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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누구?…운동권 출신 ‘통합·조정 능력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누구?…운동권 출신 ‘통합·조정 능력자”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할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종석 전 의원이 사실상 내정됐다. 임종석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의 대표적인 486 운동권 그룹 정치인으로 재선의원을 지냈다.원만한 성격과 친근함으로 친화력과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 실장은 대선 과정에서는 캠프 인사 영입에도 큰 역할을 도맡아 문재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대 총학생회장이던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전 의원의 ‘평양 축전참가’를 진두지휘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당시 이 ‘임수경 방북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6개월 옥살이를 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 전 의원과 함께 ‘젊은 피’로 영입돼 제도권 정치를 시작했다. 그 해 16대 총선에 서울 성동을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34세의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됐다. 참여정부 출범 후인 2004년 17대 때 재선 배지를 다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새천년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대변인, 대통합민주신당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맡았다. 2002년부터 5년 연속 백봉신사상을 받기도 했다. 임 실장은 삼화저축은행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19대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2014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아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발을 맞춰 한때 ‘박원순계’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말 ‘통합 캠프’를 꾸리고자 한 문재인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영입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비서실장 역할이라는 중책을 수행했다. 대선 과정에서 일정과 캠프 내 의견을 조율해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등 지근거리에서 헌신적으로 보좌했다. 부인 김소희(45)씨와 1녀. △전남 장흥(46) △서울 용문고-한양대 △전대협 3기 의장 △16,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대변인 △야권연대·연합을 위한 특별위원회 간사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더불어민주당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040 국가원수… ‘아랍의 봄’ 부르고 늙은 유럽은 젊은 피 수혈

    3040 국가원수… ‘아랍의 봄’ 부르고 늙은 유럽은 젊은 피 수혈

    佛, 나폴레옹 3세 최연소 기록 깨 헝가리 오르반 총리는 35세 당선 튀니지 샤히드, 민주혁명 일으켜 김정은·카다피는 20대 권좌 올라‘프랑스의 정치 비기너’ 에마뉘엘 마크롱이 7일(현지시간) 실시된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 정계에 젊은 지도자 열풍이 불고 있다. 1977년 12월 21일생인 마크롱(39)은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마크롱 이전에는 1848년 40세에 제2 공화정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가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현재 프랑스 정치체제에서 최연소 대통령은 1974년 48세에 선출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이었다. 세계 주요국 국가수반 중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 중 한 명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은 현직 국가지도자는 오르반 빅토르(54) 헝가리 총리이다. 1998년 35세에 총리가 된 그는 2002년 총선을 앞두고 오르반이 이끄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 연합이 정치 및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는 바람에 그해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샤를 미셸(42) 벨기에 총리는 2014년 마크롱보다 한 살 어린 38세에 총리직에 올랐다. 1840년 이후 벨기에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쥐스탱 트뤼도(46) 캐나다 총리는 2015년 43세 나이로 취임했다. 자유당 대표였던 그는 ‘젊은 피’를 내세웠고 이후에도 수려한 외모와 운동 실력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위리 라타스 에스토니아(39) 총리와 볼로디미르 그로이스만(39) 우크라이나 총리는 2016년 각각 38세 나이로 국가지도자에 취임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43) 그리스 총리는 2015년 40세에 총리직에 올라 그리스 역사상 150년 만의 최연소 총리로 기록됐다. ‘아랍의 봄’을 부른 튀니지의 지도자도 ‘젊은 피’다. 2016년 40세로 집권한 유세프 샤히드(42) 총리는 1956년 튀니지 독립 이후 최연소 지도자다. 안제이 두다(45) 폴란드 대통령은 2015년 43세에 대선에서 승리했다. 기오르기 마르그벨라슈빌리(48) 조지아 대통령은 2013년 44세에 국가지도자 취임 선서를 했다. 전직 지도자 중에서는 영국에서 1997년 토니 블레어(64)가 43세의 나이로 총리직을 수행했다. 데이비드 캐머런(51) 전 총리도 2010년 43세에 국가 수장에 올랐다. 캐머런 전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를 공약으로 걸어 당선된 뒤 EU와 협상을 진행해 잔류로 돌아섰지만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지난해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마테오 렌치(52) 전 이탈리아 총리는 34세에 피렌체 시장, 39세에 이탈리아 총리에 당선됐다. 렌치 전 총리는 1922년 39세로 총리직에 올랐던 베니토 무솔리니와 함께 나란히 ‘이탈리아 최연소 총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42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43세에 각각 국가지도자에 취임했다. 한편 1982년생으로 주장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1년 말 20대에 권좌에 올랐다. 2013년 즉위한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은 37세에 불과하다. 2011년 반군에 사살된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1969년 27세에 권력을 잡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24세 연상 퍼스트레이디 ‘프랑스판 미셸 오바마’ 되나

    24세 연상 퍼스트레이디 ‘프랑스판 미셸 오바마’ 되나

    유세 동행하며 연설문 작성 도와…대통령 마크롱 만든 ‘숨은 공로자’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며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기록을 세우게 된 중도 신당 ‘앙마르슈’(‘전진’이란 뜻)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생으로 프랑스 정계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현 사회당 정부에서 2014~2016년 경제·산업·디지털 장관을 지낸 것 말고는 특별한 정치 경력이 없다. 의원 등 선출직 경력도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3년 전 마크롱을 장관에 임명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마크롱이 누구냐”고 했다. ●마크롱 3년 전 경제장관으로 정계 입문 2016년 8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사회당을 탈당한 그는 좌우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젊고 신선한 정치인’임을 내세웠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모두가 실패로 끝날 도박에 베팅했다고 여겼다. 마크롱의 ‘정치 스승’ 역할을 했던 알랭 맹크조차 차기 대선을 노리자고 했지만 그는 “지금이 적기”라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지난해 11월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주요 양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의 당파 싸움으로 잊힌 중산층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주장했다. 대선 출마 선언 후 그는 2만 5000명의 시민을 심층 인터뷰해 자신만의 중도 성향 정책 선언문을 만들었다. 빅데이터를 사용해 주거지나 지역 성향을 분석했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용한 전략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4명으로 시작한 마크롱의 지지단체는 몇 개월 만에 수천개로 불어났다. 북부 아미앵 출신인 그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로 학업을 마친 뒤 재무부 금융 조사관으로 잠시 일하다 대형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로 이직해 투자 은행가로 성공했다. 그는 경제장관 재임 시 이른바 ‘마크롱 법’과 같은 친기업 정책으로 기업 규제를 풀고 노동 시간과 해고 규정을 완화했다. 좌파 사회당 정권 성향과는 정반대 정책을 편 것이다. ●첫 만남은 고교 선생님과 제자 관계 부인인 브리지트 트로뇌는 마크롱의 평생 연인이자 영혼의 동반자, 최고 대변자로 불린다. 마크롱을 만든 숨은 공로자가 트로뇌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활발하게 국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판 미셸 오바마’와 같은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953년 4월생인 트로뇌는 초콜릿 제조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다. 두 사람의 인연은 프랑스어와 라틴어 교사이던 트로뇌가 당시 15세이던 마크롱과 고교 연극반에서 교사와 제자로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40세의 트로뇌는 3명의 자녀를 둔 기혼자였다. 마크롱이 트로뇌를 사랑한다고 부모에게 고백하자 부모는 트로뇌의 딸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밝힐 정도로 충격은 컸다. 두 사람의 관계에 놀란 마크롱의 부모는 아들을 파리로 보냈지만 마크롱은 트로뇌와 결혼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이후 트로뇌는 결국 이혼하고 2007년 마크롱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마크롱은 트로뇌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둔 세 자녀와 손주 7명이 모두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트로뇌의 자녀도 마크롱을 ‘대디’라고 부른다. 마크롱은 트로뇌가 지적인 영혼의 동반자이자 친구라고 자주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유세에 동행하고 남편의 연설문 작성을 돕기도 했다. 2015년 남편을 돕고자 교단을 떠났으며 퍼스트레이디로 청년 및 교육문제를 위해 싸우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친기업 마크롱의 경제살리기… 개혁 실패땐 ‘르펜의 反EU’ 확산

    친기업 마크롱의 경제살리기… 개혁 실패땐 ‘르펜의 反EU’ 확산

    고용확대 직업훈련에 62조원 투입…공공분야 12만명 일자리 축소 계획 중도 노선을 지향하는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 후보가 7일(현지시간)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좌우 양대 정당으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표출된 점을 반영한다. 선거 결과는 경제난과 안보 불안 속에서 무능과 부패로 신뢰를 잃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쌍두마차의 한 축인 프랑스는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과 달리 노동시장 개혁에 실패하면서 독일에 대한 무역 불균형도 심화됐다. 독일의 실업률이 4% 미만에 그친 반면 프랑스는 10%(청년 실업률은 25% 수준)에 육박하는 등 양국의 경쟁력 격차는 심화됐다. 이런 가운데 집권 가능성 1순위였던 제1야당 공화당은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부인과 자녀 거짓 채용 의혹이라는 비리로 무너졌고 이는 정계의 ‘이단아’인 마크롱과 마린 르펜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실제 대선 기간 내내 화두는 구체제와 인물의 청산을 의미하는 ‘데가지즘’(Degagism)이었다. 사회당 정부 경제 각료 출신으로 지난해 8월 제3지대 독자 세력 ‘앙마르슈’를 출범시킨 마크롱은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온 국민을 위한 기회진작 등 좌파 노선을, 경제적으로는 우파에 가까운 친기업적 정책으로 중도 성향을 표방했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난민 포용정책을 강조하고 징병제 재도입 검토, 핵무기 현대화 등을 공약했다. 마린 르펜 후보는 프랑스 우선주의와 보호무역, 유로존 탈퇴로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포퓰리즘을 내세웠다. 프랑스 유권자는 결국 유로 단일통화를 포기하고 1999년 이전 사용하던 프랑화로 되돌리겠다는 르펜의 공약을 거부한 셈이지만 극우 포퓰리즘은 여전해 르펜은 승리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마크롱은 “유럽통합과 세계화의 폐단은 고치겠다”며 일부 르펜 후보의 공약을 수용했다. 마크롱은 고용 확대를 위한 직업훈련에 50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2022년까지 실업률을 7%로 낮추는 한편 공공 부문에서 12만명의 일자리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공공 부문 일자리 감축과 노동 유연성 강화 등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반감은 여전하다. 이번 대선 1차투표에서는 10명 중 4명이 르펜과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에게 표를 줬다. 이들은 노동자·서민 대변자를 자임하며 노동규제 완화, 자유무역, 세계화에 강하게 반대했다. 여기에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는 1200만명에 유권자 300만명(8.49%)은 백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106만명(3%)이 던진 표는 무효 처리됐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성향대로 노동 유연화를 밀어붙였다가 노조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면 임기 내내 추진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분열된 프랑스를 물려받은 마크롱이 취약한 집권 기반 속에서 경제 살리기를 시급히 성공시키지 못하면 언제든 극우 포퓰리즘의 물결 속에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마크롱 정부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첫 번째 고비는 다음달 11일과 18일 치러지는 총선이다. 마크롱은 현재 의회 기반이 전혀 없다. 하원의원 577명을 새로 선출하는 총선에서 마크롱의 앙마르슈가 다수당이 되려면 최소 과반인 289석을 얻어야 한다. 현재는 거대 양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이 각각 295석, 196석을 나눠 갖고 있다. 앙마르슈 소속 의원은 한 명도 없다. 프랑스에서는 총선에서도 과반 득표율이 나오지 않은 지역구에 대해서는 결선 투표를 벌이기 때문에 정확한 의석수 추정은 어렵지만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앙마르슈는 마크롱의 승기에 힘입에 249~289석을 확보하고 공화당이 200~210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면 마크롱은 자신이 원하는 총리를 임명하지 못하고 연정을 구성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념이 다른 정파가 대통령직과 총리를 나눠 갖는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이 출범하면 마크롱은 실권을 대거 총리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크롱이 앞으로 르펜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데 실패한다면 다음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극우 민족주의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19대 대선 오늘 선택의 날] 安 “한국의 마크롱”

    [19대 대선 오늘 선택의 날] 安 “한국의 마크롱”

    安 “文·洪 뽑으면 5년 내내 국민 분열”…佛대통령 당선 마크롱 빗대 변화 강조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8일 대전에서 마지막 유세를 펼쳤다. 대전은 국민의당이 창당대회를 연 ‘탄생지’이자 안 후보가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경선을 치른 곳이다. 대선 주자로서 안 후보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셈이다. 대전은 과학기술 중심 도시라는 점에서 안 후보가 선거기간 내세운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걸맞다고 판단했다. 안 후보는 대전 중구 으느정이 거리 유세에서 “지금 문재인, 홍준표 후보 어떤 쪽을 뽑아도 국민은 분열된다. 앞으로 5년 내내 광장은 분노한 대중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면서 “5년 내내 편 가르고 싸우는 정치, 서로 증오하고 반대만 하는 정치,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 후보는 “이곳 대전과 충청은 저를 대통령 후보로 확정해 준 곳”이라면서 “대전·충청은 제게 초심이다. 압도적 지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안 후보는 “그러면 영호남을 비롯한 강원, 제주, 수도권에서 고른 지지받는 안철수 대통합정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이날 뚜벅이 유세를 계속하면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안 후보는 전날 자정 무렵에 유세를 마친 후 이날 새벽 5시 30분 송파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았다. 이어 자신의 지역구였던 노원구와 충남 천안, 충북 청주에서 유세를 이어 갔다. 이날 노원역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국민의 좋은 아버지가 돼 달라. 어버이날이니 제가 달아드리겠다”며 카네이션을 안 후보 셔츠 왼쪽 주머니에 꽂아 줬다. “당선 축하의 꽃”이라면서 꽃을 달아 주는 시민도 있었다. 안 후보는 앞서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국민의 힘으로 미래가 과거를 이긴다. 국민의 힘으로 안철수가 문재인을 이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 후보는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민의당은 이날 프랑스 대통령에 중도신당 출신의 최연소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당선된 것을 안 후보와 비교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안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과 광화문 유세에서 “한국 대선도 변화와 미래를 선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임중앙선대위원장인 박지원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프랑스의 안철수’ 마크롱이 승리했다”면서 “낡은 이념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던 마크롱, 의석수 하나 없는 신당으로 오직 국민을 믿고 전진한 마크롱은 말 그대로 ‘프랑스의 안철수’였다”고 말했다. 서울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대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 직후 SNS에 남긴 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 직후 SNS에 남긴 글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39)이 자신의 SNS를 통해 당선 소감을 남겼다.마크롱은 7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Tout le monde nous disait que c‘était impossible. Mais ils ne connaissaient pas la France!(모두가 우리에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를 몰랐던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프랑스 중도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출구조사에서 극우진영의 마린 르펜(48)을 꺾고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기록을 세웠다. 마크롱은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거쳐 경제장관을 역임했다.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그는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라는 창당 1년 남짓 된 신생정당을 기반으로 단숨에 대권 도전에 나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유럽연합 잔류, 자유무역, 개방경제, 문화적 다원주의 등을 내건 마크롱은 이번 대선에서 유럽연합과 유로존 탈퇴, 보호무역, 고립주의, 프랑스 우선주의 등을 내세워온 르펜에 맞서 ‘개방’ 세력을 대표해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프랑스 새 대통령에 마크롱…39세 정치 신예

    [포토] 프랑스 새 대통령에 마크롱…39세 정치 신예

    프랑스 새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이 7일(현지시간)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 광장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마크롱은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이어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덟 번째 대통령에 오르게 됐으며 올해 만 서른아홉살로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연소이다. A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트럼프, 트위터로 마크롱 당선 축하 “함께 일하게 돼 기쁘다”

    트럼프, 트위터로 마크롱 당선 축하 “함께 일하게 돼 기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의 새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39) 후보의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마크롱과 함께 일하게 돼 무척 기쁘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이날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이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48)을 큰 차이로 눌러 당선이 확정적이라는 여론조사기관들의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지 10여분 만에 나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마린 르펜 전 국민전선(FN) 대표가 국경 문제와 현재 프랑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장 강경하고, 이런 문제에 가장 엄격한 사람이 선거에서 잘 될 것”이라고 밝혀 르펜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줬다.하지만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 누구든 프랑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마크롱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마크롱 측 웹사이트가 공개한 영상에서 “마크롱이 유럽과 전 세계에서 프랑스의 중요한 역할을 할 비전을 제시했다”면서 “그는 프랑스 국민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들의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에 호소했다”고 밝혔다.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 후보는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이어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덟 번째 대통령이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지원 “마크롱은 프랑스의 안철수”

    박지원 “마크롱은 프랑스의 안철수”

    프랑스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39살의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박지원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마크롱 대통령 당선자와 안철수 대선 후보를 비교하며 “프랑스의 안철수가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프랑스의 안철수’ 마크롱이 승리했다. ‘변화와 미래’라는 시대정신이 승리했다”면서 “낡은 이념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던 마크롱, 의석 수 하나 없는 신당으로 오직 국민을 믿고 전진한 마크롱은 말 그대로 ‘프랑스의 안철수’”라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변화와 미래’라는 시대정신이 ‘안풍(안철수바람)과 마풍(마크롱바람)’을 일으켰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 패권은 의석 수 하나 없는 마크롱이 어떻게 프랑스를 이끄느냐고 비아냥거리겠지만, 시대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면서 “낡은 이념 대결을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가려는 혁신과 통합, 안철수가 이미 이뤄내고 있다. 미래가 이긴다. 안철수가 이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크롱 당선자는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이어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덟 번째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앞서 마크롱 당선자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48)은 프랑스 현대 정치를 양분해 온 주류 거대정당(공화당·사회당) 소속이 아닌 정계의 ‘이단아’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정치지형의 대변혁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누구?…부인 24세 연상 은사, 금기에 도전해온 인생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누구?…부인 24세 연상 은사, 금기에 도전해온 인생사

    올해로 만 39세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했다.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전통적으로 경륜이 풍부한 지도자를 선호해 왔지만, 이번에는 젊은 지도자에게 표를 몰아줬다. 프랑스 주요 여론조사기관들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 종료 직후 마크롱이 르펜을 상대로 65.5∼66.1%를 득표할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르펜의 득표율은 33.9∼34.5%로 추산됐다.마크롱은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경제장관을 지내긴 했지만, 선출직 경험이 전무하다. 마크롱은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라는 창당 1년 남짓 된 신생정당을 기반으로 단숨에 국가수반 자리에까지 오른 정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그 스스로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마크롱은 유복한 환경에서 학업에 뛰어난 성취를 보이면서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비판세력들이 흔히 공격하듯 ‘귀공자’라고 볼 수 만은 없는 실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대권 도전을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판돈을 걸지 않았던 도박에서 보란 듯이 ‘잭팟’을 터트린 마크롱은 인생의 주요 변곡점마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금기와 전통을 깨뜨려왔다.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 프랑스 북부의 유서 깊은 소도시 아미앵에서 의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미앵에서 고교 재학 시절 자신의 불어 선생님이었던 24세 연상으로 자녀가 딸린 기혼자인 브리짓 트로뉴와 사랑에 빠져 훗날 결혼한 스토리는 유명하다. 연애사에 비교적 관대한 프랑스에서 양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이들이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다”는 마크롱의 선언을 10대의 객기로 치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마크롱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15년 뒤 결혼을 쟁취했다. 이런 독특한 개인사는 후에 그의 직설적이고 기성체제에 저항하는 듯한 유려한 말솜씨와 함께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은 핵심요인으로 작용했다.유년시절부터 학업에 재능을 보인 마크롱은 파리의 최고 명문 앙리 4세 고교로 전학해 졸업한 뒤 파리-낭테르 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예비과정(DEA)을 마쳤다. 대학 시절 친구들은 그를 책을 좋아했던 지적인 친구로 기억한다. 마크롱은 철학도 시절 대철학자 폴 리쾨르(1913∼2005)의 저서 집필을 돕는 조교로도 일한 적이 있다. 리쾨르는 생존 당시 자크 데리다(프랑스), 위르겐 하버마스(독일)와 더불어 세계의 ‘살아 있는 3대 철학자’로 불렸던 현대철학의 거장이었다. 일부에선 마크롱이 리쾨르의 저서편집에 조금 관여했을 뿐 일반적인 교수-조교 관계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마크롱이 경력을 과대 포장했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책에만 파묻혀 지내는 철학 공부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던 마크롱은 이후 현실 적합성이 높은 정치 쪽으로 눈을 돌렸고,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으로 적을 옮겨 학업을 이어갔다. 시앙스포 시절엔 나이지리아 주재 프랑스대사관에서 인턴도 했다. 인턴시절 그는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에서 당시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을 꺾고 결선에 오르는 것을 목도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재임 시 총리를 지낸 사회당의 거물 정치인이자 이론가였던 미셸 로카르에게 심취한 것도 이즈음이다. 마크롱의 학창시절 친구인 마크 페라치 시앙스포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로카르로부터 국가가 경제에서 역할이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부의 재분배 이전에 기업 친화적 정책들이 필요하며 불평등 완화를 위해 복지혜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했다.시앙스포 이후엔 프랑스 정치 엘리트의 산실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ENA·에나)에서 차곡차곡 지식과 네트워크를 쌓아 나간다.전·현직 총리와 대통령을 다수 배출한 ENA를 다닌 경험은 마크롱이 훗날 장관과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2004년 에나 졸업 후 첫 일터는 경제부처인 재정감독청(IGF)이었다. 이후 성장촉진위원회(일명 ‘아탈리 위원회)에서 잠시 일하다 2008년 유대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로 자리를 옮겼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등 마크롱의 전 ‘직장 상사’들은 훗날 마크롱의 대권조언에서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하게 된다. 마크롱이 로스차일드행 뜻을 밝히자 친구들은 훗날 정계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최첨단 자본주의의 첨병인 투자은행의 이미지는 영미권에 비해 좋지 않다. 그러나 마크롱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최전선인 투자은행에서 기업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하며 실물경제와 금융 감각을 익혔다.당시 동료들에 따르면 마크롱은 일에 익숙지 않아 처음엔 고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크롱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모르는 게 생기면 책이나 자료에서 해답을 구하기보다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해결했는데, 이런 행동이 동료들을 ‘무장해제’시켰다고 한다. 마크롱은 ‘에나크’(Enarque)라 불리는 ENA의 동문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부 인사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자신의 단점을 커버해 나갔고,업계에서 M&A 전문가로 승승장구했다. 명성은 물론 거액의 연봉도 챙겼다. 2012년 네슬레의 화이자 유아식 부문 인수(120억 달러 규모) 공로로 마크롱은 290만 유로(36억원 상당)를 벌었다. 최첨단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살아 있는 프랑스에서 마크롱이 투자은행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고 일한 사실은 그에게 “금융업계의 사기꾼”, “야만적인 세계화론자” 등의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훗날 대선 레이스에서 라이벌 마린 르펜은 마크롱의 로스차일드 재직 사실을 두고두고 공격한다. 학창시절 미셸 로카르의 정치사상에 심취했던 마크롱은 평소 사회당 인사들과 자주 어울렸다. 현 올랑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올랑드가 사회당 대권후보로 부상하기 전인 2010년 쯤이다. 마크롱은 로스차일드 시절 짬을 내 올랑드의 대선 캠프에 발을 담갔고, 2012년 대선 직후 올랑드 정부의 경제보좌관(부비서실장)으로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프랑스 경제의 계속되는 침체를 막을 방안을 고민하던 올랑드는 금융과 기업실무 경험이 많고 의욕적이었던 마크롱을 총애했다. 마크롱은 결국 2014년 개각 때 경제산업디지털부(현 재정경제부) 장관에 오르게 된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 전직 대통령들이 대통령이 되기 전 맡았던 가장 중요한 보직 중 하나인 경제장관을 불과 만 서른여섯의 나이에 거머쥔 것이다. 직전 개각에서 내각에 들어가지 못했던 마크롱은 경제장관직 제의가 오기 두달 전 엘리제궁을 나와 교육분야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창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마크롱은 자서전 ‘레볼뤼시옹’(혁명)에서 “교육분야에서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다시 (정부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중도좌파 사회당 정부 내에서 마크롱은 ‘우클릭’ 경제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2015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샹젤리제와 같은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이 대표적이다.그러나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정권 핵심지지층인 좌파진영의 반발을 샀다. 마크롱은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를 더 쉽게 한 노동법 개정안 강행처리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오래전에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 노동법 개정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성난 노동자들로부터 달걀을 얻어맞기도 했다. 좌파정부에서 우파정책을 주도해온 마크롱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여름쯤이다. 그가 주 35시간 근로제와 부유세를 계속 비판하자 사회당과 정부에서는 마크롱이 지나치게 우파적이라며 견제하는 기류가 강해졌다. 야당인 공화당에서도 “당신의 의견에 찬성하지만, 정치 구도상 지지해줄 수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좌우 양쪽에서의 견제에 지친 마크롱은 결국 지난해 4월 독자적인 정치단체 ‘앙 마르슈’를 출범시켰고, 8월 올랑드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파리 외곽의 한 직업훈련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우리는 같은 인물, 같은 아이디어들로 더는 현시대에 대처할 수 없다”며 기존 좌·우 진영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마크롱의 대권 도전의 꿈이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랑스 대선, 마크롱 승리…39세 역대 최연소 대통령 탄생

    프랑스 대선, 마크롱 승리…39세 역대 최연소 대통령 탄생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39·앙마르슈)이 극우진영의 마린 르펜(48·국민전선)을 꺾었다. 마크롱은 39세로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프랑스 주요 여론조사기관들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 종료 직후 마크롱이 르펜을 상대로 65.5∼66.1%를 득표할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르펜의 득표율은 33.9∼34.5%로 추산됐다. 마크롱은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이어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덟 번째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올해 만 서른아홉살인 마크롱은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연소이며, 현 주요국 국가수반 중에서도 가장 젊은 정치지도자다. 마크롱은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거쳐 경제장관을 역임했다.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그는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라는 창당 1년 남짓 된 신생정당을 기반으로 단숨에 대권 도전에 나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유럽연합 잔류, 자유무역, 개방경제, 문화적 다원주의 등을 내건 마크롱은 이번 대선에서 유럽연합과 유로존 탈퇴, 보호무역, 고립주의, 프랑스 우선주의 등을 내세워온 르펜에 맞서 ‘개방’ 세력을 대표해왔다. 마크롱은 승리 일성으로 파리의 앙마르슈 본부에서 “우리의 긴 역사의 새 장이 오늘 열린다. 희망과 새로운 신뢰로 가득 찼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과정에서 여러분들의 분노와 우려, 의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를 파괴하는 분열에 맞서 온힘을 다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유럽과 유럽 시민들의 연결고리를 재건하겠다”며 강한 유럽연합 건설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마크롱은 “프랑스는 테러와의 싸움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면서 잇따른 테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마크롱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야외정원에 마련된 승리행사에 참석했다. 마크롱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배경 음악에 맞춰 행사장에 화려하게 등장했고, 루브르에 모인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프랑스 혁명이념인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삼색 국기를 흔들며 마크롱 대통령을 연호했다. 결선에서 마크롱에게 고배를 든 르펜은 패배를 시인하고 마크롱에게 “거대한 도전들에 맞서 성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대책본부에서 한 지지자집회 연설에서 마크롱에게 전화를 해 승리를 축하했다고 밝히고, 이번 대선이 프랑스 극우세력에게 “역사적이고 엄청난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극우 전선은 역사적인 기회를 맞아 프랑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우 새로워져야 한다”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되기 위해 우리 운동을 탈바꿈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펜의 이런 발언은 당장 내달 11일과 18일로 다가온 프랑스 총선에서 이번 대선의 모멘텀을 바탕으로 ‘올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르펜 측에서 덕담만 나오지는 않았다. 국민전선(FN)의 선거대책본부장 플로리앙 필리포는 기자들에게 “마크롱의 승리는 금융 기득권 세력의 승리”라고 폄하했다. 마크롱 측에 국내외 지도자들의 축하인사도 이어졌다. 마크롱을 경제보좌관과 경제장관으로 발탁해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발판을 마련해줬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마크롱의 대선 승리는 프랑스 통합의 상징이라며 축하를 건넸다. 올랑드 대통령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마크롱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 그는 “마크롱의 큰 승리는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가 공화국의 가치를 중심으로 통합하길 원한다는 것, 그리고 유럽연합(EU)에 대한 지지와 세계를 향한 프랑스의 개방성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차기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대승을 거둔 것을 축하한다”고 밝혔고, 미국 언론들도 일제히 마크롱의 승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프랑스 대선은 미국을 비롯해 서구 민주주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마크롱의 당선으로 유럽의 통합은 한층 안정되게 됐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패션은 삶이다

    패션은 삶이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옷을 입는 것은 삶의 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패션이 일상의 문화가 되면서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업물을 선보이는 패션쇼도 하나의 문화행사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27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7년 가을·겨울 시즌 헤라서울패션위크’에는 패션업계 관계자와 일반인 등 모두 28만명이 방문했다. 패션위크는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유행을 가늠할 척도이며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발판이다. 이번 시즌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주목한 신진 디자이너 3명을 만나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선 그들의 고민과 철학을 들어봤다.■‘참스’ 강요한 디자이너 “패션은 재미있는 놀이” 무작정 거리로… 젊은 고민 담아 “패션쇼에 서는 의상은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요. 예쁜 옷을 입는 건 합리적인 가격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해요.” 강요한(27) 디자이너가 이끄는 캐주얼 브랜드 ‘참스’는 수년 전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2015년에는 ‘2016 봄·여름 헤라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강씨는 국내 최연소 디자이너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력적인 것들’이라는 뜻인 참스는 ‘누구든 이 옷을 입으면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참스는 태생부터 온라인에 익숙한 요즘 세대의 패션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군 전역 후 덜컥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의류 공장에 찾아가 실무를 배울 정도로 패기 넘치던 20대 초반의 강씨는 ‘패션과 가까워지고 싶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헤맸다. 가로수길, 홍대 등을 다니며 거리패션 사진을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 과정에서 안면을 익힌 사람들과 옷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됐다. 그때의 인연이 2014년 강씨가 참스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돼 줬다. 소위 ‘SNS스타’인 지인들이 강씨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으로 저절로 홍보가 됐다.2017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에 오른 옷도 강씨 세대의 고민을 담았다. ‘사춘기’라는 쇼 주제에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해 온 강씨의 평소 생각을 그대로 녹였다. 강씨는 “최근의 패션 트렌드가 ‘복고’라고 하지만 1970~80년대 복고 패션은 잘 와닿지 않는다”며 “더플코트나 아빠 옷장에서 훔친 무스탕처럼 우리 세대가 10대이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패션을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사춘기 학생들을 억압하는 사회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쇼 무대도 록밴드 핑크플로이드의 노래 ‘벽’의 뮤직비디오에서 따왔다. 강씨의 서울패션위크를 보고 영국 ASOS 등 해외 각국 편집매장에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2015년 입양한 반려견 프렌치불도그를 ‘참스’라고 부를 정도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강씨는 “강아지와 커플룩을 입고 싶어 강아지옷을 출시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참스가 제 인생과 함께 성장해 갔으면 해요. 제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동복을 출시할 수도 있겠죠. 어떤 형태가 됐든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글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요하닉스’ 김태근 디자이너 “길거리가 곧 레드카펫” 中서 브랜드 론칭…역진출 행보 “거창한 사회 담론보다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요. 제 생각과 고민을 진솔하게 녹인 디자인에 사람들이 공감해 주면 행복을 느끼죠.” 김태근(35) 디자이너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 ‘요하닉스’를 ‘스트리트 쿠튀르’(세밀한 수작업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든 의상)라고 정의했다. 김씨는 “우리 옷을 입고 걸으면 길거리가 곧 레드카펫이 된다는 의미”라며 “내가 옷에 내 이야기를 담았듯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고도 없는 중국에서 브랜드를 시작해 한국으로 역진출한 독특한 행보를 걷고 있는 김씨는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 직접 만든 청바지를 내다 팔다가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미치코 고시노의 눈에 들면서 미치코런던에서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졸업 후에는 2010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에 입사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싶어 2011년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중국에 안착한 뒤 2014년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면서 한국으로도 발을 넓혔다. 현재는 전 세계 20개국 80개 편집매장에 입점하고 뉴욕·상하이·파리·밀라노 등에서도 패션쇼를 여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매 시즌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여 온 김씨는 현실에 치여 꿈을 포기하는 소녀가장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어 2017 가을·겨울 시즌의 주제를 ‘꿈’으로 잡았다. “사실 가장 가성비가 안 좋은 게 꿈이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꿈을 좇잖아요. 쓸모없는 것 같아도 행복하기 위해 꽃을 사듯이 말이죠. 그래서 꽃으로 꿈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번 요하닉스의 무대는 억압되고 정형화된 사회를 대변하는 군복 의상으로 시작해 점점 꽃무늬가 등장해 쇼의 막판에는 완전히 꽃으로 뒤덮인 의상이 대미를 장식하도록 꾸며졌다. 배경음악으로는 가수 이은미의 ‘꽃’을 택했다. 김씨는 올해를 새로운 도전의 원년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초에는 좀더 젊은 감성을 담은 하위브랜드 ‘블락스’(BLACX)를 선보였다. 올해 말에는 여성복 하위 브랜드 ‘그레익스’(GREYX)도 출시 예정이다. 김씨는 “아직 스스로 ‘쿠튀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부끄러울 때가 많다”며 “내공이 쌓여 언젠가는 정말 내가 만든 옷에 작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부끄럽지 않은 게 꿈”이라며 밝게 웃었다. 글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사진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HCL’ 이한철 디자이너 “지루한 남성복은 그만” 진화하는 디자인… 실험적 시도 “매년 레드카펫 위 여배우들의 아름다운 드레스는 화제가 되지만 언제나 남성들은 단정한 턱시도를 입는 게 의아했어요. 남성도 여성만큼이나 최고의 순간에 자신을 가장 빛낼 수 있는 옷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죠.”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양재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한철(40) 디자이너는 “여성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보수적인 남성복의 한계를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남성복 브랜드 ‘HCL’은 2년이 채 안 된 신생 업체지만 헤라서울패션위크의 패션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수주 박람회 ‘GNS트레이드쇼’에 참가해 유럽 등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이씨는 2008년 패션기업 한섬의 여성복 브랜드 ‘타임’의 디자이너로 입사하며 패션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입사 2년 만에 탄탄한 직장을 포기하고 남성복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났다.2013년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공모전 ‘이츠’ 우승과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가 선정하는 ‘보그 탤런트상’을 함께 거머쥐면서 이씨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디자인공모전 이츠는 매년 전년도 우승자가 소규모 패션쇼를 무대에 올리는 전통이 있다. 이듬해 이 무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씨는 이후 밀라노에서 활동했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한 패션쇼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 지난해 가을 열린 2017 봄·여름 시즌부터 헤라서울패션위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씨는 2017 가을·겨울 시즌이 지금까지 자신의 디자인을 총정리하는 무대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옷은 생물체와 같아서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살아남는다”며 “내 디자인이 환경에 적응해 온 진화의 과정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자인의 핵심이 되는 일부 기능만 남겨 놓은 옷이 다른 옷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구현해 나가는 디자인으로 이를 표현했다. 실제 이씨의 무대에는 옷깃만 달린 조끼를 코트에 겹쳐 입는 등 실험적인 의상들이 등장했다. “제가 자랄 때만 해도 옷이 재산이었어요. 함부로 사기도, 버리기도 어려웠죠. 자연히 경제력을 가진 성인이 트렌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패스트 패션 열풍으로 패션의 중심이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옮겨 왔습니다. 여기에 맞춰 제 디자인도 다시 한번 진화해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글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사진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佛 아웃사이더 대통령 탄생… 정치지형 대변혁 예고

    佛 아웃사이더 대통령 탄생… 정치지형 대변혁 예고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아웃사이더’ 후보끼리 격돌하는 대통령 결선투표가 7일(현지시간) 유권자 4760만명을 대상으로 전국 6만 7000여 투표소에서 치러졌다.지난달 23일 1차 투표에서 각각 24.01%, 21.30%의 득표율로 1, 2위를 기록한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이 프랑스 최초의 아웃사이더 출신 대통령 자리를 놓고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잇따른 테러로 국가비상사태 아래에 치러졌던 1차 투표 날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투표소 주변과 주요 시설, 후보 캠프 등에 총 12만명의 군경이 배치되는 등 삼엄한 경비 속에 투표가 진행됐다. 마크롱과 르펜은 프랑스 현대 정치를 양분해 온 주류 거대정당(공화당·사회당) 소속이 아닌 정계의 ‘이단아’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정치지형의 대변혁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70년여 간 대통령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해온 공화·사회당이 이번 결선투표에 한 명의 후보도 내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프랑스 정치계를 지배해온 좌·우 구분 시스템이 상당 부분 퇴색됐기 때문이다. 전통적 좌·우 구분 대신 이번 선거는 개방과 폐쇄, 관용과 무관용, 자유주의와 고립주의 간의 대결 구도로 펼쳐졌다. 은행가 출신으로 프랑수와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내기도 한 마크롱은 유럽연합(EU) 잔류와 자유무역이라는 ‘개방’ 세력을, 르펜은 EU와 유로존 탈퇴, 보호무역이라는 ‘폐쇄’ 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고립주의·보호무역주의·포퓰리즘의 열풍과 국내에서 잇따라 발생한 테러,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등의 사회 분위기가 이번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전날 마크롱 캠프 관계자의 이메일이 해킹당해 유포된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자칭 ‘이엠리크스’(EMLEAKS)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는 앙마르슈 관계자의 9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 이메일을 소셜미디어에 폭로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는 러시아가 개입해 힐러리 클린턴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메일이 폭로돼 선거 운동에 차질을 빚었던 지난해 미국 대선을 연상케 한다.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는 언론에 유출된 이메일과 문서의 내용을 보도하지 않도록 명령했다. 마크롱 캠프의 이메일 유출이 해킹에 의한 것인지, 러시아가 개입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극우주의자가 르펜을 돕고자 해킹 공격 지원에 나섰다고 7일 보도하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마크롱과 르펜의 지지율 격차는 약 24~26%로 마크롱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7년생인 마크롱이 당선되면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연소이자 현 주요국 정상 중에서도 가장 젊은 지도자가 탄생하게 된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30대 최연소 대통령 나오나…프랑스 오늘 대선 결선투표

    30대 최연소 대통령 나오나…프랑스 오늘 대선 결선투표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가 7일 오전 8시(현지시간) 시작된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1차 투표 1, 2위 득표자인 에마뉘엘 마크롱(39·앙마르슈)과 마린 르펜(48·국민전선) 후보 중에서 승자가 가려진다.결선 투표는 1차 투표와 마찬가지로 유권자 4760만 명을 대상으로 전국 6만 7000여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마크롱은 유럽연합 잔류와 자유무역이라는 ‘개방’ 세력을, 르펜은 EU와 유로존 탈퇴, 보호무역이라는 ‘폐쇄’ 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르펜이 당선되면 프랑스와 유럽의 미래는 물론 전후 70년간 이어져 온 서구 자유주의 질서의 대격변이 있을 수 있다. 공식 선거운동이 마감한 5일까지의 여론조사들을 보면, 마크롱과 르펜의 지지율 격차는 24% 포인트 가량으로 마크롱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1977년생으로 올해 만 서른아홉 살인 마크롱이 당선되면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최연소이자 현 주요국 정상 중에서도 가장 젊은 지도자가 탄생하게 된다. 이번 대선 이후 내달 11일과 18일 실시되는 프랑스 총선에서도 대대적인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사회당과 공화당이 양분하고 있는 하원에서 마크롱의 신당과 르펜의 국민전선이 대선 바람을 타고 상당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결선투표 윤곽이 드러날 여론조사기관들의 출구조사 결과는 투표 마감 15분 전인 오후 7시 45분쯤(현지시간) 공개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나코, 유벤투스에 0-2 패배…‘거미손’ 부폰에 막힌 신성 음바페

    모나코, 유벤투스에 0-2 패배…‘거미손’ 부폰에 막힌 신성 음바페

    4일(한국시간) 프랑스 모나코의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AS모나코(프랑스)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유벤투스가 2-0으로 이겼다. 이날 경기는 창과 방패의 대결로 관심이 모았다.특히 ‘무서운 10대’ 공격수 킬리앙 음바페(19·AS모나코)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39·유벤투스)의 맞대결에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두 선수의 나이 차이는 20살이나 된다. 음바페는 2015년 12월에 16세 347일의 나이로 프랑스 리그1 데뷔전을 치러 티에리 앙리(19세 3개월)의 AS모나코 최연소 출전 기록을 새로 썼고, 지난해 2월에는 AS모나코 최연소 득점(17세62일) 기록을 세운 ‘신성’이다. 음바페는 특히 이번 대회를 통해 ‘제2의 앙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장을 이어왔다. 음바페는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와의 16강 1, 2차전에서 골을 넣었고 도르트문트와 8강 1차전 2골에 이어 2차전에서 또다시 득점포를 터뜨렸다. 챔피언스리그 4경기 연속 골이자, 라울 곤살레스(전 레알 마드리드)가 보유한 UEFA 챔피언스리그 최연소 5골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그러나 4강 상대인 유벤투스에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부폰이 있었다. 부폰은 음바페가 태어나기도 전인 1991년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95년 이탈리아 세리에 A 파르마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 1000경기를 넘게 소화하며 최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베테랑이다. 음바페는 이날 전반 13분 후방에서 올라온 공을 문전에서 노마크 상태로 헤딩했지만, 부폰의 정면에 안겼다. 음바페는 3분 뒤 수비수 2명 사이를 비집고 문전으로 들어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된 공에 왼발을 갖다 댔지만, 다시 한 번 부폰의 선방에 막혔다. 심기일전한 음바페는 후반 4분 침투 패스를 받기 위해 문전으로 쇄도했지만, 부폰이 먼저 나와 잡아냈다. 부폰은 선방 이후 음바페와 손을 마주친 뒤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하기도 했다. 음바페는 10일 이탈리아 토리노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4강 2차전 원정경기에서 부폰의 벽을 뚫겠다는 각오다. 음바페는 이날 경기 후 비인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리턴매치가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면서 “훌륭한 선수들과 맞붙기 위해 우리는 매일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면서 “부폰이 오늘 경기에서 몇 차례 (선방) 퍼레이드를 펼쳤는데, 열심히 훈련해 2차전에서는 골을 넣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로야구] 양준혁과 나란히… 이승엽 3879루타

    [프로야구] 양준혁과 나란히… 이승엽 3879루타

    양현종 7이닝 7K 개막 6연승‘현역 레전드’ 이승엽(41·삼성)이 통산 최다 누타 타이를 일궜다. 양현종(KIA)은 파죽의 6연승을 내달렸다. 이승엽은 3일 대구에서 벌어진 KBO리그 두산전에서 3-8로 뒤진 5회 1사 후 3루타를 터뜨렸다. 이로써 이승엽은 개인 통산 3879루타를 기록, 통산 최다 누타 기록을 보유한 양준혁(전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제 1루타만 보태도 또 하나의 역사를 쓴다. 통산 최다 홈런(447개)과 타점(1426개) 1위인 그는 전날 양준혁(1299개)을 넘어 통산 최다 득점 신기록(1300개)도 작성했다. 이승엽은 데뷔 무대였던 1995년 4월 15일 잠실 LG전 9회 대타로 나서 중전 안타로 첫 누타를 생산했다. 이어 2000년 1500루타, 2002년 2000루타, 2003년 2500루타까지 모두 최연소와 최소 경기로 일궈냈다.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2013년 8월 28일 대구 NC전에서 1370경기, 11시즌 만에 최소 경기, 최소 시즌으로 통산 3000루타를 완성했다. 이승엽은 사상 첫 한 시즌 50홈런(54개)을 넘어선 1999년에는 시즌 최다인 356루타를 수확했다. 이 기록은 2015년 박병호(미네소타·당시 넥센)가 377루타를 때려내면서 16년 만에 깨졌다. 하지만 삼성은 고비마다 터진 홈런 3방을 맞고 4-10으로 졌다. 두산 홍상삼은 5이닝 4실점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2010년 9월 12일 롯데전 이후 6년 7개월(2435일) 만에 감격의 선발승을 거뒀다. 선두 KIA는 고척돔에서 양현종의 역투를 앞세워 넥센을 2-1로 꺾고 20승 고지에 올랐다. 넥센은 올 시즌 KIA에 5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양현종은 7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솎아내며 7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개막 6연승(다승 공동 1위)을 달렸다. 평균자책점도 1.52로 낮춰 이 부문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한화는 문학에서 8-8이던 연장 10회 허도환의 극적인 결승포로 SK를 9-8로 제쳤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살림꾼 부구청장, 그는 야전사령관

    살림꾼 부구청장, 그는 야전사령관

    “서울 25개 자치구의 2인자,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 서울 25개 자치구의 부구청장직은 ‘꽃보직’으로 생각하기 쉽다. 보통 서울시에서 20년 넘게 일하다가 2·3급 고위 간부로 승진해야 갈 수 있는 자리다. 선출직 구청장을 보좌해 1000여명의 부하 공무원을 거느리고 인구 13만~67만명의 작은 정부를 이끌며 도시개발과 복지, 문화, 안전 등 구정 전반을 책임진다. 기초지방 공직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1인자인 구청장을 도와 거친 민원 등 궂은일을 처리하고, 후배들을 토닥이며 살림을 책임져야 한다. 지방자치의 야전사령관 격인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부구청장의 면면을 살펴봤다.●5급 행시 출신만 무려 20명 ‘만 55세, 행정고시 출신 20여년차 베테랑 남자 공무원’ 서울의 부구청장 25명의 프로필을 분석해 평균적인 모습을 뽑아 보니 이 같은 초상이 나타났다. 부구청장 중 20명은 행정고시를 통해 5급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7급 공채(3명), 기술고시(1명), 지방고시(1명) 등을 통해 공직에 입문한 이들도 있었다. 성별은 모두 남성이었다. ●용산 김성수 7년째 최장수 부구청장 현직 최장수 부구청장은 김성수(56) 용산 부구청장이다. 성장현 구청장이 취임한 이듬해인 2011년 1월 임명된 뒤 벌써 7년 넘게 구청장을 돕고 있다. 부구청장이 평균 2년 단위로 바뀌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김 부구청장은 경남 창원이 고향인 PK(부산·경남) 출신 행정가로, 전남 순천 출신 정치인인 성 구청장과 지연·학연이 닿지 않았다. 성 구청장이 자신을 보완해 줄 공무원으로 김 부구청장을 추천받아 파트너로 맞았다. 김경한(59) 마포 부구청장도 2012년 7월부터 박홍섭 구청장과 5년째 함께하고 있다. 김 부구청장은 삼국지 관련 서적을 두 권이나 쓴 전문가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 참모로 일하다가 자치구로 온 인물도 있다. 이병한(53) 금천 부구청장은 시의 대표적 ‘국제통’으로 서울시 국제협력관 때 박 시장이 추구하는 도시외교를 실무적으로 이끌었다. 신용목(55) 은평 부구청장은 시 교통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전임 시 도시교통본부장이기도 하다. 구 관계자는 “신 부구청장이 부임한 뒤 신분당선 유치나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계획 수립 착수 등 교통 사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조인동(51) 서대문 부구청장은 서울시의 대표 기획통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 행정에 관심이 많고 어학 실력이 뛰어난 학구파로 박 시장 취임 뒤 초대 시 혁신기획관을 지냈다. ●시 행정 손바닥 보듯… 굿 파트너 김영한(58) 송파 부구청장은 시 기후변화기획관을 지낸 환경·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지난해 송파구의 ‘나눔발전소’가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등이 공동 주최한 ‘2016 광저우 국제 도시혁신상’을 수상하는 데 일조했다. 시장의 ‘입’ 역할을 했던 부구청장도 있다. 2013~2014년 서울시 대변인을 지낸 이창학(54) 동작 부구청장은 지적인 스타일로 직원들에게는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호(53) 광진 부구청장도 시 언론과장 출신으로 취재진과 스킨십이 좋다. 신사 같은 태도로 직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부구청장도 적지 않다. 서노원(55) 양천 부구청장이 그렇다. 구 관계자는 “부하 공무원들이 ‘천사 같다’고 할 만큼 젠틀맨”이라고 말했다. 과거 서울시 공무원노조에서 뽑은 ‘베스트 간부’에 들기도 했다. 이비오(57) 성동 부구청장은 각종 업무보고 때 팀장(6급) 이상만 만나던 관례를 깨고, 담당 주무관도 대면해 어려운 점을 듣는다. 박문규(56) 노원 부구청장도 출장 때 일상적 의전도 거부할 만큼 소탈하다. ●김진만 강동 부구청장 ‘최연소’ 타이틀 가장 젊은 부구청장인 김진만(48) 강동 부구청장에게는 ‘최연소’ 타이틀이 익숙하다. 행시 37회에 합격해 동작구 환경과장으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6개월 만에 26세의 나이로 동작구 흑석2동장을 맡아 화제가 됐다. 또 다른 40대인 천정욱(49) 서초 부구청장은 소탈한 성품으로 직원과 격없이 소통한다. 문홍선(57) 강서 부구청장은 행시 기수로는 맏형(30기)이다. 서울시 인재개발원장 등을 역임했고 부구청장직만 두 번째 수행하는 등 경험이 많다. ●시장의 입 ·서울시 간부 출신 곳곳에 서울시 간부 출신 구청장들은 자신의 보완재 역할을 해 줄 후배를 부구청장으로 앉혔다. 이해우(51) 중랑 부구청장은 나진구 구청장이 시 감사관으로 일할 때 조사1팀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구 관계자는 “이 부구청장이 시 투자유치과장을 지냈는데 외부 재원 유치에 열중하는 우리 구에 꼭 필요한 간부”라고 말했다. 황치영(56) 중구 부구청장은 제2부시장을 지낸 최창식 구청장을 돕는다. 그는 노점실명제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업무를 추진할 때 상인과 노점상을 다독이며 원만한 정책 추진을 주도했다. 이성 구로구청장도 시 감사과장 때 부하 직원이었던 한수동(59) 부구청장과 4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김병환(57) 성북 부구청장은 김영배 구청장이 직접 영입한 케이스다. 김 구청장이 진영호 구청장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 김 부구청장은 총무과장이었다. 김 부구청장이 2012년 프랑스 파리 주재 한국 대사관 파견이 끝난 뒤 서울시로 돌아오기 직전 김 구청장이 전화를 걸어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검정고시·행시 출신 학구파도 강병호(55) 동대문 부구청장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탓에 중·고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이수했다. 28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발을 들였다. 행정학 박사 학위까지 딴 학구파로 신망이 높다. 주윤중(56) 강남 부구청장은 지금은 없어진 지방고시 1회 출신이다. 다른 부구청장들과 달리 행정국장, 기획경제국장 등 강남구에서 잔뼈가 굵었다. 정경찬(59) 관악 부구청장도 현장행정의 달인이다. 구에서 행정재정국장, 건설교통국장 등을 지냈다. 오해영(56) 강북 부구청장은 유일한 기술고시 출신으로 녹지 전문가다. 서울시 조경과장과 푸른도시국장을 거쳤다. 자연녹지지역이 60%가 넘는 강북구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장서 잔뼈 굵은 행정의 달인들 7급 공채 출신으로 부구청장에 오른 이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7급으로 들어와 2·3급이 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만큼 어렵다”면서 “일에 미쳐 지낸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갑수(59) 영등포 부구청장이 7급 출신으로 재정·예산 분야 전문가다. 서울시 예산과에서 총괄주임, 예산팀장을 지냈고 재정과장 때인 2012년에는 박 시장의 숙제였던 ‘부채 7조원 감축 계획안’을 만들었다. 7급으로 시작한 박영섭(59) 종로 부구청장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조직관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를 받는다. 윤기환(59) 도봉 부구청장은 감성 리더십으로 직원들을 이끈다. 지난해 전국시조암송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윤 부구청장은 직원들에게 가끔 손편지를 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새 인권위원 조현욱 변호사 지명

    새 인권위원 조현욱 변호사 지명

    양승태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로 자리를 옮긴 이선애(50·사법연수원 21기) 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의 후임으로 조현욱(51·19기) 법무법인 도움 변호사를 지명했다고 1일 밝혔다.전북 순창 출신으로 부산 동래여고를 나온 조 변호사는 1986년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 변론 활동을 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인천지법 등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2008년 개업한 이후에도 아동·청소년, 장애인, 외국인 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인천시 법률고문과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LA ‘라라랜드 데이’ 선포 행사…시장, 주제곡 직접 피아노 연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시가 25일(현지시간)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 데이’ 선포 행사를 열었다고 LA타임스가 이날 보도했다. 에릭 가세티 LA시장은 라라랜드 데이를 정하는 행사에 나와 영화 주제곡 ‘시티 오브 스타스’(City of Stars)를 피아노로 직접 연주했다. 행사에는 지난 2월 아카데미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제작자 조던 호로위츠 등이 참석해 영화 흥행에 기여한 LA시의 협력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두 주인공인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호로위츠는 “LA는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의 팔을 열어 이 영화를 안았다”면서 “그 덕분에 영화는 특별한 마법을 얻었고 그 중심에 이 도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라라랜드’는 주된 배경을 LA로 삼은 로맨스 뮤지컬 영화로 라라랜드는 LA의 별칭이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라라랜드는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거머쥐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LA시장 ‘라라랜드 데이’ 선포에 깜짝 선물

    LA시장 ‘라라랜드 데이’ 선포에 깜짝 선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시가 25일(현지시간) ‘라라랜드(La La land) 데이’ 선포했다. 에릭 가세티 LA 시장은 행사장에 직접 나와 피아노로 직접 영화 주제곡 ‘시티 오브 스타스(City of Stars)’를 연주했다고 미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보도했다.지난해 개봉되어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한 영화 ‘라라랜드’는 LA의 별칭이며 주된 배경을 LA로 삼은 로맨스 뮤지컬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날 행사에 영화의 두 주인공인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카데미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된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제작자 조던 호로위츠 등이 나와 영화 흥행에 기여한 ‘LA시의 협력’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호로위츠는 “LA는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의 팔을 열어 이 영화를 안았다”면서 “그로 인해 영화는 특별한 마법을 얻었고 그 중심에 이 도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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