그래도 그 길밖에는 없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주문하고 있는 정당이 우리 앞에 나타나려면 많은 난제(難題)들이 해결돼야 할 것이다.대통령이 당의 중심세력이 돼야 할 것으로 지적한 건전 보수세력과 개혁 세력을 구별하는 일도 적잖이 어려울 것이다.어디까지가 ‘건전’이고 어디서부터 ‘불건전’인지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전국정당화를 추구하다 보면 지역에 따라서는 옥석(玉石)이 뒤섞이게 되는경우도 있을 것이다.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끼어들어 당의 정체성을 흐려놓을 소지 또한 없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당이 중산층 보호에 앞장서고 서민 구제를위해 구체적인 정책을 현실정치에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국민적 지지를 받는 중산층 정당,서민정당이 되려면 내세우는 이념을 현실적으로 정책화하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임춘웅/논설위원lim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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