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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로운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의로운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의로운 일에 나섰다가 희생된 당신들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 미안합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지난달 2일 사고로 침몰된 ‘금양98호’의 선장 김재후, 기관장 박연주, 선원 정봉조, 이용상, 안상철, 허석희, 유수프 하레파(인도네시아인). 실종 선원 7명에 대한 영결식이 6일 오전 10시 인천시 경서동 신세계 장례식장에서 수협장으로 열렸다. 사고 발생 34일 만이다. 영결식은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군·해경·수협 관계자, 시민과 유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장례위원장인 이종구 수협중앙회 회장은 조사에서 “천안함 사고 때 한달음에 달려가 내 자식 같고 조카 같던 장병들을 수색했던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실종 선원 안상철씨의 동생 상진씨는 추도사를 통해 “민간인 신분으로 나선 당신들의 아름다운 희생은 말 없는 조국애의 실천이며 소리 없는 가르침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실종 선원 6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해 영정과 유품 등이 인천가족공원 내 화장장으로 옮겨져 화장처리됐다. 이어 지난달 3일 시신으로 발견돼 22일 장례를 치른 선원 김종평씨와 함께 시립납골당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 선원 유수프 하레파의 영정과 위패는 영결식 뒤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인계됐다. 지난달 3일 시신으로 발견된 인도네시아인 람방 누르카효는 이미 본국으로 운구됐다. 실종 선원들에 대한 장례는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가 “인양작업에 따른 추가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며 실종자 수색 중단에 동의함에 따라 이뤄질 수 있었다. 해경은 지난달 14일 잠수업체를 선정하고 실종 선원을 찾기 위한 수중수색을 시도했으나 금양호가 깊이 80m의 심해에 가라앉은 데다 선체 입구에 어망·밧줄 등이 쌓여 있어 내부 진입이 어렵자 23일 수색을 중단했다. 금양호 희생자 9명에 대해서는 의사자(義死者)에 준하는 예우를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철저한 현지화·차별화” ‘글로벌 롯데’ 힘찬 순항

    “철저한 현지화·차별화” ‘글로벌 롯데’ 힘찬 순항

    │호찌민 강아연기자│‘글로벌 롯데’의 꿈이 베트남에서 움트고 있다. 호찌민시의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은 외국 직영점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순항하고 있다. 롯데가 위탁경영을 맡은 다이아몬드백화점도 한국식 백화점 운영 노하우를 접목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5일(현지시간)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흥겨움이 곳곳에 가득했다. 한국에서 주말의 마트 분위기와 다를 바 없었다. 이영노 롯데마트 베트남법인 팀장은 “주말이면 방문객이 평일의 3배나 되고 구매고객이 1만 2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매장 구성·운영 현지 생활패턴에 맞춰 2008년 12월 남사이공점이 들어선 호찌민시 7군은 시내 중심지와 신도시 개발지의 중간 지점이며 상권에 14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팀장은 “롯데마트가 들어선 뒤 주변 땅값이 오르고 아파트값이 2배가량 뛰었다.”고 귀띔했다. 호찌민시에는 베트남 국영업체 ‘쿤’과 프랑스계 ‘빅C’, 독일계 ‘메트로’ 등이 앞서 할인점을 열었다. 뒤늦게 뛰어든 롯데마트가 내세운 경쟁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와 차별화다. 자존심 강한 베트남인들을 떠받들어 주면서 매장 구성 및 운영을 현지 생활 패턴에 맞췄다. 베트남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점을 감안, 개점시간을 한국보다 2시간 빠른 오전 8시로 정했다. 냉장고 보급률이 21%로 낮아 신선식품을 가장 늦게 사는 점에 착안, 한국과 달리 신선 코너를 매장 안쪽에 배치했다. 차별화도 강화했다. 총 면적 1만 9800㎡(6000여평), 3층으로 구성된 매장에 문화센터·롯데시네마·패밀리 레스토랑·볼링장·당구장 등을 들여놓아 쇼핑과 문화생활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했다. 또 진열 상품 종류를 경쟁 할인점의 120% 이상 갖추도록 했다. 이 같은 노력이 호응을 얻어 남사이공점의 올해 1~2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늘어났다. 납품을 원하는 제조업체도 지난해 800여개에서 1200여개로 늘었다. 롯데마트는 베트남에 2018년까지 20개 점포를 연다는 계획이다. ●한국식 백화점 운영 노하우 접목 롯데백화점은 베트남 백화점 중 매출규모 1위인 다이아몬드백화점을 경영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롯데백화점 운영팀은 마케팅을 강화하고 해외 유명브랜드의 입점을 확대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16.5%를 기록했다. 운영팀은 우수고객(MVG) 라운지를 설치하고 고객상담실, 멤버십 서비스, 모니터링 제도 등을 새롭게 운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하노이에 65층 규모의 복합단지 ‘롯데센터 하노이’를 개장한다. arete@seoul.co.kr
  • [세대공감] 어버이날 전상서

    [세대공감] 어버이날 전상서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날, 부부의 날, 어버이날 등 챙겨야 할 기념일도 많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뜻깊게 여기는 날은 단연 어버이날. 한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8%가 어버이날을 5월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로 꼽았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작지만 정성이 가득한 선물,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준비해보자. 세대 간의 대화와 소통이 부족한 요즘, 어버이날은 부모님과 자녀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비싼 선물보단 손수 만든 카네이션·요리를 인천 주안동에 사는 이유선(26·여)씨는 어버이날 아침엔 꼭 앞치마를 두른다. 대학 입학 후 7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가장 자신 있는 ‘요리 선물’을 택한 것. 이씨는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과 정성을 듬뿍 담을 수 있는 요리가 가장 좋은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싼 돈을 들여 백화점에서 사는 선물보다 자신의 마음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씨가 만든 요리에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직접 만들었던 ‘종이 카네이션’에 담긴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씨는 “어린 시절에는 몇 시간을 꼬박 투자해 분홍색 습자지로 카네이션 두 송이를 만들어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렸다.”면서 “이제는 내가 하는 요리에 그 정성을 담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음식 제조업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난생 처음 맛보는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총동원한다. 지난해 어버이날엔 차돌박이냉채 샐러드와 월남쌈 바비큐립을 요리했다. 이씨는 “어버이날 아침에 한 상 거하게 차려놓으면 엄마가 특히 좋아한다.”며 “부모님이 딱 하루 쉬시는 날이잖느냐.”며 웃어보였다. ●실속있는 선물·현금 솔직히 더 반가워 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물질적으로 의미있는 선물을 기대하기도 한다. 정성이 듬뿍 담긴 자녀의 선물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갖고 싶었던 선물이나 용돈이 더 반갑다는 것이 솔직한 반응이다. 직장 5년차인 아들과 2년차 딸을 둔 오정애(58)씨는 2년 전부터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갖고 싶은 선물을 자녀들에게 은근슬쩍 내비친다. 물론 자식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다. 지난해 어버이날 오씨는 마침 똑 떨어진 기능성 화장품을 선물로 받았다. 아들은 피부에 탄력을 준다는 에센스와 크림을, 딸은 눈주름을 개선한다는 아이크림을 선물로 준비했다. 물론 오씨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으면 받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아침식사 자리에서 오씨는 “쓰던 화장품이 다 떨어져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눈치 빠른 딸은 오씨의 마음을 읽고 오빠와 자신이 나눠서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했다. 오씨는 “미리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주니 애들이 선물 고민을 하지 않아서 더 좋다고 한다.”면서 “자식들의 정성도 물론 좋지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에 정성을 더하면 더 좋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부대로 찾아온 아버지 발 씻겨드리며 화해 ‘이런 말하기 너무 어색한데요. 아버지. 그 동안 이 말을 하기가 왜 그렇게 어색했을까요.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인천 부평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최용완(29) 상병은 펜대를 놓으며 눈물을 닦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 뒤다. 때늦게 입대할 때까지 부모님 속을 참 많이 썩였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겠다며 스무살이 훌쩍 넘어서 가출도 했었다. 집에서 용돈을 끊자 학원 강사를 하며 군 입대도 미루고 또 미뤘다. 아버지 말씀을 따르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적이 있었다. 입대를 하고 보니 부대에 ‘예비 아버지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년 어버이 날 부대 장병들이 아버지들을 모시고 그동안 부자 사이에 가슴 터놓고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는 시간이다. 첫째 날은 장병들이 스스로 아버지의 입장에서 가상의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최상병은 지난해 어버이날, 아버지 최씨가 되어 젊은 시절 방황하던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최씨는 “스스로를 타이르는 편지를 쓰며 그동안 자신을 보듬어 준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비 아버지학교’ 이튿날에는 직접 부대로 찾아온 아버지를 만났다.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 발도 씻겨드리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금세 ‘친구’가 됐다. 모든 과정을 마치면 달콤한 외박도 나갈 수 있다. 최상병은 올해 어버이날에도 ‘예비 아버지학교’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처음에는 외박 때문에 참석했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오시는 게 반갑다.”면서 “군대에 와서 처음으로 어버이날을 기다리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윤석준(54)씨 역시 군대시절에 부모님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윤씨는 지금도 군대에 있을 때만큼 어머니를 그리워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3년간의 군 생활 동안 3번의 어버이날을 맞은 윤씨는 당시 적은 군인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어머니 선물을 장만했다. 입대 첫해 어버이날에 맞춰 휴가를 나온 윤씨는 당시 이병 월급 3000원씩을 모아 어머니의 블라우스를 샀다. 윤씨의 부대로 종종 면회를 오시던 어머니께서 변변히 입을 게 없다며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서였다. 당시 윤씨의 어머니는 “군인 월급이 얼마나 하는데 이런 걸 다 사왔냐.”고 타박하시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다음 번 면회 때부터는 항상 윤씨가 사드린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오셨다. 윤씨는 “나이가 들면서 어버이날에 좋은 선물도 해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그때 사드린 블라우스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면서 “아무래도 군대에 있으면 부모님 생각이 가장 애틋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노릇한 큰오빠… 이젠 고맙다고 말할래요 서울 상계동에 사는 조인순(48·여)씨에게 큰 오빠 형서(66)씨는 아버지나 다를 바 없다. 조씨가 여덟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큰오빠가 가장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7남매 중 막내인 조씨는 유난히 큰 오빠를 잘 따르며 그를 든든한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왔다. “어려서 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오빠를 부르면서 집으로 달려왔어요.” 조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빠가 자상하게 등을 토닥거려 주기도 하고, 한마디로 아버지 같았죠.”라고 말했다. 조씨는 “오빠가 동생들 공부시킨다고 집도 못 사고 고생도 참 많이 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항상 큰 오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온 조씨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면서 고마움을 자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3년 전 겨울, 큰 오빠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조씨는 “먹고 살려고 그랬다고는 하지만 제가 그래서는 안 되죠. 오빠 몸이 저렇게 되고서야 철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오빠인데…”라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큰오빠가 쓰러진 해부터 조씨는 어버이날이면 큰오빠 집을 찾는다. 늘 아버지처럼 든든했던 오빠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어버이날에라도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더 이상 감춰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오빠랑 언니 옷도 해드리고 부족한 솜씨지만 오빠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드려요.”라고 말하는 조씨는 “지금까지 못했던 거 어떻게 다 갚죠.”라며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윤샘이나 김양진기자 sam@seoul.co.kr ■ 어버이날의 유래 1956년 ‘어머니날’ 시초…부모님 돌아가셨을땐 가슴에 흰색 카네이션 우리나라의 어버이날은 1956년 5월 8일 국무회의에서 지정된 ‘어머니날’에서 시작됐다. 17회까지 이어진 어머니날은 이후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명칭이 ‘어버이날’로 변경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버이날은 본래 우리나라에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사순절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의 풍습과, 1910년경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마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데서 비롯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에 살던 자비스 부인은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해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자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부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학생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식을 열었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는 흰색 카네이션을 나누어 주었다. 이후 흰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표시로 정착됐다. 그러다 1914년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부터 정식 기념일이 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죽은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각종 집회와 행사를 연다. 어머니날은 선교사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됐고 19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공식 지정하면서 해마다 지켜지게 됐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동네슈퍼 키워 SSM 대응

    기업형슈퍼마켓(SSM)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네 슈퍼마켓을 지원해 경쟁력 있는 가게로 키우기 위한 ‘나들가게’ 35곳이 경남지역에서 문을 연다. 경남지방중소기업청은 30일 지난달부터 동네 슈퍼를 지원하기 위한 나들가게 육성사업 신청을 받아 147개 신청업체 가운데 35개 업체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정된 35개 업체는 3일 창원시 내동 현대유통센터 개점을 시작으로 6월까지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나들가게는 ‘나들이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은 정이 있는 가게’라는 뜻이다. 중소기업청이 점포시설 개선 비용으로 최대 1억원까지 융자하고 전문가가 점포 기획 및 상권분석 등에 대한 컨설팅도 해준다. 주기적인 경영지도와 우수점포 견학, 마케팅 교육과정 지원, 가게정보화 기기 설치 및 간판교체비 지원 등을 꾸준히 실시해 SSM과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李대통령, 46인 영정에 일일이 무공훈장 추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李대통령, 46인 영정에 일일이 무공훈장 추서

    29일 오전 9시57분쯤 평택 제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하며 합동영결식장에 들어섰다. 침통한 표정의 이 대통령은 고인들에 대한 경례와 묵념을 한 뒤 식장 맨 앞줄에 앉았다. 부인 김윤옥 여사도 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김윤옥여사 영결식내내 눈물 이 대통령은 이어 고 이창기 준위를 시작으로 천안함 사건 희생 장병 46명 전원의 영정에 화랑무공훈장을 직접 추서했다. 두 손으로 영정 앞에 훈장을 놓은 뒤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의 조사와 천안함 생존병사인 김현래 중사의 추도사가 이어지는 동안 이 대통령은 꼿꼿하게 제단을 응시하거나 간혹 눈을 감고 입을 굳게 앙다문 모습을 보였다. 유가족의 헌화와 분향이 시작되면서 이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간간이 눈가를 닦았고, 김 여사는 영결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헌화를 끝낸 유가족 중 한 여성이 이 대통령 내외 앞으로 나와 편지를 전달했고, 이 대통령은 일어서서 편지를 받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고 민평기 중사의 어머니는 영결식장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다가가 “북한에 왜 퍼주십니까. 쟤들이 왜 죽었습니까. 이북놈들이 죽였어요. 주면 무기만 만들어서….”라며 “이북 주란 말 좀 그만 하세요. 피가 끓어요.”라고 고함을 치며 오열하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軍통수권자로서 행동으로 실천” 오전 11시가 넘어 영결식이 끝나자 대통령은 빠져나가는 유가족쪽으로 먼저 가서 일일이 다시 인사를 했다.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대통령의 손을 붙잡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살려주세요.”라며 하소연을 했다. 유가족 중 한 여성은 이 대통령에게 안겨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고, 이 대통령은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희생장병들이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고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국군통수권자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조치하겠다는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노모 혼절·어린딸 오열…시민들 국화꽃 ‘마지막 배웅’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노모 혼절·어린딸 오열…시민들 국화꽃 ‘마지막 배웅’

    “그대 다 피지도 못하고 물 젖은 몽우리로 산화하여 구릿빛 육체는 차디찬 바다에 던져졌지만 당신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 영원할 것입니다.” 29일 오전 10시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안보공원에서 해군장으로 엄수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은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46명의 용사들에게 화랑무공훈장을 하나하나 추서하는 동안 유족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더 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천안함 생존장병인 김현래(27) 중사가 전우를 먼저 떠나 보낸 심정을 담은 추도사를 읽기 시작하자 유족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 고 이창기 준위의 아들 산(13·중1)군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얼굴을 계속해서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꿋꿋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장병들 눈물훔치며 입술 깨물기도 해군군악대 중창단이 ‘임이시여’ ‘떠나가는 배’를 합창하는 가운데 92명의 유가족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마지막 헌화와 분향을 했다. 유가족 중 백발의 어머니는 혼절해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고, 아버지 영정 앞에 선 딸은 사진만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던 장병들 역시 마스크 위로 눈물을 떨궜고 소매 끝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거나 입술을 깨무는 장병도 있었다. ‘바다로 가자’와 ‘천안함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운구행렬은 영결식장을 나와 군항 부두로 향했다. 선두 차량이 3번 도크를 지날 때 정박 중인 독도함, 부천함, 청주함 등 4척의 함정 승조원들은 “대함경계 준비, 총원차려, 경례”라는 명령에 맞춰 함정의 뱃전에 정복을 입고 도열해 바치는 해군 최고의 예우 ‘대함경례’를 했다. 군함에서는 이와 함께 해군 정모와 정복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풍선 3000여개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운구행렬은 각각 9~12대의 차량으로 나뉘어 총 11개 그룹이 시차를 두고 2함대 해군아파트를 거쳐 안장지인 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도로에는 태극기와 해군기가 게양됐고,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조기가 걸렸다. 길가에서는 시민들과 해병전우회 등 수백명이 국화꽃을 바치며 배웅했다. ●백령도에선 해상 추모제 영결식장 주변에는 고인들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 일반인들이 유독 많았다. 안산에서 온 김순희(57·여)씨는 “나도 자식 키우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서 어제 서울광장에 갔다왔는데 또 왔다.”면서 지나는 버스에 모두 목례를 했다. 한국전쟁에 해군으로 참전했다는 강창근(80)씨는 제복을 입고 훈장을 단 채 희생자들을 배웅했다. 한편 이날 오전 백령도 침몰해역에서는 46용사들을 기리는 해상 추모제가 열렸다.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백령도 주민들이 마련한 국화꽃과 학생들이 주민들의 추모글을 모아 만든 종이학 1000여개를 해병대원들이 침몰 해역에 뿌렸다. ●故한주호 준위 가족에 위로 전해 한편 천안함 전사자 가족협의회는 영결식 후 성명서를 내고 34일간의 합숙생활을 마감했다. 가족협의회는 성명서에서 “그들의 희생을 영예롭게 해주시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이명박 대통령님과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신 김성찬 해군참모총장님을 비롯한 해군 장병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이와 함께 천안함 46용사의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모든 분들과 무엇보다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구조 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명복을 빌고 조문까지 한 가족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표했다. 김병철 김학준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그대들이 못다 이룬 꿈·사랑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그대들이 못다 이룬 꿈·사랑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그대들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29일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 못지않은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천안함 침몰 당시 구조됐던 생존장병들이다. 생존장병 58명 가운데 치료 중인 6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결식장을 찾았다.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생존장병들의 손에는 희생된 동료들의 영정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영결식 내내 고개를 떨구거나 흐르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천안함 갑판부사관인 김현래 중사는 생존장병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정복을 입고 단상에 선 그는 “사랑하는 전우 여러분.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2010년 3월26일 밤, 경기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의 일상은 끔찍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습니다.”라고 당시의 충격을 되살렸다. 김 중사가 “서로를 격려하며 한 명 두 명 구조선에 올랐지만 당신들의 애끓는 영혼에는 미처 닿지 못했습니다.”라고 울먹이자 영결식장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그는 먼저 간 동료들에 대해 “여러분의 못다 이룬 꿈과 사랑을 우리가 실천하겠다.”면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만날 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남은 생을 살며, 우리의 바다를 지켜낼 것”이라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생존장병들은 “처절하게 두 동강이 났지만 우리 천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조국의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그대들이 가다가 멈춘 그 길을 다시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46인 전우여!…조국의 바다 굽어살피소서

    46인 전우여!…조국의 바다 굽어살피소서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희생된 해군 772함 용사 46명이 29일 국민들의 가슴에 묻혔다. 오전 10시 전국에 일제히 울려퍼진 슬픔의 사이렌 소리에 사무실에서, 거실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시장에서, 공사장에서, 논밭에서 생업에 분주하던 국민들은 이제 꽃다운 우리의 청년들과 영원히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결식이 거행된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용훈 대법원장, 김형오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국무위원, 전두환 전 대통령, 주요 정당대표와 국회의원들, 전군 주요지휘관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등 외국 무관들, 그리고 유가족까지 2800명이 참석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영결식의 명칭은 해군장이었지만 사실상 국장 수준의 최고 예우로 남은 자들은 순국장병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다. 영결식에서 이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46명의 천안함 용사들의 영정에 거수경례를 했다. 이어 고(故) 이창기 준위를 시작으로 46명의 용사에게 일일이 화랑무공 훈장을 추서했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들이 남긴 살신보국의 참군인 정신은 모든 국민이 자자손손 이어 누릴 자유와 번영의 씨앗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을 끝까지 찾아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천안함 생존장병인 김현래 중사는 “여러분과 우리를 갈라놓은 슬픔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눈물의 추도사를 읽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부두에 정박한 모든 함정의 승조원들이 정복 차림으로 뱃전에 도열, 운구행렬을 향해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대함경례’를 올릴 때 국민들도 마음속으로 46명의 용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품과도 같은 모항(母港) 2함대를 영원히 떠난 용사들의 영현은 오후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는 영결식 후 성명서를 통해 “천안함 46 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문행렬을 보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엠넷, ‘천안함 애도’ 물결에 적극 동참

    엠넷, ‘천안함 애도’ 물결에 적극 동참

    엠넷미디어가 프로그램 결방, 홈페이지 디자인 변경 등 천안함 침몰 애도 물결에 동참하고 나섰다. 엠넷미디어 측은 29일 “대표 프로그램 결방은 물론 추모를 위한 프로그램 변경과 음악 포털 사이트 엠넷닷컴(www.mnet.com)을 통한 추도곡과 홈페이지 디자인 변경 등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9일 방송 예정인 ‘엠카운트다운’은 천안함 영결식으로 최대한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며 기존 방식의 1위 선정 등 최소한의 방송만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엠넷은 채널 Mnet과 KMTV의 모든 화면 상단에 추도의 헌화와 회색 바탕의 로고로 바꾸었다. 엠넷라디오는 근조 리본 착용은 물론 추모 묵념과 추모곡 선곡 등의 특별 방송으로 진행되며, 국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추도곡 위주로 구성될 예정이다. 또 엠넷미디어의 뮤직 포털 사이트 엠넷닷컴(www.mnet.com)은 천안함 사태를 애도하기 위해 헌화 디자인 변경과 메인 화면과 별도의 사이트에 추모곡을 편성했다. 엠넷미디어 박광원 대표는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할 수 있는 애도의 표현을 다하고 싶었다.”며 “가장 비통한 마음과 슬픔을 대한민국 음악산업계를 대신해서 전한다.”고 말했다. 사진 = 엠넷미디어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안함 희생자 오늘 장례식] 2함대 영결식 → 운구 이동 → 현충원 안장식 → 영면

    [천안함 희생자 오늘 장례식] 2함대 영결식 → 운구 이동 → 현충원 안장식 → 영면

    천안함 순국장병 46명을 보내는 마지막 행사인 영결식이 2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거행된다. 정부는 이날 하루 온 나라가 이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도록 ‘국가 애도일’로 정했다.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조기를 게양해 이들의 영면(永眠)을 기원한다. 영결식은 장의위원회 주관으로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내 안보공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다. 순국장병의 유가족과 정운찬 국무총리, 김태영 국방부 장관, 역대 참모총장 등 28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개식사,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경례에 이어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된다. 이어 김 총장이 조사를 낭독하고 천안함에서 생존한 김현래 중사가 전우를 떠나보내는 심정을 담은 추도사를 읽는다.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이 끝나면 5초 간격으로 3발씩 총 9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기적이 울려 퍼지면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영결식이 끝나면 해군 군악대 합창단 20명이 ‘바다로 가자’와 ‘천안함가’를 부르는 가운데 운구 이동이 시작된다. 육·해·공군 의장대 80명이 도열한 가운데 해군 의장대 호위병 2명의 선도로 대형 태극기와 해군기가 앞서 나가고, 46명 장병들의 영정과 위패· 훈장·운구함이 뒤를 따른다. 계급에 따라 제일 앞 열에는 고(故) 이창기 준위의 영정과 임재엽 중사, 김선명 병장의 영정이 자리한다. 영정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이송하며 46명의 영현(유골)은 군항 부두를 지나 이들이 살던 해군아파트를 돈 뒤 대전 현충원으로 이동한다. 군항 부두를 지날 때 정박하고 있는 모든 함정은 5초간 기적을 울린다. 해군 정모를 상징하는 흰색과 정복을 상징하는 검은색 풍선 3000개가 하늘로 날려지고 승조원들은 정복을 입고 함정의 뱃전에 도열해 최고의 예우인 ‘대함경례’를 올린다. 오후 3시 대전현충원에 도착해 현충문에서 김 총장 주관으로 안장식이 거행된다. 사병 제3묘역에 조성된 합동묘역에서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영현봉송, 하관 밑 허토(흙 한줌을 관 위에 뿌리는 일), 성분(분묘 조성) 순으로 진행된다. 오후 4시가 되면 안장식이 마무리되고 영원한 휴식에 든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추모]국내외 끊이지 않는 추모행렬

    [천안함 46용사 추모]국내외 끊이지 않는 추모행렬

    │워싱턴 김균미·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김병철 김양진기자│천안함 ‘46용사’ 장례 사흘째인 27일 정·재계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오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용기를 내라고 위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한승수 전 총리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재계 인사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헌화를 한 뒤 방명록에 ‘조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안함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발전에 온 힘을 쏟겠습니다. 조석래’라고 썼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재원 SK E&S 부회장과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이창규 SK네트웍스 사장 등과 분향소에 들러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비롯한 사장단 20여명과 서경석 GS그룹 부회장 및 계열사 사장단, 강유식 LG부회장과 남용 LG전자 부회장 등 LG그룹 사장단, 정준양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임원단도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한편 주미한국대사관도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시내 대사관 통합청사 1층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한덕수 대사를 비롯한 주미대사관 직원들이 오후 분향소에서 검은 조의 리본을 단 채 헌화와 분향을 한 것을 시작으로 오는 29일까지 희망하는 재외국민의 분향을 받을 계획이다. 주일한국대사관은 27일 오후 도쿄 요쓰야 대사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권철현 대사와 직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안함 순직 장병들에 대한 추도식을 가졌다. kmkim@seoul.co.kr
  • 김제동 좌파논란은 아직도 진행형?

    김제동 좌파논란은 아직도 진행형?

    지난해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인 추모객은 18만명에 달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방송인 김제동은 유족들의 청을 받고 이날 노제의 사회를 맡았다. 평소에도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혔던 김제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소위 ‘방송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아니냐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김제동은 노제 사회 이후에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려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시 누리꾼들은 “쌍용차 사태에 대한 시기적절한 발언”이라며 김제동의 발언을 긍정하는 쪽이 많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제동은 ‘좌파 방송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특히 김제동이 2009년 10월 1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자신이 진행하던 KBS 2TV ‘스타골든벨’에서 하차하자 ‘방송인 블랙리스트’에 대한 논란은 더 거세졌다. 또한 이 시기에 방송인 김구라가 김제동을 향해 “좌파 제동”이라고 언급한 동영상이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김제동은 김구라의 발언에 대해 “인정한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좌파 제동으로 해달라.”고 재치있게 답변을 했다. 노제 사회에서 좌파 발언까지..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김제동의 이 답변은 최근 다시 반복됐다. 현지 시간으로 24일 미국 하버드대 특강에 강연자로 나서 “나는 좌파가 뭔지 우파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노 전 대통령 노제에서 사회를 본 것 같고 좌파라고 한다면 기꺼이 좌파를 하겠다.”고 발언한 것. 김제동은 다음달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진행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의 사회를 맡을 가능성도 크다. 추도식 행사를 진행하는 홍보사에서 김제동에게 공식적으로 사회를 맡아 줄 것을 요청을 했고, 김제동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타골든벨’에 이어 MBC ‘환상의 짝궁’에서도 하차한 김제동은 현재 케이블채널 Mnet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제동쇼’로 방송 복귀를 앞두고 있다. ‘김제동쇼’는 현재 첫 녹화를 마친 상황이며, 하버드대 특강을 마친 김제동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와 시애틀에서도 토크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이창기 최한권 박경수 장진선 강태민 정태준 ·····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제 천안함 함수 인양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은 허탈한 결말을 지켜봐야 했다. 이창기 원사와 최한권 상사, 박경수 중사, 장진선 하사, 강태민 일병, 정태준 이병. 그들은 모두 나라를 지키다 희생 당한 모범 군인이었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이었다. 침몰한 지 28일 동안 내내 온 국민이 간절하게 생환과, 시신 수습을 바라고 기원했지만 결국 그들은 최후의 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한 채 억울한 산화자로 기억되게 됐다. 마지막 희망이 걸린 함수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6명을 비롯한 희생자 46명의 넋을 위로하는 추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어제 해군장으로 진행될 장례기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하는 한편 영결식이 있을 29일 당일을 국가애도의 날로 정했다. 해군 역시 희생장병 46명 전원에게 1계급 진급을 추서하고 정부 차원에서 유가족에 대한 주택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희생자들이 대전현충원 합동묘역에 안장될 때까지 모든 예를 갖춰 망자들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제 천안함 희생자들을 보내는 마당에 남은 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겸허하고 진지하게 새겨야 한다. 한밤중 시커먼 바닷속에 침몰한 천안함의 비극에 우리는 많은 착오를 남겼다. 사고 순간과 대응을 둘러싼 혼란, 그로 인한 억측이며 망언들, 그리고 살아남은 장병들에게 보냈던 좋지 못한 시선들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희생을 우려해 수색과 시신수습을 접을 것을 요청한 유족들의 뼈 아픈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후배 장병을 위해 무리한 수색 중 불귀의 객이 된 한주호 준위와, 수색작업에 나섰다 실종된 금양호의 아픔도 결코 잊어선 안 될 부분이다. 물론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6명의 수습에도 끝까지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천안함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 희생자의 넋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 우선 침몰 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군이 잇따라 내놓은 희생자 보상과 유가족 지원책이며 추모관·충원탑의 건립도 한순간의 생색만으로 그쳐선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천안함 비극을 정쟁과 편가르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고 대한민국을 모독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이 너무 크고 안타깝지 않은가.
  • [천안함 인양 이후] 1계급 진급… 화랑무공훈장 추서

    조국을 지키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46명의 장병에 대해 온 국민이 애도를 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전사자 예우와 함께 1계급 진급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천안함 실종장병 46명에 대한 장례절차는 25일부터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시신이 발견된 40명과 시신조차 찾지 못한 6명에 대해 함께 장례절차가 이뤄진다. 시신을 찾지 못한 6명의 장병은 해군에서 보관하고 있는 손톱과 머리카락, 유품 등이 시신을 대신한다. 해군장(葬)으로 29일까지 5일간 치러지며 해군과 정부가 함께 편성한 장의위원회는 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을 포함해 72명으로 구성됐다. 장의위는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대표분향소를 차리고 전국의 군부대에 90개 분향소를 설치했다. 장례기간을 전군 애도기간으로 정했으며 전우들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 현수막을 설치하고 검은색 넥타이와 근조리본을 달도록 했다. 염습과 입관 절차는 이보다 앞서 23일부터 시작됐다. 26일까지다. 또 24일부터 28일까지 화장이 진행된다. 오랜시간 물 속에 있어 시신의 훼손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일부 장병들에 대해 공식 장례일정이 시작되기 전 염습과 입관, 화장절차를 마무리했다. 영결식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장의위 주관으로 진행된다. 유가족과 정운찬 국무총리, 김태영 국방부 장관, 역대 참모총장 등 28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경례, 화랑무공훈장 추서, 경위보고, 조사와 추도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이어진다. 5발씩 3회에 걸쳐 총 15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묵념을 끝으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출발한다. 오후 3시 도착한 이들의 영현은 안장행사를 거쳐 4시 합동묘역에 안장된다. 앞으로 군은 평택 2함대사령부 내에 추모관과 충혼탑을 건립할 예정이며 유족지원책임관을 임명해 유가족에 대한 보상부터 복지까지 모든 부분에 대해 지원할 예정이다. 오이석 강주리기자 hot@seoul.co.kr
  • 진해시 천안함 추모의 벽 설치

    해군도시인 경남 진해시는 23일 퇴역 군함이 전시돼 있는 명동의 음지도 해양공원에 천안함 순국장병들을 기리는 추모의 벽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추모의 벽은 가로 20m, 세로 1.8m 크기의 실사현수막으로 만들어 해양공원 해전사체험관의 한쪽 벽면에 설치했다. 추모의 벽에는 ‘천안함의 영웅들 우리는 여러분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와 이번 사고로 순국한 장병들의 얼굴사진이 인쇄돼 있다. 해양공원을 찾는 관광객과 시민들은 추모의 벽에 추도 글을 남길 수 있다. 진해시는 추모의 벽을 천안함 순국자들의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 운영한 뒤 해군에 전달해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시는 또 ‘천안함 희생장병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의 근조 리본 5만개를 제작해 모든 공무원과 지역 초·중·고등학생에게 배부해 영결식 때까지 달도록 했다. 시는 천안함 순국자들에 대한 영결식이 확정되면 해군기지사령부와 협의해 진해종합사회복지관 내 체육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방침이다. 진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지 써보세요”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지 써보세요”

    “평양을 떠난 뒤 제 마음 한켠을 떠나지 않는 건 할머니의 낡은 일기장이에요. ‘아이가 태어나 첫 울음을 울 때 그 아이의 일생을 누가 알겠는가.’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귀한 집 딸로 태어나 부귀영화는커녕 독립운동 자금 품어 안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기를 몇 번이었던가요.” ●‘임정 안주인’에 손녀가 보낸 편지 ‘상해 임시정부의 안주인’이라 불리는 고(故) 정정화(1900~1991) 여사에게 손녀 김선현씨가 보내는 편지다. 정 여사는 1920년 시아버지 김가진이 74세의 고령에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망명하자 이를 뒤따랐던 인물. 여성이라 감시가 덜하다는 점을 이용, 10여년 동안 국내에 수차례 드나들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건넸다. 해방 뒤 임시정부의 상징 김구 선생이 암살되고, 김구 선생의 비서이자 임정 국무위원을 지낸 남편 김의한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면서 숱한 고초를 겪었다. 김씨는 그런 할머니에게 4년 전, 그동안 생사를 알 수 없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북한 평양에 들러 할머니 묘의 흙을 가져다 뿌려드린 얘기를 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는 22일 상해임정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 4월13일까지 10년 동안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지를 쓰자는 ‘100년 편지’ 사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강화학파 홍승헌(1854~1914) 참판에게 편지를 썼다. 강화학파는 양명학에 가깝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조선 후기 혹독한 탄압을 받았지만, 망국 뒤에는 가장 강력한 항일운동을 벌였던 집단으로 꼽힌다. 편지에서 한 교수는 “세상의 변화에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마지막 보수주의자들의 의리를 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였던 홍 참판님과 벗들께 술 한 잔 올리려 합니다. 잔을 든 손이 왜 이리 떨리는지요.”라고 추도했다. ●글 쓰는 형식은 자유… 이메일로 접수 기념사업회 측은 “평소에 어렵고 딱딱하게 느끼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보자는 취지”라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함께 나누는 가상의 대화 등 글 쓰는 형식은 자유”라고 설명했다. 편지는 이메일(kpg1919@korea.com)로 보내면 된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책으로도 낼 예정이다. 편지나 관련 사진을 단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면 사업회에 요청(02-732-2871~2)하면 된다. 사진에 얽힌 사연은 소설가 서해성이 썼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盧風 점화? 5월 한달 1주기 추모행사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앞두고 한 달 동안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 추모행사가 열려 6·2지방선거의 ‘막판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추모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일 오전 서울 마포 노무현재단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1주기 추모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5월 한 달 동안 전국 각지에서 추모전시회와 순회콘서트, 학술 심포지엄, 토론회 등이 열린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 정비도 곧 완료되고 추도식은 5월23일 오후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엄수된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리한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24일 출간된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긴 기록과 구술, 주변인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저술된 자서전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하는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됐다. 제목은 유서에서 문구를 따 ‘운명이다’로 정했다. 문 전 실장은 “오류가 없다고 자신할 정도로 기술했기에 대통령께서 직접 쓰진 않았어도 ‘정본 자서전’이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추모기획단은 지방선거를 의식, 출판기념회도 열지 않는 등 추모행사가 정치적 의미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문 전 실장은 “추모열기가 자연스럽게 야권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 언급되고 있는 문 전 실장은 거취와 관련, “가까운 사람이 정치하는 것을 보고 돕기도 하면서 참 어렵고 난 엄두가 나지 않고 못할 일이란 마음이 굳어졌다.”면서 “내가 재미있어야지, 본인이 괴로운데 대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정치 참여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충남 5개년 기초발전전략 확정

    충남 5개년 기초발전전략 확정

    충남 16개 시·군이 올해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지역 특성에 맞는 ‘기초생활권 발전전략’을 추진한다. 13일 충남도내 각 시·군에 따르면 지역발전위원회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산업·경제, 농림·수산, 문화·체육·관광, 보건·복지·교육, 환경 등 7개 부문에 걸쳐 각 시·군에서 5년간의 지역 특성화 발전계획과 미래상을 담아 추진하게 될 기초생활권 발전전략이 확정됐다. 천안시는 첨단 지식기반의 신성장동력 창출과 대도시 정주기반 확충에 중점을 두었다. 캐치프레이즈는 ‘100만이 살아도 넉넉한 월드베스트 천안’을 내세웠다. 공주시는 관광객 400만명 유치와 글로벌 교육도시 조성을, 보령시는 해양·관광·산업 중심도시 건설과 서해안 경제중심지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아산시는 세계로 도약하는 첨단복합도시, 서산시는 살고 싶은 생태환경도시 및 경제·교통·물류 거점도시, 태안군은 청정하고 아름다운 서해안 관광휴양도시를 비전으로 설정했다. 논산시는 산업경쟁력 강화와 역사·관광자원 개발을,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시는 전 지역의 공원화를 내세웠다. 캐치프레이즈는 ‘상록계룡’이다. 청양군은 살기 좋은 청정 전원도시, 금산군은 국내 최고의 향토인삼 명품화, 당진군은 당진항·철강산업을 기반으로 한 아산만권의 중추도시 육성을 발전전략으로 내놓았다. 연기군은 50만 통합 세종시의 위상에 걸맞은 역동적인 도시건설, 부여군은 역사·문화·관광·농업의 융복합 프런티어, 서천군은 세계 최고의 생태도시 어메니티 서천을 각각 제시했고 홍성군은 서해안시대의 신중심 도시, 예산군은 충남의 미래를 경영하는 산업형 전원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기초생활권 발전전략은 중앙 부처에서 각 기초단체에 분산 지원하던 국고 보조금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시·군의 자율성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매년 150억~200억원의 국비가 시·군에 지원된다. 청양군 관계자는 “예전에는 부처를 일일이 찾아가 예산을 따왔다.”면서 “정기적으로 평가를 거쳐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주고 사업 방향을 올바르게 수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발전위원회 관계자는 “사업은 예산이 확보되는 내년부터 본격 착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박사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

    “박사님 가르침은 내 인생의 나침반”

    “박사님 가르침은 오늘의 저를 만든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2일 자신의 은인인 고(故)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서거 40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에 앞서 30여분간 국립서울현충원 스코필드 박사의 묘지를 찾아 헌화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정 총리가 평소 ‘자신을 키운 4명의 아버지’ 가운데 1명으로 꼽아 온 인물이다. 정 총리는 추도사에서 “스코필드 박사는 제암리 마을과 수촌리 마을의 학살사건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신 선구자”라면서 “스코필드 박사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고 온몸으로 정의를 실천한 박애정신의 표상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은인”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저는 박사님의 분에 넘치는 은총을 받았던 수혜 학생의 한 명”이라면서 “중학교에도 진학할 형편이 못 됐던 저는 ‘입학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박사님을 만나 학업에 뜻을 둘 수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1960년 중학교 때 처음 스코필드 박사를 만났다. 스코필드 박사는 아버지를 여읜 정 총리를 수양아들로 삼았고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지원해 줬다. 이날 참배에는 정 총리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 회원들이 함께했다. 정 총리는 이날 저녁에는 서울대에서 열린 스코필드 박사 추모 4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1916년 캐나다 의료 선교자 자격으로 한국에 온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짓고, 해방 이후 교육·의료 활동을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국공립 박물관 등 편의시설 의무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째를 맞아 관련법의 적용 범위가 크게 확대된다. 보건복지부는 11일부터 국공립 문화재단과 박물관, 미술관, 공공도서관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했다고 8일 밝혔다. 또 이들 시설 외에 별도의 보조 인력을 배치하지 않으면 장애인 차별로 간주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인구 50만명 이상의 지자체가 운영하는 체육시설 역시 장애인 체육용 기구와 보조인력을 배치하고 체육활동 정보 등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이들 문화·예술, 체육시설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장애인을 위한 웹 접근성도 확보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차별을 받은 장애인이나 단체는 인권위원회에 차별 내용을 진정할 수 있고, 인권위는 실태를 파악해 시정권고를 내릴 수 있다. 권고를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무부는 시정 명령과 함께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고경석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2주년을 맞아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분야를 더욱 확대했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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