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최루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덴마크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유모차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임금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하노이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92
  • 시위문화 개선 국민적 합의 도출/집시법등 개정 추진

    ◎노 대통령,오늘 확대당정회의서 「대토론회」 제창/“화염병·최루탄 계속 땐 안정 저해”/물가안정등 민심수습책 발표/“내각제개헌 배제” 재천명 할듯 정부는 지속적인 민주화와 경제사회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시위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시위에 관한 전국민적인 합의도출을 위해 시위문화에 관한 국민대토론회를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국민대론회를 통해 시위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는 대로 평화적인 시위·집회를 보장하는 집시법 등 관계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구미형 선진시위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전직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각계 대표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가칭 「시위문화연구위」를 설치·운영할 방침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28일 상오 전 국무위원과 민자당 당무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가운데 정원식 내각 출범 이후 첫 청와대 확대당정연석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시국수습조치의 하나로 이같이 시위문화의 개선을 위한 전국민적인 합의도출방안을 제시할 것으로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27일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과 관련,『권위주의시대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전환기적 상황에서 폭력시위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 정도가 심할 뿐 아니라 만성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화염병 투척과 최루탄 발사의 악순환을 막지 않고서는 민주화는 물론 경제·사회의 안정적인 발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8일 상오 9시 KBS,MBC­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새 내각과 민자당 간부들에게 지시를 하는 형식으로 민심수습방안을 발표,▲물가·부동산안정대책 등 민생문제의 과감한 추진 ▲공명한 광역의회선거 실시와 함께 보다 분명한 향후 정치일정의 제시 ▲정치권의 국민신뢰 회복 및 정치력의 복원 등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우 대통령은 향후 정치일정문제 등과 관련,여권의 차기 대통령 후보는 당헌에 따라 경선을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될 것이라고 말하고 내각제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개헌은 추호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천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 또 투쟁빌미가 된 「사고사」(사설)

    시위하던 대학생이 또 한 사람 희생되었다. 이번에는 압사됐다. 여학생이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폭풍에 떼밀리듯 군중에 밀려 넘어지고 그 위를 짓눌러오는 집단의 압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가슴아프다. 쫓는 기술이나 쫓기는 요령이 이런 참변을 몰고오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지 못했던 일이 한스럽다. 그러나 당황한 군중이 떼밀면서 일어나는 아수라장과 혼란의 극치는 사고로 연결되는 것이 필연이다. 경기장 인파나 귀경인파에 의한 서울역 압사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목격된 것만도 숱하다. 이처럼 사고가 필연적으로 내포된 과격한 시위와 진압의 악순환이 대낮에 1천만 시민을 가진 도시 한복판에서 거듭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이런 정황에 빚어진 젊은 생명의 죽음이 일어나자마자 즉각 점거하고 또다시 「투쟁선언」을 하고 나서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환멸스럽게 한다. 이같은 사태는 예측되던 일이기도 하다. 20여 일 동안 사례를 볼모삼아 시국을 최악의 긴장으로까지몰고갔다가 간신히 장례를 치른 뒤끝에 또다시 일어난 사태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주검을 강압으로 차지하고 독자적인 「증거공개」와 「사인규명」을 통해 새로운 사인을 단정하고 「투쟁선언」까지 해버렸다. 일사불란하게 기능화한 이 「죽음의 투쟁굿」이 사회를 또 얼마나 진통겪게 하려는지 걱정스럽다. 시위 여대생의 죽음은 함께 시위한 학생들의 진술로만 미뤄보아도 깔려서 숨이 막힌 죽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죽음의 상황과 원인은 법적으로 공정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그걸 강압으로 묶어놓고,독자적으로 「최루탄질식사」라는 단정을 내리고 그걸 투쟁의 빌미로 삼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불법이고 속단이고 부도덕한 짓이다. 죽은 학생의 부모와 소속되어 있던 대학교에는 이 불의의 참변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횡액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소속대학의 총장이 「과격진압」에만 유감을 표시한 성명에는 문제가 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불법이나 극단적인 위험행위를 취할 때 그것을 단속하고 다스릴 책임도 있다. 극악스럽도록 시위로만 치닫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은 분담하지 않고 「과잉진압」 운운하며 공권력을 매도하는 방법으로 운동권 학생들만을 비호한다면 대학당국에 같은 방법의 투쟁을 가해올 때의 대응논리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세력에게 주눅이 든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본말이 전도된 논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횡행한다. 「불법시위」를 「진압하는 공권력」과 같은 무게로 정당화하는 논리다. 시민끼리의 분쟁에서도 원인제공과 대응의 문제는 객관적 분석이 앞서야 한다. 하물며 치안을 책임진 공권력은 어떤 방법으로든 소요는 진정시켜서 시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고 「불법」은 제거해야 한다. 불행한 죽음이 일어날 때마다 「투쟁」에 기름을 붓는 지도부가 있다. 그 세력이 자제되어야 한다. 여대생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억류하고 또다시 한판 굿을 획책하는 그 세력이 있는 한 온갖 희생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악순환은 국민만 괴롭힌다.
  • “달아나던 시위대,폭4m 골목서 뒤엉켜/여대생사망…현장목격자 증언

    ◎“경찰,양쪽서 최루탄으로 협공했다/넘어진 시위대에 전경들 폭행 안해” 성균관대학생 김귀정양(25)의 사망사건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양은 당초 가두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던 길에 시위군중들에 떠밀려 넘어져 압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재야 쪽에서 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대필공방」에 이은 또 하나의 「사인공방사건」이 될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재야 쪽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김양은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과 폭력 또는 최루탄가스에 의해 숨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시위대에 밀려 압사했거나 쇼크사한 것』이라는 경찰 쪽 견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김양 아래 입술 가운데 부분에 1㎝정도의 상처와 왼쪽 무릎에 가로 세로 1㎝ 크기의 피멍말고는 외상이 없다는 점과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서는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경찰 쪽과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그러나 『최소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간접살인』이라고 경찰에 책임을 묻고 있다. 이같은 주장들은 김양의 사체가 부검되면 어느 쪽이든 진위가 가려지겠지만 「대책회의」측은 『부검에 앞서 경찰의 강경진압 진상조사 및 책임자의 처벌』이라는 선행조건을 내걸고 있어 한동안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의 시위진압 상황일지와 검찰조사,목격자진술 등에 따르면 김양이 쓰러지기 30분 전쯤인 25일 하오 5시쯤 중구 퇴계로 대한극장 앞 일대에서는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명동성당이나 시내 중심가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며 삼일고가도로 입구 로터리에 있는 경찰 6백여 명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곳에서 진압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성북경찰서 홍순원 경비과장은 시위대가 2천명 이상으로 늘고 바람이 경찰 쪽으로 불어 최루탄을 쏘아도 큰 효과가 없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종로4가에서 구종태 서울 송파경찰서장이 지휘하던 6백여 명의 경찰이 5시10분쯤 퇴계로4가로 이동했고 종로3가에서 최인섭 서울시경 4기동대장의 지휘를 받던 6백여 명도 비슷한 시간에 스카라극장 앞으로 이동했다. 구 서장이 이끄는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하자 시위대는 5시30분쯤 김양이 사고를 당한 무랑루즈 스탠드바 앞 차도까지 밀려갔고 이곳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최 기동대장과 홍 경비과장이 지휘하는 경찰도 비슷한 시간 필동로터리 근처까지 전진해 시위대와 충돌했다. 쓰러진 김양을 차에 태워 병원에 보낸 김지훈군(20·공주대학 국민윤리학과 4년)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무랑루즈스탠드바의 골목길 입구 차도에서 자신 등 1백50여 명이 경찰에 포위된 상태였으며 이때 경찰이 고개를 숙이라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방패와 곤봉으로 머리 등을 때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군은 이어 『전경들이 무랑루즈 골목 쪽으로 길을 터주어 달아나다가 무랑루즈 맞은 편 미쉘경양식집 앞에 주차해 있는 승용차 옆에서 시위대 10여 명이 넘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무랑루즈 앞 골목길은 입구의 너비가 4m 정도 되나 안쪽으로는 2.5m에 불과했다. 멈칫했던 김군은 다시 달아나려다가 한 남자 시위자가 얼굴을 땅으로 향해 엎어져 있는 김양을 등에 업으려는 모습을 보고 김양의 왼쪽 다리부분을 부축했으나 김양의 몸은 이곳에서 18m쯤 가다 축 늘어졌다고 말했다. 김군은 그러나 김양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경찰이 문제가 될 정도의 과잉진압은 하지 않았으며 김양은 단순히 달아나다 군중에 눌려 압사 또는 쇼크사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놓고 서로 상반된 주장이 맞서고 있는만큼 김양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사체부검이 필수적이며 이번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긴장감을 고려할 때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다.
  • 김대중 총재 「최루탄세례」 관련/신민,미 의회에 인권보고서

    신민당이 지난 23일 미 상하 양원의 인권재단에 김대중 총재가 최근 최루탄 세례를 받은 것과 관련한 한국의 인권상황보고서를 발송한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이 보고서에는 김 총재가 지난 14일 강경대군 영결식 후 시청 앞 노제에 참석하기 위해 신촌로터리로 도보행진하는 도중 사과탄 수발이 김 총재 일행 위에 터진 경위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여대생 시위대에 깔려 숨져/퇴계로서 시위중

    ◎최루탄 피해 달아나다 넘어져/「국민대회」 무산… 도심 곳곳 격렬시위 25일 하오 3시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가지려던 정권 퇴진 「제3차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으나 시위 도중 달아나던 여학생 1명이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이날 하오 5시30분쯤 서울 중구 퇴계로4가 대한극장 건너편 진양상가 앞길에서 동료학생 1천여 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학과 3년)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로 접근해오자 이를 피해 달아나다 넘어지면서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이날 김양과 함께 시위현장에 있었던 하정림양(19·덕성여대 전산학과 1년)은 『김양 등 7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서려는 순간,백골단 10여 명이 지키고 있어 시위대의 앞쪽이 멈칫하는 바람에 20여 명이 겹쳐 넘어졌다』면서 『이때 나는 옆으로 넘어져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내 위에 넘어졌던 김양은 숨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최루가스 등으로 질식해 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양은 이어 동료학생 2명에 의해 사고현장에 있던 취재차량에 실려 이웃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도중에 숨졌다. 김양 시신을 1차 검안한 백병원측은 『김양이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특별한 외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 5백여 명은 병원입구에 철제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너통·프로판가스·대형 산소통 등을 놓아둔 채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 응급실에는 숨진 강경대군의 부모 민조씨(49)와 이덕순씨(43)가 하오 11시35분쯤 도착해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51)의 손을 잡고 위로하기도 했다. ◎대책회의,검시 거부 이날 하오 10시45분쯤 서울지검 형사3부 임채진 검사가 경찰관과 김양의 사체를 검시하기 위해 백병원으로 왔으나 「대책회의」측이 『공식적인 검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시를 할 수 없다』며 거부해 3시간 동안 병원입구에서 기다리다 돌아갔다. ◎오늘 규탄대회 갖기로/대책회의,명동성당서 「범국민대책회의」측은 이날 하오 성균관대 총학생회와 함께 김양 사건에 대한「대책회의」를 조직,26일 하오 7시 명동성당에서 「폭력살인 공권력 만행 규탄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재야인사와 운동권학생 등은 전국 주요도시에서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찰 18명 부상/1백68명 연행 한편 이날 하오 8시50분쯤 서울 노량진경찰서 소속 황의동 수경(24) 등 경찰관 4명이 을지로 입구에서 페퍼포그차에 타고 다연발최루탄을 장전하는 순간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최루탄이 폭발,얼굴과 손 등에 중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날 하룻동안 서울에서만 경찰관 1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1백68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도청앞 노제 10만 인파/광주/분신 박양 망월동 안장

    ◎도청 철문 10여m 부수기도 【광주=최치봉 기자】 지난 19일 숨진 전남대생 박승희양(20·식품영양 2년)의 유해가 26일 0시쯤 유족과 동료학생들의 오열 속에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됐다. 박양의 유해는 이날 하오 5시5분쯤 광주시 동구 광산동 전남도청 앞 광장에 도착,노제를 치렀다. 이날 노제는 10만여 명의 시민·학생들이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4가까지의 2㎞의 6차선 도로를 꽉메운 가운데 제문낭독·추모사·유족인사·헌화·분향·부활굿 순서로 3시간 남짓 진행됐다. 한편 박양의 도청 앞 노제를 마친 뒤 일부 극렬 시위대는 하오 9시50분쯤 도청 정문 왼쪽으로부터 30여 m 떨어진 보조철문 10여 m를 부수고 도청담장에 붙어 있는 새 생활실천 대형 홍보간판을 뜯어내 불태우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날 하오 10시30분쯤 민자당 광주시지부 건물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호남대학생 김선일군(19·법학과 1년)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안경을 맞아 오른쪽 눈에 부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 사과하는 마음 받는 마음(사설)

    장례를 치르고 나면 피로가 엄습해 오면서 허전해지고 새삼스러운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는 법이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장례 그 일에 매여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생각들이 꼬리에 꼬기를 물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치르는 장례의 경우도 그러한데 하물며 생때같은 아들을 서럽고 아프게 잃은 강경대군 부모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 아들을 잃은 슬픔 위에 20여 일을 두고 장례를 못 치르는 동안에 받은 심신의 피로는 이루 형언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죽음을 놓고 투석·최루탄의 시위는 끊이지 않았고 그 죽음을 애달파하는 죽음들이 잇따르는 사이 강군 부모의 가슴은 2중3중으로 미어졌을 것임을 헤아릴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장례를 치름으로써 이제 비명의 불행한 죽음으로 시작한 불안했던 시국도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이 단장의 비통 속에 있는 부모 앞에 뒤늦긴 했지만 서울시경국장을 비롯하여 강군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경찰서장·구청장 등이 찾아가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빈소가 차려져 있는 동안 조문을 가는 것이 옳기는 했겠지만 격앙되어 있는 그 상황에서는 엄두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도 사실이다. 부모나 가족도 그렇지만 빈소를 지키는 학생들이 어떤 과격한 사단을 벌였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늦은 사과방문이라고 하겠으나 어쨌든 지난 잘못을 진사하는 그 자세를 우리는 소망스러운 마음씀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아들을 치사한 가해자들의 책임자가 찾아갔을 때 그 부모는 새삼스럽게 격앙되어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또 그런 감정으로서의 추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고 제어하기 어려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부모는 시간이 흐르면서 음료수도 대접하는 가운데 조용하고 담담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사과방문을 좋이 받아들인 강군 부모의 용서하는 자세에 우리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저지른 잘못에 대해 그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는다시는 그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뜻이 곁들인다. 또 그런 뜻을 곁들여 사죄를 한다는 것은 양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면서 한편으로 피해자의 가슴에 맺힌 앙금을 다소나마 씻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음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지난번 성대에서의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폭행사건 때 나중에 학생들이 정중하게 사과를 함으로써 화기를 도출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것은 분명 흐뭇한 정경이었다. 그러므로 이번의 사과방문한 마음과 그를 담담히 받아들인 마음을,불행한 사태의 재발이 없게 하겠다는 결의와 불행했던 일을 관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서 이런 마음들이 더 널리 더 깊게 우리들 심성 속에 자리잡혀나갔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사과는 잘한 일이었고 그를 받아들인 강군 부모는 훌륭했다. 시경국장 일행은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고 하면서 사죄하는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 말을 지나가는 인사말로 버려두지 말고 잊지 않고 실천할 것을 당부해두고자 한다.
  • 인 전역에 “분노물결”… 곳곳 유혈시위

    ◎“꽃다발 건네준 여인몸에 폭탄장치”/타밀족 검거선풍… 민병대 50명 체포/애도행렬 2㎞ 장사진… 현장에 병력 배치/간디피살 파장,정정 갈수록 악화 ○…인도 경찰은 23일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암살사건이 스리랑카인 자살특공대원의 소행인 것으로 심증을 굳히고 인도 남부의 타밀 민병대원들에 대한 검거작전에 본격 착수,마드라스의 해변가에 있는 타밀민병대 막사를 급습해 50여 명을 체포. 경찰 소식통들은 간디 전 총리를 숨지게한 폭탄이 꽃다발을 들고 간디에게 접근했던 한 중년 여인의 몸에 묶여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15명의 사망자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여인만이 아직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 수보스 칸트 사하이 인도 내무담당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현재까지 간디의 암살에 관해 수집된 모든 증거는 한 여인이 그녀의 몸에 폭발장치를 묶고 간디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몸을 숙이는 사이에 폭발한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해 주었다』고 말했다. 암살범은 「검은 호랑이」라고 불리는 스리랑카 타밀 반체제 단체인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의 자살특공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수브라마니암 스와미 법무장관이 말했다. ○장례규모 축소될 듯 ○…간디 전 총리의 유해는 24일 화장에 앞서 뉴델리에 있는 외조부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의 저택 겸 박물관인 틴 무르티로 옮겨졌는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군중 수천여 명이 모여들어 2㎞에 이르는 행렬을 이뤘으며 현장 주변에는 치안유지 병력들이 대거 배치됐다. 보안병력들은 공포와 최루탄을 발사하며 군중통제에 나섰으나 애도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역부족,최소 2백여 명이 철문과 담장을 넘어 저택내의 공식 접견실까지 들어갔으며 보도진들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간디 전 총리는 7년전 그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당시 총리가 화장됐던 곳에서 전통의식에 따라 24일 화장될 예정이나 장례식 규모는 총선 기간중임을 감안,어머니때보다 훨씬 축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유세 중 폭사한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장례식을 하루 앞둔 23일 세계 각국의 저명 조문 사절들이 속속 뉴델리에 도착하고 있다. 주요 인사들로서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 총리,중국의 오학겸 국무원 부총리,미국의 댄 퀘일 부통령,소련의 야나예프 부통령,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총리,방글라데시의 할레다 지아 총리,호주의 가레스 에번스 외무장관,영국 노동당의 네일 키녹 당수,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네팔의 크리시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총리 등이 간디 장례식 참석차 뉴델리에 도착. ◎인도의 힌두교 장례의식은/“망자영혼 해방”… 화장 뒤 두골 부숴 【뉴델리 AP 연합】 인도의 전통 장례식은 망자의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해 화장한 뒤 두골을 막대기로 부수게 되는데 이 의식이 행해질 때는 심지어 이러한 장례식에 익숙한 힌두교도 들조차 눈을 돌리게 된다. 전통 장례식에 따를 경우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독자인 라훌이 아버지 유해의 머리 부근의 장작에 불을 붙이게 된다. 힌두교도들은 망자를 화장터로 옮기는 데 관을 사용하지 않으며 시신은 흰천에 싸여 대나무 들 것에 실린다. 장례행렬의 선두에는 장남이 화로를 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동전과 설탕을 뿌리며 간다. 미망인은 이 행렬에 끼어서는 안된다. 시신을 장작 제단에 올리기 전 승려가 나와 수백만 힌두교의 신들 가운데 일부를 불러 영혼을 억겁의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고 빈다. 망자가 여성일 때 시신의 발 부근에서부터,남성일 때에는 머리 부근에서부터 불을 붙인다. 화장하기 전 아들과 남자 친척들이 제단 주위를 일곱번 돈 뒤 불이 시신을 잘 감싸도록 정화된 버터를 끼얹는다. 3일이 지나면 친척과 문상객들은 화장터로 되돌아가 유해를 납골 단지에 모아담은 뒤 신성한 강물에 뿌리거나 망자의 유언에 따라 처리한다.
  • “제등행렬에 최루탄 사과”/김 시경국장,전경중대장 대기령

    서울시경은 23일 강경대군의 노제가 있었던 지난 18일 공덕동로터리 근처에서 제등행렬에 최루탄이 투척된 데 대한 지휘책임을 물어 영등포경찰서장 이재열 총경을 경고 조치하고 전경중대장 이장환 경감을 대기발령했다. 한편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은 이날 사과문을 내고 『강군의 노제가 끝난 뒤 4천여 명의 군중이 해산하지 않고 제등행렬 앞 등에서 극렬시위를 벌여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제등행렬에 누가 된 데 대해 모든 불자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제등행렬에 최루탄/불교계 강력 반발

    대한불교조계종 「제등행렬 경찰폭력사태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진현근 조계사주지)는 지난 18일의 제등행렬 도중 경찰이 최루탄을 쏜 것과 관련,20일 상오 9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 4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제등행렬을 방해한 정권과 맞서 더욱 강경하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원회는 『정부당국이 성스럽고 평화로운 행진대열을 가로막고 종단지도자 스님들과 어린이,노약자들에게 최루탄을 난사한 것은 민족종교인 불교에 대한 멸시와 탄압의 연장이며 정권의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21일까지 노 내각의 총사퇴와 일간지를 통한 대통령의 공개사과 및 치안본부장과 시경국장의 즉각 파면 등 3개항을 촉구했다. 대책위원회는 또 『현 정권은 민주발전을 이룩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21일의 봉축법요식을 비롯한 모든 불교행사에 정부관계자의 참석을 배제하기로 했다』면서 『오는 25일 조계사에서 「불교탄압규탄 및 폭력정권 퇴진 범불교도대회」를 열어 노 정권 퇴진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 툭하면 화염병·최루탄에 교통체증/“이제 폭력시위는 끝내자”

    ◎“점포철시등 생업에 큰 지장/정부도 신뢰회복 앞장서야”/각계의 바람과 당부 명지대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시국긴장상황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의 대규모 군중시위를 고비로 더 이상 폭력시위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일련의 사태에서 분출된 갖가지 불만과 문제점들을 정부가 폭넓게 수용,국정을 과감하게 쇄신해야 하며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운동권도 폭력시위를 포기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의·주장을 펴야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일요일인 19일 하오 3시 서울 종로3가 파고다공원에서는 기독교교회 청년협의회가 주최한 「나라안정을 위한 기도회 및 폭력추방 평화행진」이란 행사가 열렸다. 이날 기도회를 마친 뒤 서울역까지 인도를 따라 평화적 행진을 벌인 3백여 명의 참석자들은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잇따른 분신을 도화선으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수십년 동안 누적돼온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문화가 정당시되는 사회풍토의 결과』라고 지적하고 『나라의 안정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풍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모든 폭력을 추방하는데 앞장설 것』을 결의했다. 폭력시위에 대해 은행원 박정홍씨(27·경기도 광명시 철산2동 주공아파트)는 『학생들과 재야단체 회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외쳐대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회와 시위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서 『화염병·돌 등을 동반한 과격한 시위는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침은 물론 공권력의 강경한 대응을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에 법절차에 따른 평화적인 시위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운 변호사는 『강군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학생들의 대정부 투쟁도 이해가 가지만 방법의 정당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복지를 위해서 폭력시위와 같은 학생운동의 방향도 개편돼야 하고 정부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문정동 훼밀리아파트에 사는 가정주부 황명숙씨(39)는 『연일 계속된 시위로 민심이 불안해지고 있다』면서 『학생들은 과격한 시위를 자제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황씨는 또 『정치인들도 물가불안과 빈부격차 때문에 국민의 불만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개각을 하는 등 빠른 시일내에 변화를 보여줘 민심을 수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택시운전기사 조성기씨(45)는 『이번 사태는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따르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힘으로 밀어 붙이려해 빚어진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 최루탄과 화염병도 좋아하지 않고 시위가 일어나면 택시영업에 지장이 많지만 이는 다른 문제로 생각한다』 말했다.
  • 대전서도 5천명 격렬시위/신민당 집회뒤 투석전

    【대전=최용규 기자】 19일 하오 4시40분쯤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연설이 끝나자 5천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은 가두로 진출,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김 총재의 연설이 끝나자 대전역에서 동양백화점 사거리까지 5백여m를 행진하며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 최루탄 발사에 항의/조계종 신도들 농성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신자 등 2백여 명은 19일 상오 11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18일의 제등행렬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쏜 것에 항의하는 법회를 가진 뒤 하오 1시쯤부터 2시간 남짓 종로1가 차도와 파고다공원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제등행렬을 시위대로 규정,어린이와 스님들에게까지 최루탄을 난사한 것은 제2의 법란』이라고 주장하고 치안본부장 및 시경국장을 파면할 것과 정부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했다.
  • 시위로 얼룩진 「5·18」/44개 시군서 장례… 추모… 파업

    ◎한밤 광주로 운구… 망월동 안장/「노제」 충돌 끝에 공덕동서 치러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며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은 온통 군중집회와 격렬한 시위로 얼룩졌다. 이날 강군의 장례행사는 무사히 치렀으나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밤늦게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곳곳에서 경찰관서 등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또 상·하오에 걸쳐 전남·광주 등지에서 남녀 3명이 또 분신,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강군의 「노제」는 「대책회의」측이 경찰의 설득으로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거행됐으며 이어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 앞∼국립묘지 앞∼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휘문고교에서 잠시 들른 뒤 하오 10시10분쯤 고속도로로 진입,광주로 향했다. 19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곧바로 5·18묘역으로 가 시신을 안장했다. 「대책회의」측은 이날 집회와 시위에 서울에서 7만여 명을 비롯,광주·부산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8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또 「전노협」은 이날 9만여 명이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노동부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9개 도시의 32개 노조 1만2천5백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부터 서울에서는 「대책회의」측 장례행렬이 이화여대 입구에서 서울역 쪽으로 향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장시간 공방전을 벌였다. 광주에서는 상오 10시 망월동 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열린 것을 비롯,하오 금남로에서 「5·18정신」의 계승 등을 주장하는 「국민대회」와 종교단체·근로자·학생들의 추모집회가 잇따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이밖에 부산 전주 인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고 군청소재지에서는 이른바 「농민대회」 등이 열렸다. 이들은 곳곳에서 도심진출을 기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하자 주요간선도로 등을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막다 서울에서 53명을 비롯,전국적으로 73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가운데 91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광주선 7만명 추모집회/금남로 일대서 산발시위도

    【광주=임정용·최치봉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인 18일 광주시내는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에 이어 전국으로 확산된 분신자살 파문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상오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묘역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항쟁 11주기 추모식에는 전규랑 유족회장(56) 등 유족과 시민·학생 등 참배객 1만여 명이 참석,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추모식에 참석했던 유족과 시민·학생들은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소식이 전해지자 하오 3시쯤부터 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 광주은행본점 사거리를 중심으로 금남로·중앙로·충장로 일대에 모여들어 「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 및 박승희 학생 광주전남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5·18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노 정권 퇴진을 위한 제5차 국민대회에 참석했다. 경찰의 집회허가를 받아 열린 이날 대회는 7만여 명의 시민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이광우 「5추위」 회장의 기념사와 오종렬 대책회의 공동의장의 대회사,도시빈민 노동자 학생 등 각계 대표의연설·결의문·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대회를 마친 시민 학생 2만5천여 명은 이날 하오 8시50분쯤 집회장소인 광주은행 앞 4거리에서 5백여 m 떨어진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진출하려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광주시 동구 충장로1가 시내 중심가 곳곳에서 밤늦도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한밤까지 도심서 격렬시위/강군장례·국민대회등 전국서 20여만 참여

    ◎「노제공방」 5시간… 곳곳서 충돌/3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파출소등 잇단 피습… 학생·경찰 부상 속출 5월 셋째 주말은 온통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다.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자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군중과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하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한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지역과 광주 금남로 등 도심지 상가는 거의 철시를 했으며 곳곳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강군 장례식◁ 「대책회의」측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세브란스병원에서 강군의 가족을 비롯,백기완씨·문익환 목사 등 재야인사와 이우재 신민당 최고위원 등 1백여 명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를 가졌다. 발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서총련」 소속 대학생 1천5백여 명의 경호를 받으며 상오 11시 영안실을 떠나 낮 12시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뒤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화여대 앞과 아현고가 차도를 거쳐 서울역으로 가려다 경찰이저지하자 하오 5시까지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대책회의」측은 경찰의 설득을 받아들여 결국 이날 하오 6시30분쯤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2시간 동안 「노제」를 지냈다.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용마루∼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국립묘지∼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강군의 모교인 휘문고교에 잠시 들렀다가 하오 10시10분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운구행렬은 3백17㎞의 호남고속도로를 시속 80여 ㎞로 달려 19일 상오 3시쯤 광주시 북구 동운동 서광주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장의차를 앞세운 운구행렬은 이어 이날 전남도청 앞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가지로 진출하려다가 경찰 20여 개 중대 3천여 명이 저지하자 전날 밤 금남로에서 「국민대회」를 마친 학생 1천여 명과 합세,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운구행렬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전남도청 앞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새벽 동광주인터체인지∼광주교도소를 거쳐 망월동 5·18묘역에 도착,강군의 시신을 안장했다. ▷가두시위◁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 등 4만여 명이 회현동 네거리에서 퇴계로2가 및 신세계백화점·남산3호터널 앞 등의 차도와 아현고가도로 등지를 점거하고 경찰과 맞서 화염병 수천개와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시40분쯤 시위학생 20여 명은 신촌로터리 부근인 마포구 노고산동 치안본부 분실에 몰려가 화염병 20여 개를 던져 수위실을 전소시키고 마당에 있던 승용차 2대를 불태웠다. 하오 2시40분쯤부터는 5천여 명의 시위대가 을지로 2·3가 6차선 차도를 점거해 시위를 벌일 것을 비롯,종로 2·3·4가,퇴계로 2가,을지로 6가 등지로 5백∼5천여 명씩 옮겨다니며 경찰과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하오 4시10분쯤 시위대중 1천여 명은 퇴계로 2가 파출소 앞에 세워둔 경찰보급용 트럭을 탈취해 최루탄 4상자 등을 빼앗은 뒤 1시간쯤 끌고다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불태웠다. 이들은 또 하오 8시5분쯤 퇴계로2가 파출소로 몰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현관셔터문을 부순 뒤 화염병을 던져 내부를 불태웠으며 안에 있던직원 6명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촌로터리 일대에 집결해 있던 3만여 명은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에서 운구행렬이 광주를 향해 떠난 뒤부터 장소를 옮겨 퇴계로의 시위대와 함께 합세,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5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으로 집결해 규탄집회를 가진 뒤 대부분 해산했으며 나머지 5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국민대회◁ 강군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하오 4시에 갖기로 했던 서울 시청앞 등 주요도시 도심지에서의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다.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서울·광주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가두시위 등을 벌였다. 이에 앞서 서울대·부산대·전남대·조선대 등 전국 32개 대학생 1만여 명은 이날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심지로 나가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산=장일찬 기자】 부산지역 학생,근로자,재야인사 등 8천여 명은 18일 하오 3시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에서 개최키로 했던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민자당 해체,현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중구 대청동 국제시장과 카톨릭센터 일대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 “건물 파손 말라” 말리는 행인에 뭇매

    ◎5·18 국민대회·강군 장례 이모저모/CNN 보도진,이 여인 분신 촬영하다 봉변/광주 상인들,“토요일은 장사 잘되는 날” 영업/연대에 박노해씨 명의 「옥중메시지」 나붙어 ○프락치 아니냐 시비 ○…이날 하오 7시40분쯤 노제가 치러지던 공덕동 네거리에서 김 모씨(42·광고업)가 교통초소의 대형 유리창 3장을 깨는 학생들을 나무라다 시위대들로부터 뭇매를 맞아 얼굴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었다. 시위대 40여 명은 이날 김씨가 『공공시설은 파손시키지 말라』고 말하자 『당신 안기부 프락치 아니냐. 신분증을 보자』며 멱살을 잡고 쓰러뜨린 뒤 온몸을 마구 때렸다. 시위대는 또 김씨에게 사건경위를 묻는 H일보 송 모 기자에게도 『당신이 뭔데 자꾸 묻느냐』면서 몸을 밀치고 취재수첩을 빼앗아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를 말리던 한 시민은 『민주사회를 이루자는 사람들이 공공건물을 파손하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프락치」라며 군중심리를 이용,폭행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한마디. ○…강군 치사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부터 학생회관에 사무실을 차려놓은 「대책회의」의 주도로 비롯된 각종 대규모 집회 및 시위로 20여 일 이상 홍역을 치러온 연세대 교직원들은 강군 장례식이 끝난 18일 매우 홀가분해 하는 모습. 학생과의 한 직원은 『그 동안 강군사건과 관련된 외부인들의 집회 등으로 기본 학교업무마저 마비돼 학생증 및 복무단축확인서 발급업무 등 최소한의 민원만 처리해왔을 뿐』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운구 휘문고에 들러 ○…이날 하오 9시15분쯤 강군의 운구행렬이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에 도착하자 재학생 50여 명은 검은 리번을 달고 본관 앞에 임시로 마련된 빈소에서 운구행렬을 맞았다. 이곳에서 약 15분간의 추모식이 끝나자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는 추모시를 읽은 강군의 선배 배노준씨(24)에게 『추모시를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시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받기도 했다. ○“정권과의 전쟁” 규정 ○…이날 연세대 백양로 게시판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사노맹」 중앙위원 박기평씨(필명 박노해) 명의로 된 「박노해의 옥중메시지」라는 제목의 대자보 7장이 나붙었다. 박씨는 이 대자보에서 현시국을 「노 정권과 민중과의 전쟁상황」으로 규정하면서 『노 내각을 퇴진시키는 것이나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 정권을 쓰러뜨려 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곳곳에 화염병 파편 ○…이날 하오 10시쯤부터 전남도청 앞으로 진출하려는 시민·학생 등 1만여 명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려는 경찰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내 금남로·중앙로 등 도심 곳곳이 화염병 파편과 최루탄,국민대회에서 뿌려진 3만여 장의 유인물 등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이날 국민대회가 열린 금남로·충장로 일대의 상가에는 「5월단체 회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오늘은 시민 모두가 그날의 뜻을 기리는 경건한 날이므로 일찍 철시하라』는 요청의 전화가 쇄도하기도. 충장로1가 K의류상 주인 김 모씨(59)는 이날 상오부터 이같은 내용의 전화를 두 차례나 받았으나 토요일은 장사가 잘되는 날이므로 철시하지 않는 등 대부분의 상인들은 11주년을 맞는 5·18정신 계승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하는 모습. ○분신자,여대생 오인 ○…이날 상오 11시50분쯤 이정순씨(39)가 투신한 현장에서 이 학교 영문과 2년 신 모양(20)의 가방이 발견되어 「대책회의」측과 학교측은 투신자를 신양으로 보고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한동안 법석. ○“쇠파이프 맞아 입원” ○…미국 CNN­TV 소속 카메라맨과 녹음기술자 등 2명이 이날 연세대 앞에서 한 여자의 분신장면을 촬영하려다 시위학생들로부터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폭행당해 입원했다고 CNN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CNN의 통역인 조주희씨는 『한 여자가 분신 후 고가철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던 카메라맨 김효성씨와 녹음담당 조남백씨 등 CNN 보도진이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에게 붙잡혀 폭행당했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시위 참여 ○…이날 「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서울연맹」 소속 고등학생 5백여 명은 퇴계로2가 일대를 점거한 시위대 틈에 끼여 스크럼을 짜고 현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 학생들은 『전진하는 고등학교』 『새 나라의 고등학교』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퇴계로2·3가를 왕복하며 2시간쯤 가두행진을 벌이다 시위양상이 점차 격렬해지자 하오 7시쯤 모두 해산. ○고교생 분신 초긴장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지난 16일 강진 고교생들의 교외시위에 이어 이날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시위·분신의 불길이 고교생까지 확산될까 초긴장. 광주시교육청은 이미 고교생들의 추모집회 참가를 학교장 재량으로 허요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5·18추모집회를 용인했으나 이들이 과격시위나 분신 등 극렬행동에 참여할 것인가를 두고 예의주시. 한편 이날 전남도교육청 관내에서는 강진고교를 비롯,5개 고교가 5·18 추모행사를 교내에서 가졌다. ○민자 전북당사 피습 ○…이날 하오 8시20분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1가 민자당 전북도지부 당사에 시위대 학생 1백여 명이 몰려와 50여 개의 화염병을 던졌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 76개대 「5·18출정식」/광주선 1만명 전야제… 도심 시위도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의 22개 대를 비롯,전국 76개 대학생 2만여 명은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18일의 「제2차 국민대회」에 적극 참여할 것을 결의했다. 「전대협」은 이날 『범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국민대회에 4만여 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현 정권의 퇴진을 위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광주에서는 「5·18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광우 전남대 교수)가 하오 6시 전남대 병원 앞에서 학생·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5·18전야제」를 가졌으며 천주교 임동성당에서는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5·18추도미사」도 열렸다. 이날 전야제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가운데 2천여 명은 하오 11시쯤 도청앞 광장으로 진출하려다 광주지방 노동청앞 네거리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금남로 등 시내곳곳에서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여관구 전남도경국장은 이날 하오 기자간담회를 갖고 『18일 금남로에서 열리는 집회를 평화적으로 치를 경우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노제,장소가 문제라는데…(사설)

    노제장소가 이번의 긴장시국에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강행을 주장하고 있는 재야 쪽 「범국민대책회의」에서는 시청 앞에서 서울역 앞으로 장소를 바꾸었고 치안당국은 이의 봉쇄를 밝히고 있어 또 한 번의 극한적인 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집회와 함께 「5·18총파업」이 맞물려 긴장은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게 되는 것은 고조된 시국긴장으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불상사가 더 없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우선 노제를 강행하려는 것이나 반대하는 양측에 커다란 잘못은 없다고 여긴다. 이번의 시위정국이 강군의 사망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그 죽음의 의미를 보다 높이겠다는 대책회의나 유족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시청 부근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장소를 권유하는 치안당국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여기에서도 어떤 타협의 실마리는 찾을 수가 없고 자기 주장의 고수만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장례부터 무사히 치러 강군을 편안히 잠들게 하고 또 장례와 투쟁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는 것에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면 과연 노제의 장소가 그토록 문제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장례를 빌미로 정치투쟁을 벌이려 한다」 「시신을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하는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해서라도 빠른 매듭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것은 강군 부모의 얘기에서도 뜻을 헤아리게 된다.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아들의 시신을 놓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없으며 하루라도 빨리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말에서 보듯 장례가 더 이상 늦춰져서는 곤란하다. 또 어떤 이유에서든 20여 일이 지나도록 장례가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깊은 고려 있기를 당부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 노제강행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음으로써 또다시 장례에 차질이 올 경우 어떻든 국민들의 비난의 소리를 관계당국이나 대책회의측에서는 피할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 이날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 끝에 결국은 공권력에 밀려 다른 곳에서 장례가 치러지게 될 경우 또 한 번 시신이 거리에서 방향을 잃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충돌과 상호불신의 벽은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상황이 못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주기 바란다. 따라서 대책회의측과 관계당국은 이번에 강군의 장례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한 가지 이유를 위해 서로 대화를 갖고 양보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양측이 이 문제 하나만이라도 대화로 합의점을 도출해낼 경우 그것만으로 여론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하는 생각이 없지 않으나 여러 이유로 시청부근을 피해야 하는 것이라면 여의도로 옮겨도 강군의 죽음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면 또 다른 장소에서 엄숙히 노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여긴다. 그것을 위한 깊은 대화를 거듭 촉구한다.
  • 전주선 격렬시위

    전북대·전주대 등 전주지역 대학생 1천5백여 명은 17일 하오 5시쯤부터 전주시내 팔달로 관통로 전동성당앞 도로 등 간선도로를 점거하고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또 이리 원광대생 5백여 명도 하오 6시쯤부터 이리역앞 도로 등 창인동 일대를 오가며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군산대생 5백여 명도 군산시 명산동 사거리에 모여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가두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