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최연소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환승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광진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60억원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추경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54
  • 최연소 군수·구청장 거친 첫 토박이 인천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1957년 인천의 달동네인 동구 송림동 수도국산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던 자리는 현재 도시개발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달동네박물관이 들어섰다. 역대 시장 가운데 인천 출신이 없었기에 유 시장은 인천 출신 첫 시장이다. 그는 “달동네에서 힘들었지만 꿈을 키워 왔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송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인중, 제물포고를 다닐 당시 꿈은 외교관이었다. 때문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공직으로 진로를 바꿔 대학 3년 때인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육군 중위로 군무를 마친 뒤 1984년 강원도청에서 공직을 시작해 내무부 인사계장과 경기도 기획관 등을 거쳐 1994년 36세에 경기 김포군수에 임명돼 전국 최연소 군수가 됐다. 1995년에는 인천 서구청장에 임명돼 전국 최연소 구청장이라는 타이틀을 추가했다. 같은 해 초대 민선 김포군수에 당선된 그는 3선에 실패하자 국회의원에 도전,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포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초선 의원 시절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현 정부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행정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농식품부 장관 시절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는 장관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24시간 진두지휘했고 사태 수습 후에는 구제역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인천 시민들은 30년간의 풍부한 행정 경험으로 실무부터 정책 기획까지 행정 전 분야를 섭렵한 그가 인천 발전의 기폭제가 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北대외경제상에 리룡남 확인

    북한이 지난달 무역·외자 유치·경제특구 개발 담당 기관을 통폐합해 신설한 내각 대외경제성의 수장을 리룡남 전 무역상이 맡은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대외경제상과 몽골 대통령의 특사인 할트마긴 바트톨가 국가대회의(우리의 국회) 의원의 회담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리룡남을 ‘대외경제상’으로 소개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무역성에 합영투자위원회,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통합하고 무역성을 대외경제성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상이 누군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1960년생인 리룡남 대외경제상은 싱가포르 대사관 경제담당 서기관을 지냈고 2001년 무역성 부상을 거쳐 2008년 최연소로 48세에 장관급인 무역상에 올랐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과거 ‘피닉제’ 별명 붙은 이유 살펴보니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과거 ‘피닉제’ 별명 붙은 이유 살펴보니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과거 ‘피닉제’ 별명 붙은 이유 살펴보니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홍문종·김태호 의원과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던 이인제 의원은 6선 의원으로 대표적인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지법 판사,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정계에 입문한 뒤 최연소 노동부 장관,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들었고 2002년, 2007년에도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탈당, 복당을 무수히 반복하며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 와 불사조라는 의미의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화려한 이력 뒤 ‘피닉제’ 별명 뜻 알고보니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화려한 이력 뒤 ‘피닉제’ 별명 뜻 알고보니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화려한 이력 뒤 ‘피닉제’ 별명 뜻 알고보니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홍문종·김태호 의원과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던 이인제 의원은 6선 의원으로 대표적인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지법 판사,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정계에 입문한 뒤 최연소 노동부 장관,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들었고 2002년, 2007년에도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탈당, 복당을 무수히 반복하며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 와 불사조라는 의미의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 김무성號 출범] PK표 결집 3위 기염… 대권주자로 우뚝

    186㎝의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는 김태호(52) 의원이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당히 최고위원에 당선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에 입성했다. 경선 초반엔 당선권인 4위 안에 들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았던 그는 이날 전대에서 보란 듯이 3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김 신임 최고위원은 당선 직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손에 손을 잡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신나게 한판 해 보자”며 ‘사나이’다운 소감을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초반 이인제 신임 최고위원에게는 인지도에서 밀리고, 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홍문종 의원에게는 조직세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부산·경남(PK) 지역 표심 결집에 성공하며 3위에 올랐다. 김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48세의 나이로 국무총리에 지명돼 일약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위증 의혹으로 자진 사퇴하면서 한순간에 추락했다. 김 최고위원은 2011년 4·27 김해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적 재기를 꿈꿨다. 다음해 4월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돼 1년 만에 재선의원이 됐다. 결국 그는 국회 입성 3년 만에 최고위원 자리에 오르며 잠재력을 과시한 셈이어서 다시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김 최고위원은 1962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거창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대에 진학한 김 최고위원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영향으로 정치인의 꿈을 꾸게 됐다. 1992년 총선에서 이강두 전 의원 선거캠프에 합류한 김 의원은 199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최연소로 거창군수에 당선됐다. 이어 42세의 나이로 경남지사에 당선되며 ‘차세대 리더’로 우뚝 섰다. 김 최고위원은 국무총리에서 낙마한 것을 제외하면 선거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어 ‘선거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새누리 김무성號 출범] 다시 한번 부활한 ‘피닉제’

    ‘불사조’ 이인제 의원이 이번에도 날아올랐다. 탈당과 복당 등 어려운 정치환경에서도 꾸준히 국회에 등원해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신임 최고위원은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총 개표 결과 4위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이 신임 최고위원은 “엄중한 시기에 새누리당이 어떻게 혁신하고 어떤 모습의 정당으로 개조돼야 하는지에 대한 구상과 전략을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고 그것만으로 만족했던 사람”이라며 “지도부에 입성하게 돼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새누리당이 선진국 정당보다 훨씬 더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능력 있는 정당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지는 데 저의 모든 열정과 역량을 다 바칠 생각”이라며 “국민과 당원의 뜻을 받들어 사랑받는 새누리당을 만드는 데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이 신임 최고위원은 6선 중진의 대표적인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대전지법 판사 등으로 활동했다.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정계에 입문한 뒤 최연소 노동부 장관, 민선 초대 경기지사 등을 거쳤다. 이후 1997년 대선 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탈당해 자신이 만든 국민신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 등을 거쳐 새누리당에 들어갔다. 이 신임 최고위원이 당 지도부에 입성함에 따라 지난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한 이후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다는 선진당 및 충청권 출신 인사들이 힘을 받을지 주목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새누리당 전당대회 결과. 김태호 ‘열세’ 평가 뒤집고 최고위원 당선…다시 ‘대권 잠룡’ 되나

    새누리당 전당대회 결과. 김태호 ‘열세’ 평가 뒤집고 최고위원 당선…다시 ‘대권 잠룡’ 되나

    김태호, ‘열세’ 평가 뒤집고 새누리 최고위원 당선…다시 ‘대권 잠룡’ 되나 김태호(52) 의원이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자격으로 새 지도부에 입성했다. 경선 초반엔 당선권인 4위 안에 들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았던 김태호 의원은 이날 전당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김태호 신임 최고위원은 당선 직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손에 손을 잡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신나게 한판 해 보자”는 호쾌한 소감을 밝혔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초반 이인제 신임 최고위원에게는 인지도에서 밀리고, 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홍문종 의원에게는 조직력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부산·경남(PK) 지역 표심 결집에 성공하며 3위를 차지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48세의 나이로 국무총리에 지명되면서 ‘깜짝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위증 의혹으로 자진 사퇴하면서 한순간에 추락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2011년 4·27 김해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적 재기를 꿈꿨다. 다음해 4월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돼 1년 만에 재선의원이 됐다. 결국 김태호 최고위원은 국회 입성 3년 만에 최고위원 자리에 오르며 잠재력을 과시하면서 다시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1962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거창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대에 진학한 김태호 최고위원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영향으로 정치인의 꿈을 꾸게 됐다. 1992년 총선에서 이강두 전 의원 선거캠프에 합류한 김태호 최고위원은 199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최연소로 거창군수에 당선됐다. 이어 42세의 나이로 경남지사에 당선되며 ‘차세대 리더’로 발돋움 했다. 김테허 최고위원은 국무총리에서 낙마한 것을 제외하면 선거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어 ‘선거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정치이력에 ‘피닉제’ 별명 붙은 까닭은?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정치이력에 ‘피닉제’ 별명 붙은 까닭은?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정치이력에 ‘피닉제’ 별명 붙은 까닭은?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홍문종·김태호 의원과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던 이인제 의원은 6선 의원으로 대표적인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지법 판사,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정계에 입문한 뒤 최연소 노동부 장관,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들었고 2002년, 2007년에도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탈당, 복당을 무수히 반복하며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 와 불사조라는 의미의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화려한 이력 알고보니… ‘피닉제’ 별명 뜻은?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화려한 이력 알고보니… ‘피닉제’ 별명 뜻은?

    새누리당 최고위원 이인제, 화려한 이력 알고보니… ‘피닉제’ 별명 뜻은?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홍문종·김태호 의원과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던 이인제 의원은 6선 의원으로 대표적인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지법 판사,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정계에 입문한 뒤 최연소 노동부 장관,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들었고 2002년, 2007년에도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탈당, 복당을 무수히 반복하며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 와 불사조라는 의미의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 ‘역대 최고령 지도부’ 눈앞

    14일 탄생하는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는 역대 최고령 사령탑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을동(69) 의원은 여성 몫의 최고위원으로 사실상 당선이 확정됐다. 상대적으로 젊은 김상민(41)·김영우(47) 의원 등은 당선권에서 멀어진 가운데 대표를 포함한 나머지 4석의 최고위원을 놓고 양강인 서청원(71)·김무성(63) 의원을 비롯해 중위권인 이인제(66)·홍문종(59)·김태호(52) 의원 등 5명이 경합 중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위권 중 가장 젊은 김태호 의원이 탈락할 경우 당 지도부의 평균 나이는 65.6세, 홍 의원 탈락 시 64.2세, 이 의원 탈락 시 62.8세가 된다. 중위권 3명 중 누가 최고위원이 되더라도 5명으로 구성된 지도부의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는 것이다. 2002년 새누리당에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된 이후 지도부의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기는 것은 처음이다. 2012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는 55.8세였으며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나경원 전 의원 등 ‘젊은피’가 대거 최고위원에 당선된 2011년 전당대회 때는 평균 50.2세로 역대 최연소를 기록했다. 2010년 전당대회로 탄생한 지도부는 55.6세, 2008년 59.0세, 2006년 57.4세,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로 선출된 2004년 전당대회 때는 53.0세였다. 게다가 만약 서 의원이 대표로 선출된다면 역대 최고령 대표라는 신기록도 함께 세우게 된다. 현재 최고령 대표 기록은 2008년 전당대회에서 70세로 대표에 선출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보유하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최연소 시의원이 성범죄자로…日열도 충격

    일본에서 사상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돼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여고생과 찍은 음란 동영상을 인터넷상에 공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체포되고 사직까지 하게 된 27세 남성이 법원에 기소됐다고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 전직 카츠라기 시의원인 요시타케 아키히로(27)는 최근 헌팅한 여고생을 자택으로 끌어들여 성관계를 갖고 이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상에 게시해 아동매춘·아동포르노금지법, 현 청소년건전육성조례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9일 기소됐다. 기소장에 따르면 요시타케 피고인은 올해 1월 6~14일 나라현 야마토 타카다 시의 자택 등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여고생(촬영 당시 16세)에게 음란한 행위를 촬영한 동영상 2편을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또한 4월 18일 정오쯤부터 오후 4시반쯤까지 같은 여고생과 음란행위를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공개되면서 시의회는 지난 달 13일 자로 요시타케 피고인에 대한 사직 권고를 결의했다. 그는 변호사를 통해 사직원을 제출하고 같은 달 23일에 사직처리됐다. 한편 이 남성은 가명을 사용해 여고생을 헌팅했으며 음란 영상을 공개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엘리트 외교관이 왜 총리실로?

    외교가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던 엘리트 외교관의 총리실 행이 화제다. 정부는 장호진(53) 외교장관 특별보좌관을 총리 외교보좌관으로 최근 발령을 냈다. 이 자리는 총리의 국내외 외교업무 보좌를 전담한 고공단 가급의 차관보급 자리다. 그러나 자리의 역할과 무게를 떠나 잘나가는 외교부 고위직들이 선호하는 자리는 아니다. 장 보좌관은 새 정부 들어 외교부의 첫 업무보고의 입안을 주도했을 정도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신임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장관이 직제상에도 없는 특별보좌관 자리를 만들어 지난해 4월부터 곁에 둬 왔다. 장 보좌관은 올빼미로 통하는 윤 장관을 늦은 밤까지 보좌하고 심야 회의인 ‘5인회’의 상시 성원으로 주요 정책 입안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왔다. 지난해 그가 주도해 입안한 외교부의 첫 대통령 업무보고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대통령의 칭찬도 받자 장 특보가 곧 차관보로 갈 것이란 말이 돌았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았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자리가 비자 이 자리로 옮길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지만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경력이나 능력 면에서 적임자란 평이 중론이었으나 불발에 그친 셈이다. 장 특보는 대학 2학년 때인 1982년 최연소로 외무고시 16회에 붙었고 선두를 달려 왔다. 2005년에 국장급, 2010년 고위공무원단 가급에 올랐다. 핵심 요직인 북미국 심의관과 북미국장을 거친 미국통으로 ‘미국 스쿨’의 적자로 불린다. 같은 미국통인 윤 장관의 장 특보에 대한 중용 의지가 강해 외교부 내에서 요직으로 옮길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이 있었다. 장 특보를 대변인으로 쓸 것이란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러자 그가 외교부에서 요직 하나 꿰차지 못하고 떠도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돌았다. 윤 장관이나 김규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등의 인정을 받는 장 특보의 앞길이 왜 제대로 풀리지 않느냐는 의아한 시선들과 추측들이다. ‘청와대의 비토설’도 나온다. MB 정부 말기인 2012년 당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끌어당겨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을 지낸 게 화근이 됐다는 추측도 있다. MB 정부 때 북미국장을 지내고 ‘잘나간 데 대한 반동’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MB 정부의 부역자’로 찍혔다는 것인데 장 특보 주변에선 “그가 대표적인 미국통이고 정권 말 외교비서관은 다들 거절하는데 북핵외교기획단에서 본부장으로 모셨던 천 전 수석이 끌어당겨 어쩔 수 없이 가 일한 게 뭐가 문제냐”고 변호한다. 일부에선 외시 동기는 물론 후배 기수들보다 어린 데다 각종 회의 때마다 핵심을 콕콕 찌르는 지적과 거침없는 언행 등이 외교부 안에서 경쟁자들의 시기와 견제의 수위를 높인 것 아니냐는 추측들도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전민주, 달라진 외모 ‘성형설’에 초등학생 시절 영상 공개 “리틀 보아 맞네”

    전민주, 달라진 외모 ‘성형설’에 초등학생 시절 영상 공개 “리틀 보아 맞네”

    ‘K팝스타2’ 출신 전민주가 데뷔곡 ‘비별(Good bye Rain)’의 공개를 앞두고 과거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초등학생인 전민주가 비보이 배틀에 출전에 남다른 포스와 댄스 실력을 선보이며 무대를 압도하는 내용이다. 성인과 청소년이 대부분인 참가자 사이에서 최연소로 출전한 전민주는 화려한 락킹과 제스처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낸다. 전민주는 영상 막바지에서 배틀에서 성인 참가자를 누르고 승리하는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여 준다. 이 영상을 통해 전민주는 ‘리틀 보아’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탄탄한 퍼포먼스 능력과 더불어 무대 위의 여유로움과 스타성을 드러냈다. 최근 사진과 ‘K팝스타’ 시절 달라진 외모로 때 아닌 성형 논란에 휩싸인 전민주는 과거 영상 속에서 다소 통통하지만 현재와 다름없는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통한 외모 변신이라는 해명이다. 오는 15일 정오에 공개될 전민주의 데뷔 싱글 ‘비별’ 은 이별의 아픔을 쏟아지는 ‘비’라는 소재로 풀어낸 서정적인 느낌의 ‘네오 클래시컬 알앤비(Neo classical R&B)’다. 세련된 멜로디라인과 풍부한 리얼 오케스트라 사운드, 퍼포먼스를 살려주는 힙합 리듬 편곡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곡으로 발표 전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 = 뮤직K엔터 제공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제주에 29세 최연소 해녀 탄생

    제주에 29세 최연소 해녀 탄생

    제주에서 20대 최연소 해녀가 탄생했다. 제주시는 추자면 추포도에 사는 제주도 수영대표 출신 정소영(29)씨가 제주시 최연소 해녀로 등록(어촌계)했다고 9일 밝혔다. 지금까지 최연소 해녀는 31세였다. 정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해 중·고교 10년 동안 도내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휩쓰는 등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고교 시절에는 도 대표로 선출돼 해군참모총장배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40년간 추포도에서 물질을 해온 정씨의 어머니(68)는 딸이 대를 이어 해녀 활동을 해주길 원했으며, 정씨도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추포도의 현직 모녀 잠수 1호가 탄생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슈스케5’ 우승자 박재정, 17일 데뷔곡 발표 ‘방송 종료 후 8개월 만’

    ‘슈스케5’ 우승자 박재정, 17일 데뷔곡 발표 ‘방송 종료 후 8개월 만’

    엠넷 ‘슈퍼스타K5’ 우승자 박재정이 오는 17일 가요계 공식 데뷔한다. 침체된 ‘슈퍼스타K’를 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그는 앞서 9일 0시 오디션 결승곡 ‘첫눈에’를 리믹스 한 ‘19금 데뷔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데뷔를 예고했다. 20초 분량의 컴백 트레일러에는 흑백 배경 속 포마드 헤어의 박재정의 시크한 모습과 함께 수갑에 묶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여자, ‘전신 타투(Tatoo)’의 여인이 등장해 파격을 선보였다. 그가 이번 앨범을 선보이는 것은 방송 종료 이후 8개월 만. ‘슈퍼스타K’ 사상 최연소 우승자에, 시리즈 사상 가장 적은 호응을 얻은 바 있어 이번 데뷔가 박재정 뿐만 아니라 ‘슈퍼스타K6’의 성공 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희생 감수 사생결단식 리더십 절실, 개헌 본격화… 진짜 혁신 이루겠다”

    “희생 감수 사생결단식 리더십 절실, 개헌 본격화… 진짜 혁신 이루겠다”

    “여야 진영 논리를 벗어나 국민의 눈치를 보는 신뢰 정당으로 변모시키겠다.” 새누리당 7·14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비박근혜계 재선 김태호 의원은 9일 선거 캠프를 겸한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이 없는 내가 여당의 ‘진짜’ 혁신을 이뤄 낼 주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정치가 고장나 있다. 현재 같은 승자 독식의 국정운영 방식으로는 통일과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대비할 수 없다. 대통령이 국가 대개조를 말하지만 큰 틀을 바꾸려면 결국 개헌이 필요하다. 제가 대표가 되면 개헌 작업을 본격 시작하고 국회 내 개헌특위도 조속히 설치하겠다. →현재 여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여당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해바라기 정당으로 비쳐지고 있다. 당의 존재감과 리더십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치에 공학만 있고 국민과 민생은 실종됐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청년 취업, 전월세 문제 등 서민들에게선 죽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서민적 바탕에서 여당 개혁과 미래 어젠다를 추진해야 한다. 진짜 혁신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사생결단적 리더십’이 여당에 요구된다. →당내 비주류로서 계파 갈등에 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합동연설회에 가 보니 “우린 친박도 비박도 아니고, 다같이 친박”이라고 주장하는 후보들이 계시더라. 이런 표현 자체가 여전히 계파 논리 속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에 계파가 있는 것은 당연하나 계파가 국민과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당원 모두가 국민을 사랑하는 국민파, 국사파(국민을 사랑하는 파)가 돼야 한다. 그런데 (친박계가) 득 될 때만 대통령을 팔고 어려울 땐 대통령 뒤로 숨어 버린다. 6·4 지방선거 때도, 이번 전대에서도 대통령의 눈물만 팔고 있더라. →서청원·김무성 의원의 양강 구도가 과열되다 보니 후유증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우려가 높다. -살생부 얘기까지 등장하고 전대가 국민들에게 꼴불견으로 비춰지고 있다. 두 분 모두 정치적 역량이 크지만 리더십의 변화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에 통 크게 응하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들이 여당 대표를 끄집어 내릴 수도 있다. 당을 해체하라는 국민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국무총리 낙마를 경험한 당사자로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사태를 어떻게 봤나. -내가 깨져 본 사람 아닌가. 총리가 실제로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영양가 없는 자리인데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본회의 표결 절차가 있는데 (이에 앞서) 인사청문회와 국민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론으로 사퇴에 이르게 한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 →전대 과정에서 여당 불모지인 광주·호남도 서너 차례 방문했다. -도지사를 지낸 경남 지역이 마음은 편하지만 기득권만 찾는 건 정치가 아니다. 새누리당 표가 가장 적은 곳에 가서 진심이 통하도록 하고 싶다. 도지사를 그만둘 시점에 혼자서 광주 5·18 묘역을 찾은 적이 있다. 비석을 보니 희생된 분들이 거의 나와 동세대 학생들이었다. 이분들의 희생의 의미를 빚으로 안고 가는 게 제가 정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김태호가 걸어온 길 민선 최연소 거창군수·경남지사 등 거쳐… MB때 총리 지명됐다 사퇴 김태호(52) 의원은 1962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거창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대에 진학한 김 의원은 대학 시절 아버지의 친구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고 김동영 전 의원의 영향으로 정치인을 꿈꾼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이강두 전 의원 선거캠프에 합류한 김 의원은 199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최연소로 거창군수에 당선됐다. 2004년 재·보궐 선거에서 42세의 나이로 경남지사에 선출됐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10년 8월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로 지명됐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자진 사퇴했다. 2011년 김해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18대 국회에 입성했고,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재선 의원이 됐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최연소 노동부장관 등 이력 화려… 불사조처럼 국회 입성 ‘피닉제’ 별명

    6선 의원으로 대표적인 충청 출신 정치인이다.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지법 판사,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정계에 입문한 뒤 최연소 노동부 장관,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들었고 2002년, 2007년에도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탈당, 복당을 무수히 반복하며 정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 와 불사조라는 의미의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광역단체장 인터뷰] “도시철도 2호선 ‘노면 트램’ 추진… 연내 합리적 방안 만들 것”

    [광역단체장 인터뷰] “도시철도 2호선 ‘노면 트램’ 추진… 연내 합리적 방안 만들 것”

    권선택 대전시장은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방식으로 ‘노면 트램’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민이 실질적으로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인 ‘시민행복위원회’ 설치도 약속했다. 권 시장은 “트램이 건설되면 국내 처음”이라며 “유럽은 도로가 좁고 여건이 좋지 않은데도 트램이 효율적인 교통수단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 가칭 도시철도통합위원회를 만들어 이 부분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권 시장은 “노면 방식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가능한지 정부와 협의하겠다”며 “기종 등을 바꾼 대구나 광주는 면제받은 전례가 있다”고 문제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다만 그는 “내 방식을 밀어붙이지 않겠다. 시민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3의 기구를 둬 올해를 넘기지 않고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시민이 참여하는 시장 직속 기구인 대전시민행복위원회도 만든다. 권 시장은 “시민을 중심으로 해 100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 명망가는 되도록 배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 시민 대표와 내가 공동 위원장이 될 것”이라며 “다른 곳에는 없는 조직”이라고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권 시장은 선거에 출마하면서 ‘사람 중심의 시정을 펴겠다’, ‘시민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대전 발전이란 명제 아래서는 계층, 세대, 지역 간 갈등이 있을 수 없다”면서 “시민행복위가 지역사회, 경제, 환경적 발전을 협의해 구현하고 나 또한 시민들을 만나 이를 끊임없이 묻고 귀담아 듣는 시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또 명예시장제와 현장시장실을 운영한다. 권 시장은 “시민이 곧 시장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간간이 시내버스와 택시를 이용하면서 시민들과 만나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일자리 창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권 시장은 “대전은 산업단지가 적어 공무원 등 공공기관 일자리가 많다. 일자리 창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이 문제는 대덕연구단지에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단지에서 개발한 것을 사업화해 새로운 고급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대덕연구단지와 연계하는 것만으로 되겠나. 외부 기업 유치가 뒤따라야 일자리가 더 풍부해질 것이 아닌가. -기업 지키기가 우선이다. 기업이 새로운 공장 부지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많이 떠나고 있다. 대기업은 대전에 오는 것이 쉽지 않다. 강소기업 위주로 유치하려 한다. 전담 공직자도 두겠다. 기업헌터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유치 권한을 주겠다. 기업인들 얘기를 들어 보면 떠난다 떠난다 해도 잡는 사람이 없다고 푸념한다. 부지, 기술, 자금 등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 줄 필요가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그 핵심 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이 들어가는 엑스포과학공원도 현안이다. -이 문제는 과학벨트의 중단 없는 추진과 사이언스콤플렉스의 과학성 강화가 핵심이다. 과학벨트의 취지와 의미 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국가성장동력을 만드는 사업인 만큼 중앙정부에 당당히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다. 또 엑스포과학공원 내 민자사업인 사이언스콤플렉스는 과학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 대형 쇼핑몰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애쓰겠다. 그래야 과학도시 대전의 상징으로서 제 몫을 다할 것이다. →대전은 과학도시로 불린다. 여기에 또 다른 도시 색깔을 입힌다면 무엇이 있나. -근대문화의 도시다. 원도심은 일제강점기 때 식민 통치를 위해 건설된 계획도시다. 대전역 앞을 중심으로 은행·대흥·선화동 일대에 근대 건축물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옛 충남도청과 관사촌, 옛 상업은행 건물 등 근대건축물부터 진로집, 광천식당, 산호다방 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이나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전문가, 예술가, 주민 등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가 운영하는 근대문화예술특구로 지정해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찾도록 하겠다. →옛 충남도청에 국책기관이나 교육기관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원도심 정책의 큰 그림을 알려 달라. -그동안의 정책이 큰 성과가 없었던 것은 단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시정 흐름에서 정책을 펴야 한다. 예컨대 신도심을 새롭게 만들면서 원도심을 살린다는 건 맞지 않는다. 신도심 추가 건설은 안 한다. 모든 정책에서 균형이 우선이다. 대전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은 도청 문제와 관련해서는 도청이전특별법이 중요하다. 법 통과를 위해 온 힘을 쏟겠다. 또 공약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분원 유치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의원 시절 총장과 장관을 만나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취임 전부터 전임 염홍철 시장 지우기 논란이 일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인수위원회인 대전시민경청위에서 몇몇 사업을 ‘재검토’라고 표현하면서 말이 나왔다. 표현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검토해서 알맞은 방향으로 추진하자는 것이지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도시철도 2호선, 엑스포과학공원, 과학벨트 등에서 정책 차이가 있었다. 논의를 해 충분히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사업들이다. 민선 5기에서 잘된 것은 이어받고 비판받는 것은 수정,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직 시장의 정책을 큰 틀에서 인정하고 보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원론적으로 시정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한꺼번이 아니라 하나하나 변화시키겠다는 것이고, 그 변화의 중심은 시민이다. 그래서 시급한 것이 ‘소통’이다. 도시철도 2호선과 관련한 노사정위원회 운영은 진정한 소통이 아니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소통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염 전 시장의 정책 가운데 계승할 것이 있다면. -정책의 일관성이나 우수성 등을 볼 때 복지만두레사업이 우선 꼽힌다. 복지에서 행정이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시민들이 나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니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는 이 사업을 민간에서 맡아 발전시켜야 한다. →세종시와 충남북 등 충청권 시·도지사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나 지역 이해 문제로 충돌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소모적인 정쟁을 할 필요는 없다. 원칙적으로 충청권은 광역행정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경제영역을 확대해 상생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지역 간 기능을 분담시켜야 한다. →야당 단체장이어서 예산 확보에 어려움도 있을 텐데. -야당 단체장인 서울시나 광주시가 정부나 국회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중앙과 지방을 두루 경험한 공직 생활과 두 번의 국회의원 때 쌓은 다양한 인맥을 대전 발전에 충분히 활용하겠다. 또 대전의 현안 해결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정당이나 여야를 떠나 하나로 힘을 모으는 데 내가 먼저 발벗고 나서겠다. 대담 이동구 사회2부장 정리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권 시장이 걸어온 길 27년 행정통… 자유선진당 원내대표 땐 ‘중재의 달인’ 권선택 대전시장의 당선은 선거 막판에 다다라서야 가능성이 눈에 들어왔다. 권 시장은 한 차례 시장을 지낸 박성효 전 의원이 새누리당 대전시장 후보로 결정된 뒤 엄청난 격차로 뒤지다 막판에 뒤집는 힘을 보여줬다. 권 시장은 1955년 대전 중구 목달동 안동 권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산서초와 충남중을 거쳐 명문고이던 대전고에 진학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행시에서 최연소 수석 합격을 했다. 27년의 공직 생활 동안 중앙과 지방을 넘나들었고, 덕분에 두 행정 모두에 정통하다. 충남도 기획관도 했지만 대전시 기획관리실장과 정무·행정부시장까지 지내 대전시정에 밝다. 2002~2003년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국장, 청와대 인사비서관 등 중앙행정 경험도 풍부하다. 특히 옛 내무부에 있을 때 국민의 친구가 된 119구조대를 창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에도 깜짝 데뷔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와 당시 5선을 지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권 시장은 2006년 시장에 도전하려 했으나 당에서 염홍철 전 시장을 전략공천하자 탈당했다. 18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해 다시 강 전 국회의장을 눌렀다. 당 원내대표 등을 지냈다. 권 시장은 의원 시절 “국회 복도를 뛰어다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일 욕심이 많다. 원내대표 때는 ‘중재의 달인’으로 불렸다.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 국민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에 복당한 뒤 12년 만에 대전시의 시장으로 돌아왔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수백만 가지 배울 길 있는 음악은 네버엔딩 스토리”

    “수백만 가지 배울 길 있는 음악은 네버엔딩 스토리”

    “한 여성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내 직업에서 목표를 이뤘다’고 하기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 말은 명백한 실수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드는 100가지 규칙을 모두 배운 뒤에도 저는 101번째 규칙을 탐구해야 하거든요. 음악에는 제가 배워야 할 수백만 가지의 길이 있기 때문에 결코 끝이 없는 ‘네버엔딩 스토리’라 할 수 있죠.” ‘천재과’인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26)에게 음악가로서 목표를 묻자 예상 밖의 답을 들려줬다. 어릴 때부터 음악 영재로 인정받은 만큼 확실한 그림과 구상이 세워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는 ‘오로지, 정진하는 것’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독일인 아버지와 작곡가인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엔더스는 아홉 살 때 처음 첼로를 손에 쥔 이후 12살에 프랑크푸르트음대에서 미하엘 잔데를링을 사사했다. 스무 살이던 2008년에는 460여년 역사의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 최연소 첼로 수석으로 영입돼 화제를 모았다. 10년간 공석이던 자리를 꿰찬 그가 4년 만에 안정된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와 솔리스트로 섰을 때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는 조직이 아닌 자신에게 전적으로 선택권을 준 것에 대해 “후회하기는커녕 행복하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수석 자리는 제게 특별한 명예와 영광을 줬지만 제 음악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솔리스트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저없이 독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가능성을 얻게 됐죠. 지금 제 미래는 전적으로 제 자신에게 집중돼 있고 여러 음악가, 지휘자들에게 배운 경험을 어떻게 넓혀 나가고 탐험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믿어요.” 이미 그는 거침없이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바흐 무반주 모음곡 전곡을 녹음한 앨범이 이달 말 발매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첫 협연도 앞두고 있고 진은숙 작곡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노르웨이와 프랑스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세계 무대를 누비지만 절반을 뿌리에 둔 한국에서의 공연은 늘 각별하다. 아버지가 지어 준 ‘이상’이라는 이름 역시 한국인 작곡가 윤이상에서 따온 것. 이 때문에 그는 늘 한국에 올 때면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한국의 언어, 소리, 냄새 그리고 사람들은 제가 음악을 시작하기 이전 유년기를 떠오르게 해요. 한국에서의 연주 경험은 행복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한 세대 안에서 세계가 얼마나 가까이 연결돼 있는지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런 그가 오는 17일 어머니의 나라를 또다시 찾는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4 서울신문 창립 11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올해 서거 110주년을 맞은 민족주의 음악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여자경)와 협연한다. 이날 공연에는 소리꾼 장사익과 소프라노 이명주, 바리톤 공병우도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3만~15만원. (02)2000-9752~5.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설] 선출직 검증 필요성 일깨운 시의원 청부살인

    현직 시의원이 청부살인을 했다는 믿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3월 발생한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은 김형식 현 서울시의원이 친한 친구에게 부탁해 돈을 빌린 채권자를 살해한 사건이라고 경찰이 발표한 것이다. 김 의원은 구속돼 재판에 넘겨질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김 의원이 범인이 확실하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범행이 사실이라면 사상 초유의 현직 의원 청부살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청부살인 피의자인 김 의원은 대학총학생회장 출신의 386세대로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서울시의회에 진출했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재선된 인물이다. 옛 열린우리당 최연소 부대변인도 지냈다. 그런 사람이 흉악 범죄의 주범이라니 너무나 충격적이다. 김 의원은 채권자 송모씨로부터 선거 자금 5억 2000만원을 빌렸다가 “못 갚으면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할 줄 알라”는 압박을 받자 친구 팽모씨에게 부탁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범행 전 현장을 50여 차례나 답사하며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결국 CCTV에 꼬리가 잡혔다. 범행 후 팽씨가 중국으로 도피했다가 중국 공안에 덜미가 잡히자 김 의원은 팽씨에게 자살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팽씨가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파렴치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극악 범죄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팽씨가 친구 이전에 김 의원에게 7000만원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의원은 병역도 제대로 마쳤고 전과도 없어 공천과 투표 과정에서 걸러내기란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지방자치 제도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뇌물 비리로 시의회 의장이나 의원이 구속되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이런 강력범죄는 상상도 못할 사건이다. 공직선거법의 피선거권 결격사유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누구나 선거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지방선거 입후보자 중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는 인물들도 상당수 섞여 있다. 6·4 지방선거 후보자 중에서 전과자의 비율은 40%나 됐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공천 검증을 더욱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정치권에 던져주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범행까지 막을 수는 없더라도 보다 건강한 의정 활동을 위해서라도 후보자들의 됨됨이를 잘 따져야 한다. 물론 유권자들의 신중한 선택은 더 중요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