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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도 전운… 밤되면 폭력사태로

    |파리 함혜리특파원| 18일(현지시간) 저녁 파리의 소르본 대학 앞. 평소 젊은이들의 활기로 넘쳐나는 이곳의 분위기는 마치 결전을 앞둔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상점의 유리는 곳곳에 금이 가 있고 길옆 바닥에는 방화된 차량의 잔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프랑스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소르본 대학 앞 광장에는 높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소르본 대학은 최근 정부의 실업해소 정책인 최초고용계약(CPE)에 반발하는 시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학생들의 강의실 점거 농성, 경찰의 강제해산 등으로 폐쇄된 상태다.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벌이는 가운데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 낮 파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의 평화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낮에는 사고 없이 시위가 진행되지만 밤이 되면 시위가 폭력성을 띠기 때문이다. 경찰은 학생들이 모여 있으면 곧바로 다가가 과격한 행동을 하는 기미가 보이는지 살폈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신분증과 짐을 검사하며 현장을 떠나도록 했다. 파리에서는 이날 수십만명의 학생, 노동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동참해 정부의 CPE 철회를 요구했다. 프랑스에서는 시위가 일상화돼 있지만 주로 평화적인 가두행진의 형식을 띤다. 이날 낮 시위도 대규모의 국민 축제 같은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위가 끝날 무렵 급격하게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날도 가두행진 종착지인 나시옹광장에서 오후 6시쯤부터 경찰과 일부 시위대의 본격 대치가 시작됐다. 빈병과 돌, 최루탄이 오가며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과격한 젊은이들은 근처 가게에 돌을 던지며 유리창을 박살내고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다. 소르본대 재학 중이라는 벤자민(철학전공)은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과격한 극우파 젊은이들, 사회에 불만이 있는 젊은이들이 가담하면서 경찰과 충돌해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낮시간에 평화시위에 동참했었다는 프랑크는 “모든 프랑스 젊은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CPE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시위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가는 것도 반대한다.”며 “빨리 정부가 해결책을 찾아내 학교가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길은 어느새 바리케이트에 가려진 소르본 대학을 향해 있었다. 이날 밤 소르본대 앞에서는 학생 500여명이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하다 경찰의 물대포에 밀려난 뒤 해산했다.lotus@seoul.co.kr
  • “불법집회 진압때도 경찰 돌던지면 안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5부(부장 강현)는 12일 불법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눈을 다친 김모(36)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측에 2억 5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은 부득이한 경우 최루탄 등을 사용해 진압할 수 있을 뿐 그밖의 무기나 장구를 사용할 수 없다.”면서 “돌을 던진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 범위를 넘어선 행위이므로 원고측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시위대도 공장을 점거한 뒤 기물을 파손하는 등 법을 위반했고, 원고도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던 중 부상한 점을 감안해 피고측의 책임을 7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反서구 감정’ 폭발 문명충돌 양상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이세영기자|며칠 동안 비등점을 향해 치닫던 이슬람과 유럽의 갈등이 끝내 폭력 사태를 불러들이고 말았다. 시리아의 덴마크와 노르웨이 대사관 방화에 이어 5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도 덴마크 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건물에 시위대가 난입, 방화하는 사태가 빚어졌다.CNN이 이날 긴급뉴스로 전달한 현장 화면을 보면 성난 무슬림들은 닥치는 대로 길거리의 차와 건물 유리창 등을 향해 돌을 던져 파괴하는 무법지대를 연출했다. 시위대는 기독교도 거주지 근처의 성(聖)마룬 교회와 가톨릭 교회에 돌을 던지며 과격한 행동을 시작했다. 경찰과 보안군 2000여명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맞서며 시위대를 저지했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인파들에 손 들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시위대원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대사관 안에 들어가자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이틀 전 덴마크 외교관들은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미리 피신해 화를 모면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또 연기에 질식돼 의식을 잃은 시위대원 한 명이 의료진에 의해 구출되기도 했다. 후아드 사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이런 일을 저지른 자들은 이슬람이나 레바논과 전혀 무관한 이들”라며 “이런 식은 우리의 뜻을 드러내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덴마크와 노르웨이 “현지 교민 빨리 출국하라” 전날 시리아 주재 대사관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자 현지 교민들에게 즉각 출국할 것을 권한 덴마크 정부는 레바논 교민들에게도 속히 떠날 것을 권고했다. 코펜하겐에선 무슬림들의 시위와 함께 극우단체의 반(反)이슬람 시위가 벌어져 당국을 긴장시켰다. 사태가 악화되자 시리아의 최고 종교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하산은 관영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결코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모하메드 지야드 종교장관도 “(대사관 난입과 방화는) 우리 권리가 아니다.”고 자제를 요청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정부는 “시리아 정부가 사실상 테러를 방관했다.”며 외교적 대응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런던의 무슬림 700여명도 덴마크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교황청 “서구언론 경솔했다” 침묵을 지켜온 로마 교황청도 공식 논평을 내고 “폭력사태는 유감이지만 표현의 자유에는 종교적 신념을 공격할 권리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서방 언론의 경솔함을 꼬집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가치에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날까지도 서방언론의 경솔함을 비판했던 미국과 영국은 폭력사태의 책임을 시리아로 돌렸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시리아 정부의 묵인과 지원이 없었다면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도 “폭력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도 있을 수 없다.”며 시리아 정부를 공격했다. 한편 처음 마호메트 풍자 만평을 그린 작가 12명이 극심한 신변 위협을 느끼면서 24시간 경호 속에 덴마크 곳곳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판이 전했다.작가들은 지난해 9월 ‘마호메트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을 주제로 만평을 그려 달라는 일간 율란트-포스텐의 요청에 따라 1인당 800덴마크크로네(12만 4000원)를 받고 그림을 그렸다고 신문은 덧붙였다.lotus@seoul.co.kr
  • 中경제 발목잡는 ‘성난 農心’

    농민 소요로 전전긍긍하던 중국 지도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소요가 크게 늘고 폭력화 양상을 띠면서 경제개발계획을 지연시키는가 하면 사회불안을 확산시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복병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국 민정부(民政部·한국의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농촌소요는 8만 7000건으로 전년보다 6%나 늘었다. 지난 1994년 중국내 시위 발생 건수는 1만건 정도였다.11년 사이에 9배 정도 늘어나는 등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마구잡이 토지수용 사태악화 다급해진 중국 지도부는 지난해 말 최고위층 회의인 정치국 회의에서 사태의 심각성에 주목하면서 대책을 논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주말판에 전했다. 원자바오(溫家寶)총리는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국가안전이 농촌 문제에 달려있다고 심각성을 경고했다. 원 총리는 특히 “지방정부가 적정한 보상없이 농민들의 토지를 수용,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질타했다. 부패한 지방정부가 보상비를 가로채거나 지역 토호나 기업들과 결탁해 농민들의 토지를 헐값에 수용,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회의에서는 경작지 잠식에 따른 농업생산량의 감소, 수입증가로 인한 농산물 가격 하락 등 농촌 위기에 대해서도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고 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례적인 총리의 공개 경고에는 농민소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자칫 잘못하면 정권 안보마저 흔들어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강력한 행정력을 지닌 권위주의적인 중국정부조차도 더 이상 사태를 키워서는 안정 유지가 어렵겠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에선 1억 4000만명이 생계를 이유로 농촌을 등지고 도시로 유입,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면서 사회문제를 양산해 왔다.●항의소동이 폭동으로 악화 홍콩 영자지 사우스모닝차이나는 급격한 개발과 성장위주 정책에 따른 무분별한 토지수용과 낮은 보상기준으로 토지를 잃은 농민은 4000만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이같은 농민시위는 지난해 12월 광둥(廣東)성 산웨이(汕尾)시에서 경찰 시위대 발포로 주민 수십명이 숨진 사건처럼 소규모 항의 소동이 경찰이나 무장부대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폭동으로 바뀌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다.저우융캉(周永康) 중국 공안부장은 지난해 376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고 민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1000만건이 넘는 농민들의 민원서류가 접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광둥성 중산(中山)시 인근 판룽 마을에서 2만여명의 주민들이 적절한 토지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전기곤봉과 최루탄을 사용한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주민 수십명이 다쳤다. 연초부터 토지 보상을 둘러싼 충돌은 계속되는 등 잦아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 셈이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유엔 추락 어디까지

    유엔 추락 어디까지

    유엔의 추락은 어디까지일까. 지난해 ‘이라크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비리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더니, 분쟁지역 평화정착을 위해 운영중인 평화유지활동(PKO)이 연초부터 대형 악재에 휘말리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19일 서아프리카의 소국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에서 시위 군중들에 의해 사령부가 포위당했다. 일부는 기지까지 뺏기고 쫓겨나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도 빚어졌다. 앞서 16일에는 PKO 물품 조달과 관련된 비리 혐의가 적발돼 유엔직원 8명이 면직되기도 했다. ●사령부 기지서 쫓겨나기까지 BBC·CNN 등 외국 언론들에 따르면 제1의 도시 아비장에 있는 평화유지군 사령부는 2000여명의 시위군중들에 포위돼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사령부 구내로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향해 평화유지군은 최루탄과 경고사격으로 대응했다. 한때 시위대 일부가 담장에 구멍을 뚫고 구내 진입을 시도하다 저지당하기도 했다.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의 지지자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유엔이 지명한 국제중재단의 의회해산 권고에 반발, 거리를 점거한 채 나흘째 시위를 벌였다. 대서양 연안의 산 페드로에서도 유엔 사무소가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서부 기글로에서는 방글라데시군으로 구성된 평화유지군 300명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기지를 비워둔 채 시 외곽으로 탈출했다. 기지에 난입한 시위대는 방글라데시 국기와 유엔 깃발을 끌어내린 뒤 코트디부아르 국기로 바꿔달았다. 앞서 평화유지군은 공격이 거세지자 자위권을 발동,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최소 5명이 숨졌다고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보도했다. ●아난 총장 격노…안보리 긴급소집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그바그보 대통령이 유엔이 후원하는 평화로드맵을 방해하려고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평화유지군과 함께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 고위 관계자는 “유엔이 이 나라에 대해 조치를 취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코코아를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는 지난 2002년 반정부 쿠데타가 실패한 뒤 4년간의 내전으로 경제가 황폐화됐다. 반군과 정부군의 평화협정을 중재한 유엔은 지난해 양측이 참여하는 과도내각을 구성한 뒤 선거를 통해 새 정부를 출범시킬 계획이었으나 그바그보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아이티, 콩고, 자이르에서는 평화유지군 병사들이 성매매와 성폭행 사건에 연루,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입원한 이한열 마지막 모습 어른…”

    “병원 홍보업무로 일관한 지난 21년을 돌이키면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의료를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하는 데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점에선 위로가 됩니다.” 우리나라 병원 홍보의 산증인 격인 박두혁(60) 연세의료원 홍보부장이 26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정년퇴임식과 함께 그간 홍보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담을 엮은 ‘21세기 병원홍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법정 정년은 내년 2월 말이지만 퇴임을 앞두고 위로휴가가 예정돼 근무는 올해로 끝난다. 의학전문지 기자로 출발해 적십자혈액원 홍보과장을 거쳐 1984년 4월 연세의료원에서 처음 병원 홍보업무를 맡은 박 부장은 이날 퇴임식에서 “홀연히 떠날까도 생각했으나 그간 음양으로 도움을 주셨던 분들께 비례(非禮)를 범하는 것 같아 빚을 갚는 심정으로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87년 6월항쟁 때는 최루탄에 맞아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그 사진이 이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역사의 한 장면일거라는 생각에 찍어뒀던 것인데….” 그는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말들이 많으나 유일한 해법은 글로벌 경쟁력”이라며 “우리 의술이 미국의 엠디앤더슨병원보다 낫고, 메이요병원보다 심장을 더 잘 치료한다면 무엇이 두렵겠느냐?”고 반문한 그는 어둠이 내린 병원을 떠났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귀국 강기갑의원이 전한 홍콩시위

    “홍콩에서 농민단체 지도부는 끝까지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농민단체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온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2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강 의원은 “홍콩에서 폭력시위가 발생한 17일 사실 촛불시위만 하려고 노력했는데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는 등 과잉대응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분노하기 시작했고 지도부도 비폭력 기조를 지키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분명 홍콩의 시위문화와 우리와는 크게 차이가 났다.”면서 “당시 농민들은 사생결단을 한다고 갔지만 경찰에게 발길질만 해도 소스라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 의원은 홍콩에서의 폭력 시위와 관련,‘폭력적 시위문화의 개선 시급하다.’고 한 발언에 대해 “지나치게 시위대 책임론 쪽으로 기울어 소개된 면이 적지않다.”며 다소 우려감을 표시했다. 강 의원은 이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람 생명인데 최근 시위에서 희생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더이상 이런 형태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시위문화 개선 발언의 배경도 내비쳤다. 최근 시위 때마다 “밤샘 연좌시위를 할지라도 폭력 시위는 안된다.”고 되풀이해 주문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강 의원은 평화적 시위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와 노동자·농민단체 모두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정부 역시 그동안 조용히 얘기하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도 비판했다.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이 지금처럼 공격적이어선 안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시절 경찰이 시위 진압에 쓰던 최루탄을 용도 폐기한 일을 예로 들었다. 최루탄 사용 자제가 화염병을 없앤 것인지 그 반대인지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최루탄을 없애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결국 화염병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확실한 사실은 정부나 경찰도 함께 해나가야 시위문화가 개선된다.”고 밝힌 뒤 최근 농민시위에 참가했다 사망한 홍덕표씨 관련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전북 김제로 떠났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38년 독재’ 가봉 대통령 또 7년 연장… 소요사태

    아프리카의 최장기 집권자도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기운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었다. 가봉의 오마르 봉고(69) 대통령이 27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38년째 이어온 권력을 다시 7년간 연장하자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AFP통신은 15∼20살의 젊은이들이 경제 수도인 포르장티에서 자동차를 부수고, 타이어를 불태우자 경찰과 군대가 투입돼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30일 보도했다. 경찰은 몇명을 잡아들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서울이야기](29)서울속의 외국인문화

    [서울이야기](29)서울속의 외국인문화

    서울은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된 열광의 도시, 인구규모 세계10위인 다이내믹한 동북아의 국제교류도시이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는 점에서 외국의 도시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 서울에는 외국인이 약 6만여명이 살고 있고, 이들을 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사동 거리마저 스타벅스 카페가 입주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도시국제화 지수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식당이나 쇼핑센터, 교통안내판 등에 외국어 표기가 아직 부족하고, 길가에 선 외국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쳐 버린다. 아마 영어를 말하기가 두려워 우리는 본의 아닌 외국인 기피증을 보이는 것이다. 서울이 국제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외국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활발한 교류가 가능한 시민수준의 다문화 공생사회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서울은 한국인들만의 도시가 아니다. 관광 투자 무역 등을 고려할 때 외국인이 서울에 와서 불편함이 없는 살기 좋고 투자하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외국인은 존중받아야 할 넓은 의미의 서울시민이고, 각종 불편함을 지적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충분히 가져야한다. ●서울 속에 꽃핀 외국인 문화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인 호기심이 느껴지는 서울속의 작은 외국을 연상케 하는 곳들이 많다. 냉대와 차별 속에 성장해온 미국 LA의 코리아타운이 한국의 문화를 전달하는 이문화(異文化)의 체험장이듯 서울에도 이런 곳들이 있다. 80년대 서울 명동은 시위와 최루탄 냄새가 그칠 날이 없었던 곳이었으나, 옛 명동에는 이보다 더 절실한 사연이 있다. 화려한 명동의 번화가 속에 80년대 후반 정도의 서울 거리를 연상케하는 허름한 골목길로 접어들면 담쟁이가 덮인 담벼락이 있다. 조그마한 가게들이 닥지닥지 붙어있다. 그 너머에는 한성화교소학교가 자리한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해외 유수의 도시에 자리한 차이나타운과 큰 차이가 난다. 문득 재일한국인의 지위를 얘기하는 우리가 과연 한국 속의 화교들에게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 걸까. 쇠락하는 차이나타운을 보며 빨리 동화되고 융합하는 중국인들도 우리의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차별적이고 배타적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 화교에서 차지하는 국내의 화교 비중은 0.05%에 불과하고 2조달러로 추산되는 화상 자본 중 국내 투자는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이제부터라도 이들이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고 떠나도록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리를 잡고 국내 경제에 기여하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 개최된 세계화상(華商)대회는 국내·외 화교 간 친목은 물론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매우 뜻있는 행사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또 다른 주류사회에 편입해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서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는 곳도 있다.‘미군의 세컨드홈’, 이태원이다. 이 곳에서는 한국인이 오히려 이방인으로 인식된다. 서울 속의 이태원,‘작은 미국’이나 다름아니다. 그동안 미8군 용산기지는 미국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서울의 한복판에 금싸라기 땅이자 아메리카니즘 문화전파의 창구였다. 미8군 무대출신 가수들의 기억 속에 할리우드에서 느끼는 아메리카나이제이션(americanization)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미국과 미군 향기가 나는 거리’‘서울의 리틀 어메리카’‘서울의 라스베이거스’로 알려져 88올림픽 개최시’‘잠실에선 스포츠 올림픽, 이태원에선 쇼핑올림픽’이란 슬로건이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가짜 명품 범람과 이에 따른 단속여파로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이태원’‘싸구려 가짜 외제 상품이 넘쳐흐르는 이태원’으로불리고, 가짜 제품 범람에 따른 기관 단속 강화와 불편한 교통, 바가지 가격 등으로 외국인 쇼핑객을 빼앗기고 있는 이태원 쇼핑가를 볼 때 왠지 모를 서글픔이 든다. 서울에 파리공원이 있듯이 파리 어느 구석에는 서울공원이 있다. 굳이 파리를 가지 않더라도 프랑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반포4동 ‘몽마르뜨 언덕’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서래마을’이다. 프랑스학교가 이전하면서 가족단위의 프랑스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거리 곳곳에는 한국어에 서투른 프랑스인을 위해 거리이정표나 식당의 메뉴 등을 불어로 표기해 놓았다. 한편 ‘동부이촌동’은 일본인들의 마을이다. 이곳에서 영업중인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외국인 손님들에게 일본어와 영어로 안내를 하고 있다. 1500여 가구의 일본 상사주재원들이 몰려 사는 근처 상점에서는 일본어로 쓰여진 안내문이나 일본어 간판을 걸어 두고 있다. 이곳은 일본인 전용창구를 마련한 은행을 비롯해 일본인 어린이반을 개설한 유치원, 일본어가 통하는 미용실, 병원, 이발소, 음식점, 여행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업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관광객이 노동자로 바뀌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외국인 관광객 탑승’이란 표지판을 단 호텔전용셔틀버스와 종종 마주 친다. 서울에 온 손님들이니 웬만하면 편의를 봐달라는 뜻일 게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외국인 우대의 예다. 같은 외국인이지만 관광객이 노동자로 바뀌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이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은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까.‘우리도 인간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난했던 시절 돈벌러 외국에 가서 우리가 당했던 인간이하의 대접이 떠오른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외국인 저소득층이 신음하고 있다. 멀리 고국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 생각에 심한 소외감과 외로움에 시달린다. 얼마 전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 여성 10명 중 8명이 다시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한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과연 우리가 세계화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온갖 멸시와 차별의 눈길이 쏟아진다. 여기에는 ‘돈 쓰러 온’ 사람과 ‘돈 벌러 온’사람의 차이에 문화적 편견까지 덧붙여져 있다. 요즘 식당에 가면 으레 조금 다른 말씨의 종업원등을 만나게 된다. 말씨만 약간 다를 뿐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동포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힘없는 불법체류자 신세에 찍소리 한 번 못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안함속에서도 이들은 한국살이에 적응하며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3D업종 때문에 형성된 외국인 마을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와 경기 안산의 ‘국경없는 마을’이다. 가리봉시장 일대는 ‘옌볜거리’로 불릴 만큼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중국 식료품점과 중국노래방, 환전소 등도 성업중이다. 방값이 다른 곳에 비해 무척 싸다는 이점 때문이다. 정부의 잇따른 외국인 불법체류 단속으로 조선족 거주지인 가리봉은 빠른 속도로 쇠퇴의 위기를 맞이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곳곳에 붉은색 간판을 내건 중국식당이나 시장 입구부터 풍겨나는 그들 특유의 향신료 내음이 마치 중국의 ‘옌볜거리’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하다. ●서울에서는 모두 서울사람, 외국인에게 불편 없도록 축제라는 하나됨. 세계속 또 하나의 지구촌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서울 문화코드 국제도시 서울의 글로벌 이미지를 부각하는 퍼레이드가 있다. 외국인들에게 모국을 느끼고 자랑하는 페스티벌이 되고 서울에 사는 기쁨을 만끽하고 타방이라고 느꼈던 전 세계 사람들이 화합과 교류의 장. 하이 서울 축제에서 ‘지구촌 한마당 축제’가 매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매년 20여개국에서 참가해 서울거주 외국인 및 내국인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서울안내 영문책자인 ‘서울서바이벌’을 발간해 주한 외국대사관, 문화원, 외국인학교 등에 무료로 배부하고 있다. 다국어 홈페이지를 개설, 각종 도로표지판에 외국어(영어, 한자)로 병기표기하고, 외국어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해 영어 일어 중국어는 물론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의 외국어 안내를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외국인 설문조사 등을 통하여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구석구석의 불편사항을 인지하고 이의 해소를 위하여 다각적인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앞으로 서울에 외국인 거주촌을 조성해 서울에 여행 온 여행자들이 안심하고 긴 여정을 푸는 친근한 별장처럼,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은 향수를 달래며 동족간의 정보교환을 위한 장소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자. 이곳에 외국으로 여행 가려는 국내여행객은 물론 현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업자나 바이어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특히 새로이 유입되는 저소득층 외국공장 종사원들의 공동체를 불법·단속대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회합과 교류가 가능한 소규모 편의시설을 제공하여 향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장소로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서울이 외국인이 선호하는 도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거주환경, 교육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시민수준의 다문화 공생사회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공생하는 사회로 나아갈 때 국제교류도시로서 서울이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종구 서울시정개발연구원·서울마케팅연구센터 부연구위원
  • 佛리옹 도심 청소년·경찰 충돌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의 소요 사태가 진정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12일 저녁(현지시간)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리옹 도심에서 청소년들과 경찰이 충돌, 폭력 사태가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있다. 소요사태 발발 이후 주요 도시의 도심에서 충돌이 빚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리옹 시내 중심부의 유서 깊은 벨쿠르 광장에서 청소년 50여명이 경찰에 돌을 던지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다. 충돌 사태에 앞서 리옹은 청소년의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통금 조치를 시행중인 도시와 마을이 40여곳으로 늘어났다. 한편 주말 파리 도심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첩보에 따라 에펠탑과 샹젤리제 대로, 파리로 오는 교외선 전철역 등 주요 지점에서 삼엄한 경계 활동이 펼쳐졌다. 경찰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 통신을 통해 12일 저녁 파리 도심에 모여 폭력 시위를 벌이자는 내용의 메시지가 유포됨에 따라 도심에 3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경찰은 12일 오전 10시부터 13일 오전 8시까지 폭력 사태를 야기할 위험이 있는 집회를 금지했다.lotus@seoul.co.kr
  • [월드이슈-프랑스 소요사태 확산] 소요 진원지 클리시수부아를 가다

    [월드이슈-프랑스 소요사태 확산] 소요 진원지 클리시수부아를 가다

    파리 교외 저소득층 지역에서 지난달 27일 이래 계속되고 있는 소요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요사태가 독일, 벨기에 등 이민자가 많은 인근 유럽 지역으로까지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이번 사태는 주로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이 몰려 사는 대도시 교외 저소득층 지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새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청소년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검문을 피하던 소년들의 죽음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우범지역 범죄에 대한 초강경 대응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뿌리깊은 소외의식이 극단적 방식의 분노로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방화가 차량 뿐 아니라 학교, 탁아소, 체육관, 상업시설 등으로 확대되고 인명 피해마저 발생하면서 저소득층 지역 주민들조차도 “이제 폭력은 그만”을 외치며 하루빨리 일상의 평정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클리시수부아 함혜리특파원| 7일 오후 3시(현지시간) 파리 북동부 교외에 있는 올네수부아의 부아욤 고등학교 앞 광장.400여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흑인, 혹은 북아프리카 계열의 유색인들이다. 아직 학교가 끝날 시간이 아닌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몇몇 눈에 띈다. 청소년들의 야간 소요사태로 유리가 깨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학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전화가 와 모든 학생들이 대피했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은 “우리 학교뿐 아니라 근처의 3개 학교가 폭발물 위협을 받았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지 않는 한 소요사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단의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최소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감전사 사고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사르코지(내무장관)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막 도착한 버스에 뛰어 올랐다. 올네수부아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리시수부아. 지난달 27일 경찰의 검문을 피하던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하면서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소요사태의 진원지가 된 곳이다. 밤마다 차별과 소외에 대한 무슬림 청소년들의 분노와 방화로 점철됐던 것과 달리 이곳의 오후 풍경은 평화스러웠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장을 보러가는 무슬림 여성, 길 모퉁이에 삼삼오오 몰려있는 흑인 청소년들….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아랍인들이다. 클리시수부아의 주민 2만 8000여명 중 이방인은 70%가 넘는다. 파리의 고색창연한 주거건물들과는 달리 노후한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어 한눈에도 슬럼가임을 알 수 있다. 아기를 안고 가는 한 주민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20여년 전 터키에서 이민 왔다는 칸(35·전기공)은 “청소년들의 폭력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정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의 50% 정도가 실업자라고 소개한 칸은 “부가 세습되는 것처럼 가난도 대를 물린다. 그들이 현재 상황에서 탈피하도록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 벗어나자 왼쪽으로 거의 불에 탄 채 흉물처럼 남아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6일 새벽 5시쯤 방화로 불에 탄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이다.1997년 준공된 이곳은 바로 옆에 있는 루이즈 미셸 중학교 학생들이 체육시간을 보내고 어린이와 학생, 시민들이 태권도, 유도 등 여가시간을 이용해 체육활동을 하는 장소였다. 루이즈 미셸 중학교에 다닌다는 사디(12)는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왜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체육관을 불태웠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분별없는 폭력에 분노보다는 차라리 슬픔이 앞선다.”고 말했다. 사디의 학급은 모두 23명. 이 중 순수한 프랑스인은 단 한명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5시 30분 클리시수부아 시청 앞에서는 자녀들을 대동한 학부모들과 주민들이 모여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 화재사건과 지난달 27일 이후 끊이지 않는 일련의 폭력사태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클리시수부아 출신의 육상선수 이름을 딴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은 우리들의 자랑거리였고, 청소년들이 유일하게 체육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였다.”고 토로한 뒤 25년이 걸려 건설된 체육관을 불과 몇분만에 잿덩이로 변하게 만든 방화범들에게 분노를 나타냈다. 주민 포리셰는 “30년째 이곳에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와 탁아소 등 공공시설물에 방화가 잇따르고 있다는데 이번 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르망 데스멧 체육관이 불에 탄 것을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포함,200여명에 이르는 태권도 동호회 회원들과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들의 학부모들이다. 등에 ‘태권도’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박힌 흰색도복을 입은 아들 야쿱(4)의 손을 잡고 시청 앞에 나온 베니나는 “우리 아이가 9월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이제 어디에 가서 태권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했다. 이민 가정의 청소년들과 클리시수부아 시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하나시 목데드(28)는 “이곳 청소년들의 삶은 깊은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열악한 주거환경, 학교생활 실패, 가족과의 갈등, 실업문제는 이곳 청소년들을 끝없는 분노로 치닫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인 상황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들은 분명 법을 어기고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사회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lotus@seoul.co.kr 유럽 각국은 프랑스 전역을 휩쓸고 있는 무슬림 청소년들의 폭력사태가 남 얘기 같지가 않다.9·11 테러 이후 유럽에서 무슬림과 비(非)무슬림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무슬림의 불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파리 사태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벨기에와 독일 등 일부 주변국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하자 관련국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달 영국에서는 북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 이주민들간에 유혈충돌이 발생, 인명피해를 낳았다. 앞서 지난 7월 7일에는 런던 지하철과 버스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52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용의자로 현장에서 즉사한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계 4명이 지목됐다. 2004년 11월 2일에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보수 성향의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모로코계 이민 노동자 2세인 부예리에 의해 살해됐다. 같은 해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역에서 열차 연쇄 폭발로 191명이 숨지고 1800여명이 다쳤다.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유럽 땅에서 무슬림과 관련된 공격이 잇따르면서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그에 비례해 무슬림들의 소외감과 반발 역시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재 유럽에 사는 무슬림 인구는 1500만∼2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럽 인구의 4∼5%다. 높은 출산율과 이주 인구의 꾸준한 증가로 오는 2025년에는 그 수가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유럽 이민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2차대전 이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번 소요사태의 중심층은 생활고와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이민 1세대가 아닌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란 2,3세대. 스스로 ‘유럽인’이라 여기며 성장한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뿌리 깊은 차별대우에 직면하면서 ‘2등 유럽 시민’이라는 냉엄한 현실에 맞닥뜨린다. 주류사회 편입 실패와 가난의 대물림, 사회적 편견, 문화적 소외 등으로 유럽 무슬림들의 인내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9·11 테러 이후 잇단 테러에 대한 대책으로 이민 제한책을 선택했던 유럽 각국은 뒤늦게 다문화통합정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런 점에서 5년 이상만 거주하면 국적을 주고, 언어를 배워 현지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웨덴식 이민지원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프랑스 소요사태 일지 ▲10월27일 파리 북동쪽 클리시수부아에서 경찰 피해 달아나던 북아프리카계 소년 2명 감전사. 분노한 청년들 수백명 차량 23대 불태우고 경찰과 투석전. ▲10월28일 클리시수부아에서 청년 수백명 경찰과 충돌. 일부 경찰 향해 사격. ▲10월29일 주민 500명 침묵시위, 야간에 폭력사태 재발. ▲10월30일 경찰 최루탄이 이슬람사원에 발사돼 무슬림 분노 증폭 ▲10월31일 폭력사태 인근 교외지역 확산. ▲11월2일 드 빌팽 총리와 사르코지 내무장관 해외 방문 일정 취소. 파리 주변의 22개 소도시로 소요 확산. ▲11월3∼4일 디종, 마르세유, 루앙 등 전국으로 소요사태 확산 ▲11월5일 파리 중심가서 방화 사건 발생 ▲11월6일 시라크 대통령, 폭력행위 엄벌 천명 ▲11월7일 파리 교외서 첫 사망자 발생. 베를린·브뤼셀서 모방 방화 사건 발생 ▲11월8일 정부, 지역 도지사 야간 통행금지령 발동권 승인
  • 佛 빈민가 청소년 소요 확산

    |파리 함혜리특파원|북아프리카계 무슬림들이나 불법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프랑스 파리 외곽의 소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2일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소요는 파리의 상젤리제와 높은 실업과 차별에 설움을 겪은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극명하게 교차시켜 사회 통합의 과제를 제시했다는 의미를 갖는다.●모스크에 최루탄 발사, 악화 이번 소요는 지난달 27일 파리 북동부의 클리시 수 부앙에서 15·17세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하려고 송전소 담을 넘던 중 변압기에 몸이 닿는 바람에 감전사하면서 촉발됐다. 이 동네 젊은이들은 경찰의 과잉 대응이 이들 북아프리카계 소년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충돌, 이웃 동네로까지 번져 나갔다. 경찰은 결코 이들 2명을 추적한 것은 아니었으며 이들이 착각했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수그러지는 것 같았던 소요는 다음날 경찰이 시위 군중을 해산시킨다며 모스크에 최루탄을 퍼붓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악화됐다. 2일 오전까지 소요는 이웃 올네 수 부아, 센 생드니, 봉디 등 4곳으로 번졌고 이날 오후에는 소요 지역이 무려 9곳으로 늘었다. 올네 수 부아에서 청소년들은 고무총을 쏘며 진압하는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차량과 가게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소요를 이어나갔다. 센 생드니에선 젊은이들이 초등학교 교실 2곳과 차량을 방화해 이 과정에서 경찰 3명이 다쳤다. 지금까지 경찰에 60여명이 검거됐고 구속자만 30명에 이른다. 모두 69대의 차량이 방화로 전소됐다.●사르코지 “인간 쓰레기” 발언 기름 부어 소요가 확산되자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1일 니콜러스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을 대동하고 감전사한 10대들의 부모를 면담했다. 총리실은 면담 뒤 성명을 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시 상황을 명확히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사르코지 장관은 이들 청소년을 “인간 쓰레기”,“날건달”이라고 비난했던 장본인이어서 이번 면담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소요가 이렇게 확산된 것은 사르코지 장관이 범죄 척결을 표방하며 모든 우범지역에 폭동 진압 경찰을 배치하겠다고 과욕을 부린 데서 촉발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극우주의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마약범 및 흉악범들을 “쓸어버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좌파 진영은 사르코지 장관이 주동자 검거를 위해 비밀 정보요원까지 동원하는 등 오히려 공포와 증오를 부추겼다고 비난했다.심지어 정부 안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아주 베가 기회균등증진 장관은 1일 일간 리베라시옹과 인터뷰에서 “질서를 되찾기 위해 때로는 단호한 말도 필요하지만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는 차별을 척결하면서 질서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lotus@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 웃기는 영어(17)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axi Drivers‘ Favorite Jokes―17 An American over in Japan contracts a strange Oriental venereal disease.He goes to many American doctors abroad,and they all give him the same grave news. He must have his penis amputated.In desperation he decides to see an Oriental doctor,in the hopes that he might know something more about his exotic disease. “After all,” he thinks to himself,“an Oriental doctor should know more about an Oriental disease.” So he goes to the doctor and asks,“Do you think I need to have my penis amputated?” “No,no,” says the doctor. “No?” replies the man happily.“That’s great! All the American doctors said they would have to cut it off!” “Western doctors!” says the Oriental man.“All they ever want to do is cut,cut,cut! You see,all you have to do is wait two weeks.The penis will fall off by itself!” (Words and Phrases) over in Japan:일본에 사는 contract∼:∼에 걸리다 strange:이상한 Oreiental:동양의 venereal:성교에 의한 disease:병 abroad:해외에서(이 글에서는 ‘일본에서’를 의미함) grave:심각한 amputate:절단하다 in desperation:자포자기 상태에서 Oriental doctor:한의사 in the hopes that∼:∼라는 희망 속에 after all:결국 exotic:외래의, 이국의 cut∼off:∼을 잘라내다 Western doctor:양의사 fall off:떨어져 나가다 by oneself:저절로 (해석)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 미국인이 동양의 이상한 성병에 걸렸습니다. 일본에서 많은 미국인 의사를 찾아갔는데, 의사들 모두 성기를 절단해야만 한다는 동일한 심각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그 남자는 한의사가 그의 이국병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한의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한의사가 동양의 병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내 물건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네요, 아닙니다.”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네요?”라고 남자가 기뻐 반문했습니다.“정말 좋아요. 미국인 의사들이 모두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양의사들이란”하고 한의사가 말했습니다.“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란 자르고, 자르고 자르는 것뿐이지. 알다시피, 댁이 해야 할 일이란 2주만 기다리는 거예요. 댁의 물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갈 거예요!” (해설) 양의는 환부를 직접 치료하기 때문에 효과가 즉각적이지만 병의 근원을 치료하지 못하는 반면, 한의는 병의 근원을 다스리지만 효과가 즉각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양의 이상한 성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 한의와 양의의 처방이 일견 다르게 보입니다만, 근본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둘 다 그 성병이 불치의 병이라는 처방을 내리고 있습니다. 단지, 양의에서는 환부, 즉 환자의 거시길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의에서는 그냥 놔두면 저절로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 Life Essay for Wrighting 이사와 새로운 시작어느 날 바람에 실려 온 최루탄 가스를 피해 자리를 옮기던 김회장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한 서울에서 나쁜 공기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최루탄 가스를 계기로 전라도 여수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한적한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여수 아이들에게도 영어 교육의 혜택을 줄 수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여수행 인생 차표를 구입한다(bought a life ticket to Yeosu,in the romantic thought that he might catch two hares at the same time). 그는 학습지로서는 불모지인 여수의 지역을 맡는 지사장으로 나름대로 소박한 꿈을 꾸었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낯선 곳이 주는 설렘 속에 여수 생활이 시작되었다.80년대 후반 서울은 고교 평준화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여수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선 입시를 치러야 했다. 학부모들 또한 교육열이 대단해서 서울서 하던 방법으론 여수의 교육시장을 파고들기 어려웠다. 김회장은 종종 여수에 내려온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많은 기회들이 찾아오지만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그런 기회들이 자신을 스치고 지났는지조차 모른다. 이럴 때 김회장은 여수와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한다(President Kim talks about his decision to leave for Yeosu and life there when he says that although one may have numerous opportunities in his life,he does not even realize how many opportunities he has missed because he is not prepared for them). ■ 절대문법 (10) 자리매김 학습절대문법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학습시킨다. 무엇보다 영어 문법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의 자리와 함께 그에 따른 특성과 역할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자. (1)I want a shirt. 나는 원합니다.(무엇을) 셔츠 하나 주어 동사 목적어 (2)I want to swim. 나는 원합니다.(무엇을)수영하는 것 주어 동사 목적어 동사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동사 앞에 주어가 있다는 것이고, 동사의 특성과 의미에 따라 동사 뒤에 보어나 목적어가 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똑같이 동사의 특성에 따라 동사 want 뒤에 목적어가 위치하고 있는 구조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적어 자리에 올 수 있는 품사는 명사이다. (1)번 문장에서는 목적어 자리에 명사 shirt가 관사 a의 수식을 받는다.(2)번 문장에서는 목적어 자리에 to swim이라는 부정사가 위치하고 있다.to swim은 동사 앞에 to와 함께하여 명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영어 문장에서 ‘to 동사원형’ 구조는 종종 동사보다는 다른 품사의 역할을 한다.‘to 동사원형’은 명사, 형용사, 부사 자리에 위치하여 자리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To see is to believe. 동사 see/주어 to see(명사 역할), 보어 to believe(명사 역할) I want to sing. 동사 want/목적어 to sing(명사 역할) The cow began to walk. 동사 began/목적어 to walk(명사 역할) My dad decided to go. 동사 decided/목적어 to go(명사 역할) 이처럼 동사를 중심으로 한 앞뒤의 자리 개념을 이해하면서 영어 문장을 접하게 되면 어려운 문법 용어나 복잡한 설명 없이도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수사권 독립·과거사 규명등 과제

    해방과 함께 시작된 경찰의 역사는 민생치안과 시국치안이라는 빛과 그림자의 공존으로 요약된다. 현재 경찰은 60년 공과(功過)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성패는 선진경찰의 이상을 얼마나 현실에 녹여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권의 하수인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경찰은 1945년 10월21일 미 군정 산하 경무국으로 출발했다. 앞서 같은해 9월16일 처음으로 한국인 경찰관을 뽑긴 했지만 일제경찰 잔재를 물려받아 태생적 한계를 지닌 채 출발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능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1991년 8월 대통령령에 의해 치안본부가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형식적인 독립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역할만을 할 수는 없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권인숙 성고문, 이한열 최루탄 사망 등은 어두운 과거의 대명사가 됐다. ●수사권 독립…풀어야 할 매듭 산재 현재 경찰의 최대 화두는 수사권 독립이다. 초기 일시적으로 수사권을 가졌던 경찰은 48년 이후 검찰과 상명하복 관계에 놓였다. 이후 경찰은 여러 차례 수사권 조정을 요구했고 지난해 9월에는 검ㆍ경이 ‘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인권 경찰돼야” 한 목소리 최근 들어 경찰은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몽둥이’이라는 평가를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다. 경찰에 바라는 외부 목소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조영황 인권위원장은 “인권보호에 적극적일수록 경찰과 일반국민간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렬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범국민위원회 공동상임대표는 “민주경찰로 거듭나고자 하지만 아직은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영동 보안분실을 인권센터로 바꾸는 형식적인 노력보다는 환골탈태하는 진정한 인권 지킴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씨줄날줄] 닭장차/육철수 논설위원

    민주항쟁이 막바지에 이른 1987년 6월26일 오후 6시쯤. 당시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는 서울 무교동 평창빌딩의 민추협 사무실에서 ‘대행진식’을 가졌다. 이어 민주당 국회의원과 당원 200여명은 사복경찰 100여명의 저지선을 뚫고 서울시청 앞 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대형 태극기와 ‘민주헌법쟁취’ 플래카드를 앞세운 YS 일행은 50여m를 거침없이 나아갔다. 경찰은 YS의 부상이 염려돼 최루탄을 함부로 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기습적으로 행진대열의 후미에 최루가스를 뿌려 선두그룹을 격리시킨 뒤 순식간에 YS를 경찰버스(일명 닭장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워낙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일이라 당간부 K씨만 YS와 함께 닭장차에 갇혔다.YS를 태운 닭장차는 1시간동안 김포 등지를 배회하다가 상도동 자택에서 그를 풀어 주었다. 시위를 벌이다 닭장차를 경험한 전직 대통령은 아마 YS가 유일할 것이다. 엄혹했던 유신독재 시절,“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쳤던 YS가 닭장차에 강제로 갇히던 날, 그 날의 빛바랜 현장 사진에서는 민주화의 역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과거 민주인사나 각종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과 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닭장차에 태워져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유린의 현장을 체험했을 터이다. 그래서 70∼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요즘도 닭장차를 보면 굴욕적인 추억에 시달린다고 한다. 전투경찰 기동대 버스는 시위대로부터 돌이나 화염병 공격을 막으려고 유리창에 철망을 두르는데, 이게 닭장과 닮았다고 해서 비꼬는 투의 닭장차란 별명이 붙었다. 닭장차는 ‘최루탄’ ‘백골단(헬멧과 청바지를 착용한 전투경찰)’과 함께 험난했던 시절의 3대 키워드였다고나 할까. 최루탄과 백골단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고, 이제 닭장차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모양이다. 경찰은 과격 시위가 급감했기 때문에 기동대 버스 1131대의 철망을 모두 걷어내고, 대신 친근한 색깔을 입혀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한다. 국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심의 흉물처럼 비쳐졌던 닭장차의 퇴장과 함께 우리의 시위문화도 한층 더 점잖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박태경(朴泰慶)(69)노인은 도로공사판에 인부로 나가고 있다. 일을 하는 데서 오래 산 보람을 느껴 보는 요즘 나날이다. 전과 16범, 일명「땅개노인」- 25년간, 그러니까 삶의 거의 3분의 2를 교도소에서 보낸 인생이 그 노경(老境)에 이르러 비로소 맛보는 평온이다. 주인꾸중 두려워 콩 사오다 도망쳤던 철부지 18세 초범이 그만 수년 전에『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대중가요가 잠시 유행했었다. 이미자가 불렀다. - 비 오는 낙동강(洛東江)에 저녁놀 짙어지면 - 흘러 버린 내 청춘이 눈물 속에 애달프구나 -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 모질게 살아가는 이 내 심정을… 노래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아성(亞星)영화사가 유동일(柳東日)감독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이 바로『저 강은 알고 있다』(일명 땅개 박노인), 그 주제가다. 바로 이 영화의「모델」이 오늘의 박태경씨였다. 영화촬영 당시 박노인은 15회째의 징역살이로 대구교도소에서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친 것이 죄였다. 땅개 박노인의 기구한 운명이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약삭빠른 영화사가 노인을「모델」로 해서 그럴싸한「최루탄(催淚彈)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노릴 만도 했다. 박노인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수의를 입은 채로. 1918년 10월 11일 - 지금부터 51년 전, 박노인이 18세 때 첫 번째 죄를 지었다. 일본주인 밑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부 만들 콩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 넘어졌다. 콩이 쏟아졌다. 주인을 찾아 볼 낯이 없었다. 그만 콩 한 말을 10원에, 자전거를 10원에 팔아 버렸다. 전과 16범의「스타트」였다. 2번째, 이웃에 홀로 사는 오(吳)모 여인이 아기를 낳고도 굶주리고 있음을 보다 못해서 쌀 두 말과 미역 1단을 훔쳐다 주었다. 3번째, 1919년 6월 21일, 가택침입죄로 대구지방검사국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4번째, 1921년 12월 23일, 역시 가택침입죄로 징역 2년. 5번째, 1923년 10월 16일, 징역 3년. 6번째, 1927년 11월 16일, 징역 4년. 7번째, 1931년 12월 26일, 징역 4년. 8번째, 1935년 12월 28일, 절도죄로 대구지방검사국에서 기소유예처분. 9번째, 1936년 3월 5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0번째, 1936년 4월 28일, 징역 3년. 11번째, 1940년 7월 16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2번째, 1940년 12월 23일, 징역 3년. 13번째, 1961년 7월 25일, 20년간을 고요히 지낸 것도 헛것이 되어 대구지법에서 야간주거침입, 절도죄로 징역 8개월. 14번째, 1963년 1월 29일, 또 절도죄로 징역 2년. 15번째, 막내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쳐서 징역 1년. 영화촬영은 이때였다. 16번째, 1967년 5월 5일, 절도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낯익은 안동교도소에서 복역, 1968년 초에 출감했다.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몽땅 교도소에서 보낸 계산이다. 도둑질서 발 씻기는 영화 주제가 때문, 그 노래 들으면 눈물 나와 그 동안의 특징을 보면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과 죄명이 모두 절도 아니면 주거침입이라는 점. 사람을 해친 일은 한 번도 없다. 고향 땅에 고목 같이 굵은 뿌리를 박고 다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어쩌면 소심하고 선량한 농민의 아들인지도 모른다. 범죄회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명만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기가 붙이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한 별명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 알려져 있는 것만 들어도(본인은 입을 다물고 열지 않는다) 상희(相熙), 상열(相烈), 춘근(春根), 태성(泰星), 봉근(鳳根), 송태성(宋太星), 임춘근(林春根), 땅개 박노인의 8가지. 본명과 또 다른 별명들을 합해 13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앞으로는 굶어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땅개 박노인」이라는 별명 때문이란다. 영화와 대중가요를 통해 행적이 알려지면서「땅개 박노인」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해진단다. 문제의 노랫가락을 혼자 외면 헛되이 보낸 삶에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한때 안동과 대구 등지를 방랑하면서 구걸을 했다. 『땅개 박노인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문간에서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두 말 않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구걸도 한정이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안동시가 실시하는 구호양곡 근로공사장에 그 늙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가루 3되씩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버지 소문이 부끄럽던 아이들도 발 씻자 모두 일터 찾아 도둑질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후세들의 앞날을 위해서라고 박노인은 말한다. 그의 현주소는 안동시 상아동의 속칭「진모래」라는 곳. 안동 김씨의 재사 안의 1평 반짜리 단칸방에서 박노인 이하 부인 박숙해(가명·48) 장남(18) 장녀(16) 2녀(14) 3녀(10)의 5식구가 살고 있다. 도둑소리만 들어오던 아버지가 손을 씻자 아이들도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힘차게 나섰다. 장남은 안동시 상아동 박모씨의 양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월수 5천원을 가지고 들어온다. 장녀와 2녀는「검」팔이로 하루 6백원 정도의 벌이를 하고 있다. 박노인 일가는 아침은 조밥을,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는 공사판에서 박노인이 가지고 온 밀가루로 국수를 쑤어 때운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명랑한 웃음이 떠돈다. 이들에게는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서 3년 후에는 50만원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자는 꿈이다. 아버지가 도둑질만 하고 다녔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단란한 꿈이다. <안동=문명준(文明俊)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국민 모금 ‘이한열 기념관’ 문연다

    1987년 6월 항쟁 때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를 기리는 ‘이한열 기념관’이 9일 문을 연다.6월9일은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날이다. 기념관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100여평 규모로 지어졌다. 지난해 6월 공사가 끝났으나 건축 대출금 상환문제로 완공 1년이 다 돼서야 개관하게 됐다. 이한열 기념관은 국민모금으로 지은 첫 개인 기념관으로 ‘전태일 기념관’보다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3∼4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이 열사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사진, 글모음 등이 전시되며 최루탄에 맞았을 때 입었던 셔츠와 바지, 밑창이 떨어져 나간 운동화 등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유품도 공개된다. 기념관 건립은 6월 항쟁 때 연세대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이 주도했다. 어머니 배은심(65)씨는 “기념관이 지어졌지만 마음 편히 찾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 “우리 한열이가 살아있고 이런 기념관이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했다. 6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 진흥고를 거쳐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 열사는 1987년 6월9일 교내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같은 해 7월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 돼지 부속물 ‘장터 뷔페’ 지금 50,60쯤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라면,1960년대 무렵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삽화 한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몇 학년 국어교과서인지조차 까마득히 잊었지만,5일장이 선 시골장터에서 중년의 사내가 눈보라를 맞으며 하염없이 서 있는 삽화이다. 삽화 속 사내는 눈보라를 맞으면서 어머니를 기리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바로 5일장을 돌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여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다. 그리고 미처 아들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기려 난장에 서서 온몸으로 눈보라를 맞고 있다는 줄거리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어른·아이 모두의 축제 그 중년 사내의 삽화가 나에게 언제까지라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내야말로 나와 한 치도 틀림없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자전적인 작품에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장터의 풍경이 나온다. ‘우리 식구는 모두 장돌뱅이였던 셈이다. 어머니는 어물전의 한 귀퉁이에서 길바닥에 거적때기를 깔고 그 위에 역시 거적때기만한 차일을 친 채, 김이며 미역, 멸치, 마른 새우 등의 해산물을 팔았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해종일 어머니와 함께 장날을 보냈지만, 조금 커서 네댓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어머니의 등을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돌뱅이가 되어 장터를 헤집고 다녔다. 장돌뱅이에게 있어서, 닷새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란, 어른 아이 막론하고 축제일 수밖에 없었다. 장날이 돌아오는 나흘 내내 기껏해야 휴지 나부랭이나 회오리바람에 날리곤 하던 쓸쓸한 빈터와 기둥만 앙상하던 빈 가게들이, 장날이 되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람들이 들끓는 싸전이며 어물전, 포목전, 유기전, 옹기전, 잡화점 등으로 변하고, 노점 음식점들마다 돼지머리와 순대가 산더미처럼 쌓이거나 가마솥이 넘치도록 팥죽이 끓어대는 요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장돌뱅이들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목이 쉬도록 시골 사람들을 불러 하루 벌어 닷새를 먹고 살 돈을 마련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장터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물건을 훔치거나 아니면 혹시 길에 떨어진 동전 한닢이라도 줍기 위해 해종일 악머구리 끓듯 해댔다. 어린 장돌뱅이의 벌이는 그다지 신통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싸전 근방을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어른들의 다리 틈으로 쌀을 한 주먹씩 훔쳐내어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되밀이꾼에게 들켜서 되밀이로 얻어맞거나,‘이 문댕이새끼, 손모가지를 콱 짤라불기 전에 쌀 못 놔?’‘아이고, 전 어떤 장돌뱅이년 구녕에서 나온 새끼여?’ 하는 시골 아낙네들의 막된 욕지거리야 다반사였고, 조금도 개의할 바가 아니었다. 어린 장돌뱅이들은 저만큼 도망치면서 ‘히잇, 니에미 X이다아’ 하고 대거리를 해대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어린 장돌뱅이에서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나이에 이르러서도, 어쩌다 5일장에만 가면 나는 장터 특유의 축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고 만다. 그리하여 몇 시간이고 좋이 장터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한만을 잔뜩 남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도 한다. 수도권 일대에 조선조부터 유명한 5일장으로는 광주의 사평장, 송파장, 안성의 읍내장, 교하의 공릉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빛이 바랬다. 대신에 내가 즐겨 찾는 5일장은 성남 모란장이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다가 4일과 9일,14일과 19일,24일과 29일, 이렇게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는 모란장은 우선 3000평이 넘는 넓은 장터여서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지척이면서도 기이하게 전혀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시골장터의 분위기 속에는 누군가에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들짐승 혹은 모질게 살아남는 여름 한낮의 잡초 같은 거친 생명력이 깔려있다. 거친 생명력은 자칫 수상쩍은 기운마저 감돌 정도이다. 이를테면 어디 한군데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집안의 우환노릇이나 하면서 거느릴 가족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역마살의 작은 아버지나 외삼촌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불온하고 어수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살붙이의 정이 가는 식이다. 그런 모란장의 분위기는 어쩌면 성남시 자체에서 태생적으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회지의 때 묻지 않은 시골장터 분위기 도대체 성남이 어떻게 만들어진 도시인가.1960년대에 박정희식 값싼 노동력 위주의 경제개발에 희생되어 실농한 농민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등지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다가, 판잣집에서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채 이번에는 철거민이 되어 광주시 중부면의 허허벌판으로 내몰려 만든 소위 광주대단지의 ‘달나라 별나라’가 시초 아니던가. 먹고 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나라에서 준다는 20평의 땅에 혹하여 지금의 은행동 일대에 ‘달나라 별나라’를 만들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눈이 뒤집힌 임산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삶아먹는 파천황의 굶주림 끝에, 마침내 ‘광주폭동’을 일으킨 비극의 땅이 아니던가. ‘광주폭동’은 작가 윤흥길씨에 의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작품으로 재현되었다. 이 작품에는 ‘안동 권씨’에 대학까지 나와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오로지 내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광주단지에 까지 오게 된 주인공이 주로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한 데모대를 피해 도망치다가 자칫 데모대의 물결에 휩쓸려 들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빗속에서 사람들이 경찰하고 한참 대결하는 중이었죠.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꿔져 버립디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 술값만 내면 양은 맘껏 데몰 피해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 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 주어 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 옵디다. 나체화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 나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디다. 내가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농·공·축·수산물 없는게 없는 만물상 ‘나체화’의 성남시가 2004년 12월 말 현재 97만 명을 넘어 100만 명이라는 초읽기에 들어간, 나라 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가 되었다. 만일 그대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만나고 싶다면, 그리하여 그대 또한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체화’를 느끼고 싶다면, 그대는 지금 당장 모란장으로 오라. 모란장 어디에서건 그대는 너무 쉽게 아홉 켤레의 사내와 나체화를 만나게 될 터이다. 만일 그대가 설 명절을 맞아도 돌아갈 고향이며 가족이 없는 떠돌이라면, 더더욱 망설이지 말고 모란장으로 오라. 와서 그대 또한 기꺼이 벌거벗은 채 나체화 속으로 들어가라. 지하철 8호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모란역에서 5번 출구를 나와 20m 쯤 걸으면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모란장 입구가 보인다. 성남이나 분당행 시내버스를 타서 모란역에서 내려도 마찬가지다. 또한 모란역 곁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전국의 어디에서건 성남행 시외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모란장 입구라고 해서 딱히 무슨 표지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꽃이며 난이나 동백꽃 같은 화분을 길바닥에 늘여놓은 꽃전이 입구인 셈인데, 꽃전을 지나면 쌀이며 보리, 콩, 조, 수수, 율무 같은 갖가지 잡곡을 파는 잡곡전이 나오고, 당귀며 황기, 인삼, 감초 같은 약초에서부터 지네며 뱀, 심지어 굼벵이까지 파는 약초전이 나오고, 할머니들의 고쟁이 같은 내복에서부터 누비옷이며, 버선, 양말, 양장, 신사복, 점퍼 등을 파는 의류전, 신발전, 고등어, 갈치, 대구, 새우, 꽁치, 삼치, 굴, 동태에서 아구며 가오리 등 온갖 생선을 파는 생선전, 무며 배추, 상추, 시금치에서 사과, 배, 바나나, 곶감, 귤을 파는 야채전을 지나면 드디어 먹거리를 파는 음식전이 시작된다. 아니, 잠깐만 음식전을 모른 척 지나치자. 음식전 옆에는 활어전이 있는데, 주로 붕어며 잉어, 누치, 가물치, 장어, 새우, 자라, 미꾸라지 등 살아 있는 민물고기들이 펄떡펄떡거리고 있다. 활어전을 지나면 고추전이 나오고 다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이 싸서 1,2만원짜리도 있다는 각종 강아지를 파는 애견전이 나오는데, 장터의 맨 끝에는 흑염소며 닭, 오리, 토끼, 고양이 등을 파는 가금전이 있다. 모란장을 대강 둘러 보았으면, 다시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전으로 돌아가자. 젊은 남정네가 아내며 어린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있거나, 늙은이 내외가 둘이서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음식전에는 팥죽이며 호박죽이 양은솥 안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팔팔 끓고, 왕만두, 만둣국, 팥국수, 장터국수, 잔치국수, 칼국수 등이 산더미로 쌓여 있다. 그것들이 모두 2000원에서 3000원 안팎이다. 그런가 하면 옆에서는 가오리찜, 순대국밥, 손만두, 소라, 홍합, 돼지허파, 코다리찜, 돼지머리고기, 문어, 쭈꾸미, 새우 등이 역시 산더미로 쌓여 있다. 두 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양의 한 접시가 각각 5000원이다. 문득 가까운 어디선가 굿판이라도 벌어진 듯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쇳내 나는 목청으로 누군가가 신명지게 품바타령을 불러대고 있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면, 만장한 구경꾼들 한 가운데에서 엿장수의 놀이판이 벌어져 있다. 그렇듯 엿장수의 놀이판 주변으로는 뷔페 중에서도 희한한 ‘쌍방울뷔페’의 ‘원주민촌’,‘무진장집’,‘대박집’,‘왕눈이’,‘막썰어집’,‘고향집’,‘은영네 대포집’ 등이 눈에 띈다. 쌍방울이란 돼지 불알을 일컫는 말로, 바로 돼지부속 고깃집들이다. ●음식도 가지가지 입맛대로 골라 포식 이 돼지부속 고깃집들은 부속의 종류에 따라 값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님의 양에 따라서 얼마를 먹든지 간에 고기 값은 무료이고, 술값만이 다르다. 이를테면 소주 한 병에 3000원, 동동주 한 잔에 1500원인 ‘돼지 잡는 날’에서는 이곳에서 도래기름이라고 부르는 이자와 지라, 콩팥, 염통 등의 돼지부속이 나오고, 소주 한 병에 5000원인 ‘쌍둥이네’에서는 지라며 콩팥, 염통 이외에도 돼지껍데기며 생고기, 새끼보, 불알 등이 더 나온다. 이렇듯 모든 돼지 부속물들이 기다란 철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으면, 손님들은 술이 떨어지지 않는 한 이리저리 철판을 옮겨 다니며 얼마든지 포식할 수 있다. 뿐이랴, 바로 쌍방울뷔페 옆에는 내가 빠질 수 있냐는 듯이 왕새우구이, 민물장어, 꽁치구이, 청어구이, 꼼장어에 버섯삼겹살이며 메추리구이, 닭발, 닭똥집, 두부김치 등을 파는 ‘명희네’며 ‘옛사랑집’이 있다. 거기서 잠깐 눈을 돌리면, 커다란 가마솥에서 솔솔 단내를 풍기며 가득히 보신탕이 끓고 있는 ‘은영이네 가마솥 보신탕’이 있다. 그러나 이 보신탕은 장터 반대편 ‘영남흑염소’ 건물 주변이 대여섯 집들이 차일을 잇댄 채 줄지어 서 있다. 보신탕은 보통이 8000원, 특이 1만원이다. 만일 그대가 여기까지 모란장을 돌아 보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 또한 성남이라는 사연 많은 도시의 나체화 속으로 껴들어 있는 것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그대가 낯선 사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지라 한 점을 안주로 한 병에 3000원짜리 소주를 목 안에 깊이 털어넣을 때, 아니면 엿장수들의 음담패설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는 칠순 노파 옆에서 그대 또한 키득키득 웃어댈 때, 그대는 이미 그만큼 불온하면서도 어수룩한 살붙이의 정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한 폭의 나체화를 만들고 있으리라. (작가)
  • [아테테 통신]

    ●개·폐회식 남북한 공동입장의 북측 기수로 김성호(58) 전 북한 농구대표팀 감독이 10일 선정됐다.키 185㎝의 김성호는 ‘남녀북남’의 약속에 따라 남측의 여자배구 선수 구민정(31·182㎝)의 큰 키에 맞춰 결정됐다. 입장 대형은 ‘KOREA’의 표지판을 맨 앞에 내세우고,이어 남북한 NOC위원장,선수단장·임원,선수 순으로 정했다.복장은 남자는 파란색,여자는 빨간색 상의에다 바지와 치마는 모두 흰색.한반도기는 왼쪽 가슴에 부착하기로 했다.입장 인원은 북측 50명,남측 120여명 규모가 될 전망이다.남측은 이날 공동 단복 80벌을 전달했다. 한편 사상 첫 올림픽 현장 합동훈련 종목으로는 14일부터 시작될 탁구가 채택됐다.이에 따라 남북한 선수들은 12일 오후 갈라치 올림픽홀에서 우정을 나누는 훈련을 갖는다.남측은 앞서 남녀 각각 두 테이블을 배정받아 합동훈련에는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 ●아테네의 기온이 한낮에는 섭씨 32∼33도에 달하지만 새벽에는 이상 저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선수들을 감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불 공수 사태가 벌어졌다. 사이클의 조건행 감독은 10일 주경기장 근처의 대형 할인점에서 이불 두 채를 샀다.조 감독은 “여자 선수들보다 남자 선수들이 더 추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걱정했다.앞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지난 9일 본부 직원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담요를 긴급 구매했다. ●안전 문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그리스 정부가 경기장에 반입할 수 없는 물품 리스트를 발표했다. ‘블랙 리스트’에는 총,최루탄,칼,화약 등은 물론 우산,스케이트 보드,1m 이상의 현수막과 빗자루,플라스틱 원반(프리스비),유모차까지 망라됐다.깃발도 202개 참가국의 국기 외에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남북한 간판 유도선수인 이원희(24)와 계순희(25)가 11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두 선수는 10일 올림픽 선수촌 국기광장 옆 식당 입구에서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 이후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선전을 기원했다.지난해 세계선수권 당시 같은 날(9월13일) 남자 73㎏급과 여자 57㎏급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던 이들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오는 16일 동반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그동안 한국 취재진을 피해왔던 계순희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 與·野정치인 ‘우린 닮은꼴’

    15일 사실상 첫 임시회를 마감한 17대 국회를 살펴보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닮은꼴 의원들이 적지 않아 관심을 끌고 있다.선수(選數)가 달라 이른바 ‘체급’은 다르지만,외모나 성격뿐만 아니라 의정활동 방식,대외활동까지도 비슷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햄릿형 닮은꼴 정치인으로 김근태(3선)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나라당 김덕룡(5선) 원내대표가 손꼽힌다.서울대 선·후배로 학생 운동권과 재야활동을 거쳤다.둘 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지만,때론 최종 결정까지 시간을 오래 끌어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도 받는다.김 장관은 복지부 장관 입각을 앞두고 임명 이틀 전에야 마음을 잡았고,김 대표는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때 ‘DR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후보등록 직전까지 결심을 미뤘다. ●퍼스트 레이디형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열린우리당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부드러운 외모와 말투,단호하고 의지가 강한 점 등이 닮았다는 평가다.말수가 적은 것도 비슷하다.박 전 대표는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5년 동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경험이 언행 곳곳에 배어 있다.50·60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10·20대에게도 호감의 대상이다.한 의원은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렀지만 투사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그를 만난 사람들은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열린우리당 내에서는 한때 박 전 대표의 대중적 인기를 누르기 위해 차기 당의장으로 한 의원을 밀자는 제안들도 있었다.두 사람은 지난 총선에서 상대방을 헐뜯는 ‘네거티브 선거전’을 거부했다. ●언론 민감형 기자들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등 언론에 민감하고,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주자라는 평가 때문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곧잘 비교된다.4월 총선 때 ‘민생투어’로 노란색 점퍼를 입고 시장통을 돌던 정 장관은 타고난 순발력으로 언론이 선호하는 어젠다와 그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박 의원도 총선이 끝난 뒤 다홍색 스쿠터를 타고 지역구인 종로 시장통을 누비고 다녀,대중성이 뭔지 아는 정치인이라는 평이다. ●워치독(Watch Dog)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이 손꼽힌다.원 의원은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을 ‘금품선거’라고 폭로하고,지난 14일 닻을 올린 ‘새정치 수요모임’에도 고정멤버로 참가해 ‘불법비리 정치인 비보호’를 주장하는 등 당내 보수진영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청와대 정무2비서관 출신의 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어려울 때면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정부측에도 ‘독한 소리’를 쏟아낸다.김 대변인은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에서 국무총리실 관료가 면피성 발언을 하자 책임을 다그쳐 눈길을 끌었다. ●전략 이론가 언론계 출신인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과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손꼽힌다.민 의원은 70·80년대 ‘제헌의회파(CA)’의 중앙위원 출신.초선에도 불구하고 재선급 이상으로 평가돼,재선 이상의 중진으로 구성된 정책기획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박 의원은 대학시절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위기에 빠졌던 인물로,지난 94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최연소 위원으로 발탁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구상과 전략’의 최종 집필을 맡았다.박 의원은 14일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총리를 상대로 조목조목 따져 ‘박근혜 패러디’와 관련해 이 총리의 사과를 받아냈다. ●독설가 TV토론회 등에 나와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는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을 겨냥해 “손학규 경기지사의 상대는 나”라고 호기를 부렸으며 민감한 정치현안이 있을 때마다 쉴새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붓기로 유명하다. 전 대변인은 방송기자 출신답게 정곡을 찌르면서 쓴 소리를 잘해,특히 유 의원의 ‘천적’으로 통한다.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기피대상 1호다. ●패션리더형 세련된 패션감각으로 검정 양복 일색인 국회의사당을 평정한 민주당 손봉숙 의원과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의 패션 대결도 흥미진진하다.멋쟁이로 소문난 손 의원은 샛노랗게 화사한 재킷에 하얀색 치마를 받쳐 입거나,진한 자주빛이 감도는 치마 정장 등으로 멋을 낸다.옷 색깔에 맞춰서 꽃모양의 장식을 달거나,브로치·스카프 등 다양한 패션 소품도 활용한다.방송인 출신으로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박 의원은 날마다 스케줄에 따라 옷 색깔을 코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국회 개원식 때는 눈처럼 깨끗한 흰색 정장을 입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다혈질형 고려대 선·후배인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열린우리당 문학진 의원이 꼽힌다.각각 검사와 기자를 지낸 전문가 출신으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들.홍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3선이 되자마자 ‘저격수 활동 중단’을 선언,한동안 조용히 지내기도 했지만 최근 당지도부를 향해 “‘웰빙 야당’으론 안된다.우리가 여당의 2중대냐.”고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문 의원은 청와대 정무비서관 시절 지역구에서 야당 보좌관에게 소주를 끼얹는 등 괄괄한 성격.등원 이후 ‘3선급 초선’이라며 점잖게 처신을 하고 있으나 언제 특유의 다혈질이 터져 나올지 관심거리다. ●정보통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으로 각각 국정원 기조실장과 안기부 1차장을 지낸 ‘정보통’이라는 점에서 닮았다.악연도 만만치 않다.최근 안기부 자금 유용사건인 ‘안풍(安風)’에 대해 법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공수가 뒤바뀌었다는 평가도 있다.문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은 상태에서 정 의원의 ‘비공개회의 공개화’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통 열린우리당 정세균,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손꼽힌다.두 사람 다 민간기업에서 일한 뒤 정계에 입문해 ‘정책통’으로 인정받고 있다.정 의원은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이 의원은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정 의원은 쌍용그룹에서 18년간 근무한 뒤 95년 정계에 입문해 민주당·열린우리당의 정책위의장을 맡았었다.이 의장도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냈고,2000년 첫 등원했다. 문소영 전광삼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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