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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 1천명 격렬시위/어제 광주서/가두진출… 경찰과 투석전

    ▷시위◁ 전남대 학생 1천여명은 17일 하오1시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 도서관 앞뜰에서 「5월투쟁 계승을 위한 2만학도 전진대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가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1시간30분 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교문앞까지 밀고 들어오자 하오4시쯤 해산했다. 목포대ㆍ순천대 등도 이날 하오 각각 집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가 산발적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서구 송암동 광주대학 운동장에서는 교수ㆍ학생ㆍ시민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ㆍ18광주민중항쟁 기념탑」이 제막됐다. ▷광주시내◁ 전국에서 몰려든 대학생들과 재야단체회원들 및 전남대ㆍ조선대 등 현지대학생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시위와 집회 때문에 이미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광주 시민들은 대부분 『경건하고 평화적으로 보내야 할 「5ㆍ18 10주년」이 정치투쟁에 이용되어 광주가 난장판으로 변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전개될 각종 불법시위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망월동 5ㆍ18묘역에는 이날 비가 오는데도 아침일찍부터 추모인파 1만여명이 줄을 이었다.
  • 「광주상처」치유 「특별법」제정 서두를 때

    ◎10주맞아 보상등 치유책을 살펴보면…/국민화합차원서 당략떠나 적극 추진해야/1천2백57명에 최고 3천만원 우선 보상/관련자에 취업ㆍ학자금지급등 혜택…「국가발전 걸림돌」제거 총력 사망 1백95명,부상 1천4백59명,행불자 32명. 모두 1천6백86명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던 5ㆍ18광주비극이 일어난지도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었고 정치적ㆍ사회적으로 많은 교훈을 남겼던 그 「5ㆍ18」이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날의 비극과 아픔이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 있어 광주는 올해도 「5ㆍ18증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6공화국에 들어서 정부도 역사적으로 큰 교훈을 일깨워 준 5ㆍ18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그 성격을 재규정하고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지난 88년 4월1일 정부치유대책을 발표,관련 희생자에 대한 지원과 보상등 광주문제치유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관련 특별법안이 여야의 엇갈린 정치적 이해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등 광주문제 치유는 지금까지도 표류하고 있다.5ㆍ18 10주년을 맞아 지난 2년여동안 추진해온 정부의 치유대책과 그 해결전망,그리고 진정한 광주문제 치유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알아본다. ▷치유책 추진상황◁ ▲관련희생자파악=정부는 88년 4월 1일 광주문제치유대책 발표에 따라 그동안 정부에서 발표한 사상자외에 관련 희생자에 대한 추가신고를 5ㆍ18 8주년인 88년 5월18일부터 6월30일까지 44일간에 걸쳐 받았다. 당초 5ㆍ18관련 희생자는 민간인 1백63명,군경 27명,존속살인 3명등 1백93명이고 부상자는 9백47명으로 5공화국 때 확인 발표됐었다. 그러나 추가신고기간에 5ㆍ18관련 희생자로 7백4명이 신고해와 변호사ㆍ교수ㆍ의사및 관련유족과 부상자 대표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44차례에 걸친 심사를 실시,최종적으로 사망 2명,부상 5백12명,행불자 32명을 추가 확정함으로써 당시 80년 5ㆍ18로 인한 사망자는 1백95명으로 늘어났고,부상자는 1천4백59명으로 크게 불어났으며 행불자도 32명이 추가돼 5ㆍ18관련희생자수는 사실상 총 1천6백86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바로 이같은 사상자의 수가말하듯 한 지역에서 10일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총검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게 됐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 것이었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지만 그동안 사망자가 2천여명이 넘을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정부의 과감한 관련희생자 추가신고로 말끔히 해소해 광주문제 치유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사실 5ㆍ18관련희생자들에 대한 추가신고를 거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문제가 현실문제로 대두돼 80년 광주의 비극은 역사적 교훈으로 내세우고 국민대화합의 차원에서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가 점차 익어갔다. 더구나 5ㆍ18 광주문제 치유를 위한 광주시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도 차차 허물어졌으며 관련희생자나 단체들도 정치적 문제를 제외한 제반문제에 대해서는 광주시장과 대화의 채널을 갖게 됐다. 실로 추가신고를 받아 놓고도 신고자에 대한 관련여부를 확인ㆍ검증하기 위한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심사위원을 맡는 것조차 기피할 정도였다. 그 문제도 몇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무사히 넘길수가 있었다. 추가신고 접수후 추후보상에 대비,관련부상자에 대한 상이정도 판정은 전남대와 조선대등 종합병원 전문의사들로 검진실무위원회를 구성하고 8개 전문과목별로 과거의 진료기록과 후유증 정도,본인의 진술및 현재의 건강상태를 종합하여 개인별로 검진을 실시하여 그 검진기록을 토대로 종합병원 병원장급으로 구성된 판정위원회에서 산재보험법에 규정된 등급기준에 따라 판정을 실시,지금까지 모두 1천1백17명을 판정하기에 이르렀다. ▲생활안정자금 지급=88당시 정부치유대책을 추진하면서 광주시에서는 희생자들의 생계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입장에서는 처음으로 관련대상자 1천2백68명(연고자가 없는 2명은 미지급)에게 1인당 3백만원씩의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함으로써 5ㆍ18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사실 3백만원의 생활안정자금만 하더라도 당초 관련희생자 1백명을 한정하여 생계가 어려운 유족과 당사자들에게만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많은 관련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그당시까지 5ㆍ18관련희생자로 인정된자들에게 모두 지급키로 결정,88년7월27일부터 자금지급에 나섰다. 치유대책 초기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이 워낙 높아 당국과 관련희생자간에 대화자체가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아픔을 함께한다』는 광주시 당국의 진지한 대화노력이 주효했으며 정부치유의지를 확인시켜 상호협조적 자세로 전환하게 된 과정에서 비록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3백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이 큰 역할을 하게됐다. 이와 함께 시는 관련자들에게 의료보호ㆍ학자금지급혜택을 주고 중증부상자에게는 의료보호에서 제외되는 진통제등 특수약품을 지급했으며 관련자중 일부 희망자 1백37명을 중앙과 지방에 각각 취업시키는등 지방행정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과감히 시행,광주치유에 대한 정부의지를 가시화 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노태우대통령이 광주관련 특별법제정 전이라도 관련희생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지원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에 따라 중상이자와 사망자 유족에게 1인당 3천만원,일반상이자에게는 최하 5백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선보상을 실시,14일 현재까지총대상 1천3백2명중 96.5%에 해당하는 1천2백57명에게 이미 지급,광주문제 치유는 일부의 반대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떻든 깊은 단계에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법제정 추진=88년 11월 26일 노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치유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발표함에 따라 그동안 정부여당에서는 관련희생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안을 마련하여 지난 3월 임시국회에 제출했으나 현격한 여야의 시각차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채 다시 10주년을 맞고 있다. ▷해결전망과 관건◁ 광주문제가 조기에 종결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 속에서도 정부치유대책발표 2년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고 그 해결전망 또한 그리 밝지 못한 것은 법안에 대한 여야간 좁혀지지 않은 시각차다. 정부ㆍ여당에서는 국민화합차원에서 치유대책에 접근하고 있는 반면 야당이나 강경 재야단체에서는 정부의 잘못을 전제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여야가 법안의 성격에 대해서부터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관련희생자에 대한 보상수준과 기념사업의 범위에 대해서도 여야간에 논란이 있어 현실적으로 광주문제 치유에 어려움이 있다. 광주문제 치유의 정부측 창구역할을 맡고 있는 최인기 광주시장은 『10여년이나 지난 상태에서 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자료가 대부분 멸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동안 고통속에서 어렵게 생활해 오고 있는 관련희생자들의 욕구가 일시에 분출하여 이들을 설득하고 정부치유 의지를 신뢰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실토하고 『광주문제가 더이상 국가와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인 만큼 이의 조기해결과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광주관련 특별법이 조속히 입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시장은 『현재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의 성격과 보상수준,기념사업범위 등에 있어서도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하여 조속히 처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광주문제는 이러한 어려운 쟁점들에 대해 여야가 양보와 타협을 통해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느냐에 해결의 관건이 달려 있다』고 밝혔다. 「6ㆍ29 노태우선언」이후 그동안 경직된 정치ㆍ사회적 현실이 풀리고 제13대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거친 후 「민화위」에서 5ㆍ18의 상황과 진실이 차츰 수면에 부상됐을 때 광주문제는 치유를 향한 방향이 설정됐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16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와 광주문제 청문회에서 5ㆍ18의 모든 것이 낱낱이 증언됨으로써 5ㆍ18관련희생자들에 대한 치유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온 국민적 합의였음에도 광주문제는 그때 그때의 정치ㆍ사회적 이슈에 편승하여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아직도 그에 따른 관련특별법 제정마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바로 이같은 상황으로 인해 불만과 불신은 상승작용을 하게 마련이었고 광주는 해마다 5월만 되면 「5ㆍ18증후」로 몸살을 앓아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5ㆍ18도 반목과 갈등이 고조되는 속에서 화염병과 최루탄가스가 거리를 휩쓸고 있다.
  • 광주대학생 도심 산발시위/「5ㆍ18」앞두고

    ◎3천여명 경찰과 화염병공방/학생 10여명ㆍ전경 19명 부상 【광주=임정용ㆍ성종수기자】 5ㆍ18 10주기 이틀을 앞둔 16일부터 광주지역 대학생ㆍ재야인사들의 시위가 과격ㆍ폭력시위로 치닫고 있다. 전남대ㆍ조선대생등 남대협소속 대학생 3천여명은 이날 하오2시 조선대 민주로에 모여「5월투쟁선포식」을 갖고 강제해산에 나선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지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는등 폭력ㆍ과격시위를 벌인뒤 금남로와 중앙로ㆍ당주천변 등으로 2백∼3백여명씩 몰려나와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 학생들은 하오7시20분쯤 다시 광주시 동구 대인동 시외버스 공용정류장앞에 나와 시위를 벌이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서울시경 소속 서울7무9675호 2.5t 타이탄트럭을 길바닥에 전복시키기도 했다. 또 학생들은 이에앞서 하오3시쯤 경찰 10개중대 1천5백여명이 교내로 진입,강제해산에 나서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1시간30여분동안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도중 경찰에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조선대생 이선창군(20ㆍ치의예과2년)이 경찰이 쏜 SY­44를 입부위에 맞아 조선대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으며 윤영규군(20ㆍ기계공학1년)등 대학생 10여명이 최루탄 파편등으로 부상을 입었다. 한편 이날 시위진압에 나선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고영주상경이 시위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얻어맞아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등 전경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날 하오 시위현장에서 조선대생 김대영군(20ㆍ기계공학과2년)등 52명을 연행,조사하고 있다.
  • 경찰,시위 과잉진압 말썽/전주/시위대 각목 구타…항의 시민도 폭행

    ◎부산선 대학유리창등 파손 【전주】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이 쇠파이프와 각목등으로 시위대를 구타하고 이를 항의하는 시민까지 폭행하자 시위현장 주변에 있던 상인과 주민 6백여명이 파출소에 몰려가 농성을 벌였다. 16일 하오6시쯤 전북대생등 대학생 2백여명이 전주시 진북동 모래내 시장 주변에 모여 「민자당 해체」 「노태우정권 퇴진」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1개 중대병력을 출동시켜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에 나섰으나 이과정에서 쇠파이프와 각목등으로 도망가는 학생들을 구타하고 이를 항의하던 일부 시민도 폭행하자 시장 상인과 시민 6백여명은 하오7시30분쯤 인근 진북동파출소(소장 노병호경위ㆍ53)에 몰려가 연행학생석방 및 과잉진압 사과를 요구하며 하오10시쯤까지 농성을 벌였다. 한편 경찰은 시민들에게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자진해산을 유도했다. 【부산】 15일 하오4시10분쯤 부산시 남구 대연동 부산공업대 대연캠퍼스 앞길에서 이 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부산남부경찰서 도보대소속 179중대 등 3개중대 병력 2백50여명이 교내로 진입,학생들을 구타하고 학교기물을 마구 부수는 등 과잉진압을 해 말썽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이 학교 학생 3백여명이 학교앞에서 이 대학 운영개선을 요구,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자 최루탄을 쏘며 후문을 통해 교내로 진입,도서관과 체육관ㆍ교양관 등으로 달아나는 학생들을 뒤따라가 시위진압용 죽봉 등을 마구 휘둘러 유리창등 학교기물을 부수고 학생 5∼6명을 집단 폭행하는등 20여분간 과잉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 시위학생 검거하려 전경50명,교회난입/최루탄 쏘며 10여분간 소동

    【전주연합】 15일 하오7시쯤 전주시 다가동 성광교회(담임목사 김경섭ㆍ58)에 전경 50여명이 들어가 교회안에 숨어있던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사과탄 2발을 터뜨리고 돌 20여개를 던져 현관 대형유리창 6장과 교회 뒷유리창 3장을 깨뜨리는등 10여분동안 소란을 피웠다. 교회관리인 김귀성씨(49)에 따르면 교회에서 2백여m 떨어진 전주백화점앞 관통로에서 학생 2백여명이 「민자당 해체ㆍ노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쫓겨 50여명이 교회안으로 피신하자 뒤쫓아 온 경찰 50여명이 교회안까지 들어와 현관에 돌을 던지며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교회안에 피신했던 학생들은 전경들이 교회안까지 진입하자 교회내 2층 예배실로 모두 피해 붙잡히지는 않았다.
  • 불발 최루탄 갖고 놀다 국교5년생 중상

    12일 하오3시30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1동 광운대 정문 앞길에서 이웃 장관영군(13ㆍ선곡국교5년)이 터지지 않은 최루탄을 잘못 가지고 놀다 최루탄이 터지면서 왼쪽 손가락을 잘리고 허벅지와 발목 등에 중상을 입었다. 이 최루탄은 지난11일 광운대학생들의 시위때 경찰이 쏜 것으로 안전핀이 뽑힌채 터지지 않고 굴러다니던 것이었다. 장군은 이날 이 최루탄을 주워 땅바닥에 두드리며 놀다 변을 당했다.
  • 3개대 압수수색/시위용품등 수거

    【전주】 전북도경은 13일 상오4시30분부터 1시간동안 전북대 원광대 우석대 등 3개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시위용품과 진압장비 등 37종 3만3천여점을 압수했다. 경찰은 이날 사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9백여명의 병력을 동원,전북대에서 쇠파이프 1백65개,화염병 1백82개 등 시위용품과 불발최루탄ㆍ방패 등 시위진압장비 13종 1천3백여점,원광대에서 14종 3만8백여점,우석대에서 10종 1천1백여점을 압수했다.
  • 수산대생 7백명/심야에 격렬시위

    【부산】 부산 수산대생 2천5백여명은 12일 하오3시부터 교내 대강당에서 「광주항쟁 10주년기념 민족의 노래대잔치」 공연과 함께 영화 「파업전야」 상영회를 가졌다. 이들중 7백여명은 하오10시30분쯤 행사가 끝난뒤 교문밖으로 진출하려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 이들의 가두진출을 막았다.
  • 민연추 어제 강연회/참석학생 시위 기도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는 12일 하오2시쯤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서 백기완공동대표,이부영씨 등 재야인사와 학생 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강연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에서 『민자당은 내각제개헌 음모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당을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집회가 끝난뒤 학생 1천여명은 스크럼을 짜고 가두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해산했다.
  • 이 진정국면을 잘 살리자(사설)

    지난 한달동안 사회를 경색시켜온 KBS사태가 해결국면으로 진전되고 있다. 각부서의 간부급 사원들이 제작복귀를 결심했고 오늘부터는 보도본부소속의 기자 1백50명이 제작에 복귀하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상당수 사원들의 뜻이 이렇게 선방송정상화 움직임으로 옮겨가자 강경하던 파업주체인 비대위측에서도 18일에 일단 「정상화」로 복귀할 것을 결정했다. 한치 앞을 짐작하기 어려운 혼미속에서 파국으로 치닫던 공영방송이 이만큼에서라도 제자리를 찾아 수습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잖아도 「반민자가투」로 폭력시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터에 KBS사태라도 진정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은 일말의 안도감이 들게 한다. KBS와 함께 시한폭탄처럼 위기감을 조성하던 현중의 「골리앗 농성」도 10일로 일단 풀렸다. 우리의 봄정국을 심각하게 사로잡았던 두가지의 난제가 이렇게라도 풀릴수 있게 된 것을 진정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모처럼 조성된 이 진정국면을 이제부터 잘 살려나가지 않으면 안된다.우선은 강경구조의 집단시위는 모면하게 되었지만 어느 쪽이건 근원적인 해결을 본 것은 아니다. 명분으로 보나 합법성으로 보나 승산이 약한 집단행동이었으므로 진로정비를 하여 재도전하려는 의지로도 볼 수 있고,응어리가 다시금 팽창해서 새로운 긴장국면을 부르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일들이 대단히 중요하다. 더구나 작금의 연이은 체제부정세력의 극렬한 폭력시위는 온 거리를 화염병으로 그을리고 있다. 거기 맞서는 공권력의 최루탄 가스는 세상을 초연으로 뒤덮을 기세다. 가뜩이나 체증심한 도심의 교통이 데모공방에 의해 불시에 마비가 되기도 한다. 미국문화원이 방화세례를 받았고,서류들이 훈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판국에서 두개의 커다란 난제가 풀린 것은 그나마 여간 잘된 일이 아니다. 속에 남아있는 불씨의 잔재가 디시 불길에 댕기지 않도록 서로 빌미를 주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습국면에 들어선 시위현장과 그 구성원들이 이제부터 겪어야 할 갈등 또한 만만치가 않다. 서로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적대와반목의 경험만을 쌓은채 미봉적으로 끝난 사태가,명실공히 정상화에 이르자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상하,좌우가 온통 갈등의 관계로 찢겨버렸고,단절되고 파괴된 목전의 현실들이 폐허처럼 일할 의욕을 좌절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걸 뛰어 넘지 않으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여기서 한걸음만 또다시 비틀거린다면 그때는 종언의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의 KBS를 국민들은 더는 관용하지 않을 것이다. 근로자들에 대한 국민여론도 가혹해지고 질책 또한 과격해질 것이다. 그걸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함께 삶의 뿌리를 두고 있는 이땅이,지난 몇 십년의 공을 무너뜨린채 황폐하고 실패한 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파행의 뒤끝에 생긴 갈등의 깊은 골을 메우고 상처를 회생시키는 일에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된다. 제발,이 기회를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우리의 공동의 상처가 회복되는 기회가 되게 하기를 간절히 당부한다.
  • 폭력시위는 끝내야 한다(사설)

    이게 무슨 일인가. 전국 17개 도시에 화염병이 날고 특히 서울 도심에는 밤새워 최루탄이 터져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과연 우리에게 지금 그럴만한 일이 있는가.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 대학생 격렬시위의 재확대는 참으로 무의미하고 마땅히 그 사연을 따져야 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태는 일어났고 미국문화원 건물마저 탔으며 또 반복되는 부상자와 구속자의 수가 기백명단위로 높아졌다. 개탄하기도 이제는 지쳤으나,그러나 또 개탄하면서 망연해 질 수밖엔 없다. 물론 느닷없는 일이 아니라 예고됐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규모의 상황에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느냐에 있지는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시위를 조직하면서 전대협이 추구했던 소위대중성의 재확보가 혹시 성취됐다고 운동권학생들이 믿게되는 것이나 아닌가에 있다. 그동안 전대협은 동구권의 변화까지 겹쳐 실제로 마땅한 운동 이슈를 못찾아 왔고 이를 합당분쇄로 내걺으로써 대중성의 재기를 시도해 왔음은 공지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 들고 나온 이슈가 결코 공감 확대의 주제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권의 문제이지 체제의 본질문제도 아니고 도덕적 정통성의 문제도 아니다. 학생시위가 여기에까지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오늘의 학생운동이 이제는 그저 타성적으로 운동을 유지해 가려는 악습에 젖어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또 오늘날 우리 젊은세대의 상상력이 너무나 비창조적이라는 데 절망감을 갖는다. 젊은이들의 주장이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그것이 기성체제에 즉시 수용은 되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새관점과 감각을 일깨우고 기성이념이 다시한번 스스로를 반성케 한다는 데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전과 달리 이즈음의 행태는 기성체계의 답답함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정체적 고루함까지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주장하는 바의 끝이 어떤 미래의 조망인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과연 이 새세대를 향해 이 나라의 내일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사태가 이런 식으로 더 계속된다면 우리는 최소한 치안질서에 있어서도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지켜야 할 질서마저 그동안 운동적 상황에 의해 많은 유예를 해오던 관습으로 확고히 하지못한 형태를 만들어 왔던 것이 또하나 우리의 병폐이다. 예컨대 화염병사용을 엄히 규제토록 법을 만들었으나 여전히 이 법의 준용은 많은 예외를 만들고 있다. 시위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시행형식은 더 기본적 질서와 사회적 약속들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는 지켜야 할 마땅한 질서규범들의 원칙들을 좀 더 선명히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기초 위에 정치적 시위의 격렬함과 폭력이 어떤 민주화도 이룩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가야만 할 것이다. 정부가 재천명한 사회질서 확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이제는 실제로 실천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이제 폭력시위는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또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진지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이틀째 도심 가두시위/2천5백명/도로막고 화염병 던져

    서울대등 서울시내 13개 대학생들은 9일에 이어 10일하오 각 학교별로 민자당창당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진 뒤 이가운데 2천5백여명은 하오 6시30분쯤부터 동숭동 대학로 퇴계로 대한극장앞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들은 이날 하오6시30분쯤 동대문구 동숭동 대학로에 모여 왕복6차선도로 5백여m를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자 30여분만에 해산했다. 이들 가운데 1천여명은 하오7시30분쯤 중구 퇴계로 4가 대한극장앞에 다시모여 6차선 도로를 점거,「해체민자당」등의 구호를 외치고 화염병을 던지며 1시간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제지하자 하오9시쯤 대부분 해산했고 이 가운데 2백여명만 동국대 후문쪽 골목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에 화염병 5백여개를 던지며 30여분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역시 해산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시내에서 학생 등 3백여명을 연행했으며 경찰관과 학생 등 1백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민연합」은 이날 하오6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민자당해체ㆍ노태우퇴진촉구 제2차 시민대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재야인사ㆍ학생등 2백여명만 참석한 가운데 1시간여만에 약식으로 집회를 마쳤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뒤 가두로 나가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이 막자 이중 1백여명이 성당으로 돌아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 1만여대학생 “반민자”격렬시위/심야까지 도심 곳곳서 화염병 공세

    ◎전경버스등 차량6대 전소/미문화원 피습,1층 일부 태워/1백50명 연행… 전경등 2백명 부상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등 「전대협」소속 서울시내 32개 대학생 9천여명은 민자당 창당대회가 열린 9일 하오5시30분쯤부터 밤11시까지 시청앞ㆍ남대문ㆍ신셰계백화점앞ㆍ명동입구ㆍ서울역앞등 서울시내 도심 곳곳에서 『민자당해체』등의 구호를 외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6공들어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또 부산ㆍ대구ㆍ광주ㆍ전주ㆍ마산 등 지방에서도 이날밤 대학생 5백∼1천여명이 지역별로 시내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서울에서는 미문화원 1층 농업무역관등 30여평과 전경버스 4대와 형사기동대 봉고버스1대가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불탔으며 서울의 용두ㆍ봉천파출소와 지방의 대구 중부경찰서,비산ㆍ동산파출소,부산 사상파출소,대전 대홍파출소,인천 축현파출소 등 10곳이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이날 시위로 전경과 학생등 2백여명이 부상했고 시위학생 1백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앞서 서울지역 32개대학생 1만2천여명을 비롯,전국 95개 대학생 4만2천여명은 이날 낮 각 학교별로 「민자당해체 출정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어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국민연합」측이 하오6시 1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기로 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촉구 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곧바로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서울시내 대학생들은 이날 하오5시30분쯤부터 집회장소로 예정되어 있던 시청앞 쪽으로 몰려들었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고 남대문옆 삼성본관건물앞 차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시작했다. 이어 시위대는 남대문에서 신세계백화점에 이르는 도로를 점거하고 2시간30여분동안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하오 8시쯤 학생들은 일단 흩어졌다가 3백명∼5백명 단위로 다시 모여 미도파 백화점앞과 롯데호텔앞,서울역광장등지에서 시위를 계속했으며 하오9시쯤에는 시위학생 숫자가 최고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 가운데 5백여명은 하오9시쯤부터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지방서도 산발시위/파출소ㆍ민자지구당 기습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민운동본부 주최로 9일 하오6시 부산진구 옛 부산상고 교정에서 열릴 예정이던 「민자당 해체와 노태우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부산의 24개 대학(전문대포함) 2천여명의 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은 하오6시쯤부터 서면ㆍ남포동ㆍ사상지역 등으로 진출,곳곳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백∼3백여명씩 떼를 지어 파출소2곳과 민자당 지구당사 1곳에 화염병을 던지는등 기습시위를 벌이다 자정쯤 해산했다. 【대구=김동진기자】 대구ㆍ경북지역 대학생 및 재야 15개단체회원 2천여명은 이날 하오3시 경북대에서 집회를 가진뒤 시내로 진출,하오5시30분쯤 북구 칠성시장에서 가두시위를 시작,하오11시까지 1백∼5백여명씩 몰려 다니며 시내 곳곳에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등을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시위대는 대구 중부경찰서에 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고 비산파출소와동산파출소를 습격하는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광주=임정용기자】 전남대ㆍ조선대등 전대협소속 대학생 1천여명은 이날 하오5시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광주ㆍ전남 민주연합 주최로 열려던 「민자당 해체,노태우정권퇴진 촉구 국민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된뒤 광주시내 곳곳에서 심야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수원】 경기도내에서는 9일 수원ㆍ성남ㆍ안양ㆍ부천ㆍ안산등 5개지역에서 3천1백여명의 학생ㆍ근로자들이 하오7시부터 『민자당 창당규탄 국민궐기대회』를 가지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이날 자정까지 시내 곳곳에서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등 산발시위를 벌였다. 성남시내에서는 1천2백여명의 학생ㆍ근로자들이 이날 하오8시쯤 행사장인 성남시청에서 5백여m 떨어진 인하병원앞에 집결,1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하다 흩어져 시내 곳곳에서 산발시위를 벌였고 수원에서도 시위대 5백여명이 집회장인 수원역 부근에 집결하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흩어졌다. 또 안양지역의 시위대 6백여명은 벽산빌딩앞에서,안산지역 시위대 3백여명은 나성호텔앞에서,부천지역 시위대 5백여명은 부천 북부역광장 등지에서 각각 산발시위를 벌였다. ○전민련등 재야단체 명동서 약식대회 한편 「전민련」 「전노협」 등 전국 52개 재야ㆍ노동단체들로 이뤄진 「민자당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은 이날 하오6시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입구에서 약식으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 국민궐기대회」를 강행했다. 이날 대회는 당초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명동성당으로 개최지를 바꿔 계훈제씨ㆍ이부영씨등 재야인사ㆍ학생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남짓 진행됐다.
  • 대학생 5백명 횃불시위/광주/민자당해체 요구… 5㎞ 행진

    ◎화염병 던져 최루탄차 전소 【광주】 「남대협」소속 대학생 5백여명이 8일 하오9시20분쯤 광주시 동구 중앙로 태평극장 앞길에서 1백50여개의 횃불을 들고 「민자당 해체」등을 주장하며 횃불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태평극장 부근에 흩어져 있다가 갑자기 몰려 나와 미리 준비한 횃불용 솜뭉치에 불을 붙여 들고 이곳을 출발,금남로 한국은행 앞 네거리∼북구 유동 네거리∼북구 신안동 철도 건널목까지 5㎞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학생들이 1시간여동안 횃불시위를 벌이며 신안동 철도 건널목에 이르렀을 때 1개중대 1백50여명의 병력을 동원,최루탄을 쏘아 해산시켰다. 이에앞서 대학생 50여명은 하오7시40분쯤 광주시 북구 유동 111의12 삼성전자 대리점앞에 주차해둔 광주북부경찰서 소속 광주5가 4812호 다연발 최루탄발사차량에 화염병 20여개를 던져 차량내부를 전소시키고 달아났다.
  • 불발최루탄 던지다 현대중근로자 실명

    【울산=이용호ㆍ박대출기자】 석가탄일인 2일에도 현대중공업 공권력투입에 항의하는 근로자들의 시위가 현대중전기 정문앞등 울산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져 시위에 참가한 근로자 1명이 실명됐다. 이날 상오9시쯤 울산시 전하2동 만세대아파트 앞에서 현대계열사 근로자 1천여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현대중공업 도장1부 김종복씨(44)가 불발사과탄을 주워 경찰을 향해 던지다 폭발,오른쪽 손가락이 절단되고 오른쪽 눈이 실명돼 울산 해성병원에 입원했다.
  • 분규여파,70만시민 생계 주름살/「현중사태」로 본 울산경제 손실

    ◎수주선박 취소등 수백억 피해/2천여 하청업체,월급도 못줘/백화점ㆍ상가ㆍ유흥가 “매출 70%나 줄었다”울상 현대중공업 사태의 장기화와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연대파업 확산으로 울산지역경제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대그룹 울산지역 12개 계열사등 현대그룹 관련업체가 이지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상회,70만 시민의 생계와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전국에 산재한 4백53개의 1차 협력업체,1천5백여개의 2차협력업체등 모두 2천여개 업체가 납품을 못해 생산을 중단하거나 수금이 어려워 이에 종사하는 전국의 근로자 15만여명이 생계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현대계열사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이들 협력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르러 조업중단이 장기화 되면 이들은 즉각 도산위기에 직면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차 협력업체 1백7개,하청업체 6백61개등 협력업체가 1천1백34개이며 현대자동차는 90개 하청업체등 3백10개 협력업체를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28일부터 조업이 중단되자 하루승용차 2천2백대를 포함,2천6백26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해 1일 현재 4백20억원의 매출손실과 1백3억여원의 순손실이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도 지난달 23ㆍ24일 태업과 25일 이후 7일간의 파업으로 4백30억여원의 매출손실과 1백30억여원의 고정비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업중단으로 수주받은 선박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노르웨이 베르게센선사와 지난 3월부터 추진해온 9천8백만달러짜리 광석운반선(30만t급)1척의 신조계약이 취소되는등 신조계약 취소사태까지 속속발생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현대 미포조선의 경우도 4월초 수주받았던 일본 도쿠마루가이운사 시발리호 수리계약이 1일 취소됐다. 이밖에 컨테이너 수출업체인 현대정공과 현대종합목재등도 수출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같은 현상들은 울산시민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있다. 현대중공업 2만2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지난 4월분 봉급1백50억여원을 지급받지 못하자 울산지역 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공권력이 투입돼 사태가 악화된 지난달 28일 시내 주리안 백화점 슈퍼마켓 주요상가 음식점 유흥업소등의 수입은 10%정도 감소되기 시작,2일 현재에는 20%에서 최고 70%선까지 줄어들고 있다며 상인들은 울상이다. 시민들은 2중 3중의 검문검색이나 교통두절로 인한 통행지장및 최루탄가스,상가철시등 일상생활의 불편함보다는 생계타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선박의 열교환기를 생산,현대중공업에 납품하고 있는 동아정기 대표 김강희씨(57)는 『매달 7천만∼8천만원정도의 물량을 납품해왔으나 4월에는 4천여만원어치밖에 납품하지 못해 자금확보에 고통을 겪고 있다』며 『직원들의 생계가 막연하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 울산시가지 온통 최루가스/현대계열 근로자 격렬시위

    ◎현대자등 9개사 파업ㆍ조단/「골리앗」1백20명 농성 계속 【울산=이용호ㆍ박대출기자】 현대중공업 공권력투입 4일째인 1일 현대자동차등 현대그룹계열 4개업체가 파업에 돌입하고 5개업체가 조업을 중단한 가운데 일부 근로자들이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등 과격시위를 벌여 이날 하룻동안 울산시내가 온통 최루가스로 뒤덮였다. 현대중공업 근로자 4천여명은 이날 상오 일산동 변덕고개에서 보도블록을 깨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투석전을 벌인후 하오늦게까지 대치했으며 현대종합목재 근로자 7백여명도 동부동 남부고개에서 시내로 진출하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심한 투석전을 벌였다. 이날 상오9시쯤 농성근로자 1백여명은 울산시 전하동 민자당 정몽준의원 사무실에 돌을 던져 대형 유리창 8장을 깨고 하오2시30분쯤에는 전하동 만세대광장 부근에 있는 현대중공업 사원용 경로당ㆍ목욕탕건물(40평)에 화염병을 던져 불태웠다. 또 이날 하오3시30분쯤 울산시 동구 전하2동 653의28 오정환씨(50)집 2층 베란다에서 시위를 하다 피신했던 이갑연씨(41ㆍ현대중공업 시운전부)가 경찰을 피해 도주하려고 아래로 뛰어내리다가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한편 현대자동차 근로자 1만5천여명은 이날 상오9시30분부터 회사본관앞 잔디밭에서 노동절 기념행사를 갖고 당초 1일로 예정한 파업시한을 4일까지(2일은 휴무)로 연장키로 결정한후 상오10시30분부터 시가를 행진하며 「노정권퇴진ㆍ민자당해체」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현대중공업의 공권력투입에 항의,파업을 결정한 현대정공은 상오9시 5백여명의 근로자들이 출근,같은 계열의 노조시위에 합류했으며 현대종합목재 근로자 7백여명은 이날 출근한뒤 부서별로 집회를 갖고 노조대의원회의에서 35명중 27명의 찬성으로 1일 하루를 파업하고 3일이후의 파업여부는 다시 결정키로 했다. 이지역 현대계열 12개업체중 1일하루 파업을 한 업체는 현대자동차ㆍ현대정공ㆍ현대종합목재ㆍ현대중장비등 4개업체이고 부분조업을 한업체는 현대미포조선ㆍ현대중전기ㆍ현대강관ㆍ현대로보트산업등 5개업체,정상조업이 이뤄진 업체는 현대철탑ㆍ금강개발등 2개업체이다.한편 이날 상오4시50분쯤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였던 노조원 정봉철씨(28ㆍ의장외업2부)가 내려와 경찰에 연행,조사를 받고있다. 정씨는 경찰에서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근로자는 이갑용비상대책위원장(31)등 수배중인 5명을 포함,모두 1백20여명(경찰발표 57명)이며 라면15상자와 쌀 10㎏등이 비축돼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연행한 현대 중공업 파업주도 근로자 김재생씨(36ㆍ의장외업2부)등 9명을 업무방해등 혐의로 구속했다.
  • 현대계열사4곳 「동조파업」/어제 곳곳서 격렬시위…

    ◎국교 5곳 수업단축/크레인농성자 강제연행 검토 【울산=이용호ㆍ박대출기자】 현대중공업 공권력 투입에 항의,현대자동차 노조가 30일 파업에 들어가는등 현대그룹 울산지역 계열사 노조들의 동조파업이 확산되고 일부근로자들이 시내 곳곳에서 가두시위를 계속해 현대중공업사태 후유증이 심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노조원 2만여명은 이날 상오9시30분쯤 본관앞 잔디밭에 모여 비상총회를 갖고 이날부터 2일동안 시한부파업에 들어갈것을 결의했다. 이날 총회에서 기립방식으로 시한부파업을 결의한 노조는 1일까지 현대중공업등에 배치된 경찰철수와 연행자전원석방이 이뤄지지않을 경우 1일 비상대의원회의를 열어 파업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계열사◁ 현대중공업ㆍ현대중장비에 이어 현대자동차ㆍ현대종합목재ㆍ현대정공 등도 이날 파업에 들어가 현대그룹 울산지역 계열사 가운데 5개사가 파업을 하고 있다. 현대중전기ㆍ현대전동기ㆍ현대로보트ㆍ현대미포조선ㆍ현대철탑 등 5개사는 이날 일부 또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조업을 거부하고 있어 정상조업이 되지 않고 있으며 파업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현대강관과 금강개발은 이날 정상조업이 이뤄졌으며 현대강관은 5월1일과 2일 휴무한뒤 3일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현대종합목재 노조는 이날 상오11시쯤 본관앞에 모여 조합원임시총회를 열고 전체조합원 1천2백70명 가운데 9백87명이 찬성,파업을 결의했다. 현대정공 노조도 이날 하오2시 임시대의원대회를 갖고 파업을 결정했다. ▷농성근로자◁ 골리앗 크레인위에서 3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57명의 노조원들은 20여명씩 교대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경찰의 해산종용을 거부하고 있다. 노조측은 이들 노조원들이 계속된 철야농성으로 탈진하자 무전기로 회사측에 구급약을 보내줄 것을 요청,이에대해 회사측은 『구급약은 의사의 처방없이는 곤란하다』며 식수만을 공급해주고 환자들을 빨리 내려보내 의사의 진찰을 받도록 설득 권유했다. ▷가두시위◁ 현대중공업 근로자 1천여명은 이날 상오9시쯤 현대중전기 앞에서 왕복4차선 도로를 점거,「구속자 석방」 「노동자 해방」등의 구호를 외치고 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히 시위를 벌였다. 이날 가두시위로 현대중전기앞 도로가 차단되고 경찰의 최루탄발사 등으로 화진국교등 5개국교가 수업단축조치를 취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28일부터 연행한 근로자 6백63명에 대한 분류작업을 끝내 이가운데 적극 가담자 1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불구속 64명 즉심 1백24명 훈방 4백56명의 조치를 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 경찰의 KBS진압 「여의도작전」 이모저모

    ◎산발저항속 45분만에 “해산완료”/노조원 대부분 귀가한 뒤에 진입개시/안위원장은 지하통로 거쳐 미리 피신 ○…30일 하오 11시15분부터 진입을 시작한 경찰병력은 본관 2층 민주광장과 IBC빌딩등 두 방향으로 진출,먼저 민주광장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3백50여명의 노조원들을 둘러싸고 있다 하오 11시40분쯤부터 연행을 시작. 민주광장에 있던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연행에 순순히 응하는 모습이었으나 방송국 스튜디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농성을 벌이던 일부 노조원들은 경찰의 연행에 완강히 저항하며 『방송민주화』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그러나 이날 작전은 별다른 불상사없이 농성자들을 전원 연행함으로써 작전개시 45분만에 완료. ○…이날 본관2층 로비와 IBC건물 곳곳에서 농성중이던 사원3백여명을 연행한 경찰은 이들을 경찰버스에 태워 영등포경찰서 등 서울시내 각경찰서에 분산 수용,밤새 조사,농성가담의 정도를 분류. ○…이날 하오 KBS사원들이 투표를 통해 방송정상화안을 부결하자 경찰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KBS에 대한공권력재투입이 임박했음을 예고. 특히 공권력 투입의 최고책임자인 안응모내무부장관이 이날 하오 9시40분쯤 치안본부에 들러 김우현치안본부장등 경찰고위간부를 불러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숙의하면서 공권력투입은 확정적. 안장관은 기자에게 『KBS사태의 악화로 국민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다』며 『KBS사원들이 다중의 힘으로 정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격앙된 어조. 그는 또 『민중세력은 사회주의를 통해 세상을 한번 잡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지만 KBS사원들이 의도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특히 안장관은 기자들과 만나는 도중 총리실에서 걸려온 것으로 보이는 전화를 받고 『본부장등의 보고를 듣고 곧바로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말해 정부의 공권력투입결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 ○…공보처관계자들은 KBS비상대책위원회의 방송정상화 결정이 사원총회에서 부결되고 곧이어 공권력재투입으로 이어지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공보처 관계자들은 청와대특사로까지 오인된 김용갑 전장관의 사태수습방식이 결국 「악재」로 작용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비난. 이날 저녁 밖에 있다가 비서관의 연락을 받고 밤 9시30분쯤 집무실에 돌아온 최병렬공보처장관은 즉각 강용식차관ㆍ이덕주매체국장 등을 불러 구수회의를 열고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혹시 KBS공권력 재투입이 다른 방송사의 동맹파업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했다는 후문. 최장관은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KBS사태가 결국 공권력 재투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4개서에 분산 수용 이에앞서 강공보처차관은 하오 9시50분쯤 김우현치안본부장과 사태수습을 최종 협의했으며 거의 같은 시간 김학준 청와대사회보좌역은 공보처로 전화를 걸어 이매체국장으로부터 KBS사태를 보고 받는 등 공보처주변은 공권력재투입을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 최장관은 공권력재투입전 기자들과 만나 『여러분과 같은 심정이다』며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국민의 기대를 이렇게 저버릴 수 있느냐』고 한탄. 최장관은 이어 짤막한 논평을 한 뒤 『이제는 우리로서도 어쩔수 없다』고 해 공권력투입을 기정사실화. 최장관은 그러나 『공권력을 정말 투입하느냐』는 물음에는 『그것은 경찰이 알아서 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그래도 방송정상화를 요구하는 사원들이 많은데 성급한 공권력투입은 좋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 상황에서 「성급한」이라는 형용사는 맞지 않는 듯 하다』고 강조. ○…경찰관계자들은 이날 KBS에 대한 공권력투입작전을 「여의도진압작전」이라고 명명한 뒤 세부적인 작전계획을 모두 완료해 놓고 찬반투표 개표 당시 KBS안에 있던 노조원등 3천5백여명의 직원들이 빠져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모습. 치안본부고위간부들은 이날 하오부터 KBS에 대한 공권력투입여부가 커다란 관심사로 등장하자 『우리로서는 알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지만 농성인원이 3백∼4백명으로 줄어야 공권력 투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공권력 투입시간이 KBS농성인원에 달려 있음을 시사. ○…이종국서울시경국장은 이날 하오 9시30분쯤 점퍼차림으로 안병욱시경2부장을 대동하고 청사를 출발,하오 10시쯤 여의도 현장본부인 대광장파출소에 도착,10여분간 진압작전 도상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하오 10시35분쯤 KBS사옥 주변을 직접 돌아보며 작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 안부장은 이 자리에서 『KBS공권력 투입은 현대중공업사태와는 달리 단순히 사전구속영장을 집행하는 것으로 최루탄은 필요치 않다』면서 『KBS에로의 진입이나 연행과정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수노조위원장은 경찰이 투입되기 직전인 이날 하오 10시40분쯤 기자들과 만나 『공권력투입이 확실시돼 위원장직 사퇴와 비상대책위 개편을 유보하겠다』며 당초의 입장을 변경. 안위원장은 김용갑전장관과의 서사장퇴진 밀약설에 대해서는 『김 전장관의 말을 선의로 받아들였다』고 말해 밀약이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 그는 또 『김 전장관이 「대통령 특사」라는 말을 뒤집어 개인자격 운운하는 바람에 사원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면서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김씨와 정부측에 있다』고 주장. 안위원장 등 조합원 10여명은 기자들과 만난 직후 KBS보도진들이 갖고 다니는 무전기에서 「경찰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이 들어오기 10분전쯤 황급히 대피. 경찰은 11시15분쯤 「비상대책위」의 출입구를 막고 사무실로 들어왔으나 노조간부들을 연행하는 데 실패. 30여평 규모의 비상대책위 사무실은 오랫동안 농성을 벌여와 집기와 비품이 여기저기 널려있는데다 경찰까지 들어와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 ○간부 사후대책 숙의 ○…안병욱시경제2부장과 정동수영등포경찰서장은 작전이 시작되자 사장실 등이 있는 본관 6층에 올라가 회사측 간부들과 만나 「비상대책위」위원들의 소재를 물은 뒤 각층의 병력배치 상황을 일일이 점검. 안부장은 특히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의 출입문에 배치돼 있던 병력들에게 예기치 못한 충돌을 우려,사무실 안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라고 지시. ○…경찰이 KBS에 진입한 직후 정영등포경찰서장은 본관 2층 중앙홀에서 농성중인 노조원들에게 핸드마이크로 『여러분은 지난 12일부터 제작거부 등 사실상의 파업을 하고 있으며 이같은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경찰이 투입됐다』면서 미리 구속영장이 발부된 안동수위원장 등 7명을 비롯,농성자 전원을 연행하겠으니 순순히 이에 응해 마찰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 노조원들은 2층홀에서 이임호씨등 노조간부 2∼3명이 단상에 나와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농성을 벌이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어깨동무를 하고 「승리의 그날까지」「흩어지면 죽는다」 등의 노래를 합창. 한편 병력이 투입되자 본부장 등 KBS간부들은 최악의 사태가 온것에 침통해 하며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의 사태진전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박성범보도본부장은 경찰이 들어오자 농성장까지 내려와 한동안 연행장면을 지켜보기도. ○…서기원사장은 이날 하오 2시부터 회사부근 맨해턴호텔 816호실에서 간부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경찰이 투입될 때까지 이 호텔에 머물면서 회사내에서의 상황을 보고받고 수습책 등을 논의. 서사장은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직후인 이날 하오 11시20분쯤 사장실로 들어가 본부장들을 소집,긴급회의를 열고 공권력투입이후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 ○MBC,자막뉴스 보도 ○…경찰이 본관에 진입한 이날 하오 11시15분 이후에도 TV방송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진행. KBS­TV에서는 하오 11시20분부터 「가요무대」 재방송을,2TV에서는 하오 10시30분부터 방영중이던 미니시리즈 2부작 「몬테카를로」 1부 「카트리나 열풍」을 계속 방영. 그러나 1ㆍ2TV모두 경찰진입 사실을 자막뉴스로조차 처리하지 않았던데 비해 MBC­TV는 경찰진입 5분뒤 곧바로 경찰진입사실을 자막뉴스로 보도.
  •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사설)

    잘못한 일을 고치지 않는 것,이것을 잘못이라 한다(과이불개시위과실)고 한 공자의 말은 진리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그렇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르고서 그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고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가르침이다. 똑같은 유형의 잘못을 거푸거푸 저지르는 일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노사간 대립­감정 개재­불법 농성­대화ㆍ중재 실패­공권력 투입­최루탄ㆍ화염병의 난무­부상자­연행­석방투쟁…의 악순환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던 것인가. 지켜보는 국민들이 신물이 날 정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양쪽의 상처뿐이었음을 또한 경험해 왔다. 그 양쪽의 상처는 동시에 국가의 상처였고 소모였으며 상실이었음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랬건만 미포만의 현대중공업에서 다시 또 그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었다. 대화와 타협을 밀쳐 두고 힘에 의지하려 할때 기다리는 것은 파멸 뿐이다. 그것을 지난해까지의 경험으로써 충분히 알고 있을 일인 데도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 길을 선도했다. 그래서 공권력을 불러 들였고 다시 계열사로 불길이 번져나게 했다. 정부로서는 불법 분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조처한다는 의지를 본보이기 위해서라도 강제해산의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겠다. 언론 매체들은 「작전」이란 용어를 썼다. 그건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사제폭탄 발사대까지 설치하면서 산업현장의 기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화염병을 준비하는등 일전불사의 태도를 취한 것이 노조였으며 이에 대해 경찰은 73개 중대 1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진압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대회전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소모전을 나라 안에서 나라 안 사람끼리 나라의 재물을 축내가면서 벌인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래서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더 깊어진 불신과 적개심의 골짜리 뿐이 아닌가. 힘과 힘이 맞닥뜨리면 이렇게 상처만 남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벌인 사단이기에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다. 누누이 지적해 왔듯이 이렇게 되면 본질문제에서 멀어지면서감정섞인 지엽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소모전이라는 말인가. 통탄스러워지는 과이불개의 작태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마침 1ㆍ4분기의 경상수지 내용이 알려진다. 수출 부진과 수입 급증으로 해서 7년 만에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숫자이다. 이 내용은 국민들의 건전한 소비생활과 더불어 산업현장이 쉬지 않고 가동되어야 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국내 굴지의 산업체가 이 꼴이고 그 계열사가 술렁이며 일부나마 다른 산업체마저 동조 태세를 보인다면 어찌 될 것인가. 증권폭락사태ㆍ민생치안문제 등등 우리주변의 모든 상황이 민심의 동요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다. 18일째 줄다리기를 계속해 오던 KBS의 경우는 공권력의 투입없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데서 대단히 잘된 일이다. 정부가 최후통첩을 하고 「28일 하오 2시」라는 정상화 촉구 시한을 넘겼을 때 KBS 또한 현대중공업 꼴이 되는 것 아닌가 한 우려를 낳았으나 이를 씻게 되어 반갑다. 계속 좋은 방향의 타결로 이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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