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최영미 시인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후원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용서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지방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 가업
    2026-03-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1
  • 죽은 시인의 사회?… 스테디셀러 시집의 존재감

    죽은 시인의 사회?… 스테디셀러 시집의 존재감

    TV·SNS로 젊은 시인에 호응 “수요 꾸준 … 건강한 성장 상징” 책이 안 팔리고 시가 안 읽힌다는 자조가 일상인 시대다. 이런 시류에도 끊임없이 독자들의 호출을 받으며 굳건히 존재감을 곧추세우는 시집들이 있다. 출간된 지 많게는 수십년, 적게는 수년이 흘러도 매년 쇄를 거듭해 찍는 스테디셀러들이다. 기형도, 이성복, 황지우, 최승자, 정호승, 최영미, 도종환 시인 등 문단을 묵직하게 지켜 온 원로, 중견 시인들의 시집은 출간된 지 20~30년이 지났어도 매년 한두 차례 중쇄하는 건 기본이다. 출판사와 판매 추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집은 1쇄를 500부~3000부가량 찍는다. 기형도 시인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 시인선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려 나간 시집이다. 1989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요절한 시인의 사후 2개월 뒤 출간된 시집은 매년 8000~9000부를 찍을 정도로 여전히 각광을 받으며 ‘기형도 현상’을 이어 가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중쇄 횟수만 56쇄, 팔려 나간 부수는 28만 5000부에 이른다. 1980년 나온 이성복 시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도 매년 증쇄하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다. ‘뒹구는 돌…’은 지난해 11월 50쇄를 찍었고 2개월 만인 지난 1월에 51쇄를 다시 찍었다. 이 책은 지금껏 6만 7000부가 판매됐다.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9)는 33쇄(10만 6000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1981)은 44쇄(4만 6000부)를 찍었다. 창비 시인선에서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가 51쇄를 찍어 52만부가,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는 40쇄를 찍어 13만부가 팔려 나갔다. 최근에는 TV 방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향유되고 입소문을 탄 젊은 시인의 시집들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케이블 채널 tvN의 책 소개 프로그램 ‘비밀 독서단’에서 다뤄지며 폭발적인 증쇄에 들어간 박준 시인과 심보선 시인의 시집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출간된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지난해 9월 방송을 타면서 지난 1년간 무려 14차례(4만 6000부) 찍었다. 지금까지 6만부가 나가면서 2011년 시작된 문학동네 시인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 됐다. 심보선 시인의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는 문지 시인선에서 최근 1년간 가장 많은 중쇄(7차례) 및 부수(1만 9000부)를 찍어 총 3만 5000부(24쇄)가 나갔다. ‘비밀 독서단’에서 다뤄진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에만 네 차례 증쇄할 정도로 인기였다. 3년 전 출간된 한강 작가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기존에도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 많았지만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더 주목을 받는 사례다. 1만 6000부(9쇄)가 팔린 시집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지난 4일 3000부를 더 펴냈다. 이근혜 문지 편집장(문학 담당)은 “요즘 출판 환경에서는 독자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난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출간 직후에만 ‘반짝’ 팔리고 사라지는 책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세월이 지난 시집을 꾸준히 찾는 독자들이 있고 이를 절판하지 않고 계속 펴내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건 시장 일부에선 건강한 성장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감성이 흐르는 관악

    감성이 흐르는 관악

    ‘들꽃은 꺾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를 남기네.’ 관악구청의 시가 흐르는 유리벽이 봄을 맞아 새 단장을 했다. 구는 2011년부터 광화문 교보생명처럼 구청사 전면에 아름다운 글이나 시구를 실어 관악구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구청사뿐 아니라 인문학 강의, 갤러리 관악 등 구정 곳곳에 감성을 담은 관악구만의 행정이 관심을 끌고 있다. 시가 흐르는 유리벽은 계절별로 도전과 용기, 내일의 희망과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문구를 구민으로부터 공모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는 시가 흐르는 유리벽을 감상하고자 일 없이도 구청을 찾는 주민이 있다. 유종필 구청장은 “청사는 위압감을 주어서는 안 되고, 방문하는 분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미 시인과 함께하는 서양 근현대 미술사 강의’로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구는 오는 21일부터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 공부’를 연다. 독서전도사이자 자기계발 전문가로 알려진 안상헌 작가를 초청해 책이 주는 즐거움을 소개할 예정이다. 구청 강당, 도서관, 평생학습관, 복지관 등 지역 곳곳에서 매주 1회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만 240회 이상 인문학 강좌가 열려 딱딱한 학문으로만 여겨졌던 인문학 속의 지혜가 주민의 삶에 스며들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토닥토닥 힘내” 낯선 이의 위로, 읽는 이의 힐링

    “토닥토닥 힘내” 낯선 이의 위로, 읽는 이의 힐링

    위로를 해 주기도, 위로를 받기도 힘든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경쟁 상대요, 지친 사람들이다. 학업 성적을 놓고 예민해져 있는 친구들, 승진으로 경쟁하는 직장 동료들, 팍팍한 살림살이에 아이 키우느라 힘든 아내와 남편들. 하지만 이럴수록 짧은 위로 한마디가 절실해진다. 다행히 사람들이 낯선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이 담긴 위로를 전하는데,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친 삶을 보듬어 줄, 바로 그 ‘위로 한마디’를 들려주는 힐링의 공간들로 떠나 봤다. 지난 3일 저녁 지하철 4호선 이수역 부근의 작은 공간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뜻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한 평(3.3㎡) 정도의 공간에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여대생 이모(21)씨가 쭈뼛쭈뼛 들어와 앉더니 펜을 들었다. 이씨는 ‘오늘도 두렵고 힘든 하루를 버텨 낸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낸 것만 같아도 당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의 내용은 정말 멋졌어요’라고 적었다. 그는 금방 적은 이 엽서를 놓아 두고 앞서 다른 사람이 먼저 써 둔 엽서를 들고 자리를 떴다. 5분쯤 지나자 30대 남성이 들어와 엽서에 글을 적은 뒤 앞서 이씨가 남겨 둔 엽서를 들고 갔다. ‘쌈드림’으로 불리는 이곳의 주인 최현우(31)씨는 “4년째 응원 엽서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 낯선 사람에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5000여명 정도 된다”며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각박한 세상에 다른 사람과 나누는 위로 한 줄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2013년에 우리 쌈드림을 찾은 30대 트랜스젠더 여성은 ‘당신은 존재만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누군가의 엽서를 마주하고 30분간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부모도 모른 채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보육교사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더군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로해 준 게 처음이라고 했어요.” 7년째 고시공부를 하던 남학생은 ‘할 수 있다’는 네 글자가 적힌 엽서를 들고 힘을 얻었다. 대학생 딸과 산책을 하던 엄마는 ‘당신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부드럽고 넓은 존재’라는 글귀로 누군가에게 힘을 주었다. 최씨의 당초 구상은 대입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 지친 노량진 수험생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30대만 참여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70대 남성도 “노인정에서 자식 문제로 힘들어하는 다른 노인이 생각난다”며 글을 남겼고, 초등학생도 이곳을 찾아 “잘될 거야”라는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1200여장의 엽서를 복사해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당역, 이수역, 여의도 한강공원 등을 순회하고 오는 4월에는 청계천에도 쌈드림을 설치할 생각이다. 최씨는 자신이 수집한 위로 문구 중 가장 감동적인 것들은 빔프로젝터로 건물 외벽에 비춰 준다. 그는 ‘응원의 벽’이라고 이름 붙였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이 시작되었고 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힘내’ 등 그다지 특별한 문구들은 아니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동작구와 함께 지난해 11월 동작구의회 건물 외벽에 문구들을 띄웠고, 지난 3일에는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안에도 선을 보였다. 경복궁역에서 위로 문구들을 봤다는 직장인 김모(44)씨는 “20년 넘게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따뜻한 위로의 글을 보기는 처음”이라며 “거창한 문장이 아니어서 더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이 써 놓은 글귀를 통해 위로를 받는 공간은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음이 울적해지면 마포대교를 찾는다는 이모(40)씨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가드레일에 적어 놓은 것인데 고민이 있을 때 읽으며 건너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조금 늦는다고 속상해하지 마’, ‘‘인생의 정답이란… 없습니다’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위로 문구를 담아 시청 건물 정면에 내거는 대형 간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관광 가이드에게 의미를 물어보며 사진을 찍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토닥토닥’이라는 문구에 이어 현재는 ‘올해는 당신입니다’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직장인 최모(47)씨는 “대학 시절 도서관이나 화장실에 적혀 있던 위로의 낙서 문구들이 떠오른다”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관악구도 2011년부터 지금까지 25편의 위로 문구를 게시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시인 도종환), ‘태양에 임자 있나요. 가슴에 품은 사람이 임자지요’(소설가 이외수),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시인 최영미) 등이다. 올해에는 시인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를 붙였다. 벽화마을에서도 좋은 문구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벽화에는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이라는 문구가 예쁜 꽃과 함께 적혀 있다. 직장인 김모(29·여)씨는 “지난해 갔던 전주 한옥마을의 한 카페 앞에서 ‘당신이 날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옥상에서’라는 문구를 보았다”며 “옆에 있는 종이비행기 그림과 함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젊은이들이 주로 가입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 ‘어라운드’의 진화는 온라인의 ‘위로 열풍’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된 경우다. 100만명 이상이 가입했고, 익명으로 짧은 글을 공유하되 악플이 아닌 선한 내용으로 소통하는 게 이 앱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달콤쪽지’라는 코너가 있다. 짧은 응원글을 적은 메모지를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전동차 내부,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 공공장소에 붙여 놓는 식이다. 메모지에 달콤쪽지라는 문구와 함께 붙인 날짜와 시간, 내용을 넣는다. 지난 3일 오전 5시 20분 한 버스 안에 붙은 달콤쪽지에는 ‘널 위한 하루야 힘내! 그리고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수도권에서 출발해 전국으로 퍼졌다. 위로를 받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지하철역 및 대학교 사물함을 빌려 위로 문구와 함께 과자나 초콜릿 등을 놓아 둔 뒤 비밀번호를 앱에서 공유하는 ‘달콤창고’도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달콤쪽지를 붙인다는 김민정(24·여)씨는 “쪽지를 붙인 후 다음날 쪽지가 없어진 것을 보면 나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위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익명성을 전제로 한 단순한 글귀라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데 큰 효과를 낸다”며 “‘너 얼마나 힘들었니’ 같은 말은 언뜻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울림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위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설명하기에 앞서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며 “키워드 중심의 핵심적이고 쉬운 내용들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하지만 위로마저 가장 가까운 가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익명의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미술 강의는 시각 자료를 많이 만들어야 해서 힘들긴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자체가 놀라워요.” 1994년 출간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50만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열풍을 일으켰던 최영미(54) 시인이 서울 관악구의 미술 전도사로 나섰다. 1997년 유럽미술관 순례 산문집인 ‘시대의 우울’을 낸 최 시인은 9일 관악구 평생학습관에서 세계의 명화를 주제로 ‘인문학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8개월 전 관악구로 이사 와 관악구민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1회로 끝나는 특강이 아니라 한 달 반 가까이 강의를 하니 관악구민이란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시인의 ‘관악구살이’는 처음이 아니라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닐 때 관악구에서 자취했고, 20여년 전엔 관악구 고시원에서 머물며 첫 시집을 완성했다. 각 지역에서 유명 문인을 유치하려고 집필실 등을 제공하지만, 서울 출신인 최 시인은 50세가 넘어서도 아직 월세 신세를 지고 있다. 관악구로의 이사도 단지 방세가 싸서 결정했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관악구는 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시인에게는 거의 그대로다. 언덕이 많아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걸 걱정해야 하고 벌써 온풍기를 끼고 살아야만 하는 등 집 난방도 허술하다.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교통도 불편하다.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의라 걱정이 많았다. 서양미술은 누드 작품도 많아 도판을 고를 때도 조심스럽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수강생들이 시인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당황이 된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해야 할 귀중한 낮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미술 강의를 들으려 시간을 낸 수강생들이 시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즘 역사가 화두잖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고 다양한 양식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어요.” 최 시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 사진을 칠판에 크게 띄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조각한 것 같지 않나요?”라고 열띤 질문을 던졌다. 흰머리의 노신사부터 젊은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은 일제히 “네~”라고 착하게 답했다. 글 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매주 월요일 관악은 ‘인문학 마을’

    매주 월요일 관악은 ‘인문학 마을’

    ‘꽃이 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 관악구 청사 전면의 ‘시가 흐르는 유리벽’에 실린 최영미 시인의 시 ‘선운사에서’의 일부다. 관악구는 29일 관악구 주민이자 관악산 시도서관 명예관장인 최 시인이 이번에는 ‘세계의 명화’라는 인문학 특강을 한다고 밝혔다. 최 시인의 인문학 특강은 11월 9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2시에 ‘어미에서 여신으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 ‘19세기 여성들’ 등을 주제로 6번에 걸쳐 진행된다. 최 시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가 있듯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라도 큰 감동을 줄 때가 있으며 그것이 자연과학이나 철학과는 다른 미술이 가진 힘”이라며 “인문학 특강 ‘세계의 명화’를 통해 미술이 주는 감동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그는 이미 관악구에서 ‘시창작교실’ ‘시콘서트’ 등을 열어 주민들의 시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다. 최 시인은 시인인 동시에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서양미술사를 졸업하고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라는 미술 수필을 내기도 한 미술 전문가다. ‘세계의 명화’ 특강은 관악구 주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으며 강의 신청은 평생학습관(02-879-5679)으로 하면 된다. 인문학 특강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도서관’ 정책 등을 통해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펼치는 관악구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일이다. 월 1회 저명인사들이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하고 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최 시인은 최근 열린 책 잔치에서 ‘가을에는’이라는 시를 주민들에게 직접 들려줬다”며 고마워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관악 인문학자문위 본격 가동

    지식복지의 도시 관악구가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었다. 구는 인문학 활성화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계획이다. 관악구는 지역 곳곳에 인문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민·관·학 전문가가 참여하는 ‘관악구 인문학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고 9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인문학자문위원회는 주민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인문학의 도시 관악’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문위원회는 학계, 시민단체, 문화단체 대표 등 인문학에 관해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갖춘 민간 위원 9명과 구청의 인문학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4명 등 13명으로 구성됐다. 민간 위원으로 서울대 인문대학 강상진 부학장, 문화단체 시선 강욱천 대표, 길용한 구의원, 관악주민연대 김미경 대표,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대표, 서울대 기초연구원 장성규 연구원, 최영미 시인 등이 위촉됐다. ‘인문학자문위원회’는 인문학 사업 전반에 대한 기본 계획 수립에 대한 자문을 맡고 인문학 정책의 연구와 개발, 인문학 연구 관련 시책 제안 등을 담당하게 된다. 구에서는 그동안 서울대,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진행한 인문학 특강, 유명 석학을 초대한 동서양 인문학 강좌 등 흥미 있는 강좌가 진행돼 10대부터 80대까지의 주민 2만 5000여명이 참여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길섶에서] 여백/문소영 논설위원

    시인 최영미의 아파트는 책도 가구도 없이 텅 비었는데 그 빈자리에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의 포스터가 스카치테이프로 네 귀를 대충 붙인 채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7년 초여름이다. 최 시인이 전해에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등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보고서 산문집 ‘시대의 우울’을 막 냈다. 수십 개의 미술관에서 수많은 명화를 봤을 터인데 그는 미술관 아트숍에서 딱 한 장의 포스터를 샀고, 그것이 로스코의 작품이라고 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나와 홍대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뒤 석사 논문은 ‘정육점의 화가’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는데, 그는 사실 로스코를 더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표지에 로스코의 작품을 썼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 전시가 6월 28일까지 열린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라고 보도되고 있다. 유명인이 사랑한다고 해야 더 좋은 그림은 아닌데 그 마케팅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잡스빠’로서 괜히 흐뭇하다. 오랜만에 주말 이틀 모두 휴무라 구경이나 가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한국 현대시의 ‘레전드’, 한데 뭉친다…세밑 ‘詩공연 축제’서 정호승, 김용택, 강은교 등

    한국 현대시의 ‘레전드’, 한데 뭉친다…세밑 ‘詩공연 축제’서 정호승, 김용택, 강은교 등

    세밑 정호승, 김용택, 강은교, 최영미, 김명인, 김경미, 윤석산 등 국내 대표 현대시인들이 함께하는 제 1회 세계 시공연 축제가 오는 28일 오후 7시, 29일 오후 8시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의 후원으로 국제시문화협회(www.facebook.com/poetryfest)가 주최하는 제 1회 세계 시공연 축제는 ‘시의 현대적 생환’을 모토로 기획한 시 중심 복합 문화 공연이다. 주제시를 중심으로 노래와 춤, 현대 음악과 전통 음악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시의 현대적 생환을 맞는다. 이번 시공연 축제에는 건대 유승공 교수가 성악 부문에서 호흡을 함께하고 박소정 콜렉티브콜라보가 춤으로 함께 한다. 이와 함께 가야금 장원희, 기타 정준영, 피아노 전혜경, 바이올린 조아라, 클라리넷 김민규, 아코디언 류지원, 밴드 We.d 등이 함께 시를 만난다. 정호승 시인은 이번 축제에서 수선화에게, 여행,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고래를 위하여 등으로 독자들과 호흡한다. 그는 “시의 축제는 가난한 내 영혼의 축제”라면서 “이 축제를 통해 내 영혼이 아름다워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은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우리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우리의 여기 지금을 시로 묻는다”면서 ‘섬진강3’, ‘섬진강15’, ‘사람들은 왜 모를까’ 등으로 찾아온다. “오늘, 시가 품고 있는 말과 소리의 향기가 여러분의 살 속으로, 피 속으로 스며들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우리 모두 꿈의 스위치가 되기를….”(강은교, ‘사랑법’ ‘너무 멀리’ ‘섬-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오로지 시를 가운데로 끌어올려 사람들과 그 숨결을 나누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한 호흡을 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와 행복과 위안을 느낀다.”(류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상처적 체질’, ‘가족의 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최영미, ‘선운사에서’ ‘이미’ ‘뒷맛이 씁쓸하지 않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를 품은 뭇 별들로 밤하늘이 반짝이며 솟아오른다.”(김명인, ‘너와집 한 채’ ‘침묵’ ’독창’)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고, 세상에 꽃이 피고 흰눈이 쏟아지는 한 시는 죽지않는다. 괜찮다.”(김경미, ‘겨울 강가에서’ ‘쓸쓸함에 대하여-비망록’ ‘흉터’)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편지’가 당선되고 1974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바다 속의 램프’가 당선돼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윤석산 시인은 ‘바다 속의 램프’, ‘견딤에 대하여’, ‘욕망’,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로 독자들과 호흡한다. 이번 시공연 축제의 집행위원장은 윤석산(한양대 명예교수), 예술감독은 이종호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 총연출 이대영 교수(중앙대 연극과), 기획총괄은 최병호(국제시문화협회), 연출은 허남성 등이 맡았다. 윤석산 집행위원장은 “시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출발이자 완성”이라면서 “이 뜻깊은 무대가 시를 우리들의 가슴에 핏줄에 꿈틀거리게 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시공연 축제의 기획을 맡은 최병호 기획위원장은 “오랫동안 시를 사랑해온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시인들을 만난다는 심정으로 이 행사를 기획 했다”면서 “세밑에 현대 대표 시인들을 만나 추억도 쌓고, 시와 공연 예술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문화코드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공연의 특성상 선택 받은 80명의 관객만 관람할 수 있는 이 공연의 관람료는 좌석에 관계없이 전좌석 2만원이고 인터파크에서 ‘세계 시공연 축제’를 검색하면 예매할 수 있다. 28일에는 공연이 끝난 뒤 정호승 시인, 김용택 시인, 강은교 시인, 김명인 시인, 김경미 시인 등의 팬 사인회가 예정돼 있다. 29일에는 김용택 시인, 김명인 시인, 김경미 시인, 윤석산 시인의 팬 사인회가 열린다. 현장에서 시인들의 자필 사인 시집을 구입할 수도 있다. 문의 (02)706-3300, 티켓 예매문의 (02)3216-1185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겨울 여기서 몸 건강·마음 건강 챙겨요] 감성근육 책임지는 관악 북콘서트

    관악구 신원동에 사는 홍모(66)씨는 직장을 퇴직한 이후 더 바빠졌다. 구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와 명사들의 강연을 듣다 보면 한 달 스케줄이 가득 차 버린다. 홍씨는 “노년에 지갑이 두둑한 것도 좋겠지만 삶의 깊이를 더해 주는 강좌를 듣는 것이 더 행복하다”며 웃었다. 지난 7월 구청에서 진행한 방송인 김미화씨의 강연을 들었던 홍씨는 이번에도 구청에서 개최하는 북콘서트에 참가할 생각이다. 지식복지 메카 관악구가 북콘서트를 통해 주민들의 ‘감성근육’ 키우기에 나선다. 구는 22일 구청 1층 용 꿈꾸는 작은도서관에서 소설가 김영하씨와 함께 북콘서트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김씨는 1996년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소설 ‘검은 꽃’,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 수많은 히트작을 써 왔다. 구 관계자는 “이번 북콘서트는 작가가 5년 만에 낸 신작 산문집 ‘보다’의 문학세계를 알아보는 시간에 이어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관계 바라보기’를 주제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뮤지션 제갈인철의 공연과 애독자 낭독 시간도 준비해 단순한 책 이야기를 넘어 감성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는 지난 10월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시인 최영미씨를 초청해 시와 인생, 사람을 주제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구 관계자는 “평소 만나 보고 싶었던 유명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북콘서트를 통해 주민들의 삶이 더 풍요롭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도서정가제로 ‘시끌’… 세월호 슬픔에 ‘숙연’

    도서정가제로 ‘시끌’… 세월호 슬픔에 ‘숙연’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다. 시,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계발서조차 보지 않는다. 지하철 안에서 몸 웅크린 채 코 박고 있는 이들이 책을 들고 있을 확률은 수학기호 리미트를 씌우면 ‘0’에 수렴된다. 그럼에도 작가는 글을 쓰고 출판사는 책을 펴내고 서점은 책을 판다. 말과 글이 절멸되지 않는 한 희망을 품고, 희망을 꿈꾸는 것은 책의 변함없는 사명이기 때문이다. ●여전한 한숨… 반쪽짜리 도서정가제 올 한 해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도서정가제 개정’이었다. 지난 11월 21일 개정 도서정가제가 전면 시행돼 신간 구간 가릴 것 없이 총할인율이 정가의 15%로 제한됐다. 출판생태계의 건강성을 복원한다는 취지였고, 책 선택의 가치가 가격으로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경쟁력의 가치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투영된 결과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고사 상태에 빠진 동네 서점을 살려야 한다는 현실적 목표 속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등 대형 인터넷서점 중심으로 짜여진 출판유통질서가 재편될 것이라는 바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당초 서점계의 바람과 달리 인터넷서점의 무료배송, 제휴카드 청구할인 등이 그대로 허용됐고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의 경우 가격을 다시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 편법 할인의 가능성을 그대로 열어 놓은 셈이다. 동네 서점의 푸념이 여전한 이유다. ●강의실 떠나 일상으로 들어온 자본 이와 함께 2014년 출판계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칼 마르크스의 ‘자본’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졌다. 지난 9월 출간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정점을 찍은 책이다. 전후해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자본론 이펙트’, ‘Why? 마르크스 자본론’, ‘자본의 17가지 모순’ 등 정통 마르크스 연구서에서 ‘자본’의 대중인문교양서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이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단순한 이념과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으로 들어왔음을 절감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생각이 맞아떨어져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잊지 않겠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문학계에서는 4·16 세월호 참사 등과 맞물린 작가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세월호 특집을 다룬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는 문예계간지로서는 이례적으로 초판이 매진되는 일이 벌어졌다. 754명의 시인, 소설가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세월호와 관련된 정부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시인들은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를 냈고 소설가들은 추모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를 펴냈다. 창립 40주년을 맞은 한국작가회의는 ‘젊은 문학 선언’을 발표해 “지금-여기서 우리가, 역사가 어떻게 실패하는지 우리는 보고 또 볼 것이다. (…)더 치열하게 더 불가능하게 질문하고 질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분한 눈으로 그린 현대인의 자화상 소설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등 가까운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성석제의 ‘투명인간’, 이혜경 ‘저녁이 깊다’는 50대 작가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를 형상화했다. 1980년대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유독 많았다. 한강 ‘소년이 온다’,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 최영미 ‘청동정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경재 숭실대 국문과 교수는 “문맹인 택시기사, 어린 소년 등 예전엔 조명받지 못했던 이들을 통해 1980년대의 폭압적인 상황을 차분한 시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베스트셀러 등용문’ 자리 굳힌 미디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디어 셀러’의 강세가 이어졌다. 드라마, 영화 원작이나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화가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증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미 비포 유’,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소개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tvN 드라마 ‘미생’의 원작 웹툰 ‘미생’ 등이 대표작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내 조부가 친일이면 일제강점기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는 이인호 KBS 이사장의 강변(强辯)을 듣고는 생각난 단어가 지조와 절개다. 조선으로 치면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든 논개의 지조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라고 외친 사육신 성삼문의 절개 말이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논개나 성삼문처럼 행동할 용기를 가졌던 지식인들이 그 얼마나 되었을까. 비단 일제강점기 때만이 아니라 건국 이후 근 반세기에 가까운 독재의 시기에도 진딧물의 단물을 빠는 개미처럼 처신한 이 땅의 지도층,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다. 옹호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시대가 만든 비극이기도 하고 그 비극적인 시대에 산 사람들이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지만 가려내고 단죄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시종일관적이었던 골수 친일파보다 육당이나 춘원처럼 중도에 변신한 민족지사들이 더 욕을 먹는 것도 지조와 절개를 버린 데 대한 분노심 때문일 게다. 그들은 광복 후에도 친일 경력을 깨끗이 세탁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귀의하는 ‘멋진’ 변신술을 보여 주었다. 변신은 현재 권력이나 사상과의 일종의 타협인데 지난 수십년간 권력 이동과 이념 투쟁의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태생적인 ‘확신범’도 있으나 전향이라는 이름으로 좌우와 여야를 넘나든 철새들 또한 드물지 않다. 가장 희극적인 전향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주사파가 이른바 뉴라이트의 한 축으로 변신한 것이다. 반미종북의 선봉에서 극단을 달리던 그들은 뉴라이트로 짐을 옮기고 나서도 시선만 정반대 방향을 바라볼 뿐 똑같이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들의 방향 전환은 주지하다시피 공산주의의 몰락에 따른 정신적 붕괴의 결과다. 좌파로서는 기회주의적 변절이요 배신이다. 원의 바깥 선을 아무리 돌려도 여전히 바깥에 있듯이 극단은 결국 극단으로밖에 변신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이사장도 변신과 전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세대 러시아사학자로서 이 이사장의 성향은 원래 중도 진보였다고 한다. 1987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당시 강만길, 김진균씨 등 대표적인 진보 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황모씨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는 자신 때문에 서양사학과를 택했다는 최영미 시인과 동참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역임한 핀란드 대사에 이어서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 최초의 러시아 대사를 지낸 것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진보처럼 보인 덕일 것이다. 그랬던 그가 돌연 뉴라이트의 선두에 서서 바뀐 정부의 공영방송 이사장직에 오르고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김구 선생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이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이런 변신은 조부의 친일이 공론화된 뒤부터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이 이사장이 자존심이 상해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할아버지 때문에 신념까지 바꾼, 어쩌면 그 자신이 현대사의 비극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신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정권과 시류에 영합하는 신념은 타인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한국에서 ‘돈’과 ‘높은 자리’로 매매되지 않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어느 교수의 말은 과격해도 팔순을 눈앞에 둔 이 이사장의 ‘노욕’(慾)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제 와서 “독재를 미화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다”는 것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6년 한 방송에 나와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담을 쌓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정부와 반대의 인식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들을 대거 중용하고 있는 것은 이해불가다. 대북 관계의 직위에 종북 학자들을 등용한 꼴과 다를 게 없다. 지조와 절개, 변절 여부는 둘째 문제다.
  • 亞도서축제 ‘파주북소리’ 개막

    ‘2014 파주북소리’ 축제가 3일 열흘간의 일정으로 파주출판도시에서 개막했다. 올해 4회째를 맞는 행사는 아시아 최대 도서축제를 지향하며 국내외 유수 작가 500여명이 참여한다. 국제 인문학 콘서트와 ‘파주 북어워드 시상식’ 등 출판사들의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펼쳐진다. 개막일을 맞아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리는 국제 인문학 콘서트에는 소설가 김남일, 시인 김형수를 비롯해 인도와 베트남, 태국의 작가들이 참여해 아시아의 신화에 대해 설명한다. 인도네시아의 그림자 인형극인 ‘와양’ 공연, 인도 및 말레이시아 전통춤, 우리의 바리데기 춤 등 공연도 함께 열린다. 소설가 김영하·정이현과 작가 유시민, 연극배우 손숙, 시인 최영미, 평론가 황현산,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등이 참여하는 다양한 강연과 북콘서트 행사도 열린다. 11일 예정된 ‘홍명희문학제’ 행사는 강연과 통일전망대 투어를 함께 엮었다. 단지 내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지혜의 숲’에선 7명의 장서가가 참여하는 ‘7인 7색 내가 사랑한 책들’ 전시회가 열린다. 채색 대동여지도 진본, 광개토대왕비문 탁본 등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과 한길사 김언호 대표, 변기태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등 7명의 장서가가 보유한 책들을 각자 주제에 맞게 공개한다. 설치미술가 백남준·강익중·이불, 재일작가 이우환, 덴마크 올라푸르 엘리아손, 중국의 아이웨이웨이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규모 현대미술 프로젝트 ‘파주평화발전소’ 행사도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곳곳에서 펼쳐진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순례는 안단테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순례는 안단테

    Pilgrimage 길 위를 걷는 자에게 서두름은 독이 될 뿐이다. 순례자임을 표시하는 가리비 하나 달고 마음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짚고 걸음을 내딛는다. 느릿하게 울리는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步行記. 순례가 범람하는 시대에 길을 나서다 분명한 건 ‘철학’도 유행을 탄다는 점이다. 많이 생산하고 빨리 소비하는 게 절대적 선으로 여겨졌던 세상에 반기를 드는 가치들이 출현하고 있다. 버리고 줄이고 좁히고 늦추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은 웰빙을 부르짖고 로하스, 다운시프트 같은 삶의 방식을 발 빠르게 차용했다. 그에 따라 여행 철학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정복한 나라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해외여행이라고 자부했던 때도 있다. 밤낮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에서 이제는 되도록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자 한다. 때마침 ‘걷기 여행’은 강력한 트렌드가 되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맞춤형 소비재가 되어 빠르게 소모돼 갔다. ‘그럴듯한 새로움’을 갈구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순례는 구미 당기는 소재였으리. 서점에 넘쳐나는 순례 에세이들, 열흘짜리 순례길 맛보기 여행상품까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한 유행 앞에 순례의 본래 의미나 목적은 사장된 듯했다. 그래서였나. 내 딴에 순례란 단지 시대의 산물에 불과할 뿐이고 유행이 식으면 그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위태로운 ‘전염’이라 취급했으니. 이제야 심성이 삐딱한 여행자였노라고 인정해야 할 듯하다. 한 해 몇천명의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프랑스 남부 미디피레네Midi-Pyrenees 순례길에서 길의 매력에 전염되다 못해 여행 후 강력한 후유증까지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번 여행기는 기도문이 될 것 같다. 나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에만 있는 줄 알았던 여행자가 있다면 그 오만으로부터 얼른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리. 말뿐인 순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나는 ‘순례’를 알지 못했다. 그 길 위를 걷기 전까지 말이다. ▶미디피레네 Midi-Pyrenees 프랑스, 안도라공국, 스페인에 걸쳐 있는 피레네산맥 일부 지역에 위치한 프랑스 남서부 주. 주도인 툴루즈Toulouse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680km 떨어져 있다. 프랑스에서 만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수만 갈래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St.James. 그가 묻힌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에 이르는 모든 길은 순례길이다. 야고보를 찾아가는 길에는 축복과 기쁨보다는 성자를 향한 연민과 참회가 가득하다. 성자를 지키지 못한 신도들의 원죄가 깊고도 깊기 때문이리라. 야고보는 예수 사후 이스라엘에서 참수를 당했는데 신도들은 성자의 억울한 죽음을 맞고도 그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유해를 싣고 스페인으로 향하던 배가 난파된 것. 9세기 들어서야 발견된 그의 시체는 그간의 험난한 여정을 증명하듯 노오란색 가리비가 다닥다닥 붙은 채였다고 한다. 뒤늦게 야고보의 묘지 위에 성당을 짓고 증축을 거듭해 산티아고를 조성했다. 그들이 성지를 세우는 것만으로 미안한 감정을 달랬다면 오늘날의 순례길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성직자와 신자들은 단지 그의 묘를 참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가리비를 머리에 달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성 야고보처럼 길을 나섰다. 아무리 구불구불한들, 제 아무리 험준하다 한들 당신이 걸음을 내딛으면 나만의 참회와 구원이 담긴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알고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일반인에게까지 유명세를 떨친 건 최근의 일.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자>를 집필하면서 전세계적인 열풍을 낳은 산티아고 순례길은 제주 올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올레가 ‘휴식’이라는 이미지와 맞물린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난’으로 수렴된다. 현재 유럽에는 12갈래의 대표적인 순례길이 있는데 순례자 10명 중 8명은 일부러 프랑스 남부서부터 일정을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는 험준한 길을 택한다. 놀멍쉬멍 걷든 지팡이를 짚고 걷든 ‘걷는다’는 행위는 동양과 서양 어디서든 구도의 길과 이어지나 보다. 고단한 순례자의 안식처 콩크Conques 모든 순례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로 통칭되는데 프랑스 남부도시 생장 피드 포르에서 출발해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는 루트가 가장 유서 깊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걸은 길은 프랑스 남부 도시 르 퓌Le Puy에서 출발해 미디피레네주의 유명 순례도시를 관통하는 구간의 일부였다. 나를 포함해 미국, 라트비아, 중국, 크로아티아, 캐나다 등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을 이끌 가이드는 러시아계 프랑스인인 엘리나. 말 그대로 다국적 ‘순례단’인 우리는 미팅 포인트였던 툴루즈Toulouse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속사포같이 질문을 쏟아낸다. ‘예순이 넘은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이냐, 하루에 몇 시간을 걷는 거냐, 너무 힘들면 도중에 포기해도 되냐’라는 질문에 엘리나는 빙긋 웃으면서 답했다. “마음을 먹은 성직자들은 이 길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간답니다.” 차분한 한마디였지만 ‘엄살떨지 마시오’라는 엄포가 분명했다. 동행인이 있어도 또 가이드가 붙는다 해도 긴장되는 초행길이었다. 사람들의 경직된 표정을 읽었는지 엘리나는 이 길을 가는 데 있어 꼭 경건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일러준다. 단지 마주치게 될 프랑스의 대자연, 봄과 여름 사이를 가르는 바람, 작은 마을들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즐기라 했다. ‘순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렸는데 어느덧 경직된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린 건 헤픈 성격보다는 ‘끝내줬던’ 날씨에 책임이 있으리. 미디피레네를 횡단하는 갸론Garon강에서 첫 번째 목적지 콩크Conques까지 3시간 가량 차로 이동하는 동안 첩첩산중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건 바로 건축자재였다. 주변에 암석으로 된 산이 없는 탓에 갸론강에서 길어 올린 붉은 모래를 이용해 벽돌을 구워 건물을 올리고 길을 닦은 툴루즈와는 달리 암회색 집들이 눈에 띈다. 언덕 위 석회석을 이용해 튼튼히 쌓아올린 건물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앞에 일행을 태운 차가 멈췄다. 콩크는 불어로 조개를 뜻하는데 마을 전체가 조개껍데기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겨우내 잠잠했던 콩크는 4월 부활절과 함께 모여드는 순례자들로 다시금 활기를 찾는다. 중세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길목길목에는 순례자를 위한 마을이 조성됐고 콩크도 그 마을 중 하나다. 각 순례 도시는 종교적인 기능과 생활적인 기능 모두를 담당했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교회나 수도원이 들어서 있다. 매일 평균 8시간 동안 길을 걷는 순례자가 안락한 밤을 지새울 수 있도록 숙박업소가 등장했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갖춰졌다. 90가구가 전부인 이 작은 마을에 한 해 3만명의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기사들도 말 위에서 내려와 걸어야 했을 만큼 좁은 골목길, 손으로 일일이 쪼개 얹은 기왓장은 천년 동안 고단한 순례자를 반겨 왔다.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돌아보는 마을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출발한 순례자에게 콩크는 없는 것 빼고 다 갖춘 마을일 거다. 작디작은 마을에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켜켜이 앉은 시간이 스쳐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12사도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순교지라는 게 정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이며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라는 뜻의 라틴어campus stellae에서 유래했다. 예루살렘·로마에 이은 유럽 3대 순례지의 하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비롯해 성당·교회·대학 등 중세의 건물이 남아있어 번영했던 때를 보여준다. 척박한 땅에서 드리는 기도 로카마도르 Rocamadour 순백의 도시가 언덕 끄트머리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계령 뺨을 칠 정도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나니 로카마도르Rocamadour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잠깐 머뭄의 시간을 갖는 데 일행 모두가 동의했다. 마을 입구를 2km 앞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하염없이 마을을 바라본다. 오체투지로 순례길에 나선 성직자들은 물론이고 순례로서 죗값을 치르던 이들까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마을을 굽어보고 한시름 놓았을 게 틀림없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덕에 자꾸 발걸음이 늦춰진다. 이 마을은 석회질이 다량 포함된 토질 덕분인지 유난히 흰 빛을 뽐낸다. 석회바위산 꼭대기에 이 같은 마을을 만들려면 평지보다 몇 배 노동력이 투입됐을 텐데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입지였다. 듣자하니 이 ‘석회’가 바로 순례마을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6만년 전 이 일대가 바다 밑에서 융기하며 바다생물이 퇴적된 땅이 드러났다. 토양의 주성분은 석회석과 같은 탄산칼슘. 하지만 물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토질 탓에 나무를 심어도 과실이 나지 않고 곡식을 심어도 추수할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돼 버렸다. 성직자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이곳에 주목했다. 12세기부터 도시를 일궈 한때는 8,000명 가까이 머무는 ‘기도하는 마을’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800명 규모로 축소됐지만 한 해 방문객만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지다. 가장 유명한 순례마을 중 하나였던 로카마도르는 악명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삶이 고단한 자들은 유복한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 범죄자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어떤 이들은 기적을 간구하기 위해 마을의 맨 꼭대기 성당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구원을 얻고자 필시 223개의 계단을 오르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어떤 성직자는 구불구불한 14개의 고갯길을 택해 무릎으로 오르기도 했다.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던 건 성당 내 위치한 ‘검은 성모상’을 알현하기 위함이었다. 106년 기적을 행했다는 검은 성모상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적으로 검게 변했다고 하는데 프랑스 내 많은 검은 성모가 있지만 로카마도르 것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페인트를 칠한 것도 많다 한다. 가끔 아무도 치지 않는 종이 울리는 건 이 성모의 힘이라고 로카마도르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두런두런 얽힌 로카마도르 이야기를 들으며 223개의 계단을 올랐다. 로카마도르 터가 머언 옛날 바다 아래 잠겼던 땅임을 증명하듯 계단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화석이 박혀 있다. 아름다운 길이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악명은 여전했다. 최영미 시인은 아침마다 내뱉는 마른 기침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고통으로 생이 자각되긴 마찬가지였으니. 건조한 모래바람이 호흡기를 훅 틀어막고 심장은 튀어나올 듯 펌프질을 해댔다. 온몸의 기관들이 벌떡 잠에서 깼을 무렵에야 검은 성모의 성당 앞에 겨우 발을 디뎠다. 언덕 꼭대기에는 대성당 외에도 자연 동굴을 활용해 만든 예배당이 있었는데 건조한 기후 탓인지 외벽에는 13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럭비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미디피레네 사람들을 위한 럭비의 신 예배당도 갖추고 있다. 엄숙하게만 보인 순례 마을의 귀여운 재치라고나 할까. 다시 떠나는 길 오슈Auch 마지막 행선지 오슈Auch에 도착하기 전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라 알려진 라르상글Larressingle에 들렀다. 목적은 라르상글에 있는 교회에서 순례자들에게 찍어 주는 도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데 각 순례 마을은 이들 여권에 방문자임을 증명해 주는 도장을 찍어 준다. 그러나 한때 주교가 거주할 정도로 큰 마을이었던 라르상글에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불었다. 교회 역시 군데군데 파손된 흔적이 역력했고 벽에는 커다란 엑스 표시가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엑스 표시는 ‘팔렸음’을 뜻하는 표식이란다. 20세기 병적으로 ‘프랑스’적인 것에 탐닉한 미국인들은 오벨리스크를 유럽으로 옮긴 로마인처럼 프랑스의 와인이나 예술품뿐만 아니라 건물을 통째로 뜯어 부지런히 신대륙으로 날랐다. 혁명정부 이후 나폴레옹 제정이 들어서면서 교회는 더 이상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군자금을 충당하려는 약탈자들이 전국의 교회로 몰려들면서 온전히 제 모습을 보존하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당시 프랑스인에게 교회를 뜯어 파는 일은 아무런 죄책감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왠지 교회 내부에 바깥보다 더 추운 공기가 도는 것 같다. 별 기대 없이 여권을 대고 한 켠에 마련된 도장을 꾸욱 눌러 보는데 선명한 글씨가 찍혀 나온다. 한동안 이용하지 않았다면 잉크가 말랐을 게 분명하지만 도장은 아직 촉촉했다. 분명 바로 얼마 전 순례자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재촉했다. 순례자의 행선지가 우리와 같다면 길 위에 마주칠 것이다. 한걸음에 달려 오솔길 위를 걷고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발견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길 위의 동지였으므로 안면몰수하고 둘을 잡아 세웠다. 순례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었다는 미국인 칼과 브라이언트는 40년지기 친구사이. 군에서 제대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걸었던 칼이 브라이언트를 끈질기게 설득해 성사된 여행이라고 한다. “부인과 자녀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친구 녀석 믿고 한번 와보기로 했지.” 결국 브라이언트는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보스에게 장기 휴가를 얻는 데 성공해 길에 나섰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을 찍었다는 그는 여정이 빼곡히 담긴 여권을 자랑한다. 남이 보지 않을 땐 꼭 붙어 걷던 두 사람에게 어깨동무를 요청하니 쑥스럽다며 발을 뺀다. 나머지 여정도 건강하게 마무리짓길 바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오슈에 다달았다. 오슈라는 도시명은 아우구스투스에서 유래했는데 이곳은 중세 유명한 종교도시였다. 도시 어디에서나 고딕양식의 오슈대성당Auch Cathedral이 시선에 걸린다. 성당 내부는 26m 높이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오르간축제가 펼쳐지고 6월부터 8월까지 매주 일요일에는 무료 콘서트가 열린다. 가장 좋은 것, 귀한 것을 집약해 천국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암시하고자 했던 의도대로 교회 내부는 화려했다. 믿음을 확인한 순례자는 교회를 빙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동력을 얻는다. 오늘날 프랑스의 순례 마을과 관련 건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은데 단지 시간이 오래 되어서라거나 보존이 잘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차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믿음의 힘만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었던 장면은 그 당시에도 장관이었을 테니. 반면 기독교가 쇠락하고 신보다 인간이 앞서던 시대가 도래하고 또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순례길이 쇠퇴해 갔다는 점도 유럽인의 역사가 이 길 위에 오롯이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성찰의 기회를 물색하던 현대인에게 조용히 길을 내준 사람들 덕분에 순례마을은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삶과 역사의 교차점에 서 있다. 그리고 내 삶의 좌표는 그 어디쯤엔가 찍혀 있다.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rendezvousenfrance.com 02-776-9142 ▶travie info 어디서 출발하면 좋을까 출발점을 선택하는 건 순례자의 몫이다. 프랑스길Camino Frances을 걷는다면 파리, 르퓌Le Puy, 아를Arle, 생장St. Jean Pied de Port이 관문지다. 특히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에 이르는 코스에 70%의 순례자가 모인다고 한다. 미디피레네 코스를 걷고 싶다면 주도 툴루즈Toulous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무엇을 준비할까 가리비와 나무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초라한 행색도 시간이 흐르며 변모됐다. 기본적인 아웃도어 트레킹 물품을 준비하자. 편한 신발, 스틱, 수통 등을 챙기자. 빗물로 인해 무릎 아래 부분이나 등산화가 젖는 것을 방지하는 스패츠도 유용하다.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려면 우비는 필수다. 어디서 먹고 씻고 잘까 일단 먹는 것은 알아서.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조리도 가능하다. 알베르게는 도미토리 형식의 유스호스텔이라 보면 되는데 순례길 전역에 분포해 있다. 위생상태는 천차만별. 때로는 침대 진드기에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 순례자를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다만 몸이 아픈 경우는 예외다.
  • ‘까도녀’가 풀어낸 사랑과 풍자

    ‘까도녀’가 풀어낸 사랑과 풍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했던 시인 최영미(52)가 연애의 세계에 복귀한 뒤 쓴 시들이 포함된 다섯 번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실천문학 펴냄)을 냈다. 최영미는 3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 음식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이미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이미 가진 자들은/ 아프지 않다// 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미 뜨거운 것들은/ 말이 없다”는 시 ‘이미’를 낭송하며 자신의 시집을 소개했다. 변하지 않은 얼굴, 군살 없는 늘씬한 몸매로 여전히 ‘까도녀’(까칠한 도시 여자)의 느낌이 물씬했다. 4년 만에 내놓은 시집에 담긴 연애시에 대해 그는 “나는 글로 사기를 못 친다. 2부의 연애시 ‘연인’, ‘이미’, ‘의식’과 같은 시는 연애를 하고 있으니 쓴 시들이다”고 담백하고 명쾌하게 밝혔다. 5권의 시집 중 네 번째를 제외하고 연애하며 시를 쓰고 시집을 냈다. 그는 여동생에게 ‘사랑을 시작했다’며 털어놓자 ‘여자 아니냐, 나이가 몇이냐,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1980년대를 경험한 비슷한 나이의 한국 남성으로, 연애한 지 5개월 됐다”고 했다. 2008년 춘천으로 이주했다가 지난해 가을 다시 경기 일산으로 돌아온 때와 맞물려 있다. 당시 일산에 살던 최영미가 춘천으로 이사한 이유는 ‘하우스 푸어’. 아파트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춘천으로 떠났다. 춘천에서 최영미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고/ 어디서도 불러주지 않는/ 시간이 남아도는 시인은/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시골 시인은/ 국가는커녕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조차 무척 어려운 나는, /담뱃재를 털며/풍자시를 연습한다”(‘풍자시 연습’ 중)고 자조했다. 수도권 삶으로 컴백한 이유를 시인은 “건강이 나빠진 부모님을 춘천~서울을 오가며 병간호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소통의 속도가 빨라지는 세상에서 잊히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2년 창비 계간지 겨울호로 등단한 그는 시인으로 21년째 살고 있다.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시론] 제대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최영미 시인

    [시론] 제대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최영미 시인

    음식을 만들 줄 아세요? 밥을 할 줄 아냐고 내게 묻는 한국남자들이 아직도 있다. 거 참. 기가 막혀 상대를 노려보다 내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안 하면 누가 해주나? 노상 밥을 사먹었으면 내가 이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했겠어?” 내 입에서는 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려다 도로 들어간다. “시인을 뭘로 알아? 내가 집에 요리사라도 둔 줄 아나 보지?” 베스트셀러 시인의 약발은 십년 이상 가지 않는다. 시집은 팔려도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 첫 시집 이후에 크게 성공한 책이 없다. 정확한 계산은 안 해봤지만, 지난 십년간 내 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도 못 미친다. 여기까지 듣고도 ‘밥을 하는 최영미’가 안 믿어진다는 사나이들. 나의 여성성을 의심해 “요리를 잘 하세요?”라고 묻는 자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내가 준비한 대답은, “(이날까지 살면서) 요리를 못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요”이다.스스로 ‘요리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다’가 더 효과적인 자기과시임을 아시는지. 잘하지는 않지만, 못하지도 않는다. 되게 외교적인 고단수의 발언이다. ‘오버’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자면, 이십대 초부터 삼십대 후반까지 나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먹고 살았다. 마흔 무렵에 몸의 여기저기에서 고장신호를 접수한 뒤에 식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사는 것도 억울한데 내가 더블들보다 못 먹어서야 되겠는가? 내가 작은 집에 살고 비싼 옷은 걸치지 못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은 부르주아지와 비교해 크게 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음식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다른 돈은 아껴도 먹는 돈은 아끼지 말자, 몸에 좋고 맛도 훌륭한 먹거리를 찾아다니며 내 입이 고급스러워졌다. 원래 내 입은 고급스러워서, 밥은 대충 해결해도 술은 늘 까다롭게 골랐다. 맥주나 소주가 대세이던 1980년대에도 실연당한 뒤에 혼자 마시고 죽으려고 동네가게에서 산 술은 ‘마주앙’이었다. 내가 가장 즐기는 주류는 코냑, 모스카토 와인, 기네스, 테킬라이다. 어쩌다 친구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할 때, 솜씨를 자랑하려고 매실 원액을 넣고 불고기를 재고 프라이팬을 뒤집으며 난리를 피우지만, 사실 난 시간을 잡아먹는 복잡한 요리는 질색이다. 재료 준비부터 차림까지 15분 만에 끝나는,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후다닥 해먹는 요리라면 자신있다. 나는 달걀과 두부가 들어간 간편한 음식을 자주 해먹는다. 달걀에 호박이나 양파를 썰어 넣거나, 단백질을 보충하고 싶으면 굴이나 새우를 넣어 기름에 부친다. 커다란 접시에 따끈따끈한 오믈렛과 상추 따위의 잎채소를 담고, 옆에 잡곡밥을 곁들여 상을 차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잡곡밥이 없으면 곡물식빵을 잘근잘근 씹으며, 축구중계를 보며 얼마나 많은 주말을 보냈는지. 이렇게 간단한 음식은 나중에 설거지할 그릇도 적어, 아~ 싱글이 편하구나 자족하며 우울하지 않은 저녁을 보낼 수 있다. 그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식탁에 앉는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모르는 이를 만나 처음 식사 약속을 할 때,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때, 나는 그에게 식당 선택권을 넘긴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그가 권하는 음식을 먹어주며, 그의 됨됨이와 취향을 파악한다. 언론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아직도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대세라는 말을 들었다. 직업상 거의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술로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그의 주정을 들으며 나는 절망했다. 술이 아니라 알코올을 들이붓는 음주문화, 조직사회의 접대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즐거움이 지배하는 서울의 밤을 보고 싶다. 룸살롱과 모텔이 사라지고,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스가 지배하는 밤을 나는 꿈꾼다.
  • 표준어 복원처럼 문학도 다양성 인정해야

    표준어 복원처럼 문학도 다양성 인정해야

    지난해 8월 31일은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돼 그가 사퇴한 날이다. 이후 안철수 서울대 교수,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이사장 등이 시장 후보로 등장하는 등 정국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사실 이날은 국가 언어정책상 아주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짜장면’을 비롯해 ‘개발새발’ ‘맨날’ ‘복숭아뼈’ 등 국민이 일상적으로 쓰던 39개의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발음하며 검은색 짜장이 희멀건 자장이 되는 것 같이 어감이 이상하다고 입맛을 짭짭 다실 일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8월 31일 이전까지 일상 단어를 오랫동안 ‘비표준어’로 묶어두고 국민들의 언어생활을 억압해 왔다고 보면 되겠다. 평론가 겸 시인인 방민호(47)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짜장면이 맞다’라는 단편소설을 써 문학계간지 ‘문학의 오늘’에 발표했다. 그는 소설 안에서 8월 31일 표준어로 인정된 단어를 모두 굵은 명조체로 표현하며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고 있다. 이전부터 표준어로 군림하던 어색한 단어는 굵은 고딕체로 명기해 사람들이 그 언어에 대해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잘 표현해줬다. 방 교수는 3월부터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에 단편소설 연재도 한다.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업하는 것일까? ‘문학의 오늘’ 봄호가 인쇄돼 나온 지난 2월 29일, 4년에 한번만 돌아오는 독특한 날에 홍익대 앞에서 만나 까칠하고 따뜻하게 우리 시대 문학의 모습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았다. →이 시대의 문학이 무엇인가.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근거다. 교수는 경계 지워진 세상에서 사는데, 그 세상에서 사는 나는 본모습이 아니다. 그 경계 밖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삶, 부분 안에 놓여있지 않고 부분과 부분을 이어주고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문학이다. 정치, 도덕 등은 인간을 재는 척도인데 이런 척도들이 인간을 다 말해줄 수 없다. 문학만이 우리 사회를,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학이 ‘사적(私的)인 문학’으로 환원되지 않았나. -지난 15년 동안 문학이 공공적, 사회적 영역을 버리고 사적인 영역을 타고 들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다. 가장 사적인 인간은 자기 자아가 풍부한 인간인데 자아의 모습을 풍부하고 깊게 그려준 작품이 없고 표층적으로만 다뤘다.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개인의 풍부한 자아가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지는 다양한 층위의 문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소설 ‘도가니’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에는 어떤 평가를 내리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문학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문학이 반응한 것이다. 정치적 과제, 도덕적 요구에 부응했다. 사회가 변화하길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각광받을 수 있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사악한 노파를 죽인 뒤 풍부한 자책과 정신적 고뇌를 보여주는데 (그런 면에서 ‘도가니’ 등은) 좀 약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지영씨 좋아한다. 우리 사회에 최근 10여년 동안 그런 말을 하는 작가가 없었다. 시인으로는 최영미 선배가 있다. →시인인데 왜 소설을 썼나. -평론으로 데뷔했는데 시를 쓰니까 너는 왜 평론가가 시를 쓰느냐고 했다. 이번에 소설을 쓰니까 왜 시인이 소설을 쓰느냐고 한다. 시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쭉 써 왔다. 1990~93년에 시, 소설 등 습작을 많이 했다. 대학교 때 학생운동 쪼금 했고 사회운동 하려다가 방황을 거쳐 대학원에 들어와 논리를 공부해서 평론으로 먼저 등단했다. 꼭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꼭 쓰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소설을 쓴다. 광릉에 세조가 묻혀있는데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얼마나 재위했는지 아느냐. 겨우 13년을 했다. 그거 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한 것이다. 자기가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내게는 문학이 소중하다.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은 누구인가? -박형서의 상상력, 김혜란의 세상에 보내는 따뜻한 시선, 김사과의 자아의 문제에 몰두하는 모습 등에 주목하고 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잘나가는 출판사나 비평가에게 줄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은 자신과 싸우는 것이고 권력은 덧없다. 아무리 작은 사람도 권력이 있고 아무리 큰 권력도 덧없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사]

    ■K-water ◇원장 △교육 양기현△연구 고덕구◇지역본부장△수도권 양해진△충청 장용식△전북 이석천△전남 신송운△경북 정성영△경남 김영도 ■스포츠한국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직무대행 이재원 ■삼성화재 ◇지역단장 △수원 이수철△송파 최창원△제주 홍성익△성남 유상춘△일산 김성태△서울남서 김희창△춘천 임건△대구 장성민△원주 이성기△구리 김인영△노원 박황제△김해 진치근△서울서부 송광섭△강북 김계원△부산중앙 최의현△동서울 김일권△의정부 안재호△대전 박정민△안산 지수일△서울중앙 황진현△전북 백남주△충남중앙 김완식△부평 권중우△거제통영 송원일△포항 오재엽△둔산 강경완△마산 이재근△울산 권영걸△창원 조정배△강동 길경섭△부천 서정석△강서 장영철△광진 김석호△충남 이상엽△부산 홍순영△전주 이상필◇영업단장△대경대리점 이종구△영남대리점 김경석◇부장△선박항공보험부 김태함△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영업력강화 권순천△보상혁신 박진수<업무센터>△경기 안정희△강북 윤영기△강남 이동진△호남 임상순△대구 이상오△부산 조영부<보상센터>△성남 김태우△안양 장동철△강서 장준영△북부 장원△서부 김상식△부천 이명철△경남 김승일△강원 전광복<방카슈랑스영업부>△강서 김진호△강북 박종삼△중부 안영진△영남 정주영<영업부>△마이애니카 김승현△대기업3 한기대△단체보험 오대웅△법인3 신현근<전략영업>△1부 이승주△2부 박원규△3부 이보성<기업컨설팅>△영업1부 서석주△영업2부 김갑수<센터>△글로벌서비스 이종엽△인재개발 황인철△지방손해사정 김진석△전문손해사정 이정혁<제휴영업>△1부 허영길△2부 김종수 ■LIG손해보험 ◇승진 △부회장 김우진<사장>△영업총괄(법인영업총괄 겸직) 김병헌<상무>△인사총무담당 정하진<이사>△자산운용담당 김상헌△자보담당 김옹중△법인영업1본부장 박희재△교육〃 이병일△신채널〃 허재영△장기보험담당 심재웅△충청본부장 민광기◇담당 선임△사천교육담당 정태종△법인마케팅담당 조철호△대구본부장 이화성◇보직 변경△경영관리총괄 장남식△준법감시인 이중삼△장기일반보상담당 김강현△직할영업본부장 양태훈△고객마케팅담당 김승화△경영기획담당 홍성준△자동차보상담당 변치규 (2012년 1월 1일자) ■대우증권 ◇지점장 신임 △진주 정영자△의정부 김승호△가락 정인경△안산 박창길△원주 정미애△목포 전성국△여수 주기은△대구 최영미◇부서장 신임 <부장>△업무개발 이철영△법인영업2 송태준△RETAIL사업추진 박지유△PE 서정협<팀장>△은퇴설계연구 채희경△미래전략 임덕균△홀세일사업추진 신종선<실장>△홍보 이남주◇지점장 전보 △갤러리아총괄 민경부△센텀시티 손한균△한티역 장동훈△범어 배충렬△역삼역 남재승△목동중앙 조익표△역전 조천환△서현 한일면△잠실 김재하△강남 이권철△동수원 이우준<지점장>△마산중앙 이수항△구미 조장욱△방배동 배진묵△강서 안성환△성서 김규돈△동해 권혁건△장한평 예병규△광교2 최홍석△수원 황순영△동래총괄 이창현△칠곡 임재순△마포 권순동△독산동 김대엽△대치 박상훈△청량리 서문석△창원 손명호△반포 송관훈△인천 이동기△서초동 이종서△상인 이한성△속초 장세준△창원시티 황성권△영등포 이덕재△신촌 조용우△관악 성기정△제주 신관용△통영 이호△목동 남미옥△개봉동 이화선△주안 최진선△익산 안준영△이촌동 김주영◇부서장 전보△감사기획팀장 박창옥△기획실장 강성범<부장>△DCM 이종학△인프라운영 정진늑△신사업영업 강홍구△인더스트리3 김진혁△ECM 정문환△IT기획 황재우△법인영업1 김형종△인더스트리1 안성준△인더스트리2 박현주△인더스트리4 이경우△리서치지원 오철우 ■신한생명 △부사장 김상진◇본부장△영업 오원철 황인상△여신운용 서용덕△증권운용 한태경 ■동국제강 ◇승진 <상무>△전략경영실 부실장 이성호<이사>△인천제강소 생산담당 곽철△당진공장 관리담당 김길문△인천제강소 〃 김연극◇보직변경△본사 영업/수출 총괄 변철규△당진공장장 연태열△본사 원료자재담당 강국△포항제강소 관리담당 김철환△본사 판매생산계획담당 김종율△포항제강소 품질담당 김세동 ■유니온스틸 ◇승진 <이사>△본사 냉연도금영업담당 김상엽◇보직변경△부산공장장/R&D담당 이용수△부산공장 품질경영담당 최종철△본사 칼라영업담당 임동규 ■인터지스 ◇승진 <전무>△부산영업본부장 정순일<이사>△중국 연합물류담당 박동호<이사대우>△중부지사장 정연립 ■DK UIL ◇승진 <부사장>△대표이사 김상주<이사>△천진법인장 성장용△생산기술본부/R&D센터장 이범희 ■국제종합기계 ◇승진 <부사장>△대표이사 남영준<상무>△생산담당 김찬동△상근감사 진흥열<이사>△기획담당 현성덕△재무담당 나병수◇보직변경△엔진센터장 한명교 ■DK UNC ◇승진 <사장>△대표이사 변명섭<전무>△SI사업본부장 김광선<상무>△SM사업본부장 정성홍<이사>△IS사업실장 표영<이사대우>△기업고객사업실장 안두수
  • [부고]

    ●이대행(전 서울신문 체육부장)씨 장모상 4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6일 오전 5시30분 (02)2258-5965 ●정강일(자영업)씨 부친상 김경식(자영업)김창갑(한국은행 감사실 감사3팀장)임영수(삼성테크원 과장)씨 장인상 4일 부산보훈병원, 발인 6일 오전 5시 (051)601-6793 ●이치동(영인기술 이사)기종(한국광기술원 연구원·전 광주일보 기자)씨 부친상 곽기종 현길용(전 HP 상무)김성국(서울프로 대표)씨 장인상 4일 광주 한국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62)380-3041 ●김정현(청치과 원장)광현(숭실고 교사)씨 부친상 국주영(플러스웰치과 원장)최영미(명덕초 교사)씨 시부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02)3410-6912 ●김평문(전 우체국장)씨 별세 영추(대진엔지니어링 감사)희추(사업)미순(시인)씨 부친상 박동순(대진엔지니어링 대표)오용석(아산재단 서부지역 관리본부장)이문택(사업)김동왕(서산몰드 대표)씨 장인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4 ●최낙기(사업)성옥(진흥콘크리트 부장)성문(군포시청 건설과)성진(한국토지주택공사 차장)씨 모친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30분 (02)3010-2295 ●이명호(전 중앙대 대학원장)명조(호주 거주)명길(전 풍림관광 대표)명환(명성지질 〃)명범(사업)명철(〃)명선(캐나다 거주)씨 부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3010-2231 ●이원복(전 담수회 회장)씨 별세 원백(주택금융공사 홍보실장)씨 형님상 장희(대구제일병원 원장)정희(자영업)두희(영남대 교수)희옥씨 부친상 이주호(자영업)씨 장인상 5일 영남대의료원, 발인 7일 오전 7시 (053)620-4242 ●양낙규(아시아경제 기자)씨 조모상 5일 충남 대천장례식장, 발인 7일 오전 8시 (041)932-6299 ●표인수(인창물산 대표이사 회장)문수(SK텔레콤 고문)씨 모친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2072-2018 ●이재성(한겨레신문 경제부문 기자)재관(인천지하철공사 차량중장비부)씨 부친상 5일 일산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31)961-9400
  • 철학, 詩를 만나 노래하다

    가타리, 들뢰즈, 비트겐슈타인, 아도르노, 하이데거… 무슨 글을 읽을 때 잘 나가다가도 이런 현대 철학자의 이름들이 들먹여지면 괜히 주눅이 든다. 가까이 두고 읽고 싶지만 해석은커녕 옆 사람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기도 어려워 자칫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잘난 체한다는 말만 들을까 두렵다. 철학이 그러하듯 시(詩)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것도 같은데 읽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재미있게 철학 접하기, 감동하며 시 읽기를 도와줄 책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강신주 지음, 동녘 펴냄)은 21명의 현대 철학자와 현대 시인이 두 사람씩 꼭 손을 붙잡고 등장한다. 일종의 철학 입문서이자 시의 고갱이를 일깨워 준다. 그동안 신문, 잡지에서 영화 평론, 문학 평론, 정치 비평 등을 관심있게 읽고싶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며 표류하게 하곤 했던 철학의 개념들을 전면으로 끄집어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글을 읽다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타자론’이니 ‘다중’이니 ‘부정 변증법’이니 하는 알쏭달쏭한 개념들은 인문학의 바다로 떠난 항해를 지루하게 만들거나 중도에 접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난해한 철학 개념의 설명을 도와주는 것은 시(詩)다. 철학은 물론 시조차 어려운데 이 둘을 붙여놓다니, 하고 난감해하는 찰나 ‘시 읽는 철학자’ 강신주는 말한다. “걱정하지 말라.” 철학에 시를 덧붙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시인 기형도가 만나 ‘언어의 뼈’에 대해 생동감 있게 사유하도록 하고,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로 당대를 선구했던 유하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접목시켜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에 대해 성찰하게 도와준다. 또한 ‘꽃’의 시인 김춘수의 또 다른 작품 ‘어둠’을 통해 난해하기만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좀더 생동감있게 설명한다. ‘니체와 황동규’는 망각의 지혜를, ‘사르트르와 최영미’는 애무와 섹스의 비밀을, ‘바디우와 황지우’는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을, ‘네그리와 박노해’는 민중이 아닌 다중(多衆)의 개념을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렌트와 김남주’가 만나서 ‘영혼없는 관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덧붙임은 물론이다. 저자는 “21명의 철학자와 시인들이 소개하는 모든 봉우리를 다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면서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두 봉우리만을 확인하더라도 큰 수확이 될 것”이라고 철학, 그리고 시 읽기의 의의를 설명한다. 따라 읽다 보면 ‘철학적 시읽기’이자 ‘시로 철학 읽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에 갓 들어간 새내기들의 인문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1만 6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순정만화는 잊어라…리얼리즘에 빠져봐

    순정만화는 잊어라…리얼리즘에 빠져봐

    여성 작가가 그렸다. 9개의 단편 대부분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순정만화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성인 여성들의 모습이 진지하게 담겨 있다. 오랜 연애 생활에 남자친구와 무미건조한 사랑을 나누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죽음의 순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독거할머니, 고된 업무와 모진 세상에 힘겨워 하는 백화점 판매원, 야속한 시어머니와 우유부단한 남편에다 원치 않은 임신까지 해 결혼 생활이 우울한 전업주부, 쳇바퀴 같은 삶이 멈춘 순간 생면부지의 남자와 관계를 갖는 출판사 편집자, 지리멸렬한 삶에 지친 일러스트레이터…. 저마다의 직업과 처한 상황은 달라도 회색빛 삶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물론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 단편도 있다. 직장을 잃은 뒤 무기력에 몸부림치거나,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와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등 역시 답답하고 절박하고 남루한 삶을 산다. 채민(오른쪽 38) 작가의 ‘그녀의 완벽한 하루’(창비 펴냄)가 그렇다. 여성들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낸 보기 드문 리얼리즘 만화라 주목된다. 순정만화 문법에 익숙한 독자라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채민 작가는 삶의 어두운 면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희망을 꾸며내지도 않는다. 그는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담으려 하기보다 기본적으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내가 바라보는 삶과 세상은 다소 우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형도·박정만·허연·오규원·최영미·최승자·이상·황지우·신현림 시인의 작품이 각 단편을 장식하고 있는 점도 독특하다. “시에서 영감을 얻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만든 뒤 거기에 적합한 시를 찾아 만화 안으로 가져왔다.”는 게 그의 설명.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너무 벅찼기 때문에 앞으로 시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토로했다. 원래 디자인 쪽의 일을 하다가 이십대 후반에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됐고, 일본 작가 마쓰모토 다이요의 ‘핑퐁’을 접하고는 그 스타일과 내용에 충격을 받아 만화가의 길을 결심했다고 한다. ‘맨땅에 헤딩’하듯 독학으로 만화 작업을 했던 과정이 그만의 아우라를 쌓는 데 한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2001년 활동을 시작한 뒤 9년 만에 맛보는 사실상의 첫 단행본이지만 생각보다 기쁘지는 않고 오히려 담담하다고. “그저 오랫동안 독자들과 소통하며 꾸준하게 창작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채민 작가는 벌써 2011년에 할 작품까지 생각해 놓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만화사이트 툰도시에 연재하는 ‘나쁜 음식’이 상반기에 끝나면 지금까지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터치로 감정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