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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9)한국의 茶人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9)한국의 茶人들

    섬돌을 이고 있는 뜰에는 흰 서리가 가득하게 내리고 새벽빛은 쌀쌀하다. 누군가 유천의 수곽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문을 여니 초당 평상마루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먼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생에 대한 번뇌가 가득했다. 오직 답답하면 남도의 땅끝 산에 댓바람 새벽부터 오르겠는가. 그 중년의 남자는 마음에 병을 가득 안고 있었다. 나는 그 중년의 남자에게 한잔의 차를 권했다. 물음이 필요없었다. 차를 마시는 자우홍련사 툇마루에는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낭자했다. 한잔의 차를 마신 그 중년인은 가볍게 합장을 하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태산만한 삶의 무게가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먹다만 차가 찻잔에 남아 있었다. 그는 한잔의 차도 온전히 마실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중년인의 모습은 한치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왠지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다부’(茶賦)에서는 차의 품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한 사발을 마시니 마른 창자가 깨끗이 씻어지고, 두 사발을 마시니 신선이 되는 듯 하고 세 사발을 마시니 병골이 깨어나고 두풍이 낫고, 네 사발을 마시니 근심과 울분이 사라지고, 다섯 사발을 마시니 색마가 놀라 달아나고 탐식하는 마음이 사그라지며, 여섯 사발을 마시니 온 세상에 해와 달이 비치고 만물이 제 모습대로 살아 있음을 알겠고, 일곱 사발을 마시니 맑은 바람이 울울이 옷깃에서 일어나며 봉래산의 울창한 숲이 아주 가까이 다다른 듯하다. ”차에 대한 여섯가지의 덕도 함께 적고 있다. 오래 살고 싶거나, 병을 멎게 하고 싶거나, 맑은 기운을 지니고 싶거나,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싶거나, 신령스러움을 몸에 지니고 싶거나, 예를 갖추려고 할때는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차에 대한 ‘품성론’은 마치 차가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신비한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차의 품성론의 핵심은 ‘쉼’이다.‘쉼’이란 거칠게 헐떡이며 매시간과 매일을 살아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자전거와 비교된다. 우리는 자전거가 멈추면 넘어지듯 우리의 삶이 쉬어가게 되면 경쟁력에서 탈락하는 공포를 느낀다.‘차’는 이같은 쉼 없는 흐름을 쉬어가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대표적인 차인중 한 사람인 고운 최치원, 설잠 김시습,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은 거칠게 변화하며 탄탄하게 옥죄어오는 시대적 과제와 현실속에서 한발짝 물러나 자신을 차와 함께 가다듬었다. 차와 함께 현재의 삶을 쉬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 쉼을 통해 자신을 보고 시대현실을 관통해냈다. 그리고 역사와 시대현실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그런 점에서 ‘차’는 바로 쉼을 통해 마음과 몸을 정화해 새로운 생의 활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차 도구를 준비하고 물을 준비하고 차를 우려내는 행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로 끝나서는 안된다. 마음과 육신의 쉼을 통해 자신의 근원을 바라보는 내적행위로 귀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속에 명멸한 대부분의 차인들은 바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존재하며 활발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 헌신했다. 그런 점에서 차는 하나의 고고한 정신문화적인 생활문화양식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탄탄하게 연동하는 살아있는 삶으로서 우리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인들은 알아야 한다. 역사 속의 차인 중 맨 첫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원효 스님이다. 차인으로서의 원효 스님은 고려 때 이규보가 쓴 ‘남행월일기’라는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다.“원효방에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다. 사포는 차를 달여 원효스님에게 드리려 했으나 샘물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때 바위 틈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났는데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늘 차를 달였다 한다. 원효방은 넓이가 2.4㎡쯤 되는데 한 늙은 중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해어진 누비옷에 도를 닦는 모습이 고고했다. 방 한가운데를 막아 내실과 외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의 초상화가 있고 외실에는 병 하나, 신 한 켤레, 찻잔과 불경을 놓은 책상만이 있을 뿐 불 때는 도구도 없고 시자도 없다.” 신라시대 차인들은 또 있다. 설총과 보천, 효명태자, 충담사, 고운 최치원이다. 설총은 ‘차와 술로서 정신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했고, 화랑도의 지도자였던 보천과 효명태자는 매일 오대산 문수보살에게 차를 달여 공양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안민가를 지었던 충담사는 왕에게 차를 달여 바쳤고, 최치원은 그의 저서 ‘계원필경´과 쌍계사진감선사비명에 “차로써 갈증을 풀 수 있고 근심을 잊게 되었다.”고 차의 가르침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차인들이 많았다. 임춘, 김극기, 이규보, 진각국사 혜심, 원감국사 충지, 이제현, 이색, 정몽주, 길재 등이 차를 마시며 내면을 가꾸었다. 고려시대 삼은으로 불리는 이색은 차를 몹시 좋아하여 깊은 산속 골짜기 벼랑에서 떨어지는 샘물가에서 부싯돌을 쳐서 차를 달여 마셨다 한다. 그는 차를 마시며 “차를 끓여 마시니 편견이 없어지고 마음이 밝고 맑아 생각에 그릇됨이 없다. 영아차의 맛은 그 자체가 참되다. 가루차를 점다하여 마시니 차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삿된 기운을 모두 없애준다.”고 차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이색은 차생활을 통해 시대적 현실 속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을 발견하고 다짐했다고 볼 수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차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비록 문화적으로 많은 쇠퇴를 겪어야 했지만 임진왜란 등 각종 전란으로 조선시대 사회가 피폐해지기 전까지는 사대부들에 의해 차는 크게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가장 두드러진 차인중 한사람은 바로 점필재 김종직이다.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백성들의 차세를 덜어주기 위해 관영 차밭을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당시 차로 인해 수탈받는 민중들의 아픔을 이렇게 적고 있다.“상공할 차가 이 고을에서는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백성들에게 차세를 거두니 백성들은 돈을 가지고 전라도에 가서 차를 샀다. 대개 쌀 한 말로 차 한 홉을 얻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이러한 폐단을 알고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고 관가에서 스스로 구하여 바쳤다. 삼국지를 읽다가 신라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차씨를 얻어다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아아 이 고을도 산 아래 있으니 어찌 신라 때의 유종이 없겠는가. 그리하여 노인들을 만날 때 마다 널리 물어보았더니 과연 엄천사 북쪽의 대숲 속에서 몇 그루의 차나무를 얻게 되어 나는 매우 기뻤다. 그래서 나는 그땅에 차밭을 가꾸도록 하고 그 부근의 백성땅을 사들여 관청 땅으로 보상을 하였다. 그뒤 몇해만에 제법 번식되어 차밭이 고루 퍼지게 되었으니 4∼5년만 있으면 상공할 액수를 채우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현실 속 차인의 태도는 어디에 있는지를 점필재 김종직은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차가 깊은 산속 정자나 도심 속 화려한 차실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에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인 것이다. 조선시대 차인들로는 설잠 김시습, 한재 이목, 서산대사, 초의, 추사, 다산 등이 존재한다. 근현대 차인들도 존재한다. 근현대 차인들은 서양의 커피문화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 박토에서 차문화의 싹을 틔운 개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차서들을 통해 다관을 복원하고 차밭을 찾아 차를 덖고 그리고 다법을 정립하기 위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해왔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 오늘날 한국차의 문화가 싹터 있는 것이다. 근현대 차인들로 송광사의 다송자, 응송 스님, 효당 최범술, 명원 김미희, 석불 정기호, 홍종인, 청남 오제봉, 금당 최규용, 청사 안광석, 의재 허백련, 토우 김종희 선생들이 주역이다. 물론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차인들이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힘써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문화란 근본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효당 최범술과 의재 허백련, 금당 최규용 선생의 차 사랑은 매우 남달랐다. 효당 최범술은 진주 다솔사에 주석하며 지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많은 차인들을 양성해냈다. 효당 선생은 ‘한국의 다도´라는 책을 집필, 초의선사 이후 한국다도의 맥을 복원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다소사에 차밭을 일궈 ‘반야차’를 직접 제다해 차인들에게 보급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의재 허백련도 빼놓을 수 없는 차인이다. 남종화의 맥을 이은 의재 선생은 무등산에서 직접 차를 재배해 ‘춘설’이라는 일품차를 생산해냈다. 효당과 의재는 우리나라 차인의 동서쌍벽이라 칭할 정도로 근대 차문화의 산파역을 해냈다. 차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검박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나 현재 모두 우리의 삶은 그 현상만 달라졌지 그 근본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니 현재니 하는 시간적인 흐름은 현상을 바꿀 뿐이지 그 근원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인에게 차는 늘 현실이요, 역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지암 암주 ■ 한재 이목의 ‘다부’ 얼마전 산중을 떠나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한국전통문화와 한국전통차 문화운동을 했던 한 다인이 ‘한국발효차연구소’를 인사동에 개원했기 때문이다. ‘한국발효차연구소’가 인사동 한 모퉁이에 아담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우리 민중들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했던 발효차에 대한 연구와 복원을 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는 차가운 겨울의 매운 바람을 훈훈하게 녹이는 화로 같은 것이었다. 한국차는 이렇게 선각자적이고 개척정신을 가진 차인들에 의해 오롯이 그 전통이 보존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재 이목과 그가 남긴 ‘다부’(茶賦)가 그 주인공 중 하나다. 다부는 우리나라의 차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하다. 육우의 ‘다경’과 노동의 차노래 ‘칠완다가’를 참고해 지은 차 노래가 바로 ‘다부’이다. 한재는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사람은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그 성미에 따라 다르나니 이태백이 달을 좋아하고 유령은 술을 좋아하듯 나는 차를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하다가 차의 성질을 알고부터는 마음속으로 좋아하게 됐다. 차는 세금을 내고 들여오니 이 일이 좋단 말인가 하고 사람들이 말했다. 이에 내가 대답하기를 이 일은 하늘이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이 아니며 차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니다. 나는 겨를이 없어 이에 미치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하였다.” 480자로 된 ‘다부’는 우리나라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다서(茶書)인 ‘다신전’(茶神傳)보다 350년 앞섰다. 저자인 한재 이목이 중국에서 직접 체험한 차 생활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차의 심오한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차를 일생동안 즐겨도 싫증 나지 않는 것은 그 고유의 성품 때문이다.”로 시작된 ‘다부’에는 ‘차 이름과 산지’‘차나무의 생육환경과 예찬’‘차 달여 마시기’‘일곱 잔의 차 효능’‘차의 다섯가지 공로’‘차의 여섯가지 공로’ 등을 열거하고 있다. ‘다부’에 실린 몇가지 내용들을 살펴보자. 먼저 차의 직접적인 효과 5가지를 말하고 있다.“책을 볼 때 갈증을 없애준다. 울분을 풀어준다. 손님과 주인의 정을 화합하게 한다. 뱃속 기생충으로 인한 고통을 없앤다. 취한 술을 깨게 한다.”차를 마셔 신체와 정신에 이로운 점 6가지도 밝히고 있다.“오래 살게 한다. 병을 낫게 한다. 기운을 맑게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신선과 같게 한다. 예의롭게 한다.”‘다신전’이나 ‘동다송’과 같은 명저인 ‘다부’는 조선을 지배하던 유학자가 쓴 유일한 창작다서다. 노장사상, 특히 양생론과 깊은 연관을 가진 이책의 특징은 행다(行茶), 조다(造茶) 등 실제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사상적인 측면을 더 강조했다는 점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음다기풍과 그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노작이기도 하다.
  • [부산 ‘戀街’/바닷가] 해운대·광안리·태종대로 오이소

    [부산 ‘戀街’/바닷가] 해운대·광안리·태종대로 오이소

    부산은 서울에 이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다. 사람도 많고 땅도 넓다. 효율적으로 다니지 않으면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고 몸만 피곤하기 십상이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부산시 추천 코스를 소개한다. 시간이 반나절밖에 없다면 용두산공원을 시작으로 자갈치시장-태종대-어린이대공원-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기를 권한다. 그러나 최소한 하루 이틀 정도는 다녀야 부산의 맛을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하루 코스는 범어사에서 출발해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을 지나 복천박물관-충렬사-수영공원-UN기념공원-용두산공원을 거쳐 자갈치시장에서 끝난다. 사적보다는 놀거리·볼거리를 즐기는 관광객은 아시아드주경기장-해운대해수욕장-달맞이공원-벡스코-이기대공원-UN기념공원-용두산공원-자갈치시장을 둘러보면 된다. 을숙도와 자갈치시장, 태종대, 초량상해거리, 서면 등을 도는 코스도 있다. 이틀 코스는 더 다양하다. 태종대에서 시작해 자갈치시장과 PIFF광장, 국제시장을 거쳐 용두산공원에서 1박을 한다. 다음날에는 민주공원에서 시작, 어린이대공원-아시아드주경기장-충렬사-복천박물관-광안리해수욕장-UN기념공원-부산박물관을 들르면 된다. 3,4일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부산 이틀 코스에 경남 통도사, 울산 석남사, 경남 부곡온천, 경북 경주, 경남 창녕 등을 함께 다니면 훌륭한 남도 여행이 된다. 부산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부산은 항구다. 이 명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차량과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심보다는 해안가다. 넓은 백사장과 호텔, 술집 등 유흥가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해운대. 비릿한 바다 냄새와 횟집들이 셀 수 없이 들어서 있는 광안리. 그리고 기암괴석의 천국 태종대. 이곳을 들르지 않고서는 항도(港都) 부산에 왔다고 말할 수 없다. ●설명이 필요없는 피서 1번지 해운대 해운대구 중동, 좌동, 우동 일대의 대규모 유원지다. 너무 유명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승지다. 신라 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해인사로 가던 길에 들렀다가 절경에 반해 자신의 호 해운을 따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부터 행락지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시대 때 휴양관광지로 개발됐다. 타원형의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은 길이만 1.6㎞로 국내 최대 규모다. 동백섬, 해운대온천과 달맞이고개 등이 근처에 있다. 각종 호텔과 콘도미니엄 등 숙박은 물론 휴양시설이 완비돼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는 카지노도 즐길 수 있다. 국제적인 휴양지답게 축제도 끊이지 않는다.1월에는 연날리기와 북극곰 대회를 비롯해 6월 모래작품전,7월 해수욕,8월 해변걷기와 비치발리볼 대회,10월 철인3종 경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는 축제의 백미다. 국내외에서 몰려든 영화 팬들이 남포동과 해운대를 가득 메운다.APEC의 현장인 벡스코도 근처에 있다. 먹을거리 또한 풍성하다. 가장 대표적인 식당은 해운대구청 인근의 금수복국(051-742-3600). 숙취에 좋은 콩나물과 미나리가 복어와 함께 뚝배기 한 가득 나온다. 해장에는 복국에 따라갈 음식이 없다. 맛 자체도 워낙 뛰어나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장기 여행자도 많다. 매운탕보다는 맑고 담백한 지리가 낫다. 냉동복국은 8000원, 황복국은 2만원. 원조할매국밥(051-746-0387)도 지나칠 수 없다. 해운대에서만 40년 가까이 이어왔다. 얼큰한 쇠고기국밥과 깔끔하고 담백한 선지국밥, 따로국밥이 이 집의 모든 메뉴다. 그러나 빼어난 맛과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란다. 국밥 2500원. 리베라호텔 뒤편에 있다. 이밖에 로드비치호텔 근처 서울집(051-742-6245)이나 그랜드호텔 근처 동백섬횟집(051-741-3888)도 고등어구이와 회로 일가를 이뤘다. ●“회 하면 광안리지예∼” 근처 금련산에서 내려온 질 좋은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광안리 해수욕장은 해운대, 송정 등과 함께 부산의 대표 피서지로 손꼽힌다. 이곳의 명물은 광안대교.2003년 1월에 개통됐다. 길이만 7420m다. 웅장함과 미려함을 함께 갖추고 있어 개장하자마자 부산의 명물이 됐다. 이 곳에서 회를 안 먹으면 광안리에 왔다고 말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민락동 회센터가 가장 유명하다. 회센터에서는 직접 횟감을 구입한 뒤 요리를 해 주는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긴다.1인당 2000∼3000원만 내면 회를 떠 주는 것은 물론 해물탕도 끓여준다.1인당 2만원 안쪽이면 충분히 먹는다. 광안리 백사장을 내려다보며 먹는 운치도 싱싱한 맛의 회 못지않게 감칠난다. 광안대교를 좀더 가까이서 보면서 회를 먹고 싶다면 부산횟집(051-753-8881)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의 회는 유난히 쫀득쫀득하기로 유명하다. 비결은 ‘공기 숙성’. 회를 뜬 뒤 1시간 남짓 냉장고에 놔 두면 회 표면의 물기가 날아가면서 훨씬 쫄깃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문어, 멍게 등 함께 나오는 음식도 맛깔나다. 모둠회가 1인당 2만∼2만5000원으로 가격도 부담스러운 편이 아니다. 민락동 회센터에서 바닷가 쪽으로 30m 정도 더 들어가면 된다. 민락동 회센터 맞은 편 새벽집(051-753-5821)은 부산에서 호남식 콩나물국밥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전남 담양산 간장으로 간을 낸 국밥맛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싱싱한 콩나물과 파, 그리고 생달걀이 구미를 돋운다. 서비스로 나오는 두부도 맛있다. 민락동 회센터 맞은편에 있다. ●기암괴석의 향연 태종대 부산 해안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태종대다. 해발 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암괴석이 층층이 솟아있는 기이한 절벽이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깎아내린 듯 아슬아슬한 절벽이 한번 보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원시 그대로의 태종대를 기대하며 다시 방문한 관광객은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방문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바위를 깎아 평평한 나무 계단이 설치됐다. 절벽 중간중간에 전망대, 카페 등 건물도 지어놓았다. 걷기 편하고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일부러 조성한 공원 느낌이 난다. 색색의 지층, 공룡 발자국 등 한반도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절벽에서 보이는 지층은 어릴 적 색깔 섞인 찰흙으로 빚던 모형처럼 색이 또렷하다. 유적을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있어 미리 공부하지 않고 찾아가도 쉽게 익힐 수 있다. 다만 분별없이 써 놓은 낙서들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며칠 철수가 다녀가다’ 유의 글씨를 페인트나 매직, 수정액 등으로 큼지막하게 써놓은 자국이 곳곳에 보인다. 추억은 마음 속에 담아두고 흔적은 일기장에나 남길 것. 동절기에는 오후 8시까지만 개방한다. 부산 이두걸 서재희기자 douzirl@seoul.co.kr
  •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11월 사색여행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11월 사색여행

    울긋불긋한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국토를 아름답게 수놓는 지금이야말로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때다. 가족과 함께 낙엽을 밟으며,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늦가을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11월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 경남 함양과 전남 고흥을 비롯해 국화 축제가 한창인 전북 고창,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 대전 등 늦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 4곳을 소개한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1) 단풍 혹은 낙엽(경남 함양) 경남 함양은 산세가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산세가 좋으니 당연히 계곡도 아름다워 형형색색 단풍에 흠뻑 젖어들게 한다. 흩날리는 낙엽이 장관이다.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함양읍내의 천연기념물 상림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으로 갈참나무, 느릅나무 등 120여종의 수종이 자라고 있다.1100여년 전 신라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인공 연못에는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살고 있다. 맨발건강지압로와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등도 갖춰져 있다. 상림 중간 도로변엔 역사인물공원도 꾸몄다. 지리산 능선에 이마를 얹고 사는 마천면에는 칠선계곡과 용추폭포, 용추자연휴양림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함양군청 문화관광과 (055)960-5555. (2) 새콤한 유자향(전남 고흥) 남녘끝 고흥 반도는 11월이면 잘 익은 유자향이 가득하다. 고흥에서 나는 유자는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 가는 곳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노란 유자 열매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새콤한 향내가 코끝을 간질인다. 팔영산의 붉디붉은 단풍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팔연산 정상에 서면 다도해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서녘을 향해 기울어가는 해넘이는 한해를 마감하는 회한에 눈물짓게 한다. 여전히 오지로 남아 있는 용암∼남열리로 이어지는 해안길에서 만나는 일출과 고흥을 빠져 나올 때 만나는 중산리의 핏빛 낙조는 아무리 보아도 신비롭다. 고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30-5224. (3) 국화꽃 향기(전북 고창 국화축제) ‘2005 고창국화축제’가 열리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일대 5만평, 대산면 칠거리 2만평이 노란 국화꽃으로 뒤덮였다. 축제에 가면 변산반도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가을 꽃의 상징인 국화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다. 국화축제는 이 고장 출신 미당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인 ‘국화옆에서’를 주제로 만든 지역 축제로 지난 3일 개막돼 27일까지 열린다.12일 오후 3시에는 시문학관 특설무대에서 라디오 공개방송이 진행되며,13일에는 청소년 어울마당이 펼쳐진다. 선운리 일대에는 폐교를 개조한 미당시문학관과 미당생가, 미당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인근에 선운사와 미당시비, 고인돌유적지, 동학 기포지, 모양성, 동리 신재효 고택 등을 돌아볼 수 있다.www. 고창국화축제.com,(063)561-0151. (4) 가을하늘을 날아볼까(대전 열기구축제) ‘하늘로, 세계로, 미래로’를 주제로 ‘2005 대전 국제열기구축제’가 13일까지 대전 엑스포과학공원과 갑천 둔치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에는 일본과 미국, 헝가리 등 해외 13개국 30개팀을 포함, 국내외 79개팀 210여명이 참가해 화려한 공중쇼를 연출한다. 축제기간중 국제 열기구선수권대회, 국제 모터파라선수권대회, 전국 패러글라이딩 시범대회, 초경량 비행기 시범대회 등이 열린다. 또 항공·과학·전통 등 40여종의 체험행사, 각종 축하공연, 사이언스 매직쇼 등이 마련된다.www.dibf.or.kr,(042)866-5122.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7) ‘고구려비기’ 에서 만난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7) ‘고구려비기’ 에서 만난 ‘정감록’

    ‘정감록’의 일부인 ‘감결’에는 역대 왕조의 수명을 논한 대목이 있다.“곤륜산의 내맥(來脈)이 백두산에 이르고, 그 원기가 평양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은 이미 천년의 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으로 옮겨졌다. 송악은 오백 년 도읍할 땅이나, 요승(妖僧)과 궁녀가 난을 꾸미는 바람에 지기(地氣)가 쇠하고 천운이 막혀 운은 다시 한양으로 옮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읍은 평양 천년, 개성(송악) 오백년을 거쳐 한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정감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구절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 한양은 조선의 수도, 개성은 고려 때 도읍지였다. 고려 이전의 도읍이라면 당연히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가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감결’엔 경주가 빠져 있다. 그 대신 평양이 맨 먼저 언급돼 있다. 그것도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곤륜산의 정기가 백두산을 거쳐 평양에 이르러 지기가 더욱 왕성해진 형상이라 했다. ●술사들에겐 고구려가 중요했다 범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조선 후기 전국에 ‘감결’따위의 ‘정감록’을 유행시킨 술사들은 왜 평양을 중시했는가? 술사들의 역사인식이 관계되는 부분이다. 나는 위에 인용한 몇 줄의 간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조선 후기 술사들의 정신적 계보를 추적해보려 한다. 그들에겐 고구려가 신라보다 중요했다. 그들은 한나라 이후 역대 중국 왕조와 자웅을 겨루던 고구려의 기상을 그리워했다. 술사들은 당나라라고 하는 외세를 불러들여 갖은 술수와 모략으로 고구려를 거꾸러뜨린 신라가 도무지 비위에 맞지 않았다.‘정감록’을 퍼뜨린 술사들이 대체로 함경도, 평안도 및 황해도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고구려에 대해 유별난 애착을 가졌던 이유를 이해 못할 것은 없다. 더욱이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이기도 했다. 단군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의 터를 잡았다는 곳, 동방에 중국의 유교문명을 도입했다는 기자가 뒤를 이었다는 곳도 역시 평양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기자가 평양에서 실시했다고 하는 정전제(井田制·토지를 아홉으로 쪼개 가운데 한 개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공동경작하고 나머지는 농부들이 공평하게 나눠 경작한다는 제도)의 유적이 발견되었단 말도 있었다. 술사들은 그런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같은 고대국가라 해도 한강 이남에 세워진 삼한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거기서 갈라져 나온 백제와 신라와 가야의 역사도 상관없었다. 훗날 삼국을 통일한 것은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였지만 신라는 그들에게 무의미한 나라였다. 술사들이 보기에 신라란 국가는 그저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를 이어주는 단순한 이음매에 불과했다. 역사상 존재 의미가 있는 나라는 고조선, 고구려, 고려 및 조선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선 조선도 불필요한 나라였다. 조선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일 때만 논의 대상에 가까스로 포함되었다. ●미래는 다시 개성의 시대 ‘감결’은 조선이 망하고 들어설 미래의 왕조도 차례로 언급하였다.“금강산으로 옮겨진 내맥(來脈)의 운이 태백산·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져 계룡산으로 들어가니, 정씨가 팔백년 도읍할 땅이로다. 그 후 원맥(元脈)이 가야산으로 들어가니, 조씨가 천년 도읍할 땅이로다. 전주는 범씨가 육백년 도읍할 땅이요, 송악으로 말하면 왕씨가 다시 일어나는 땅인데, 나머지는 자세하지 않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정감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강 다 아는 이야기다. 일단 왕기가 한양으로 옮은 다음 꽤 오랫동안 남부지방이 한국역사의 주무대가 된다는 예언이다. 충청도(계룡산), 경상도(가야산) 그리고 전라도(전주)가 한 번씩 돌아가며 권력을 쥐게 돼 있다고 했다. 집권기간은 경상도가 천 년으로 최장기간이고, 다음은 충청도(800년), 전라도(600년) 순이라 했다. 집권기간에 차이는 있으나 하삼도(下三道)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집권자가 배출된다는 말이 흥미롭다. 광복 후 역대 정권의 위세를 내 나름으로 어림짐작해 보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순이 들어맞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경상도에 비해 전라도 출신들의 정치적 비중은 잘해야 6할이 될까 말까 하다. 이런 해석을 근거로 ‘정감록’ 예언이 적중했다고 환호성을 지를 사람도 있겠지만, 한낱 우연이라고 생각해도 그만이다. ‘정감록’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는 미래에 관한 예언이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이 또다시 역사의 중심지로 떠오른다고 했다. 지금 한창 개발 중인 개성공단이며 개성관광을 지렛대 삼아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고, 통일한국의 수도는 서울과 평양의 중간 지점인 개성으로 낙착된다는 예언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가 사실상 한국사의 정통을 잇는다고 조선 후기의 술사들이 믿었다는 점이다. 서북 출신이었던 그들은 궁극적으로 고구려의 부활을 바랐다. ●고구려의 수명은 구백년이라는 예언 위에서 보았듯,‘정감록’은 어느 왕조의 수명은 몇 백 년이라는 식으로 미래를 예언했다. 우리 역사상 이런 방식의 예언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중국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신당서(新唐書)’를 보았더니 고구려에 그런 예언이 존재했다 한다. 그렇다면 ‘정감록’은 고구려의 예언서를 본떠 왕조의 수명을 몇 백 년이라고 논했다는 이야긴가? 고구려가 망하던 해, 고구려 보장왕 27년(688)으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당나라 군대는 한창 고구려와 전쟁 중이었다. 당나라의 고종 황제는 시어사(侍御史)인 가언충(賈言忠)을 전쟁터에 보내 전황을 점검하게 했다. 가언충은 이 전쟁이 당나라에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란 예언서를 인용해 당 고종을 안심시켰다. 예언서에 따르면, 고구려는 건국된 지 “구백 년이 못 되어 80대장이 있어 멸망하게 된다.”고 했다(‘중국정사조선전’,‘신당서’). 가언충이 인용한 예언의 내용이 무슨 뜻인가? 다행히도 ‘삼국사기’에는 이 무렵의 사정이 좀더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그 해 2월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이끄는 군대가 고구려의 부여성(農安 근처)을 함락시켰고, 전세는 고구려에 무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가언충은 자국의 승리를 확신한 나머지 당 고종 앞에서 문제의 예언을 이렇게 풀이했다고 전한다. “고구려는 한나라 때 건국됐으므로, 이제 약 구백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당나라의 원정군 사령관인 이적 장군의 나이가 바로 80입니다. 지금 고구려는 흉년이 연달아 드는 바람에 백성들이 서로 물건을 약탈해 팔아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이리와 여우가 도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두더지가 성문에 구멍을 뚫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인심은 무척 사납습니다.”(‘삼국사기’, 권 22) ●‘고구려비기’는 시어사 가언충이 조작했을 것 ‘신당서’와 ‘삼국사기’를 종합해 보면,7세기 후반에 고구려의 멸망을 예언한 ‘고구려비기’란 예언서가 유행했다.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저술됐는지는 어디에도 밝혀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 그러나 이 예언서의 저작에 관해 검토할 만한 단서가 없지 않다. 우선 고구려의 종말을 논의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의 지배세력이 조작에 직접 개입했다고 간주하기 어렵다. 예언서의 내용이 당나라에 유리하다는 점은 또 하나의 단서가 된다. 게다가 이 예언서는 최초로 중국의 역사서에 언급되었다. 더욱이 왕조의 종말에 관한 예언 방식도 자세히 따져보면 한국적이지 않았다. 예컨대 백제의 멸망에 관한 6세기 후반의 예언기록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런 여러 가지 사항을 종합해 볼 때,‘고구려비기’는 당나라가 조작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들은 적국인 고구려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예언서를 날조해 고구려에 널리 퍼뜨렸다고 짐작된다. 알다시피 당나라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왕조에 고구려는 힘겨운 상대였다. 무엇인가 특별한 조치가 없이는 설사 백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간다 해도 승산이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막강한 적수였다. 이런 관계로 당나라의 입장에선 요샛말로 대민(對民) 심리전술까지 동원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비기’가 등장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비기에 관해 당 고종에게 자세히 보고한 시어사 가언충은 ‘고구려비기’의 조작에 가장 깊숙이 간여했다는 가정도 성립한다. 본래 시어사란 벼슬은 글을 다루는 데 능숙한 문인에게 주어졌다. 당 고종이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격렬한 싸움터에 문사인 가언충을 파견한 것은, 한낱 그날그날의 전과를 보고하란 뜻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워낙 심리전에 능통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피어린 전쟁터에서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최대한 북돋우고, 고구려의 민심이 이반될 계기를 마련하란 특명을 받은 것이 아닐까? ‘고구려비기’를 해석할 때 가언충이 장차 고구려를 멸망시킬 ‘80대장’을 당나라 군대의 수뇌인 이적으로 해석한 것이 눈길을 끈다. 하필 이적이 고령이란 점에 주목한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보통은 그와 같이 늙은 장수는 원거리 출정에 동원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나라는 상례를 뒤엎고 수많은 젊은 장수를 물리치고 자력으로 움직이기도 힘들었을 노인을 머나먼 전쟁터로 보냈다. 적임자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80노인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는 사기가 저하될 염려가 컸다. 당 고종은 이점을 가장 염려했고, 그래서 평소 머리 좋기로 소문난 가언충을 전쟁터로 함께 보낸 것이 아닐까? 가언충은 당나라 군대의 약점을 강점으로 둔갑시켜야 될 사명을 띠었을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기상천외한 방법을 발견해냈다. 이적과 같은 고령의 대장이 앞장선다면 9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구려도 이젠 끝장나고 만다는 예언을 조작해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로써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고구려의 민심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668년 고구려는 거듭된 내우외환으로 지쳐 있었다. 이를 틈타 당나라는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자신만만해진 가언충은 서둘러 조정에 복귀한다. 그는 전황을 궁금해하는 고종에게 의기양양해하며 자신과 당나라 군대의 눈부신 전과를 알린다. 이것은 물론 논리적인 추측에 토대를 둔 일개 시나리오다. 비록 이런 짐작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고구려비기’는 당나라 측이 날조했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역사적 사실은 그렇건만, 후대 조선의 술사들은 ‘고구려비기’에 나타난 예언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고구려를 우리 역사의 중심축으로 생각한 그들은 고구려에 관한 것이면 무조건 따랐다. 엄밀한 의미로, 평양 천년, 송악 오백년 하는 식의 ‘정감록’ 예언은 술사들의 착시가 빚어낸 현상이었다. ●그럼 전형적인 한국 고대의 예언방식은? 한국 고대에는 왕조의 멸망을 예언할 때 ‘고구려비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다. 일례로, 신라의 명유(名儒) 최치원은 고려 태조가 건국할 무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한다.“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은 푸른 소나무입니다(鷄林黃葉 鵠嶺靑松).” 계림은 신라의 수도 경주, 곡령은 고려왕조의 발상지 개성을 가리킨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신라는 시든 이파리와 같아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고려는 푸른 소나무라 장래가 무궁하다는 예언이었다. 이 편지를 받은 왕건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뒷날 왕건의 손자로 왕위에 오른 고려 현종은 최치원이 예언을 통해 태조의 사업을 은밀하게 도왔다며 칭송했다. 왕은 그에게 내사령(內史令)이란 높은 벼슬을 추증하고 문창후란 시호도 내려주었다.(‘삼국사기’ 권 46) 최치원은 중국 당나라에 유학해 과거에 급제했고, 관직에 나아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보기 드문 수재였다. 그런 최치원이었지만 고국에 돌아와서는 골품제(骨品制·신라의 엄격한 신분제도)에 희생돼 뜻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불우한 재사는 끝내 가야산으로 숨어 들어가 고목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있다. 최치원은 과연 고려의 융성을 예언하는 편지를 왕건에게 보냈을까? 문자 그대로 믿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런 편지를 썼다면 그는 신라를 등진 셈이다. 신라를 대표하는 지성인 최치원에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그가 만일 신생국가인 고려를 추종할 뜻이 있었다면 왜 가야산에 머물렀을까 하는 점도 의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최치원이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예언이 깃든 편지를 왕건에게 보낸 까닭에 신라 국왕의 미움을 샀다고 한다. 결국 신라왕실의 박해를 피해 최치원은 가족과 함께 가야산 해인사로 숨어 지내다 거기서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최치원의 해인사 은거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예언에서 찾으려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일이다. 그렇게 숨어 죽기까지 할 바에야 왕건을 쫓아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데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치원이 문제의 예언시를 썼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누런 잎과 푸른 소나무를 대조해 신라와 고려왕조의 엇갈린 미래 운명을 점쳤다는 역사적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예언방식은 “고구려 구백년”이라고 하는 ‘고구려비기’식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백제의 멸망을 알리는 예언도 비유법 알고 보면 백제가 멸망할 때도 비슷한 방식의 예언이 있었다. 백제 의자왕 20년(660) 6월의 일이었다. 귀신 하나가 궁중에 들어와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며 큰 소리로 외치더니 땅속 깊이 들어가 버렸다. 왕은 몹시 놀라 그 자리를 파헤치라고 명령하였다. 삼척가량 땅을 팠을 때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다. 그 거북이 등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백제는 둥근달(月輪)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왕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무자(巫者)에게 물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둥근달과 같다는 것은 찼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그런데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아직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앞으로 점점 찰 것입니다.” 의자왕은 화가 치밀어 무자를 죽이고 말았다.(‘삼국사기’, 권 28) 귀신이 나왔다든가, 거북의 등에 예언이 적혀 있었다는 말은 사실로 간주하기 어렵다. 누군가 조작한 이야기로 짐작된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백제를 둥근달에 비유하고 신라를 초승달로 보아 양국의 운명을 대비시킨 점은 앞에서 살핀 신라와 고려의 비유와 동일하다. 대상이 되는 나라, 비교를 위한 사물이 다를 뿐 예언의 방식은 완전히 일치한다. 한국 고대에 존재한 국운에 관한 예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구려비기’라든가 후대의 ‘정감록’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한마디로,‘고구려비기’는 서로 대비되는 사물을 비교함으로써 국운을 예언하는 한국 고대의 오랜 전통과 결별을 선언한 셈이었다.‘정감록’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고대의 예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지만,‘고구려비기’에서 비롯된 예언의 새 전통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비록 그것이 술사들의 일시적인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역시 큰 의미가 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스피드에 빠진걸 굉음에 빠졌남

    스피드에 빠진걸 굉음에 빠졌남

    바람과 같은 스피드와 뿜어져 나오는 굉음을 느낄 수 있는 ‘2005 BAT GT 시리즈’ 6전이 오는 11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다.6전은 각 클래스의 상위 랭커들에게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지난 5전을 거치면서 각 클래스별 1위와 2위의 점수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우승을 향한 각 선수들의 승부욕도 높아져 가고 있다. 또한 이번 6전에는 일본의 드리프트레이싱팀을 초청해 묘기에 가까운 드리프트 이벤트가 열려 스피드에 굶주린 국내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예정이다. 케이엠알씨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kmrc.co.kr ●수족관엔 못난이 3형제가 꼬리를 쳐요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생김새는 물론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성격까지 꼭 닮은 못난이 삼형제 멍텅구리, 울프피시, 괴라도치가 나타났다. 꼼치와 함께 못생긴 물고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멍텅구리’는 무뚝뚝하고 미련하다 하여 뚝지, 보통은 도치라고 불리는데 강원도 앞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강원도 토박이 바닷물고기다. 캄캄한 어둠 속 심해에 보금자리를 잡는 ‘울프 피시’. 생김새가 험상궂고 성격 또한 포악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괴도라치’는 외국이름처럼 들리지만 멸치, 갈치, 꽁치처럼 ‘치’자 돌림의 한글이름. 이 녀석들은 머리, 뺨, 목 부분에 나뭇가지 모양을 한 돌기들이 뾰족뾰족 나있고, 입술은 상당히 두꺼워 음흉스러운 생김새가 특징이다.(02)6002-6200,www,coexaqua.co.kr ●경남 함양 가을 머금은 숲으로… 생명의숲국민운동은 오는 24일 경남 함양 함양읍 상림의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1100여 년 전 함양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을 가로지르던 위천수의 범람을 막고자 둑을 쌓아서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었다. 당시는 숲을 대관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관이었던 함양의 상림에서 숲기행을 하고 각종 민속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신청은 16일까지. 회원은 2만5000원, 비회원은 3만5000원이다.(02)3673-3236 ●오포바이 매니아 모여라 바이크 전문 포털 사이트로서인 ‘바이커즈’(www.bikers.co.kr)가 오픈했다. 보통 바이크를 중고거래를 하는 사이트가 아닌 순수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로 바이크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블로그, 지식인, 포토앨범 등 많은 카테고리를 두어 자신만의 바이크를 마음껏 뽐내거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져있다.
  • 36번국도-국토를 가로지른다

    36번국도-국토를 가로지른다

    국토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아직 없다. 그래서 충남 보령∼경북 울진을 잇는 36번 국도에는 멋과 맛이 남아있다. 시발점은 보령, 점점이 박힌 섬과 아스라한 낙조에 누구에게나 고향같은 푸근한 곳이다. 숨가쁘게 내달린 36번 국도가 내륙의 바다 충주호에서 긴장을 푼다. 푸른 하늘을 담은 충주호를 따라 단애절벽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연이어 36번 국도는 국토의 등뼈 백두대간으로 내달린다. 클라이맥스는 봉화. 인간의 발길에 의해 유린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석천계곡,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계곡과 바위를 굽이치며 휘돌아 백두대간을 넘은 36번 국도는 울진 불영계곡을 따라 동해로 곧장 치닫는다.289㎞ 대장정은 환호성을 내지르다, 자연의 경외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결국엔 겸허한 인간의 자세까지 가르친다. ■ 초록이 넘실대는 보령·충주 ●대천해수욕장과 다보도 무더운 한여름이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대천해수욕장이 기다린다. 서해안에서 백사장 길이(3.5㎞)가 가장 길다. 특히 조개껍데기 가루가 모래와 섞인 패각해수욕장이 자랑거리다. 석양이면 백사장이 반짝반짝 빛난다. 해수욕장앞 4㎞쯤에 있는 무인도인 다보도는 바다낚시터로 이름난 돌섬. 유람선이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대천해수욕장에는 생선회와 꽃게탕, 홍합구이 등으로 유명한 충남수족관(041-933-8077)과 부산횟집(041-933-9898) 등이 있다. ●성주사지와 보령냉풍욕장 성주산은 석불과 최치원, 신도비와 성주사지, 백운사, 휴양림, 활공장 등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한낮에도 깜깜할 정도로 울창한 산림과 맑고 깨끗한 화방골, 삼연동계곡 등이 어우러진 절경이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 때 창건돼 신라시대에는 9대 선문 가운데 하나로 번창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지금은 석탑, 석등, 돌계단 등만이 옛날을 말해준다. 인근의 보령냉풍장(041-934-8154)은 폐광을 이용한 것으로 한여름에도 섭씨 영상 12도의 찬바람이 불어나와 땀방울을 식혀준다. ●칠갑산과 한치고개 보령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쉬엄쉬엄 한 시간가량 나오면 칠갑산이다.‘충남의 알프스’로 불린다. 칠갑산자연휴양림(041-943-4510)은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이 자랑이다. 휴양림에서 7㎞ 남짓 떨어져 있는 냉천계곡은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발을 담그면 채 5분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시원하다. 청양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한치고개는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주통로였다. 꾸불꾸불한 옛길을 따라가는 드라이브코스로 그만이다. 산책하기에도 좋다. 정상에는 구한말 의병장 만암 최익현선생과 콩밭 매는 아낙네 상이 있다. 별미로 칠갑산장(041-942-3298)에서 멧돼지 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다. ●충주호 남한의 중심부에서 굽이치는 산줄기를 따라 나라의 강줄기 맥이 모인 곳이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자락과 유유한 물줄기가 잠시 긴장을 놓는 곳이다. 충주호는 청명한 하늘을 담고 푸른 산을 닮아 더없이 푸르다. 낙조 하면 서해를 떠올리지만 충주호 유람선에서 맞는 일몰도 그만이다. 하늘에 맞닿은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고 강물을 고스란히 붉게 물들이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해를 품는다. 대형 유람선을 타고 뱃길을 따라가면 옥순봉, 구담봉, 만학천봉, 제비봉 등 호수를 둘러싼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충주호는 충주, 제천, 단양을 연결한다. 면적은 97㎢. 국내에서 담수 면적이 가장 넓다. 댐 나루터에서 운행하는 쾌속관광선을 이용해 단양권을 관람할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충주호의 수상관광을 즐기는 이들이 끊이질 않는다. 충주호유람선(043-851-5771) ●단양팔경 단양군 남쪽에 위치한 상·중·하선암을 비롯해 사인암 등 8곳의 절경이 영동의 관동팔경과 쌍벽을 이룬다. 으뜸은 한폭의 동양화와 같은 도담삼봉.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다. 단양에서 북쪽으로 12㎞지점에서 남한강 수면을 뚫고 솟은 세 봉우리.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도담삼봉에서 자신의 호를 본떠 삼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삼봉 중에서 가운데 봉이 남편봉이고 그 옆에 다정한 작은 봉이 첩봉, 좀 떨어진 곳에 딸들을 품에 안고 돌아앉듯 자리한 봉이 처봉이란다. 남편이 딸만 낳은 아내를 내쫓고 첩과 다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라는 옛날이야기도 전한다. 단양관광협회(043-423-5044,421-7114). ●탄금대 신라 진흥왕 때 가야에서 망명한 악성 ‘우륵’이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충주에서 서북쪽의 3㎞에 있으며 달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에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격전을 벌였던 곳. 탄금대의 12대는 당시 계속된 전투로 뜨거워진 활의 열기를 식히고자 12번이나 오르내렸다는 바위들이다.30∼40분 발품을 팔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 절로 넘어가는 봉화·울진 ●석천계곡과 닭실마을 36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 봉화읍에서 조금만 빠져가면 석천계곡이다. 울창한 소나무 원시림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맑고 시원하다. 기암괴석으로 자연경관은 수려하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소리, 산에서 부는 솔바람소리에 잡념이 확 씻기는 듯하다. 계곡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옆에서는 봉화의 춘양목(금강송)으로 조선 중종때 문신 청암 권동보(1518∼1592)가 지은 석천정자가 계곡과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석천계곡을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절벽 바위에 신선이 사는 곳 이란 뜻의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석천계곡에서 나와 36번 국도를 따라 울진방향으로 2㎞정도 가다보면 왼쪽에 단아한 한옥마을이 나온다. 마을이 풍수지리상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 즉 ‘금계포란’이라 하여 닭실마을(酉谷里)로 불린다. 닭실마을의 압권은 청암정. 충재가 도학연구에 몰두했던 곳으로 특이하게도 머리가 동쪽으로 향한 거북 형상의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청암정을 지어 방에 불을 넣자 바위가 울었단다. 지나던 스님이 “거북 등딱지 위에 불을 피우면 거북이 죽는다.”며 “거북에겐 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뒤 아궁이를 모두 막고, 둘레에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자에는 퇴계 이황의 글도 남아있다. 닭실마을엔 이외에도 유적지와 박물관도 있다. 개인 박물관인 까닭에 잠긴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때 집안에 전해오던 각종 자료들을 항아리에 넣어 땅속에 몰래 묻어 보관해왔던 것들이다. 박물관과 청암정 등을 들어가는 입장료는 없다. 닭실마을에는 식당은 없다. 하지만 가을이나 겨울에는 전통방식대로 만드는 한과를 살 수 있다. 여름철엔 한과가 쉬 눅눅해져 만들지 않는 게 아쉬움이다. 봉화문화원(054-673-2350) ●청량사와 청량산 봉화에 갔다면 들를 만한 곳으로 청량산을 들 수 있다. 봉화읍에서 40분 정도 걸린다.918번 국도를 따라 가는 드라이브 코스도 그만이다. 논길을 가다가 운곡천을 따라간다. 운곡천이 깨끗해 수달이 사는 수달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계곡이 낙동강과 만나는 곳은 천애절벽의 장관이 파노라마친다. 청량산은 12개 봉우리들이 있다. 정상에서 거대하게 솟아오른 암봉으로 수려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일명 ‘소금강’이라고도 부른다. 청량산 일주 산행은 4시간 정도. 청량사 일주문을 지나자 나오는 청량폭포가 시원하기 그지없다. 청량산도립공원(054-679-6321) 봉화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인 재래종 검은 돼지로 만드는 돼지구이. 봉성면 가는 초입에는 돼지구이를 하는 집이 20여집 몰려있다. 이 가운데 원조는 아니지만 현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상봉숯불회관(054-672-9783)이다. 숯불구이(180g·5000원)는 돼지고기에 소금만 뿌리고 솔잎을 얹혀 찌듯이 구워냈다. 기름기가 쪽 빠지고 솔향이 은근히 배였다. 텃밭에서 기른 야채에다 돼지구이를 싸 먹으면 정말 일미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양념구이(6000원)도 괜찮다. 이외에도 봉성숯불식당(054-672-9130)도 유명하다. 불고기가 조금 곁들여 나온다. ●불영계곡과 불영사 36번 국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불영계곡이 아찔하다. 올려다 보면 천애 같은 절벽과 그 위에 곧게 뻗은 소나무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물은 너무 차서 발이 금방 시려진다. 더위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불영계곡이 끝날 즈음이면 불영사(054-783-5004)가 나온다. 진덕여왕 5년(651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고찰이다. 대웅전 앞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불영사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뒤로는 오밀조밀한 경관이 펼쳐져 있다. ●소수서원과 부석사 봉화를 조금 못미친 영주시 풍기에서 시간이 있다면 유·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있다. 울창한 숲속의 소수서원(054-633-2608)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이곳 출신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주세붕이 세운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입장료는 어른은 3000원, 어린이는 1000원. 주차료는 없다. 소수서원에서 10분 남짓이면 부석사(054-633-3464)에 닿는다. 풍기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 전통 건물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사찰.‘부석’이란 돌이 떠 있다는 뜻으로 무량수전 뒤편에 실제로 땅과 약간 떨어져 있는 바위인 뜬돌 즉 부석이 있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옛공부의 즐거움/이상국 지음

    옛 글이 딱딱하고 고리타분하다는 건 옛날 얘기다. 요즘 나오는 고전 책들을 보면, 아니 그중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들을 보면 고전이 ‘옛날이란 시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신영복의 ‘강의’(돌베개)가 그렇고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가 그렇다. 그런데 조만간 여기에 목록 하나를 추가해야할 것 같다.‘옛공부의 즐거움’(이상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부제를 ‘고전에서 누리는 행복한 소요유’로 붙였듯, 옛 사람과 글, 그림을 불러다 놓고 대화를 시도한다. 옛 글이 주는 묵직함과 모호한 느낌을 취향에 맞게 다듬고 색깔도 입혀 즐기면서 놀아보자는 게 이 책의 의도. ●노자와 장자 불러다 놓고 ‘도덕경’ 논해 대화와 놀이의 대상은 누구인가.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 나오는가 하면,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유가 나오고, 노자와 장자를 불러다놓고 박경리·김춘수가 ‘도덕경’과 ‘소요유’를 논한다. 지은이가 이들과 어떻게 교유하는가 잠깐 엿보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골라 살고 싶은 시대를 택하라면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한 하늘 하래 동거하는 18세기 조선에서 살고 싶다는 지은이. 그는 글과 실용의 일치를 주장하고 실천했던 연암의 글을 요즘 말로 각색해 공리공론을 일삼던 선학들을 꾸짖는다. ‘…선배들, 고상한 학문적 변론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다가 마침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감정시비가 되어 서로 미워하고 욕질하는 폐단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이론에 이론을 덧대 자꾸만 아리송하고 복잡다단한 말장난의 영역으로 치닫는 걸 못 느끼겠는가. 이제 그런 짓거리를 그만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화담 서경덕은 지은이의 표현에 따르면 ‘나와 동일시하는 만용을 부리는’ 인물로 표현된다. 지은이가 중학교 때 수학시간에 얽힌 추억 때문.‘피타고라스 정리’의 원리를 증명해오라는 숙제를 자습서없이 밤새워 ‘독학’으로 풀었던 기억이다. 다음날 칠판 가득 써내려간 증명과정을 보고, 선생이 ‘내 수학선생 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너처럼 길게 희한한 방식으로 증명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가르쳐줘서 고맙다.’라고 했단다. 화담은 황진이와의 ‘스캔들’로 더 유명해졌지만, 당대에 가장 큰 성취를 이룬 독학파 학자였음을 지은이는 상기시킨다. 화담이 당시 조류와는 다른, 과학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학문을 갖게 된 것은, 철저한 ‘자학’(自學) 때문이라고 믿는다. ●고전과 옛 그림은 ‘사교의 장’ 지은이에게 고전과 옛 그림은 ‘사교의 장’인 듯하다. 노자의 ‘도덕경’ 하나를 놓고 ‘꽃’의 시인 김춘수,‘바위’의 유치환,‘토지’의 박경리가 만나 작품 이야기를 펼친다. 도덕경이 때로 불꽃 튀는 논쟁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이 땅의 작가, 시인들에겐 더 없는 보물창고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노자가 읊어놓은 5000자에 관해 논쟁을 벌이는 비밀클럽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한다. 문인화의 맥을 이은 소치 허유가 나오는 대목에선 추사 김정희와 예술적 안목이 뛰어났던 임금 헌종에 얽힌 아름다운 삼각관계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민 출신인 허유가 출세해 임금과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를 소상하게 적어 남긴 ‘몽연록’ 이야기가 흥미롭다. ‘애효 딜레마와 맹자의 카운슬링’‘논어의 교언영색 콤플렉스’‘인사동에서 만난 최치원’‘꿈이로다 몽유도원’…. 책을 구성하는 각각의 이야기에 붙은 타이틀처럼 고전의 딱딱함과 엄숙함은 어디에도 없다. 지은이는 말한다. “인물의 위대성과 학문적 깊이는 당연히 존숭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무게를 두다 보면,‘인간’을 따뜻하게 바로보기 어렵다. 시간을 넘어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여러겹’의 삶을 동시에 살기를 꿈꾼다.”고. ●산의 정상이건 중턱이건 즐기면 그만 산이 꼭 정상에 올라야 맛인가. 정상이든 중턱이든 원하는데서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범접하기 어려운 깊이만 따지지 말고, 아는 그 자리, 그 상태에서 아는 만큼 최대한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은 ‘즐기는 고전, 함께 노는 고전’의 전형이 될 듯싶다.1만 1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국·양저우 2500년 교류역사 꽃필것”

    “잘 보존된 생태 환경과 특색있는 문화가 어우러진 품격 높은 첨단 국제 도시가 양저우(揚州)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3000년 고도 양저우의 현대적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왕옌원(王燕文)시장은 25일 “양저우가 ‘대 상하이권’의 주요 배후 도시로서 전기를 맞고 있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한·중 여성지도자 포럼 참가를 위해 지난 20일 서울에 온 왕 시장은 중국 전역에서 7명뿐인 여성 시장중 한 명. 그 가운데서 가장 젊은 45세로 인구 470만명의 고도 양저우의 변신을 이끌고 있다.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초청으로 전·현직 장·차관급 중국 여성 지도자 9명과 함께 방문한 왕 시장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차세대 지도자. 중국 남부 거점 난징(南京)에서 대변인격인 선전부장, 공청단 서기 등 요직을 거쳤다.100만명이나 되는 난징지역 청소년 및 청년 공산당원의 조직 관리를 이례적으로 여성 서기가 맡은 점이 중앙정부의 시설을 끌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수수한 옷차림, 앳된 용모로 “시장 비서냐.”는 오해도 종종 받았지만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군중 사이에 파고드는 행정과 지도력을 평가받고 있다. “다음달 양저우∼전장(鎭江)을 잇는 룬양대교가 완성되면 상하이가 2시간 거리내로 들어오고, 상하이∼난징∼양저우로 이어지는 공업벨트 구축이 가속화된다.”면서 “양저우는 상하이 경제권의 주요 도시로서 화동 경제권의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자재와 기술, 지방 정부의 전폭적인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결합,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는 자랑이다. “양저우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고향이다. 지금도 여러 통로로 장 전 주석이 지역 발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남다른 고향 사랑과 자부심으로 알려진 장쩌민은 1991년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을,2000년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을 직접 수행해 양저우에 가기도 했다. “양저우는 중국 경제의 중심이던 2500년 전부터 한국과 활발한 교류 관계를 이어왔다. 당나라 과거에 급제, 도지사 등을 지낸 대문장가 최치원이나 장보고, 청나라때 대상인 안치 등 적잖은 한국인들이 양저우에서 활약했다. 최치원 기념관도 있다.” 아시아에선 한국과의 교류를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여긴다는 왕 시장의 소개처럼 양저우는 여수, 제주, 대구 등 3개 도시와 우호도시 협정을, 용인과 자매도시 협정을 각각 맺고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왕 시장은 오는 6월 양저우시 투자유치단을 이끌고 다시 한국에 온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수색작전을 마친 전라좌수군은 당포에 결진해 경상우수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원균은 당포의 결진이 후퇴를 의미한다면서 경상우수군은 적진포로 진격하겠다고 일전의 약속을 파기하는 뜻을 전해온다. 이에 권준은 원균을 찾아가 당포가 아니면 연합함대는 없다고 통고한다. ●토지(SBS 오후 8시45분) 길상은 김두수가 진주로 갔다는 말에 결국 자신으로 인해 서희가 곤경에 빠지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한다. 서희는 서희 대로 길상이 걱정이지만 다행히 조선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자 안심한다. 한복은 어머니 무덤을 찾을 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렸다가 두수를 만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당나라 최고의 상업도시이자 문화 중심지로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을 배출했던 역사의 도시 양주. 수려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수서호, 부의 상징이었던 개인정원 등의 아름다운 자연과 2000년 전통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운하, 한·중교류의 흔적이 묻어 있는 최치원 사료관 등을 소개한다. ●문화사시리즈-지금도 마로니에는(EBS 오후 10시50분) 단식투쟁이 한창인 가운데, 학생들의 운동이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김중태가 자수를 결심하고 문리대에 나타난다. 이에 단식투쟁을 하던 학생들의 기세는 더욱 의기양양해진다. 드디어 6월3일 김중태는 자수하고, 단식투쟁을 하던 학생들은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MBC 오후 7시)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의 네 남녀 주인공 김재원, 유진, 한은정, 이지훈이 출연한다. 팔등신 미녀 한은정이 알려주는 요가의 동작을 따라하던 MC 유재석이 갑자기 ‘메뚜기’로 돌변했다는 에피소드도 곁들인다. 또 김재원·이지훈이 ‘남자의 의리’에 대해 말한다. ●용서(KBS2 오전 9시)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던 수민은 이번엔 한밤중에 거실로 나와 소주병을 찾다가 희만과 재훈을 놀라게 한다. 희만은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한편, 인영은 미국에서 온 식구들과 장례를 치른 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호텔방에서 생각에 잠긴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9) 십승지란 어디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9) 십승지란 어디인가

    “나로 말하면 흔히 서양의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에 견주어 조선 최고의 예언자라 불리는 남사고(南師古·1509∼1571)라오. 호는 격암(格菴)이라 했고, 학문을 업으로 삼았으되 평생 유가(儒家)의 경전이라곤 그저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을 뿐, 그밖엔 온 마음을 쏟아 역학·풍수·천문·복서(卜筮)·관상 등을 즐겨 배웠고, 마침내 도통해 대예언가 소리를 듣게 된 거였지. 오늘날에도 ‘남사고비결’이니 ‘격암유록’이란 비결 책을 내가 쓴 것으로 다들 믿고 있다던데. 그야 어쨌든 내 예언은 항상 정확히 들어맞았소.1575년(선조8) 조정이 동서 양편으로 분당될 것을 난 미리 짐작했고, 뒤이어 임진왜란(1592)이 발생할 것도 진즉에 알고 있었소. 사람은 영물이라, 열심히 도를 닦아 이루지 못할 게 그 무어겠소? 풍수에 관심이 깊은 나는 조선8도의 명산을 빠짐없이 둘러보았고, 그 결과 미래까지 꿰뚫어보는 안목을 얻었다고나 할까.” 남사고는 정감록 산책을 함께하고 싶었는지 과거로부터 내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는 남사고 자신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해놨다는 이른바 십승지(十勝地)에 대한 설명이다. 남사고는 본래 십승지의 원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정감록에 얼마나 충실히 반영돼 있는지는 사실 미지수다. 십승지란 난세에 “몸을 보전할 땅”이며 복을 듬뿍 주는 길지(吉地)다. 남사고는 편지의 서두에서 예언서 가운데 가장 체계적으로 십승지의 문제를 다룬 ‘감결’의 성격을 논의한다. 노대가의 안광이 날카롭다. ●감결의 성격 “정감이 이심과 이연 형제와 더불어 방방곡곡을 유람하면서 조선의 국운을 예언한 대화체 예언서가 바로 ‘감결’ 아니겠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감은 천문에 밝았고 이심은 아마 풍수에 정통했나 보오. 그런가 하면 이연은 세상사를 이모저모 따져 두 사람의 말을 보충한 것 같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 사람이 금강산에서 유람을 시작, 삼각산을 거쳐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가야산에서 대화를 마친단 점이야. 서북쪽에도 묘향산, 구월산 같은 명산이 많은데 거기엔 발길이 전혀 미치지 않아. 이걸 보면 정감록은 서북지방을 버려진 땅으로 본 모양이야. 그와 대조적으로 태백산과 소백산을 몹시 중시하고 있어. 하긴 이 3두 산이 백두대간의 허리니까. 또 하나 재밌는 점이 있어.‘감결’은 역사상 한국의 수도가 평양, 송도, 한양, 계룡산, 가야산으로 옮긴다고 봤다는 점이지. 나라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한단 말인데, 남부지방이 한반도의 중심이란 이야기야. 그렇담 요새 행정수도를 공주 연기 쪽으로 옮긴다고 야단들인데 그도 그럴듯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어. 여하튼 말세엔 천지가 온통 전쟁, 질병, 경제대란, 환경파괴 등으로 한바탕 진통을 치르게 돼 있다고 하지. 바로 그때 십승지를 찾아가야 하는 거야. 십승지는 전쟁과 흉년이 들지 않으므로 지각 있는 사람은 당연히 십승지로 들어가야 옳겠지. 글쎄, 나도 알아. 십승지가 과연 특정한 공간이냐 아니면 어떤 특수한 정신적 단계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단 걸 말이지.” ●십승지의 으뜸 풍기 금계촌과 예천 금당동 십승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논쟁을 남사고와 벌이고도 싶지만 그는 내게 그럴 겨를을 안 준다. 대신 그의 편지는 십승지를 하나씩 직접 거론한다. “이제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를 하나씩 소개해 보자고.‘감결’의 내용을 줄기로 삼고 그밖에 다른 예언서들도 참고한다면 설명이 제법 들을 만할 거야. 첫째가는 곳은 풍기(豊基)지.‘토정가장결’에서도 풍기를 피난처로 손꼽았어. 내가 쓴 걸로 돼 있는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南格菴山水十勝保吉之地)’에선 산수가 은밀한 태백·소백 두 산의 그늘이 남쪽으로 드리워진 풍기라고 했어. 풍기의 예에서 보듯 한국 최고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에 포근히 안겨 있단 말야. 난 또 풍기의 길지를 기천(基川)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이라고 좀더 자세히 밝혀놓기도 했어. 금계촌은 마을 북쪽에 소백산이 있고 산 아래 두 개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이야.‘피장처’에도 역시 같은 말이 나오지. 물론 내가 지금 언급한 ‘남격암’ 등의 비결 책들은 모두 정감록의 일부야.” 풍기 금계촌이라면 나도 잘 안다. 이미 답사를 다녀온 곳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의 답사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다. 남사고의 설명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풍기 못지않은 곳이 예천(醴泉)이야.‘토정가장결’에도 예천이 나와 있지.‘남격암’에선 예천에서도 금당동(金堂洞) 북쪽이라고 제법 자세히 밝혔어. 그러고 보면 내 책이 다른 비결서에 비해 역시 가장 세밀해. 금당동은 사실 큰 길에서 가까워. 십승지로선 이례적인 경우인데 그래도 병란이 미치지 않아 여러 대에 걸쳐 평안을 누릴 만한 곳이야. 다만 임금이 이쪽으로 피난을 올 경우엔 화가 미쳐.” 아마도 남사고는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봉화까지 피난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엄밀한 의미로는 ‘남격암’을 남사고의 저서라 주장할 근거가 없고 그저 속설일 뿐이다. ●경상도의 십승지 남사고의 설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십승지를 선정하는 1차적인 기준은 풍수다. 특히 백두대간 가운데서도 태백산 이남에서 길지를 구하고 있다. 십승지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풍기와 예천은 행정구역상 경상도에 속한다. 둘째, 셋째, 넷째 그리고 여덟째 십승지도 역시 그러하다. 적어도 십승지의 절반은 경상도에 있단 말이다. 경상도는 퇴계 이황을 비롯해 큰 선비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라 세평이 좋아 그렇게 된 점도 있겠다. “십승지의 둘째는 안동(安東) 화곡(華谷)이야.‘남격암’에선 화산(花山)의 북쪽에 이른바 소령고기(召嶺古基)가 있다고 했고 그곳은 내성현(奈城縣)의 동쪽, 태백산의 양지바른 곳이라고 토를 달았어.‘두사총비결’에선 그저 영가(안동)의 백운산이라 했고,‘토정가장결’은 그저 안동이라고만 썼는데,‘피장처’엔 경상도 내성현의 북면, 안동 북면 소라고기부 동쪽과 극히 양지바른 서쪽이라고 말했지. 비결 책마다 십승지의 설정이 꽤 다르게 돼 있군. 어느 쪽이 맞느냐 하는 문제는 단언하기 어렵지. 사람들 생각이 서로 다른 걸 어떡하겠어? 셋째 십승지는 개령(開寧)의 용궁(龍宮)인데, 어느 비결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마 한때 각광을 받았지만 그 뒤론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나봐. 넷째는 가야(伽倻)라고.‘남격암’엔 가야산 밑 남쪽에 만수동(萬壽洞)이 있다며 그 둘레는 200리가량 되어 몸을 보전할 수 있지만 가야산의 동북쪽은 나쁘다고 했어. 만수동이란 이름은 사실 각지에 다 있었어. 만 살까지 살 수 있는 마을이라니 이름이 좋지 않아? ‘감결’이 여덟째로 꼽는 십승지 봉화(奉化)도 역시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가까운 곳이지.‘남격암’도 봉화를 언급했어. 열 번째 십승지도 태백 즉, 태백산이라 했지만 강원도 쪽보다는 경상도를 중시한 느낌이고, 심지어 아홉 번째 십승지인 지리산도 전라도에만 속한 것은 아니거든. 이렇게 보면 십승지의 대부분은 경상도 땅에 있다고나 할까.” ●충청도의 십승지 “충청도엔 모두 세 곳의 십승지가 있지. 모두 소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어.‘감결’이 다섯째로 언급한 단춘(丹春)이 우선 주목되네.‘남격암’은 단양(丹陽)군의 영춘(永春)에 있다고 했고,‘피장처’에선 춘양면의 땅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단양 가차촌을 거론하지. 깊고 기이하고 경치 좋은 곳이라는데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여섯째 십승지는 공주(公州) 정산(定山) 마곡(麻谷)이야.‘남격암’은 공주의 유구(維鳩)·마곡 두 물줄기 사이로 보았지. 그 둘레가 백리나 되는데 전쟁의 피해를 면할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즘 거론되는 신행정수도가 바로 이쪽이지. 명당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 후배인 이중환(李重煥·1690∼1752)은 ‘택리지’에 이런 말을 적어 놨더군. 무성산(茂盛山·공주의 서쪽 산)은 차령의 서쪽 지맥의 끝이다. 산세가 빙 돌며 마곡사와 유구역을 만들었다. 그 골짜기의 마을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많고, 논이 기름지며, 목화, 수수, 조를 심기에 알맞다. 사대부와 평민이 한 번 여기 들어와 살게 되면, 풍년과 흉년을 잊는다. 생활이 넉넉하게 돼 다시 이사를 떠날 염려가 적다. 대체로 낙토(樂土)라 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내 말을 인용했어.‘남사고는 십승기란 글에서 유구와 마곡의 두 강 사이가 병란을 피할 만한 땅이라 했다.’고 말이지. 내 십승기는 결국 유실됐지만 여하튼 난 십승지를 피난지로만 봤어. 그런데 이중환의 안목은 나보다 깊었던 거야.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단 말야.” 이중환은 1721년에 일어난 신임사화(소론이 노론을 무고한 사건)에 연루돼 유배형을 받았다. 그 뒤 그는 다시 등용되지 못한 채 평생 전국을 유람했다. 그의 책 ‘택리지’ 가운데는 십승지 가운데서도 유독 유구와 마곡에 관해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이중환은 기후가 좋고 물산도 풍부해 양반은 물론 평민까지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그 지역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밖에 일곱째 십승지는 진천(鎭川)의 목천(木川)이야. 역시 백두대간의 한 마디지. 그런데 말이야, 다른 비결 책들엔 목천에 대한 설명이 조금도 없어. 이처럼 십승지라 해도 사람들의 선호도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어.” 남사고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른바 십승지란 것은 일정하게 고정된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보기만은 어려운 것 같다. 다음 기회에 좀더 알아볼 생각이지만, 비결 책마다 십승지에 준하는 수많은 명당이 열거돼 있다. ●전라도의 십승지 “전라도 땅에 있는 십승지는 하나뿐이야.‘감결’이 아홉째로 언급한 운봉(雲峰) 두류산(頭流山)이 그거지.‘남격암’엔 이를 지리산이라고도 했고 더욱 구체적인 설명도 나와 있어. 운봉 땅 두류산 아래 동점촌(銅店村) 백리 안은 오래오래 보전할 수 있는 땅이라고 말이야. 이곳에서 장차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들이 연달아 나온다고도 했어.‘토정가장결’에서도 운봉의 두류산은 지형이 기이하고 아름답기가 궁기(弓其)만은 못해도 편안하고 한가로이 몸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어. 궁기란 나중에 말하겠지만 한국 최고의 명당인데 지리산은 그 다음이란 뜻이야. 내가 사랑하는 후배 이중환도 지리산을 극찬했어.” 내가 택리지를 살펴보았더니 이중환은 이렇게 말했다.“지리산은 남해 가에 있는데, 백두산의 큰 줄기가 끝나는 곳이다. 그래서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蓬萊)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方丈)이라 하며 한라산을 영주(瀛洲)라고 하는데 이른바 삼신산이다.” 이중환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리산에 태을성신(太乙星神·하늘 북쪽에 있어서 병란, 재화 및 생사를 다스리는 신령한 별)이 산다고 믿었다. 그밖에 여러 신선들이 그 산에 모인다고도 생각했다. 지리산은 계곡이 깊고 크며 땅이 기름진 데다 골짜기의 바깥은 좁으나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넓어지기 때문에 백성들이 숨어 살며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다. 산속 깊은 데서도 농사가 잘 돼 승속(僧俗)이 섞여 산다는데 별로 애쓰지 않아도 먹고 살기에 문제가 없단다. 이중환은 지리산 사람들은 흉년을 모르고 살므로 아예 그 산을 부산(富山)이라고 불렀다. 지리산을 백두대간의 종착점으로 인식한 점에서 이중환의 생각은 ‘정감록’의 지리관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중환은 정감록에 미처 언급되지 못한 중요한 사실도 거론했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신성한 산으로 여겼다는 점, 그리고 지리산 주변의 경제 여건이 좋다는 점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난세에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택리지’의 설명은 이어진다.“지리산 남쪽에 화개동(花開洞·악양동의 동남)과 악양동(岳陽洞·지리산 남쪽 섬진강변)이 있다. 두 곳 모두 사람이 사는데 산수가 아름답다. 고려 중엽에 한유한(韓惟漢)은 이자겸(李資謙)의 횡포가 심해지자 화가 일어날 것을 짐작했다. 관직을 버린 채 그는 가족을 이끌고 악양동에 숨었다. 조정에서는 그를 찾아 벼슬을 주려고 했으나 한유한은 끝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말의 대학자 최치원도 신선이 돼 가야산과 지리산을 왕래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선조 때 한 스님이 지리산의 바위틈에서 종이 한 장을 주웠는데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동쪽나라 화개동은 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신선이 옥 베개를 밀고 일어나 보니 이 몸이 이 세상에서 벌써 천년을 지냈구나(仙人推玉枕 身世千年).” 이중환의 말로는 그 필적이 최치원의 것과 동일했다 한다. 남사고 역시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이중환은 신선의 땅 지리산에서 최고의 복지로 만수동(萬壽洞)과 청학동(靑鶴洞) 두 곳을 손꼽았지. 만수동은 조선후기에 구품대(九品臺)로 알려진 곳이요, 청학동은 매계(梅溪)란 말야.18세기부터 조금씩 사람들이 출입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리산 북쪽도 나쁘지 않아. 경상도 함양 땅인데 그곳의 영원동(靈源洞·지리산 반야봉 북쪽), 군자사(君子寺·함양군 마천면 군자동) 그리고 유점촌(鍮店村)을 일찍이 난 복지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 ●도계(道界)를 뛰어넘은 십승지 지리산에 관한 이중환과 남사고의 설명을 음미해 보니 지리산을 전라도만의 십승지라고 주장하기는 어렵겠다. 만수동, 청학동 등의 지명은 누구도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군자사 등은 행정구역상 엄연히 경상도 땅이었다. 사실 지리산은 조선시대에 전라 경상 2도에 걸쳐 있었으므로, 도계를 초월한 십승지로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 따지고 보면 지리산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의 가장 큰 마디인 소백산도 그러했다. 특정한 지역이 과연 십승지가 될 만한가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곳이 백두대간에 속한 명산이 빚어놓은 명당이냐 하는 것이었다. 십승지에 대한 남사고의 설명은 다음회로 이어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인사]

    ■ 국가보훈처 ◇서기관 전보△처장비서관 전종호△공보담당관 南昌秀△감사〃 李龍源△기획예산〃 李成春△기획관리실 법무〃 康潤振△보훈관리국 보상급여과장 朱正煥△〃 단체지원〃 愼炫縡△보훈선양국 선양정책〃 白昌基△복지사업국 복지지원〃 庾周鳳△서울북부보훈지청장 鄭鍾基△강릉〃 李起鎔△마산〃 柳大植△순천〃 김의행△목포〃 洪仁杓△국립5·18묘지 관리소장 李南日△국가보훈처 李京雨△복지사업국 의료지원과 李熙範 ■ 증권예탁결제원 △전무 柳興模 ■ 한국교직원공제회 ◇1급 승진△기획조정실 金仁相△총무부 段成基△광주지역본부장(직대) 李在完△교원나라레저개발 전무이사 朴善穆◇1급 전보△감사실장 曺一峰△부산지역본부장 將鍾宣 ■ 숭실대 △부총장(학사) 郭熙魯△〃(대외) 尹玄德△비서실장 서리 林龍來△교목실장 직무대리 延堯翰△대외협력처장 吳徹虎△기획조정실장 曺尤鉉△교무처장 李廷鎭△학생생활〃 韓石煥△총무〃 李丙德△관리〃 李成求△정보지원〃 金修東△출판부장 金光永△생활관장 崔度宰△신문방송전문위원 崔昌河 ■ 상지대 △생산기술연구소장 김제숭△사회복지학과·계약학과 학과장 류만희△학생지원과장 김승구△학사관리〃 박주△교무〃 전인환△생자대·예체대 교학〃 권태준△총무과(총장부속실) 이강재△입학홍보실 홍보주임 최치원△대학원 교학주임 윤명성 ■ 을지의과대 △명예총장 겸 의과대학장 김용일△간호대학장 직무대행 오희영△대학원장 백태경△보건대학원장 겸 학술자료관장 기모란△임상간호대학원장 임숙빈△교학처장 겸 입학관리처장 유승민△기획관리처장 김영훈△교학 부처장(서울) 이애영△교무 〃 이재용△학생 〃 현성희△입학관리 〃 최헌△의과학연구소장 겸 대학원 교학부장 백행운△보건대학원 교학과장 마기중△임상간호대학원 〃 김은경△기초의학과장 김찬△임상의학과장(서울) 구자성△〃(대전) 이창화△임상실습과장(서울) 김상훈△〃(대전) 안규정△간호학과장 허명행△보건대학원 방사선학과장 유인규△보건대학원 물리치료학과장 이광원△정보통신센터 소장 박미라△임상수기훈련센터 〃 이수주△의사국시대책위원장 박원일△간호사국시대책위원장 이꽃메 ■ 충북대 △사회과학대학장 南在鳳△경영〃 鄭在權△약학〃 鄭然馥△의학전문대학원장 林承運△종합인력개발원장 趙誠瓚△평생교육원장 金昌錫△박물관장 李隆助△보건진료원장 崔榮奭△건설기술연구소장 鄭慶燮△중원문화〃 趙恒範△바이오〃 崔壽永△산업경영〃 全達英△동물의학〃 南相允△교직부장 許敬祖△교육매체센터소장 李玉禾△도서관의대분관장 金憲植
  • [조용섭의 산으路] 속리산

    [조용섭의 산으路] 속리산

    참된 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그 道를 멀리하려 들고, 山은 俗과 떨어지지 않는데 俗이 山과 떨어졌다. -최치원- 석화성(石火星), 암봉들이 불꽃처럼 일어서서 산의 능선을 이루는 형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화성의 산, 속리산(俗離山·1058m)을 이번에 찾았다. 산길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서 문장대(1033m)로 올라 법주사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언제나 향하고 싶은 속리산. 가을 단풍도 멋지지만 수북하게 눈을 덮어쓴 겨울도 장관이다. 나뭇가지에 소담하게 핀 설화, 대지의 정기가 나무나 바위에 영근 상고대, 겨울꽃 중 압권인 빙화 등을 보노라면 세상을 등지고 싶어질 정도다. 속리산은 주로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는데, 속리산국립공원 산군 전체로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품고있는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산들도 포함이 된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등 빼어난 아홉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어 원래 이름은 구봉산(九峰山)이었는데, 신라 때 ‘신심이 지극한 이가 세속을 여의고 입산한 곳’이라 하여 지금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산을 둘러보고 읊었다는 ‘산은 세상을 멀리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한다(山非離俗 俗離山)’라는 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백두대간의 허리를 이루고 있고, 천황봉은 말티재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을 일으켜 한강의 물길도 품으며 삼파수, 즉 한강·금강·낙동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들머리인 화북분소 주차장에서 잠시 오르면 매장 앞 오른쪽으로 산길이 열린다. 미끄러운 마사토가 많고 계단이 많기는 하나 산자락 곳곳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암봉들을 감상할 수 있고, 오름길 내내 계곡이 함께하는 멋진 길이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계단길에 숨이 찰 즈음이면 이름 그대로 쉬어가라는 쉴바위가 나온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바위가 천장을 이루고 있는 백일산 제단이 나오고 길은 오히려 완만해진다. 하지만 곳곳에 빙판길이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면 바로 위로 정상휴게소 앞 마당이 지척이다. 이름난 봉우리답게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문장대 정상에서의 조망도 거침이 없다. 방위별로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보고 주위의 산들에 눈길을 둔다. 청화산으로 이어지며 북동진하는 산줄기가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휴게소를 뒤로하고 천황봉쪽 능선을 향해 나아가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 고양되는 마음은 산에 들어와 있음의 행복감을 만끽하게 되고,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질 것이다. 신선대휴게소를 지나면 오른쪽 경업대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능선으로 계속 나아가 비로봉이나 천황봉에서 법주사쪽으로 내려설 수도 있는데, 천황봉까지는 1시간40여분 정도 소요된다. 천황봉에서 상주 장각폭포쪽으로 나있는 길은 아쉽게도 출입금지구간이다. 수려한 석화성의 능선을 감상하려면 경업대쪽으로 향하는 게 좋다. 바위를 깎아서 세워놓은 듯한 입석대의 특이한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갈림길에서 경업대를 거쳐 세심정휴게소까지는 1시간10여분 정도 소요되며, 여기서 포장길을 따라 약 1시간 걸어 나오면 법주사 입구에 닿는다. ●교통 자가용:괴산에서 37번국도→운흥리 갈림길→화북이나 영동·상주에서 지방도로 접근한다. 대중교통:화북행 시외버스는 매일 동서울터미널에서 4회, 청주에서 8회, 상주에서 6회(시내버스) 운행된다. 터미널→화북분소 택시요금 5000원(054-534-7447). 한편 하산하는 법주사 지역에서의 교통편은 전국으로 잘 연결된다. ●민박 및 식당 대체로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화북쪽의 산수장(054-533-8972)과 소나무식당(054-531-2661)이 산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기타 자가용을 가져갈 경우 주차비 4000원외 입장료 1600원을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 고향길에 들러보자! 온천 베스트5

    고향길에 들러보자! 온천 베스트5

    어른과 아이를 확실하게 구분짓는 것이 바로 명절이다. 명절이 즐겁다면 아이, 즐겁지만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어른이다. 그러나 어쩌랴.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낀 세대’의 고달픔은 이겨내야 할 과제인 것을. 모처럼 찾은 고향에서 차례 지내고, 고향 옆 온천이라도 다녀오자.‘산 조상’입가의 웃음꽃이야말로 자손에게 축복이자, 훗날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전국 곳곳에 물 좋기로 소문난 온천도 많다. 좋은 물에 몸 담가 일터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고, 효도도 하자.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올 설날에 꼭 가봐야 할 전국 온천 5곳을 추천한다. 물 좋기로 소문난 신북온천(1577-5009)이 지난 연말 리모델링을 하고, 새로 문을 열었다. 이곳은 중탄산나트륨 온천수로 온천마니아들 사이에 ‘물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 시설까지 새로워지니 금상첨화. 게다가 입장료도 저렴하다.1만 2000원에 수영장, 노천탕, 찜질방(찜복대여료 1000원 별도) 등 모든 시설을 이용한다. 바데풀장에서 수영도 하면서 여러 가지 샤워 시설에 몸을 맡기면 명절피로가 금방 풀린다. 또 한쪽에 있는 15m짜리 미니수영장은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에게 인기. 입장시간은 오전 6시30분∼오후 6시.011 멤버십카드로 한 사람은 50% 할인받을 수 있다. ●멋집 맛집 허브아일랜드(031-535-6494)는 갖가지 꽃향기가 진동하는 곳이다.‘허브 향기가게’ ‘허브빵가게’ ‘허브카페’ 등이 옹기종기 모여 마치 동화나라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한다. 허브 비빔밥(5000원), 돈가스(9000원)가 별미.산정호수(532-6135)는 출렁이는 은빛 수면을 보며 배를 탈 수는 없지만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스케이트와 눈썰매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또 호수 주변을 따라 도는 5㎞의 산책로는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멋이 있다. 포천하면 이동갈비와 막걸리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원조이동제일갈비(531-5368)가 잘한다.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살점에 고소하면서도 달큼한 양념맛. 이동갈비의 감칠맛은 역시 포천에서만 맛볼 수 있다.1인분에 2만 2000원. 파주골손두부(두부요리,532-6590), 용궁마당(황태해장국,531-8080), 가혜정(한정식,536-6969)등도 권할 만하다. 아산은 1300년 온천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대표적인 온천도시로 온양, 도고, 아산온천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산스파비스(041-539-2000)는 온천과 물놀이시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국내 최초의 물치료 개념을 도입한 바데풀은 온천의 수압을 이용, 온몸을 자극한다. 어린이용 슬라이드와 유수풀 등을 갖춘 실외 온천탕은 온천수를 이용해 겨울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노천탕은 황토탕, 레몬탕, 동굴탕 등 이벤트탕으로 짜여 있다. 연잎을 우려낸 백연탕, 술을 탄 아산명주탕 등 웰빙탕도 인기. 어른 1만 5000원, 어린이 1만원. 스파비스 주차장에 만들어진 눈썰매장은 아이들이 좋아한다. 어른 7000원, 어린이 5000원. ●맛집 멋집 세계꽃박물관(544-0746)은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식물원이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향수를 마구잡이로 흩뿌려놓은 듯한 짙은 향이 온몸을 휘감는다. 향수 아닌 꽃냄새이다. 모두 18개의 온실에 전시된 꽃은 1000여종,1000만 송이는 넘는다. 가히 꽃천지라고 할 만하다. 현재는 백합이 한창이다.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어린이 4000원. 입장권 구입시 미니화분도 준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일생기록화인 십경도, 난중일기 등 이순신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현충사(544-2161)도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 좋다. 삽교천방조제 인근 문방리는 예부터 소문난 장어구이촌. 매콤한 양념과 함께 입안에서 살살 녹는 장어의 살점이 일품.4만원짜리 1㎏이면 2∼3명은 충분히 먹을 수 있다.옛날돌집(533∼2241)은 소문난 맛집. 서해는 겨울 숭어가 제철이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속살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서해대교 부근 멧돌포구의 갯마을횟집이 유명하다.(363-8259).㎏에 4만원. 온궁 한방갈비(543-4777), 염치 큰고개식당(541-3391) 등도 괜찮다. 덕구온천(054-782-0677)은 온천공을 뚫지 않고, 자연적으로 솟는 용출수를 그대로 끌어다 쓰는 온천으로 이름 높다. 응봉산 중턱에서 솟아오르는 원탕은 4m 높이로 솟구치는데 하루 용출량이 4000t이나 된다. 용출 온도는 41.8도로 데우지 않고 그대로 쓴다. 덕구온천호텔에 대온천장과 덕구온천스파월드가 있다. 전망좋은 노천탕, 맥반석동굴사우나, 물안마폭포탕, 선탠장 등이 있어 다양한 온천욕이 가능하다. 대온천탕 6000원. 스파월드(수영복 입장) 어른 1만 5000원. 어린이 1만원. ●멋집 맛집 일출 감상지로 유명한 조그마한 항구인 죽변항.SBS-TV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드라마 세트장으로 사용된 교회 건물과 집이 있는데 파도 소리와 어우러진 그림 같은 곳이다. 또한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꼽은 동해안 최고의 경승지 관동팔경(關東八景)중 망양정과 월송정이 있다. 신라 때 창건됐다는 비구니 도량 불영사(054-782-9189)는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죽변항에는 대게가 한창이다. 긴 다리에 꽉 찬 살이 고소한 대게. 언제 먹어도 꿀맛이다. 단 비싼 것이 흠.방파제 1호회집(782-0842)은 풍성한 대게의 맛을 볼 수 있는 집.1인당 2만원이면 오케이. 멍게 해삼 산오징어 등 다양한 반찬과 밥까지 준다. 이밖에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맛있는 산길식당(782-3169), 집에서 직접 만드는 순두부가 유명한 할머니순두부식당(782-6338), 특이한 칼국수를 만드는 옹심이칼국수(788-4144)등도 강추.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051-749-2355)온천은 남녀 실내 사우나와 노천온천,2개의 옥외 수영장, 야외 조깅트랙 등이 자랑이다. 해운대의 싱그러운 파도소리를 들으며 넘실대는 파란 파도를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온천은 물론 이국적인 분위기의 실외수영장은 인기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가격이 좀 부담되지만 연휴의 하루는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런 곳에서 쉬어 볼 만하다. 본관의 옥외온천은 온도가 각기 다른 5개의 탕을 구비하고 있어 가족 누구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입장료 3만 3000원.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멋집 맛집 해운대는 좀 떨어져서 바라보면 더욱 멋스럽다. 동백섬, 밤에 조명으로 아름다운 광안대교, 오륙도 등을 돌아보는 미포 유람선(742-2525)은 어른 1만 2100원, 어린이 8100원. 높이 7m의 산호수족관, 길이 80m의 해저터널 등 최첨단 시설로 무장한 부산 아쿠아리움(740-1700). 어른 1만 4500원, 어린이 9500원.KTX 탑승객 20% 할인(영수증 제시),SK텔레콤 회원에게도 20% 할인해 준다. 바다를 배경으로 둥근 달을 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곳으로 유명한 달맞이고개의 해월정, 고은 최치원 선생의 혼이 서려 있는 동백섬 등은 둘러볼 만하다. 해운대에 들렀다면 꼭 한번 맛볼 만한 음식으로 곰장어짚불구이를 권한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용궁사로 가는 길목의 기장곰장어(721-2934)가 유명하다. 생선뼈에 고춧가루·간장·물엿 등을 넣고 푹 끓여 나오는데 얼큰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뼈찜이 맛있는 선창횟집(747-7470). 생선회를 먹으면 뼈찜은 무료. 전날 과음했다면 한국콘도 옆의 속씨원한 대구탕(744-0238)이 좋다. 보성 해수녹차탕(061-853-4566)은 지하 120m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해수와 전국 제일 차의 고장답게 보성찻잎을 우려낸 녹수를 이용해 그윽한 녹차향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또한 창밖으로 보이는 율포해수욕장과 백사청송 등 남해안의 정취가 색다르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멋집 맛집 보성의 자랑은 역시 차밭(茶園)이다. 보성읍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10여분을 달리다보면 굽이굽이 펼쳐지는 차밭에 탄성이 나온다. 차밭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초록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가는지 모른다. 백제 고찰 대원사는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백제 무녕왕 3년(503년)에 창건되었다. 지장보살, 불교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티벳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특히 주암호에서 절까지 계곡을 낀 7㎞의 구간은 정말 아름답다. 보성은 녹차를 먹인 돼지의 본고장이다.녹차먹인돼지(852-6188)가 유명하다. 녹차잎을 사료에 혼합하여 키운 녹돈은 육질이 연하고 고소하다. 보성양탕(852-2412)은 냄새가 안 나는 암염소에 말린 토란대 등 토속나물을 넣고 20시간을 곤 다음 고춧가루를 넣어 국물맛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다. 바지락회는 행낭횟집(852-8072)이 잘한다. 향기로우면서도 갯내가 물씬 풍기는 바지락회는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최고다.2만원.응봉산 중턱에서 솟아오르는 원탕은 4m 높이로 솟구치는데 하루 용출량이 4000t이나 된다. 용출 온도는 41.8도로 데우지 않고 그대로 쓴다. 덕구온천호텔에 대온천장과 덕구온천스파월드가 있다. 전망좋은 노천탕, 맥반석동굴사우나, 물안마폭포탕, 선탠장 등이 있어 다양한 온천욕이 가능하다. 대온천탕 6000원. 스파월드(수영복 입장) 어른 1만 5000원. 어린이 1만원. ●멋집 맛집 일출 감상지로 유명한 조그마한 항구인 죽변항.SBS-TV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드라마 세트장으로 사용된 교회 건물과 집이 있는데 파도 소리와 어우러진 그림 같은 곳이다. 또한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꼽은 동해안 최고의 경승지 관동팔경(關東八景)중 망양정과 월송정이 있다. 신라 때 창건됐다는 비구니 도량 불영사(054-782-9189)는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죽변항에는 대게가 한창이다. 긴 다리에 꽉 찬 살이 고소한 대게. 언제 먹어도 꿀맛이다. 단 비싼 것이 흠.방파제 1호회집(782-0842)은 풍성한 대게의 맛을 볼 수 있는 집.1인당 2만원이면 오케이. 멍게 해삼 산오징어 등 다양한 반찬과 밥까지 준다. 이밖에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맛있는 산길식당(782-3169), 집에서 직접 만드는 순두부가 유명한 할머니순두부식당(782-6338), 특이한 칼국수를 만드는 옹심이칼국수(788-4144)등도 강추.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051-749-2355)온천은 남녀 실내 사우나와 노천온천,2개의 옥외 수영장, 야외 조깅트랙 등이 자랑이다. 해운대의 싱그러운 파도소리를 들으며 넘실대는 파란 파도를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온천은 물론 이국적인 분위기의 실외수영장은 인기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가격이 좀 부담되지만 연휴의 하루는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런 곳에서 쉬어 볼 만하다. 본관의 옥외온천은 온도가 각기 다른 5개의 탕을 구비하고 있어 가족 누구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입장료 3만 3000원.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멋집 맛집 해운대는 좀 떨어져서 바라보면 더욱 멋스럽다. 동백섬, 밤에 조명으로 아름다운 광안대교, 오륙도 등을 돌아보는 미포 유람선(742-2525)은 어른 1만 2100원, 어린이 8100원. 높이 7m의 산호수족관, 길이 80m의 해저터널 등 최첨단 시설로 무장한 부산 아쿠아리움(740-1700). 어른 1만 4500원, 어린이 9500원.KTX 탑승객 20% 할인(영수증 제시),SK텔레콤 회원에게도 20% 할인해 준다. 바다를 배경으로 둥근 달을 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곳으로 유명한 달맞이고개의 해월정, 고은 최치원 선생의 혼이 서려 있는 동백섬 등은 둘러볼 만하다. 해운대에 들렀다면 꼭 한번 맛볼 만한 음식으로 곰장어짚불구이를 권한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용궁사로 가는 길목의 기장곰장어(721-2934)가 유명하다. 생선뼈에 고춧가루·간장·물엿 등을 넣고 푹 끓여 나오는데 얼큰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뼈찜이 맛있는 선창횟집(747-7470). 생선회를 먹으면 뼈찜은 무료. 전날 과음했다면 한국콘도 옆의 속씨원한 대구탕(744-0238)이 좋다. 보성 해수녹차탕(061-853-4566)은 지하 120m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해수와 전국 제일 차의 고장답게 보성찻잎을 우려낸 녹수를 이용해 그윽한 녹차향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또한 창밖으로 보이는 율포해수욕장과 백사청송 등 남해안의 정취가 색다르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멋집 맛집 보성의 자랑은 역시 차밭(茶園)이다. 보성읍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10여분을 달리다보면 굽이굽이 펼쳐지는 차밭에 탄성이 나온다. 차밭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초록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가는지 모른다. 백제 고찰 대원사는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백제 무녕왕 3년(503년)에 창건되었다. 지장보살, 불교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티벳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특히 주암호에서 절까지 계곡을 낀 7㎞의 구간은 정말 아름답다. 보성은 녹차를 먹인 돼지의 본고장이다.녹차먹인돼지(852-6188)가 유명하다. 녹차잎을 사료에 혼합하여 키운 녹돈은 육질이 연하고 고소하다. 보성양탕(852-2412)은 냄새가 안 나는 암염소에 말린 토란대 등 토속나물을 넣고 20시간을 곤 다음 고춧가루를 넣어 국물맛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다. 바지락회는 행낭횟집(852-8072)이 잘한다. 향기로우면서도 갯내가 물씬 풍기는 바지락회는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최고다.2만원.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도토리’ 발음 가상문자로? 수능 이색문제들

    ‘도토리’ 발음 가상문자로? 수능 이색문제들

    17일 치러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창의성을 요구하거나 실생활과 연관된 문항들이 보였다. 타성적인 공부습관에 허를 찌르는 이색 문제도 선보여 눈길을 끌었지만, 착실히 공부한 수험생이라면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퇴계 이황이 조지훈 수필에 발문(跋文)을 쓴다면? 언어영역의 ‘생활·언어’지문에서는 ‘도토리’의 발음을 가상의 새로운 문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묻는 문항이 나왔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도, 토, 리 라는 발음에 따라 문자로 배열하는 것이 과제였다. 음운 문자와 자질 문자의 특성을 반영해 새로운 가상문자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과학고 입시문제와 비슷했다. ‘도산십이곡’을 지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조지훈 시인이 쓴 수필 ‘멋설(說)’을 추천하는 글을 써보게 한 문항도 눈길을 끌었다. 또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작가 이효석의 특성이 드러날 수 있는 문학제 초청장을 선택하는 문항은 새로운 형식의 출제라고 평가됐다.‘판유리 생산공정의 혁신과정’을 서술한 기술 관련 지문도 제시됐다. 사회 지문에서는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 미국 대선의 선거보도 효과를 묻는 문항이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 듣기 평가 지문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로 시작되는 만화영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한·일 양국 가사를 비교하는 문제가 나와 수험생을 잠시 웃음짓게 했다. 수리영역은 인문계인 ‘나형’에서 총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의 예측 시기를 묻는 시사 문제가 나왔다.‘나’형 22번은 수열의 규칙성을 찾고 행렬을 만드는 일반적인 문제에 비해 행렬의 성분의 합이 수열을 이룬다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남편은 면도기, 딸은 리모컨, 엄마의 정체는? 외국어영역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측정하는 통합교과형과 시사적인 문제가 나왔다.‘태풍 피해’와 ‘화성 대접근’이 출제됐다. 듣기 문항에서는 대화를 듣고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문제가 나왔다. 기존의 언어영역에서 많이 출제됐던 글의 순서를 배열하는 문항도 나왔다. 두 지문을 하나의 지문으로 요약하는 문제는 다소 어려웠다는 평가이다. 어휘력과 문법 지식이 동시에 필요했던 23,24번 문항도 까다로웠다. 특히, 지문에서 ‘adopt/adapt’‘economic/economics’ 등 철자가 비슷한 단어의 의미와 올바른 문법적 쓰임새를 파악하고 있는지를 동시에 요구했다. 충전지를 의인화해 면도기(shaver) 남편과 사진기(snapshot)인 아들, 리모컨(remote)인 딸을 소개한 뒤 정체를 맞히는 문제도 출제됐다. 사회·과학탐구 영역은 지난해처럼 도표와 지도, 그래픽을 활용한 시사 문제가 많이 눈에 띄었다. 정치에서는 올해 4·15 총선에서 처음 실시된 정당명부제와 관련된 문제가 전체 20문항에서 2개나 출제됐다. 한국지리는 지역별 대표 산업을 예시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특화산업 육성의 장점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세계지리는 이라크 전쟁을, 한국 근·현대사는 동북공정과 간도 문제 등 중국과 영토분쟁이 시의적절하게 출제됐다. 윤리는 인간 배아 복제 실험과 양성 평등, 법과 사회에는 호주제가 출제됐다. 화학Ⅰ은 수돗물의 정수 과정을 수영장의 물의 소독이나 두부의 제조 방법과 연관시켰고, 생물Ⅰ은 생활하수처리, 물리Ⅱ는 컴퓨터 자판의 원리를 묻는 등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도 꽤 출제됐다. ●수험생들 “이런 문제 까다로웠다” 오산고 서모(18)군은 “고전을 연계시킨 이황과 조지훈의 복합지문이 철학적이어서 어려웠다.”고 말했다.EBS 언어영역에서 다뤄진 최치원의 ‘최고운전’도 2개의 지문을 제시해 특이했다는 반응이다. 서울고 장보성 국어교사는 “척추동물의 호흡계 진화과정을 물은 과학지문도 다소 까다로웠다.”고 지적했다. 수리영역인 ‘가형’에서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안타까워하는 수험생들이 많았다. 재수생 김모(20)군은 “새로운 유형으로 느껴지는 문제가 전체의 20%정도 됐고 난해한 계산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고 유충균 수학교사는 “가형에서 연속함수와 가우스를 다룬 10,11번 문항은 평소 수험생들이 접하기 어려운 문제로 미적분, 함수, 급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배화여고 이철희 진학부장은 “가형에서 새로운 유형이 등장했지만 난이도가 아주 높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경고 박모(18)군은 “외국어 영역은 문법과 어휘 문제가 특히 어려웠고 지문 전체에서도 낯선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고 전했다. 서울과학고 이모(18)군은 “개념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문제가 아닌 단순 암기성 문제도 있었다.”면서 “열 경화성 수지의 재활용을 묻는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혹스러워했다. 안동환 박지윤기자 sunstory@seoul.co.kr
  • 낙엽길따라 - 선암사 · 남이섬 · 상림

    낙엽길따라 - 선암사 · 남이섬 · 상림

    지는 가을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가을색 짙은 목소리가 매력 만점인 가수 최헌의 노래가사처럼 그리움이 눈처럼 쌓이는 곳으로 말입니다. 어디 그리움뿐이겠습니까. 그 곳에선 정말 새털처럼 가벼운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이 바싹 마른 이파리가 되어 팔랑팔랑 굴러다녔습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운 양 애처롭게 처진 중년 남성의 서러움도, 야윈 늦가을 햇살을 쪼이는 노인의 쓸쓸함도 하나 둘 내려앉고 있었구요. 그래도 눈처럼 쏟아져 날리는 이파리들은 팍팍한 일상을 사느라 헛헛해진 가슴속을 푸근히 채워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소담스럽게 쌓인 샛노란 은행잎을 하늘 높이 뿌리며 동화를 꿈꾸고 있었지요. 호젓한 선암사 오솔길과 함양 상림, 그리고 춘천 남이섬. 지는 가을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세 곳으로 안내합니다. 글 사진 선암사·남이섬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선암사 11월 늦은 오후에 찾은 선암사엔 반쯤 진 가을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1500년 연륜의 고즈넉한 사찰 뒤로 얼기설기 난 오솔길은 아직 단풍 반 낙엽 반. 바람이 불 때마다 쏟아져 내리는 낙엽에 ‘어머 어머!’하고 여자들의 탄성이 터진다. 역시 남자보다는 여자의 감수성이 예민한가 보다. 선암사 뒤 낙엽 산책길은 대략 네 갈래다. 선암사∼운수암, 삼인당∼대승암, 매표소∼삼인당 그리고 선암사∼송광사 코스 등. 각각 독특한 운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삼인당∼대승암 길로 가보자. 인공연못인 삼인당 갈림길에서 왼쪽의 대승암·송광사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삼인당(三印塘)은 길쭉한 알 모양의 인공연못이다.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가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알속의 노른자처럼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두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삼인당 주위의 붉게 물든 단풍, 그리고 낙엽이 수면을 덮은 풍광이 제법 화사하다. 부도탑을 지나 왼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옹달샘과 함께 낙엽길로 들어선다. 여기서 직진하면 대승암, 오른쪽의 큰 길을 따라가면 송광사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대승암으로 이어지는 낙엽 오솔길은 약간의 오르막이다. 길 왼쪽으로 하늘 높이 솟은 삼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들리는 것은 사각사각 밟히는 낙엽소리뿐. 암자까지 외길인지라 등산객을 만나기 어려워 더욱 호젓하다. 선암사∼운수암길은 선암사 오른쪽으로 나 있다. 강선루를 막 지나면 나오는 첫번째 부도탑에서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가면 된다. 이미 황갈색 낙엽이 길을 뒤덮고 있다. 5분쯤 비탈길을 올라가니 운수암에 닿는다. 새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암자. 암자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만추의 절정을 보여준다. 양지쪽이어선지 맞은편 산등성이는 아직 오색단풍이 한창이다. 암자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마치 불타는 단풍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다. 매표소∼삼인당 길은 선암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곳으로 가장 널찍하다. 왼쪽 아래는 맑고 투명한 계곡. 조계산을 붉게 물들였던 가을이 계곡물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발걸음은 승선교 앞에서 자연스럽게 멈춘다. 승선교는 선암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곳. 자연석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 모양의 다리다. 다리 일부에 균열이 생겨 지난 1년여간의 해체 보수를 거쳐 최근 제모습을 찾았다. 승선교(昇仙橋)는 글자 그대로 신선이 하늘로 오를 때 발을 디딘다는 다리. 반대로 승선교 앞에 버티고 서 있는 2층 높이의 강선루(降仙樓)는 신선이 내려온 누각이라고 한다. 승선교 아래엔 항상 사진작가들이 다리 아래서 올려다보이는 선암사 풍광을 잡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조계산 능선을 넘어 송광사까지 가는 낙엽 트레킹에 도전해 보자. 선암사∼선암굴목재∼송광굴목재∼송광사 등의 순으로 대략 8.5㎞쯤 된다. 단풍과 낙엽의 운치를 즐기며 천천히 걸으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자동차를 가져왔다면 길을 되짚어 오거나 송광사에서 택시를 타고 선암사 주차장까지 와야 한다. 왕복 트레킹에 5시간은 족히 걸린다.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빠져 22번 국도와 857번 지방도를 차례로 탄 뒤 선암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나들목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선암사 주차장에 닿는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순천역에서 내려 1번 또는 100번 시내버스를 타면 선암사까지 갈 수 있다. 선암사 아래 길상식당(061-754-5599)의 한정식이 깔끔하고 맛도 괜찮다.3인 기준 1인 1만 2000원. 장원식당(754-6362)의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5000원. 주변에 새조계산장(751-9200), 산암장여관(754-5666) 등 여관이 많다. ■남이섬 이번이 세 번째다.20년 전 대학시절 여름 MT 왔던 게 첫번째, 지난 여름 확 달라졌다는 남이섬을 확인하러 온 게 두 번째다. 처음 왔을 때는 인공숲이 빈약해 그저 널찍한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던 생각밖에 안 난다. 지난 여름에 와선 거대한 숲의 섬으로 변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참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남이섬의 진수는 이번 세번째 나들이에서 본 것 같다. 단풍이 반쯤 진 남이섬. 연인들이 걷는 오솔길이든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이든 땅바닥은 그야말로 오색 도화지다. 나무를 떠난 이파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11월의 오후. 짧아진 가을햇살에 고목이 긴 그림자를 벗한다.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는 듯한 노부부, 날아갈 것처럼 숲길을 누비는 10대,20대 커플, 자전거를 타고 바람같이 내달으며 쌓인 낙엽을 날리는 아이들. 남이섬은 신기하게도 이처럼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품는다. 반달 모양의 남이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400여m의 잣나무 길. 늘푸른 잣나무는 녹슨 꼬마열차 궤도를 벗한 채 아직도 여름을 꿈꾼다. 잣나무 길 양쪽으로 널찍한 잔디밭이 이어지고, 그 너머엔 갖가지 단풍나무들이 오색찬란한 가을빛을 내뿜는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은 잣나무 길과 연결되는 십자로의 오른쪽에 있다. 황갈색 옷으로 갈아입은 메타세쿼이아 터널 너머로 햇빛에 반사된 강물이 하얗게 넘실댄다.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와 잣나무길엔 ‘연인들의 산책로’란 이름이 붙었다.80년대 중반 젊은이들의 눈물샘을 꽤나 자극했던 영화 ‘겨울나그네’가 촬영된 곳. 추풍낙엽이라고 했던가. 느낄듯 말 듯한 가벼운 바람도 버티지 못하고 은행잎이 쏟아져 내린다. 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낙엽비.2인용 자전거를 타고 샛노란 비를 맞는 연인들의 연가가 아름답다. 섬 동쪽으로 이어지는 강변 산책로엔 튤립나무와 자작나무숲이 이국적 자태를 뽐낸다. 숲 사이로 자리잡은 삼각형 모양의 방갈로 지붕위로 단풍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간간이 놓인 나무벤치는 어김없이 연인들의 차 지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오솔길은 남이섬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 은행잎은 벌써 7할쯤, 단풍잎은 반쯤 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번쯤은 멈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숲속은 동물들의 세상이다. 아이들의 뜀박질에 화들짝 놀란 청설모들이 잽싸게 기어올라간다. 잿빛 토끼 한 마리는 멀찌감치서 잔뜩 긴장한 자세로 사람들을 주시한다. 국도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청평읍, 가평을 거쳐 경춘주유소 4거리에서 우회전해 2.4㎞ 정도 들어가면 남이섬 선착장이 나온다. 주차료는 4000원, 도선·입장료를 합해 왕복 5000원(어린이 2500원). 드라마카페 ‘戀家之家(연가지가)’의 ‘옛날 벤또 도시락’은 남녀노소, 특히 연인들이 좋아하는 메뉴. 양철 사각 도시락통에 밥을 담고, 그 위에 김치와 계란 프라이를 얹어 뚜껑을 덮은 뒤 연탄난로 위에서 데워 먹는다. 먹기 전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도시락을 들어 사정없이 흔드는 게 ‘요리’의 포인트.4000원. 문의 남이섬 관리사무소 서비스센터(031-582-5118). ■상림 경남 함양 상림(上林)은 ‘낙엽의 천국’이다. 산도 아닌 벌판 한 가운데를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가득 덮고 있는 곳. 여름이면 하늘을 가려 한 줌 햇살도 허용치 않을 만큼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지금은 반쯤 졌다. 숲 가운데의 큰 길은 물론 사이사이 난 오솔길은 온통 낙엽 천지. 길이 아닌 숲속으로 들어가니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더미가 부스럭거리며 낯선 손님을 경계한다. 상림은 1100여년 전 조성된 인공활엽수림이다. 통일신라 말 진성여왕 때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함양의 옛이름) 태수 부임후 조성했다고 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던 위천(渭川) 범람을 막기 위한 호안림(護岸林)이다. 당시 심은 나무들이야 늙어 죽었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대를 이어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귀중한 활엽수림으로 남았다. 상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활엽수림이다. 당시엔 상림과 하림을 합쳐 6만여평이었으나, 지금은 길이 1.4㎞, 폭 200m,2만 7000여평만 남아 있다. 상림엔 수십년에서 수백년 수령의 11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졸참나무, 느티나무, 팥배나무, 사람주나무, 감나무 등이 주요 수종. 나무의 종류가 다양하고 굵기도 제각각이어서 통일신라 때 조성됐던 숲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낙엽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참나무 계통은 떨어질 때부터 갈색이지만, 느티나무나 감나무 이파리는 떨어진 뒤에도 마르기 전까지는 붉거나 노란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인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나보다. 어른들에겐 사색의 대상인 낙엽도 아이들에겐 그저 놀이의 수단일 뿐. 두 손 가득 낙엽을 집어 뿌려대는 아이들 표정에 천진함이 넘친다. 상림엔 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울과 군데군데 세워진 함화루,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들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숲 한편엔 최치원 신도비와 척화비 등 함양에서 선정을 베푼 위정관들을 기리는 비석들을 모아놓았다. 또 최치원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 김종직 등 함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대학자 11명의 흉상을 세워놓은 인물공원이 조성돼 있다.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IC 표지판이 보이면 빠져나와 우회전해 5분쯤 가면 함양읍이다. 가던 길로 직진해 읍내를 지나가면 위천이 나온다. 위천을 건너기 전 우회전해 천변 도로를 5분쯤 달리면 상림과 만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까지 고속버스가 5회 출발한다. 함양읍에서 택시를 타면 상림까지 기본요금에 간다. 상림 주변 및 함양읍내에 별궁장여관(055-963-9241∼3), 상림장여관(055-963-1170) 등 여관이 많다. 상림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거창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안의면사무소 소재지가 나온다. 안의고추갈비찜으로 유명한 곳. 매콤달콤하면서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옛날할머니 갈비식당’(055-962-0163) 등 갈비찜을 내는 식당이 도로변에 늘어서 있다.1접시 2만 5000원(2인)∼3만 5000원(3인).
  • 부산의 맛·볼거리-해운대

    부산의 맛·볼거리-해운대

    ■ 낭만의 비치 걸어볼까 “푸른 물결 춤을 추고 물새 날아드는 해운대의 밤은 또 그렇게 지나가는데 솔밭길을 걷던 우리들의 사랑 얘기가 파도에 밀려 사라지네….”‘해운대 연가’처럼 부산을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운대에서 얽힌 아련한 추억 한편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해운대 해변을 중심으로 가깝게는 걸어서 10분,멀게는 택시로는 기본요금(1500원) 거리에 동백섬,달맞이고개,미술관,카페 등 볼거리가 많다.아직 해운대에 가보지 못했다면,이번 기회에 해운대에서 아름다운 추억 한편을 엮어보자. ●해운대 유람선 해운대 해변 동쪽 끝에 미포유람선 선착장(742-2525)이 있다.동백섬까지는 7.42㎞.야경이 아름다워 부산의 명물로 자리잡은 ‘광안대교’와 밀물 때는 6개로,썰물 때는 5개의 작은 섬으로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륙도’를 돌아보는 유람선에서의 1시간도 부산 즐기기에 제격이다. 출발시간은 1시간 간격.어른 1만 2100원,소인 8100원.밤 10시까지 유람선이 운행한다.바다에서 바로 본 도심 야경이 더욱 이색적이다. ●부산 아쿠아리움 해운대 해변 중간 지하에 위치한 이곳은 3000t 규모의 메인 수족관,높이 7m의 산호수족관,크고 작은 테마별 수족관과 길이 80m의 해저터널 등 최첨단 시설로 짜여 있다.세계 바다에 서식하는 400여종 3만 5000여 마리의 해양생물을 볼 수 있다.어른 1만 4500원,어린이 9500원.KTX 탑승객 20% 할인(영수증 제시),SK텔레콤 회원도 20% 할인해 준다.740-1700. ●동백섬 해운대 서쪽 끝 웨스트 조선호텔 뒤편에 있다.해운대(海雲臺)라는 이름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아름다운 이곳 풍경에 반해 자신의 자(子)인 ‘해운(海雲)’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먼 옛날엔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와 연결돼 더 이상 섬이 아니다.입구부터 하늘로 멋지게 뻗어 올라간 해송을 따라 10분을 걸으면 최치원 동상과 기념비가 있는 동백공원이 나온다.동백섬을 한 바퀴 산책삼아 돌아보는 데 20분이면 충분하다. ●달맞이고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와 갤러리들이 있는 곳,고개 정상에는 ‘해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우리나라에서 월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연인과 어깨를 맞대고 바다에서 솟는 달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스럽게 내일을 약속하게 된다.사랑을 고백하기도 좋은 곳이다. 고갯길로 내려오면 멋진 카페들이 즐비하다.언덕위의 집(743-2212)은 통나무로 운치 있게 지은 건물과 주변의 수목이 어우러져 마치 숲속에 온 듯 기분이 좋아진다.안심 스테이크 2만원,닭고기와 치즈를 올린 감자요리 8000원.전망좋은 방(746-4323)은 화이트 컬러의 모던한 외관과 해송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일품이다.후식을 포함한 해물리조토(볶음밥) 1만 4000원,치즈와 빵을 얹은 스파게티 1만 6000원.로즈몽드(743-6999)는 비오는 날이 더 멋지다.샐러드와 후식을 포함한 오븐 그라탕이 1만 3000원. 달맞이고개에 있는 추리문학관(743-0480)은 독서와 휴식에도 손색이 없는 공간이다.‘여명의 눈동자’를 쓴 김성종씨가 만들었다.입장료 4000원만 내면 커피 등 음료까지 대접받을 수 있다.1층에서는 신문과 잡지를,2∼3층에서는 3만여 권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다. 또한 달맞이고개와 해운대에는 크고 작은 화랑과 갤러리가 많다.잠시 들러 그림에 취해 보는 것은 해운대를 찾은 덤이다.수남갤러리(747-1765),여신갤러리(747-2588)뿐 아니라 갤러리엘사(747-1555),부산비엔날레가 한창인 부산시립미술관(744-2602)도 들러 볼 만하다. ●해운대 여행 팁 해운대에 가면 반드시 찜질방에 들를 것.특급호텔과 견줘 손색없을 정도의 시설이다.다만 소지품 보관에 주의할 것.베스타 온천(743-5705)은 달맞이공원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5층 노천온천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끝내준다.노천에선 수영복을 지참해야 한다.요금은 8000원,저녁 9시 이후 1만원.부산국제영화제 관련 ID카드나 영화관람권을 소지한 사람은 평일 30%,주말10% 할인.비치레저텔(742-3336)은 해운대 동쪽끝인 미포선착장 옆에 있어 휴게실에서 광안대교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입장료 7000원,저녁 9시 이후 9000원.SK텔레콤 카드 50%,LG텔레콤 카드 2000원 할인. ■ 며느리도 모를 이맛 보이소 부산 해운대에 들렀다면 꼭 한번 맛볼 만한 음식으로 곰장어짚불구이가 있다.짚불구이를 하는 곳은 부산 기장군 공수마을이지만 해운대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181번 시내버스를 타면 5∼10분 거리다. ‘먹장어’가 표준말이지만 부산·경남 일대에선 곰장어나 꼼장어로 통하며,이렇게 불러야 제맛이 나는 듯하다.공수마을은 곰장어짚불구이 집성촌이지만 원조는 송정해수욕장에서 용궁사로 가는 길목의 기장곰장어(721-2934).가장 전통적인 곰장어 구이는 볏짚에 불을 붙인 다음 곰장어를 올려 구워 먹는 방식이다.곰장어는 눈이 없고 징그럽게 생겨 과거엔 모두 버렸던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기장곰장어 주인 김영근씨는 “150여년 전 기장의 어른들이 춘궁기에 곰장어를 짚불에 던져 구워 먹으니 맛이 좋아 음식으로 본격 개발됐다.”고 말했다. 곰장어를 짚불에 구우면 껍질이 시꺼멓게 탄다.이를 하얀 면장갑을 끼고 가운데를 잡고 양쪽 끝으로 당기면 검은 껍질이 벗겨지면서 햐얀 속살이 나온다.잔뼈가 없고 등뼈는 연골처럼 부드러워서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쓸개와 내장까지 다 들어 있어 약간 쌉싸래한 맛도 돌아 식욕을 돋운다. 짚불구이를 할 때 생솔잎도 함께 넣어 구워 먹는 솔잎구이도 좋다.솔향이 배어 한 맛이 더 난다.김씨는 이런 조리법으로 지난 2000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짚불구이를 먹기가 꺼림칙하다면 양념구이를 권할 만하다.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 곰장어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양파·깻잎·파 등을 넣고 맵싸하게 양념해 프라이팬에서 구워 먹는 것이다. 곰장어는 살아 있는 상태에선 너무 질겨 회가 되지 않는다.그래서 회 대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된장을 풀어 삶은 곰장어다.통째로 초장에 찍어 먹으면 졸깃하고 쫀득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곰장어숙회로 볼 수 있다.곰장어는 1㎏에 3만원.2명이 즐길 수 있다. 공수마을 쪽으로 넘어갈 시간이 없다면 해운대해수욕장의 동쪽 끝인 한국콘도를 지나 선창횟집(747-7470)에 들러도 좋다.회는 1인당 2만∼2만 5000원 정도 한다.이집의 특징은 뼈찜.생선회를 먹고 나면 나오는 생선뼈를 고춧가루·간장·물엿 등을 넣고 푹 끓여 나오는데 얼큰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다.생선 대가리에 붙은 살을 모아 튀긴 살튀김도 좋다.뼈찜과 살튀김 모두 무료다. 선창횟집에서 10여m 더 들어가면 미포회센터(731-0017)가 나온다.조그마한 포구인데 미포어촌계 소속 어부들이 직접 잡아온 잔 고기를 고르는 것이 요령.광어나 우럭처럼 큰 고기는 대체로 양식이지만 도다리,게르치,전어 등 작은 물고기는 자연산이다.시장 상인들이 회까지 떠주는데 한 사람당 1만원,양념과 매운탕·식사를 포함해 1인당 1만원 정도 별도 지불해야 한다. 전날 과음했다면 한국콘도 옆의 속씨원한 대구탕(744-0238)은 속을 달래는 데 그만인 집이다.주인 김응각씨는 “우린 멸치나 다시마 등 다른 것은 넣지 않고 냉동 대구만을 우려낸 육수를 쓴다.”고 말했다.한 그릇에 6000원.복국으로 해장하려면 해운대구청 가는 길목의 금수복국(742-7749)도 괜찮다.창업자 이봉덕 할머니가 복국을 오랫동안 우려 내기 위해 뚝배기에 담아내기 시작한 뚝배기 복국 원조집이다.해장에는 매운탕보다는 맑은탕(지리)이 괜찮다.가장 싼 은복지리의 경우 8000원.이외에도 복전골과 복불고기,복수육,복 코스요리 등이 있지만 가격이 만만찮다.이웃의 소문난 대복집(746-0631)도 성업 중이다.은복지리와 매운탕이 7000원이고 복수육과 복불고기가 2만 5000원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내버스 31번 종점인 리베라호텔 뒤쪽의 원조할매국밥(746-0387)도 좋다.올해 42년째로 뿌리 깊은 맛집이다.쇠고기국밥 한 그릇에 2500원.밥과 국이 따로인 따로국밥은 3000원.6년째 같은 가격이다.식당이 허름하고 가격도 싸지만 맛도 싸구려일 것으로 생각하면 크게 오산한 것이다.선지와 무가 많이 들어가 구수하면서 잡맛이 없다. 이외에도 해운대 소문난 암소갈비(746-0033)는 한우 암소만 고집하고 있으며,인근의 기장식당(743-4844)의 가자미 찌개가 가정식처럼 깔끔하다.
  • [책꽂이]

    ●하디 보이즈(매트 하디 등 지음,성민수 옮김,은행나무 펴냄) 프로레슬링의 본산인 미국에서 한해 4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며 매주 1800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WWE.이 프로레슬링은 ‘로’와 ‘스맥다운’이란 양대 프로그램으로 레슬마니아들의 성원을 한 몸에 받고 있다.오프 시즌 없이 1년 내내 13개 언어로 100개국 이상에 방영되는 WWE는 이제 전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현상이 됐다.이 책은 지상에서 가장 세련된 폭력의 예술가란 평을 들은 전설의 태그팀 ‘하디 보이즈’의 이야기를 통해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1만 2800원. ●억눌려온 자들의 존재증명(간호윤 지음,이회 펴냄) 한국 고소설 비평에 관한 단상을 담았다.고소설은 언패(諺稗)로도 불린다.언패는 언문으로 된 패관소설이라는 뜻으로, 특히 국문소설만을 가리키기도 한다.국문학자인 저자는 고소설은 조선시대 내내 괴이하고 불경스럽다는 뜻의 괴탄불경지서(怪誕不經之書)로 박대당하고 오라지워져 왔다고 주장한다.9500원. ●길이 멀어 못갈 곳 없네(이동식 지음,어진소리 펴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는 중국 곳곳에서 우리 선조들의 활약상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다.고선지,혜초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은 물론 지장보살의 화신 김교각,산동의 패자 이정기,흥교사의 원측법사 등 일반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선조들도 적지 않다.이 책은 그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한편 중국인의 역사관과 민족관과 국가관도 면밀히 살핀다.제목은 신라 최치원의 “무릇 길이 멀다 해도 못가는 곳 없고,나라가 다르다고 못 갈 나라가 없다.”라는 문장에서 따왔다.1만원.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김지석 지음,교양인 펴냄) 미국 강경 보수세력의 몸체를 이루는 기독교 근본주의,즉 기독교 우파와 네오콘의 실체를 밝혔다.네오콘은 1960∼70년대 이후 전통적인 보수파를 비판하면서 부상한 새로운 보수파.이들은 자신을 “문화적 전통주의와 민주적 자본주의,미국의 이익을 전세계에 확산시키는 대외정책을 추구한다.”고 말한다.기독교 우파는 미국 특유의 정치 사회 세력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복음주의자,특히 회심 개신교도가 주도 세력이다.국제문제 전문기자인 저자는 “네오콘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여론조작에 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한다.1만 4000원.˝
  • [이런 책 어때요]

    ●어느 인문학자의 문화로 읽는 중국/박영환 지음 중국인들은 돈과 숫자에 밝다.“나는 공산당도 부처님도 믿지 않는다.오로지 믿는 것은 돈뿐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가 하면,정부는 3·6·8·9 등 길한 숫자가 들어간 자동차번호판을 경매에 부치기도 한다.중국인들은 또한 도시의 환경미화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이에 대해 저자(동국대 중문과 교수)는 “군자가 사는 곳에 어디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란 구절을 인용해 설명한다.중국인들의 습성의 바탕엔 외부 환경보다는 인품을 강조하는 유교사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인의 의식과 문화현상을 면밀히 살폈다.9000원. ●체 게바라/일다 바리오 등 지음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르네스토(체의 본명)는 의학도로서 순탄한 청년시절을 보냈다.하지만 그는 의사시험을 치른 뒤 돌연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라틴 아메리카 곳곳을 여행했다.이 여행이 운명을 갈랐다.그는 페루 나환자촌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정치적 긴장감이 감도는 과테말라를 돌면서 미국에 종속된 현실과 마르크스 주의에 눈떴다.1956년 그는 쿠바에 도착,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지대에서 게릴라들을 모집하고 무장투쟁을 벌여나갔다.그는 ‘쿠바의 두뇌’로 불렸다.1만 5000원. ●시간 속으로 사라진 역사의 비밀을 찾아서/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엮음 분열된 중세유럽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됐지만 교회와 결탁해 자유를 앗아간 잔혹한 전제군주라는 비판을 받은 카를 대제,십자군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2700명에 이르는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했던 잔인한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격동적인 삶을 산 영국의 다이애나비와 곧잘 비교되는 오스트리아 왕비 시시….시각에 따라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시간 속에 묻힌 사건들은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독일 ZDF방송국의 역사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엮은 이 책에서 역사와 진실의 오묘한 함수관계를 밝힌다.2만원. ●미켈란젤로/앤서니 휴스 지음 미켈란젤로의 예술은 탁월한 드로잉 실력에 토대를 두고 있다.그의 회화들은 실제 크기의 밑그림 없이 그려진 게 거의 없다.그런 점에서 흔히 색채에 바탕한 베네치아 화파의 티치아노와 비교된다.피렌체의 드로잉(디세뇨)과 베네치아의 색채(콜로레)의 싸움은 수세기 동안 핵심쟁점이 됐다.이 미켈란젤로 입문서에서 예술사가인 저자는 새로 청소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예로 들어 미켈란젤로의 색채적 상상력은 베네치아 화파와 다름을 밝힌다.또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16세기 유화들보다도 더 ‘회화적’인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2만 6000원. ●역사속의 우리 다인(茶人)/천병식 지음 우리에겐 유구한 차문화의 전통이 있다.신라 선덕여왕 때에도 차를 즐겼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이 책은 신라의 명문장 고운 최치원에서 현대적인 다학을 정립한 효당 최범술에 이르기까지 우리 차문화의 텃밭을 일군 20인의 이야기를 다룬다.우리 민족의 차문화는 고려시대에 절정을 이뤘지만,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에 들어 점점 쇠퇴의 길을 걷는다.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차문화는 중흥기를 맞게 된다.그 중심엔 다성(茶聖) 초의선사와 다산,추사 등이 있다.이들이야말로 한 잔의 차로 마음을 다스려 천하를 얻은 이들이다.1만 5000원.˝
  • [고시휴게실] 삼국시대 ‘공무원’ 이렇게 뽑았다

    ‘삼국시대’에는 관료사회를 귀족 등 특수계층이 차지하는 전형적인 계급사회였다.당시에는 지금과 비교하면 원시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나름대로 선발의 원칙은 존재했다.‘천거제’와 ‘독서삼품과’가 대표적인 제도다. 삼국시대 전반기의 관료 채용방식은 ‘천거제’였다.신라,고구려가 이 제도를 시행했으며,왕은 외침 등의 국난을 맞으면 신하들에게 ‘현량(賢良)과 현자(賢子)를 천거하라.’고 명을 내리곤 했던 것으로 각종 문헌은 기록하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계급제를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쓴 제도”라면서 추천방식은 참여 정부가 운영하는 ‘삼고초려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乙巴素),달가(達賈),고노자(高奴子) 등이 천거제로 등용된 것으로 고구려 본기는 전한다. 이들은 단계적인 승진절차를 밟지 않고 일약 고위직에 올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신라의 경우도 삼국통일 과정,지배체제가 국왕 중심으로 바뀌면서 유교주의 통치이념을 갖춘 관료가 필요했다.그래서 생겨난 관료등용 제도가 화랑도와 국학이다. 이곳에서 골품제를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를 추천하는 ‘천거제’가 시행됐다.통일 전에는 주로 화랑도,통일 후에는 국학에서 유학을 배운 귀족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다.무관보다 문관이 더 필요했다는 얘기다. 국학에는 진골과 6두품 자제들이 입학해서 9년 동안의 수학과정을 거쳤다.논어와 효경은 필수이고 예기,문선,춘추좌씨전 등을 배운 뒤 실력에 따라 ‘상품’‘중품’‘하품’으로 나눠져서 관직에 들어갔다. 이른바 ‘독서삼품과’라는 공무원 채용시험이다.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면 ‘초탁(超擢)’으로 등용됐다고 한다. 이런 과거제도는 중국에서 본떠 온 것이지만,신라의 독서삼품과는 중앙집권화가 되면서 신라 자체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생겨났다. 이들은 보통 17관등 가운데 10∼11관등에 채용됐다.진골 출신은 늘고 관직은 제한됐기 때문에 진골들도 선호했다.당시에는 관직을 받을 때 가문 등 출신 배경이 가장 기본적인 배경으로 작용했고,학업성적은 그 다음이었다. 신라 말기에 접어 들어 귀족들이 늘어나면서 등용도 한계에 부딪혔다.6두품 귀족계층에서 최치원 등 당나라 유학파가 늘었고,이후 중국을 유학한 귀족이 10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조덕현기자 hyoun@˝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3)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상)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3)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상)

    누군들 고통속에 머무르고 싶은 이가 있겠는가. 지금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고요한 평온을 누리고 싶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느니,아주 드물게는 이대로 영원했으면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그때는 순간으로 짧은 것. 비록 짧게였지만 깊게 느껴졌던 그 순간을 맛본 사람은 자주 꿈을 꾸느니.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에 대하여 꿈 꾸느니. 오늘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배우러 또 길을 떠난다.길은 경남 하동 섬진강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푸른 전설과 향기짙은 신화의 몸 위로 흘러간다.언제 걸어도 새로운 길이다.길에서 만난 바람에게 묻는다.하동의 옛 일과 옛 사람을 묻는다.옛 사람 가운데서 노랫말 없는 노래를 소리로 부르면서 근심걱정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쳤던 쌍계사 혜소(慧昭,774∼850) 스님 소식을 묻는다. 그 스님이 말했던가,노래했던가.노래한다는 것은 뭍 새들 우는 소리,뭍 벌레들 우는 소리,바람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빗소리,아 서리내리는 소리 속으로,숨어 흐느껴 우는 외로운 사람 울음소리 속으로,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마음으로 우는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 한몸이 되는 것이라고.가서 자연이 되는 것이라고.그리하여 모든 것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그것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이라고.그 스님은 쌍계사에 계실거라고 바람이 말했다.어쩌면 보고도 못 알아 볼지 모른다는 야릇한 말을 나그네 뒤에다 던지고는 숲으로 들어가버렸다. 하동 옛일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고 송림(松林) 바람이 전해준다. ●자연에 동화돼야 고통 사라져 하동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두 나라의 변방이면서도 서울 못지않은 전략거점이었다.진주도 한동안 백제 땅이었다.신라에 진주를 내주고 하동으로 물러선 백제는 더 후퇴할 수가 없었다. 신라는 하동을 넘고 섬진강을 건너야 호남평야를 얻고 중국 가는 편리한 뱃길을 잡을 수 있었다.두 나라의 전투는 하동 땅 산과 들에서 자연 오래 끌고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젊은 사내들의 목숨이 서로 겨눈 창 끝에서,화살 끝에서,칼날 위에서 이슬같이 스러져 갔다.그 젊은 영혼들의 산화(散花)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지리산 철쭉꽃으로,차꽃으로 피고 졌다. 산화란 비록 꽃은 피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라는 식물학적 정의도 있으려니와 절집의 재식(齋式)에서 범패(梵唄)를 부르며 꽃을 뿌리는 일을 두고서도 일컫는 말이니,쌍계사에 살았던 저 혜소 스님이 범패를 세속으로 모셔 내려와서 민중으로 하여금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한가지 지혜로 응용하셨으니,하동의 옛일이야말로 이 땅의 향기 짙은 신화가 아니겠는가. 두 나라 전쟁의 참화가 오래 절규했던 하동 땅이었으므로 이 모진 아픔을 치유해 사람이 이웃하여 살게 하기 위해서는 비범한 사랑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그 사랑으로 두루 평온을 숨쉬는 공존의 미학이 생겨나도록 하동 사람들이 빌었을 것이다. ●영·호남이 하나된 공존의 미학 `花開洞天’ 기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하동 말씨에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이 자리잡았고,하동의 음식 맛에 전라도의 간과 향기가 배어 있음이 그것이다.둘이면서 하나가 된 공존의 미학을 완성시킨 전형적인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그 문화는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섬진강 강물을 나눠 먹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어머니 젖을 나눠먹고 자란 형제들인 것이다. 이같은 하동의 옛일은 이미 화엄사상이 만개할 토양이 되었고,화엄이 꽃 피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을 만들었다. 나그네는 송림을 지나 키낮은 차나무들의 높은 푸름을 쓸어안아 보면서 섬진강 기슭으로 난 그림 같은 길을 따라 걸어오른다.화개(花開)다.화개장터다. 화개 골짜기는 유난히도 절이 많았다.시대마다 예사로 쉰개가 넘는 절들이 화개천 물소리를 나누어 들으면서 이쪽저쪽 산자락마다 들어 앉아서는 고통의 바다 건너는 법을 묻고,대답하면서 한 천년을 좋이 살았다.절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하동 역사 속에 아프게 저며 넣어진 젊은 목숨들이 이승에 살아남은 자들을 향하여 왜 사느냐고 물어온 화두를 풀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그랬을 것이다.적어도 하동땅에서 삶을 곧추세우려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옛사람들이 던져 놓은 저 생사(生死)화두를 들고 밤을 지새워봐야 옳다. 참 무겁고 힘에 버거운 명제다.이같은 명제를 신명나게 풀어서 세상 사람들의 일상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세상 사는 지혜를 일러준 한 사람을 만나보면 세상살이가 지겹고,고통스럽고,후회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나그네는 성큼 쌍계사 일주문을 들어선다.아직은 겨울의 품안이라 손이 시리다.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아래서 나그네가 물어 물어 찾아 온 혜소 스님의 그림자를 만났다. 국보 제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다.신라 사람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손수 썼다. 나그네가 찾는 혜소스님이 진감선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분이다. 838년쯤엔가 민애왕이 혜소스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곡한 청을 넣었으나 그는 승려가 권력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완곡히 사양한 일이 있었다.왕은 나라를 생각하면 되고,승려는 그 나라의 백성을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백성을 생각하는 것은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들의 나라이며,백성은 왕이 낳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신 것이니 왕은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왕은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정치하는 왕이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지만 승려는 그 사람들을 섬겨야 하므로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도움될 일이 없다고 했다. 인물 잘나고,좋은 옷으로 몸을 치장했으며,정치와 권세에 도움되는 학식과 경험을 두루 갖추어 왕에게 도움되는 사람은 세속에서 찾는 것이 옳다는 말도 했다. 민애왕은 존경심이 우러나서 존경의 뜻으로 사신을 보내면서 혜조(慧照)라는 법명을 내렸다. 지혜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는 지극한 존경심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름을 가져온 사신은 민애왕의 간곡한 청을 다시 전했다.경주까지 한 번만 다녀가시라는 부탁이었다.그래도 응하지 않았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민애왕이 내린 이름의 비칠 조(照)를 부를 소(昭)로 고쳐버렸다.이 시대를 사는 스님들이 새기고 또 새겨봐야 할 옛일이다. 그는 고통받는 민중을 구원할 수 있게 되기를 목표로 정하고 수행을 시작했다.하지만 민중의 고통은 바다같이 넓고 커서 어떻게 하는 것이 구원이 될지 그것을 아는 것이 더 급했다. 민중을 구원한다는 일이 자칫 화려한 관념적 수사에 그쳐버리고 실제로는 민중에게 고통을 더하는 짓이 되기 쉽다는 것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 자신이 민중으로 살아가야만 민중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점이었다.깨달아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그러자면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나와 민중을 둘로 양립시켜서는 안 된다.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그래야 하는 일이 즐겁고,즐거워야만 오래 계속할 수 있다.그는 자신이 큰힘 들이지 않고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이 가장 흔하고 큰 것이기는 하지만 남에게 줄 옷과 밥을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계속하기란 불가능하고,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칫 자신을 자랑하게 되기 쉽다는 것도 알았다. 오랜 궁리 끝에 일감을 찾아냈다.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하여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짚신을 삼아서 신겨주기로 했다. 짚신 삼는 솜씨는 자신도 갖고 있었다.짚을 장만하는 데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짚을 구해 잘 손질하여 일을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보니 저절로 입에서 염불이 흘러나왔다.굳이 염불이라 할 것도 없었다.그냥 좋으니까 흥얼흥얼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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