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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서거] 교황 마지막 순간등 표정

    3일 낮(현지시간) 교황청은 바티칸의 교황 관저에서 교황의 시신을 공개했다. 이 장면은 사상 처음으로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선홍빛 교황복과 흰색천으로 된 관을 쓴 채 평안한 표정으로 금색 베개에 머리를 눕히고 있었다. 카를로 아제글리오 치암피 이탈리아 대통령 등 정치인과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 등 고위성직자들이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마지막 존경을 표시했다. 앞서 3일 오전에는 5만명의 신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을 추도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안젤로 소다노 교황청 국무장관은 추도사를 통해 “교황은 27년 동안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전세계 교회를 인도했다.”고 애도했다. 또 교황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있었으며 자신의 쾌유를 빌기 위해 모인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교황은 임종하기 1시간37분 전인 2일 오후 8시부터 스타니슬라브 지위즈 대주교가 집전하는 ‘주님 자비 주일’ 미사에 참석했다. 마리안 자보르스키 추기경과 스타니슬라브 릴코 대주교등이 참석한 이 미사 도중 교황은 임종자를 위한 성체인 노자성체(路資聖體)를 영했다. 서거 직전 교황은 성베드로 광장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던 신자들을 의식한 듯 희미하지만 분명한 강복의 자세로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이어 마지막 기도가 끝나자 온 힘을 다해 ‘아멘’이라고 말한 뒤 곧바로 숨을 거뒀다고 가톨릭TV가 전했다. 야렉 시엘레키 신부는 “교황이 신자들을 응시하려는 듯 창문쪽을 바라보며 눈을 감은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느 정도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교황이 서거 직전 비서에게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 울지 말고 우리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라는 메시지를 구술했다고 보도했다. 장택동기자 외신 taecks@seoul.co.kr
  • “불꽃 삶 접고 편히 잠드소서”

    “불꽃 삶 접고 편히 잠드소서”

    25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은주(25)씨의 영결식 예배가 24일 오전 7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치러졌다. 빈소가 마련된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내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이씨의 가족과 설경구·이병헌·김지수·문근영·바다·전인권·도지원·김소연 등 동료 연예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추도예배에 이어 7시30분에는 팬클럽에서 추도사를 낭독했고, 설경구·문근영도 연예인을 대표해 눈물속에 추도사를 읽어내렸다. 전인권이 추도가 ‘걱정말아요’를 부를 때 장내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이씨의 시신은 화장돼 이날 낮 12시30분쯤 경기도 자유로 청아공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유족과 조문객들은 당내 기독교 전용관 특별실에서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벽제 승화원 화장의식 때부터 함께했던 영화배우 한석규는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한 후 영정을 보며 오열했고, 이은주의 가족이 떠난 후에도 30분 동안 남아 흐느꼈다. ‘이은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청아공원 입구에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곳에는 지난해 8월 세상을 뜬 그룹 원티드의 멤버 서재호와 1월 암투병으로 숨진 길은정 등이 잠들어 있다. 네티즌들의 충격도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각종 인터넷사이트에는 이씨가 출연했던 영화와 드라마가 속속 올라와 있고, 마지막 작품인 ‘주홍글씨’에서 이씨가 직접 불렀던 ‘온리 웬 아이 드림’의 음악파일들이 음악사이트를 장식하고 있다. 이씨의 생전 인터뷰장면과 목소리는 물론, 각종 사진들도 등장하고 있다. 성남·고양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라자 샤하디 지음

    어떤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패키지처럼 쓰이는 단어로 치자면 ‘명분과 실리’만한 것이 없다. 양쪽 모두에 일장일단은 있다. 명분을 내세우면 도덕적 선명성은 돋보일지 몰라도 자칫 공허한 구호만 나열하다 자멸할 수 있다. 실리를 외치면 현실적인 이득은 그런대로 챙기겠지만 지나칠 경우 역사적인 시야를 놓치기 십상이다. 상식적인 이 논리가 ‘나의 문제’로 다가왔을 때 묵직할 수 밖에 없다. ‘책씨’에서 펴낸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라자 샤하디 지음, 유혜경 옮김)은 이스라엘을 보는 한 아랍인의 분열적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다. 라자 샤하디는 아랍의 인권 변호사로 ‘알 하크’를 결성했지만 동시에 중동평화협상을 위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측 법률자문역도 맡았다. 이런 경력은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지론에 매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투쟁이라는 주제의 무거움에 비하자면 책 내용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변호사로서 실리주의를 지지하다 아랍 강경파에 암살당한 아버지 아지즈 샤하디에 대한 추억이 자전적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함께 책을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랍권의 엄혹한 정치현실만 덜어낸다면 잔잔한 수필이나 아버지에 대한 추도사로도 읽힐 수 있다. 이들 부자의 냉정한 현실분석은 간단명료하다. 젊은 시절 라자 샤하디는 국제법과 인권의 원칙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타이른다.“우리에겐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부족한 게 아니다. 유엔에 그 증거자료가 엄연히 있어.1948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귀환하거나 아니면 보상받아야 한다고 결의했지. 그 결의안이 통과된 지가 벌써 30년이야. 그런데 넌 지금 결의안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구나.” 이 책은 ▲이스라엘을 축출할 수 없다면 차라리 평화공존을 받아들여 한다 ▲평화공존을 먼저 제안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이들 부자가 합의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실제 이스라엘의 침공과 아랍의 테러가 맞부딪치던 시기 PLO의 영역은 팔레스타인의 20%까지 줄었지만 평화협상에서는 40%의 지분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식민지와 군부독재 경험이 있는 우리가 이런 논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까지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연 팔레스타인 사람은 없었다.”는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서평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악용당하는 게 아닌가 싶다. 쉽사리 풀기 어려운 숙제다.1만 18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자오 장례식 공정하게 치러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전 공산당 총서기의 장례식 절차와 관련, 그의 역사적 평가 문제를 둘러싸고 당과 유족들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완리(萬里) 전 전인대 위원장 등 원로급 인사들이 공정한 장례식을 요구하고 나섰다. 홍콩의 명보(明報)는 24일 인민일보(人民日報) 전 사장 후지웨이(胡績偉)의 부인 훠사(荻莎)의 말을 인용, 원로들이 공산당 지도부에 자오 전 총서기 장례를 공정하게 치러 달라는 요구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훠사는 “완리와 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위원장, 톈지윈(田紀雲) 전 전인대 부위원장 등 원로급 인사들은 관례에 따라 자오 전 총서기가 생전에 맡았던 직책에 따라 고별 의식을 치를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훠사는 “남편인 후지웨이가 자오 전 총서기 사망 당일, 이는 국가의 비극이며 만민의 슬픔이라면서 중앙정부에 그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공개적으로 추도 행사를 갖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타이완 연합보(聯合報) 등 중화권 언론들은 추도사없는 장례식이 25일쯤 열릴 것으로 보도하면서 “자오 전 총서기의 영결식 날짜를 못잡고 질질 끌고 있는 이유는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가족과 당의 갈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명보의 기자 2명이 자오 전 총서기의 베이징 자택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하고 유족들을 인터뷰하자 당국이 이들을 조사한 뒤 추방했다고 타이완의 현지 언론들이 24일 전했다. oilman@seoul.co.kr
  • 자오 ‘추도사 없는’ 장례식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지난 17일 사망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장례식이 25일 거행될 것이라고 홍콩 청보(成報)가 23일 보도했다. 청보는 이날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 자오 전 총서기의 장례식은 베이징 인근 바바오산(八寶山) 혁명열사 공묘에서 거행키로 했으며 당 중앙정치국원급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청보는 그러나 장례식에서 자오쯔양 추도사 낭독을 생략하는 대신 당일 신화사가 ‘자오쯔양 동지 일대기(趙紫陽同志生平)’를 발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 중앙은 자오 일대기에 자오쯔양 축출을 결정한 당 13기 4중전회의 결의문을 인용할 예정이나 자오 유족들은 89년 이후 그의 연금과 자유박탈 등의 사실도 병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홍콩언론들이 보도했다. oilman@seoul.co.kr
  • 수덕사서 영결·다비식 봉행

    지난달 30일 입적한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숭산 스님의 영결식이 4일 오전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됐다. 행사는 고인의 행장 소개,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의 영결사,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추도사, 중앙종회 의장 법등 스님 조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법전 스님은 법문을 통해 “깊고 고요하여 형상은 없지만 우주만물과 더불어 벗을 하고 비록 텅 비었으나 스님의 생사자재(生死自在)한 묘용(妙用)은 만상을 통해 나투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라고 추도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영결식에는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석해 스님의 열반을 추도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태고사 주지 무량, 화계사 국제선원장 현각, 계룡산 무상사 조실 대봉 등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와 신도 500여 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스님의 법구(法軀)는 영결식장에서 600여m 떨어진 연화대 다비장으로 옮겨져 다비식이 거행됐다. 낮 12시30분부터 시작된 이날 다비식에서 불가의 전통 의식인 사리 수습은 덕숭총림 수덕사 전통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 예산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춘수시인 타계] 김종길 교수의 추도사

    기도폐색이라는 불의의 사고로 넉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혼수상태를 계속하던 김 사백이 마침내 어제 아침 9시에 만 82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적은 연세는 아니지만 강건한 체질이라 장수하리라 믿었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안타깝고 애석하기 그지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 사백은 해방 후에 등단한 국내시인 중에서는 가장 철저한 순수시인이며 가장 예술가다운 시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변모해온 시인으로 가장 전문적인 시인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우리 시단(詩壇) 내지 시사(詩史)에 있어서의 그의 위상은 그의 지속적인 예술적 정진의 결과이지만 시예술의 특질은 그의 사람됨과 생애와도 무관할 리가 없다. 그는 통영의 부유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보통의 환경과는 다분히 격리된 공간에서 생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그는 보통 사람들이 자라고 철드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다소 폐쇄적이고 몽환적이기도 한 자기만의 세계를 따로 가졌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통상적인 현실세계가 늘 낯선 곳처럼 느껴졌을 것이며 그의 현실감각은 확실히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다소 달랐을 것이다. 그가 중학 졸업을 몇달 앞두고 담임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퇴했다든가, 경험삼아 나가 본 도쿄의 노동판에서 순진하게 일본 천황과 총독정치를 비방하다가 반년 남짓 옥고를 치른 것이라든가, 제5공화국 초기에 불쑥 내맡겨진 국회의원직을 얼떨결에 수락해 버린 것이 모두 그의 특수한 현실감각 탓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을 역사의 피해자로 간주하고 역사를 불신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라고 실토한 것은 미당(未堂)이었지만, 대여(大餘)에게는 이 세상은 가도가도 어색하기만 하였으리라. 이것은 그의 삶에 있어서는 불행이었을지 모르나 그의 시업(詩業)에 있어서는 행복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펼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천생(天生)의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최선을 다했고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떠나간 것이다. 그가 사숙한 시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사고사했듯 그 또한 기도로 들어간 미음 알갱이 때문에 사고사하였다. 동양에는 옛날 적선(謫仙), 즉 이 세상에 귀양온 신선이라고 불린 시인이 있었다. 김 사백도 지상에 귀양온 신선처럼 이 세상이 서먹서먹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훌륭한 시를 남기고 표표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갔다. 이 지상에는 슬픔과 찬탄에 잠긴 우리들을 남겨두고. 예술원 회원·고려대 명예교수
  • 유족들 성수대교 10주기 추도식

    유족들 성수대교 10주기 추도식

    “가족을 잃은 상처가 아물기에 10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한강둔치의 ‘성수대교 희생영령 위령비’앞. 지난 94년 3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참사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족 10여명과 당시 참사로 8명의 학생을 잃은 무학여고 후배 학생 10명, 교사 4명이 참석해 영령을 위로했다. 10년의 세월에도 유족들의 한숨섞인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 소식이 계속될 때마다 10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며 가슴아파했다. 묵념으로 추도식을 시작한 유족들은 헌화와 분향을 하면서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 유족은 “10년 동안 이곳에 와서 명복을 빈 것은 우리 유족들뿐이었다.”면서 “꽃 한송이 바치지 않던 사람들이 10주기라니까 갑자기 찾아와 생색을 내려 난리법석”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사고로 친형을 잃었던 유족대표 김학윤(39)씨는 추도사에서 “슬픔의 상처는 세월이 지날수록 조금씩 아물고 있지만 이땅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면서 “32명의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성수대교가 튼튼한 교량으로 다시 태어나 제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슬픔을 나누는 사람은 유족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부실투성이인데 정부에서는 성수대교 참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이 추도식을 갖기 직전 붕괴지점인 성수대교 중간부분에서는 대형 붕괴사고에 대한 자성과 재해유자녀 지원 등을 위해 2000년 발족한 ‘건설교통연대’ 회원 40여명이 별도의 추도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붕괴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승영(여·당시 서울교대 3년)씨의 외삼촌 김갑순(58)씨가 참석했다. 김씨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이곳을 10년만에 다시 찾았다.”면서 “다리는 말끔하게 고쳐놨지만 여전히 아픈 사연들이 서려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같은 아픔을 겪어온 다른 유족들을 만나고 싶었다는 김씨는 “아직도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족들을 보니 안타깝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맺힌 恨 풀고 편히 쉬소서…” 대구지하철 참사 1주기 추모식

    “우리 모두의 잘못임을 통감합니다.이제 맺힌 한을 놓으시고 편히 쉬소서.” 2·18 대구지하철참사 1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9시 30분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도로에서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추모식에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등 여야 3당 지도부와 정부를 대표해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이 참석했다. 이날 추모식은 희생자 192명의 넋을 기리는 진혼북과 진혼무 공연을 시작으로 희생자에 대한 분향 및 헌화,살아남은 자의 참회,추도시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도중 일부 유가족들은 강 장관의 행사장 입장을 가로막고 추도사를 하러 단상에 오르는 조해녕 대구시장에게 종이컵을 던지기도 했으며 유골함을 들고 시청에 몰려가 조속한 추모공원 조성을 촉구하며 항의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참사 발생 시각인 오전 9시 53분 대구시내 전역에 1분간 추모 사이렌이 울리자,시민들은 묵념을 올리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했다. 고건 국무총리는 강 장관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국가 안전관리 체계를 과학적으로 정비,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온 정성을 다 쏟겠다.”고 다짐했다. 조해녕 시장은 “대구지하철 참사는 우리 모두의 잘못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이를 교훈삼아 방재·안전도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 김대율씨는 “못다한 일 이룬다한들 세상 만사 부질없다 여기시고 맺힌 한을 이제 그만 놓으시어 저 세상 그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라.”며 흐느껴 추모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추모식이 끝난 뒤에도 대구시내에서는 안전기원 세미나,추모음악회,참사 다큐멘터리 상영 등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새하얀 눈꽃 속 극락왕생”서옹스님 다비식 거행

    함박눈이 내린 19일 오후 1시20분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스님의 법구는 좌탈입망(坐脫立亡·앉은 채로 열반)한 모습 그대로 스님과 불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불총림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 다비식(茶毘式)장 연화대에 올랐다. 20분 뒤 “노스님,집에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염불이 경내에 울려퍼지면서 불붙은 솜뭉치로 거화(불을 부침)하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백양사 경내 다비장을 가득 메운 2500여명의 스님과 신도 등 3만여명은 서옹 스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합장했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 불자들은 전날 밤부터 퍼부은 함박눈으로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된 백양사 안팎을 둘러보며 “덕이 높은 스님이 가시는 날 하늘도 감동했다.”고 추모했다. 수백여명이 백양사 경내 수백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배경으로 추모객들의 움직임을 앵글에 담기 위해 운구 행렬 곳곳에서 장사진을 쳐 이를 정리하는 스님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또 폭설 때문에 전국에서 온 차량이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백양사 입구 곳곳에는 ‘진실 여여한 진리의 세계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라.’라는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수십개가 나붙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전 11시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은 조계종 전 교육원장 일면스님의 사회로 봉행됐다.영결법요와 고인의 행장소개,육성법문이 영상화면으로 상영되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사,조계종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의 추도사가 이어졌다.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조사를 했다.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민주당 조순형 대표,열린 우리당 이태일 공동의장,오지철 문화관광부차관이 참석해 헌화했다. 장성 백양사 남기창기자 kcnam@
  • ‘下心’ 큰 가르침 남기시고…/성륜사 조실 청화스님 다비식

    “이세상 저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大天界)만큼 큰 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지난 12일 바람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한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 청화(淸華) 스님의 영결식이 16일 오전 11시 전남 곡성군 옥과면 성륜사 설법전 앞 마당에서 원로회의장으로 거행됐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을 비롯한 원로스님,법장 총무원장,각 종단 대표,본사 주지 등 스님 1000여명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대표,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신도 1만여명이 참석해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영결식은 5번 타종하는 명종식을 시작으로 삼귀의,영결법요,행장소개,추도사,헌화 및 분향,문중대표 인사 순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장의위원장인 도원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큰 스님이 80평생 이루신 선풍진작과 교화포교의 크신 불사는 종도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법장 총무원장은 조사에서 “반백년이 넘게 오로지 수행과 교화에만 헌신해 오신 큰 스님이었다.”며 “평생을 한결같이 자비로 베푸신 법력과 공덕은 80세납을 거꾸로 헤아린다 해도 다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청화 스님의 법구(法軀)는 500m쯤 떨어진 성륜사 입구 오른쪽 연화대 다비장으로 옮겨져 낮 12시30분부터 다비식이 진행됐다. 연화대가 훨훨 타오르기 시작하자 스님과 신도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으며 일부 신자들은 스님의 법명을 부르며 눈시울을 적셨다.스님의 운구와 다비는 유훈에 따라 장엄물과 만장(輓章)을 쓰지 않은 채 검소하게 진행됐다.평생 뼈를 깎는 수행정진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으로 일관한 스님은 입적하기 전 “장례를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라.”고 당부했다. 사리 수습은 습골·쇄골의 의식을 거쳐 17일 오후에 마무리한다. 곡성 김성호기자 kimus@
  • 손길승 전경련회장 추도사 / “님이 뿌린 화해의 씨앗 통일로 꽃 필것”

    정몽헌 회장님,도저히 믿기지 않은 비보에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데 오늘 회장님의 영전 앞에 다시 서니 가슴이 미어질 뿐입니다. 어렵고 혼란한 시기에 우리는 지금 유능하고 헌신적인 기업인이자 남북한 경제교류의 선구자를 떠나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어찌 다 추스를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회장님은 우리나라 경제가 한창 도약기를 맞이하던 70년대 중반부터 현대그룹의 산업현장과 경영일선에서 사려 깊고 멀리 앞을 내다볼 줄 아는 경영인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인으로서 역사적인 사명감을 갖고 금강산 육로 개통과 개성공단 개발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 다시는 뵐 수 없게 되었다니 이 참담한 심경을 어떻게 달래야 합니까. 돌이켜보면 남북 교류와 협력의 여정에 회장님의 손길,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회장님은 육로와 바닷길을 열어 분단된 민족이 화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었습니다.이제 막 공사를 시작한 개성공단은앞으로 남북한 경제협력과 민족통일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회장님,회장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들은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한다는 신념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버거운 짐을 혼자 감당하며 여기까지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고 하실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왜 이렇게 홀연히 떠나셔야 했습니까.기업인으로서 이제 한창 꽃을 피워야 할 때에 이렇게 꼭 떠나셔야 하셨습니까.이제 누가 회장님의 빈 자리를 대신 한단 말입니까. 회장님께서 일찍이 앞날을 보고 뿌려 둔 씨앗은 반드시 민족의 통일과 후세의 번영을 위한 큰 버팀목으로 자라나야 합니다.회장님,이승에서의 모든 고뇌와 슬픔을 이제 내려 놓으시고 영면에 드시기를 삼가 바라옵니다.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2003년 8월8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손길승
  • 정몽헌회장 어제 영결식… 각계 2000명 애도 / 역사의 짐 벗고 고이 잠드소서

    8일 현대아산 이사회 정몽헌 회장의 영결식이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렸다. 맑은 날씨 속에 열린 이날 영결식에는 정 회장의 아들 영선씨,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등 유족들과 정·관·재계 유명인사,현대 임직원 등 모두 20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해 선친인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유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뜬 ‘비운의 황태자’의 마지막 길을 눈물 속에 배웅했다. ●고인 생전모습 영상물에 눈물 이날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잔디광장에서 현대상선 노정익 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울려퍼지는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특히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찍은 가족사진과 대북 사업에 열중인 정 회장의 생전 모습이 멀티비전을 통해 나타나자 유족 등 참석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또 대북 사업의 ‘동지’였던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정 회장의 약력보고를 읽던 도중 “정 회장의 업적에 대해 남북의 7000만 겨레는 물론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진심어린 축하와 존경을 보내왔다.”면서 울먹였다. 이어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믿기지 않는 비보에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데 오늘 회장님의 영전 앞에 다시 서니 가슴이 미어질 뿐”이라며 애통해했다. 우인(友人) 대표로 나선 도올 김용옥씨는 “정몽헌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슬픔이요 꿈이었다. 정몽헌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좌절이 아니며 역사의 좌절도 아니다.정몽헌은 좌절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일본 스미토모(住友)상사의 미야하라 겐지 회장,미쓰이(三井)물산의 오하시 노부오 회장,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 등은 조전을 보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대형 영정사진 차량을 선두로 운구차,가족과 지인 등 800여명을 태운 버스 27대 등 장례 차량들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으로 향했다. ●선영 하남 정주영회장 묘소 아래 안장고인의 영구는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뒤로하고 선친 정주영 명예회장 묘에서 산 아래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10평 크기의 묘지에 모셔졌다. 하관이 끝난 뒤 상주 영선군과 정세영 명예회장,정몽구 회장 등은 눈물을 삼키며 영구 위로 흙을 뿌렸다. 이날 장례절차는 고인이 생전에 특히 좋아했다는 멜론이 얹혀진 제사상 앞에서 이어진 반혼제(返魂祭)를 끝으로 마무리됐다.한편 정 회장의 영정과 머리카락,손톱,발톱 등을 담은 유품함은 서울 북한산 근처 도선사로 옮겨져 11일 추모비 제막식을 위해 금강산으로 향할 때까지 보관된다. 김성곤 이두걸기자 sunggone@
  • 서해교전 전사 故한상국 중사 영결식

    “서해바다에 뿌려진 당신의 피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씨앗이 될 것입니다.” 6·29서해교전 때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고(故) 한상국(韓相國·27) 중사의 영결식이 11일 오전 9시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해군장으로 열렸다.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장대환(張大煥) 신임 총리서리,이준(李俊) 국방장관,이남신(李南信) 합참의장,한·미연합군 리언 J 라포트 사령관 등 정부 각료와 군 수뇌부 등이 대거 참석,고인의 명복을 빌었다.정부와 군 수뇌부가 거의 참석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던 서해교전 전사 해군장병 4명의 지난달 1일 합동영결식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헌화,분향,묵념,운구 순으로 진행됐다.서해교전의 생존자인 황창규(27) 중사가 추도사를 읽자,유족들은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고 장 총리서리도 눈물을 훔쳤다. 한 중사의 아내인 김종선(28)씨는 오열을 하다 한 때 정신을 잃어 부축을 받았다. 한상국 중사는 93년 광천상고를 졸업한 뒤 95년 해군에 입대,지난 12월부터 고속정357호의 조타장을 맡았다.서해교전 당시 조타실이 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불길에 휩싸였으나,한 중사는 끝까지 조타실을 지키며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군측은 밝혔다.고속정 357호의 생존자들은 “배·가슴 등에 파편을 맞은 상황에서도 한 중사는 357호를 구하기 위해 조타실의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중사에게는 일계급특진과 함께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한 중사의 유해는 성남시립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됐다. 오석영기자 palbati@
  • 54주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

    제54주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범도민 위령제가 3일 오전 11시 4·3희생자 유가족과 4·3관련단체,도민,학생 등8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부지에서 봉행됐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범도민 위령제 봉행위원회(위원장우근민 지사) 주최로 1만 4000여 희생자 신위를 모신 가운데 치러진 이날 위령제는 초혼례-고유문 봉독-주제사-추도사-추모시 낭송-조가-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우 지사는 주제사를 통해 “이 위령제가 어두웠던 과거를 모두 떨쳐버리고 미래를 향한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의원동력으로 승화되길 기원한다.”며 “4·3진상 규명작업이 이뤄진 후에는 4·3평화상과 4·3기념일을 제정하고 4·3예술제도 범도민 예술제로 승화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재호 도의회의장은 추도사에서 “반세기 넘게 간직해왔던 숙원인 4·3특별법 제정으로 명예회복과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다양한 활동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령제 후에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 주관으로 4·3당시 폐허가 된 제주시 해안동 ‘리생이 마을’과 북제주군 한림읍 ‘빌레못 마을’등 6개 마을에 대한 ‘잃어버린 마을’ 표석세우기 행사가벌어졌다. 4·3 관련 문화·예술행사도 다양하게 펼쳐져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는 4일까지 ‘4·3증언 본풀이마당’이 열리고 있으며,지난 2일에는 천주교 제주교구 가톨릭학생회주관으로 ‘뜻으로 본 십자가의 길-4·3과 부활’행사가가톨릭회관에서 열려 종교적 관점에서 4·3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아산 개척정신 본받아 경제도약을”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1주기 추도식이 21일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서 가족과 각계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도식에는 정 전회장의 아들인 몽구·몽근·몽헌·몽준·몽윤·몽일씨와 형제인 순영·상영씨 등 가족과 채문식 전국회의장,노신영·이홍구 전 총리,손길승 SK 회장,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심완구 울산시장,변형윤 서울대 교수,윤후정 이화학당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추도식에 조화를 전달하고 한승희 산업통신 비서관을 보내 추도의 뜻을 전했다.노태우(盧泰禹)·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한동 총리,이건희 삼성회장등도 조화를 보냈다. 유창순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이 땅에 살아온,살아갈 모든 사람이 가족의 일원으로 추도의 정을 함께 한다.”며 “아산의 선견지명과 개척정신을 받들어 인류평화와 경제도약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추도의 뜻을 표했다. 유족 대표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인사말에서 “선친의 유지를 계승해 항상 검소하고 성실한 자세로열심히 일하고,국가와 사회의 견실한 발전을 위해 더욱 많은 기여를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추도식에 이어 묘소 앞에서 구상 시인이 시를짓고 서예가 초정 권창윤씨의 글씨로 오석에 시문을 새긴 추도시비 제막식도 가졌다. 또 이날 오후 서울중앙병원 동관 로비에 정 회장의 흉상도제막됐다. 이밖에 창우동 묘지에서 추도식이 시작된 오전 11시를 기해 서울 계동사옥을 비롯한 현대 전 계열사 사업장에서는 1분동안 추도 묵념이 진행됐고 같은 시각 금강산온정각 휴게소에서도 현지 임직원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간단한 추도행사가 열렸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조계종 혜암 종정 49재

    지난해 12월31일 입적한 조계종 혜암(慧菴) 종정의 49재가 17일 열렸다. 경남 합천 해인사(주지 세민스님)는 이날 경내 구광루 앞 광장에서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법전(法田)스님과 수좌대표 진제(眞際)스님,주지 세민(世敏)스님 등 교계 원로와신도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혜암 종정의 49재를 가졌다.49재는 오전 9시쯤 대적광전에서 대령과 관욕을 마친뒤 혜암 종전의 영단에서 삼귀의,추모법요,행장소개,추도입정,추도사,추모사,헌화 순으로 봉행됐다.법전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공부하다 죽어라고 한 큰 스님의 법문은 나태한 수행자에겐 추상같은 불호령이고 길 잃은 중생에겐자비로운 손길이었다.”고 회고했다. 합천 이정규기자 jeong@
  • 운보 김기창화백 1주기 추도식

    한국 화단의 거목 ‘운보(雲甫)’김기창(金基昶)화백 1주기 추도식이 23일 오전 11시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운보의 집’ 일원에서 김진호 충북도의회의장,유의재 충북도 행정부지사,유가족,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이날 유 부지사가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운보는 청각 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민화와 서양화를자유롭게 넘나든 한국 화단의 큰별이며 장애인들의 권익향상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인 거목”이라고 회상했다. 아들 완씨는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추도식에서시인 구상 선생의 추모시를 서예가 김동연씨가 쓴 묘비도함께 제막됐다. 청원 이천열기자 sky@
  • 혜암종정 영결·다비식 “큰스님 수행의 빛 영원하리…”

    지난해 마지막날 31일 입적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혜암스님의 영결식이 6일 오전 11시 경남 합천군 가야면 시인리 해인사 구광문 앞 마당에서 종단장으로 거행됐다.전국에서 수만명의 신도들이 이날 영결식과 다비식에 모여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에는 법전 원로회의 의장,정대 총무원장을 비롯해 전국의 스님 3,000여명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한광옥 민주당 대표,이인제 민주당 고문,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각계인사 및 신도 3만여명이 참석했다. 법전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스님께서 두타고행의 정진을열반하실 때까지 계속하시어 어떤 것이 중노릇인가를 몸소보여주신 수행의 빛은 중도들의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궁진 문화부 장관이 대독한 조사에서 “지난 97년 지도자의 덕목에 관한 큰스님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그 빈자리가 너무도크게만 느껴진다”면서 “문득 저를 찾아 인간방생을 실현하라고 하신 말씀은 국정운영에 커다란 가르침이 되었다”고추모했다. 이날 영결식은 오전 11시 조계종의 전국 25개 본·말사에서 동시에 실시된 다섯 차례의 타종의식을 시작으로 삼귀의,영결법요,행장소개,영결사와 추도사,각계 인사의 조사낭독과헌화 및 분향 순으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이 끝난 뒤 영결식장에서 서쪽으로 3㎞ 떨어진 연화대 다비장으로 옮겨져 오후 2시부터 다비식이 시작됐다. 사리 수습은 습골,쇄골의 의식을 거친뒤 7일 오전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해인사 김성호기자 kimus@
  • 슬픔과 분노 ‘눈물젖은 미국’

    미국이 울었다.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날로 선포된 14일 워싱턴과 뉴욕,보스턴 등 미 전역이 애도 속에 잠겼다.워싱턴에는 이른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50개주 모든 관공서와 대형건물 등에는 조기가 내걸렸고 시민들은 교회와관공서, 직장,학교에서 거행된 추모식에 참석,희생자들의넋을 기렸다.CNN과 ABC등 미 언론들의 추모 분위기를 고조하는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테러 대참사를 반드시 응징해야한다는 분노와 비장한 결의가 성조기의 물결과 함께 점차 미국인의 슬픔을 압도해가고 있다. 이날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열린 추도예배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비롯,빌 클린턴 전 대통령,지미 카터 전대통령 등 와병중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제외한 전·현직 대통령들이 대거 참석,국민적 결속을 과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이자리에 깊은 슬픔을 안고자리를 함께 했다”며 미국은 테러 희생자와 이들을 구하려다 숨진 미국인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악대의 추도 음악속에 제인 딕슨 추기경이 집전한 예배에는 기독교계 원로 빌 그레이엄 목사,유대교 워싱턴 교구라비 조수아 하버만,이슬람교 무자밀 시디치 등 각 종교지도자들이 각각 추도사를 낭독했다.테러로 부인 바버라올슨여사를 잃은 테오도르 올슨 법무차관도 다른 각료들과자리를 함께해 숙연한 분위기를 더했다. 비행기 테러로 189명이 사망한 워싱턴 국방부 참사 현장옆 언덕에서는 별도로 성직자들의 추모예배가 열렸다.미전역의 이슬람 센터에서도 추모기도회가 개최됐고 호텔과위락시설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도 이날 네온 사인을 소등,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캐나다와 유럽 각국,팔레스타인 등 국제사회도 이날 추모에 동참했다.파리시는 지하철 운행을 3분 동안 중단하기도했다.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성 바오로 성당 예배에참석하는 등 각국 지도자들의 추도식 참여와 추도사가 잇따랐다. 눈물로 가득한 애도 분위기는 그러나 테러 응징을 통해미국인의 ‘단합’과 ‘애국심’,세계 최강국 미국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미 시민들의 비장한 결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정치권의 초당파적인 단결 모습이 연일 언론에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이날 추모식에서도“우리는 적에게 승리하겠다는 굳은 결의로 단결했다”며보복 의사를 재천명했다. 거리를 뒤덮은 성조기 물결,그리고 뉴욕 테러 붕괴 현장에서 시민들이 부시 대통령 앞에서 연호한 ‘USA’구호는 미국의 응징 결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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