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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던 스피스...“투어챔피언 우승하자...자폐 앓는 여동생 엘르 안았다...”

    조던 스피스...“투어챔피언 우승하자...자폐 앓는 여동생 엘르 안았다...”

    미국 조던 스피스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014-2015 시즌 최종 승자의 자리에 올랐다. 시즌 후반 부진을 극복한 것이다. 스피스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7307야드)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 4개, 보기 3개로 1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9언더파 271타다. 헨리크 스텐손(스웨덴),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25), 저스틴 로즈(잉글랜드·5언더파 275타)를 4타차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스피스는 티샷을 그린 위에 올린 뒤 전혀 흔들림 없이 2퍼트로 마무리한 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여동생 엘리를 꼭 껴안았다. 스피스는 올 시즌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속 제패한 것을 포함, 정규 시즌에서만 4승을 올린 스피스는 플레이오프 2개 대회에서 연속 컷 탈락하는 부진을 겪었다. 페덱스컵 랭킹에서도 2위로 밀렸던 상태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인 투어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라 시즌 5승과 함께 우승 상금 148만5000달러(약 17억7000만원)에다 플레이오프 종합 우승자에게 주는 보너스 상금 1000만 달러(약 119억4000만원)까지 받았다. 만 22세의 스피스는 역대 최연소 PGA 투어 플레이오프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스피스는 올 시즌 보너스 상금 1000만 달러를 제외하고도 1203만465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여 PGA 투어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세웠다. 새로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1위로 복귀했다. 스피스는 똑같이 시즌 5승을 거둔 제이슨 데이(호주)와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뽑는 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놓고 또 한번 겨루게 됐다. 스피스는 “메이저대회에 출전하는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나왔다”며 “플레이오프 동안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는데 퍼터 덕에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봐라..내가 최고다...조던 스피스”

    “봐라..내가 최고다...조던 스피스”

    미국 조던 스피스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014-2015 시즌 최종 승자의 자리에 올랐다. 스피스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7307야드)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 4개, 보기 3개로 1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9언더파 271타다. 헨리크 스텐손(스웨덴),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25), 저스틴 로즈(잉글랜드·5언더파 275타)를 4타차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올 시즌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속 제패한 것을 포함, 정규 시즌에서만 4승을 올린 스피스는 플레이오프 2개 대회에서 연속 컷 탈락하는 부진을 겪었다. 페덱스컵 랭킹에서도 2위로 밀렸던 상태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인 투어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라 시즌 5승과 함께 우승 상금 148만5000달러(약 17억7000만원)에다 플레이오프 종합 우승자에게 주는 보너스 상금 1000만 달러(약 119억4000만원)까지 받았다. 만 22세의 스피스는 역대 최연소 PGA 투어 플레이오프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스피스는 올 시즌 보너스 상금 1000만 달러를 제외하고도 1203만465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여 PGA 투어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세웠다. 새로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1위로 복귀했다. 스피스는 똑같이 시즌 5승을 거둔 제이슨 데이(호주)와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뽑는 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놓고 또 한번 겨루게 됐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특강 2~3번에 연봉 2억 ‘노벨상 교수님’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특강 2~3번에 연봉 2억 ‘노벨상 교수님’

    #1. 국내 S대 A교수는 얼마 전 해외 학회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외국인 교수들이 대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몇몇 교수들이 “한국 대학에 초빙교수나 석좌교수로 갈 수 있게 다리를 놔달라”고 했다. 외국인 교수에 대한 금전적 처우는 좋지만 강의 부담은 크지 않은 한국 대학에서 연구년 개념으로 쉬면서 일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A교수는 기자에게 “한국 정부나 대학들이 목적의식 없이 외국인 교수들을 경쟁하듯 초빙하고 있는 사실이 외국 학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2. 한 학회 실무자 B씨는 최근 개최했던 국제포럼만 생각하면 넌더리가 난다. 무조건 노벨상 수상자를 섭외해 초청하라는 지시에 골머리를 앓았다. B씨는 “노벨상 수상자만 모셔 오면 학회 홍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다 보니 현재 학문 추세와 상관없이 거액을 들여서라도 수상자를 데려오라는 식의 주문이 포럼 때마다 되풀이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예산 문제로 노벨상 수상자 초빙이 무산됐지만 다음 행사 때는 또 닦달할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해외 석학들을 앞다퉈 국내에 불러오고 있지만 겉만 요란할 뿐 실속은 못 차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고액을 들여 외국인 학자를 초빙하고도 홍보를 위한 ‘얼굴마담’이나 각종 평가지표의 국제화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초 외국인 연구자를 초빙하려고 했던 초심(初心)이 퇴색했다는 목소리도 학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2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2002년 1454명이었던 국내 외국인 교수 영입 규모는 2007년 2919명으로 두 배가 됐고, 2013년 613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6034명으로 소폭 감소한 데 이어 올해에도 9월 현재 5961명으로 줄었다. 국내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외국인 교수 1인당 투자하는 비용은 1년에 1억~2억원선이다. 주요 타깃은 노벨상 수상자이지만 실제 유치한 사례는 10명 안팎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해외 저명 연구자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을 주로 석좌 혹은 석학교수, 초빙교수 등으로 모시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 1년에 3~4차례 혹은 한번에 1주일 정도 국내에 체류하며 2~3번 특강을 하는 수준에 그친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거론됐던 그래핀 분야의 석학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12년 3월 서울대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김 교수는 하지만 공동연구나 대학원생 지도는 하지 않고 한 학기에 한 번씩 1년에 두 차례 서울대 특강만 진행할 뿐이다. 외국인 석학에게는 일반적으로 기본 연봉에다 방한 시 여행 경비와 국내 체재비가 제공된다. 연간 유지 비용은 1억~2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한 과학계 인사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우는 수상 시기나 연구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 체류 중 1회 강연에 5000~1만 달러 안팎의 강연비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대학들이나 연구기관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겠다는 사전 계획이 없이 해외 석학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비싼 돈만 주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특강이나 몇 번 하고 끝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구 능력이나 국내 적응 등의 여건을 고민하지 않고 초빙 자체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중도에 떠나는 외국인 연구자도 속출한다. 건국대는 2009년 당시 19세였던 알리아 사버 박사를 공대 신소재융합학과 외국인 전임교수로 채용하면서 ‘최연소 교수로 기네스북 기록을 갈아치웠고 국내 연구에도 활력을 줄 것’이라고 대대적 홍보를 했다. 하지만 사버 박사는 정규 강의가 아닌 특강만 하다 한 학기 만에 되돌아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남았다. 서남표 전 카이스트(KAIST) 총장은 “한국 대학의 경우 총장은 학교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 특히 외국에서 총장을 데려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이런 사회적 폐쇄성은 대학이나 정부가 해외 석학을 데려오고 정착시키는 데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국인 연구자들의 유치 실패는 한국식 연구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연구 풍토에서 장기적 연구 내용보다는 단기적인 논문 생산 편수를 따지고, 연구자들에게 행정 업무까지 떠안기는 현실이 해외 우수 인재들을 중도에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톱10 간절한 배상문

    한국 국적 선수로는 유일하게 미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배상문(29)이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진출을 위한 마지막 관문에 섰다. 배상문은 17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레이크 포리스트의 콘웨이 팜스 골프클럽(파71·7251야드)에서 열리는 플레이오프 3차전 BMW챔피언십에서 10위 안에 들면 무난히 투어 챔피언십에 나가지만 10위 밖으로 밀린다면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이 대회에서는 70명의 선수가 출전해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 나갈 30명을 가려낸다. 현재 배상문은 2014~15시즌 두 차례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페덱스컵 포인트 1391점을 쌓아 23위에 자리하고 있다.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25)는 페덱스컵 랭킹 14위에 자리해 이변이 없는 한 투어 챔피언십 진출이 확정적이다. 상위권 선수 중에는 제이슨 데이(호주), 조던 스피스(미국), 리키 파울러(미국)가 이번 주에 다시 맞붙는다. 데이와 스피스는 각각 페덱스컵 랭킹 1,2위를 달리고 있지만 파울러가 플레이오프 2차전 도이체방크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바짝 추격하고 있다. 스피스의 부진으로 지난 14일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1위를 되찾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페덱스컵 랭킹에서는 17위로 밀려 있어 분발이 필요하다. 한편 여자골프 역대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을 세운 리디아 고(18)가 세계랭킹에서도 박인비(27)를 바짝 추격했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14일자 세계랭킹에서 12.82점을 받아 1위 박인비(12.94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박인비와의 격차도 0.12점으로 좁혔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골프 ★의 10대, 달라도 뭔가 달랐다

    골프 ★의 10대, 달라도 뭔가 달랐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가 역대 최연소 나이로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세계여자골프에서 10대에 메이저 우승컵을 차지한 선수는 6명이 됐다. 리디아 고는 13일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마스터스 골프클럽(파71·6453야드)에서 열린 에비앙 챔피언십 골프대회(총상금 325만 달러)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몰아쳐 8언더파 63타를 기록, 최종 합계 16언더파 268타로 10언더파 274타로 2위에 오른 렉시 톰프슨(20·미국)을 6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했다. 이로써 리디아 고는 18세 4개월 20일 나이에 메이저 챔프에 등극, 종전 최연소 메이저 우승 기록인 모건 프레슬(27·미국)의 18세 10개월 9일(2007년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인스퍼레이션)을 8년 만에 5개월여 앞당겼다. 리디아 고와 모건 프레슬 이외에도 10대에 메이저 챔프에 오른 여자 골퍼가 4명 더 있다. 이번 대회에서 리디아 고와 우승을 다퉜던 렉시 톰프슨은 2014년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19세 1개월 27일의 나이로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렉시 톰프슨은 만 14세의 나이에 LPGA에 입회해 2011년 나비스타 LPGA 클래식에서 16세 10개월 8일의 나이로 우승, 역대 최연소 LPGA 투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다음 최연소 메이저 챔프는 김효주(20·롯데)다. 에비앙 챔피언십 디펜딩챔피언이기도 한 김효주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19세 2개월이었다. 초청 선수로 출전했던 김효주는 LPGA 비회원으로 10대 메이저 우승자가 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청야니(27·대만)는 19세 4개월 6일에 2008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09주 연속 세계 랭킹 1위를 지킨 청야니는 22살까지 메이저대회 5승에 투어 대회 9승, 통산 상금 9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세계여자골프계 ‘영 파워’를 제대로 보여 줬다. 박인비(28·KB금융그룹)도 20세를 1개월 반여 앞둔 19세 11개월 17일의 나이에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LPGA 첫 우승을 메이저 우승으로 장식했다. 박인비가 남긴 US 여자오픈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9590만 회원 220만권 판매 74만 5000 댓글…숫자로 본 ‘웹툰 파워’

    9590만 회원 220만권 판매 74만 5000 댓글…숫자로 본 ‘웹툰 파워’

    ‘9590만, 220만, 74만 5110, 5726’ 웹툰이 대중문화 콘텐츠의 대세로 자리잡았음을 알려주는 수치들이다. 9590만은 포털사이트 및 웹툰플랫폼에 가입한 회원 숫자다. 220만은 역대 단행본으로 출간된 웹툰 중 가장 많이 판매된 부수다. 윤태호의 ‘미생’이다. 74만 5110은 웹툰에 달렸던 댓글 중 최다를 기록한 숫자다. SIU의 ‘신의 탑’이었다. 5726은 지난해까지 집계됐던 웹툰의 전체 작품 수다. 이렇듯 만화는 웹툰으로 진화했다. 더이상 만화방에서 킥킥대며 보다가 선생님에게 붙잡히거나, 여의도광장 복판에 수북이 쌓아 놓고 불지름을 당하던 매체가 아니다. 외국에서도 드라마와 케이팝에 주목하던 한류를 향한 시선이 서서히 웹툰으로 향하고 있다. ‘국가대표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은 기꺼이 웹툰에 자리를 내줬다. 15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전시실에서 ‘하우스 오브 웹툰’을 주제로 전시, 체험, 작가와 만남 등 다양하게 진행된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영상대학교,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주제 그대로 집안 구조를 활용한 전시기법을 통해 창작, 편집, 독서 순으로 이뤄지는 웹툰의 생산과 소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웹툰 관련 데이터다. ‘최장 기간 연재된 웹툰’(조석 ‘마음의 소리’ 3280일), ‘최고령, 최연소 웹툰 작가’(68세 허영만, 17세 버선버섯), 최다 장편웹툰 창작 작가(강풀 13편) 등 웹툰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각종 데이터를 인포그래픽 형태로 구성했다. 전시 기간에는 웹툰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웹툰 작가 토크쇼’와 ‘웹툰 캐릭터 그리기 체험’도 각각 6차례에 걸쳐 마련된다. ‘웹툰의 시대’ 저자인 위근우 기자와 김정영 청강문화산업대 교수가 진행하는 웹툰 작가 토크쇼에서는 홍작가, 선우훈, 모히토모히칸, 승정연, 하마탱(최인수), 전진석·오은지가 웹툰의 제작 과정과 비화를 이야기한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이번 웹툰 체험전은 웹툰의 현재를 미시적으로 자세히 분석하는 자리로서 한국 웹툰의 전성시대를 이끌 성장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인의 DNA/박홍환 논설위원

    생물체의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DNA(데옥시리보핵산)라는 일종의 저장 장치에 담겨 있다. 인종이 어떻든, 민족이 무엇이든, 어떤 사람이든 DNA의 99.9%는 똑같다. 그런데 왜 72억명의 인류 중 나와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까. 바로 0.1%의 차이 때문이다. ‘인체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DNA의 오묘함이 여기에 있다. 그 속에는 이목구비, 즉 인체 하드웨어를 결정하는 유전적 특징뿐 아니라 희로애락 등의 감정 반응을 비롯한 소프트웨어적인 요소 등도 담겨 있다고 한다. 일종의 정서적 유전자인 셈이다. 유전적 특징이 대를 이어 내려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에게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적 유전자가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이른바 ‘한국인의 DNA’이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노예제도의 유산이 우리(미국인) DNA를 통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며 미국 내 고질적인 인종차별 의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때 우리도 부정적 자의식에 빠져 스스로 우리의 민족성, 즉 한국인의 DNA를 비하한 적 있다. 3명 이상 모이면 싸우고, 타율적인 데다 지나친 허영과 형식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일제가 숨겨 놓은 이 같은 ‘식민지배 정당화 코드’가 광복 후 한참 동안 우리의 정신을 지배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우리 스스로 긍정의 DNA를 발견해 내고 있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세계적인 한국인 스포츠 스타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외국인들의 눈길도 달라졌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민족사에도 조예가 깊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요즘 ‘기마민족 DNA’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우리는 대외 지향적이고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륙 기마민족의 DNA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종합기술원장, 농심 회장 등을 지낸 원로 기업인 손욱씨는 우리가 위기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DNA’를 타고났다고 주창한다. 위기 때마다 기적의 DNA가 발현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DNA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제 끝난 스위스 에비앙마스터스 골프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메이저퀸에 등극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언론 인터뷰에서 자랑스럽게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모두 한국계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만큼 정서적 유대감이 깊다는 뜻일 게다. 어찌 보면 그 핏속에 가득 찬 한국인의 DNA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를 필두로 세계적인 유명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자신들의 몸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떳떳하고도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한국인의 DNA, 우리의 정서적 유전자에 자긍심을 갖는 한국계가 전 세계에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은가.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퀸’ 역사 쓰다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퀸’ 역사 쓰다

    마침내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기록까지 썼다. ‘최연소 기록 제조기’ 리디아 고(18·고보경)가 13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마스터스 골프클럽(파71·6453야드)에서 끝난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로만 8타를 줄인 최종 합계 16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2013년 데뷔 이후 2년 만에 수확한 메이저 첫 승이다. 상금은 48만 7500달러(약 5억 7800만원)다. 두 살 많은 렉시 톰프슨(미국)에게 1타 차 공동 3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해 사실상 매치플레이나 다름없는 우승 경쟁을 펼친 리디아 고는 후반 12번, 13번홀(이상 파4) 연속 버디로 단숨에 1타 차 단독 1위로 부상한 뒤 안정된 플레이로 14번홀(파3) 더블보기를 저지른 톰프슨을 2위(10언더파)로 돌려세우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0언더파 단독 선두로 출발한 이미향(22·볼빅)은 3타를 까먹는 불운 속에 공동 4위로 마감했다. 14세(9개월) 때 호주여자프로골프(ALPGA)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서 프로골프 대회 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리디아 고는 최연소 기록을 줄줄이 써 내려 갔다. 이듬해 아마추어로 출전한 LPGA 투어 캐나디안오픈 최연소(15세 4개월) 우승에 이어 올해에는 17세 10개월의 나이에 호주여자오픈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앞서 17세 9개월의 나이에 남녀 프로골퍼를 통틀어 최연소 세계 랭킹 1위로 이름을 올린 리디아 고는 최근에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퇴)의 29라운드 연속 언더파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이날 18세 4개월 20일의 나이로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 된 리디아 고는 종전 모건 프레슬(미국)이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세운 18세 10개월 9일의 최연소 기록을 6개월이나 앞당겼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대기록 ‘골프여제’ 위협..셀카보니 ‘깜찍 미모’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대기록 ‘골프여제’ 위협..셀카보니 ‘깜찍 미모’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대기록 ‘골프여제’ 위협..셀카보니 ‘깜찍 미모’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리디아 고가 최연소 메이저 우승을 거머쥐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13일 프랑스 에비앙 르뱅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리디아 고는 에비앙골프장(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잡아내며 이날만 8언더파 63타로 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최연소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리디아 고의 이번 우승은 LPGA 통산 9승째(아마추어 2승 포함)이자 메이저대회 첫 우승으로, 1997년 4월 24일 생인 리디아 고는 이날로 만 18세 4개월 20일이 돼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모건 프레셀(미국)이 세운 역대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18세 10개월 9일)보다 6개월 빠른 기록이다. 리디아 고는 앞서 지난 2012년 호주여자프로골프 ALPG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참가해 14세9개월의 나이로 우승해 남녀 프로골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8월 캐나다여자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15세4개월 2일의 나이로 우승, LPGA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겼다. 이후 리디아 고는 2013년 2월에는 ISPS 한다 뉴질랜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유럽여자골프투어(LET) 최연소(15세9개월17일) 우승자가 되며 기록을 써 내려갔다. 한편 지난 2월에 최연소 세계랭킹 1위에 오른바 있는 리디아 고는, 현재는 박인비에 이어 세계 랭킹2위(롤렉스 랭킹 기준)에 올라있다. 사진=리디아 고 트위터(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마침내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기록까지 썼다. ‘최연소 기록 제조기’ 리디아 고(18·고보경)가 13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마스터스 골프클럽(파71·6453야드)에서 끝난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로만 8타를 줄인 최종 합계 16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2013년 데뷔 이후 2년 만에 수확한 메이저 첫 승이다. 상금은 48만 7500달러(약 5억 7800만원)다. 두 살 많은 렉시 톰프슨(미국)에게 1타 차 공동 3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해 사실상 매치플레이나 다름없는 우승 경쟁을 펼친 리디아 고는 후반 12번, 13번홀(이상 파4) 연속 버디로 단숨에 1타 차 단독 1위로 부상한 뒤 안정된 플레이로 14번홀(파3) 더블보기를 저지른 톰프슨을 2위(10언더파)로 돌려세우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0언더파 단독 선두로 출발한 이미향(22·볼빅)은 3타를 까먹는 불운 속에 공동 4위로 마감했다. 14세(9개월) 때 호주여자프로골프(ALPGA)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서 프로골프 대회 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리디아 고는 최연소 기록을 줄줄이 써 내려 갔다. 이듬해 아마추어로 출전한 LPGA 투어 캐나디안오픈 최연소(15세 4개월) 우승에 이어 올해에는 17세 10개월의 나이에 호주여자오픈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앞서 17세 9개월의 나이에 남녀 프로골퍼를 통틀어 최연소 세계 랭킹 1위로 이름을 올린 리디아 고는 최근에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퇴)의 29라운드 연속 언더파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이날 18세 4개월 20일의 나이로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 된 리디아 고는 종전 모건 프레슬(미국)이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세운 18세 10개월 9일의 최연소 기록을 6개월이나 앞당겼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최연소 우승 섭렵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최연소 우승 섭렵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13일 프랑스 에비앙 르뱅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리디아 고는 에비앙골프장(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잡아내며 이날만 8언더파 63타로 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최연소 메이저 우승 기록을 썼다. 리디아 고의 이번 우승은 LPGA 통산 9승째(아마추어 2승 포함)이자 메이저대회 첫 우승으로, 1997년 4월 24일 생인 리디아 고는 이날로 만 18세 4개월 20일이 돼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모건 프레셀(미국)이 세운 역대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18세 10개월 9일)보다 6개월 빠른 기록이다. 리디아 고는 앞서 지난 2012년 호주여자프로골프 ALPG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참가해 14세9개월의 나이로 우승해 남녀 프로골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8월 캐나다여자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15세4개월 2일의 나이로 우승, LPGA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겼다. 이후 리디아 고는 2013년 2월에는 ISPS 한다 뉴질랜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유럽여자골프투어(LET) 최연소(15세9개월17일) 우승자가 되며 기록을 써 내려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리디아 고, “내가 해냈다.”

    리디아 고, “내가 해냈다.”

    ‘최연소 기록 제조기’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고보경)가 13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마스터스 골프클럽(파71·6453야드)에서 끝난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다.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로만 8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16언더파 268타다. 2013년 데뷔 이후 2년 만에 수확한 메이저 첫 승이다. 상금은 48만 7500달러(약 5억 7800만원)다. 이날 18세 4개월 20일의 나이로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 된 리디아 고는 종전 모건 프레슬(미국)이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세운 18세 10개월 9일의 최연소 기록을 6개월이나 앞당겼다. AP/뉴시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박인비 이어 ‘세계랭킹 2위’ 미모 보니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박인비 이어 ‘세계랭킹 2위’ 미모 보니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역사 다시 써..세계랭킹은 몇 위?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소식이 전해졌다.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13일 프랑스 에비앙 르뱅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리디아 고는 에비앙골프장(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잡아내며 이날만 8언더파 63타로 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최연소 메이저 우승 기록을 썼다. 리디아 고의 이번 우승은 LPGA 통산 9승째(아마추어 2승 포함)이자 메이저대회 첫 우승으로, 1997년 4월 24일 생인 리디아 고는 이날로 만 18세 4개월 20일이 돼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모건 프레셀(미국)이 세운 역대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18세 10개월 9일)보다 6개월 빠른 기록이다. 리디아 고는 앞서 지난 2012년 호주여자프로골프 ALPG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참가해 14세9개월의 나이로 우승해 남녀 프로골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8월 캐나다여자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15세4개월 2일의 나이로 우승, LPGA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겼다. 이후 리디아 고는 2013년 2월에는 ISPS 한다 뉴질랜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유럽여자골프투어(LET) 최연소(15세9개월17일) 우승자가 되며 기록을 써 내려갔다. 한편 지난 2월에 최연소 세계랭킹 1위에 오른바 있는 리디아 고는, 현재 박인비에 이어 세계 랭킹2위(롤렉스 랭킹 기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3위에는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가 올라있다. 네티즌들은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대박이다”,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천재네”,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최연소 기록 다 갈아치우는 구나”,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멋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리디아 고 트위터(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역사 다시 써.. 세계랭킹은 몇 위?

    리디아 고 최연소 메이저 우승, 18세에 역사 다시 써.. 세계랭킹은 몇 위?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13일 프랑스 에비앙 르뱅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리디아 고는 에비앙골프장(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잡아내며 이날만 8언더파 63타로 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최연소 메이저 우승 기록을 썼다. 리디아 고의 이번 우승은 LPGA 통산 9승째(아마추어 2승 포함)이자 메이저대회 첫 우승으로, 1997년 4월 24일 생인 리디아 고는 이날로 만 18세 4개월 20일이 돼 2007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모건 프레셀(미국)이 세운 역대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18세 10개월 9일)보다 6개월 빠른 기록이다. 리디아 고는 앞서 지난 2012년 호주여자프로골프 ALPG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참가해 14세9개월의 나이로 우승해 남녀 프로골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지은희 두 번째 메이저 우승컵 정조준

    2009년 US여자오픈 챔피언 지은희(29·한화)가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정상을 노크했다. 지은희는 11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마스터스 골프클럽(파71·6453야드)에서 끝난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4개를 뽑아내고 보기는 2개로 막아 4언더파68타를 쳤다. 공동선두(5언더파) 이미향(22·볼빅), 렉시 톰슨(미국)에 이어 공동 3위다. 지은희는 투어 데뷔 2년 만인 2009년 US여자오픈에서 캔디 쿵(대만)을 밀어내고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당시 아버지 지영기씨가 청평호 물 위에 띄위놓은 부표를 표적삼아 아이어샷 훈련을 시켰다는 일화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승 뒤 지은희는 LPGA 드림을 이루는 듯 했지만 리더보드에서 이름을 찾기가 힘들었다. 우승 이듬해부터 시작한 스윙 교정이 독이 됐다.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기 위해 스윙에 변화를 줬지만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대회 전장이 점차 길어진 탓도 있었다. 지난주 충남 태안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에서 만난 지은희는 “예전에 견줘 클럽을 2개 정도 더 늘려잡아야 하는 홀이 많아져 힘들었다”고 말했다. 올 시즌 그의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39야드로 전체 128위에 그치고 있다. 지은희는 올 시즌 ‘톱10’ 성적이 한 차례도 없다. 앞선 메이저 대회 US 여자오픈과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는 모두 컷 탈락 했다. 최근 캐나디언 여자오픈 공동 14위가 올 시즌 최고 성적이다. 그러나 지은희는 “오늘대로라면 투어 세 번째 우승을 두드릴 만 하다”고 말했다. 지은희가 6년 만의 정상을 꿈꾸는 가운데 이미향은 지난해 미즈노클래식 이후 투어 2승째 정조준에 나섰고, 김세영(22·미래에셋)이 3언더파 68타로 호주 교포 이민지(19) 등과 함께 공동 6위에 올랐다. 최연소 메이저 우승컵 사냥에 나선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는 2언더파 69타로 공동11위. 그러나 5개 메이저대회 석권을 노리는 박인비(27·KB금융그룹)와 대회 2연패를 노리는 디펜딩 챔피언 김효주(20·롯데)는 각각 1오버파와 2오버파로 부진해 40위권과 50위권으로 밀려났다. 한·미·일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8오버파 79타의 극심한 부진으로 최하위권인 110위권으로 떨어져 컷 탈락을 걱정하게 됐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이화여대 2014년후기 전체수석졸업 “공부의신” 양영아씨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이화여대 2014년후기 전체수석졸업 “공부의신” 양영아씨

    지난달 말 2014학년도 대학교 후기졸업식이 잇따라 열렸다. 서울 신촌 이화여자대학교(총장 최경희)는 2014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을 갖고 학사 1027명, 석사 843명, 박사 112명 등 총 19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새 출발하는 졸업생들에게는 확실해 보이는 모든 것들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변화를 맛보며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여정이기도하다.이번 학위수여식에서는, 베트남, 가나, 아프가니스탄, 중국, 미국 등 총 21명의 외국 국적 학생들도 학부 졸업장을 받았다. 학부 졸업생 중 최연소자는 만 21세이며, 최고령자는 만 44세다. 존체 졸업생 중 누계 평점 4.0 이상의 최우등 졸업자는 총 25명이며, 4.3 만점에 4.25를 받아 학부 전체 수석을 차지한 불어불문학전공 양영아씨가 대학 대표로서 학위기를 받았다. 이화여대 “공부의 신” 양영아씨를 만나 전체수석 비결과 학창시절 얘기를 들어봤다. → 이번에 수석 졸업을 했는데 소감 한마디 한다면. ― 대학 4년 동안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게 공부한 결과로 학부 전체 수석이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 이화에서 공부하면서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을 배울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저에게 굉장히 큰 선물인데 수석 졸업의 영예까지 얻게 돼 고맙다. →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성적이 좋은데, 공부비결이 있다면. ―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 좀 부끄럽지만 수업시간 만큼은 성실한 학생이 됐던 것이 공부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4년 동안 결석과 지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복습은 꼬박꼬박 하진 않더라도 예습만큼은 매 수업 전에 해갔다. 안 그러면 집중이 안되니까 수업시간에 졸게 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습을 하는 학생이 되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예습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고 다음 수업시간에 다룰 내용을 한번 쓱 훑는 정도였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됐다. 또 불문과 특성상 많은 작품과 작가들을 접하게 되는데 전 소설 속 인물들이나 작가들과 연애한다는 기분으로 공부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연인이 많아졌다. 공부할 때 이걸 헤쳐나가야 하는 과제로만 여기지 않고, 정말로 그들이 되어보고 교감하면서 공부하려고 했다. 이것도 저의 부끄러운 비밀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공부할 때나 수업을 들을 때 혼자 감동받거나 정이 느껴져서 눈물 날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 평소에 공부 외에 모든 일에도 열심인지. ― 대학 4년 동안 공부 외에 제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은 동아리 활동이었다. 입학 때부터 졸업하기 직전까지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다섯 번의 연주회를 준비하는 동안 수석도 두 번 하고 마지막 연주회에서는 악장도 하게 됐다. 대학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번역 관련한 활동도 꽤 한 것 같다. 1학년 땐 과에서 주최하는 프랑스 원어 뮤지컬에서 노래 가사를 번역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또 SBStv나 KBS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 해고에 관한 내용도 번역해 제가 번역한 자료가 방송에 쓰이기도 했다. 또 한국외대에서 모의 유엔 통역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프랑스어 통역사로 활동했다. 대학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자 하는 심정에 아나운서 아카데미도 다녀봤는데, 결국 진로가 그쪽이 되진 않았지만 뉴스 진행, MC, 라디오 DJ, 리포터도 해보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대화 채플에서 진행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 대학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 아무래도 대학 생활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오케스트라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는 연주회 준비 특성상 엄격한 분위기에 동아리를 탈퇴하고 싶기도 했고, 뮤직캠프에 가서는 혼자 탈출하는 버스를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결국엔 그 힘들었던 기억마저 미화돼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연주회에서는 제가 악장으로, 아버지가 협연자로 나서 함께 무대에 서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프랑스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생활도 꿈 같은 시간으로 남아 있다. 처음 프랑스 수업에 말 그대로 ‘내던져’졌을 땐 말을 따라가기도 힘들고 매주 과제물을 제출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공부하는 건 마치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학생들과 국문학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시간을 굉장한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 학창시절 가장 재미있었던 일과 가장 아쉬운 점은. ― 재미있었던 일은 처음 입학했을 때 불문 전공 수업에서 학교 근처의 안산이라는 곳으로 야외 수업을 나갔던 날이다. 봄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교실에 앉아 수업하는 대신 교수님과 학생들이 다같이 뒷산으로 소풍을 나갔는데 이런 게 대학 생활의 낭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한국 대학생으로서 클럽에도 못 가보고 소개팅 한 번도 못해본 게 너무 아쉽다. 하지만 대학은 졸업했지만 제 청춘은 아직도 많이 남았기에 아직 기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 졸업 후 진로와 향후 꿈은 무엇인지. ―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해 불문학 공부를 계속하게 됐다. 지난 9월1일에 개강했는데 벌써부터 읽을 게 산더미라 걱정이지만 좋아하던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돼 마음이 매우 설렌다. 아직 먼 이야기긴 하지만 석사 졸업 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불문학과 음악학을 연계해 프랑스 작가들의 예술론을 연구하고 싶고,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 예술 자료들을 번역해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싶다. 최종적인 꿈은 공부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요즘 청년취업난이 이슈인데, 청년실업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 요즘 청년실업 문제가 아주 심각해서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계속해서 미루고 학생 신분으로 머물며 스펙을 쌓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취업 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스펙을 보이기 위해 대외활동이나 인턴 등 어떤 기회라도 잡으려고 열심인데, 이런 환경 속 학생들의 처지를 이용해서 기업이나 심지어 대사관 같은 정부 기관까지도 ‘서포터스’나 ‘무급 인턴’이라는 제도로 학생들의 노동력을 이용해먹는 듯하다. 급여를 주지 않아도 학생들이 많이 지원할 걸 아니까. 그런데 이렇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지 않고, 값싸게 이용하려는 기업과 기관들은 반성하고 젊은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할 듯하다. 인간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고 그런 생각을 젊은 세대에까지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졸업 선배로서 학교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프랑스 속담 중에 ‘Vouloir, c’est pouvoir’라는 말이 있다.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인데,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이화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한다면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이루고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화라고 생각한다. 또 채플시간에 교목님이 하신 말씀 중에 “우리 이화인들이 이화동산에서 사색력과 공감력을 기르게 하시고 성실함과 겸허함 속에 살아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게 기억에 남는다. 학교의 정신인 진, 선, 미가 사색력과 공감력, 성실함과 겸허함 그리고 이화동산이라는 각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이화동산에서 성실함과 겸허함이라는 선을 추구하며 사색력과 공감력 속에 진리를 좇으려는 노력을 한다면 보람차고 아름다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양영아씨 본인 소개를. ―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는 서울로 진학했다. 어머니는 군산에서 마취통증의로 근무하시고, 아버지는 전북 군산대에서 관현악과 교수로 근무하기 때문에 저 혼자 서울로 올라와 생활했다. 프랑스어의 울림이 아름답다는 단순한 이유로 중학교 2학년 때 프랑스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군산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 불어를 배우기가 힘든 환경이었는데, 제가 불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부모님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불어를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군산에 있는 외고에는 당시 불어과가 없어서 서울로 진학해 대원외고 불어과에서 공부하게 됐다. 처음 불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프랑스 시낭송대회를 준비하면서였는데, 그때 낭송할 시를 고르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프랑스 시들을 접해보고 느껴본 기회였다. 대상이라는 좋은 결과도 얻었지만, 제가 앞으로 계속 공부하게 될 불문학을 처음 접한 때라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땐 제가 불문학을 계속하게 될 줄 전혀 몰랐지만) 지난 고등학교 땐 사실 방황을 많이 했는데, 졸업하기 전에 제가 존경하던 불어 선생님께서 대학에 가서 한번 열심히 해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아 대학입학 초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3학년 1학기에는 파리3대학(소르본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주로 문학 수업을 들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만 공부하다가 프랑스라는 낯선 곳에 내던져진 상황이었는데 처음엔 수업을 알아듣기도 벅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실적 압박·사내 파벌이 부른 대기업 최연소 상무의 죽음

    대기업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40대 남성이 아내에게 갑자기 사표를 내겠다고 털어놨다. 출근길엔 한숨을 쉬며 ‘안아 달라’고도 했다. 2012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 그는 회사 대신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LG유플러스에서 40대 ‘최연소 상무’를 달았던 이모(당시 46세)씨였다. 이씨는 그날 오전 7시 30분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1989년부터 LG 인터넷·통신 계열사에서 일했다. 그를 총애한 임원이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이씨도 승승장구했다. 2010년 LG텔레콤이 LG파워콤과 LG데이콤을 합병해 LG유플러스가 되면서 이씨는 상무로 발탁됐다. 또래보다 4~5년은 빠른 인사였다. 그는 워커홀릭이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주말은 온전히 접대 골프로 보냈다. 이씨는 인터넷TV(IPTV)라는 새로운 분야를 맡아 고군분투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초기 투자비용이 높아 영업 손실이 계속됐다. 대인 관계도 그를 괴롭혔다. 이씨를 발탁한 LG파워콤의 전 대표이사가 좌천되자 새 본부장은 이씨를 통하지 않고 팀장에게 직접 지시하기 일쑤였다. 이씨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는 이메일까지 동료들에게 보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내린 훈장은 이씨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지난 4월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 IPTV 가입자 500만명 달성을 기념해 이씨에게 동탑산업훈장을 줬다. 그러나 본부장은 공식석상에서 ‘상무인 이씨가 대표이사에 앞서 훈장을 받는 것이 불쾌하다’는 대표이사의 말을 전했다. 이후 이씨는 부쩍 말수가 줄고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결국 사장단 업무보고가 있던 날 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전날 밤 부부가 심하게 다퉜다”고 언론에 전했다. 근로복지공단도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선택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병수)는 이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 증세가 발생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아베 독주 막겠다” 女의원 도전장

    “아베 독주 막겠다” 女의원 도전장

    일본의 한 여성 중진 의원이 자민당의 총재 선거에서 독주하는 아베 신조 총리에게 홀로 도전장을 냈다. 집권 자민당 총재가 총리를 겸하고 있어 그의 당권 도전이 대권을 향한 행보로 읽힌다. 노다 세이코(55) 중의원 의원은 오는 20일 시작될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다고 밝혔다. 8선인 그는 총재 후보 등록 마감을 앞둔 최근 자신의 지역구인 기후에서 기자들에게 “(총재를) 무투표로 선출하는 건 상식이 아니다”라며 출사표를 밝혔다고 도쿄신문 등이 6일 전했다. 총재와 총리를 겸한 아베에 대한 당내 경쟁자들이 모두 머리 숙여 추대 의사를 밝혀 아베의 무투표 당선 쪽으로 기우는 상황이었다. 이시바 시게루 지방창생담당상,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등 아베의 대항마들이 모두 ‘꼬리’를 내린 반면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은 여성 의원이 ‘아베 독주 체제’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출마 선언을 한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는다. 노다 의원이 추천인 20명을 채우면 오는 20일 경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20명을 채우지 못하면 아베의 ‘무투표 재선’이 확정될 가능성도 높다. 노다 의원은 추천인 20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동지들에게 추천인으로 나서 줄 것을 꾸준히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인 노다 의원은 아베 이후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꼽힌다. 도쿄 데이코쿠호텔에서 4년간의 직원 생활을 거쳐 1987년 26살 때 기후현 현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1993년 중의원 배지를 달며 중앙 무대에 데뷔했고 1998년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37살에 우정상에 발탁됐다. 최연소 홍일점이었다. 제2차 아베 정권에서 자민당 3역 중 하나인 총무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일·한의원연맹 회원으로 활동하며 지난해 7월 방한해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2004년 ‘나는 낳고 싶다’라는 책을 냈고 2011년 50세의 나이에 체외수정으로 아이를 낳은 일로도 유명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노무라, 어머니 땅에서 첫 우승 일구다

    노무라, 어머니 땅에서 첫 우승 일구다

    올해 초 한화골프단에 입단한 노무라 하루(23·한국명 문민경)는 한국인 어머니(문소영)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일본 국적의 골프선수다. 1992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5살 때까지 일본에서 살았다. 이후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왔고, 10살 때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그리고 명지중-명지고를 거치며 한국에서 주니어 선수생활을 했다. 한국 이름은 어머니 성을 따라 문씨를 썼고, 이름을 민경이라고 지었다. 노무라는 2010년 12월 아버지를 따라 일본 국적을 택했고, 아버지의 성과 한국이름을 일본 발음으로 고친 노무라 하루가 됐다. 국적을 변경한 이유는 일본여자골프투어가 성적을 내기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라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7년 일본 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하고, 고교시절 여러 차례 일본 프로대회에 출전해 베스트 아마추어에 입상하는 등 일본에서 더 좋은 성적을 냈다. 프로로 첫 출전한 JLPGA 투어 브리지스톤 레이디스오픈에서는 역대 두 번째 최연소 기록(18세 178일)으로 우승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골프와 함께 자랐고, 현재는 주로 미국에서 투어생활을 하고 있는 노무라는 국적만 일본일 뿐 정서상으로는 80%가 한국인이다. 실제로 언어 능력도 한국어, 일본어, 영어의 순이다. 일본투어를 뛸 때 “일본인이 일본말을 못한다”는 핀잔도 수두룩하게 받았다. 노무라가 6일 어머니의 땅 한국에서 펼쳐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 4라운드에서 4타 앞서 출발한 배선우(21·삼천리)와 최종합계 1언더파 287타의 동타로 연장전에 돌입한 뒤 천금같은 파를 잡아내 기가 막힌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대회 스폰서인 한화 추천선수로 출전한 뒤 연습경기 한 번 없이 2라운드에서는 7언더파의 코스레코드를 세우며 우승을 예고한 뒤 KLPGA 투어 대회 첫 출전 만에 3억원의 상금과 함께 우승을 신고했다. 한편 이날 대전 유성컨트리클럽(파72·6796야드)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매일유업오픈 4라운드에서는 김대현(27·캘러웨이)이 6언더파의 맹타를 휘둘러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황중곤(23·혼마), 이지훈(29) 등을 2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2012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이후 3년 만에 수확한 우승. 투어 통산 네 번째 정상을 밟은 김대현은 6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태안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실적 압박·사내 파벌이 부른 대기업 최연소 상무의 죽음

    대기업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40대 남성이 아내에게 갑자기 사표를 내겠다고 털어놨다. 출근길엔 한숨을 쉬며 ‘안아 달라’고도 했다. 2012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 그는 회사 대신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LG유플러스에서 40대 ‘최연소 상무’를 달았던 이모(당시 46세)씨였다. 이씨는 그날 오전 7시 30분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1989년부터 LG 인터넷·통신 계열사에서 일했다. 그를 총애한 임원이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이씨도 승승장구했다. 2010년 LG텔레콤이 LG파워콤과 LG데이콤을 합병해 LG유플러스가 되면서 이씨는 상무로 발탁됐다. 또래보다 4~5년은 빠른 인사였다. 그는 워커홀릭이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주말은 온전히 접대 골프로 보냈다. 이씨는 인터넷TV(IPTV)라는 새로운 분야를 맡아 고군분투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초기 투자비용이 높아 영업 손실이 계속됐다. 2012년에는 가입자를 200만명으로 늘리는 운동을 벌였지만 그해 7월 말까지 실적은 95만명에 그쳤다. 대인 관계도 그를 괴롭혔다. 이씨를 발탁한 LG파워콤의 전 대표이사가 좌천되자 새 본부장은 이씨를 통하지 않고 팀장에게 직접 지시하기 일쑤였다. 이씨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는 이메일까지 동료들에게 보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내린 훈장은 이씨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2012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 IPTV 가입자 500만명 달성을 기념해 이씨에게 동탑산업훈장을 줬다. 그러나 본부장은 공식석상에서 ‘이씨가 상급자에 앞서 훈장을 받는 것이 불쾌하다’는 회사 고위층의 말을 전했다. 이후 이씨는 부쩍 말수가 줄고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결국 사장단 업무보고가 있던 날 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전날 밤 부부가 심하게 다퉜다”고 언론에 전했다. 근로복지공단도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선택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병수)는 이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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