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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인 정주영 삶과 업적 한눈에

    거인 정주영 삶과 업적 한눈에

    오는 21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0주기를 앞두고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추모 사진전이 열렸다. 개막식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준 국회의원,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등 고인의 가족을 비롯해 추모위원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각계 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정몽구 회장과 갈등을 빚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모습을 나타내 양 그룹의 화해 무드가 본격화될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정 회장보다 20분쯤 늦게 도착한 현 회장은 개막식 내내 시숙인 정 회장과 인사를 나누지 못하면서 다소 냉랭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행사가 끝날 무렵 현 회장이 정 회장에게 다가갔고, 정 회장은 “제수랑은 원래 악수하는 거 아니지만 한번 하지.”라며 악수를 청했다. 이에 현 회장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추모 사진전은 범현대가의 기업이 처음으로 함께 주최하는 공식 추모행사의 하나로 마련됐다. 각 사가 따로 추모 행사를 열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범현대가 임원이 참여하는 ‘10주기 추모위원회’가 구성돼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느 해보다 고인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가족 대표로 인사말을 한 정몽구 회장은 “창조적 예지와 도전 정신으로 선친이 이룩한 필생의 업적 앞에 무한한 존경심을 느낀다.”며 “이번 전시회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 사진전은 11일부터 오는 21일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되며, 범현대가의 주요 사업장에서도 이달 말까지 진행된다. 사진전에는 고인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현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내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한 축을 담당하기까지의 생애와 업적을 ‘아산의 젊은 시절’ ‘사업보국’ 등 6개의 테마로 총 130여점의 사진이 전시됐다. 공식 추모식과 추모음악회는 오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추모식에선 정몽구 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정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이 상영된다. 음악회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지휘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와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가 연주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상의 은사’ 민주묘지에 잠들다

    ‘사상의 은사’ 민주묘지에 잠들다

    ‘사상의 은사’를 떠나보내는 날, 아침부터 희뿌옇던 하늘은 그예 굵은 눈발을 뿌렸다. 장례위원과 조문객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 공간에서나마 애도의 글을 쉼 없이 올렸다. 지난 5일 새벽 숨을 거둔 리영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렸다.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시민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사회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은 황인성 시민주권 공동대표의 사회로 개식 선언,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유가족 인사, 헌화 순서로 진행됐다. 백낙청 공동장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은 선생님이 병상에서도 파시즘의 복귀를 경고하실 정도”라면서 “당신의 삶의 헛되지 않으셨기에, 못난 후학들이지만 저희 또한 당신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파시즘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적지 않아도 저들이 끝내 성공할 확률은 태무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온 국민이, 온 시대가 느끼고 있다.”는 네티즌의 추모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장남 건일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아버지는 한평생 치열하게 살아오셨고 심지어 편히 쉬어야할 마지막 여생도 병과 싸우다 임종하셨다. 이제는 정말로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시게 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했다. 유골은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해병대사령관 “100배 1000배로 갚아주겠다”

    해병대사령관 “100배 1000배로 갚아주겠다”

    “우리 해병을 죽고 다치게 한 대가를 반드시 저들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100배, 1000배로 갚아 주겠다. 현역과 예비역 모두 뼈에 새기게 반드시 복수하겠다.” 지난 27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러진 ‘연평도 전투 전사자’ 고(故) 서정우(22) 하사와 문광욱 (20) 일병의 합동영결식은 ‘영원한 해병’의 넋을 기리는 애도로 가득했다. 해병대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군·정·관계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서 하사와 문 일병의 약력이 소개되자 유족들은 흐느끼기 시작했고, 참석자들의 어깨도 슬픔으로 들썩였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조사에서 “해병대의 자랑이었던 그대들에게 북한은 어찌 이리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나. 우리 해병대는 두번 다시 참지 않을 것이다.”라고 애도의 뜻과 응분의 대가를 천명했다. 서 하사의 동료 한민수 병장도 추도사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반드시 복수해 주마, 사랑하는 정우야, 광욱아. 서북도의 수호신이 되어 연평도를 지키는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 주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애통해했다. 서 하사와 문 일병의 유가족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먼저 떠난 아들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눈물을 닦았다. 헌화와 분향에서도 유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굳은 표정이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시신이 식장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해병대전우회 양평군지회 김복중(해병 440기)씨가 운구행렬을 멈춰 세웠다. 그는 “고인이 즐겨 불렀던 영원한 해병가를 선창하겠습니다.”며 해병대가를 선창했고, 식장을 메운 해병 장병과 전우회원들은 떠나가도록 합창해 주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해병 장병과 전우회원들은 못내 아쉬운지 한번 더 해병대가를 합창했다. 시신이 식장을 빠져나와 운구차에 실리자 유족들은 관을 부여잡고 발을 구르며 다시 한번 목놓아 울었다. 서 하사의 부모는 관을 두드리며 “우리 정우 어떡해, 엄마야 엄마야. 이놈아, 아빠다. 정우야. 가지마.”를 외치며 안타가워했다. 문 일병의 유족들도 “우리 광욱이 불쌍해서 어쩌나.”라며 관을 놓지 않아 영결식장은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영결식을 마친 두 전사자의 시신은 성남 화장장으로 운구됐고 유족들은 화장로로 관이 운구되자 참았던 눈물을 또 쏟았다. 1시간여 만에 한줌의 재로 돌아온 두 용사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천안함 46용사가 함께 잠들어 있는 묘역으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서 하사의 아버지는 차마 아들의 유해 위에 흙을 덮지 못한 채 잔뜩 찌푸린 하늘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며 눈물을 삼켰고 어머니도 발을 구르면서 “어떡해”를 되뇌이며 오열했다. 문 일병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유해를 향해 “아이고, 우리 아들”을 목놓아 불렀다. TV로 영결식과 안장식을 지켜본 국민들도 눈물을 흘리며 두 용사가 편히 잠들기를 기원했다. 꿈많던 영원한 해병은 이렇게 영원히 하늘나라로 갔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서울광장] 일본의 장례문화가 진화한다/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본의 장례문화가 진화한다/이춘규 논설위원

    주일 특파원 시절 각계 인사들을 소개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준 64세 일본 지인의 부고를 받았다. 약식으로 치른 1일장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오와카레카이’(이승에서의 송별모임)를 도쿄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숨진 뒤 두달여 만에 열리는 송별모임이었다. 오와카레카이는 사회적 지탄을 받은 고비용 장례를 대신해 1901년부터 지식인층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지극히 간소한 장례의식이다. 지난주 도쿄 도심 지요타구에서 열린 송별모임에 참석했다. 고인과 세 차례 송년회를 한 장소다. 집권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처음 겪어 보는 일본의 장례의식 현장이었다. 조문이었지만, 어떤 형식일지 호기심도 일었다. 사전 취재를 통해 검은색 양복은 입었지만 넥타이는 보통 색깔을 매고 참석했다. 혹시 몰라 검정 넥타이는 예비로 준비해 갔다. 고인은 국제도시 도쿄에서 매스컴 관련 연구회를 통해 도쿄 주재 외교관·정치인·기업인·언론인 등이 교류하는 벤쿄카이(공부모임)를 20여년 주재한 사람이다. 함께 공부한 사람이 많아 참가비 1만엔을 받는 접수대부터 아는 얼굴들이 맞이했다. 송별모임은 아주 수수했다. 외부 화환은 전혀 없었다. 영정이 달랑 놓인 새하얀 제단에 국화꽃을 헌화하고, 묵념하는 걸로 그만이었다. 참석자들은 묵념 뒤에는 몇 점 전시된 고인의 생전 기념사진들을 살펴보고, 지인들과 얘기하며 추모했다.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추도사가 계속 이어졌다. 미국대사관 관계자,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의 짧은 추도사가 이어졌다. 기자도 해외 참석자로서 추도사를 했다. 고인을 기리는 전보나 전자우편 등도 여러 개 낭독됐다. 준비된 가벼운 식사와 음료로 저녁을 대신했다. 2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송별모임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참석하면서 일본의 장례의식이 최근 수년 새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일례로 송별모임 실행위원회로부터 ‘평복으로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연락을 받고 조사해 보니, 평복은 장례 때 입는 예복과 일반 양복의 중간 정도라고만 되어 있었다. 넥타이 색깔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현장에 가 보니 10% 이하만 검정 넥타이를 맸다. 일본의 장례의식은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마을공동체 장례에서 개인화, 간소화되고 있다. 1990년대 초 50% 선이던 자택 장례는 10% 이하로 줄었다. 60% 이상이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80%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숨지고 있다. 시신 매장은 극소수이고 90%대 후반이 화장이다. 장기 경기침체의 영향도 받아 장례의 간소화가 특히 두드러진다. 3~7일장 대신 1일장이 퍼지고 있다. 가족만이 치르는 가족장도 유행이다. 밤에 조문객을 맞는 쓰야는 철야에서 3시간으로 단축되거나 생략되고 있다. 산골(散骨)도 늘었다. 보호자 없이 죽는 경우가 늘어 공공기관 주재의 약식장례도 급증했다. 배우자를 잃은 고령자를 중심으로 생전에 스스로 장례를 예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저출산 영향으로 장남에 의한 묘의 계승은 옛이야기다. 가족 붕괴로 인해 유골합장묘도 점차 늘고 있다. 자신의 장례절차를 적은 임종노트를 생전에 제작, 실행하게 하는 현상도 늘었다. 묘를 돌볼 후손이 적어지면서 파산 가능성이 낮은 공립묘지 들어가기 경쟁도 심하다. 공·사립묘지들은 유골 안치 후 일정기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무연고자들을 합장, 사후 불안을 없애준다. 전통적인 장례문화를 대신해 장례의식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장례문화도 과도기다. 형식적인 부조금, 호화장례 등 허례허식은 여전하다. 화장이 60%를 넘었지만 불법적인 매장도 흔하다. 장례에 의한 사회적 낭비가 적지 않다. 서둘러 시대에 맞는 합리적 장례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때다. 일본 장례문화가 진화하는 모습은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taein@seoul.co.kr
  • 조용훈, 나홀로 넬라판타지아…‘남격’ 후유증 앓이

    조용훈, 나홀로 넬라판타지아…‘남격’ 후유증 앓이

    남격합창단 조용훈이 홀로 ‘넬라판타지아’를 불렀다. 큰 감동을 선사한 ‘남자 그리고 하모니’가 종영된 지 약 열흘. 조용훈, 그리고 시청자들은 합창단 후유증을 앓고 있다. 조용훈은 10월5일 동영상 커뮤니티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I miss 남격, I 믿 You’ UCC를 공개했다. 직접 제작된 동영상을 재생하면 곧바로 “끝났다.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하모니. 매주 목요일 즐겁고도 고된 연습”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온다. 조용훈은 “마음이 왠지 허전하다. 왠지 괜히 내일 아침에 합창 연습이 있을 것 같다”며 “그래서 혼자 작업실에서 불러본다. 나홀로 작업실에서. 나홀로 판타지아”라고 합창단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속마음을 담은 고백이 끝난 후 반전된 화면에선 조용훈이 대회 참가곡이었던 ‘넬라 판타지아’를 부른다. 33명 단원들의 사진으로 편집된 동영상에 조용훈의 깊이감 있는 목소리가 더해져 한 편의 뮤직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영상 후반부, 조용훈은 “내 서른 살, 뜨거운 꿈을 꾸게 했던 우리들의 판타지아 사랑합니다. 다해야 빨리 쾌차해라. 박칼린 선생님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등장 당시부터 폭발적인 성량과 중후한 보이스로 주목받은 조용훈은 합창곡 넬라판타지아와 애니메이션 메들리의 베이스를 담당했다. ‘배추도사’ 조용훈은 함께 솔로를 맡았던 ‘무도사’고중석 씨도 잊지 않았다. “배추도사 무도사 파이팅!”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 조용훈의 ‘넬라판타지아’는 오는 7일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동시에 지난 여름동안 연습했던 넬라 판타지아의 남성 솔로 곡도 들려 줄 예정이다. 사진 = ‘I miss 남격, I 믿 You’ UCC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얼굴 잃은 여성 ‘황산테러’ 앙갚음 논란 ▶ 김미리내, 이상구 폭행증거사진 공개…’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마카롱…1개 800만원 달팽이맛?▶ 가인-이성재, ‘색.계’ 뛰어넘는 티저공개…’파격+농염’▶ 김지수, 음주에 뺑소니로 불구속 입건…’근초고왕’ 어떻게?▶ 케샤, 전 매니저에 157억 피소 ‘법정 논쟁’
  • [경술국치 100년]뮤지컬·특별전·순례로 부활한 3人의 우국충정

    [경술국치 100년]뮤지컬·특별전·순례로 부활한 3人의 우국충정

    한·일강제합병조약 체결 100주년인 올해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운 수많은 우국지사의 100주기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영양 일대는 어느 지역보다 많은 자정(自靖·자결)순국자를 배출했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단식으로 순사한 향산 이만도 선생과 그의 조카 이중언 선생, 또 향산의 제자로 동해 바다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도해(蹈海) 순국한 벽산 김도현 선생 등 세 분 의병장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 본다. 지금 안동은 향산과 이중언 선생을 기리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향산의 우국충정은 ‘락’이라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안동댐 민속촌의 동산서원에서 오는 10월까지 공연된다. 때 맞춰 한국고전번역원은 ‘향산집’ 7권 가운데 1권을 먼저 번역해 내놓았다. 이중언 선생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8월의 독립운동가’로도 선정됐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안동선비’라는 주제로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기획전을 새달 30일까지 갖는다. 1842년에 태어난 향산은 퇴계 이황의 후손이다. 1866년 대과에 장원급제한 그는 ‘선비로 나라에 일신을 바친 자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부친의 당부를 실천에 옮겼다. 향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선생을 변호하다 파직됐고,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에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합병조약이 맺어지자 단식 24일 만에 순국했다. 퇴계종가와 묘소가 있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에 있던 향산의 종가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이르자 1975년 안동시 안막동으로 옮겨졌다.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허비는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예안면 인계리 청구마을 앞에 자리잡았다. 유허비각 주변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향산공원이 조성됐다. 1949년 세워졌다는 유허비의 앞면 글씨는 백범 김구가 썼고 뒷면의 추도사는 위당 정인보가 지었다. 향산과 한 마을에서 1850년 태어난 이중언 선생은 1879년 대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등을 지냈으나 외세의 발호를 목격하고는 낙향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예안의진(義陣)의 전방장으로 함창의 태봉전투를 이끌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려 을사오적의 목을 베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향산과 다르지 않은 궤적이다. 그는 향산의 부음을 들은 10월10일 선조의 사당에 참배하고 단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많은 친지와 제자가 중단할 것을 권유했지만 선생은 ‘모두 부질없는 소리’라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11월5일에는 순사가 찾아와 단식을 중단시키려 하자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칼로 베겠다.”며 물리친 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단식 27일 만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봉서를 하나 남겼는데 ‘나의 갈 길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던져 의로움을 택하는 것뿐이다. 동포들이여 오직 힘쓰고 또 힘쓰라.’는 ‘경고문’이었다. 향산의 흔적을 찾는 것도 그랬지만, 영양유생 벽산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작은 음식점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순국지사의 유적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산은 1852년 현재의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선 1580년 처음 지어진 벽산의 생가와 1958년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하여 그의 흔적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마을 뒷산의 검산성(劍山城)이다. 벽산이 사재를 털어 쌓은 것이다. 길이 200m 남짓에 불과하고 높이도 2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뒷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하천이 흘러 자연해자의 역할을 한다. 결코 간단치 않은 방어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벽산은 실천적이고 전투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병사에 특별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96년 청량산에서 모병하여 8개월 동안 항쟁했고, 1906년에는 고종의 비밀명령을 받아 활동했으나 이듬해 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구국활동은 무력항쟁에 그치지 않고 상소운동을 벌이거나 서양 각국의 공사관이 만국공법론에 의거해 포고문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등 외교론적 방법을 병행했다. 벽산은 병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상례가 모두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1914년 영덕군 영해읍 대진 앞바다에서 순국한다. 동포들에게 충의로서 일제에 복수할 것을 강조하고 자신은 죽어서라도 기어이 왜를 멸망시키겠다는 내용의 글 ‘우리동포에게(與國內同胞)’는 순사 전날인 11월6일 새벽 반송정에서 남긴 것이다.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겠다며 경주 감포 앞바다에 대왕암 수중릉에 묻혔다는 신라 문무왕의 염원과 닮은꼴이다. 벽산이 순국한 대진 산수암(汕水巖)에는 1971년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고, 해마다 선생의 생일인 음력 7월14일 기념행사가 열린다. 산수암의 북쪽에는 대진해수욕장, 남쪽에는 대진항이 자리잡고 있다. 도해단을 찾아간 지난 23일에는 벽산의 96주기를 기념하는 ‘도해단 전례’가 있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35~36도의 뙤약볕 속에서 대구와 안동, 영양 등지에서 승용차며 전세버스를 타고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선생의 우국정신을 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글 사진 안동·영양·영덕 서동철부국장 dcsuh@seoul.co.kr
  • “金 전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 이룩하겠다”

    “金 전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 이룩하겠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이 18일 서울 동작동 현충원 유물전시관 앞에서 열렸다. 오는 10월3일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 당권주자들은 현장으로 총출동했다. 오전 10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된 추도식에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장남 홍일씨 등 유가족을 비롯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 전 의원이 자리했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를 포함,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상임고문, 김효석·박주선·천정배 의원 등 당 지도부와 차기 당권 주자들이 모두 모였다. 여권에서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정몽준 전 대표, 임태희 대통령실장,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석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등 각계 주요 인사와 시민 등 1000여명도 함께 고인의 뜻을 기렸다. 김 전 대통령 추모위원회 위원장인 김석수 전 국무총리는 추도사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떠난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위대했다.”면서 “일생을 조국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그 길을 따라 김 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룩해 영전에 바치겠다.”고 말했다. 사회는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맡았으며 추모영상과 이 여사의 김 전 대통령 자서전 헌정, 참배 등이 이어졌다.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유족 대표 인사에서 “오로지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했던 아버님의 뜻과 지혜를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각 당에서는 화합을 강조하는 논평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안 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의 남북평화 성과를 언급하며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돼 온 정치권이 고인이 남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 원내대표도 “민주개혁세력이 단합해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의 총체적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공동 대응하고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NTN포토] ‘이용식, 형님 뭐가 그리 급하셔서··‥’

    [NTN포토] ‘이용식, 형님 뭐가 그리 급하셔서··‥’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31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원로 코미디언 故 백남봉(본명 박두식, 71)의 영결식이 엄수된 가운데 코미디언 이용식이 추도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故 백남봉은 2008년 4월 폐암 수술을 받고 요양하다 폐렴 증세 악화로 29일 오전 8시40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
  • ‘무한도전’ 40가지 표정탐구 사진 화제..生生 ‘코믹물’

    ‘무한도전’ 40가지 표정탐구 사진 화제..生生 ‘코믹물’

    ‘무한도전’ 멤버들이 지은 40여가지 표정이 담긴 사진이 공개돼 화제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블로그에는 한 네티즌(아이디 배추도사무도사)이 게재한 MBC ‘무한도전’ 멤버들의 표정탐구 사진들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표정탐구 게시물은 멤버 유재석과 박명수를 비롯해 정형돈 길 정준하 노홍철과 전 멤버 전진의 표정 변화를 상황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눠 눈길을 끈다. 특히 진짜 상황이 웃길 때 혹은 적당히 웃길 때, 살짝 짜증났을 때 혹은 진짜 짜증났을 때 등 세심한 표정의 변화를 비교한 사진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멤버 중 정형돈은 억울할 때나 짜증날 때 표정의 변화가 의외로 확실히 드러나 그동안 “캐릭터가 없다.”는 이미지와 상반된 ‘표정의 달인’이 된 모습이다. 이어 유재석은 모든 사진에서 웃어야 할 때 뿐 만 아니라 짜증 나거나 당황 했을 때도 입을 벌리고 있어 ‘돌출된 입모양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반면 박명수는 짜증이 날 때 미간에 주름이 잔뜩 지는 등 화나있음을 보여줘 평소 박명수의 이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나머지 멤버들도 상황에 따른 리얼한 표정으로 네티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공개된 게시물을 본 네티즌들은 “사진을 보니 그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박명수 얼굴로 웃겨야 된다고 생각할 때, 너무 재밌다. 역시 예능감 최고!”, “유재석 입만 보인다 하하하”, “이런 시리즈 너무 좋다. 앞으로도 이런게 많이 나오길 바란다.”, “내가 무한도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등 재밌다는 반응이다. 사진 = 인터넷 포털사이트 블로그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무한도전’ 멤버들의 ‘40가지’ 표정탐구...’재밌네’

    ‘무한도전’ 멤버들의 ‘40가지’ 표정탐구...’재밌네’

    ‘무한도전’ 멤버들이 상황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모습을 분석한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한 네티즌(아이디 배추도사무도사)이 게재한 MBC ‘무한도전’ 멤버들의 표정탐구 사진들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표정탐구 게시물은 ‘무한도전’ 멤버 유재석과 박명수를 비롯해 정형돈 길 정준하 노홍철과 전 멤버 전진의 표정 변화를 상황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눠 눈길을 끈다. 특히 진짜 상황이 웃길 때 혹은 적당히 웃길 때, 살짝 짜증났을 때 혹은 진짜 짜증났을 때 등 세심한 표정의 변화를 비교한 사진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멤버 중 정형돈은 억울할 때나 짜증날 때 표정의 변화가 의외로 확실히 드러나 그동안 “캐릭터가 없다.”는 이미지와 상반된 ‘표정의 달인’이 된 모습이다. 이어 유재석은 모든 사진에서 웃어야 할 때 뿐 만 아니라 짜증 나거나 당황 했을 때도 입을 벌리고 있어 ‘돌출된 입모양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반면 박명수는 짜증이 날 때 미간에 주름이 잔뜩 지는 등 화나있음을 보여줘 평소 박명수의 이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나머지 멤버들도 상황에 따른 리얼한 표정으로 네티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공개된 게시물을 본 네티즌들은 “사진을 보니 그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박명수 얼굴로 웃겨야 된다고 생각할 때, 너무 재밌다. 역시 예능감 최고!”, “유재석 입만 보인다 하하하”, “이런 시리즈 너무 좋다. 앞으로도 이런게 많이 나오길 바란다.”, “내가 무한도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등 재밌다는 반응이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빗속 노란 애도물결 ‘盧風’ 재점화 될까

    빗속 노란 애도물결 ‘盧風’ 재점화 될까

    23일 새벽부터 짙은 안개가 부엉이 바위를 휘감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봉화산을 가리켜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했다. 그 산 중턱에 험하게 박힌 부엉이 바위에는 비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바위 아래에서는 노란 비옷이 넘실거렸다. 빗물에 추모식장 주변이 온통 진흙탕으로 변했어도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1년 전에도 빗속을 뚫고 달려 왔다는 이광옥(40·서울 광진구)씨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저 바위만 없었더라도 그렇게 가시지는 않았을 겁니다.”라며 하염없이 바위만 바라보았다. ●방송인 김제동 추도식 진행 김해시 진영읍에서 봉하마을까지 3㎞ 남짓한 대로에는 노란색 바람개비가 방문객을 안내했다. 그러나 모든 길은 오전부터 주차장으로 변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추모 행렬은 흡사 ‘구도’의 순례길처럼 보였다. 모두 다 ‘노무현 지지자’는 아니었다. 부산에서 일곱살 된 아들을 데리고 온 이명옥씨는 “살아 생전 그에게 한 표만이라도 찍어줬으면 이렇게 미안하지 않을 텐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추모식 사회는 방송인 김제동의 몫이었다. 그는 1년 전 서울광장 노제 때도 구름처럼 모인 추모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비가 땅에서도 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슬픔을 짓누르며 추모합니다.” 무수한 비를 다 맞으며 행사를 진행하는 그의 모습에 추모객들은 더 숙연해졌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이해찬 전 총리가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도종환 시인이 추모시를 읊었다. “욕되게 살 수 없다며 몸을 던진 당신을 아직도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시인의 목소리가 떨렸고, 추모객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가 “1년 전 여기 텃밭을 일구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날의 비극보다는 당신이 걸어오셨던 길, 당신이 걷고자 했던 길을 기억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며 울먹였다. 숙연함은 절정에 달했다. 추모식이 끝남과 동시에 묘역 준공식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추모 글귀가 새겨진 박석(바닥 돌) 1만 5000개가 노 전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세워진 ‘아주 작은 비석’ 주변에 촘촘히 놓여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시민들의 정성이 담겼다. 3대가 함께 박석을 기부한 가족 등 4명의 시민대표가 마지막 박석을 놓고, 조문객 100명이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523마리 나비를 날린 이후 유족과 시민들이 헌화 분향에 나섰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등은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 직접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야권 후보 유세 접고 대거 참석 주최 측은 최대한 정치적인 색채를 배제하겠다고 했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모객 중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참석한 정치인들도 대부분 그의 뜻을 이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멀쩡한 대통령을 죽음으로 몬 사람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과거의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한다.”면서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봉하에서 이렇게 많은 여러분을 보니 대통령님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면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후보들과 지도부 모두가 이날 지역 유세를 뒤로 하고 봉하로 달려 왔다. 김해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盧 그리며… 전국서 추모모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과 시민추모모임 행사가 22·23일 서울과 경남 김해 등에서 열린다. 노사모, 시민주권, 시민광장,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노사모카페 등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시민추모모임은 19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추모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시민모임은 22일 낮 12시부터 23일 오후 11시까지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노 전 대통령 사진전을 열기로 했다. 또 23일 오후 7시~9시30분 서울시청광장과 부산대에서 동시에 시민추모 문화제를 갖는다. 당초 서울시는 리틀엔젤스 예술단 공연을 이유로 시청광장 추모제를 허가하지 않았지만, 18일 일정을 조정해 허가를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진도 열린다. 시민모임은 22일 오후 2~3시 노 전 대통령이 당선 이전에 살았던 서울 명륜동 사저에서 안국동, 조계사, 대학로, 시청광장에 이르는 A코스와 동교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에서 충정로, 정동길, 대한문으로 연결되는 B코스를 걷는 ‘민주올레’ 행사를 갖기로 했다. 23일 오후 2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는 시민들이 기부해 조성한 박석묘역 완공식과 서거 1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추도식에는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참여정부 주요 인사,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명숙·유시민·안희정·김두관 후보 등이 대거 참석한다.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될 추도식에서는 추모연주, 추모영상 상영, 추모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도종환 시인 등이 추도사를 한다. 이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1만 5000여명의 시민들이 기부해 조성한 가로 20㎝, 세로 20㎝, 두께 10㎝의 박석묘역 앞에서 헌정사를 한다. 유족대표 인사, 시민 조문객 100명의 523마리 나비 날리기, 유족 및 내빈들의 묘역 참배에 이어 일반 참배객들에게도 묘역이 개방된다. 행사 참석자들은 오전 11시부터 노 전 대통령의 모교인 진영읍 대창초등학교에서 봉하마을 묘역까지 걸어가는 ‘민주올레’ 행사도 갖는다. 같은 시간 노 전 대통령의 49재를 올렸던 봉화산 정토원에서는 서거 1주기 추모법회가 열리며, 법타스님과 송기인 신부가 각각 추도사를 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日외상 “식민지배 사과”

    │도쿄 이종락특파원│ 한국인 유골 219위에 대한 봉환 추도식이 18일 도쿄 메구로구에 있는 유텐지에서 오가타 가쓰야 일본 외상과 권철현 주일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오가타 외상은 일본 외상으로는 처음으로 유골 봉환식에 참석했다. 오가타 외상은 추도사에서 “일본은 과거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로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카다 외상은 이어 “병합의 아픔을 느끼는 피해자의 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런 차원에서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며 진정으로 미래 지향적인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jrlee@seoul.co.kr
  • “의로운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의로운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의로운 일에 나섰다가 희생된 당신들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 미안합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지난달 2일 사고로 침몰된 ‘금양98호’의 선장 김재후, 기관장 박연주, 선원 정봉조, 이용상, 안상철, 허석희, 유수프 하레파(인도네시아인). 실종 선원 7명에 대한 영결식이 6일 오전 10시 인천시 경서동 신세계 장례식장에서 수협장으로 열렸다. 사고 발생 34일 만이다. 영결식은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군·해경·수협 관계자, 시민과 유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장례위원장인 이종구 수협중앙회 회장은 조사에서 “천안함 사고 때 한달음에 달려가 내 자식 같고 조카 같던 장병들을 수색했던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실종 선원 안상철씨의 동생 상진씨는 추도사를 통해 “민간인 신분으로 나선 당신들의 아름다운 희생은 말 없는 조국애의 실천이며 소리 없는 가르침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실종 선원 6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해 영정과 유품 등이 인천가족공원 내 화장장으로 옮겨져 화장처리됐다. 이어 지난달 3일 시신으로 발견돼 22일 장례를 치른 선원 김종평씨와 함께 시립납골당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 선원 유수프 하레파의 영정과 위패는 영결식 뒤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인계됐다. 지난달 3일 시신으로 발견된 인도네시아인 람방 누르카효는 이미 본국으로 운구됐다. 실종 선원들에 대한 장례는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가 “인양작업에 따른 추가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며 실종자 수색 중단에 동의함에 따라 이뤄질 수 있었다. 해경은 지난달 14일 잠수업체를 선정하고 실종 선원을 찾기 위한 수중수색을 시도했으나 금양호가 깊이 80m의 심해에 가라앉은 데다 선체 입구에 어망·밧줄 등이 쌓여 있어 내부 진입이 어렵자 23일 수색을 중단했다. 금양호 희생자 9명에 대해서는 의사자(義死者)에 준하는 예우를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李대통령, 46인 영정에 일일이 무공훈장 추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李대통령, 46인 영정에 일일이 무공훈장 추서

    29일 오전 9시57분쯤 평택 제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하며 합동영결식장에 들어섰다. 침통한 표정의 이 대통령은 고인들에 대한 경례와 묵념을 한 뒤 식장 맨 앞줄에 앉았다. 부인 김윤옥 여사도 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김윤옥여사 영결식내내 눈물 이 대통령은 이어 고 이창기 준위를 시작으로 천안함 사건 희생 장병 46명 전원의 영정에 화랑무공훈장을 직접 추서했다. 두 손으로 영정 앞에 훈장을 놓은 뒤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의 조사와 천안함 생존병사인 김현래 중사의 추도사가 이어지는 동안 이 대통령은 꼿꼿하게 제단을 응시하거나 간혹 눈을 감고 입을 굳게 앙다문 모습을 보였다. 유가족의 헌화와 분향이 시작되면서 이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간간이 눈가를 닦았고, 김 여사는 영결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헌화를 끝낸 유가족 중 한 여성이 이 대통령 내외 앞으로 나와 편지를 전달했고, 이 대통령은 일어서서 편지를 받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고 민평기 중사의 어머니는 영결식장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다가가 “북한에 왜 퍼주십니까. 쟤들이 왜 죽었습니까. 이북놈들이 죽였어요. 주면 무기만 만들어서….”라며 “이북 주란 말 좀 그만 하세요. 피가 끓어요.”라고 고함을 치며 오열하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軍통수권자로서 행동으로 실천” 오전 11시가 넘어 영결식이 끝나자 대통령은 빠져나가는 유가족쪽으로 먼저 가서 일일이 다시 인사를 했다.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대통령의 손을 붙잡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살려주세요.”라며 하소연을 했다. 유가족 중 한 여성은 이 대통령에게 안겨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고, 이 대통령은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희생장병들이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고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국군통수권자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조치하겠다는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노모 혼절·어린딸 오열…시민들 국화꽃 ‘마지막 배웅’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노모 혼절·어린딸 오열…시민들 국화꽃 ‘마지막 배웅’

    “그대 다 피지도 못하고 물 젖은 몽우리로 산화하여 구릿빛 육체는 차디찬 바다에 던져졌지만 당신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 영원할 것입니다.” 29일 오전 10시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안보공원에서 해군장으로 엄수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은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46명의 용사들에게 화랑무공훈장을 하나하나 추서하는 동안 유족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더 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천안함 생존장병인 김현래(27) 중사가 전우를 먼저 떠나 보낸 심정을 담은 추도사를 읽기 시작하자 유족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 고 이창기 준위의 아들 산(13·중1)군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얼굴을 계속해서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꿋꿋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장병들 눈물훔치며 입술 깨물기도 해군군악대 중창단이 ‘임이시여’ ‘떠나가는 배’를 합창하는 가운데 92명의 유가족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마지막 헌화와 분향을 했다. 유가족 중 백발의 어머니는 혼절해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고, 아버지 영정 앞에 선 딸은 사진만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던 장병들 역시 마스크 위로 눈물을 떨궜고 소매 끝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거나 입술을 깨무는 장병도 있었다. ‘바다로 가자’와 ‘천안함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운구행렬은 영결식장을 나와 군항 부두로 향했다. 선두 차량이 3번 도크를 지날 때 정박 중인 독도함, 부천함, 청주함 등 4척의 함정 승조원들은 “대함경계 준비, 총원차려, 경례”라는 명령에 맞춰 함정의 뱃전에 정복을 입고 도열해 바치는 해군 최고의 예우 ‘대함경례’를 했다. 군함에서는 이와 함께 해군 정모와 정복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풍선 3000여개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운구행렬은 각각 9~12대의 차량으로 나뉘어 총 11개 그룹이 시차를 두고 2함대 해군아파트를 거쳐 안장지인 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도로에는 태극기와 해군기가 게양됐고,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조기가 걸렸다. 길가에서는 시민들과 해병전우회 등 수백명이 국화꽃을 바치며 배웅했다. ●백령도에선 해상 추모제 영결식장 주변에는 고인들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 일반인들이 유독 많았다. 안산에서 온 김순희(57·여)씨는 “나도 자식 키우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서 어제 서울광장에 갔다왔는데 또 왔다.”면서 지나는 버스에 모두 목례를 했다. 한국전쟁에 해군으로 참전했다는 강창근(80)씨는 제복을 입고 훈장을 단 채 희생자들을 배웅했다. 한편 이날 오전 백령도 침몰해역에서는 46용사들을 기리는 해상 추모제가 열렸다.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백령도 주민들이 마련한 국화꽃과 학생들이 주민들의 추모글을 모아 만든 종이학 1000여개를 해병대원들이 침몰 해역에 뿌렸다. ●故한주호 준위 가족에 위로 전해 한편 천안함 전사자 가족협의회는 영결식 후 성명서를 내고 34일간의 합숙생활을 마감했다. 가족협의회는 성명서에서 “그들의 희생을 영예롭게 해주시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이명박 대통령님과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신 김성찬 해군참모총장님을 비롯한 해군 장병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이와 함께 천안함 46용사의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모든 분들과 무엇보다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구조 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명복을 빌고 조문까지 한 가족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표했다. 김병철 김학준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46인 전우여!…조국의 바다 굽어살피소서

    46인 전우여!…조국의 바다 굽어살피소서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희생된 해군 772함 용사 46명이 29일 국민들의 가슴에 묻혔다. 오전 10시 전국에 일제히 울려퍼진 슬픔의 사이렌 소리에 사무실에서, 거실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시장에서, 공사장에서, 논밭에서 생업에 분주하던 국민들은 이제 꽃다운 우리의 청년들과 영원히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결식이 거행된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용훈 대법원장, 김형오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국무위원, 전두환 전 대통령, 주요 정당대표와 국회의원들, 전군 주요지휘관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등 외국 무관들, 그리고 유가족까지 2800명이 참석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영결식의 명칭은 해군장이었지만 사실상 국장 수준의 최고 예우로 남은 자들은 순국장병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다. 영결식에서 이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46명의 천안함 용사들의 영정에 거수경례를 했다. 이어 고(故) 이창기 준위를 시작으로 46명의 용사에게 일일이 화랑무공 훈장을 추서했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들이 남긴 살신보국의 참군인 정신은 모든 국민이 자자손손 이어 누릴 자유와 번영의 씨앗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을 끝까지 찾아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천안함 생존장병인 김현래 중사는 “여러분과 우리를 갈라놓은 슬픔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눈물의 추도사를 읽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부두에 정박한 모든 함정의 승조원들이 정복 차림으로 뱃전에 도열, 운구행렬을 향해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대함경례’를 올릴 때 국민들도 마음속으로 46명의 용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품과도 같은 모항(母港) 2함대를 영원히 떠난 용사들의 영현은 오후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는 영결식 후 성명서를 통해 “천안함 46 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문행렬을 보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그대들이 못다 이룬 꿈·사랑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그대들이 못다 이룬 꿈·사랑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그대들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29일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 못지않은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천안함 침몰 당시 구조됐던 생존장병들이다. 생존장병 58명 가운데 치료 중인 6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결식장을 찾았다.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생존장병들의 손에는 희생된 동료들의 영정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영결식 내내 고개를 떨구거나 흐르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천안함 갑판부사관인 김현래 중사는 생존장병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정복을 입고 단상에 선 그는 “사랑하는 전우 여러분.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2010년 3월26일 밤, 경기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의 일상은 끔찍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습니다.”라고 당시의 충격을 되살렸다. 김 중사가 “서로를 격려하며 한 명 두 명 구조선에 올랐지만 당신들의 애끓는 영혼에는 미처 닿지 못했습니다.”라고 울먹이자 영결식장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그는 먼저 간 동료들에 대해 “여러분의 못다 이룬 꿈과 사랑을 우리가 실천하겠다.”면서 “다른 세상에서 서로 만날 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남은 생을 살며, 우리의 바다를 지켜낼 것”이라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생존장병들은 “처절하게 두 동강이 났지만 우리 천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조국의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그대들이 가다가 멈춘 그 길을 다시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천안함 희생자 오늘 장례식] 2함대 영결식 → 운구 이동 → 현충원 안장식 → 영면

    [천안함 희생자 오늘 장례식] 2함대 영결식 → 운구 이동 → 현충원 안장식 → 영면

    천안함 순국장병 46명을 보내는 마지막 행사인 영결식이 2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거행된다. 정부는 이날 하루 온 나라가 이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도록 ‘국가 애도일’로 정했다.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조기를 게양해 이들의 영면(永眠)을 기원한다. 영결식은 장의위원회 주관으로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내 안보공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다. 순국장병의 유가족과 정운찬 국무총리, 김태영 국방부 장관, 역대 참모총장 등 28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개식사,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경례에 이어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된다. 이어 김 총장이 조사를 낭독하고 천안함에서 생존한 김현래 중사가 전우를 떠나보내는 심정을 담은 추도사를 읽는다.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이 끝나면 5초 간격으로 3발씩 총 9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기적이 울려 퍼지면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영결식이 끝나면 해군 군악대 합창단 20명이 ‘바다로 가자’와 ‘천안함가’를 부르는 가운데 운구 이동이 시작된다. 육·해·공군 의장대 80명이 도열한 가운데 해군 의장대 호위병 2명의 선도로 대형 태극기와 해군기가 앞서 나가고, 46명 장병들의 영정과 위패· 훈장·운구함이 뒤를 따른다. 계급에 따라 제일 앞 열에는 고(故) 이창기 준위의 영정과 임재엽 중사, 김선명 병장의 영정이 자리한다. 영정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이송하며 46명의 영현(유골)은 군항 부두를 지나 이들이 살던 해군아파트를 돈 뒤 대전 현충원으로 이동한다. 군항 부두를 지날 때 정박하고 있는 모든 함정은 5초간 기적을 울린다. 해군 정모를 상징하는 흰색과 정복을 상징하는 검은색 풍선 3000개가 하늘로 날려지고 승조원들은 정복을 입고 함정의 뱃전에 도열해 최고의 예우인 ‘대함경례’를 올린다. 오후 3시 대전현충원에 도착해 현충문에서 김 총장 주관으로 안장식이 거행된다. 사병 제3묘역에 조성된 합동묘역에서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영현봉송, 하관 밑 허토(흙 한줌을 관 위에 뿌리는 일), 성분(분묘 조성) 순으로 진행된다. 오후 4시가 되면 안장식이 마무리되고 영원한 휴식에 든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인양 이후] 1계급 진급… 화랑무공훈장 추서

    조국을 지키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46명의 장병에 대해 온 국민이 애도를 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전사자 예우와 함께 1계급 진급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천안함 실종장병 46명에 대한 장례절차는 25일부터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시신이 발견된 40명과 시신조차 찾지 못한 6명에 대해 함께 장례절차가 이뤄진다. 시신을 찾지 못한 6명의 장병은 해군에서 보관하고 있는 손톱과 머리카락, 유품 등이 시신을 대신한다. 해군장(葬)으로 29일까지 5일간 치러지며 해군과 정부가 함께 편성한 장의위원회는 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을 포함해 72명으로 구성됐다. 장의위는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대표분향소를 차리고 전국의 군부대에 90개 분향소를 설치했다. 장례기간을 전군 애도기간으로 정했으며 전우들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 현수막을 설치하고 검은색 넥타이와 근조리본을 달도록 했다. 염습과 입관 절차는 이보다 앞서 23일부터 시작됐다. 26일까지다. 또 24일부터 28일까지 화장이 진행된다. 오랜시간 물 속에 있어 시신의 훼손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일부 장병들에 대해 공식 장례일정이 시작되기 전 염습과 입관, 화장절차를 마무리했다. 영결식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장의위 주관으로 진행된다. 유가족과 정운찬 국무총리, 김태영 국방부 장관, 역대 참모총장 등 28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경례, 화랑무공훈장 추서, 경위보고, 조사와 추도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이어진다. 5발씩 3회에 걸쳐 총 15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묵념을 끝으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출발한다. 오후 3시 도착한 이들의 영현은 안장행사를 거쳐 4시 합동묘역에 안장된다. 앞으로 군은 평택 2함대사령부 내에 추모관과 충혼탑을 건립할 예정이며 유족지원책임관을 임명해 유가족에 대한 보상부터 복지까지 모든 부분에 대해 지원할 예정이다. 오이석 강주리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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