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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이슈-프랑스 소요사태 확산] 소요 진원지 클리시수부아를 가다

    [월드이슈-프랑스 소요사태 확산] 소요 진원지 클리시수부아를 가다

    파리 교외 저소득층 지역에서 지난달 27일 이래 계속되고 있는 소요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요사태가 독일, 벨기에 등 이민자가 많은 인근 유럽 지역으로까지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이번 사태는 주로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이 몰려 사는 대도시 교외 저소득층 지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새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청소년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검문을 피하던 소년들의 죽음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우범지역 범죄에 대한 초강경 대응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뿌리깊은 소외의식이 극단적 방식의 분노로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방화가 차량 뿐 아니라 학교, 탁아소, 체육관, 상업시설 등으로 확대되고 인명 피해마저 발생하면서 저소득층 지역 주민들조차도 “이제 폭력은 그만”을 외치며 하루빨리 일상의 평정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클리시수부아 함혜리특파원| 7일 오후 3시(현지시간) 파리 북동부 교외에 있는 올네수부아의 부아욤 고등학교 앞 광장.400여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흑인, 혹은 북아프리카 계열의 유색인들이다. 아직 학교가 끝날 시간이 아닌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몇몇 눈에 띈다. 청소년들의 야간 소요사태로 유리가 깨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학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전화가 와 모든 학생들이 대피했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은 “우리 학교뿐 아니라 근처의 3개 학교가 폭발물 위협을 받았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지 않는 한 소요사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단의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최소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감전사 사고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사르코지(내무장관)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막 도착한 버스에 뛰어 올랐다. 올네수부아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리시수부아. 지난달 27일 경찰의 검문을 피하던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하면서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소요사태의 진원지가 된 곳이다. 밤마다 차별과 소외에 대한 무슬림 청소년들의 분노와 방화로 점철됐던 것과 달리 이곳의 오후 풍경은 평화스러웠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장을 보러가는 무슬림 여성, 길 모퉁이에 삼삼오오 몰려있는 흑인 청소년들….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아랍인들이다. 클리시수부아의 주민 2만 8000여명 중 이방인은 70%가 넘는다. 파리의 고색창연한 주거건물들과는 달리 노후한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어 한눈에도 슬럼가임을 알 수 있다. 아기를 안고 가는 한 주민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20여년 전 터키에서 이민 왔다는 칸(35·전기공)은 “청소년들의 폭력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정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의 50% 정도가 실업자라고 소개한 칸은 “부가 세습되는 것처럼 가난도 대를 물린다. 그들이 현재 상황에서 탈피하도록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 벗어나자 왼쪽으로 거의 불에 탄 채 흉물처럼 남아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6일 새벽 5시쯤 방화로 불에 탄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이다.1997년 준공된 이곳은 바로 옆에 있는 루이즈 미셸 중학교 학생들이 체육시간을 보내고 어린이와 학생, 시민들이 태권도, 유도 등 여가시간을 이용해 체육활동을 하는 장소였다. 루이즈 미셸 중학교에 다닌다는 사디(12)는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왜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체육관을 불태웠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분별없는 폭력에 분노보다는 차라리 슬픔이 앞선다.”고 말했다. 사디의 학급은 모두 23명. 이 중 순수한 프랑스인은 단 한명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5시 30분 클리시수부아 시청 앞에서는 자녀들을 대동한 학부모들과 주민들이 모여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 화재사건과 지난달 27일 이후 끊이지 않는 일련의 폭력사태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클리시수부아 출신의 육상선수 이름을 딴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은 우리들의 자랑거리였고, 청소년들이 유일하게 체육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였다.”고 토로한 뒤 25년이 걸려 건설된 체육관을 불과 몇분만에 잿덩이로 변하게 만든 방화범들에게 분노를 나타냈다. 주민 포리셰는 “30년째 이곳에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와 탁아소 등 공공시설물에 방화가 잇따르고 있다는데 이번 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이 불에 탄 것을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포함,200여명에 이르는 태권도 동호회 회원들과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들의 학부모들이다. 등에 ‘태권도’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박힌 흰색도복을 입은 아들 야쿱(4)의 손을 잡고 시청 앞에 나온 베니나는 “우리 아이가 9월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이제 어디에 가서 태권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했다. 이민 가정의 청소년들과 클리시수부아 시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하나시 목데드(28)는 “이곳 청소년들의 삶은 깊은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열악한 주거환경, 학교생활 실패, 가족과의 갈등, 실업문제는 이곳 청소년들을 끝없는 분노로 치닫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인 상황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들은 분명 법을 어기고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사회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lotus@seoul.co.kr 유럽 각국은 프랑스 전역을 휩쓸고 있는 무슬림 청소년들의 폭력사태가 남 얘기 같지가 않다.9·11 테러 이후 유럽에서 무슬림과 비(非)무슬림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무슬림의 불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파리 사태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벨기에와 독일 등 일부 주변국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하자 관련국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달 영국에서는 북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 이주민들간에 유혈충돌이 발생, 인명피해를 낳았다. 앞서 지난 7월 7일에는 런던 지하철과 버스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52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용의자로 현장에서 즉사한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계 4명이 지목됐다. 2004년 11월 2일에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보수 성향의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모로코계 이민 노동자 2세인 부예리에 의해 살해됐다. 같은 해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역에서 열차 연쇄 폭발로 191명이 숨지고 1800여명이 다쳤다.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 땅에서 무슬림과 관련된 공격이 잇따르면서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그에 비례해 무슬림들의 소외감과 반발 역시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재 유럽에 사는 무슬림 인구는 1500만∼2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럽 인구의 4∼5%다. 높은 출산율과 이주 인구의 꾸준한 증가로 오는 2025년에는 그 수가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유럽 이민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2차대전 이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번 소요사태의 중심층은 생활고와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이민 1세대가 아닌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란 2,3세대. 스스로 ‘유럽인’이라 여기며 성장한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뿌리 깊은 차별대우에 직면하면서 ‘2등 유럽 시민’이라는 냉엄한 현실에 맞닥뜨린다. 주류사회 편입 실패와 가난의 대물림, 사회적 편견, 문화적 소외 등으로 유럽 무슬림들의 인내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9·11 테러 이후 잇단 테러에 대한 대책으로 이민 제한책을 선택했던 유럽 각국은 뒤늦게 다문화통합정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런 점에서 5년 이상만 거주하면 국적을 주고, 언어를 배워 현지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웨덴식 이민지원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프랑스 소요사태 일지 ▲10월27일 파리 북동쪽 클리시수부아에서 경찰 피해 달아나던 북아프리카계 소년 2명 감전사. 분노한 청년들 수백명 차량 23대 불태우고 경찰과 투석전. ▲10월28일 클리시수부아에서 청년 수백명 경찰과 충돌. 일부 경찰 향해 사격. ▲10월29일 주민 500명 침묵시위, 야간에 폭력사태 재발. ▲10월30일 경찰 최루탄이 이슬람사원에 발사돼 무슬림 분노 증폭 ▲10월31일 폭력사태 인근 교외지역 확산. ▲11월2일 드 빌팽 총리와 사르코지 내무장관 해외 방문 일정 취소. 파리 주변의 22개 소도시로 소요 확산. ▲11월3∼4일 디종, 마르세유, 루앙 등 전국으로 소요사태 확산 ▲11월5일 파리 중심가서 방화 사건 발생 ▲11월6일 시라크 대통령, 폭력행위 엄벌 천명 ▲11월7일 파리 교외서 첫 사망자 발생. 베를린·브뤼셀서 모방 방화 사건 발생 ▲11월8일 정부, 지역 도지사 야간 통행금지령 발동권 승인
  • 佛 빈민가 청소년 소요 확산

    |파리 함혜리특파원|북아프리카계 무슬림들이나 불법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프랑스 파리 외곽의 소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2일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소요는 파리의 상젤리제와 높은 실업과 차별에 설움을 겪은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극명하게 교차시켜 사회 통합의 과제를 제시했다는 의미를 갖는다.●모스크에 최루탄 발사, 악화 이번 소요는 지난달 27일 파리 북동부의 클리시 수 부앙에서 15·17세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하려고 송전소 담을 넘던 중 변압기에 몸이 닿는 바람에 감전사하면서 촉발됐다. 이 동네 젊은이들은 경찰의 과잉 대응이 이들 북아프리카계 소년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충돌, 이웃 동네로까지 번져 나갔다. 경찰은 결코 이들 2명을 추적한 것은 아니었으며 이들이 착각했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수그러지는 것 같았던 소요는 다음날 경찰이 시위 군중을 해산시킨다며 모스크에 최루탄을 퍼붓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악화됐다. 2일 오전까지 소요는 이웃 올네 수 부아, 센 생드니, 봉디 등 4곳으로 번졌고 이날 오후에는 소요 지역이 무려 9곳으로 늘었다. 올네 수 부아에서 청소년들은 고무총을 쏘며 진압하는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차량과 가게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소요를 이어나갔다. 센 생드니에선 젊은이들이 초등학교 교실 2곳과 차량을 방화해 이 과정에서 경찰 3명이 다쳤다. 지금까지 경찰에 60여명이 검거됐고 구속자만 30명에 이른다. 모두 69대의 차량이 방화로 전소됐다.●사르코지 “인간 쓰레기” 발언 기름 부어 소요가 확산되자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1일 니콜러스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을 대동하고 감전사한 10대들의 부모를 면담했다. 총리실은 면담 뒤 성명을 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시 상황을 명확히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사르코지 장관은 이들 청소년을 “인간 쓰레기”,“날건달”이라고 비난했던 장본인이어서 이번 면담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소요가 이렇게 확산된 것은 사르코지 장관이 범죄 척결을 표방하며 모든 우범지역에 폭동 진압 경찰을 배치하겠다고 과욕을 부린 데서 촉발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극우주의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마약범 및 흉악범들을 “쓸어버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좌파 진영은 사르코지 장관이 주동자 검거를 위해 비밀 정보요원까지 동원하는 등 오히려 공포와 증오를 부추겼다고 비난했다.심지어 정부 안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아주 베가 기회균등증진 장관은 1일 일간 리베라시옹과 인터뷰에서 “질서를 되찾기 위해 때로는 단호한 말도 필요하지만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는 차별을 척결하면서 질서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lotus@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 웃기는 영어(17)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axi Drivers‘ Favorite Jokes―17 An American over in Japan contracts a strange Oriental venereal disease.He goes to many American doctors abroad,and they all give him the same grave news. He must have his penis amputated.In desperation he decides to see an Oriental doctor,in the hopes that he might know something more about his exotic disease. “After all,” he thinks to himself,“an Oriental doctor should know more about an Oriental disease.” So he goes to the doctor and asks,“Do you think I need to have my penis amputated?” “No,no,” says the doctor. “No?” replies the man happily.“That’s great! All the American doctors said they would have to cut it off!” “Western doctors!” says the Oriental man.“All they ever want to do is cut,cut,cut! You see,all you have to do is wait two weeks.The penis will fall off by itself!” (Words and Phrases) over in Japan:일본에 사는 contract∼:∼에 걸리다 strange:이상한 Oreiental:동양의 venereal:성교에 의한 disease:병 abroad:해외에서(이 글에서는 ‘일본에서’를 의미함) grave:심각한 amputate:절단하다 in desperation:자포자기 상태에서 Oriental doctor:한의사 in the hopes that∼:∼라는 희망 속에 after all:결국 exotic:외래의, 이국의 cut∼off:∼을 잘라내다 Western doctor:양의사 fall off:떨어져 나가다 by oneself:저절로 (해석)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 미국인이 동양의 이상한 성병에 걸렸습니다. 일본에서 많은 미국인 의사를 찾아갔는데, 의사들 모두 성기를 절단해야만 한다는 동일한 심각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그 남자는 한의사가 그의 이국병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한의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한의사가 동양의 병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내 물건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네요, 아닙니다.”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네요?”라고 남자가 기뻐 반문했습니다.“정말 좋아요. 미국인 의사들이 모두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양의사들이란”하고 한의사가 말했습니다.“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란 자르고, 자르고 자르는 것뿐이지. 알다시피, 댁이 해야 할 일이란 2주만 기다리는 거예요. 댁의 물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갈 거예요!” (해설) 양의는 환부를 직접 치료하기 때문에 효과가 즉각적이지만 병의 근원을 치료하지 못하는 반면, 한의는 병의 근원을 다스리지만 효과가 즉각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양의 이상한 성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 한의와 양의의 처방이 일견 다르게 보입니다만, 근본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둘 다 그 성병이 불치의 병이라는 처방을 내리고 있습니다. 단지, 양의에서는 환부, 즉 환자의 거시길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의에서는 그냥 놔두면 저절로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 Life Essay for Wrighting 이사와 새로운 시작어느 날 바람에 실려 온 최루탄 가스를 피해 자리를 옮기던 김회장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한 서울에서 나쁜 공기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최루탄 가스를 계기로 전라도 여수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한적한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여수 아이들에게도 영어 교육의 혜택을 줄 수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여수행 인생 차표를 구입한다(bought a life ticket to Yeosu,in the romantic thought that he might catch two hares at the same time). 그는 학습지로서는 불모지인 여수의 지역을 맡는 지사장으로 나름대로 소박한 꿈을 꾸었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낯선 곳이 주는 설렘 속에 여수 생활이 시작되었다.80년대 후반 서울은 고교 평준화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여수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선 입시를 치러야 했다. 학부모들 또한 교육열이 대단해서 서울서 하던 방법으론 여수의 교육시장을 파고들기 어려웠다. 김회장은 종종 여수에 내려온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많은 기회들이 찾아오지만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그런 기회들이 자신을 스치고 지났는지조차 모른다. 이럴 때 김회장은 여수와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한다(President Kim talks about his decision to leave for Yeosu and life there when he says that although one may have numerous opportunities in his life,he does not even realize how many opportunities he has missed because he is not prepared for them). ■ 절대문법 (10) 자리매김 학습절대문법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학습시킨다. 무엇보다 영어 문법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의 자리와 함께 그에 따른 특성과 역할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자. (1)I want a shirt. 나는 원합니다.(무엇을) 셔츠 하나 주어 동사 목적어 (2)I want to swim. 나는 원합니다.(무엇을)수영하는 것 주어 동사 목적어 동사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동사 앞에 주어가 있다는 것이고, 동사의 특성과 의미에 따라 동사 뒤에 보어나 목적어가 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똑같이 동사의 특성에 따라 동사 want 뒤에 목적어가 위치하고 있는 구조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적어 자리에 올 수 있는 품사는 명사이다. (1)번 문장에서는 목적어 자리에 명사 shirt가 관사 a의 수식을 받는다.(2)번 문장에서는 목적어 자리에 to swim이라는 부정사가 위치하고 있다.to swim은 동사 앞에 to와 함께하여 명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영어 문장에서 ‘to 동사원형’ 구조는 종종 동사보다는 다른 품사의 역할을 한다.‘to 동사원형’은 명사, 형용사, 부사 자리에 위치하여 자리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To see is to believe. 동사 see/주어 to see(명사 역할), 보어 to believe(명사 역할) I want to sing. 동사 want/목적어 to sing(명사 역할) The cow began to walk. 동사 began/목적어 to walk(명사 역할) My dad decided to go. 동사 decided/목적어 to go(명사 역할) 이처럼 동사를 중심으로 한 앞뒤의 자리 개념을 이해하면서 영어 문장을 접하게 되면 어려운 문법 용어나 복잡한 설명 없이도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해방과 함께 시작된 경찰의 역사는 민생치안과 시국치안이라는 빛과 그림자의 공존으로 요약된다. 현재 경찰은 60년 공과(功過)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성패는 선진경찰의 이상을 얼마나 현실에 녹여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권의 하수인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경찰은 1945년 10월21일 미 군정 산하 경무국으로 출발했다. 앞서 같은해 9월16일 처음으로 한국인 경찰관을 뽑긴 했지만 일제경찰 잔재를 물려받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 채 출발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능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1991년 8월 대통령령에 의해 치안본부가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형식적인 독립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역할만을 할 수는 없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권인숙 성고문, 이한열 최루탄 사망 등은 어두운 과거의 대명사가 됐다. ●수사권 독립…풀어야 할 매듭 산재 현재 경찰의 최대 화두는 수사권 독립이다. 초기 일시적으로 수사권을 가졌던 경찰은 48년 이후 검찰과 상명하복 관계에 놓였다. 이후 경찰은 여러 차례 수사권 조정을 요구했고 지난해 9월에는 검ㆍ경이 ‘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인권 경찰돼야” 한 목소리 최근 들어 경찰은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몽둥이’이라는 평가를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다. 경찰에 바라는 외부 목소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조영황 인권위원장은 “인권보호에 적극적일수록 경찰과 일반국민간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렬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 공동상임대표는 “민주경찰로 거듭나고자 하지만 아직은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영동 보안분실을 인권센터로 바꾸는 형식적인 노력보다는 환골탈태하는 진정한 인권 지킴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씨줄날줄] 닭장차/육철수 논설위원

    민주항쟁이 막바지에 이른 1987년 6월26일 오후 6시쯤. 당시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는 서울 무교동 평창빌딩의 민추협 사무실에서 ‘대행진식’을 가졌다. 이어 민주당 국회의원과 당원 200여명은 사복경찰 100여명의 저지선을 뚫고 서울시청 앞 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대형 태극기와 ‘민주헌법쟁취’ 플래카드를 앞세운 YS 일행은 50여m를 거침없이 나아갔다. 경찰은 YS의 부상이 염려돼 최루탄을 함부로 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기습적으로 행진대열의 후미에 최루가스를 뿌려 선두그룹을 격리시킨 뒤 순식간에 YS를 경찰버스(일명 닭장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워낙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일이라 당간부 K씨만 YS와 함께 닭장차에 갇혔다.YS를 태운 닭장차는 1시간동안 김포 등지를 배회하다가 상도동 자택에서 그를 풀어 주었다. 시위를 벌이다 닭장차를 경험한 전직 대통령은 아마 YS가 유일할 것이다. 엄혹했던 유신독재 시절,“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쳤던 YS가 닭장차에 강제로 갇히던 날, 그 날의 빛바랜 현장 사진에서는 민주화의 역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과거 민주인사나 각종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과 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닭장차에 태워져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유린의 현장을 체험했을 터이다. 그래서 70∼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요즘도 닭장차를 보면 굴욕적인 추억에 시달린다고 한다. 전투경찰 기동대 버스는 시위대로부터 돌이나 화염병 공격을 막으려고 유리창에 철망을 두르는데, 이게 닭장과 닮았다고 해서 비꼬는 투의 닭장차란 별명이 붙었다. 닭장차는 ‘최루탄’ ‘백골단(헬멧과 청바지를 착용한 전투경찰)’과 함께 험난했던 시절의 3대 키워드였다고나 할까. 최루탄과 백골단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고, 이제 닭장차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모양이다. 경찰은 과격 시위가 급감했기 때문에 기동대 버스 1131대의 철망을 모두 걷어내고, 대신 친근한 색깔을 입혀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한다. 국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심의 흉물처럼 비쳐졌던 닭장차의 퇴장과 함께 우리의 시위문화도 한층 더 점잖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박태경(朴泰慶)(69)노인은 도로공사판에 인부로 나가고 있다. 일을 하는 데서 오래 산 보람을 느껴 보는 요즘 나날이다. 전과 16범, 일명「땅개노인」- 25년간, 그러니까 삶의 거의 3분의 2를 교도소에서 보낸 인생이 그 노경(老境)에 이르러 비로소 맛보는 평온이다. 주인꾸중 두려워 콩 사오다 도망쳤던 철부지 18세 초범이 그만 수년 전에『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대중가요가 잠시 유행했었다. 이미자가 불렀다. - 비 오는 낙동강(洛東江)에 저녁놀 짙어지면 - 흘러 버린 내 청춘이 눈물 속에 애달프구나 -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 모질게 살아가는 이 내 심정을… 노래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아성(亞星)영화사가 유동일(柳東日)감독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이 바로『저 강은 알고 있다』(일명 땅개 박노인), 그 주제가다. 바로 이 영화의「모델」이 오늘의 박태경씨였다. 영화촬영 당시 박노인은 15회째의 징역살이로 대구교도소에서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친 것이 죄였다. 땅개 박노인의 기구한 운명이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약삭빠른 영화사가 노인을「모델」로 해서 그럴싸한「최루탄(催淚彈)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노릴 만도 했다. 박노인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수의를 입은 채로. 1918년 10월 11일 - 지금부터 51년 전, 박노인이 18세 때 첫 번째 죄를 지었다. 일본주인 밑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부 만들 콩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 넘어졌다. 콩이 쏟아졌다. 주인을 찾아 볼 낯이 없었다. 그만 콩 한 말을 10원에, 자전거를 10원에 팔아 버렸다. 전과 16범의「스타트」였다. 2번째, 이웃에 홀로 사는 오(吳)모 여인이 아기를 낳고도 굶주리고 있음을 보다 못해서 쌀 두 말과 미역 1단을 훔쳐다 주었다. 3번째, 1919년 6월 21일, 가택침입죄로 대구지방검사국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4번째, 1921년 12월 23일, 역시 가택침입죄로 징역 2년. 5번째, 1923년 10월 16일, 징역 3년. 6번째, 1927년 11월 16일, 징역 4년. 7번째, 1931년 12월 26일, 징역 4년. 8번째, 1935년 12월 28일, 절도죄로 대구지방검사국에서 기소유예처분. 9번째, 1936년 3월 5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0번째, 1936년 4월 28일, 징역 3년. 11번째, 1940년 7월 16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2번째, 1940년 12월 23일, 징역 3년. 13번째, 1961년 7월 25일, 20년간을 고요히 지낸 것도 헛것이 되어 대구지법에서 야간주거침입, 절도죄로 징역 8개월. 14번째, 1963년 1월 29일, 또 절도죄로 징역 2년. 15번째, 막내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쳐서 징역 1년. 영화촬영은 이때였다. 16번째, 1967년 5월 5일, 절도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낯익은 안동교도소에서 복역, 1968년 초에 출감했다.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몽땅 교도소에서 보낸 계산이다. 도둑질서 발 씻기는 영화 주제가 때문, 그 노래 들으면 눈물 나와 그 동안의 특징을 보면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과 죄명이 모두 절도 아니면 주거침입이라는 점. 사람을 해친 일은 한 번도 없다. 고향 땅에 고목 같이 굵은 뿌리를 박고 다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어쩌면 소심하고 선량한 농민의 아들인지도 모른다. 범죄회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명만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기가 붙이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한 별명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 알려져 있는 것만 들어도(본인은 입을 다물고 열지 않는다) 상희(相熙), 상열(相烈), 춘근(春根), 태성(泰星), 봉근(鳳根), 송태성(宋太星), 임춘근(林春根), 땅개 박노인의 8가지. 본명과 또 다른 별명들을 합해 13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앞으로는 굶어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땅개 박노인」이라는 별명 때문이란다. 영화와 대중가요를 통해 행적이 알려지면서「땅개 박노인」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해진단다. 문제의 노랫가락을 혼자 외면 헛되이 보낸 삶에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한때 안동과 대구 등지를 방랑하면서 구걸을 했다. 『땅개 박노인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문간에서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두 말 않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구걸도 한정이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안동시가 실시하는 구호양곡 근로공사장에 그 늙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가루 3되씩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버지 소문이 부끄럽던 아이들도 발 씻자 모두 일터 찾아 도둑질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후세들의 앞날을 위해서라고 박노인은 말한다. 그의 현주소는 안동시 상아동의 속칭「진모래」라는 곳. 안동 김씨의 재사 안의 1평 반짜리 단칸방에서 박노인 이하 부인 박숙해(가명·48) 장남(18) 장녀(16) 2녀(14) 3녀(10)의 5식구가 살고 있다. 도둑소리만 들어오던 아버지가 손을 씻자 아이들도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힘차게 나섰다. 장남은 안동시 상아동 박모씨의 양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월수 5천원을 가지고 들어온다. 장녀와 2녀는「검」팔이로 하루 6백원 정도의 벌이를 하고 있다. 박노인 일가는 아침은 조밥을,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는 공사판에서 박노인이 가지고 온 밀가루로 국수를 쑤어 때운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명랑한 웃음이 떠돈다. 이들에게는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서 3년 후에는 50만원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자는 꿈이다. 아버지가 도둑질만 하고 다녔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단란한 꿈이다. <안동=문명준(文明俊)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국민 모금 ‘이한열 기념관’ 문연다

    1987년 6월 항쟁 때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를 기리는 ‘이한열 기념관’이 9일 문을 연다.6월9일은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날이다. 기념관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100여평 규모로 지어졌다. 지난해 6월 공사가 끝났으나 건축 대출금 상환문제로 완공 1년이 다 돼서야 개관하게 됐다. 이한열 기념관은 국민모금으로 지은 첫 개인 기념관으로 ‘전태일 기념관’보다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3∼4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이 열사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사진, 글모음 등이 전시되며 최루탄에 맞았을 때 입었던 셔츠와 바지, 밑창이 떨어져 나간 운동화 등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유품도 공개된다. 기념관 건립은 6월 항쟁 때 연세대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이 주도했다. 어머니 배은심(65)씨는 “기념관이 지어졌지만 마음 편히 찾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 “우리 한열이가 살아있고 이런 기념관이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했다. 6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 진흥고를 거쳐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 열사는 1987년 6월9일 교내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같은 해 7월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 돼지 부속물 ‘장터 뷔페’ 지금 50,60쯤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라면,1960년대 무렵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삽화 한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몇 학년 국어교과서인지조차 까마득히 잊었지만,5일장이 선 시골장터에서 중년의 사내가 눈보라를 맞으며 하염없이 서 있는 삽화이다. 삽화 속 사내는 눈보라를 맞으면서 어머니를 기리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바로 5일장을 돌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여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다. 그리고 미처 아들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기려 난장에 서서 온몸으로 눈보라를 맞고 있다는 줄거리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어른·아이 모두의 축제 그 중년 사내의 삽화가 나에게 언제까지라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내야말로 나와 한 치도 틀림없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자전적인 작품에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장터의 풍경이 나온다. ‘우리 식구는 모두 장돌뱅이였던 셈이다. 어머니는 어물전의 한 귀퉁이에서 길바닥에 거적때기를 깔고 그 위에 역시 거적때기만한 차일을 친 채, 김이며 미역, 멸치, 마른 새우 등의 해산물을 팔았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해종일 어머니와 함께 장날을 보냈지만, 조금 커서 네댓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어머니의 등을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돌뱅이가 되어 장터를 헤집고 다녔다. 장돌뱅이에게 있어서, 닷새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란, 어른 아이 막론하고 축제일 수밖에 없었다. 장날이 돌아오는 나흘 내내 기껏해야 휴지 나부랭이나 회오리바람에 날리곤 하던 쓸쓸한 빈터와 기둥만 앙상하던 빈 가게들이, 장날이 되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람들이 들끓는 싸전이며 어물전, 포목전, 유기전, 옹기전, 잡화점 등으로 변하고, 노점 음식점들마다 돼지머리와 순대가 산더미처럼 쌓이거나 가마솥이 넘치도록 팥죽이 끓어대는 요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장돌뱅이들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목이 쉬도록 시골 사람들을 불러 하루 벌어 닷새를 먹고 살 돈을 마련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장터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물건을 훔치거나 아니면 혹시 길에 떨어진 동전 한닢이라도 줍기 위해 해종일 악머구리 끓듯 해댔다. 어린 장돌뱅이의 벌이는 그다지 신통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싸전 근방을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어른들의 다리 틈으로 쌀을 한 주먹씩 훔쳐내어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되밀이꾼에게 들켜서 되밀이로 얻어맞거나,‘이 문댕이새끼, 손모가지를 콱 짤라불기 전에 쌀 못 놔?’‘아이고, 전 어떤 장돌뱅이년 구녕에서 나온 새끼여?’ 하는 시골 아낙네들의 막된 욕지거리야 다반사였고, 조금도 개의할 바가 아니었다. 어린 장돌뱅이들은 저만큼 도망치면서 ‘히잇, 니에미 X이다아’ 하고 대거리를 해대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어린 장돌뱅이에서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나이에 이르러서도, 어쩌다 5일장에만 가면 나는 장터 특유의 축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고 만다. 그리하여 몇 시간이고 좋이 장터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한만을 잔뜩 남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도 한다. 수도권 일대에 조선조부터 유명한 5일장으로는 광주의 사평장, 송파장, 안성의 읍내장, 교하의 공릉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빛이 바랬다. 대신에 내가 즐겨 찾는 5일장은 성남 모란장이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다가 4일과 9일,14일과 19일,24일과 29일, 이렇게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는 모란장은 우선 3000평이 넘는 넓은 장터여서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지척이면서도 기이하게 전혀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시골장터의 분위기 속에는 누군가에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들짐승 혹은 모질게 살아남는 여름 한낮의 잡초 같은 거친 생명력이 깔려있다. 거친 생명력은 자칫 수상쩍은 기운마저 감돌 정도이다. 이를테면 어디 한군데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집안의 우환노릇이나 하면서 거느릴 가족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역마살의 작은 아버지나 외삼촌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불온하고 어수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살붙이의 정이 가는 식이다. 그런 모란장의 분위기는 어쩌면 성남시 자체에서 태생적으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회지의 때 묻지 않은 시골장터 분위기 도대체 성남이 어떻게 만들어진 도시인가.1960년대에 박정희식 값싼 노동력 위주의 경제개발에 희생되어 실농한 농민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등지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다가, 판잣집에서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채 이번에는 철거민이 되어 광주시 중부면의 허허벌판으로 내몰려 만든 소위 광주대단지의 ‘달나라 별나라’가 시초 아니던가. 먹고 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나라에서 준다는 20평의 땅에 혹하여 지금의 은행동 일대에 ‘달나라 별나라’를 만들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눈이 뒤집힌 임산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삶아먹는 파천황의 굶주림 끝에, 마침내 ‘광주폭동’을 일으킨 비극의 땅이 아니던가. ‘광주폭동’은 작가 윤흥길씨에 의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작품으로 재현되었다. 이 작품에는 ‘안동 권씨’에 대학까지 나와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오로지 내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광주단지에 까지 오게 된 주인공이 주로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한 데모대를 피해 도망치다가 자칫 데모대의 물결에 휩쓸려 들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빗속에서 사람들이 경찰하고 한참 대결하는 중이었죠.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꿔져 버립디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 술값만 내면 양은 맘껏 데몰 피해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 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 주어 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 옵디다. 나체화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 나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디다. 내가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농·공·축·수산물 없는게 없는 만물상 ‘나체화’의 성남시가 2004년 12월 말 현재 97만 명을 넘어 100만 명이라는 초읽기에 들어간, 나라 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가 되었다. 만일 그대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만나고 싶다면, 그리하여 그대 또한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체화’를 느끼고 싶다면, 그대는 지금 당장 모란장으로 오라. 모란장 어디에서건 그대는 너무 쉽게 아홉 켤레의 사내와 나체화를 만나게 될 터이다. 만일 그대가 설 명절을 맞아도 돌아갈 고향이며 가족이 없는 떠돌이라면, 더더욱 망설이지 말고 모란장으로 오라. 와서 그대 또한 기꺼이 벌거벗은 채 나체화 속으로 들어가라. 지하철 8호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모란역에서 5번 출구를 나와 20m 쯤 걸으면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모란장 입구가 보인다. 성남이나 분당행 시내버스를 타서 모란역에서 내려도 마찬가지다. 또한 모란역 곁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전국의 어디에서건 성남행 시외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모란장 입구라고 해서 딱히 무슨 표지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꽃이며 난이나 동백꽃 같은 화분을 길바닥에 늘여놓은 꽃전이 입구인 셈인데, 꽃전을 지나면 쌀이며 보리, 콩, 조, 수수, 율무 같은 갖가지 잡곡을 파는 잡곡전이 나오고, 당귀며 황기, 인삼, 감초 같은 약초에서부터 지네며 뱀, 심지어 굼벵이까지 파는 약초전이 나오고, 할머니들의 고쟁이 같은 내복에서부터 누비옷이며, 버선, 양말, 양장, 신사복, 점퍼 등을 파는 의류전, 신발전, 고등어, 갈치, 대구, 새우, 꽁치, 삼치, 굴, 동태에서 아구며 가오리 등 온갖 생선을 파는 생선전, 무며 배추, 상추, 시금치에서 사과, 배, 바나나, 곶감, 귤을 파는 야채전을 지나면 드디어 먹거리를 파는 음식전이 시작된다. 아니, 잠깐만 음식전을 모른 척 지나치자. 음식전 옆에는 활어전이 있는데, 주로 붕어며 잉어, 누치, 가물치, 장어, 새우, 자라, 미꾸라지 등 살아 있는 민물고기들이 펄떡펄떡거리고 있다. 활어전을 지나면 고추전이 나오고 다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이 싸서 1,2만원짜리도 있다는 각종 강아지를 파는 애견전이 나오는데, 장터의 맨 끝에는 흑염소며 닭, 오리, 토끼, 고양이 등을 파는 가금전이 있다. 모란장을 대강 둘러 보았으면, 다시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전으로 돌아가자. 젊은 남정네가 아내며 어린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있거나, 늙은이 내외가 둘이서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음식전에는 팥죽이며 호박죽이 양은솥 안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팔팔 끓고, 왕만두, 만둣국, 팥국수, 장터국수, 잔치국수, 칼국수 등이 산더미로 쌓여 있다. 그것들이 모두 2000원에서 3000원 안팎이다. 그런가 하면 옆에서는 가오리찜, 순대국밥, 손만두, 소라, 홍합, 돼지허파, 코다리찜, 돼지머리고기, 문어, 쭈꾸미, 새우 등이 역시 산더미로 쌓여 있다. 두 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양의 한 접시가 각각 5000원이다. 문득 가까운 어디선가 굿판이라도 벌어진 듯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쇳내 나는 목청으로 누군가가 신명지게 품바타령을 불러대고 있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면, 만장한 구경꾼들 한 가운데에서 엿장수의 놀이판이 벌어져 있다. 그렇듯 엿장수의 놀이판 주변으로는 뷔페 중에서도 희한한 ‘쌍방울뷔페’의 ‘원주민촌’,‘무진장집’,‘대박집’,‘왕눈이’,‘막썰어집’,‘고향집’,‘은영네 대포집’ 등이 눈에 띈다. 쌍방울이란 돼지 불알을 일컫는 말로, 바로 돼지부속 고깃집들이다. ●음식도 가지가지 입맛대로 골라 포식 이 돼지부속 고깃집들은 부속의 종류에 따라 값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님의 양에 따라서 얼마를 먹든지 간에 고기 값은 무료이고, 술값만이 다르다. 이를테면 소주 한 병에 3000원, 동동주 한 잔에 1500원인 ‘돼지 잡는 날’에서는 이곳에서 도래기름이라고 부르는 이자와 지라, 콩팥, 염통 등의 돼지부속이 나오고, 소주 한 병에 5000원인 ‘쌍둥이네’에서는 지라며 콩팥, 염통 이외에도 돼지껍데기며 생고기, 새끼보, 불알 등이 더 나온다. 이렇듯 모든 돼지 부속물들이 기다란 철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으면, 손님들은 술이 떨어지지 않는 한 이리저리 철판을 옮겨 다니며 얼마든지 포식할 수 있다. 뿐이랴, 바로 쌍방울뷔페 옆에는 내가 빠질 수 있냐는 듯이 왕새우구이, 민물장어, 꽁치구이, 청어구이, 꼼장어에 버섯삼겹살이며 메추리구이, 닭발, 닭똥집, 두부김치 등을 파는 ‘명희네’며 ‘옛사랑집’이 있다. 거기서 잠깐 눈을 돌리면, 커다란 가마솥에서 솔솔 단내를 풍기며 가득히 보신탕이 끓고 있는 ‘은영이네 가마솥 보신탕’이 있다. 그러나 이 보신탕은 장터 반대편 ‘영남흑염소’ 건물 주변이 대여섯 집들이 차일을 잇댄 채 줄지어 서 있다. 보신탕은 보통이 8000원, 특이 1만원이다. 만일 그대가 여기까지 모란장을 돌아 보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 또한 성남이라는 사연 많은 도시의 나체화 속으로 껴들어 있는 것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그대가 낯선 사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지라 한 점을 안주로 한 병에 3000원짜리 소주를 목 안에 깊이 털어넣을 때, 아니면 엿장수들의 음담패설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는 칠순 노파 옆에서 그대 또한 키득키득 웃어댈 때, 그대는 이미 그만큼 불온하면서도 어수룩한 살붙이의 정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한 폭의 나체화를 만들고 있으리라. (작가)
  • [아테테 통신]

    ●개·폐회식 남북한 공동입장의 북측 기수로 김성호(58) 전 북한 농구대표팀 감독이 10일 선정됐다.키 185㎝의 김성호는 ‘남녀북남’의 약속에 따라 남측의 여자배구 선수 구민정(31·182㎝)의 큰 키에 맞춰 결정됐다. 입장 대형은 ‘KOREA’의 표지판을 맨 앞에 내세우고,이어 남북한 NOC위원장,선수단장·임원,선수 순으로 정했다.복장은 남자는 파란색,여자는 빨간색 상의에다 바지와 치마는 모두 흰색.한반도기는 왼쪽 가슴에 부착하기로 했다.입장 인원은 북측 50명,남측 120여명 규모가 될 전망이다.남측은 이날 공동 단복 80벌을 전달했다. 한편 사상 첫 올림픽 현장 합동훈련 종목으로는 14일부터 시작될 탁구가 채택됐다.이에 따라 남북한 선수들은 12일 오후 갈라치 올림픽홀에서 우정을 나누는 훈련을 갖는다.남측은 앞서 남녀 각각 두 테이블을 배정받아 합동훈련에는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 ●아테네의 기온이 한낮에는 섭씨 32∼33도에 달하지만 새벽에는 이상 저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선수들을 감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불 공수 사태가 벌어졌다. 사이클의 조건행 감독은 10일 주경기장 근처의 대형 할인점에서 이불 두 채를 샀다.조 감독은 “여자 선수들보다 남자 선수들이 더 추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걱정했다.앞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지난 9일 본부 직원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담요를 긴급 구매했다. ●안전 문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그리스 정부가 경기장에 반입할 수 없는 물품 리스트를 발표했다. ‘블랙 리스트’에는 총,최루탄,칼,화약 등은 물론 우산,스케이트 보드,1m 이상의 현수막과 빗자루,플라스틱 원반(프리스비),유모차까지 망라됐다.깃발도 202개 참가국의 국기 외에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남북한 간판 유도선수인 이원희(24)와 계순희(25)가 11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두 선수는 10일 올림픽 선수촌 국기광장 옆 식당 입구에서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 이후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선전을 기원했다.지난해 세계선수권 당시 같은 날(9월13일) 남자 73㎏급과 여자 57㎏급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던 이들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오는 16일 동반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그동안 한국 취재진을 피해왔던 계순희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 與·野정치인 ‘우린 닮은꼴’

    15일 사실상 첫 임시회를 마감한 17대 국회를 살펴보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닮은꼴 의원들이 적지 않아 관심을 끌고 있다.선수(選數)가 달라 이른바 ‘체급’은 다르지만,외모나 성격뿐만 아니라 의정활동 방식,대외활동까지도 비슷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햄릿형 닮은꼴 정치인으로 김근태(3선)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나라당 김덕룡(5선) 원내대표가 손꼽힌다.서울대 선·후배로 학생 운동권과 재야활동을 거쳤다.둘 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지만,때론 최종 결정까지 시간을 오래 끌어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도 받는다.김 장관은 복지부 장관 입각을 앞두고 임명 이틀 전에야 마음을 잡았고,김 대표는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때 ‘DR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후보등록 직전까지 결심을 미뤘다. ●퍼스트 레이디형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열린우리당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부드러운 외모와 말투,단호하고 의지가 강한 점 등이 닮았다는 평가다.말수가 적은 것도 비슷하다.박 전 대표는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5년 동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경험이 언행 곳곳에 배어 있다.50·60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10·20대에게도 호감의 대상이다.한 의원은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렀지만 투사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그를 만난 사람들은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열린우리당 내에서는 한때 박 전 대표의 대중적 인기를 누르기 위해 차기 당의장으로 한 의원을 밀자는 제안들도 있었다.두 사람은 지난 총선에서 상대방을 헐뜯는 ‘네거티브 선거전’을 거부했다. ●언론 민감형 기자들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등 언론에 민감하고,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주자라는 평가 때문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곧잘 비교된다.4월 총선 때 ‘민생투어’로 노란색 점퍼를 입고 시장통을 돌던 정 장관은 타고난 순발력으로 언론이 선호하는 어젠다와 그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박 의원도 총선이 끝난 뒤 다홍색 스쿠터를 타고 지역구인 종로 시장통을 누비고 다녀,대중성이 뭔지 아는 정치인이라는 평이다. ●워치독(Watch Dog)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이 손꼽힌다.원 의원은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을 ‘금품선거’라고 폭로하고,지난 14일 닻을 올린 ‘새정치 수요모임’에도 고정멤버로 참가해 ‘불법비리 정치인 비보호’를 주장하는 등 당내 보수진영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청와대 정무2비서관 출신의 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어려울 때면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정부측에도 ‘독한 소리’를 쏟아낸다.김 대변인은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에서 국무총리실 관료가 면피성 발언을 하자 책임을 다그쳐 눈길을 끌었다. ●전략 이론가 언론계 출신인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과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손꼽힌다.민 의원은 70·80년대 ‘제헌의회파(CA)’의 중앙위원 출신.초선에도 불구하고 재선급 이상으로 평가돼,재선 이상의 중진으로 구성된 정책기획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박 의원은 대학시절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위기에 빠졌던 인물로,지난 94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최연소 위원으로 발탁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구상과 전략’의 최종 집필을 맡았다.박 의원은 14일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총리를 상대로 조목조목 따져 ‘박근혜 패러디’와 관련해 이 총리의 사과를 받아냈다. ●독설가 TV토론회 등에 나와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는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을 겨냥해 “손학규 경기지사의 상대는 나”라고 호기를 부렸으며 민감한 정치현안이 있을 때마다 쉴새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붓기로 유명하다. 전 대변인은 방송기자 출신답게 정곡을 찌르면서 쓴 소리를 잘해,특히 유 의원의 ‘천적’으로 통한다.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기피대상 1호다. ●패션리더형 세련된 패션감각으로 검정 양복 일색인 국회의사당을 평정한 민주당 손봉숙 의원과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의 패션 대결도 흥미진진하다.멋쟁이로 소문난 손 의원은 샛노랗게 화사한 재킷에 하얀색 치마를 받쳐 입거나,진한 자주빛이 감도는 치마 정장 등으로 멋을 낸다.옷 색깔에 맞춰서 꽃모양의 장식을 달거나,브로치·스카프 등 다양한 패션 소품도 활용한다.방송인 출신으로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박 의원은 날마다 스케줄에 따라 옷 색깔을 코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국회 개원식 때는 눈처럼 깨끗한 흰색 정장을 입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다혈질형 고려대 선·후배인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열린우리당 문학진 의원이 꼽힌다.각각 검사와 기자를 지낸 전문가 출신으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들.홍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3선이 되자마자 ‘저격수 활동 중단’을 선언,한동안 조용히 지내기도 했지만 최근 당지도부를 향해 “‘웰빙 야당’으론 안된다.우리가 여당의 2중대냐.”고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문 의원은 청와대 정무비서관 시절 지역구에서 야당 보좌관에게 소주를 끼얹는 등 괄괄한 성격.등원 이후 ‘3선급 초선’이라며 점잖게 처신을 하고 있으나 언제 특유의 다혈질이 터져 나올지 관심거리다. ●정보통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으로 각각 국정원 기조실장과 안기부 1차장을 지낸 ‘정보통’이라는 점에서 닮았다.악연도 만만치 않다.최근 안기부 자금 유용사건인 ‘안풍(安風)’에 대해 법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공수가 뒤바뀌었다는 평가도 있다.문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은 상태에서 정 의원의 ‘비공개회의 공개화’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통 열린우리당 정세균,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손꼽힌다.두 사람 다 민간기업에서 일한 뒤 정계에 입문해 ‘정책통’으로 인정받고 있다.정 의원은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이 의원은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정 의원은 쌍용그룹에서 18년간 근무한 뒤 95년 정계에 입문해 민주당·열린우리당의 정책위의장을 맡았었다.이 의장도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냈고,2000년 첫 등원했다. 문소영 전광삼기자 symun@seoul.co.kr˝
  • 파키스탄 시아파 사원 테러

    |카라치(파키스탄) ·AFP 연합|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 카라치의 시아파 이슬람 사원에서 지난달 31일 저녁(현지시간) 7시40분쯤 폭탄이 터져 예배중이던 신도 16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쳤다고 경찰과 병원 소식통들이 밝혔다. 이 사건은 파키스탄의 유력 수니파 성직자이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정신적 지도자인 무프티 니자무딘 샴자이가 이 사원 근처에서 무장 괴한들의 매복공격으로 암살된 지 하루만에 발생했다. 카라치 시내 중심부 이맘 바르가 알리 라자 사원에서 발생한 이날 사고로 시내 중심가 지나 거리는 일대 혼란에 빠졌고 사원 맞은 편 건물 유리창과 건물이 부서졌다.아사드 아시라프 카라치 경찰청장은 시신 중 한 구를 수습해 자살테러범의 시신인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원 내부에서 예배를 하던 신도 한 명은 지나가던 차량 한 대에서 폭탄이 투척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압둘 라우프 초드리 내무부 대변인은 폭발의 배후를 말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전날 발생한 수니파 성직자 샴자이의 피살을 언급하며 “종파 분리주의자의 소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폭발사고 이후 카라치 시내 최소 4군데의 시아파 주요 거주지역에서 수백 명의 시아파 청년들이 경찰 차량 두 대와 사원 외부 주유소에 불을 지르고 관공서 2곳을 약탈,경찰이 최루탄과 권총을 쏘며 해산에 나서 이 와중에 시위대원 2명이 숨졌다. 파키스탄은 인구 1억 5000만명 중 수니파 80%,시아파 20%로 대부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지만 양측의 일부 급진세력이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 [사설] 日순시선 최루탄 발사 적극 대응을

    일본 순시선이 엊그제 경남 통영 앞바다 배타적 경제수역(EEZ) 부근에서 조업하던 우리 어선에 수십 발의 최루탄을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이 배의 선장은 크게 다쳤다고 한다.양측의 주장이 달라 현재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다.그러나 우리 어선이 설령 실수로 경제수역을 침범했다고 해도 일측의 과잉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특히 민간 어선에 최루탄을 사용한 것은 납득이 안 된다.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이 벌어졌지 않은가.10명의 선원들은 극심한 공포감에 떨었다고 한다. 양측이 EEZ 침범여부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만큼 국제관례를 참고해야 할 듯하다.다른 나라 배가 조업 구역에 들어오면 우선 어선을 밀어내는 행동을 취한다.그래도 불응하면 영어 경고방송과 함께 어선을 나포한 뒤 벌금부과 등 사법처리 절차를 거쳐 해당국에 통보하는 게 일반적이다.일본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일본어로 몇마디 한 뒤 두 시간씩이나 쫓아다니며 최루탄을 쏘았다고 한다.이 때문에 고의적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까지 드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간단히 넘겨서는 안 된다.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 분쟁화하려고 하고 있는 마당이다.자국 연안에서 200해리까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EEZ내 충돌은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그 연장선 상에서 일측이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면 안 될 일이다.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에 그렇다.정부는 철저히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따질 것은 따지고,요구할 것은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결과에 따라 일측의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책 등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그래야 어민들이 안심하고 조업할 수 있을 것이다.˝
  • 日순시선, 한국어선에 최루탄 쏴

    한·일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해역에서 조업중이던 우리 어선에 일본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최루탄을 발사,선원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일본측 EEZ침범으로 나포된 어선의 선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문제된 적은 있었으나 무차별적인 최루탄 발사는 처음이어서 외교문제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24일 오전 6시15분쯤 경남 거제도 남방 40마일 해상(약도)에서 조업중이던 통영선적 통발어선 339풍운호(78t·선장 최복돌·45)에 일본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P-208호가 최루탄 40∼50발을 발사했다.이 과정에서 조타실에 있던 선장 최씨가 왼쪽 눈에 최루탄을 맞고,출동한 해경 헬기에 의해 부산대병원으로 후송됐다.최씨는 왼쪽 눈두덩과 이마에 최루탄 파편이 박혀 있고,안구도 손상돼 실명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원들은 “우리쪽 EEZ에서 그물을 올리고 있을때 일본 순시선이 다가와 정선명령을 내렸으나 불응하자 착색탄과 함께 최루탄을 마구잡이로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인근 해역에는 한국어선 10여척이 조업하고 있었으며,333풍운호 정기철 선장은 “‘일본 순시선이 따라오고 있다.’는 339풍운호의 무전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면서 “당시 피해어선은 한국측 EEZ 2마일 안쪽에서 조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339풍운호은 지난 15일 꽃게잡이를 위해 통영항을 출항,오는 30일쯤 귀항할 예정이었으며,일본 EEZ 입어허가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경은 339풍운호가 배타적경제수역을 1.2마일쯤 침범했다는 일본해상보안청의 통보에 따라 선원들이 귀항하는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한편 외교통상부는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조사결과에 따라 대응 수위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통영 이정규기자 jeong@˝
  • [열린세상]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봄기운이 완연하다.이맘때,대학에서 지내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교정을 향기로 채우며,봄차림 자랑하는 꽃나무를 감상하는 것이다.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연녹색의 나무들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탄한다.봄의 정취를 사진기에 담아내는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긋한 행복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대학이 지역 주민들에게 못할 짓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것은 대학의 책임이라기보다 독재라는 정치적 조건 때문이었다.특히 1980년 ‘서울의 봄’에서 시작해서 87년 민주화 항쟁의 기간 동안 수시로 벌어지던 대규모 집회와 최루탄 진압,그리고 악명 높았던 소위 ‘지랄탄’ 등으로 대학가 주민들은 학생들과 더불어 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87년 한 해 동안에만 경찰이 쏜 최루탄이 72만 4000발에 달했다니,대학 주변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가.화염병,돌멩이,최루탄 탓에 집값이 떨어진다던 하소연이 기억에 생생하다.콧물,눈물 질질 흘리던 분식집 여린 꼬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진 마음의 빚 때문일까.이제 대학이 인근 주민들과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것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최근 몇몇 대학들이 캠퍼스의 담장을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이는 좋은 출발이다.외국의 대학들을 보면 대부분 대학과 지역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그야말로 ‘캠퍼스 타운’인 것이다.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발상을 한다면,지역사회를 위해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 있다. 첫째,대학은 지역의 문화 센터 역할을 할 수 있다.상당수의 대학들이 문화적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주변에 변변한 문화시설이나 극장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이런 문화적 결핍을 대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대학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회나 문화 공연이 열리고,학생들을 대상으로 좋은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많은 예산을 들여서 하는 이런 행사들이 교내 구성원들만의 잔치여서는 곤란하다.보다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대학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대학 도서관 같은 시설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주민등록증으로 도서대출도 가능하게 하자.‘관리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그러나 힘들더라도 사회교육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임무이다.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운 인근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불평등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이런 일들이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만들고,대학의 지식 전파 기능을 완수하는 길이다. 셋째,대학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잿빛 콘크리트의 도시에서 대학은 그나마 얼마간의 녹지를 보유하고 있다.도시 공기의 심각한 오염 속에서 대학은 작은 숲의 역할을 할 수 있다.노동에 지치고,일상에 피곤하고,속도에 넋이 빠진 사람들이 찾아와 차 한 잔 마시고,앉아서 쉬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대학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무를 심어야 한다.콘크리트와 시멘트는 죽음이다.콘크리트와 시멘트를 들어내고 나무를 심고,숲을 가꾸자.이를 통해 생명을 살리고,지친 현대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학교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건물을 짓는 일은 신중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끝으로 대학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는 다른 철학을 잉태하는 곳이어야 한다.‘경쟁’과 ‘시장 원리’가 온통 난리를 치며 사회를 획일화시킬 때에도,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속으로 갈급해하는 다른 소리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느림’,‘삶의 의미’,‘생명’,‘배려’와 같은,비효율적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가치의 의미를 외치는 것이 정말로 큰 대(大)자 ‘대학’이 사회를 위해 제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국제플러스]이 경찰 알 아크사 사원 진입 발포

    |예루살렘 AFP 연합|이스라엘 경찰이 2일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포위돼 있는 예루살렘 알 아크사 사원 경내로 진입한 뒤 최루탄과 플라스틱탄 등을 발사,최소 6명이 부상했다.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에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돌을 던진 뒤 경찰이 진입했다고 경찰 대변인은 말했다.경찰은 사원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봉쇄한 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고 있으며 응급처치 요원들의 부상자 후송 작업도 막고 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이슬람 3대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은 유대인들에게는 템플 마운트로 불리는 곳으로 유대교 최대 성지인 통곡의 벽과 붙어 있어 지난 2000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유혈분쟁의 진원지가 된 바 있다.˝
  • 이란 총선 보수파 완승

    |테헤란 외신|이란 총선 중간 개표 결과 보수파가 완승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현지 언론들이 21일 보도했다. 보수파는 개혁파 정당과 후보들의 출마자격 무더기 박탈과 불참 속에 20일 치러진 총선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4년 만에 의회를 다시 장악할 것으로 전망됐다. 보수파는 마즐리스(의회) 전체 290석 가운데 60% 정도의 당선자가 확정된 이날 현재 110석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관영 IRNA통신이 보도했다.이는 의석 과반선에서 36석이 모자란 것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선거의 정통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투표 참가율은 전국적으로 50%선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란 내무부는 전체 투표율은 50.57%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이는 2000년 총선 투표율 67.2%보다는 훨씬 낮지만 선거 보이콧운동을 전개해온 개혁파의 예상을 웃도는 것이다. 그러나 30개 의석이 걸린 수도 테헤란의 투표율은 28%로 극히 저조했다.이란의 방송들은 테헤란의 30개 의석 가운데 보수파가 25개를 확보,완승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한편 총선 직후 이란 서남부에서 보수파의 승리로 끝난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시위대와 경찰간에 충돌이 발생,시위대 4명이 숨졌다고 지역 경찰이 이란의 학생통신 ISNA에 22일 밝혔다. 이 통신은 쿠제스탄 지방의 부지사의 말을 인용해 “경찰은 시위대들이 관청건물을 공격하려 하자 이를 저지했으며 이 과정에서 시위대에 사격을 가하고 최루탄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대표적 개혁파 정당인 이슬람이란참여전선(IIPF)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자유선거가 실시됐더라면 개혁파가 승리했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 서울탱고-북한강에서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강가에는 안개가‘(노래 ‘북한강에서’) 84년 발표된 정태춘의 노래속 북한강에는 새벽이 있었고,또 물안개가 자욱했다. 이곳저곳 노랫말에 묻어나오는 회색의 절규는 듣는 이에 따라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이제는 음식점과 숙박업소들이 정태춘의 새와 나무,그리고 끔찍이도 사랑하던 새벽 강변을 빼앗지만 북한강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고향이다.시위와 항쟁의 80년대를 거치면서 이 노래는 노동자들의 집회현장을 누볐고,호주머니가 넉넉지 않은 아버지들의 애환을 대변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노래의 탄생은 우연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80년대 초 3년동안 북한강 인근 군부대에서 동원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면서 느낀 당시 심경을 시로 쓴 뒤,노래로 만들었지요.”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대한통운 트럭에 태워져 군부대로 이동하면서 북한강 새벽 강가를 달리던 정태춘은 79년 모 방송사 신인가수상을 수상한 뒤 연이은 음반실패 등에 따른 좌절감을 물안개가 자욱한 북한강에 실어 노랫말로 만들기 시작했다.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원망이 컸고,결국 노래를 그만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평택이 고향이어서 바다는 보았지만 강은 처음이었고,그래서 강이라고는 처음 본 북한강에 대한 느낌도 남달랐다. 여하튼 ‘북한강에서’는 노래로 탄생했고 애창곡이 돼버렸다.죽기로 작정하면 못할 것도 없었던지 그 마지막 곡은 묘하게도 노래 속에 사적인 독백과 소회가 자리를 감추는 계기였고 대신 사회 현실에 대한 의식에 눈을 뜨는 전환점이 됐다. ‘강과 하늘,구름을 노래하는 음유시인’.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그렇게 불렀다.최루탄 속에서 북과 꽹과리를 들고 음반 사전심의 철폐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쉽게 치유되지 않은 아픔은 그를 북한강의 새벽안개만큼 자욱한 회색연기를 쉴 새 없이 뿜어대는 골초로 만들었다.불법음반으로 낙인찍힌 자신의 노래테이프를 시위현장에 전달해 주면서 80년대 서울 중심가를 떠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노래 ‘북한강에서’는 적어도 한번쯤 최루탄 냄새를 맡아본 세대에게는 그저 흥얼거림 이상의 가슴 뭉클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양주보다는 소주가,레스토랑보다는 포장마차가 어울린다. 북한강이 많이 변했다.양수리에서 청평으로 가는 북한강변은 이제 카페건물과 유럽풍 전원주택이 자리를 잡았다.안쪽으로는 숙박업소와 펜션도 자리잡아 차량통행량도 많이 늘었다.그래도 새벽안개만큼은 여전하다.얼마전 정태춘이 북한강에 갔다.오랜만에 찾은 곳인데 낯설기만 하단다. “옛날과 같은 풍경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컸지만 조금만 고생한다면 오염되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정태춘은 뭔가 찾고 있다.그러나 그의 말에서 더 노력했으면 찾을 수 있었던 진실된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노래로 다 못한 이야기를 조만간 시집으로 낸단다.집안 새장에서 기르던 잉꼬(이름 양아치)의 이름을 따 책제목은 ‘아치의 노래’라나.새장 안에 갖혀있는 새의 심경을 헤아려 정태춘이 써내려간 50여편의 시다. ■ 카메라 앵글로 북한강 노래 정태춘이 북한강에서 안개를 노래할 때 비슷한 시기 민병헌(49)은 사진속에 가득 안개를 담아왔다. 쉽지 않은 대상이지만 20여년동안 흑백사진에만 몰두하면서 한국 사진계 ‘회색의 도인’으로 꼽힌다.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안개속에 은은하게 자리잡은 피사체가 한지속에 스며있는 느낌이다.민병헌씨의 작업실은 경기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물안개가 자욱 피어오르는 새벽과 윤곽이 희미해지는 저녁무렵,카메라를 들고나가는 것은 일상이다.20년을 담았어도 부족하다며 안개속에 육안으로 보이는 물방울까지 소재로 탐을 낸다.렌즈를 통해 피사체가 육안으로 분간이 되지 않아 대부분 느낌에 의존한다.가수 정태춘보다는 한살이 적다.만난 적은 없지만 ‘북한강에서’란 노랫말을 외우고 있다. “‘북한강에서’를 들은 것은 80년대 중반으로 처음부터 이 노래를 좋아했다.”며 작품활동을 하다 지칠 때면 곧잘 흥얼거리곤 했다고 한다. 정태춘이 북한강에서 무의미와 좌절을 절규하면서 진실을 갈구했다면 작가 민병헌씨는 장막과 같은 안개속에서 살아숨쉬는 대상의 어울림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양평 윤상돈기자 yoonsang@ ˝
  • 쉬어가기˙˙˙

    오는 6월 열리는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의 개최국인 포르투갈 경찰은 17일 대회기간 동안 훌리건들에게 물대포를 사용하는 등 강경 진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포르투갈 경찰은 이번 대회에 상당수의 훌리건을 포함한 5만여명의 영국 팬들이 입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미 1900만달러를 들여 물대포 7대와 최루탄 발사기 1만6000정을 구매키로했다.한편 영국 경찰도 ‘악성 훌리건’ 2500여명에 대해 포르투갈 여행을 금지할 계획이라고.
  • 'FTA 통과’ 격렬 시위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소속 회원 3000여명은 16일 오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통과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등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농민단체들은 이날 비준 철회를 주장하며 ‘낙선 대상의원’ 및 ‘반농업 인사’ 대상자 명단을 공개,17대 총선에서 대대적인 낙선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전국농민연대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조순형 민주당 대표,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여야 의원 8명을 ‘낙선 대상’으로 발표했다.전국농민회총연맹도 유인물을 통해 박관용 국회의장,정동영 열린우리당 상임의장과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허상만 농림부 장관,신장범 주칠레 대사 등 16명을 ‘반농업 인사’로 낙인찍고 강력히 비난했다.전국농민연대 전기환 집행위원장은 “FTA 비준은 무효이며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찬성 의원들을 파악,대대적인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500여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상경한 농민들은 각목 등을 휘두르며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시위대 일부가 돌과 인분이 담긴 주스병 수십개를 던지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저지했다.이 과정에서 농민과 전경 등 10여명이 부상했다.이들은 오후 5시30분쯤 자진 해산했다.경찰은 국회 주변을 전경 버스 100여대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69개 중대 75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해 국회 진출을 막았다.이날 집회에서 농민들은 연습용 최루탄으로 추정되는 수류탄 모양의 물체 1개를 발견,경찰의 최루탄 사용을 주장했다.이에 대해 경찰은 “농민단체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반박했다.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가부채특별법 등 농어촌 복지향상을 위한 특별법부터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면서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FTA 비준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FTA·파병안 처리 무산] 농민 4000명 한밤까지 격렬시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과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9일 전국농민연대와 86개 시민단체 소속원 1만 2000여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특히 농민 4000여명은 비준안 처리가 밤늦게까지 진통을 겪자 경찰에 맞서 대치와 격렬 시위를 반복했다.시위대는 비준안 처리가 무산되자 자정쯤 자진 해산했다. 이날 시위 과정에서 농민 44명이 경찰에 연행됐고,농민과 전경 등 100여명이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앞서 농민들은 오전에 47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상경해 여의도 문화마당 등에서 비준동의안 반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이라크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의 700여명도 여의도 대한주택보증 앞에서 집회를 가진 뒤 농민대회에 합류했다. 시위대는 국회 앞 도로를 모두 점거하고 행진을 벌이면서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돌과 달걀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며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일부 농민은 9호선 지하철 역사 자재 창고에서 곡괭이 등을 들고 나와 휘두르기도 했다. 비닐천막과 각목 등을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경찰은 국회 정문 앞에 경찰 버스로 바리케이드를 친 뒤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와 물대포를 뿌리며 저지했다.한나라당 당사 앞에서는 오후에 최루탄으로 보이는 물체가 터지기도 했다.농민들은 열린우리당 이해찬 의원 등 FTA 비준에 찬성한 의원의 지구당사 4곳을 점거하고 비준동의안 저지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걸어놓는 등 기습 시위를 벌였다.농민연대는 성명서에서 “세계적 농업강국인 칠레를 첫 FTA 대상국으로 삼은 것은 외교통상부의 무능한 졸작”이라고 주장했다.농민연대 정기환 집행위원장은 비준안 처리가 무산되자 “국회의 뜻과는 관계없이 FTA에 반대하는 농민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하겠다.”밝혔다. 안동환기자 su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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