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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수정책 지지… 낙태등 판례 유지 관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이 200년 만에 가장 젊은 대법원장 시대를 맞게 됐다. 존 로버츠(50) 미국 연방 대법원장 지명자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인준이 통과된 뒤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식을 가졌다. 로버츠는 2일 대법원에서 제17대 대법원장 취임식을 갖고 집무에 들어간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 1801년 45세에 대법원장에 오른 존 마셜 이후 최연소 대법원장이다. 이날 로버츠로부터 취임 선서를 받은 존 폴 스티븐스 연방 대법관이 85세의 진보파 판사여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미국의 대법원장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로버츠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미 사법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법원은 낙태와 동성애, 안락사, 복제 등의 사회적 현안을 둘러싸고 대법관들이 마치 정치권처럼 뚜렷한 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어 향후 로버츠의 행보가 주목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백악관 선서식에서 “나는 미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할 것을 맹세한다.”고 선서했다. 앞서 미 상원은 로버츠 대법원장 인준안을 찬성 78, 반대 22로 가결했다.5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인준안을 전원 찬성했으나 민주당 의원 절반이 낙태, 시민권 등에 대한 로버츠 지명자의 보수적 세계관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 힐러리 클린턴·존 케리·에드워드 케네디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난 로버츠는 전기공인 부친을 따라 철강 공장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정권의 법무부, 백악관에서 일했다.특히 부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법무차관으로 국가 소송을 담당하면서 낙태를 합법화한 역사적인 판결인 ‘로 대 웨이드’사건에 대한 1973년의 대법원 판결은 뒤집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에 서명하고, 최근 쿠바 관타나모 테러 용의자를 미국의 군사재판이 다룰 수 있다고 판결하는 등 공화당의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해 왔다. 가톨릭교도인 그는 상원 청문회에서 낙태, 시민권과 관련한 판례에 대해 “존중하지만, 이에 대한 의견은 밝힐 수 없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로버츠는 그러나 “이데올로그가 되지는 않겠다.”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약속했다.dawn@seoul.co.kr
  • [챔피언스리그] ‘레알’ 라울 50호골

    ‘지구방위대’ 레알 마드리드에서 ‘미스터 레알’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라울 곤살레스(28·스페인)뿐이다. 라울은 29일 새벽 마드리드 베르나베우스타디움에서 열린 05∼06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F조 2차전 올림피아코스(그리스)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9분 데이비드 베컴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넣어 선제골을 작렬,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챔피언스리그 통산 50번째 골(97경기)을 터트리며 1955년부터 10년 동안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전설의 골게터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의 49골(58경기)을 넘어 챔피언스리그 개인 통산 최다골이라는 새역사를 썼다. 라울은 스페인 역대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받는 선수. 지난 94년 17살이라는 당시 최연소 나이로 마드리드에 입단한 라울은 이듬해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해 축구계를 경악시켰다. 탁월한 위치선정을 갖춘 동물적인 골감각과 상대 문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투쟁심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라울은 이를 바탕으로 챔피언스리그 99∼00,00∼01 시즌에서 각각 10골과 7골로 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세 차례(97∼98,99∼00,01∼02) 우승을 이끌었다. 한편 ‘빅뱅’으로 눈길을 끌었던 ‘디펜딩챔프’ 리버풀과 ‘프리미어리그 챔프’ 첼시(이상 잉글랜드)는 이날 열린 G조 예선 2차전에서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득점없이 비겼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美상원, 로버츠 대법원장 인준

    미국 상원은 29일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지명자 인준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 찬성 78표 반대 22표로 가결했다. 제17대 미 대법원장에 취임하게 된 50세의 로버츠는 대법원 출범 이래 최연소 대법원장으로 기록되게 됐다. 로버츠 신임 대법원장은 다음달 3일 이전에 종신직인 대법원장에 취임하게 된다. 공화당 의원들은 로버츠 지명자가 미국 헌법을 엄격히 준수할 뛰어난 법적 양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최대 변호사 단체인 미국변호사협회(ABA)로부터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을 포함,9명으로 구성된 미 대법원은 오코너 대법관이 4대 4로 갈린 보수와 진보의 한 가운데서 사안에 따라 균형자 역할을 해왔으나, 보수주의적 성향의 로버츠가 대법원장에 취임하고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도 보수적인 대법관을 지명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앞으로 대법원 판결 추가 보수쪽으로 기울 것으로 예상된다. 로버츠 신임 대법원장은 뉴욕주 버팔로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나왔다. 지난 2003년부터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에서 재직해온 그는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으로 로널드 레이건·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정권 아래서 법무부, 백악관에서 일하면서 워싱턴 정가의 보수파들의 인정을 받는 이론가로 통했다.김균미기자 외신종합 kmkim@seoul.co.kr
  • 박지빈, 뉴몬트리올 영화제 남우주연상

    영화 ‘안녕, 형아’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아역배우 박지빈(10)이 지난 24일 캐나다에서 폐막한 제1회 뉴몬트리올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국내 배우 가운데 최연소다. 박지빈은 ‘형제’(중국),‘Su-ki-da’(일본),‘Josh’s Trees’(스위스) 등 13편 경쟁작들의 성인배우를 제치고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뽑혔다.이영표기자tomcat@seoul.co.kr
  • 꿈의 초특급열차「관광호」

    꿈의 초특급열차「관광호」

      2월 8일 하오 1시 20분 -「관광호」가 시험운행을 시작함으로써 24년 만에 우리나라에 1등 객차가 부활되었다.「살롱·카」「비즈니스·룸」등「딜럭스」시설을 갖춘 이「달리는 응접실」은 오는 4월부터 경부(京釜)간을 4시간 45분에 달려「꿈의 초특급」구실을 할 예정. 엷은「오린지」빛 바탕에 하늘색 띠를 두른 이「딜럭스」열차는 특1등 1량, 1등 8량,「살롱·카」1량, 발전차 1량 모두 11량으로 편성된 호화판 객차로 우선 그 내부시설을 살펴보면 - ◇ 특1등 = 푸른「카페트」가 깔려 있고 전기「히터」32개와「쿨러」(냉방시설) 6개가 달려 있어 자동온도조절. 좌석마다 안내원을 불러낼 수 있는 초인종이 달려있고 베개, 휴지통, 간이탁자 등이 있다. 뒤에 마련된 3석의「비즈니스·룸」에선 사무를 볼 수 있는 탁자와 칸막이 시설이 되어 있으며 변소는 양식(洋式). ◇ 1등 = 종래 1량에 72좌석이던 2등에 비해 좌석 56개로 좌석 간격이 넓어서 좋다. 모든 시설이 특1등과 같으나 초인종,「비즈니스·룸」, 베개가 없으며 변소는 재래식. ◇ 발전차 = 종래의 객차발전은 객차마다 직류전원이 달려 있었으나「관광호」엔 따로 발전차량을 달아 4백kw의 발전량으로 전력 공급. 이 전력은 2천 세대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것. 이「관광호」의 모든 객차, 발전차는 새로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총 236량)「관광호」의 도입값을 따져보면, 특1등 1량 2,250만원, 1등 8량(1량 2천만원) 1억 6천만원, 발전차 1량 3,598만원,「살롱·카」1량 2,520만원으로 총 2억 4,368만원이 된다. 가위 시설뿐만 아니라 가격면에서도「수퍼·딜럭스」열차. 철도청은 관광「시즌」에 대비, 외국인 국내관광객이 단체로 이용할 때에는 전세 운행도 할 방침. 한편 이「관광호」의 운행에 앞서 철도청은 12만 7천 입방m의 도상(道床)자갈을 보강하고 경부간만 약 12만개의 PC침목을 바꾸어 끼어 침목의 84%를 PC화 했다. 또 앞으로 1등 객차엔 그 시끄럽던 이동판매원을 타지 못하게 할 방침이라고. 8일,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떠난「관광호」의 행운의 첫 시승(試乘)기관사는, 서울은 경력 15년에 32만여km를 무사고로 달린 김교원씨(서울기관차사무소소속), 부산에선 경력 16년에 70만km를 무사고로 달린 이동진씨(부산기관차사무소소속)가 몰았다. 시승 당일 철도청은 국내외 귀빈들을 초청, 시승케 하고 여행용「백」, 기념「메달」, 맥주,「토스트」,「코피」,「카라멜」, 신탄진 담배, 과자 등 푸짐한 선물. 여기에 든 비용만 6백만원이란 얘기다. 운행 도중 시승권 추첨놀이를 하여 가수 김「세레나」양이 추첨결과 1등 1377번의 이한용씨가 당첨, 3개월간 전선(全線)무임승차권을 받고 2등은 1258번, 3등엔 1053번 등이 각각 당첨. 최연소 시승객은 L국회의원의 아드님인 6살짜리 꼬마. 이 꼬마귀빈은 수원역을 지나자 그만 잠에 골아 떨어져「카라멜」을 손에 쥔 채 특1등객차 2좌석을 점령하고 단잠에 녹아 떨어졌다. 한편 철도병원에서 나온 의무반(의사 1명, 간호원 2명)에 첫 신세를 진 사람은 17세의 소하물(小荷物)운반원 서(徐)모군. 서군은 소하물을 나르다 왼손 식지 끝을 다쳐 응급처치를 받았다. 김기형 과기처장관, 이훈섭(李勳燮) 철도청장, 김「세레나」양이 한편에서 한담을 나누는가 하면 가수 최희준,「디자이너」「조세핀」조(趙), 김비함씨 등이 모여 앉아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지만 경부간 특1등 4,700원, 1등 4,200원으로 보리쌀 한 가마 값이 넘는 이 엄청난 운행요금은 서민(庶民)들에겐 아직 그림의 떡. [ 선데이서울 69년 2/16 제2권 7호 통권 제21호 ]
  • 복지부 ‘파격인사’

    복지부 ‘파격인사’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이 14일 1급 간부 명예퇴직에 따른 국·과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쯤 전면적인 팀제를 도입하면서 단행될 승진 및 전보인사에서는 이번보다 더 파격적인 발탁인사가 뒤따를 것으로 점쳐진다. 복지부 대외창구 역할을 하는 정책홍보관리관에 행정고시 30회 출신의 최희주 보험정책과장이 임명됐다.18개 중앙부처 최연소(40세) 정책홍보관리관이다. 빈부격차 등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주무부서인 사회복지정책실장(1급) 직무대리에는 이상석(행시 23회) 노동부 노동보험심의관이 기용됐다. 이 직무대리는 다음달 승진 인사때 1급으로 승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정책 분야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 보건정책국장으로는 노연홍(행시 27회) 정책홍보관리관이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00년 청와대 행정관 파견 당시 의약분쟁 사태를 해결한 경험이 있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평가다. 노동부 노동보험심의관(부처간 국장급 교류 직위)에는 장옥주(행시 25회) 장애인복지심의관이, 장애인복지심의관에는 청와대 ‘고령화 및 미래사회원회’에 파견됐다가 대기 중인 고경석(행시 24회) 부이사관이 기용됐다. 이와 함께 신설된 저출산고령화정책본부 정책총괄관에는 손건익(행시 26회) 감사관이, 감사관에는 질병관리본부 진행근 질병조사감시부장이, 질병조사감시부장에는 박찬형(행시 27) 연금정책과장이, 연금정책과장에는 조기원(행시 31회) 과장이 각각 자리를 옮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전보 인사는 종전의 연공서열식 인사의 틀을 깨는 충격적인 인사”라면서 “다음달 팀제 도입 때는 더욱 파격적인 인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관련인사 25면
  • 미혼남성이 바라본 독신녀

    미혼 남성들의 눈에 독신 여성들은 어떻게 비칠까. 일에 빠져 결혼이 늦어졌을 것이라는 동정론부터 일에 미친 독신 여성은 결혼해도 남자가 피곤할 것이라는 경계론까지 다양하다. 결혼을 생각하는 30∼40대 남성들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A대 홍모씨는 독신여성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여성이 일과 자신의 꿈에 대한 신념이 너무 확고하면 내조를 받기는커녕 외조를 해야 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서지만 콧대 높은 전문직 여성에 대한 동경도 많다. 솔직히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한다면 ‘셔터맨’의 꿈을 이뤄주는 전문직 종사자를 만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름의 공략법도 갖고 있다. 그는 “메뚜기도 한철이라서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결국 가을의 고독을 못 견디고 ‘하향 지원’할 것 아니겠느냐.”면서 “결혼이 별거냐. 서로 친구가 돼 쿨하게 인생을 즐기자고 하면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에 빠진 독신, 긍정적이기만 할까.” 17대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미혼인 ‘싱글 금배지’는 모두 다섯명. 최고령은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으로 올해 55세다. 한나라당 박근혜(53) 대표와 같은 당 송영선(52), 김영선(45), 고진화(42) 의원이 뒤를 잇는다. 결혼할 뜻이 없음을 내비친 박 대표 외에는 모두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연소 독신 의원인 고 의원은 “운동권으로 수배당하고 이후에는 공부하러 가서 결혼할 틈이 없었다.”면서 “결혼을 피하는 게 결코 아니며 오히려 남들에 맞춰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 시절 자기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독신 상태로 접어든 여성을 많이 봤다.”면서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독신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해할 수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독신을 일종의 패션으로 간주했다. 유행처럼 붐을 이루다가도 언젠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결혼 적령기라는 틀은 유교문화 속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면서 시대가 변하면서 독신의 개념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독신도 시대에 맞게” 하지만 독신 여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입장도 만만찮다. 결혼정보회사 ㈜선우 신규사업팀 조동진(30)씨는 “매사를 매우 열정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이성이나 동성 여부를 떠나 일에 몰두한다는 것 자체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독신 여성이 해를 거듭하면서 능구렁이가 돼 간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오랜 사회 경험을 통해 사람 다루는 방법이 몸에 익기 때문”이라면서 “같은 연령대의 주부와 비교해 봐도 그런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대가 변했으니 독신주의를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굳이 결혼이 인생의 목적일 수 없으며 자신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한다면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세무사 706명 합격 5명중 1명꼴 여성

    국세청은 13일 제 42회 세무사 자격시험 최종합격자 706명을 발표했다. 올해 세무사 자격시험 최종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1%로 전년보다 5.3%포인트 높아졌다. 수석은 서울시립대에 재학 중인 이정화(22)씨다. 최연소 합격자는 역시 서울시립대에 재학중인 이연정(21)씨가, 최고령 합격자는 김영갑(56·성균관대학교 중퇴)씨가 각각 차지했다. 국세청 인터넷 홈페이지(www.nts.go.kr)와 국세공무원 교육원 홈페이지(taxstudy.nts.go.kr)에서 합격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16일부터 이달 말까지 국세청과 국세공무원 교육원 홈페이지에서 성적을 알 수 있다.
  • 밤의 아가씨들은 이렇다

    밤의 아가씨들은 이렇다

      [본지 종합취재반] 서울엔 11살짜리 창녀가 있다. 사창가의 단골손님은 둘 중 하나가 군인 아니면 학생이다. 여관은「여관(女館)」으로 불릴만큼 일그러진「섹스」의 무도회장이 되고 말았으며, 윤락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10년 근속자」만도 서울엔 15명이나 있다.「화이트·슬레이브」(백색노예)라 불리는 홍등가의 창녀들, 그들 병든 마음들에 깃든「병력(病歷)」은 그대로「시어리어스」(중증). 서울시는 올해 모든 적선 지역을 철폐시키기에 앞서 최초로 이들 윤락여성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이 기사는 서울시 부녀과 조사와 부녀보호지도소, 그리고 서울시경의 조사를 한데 묶어 비교 연구한 본지 취재반의 종합취재. 서울의 사창가(私娼街)「알파」와「오메가」를 묶어보면 - 종3(鍾三)이 없어진 지 100일. 서울의 윤락가는 그 판도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윤락여성의 수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위 적선(赤線)지구라고 하는 특정지역 이외에서도 윤락행위를「성업(盛業)」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 「종3 이후」서울시가 발표한 공식집계에 의하면 서울엔 69년 1월 1일 현재 10개 특정지역에 2천 7백명의 윤락여성들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전농동 285명, 모진동 34명, 이태원동 618명, 영등포역전 278명, 김포공항 부근 155명, 시흥동 131명, 신길동 89명, 양(陽)동 396명, 도(桃)동 381명, 창신동 270명. 1천여 명의「종3녀」들이 떠나간 후 숫자로는 이태원동이 단연 최대의 윤락가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태원의 윤락여성들은 미군상대의 양공주들. 68년 9월말 종3이 철폐되기 직전의 서울시내 윤락여성 수는 모두 2,827명이었다.(서울시정연구회 조사) 이중 소위 종3으로 통하는 종로3가와 인의(仁義)동의 창녀수가 1,134명을 차지했었으니 이들이 거점을 잃은 지금 윤락여성수는 1천 7백여 명 정도로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10개 특정지역의 창녀수가 2천 7백명이니 구(舊)종3출신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있을 것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행정구역별로 서울시내의 윤락여성 분포상황은 좀더 세분할 수 있다. 중구에서는 인현(仁峴), 숭남(崇南), 흥천(興天), 동자(東子), 회현(會賢), 도(桃)동 등 6개 동, 그리고 용산구에서는 남영(南營), 한남(漢南), 한강로 등 3개 동, 동대문구에서는 창신(昌信), 전농(典農) 등 2개 동, 성동구에서는 흥인(興仁), 장안(長安) 등 2개 동, 영등포구에서는 신길(新吉), 영등포, 공항, 시흥(始興), 문래(文來), 양평(楊坪), 당산(堂山) 등 7개 동에 많든 적든 간에 윤락여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진동, 이태원동, 공항동, 시흥동, 신길동 등이 외국인 상대이며 나머지는 한국인 상대. 이상은 당국에 의해 어느 정도 공인 혹은 묵인되고 있는 지역의 윤락여성 동태인데 서울 시내엔 이밖에도 3천여 명의「몸을 파는 여인」들이 더 있다. 여관의「콜·걸」과 매음까지 겸하는 술집의 작부, 거리에서 유객을 하는「아르바이트」창녀들이 그들. 옛 종3의 포주들이 휘하(?) 창녀들을 거느리고 매음까지 겸하는 새로운 형태의 술집을 종3 주변과 시내 변두리 지역에 차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 옛날 색주가의「리바이벌」판이 서울의 명물로 새로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윤락에 가장 위험한 나이는 19세, 최연소는 11살 짜리도 ◎ 윤락 최초의 연령 우리나라 윤락여성들이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다른 두드러진 점이 있다면 평균 연령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조사에 의하면 21~23세층이 42.6%로 제일 많으며 다음이 18~20세층으로 32.5%, 그러니까 전체 윤락여성의 78.3%는 23세 이전의 꽃다운 나이에 윤락의 함정에 빠졌다는 애처로운 얘기다. 서울시 부녀보호지도소의 조사로는 윤락여성들의 20%는 19세 때 이미 자신들의「처녀」를 잃고 있다. 6백명의 윤락여성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를 보면 12세 때 첫 성교를 경험한 예는 2명이며 13세가 4명, 14세가 5명, 15세가 34명, 16세가 45명, 17세가 87명, 18세가 103명으로 각각 늘어나다 19세가 120명으로「피크」를 그린다. 지금까지 발견된 최연소의 창녀는 11세 짜리. 이런 무서운 현상은 우리나라 윤락여성들의 많은「퍼센티지」가 자의 아닌 유인·강압 등의 타의에 의해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 최초의 윤락장소 최초의 윤락장소로는 여관이 46.4%로 1위이며 자택이 27.5%로 2위, 그리고 야외가 16.7%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의 여관은「여관(旅館)」이 아니라「여관(女館)」이라는, 시셋풍속의 논리적인 귀결. 2,768명의 윤락여성 중 1,241명이 여관에서, 769명이 자택에서, 467명이 야외에서 각각 최초의 윤락행위를 저질렀으며 그밖에 42명이 목욕탕에서, 54명이 해수욕장에서 매춘이라는 이름의「신장개업」을 차렸다. ◎ 윤락의 원인 왜 몸을 팔아야 하는가. 윤락여성들이 고백하는「윤락의 변」은 그대로 우리네 사회상의 축소판이다. 첫째 원인이 생활고. 거의 반수에 해당하는 48%가 생활고를 윤락원인의 1위로 들고 있다. 다음이 실연으로 15.5%, 타인의 유혹(포주「펨프」등)이 14.3%로 그 뒤를 바짝 좇고 있다. 「전혀 자의(自意)로」창녀를 지망했다는 직업창녀(?)는 전체의 11%이며 이혼이 윤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축도 7.3%나 되고 있다.(서울시 조사) 한편 서울시 경찰국의 조사에 의하면 생활고, 타인의 유혹 외에도 불우한 가족관계(12.9%), 사치 및 허영심(15%) 등도 중대한 윤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손님은 군인·학생 차림이 41%, 반수는 첫날에 순결(純潔) 잃고 ◎ 상대자의 직업 윤락여성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는 어떤 계층일까. 이번 비교연구 조사에서는 수요층의 직업분포를 알기 위해 최초의 윤락 상대자를 물었다. 단골 고객은 군인과 학생 차림이 각각 20.5%로 공동 1위. 다음은 상인 13.7%, 회사원 8.3%, 불량배 5.7%, 공무원 5.6%, 운전사 3.6%로 밝혀지고 있다. 부녀 보호지도소에서는 이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첫 성교 대상자를 물었는데 윤락 후의 고객이 첫 상대라고 말한 쪽이 47.1%로 제일 많았으며「타인」이 26%, 교제하던 사람이 16.3%, 남편이 5.8%, 동거인이 4.8%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윤락여성의 반이「윤락행위」로 첫 순결을 잃었다는 얘기. ◎ 윤락행위 기간 『이왕 버린 몸, 돈이나 벌자』는 간단한 생각이「윤락행위의 계속」을 촉진한다. 어느「정글」지대의 수렁처럼 몸을 뒤치려하면 점점 더 빠져 들어가게 마련인 게 매춘가의 일반적인 생리. 서울시의 조사에 의하면 윤락행위 기간은 1년이 전체의 20.6%로 제일 많으며 2년이 17.9%로 그 뒤를 잇고 있다. 3년은 15.4%, 4년은 9.4%, 5년은 6.3%로 햇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경향. 그런가 하면 2,768명의 대상자 중「창녀 10년 이상 근속자」는 28명이 되고 있으며 9년(15명), 8년(31명), 7년(45명), 6년(94명)의 유공자(?)도 기라성처럼 늘어서 있다. ◎ 피임·임신 경험 여부 윤락여성들은 여성의 가장 큰 존재 이유(?)일 임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서울시 부녀과의 조사를 보면 68.2%는 피임 약제나 기구를 안 쓰고 있으며 30.9%만이 어떤 형태의 피임 수단을 쓰고 있다. 또한 38.1%는 임신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61%는 단 한 번의 임신 경험도 없다. 임신의 적령기이며 성교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피임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61%나 임신경험이 없다는 것은 생리적으로 어딘가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윤락생활 청산 못하는 이유 윤락생활에서부터 이들이 이탈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울시 부녀과의 조사와 부녀보호지도소의 조사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부녀과의 조사에 의하면 생활고가 70.9%로 수위이며 다음이 채무 14.5%, 귀향이 싫어서 11.6%, 윤락생활이 좋아서 2.2%의 순서. 그런가 하면 보호소측의 조사를 보면 구속감이 없어서(27.2%), 가족부양 때문에(19%), 빚 때문에(11.5%), 자포자기(10.7%), 포주깡패의 협박감시(5.5%), 귀가시의 꾸지람과 수치감(7.2%) 등이「현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마디로 자유분방한 심리적 요인이 이들로 하여금 윤락행위를 계속하도록 재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 윤락 전 직업·장래희망 그 난만한「밤의 몸짓」들에도 미래는 있다. 부녀보호지도소의 조사에 나타난 윤락여성들의「장래」는 각양각색. 6백명의 조사대상자 중 22%인 132명은「현모양처」를 바라고 있어 단연 여성 본연으로의 귀의를 꿈꾸고 있다. 결혼을 원치 않는 나머지 88% 중 14%는 미용사·이발사, 12.2%는 배우·가수, 9.5%는 편물·양재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쪽도 3.4%나 되고 있다. 이들의 장래희망은 윤락 전의 직업과도 다소의 상관관계가 있다. 이들은 윤락 전 31.2%가 식모살이를 했으며 16.2%가 여공 및 노동, 11.3%가 접대부, 5.2%가 학생, 3.2%가 차장 등의 전력을 경험했다. ◎ 생활사(生活史)면의 실태 <출신도별> 서울시 조사로는 충남이 13.8%로 수위이며 다음이 서울의 13.3%, 경남의 13% 차례이다. 부녀보호지도소의 경우는 경남이 15.5%로 제일 많고 충남이 14.7%로 다음, 전남이 13.7%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 경찰국의 통계에 의하면 1위가 경남으로 18.2%, 2위가 경기의 12.7%, 3위가 전북의 11.7%로 세 군데의 통계에 다소 차이가 있다. <학력별> 세 가지 조사의 공통된 점은 국민학교 정도의 수학자가 전체의 반을 넘고 있다는 것. 서울시 조사에서는 국졸이 51.9%, 중퇴가 12.5%, 중졸이 11.6%로 가장 많은 편이며, 문맹이 10.7%나 있는 반면 고졸(1.9%)과 대퇴(0.2%)도 상당수가 있다. 서울시경 조사에서는 고졸이 3.5%, 중졸이 14.6%로 나타나 평균 학력이 높이 올라가 있다. <양친관계> 친부모가 생존해 있는 가정 출신이 서울시 조사에서는 36.4%, 보호소의 조사에서는 30.7%로 나타나 있다. 서울시경에서 3,338명의 윤락여성을 상대로 낸 조사에 의하면 31.3%인 1,044명은 편모가족, 25.5%인 853명은 편부가족이며 1.4%인 46명이 무남독녀, 4.1%인 136명이 고아 출신으로 나타나 있다. 전체의 79.5%는 윤락 전에 미혼이었으며 9.2%가 이혼 경험이 있었다. [ 선데이서울 69년 1/19 제2권 제3호 통권17호 ]
  • 구로中 ‘교육개혁실험’

    구로中 ‘교육개혁실험’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근엄한 표정…. 교장선생님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런 교장상을 깰 40대 공모제 교장이 탄생한다. 서울 구로중학교 교장에 선임돼 오는 9월1일 부임하는 서울 반포중학교 최병갑(45) 교감이다. 최 교감이 교장으로 부임하면 전국 초중고를 통틀어 최연소 교장이 된다. 1960년생에 서울대 사대 영어교육과 80학번인 최 신임 교장은 386세대로서도 첫 교장인 셈이다. 교장공모제는 위기에 빠진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90년대 말 도입됐다. 구로중학교는 학급 수가 44개나 되는 큰 공립학교이지만 저소득층이 밀집한 교육 낙후지역에 있다. 무료급식을 받는 학생이 200명이나 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이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교 발전책으로 교장 공모를 결정했다. 교사들이 자체 조사한 결과 42대14로 공모를 희망한 교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외부의 새 바람을 원했던 것.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우범 교사는 “최 선생님이 우리 학교를 역동적이고 젊은 학교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줬다.”고 뽑은 이유를 밝혔다. 연륜보다 열정과 젊음을 선택한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최 신임 교장의 각오는 대단하다. 그의 계획중에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학교를 리모델링하고 도서관을 쉴 곳 없는 학생들의 쉼터 기능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학습 부진아는 방과후에 보충교육을 시키고 전자결재를 도입하며 교장 권한을 부장 선생님들에게 이양하는 등의 파격적인 계획도 있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학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면 기획서를 작성해 당국에 직접 요청하겠다는 복안도 있다. 심사에 앞서 최 신임 교장은 학교 주변을 20여차례나 탐방하며 청소년 유해업소 현황을 파악하는 열의도 보였다. 그는 교육개혁이 전문가 중심으로 추진돼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사교육 문제는 공교육 투자를 확대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또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해 우수인력을 끌어들인 뒤 부적격 교사는 퇴출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13년 6개월 동안 고교 영어교사로 일한 그는 교육연구사 공채 1기 시험에 합격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1년간 근무한 경험도 있다. 교육전문직으로 정식 발령받아 청와대에서 근무한 1호 공무원이다. 공모에 응한 이유에 대해 그는 “교육부 등에서 실무적으로 수립한 교육정책을 일선학교에서 실천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발로 뛰는 교장’을 부임 전부터 실천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 슈퍼마켓, 학원 등 학교 주변 업소를 찾아다니며 지역사회가 학교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느라 벌써부터 하루하루가 바쁘다. 홈페이지에 학부모 커뮤니티도 개설하고 학교 일정을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를 하는 등 학교와 학부모가 하나가 되는 ‘열린교육’ 방안도 구상중이다. 아마도 앞으로 구로중학교 교장실은 늘 비어 있을 것 같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요정’ 샤라포바 여왕등극

    ‘테니스요정’ 마리아 샤라포바(18)가 마침내 러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여자테니스연맹(WTA) 랭킹 1위에 등극했다. 샤라포바는 22일 WTA가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4452점을 얻어 지난달 윔블던오픈에서 입은 허리 부상으로 투어 대회에 결장 중인 린제이 데븐포트(미국·4300점)를 제치고 생애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이로써 2001년 4월19일 만14세 생일날 프로에 데뷔한 샤라포바는 데뷔 4년4개월 만에 ‘테니스 여왕’ 자리에 등극했다. 역대 최연소 1위는 97년 16살6개월 나이로 여왕 자리에 오른 마르티나 힝기스(25·스위스). 183㎝ 58㎏의 샤라포바는 지난해 17살의 나이로 윔블던오픈을 제패하며 1887년 로티 도드(당시 15세·영국)와 1997년 힝기스(당시 16세)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최연소 우승과 1927년 시드 배정 시작 이래 가장 낮은 시드권(13번 시드)을 가진 여자 우승자라는 기록을 남기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WTA투어 JP모건체이스클래식에서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와의 8강전을 앞두고 가슴 근육통으로 기권, 자력 1위 등극 기회를 놓쳐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샤라포바는 이달말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을 치른 뒤 새달 19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미국)와의 맞대결을 위해 한국 땅을 밟을 예정이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세상에 이런일이] 두살, 978m 최고봉에 英 안믿긴다 아이가

    |런던 AFP 연합|두살배기 여자 아이가 영국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카펠봉을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고 데일리 메일이 최근 보도했다. 잉글랜드 북부 요크에 사는 엘리샤 스미스는 978m에 이르는 이 산 정상을 정복한 최연소자일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엘리샤의 부모는 딸 아이를 업고 산에 오를 생각이었지만 놀랍게도 두살에 불과한 아기는 스스로 걸어서 산 정상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이같은 ‘저력’에 고무된 부모는 엘리샤로 하여금 세돌을 맞이하기 전에 높이 1344m로 영국 최고봉인 웨일스의 벤 네비스 산을 정복, 기네스북 등재를 꿈꾸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 19세 디바바 ‘장거리 여왕’

    이제 그의 나이 열아홉. 하지만 톱클래스 선수들이 총출동한 세계선수권에서도 그의 적수는 찾을 수 없었다.‘철녀’ 티루네시 디바바(19·에티오피아)가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만m에 이어 5000m까지 휩쓸며 장거리 여왕에 등극했다. 디바바는 14일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8일째 여자 5000m 결승에서 14분38초59로 결승점을 통과, 팀동료 메세레트 데파르(14분39초54)와 친언니 에제가예후 디바바(14분42초47)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첫날 1만m에 이어 2관왕으로 우뚝 선 디바바는 세계선수권 사상 처음으로 같은 대회에서 두 종목을 동시에 휩쓴 선수가 됐다. 디바바는 지난 2003년 파리선수권에서는 역대 최연소(만 17세)로 5000m를 제패했다. 미국 여자 400m계주팀은 41초78의 시즌 최고기록으로 자메이카(41초99)를 따돌리고 우승했다. 미국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100m 챔프 로린 윌리엄스는 2관왕이 됐다. 남자 400m계주에선 프랑스가 38초08로 트리니다드토바고(38초10)를 제치고 우승했다.110m 허들 챔피언인 라지 두쿠르도 프랑스팀의 첫번째 주자로 뛰어 2관왕 대열에 합류했다. 한편 13일 펼쳐진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는 ‘나는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3·러시아)가 5m01의 바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지난달 23일 자신이 세운 종전 기록(5m)을 불과 20일 만에 갈아치운 것. ‘단거리 황제’ 저스틴 게이틀린(미국)의 3관왕 꿈은 물거품이 됐다. 세계최강 미국계주팀은 13일 열린 남자 400m계주에서 2번주자 레너드 스콧이 바통을 놓치는 탓에 예선 탈락했다. 게이틀린은 14일 400m계주 결승 마지막 주자로 나설 계획이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세계챔프 김주희 ‘겹경사’

    최연소 여자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주희(19·거인체)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주역 60인’에 선정되고 중부대학교에 최종 합격하는 등 겹경사를 맞았다. 김주희는 KBS1TV가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뽑은 1980년대 이후 출생자 가운데 한국의 학술 사회 경제 스포츠 예능 분야의 최고 인재 60인에 선정됐다. 김주희는 이와 관련, 오는 15일 ‘태극기 세대 그들이 온다’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다. 아울러 김주희는 충남 금산의 중부대학교 엔터테인먼트과에 수시 원서를 내고 지난 4일 면접을 본 뒤 마침내 10일 합격 통지를 받기도 했다. 정문호 거인체육관 관장은 “주희가 여자 권투 선수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은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김주희는 “대학에 간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에 초청돼 너무 기쁘다.”면서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올 방어전 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고향에 묻혀 ‘제주화풍’ 외길 변시지 화백

    고향에 묻혀 ‘제주화풍’ 외길 변시지 화백

    바다와 산이 온통 황토빛이다. 어찌 색의 구별이 없을까만, 평생 제주 바다를 응시해온 노(老)화가는 파도와 바람, 조랑말이 어우러지는 무채색의 진풍경을 길어올렸다. 30년동안 제주도에 묻혀 살며 한국의 전통미를 추구해온 변시지(79) 화백. 그의 그림에는 자연과 인간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경지가 담겨 있다. 황토빛 바탕에 먹빛, 두가지 색뿐이다. 여기에 단순한 구도를 통해 깊은 심연에 감춰진 제주도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변시지처럼 색채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역설적으로 색감이 느껴지도록 표현한 작가는 많지 않다. 바다도, 산도 누런 색이지만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바다는 바다색, 산은 산의 색, 자연 그대로의 색으로 다가온다. ●“독창적 작품은 역사·문화 풍토가 밑바탕” 자신만의 예술적 뿌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 쳤던 변시지 화백을 만나러 제주도를 찾았다. 장마 끝무렵의 빗줄기가 간간이 해안가에 뿌리는가 싶더니 산과 바다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안개가 제주에 진주하기 시작했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마주친 안개 속 풍경들을 통해 첫인상에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강렬한 황토빛의 변시지의 작품세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검푸른 파도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다, 해안가 벼랑에 쓰러질 듯한 초가집. 안개 낀 들판의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로움을 견디고 있고, 모진 바람에 갈기조차 성치 않아 보이는 조랑말 한 마리가 그 풍경의 일부가 되는 세계’ 변시지가 화폭에 담은 제주도다. “예술에서 풍토는 창작의 모체(母體)다.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려면 역사와 문화가 담긴 풍토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스페인 출신 피카소가 프랑스에서 활동을 해도 그의 작품에는 스페인의 정열이 그대로 담겼듯이.”그에게 제주도는 끝없이 샘솟는 예술의 원천이다.“제주도에 살지 않았으면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제주의 바람이 화폭의 물감을 말리면서 농익은 빛을 우려냈다. 제주의 색으로 황토빛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아열대 태양빛의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흰빛도 하얗다 못해 누릿한 황토빛으로 보인다.” ●“70년대 해외유학 ‘붐´ 때 나는 귀향” 다른 화가들이 프랑스 등 해외로 떠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70년대 중반. 그는 거꾸로 고향 제주도로 회귀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쉽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와 화려하고 섬세한 기법으로 그렸는데 겉껍질은 제주의 모습인데 정작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없었어요.” 화폭에 담지 못한 열정을 술잔에 채웠다.“2년동안 술로 지샜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사라져 해안가 자살바위 근처를 배회하는 일도 허다했지요. 하지만 ‘예술적 패배’가 싫어 캔버스와 싸우고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제주화풍’의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처음 2년간은 그림 못 그리고 술로 새워 변시지 하면 떠오르는 황토빛 그림은 한국의 미(美)를 길어올리기 위한 순수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노 화가의 정진이 빚어낸 결정품. 일본에서 얻은 화려한 명성과 찬사를 뒤로 한 채 가족과 떨어져 홀로 귀국할 때부터 그는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기성 화단의 부와 명예를 벗어던지고 홀연히 중앙 화단을 떠나 제주도로 낙향한 것은 예술을 향한 혹독한 채찍질이었다. 그는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노년을 즐길 나이. 하지만 이 노 화가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예술의 길을 걷고 있다. 당초 1년 정도 생각하고 내려왔던 제주도 생활이 어느새 30년을 훌쩍 넘었다. 서울에 있는 부인 이학숙(동양화)씨와 첫째딸 정은씨도 화가다. 변시지의 작품에는 지팡이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인 한 사내가 자주 등장한다. 쓸쓸해 보이는 그 사내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작품 ‘귀로’‘기다림’ 등을 보면 변시지의 마음은 저 바다 건너 뭍, 가족이 사는 곳을 향해 있는 듯하다. ●“점만 하나 찍어 제주도 되는 그림 그리고파” 그의 그림이 “조용하게 정지된 것 같지만 역동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그는 “그림 속 사람은 조용하게 서 있지만 내심은 모순, 비리, 부정에 대한 저항심으로 끓어 오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응답했다. 바다와 산의 색채가 같다는 지적에는 “바다와 산이 누런색이지만 굳이 색을 쓰지 않아도 색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며 “아무도 이런 그림을 그린 적은 없다.”고 했다. 변시지의 그림은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민화도 아니다. 그림에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다. 현란한 ‘색’도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작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3년 전만 해도 아침 식사 전에 붓을 들면 아침도 점심도 잊고 어두워져 전깃불이 들어올때까지 그렸어요. 앞으로 선 하나, 점 하나로 완성되는 작품, 점만 하나 찍어도 제주도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예술은 완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이지만 “예술에서 깨달음을 얻는 경지까지 이르러 작품을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이다.‘제주도 화가’ 변시지가 60년 작품 활동을 결산하는 전시회를 6일∼11월4일 서귀포 기당미술관에서 연다. 대표작 ‘폭풍의 바다’ 등 80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미술관은 변 화백의 친척인 재일교포 강구범씨가 1987년 지어 서귀포시에 기증한 국내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제주도의 관광명소다. 제주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변시지 화백은 제주도 서귀포 출신 변시지 화백은 6세 때 가족이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면서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쳤다.1948년 23세에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광풍회전’에서 최연소 최고상 수상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광풍회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며 화가로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당시 40,50대 선배 화가들이 그와 마주치면 자존심의 상징인 베레모를 벗고 인사했을 정도였다. 아들의 수상 소식에 감격한 어머니는 장롱 깊이 넣어 두었던 한복을 꺼내입고 그의 아틀리에에 드나들었다. 그후 일본 화단에서 개인전을 하면 모든 작품이 팔리는 등 승승장구하며 잘 나갔지만 마음 한구석 공허함을 느꼈다. 평론가들로부터 ‘일본인의 기질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라는 작품평을 듣고 민족의식이 솟구쳤다고 변 화백은 말했다. 마침 “조국의 미술발전을 위해 서울대 강의를 맡아달라.”는 윤일선 서울대 총장의 제의를 받고 1957년 귀국했다. 그러나 자유당 말기 중앙 화단은 반목과 질시로 어지러웠고, 그는 그런 화단과 타협하지 않았다.‘소신발언’의 여파로 서울대에서도 스스로 나와 마포고 미술교사, 서라벌예대 미술과 교수를 거쳐 제주도에 새로운 예술 세계의 둥지를 틀며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제주대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귀포시 기당미술관 명예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네살배기 ‘워드 신동’

    만 4세의 어린이가 ‘워드프로세서 3급’ 국가기술자격증을 따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대전시 서구 관저동에 사는 이재혁(2001년 3월 생)군은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실시한 워드프로세서 3급 시험에 합격한 데 이어 지난달 중순 치러진 실기시험에도 합격, 국내 최연소 ‘워드 3급’자격증을 따냈다. 이 자격증은 한자는 물론 영어, 컴퓨터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여서 성인들도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이다. 이군은 이에 앞서 한글을 깨우치기도 어려운 나이인 만 3세10개월에 ‘한자 자격시험 8급’과 만 4세 1개월에 ‘한자급수자격 준 5급’을 국내 최연소로 따낸 경력의 소유자다. 만 3세쯤부터 아버지 무릎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 이군은 1년여 만에 분당 한글을 최고 290여자를 쳤다. 컴퓨터 교육업체 간부인 이상화(37)씨와 유치원 교사출신인 임희숙(32)씨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인 이군은 생후 1년6개월 만에 한글을 터득한 이후 지금까지 읽은 책만 2000권 정도에 이른다. 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친척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군의 장래 희망은 의사, 좋아하는 것은 그림 그리기다. 이군의 이같은 천재성에 대해 “임신중 엄마가 ‘수학 정석’을 2번 풀었으며 많은 양의 독서와 ‘자궁대화’를 많이 가져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sky@seoul.co.kr
  • 최홍만 “핵주먹 나와”

    최홍만 “핵주먹 나와”

    ‘테크노골리앗’ 최홍만(25)과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39)의 맞대결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스포츠신문인 스포츠호치는 2일 “일본 K-1의 다니카와 사다하루(45) 사장이 ‘타이슨이 범죄 경력 때문에 일본에는 입국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최홍만과 붙으면 분위기가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최홍만(5전5승)은 지난달 30일 하와이 호놀룰루 알로하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K-1 하와이 대회 슈퍼파이트에서 스모선수 출신 아케보노(미국)를 통쾌한 TKO승으로 물리친 뒤 경기를 지켜본 타이슨에게 ‘링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등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다니카와 사장은 이어 “오는 13일 열리는 K-1 라스베이거스 대회에서 타이슨측과 계약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맞대결의 대전제인 타이슨의 K-1 전향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타이슨의 첫대결 상대가 최홍만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86년 스무살의 나이로 무쇠주먹을 휘두르며 역대 최연소 세계권투평의회(WBC)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타이슨(50승6패44KO)은 이후 무절제한 생활로 빚더미에 오른 뒤 지난 6월 헤비급 논타이틀전에서 케빈 맥브라이드(아일랜드)에게 TKO패하고 은퇴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주말화제] 레스토랑 종업원 ‘소믈리에’ 명장 됐다

    [주말화제] 레스토랑 종업원 ‘소믈리에’ 명장 됐다

    “샤르도네(품종), 부르고뉴(원산지),2003년산(수확연도)입니다.” 지난 28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4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의 최종심. 프랑스 농식품진흥공사(소펙사)가 개최한 이 대회의 심사위원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말총머리를 한 젊은 청년이 따라놓은 와인 이름을 맞히는 첫번째 블라인딩 테이스팅에서 만점짜리 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무명의 소믈리에 김진석(24)씨. 대회 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소펙사 정석영 팀장은 “평생 와인을 즐긴 사람도 맛과 향·색깔로 그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면서 “김씨의 탁월한 미각과 강도높은 훈련의 산물”이라고 칭찬했다. 정작 우승자 김씨는 “와인을 마시는 게 즐거울 뿐”이라고 빙긋이 웃었다. 그의 경력은 이채롭다.1999년 경희대 미술학과에 입학한 그는 1년후 자퇴했다. 미술을 학교에서 배우는 게 재미가 없었단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온 뒤인 2003년 10월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이탈리아 레스토랑 ‘데미타스’ 종업원으로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그는 와인에 문외한이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좋아하고, 어머니 옆에서 요리하길 즐겼지만 와인은 대학 1학년때 몇차례 마셔본 것이 고작이었다.“풍부한 향과 맛이 매력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소주와 맥주를 즐기느라 별로 마실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 음식점은 규모는 작았지만 음식, 커피, 와인의 종류와 품질 면에선 최고를 자랑했다. 커피는 원두를 직접 볶아 뽑아내고, 와인도 다양한 종류를 내놓았다. 김씨는 자연스럽게 와인에 빠져 들었다. 음식점에 꽂혀 있던 책 ‘오즈클라크의 와인이야기’가 첫 선생님이었다. “와인은 사람을 닮았어요. 다양한 맛과 개성을 지녔고, 사람을 즐겁게 만들지요. 친숙한 와인을 마시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상큼하고 발랄한 와인을 만나면 마음이 설렙니다.” 그는 일주일에 와인 2∼3병씩을 구입해 마시고, 분석하면서 월급의 절반가량을 투자했다. 책이 선생님이고 음식점이 연구실이었다. 김씨는 이렇게 배운 와인 지식을 확인하고 선배 소믈리에의 서비스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이번 대회에 응시원서를 냈다.“비교할 상대가 없어 답답했거든요.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소믈리에를 지켜 보며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싶었지요.” 그는 101명이 참가한 필기 예선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 결선에 올랐다. 결선은 블라인드 테이스팅,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 추천하기, 레스토랑을 찾아온 고객(심사위원)에게 와인을 권하고, 직접 따르는 실전 등 모두 3단계로 치러진다. 김씨는 결선 1,2단계에서 최고 점수를 얻어 세명대 교수이자 워커힐 호텔 소믈리에인 최종애(29·여)씨, 하얏트 호텔 소믈리에 조을호(36)씨 같은 쟁쟁한 ‘선배’를 물리쳤다. 이들은 프랑스 농림부가 발급하는 전문인증서를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르도 와인학교에서 소믈리에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세계대회에 출전할 것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글쎄요. 와인 마시고 권하는 게 즐거울 때까지만 하고 싶은데요.”라며 답을 대신했다. 소믈리에(sommelier)란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권하고 서빙하는 와인 전문 종업원을 말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고릴라 로마역에 서다 /이두식 지음

    화가인 이두식(58) 홍익대 미술대학장이 자신의 예술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고릴라 로마역에 서다’(정음 펴냄)를 냈다. 경북 영주 소백산 산골 마을의 사진관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차를 타고 상경, 국전을 감상하며 화가의 꿈을 키운 이두식.26세에 ‘대한민국미술대전’의 특선을 받으면서 별명인 ‘그림 그리는 고릴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그는 이발소 그림을 그려 수출했던 그림공장에서 일했고, 미대 강사로 출연한 배우 신성일씨 대신 영화에서 소품 드로잉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소망은 미술이 특정 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96년 최연소 미술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는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을 펼친 이유다. 2000년 세계로 통하는 이탈리아 로마 플라미니오 역사에 그의 그림이 벽화가 되어 걸리는 영광을 누렸다. 책에서 그는 이웃에 사는 소설가 박완서씨와 친자매처럼 지냈던 부인 손혜경씨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바치고 있다. 서울예고시절 열 여섯에 만나 스물 여섯에결혼하고, 쉰 여섯에 그의 곁을 떠난 아내.10년 투병끝에 세상을 등진 아내는 그에게 예술가적 동지인 버팀목이었다.1만 8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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