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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1심 선고, TV 생중계 허용될까

    박근혜 1심 선고, TV 생중계 허용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TV로 생중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오는 6일 1심 선고를 앞둔 박 전 대통령 사건 선고공판의 중계 여부를 이번주 초에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8월부터 대법원은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시행하고 있다. 개정한 규칙에 따르면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이 크다고 판단되는 1·2심 재판의 선고를 재량에 따라 생중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중계가 허용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 때 일각에서 생중계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재판부는 공익보다 이재용 부회장 등 피고인들이 입게 될 손해가 더 크아며 생중계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2월 ‘비선 실세’ 최순실씨 1심 선고 때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이 재판 촬영이나 중계를 동의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생중계를 불허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건의 주범이자 몸통이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까지 몰고 온 중대한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에 재판부가 생중계를 허용하는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측이 중계를 거부할 경우 재판부가 이를 허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법정 출석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선고 당일에도 불출석할 가능성이 높지만, 재판부에 의견서 형식 등으로 중계 반대 입장을 낼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규칙을 개정해놓고도 국민적 관심이 높은 재판의 생중계를 계속 불허하면서 규칙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원과 별도의 조직이기는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생중계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 좌·우 ‘영토 전쟁터’ 된 그곳… 광장

    [커버스토리] 좌·우 ‘영토 전쟁터’ 된 그곳… 광장

    각종 정치·사회 이슈가 사회를 휩쓸 때마다 광장은 늘 인파로 뒤덮였다. 광장에 모인 시민의 목소리는 사회를 바꿔놓기도 했다. 2016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솎아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광장이 아직은 좌우 세력 간 대결의 장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광장은 진보·좌파의 영역이 됐다가 보수·우파의 영역으로 바뀌기도 한다. 서울 도심 내 집회 장소를 둔 진보·보수 세력 간 영토전쟁의 흐름을 짚어본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심판 선고를 받은 지 1년째인 지난 1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보수·진보 단체의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은 ‘서울역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앞’,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진보세력은 ‘광화문광장’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진보 단체의 주 무대였던 서울 도심 대부분의 집회 장소를 보수 단체가 점령한 것이다. 최근 들어 서울 도심 집회 장소를 놓고 진보·보수 세력이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돌아보면 1980~90년대 대규모 집회·시위는 군사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때문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정치적 성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이 광장을 장악했고 이를 막으려는 정부와 충돌을 빚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집회 세력은 정권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분화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과 찬성하는 진보 세력이 선명하게 갈렸다.정치적 이념에 따라 크게 양분됐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11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광장은 방한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이, 서울시청 앞은 방한을 환영하는 보수 세력이 점령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찬반을 놓고 두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보수 단체들의 집회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서로 다른 목적의 집회를 여는 단체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첫 번째 계기는 2002년 주한미군 궤도차량에 치어 숨진 심미선·신효순양 사건이었다. 한·미 주둔군지휘협정(SOFA)에 따라 미군에서 재판을 받은 사고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가 무죄 판결을 받자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 거리로 나왔다. 당시 광화문은 차도로만 이뤄져 있어 도로 옆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인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정희선 상명대 지리학과 교수는 2004년 논문 ‘서울시 집회·시위 발생 공간의 특성과 변화 : 1990~2003’에서 “시위를 강력하게 탄압하던 1990~91년에는 진압 경력이 들어올 수 없는 명동성당이나 대학교 교내 등 ‘성역형’ 공간에서 주로 집회가 이뤄졌다”면서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미선·효순양 사망사건,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영향으로 서울 교보문고·동화면세점 앞 등 광화문 광장이 부각된 ‘광장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보수 단체가 본격적으로 집회를 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어버이연합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주로 70대 이상의 노인층들이 중심이 돼 결성된 어버이연합은 초창기 종북 세력에 대한 반대나 국가 안보 위기 등을 앞세워 서울역 광장, 종묘공원 등 주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촛불집회 등에 비하면 당시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2008년 광우병 파동이 벌어지면서 다시 촛불을 든 대규모 시위대가 등장했다. 이때 어버이연합과 고엽제 전우회 등 보수 단체들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세력을 규탄하며 집회를 열였다. 진보 단체의 촛불집회와 보수 단체의 ‘맞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당시 촛불집회는 광화문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개최돼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당사가 있었던 여의도 등지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는 서울역광장을 중심으로 열린 후 촛불집회가 열렸던 청계광장으로 진출해 양측이 충돌하기도 했다. ‘진보 단체=광화문, 보수 단체=서울역’이라는 ‘영토공식’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시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진보의 시청 광장 진출 계기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시청앞 광장까지 진보 진영의 영토가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경복궁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진행된 뒤에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후 대한문에 시민분향소가 마련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를 포함한 진보 진영의 영토는 광화문에서 시청 앞과 대한문 앞까지 커졌다. 같은 해 9월 공사를 마치고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화문광장의 등장으로 집회 시위의 영토는 또 다른 변곡점을 맞는다. 광화문광장이 미국대사관 100m 이내 거리에 있어 집시법상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어 서울시의 결정에 따라 집회·시위의 개최 여부가 갈린다. 광화문광장을 개장했던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는 집회·시위보다는 대형 행사가 주로 열렸다. 그러다 2011년 박원순 당시 무소속 후보가 재보궐 선거에 당선되면서 집회 시위의 허가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2012년에는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이후 병으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자 등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되면서 대한문 앞 광장은 진보 진영의 영토로 재확인됐다. 2014년 6월 14일 세월호 참사는 광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고, 그동안 대형 행사 위주로 사용되던 광화문광장은 본격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광장’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광화문광장을 진보 진영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촛불’로 상징되는 진보 진영의 영토가 광화문광장으로 집중되는 사이 보수 진영의 영토확장이 이뤄졌다. 그때까지 서울역을 중심으로 집회를 열어 왔던 보수단체들은 대한문 앞 광장을 집회장소로 쓰기 시작했다. 과거 진보 진영의 영토로 여겨졌던 대한문 앞 광장이 보수 진영으로 넘어간 셈이다. 진보와 보수의 집회·시위 영토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보수 단체들은 매주 토요일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며 영토를 넓히고 있다. ●“광장,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 대변하는 상징으로”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대한문 앞 광장의 경우 오랜 시간 쌍용차 희생자들의 빈소가 유지되면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소’라는 상징성을 보여줬다”면서 “‘태극기 집회’로 불린 보수 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70대 이상의 고령층 비중이 높은데,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소인 대한문 앞 광장에서 이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이들의 목소리도 결국 우리나라 민주화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회 장소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시대적 상황과 집회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는 “‘태극기 집회’를 여는 보수 진영이라고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싶지 않겠나. 결국 집회 장소는 정치적 세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또 그 세력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데스크 시각] ‘장애’ 벗고 ‘평창’ 넘어/송한수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장애’ 벗고 ‘평창’ 넘어/송한수 체육부장

    바로 내일, 3월 31일은 역사에 길이 남는다. 꼭 1년 전 그날 기억을 오롯이 불러낸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구속된 날이다. 일찌감치 예고된 사건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어쨌든 국민과 나라를 통째 흔들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2월 9~25일), 패럴림픽(3월 9~18일)을 각각 315일, 334일 앞둔 때였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체육계 고민도 깊었다. 무슨 스포츠 재단이다 뭐다 해서 논란의 핵심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회를 치를 수 있기나 하냐”는 걱정을 쌓았다. “과연 성공적 개최란 평가를 들을 수 있을까” 하던 데서 몇 발짝 더 물러났다. 그러나 선수들 대부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저냥 묵묵하게 해야 할 일에 애썼다. 뛰면서 ‘패배’도 ‘후퇴’도 모르는 이들이다. 땀을 쏟은 대가는 반드시 보답으로 돌아온다고 굳게 믿는 이들이다. “가장 힘든 일은 꾸준히 해 내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체육계에선 여전히 짙은 아쉬움을 내뱉는다. “그토록 지구촌을 달궜는데 막을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벌써 개최국에서마저 관심을 끊느냐”는 것이다. TV 채널에선 2002년 월드컵 축구 모습을 잇달아 가슴 뭉클한 장면으로 소개한다는 점을 손꼽는다. 좋은 얘기는 두고두고 입길에 올려도 괜찮은 법이다. 먼저 동계올림픽을 떠올린다. ‘팀 코리아’는 75억 세계인들에게 더없는 기쁨을 선물했다.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를 아우른 합작품이었다. 아예 출전권을 따지 못한 두 팀을 아우른 성공작이기도 하다. 토마스 바흐(65·독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최고로 뽐낸 화합을 보며 감동했다는 말을 건넸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뒤엉켜 훈련하던 올 1월 28일 생일을 맞은 북측 진옥(28)에게 다같이 조촐하나마 파티를 마련해 포근하게 감쌌다. 함께 방남한 선수 이름을 되짚어 본다. 남측 선수들은 김은정, 김은향, 김향미, 려송희, 류수정, 리봄, 정수현, 최은경, 최정희, 황설경, 황충금과도 깨소금 같은 우정을 차곡차곡 쌓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남북한 우애가 정상회담 급진전으로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한층 반갑기만 하다. 올림픽 최고 가치인 평화에 가장 큰 장애물인 정치, 그 장벽을 대한민국 평창에서 보란 듯 무너뜨린 셈이다. 패럴림픽에선 더욱 흐뭇한 광경을 연출했다. 최선을 다한 경기력과 맞물려 꽉 들어찬 관중석으로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강원 작은 도시 평창에서 치른 두 겨울 스포츠 대회를 통해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한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학계에선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 인식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기회로 삼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 약자층(비장애인)이 각 방면에서 어떤 지위를 누리느냐로 국가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다시 말하자면 평균 수준이 아니라 가장 아래를 끌어올려야 참된 발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물론 스포츠에서도 다를 게 없다. 성적을 떠나 너나없이 너무나 벅찬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권상현, 김대중, 김영성, 김윤호, 박수혁, 박항승, 방민자, 서보라미, 서순석, 신의현, 양재림, 유만균, 이도연, 이동하, 이용민, 이재웅, 이정민, 이종경, 이주승, 이지훈, 이치원, 이해만, 장동신, 장종호, 정승원, 정승환, 조병석, 조영재, 차재관, 최보규, 최광혁, 최석민, 최시우, 한민수, 한상민, 황민규 선수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onekor@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미래의 불안이 낳은 저출산… ‘아이, 사회가 키운다’ 신뢰 줘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미래의 불안이 낳은 저출산… ‘아이, 사회가 키운다’ 신뢰 줘야”

    ‘합계출산율 1.05명’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애초 이달 말 제3차 기본계획의 핵심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지자 계획을 급히 수정해 5월로 미뤘다. 발표만 미룬 게 아니라 내용도 전면 재수정해 ‘획기적’인 대책을 담겠다는 생각이다. 이낙연 총리도 그렇고, 김동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일·가정 양립 지원 수준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며 큰 그림을 다시 그리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4년. 우리에게 주어진 저출산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합계출산율뿐 아니라 혼인율도 사상 최저로 곤두박질쳤다. 사교육비는 치솟고 집값도 불안하다. 청년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저출산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을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대책을 들어 봤다.→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되고 사무처까지 뒀다. 지난해 1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 위촉된 제6기 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는데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애초 이달 말에 핵심 과제 위주로 대책을 발표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는데 합계출산율 1.05명이 발표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 정부에서 수립한 3차 기본계획을 재구조화하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전면 재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청년 일자리와 주거·교육·보육·가족형태의 다양화 등 큰 틀에서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어렵다. 종합대책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충할 수 없다.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확장된 재정 계획 그 자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꼭 필요하다. (기재부는 지난 26일 2019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을 발표하면서 청년 일자리 확충, 저출산·고령화 대응, 혁신성장, 안심 등에 재정을 중점 배정할 방침을 밝혔다.) →정책 재검토가 한창인 와중에 여성가족부에서 뒤늦게 저출산 정책이 여성을 출산도구화하고 있다며 전면 재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여가부에서 주요 정책의 성별영향평가를 하게 돼 있는데 그 결과가 늦게 나와 발표하는 바람에 오해를 산 것 같다. →‘획기적’, ‘전면 재수정’이라면 어느 수준을 염두에 두고 있나.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여성 삶을 억압하지 않는 게 저출산 정책의 요체다. 아이를 낳는 게 엄청난 희생과 위험부담을 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아이를 낳아 성인이 돼 자기 앞가림을 할 때까지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합계출산율 1.05명은 젊은이들이 불행하고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게 앞날이 불안한데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건 젊은이들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이들의 선택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3차 기본계획의 목표는. -합계출산율을 1.50명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문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내년에는 적어도 반등해야 한다. 합계출산율 이외에 남녀 육아휴직 사용률, 여성 고용률, 청년 실업률 등 삶의 질, 취약계층의 기본생활 보장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그러려면 대략 어느 정도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고 보나. -많을수록 좋겠지만 지원 폭에 달려 있다. 최대 연 30조원까지는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일자리 창출 예산은 저출산 대책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12년 동안 130조~150조원이 투입됐다고 하는데, 연간 10조원 안팎이다. 저출산과 무관한 예산까지 그러모아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보육에 집중됐다. →그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나오나. 기재부에서 부인했지만 ‘저출산세’ 도입설이 계속 나돈다. -목적세로서 저출산세는 맞지 않다고 본다. 교육세는 거의 교육부에서 집행한다. 하지만 저출산은 영역이 전반에 걸쳐 있어 목적세로 할 수 없다. →저출산 정책은 주거·교육·보육·노동 등 관련 없는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효과도 장기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핵심 과제가 있다면. -일·가정 양립과 촘촘한 돌봄, 경력단절 근절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남성육아휴직제 확대, 초등 1학년 자녀를 둔 부모의 근로시간 1시간 단축, 초등 돌봄시설 확충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일·가정 양립 제도는 마련했지만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하고는 그림의 떡이었다. 3차 기본계획에서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 분야 과제 비중이 15%에 불과했고, 예산은 5%에 그쳤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필요한 재정 지원 규모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수준에 따라 2000억~3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공공부문 간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중기에 추가 지원을 해야 하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고용보험도 거덜 날 판이다. →노사정위원장과 만나 일·가정 양립에 협조를 당부했는데. -노사정위원장과 두세 차례 만나 의견을 나눴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 지원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어떤 제도든 처음 도입됐을 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정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치 보지 말고 초등학교 입학기에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협력해 줘야 한다. 일·가정 양립에 대한 노사정 차원의 기본합의가 절대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교육비는 서민층에게 큰 부담이다. 교육비와 교육제도 모두 문제다. 사교육비와 관련, 고교 무상교육을 빨리 실시해야 한다. 고교 졸업 때까지 돈이 안 들어야 한다. 고교만 졸업하고 취업하는 청년이 많아야 한다. 이번 정부 안에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에 덜 가게 하면 교육비도 줄어들 수 있다. 대학 반값등록금, 국가장학금 지원에 수조원이 든다. 고교 무상교육과 특성화고에 대한 투자, 특성화고 졸업자에 대한 혜택 확대가 필요한데 재원은 국가장학금을 돌려서 투자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구조적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위원회가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라고 주문하면서 힘을 실어 줬다. -위상도 그렇고, 사무처도 신설했고 3선인 제가 부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는 줬지만 위원회라는 조직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 기존의 위원회는 로드맵을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면 됐지만 지금은 컨트롤타워 기능까지 해야 한다. 정책이 잘 이행되도록 하고, 시급한 정책은 만들어 효과를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집행 부서가 아니어서 굉장히 어렵다. 결국 대통령과 청와대가 관심을 갖고 부처들이 책임감을 갖고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위원회는 예전과 달리 성과에만 급급해 ‘엉터리’ 정책이 포함되지 않도록 옥석을 걸러내는 역할을 깐깐하게 할 것이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정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가능한 한 현장에 많이 가고, 사무처 직원들도 독려한다. 타운홀미팅도 하고 포럼도 열고 있다. 성급하게 진행하다 보면 체한다. 어렵게 재원을 마련해 시행해도 효과가 극대화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될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김상희 부위원장은 김상희(63) 부위원장은 3선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다. 약사 출신으로 30대 초반부터 시민단체에서 여성·환경운동에 적극 참여해 오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비례)에 당선됐다. 이후 경기 부천 소사구에서 제19·20대 국회의원에 뽑혔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시민사회 대표로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최순실 게이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중 청와대 의약품 구입 내역을 밝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한국, 동계 스포츠 강국 넘어 ‘스포츠 선진국’ 초석 놓았다”

    “한국, 동계 스포츠 강국 넘어 ‘스포츠 선진국’ 초석 놓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2월 9~25일)과 평창동계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3월 9~18일)이 크고 작은 우려를 말끔히 씻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회 전만 해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남북 단일팀, 개회식 추위, 흥행 부진 등을 비롯한 각종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평창을 밝힌 남북한 선수들의 하나 된 모습과 자원봉사자들의 미소는 전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젠 평창 대회의 레거시(유산)를 발전시키는 과제만 남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서울신문은 지난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사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과와 향후 과제 전문가 대담’을 진행했다. 김주호 평창조직위 기획홍보 부위원장,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박종완 강원도 올림픽운영국 총괄관리과장, 전혜자 대한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이 2시간 남짓 토론을 벌였다. 송한수 서울신문 체육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평창 대회가 남긴 성과들 사회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박 과장 강원도는 전국 인구의 3%에 불과하다. 적은 인원이 성공적으로 치러내 강원도에 자부심을 느낀다. 외국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니 95%가 친절했다고 답했다. 숙박 시설도 80% 이상이 만족했다. 손님맞이 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전 사무총장 한국 선수단은 평창패럴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공동 16위에 올랐다. 비장애인도 설상 종목에서 메달을 따기 어려운데 크로스컨트리스키에서 신의현이 메달(금 1, 동 1)을 캔 것은 큰 성과다. 앞으로 장애인 동계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회 기간 동안 가족 단위 관중이 많이 오셔서 감사하다. 애처로운 눈빛이 아니라 패럴림픽도 스포츠로 봐 줘서 가슴이 뭉클했다. 올림픽에서 나온 문제점이 보완돼서 패럴림픽을 더 잘 치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유 위원 여러 악조건 때문에 1년 전만 해도 잘 치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평창선수촌장을 하면서 운영 시설이나 숙박, 음식이 너무 좋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저 또한 IOC 위원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대회 기간 IOC 내부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는데 문제점이 거의 지적되지 않았다. 평창대회가 우리나라가 강조해 온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적과 상관없이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에 관중들이 박수 쳐 줄 때 감격스러웠다. 구 교수 스포츠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민족주의를 고양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인식됐다면 이젠 시대가 변했다.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그 자체를 즐기게 됐다. 이번에 한국 선수들이 따낸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도 금메달 못지않은 가치가 있었다. 금메달에만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메달을 못 땄다 해도 그게 대수냐는 태도가 보였다. 스포츠의 의미가 재정립된 것 아닌가 싶다. ●‘북한 리스크’ 잠재운 평화올림픽 사회 평화 올림픽으로 불리며 논란도 많았는데. 구 교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단계에서 선수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운동하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멀리 미국에서 온 선수들인데 이들의 감성을 이해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란 것이다. 젊은층에서 남북 단일팀이 불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이 80~85%나 된다. 올림픽이 정치화됐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 기회에 북한과 지속적으로 교류해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게 과제이자 유의미한 성취였다고 생각한다. 김 부위원장 지난해 말을 돌이켜보면 안전 문제 때문에 몇몇 나라에서 올림픽에 안 오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이 지속되면 10~20개 나라가 못 오겠다 선언할 수 있다. 평창조직위와 정부에서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설득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제안을 통해 북한이 평창에 오게 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때 상황을 잊어버렸다. 단일팀 이슈가 터진 것이다. 옛날 같으면 북한이 온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신기하고 박수 칠 상황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놀랐다. 아마 정치권에서도 당황했을 것이다. 대회 때도 그런 문제로만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면서 서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북한 참여라는 것이 마지막 톱니바퀴로 끼워지면서 전체 올림픽 가치를 실현하는 데 일조했다. 유 위원 단일팀 결성에 급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회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다. 마음이 무겁고 너무 미안했다. 그렇더라도 이미 결정된 뒤엔 빨리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몰려 걱정이었다. 나중에 단일팀 첫 경기를 현장에서 봤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대회를 통해 지금 (남북 관계가) 진행되는 것들을 보면 놀랍게 빨리 잘되는 것 같다. 올림픽이라는 힘이 주는 사회 변화가 굉장하다고 느꼈다. 박 과장 전 세계에서 분단된 도(道)는 강원도 하나밖에 없다. 이번에 북한 선수들이 평창에 오면서 굉장한 친밀감이 생겼다. 과거 강원도에서 남북 교류가 활발했는데 도민들도 이번 계기로 다시 교류가 이어질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대회 기간 아쉬운 점들 사회 대회를 잘 치렀지만, 빛에는 그림자도 따르기 마련이다.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박 과장 장애인 아이스하키 체코와의 예선 2차전에선 정승환이 연장 시작 13초 만에 서든데스로 골을 성공시키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7000여 관중들이 감격해 경기 후에도 1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기서 장애인 스포츠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중계가 안 됐다. 전 국민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전 사무총장 다행히 대통령께서 패럴림픽 중계에 대해 지적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하다. 발언 이후 생방송 시간이 바로 많아졌다. 유 위원 대회가 끝나고 재방송이 여러 번 나오면서 여운을 느끼면 좋은데 지금 그렇지 않다. 올림픽을 치른 국민들의 관심도 레거시(유산) 가운데 하나다. 관심이 너무 빨리 식지 않게 도와주면 좋겠다. 김 부위원장 노로바이러스와 수송·숙소 관련 문제가 초반에 조금 심각했다. 기존 보안 요원을 격리시키고 국방부에 요청해 군인들에게 지원을 받았다. 소도시에 인원이 몰리다 보니 길이 막혀서 차량이 늦게 왔다. 좋은 호텔은 임자가 있어 자원봉사자들은 1시간 걸리는 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됐지만 면밀하게 준비했으면 더 좋았겠다.●‘올림픽 유산’ 발전 과제는 사회 올림픽 레거시를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 박 과장 정부에서 경기장 사후 관리에 대해 국비 보조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굉장히 감사하다. 다만 국고 보조 비율을 높였으면 한다. 경기장 시설에 1조원 들어갔다. 그것을 유지하려면 힘들다. 유 위원 앞으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선수들은 가장 비슷한 시설을 찾아 전지훈련과 경기를 하고 싶어 한다. 최신 올림픽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평창에서 이를 유치할 절호의 기회다. 아이디어를 잘 짜서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구 교수 대회 기간 드러난 빙상계 비리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정하고 충분하게 조사를 벌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갑질 없는 체육계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팩트체크]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팩트체크]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검찰이 세월호 침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수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검찰이 규명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들의 관련 진술들은 대부분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8시 52분쯤 좌현으로 30도 가량 기울어졌고 8시 54분 탑승객의 신고가 접수됐다. 목포해양경찰서가 해경123정에 전화해 사고 현장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 시간이 8시 57분. 청와대는 이보다 20여분이 지난 9시 19분에 세월호 침몰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박근혜 청와대의 인사들은 사고가 발생한 뒤부터 줄곧 박 전 대통령이 10시에 첫 보고를 받고 보고를 받자마자 구조 지시와 함께 하루종일 11차례의 서면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계속 챙겼다고 주장했다. 2014년 7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의 대통령비서실 보고에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고 이후 해경에 인명구조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처음 서면보고를 받은 시간은 10시 19~20분쯤이었고, 당일 실시간으로 11차례 서면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후와 저녁 각 한 차례씩 일괄적으로만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은 시각을 수정한 이유로 ‘골든타임’ 전에 보고를 받고 신속하게 구조 지시를 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파악했다. 검찰은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부터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은 채 관저에 머무르고, 국가안보실이 사고 상황을 신속하게 보고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바람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비난이 고조됐다”면서 “탑승자가 마지막 카카오톡을 발송한 시간인 10시 17분 전에 박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인명구조와 관련된 지시를 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4월 16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저에 외부 인사의 출입이 없었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도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행적을 당시 청와대 인사들의 주장과 검찰의 수사 결과를 시간대별, 상황별로 정리해 비교해 봤다.■ 대통령 첫 보고 시각…靑 10시 vs 檢 10시 19분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9시 1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고상황 처음 인지해 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유선으로 사고 사실 확인 -9시 24분 청와대 내부 문자로 사고 상황 전파 -9시 31~33분 대통령비서실, 중대본과 해경 통해 상황 보고 접수 -10시 이후 사고상황 추가로 확인해 사고 개요 및 현장상황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은 2017년 1월 5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이 9시경 관저 집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10시에 보고서를 전달해 드렸다”고 말했고, 검찰은 이는 명백한 위증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결과 -9시 19분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TV 속보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인지 -9시 24분 청와대 내부 문자 발송 -9시 22~31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선박 명칭, 승원 인원, 출항시간, 배의 크기 등 파악 -9시 39~42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구조세력 동원 현황 파악 -9시 54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구조 인원수 파악 -9시 57분 “구조된 인원 56명이 사고지점 북쪽 4마일 거리에 위치한 서거차도로 이동 예정‘ 확인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 완성 -10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1보 초안 전달받고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전화 보고 받음 -김장수 전 실장, 박 전 대통령에게 휴대전화 걸었으나 연결 안 되자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에게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말함 -10시 12~13분 신인호 센터장 상황보고서 1보 완성한 뒤 상황병에게 관저 전달 지시 -10시 12분 이영선 전 행정관이 본관 동문으로 나가 승용차를 이용해 관저 도착. 침실 앞에서 수회 대통령을 부름 -10시 19~20분 상황병이 관저 경호관 통해 내실 근무자에게 보고서 전달, 내실 근무자는 대통령 침실 앞 탁자에 보고서 올려둠■ 대통령 최초 지시시간 및 횟수…靑 10시 15분 vs 檢 10시 22분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10시 15분 박 전 대통령의 유선 지시사항을 해경에 전달 -10시 30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해경청장에게 인명구조 독려 지시 김규현 당시 외교안보실장도 2017년 2월 1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나가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10시에 보고를 드렸고 10시 15분 대통령이 김장수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지시를 했으며, 10시 22분 다시 김장수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지시를 하셨다”고 증언했다. ●검찰 수사 결과 -10시 22분 김장수 전 실장에게 처음으로 전화로 지시 -10시 25~26분 김장수 전 실장, 해경 상황실에 ‘핫라인’으로 대통령 지시 전파■ 보고받은 횟수…靑 11회 ‘실시간’ vs 檢 아침·저녁 1회씩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11회 (첫 보고+국가안보실이 서면보고 3회+유선보고 7회) 김기춘 전 실장은 2014년 7월 10일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서 김광진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자 “저희들이 계속 간단없이 2, 30분 단위로 문서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충분히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저희들은 생각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2016년 11월 당시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 타임 테이블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4월 16일 오전 9시 53분 외교안보수석실로부터 국방과 관련된 서면보고를 받은 뒤 10시에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구조 인원수와 구조세력 동원 현황 등 종합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10시 15분 박 전 대통령이 김장수 전 안보실장에게 상황을 보고받은 뒤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22분 다시 전화해 추가 지시시항을 하달한 뒤 10시 30분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10시 36분 정무수석실로부터 70명이 구조됐다는 보고를, 10시 40분 안보실로부터 106명이 구조됐다는 서면보고를 각각 받았고, 11시 20분과 23분 안보실로부터, 11시 28분 정무수석실에서 서면보고를 또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 -대통령비서실이 10시 36분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상황보고 1보를 이메일로 발송한 뒤 밤 10시 9분까지 11회에 걸쳐 상황보고서 전달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고 오후와 저녁 1차례씩 그 때까지 수신된 보고서를 일괄 전달■ 외부인의 청와대 방문 여부…靑 “없었다” vs 檢 “최순실 관저 방문” ●朴 청와대 주장 -“간호장교와 미용사 외에 없었다” 청와대는 당초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를 방문한 외부인은 없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특히 의료·미용 시술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간호장교의 관저 출입 사실을 확인했다. 2016년 12월 22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당시 이영석 대통령경호실 차장은 외부인의 관저 출입을 묻는 질의에 “저희들이 확인해 본 결과에 의하면 관저 근무자들이 얘기한 결과로는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은 없는 걸로 확인이 됐습니다”라고 답했다가 “청와대 내부 근무자, 특히 의무실의 간호장교를 포함한 사람의 출입은 있었느냐”고 재차 묻자 “간호장교가 가글을 전달해 주러 간 그것은 저희들이 확인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간호장교가 머문 시간은 약 4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미용사의 출입은 이에 앞선 2016년 12월 6일 한겨레의 보도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미용사로 알려진 정송주·정매주씨 자매는 2017년 1월 9일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의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정매주씨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1월 증인 출석 요구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오후 2시 15분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를 타고 ‘A급 보안손님’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 방문 -관저 내실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이 5인 회의를 갖고 중대본 방문 결정 -정호성 전 비서관은 윤전추 전 행정관에게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정매주씨를 불러줄 것을 지시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 과정에서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의 남산 1호터널 통과내역(오후 2시 4분과 오후 5시 46분), 이 전 행정관의 신용카드 결재내역을 확인해 이를 근거로 청와대 관계자들을 조사해 최씨의 출입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의 5인 회의는 매주 열렸던 것으로, 4월 16일 최씨의 관저 출입은 사전에 예정됐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알렸다. 박 전 대통령은 5인 회의를 통해 중대본 방문을 결정한 뒤 오후 4시 33분 관저를 출발해 5시 15분쯤 김기춘 전 실장과 함께 중대본에 도착했다. 이후 6시쯤 다시 청와대 관저로 복귀해 그 뒤로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조여옥 대위 청문회 위증 징계” 국민청원…조여옥, 이슬비 대위 누구?

    “조여옥 대위 청문회 위증 징계” 국민청원…조여옥, 이슬비 대위 누구?

    조여옥 대위의 청문회 위증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관심이 높다.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세월호 관련 청문회 위증한 조여옥 대위 징계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세월호 관련해 그 동안 거짓으로 감추고 숨겨왔던 사실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면서 “공적인 자리에 제복까지 입고 나와서 뻔뻔하게 위증을 하던 군인, 위증을 교사 내지 방임했던 그 뒤에 책임자들에 대해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이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반드시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자는 “국가적인 재난의 사실 관계를 밝히는 자리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군인이, 그것도 제복까지 반듯하게 차려입고 나와서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면 해임 내지는 파면과 더불어서 응당한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만 정의를 바로세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청문회에 출석해서 위증한 조여옥 대위의 징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며 아울러 그 배후에 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이슬비 대위의 출석 이유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하여 관련자들 전부 법에 따라 처리하고 일벌백계로 삼아야 우리 군이 바로서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조직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청원은 이날 검찰이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의 행적과 대응 등을 수사한 결과를 발표한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청원은 청원 시작 하루 만인 29일 오후 3시 현재 24885명이 동의했다. 조여옥 대위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간호장교 신분으로 청와대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 미용 시술 의혹이 제기됐을 때 핵심 증인으로 거론됐다. 조여옥 대위가 주사 처방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여옥 대위는 2015년 12월 22일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국정조사 제5차 청문회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당시 조여옥 대위는 미국 연수 중이었는데 이것 역시 의혹의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청문회에서 답변한 증언 중 상당수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증언들과 들어맞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의무실에서 근무했다고 증언했지만 과거 SBS와 인터뷰할 때에는 의무동에서 근무했다고 증언했다. 대통령 관저에서 50m 떨어진 곳에 2층짜리 별도 건물로 있는 것이 의무동이다. 이곳은 대통령 전용 시설이다.그러나 의무실은 직원들이 일하는 집무동에 있다. 이곳은 청와대 직원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의무동과 의무실은 약 500m 떨어져 있다. 귀국 당일 가족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가 나중엔 동기 3명과 저녁식사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청문회에 동행한 이슬비 대위 역시 의혹의 대상이었다. 이슬비 대위는 “공교롭게 휴가가 겹쳐서” 같이 참석했다고 했다가 “국방부 측에서 동행해줄 근무자를 붙여주고 싶었는데 다른 근무자가 동행했을 때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해 동기인 나를 선택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여옥 대위에게 청문회 준비를 시키고, 무언의 압박을 주기 위한 역할 아니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7시간, 박근혜 불쌍’ 홍지만 논평에 김성태 “당 공식 입장 아니다”

    ‘세월호 7시간, 박근혜 불쌍’ 홍지만 논평에 김성태 “당 공식 입장 아니다”

    ‘세월호 7시간’ 수사 결과가 나오자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는 논평을 내놔 논란이 커진 가운데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진화하고 나섰다.●홍지만 대변인 “박근혜 불쌍하다” 했다가 수정 홍지만 대변인은 28일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낸 논평에서 “국민들에게 그 동안 ‘세월호 7시간’으로 세상을 농단한 자들을 주시하고 추적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홍지만 대변인이 말한 ‘세상을 농단한 자’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아니라 세월호 7시간 규명을 촉구한 국민들이다. 홍지만 대변인은 “7시간을 두고 긴 세월 벌어졌던 일은 참담하다”면서 “정상적인 근무 상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 정윤회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라를 뒤흔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의혹에 목청 돋구는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의 말을 받아 일본 언론은 찌라시 같은 연애 소설을 썼고, 모 의원은 있지도 않은 성형 수술을 제기해 온갖 곳을 쑤시고 돌아다녔다”면서 “세월호 7시간을 탓하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태워 올린 그 많은 세력과 사람들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홍지만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참사 발생을 알게 됐고, 최순실씨가 청와대로 오기 전까지 국가안보실장,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한 번씩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검찰의 발표 내용을 소개하며 “실체는 단순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당일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넘긴 오전 10시 22분에서야 침실에서 첫 보고를 듣고 첫 지시를 내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그저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했으면 될 일’이라고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홍지만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참사 당일 오후 최순실씨를 청와대에서 만나 세월호 대책회의까지 한 일도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 홍지만 대변인은 “권력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런 광풍을 저지하지 못해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국정농단이라는 죄목으로 자리에서 끌려내려온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7시간’에 대해 갖가지 의혹이 쏟아졌던 것은 당시 청와대가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과 보고 과정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박근혜 청와대가 “팩트”라며 내세웠던 주장은 상당 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홍지만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밝힌 부분이 논란이 되자 이 부분을 “박 전 대통령이 편파적으로 수사 받았던 게 사실이다”라고 고쳐 언론에 다시 배포했다. ●박주민 “국민이 석고대죄할 일인가” 그러나 여전히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박 전 대통령 옹호에만 급급한 ‘적반하장식’ 논평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세월호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SNS에 “그 동안 많은 분이 세월호 7시간을 이야기해 온 이유는 그 시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300명이 넘도록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그 시간 동안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였다”면서 “많은 분이 세월호 7시간을 두고 화를 냈던 것이 너무나 정당하고 타당했던 것으로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박주민 의원은 “그런데 홍지만이라는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오히려 그동안 세월호 7시간에 대해 화내왔던 사람들이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말 아닌 말을 했다고 한다”면서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과 그 사람을 비호해왔던 사람들이 국민과 피해자 앞에서 석고대죄해야지, 그것을 문제 삼은 국민이 석고대죄해야 할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주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중대본에 가기로 결정한 뒤에도 머리 손질에 한참 동안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해서도 “이러한 태도는 대통령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박 전 대통령,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를 비호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당 공식 입장 아니다” 진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자 내놓은 논평이 도리어 부메랑처럼 자유한국당을 향해 돌아오자 김성태 원내대표가 진화에 나섰다.김성태 원내대표는 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변인의 입장이 어제 밤에 나간 이후로 우리당의 입장이 최종 조율되지 못한 그런 부분이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어제 밤에 나간 대변인 논평에 대해서는 상당한 내용을 수정해서 다시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날 논평은) 공식이라고 확정하긴 어렵다”면서 “대통령이 불행한 사고에 집무실에 있지 않고 침실에 있었단 것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국민들이 어떤 경우든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 한다. 잘못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홍지만 대변인이 처음 내놓은 논평 원문. ■ 세월호 7시간 진실이 밝혀졌다. 이제는 농단 주범이 책임을 말해야 한다.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의혹 수사결과 발표에 경악한다. 검찰은 7시간 의혹엔 실체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 7시간을 두고 긴 세월 벌어졌던 일은 참담하다. 정상적인 근무 상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 정윤회 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라를 뒤흔들었다. 의혹에 목청 돋구는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의 말을 받아 일본 언론은 찌라시 같은 연애 소설을 썼고, 모 의원은 있지도 않은 성형 수술을 제기해서 온갖 곳을 쑤시고 돌아다녔다. 시민이 쓰라고 만들어 놓은 광화문 광장을 몇 년간 불법으로 사용하며 세월호를 불쏘시개 삼아 버텼던 시민단체는 무엇이며, 찌라시 같은 얘기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사실인양 호도하며 쓴 언론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세월호 7시간을 탓하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태워 올린 그 많은 세력과 사람들은 또 무엇인가.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광란의 시간이 너무 오래갔다. 실체는 단순하다. 박 전 대통령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참사 발생을 알게 됐고, 최순실씨가 청와대로 오기 전까지 국가안보실장,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한 번씩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만난 것도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다. 7시간을 두고 난무했던 주장들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런 광풍을 저지하지 못해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국정농단이란 죄목으로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 당시 이처럼 거짓말을 일삼았던 세력에게 참회와 자숙을 요구한다. 현재의 야당 뿐 아니라 시민단체, 소위 좌파 언론을 포함해 7시간 부역자는 모조리 석고대죄 해야 한다. 세월호 7시간을 원망하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거짓말을 일삼았던 세력들에 대한 처벌을 고민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세월호에 대해 고맙고 미안하다고 쓴 문재인 대통령의 글도 이제는 다시 해석되고, 그의 집권 과정의 정당성을 고민하게 된다. 국민들에게는 오는 지자체 선거에서 이런 거짓말로 천하를 덮고, 허공에 온갖 것을 쑤셔 넣어 스토리를 만들고 그 허상 위에서 권력을 잡은 이들을 단죄해 주십사하고 요청 드린다. 그동안 세월호 7시간으로 세상을 농단한 자들을 주시하고 추적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2018. 3. 28. 자유한국당 대변인 홍 지 만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崔연루 통행료·김밥집 결제 내역서 덜미

    검찰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를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제안한 사실을 밝혀냈다. 꼭꼭 감춰졌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최씨가 관여한 정황을 4년여 만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가 찾아 28일 발표했다. 문고리 3인방 등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은 참사 당일 최씨의 청와대 방문 사실이 공개되는 일을 무척 우려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실제 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 작업이 일부 성과를 낸 상황에서도 최씨의 연루 여부는 함구됐다. 검찰은 물증을 통해 최씨의 청와대행을 규명해 냈다. 참사 당일 오후 1시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남산 1호 터널을 두 차례 통과한 내역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이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통해 통행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이 전 행정관은 신용카드로 남산 1호 터널에서 징수하는 혼잡통행료를 두 차례 낸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행정관은 청와대에서 자신의 집으로 향할 때에도 최씨를 태웠지만, 교통체증 때문에 능선을 타고 넘는 남산길로 운행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 전 행정관은 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서 김밥을 먹은 것으로 신용카드 기록 조회 결과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당일자로 확인된 청와대 행정관의 남산 터널 통과 내역을 최씨를 청와대로 이동시키기 위한 운행으로 의심했고, 특검 수사를 거치며 이 전 행정관이 압구정동 일대에서 최씨와 물건을 주고받는 업무 행태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증에 힘입어 검찰은 최씨와 접촉한 박 전 대통령 측근 그룹의 시인 진술을 받아 냈다. 참사 당일 오후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재만·정호영·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청와대 관저에서 회의를 열었고, 최씨의 제안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중대본으로 이날 하루 동안 유일하게 관저 밖 외출에 나섰다. 나상현 기자 greantea@seoul.co.kr
  • 朴, 침실서 전화 안 받아…안봉근이 부르자 뒤늦게 나왔다

    朴, 침실서 전화 안 받아…안봉근이 부르자 뒤늦게 나왔다

    靑 9시 19분쯤 TV로 사고 인지 탑승객 마지막 카톡 10시 17분 朴, 10시 22분에 첫 구조 지시검찰이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의혹인 ‘세월호 7시간’ 당시 상황을 새롭게 규명했다. 당시 청와대가 국회와 언론에 밝힌 행적은 ‘분식’(粉飾·내용이 없이 거죽만 좋게 꾸밈)된 것으로 드러났다.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을 탄핵 결정할 때 박 전 대통령이 당시 대면 보고가 아닌 유선 보고를 받은 정황을 두고 “세월호 7시간 역시 탄핵 사유”라는 소수의견이 나왔는데, 검찰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유선 보고는 물론 서면 보고도 제때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28일 세월호 7시간 사후조작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를 찾았다. 또 박 전 대통령 측이 이날 11차례 실시간으로 서면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다르게 실제로는 오후와 저녁에 1차례씩 서면 보고를 일괄적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당일 저녁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는 데 힘이 드나”라며 당시 상황과 동떨어진 질문을 던진 배경이 드러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참사 당일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러 있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오전 9시 19분쯤 TV 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했고, 28분 뒤 사고 세부사항을 파악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오전 10시쯤 ‘상황보고서 1보’를 전달받은 뒤 박 전 대통령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에 김 전 실장이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한 뒤 1보를 관저에 전달했다. 관저에 닿은 1보는 박 전 대통령 식사와 살림을 봐주던 내실 근무자 김모씨에게 전달됐고, 김씨는 박 전 대통령 침실 앞 탁자에 1보를 두었다. 박 전 대통령과 전화 연결이 계속 안 된다는 김 전 실장의 말에 안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 침실 앞에서 여러 차례 부르자, 침실 밖으로 나와 상황을 전달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침실로 들어가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건 시간은 오전 10시 22분이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의 마지막 카톡 발신 시간인 오전 10시 17분을 구조가 가능한 ‘골든타임’으로 봤다”면서 “골든타임 동안 박 전 대통령이 보고받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이후 국회 등에서 박 전 대통령 보고 시간을 그 이전으로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안보실은 해경과 지속적으로 연락해 사고 상황을 확인하면서 오전 10시 40분쯤 ‘상황보고 2보’, 11시 20분쯤 ‘상황보고 3보’를 완성했다. 2보와 3보도 1보처럼 상황병을 통해 관저로 전달됐다. 대통령 비서실 또한 당일 오전 10시 36분부터 오후 10시 9분까지 11차례에 걸쳐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4·16 여객선 침몰 사고 상황 보고서’를 이메일로 보냈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있다는 이유로 이메일을 받는 즉시 전달하지 않았고, 오후와 저녁에 1차례씩 수신된 보고서를 일괄 출력해 전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11차례 서면 보고를 실시간으로 받았다는 그간의 박 전 대통령 측 해명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안·정 전 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비선실세 최씨와 관저에서 5인 회의를 한 뒤 중대본을 찾았다. 최씨는 당일 오후 2시 15분쯤 신분 확인 절차를 밟지 않는 ‘A급 보안손님’으로 관저를 방문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전용 미용사를 불러 머리 손질을 한 뒤 오후 4시 33분쯤 관저를 출발해 오후 5시 15분쯤 중대본에 도착했다. 이어 오후 6시쯤 청와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렀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탄핵 변론 등에서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집무실”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있는 동안 보고를 여러 차례 놓치거나 회피한 정황을 포착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가 침몰하는 긴박한 와중에도 실시간 상황을 보고받지 않은 채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며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나상현 기자 greantea@seoul.co.kr
  • 박근혜 세월호 중대본 방문도 ‘최순실 작품’

    관저 침실 머문 탓에 연락 안 돼 골든타임 지나서야 첫 보고 받아 오후에 崔와 청와대서 대책회의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인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최순실씨가 당시 청와대 관저에 있었던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대규모 재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박 전 대통령은 참모회의를 소집하지 않은 채 ‘비선 실세’ 최씨를 불러 수습책을 상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28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대통령 보고 및 지시 시간이 모두 조작됐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김장수·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관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간은 참사 당일 오전 10시 20분으로 파악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주장한 오전 10시보다 20분 늦은 시간이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 지시를 받은 시간도 기존 주장처럼 오전 10시 15분이 아니라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10시 22분으로 조사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 침실에 머물며 뒤늦게 보고를 받으면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최초 보고 시간이 원래 오전 9시 30분이지만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사후에 오전 10시로 조작했다고 수사 의뢰했지만, 수사 결과 오히려 20분 앞당겨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최씨는 참사 당일 오후 2시 15분 청와대 관저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과 함께 회의를 열었고, 최씨의 제안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중대본 방문 결정 관여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한국당 “‘세월호 7시간’ 사실무근…박 전 대통령 불쌍하다”

    한국당 “‘세월호 7시간’ 사실무근…박 전 대통령 불쌍하다”

    자유한국당은 28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와 관련, “세월호 7시간 의혹에 실체가 없다고 발표한 것으로, 7시간을 두고 난무했던 주장들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홍지만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놓고 제기된 정윤회 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시술설 등의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홍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만난 것도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을 요구한 촛불집회를 ‘광란의 시간’으로 규정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런 광풍을 저지하지 못해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국정농단이라는 죄목으로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처럼 거짓말을 일삼았던 세력에게 참회와 자숙을 요구한다. 세월호 7시간을 원망하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세월호에 대해 고맙고 미안하다고 쓴 문재인 대통령의 글도 다시 해석되고, 그의 집권과정의 정당성을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오는 지방선거에서 허공에 온갖 것을 쑤셔 넣어 스토리를 만들고 그 허상 위에서 권력을 잡은 이들을 단죄해 주실 것을 국민에게 요청드린다”며 “세월호 7시간으로 세상을 농단한 자들을 주시하고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야 “세월호 진실에 경악·참담·분노”…자유한국당은 “…”

    여야 “세월호 진실에 경악·참담·분노”…자유한국당은 “…”

    여야 정치권은 28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고시간을 조작하고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청와대 관저를 방문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철저한 의혹 해소를 촉구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와 관련한 논평 등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더불어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박근혜 청와대의 보고 조작에 국민은 경악한다. 300여 명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되는 동안 박근혜 청와대는 훗날 책임이 거론될 것만을 염려해 보고 시간과 대통령의 훈령까지도 불법으로 변경하는 인면수심의 행태를 보였다”며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가 아니라 ‘최순실-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선실세 은폐가 중요했던 대통령과 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했던 청와대의 행태에 의혹이 계속해서 남는다. 모든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평화당 장정숙 대변인은 “자신들의 미숙한 대응을 숨기기 위해 유가족을 선동꾼으로 몰고,조사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주도한 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추혜선 수석대변인은 “국민의 생명이 꺼져가는 다급한 순간에 최순실의 오더만 마냥 기다렸던 박 전 대통령의 모습에 참담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최초 보고 시점으로 유추되는 10시 20분부터 최순실 씨가 청와대에 들어와 회의가 열린 14시 15분까지 네 시간여에 이르는 공백 시간에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도 반드시 밝혀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세월호 7시간 최순실 연루” 규명 열쇠는···김밥과 혼잡통행료

    “세월호 7시간 최순실 연루” 규명 열쇠는···김밥과 혼잡통행료

    검찰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를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제안한 사실을 밝혀냈다. 꼭꼭 감춰졌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최씨가 관여한 정황을 4년여 만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가 찾아 28일 발표했다.문고리 3인방 등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은 참사 당일 최씨의 청와대 방문 사실이 공개되는 일을 무척 우려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실제 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 작업이 일부 성과를 낸 와중도 최씨의 연루 여부는 함구됐다. 검찰은 물증을 통해 최씨의 청와대행을 규명해냈다. 참사 당일 오후 1시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남산 1호 터널을 2차례 통과한 내역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이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통해 통행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이 전 행정관은 신용카드로 남산1호터널에서 징수하는 혼잡통행료를 낸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행정관은 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서 김밥을 먹은 것으로 신용카드 기록 조회 결과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로) 급박한 당일자로 확인된 청와대 행정관의 남산터널 통과 내역을 최씨를 청와대로 이동시키기 위한 운행으로 의심했고, 특검 수사를 거치며 이 전 행정관이 압구정동 일대에서 최씨와 물건을 주고받는 업무 행태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증에 힘입어 검찰은 최씨와 접촉한 박 전 대통령 측근 그룹의 시인을 받아냈다. 참사 당일 오후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재만·정호영·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청와대 관저에서 회의를 열었고, 최씨의 제안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중대본으로 이날 하룻동안 유일하게 관저 밖 외출에 나섰다. 나상현 기자 greantea@seoul.co.kr
  • 세월호 당일 박근혜 ‘여성의 사생활’은 없었다

    세월호 당일 박근혜 ‘여성의 사생활’은 없었다

    외부인과 함께 있거나 미용시술 안 받아중대본 한 번 다녀온 것 외에 관저 침실서 종일 혼자 머물러인후염 등으로 몸 상태 안 좋아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컸으나 검찰 수사 결과 미용시술을 받거나 외부인과 함께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말했던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셈이다.‘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및 대통령훈령 불법 수정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다녀온 것 외에는 하루 종일 침실이 있는 청와대 관저 내실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7시간, 혹은 7시간 반의 의혹과 관련해 관여했던 많은 이의 진술과 청와대 내부 기록, 보고서 내용, 청와대와 외부와의 연락 지시 관계 등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 계속 머물렀다”면서 “외부로 나간 것은 중대본에 간 것밖에 없다. 당일 의료진이 들어온 것은 확인이 안 되지만 다른 사람이 들어 온 것은 확인이 안 된다.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즉, 박 전 대통령이 외부인과 함께 있거나 세월호 사고 당일 관저에서 의료진의 미용 시술 등을 받은 사실은 없다는 얘기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당일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후염 증상이 있어 당일 오전 10시 40분쯤 청와대 간호장교가 의료용 가글을 관저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3월 하순에 유럽 순방을 다녀온 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비서관들이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수요일에는 가능하면 일정을 잡지 말라고 비서관들에게 지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몸 상태가 나쁜 것이 세간에서 의혹을 제기한 미용 시술 때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전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시술 때문은 아니다. 어떤 치료를 어떻게 받았는지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이상한 치료나 시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도 침실이 있는 내실에 내내 혼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내실에는 충실한 보좌를 받아 일할 수 있는 집무실은 없지만 응접실, 세미나실, 서재 등이 있고 전자결재 정도는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과 회의를 한 장소도 내실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실에 마련된 공간에서 혼자 식사를 해결했다. 침실에 TV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검찰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 측 유 변호사는 지난 2016년 11월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 조사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며 ‘세월호 7시간의 의혹’에 대한 억측을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檢 “세월호 7시간에 최순실 연루” 규명 열쇠는.. 혼잡통행료와 김밥

    檢 “세월호 7시간에 최순실 연루” 규명 열쇠는.. 혼잡통행료와 김밥

    검찰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오후 청와대 관저를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제안한 사실을 밝혀냈다. 꼭꼭 감춰졌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최씨가 관여한 정황을 4년여 만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가 찾아 28일 발표했다.문고리 3인방 등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은 참사 당일 최씨의 청와대 방문 사실이 공개되는 일을 무척 우려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실제 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 작업이 일부 성과를 낸 와중에도 최씨의 연루 여부는 함구됐다. 검찰은 물증을 통해 최씨의 청와대행을 규명해냈다. 참사 당일 오후 1시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남산1호터널을 2차례 통과한 내역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이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통해 통행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이 전 행정관은 신용카드로 남산1호터널에서 징수하는 혼잡통행료를 낸 것으로 보인다. 이 행정관은 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서 김밥을 먹은 것으로 신용카드 기록 조회 결과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로) 급박한 당일자로 확인된 청와대 행정관의 남산터널 통과 내역을 최씨를 청와대로 이동시키기 위한 운행으로 의심했고, 특검 수사를 거치며 이 전 행정관이 압구정동 일대에서 최씨와 물건을 주고받는 업무행태를 추분히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증에 힘입어 검찰은 최씨와 접촉한 박 전 대통령 측근 그룹의 혐의 시인 진술을 얻어냈다.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재만·정호영·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 관저에서 회의를 열었고, 최씨 제안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중대본으로 이날 하룻동안 유일하게 사저 밖 외출에 나섰다. 나상현 기자 greantea@seoul.co.kr
  •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는 최순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는 최순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최순실,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 관저 방문박근혜, 최순실·문고리 3인방과 대책논의 후에야 중대본 방문 결정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에 ‘A급 보안손님’으로 방문해 박근혜 전 대통령,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세월호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회의를 마친 뒤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하고 머리 손질을 받는 등 외출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수반인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무방비·무대책인 상태로 최씨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이른바 ‘세월호 늑장대응과 7시간의 비밀’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최씨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2시 15분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업무용 승합차를 타고 검색 절차 없이 이른바 ‘A급 보안손님’으로 박 전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에 방문했다. A급 보안손님이란 검색 절차 없이 관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경호원들의 용어다. 박 전 대통령 재직 시 보안손님은 A급과 B급으로 구별됐다. A급은 검색 없이 차량을 타고 관저 정문인 인수문을 통과해 관저 마당까지 들어올 수 있었고 B급은 검색절차 없이 관저 정문인 인수문까지만 차량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A급은 최순실, 피부과 원장이던 김영재와 그 아내 박채윤 등 3명이었다. B급은 기치료사인 오모씨, 왕십리원장인 박모씨 등 비선진료인이었다. 이들 보안손님은 경호실에 출입기록이 남지 않았다.당초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최씨의 청와대 방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및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 조사 등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 담당자 외에 외부인의 관저 방문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가 남산1호터널을 오후 2시 4분과 5시 46분 등 두 차례 통과하고 이 행정관의 신용카드가 결제된 내역을 확인했다. 이 행정관은 최씨의 거처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뒤에서 김밥도 사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를 단서로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 등을 조사해 최씨의 관저 방문을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오전 10시 22분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고, 이어 10시 30분에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 전화로 당연하고 원론적인 구조를 지시한 것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씨가 관저에 도착한 뒤 문고리 3인방과 함께 관저 내실의 회의실에서 세월호 사고에 관해 회의를 한 뒤 중대본 방문을 결정했다. 최씨는 관저에 오면서 정 비서관에게 세월호 관련 상황에 대해 물었고, 정 비서관은 “수석들 의견이 중대본을 방문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최씨는 내실 5인 회의에서 박 대통령에게 중대본 방문을 권했고 이를 박 전 대통령이 수용했다는 게 검찰이 확인한 내용이다.박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을 공식 보고받은 것이 아니라 ‘비선실세’ 최씨의 조언을 받아 국사를 결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다만 검찰은 최씨의 이날 방문이 세월호 때문에 계획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조사 거부로 최씨의 관저 방문 목적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최씨의 이날 관저 방문이 미리 예정돼 있었고, 당시 회의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을 위해 제2부속 비서관실 소속 윤전추 행정관에게 화장과 머리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 매주씨 자매를 청와대로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윤 행정관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정씨 자매에게 “상황이 급하니 빨리 청와대로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최순실 회고록 집필 중…회고록 제목 ‘나는 누구인가’

    최순실 회고록 집필 중…회고록 제목 ‘나는 누구인가’

    최순실 회고록 집필 소식이 전해졌다.최순실씨가 구치소에서 회고록을 쓰고 있고, 제목은 ‘나는 누구인가’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변호인 측이 28일 전했다.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최순실씨가 살아온 인생과 재판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하자는 취지로 이처럼 회고록 제목을 지었다”면서 “다음달 4일 시작되는 2심 재판에도 회고록 내용을 일부 반영한 변론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순실씨는 구치소에서 구입한 공책에 회고록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 출석하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3개월여간 쓴 회고록 분량이 공책 300여쪽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 독일 생활, 특검 조사 때 겪었던 상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최순실씨는 지난해 12월 “감정을 다스리고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된다”는 이경재 변호사의 권유로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현재 기억을 온전히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회고록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경재 변호사는 최순실씨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예로 든 것으로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아베號 향방/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베號 향방/황성기 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무섭게 떨어지고 있다. 니혼케이자이신문이 어제 보도한 아베 내각 지지율은 42%였다. 이달 들어 아사히신문 31%, 마이니치신문 33%의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지지율 자체는 높다. 하지만 닛케이의 2월 말 조사 때의 56%보다 무려 한 달 사이 추락 폭이 14% 포인트나 돼 아베 진영에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속도로 지지율이 떨어져 20%대로 진입하면 집권 여당 내부에서 ‘총리 끌어내리기’ 작업이 가시화할 수 있다. 5%대라는 사상 최악의 지지율에도 마지막까지 권좌를 지킨 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 같은 드문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5년 넘게 집권한 아베 총리에게 그런 여유가 주어질 상황은 아니다.추락 원인은 모리토모학원이란 학교재단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한 스캔들이다. 일본판 ‘최순실 사건’이다. 1년여 전 아베 총리 부부가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 큰 타격을 줬지만 지난해 중의원 해산 후 ‘국난(國難) 돌파’라는 슬로건으로 10월 총선거를 치러 압승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안심도 잠시, 3월 초 아사히신문이 모리토모 사건과 관련한 재무성의 서류 조작을 폭로함으로써 국민의 ‘아베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아베 총리가 위기를 돌파할 몇 가지 방법이 회자된다. 첫째, 총리를 비롯한 내각 총사퇴와 국회 해산이다. 하지만 총선거를 치른 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가능성이 희박하다. 둘째,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 총리가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이다. 일본 정가에는 비둘기파 기시다 후미오(60) 의원과의 ‘거래설’이 돈다. 아베 총리 자신을 지켜 주고 부인 아키에를 국회 청문회에 부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몇 개 파벌이 연합해 기시다 총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럴듯한 시나리오이고 물밑 대화도 있다지만, 아베 총리와 손을 잡는 게 기시다가 파벌 회장으로 있는 기시다파(일명 고치카이)의 정체성과 맞지 않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셋째, 북·일 정상회담으로 난국을 돌파하는 카드다. 일본 정부와 국민의 대북 불신이 강하다는 내부 사정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곧 퇴장할지 모르는 일본 총리를 평양으로 부르기 어렵다는 외부 사정이 겹쳐 카드로 거론되는 수준이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출구를 찾으면 다음 수순은 북·일, 북·중 정상회담이다. 김정은 대화 상대로 중국이야 시진핑 국가주석이 정해져 있지만 혼란스런 일본은 예측이 어렵다. 동북아 스트롱맨 대결에서 ‘지는 해’ 아베 총리가 스파링에 오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marry04@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권력 감시자냐 또 다른 권력이냐… 감사원 독립 커밍순!

    [그 시절 공직 한 컷] 권력 감시자냐 또 다른 권력이냐… 감사원 독립 커밍순!

    감사원은 1963년 3월 21일 정부 회계를 감사하는 심계원과, 직무를 감찰하는 감찰위원회가 통합돼 출범했다. 당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발족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때문에 업무가 정치성과 표적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청와대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감사원을 독립기구화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도 이에 대해 “바람직한 안의 하나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기구화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은 1963년 3월 21일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개원식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감사원 직원들에게 “엄중한 자세로 일할 것”을 당부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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