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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4년째 가해책임 회피… 일왕은 2년째 ‘깊은 반성’

    아베 4년째 가해책임 회피… 일왕은 2년째 ‘깊은 반성’

    정부 “각료·의원 참배 강행 유감” 아키히토 일왕이 15일 일본 종전일(패전일) 희생자 추도식에서 2년 연속 ‘깊은 반성’을 표명했다. 그는 이날 도쿄 지요다구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메시지를 또박또박 낭독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전화(戰禍)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세계 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길 기원한다”며 추도사를 마쳤다. 그가 지난 8일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뒤 왕궁 이외에서 공무에 나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고베여대 가와니시 히데야 교수는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서 일본의 가해 책임 등 과거를 잊으면 안 된다는 일왕의 생각을 느꼈다”며 “국민뿐 아니라 차세대 왕실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아베 신조 총리는 같은 추도식에서 “전쟁 참화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며 “역사를 겸허하게 마주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2년 말 취임 뒤 열린 네 차례 종전일 추도식에서 가해 책임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부전(不戰) 맹세’ 표현도 없었다. 그의 전임자들은 추도식에서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며 가해 책임을 언급했다. 한편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과 마루카와 다마요 올림픽 담당상 등 아베 내각의 각료들이 이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총재특별보좌를 통해 공물료를 납부했다. 니시무라 특보는 이날 “(총리로부터) 공물료를 내고 참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전사한 분들의 영령에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빌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직접 참배하지 않은 것은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70여명도 예년처럼 참배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일본 정부 및 의회의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침략전쟁 역사를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또다시 공물료를 봉납하고 참배를 강행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朴대통령 모친 육영수 여사 42주기 추모식 15일 개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42주기 추모식이 광복절인 오는 15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다. 국방부는 “오는 15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묘소에서 재단법인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육 여사의 42주기 추모식이 열린다”고 12일 밝혔다.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정·관계 주요 인사를 포함한 3천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식은 추도사, 육성 녹음 청취, 조총 발사, 헌화·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1925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육 여사는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옥천 공립 여자전수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50년 육군 중령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박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이후 육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어린이대공원과 어린이회관 건립을 주도하고 소년소녀잡지 ‘어깨동무’를 발간하는 등 육영사업에 헌신했다. 빈곤층 청소년의 직업교육을 위한 정수직업훈련원을 세우고 한센병 환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가축 자활사업을 지원했으며 노인들을 위한 월요 경로회를 조직하는 등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는 데도 힘썼다. 육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북한 공작원 문세광이 쏜 흉탄에 맞아 숨을 거뒀고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국방부는 “서울현충원은 어린이를 위한 육영사업과 그늘진 곳에 사는 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에 헌신한 고인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추모식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 [세종로의 아침] 현각의 가출/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세종로의 아침] 현각의 가출/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돈 밝히는 기복 한국불교를 떠나려 한다.” 현각스님이 지난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외국인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며 밝힌 충격선언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뒤늦게 한 일간지에 전한 “한국불교와 한국을 떠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해명에도 관심이 확산되는 추세다. ‘도대체 왜 떠나는 걸까’ ‘정말 떠나는 거야?’…. 외국인 스님의 ‘한국불교 절연’ 소식에 왜 이렇게 흥분해 관심을 쏟는 걸까. 그 관심과 화제의 중심은 ‘왜’ 라는 이유보다 ‘현각’에 치우친 것 같다. 미국 예일대 철학과를 나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미국인. 로마 가톨릭 신부가 되려다 숭산 스님 강연에 감동하여 조계종에 귀의한 푸른 눈의 납자(衲子). 한국사찰 주지와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낸 인물…. 현각스님의 벽력같은 선언 이후 처음 입장을 낸 조계종 스님의 전언도 일반인의 심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각 스님은 제대로 한국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버드라는 유교문화 속에 존재하는 사대주의와 학벌주의에 의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분이다.” “한국을 선택한 외국인으로서 25년 이상을 산 분의 비판으로는, 이것이 자기 우월주의와 문화적 독선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뭣이 중헌디.” 지난 5월 개봉해 이목을 끈 영화 ‘곡성’의 대사를 빌려 무엇이 중요한지 따져보자. 일반 입장에서야 한국불교를 택한 외국인 수재가 독특해 보일 것이다. 범상치 않은 전복(轉覆)의 삶이 관심을 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스님이 한국불교를 떠난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조계종 입장은 달라야 한다. 지금 당장의 관심은 ‘인간 현각’의 들고 남에 쏠리겠지만, 머지않아 왜 떠났는지의 원인에 모일 게 분명하다. 네티즌 반응도 현각의 한국불교 결별이란 사건에서 왜 떠났는지를 묻는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 현각 스님은 지난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대진 스님의 다비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진 스님이 숭산 스님과 함께 평생 일궈온 농사를 이어 세계에서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게 대진 스님을 추모하는 방법이다.” 숭산 스님의 미국인 제자였던 대진 스님을 향한 그 추도사는 은사인 숭산 스님이 생전 일갈했던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을 잇겠다는 다짐이다. 그랬던 그가 한국불교를 떠난다니 그 만방의 꽃을 피울 화단을 옮기겠다는 또 다른 전복의 시작이 아닌가. “한국불교와 한국을 떠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자면 현각 스님의 앞선 선언은 잠시 가출의 변에 머물 수도 있다. 그간 정황으로 보자면 가출한 푸른 눈의 납자가 다시 한국불교로 귀가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적어도 조계종단의 품 안에 다시 웅숭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측면에서 조계종 포교원장을 지낸 스님이 전한 소감이 곧 몰아칠 후폭풍의 예고인 듯해 각별하다. “현각 스님의 탈한국불교 변론에는 양지의 이야기는 덮였지만 한국불교에 ‘신불교유신론’이 되길 기대한다. 재삼재사 신불교유신론이 나오는 도화선이 되길 바라고 싶다.” kimus@seoul.co.kr
  • 알리 마지막 길… 윌 스미스 등 8명 운구

    무료 입장권 동나… 재판매 글도 오바마, 딸 졸업식 있어 불참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이 10일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엄수된다. 이번 장례 일정의 큰 틀은 고인이 생전에 짜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1964년 귀의한 이슬람에서는 지역과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사망 후 24시간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데 이번 장례는 7일 후 거행되는 점이 다르다. 장례 전날인 9일 1만 8000명이 들어가는 프리덤 홀에서 이슬람식 장례 예배가 열렸다. 모든 종교에 문을 열었다. 유대교는 물론 모르몬교 지도자도 추모했다. 이곳은 알리가 1960년 프로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고 이듬해 고향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곳이다. 10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일 오후 10시)부터 운구 행렬이 고인에게 의미가 있는 루이빌의 여러 곳을 돌게 된다. 모두 8명이 운구하는데 고인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영국의 전 헤비급 세계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와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가 포함됐다. 장례식은 오후 2시 ‘KFC 얌! 센터’에서 시작한다. 지난 7일부터 이곳 매표소에서 일인당 4장씩 입장권을 무료로 나눠 줬는데 1시간이 안 돼 동이 났다. 생전의 고인은 장례식 참석자들이 무료로 입장하게 하라고 당부했는데 벌써 재판매 사이트에서는 사겠다거나 팔겠다는 글들이 올라와 그 뜻을 거스르고 있다. 장례 행렬과 장례식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압둘라 요르단 국왕 등 각국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배우 빌리 크리스털 등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 미셸과 함께 딸 말리아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불참하겠다는 뜻을 유족들에게 전했다. 알리 가족의 대변인 밥 건넬은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와 알리의 부인인 로니를 위로했다고 밝혔다. 장례식이 끝난 뒤 고인의 관은 가족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루이빌의 케이브 힐 묘역에 안장된다. 한편 모든 장례 과정은 무하마드 알리 센터 홈페이지(www.alicenter.org)를 통해 생중계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링 위에서… 인종차별 맞서… ‘74년 인생’ 벌처럼 쏘고 하늘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링 위에서… 인종차별 맞서… ‘74년 인생’ 벌처럼 쏘고 하늘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이 오는 10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오후 2시 고인의 고향인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KFC 염! 센터’에서 거행된다. 알리 가족의 대변인 밥 건넬은 4일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취재진을 만나 가족끼리 비공개 장례식을 치른 뒤 어린 시절을 보낸 거리 등을 돌고서 공개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 스포츠캐스터 브라이언트 검블 등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챔피언 3회·타이틀방어 19회 알리는 지난 3일 밤 늦게 생명 보조장치로 연명해 오던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의료기관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건넬은 사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자연적 이유에 따른 패혈성 쇼크”라고 설명했다. 세 차례 세계 챔피언을 지내며 19차례 타이틀을 방어하는 등 20세기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그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며, 2014년 12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은퇴 후 파킨슨병 30여년간 투병 12세 때부터 아마추어 복서로 활동한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흑인이란 이유로 패스트푸드점 출입을 금지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리고 프로로 전향했다. 1964년 2월 WBA와 WBC 통합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누르고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캐시어스 클레이란 노예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개명했다. 1967년 베트남전 징집 통보를 받고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가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1970년 복귀해 이듬해 조 프레이저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했으나 1974년 조지 포먼을 캔버스에 눕히고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았다. 1981년 트레버 버빅에게 판정패하며 은퇴했을 때 통산 전적 56승(37KO) 5패였다. ●인종차별 반발 금메달 강에 버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성화 점화 후 남자농구 결승전 하프타임 때 36년 전 강물에 던져 버렸던 금메달을 다시 목에 걸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단순한 복싱 챔피언을 넘어 민권운동가, 링 위의 계관시인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보폭도 넓었고 거침이 없었다. 리스턴과의 대결 직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했고, “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해왔다”고 했으며,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가 “링 안에서는 챔피언, 링 밖에서는 영웅”이라고 갈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진 민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교류하면서 흑인의 자부심과 독립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고 흑인 무슬림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 활동에 대한 이견으로 맬컴과 결별했지만, 맬컴이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자 뒤늦게 자책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파킨슨병과 싸우면서도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를 맡아 평화의 메신저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12월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혐오 발언이 이어지자 “정치 지도자라면 마땅히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점잖게 꼬집기도 했다. ●흑인 독립의 아이콘·평화 메신저 스포츠 스타와 유명 정치인들도 앞다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는 “링 밖에서 더 위대했던 영웅”이라고 했고, 미국프로야구(MLB) 디트로이트의 투수 저스틴 벌랜더는 “영원한 안식을(RIP). 모두에게 영감을 주신 분”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트럼프조차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가 1998년 UNDP 친선대사로 활동한 점을 회고하면서 “그는 원칙과 매력, 재치와 우아함으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싸웠고 이를 통해 인류애를 고양시켰다”고 추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홀대에도 간 安·환대 받은 文… 봉하 ‘추모의 정치학’

    홀대에도 간 安·환대 받은 文… 봉하 ‘추모의 정치학’

    文 “친노라는 말로 그분을 현실정치로 끌어들이지 말라” 안희정 말없이 조용히 다녀가손학규·박원순은 불참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 대고….”(2015년 5월 23일 노건호씨 추도사)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도식은 분노로 얼룩졌다. ‘상주’ 노건호씨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공개 비판했고 비노(비노무현) 정치인들은 야유와 물세례를 받았다. 꼭 1년이 흐른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7주기 추도식에서 주최 측은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임을 시종 강조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핵심은 단합과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노건호씨는 아예 정치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추도식 후에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지도부가 동시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면담했다. 야권 화합을 다지겠다는 취지였다. 5·18민주화운동과 더불어 추도식 이상 정치적 함의를 지니는 이날 행사에서 잠룡들의 행보도 엇갈렸다. ‘노무현의 친구’로 불렸던 문재인 전 대표는 “총선에서 국민께서 만들어주신 소중한 희망을 키워 가려면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뜻을 따르는 분들이 손을 잡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친노’라는 말로 그분을 현실정치에 끌어들이지 말아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불펜투수론’으로 문 전 대표와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노무현의 적자(嫡子)’ 안희정 충남지사는 기자들이 따라붙자 “아 오늘은…”이라며 말을 아꼈다. 화합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향한 ‘냉기’도 여전했다. 노무현재단 측은 과격 대응 자제를 당부했고, 현장에는 ‘친노(친노무현) 일동’ 이름으로 ‘안철수 대표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도 걸렸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안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을 향해 “대권 욕심에 눈이 멀었다” “호남에 가서 아부나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개XX” 같은 욕설도 나왔다. 정계복귀 ‘군불때기’에 한창인 손학규 전 더민주 고문, 박원순 서울시장은 불참했다. 손 전 고문 측은 “정치복귀 행보가 빨라진다는 식의 반응이 나올 텐데 굳이 그럴 필요없다”고 말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광주 방문을 놓고 ‘대선행보 시동’ 운운하는 상황에서 ‘오버’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추도식에 참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2005년 열린우리당 입당을 권유했던 인연을 소개했다. 정 원내대표는 “생각을 같이했든 달리 했든, 큰 역사이고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김해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신익희 선생 60주기 추모식

    신익희 선생 60주기 추모식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 60주기 추모식에서 기념사업회 관계자가 신 선생의 영정 앞으로 나와 추도사를 읽고 있다. 기념사업회장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 신경식 대한민국 헌정회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신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하고 임정에서 법무총장, 외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연합뉴스
  •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 열려…한규호 서울신문 기자 등 18명 희생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 열려…한규호 서울신문 기자 등 18명 희생

    제39회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이 27일 오전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 주관으로 경기 파주시 문산읍 봉서리 통일공원 내 종군기자 추념비 앞에서 열렸다. 이날 정 회장은 추도사에서 “한국전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숭고한 기자 정신을 되새기며 그들이 보여준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김영준 경기북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해 한영섭 6·25종군기자동우회장, 이형균 기자협회 고문 등 원로 언론인들과 국방부, 파주시 관계관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 상황을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는 모두 18명(미국 10, 영국 4, 프랑스 2, 필리핀 1, 한국 1)이었다. 한국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한규호 서울신문 기자가 순직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보이는 유서 깊은 취재 현장에 세워진 이 추념비는 1977년 전국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 지원금으로 건립됐다. 파주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현장 스케치] 4.16 세월호 2주기 추모 행사 ‘기억식’

    [현장 스케치] 4.16 세월호 2주기 추모 행사 ‘기억식’

    “난 아직까지 언니 목소리가 들리고 모습이 아른거려. 내가 아파할 때면 괜찮다고 안아주던 언니 품이 그리워. 자고 있던 언니 마지막 모습보다 환하게 웃는 언니 모습만 가슴 속에 새길게.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더 열심히 싸우고 힘내자. 사랑해” 세월호 사고 2주기를 맞은 16일 오전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단원고 2학년 3반 故 박예슬 양의 동생 박예진 양이 언니에게 쓴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박예진 양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합동분향소를 찾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유족 등으로 구성된 ‘4·16 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유가족과 시민 등 4500여명(경찰추산 2500명)이 참석해 함께 아픔을 나눴다. 행사는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인과 각계 사회 인사들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전명선 위원장은 정치인들에게 “세월호 진상 조사가 조기 중단되지 않도록 막아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이어 “진실을 밝힐 때까지 끝까지 잊지 않고, 아이들의 희생이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만드는데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날 추모 공연은 안산 시립합창단이 부른 ‘내 영혼 바람 되어’를 시작으로 성우 김상현의 시낭송, 조관우의 ‘풍등’, 416가족합창단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잊지 않을게’ 등이 울려 퍼졌다. 행사가 끝난 뒤 유가족과 시민들은 분향소로 이동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며 추모했다. 일부 유가족은 아이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그간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국회 찾은 이철승 전 대표 운구행렬

    국회 찾은 이철승 전 대표 운구행렬

    정의화(오른쪽) 국회의장이 2일 오전 국회에 들른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의 운구행렬을 맞아 추도사를 한 뒤 고인의 영정에 묵념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고인에게 인사하는 정의화 국회의장

    [서울포토] 고인에게 인사하는 정의화 국회의장

    정의화 국회의장이 2일 오전 국회를 찾은 고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의 운구행렬을 맞아 추도사를 한 뒤 고인에게 인사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마지막 배웅… 신영복 교수 영결식

    마지막 배웅… 신영복 교수 영결식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엄수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을 찾은 추모객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 영결식은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추모객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영결식은 고인이 생전 즐겨 부르던 동요 ‘시냇물’을 추모객들이 함께 부르며 끝을 맺었다. 연합뉴스
  • 탈당 뒤 첫 만남… 文 “잘돼 갑니까” 安 “촉박하네요”

    탈당 뒤 첫 만남… 文 “잘돼 갑니까” 安 “촉박하네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30일 어색하게 조우했다.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식에 나란히 참석하면서다. 두 사람은 지난 13일 문 대표가 안 의원 자택을 찾아 탈당을 만류한 지 17일 만에 만났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추모식이 열린 창동성당의 대기실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나란히 자리에 앉았지만 2~3분간 침묵했다. 그러다 이인영 더민주 의원이 안 의원에게 “헤어스타일이…(바뀌었다)”라고 말을 건네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문 대표는 안 의원에게 “신당 작업은 잘돼 갑니까”라고 물으며 대화를 주도했고, 안 의원은 “시간이 촉박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들을 하고 있다. 아마 이제 연말연시(가) 다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문 대표도 “그래요. 총선 시기에 맞추려고 하면 시간이 별로 없죠”라고 대꾸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선거구 획정’, ‘가톨릭 종교’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함께한 시간도 5분여에 불과했다. 미사장에 들어가서도 두 사람은 멀찍이 거리를 두고 각각 다른 열에 앉았다. 문 대표는 이날 추도사에서 안 의원을 염두에 둔 듯 “우리는 이기기 위해 더 혁신하고 더 단합해서 큰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미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안 의원과) 길게 보면 같이 가야 할 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이미 원칙들을 여러 차례 밝혔다”며 함께할 뜻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이렇게 추운 날 가시나… ” 참았던 울음 터뜨리며 작별 인사

    26일 오전 10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예배. 고인의 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말 한마디만 하고 가,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번만 하고 가, 우리 오빠 보고 싶어.”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과 측근들은 침통한 얼굴로 서로를 껴안았다.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울려 퍼지자 흐느낌이 예배당을 메웠다. 가족 인사를 하는 현철씨도 여러 차례 목이 메었다. 현철씨는 “왜 이렇게 추운 날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시려고 하시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민주화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 아버님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란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쇠약한 부인 손명순 여사는 매서워진 날씨 탓에 예배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결식에 맞춰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국회로 이동했다. 휠체어를 탄 손 여사는 영결식 맨 앞줄 한가운데 앉아 남편과의 작별 의식을 치렀다. 그 오른쪽으로 장남 은철, 차남 현철씨, 1·2·3녀인 혜영, 혜경, 혜숙씨가 나란히 앉았다. 손 여사는 검은 코트로 몸을 감싸고 흰 십자 무늬가 있는 검은 담요를 무릎에 덮었다. 고인에 대한 묵념 순서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손 여사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사, 추도사가 낭독되는 동안 유족과 측근들은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인의 생전 영상이 나오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마침내 왔습니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울려 퍼지자 현철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열했다. 손 여사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헌화, 분향에서 손 여사는 휠체어에 탄 채 흰 국화를 영전에 바쳤고 현철·은철씨, 나머지 가족들이 뒤를 이었다. .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뜯어고치고 싶어 했던, 그럼에도 여전히 고칠 게 많은 이 세상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원히 작별했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裝) 영결식이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거행됐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20분간 눈이 내리는 가운데 거행된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통합’과 ‘화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했다. 영결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 등 유가족은 물론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 증세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영결식 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배웅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건강 문제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며 “대통령님이 염원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영결식 후 운구 행렬은 고인이 46년간 살았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 들른 뒤 그곳에서 2㎞ 떨어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종착(終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든 이날 서울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시민들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쳤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黃 “나라 위해 헌신한 발자취 국민은 잊지 않을 것” 金 “민주주의·민권 위해 모든 것 바치신 희생의 삶”

    黃 “나라 위해 헌신한 발자취 국민은 잊지 않을 것” 金 “민주주의·민권 위해 모든 것 바치신 희생의 삶”

    황교안 국무총리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 조사(弔辭)에서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동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대도무문의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의 확고한 신념으로 민주화의 길을 연 의회민주주의의 산증인”이라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날 장례위원장을 맡은 황 총리는 “우리는 오늘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산이신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면서 “오랜 세월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한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 가눌 길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황 총리는 “금융실명제 도입과 군 사조직 개혁, 공직자 재산공개 등 국가개혁은 깨끗하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면서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추진하는 데도 많은 힘을 기울이셨다”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열거했다. 이어 “대통령님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노력하셨다”면서 “이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오신 대통령님의 발자취를 우리 국민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울먹이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전 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면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민주헌정사 그 자체였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자유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업적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체제의 누적된 폐해를 혁파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공고히 한 역사적 결단”이었다고 추어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 많으셨다”면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하던 하나님의 품 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라며 끝을 맺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떠난 YS 통합정신 후세대가 이어받아야

    김영삼(YS) 전 대통령 영결식이 어제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 등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 대사를 포함한 해외 조문 사절까지 1만여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 YS의 운구는 광화문과 세종로를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하면서 대통령과 9선 의원으로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삶의 궤적을 반추했다. 추도사를 맡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온몸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김 전 대통령의 삶을 추모했고 국가장인 만큼 김 전 대통령의 신앙인 개신교 의식을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 원불교까지 4대 종교의식을 통해 넋을 기렸다. YS의 육신은 어제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안장됐지만 그의 철학과 정신은 후세들의 가슴속에 오롯이 살아남았다. 그가 2년 전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남긴 ‘통합과 화합’이란 유지가 대표적이다. 첫 국가장으로 거행된 YS 장례식의 장례위원회도 지역과 이념을 초월한 ‘통합형 장례위원회’였다. 장례위원 2222명의 명단에는 YS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물론 YS가 감옥에 보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총망라돼 있다. 분열과 갈등으로 찢긴 현 정치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통합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인의 뜻을 되새겨 새로운 화합의 시대를 여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의 책임이다. 이를 위해서는 3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양김(兩)시대’의 종언 이후 지역주의와 계파주의로 대표되는 후진적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정치권은 새로운 시대에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정치 시스템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의 지지 속에서 실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다.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기 침체가 가중되면서 중산층들이 무너지고 있고 서민층의 생활고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는 물론 첨예한 이념 대립의 악순환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국가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들은 여야를 떠나 국력을 총결집해도 해결하기에 벅찬 과제들이다. 당장 19대 정기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비롯해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은 물론 내년도 국가예산 심의 등 현안들이 쌓여 있다. 지역과 이념의 대립으로 정치 자체가 갈등과 반목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YS의 유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각성과 쇄신이 전제가 돼야 한다. 여야는 우선 경쟁적 협력 관계와 대화와 타협, 그리고 정책 경쟁이 가능한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힘으로 상대방을 밀어붙여 굴복시키는 ‘패권의 정치’가 아니라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정치가 절실하다. 화합과 통합은 국민적 염원이자 시대적 요구다. 동서의 지역 갈등과 좌우 이념의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고 상생과 공존의 길을 여는 길이기도 하다. 동과 서, 좌우를 아우르는 사회 통합과,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 고인이 남긴 뜻이자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
  • 영원한 의회주의자 ‘마지막 등원’… 고인의 육성 들리자 오열

    영원한 의회주의자 ‘마지막 등원’… 고인의 육성 들리자 오열

    유신 독재와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영원한 의회주의자이자 9선 의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국회를 찾은 26일, 오전부터 흩날리던 진눈깨비는 오후 2시쯤부터 함박눈으로 변했다. 체감 기온 영화 5도의 추위와 하늘을 뒤덮은 눈보라는 고인과 결코 ‘영결’(永訣·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헤어짐)하고 싶지 않을 유족들은 물론 장례위원, 주한 외교단과 조문 사절,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마음을 더 비통하게 만들었다. 6·25전쟁 직전인 1950년 장택상(1893~1969)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거산’(巨山·김 전 대통령의 호)의 정치 역정이 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까지 여야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듯 세대와 정파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추모객들이 영결식장을 찾았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맞수’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전현직 의원들도 대거 참석하는 등 고인의 유훈대로 화합과 통합의 장을 연출했다. ●이명박 前대통령·권양숙 여사 참석 전직 대통령 중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차가운 날씨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이 대신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불참했다. 주최 측은 1만여석을 마련했지만 갑작스러운 한파 탓에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오후 1시 50분쯤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유해를 모신 검은색 링컨 리무진 운구차가 국회로 들어서자 식장에 모여 있던 내빈과 추모객이 기립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와 은철·현철씨, 혜영·혜경·혜숙씨 등 직계가족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광석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상도동계 인사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운구를 맞이했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개식 선언과 함께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약력 보고가 이어졌다. 정 장관은 “헌정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최다선 국회의원으로 의원직 제명과 2차례에 걸친 가택연금을 당하셨다”고 설명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와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계속됐다. 고인과 가족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추모 의식이 끝난 뒤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기록 영상물이 상영되면서 숙연함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박정희 독재 정권과 맞서며 일갈한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85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경찰 앞에서 “날 감금할 수는 있어. 이런 식으로 힘으로 막을 순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은, 마음은 전두환이 빼앗지는 못해”라는 고인의 육성이 흘러나오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상영된 기록영상물 유족이 직접 골라 반면 대통령 재직 시절 어린이날 행사 중 여자 어린이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학실히’(확실히)라고 하신 걸 많이 봤는데 정확하게 발음해 주세요”라는 짓궂은 부탁을 했음에도 김 전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학실히”라고 응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을 땐 영결식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김 전 대통령의 흑백사진을 배경으로 “누구나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가 신한국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라는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가 나왔다. 영상에 담긴 자료 화면은 유족들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휠체어를 탄 손 여사가 석석원 전 청와대 비서관의 도움을 받아 헌화 및 분향에 나섰고 차례로 직계 유족들이 한 명씩 단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 권양숙 여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 정의화 국회의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총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의회 지도자들까지 차례로 헌화와 묵념을 했다. 마지막을 장식한 건 김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가곡 ‘청산에 살리라’였다.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바리톤)와 청소년합창단이 함께 불렀다.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에 따라 3군(육해공군) 통합 조총대가 21발의 조총을 쏘아 올리고 조악 연주가 울려 퍼지면서 1시간 20분의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김 전 대통령도 30여년을 함께한, 분신과도 같던 국회와 ‘영결’했다. 영결식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이들은 물론 한때 경쟁하거나 대립했던 인사들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새정치연합 권노갑 상임고문, 김옥두·이훈평 전 의원,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이사장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부터 함께 빈소를 지킨 데 이어 영결식과 동작동 현충원에서 진행된 안장식까지 동행했다. 이 밖에 전남 강진 흙집에서 칩거하다가 부음을 접하고 서울로 올라와 줄곧 빈소를 지켰던 손학규 새정치연합 전 상임고문과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눈에 띄었다. ●與 “업적 재평가” 野 “민주주의 사수” 김수한 의장은 영결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거산은 가셨지만 그 뜻은 앞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후배들이 (김 전 대통령의) 개혁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개혁 업적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당신께서 평생 싸워 이룬 민주주의가 다시 흔들리고 역사가 거꾸로 가는 상황에서 떠나보내게 되니 한없이 착잡하다. 이젠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YS ‘차분한 영결식’… 노제·추모제 생략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은 26일 오후 1시 25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2시에 열리는 영결식을 마친 뒤 46년간 보금자리를 틀었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私邸)를 한 바퀴 둘러본다. 행정자치부는 25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 계획을 밝혔다. 영결식엔 1만여명이 초대됐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영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경복궁~광화문~세종대로~충정로~공덕오거리~서강대교를 거쳐 국회 영결식장에 도착한다. 영구차가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며 입장하면 조악대 연주와 함께 영결식에 들어간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는다. 집행위원장인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고인 약력 보고,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4대 종단이 참여하는 종교의식은 고인과 유족의 종교인 개신교에 이어 불교, 천주교, 원불교 순으로 엄수된다. 고인과 가까웠던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가 개신교 의식을 치른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를 상영하며 차분히 넋을 기린다. 노제와 추모제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영결식을 마친 영구차는 상도동 사저에서 15분간 머문 뒤 인근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서행하며 고인의 넋을 다시 한 번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4시 안장식이 열리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3묘역 우측 능선에 도착해 헌화 및 분향, 하관, 예배, 허토(許土·장례를 치를 때 봉분하기에 앞서 상주들이 흙 한줌씩을 관 위에 뿌리는 의식)로 국가장 절차를 모두 마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김무성의 ‘상주 정치’… YS 정치적 자산 물려받나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김무성의 ‘상주 정치’… YS 정치적 자산 물려받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상도동계의 막내’였던 새누리당 김무성(얼굴) 대표가 상주 역할을 자처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대표가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친박근혜)계와의 공천권 갈등을 당분간 잠재우면서 YS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경남(PK)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분은 오로지 애국과 민생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을 제시해 주었다”고 했다. 또한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사에서 “위대한 개혁의 아이콘으로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이분법적 사고로 표현할 수 없었던 큰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요한 회의 일정 외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에서 상주를 자처하고 있다.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이 서로 상주 역할을 자임하면서 친박계와의 공천권 갈등이 소강 국면에 들어선 것은 김 대표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 내 공천특별기구 구성과 조기 공천심사위원회 출범 여부를 놓고 계파 갈등 양상에 직면했던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그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며 통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PK 지역에서 YS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는 후계자로서의 상징성을 얻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김 대표로서는 최근 ‘대구·경북(TK) 물갈이론’이 PK 지역까지 번진 것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YS의 서거로 PK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지난 22일 빈소를 단체로 방문한 부산 지역 의원들과 대화하던 중 TK 물갈이론이 화제에 오르자 “물갈이, 물갈이하는 사람들이 물갈이 된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PK 지역에서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해 ‘빈소 정치’를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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