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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차관 원정일씨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상오 청와대에서 뒤늦게 귀국한 신임 이명현 교육장관과 이영탁 총리행조실장 등 차관급 인사,이날 임명한 원정일법무차관 등 8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높은 사명감을 갖고 국정과제 해결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신한국당총재인 김대통령은 이어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 이해귀 정책위의장 등 신임 당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유능한 신임 당직자들이 당을 단합하여 새로운 면모를 보여달라”고 말했다. ◎원정일 신임 법무차관/소탈한 성품… 원리원칙 중시하는 소신파 소탈한 성품에 달변으로 원리 원칙을 중시한다. 사시 7회에 최연소로 합격해 동기생 가운데 선두를 달려왔으며 대검과 법무부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3년여동안 검찰 1과장을 맡아 인사 제도의 장기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는 등 기획 능력도 뛰어나다. 다방면에 걸친 독서로 박학 다식하고 야생 동물학과 인문지리에도 조예가 깊다. 추상 화가로 유명한 홍정희씨(52)와 사이에 1남1녀. ▲서울(52) ▲경기고 ▲서울 법대 ▲대검 중수3과장▲법무부 검찰 1과장 ▲서울지검 형사1부장 ▲청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 “대통령선거 승리 확신”/강삼재 총장 일문일답

    ◎야 병역시비 등 정치공세 맞대응 할 것 신한국당 사무총장에 5개월만에 복귀,12월 대선의 ‘야전사령관’으로 선거를 진두 지휘할 강삼재 신임총장은 7일 당직개편이 단행된 직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 당의 잠재력과 역량을 발휘한다면 대선 압승은 낙관하지 않지만 승리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총장직 제의는 언제 받았나. ▲지난 4일 이회창 대표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 자리에서 였다.적임자가 아니라고 고사했으나 2시간동안 많은 얘기를 하면서 당이 필요로 한다면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총장직을 고사했던 이유는. ▲새로운 얼굴에 새로운 팀이 대선을 이끌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대표가 어떻게 설득했나. ▲‘경선이후 각 진영의 사람들 가운데 크건 작건 감정의 찌꺼기가 있고 당의 결속과 화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4·11총선 당시 선대위 의장이었던 이대표가 본부장으로 일한 나를 눈여겨 본 것 같다. ­대선을 어떻게 치를건가. ▲달라진 시대에 맞는 집권당상을 만들어야 한다.허물이 있다면 개선해 당이 국민 품에 안기도록 하겠다.최선을 다해 선거전을 펼친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으로 확신한다.야당의 병역시비 등 정치공세에는 맞대응하겠다. ­당내 화합과 결속 방안은. ▲내주초 발족하는 대선기획단에 각 경선후보 진영의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겠다.경선때의 자그마한 앙금까지 없애는 것이 쉽지 않겠으나 조만간 경선이전으로 복원될 것으로 본다. 강총장은 ‘실세총장,‘YS직계맨’으로 통하는 4선의원으로 업무장악력과 추진력이 뛰어나 김영삼대통령의 신임이 대단히 두텁다. 12대 총선때 마산·창원에서 32세의 최연소로 원내에 진출한 뒤 야당의 대변인을 거쳐 당무의 기획,조정기능을 도맡아 왔다.집권여당 사무총장으로 95년 6.27지방자치선거와 96년 4·11총선을 총지휘하면서 선거정국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는 평이다. ▲경남 함안·45세 ▲경희대 ▲통일민주당 대변인 ▲민자당 정책조정실장·기조실장
  • LG에 30대 최연소사장 탄생

    ◎삼성출신 37세 이양동씨 LG인터넷 맡아 LG그룹에 30대 최연소 사장이 탄생했다.LG그룹은 지난 9일 발족한 LG인터넷의 초대사장으로 올해 만 37세의 이양동씨를 내정했다고 22일 밝혔다.공개모집한 사장직 지원자 30여명중에서 뽑힌 이사장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미 예일대 전산학과 석사,콜럼비아대 전산과 연구조교를 거쳐 삼성그룹계열인 SDS 해외서비스사업팀장으로 일해왔다.
  • 여야 전당대회사/70년­DJ 신민당 2차투표서 역전승

    ◎76년­신민당 주류·비주류 ‘각목대회’ 오점/87년­민정당 노태우 지명… 6·10항쟁 촉발/92년­민자당 사상 첫 자유경선 ‘이정표’ 우리 50년 헌정사에서 대통령 후보나 당총재를 뽑는 전당대회는 파란과 역전극 등 국민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과거 전당대회 가운데 국민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전당대회는 역시 70년 9월 29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였다.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이철승 후보간의 3파전이었다.김영삼 후보는 당 주류의 지지를 받아 낙승이 예상됐으나 의외로 2차투표에서 김대중 후보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74년 8월23일 신민당 전당대회는 유신체제 속에 치러진 당수 선출대회.‘선명’깃발을 내건 김영삼 후보가 최연소 야당총재로 당선,박정희 유신정권과 선명야당의 투쟁이 시작됐다.76년 5월 25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는 김영삼 총재의 주류에 이철승씨를 대표로 한 비주류측이 도전장을 내 한판 승부였다.그러나 이날 대회는 한국 야당사의 최대오점으로 기록된 각목대회로 끝났다.그해 9월16일 열린 집단지도체제의 대표최고위원 선거에서 패배한 김영삼씨는 3년뒤인 79년 5월30일 전당대회를 통해 총재로 복귀했다.87년 6월10일의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민정당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노태우씨는 전두환 총재에 의해 후보로 지명됐다.그러나 곧 6·10 시민항쟁이 일어났고 노후보는 선출된지 19일만에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발표,국민들에게 ‘항복’했다.92년 5월19일 열린 민자당 전당대회는 여당 사상 처음으로 자유경선의 형식으로 치러졌다.그러나 전당대회 이틀 전에 이종찬 후보가 경선과정의 외압을 이유로 경선불참을 선언,사실상 김영삼 후보의 단독출마 형식이 됐다.지난 5월19일 열린 국민회의 전당대회는 김대중 후보가 압도적으로 선출됐고,6월24일 열린 자민련 전당대회에서는 김종필 후보가 선출됐다.이 두 전당대회는 과거 역전극과 파란을 몰고 왔던 야당의 전당대회와 달리 현재 야당은 총재 일인체제가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 한인에 희망준 안젤라 오/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골치아픈 문제중 하나인 인종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최근 대통령 직속기구로 「인종문제 자문위원회」가 발족된 바 있다.이 위원회 7인 위원중 하나로 재미동포 안젤라 오(41·한국명 오은주)씨가 임명된 사실은 재미 한인들을 크게 고무시키고 있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인종문제는 재선대통령으로 역사적 업적을 남기려는 클린턴 대통령이 2기행정부 출범때부터 0순위 임을 밝혀온 문제다.자문위원회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내 인종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향후 50년간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를 연구,종합보고서를 제출하고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법개정및 행정구조개혁 등 인종화합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자문위원회의 보고서가 향후 인종정책의 근간이 된다는 중요성을 감안,위원선정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물론 이익단체들의 로비로 인한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최소의 위원과 다수의 실무진으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세웠었다.때문에 이들 위원들 개개인의 역할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A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오씨는 학자,전직 주지사,기업인,성직자 등 다양한 직종과 백인3명,흑인2명,히스패닉1명,아시아계1명의 구성원 가운데 아시아계를 대표하는데다,최연소 위원으로 맹활약이 기대된다.따라서 미전역에서 백인과 흑인 양쪽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해온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오씨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캘리포니아대를 나온 LA태생의 오씨는 지난 94년 LA폭동 직후 TV시사토론 등에 출연,한인들의 억울한 처지를 역설하면서 한인의 대변인으로,또 민권운동가로 알려져왔다.또한 LA한·미변호사협회 회장등을 맡아 한인의 처우와 지위개선을 위한 법률구조활동을 벌이는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완전한 2세 세대인 오씨의 쾌거는 미국내 주류사회로의 진출을 갈망해오고 있는 모든 한인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1.5세이긴 하나 연방하원의원 제이 킴(한국명 김창준),컴퓨터산업의 총아 스티브 강 등 미주류사회로 진입하는 한인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아메리칸 드림」을 기원한 1세들의 희생의 결실이다.제2,제3의 오씨 출현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 황제/이규황 삼성경제연 부사장(굄돌)

    최근 비즈니스 위크와 포춘지는 동시에 타이거 우즈를 표지인물로 게재했다.그는 1997년 4월 14일 오거스타 골프클럽에서 챔피언으로 등극했다.그가 세운 기록은 벌서 타이거 이전시대와 이후로 골프사를 가를 정도로 풍성하다.1961년 마스터스 대회 이후 21세의 최연소 챔피언이다.유색인종으로는 처음이다. 우즈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 잡았다.이에는 정보화 시대의 덕이 크다.우즈는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사상 가장 많은 4백40만명을 텔레비전앞에 끌어 모았다.무하마드 알리 이래 가장 짧은 시간에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전세계에 동시적으로 발휘하였다.우즈의 재능과 현대 첨단미디어의 행복한 결합이다. 이제까지 너무나 많은 영웅 때문에,다른 운동과 달리 골프는 새로운 스타를 갖기가 어려웠다.그러나 우즈는 스타로 갑자기 탄생하여 골프의 지평을 넓혔다.그의 등극으로 앞으로 백인이건 유색인종이건 남녀노소 누구나 골프를 즐길수 있을 것이다.골프를 칠 생각도 안했거나 노년에나 골프채를 휘둘렀을 50만명의 청소년들이 향후 10년에 걸쳐이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세대교체는 특히 돋보인다.그는 인종이나 성별,나이등 골프 외적 조건에 관계없이 능력으로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최고를 이루었다.그리고는 시장진입의 문을 더욱 활짝 열어젖혔다.자연스럽게 골프제왕의 세대교체가 물흐르듯 이루어졌다. 결국 우즈는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여 경쟁을 뚫고 정상에 올랐다.정보기술은 그에게 골프산업은 물런 경제·사회 분야에도 큰 영향력을 갖도록 하였다.경쟁과 능력,정보화가 어우러진 시장질서의 상징이 아닐수 없다.정치·경제·교육·사회 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원리이다.공정한 경쟁의 보장,그것이 곧 개혁의 구체화가 아닐까?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6∼7월에는 유재천·이규·장윤우·하성난씨가 맡습니다. ▲유재천(40)=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중앙대 약학과·서울대 대학원 졸,일본 도쿄대 박사(독성학).고려대·연세대 대학원 객원교수. ▲이규황(50)=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서울대 정치학과 졸,미국 펜실베니아대 박사(경제학).행시 10회.건설부 국토계획국장 역임. ▲장윤우(60)=성신여대 공예과 교수·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서울미대 및 동 대학원 졸.63년 시인 등단.「사인부락」등 시집과 「금속공예론」 등 저서 다수. ▲하성란(30)=소설가.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풀」당선.이후 「두 개의 다우징」 등 중·단편 발표. 지난 4∼5월 수고하신 박정란·유시왕·이원종·정준극씨께 감사드립니다.
  • 4월의 신SW대상 이상협군/한국의 MS사 꿈꾸는 18세 사장님

    ◎DB편집기 등 8개 SW 종합 「칵테일97」 개발/과기대입학 미루고 국내외 판매계약 상담 『세계 최고의 기술로 마이크로 소프트를 능가하는 소프트웨어회사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지난 9일 정보통신부가 수여하는 4월의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를 받은 이상협군의 당찬 포부다.이군의 나이는 18살.이 상 수상자 가운데 최연소자다. 이군이 이번에 수상한 제품은 「칵테일 97」.멀티미디어 파일 저작프로그램인 「멀티미디어 스튜디오」를 비롯해 워드프로세서,그래픽 편집기,데이터베이스 편집기,음악편집기,HTML작성 프로그램,영한번역기,멀티미디어 플레이어등 8개의 프로그램들로 구성된 중량급 소프트웨어다. 이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멀티미디어 스튜디오는 동영상,그림,문서,음악 등 여러종류의 파일을 총괄처리,출력하는 프로그램으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일반 사진을 이용,소리와 영상을 합친 전자앨범을 만들수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이군의 설명이다. 이 제품은 대구 청구고교 2년때인 95년부터 혼자 만들어오던 것들을 집대성한 작품.이군은 이미 지난해 국내최대의 소프트웨어 전시회인 한국 컴퓨터/소프트웨어 전시회(SEK)에 「광개토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출품,관련업체와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호기심으로 컴퓨터를 처음 접한 이군은 중학교 2학년때 퍼즐게임을 만들 정도로 일취월장의 실력을 보였다.이 프로그램은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다운로드해 쓸 만큼 인기를 끌었다. 수상경력도 다채롭다.95년 대한민국 PC경진대회 고등부 프로그램개발능력부문에서 대상인 정보통신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도 전국PC경진대회 공모부문에서 역시 대상을 받았다.덕분에 올해 과학기술대에 특례 입학허가를 받았다. 입학은 「사업」때문에 뒤로 미루고 있다.그는 칵테일97의 본격 판매를 위해 미성년의 나이로 지난 4월 「화이트미디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린 어엿한 「사장님」이다. 이군은 『이미 지난해 SEK출품때부터 관련업체의 상품화 제의를 강하게 받았다』면서 『현재 국내 유수업체들과 칵테일97의 국내 판권계약을 추진중이며 일본 세이와,중국 북두성전자 등 외국 유통업체와도 해외시장 판권계약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이 제품은 7만9천200원(부가세 포함)으로 다음주부터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02)718­8322.
  • 영 노동당 압도적 승리/과반의석 확보…블레어 새총리로/총선 개표

    【런던 외신 종합】 영국 총선에서 역사적인 압승을 거둔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44)가 2일 1백85년만의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 노동당은 1일 실시된 총선에서 보수당 의석의 2배를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지난 79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패한 이래 18년만에 정권을 다시 잡았다.〈관련기사 3,5,6,7면〉 총 659석중 631개 지역구 개표가 완료된 2일 하오 3시(한국시간 하오 11시)현재 노동당은 417석,보수당 160석,자민당 43석을 기록하고 있다.보수당은 1832년 이래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블레어 당수는 연설을 통해 『영국의 새로운 새벽이 밝았다』고 선언하고 『영국민들이 노동당에게 보내준 압도적인 지지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는 새로운 노동당으로 선출됐기 때문에 새로운 노동당으로 국정을 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레어 당수는 2일 낮 버킹엄궁을 방문,엘리자베스 여왕을 알현했으며 여왕은 블레어 당수를 51대 총리로 정식 임명했다. 한편 존 메이저 보수당 당수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보수당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총리 사직서를 제출했다.
  • 미 MS사의 SW개발전문가 시험 합격/강희훈군

    ◎“최연소 「MCSD」취득 뿌듯”/국내 25명 불과… 대학생으론 처음 따/고교시절 「컴퓨터 천재」… “벤치기업 꿈” 지방의 한 대학생이 컴퓨터 전문가들도 통과하기 힘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 인정시험(MCP:Microsoft Certified Professional)에 당당히 합격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원광대 공대 제어계측공학과 4년 강희훈군(23).강군은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지난 2월 실시한 MCP의 한 분야인 MCSD(Microsoft Certified Solution Developers:마이크로소프트 인정 솔루션 개발자)에 응시해 최근 합격통보를 받았다. 현재 국내 MCSD자격증 취득자는 불과 25명인데 이들 대부분은 대기업에 근무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이며 대학생으론 강군이 처음이다.미국에서도 MCSD자격증 취득자는 30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시험이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다. MCSD취득자는 MS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기술정보를 받아볼 수 있으며 자격증 소지만으로도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인정받게 된다.또 이 회사 주최의 세미나 등 각종 행사에 초청받는 혜택을 누린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즐기다 컴퓨터에 푹빠진 강군은 고교시절 이미 게임과 서류작성 프로그램등을 개발해 주위에서 「컴퓨터천재」로 불렸다. 강군을 지도해 온 안태천 교수는 『강군은 집중력이 매우 강한데다 창의력이 뛰어나 프로그램 개발에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왔다』고 말했다. 강군은 『대학을 졸업한 뒤 컴퓨터 공부를 계속해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압승예상 블레어 노동당수/44세 영 최연소 총리 눈앞

    ◎94년 당수취임… 당노선 바꿔 중산층 지지 도출/리더십 강력…“ 노쇠한 영국 재건하자” 바람몰이 차기 영국총리 취임이 확실시되는 토니 블레어 노동당수(44)는 당수 취임 이래 급진성향의 노동당을 중도성향으로 바꿈으로써 중산층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94년 노동당을 장악하자마자 당의 슬로건을 「새로운 노동당」으로 바꾼 것은 중대한 당노선의 변화였다.보수색채를 수용한 새로운 슬로건의 채택으로 당내 권력다툼을 잠재우는 한편 오로지 집권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로 삼았다. 그가 주창한 「새로운 노동당」 이념은 결국 유권자들에게 보수냐 급진이냐의 차원을 넘어 노쇠한 영국을 새롭게 재건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새로운 바람을 몰아왔다.그는 선거 유세 기간내내 「보수당이 5번째로 연속집권할 값어치가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이를 반영,많은 영국인들이 그를 통해 「철의 여인」 대처를 연상한다.전 노동당 부당수를 역임한 로이 해터슬리는 그에 대해 「타협을 허용치 않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의 이같은 성향은 전임자의 유약한 이미지에 식상한 유권자의 지지를 얻은 또다른 요인이었다.존 메이저 총리가 전임자인 대처 전총리의 독선에 식상한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얻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그는 묘하게도 메이저 총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전임자에 대한 반발심리를 업고 지지를 얻은 것도 그렇지만 메이저 총리가 90년 47세로 영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 것처럼 그 역시 총리가 되다면 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다.의회 진출 11년 만에 당수가 됐다는 점 역시 두사람의 공통점이다. 기본적으로 급진성향에 뿌리를 둔 블레어는 스코틀랜드 중산층 집안에서 영국 북동부 두르함 지방의 보수연합을 이끌던 법률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옥스퍼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의 성향과는 달리 노조전문변호사로 활약하다가 75년 노동당에 입당했고 83년 30세의 나이로 하원에 진출했다.역시 변호사인 부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영 오늘 총선/노동당 18년만에 집권 눈앞

    ◎보수당­부동층에 기대… 막판 역전극 한가닥 희망/노동당­블레어 “다우닝가 입주만 남아” 축배준비 18년만에 노동당 정권의 출범을 예고하는 영국 총선이 5월1일(이하 현지시간)실시된다.이번 선거는 유권자 4천4백여만명이 참가,상오 7시부터 하오 10시까지 투표가 실시되며 하오 11시경 선더랜드 남부의 투표결과를 시작으로 당락이 판가름 나 2일 상오 2∼3시쯤에는 전반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임기 5년의 하원의원 659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신노동당」을 주창하고 나선 영국의 「존 F 케네디」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의 인기에 힘입은 노동당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블레어당수는 53년 5월6일생으로 승리할 경우 18년만의 노당동 총리로서 또한 최연소 총리로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관측통들의 관심은 다소 성급한 감이 있지만 노동당이 얼마만큼 이기느냐에 쏠리고있다.영국을 비롯 유럽지역 대부분의 언론들이 노동당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이다.총선 패배이후의 보수당의 진로 및 존메이저 총리 후임 당수 문제가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노동당은 표분산을 우려한듯 오히려 이러한 「압승」분위기를 톤 다운 시키고 있다.92년의 역전패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반면 보수당은 여론조사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보수 성향의 부동층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있다. 보수당은 막판까지 존 메이저 총리 등의 유세를 통해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적 입장을 강조하는 한편 노동당의 스코틀랜드에 대한 권한이양 계획을 비난하면서 공세를 계속했다. 노동당은 유럽통합에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유럽문제에서 연방국가 창설계획을 저지하는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각 민족 고유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국가간 협력형태의 유럽연합(EU)을 희망한다고 주장,보수당의 공격에 맞섰다. 선거 이틀전인 29일 실시된 갤럽조사 결과 노동당의 지지율은 49%로 보수당을 19% 앞서는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15∼24%P 정도 지지율이 높다.의석수에서 200석 가량 앞설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보수당의 자체 조사에서도 노동당보다 8%포인트의 열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노동당이 과반수 의석을 무난히 확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92년 4월9일 총선에서는 선거직전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5%P가량 지지율이 앞섰으나 결과는 보수당이 41.9%의 득표율로 총의석 651석 가운데 336석을 얻은 반면 노동당은 34.4%를 얻어 271석에 그치는 대역전극이 벌어졌었다.
  • 기능장 합격 147명 발표/최고득점자에 김일록씨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이사장 김재석)은 16일 국가기술자격검정 제21회 기능장시험 최종합격자 147명을 확정,발표했다. 최고 득점은 기계분야 판금제관기능장에 응시한 김일록씨(34·삼성항공 엔진수리부 대리)가,최고령 합격은 기계가공기능장에 응시한 안수현씨(55·모토로라코리아 공작계장)가,최연소 합격은 기계가공기능장에 응시한 윤동식씨(25·삼양중기 CNC 운영기사)가 각각 차지했다.
  • 화가 이종상(이세기의 인물탐구:124)

    ◎학·예 두루갖춘 화단의 「선사」/수묵채화서 판화­벽화까지 장르 경계 초월/번뜩이는 직관으로 세밀·대담한 화풍 일궈 일낭은 곧잘 「용광로의 불길같은 정열」에 비유된다. 또는 한치의 빈틈없이 「하고자하는 일을 완벽하게 성취해낸 실천자」이기도 하다. 소설가 최인호는 『한국에 두 사람의 선사가 있다고 한다면 그 하나는 바둑의 조훈현이고 다른 한사람은 일랑 이종상화백』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지칠줄 모르는 탐구력과 천재성, 여기에 자존심에 비견되는 욕심마저 겸비하고 있다. 나이 26세때 국전추천작가, 36세에 심사위원을 지냈고 「한국회화」라는 명제아래 심원한 수묵담채와 변화무궁한 구성, 세밀한 필치와 단아대담한 설채로 판화 벽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광활하게 석권하고 있다. 전 국립박물관장이며 예술의 안목이 드높던 최순우씨는 「일랑은 추상이니 구상이니 하는 한계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을뿐 아니라 작품의 폭이나 타고난 화재로 보아 그대로 화가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 말은 옳다. 이른바 수묵채색을 통합한 「현대진경」에서는 지금까지의 구투를 활짝 벗고 고압전선주나 터널, 쇠를 녹이고 달구는 노동현장을 등장시켜 박진감있는 결집을 펼치는가 하면 산수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원형상에서는 「돌기와 억제, 확산과 응축, 끊임없는 생성의 열기」로 조화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격정적으로 일구어놓는다. 평론가 오광수는 「이는 필력과 소묘력, 전통과 맥을 연결시키는 지성의 뒷받침없이는 이루어질수 없는 결과이며 견고한 아카데니즘과 다채로운 실험정신에서 구축된 것」임을 찬탄한바 있다. 그리고 「다방면에 걸쳐 일총한 재주를 보이는 탓에 그의 그림에서는 항상 섬광이 빛난다」고 덧붙인다. ○26세 국전추천 작가로 프랑스의 저명한 레스타니도 그의 「질료에 대한 묵시적 동작성은 마그마속에서 녹아내리는 근원적 생동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먹으로 그린 유려한 수묵화와 대지의 소묘, 이런 선묘를 구성해내는 격랑과도 같은 화면은 그가 회화적 질료표현의 대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관의 샘물이 마를줄 모르는 이종상」이란 인물은 「드믈게 만나지는 강인한 거인」으로서 「그를 두고 번뜩인다고 표현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외화대신 의경을 존중하는 원형상의 특징은 현란한 칠보작업에서도 거침없이 나타난다. 그때의 화면은 「중앙으로부터 꽃처럼 피어나는 구조」「마치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가 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장으로 사방에 흩어지는 형국이다. 굵은 붓자국이 자유로운 선영을 이루는 가운데 그가 창출한 동판유약화는 장엄한 「천지창조」의 선율이 물결치고 작품이 뿜어내는 결연한 함성에 보는이들은 압도당하고야 만다. ○지칠줄 모르는 실험정신 멜방이 달린 진바지를 입고 7백도가 넘는 불가마(로)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일랑의 모습은 62년 국전에 출품했던 바로 「작업」의 주인공이며 오늘의 그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경외심으로 응시하게 된다. 동문민의 「만권서를 읽지 않고 만리고행으로 흉중의 진탁을 씻어버리지 않으면 화가가 될수 없다」는 문구에 공감하여 그는 문기와 서권기가 충만한 「화중유시」를 구사해 내었고 화론이 출중한 것도 화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한동안 지필묵을 둘러메고 강산만리를 돌면서 각지역의 산세나 풍광의 특징을 꿰뚫어 한때는 「지리학자」란 별명을 듣기도 했다. 역사의 내구성과 자연의 미래를 농묵으로 그린 「독도」「남산」시리즈들이 그때의 산물이다. 자연을 그릴때도 자연의 외관을 그리지 않고 자연의 내면의 정기에 파고들어 자연스러운 질서와 형태를 마음속으로 읽어낸다. 생명의 원질을 포착한 기운생동은 「정신주의 향상성」과 현실에 감추어진 정신의 실체로써 「동양의 기사상과 기운론」에 바탕을둔 최근의 「기시리즈」가 이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그의 최근의 작품은 더욱 방대하여 세로 9미터 가로 18미터의 포항문화예술회관의 무대막을 제작하는가 하면 그가 빚은 마리아조각상은 금빛의 장미장식과 함께 눈부신 화사의 극치를 과시해 보인다. 후리후리한 키에 강인한 기상이 특징인 일랑은 소탈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사치를 위해서는 넥타이 하나도 사지 않지만 그림과 관계되는 것은 붓한자루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함부로 전시회를 열지 않을뿐 더러 웬만한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란 어렵다. 그와 절친한 시인 김형영은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미시적 치밀성과 거시적 대담성」으로 요약하고 있다. 「잠잘때도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하나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 몇날 며칠을 방황하고 모색하다가도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3,4백호 화면을 힘찬 윤필과 비백의 삽필로 일도양단하듯 단숨에 그려나간다.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무슨 일을 하던 기개와 열정이 넘친다는 점에서 그의 후학들도 「섬모심」을 금치못한다. ○“잠잘때도 그림 그린다” 원예학을 전공한 부친 이간재씨와 현윤옥씨 사이의 아들 형제중 차남,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서울대미대 입학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면서 어려운 고학생활로 대학을 졸업했다. 월전 장우성의 마지막 제자에다 산정 남정에 이은 「학예를 겸전한 화가」로 한학자 홍진표씨가 「큰 물결일수록 널리 퍼진다」는 뜻의 아호 「일낭」을 지어주었다. 이대 미대 출신인 성순득씨와의 사이에 남매, 5년전 차녀를 잃고 순명의 진리를 깨달아 가톨릭에 귀의했다. 눈코뜰새 없이 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언제나 바쁘다. 낙성대와 중계동, 벽제의 벽화연구소와 평창동 자택 등 네군데의 작업장을 돌면서 성격이 서로 다른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를 만나기란 좀체로 쉽지않다. 자신의 일에 치열하게 매달리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근원이 수화를 두고 「예술을 먹고 예술을 입고 예술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한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는 손끝이나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그래서 사람들이 눈이나 머리로 보는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보는, 의재필선에 다다르고 일체공성의 무위신품을 성취하는 일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보 ▲1938년 충남 예산출생 ▲61년 제10회국전 「장」특선 ▲62년 제1회 신인예술상전 최고특상·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상· 제11회 국전 무감사특선· 문교부장관상수상·최연소 국전추천작가 ▲64년 대한민국국민미술전람회 추천작가초대출품·도쿄국제미술전 초대출품 ▲67년부터 서울대 출강 ▲65­80년 국전 초대출품 ▲74년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 ▲75년 미댈러스주립대초대 개인전 ▲77년 동산방화랑초대 이종상진경전 ▲78년 동국대대학원 철학과석사과정 ▲81년 미부룩클린박물관 드로잉초대전·제1회 한국현대수묵화전 추진위원 ▲83년 문공부해외공보관주관 새한국화단면전초대 출품(뉴욕 LA 런던) ▲86년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 ▲88년 현대한국회화전초대작가 준비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88서울미술대전초대작가 추진위원 ▲89년 동국대대학원서 철학박사학위·호암갤러리초대 이종상회화전 「한국화의 새도전 새벽화」 ▲90년 가나화랑초대 90,FIAC(미술견본시장) 그랑팔레 파리 ▲91년 제1회 서울국제미술제 부이사장·현대미술초대전 운영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가나화랑초대개인전 ▲93년 현대화랑주최 「기호와 상형전」및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주최 한중미술교류전 및 파리한국현대미술제·베니스비엔날레·한국현대회화특별전,서울미술대전 운영위원장·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장·이종상 회향전(대전한림갤러리)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 〈저서〉 「화실의 창을 열고」「솔바람 먹내음」
  • 굽힘없는 소신파… “역사 곧게” 경사 아호/이 대표는 누구인가

    ◎대법관시절엔 소수의견 많이내 유명/「현직검사 구속1호」 이홍규옹이 부친 신임 이회창 대표의 별명은 「대쪽」이다.아호는 경사(역사를 곧게 한다는 의미).강직과 불굴,지조,소신 등이 연상된다. 그의 강직한 이미지는 정치인으로서 상품가치도 크게 높여 대선경쟁에서 그를 흔들리지 않는 여권의 유력주자로 버티게 하는 힘이 돼 왔다. 황해도 서흥출신으로 지난 81년 최연소 대법관에 임명,86년까지 재직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46건중 16건의 주심을 맡아 이 가운데 10여건에 대해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집안은 충청도의 소문난 명문가다.광주지검장을 지낸 아버지 이홍규옹(93)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 철봉운동을 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엄격했다.특히 이옹은 검사시절 강직한 성품으로 이승만정권 초기 정권의 미움을 사 「현직검사 구속 1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큰 아버지 이태규 박사(92년 작고)는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태두다. 이대표는 지난 4·11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입문한 이후 철저한 외부 보안속에 자기 사람 만들기작업을 해왔다.자신이 직접 맨투맨식으로 각계각층의 인사를 접촉하는 스타일이라 드러나지 않은 지지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드러난 인사들만해도 후원회 발기인 명단 18명중 회장인 정재석 전 부총리를 비롯해 김두희 전 법무·윤동윤 전 체신·김시중 전 과기처·황영하 전 총무처 장관 등 장관출신만 5명에 달한다. 원내에서는 서상목 백남치 황우여 의원 정도가 드러내놓고 「이대표맨」을 자처하고 있다.강용식 김덕 김영일 박성범 신영균 안상수 의원 등도 이대표 진영에 가까운 인사들로 꼽힌다. 이대표의 대선캠프는 수송동 이마빌딩에 차려져 있다.유경현 전 평통사무총장,안동일 변호사,이흥주 삼성고문,진경탁 전 의원,진영 변호사 등이 특보단을 구성,경선전략 등을 가다듬고 있다.캠프관리는 중앙일보 편집국장출신의 고흥길 비서실장이 맡고 있다.이들이 중심이 된 참모회의에서는 최근 당내 경선 규정에 대비해 미국식 예비선거제도 반대,결선투표제 도입,대의원수 증대 등의 기본 원칙을 가다듬었고 오는 4월 대규모 추대위 발족 방침을 결정하기도 했다.학계에선 안병만 외대총장과 방석현 서울대 교수 등이 가깝다.
  • “수재학생 가르칠 실력 부족”/30대 과기원 교수 목매 자살

    ◎잇따른 학생 자살이어 “충격” 9일 하오 3시쯤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엑스포아파트 105동 1304호 박진석씨(36·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집에서 박씨가 목매 숨져있는 것을 부인 송모씨(32)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송씨는 『지난 7일 대전으로 이사온 뒤 서울에 있는 친정에 갔다가 이날 하오 집에 와 보니 박씨가 안방 출입문 모서리에 허리끈으로 목을 맨 채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박씨는 지난달 26일부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개강을 앞두고 『수재인 학생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해 온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박씨의 몸에 별다른 외상이 없고 식탁위에 「일찍이 관두는 게 나아」,「가르칠 것이 걱정이야」,「하지말자」라는 문구가 적힌 쪽지가 놓여 있는 점으로 미뤄 박씨가 과기원 교수생활에 대한 부담을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만 15세의 나이로 최연소 입학해 화제를 모았던 학사과정 3학년 휴학생이모군(19)이 지난해 3월 28일 학업 부적응을 비관해 투신자살했으며 95년 8월엔 박사과정 화학공학과 4년차 진윤명씨(27)가 학위시험 부진 등을 고민하다 목매 숨지는 등 95년 8월부터 학생 4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 탈권위… 달라진 내각/고건 내각 출범… 첫 간담회 표정

    ◎“할얘기 하자” 실명제·규제완화 격론/“「문민」 매듭 잘돼야” 국정진력 다짐 8일 고건내각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국무위원간담회는 앞으로 국무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고총리와 각료들은 이날 이같은 이심전심을 바탕으로 2시간에 걸쳐 격의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이날 간담회 후반부 토론의 촛점은 금융실명제와 규제완화 문제였다.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앞으로 11개월 동안 개혁작업을 마무리하여 가시적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데,행정에 관해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잘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금융실명제는 부정방지라는 측면과 공평과세라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현 제도는 부정방지에 역점이 두어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현재의 긴급명령형태를 정상적인 법령화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총리가 이에 『실명제의 기본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완할 구체적 대안이 있느냐』고 지적하자 강부총리는 『자금을 내놓으면 세무서에서 자금출처조사를 하는데불법자금으로 확인되면 다른 법에서 규제토록 하고 자금양성화까지 규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현욱 환경부장관이 『이 문제는 경제논리만이 아니라 심리적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자 고총리는 다시 『실명제의 원칙은 지키되 근본취지에 맞게 정착되도록 보완하고,그 방향에 대해서는 조속히 공론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앞서서는 각료들이 돌아가면서 인사말을 했다. 권오기 통일부총리는 『문민정부의 각본은 대단히 훌륭하지만 각본이 훌륭하다고 연극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좋은 각본을 가지고도 잘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다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조순 서울시장은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이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흔히 서울시를 「복마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지뢰밭」』이라면서 『안하는 일이 없는 서울시에서는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니 중앙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호소했다. 손학규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번 개각으로 저에 관한 두가지 기록을 잃었다』면서 『하나는 강운태 내무장관이 최연소장관 기록을 깬 것이고,다른 하나는 송태호 문화체육부장관이 재산신고 최저액 기록을 깬 것』이라고 인사했다.
  • 추기경의 정년(외언내언)

    1951년 9월15일.대구 계산동 성당의 종소리가 유난히 밝게 울려 퍼졌다.이날 29살의 청년 김수환은 69살의 어머니가 맨앞자리 마루바닥에 꿇어앉은채 자애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사제서품을 받았다.한때 「장가 가고 싶어」신부되기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홀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뿌리치지 못해 신부가 됐고 이날이후 성직자로서의 멀고험한 길을 묵묵히 걸어와 오늘에 이르렀다. 대구에서 가난한 옹기장수의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신부로 서품된지 15년만인 66년 주교에 올랐고 68년에는 대주교로 서품되면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오른것은 69년 3월28일.이땅에 카톨릭이 전래된지 192년만의 경사였고 47세 추기경으로 카톨릭사상 「최연소 추기경」의 영예도 함께 얻었다.그리고 지금은 존경받는 정신적 지도자로 우뚝 서 있다. 그가 오늘의 자리에 이른것은 추기경이란 신분때문만은 아니다.올곧은 양심의 대변자로서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인간성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김수환 추기경은 교회의건전한 현실참여를 주도하고 있지만 해방신학같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는 단호히 거부한다.그것이 「존경받는 성직자」로서의 품위를 지켜주고 있다. 그는 청빈한 사제의 본보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으나 권위는 내세우지 않는다.오히려 지극히 소박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친근감을 갖게한다.95년 9월12일 경기도 부천 가톨릭대학에서 열린 KBS의 「열린음악회」때 대중가요인 「애모」를 열창한 것도 그의 성품을 드러낸 한 단면일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오는 5월8일로 만 75세,교회법상 정년을 맞게 된다.그는 정년을 앞두고 여러차례 은퇴의사를 표명했으나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적극 만류하고 있다고 한다.그의 은퇴여부에 대해 교황청의 공식발표가 있겠지만 앞으로 어떤자리에 있게되든 존경받는 성직자로서,또 사회원로의 한분으로 계속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해 주기를 기대한다.
  • 김 대통령 각계원로·당 천거 수용/총리발탁 뒷얘기

    ◎지난달 22일 오찬회동 직접 지시/작년 총선때도 불러 전국구 제의 「고건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이 시중의 여론을 종합해 결정한 작품이다.지난달 중순 대국민담화발표와 당정개편의 수순을 그리면서 「총리후보」로 일찌감치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김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고건 당시 명지대총장과 오찬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오찬일정은 비서실에서 짠게 아니었다.김대통령이 고총리를 청와대로 부를 것을 직접 지시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청와대 면담에서 김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고총리는 가까운 인사들에게 『총리직을 제의받고 고심하고 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김대통령이 「고건총리」기용 결심을 굳히기까지 각 사회단체 대표와 신한국당 고문들의 천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대통령은 지난달초부터 각계 원로와 신한국당 주요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시국수습을 위한 여론을 청취했다.이들중 많은 이들은 「탕평인사,지역편중 배제,능력위주 인사」를 요청하며 고건씨를 중용하도록 건의했다.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지난해「4·11총선」을 앞둔 지난해 2월에도 고총리를 청와대로 불러 전국구를 제의하며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총리의 「관운」/37세때 도지사 역임… 최연소 기록/5·17뒤 청와대 정무수석직 사표/서울시장 제임땐 「수서」외압 거부 ○…고총리는 「억세게도 관운이 좋은」 사람으로 꼽힌다.30대 전남지사,40대 청와대정무수석을 지냈고 교통·농수산·내무장관,국회의원,서울시장,명지대총장까지 거쳐 이제 총리에 올랐다. 「행정의 달인」이라 불리는 실무형 관료인가 하면 대인관계가 원만해 결코 적을 만들지 않는다.또 주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언변에다 보스기질도 그의 장점이다. 고총리는 전북대총장·6대국회의원을 지낸 고형곤씨(92)의 차남으로 부자 2대국회의원·대학총장의 기록도 갖고 있다.부친 고 전 총장은 김대통령의 서울대 철학과 은사이기도 하다. 고총리는 본적은 전북 군산이나 실제로는 38년 서울 청진동에서 태어나 창천국교,경기중·고를 거쳐 59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문리대학생회장을 지냈다.61년 13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당시 부친이 야당(민정당)의원이어서인지 내무부에서 1년반이면 받던 계장보직을 3년반만에 받는 등 천대(?)를 받기도 했으나 그 후로는 정말 승승장구했다.75년 37세로 최연소 도지사(전남)가 됐다.5공시절에는 교통·농수산장관,12대민정당의원(군산·옥구),내무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정무수석으로 있던 80년,5·17확대계엄조치를 맞이해 청와대에서는 유일하게 사표를 던졌다.그는 『확대계엄조처로 군정으로 가는 것은 찬성할 수 없었다』고 그때를 말했다.그러나 그는 이후 1년도 안돼 교통장관으로 입각,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 행정가의 길을 걸었다.88년 4·26총선때는 「황색돌풍」에 밀려 낙선했으나 곧 서울시장으로 재기했다.서울시장때 수서사건에 앞서 외압을 거부하며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아 경질되는 등 강직함을 보였다. 부인 조현숙 여사(59)와 진(36) 휘(35) 위(29) 세 아들을 두고 있으며 테니스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 차세대 기술관료들(등 이후 중국대륙:5)

    ◎호요방­당 서열 7위… 4세대 선두주자/왕조국­자유주의 세력 희망/증경홍­상해방·태자당 핵심/온가보­조자양 계열 온건파/오방국­유력한 차기 총리감 중국 지도자들을 분류할때 모택동과 주은래,등소평 등 혁명원로들을 제1세대,호요방 조자양 등을 제2세대,현재 권력 핵심인 강택민 이붕 등을 제3세대라 부른다.제3세대인 주자들이 대부분 70대 초반의 고령인 점에 비추어 중국공산당 16차대회가 열릴 2002년에는 현 핵심지도세력보다 연배가 10수년이나 아래인 제4세대 인물들이 정권의 전면에 배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40년이후 출생해 강택민,이붕보다 한세대 이상 아래인 이들 제4세대핵심들은 당과 정부,군 요직에서 착실히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이들은 개혁개방후 지방 각 지역과 중앙의 주요 직책들을 거친 기술관료들이다. 개인별로 볼때 우선 제4세대중 선두주자는 호금도임에 이견이 없다.강택민이후 가장 유력한 후계자다.56세로 중국정치의 핵인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당서열 7위다.명문 청화대를 나와 9년간 빈곤지역인 감숙성에서 기술관료로 활약했다.85년엔 극빈지역 귀주성의 최연소 당서기로 능력을 인정받았다.88년엔 민족분규로 유혈사태가 악화되던 티베트 당 서기로 부임,사태를 진정시켰다.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왕조국은 중국정치에선 호금도에 앞선 대권주자였다.87년 호요방의 실각,사망으로 보수파의 공격목표가 돼 복건성 성장,서기로 밀렸다가 92년 중앙에 복귀했다.호보다 2단계 아래인 중앙위원이며 통일전선부장(장관)이지만 그의 미래는 자유주의 세력의 입지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있다.호요방 총서기 시절 비서실장격인 당 중앙관공청 주임과 당의 일상활동을 조정,관리하는 중앙서기처 서기등을 역임했다. 증경홍은 강택민의 오른팔로 현재 비서실장격인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다.중앙위후보위원에도 들지못하는 등 당내 서열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실세중 실세로 꼽힌다.강택민,오방국,황국과 함께 80년대중반 상해시당 부서기를 지낸 상해방의 핵심이다.중국공산당의 원로인 증산의 아들로 태자당의 핵심이며 당원로의 지지를 받고 있다.올후반 15대 전당대회에서 고속성장이예견되며 그의 정치국 진입여부는 강택민의 힘을 재는 바로미터란점에서 주목된다. 정치국 후보위원인 온가보도 온건지도자로서 주목받는다.조자양 총서기밑에서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신임을 받았다.89년 6·4사태때 교석,전기운처럼 시위 무력진압에 대해 미온적이었지만 정치무대에서 살아남을수 있었다.그의 진로도 당내 온건파의 입지를 재는 척도중 하나다. 부총리 오방국도 상해방 출신의 공업전문가인 기술관료로 유력한 차기 총리감이다.명문 청화대졸업후 상해 전자관공장 기술자로 출발,전자분야 국영기업의 부사장을 거쳐 강택민과 주용기의 신임을 받아 상해시 당서기를 거쳐 정치국원이 됐다.강택민,증경홍 등과 마찬가지로 상해파의 대부 왕도함,진국동이 후견인이다.85년중반부터 강택민,황국 등과 함께 상해시 부서기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중국은 78년 당회의를 통해 차세대 양성을 공식화했다.65세면 장관직을 물러나야하는 것이나 40대의 국장및 40대의 핵심 차관을 선발하는 불문률의 관례도 이 때문에 세워졌다.이들 50대 지도자들이정권을 쥘때는 중국이 보다 개방되고 서구화 방향으로 나갈 것이 분명하다.
  • 김종상 국세청 재산세국장(폴리시 메이커)

    ◎“아파트값 이사철되면 안정 찾을것”/부녀자·미성년자 명의 취득 투기여부 철저조사 부동산투기단속의 실무사령탑인 김종상 국세청 재산세국장은 요즘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잡는 세정대책을 세우느라 골몰하고 있다.최근 1주일동안 서울과 수도권 지역 아파트의 가격과 거래 실태를 살펴본 김국장은 『투기꾼에 의한 투기행위는 거의 없고 기대심리에 의해 호가가 높아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이사철이 되어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폈다. 국세청은 최근 신도시·서울 목동과 대치동을 포함한 139개 지역을 부동산투기우려지역으로 정해 상시 감시하고 있다.『특히 아파트지역인 90개 읍·면·동은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어렵게한다는 차원에서 투기행위를 강력히 단속할 계획』이라고 김국장은 말했다.국세청의 투기단속은 사실상 정부단속활동의 측면지원이고 간접적인 정책이다.세무조사라는 수단을 통해 투기를 억제하는 것이다. 김국장은 『투기거래를 한 혐의가 있거나 가수요 취득자,변칙거래혐의자는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부녀자나 미성년자 명의로 아파트를 취득하는 것은 조사의 표적』이라는 설명이다.그는 또 『일부 부동산중개업소들이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장가격을 왜곡하는 이같은 행위는 엄중히 지도단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보도에서 알려진 강남 거주 아파트 부녀회의 주부들이 아파트 가격을 일정수준 이하로 팔지말자고 결의하는 행위는 담합행위로 여겨지지만 국세청에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국장은 이와함께 아파트 가격이 오름에 따라 기준시가가 비현실화해 재조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오는 4월 또는 늦어도 5월에는 새로운 기준시가를 발표할 예정이다.기준시가가 현실화되면 양도세 등의 세금을 내야할 경우 세금부담액이 많아지므로 투기행위에 따른 이득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된다. 46년 인천생으로 국세청내 몇 안되는 서울법대를 출신인 김국장은 73년부터 국세청에서 일해왔다.활발한 성격에 대인관계도 넓다.행시6회에 최연소 합격,행시 기수는 빠르지만 임관은 그보다 아랫기수와 같이 했다.서울 성동·여의도·남대문세무서장을 거쳐 국세청 기획관리관,서울지방국세청 재산세국장을 역임.취미는 테니스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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