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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박 대통령께서는 총탄을 맞으신 직후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에 의해서 급거 군서울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시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2014년 10월 의료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1996년 내놓은 노래 ‘70년대에 바침’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 사망 소식을 전하는 당시 정부 발표 내용으로 시작된다. ● 한발의 총성으로 막 내린 1970년대,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등을 불러 술자리를 즐기던 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을 거뒀다. 김재규는 이후 법정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저격한 것이다”라고 외쳤다.당시 11살이던 신해철은 훗날 노래를 통해 이렇게 회상했다.“한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은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신씨의 회상처럼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친애하는 민주정의당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각계 귀빈 여러분. 새역사, 새시대, 새정치를 개척해 나가자는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부름을 받고 나는 오늘 심심한 사유와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정당의 총재라는 위치,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라는 위치가 얼마나...”국민들은 민주화를 꿈꿨지만 그 결과는 신군부 전두환 정권 등장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발동하고, 이튿날인 18일 민주화운동이 들끓었던 광주에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국민을 향한 잔혹한 학살까지 자행했다. ● 전두환과 1980년 5월 광주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보다는 영화를 통해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1987년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를 시작으로 이후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26년’ 등 영화인들은 저마다의 관점과 방식으로 정권의 폭압성과 민중의 저항을 그렸다. 영화 관객, 더 넓게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는 단연 2017년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꼽힌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큰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1980년 5월 광주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폭압과 학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극장에서만 누적 관객 1218만명 이상을 기록하며 역대 국내 개봉 영화 관객수 9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광주 5·18’이라는 시대적 배경 외에도 상당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소속 일본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19일 오전 ‘계엄령이 내려진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짤막한 내용의 일본 언론보도를 보고 당일 오후 서울로 향했다.서울에 도착한 힌츠페터는 이튿날인 20일 오전 자신이 묵었던 호텔의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영화 속 ‘만섭’은 이후 실존인물 김사복으로 확인됐다. 김사복씨의 도움으로 광주 현지 취재에 성공한 힌츠페터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세계에 고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진실은 한국에만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한국에서는 국가의 감시를 피해 대학가와 성당 등에서만 힌츠페터의 다큐멘터리가 비밀스럽게 상영됐다. 부산에서는 1987년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이 영상이 상영됐는데,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 ‘탁’ 치니 ‘억’하고 죽어야만 했던 1987년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정치권의 화두로도 떠오른 영화 ‘1987’ 속 대사다. 이 영화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 사망까지 실제 1987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았다. 1987년 1월 13일 밤 12시 무렵.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당시 민주화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박종철은 경찰의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에도 선배 박종운에 대해 진술하지 않고 저항하다 의식을 잃었고 14일 오전 11시 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중앙일보 기자가 검찰을 통해 ‘서울대생 사망 사건’의 단서를 포착했고,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16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고, 박종철군의 친구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했다”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사망 당일 밤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으나 이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최환 검사는 부검을 지시하며 ‘사체보존명령’을 내렸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최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딱 보는 순간 ‘이건 고문이다’는 직감이 왔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모를 폭로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 가담 경관은 2명이 아닌 5명이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고문 살인 규탄 및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노무현·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이끄는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6월 항쟁을 이끌었고, 서울에서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왔다.6월 9일 서울 연세대에서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한 학생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이다. 이한열은 한 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숨을 거뒀다. 당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이 부축당한 채 피 흘리는 사진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리며 전두환 정권의 폭압성을 세계에 고발했다.전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군부정권은 결국 6월 29일 백기를 들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이날 국민이 요구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6·29 선언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선이 이뤄지면서 길었던 군사정권 시대가 저물고 민주화가 오는 듯 했으나, 당시 대선에서 민주화 세력의 두 거목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각각 출마하며 여당 후보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라는 역대 대선 최저 득표율로 당선됐다. ‘실질적 민주화’ 역시 5년 뒤로 유예됐다.●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말하다 대한민국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형식적·실질적 민주 국가로 거듭났으나 이후 경제성장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 과거 박정희 향수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힘입어 탄생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훼손됐다. 결국 헌법까지 유린하며 국정을 흔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뒤 구속됐고,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018년 국민들은 다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신해철씨는 노래에서 1970년대를 ‘옳고 틀림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대답은 무엇일까. 70~80년대 독재권력과 맞서 싸웠던, 이제는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이렇다.“6월 항쟁, 또 그 앞에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독재권력 이게 힘들었지만 못지않게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 그런 말이었다. 지금도 ‘정권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게 있느냐’ 그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 이 영화(1987)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우상호 “연대 민주항쟁 동문 배우 안내상·우현” 일화 레알?

    우상호 “연대 민주항쟁 동문 배우 안내상·우현” 일화 레알?

    민주화 운동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전 한양대 총학생 회장)과 함께 ‘꽃미남 총학생 회장’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던 우상호(56)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87년 당시 민주항쟁을 같이 했던 연세대 동문 배우 안내상(54)과 우현(54)과의 인연을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우 의원은 연대 신학과 출신인 안내상이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며 사연을 소개했다.우상호 의원은 11일 방송된 JTBC 시사프로그램 ‘썰전’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과 이한열 사망 등 6월 항쟁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우 의원은 1987년 당시 연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김구라가 “안내상도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사진엔 없다”고 말하자 우 의원은 “당시 집회는 총학생회 집행부가 주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시민 작가도 “안내상은 지하에서 더 과격한 활동을 했다”면서 “우 의원이나 나처럼 잡혀가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고 중요한 인물들은 지하에서 활동했다”며 안내상의 활약상을 전했다. 우 의원은 “안내상은 1988년 미국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며 “(지금도) 미국을 못 갈 것이다. 한국 블랙리스트엔 없는데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안내상, 우현(연대 철학과)이 내 신혼집에서 함께 지냈다”며 “그 인연으로 그들과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문식, 이종혁, 이필모 등의 배우들과 나 역시도 친분을 가지게 됐다”고 인연을 공개했다.배우 우현은 우 의원과 함께 빛바랜 고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 사진 속에서 우 의원은 이 열사의 장례 집회 당시 이 열사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고 우현은 태극기를 든 채 침통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국의 한 시사잡지의 ‘이 주의 사진’으로 소개됐다. 6월 항쟁 당시 연대 총학생회장이던 우 의원은 6월 항쟁 당시 연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현장에 함께 있었다. 우현은 당시 연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 우 의원은 “(우현이) 사회부장을 해서 집회를 주도했었다”며 4·13 호헌조치 당시 연대생들이 항의를 하기 위해 삭발을 했던 때를 설명했다. 우 의원은 “그때 (우현에게) ‘단식을 할래? 삭발을 할래?’ 했는데 우현이 굶는 건 못한다고 해서 우현이 삭발을, 내가 단식을 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우 의원은 우현이 MBC ‘무한도전’의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특집에 출연했을 때를 언급하며 “내 신혼 때 같이 살았는데 못 생겼다고 한번도 생각 안해봤는데 ‘무한도전’에서 1위했다”며 “‘못생겼나?’ 했다. 귀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썰전’ 우상호 의원 “우현 안내상, 故이한열 열사 영정 지켜”

    ‘썰전’ 우상호 의원 “우현 안내상, 故이한열 열사 영정 지켜”

    ‘썰전’ 우상호 의원이 배우 우현과 안내상의 과거를 언급해 화제다.지난 11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故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의 선두에 서 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MC 김구라는 이와 관련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 속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연세대학교 학생 故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영정 옆을 지켰다. 우상호 의원은 “사진을 잘 보면 우현씨 머리는 삭발 한 것이다. 이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이다”라고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우상호 의원은 “우현씨를 워낙 오래 만났는데, 나는 우현씨가 못생긴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와서 1위를 해 놀랐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유시민 작가는 “안내상은 지하에서 더 과격한 활동을 했다”며 “우상호 의원이나 나처럼 잡혀가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고 중요한 인물들은 지하에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은 1988년 미국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던 안내상에 대해 “미국을 못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썰전’ 우상호 “영화 ‘1987’ 배우 우현, 못생긴 줄 몰랐다”

    ‘썰전’ 우상호 “영화 ‘1987’ 배우 우현, 못생긴 줄 몰랐다”

    ‘썰전’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최근 영화 ‘1987’에 나온 배우 우현의 외모를 언급했다.11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고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에 나섰던 우상호 의원이 출연했다. MC 김구라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소개하자 출연진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현장 속에서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이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영정 옆을 태극기와 함께 지키고 있었다.우상호 의원은 “사진을 잘 보면, 우현씨 머리는 삭발한 것이다. 이는 1987년 4월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우상호 의원은 우현씨의 외모도 언급했다. 그는 “우현씨를 워낙 오래 전부터 만났는데, 나는 우현씨가 못생긴 줄 몰랐다”면서 “그런데 어느날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오더니 1위를 해서 놀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밤 故 이한열열사 母 “강동원 찾아와…우리 아들했으면 했다”

    한밤 故 이한열열사 母 “강동원 찾아와…우리 아들했으면 했다”

    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이한열(1966~1987)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배은심 여사는 2일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는데 강동원이 직접 찾아왔다.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 망월동에 있는 아들 묘지에 가서 인사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배 여사는 “키가 큰 게 닮았다. 우리 아들이 정말 저렇게 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우리 아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 한열이 본 것 같이 좋았다. 이렇게 한 번 왔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렇게 표현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 ‘1987’은 1월의 박종철 열사(1965~1987)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이한열 열사까지 이어지는 민주항쟁 실화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에 맞고 쓰러진 뒤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서울광장] 집중하라 2018/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집중하라 2018/최용규 편집국 부국장

    새해맞이는 기대와 소망을 품게 하기에 새롭고 활기찬 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시작됐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올 정도로 신년 같지 않은 신년이다. 새해의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등 뒤에 엄습하고, 불투명한 내일이 희망 대신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시민의 힘으로 출범한 새 정부가 다방면에 걸쳐 고치고 바로잡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국내며 외교며 난마처럼 얽힌 난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아직 없다. 그렇게 우리는 2018년 새해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식처럼 깨어난 시민의 힘이 현 정권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용광로 같은 이런 열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겠는가. 아닐 것이다. 힘을 못 쓸 정도로 힘이 빠지지 않았고, 아직은 기세가 살아 있는 권력을 그렇게 날려 버릴 정도의 강력한 힘은 순간의 감정 폭발만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고의 세월을 거치며 차곡차곡 조직화되고, 내적으로 응축된 힘이 실정을 비집고 일시에 분출됐다고 봐야 한다. 며칠 전 검·경 수장인 문무일 검찰총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그리고 박상기 법무,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영화 ‘1987’을 관람했다. 1987년 겨울 치안본부(현 경찰청)로 끌려가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을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사정 당국의 조작 발표는 시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해 7월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졌고, 8월 전대협 발대식이 충남대에서 열렸다. 비록 처해 있는 곳은 달랐지만 불의에 항거하는 30년의 유전자(DNA)가 살아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을 현 정권이 받고 있는 터라 이전 진보 정권과는 다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인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이는 구호로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럴 만한 힘과 배경이 없었기에 그토록 갈구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고, 한 사람은 비운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제 미완의 숙제를 현 정권이 풀어내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단순히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아니라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심화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도 눈앞에서 불합리한 주장과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합리가 외면당하고 불합리가 통제받지 않고 작동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적폐청산은 민주주의 회복과 직결돼 있다. 외과수술하듯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야 한다. 적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제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벌백계식 단죄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던 악습과 폐해를 걷어내는 제도개혁이 근본이다. 겉으로 드러난 독초만 잘라내고 끝내선 안 될 일이다. 지금처럼 정권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빗자루질 몇 번하고 건물을 올렸다가는 바람 한번 불면 건물이 성할 리 없다. 땅을 깊게 파야 한다. 기반석이 나오면 기반석을 뚫어 견고한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건물을 세운다면 그 어떤 풍파도 견딜 수 있다. 새해에 집중해야 할 것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다름 아닌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반도체 굴기를 현실화한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꽃인 인공지능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우리의 인공지능 특허출원 건수는 중국에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초라하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은 기존 산업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신사업’을 일으키는 게 중요하다. 고용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적 규제’가 신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규제혁파를 강조했지만 죄다 실패했다. 문 대통령 역시 규제개혁과 혁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재계 수장들의 신년사 요지는 규제혁파 호소다.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말 아닌가. 분명한 것은 과잉규제로 자승자박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잿빛 미래가 될 것이란 점이다. ykchoi@seoul.co.kr
  • 이한열 기념사업회 “1987, 많이 슬펐다…강동원 용기에 감사”

    이한열 기념사업회 “1987, 많이 슬펐다…강동원 용기에 감사”

    이한열 기념사업회가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실존인물 이한열(1966~1987)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이한열 기념사업회는 홈페이지(www.leememorial.or.kr)를 통해 “2016년 여름,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 전, 박근혜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 강동원은 배우로서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로 제일 먼저 달려와 배역을 수락해주었다”면서 “작은 그러나 태산만큼 큰 용기를 내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영화 ‘1987’은 1월의 박종철 열사(1965~1987)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이한열 열사까지 이어지는 민주항쟁 실화를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에 맞고 쓰러진 뒤 7월 5일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를 배우 강동원이 맡아 열연했다. 이한열 기념사업회 측은 “각오는 했지만, 짐작보다 많이 슬펐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꺽꺽거리면 등짝이 아팠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이어 “노동자가 죽어가고 대학생이 죽어가고 그렇게 속절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대, 살아남으려면 무심해야 했던 시대가 상기되어 맘이 출렁거리고 울컥했다”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 측은 “(극중) 박종철 열사의 어머님이 ‘부검 전에 손이라도 한 번 만지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장면, 아버님이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내뱉으실 땐, 보는 이의 맘도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면서 “나 하나 움직인다고 세상이 바뀔까, 무기력했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가족 생각에 뜻을 접었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열처럼 ‘마음이 너무 아파’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작은 그러나 개인이 감당하기엔 태산만큼 큰 용기를 냈었다. 그 용기들이 모여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한열 기념사업회 글 전문 영화 <1987>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짐작보다 많이 슬펐습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꺽꺽거리면 등짝이 아프군요. 며칠 전부터 신촌 지하철역의 <1987> 포스터만 봐도 맘이 출렁거렸습니다. 배우 김태리의 무심한 표정에서, 노동자가 죽어가고 대학생이 죽어가고 그렇게 속절없이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대, 살아남으려면 무심해야 했던 시대가 상기되어 맘이 출렁거렸지요. 그 시절에도 스무 살의 풋풋한 설렘이 있었습니다. 미팅도 하고 서클(동아리) 활동도 하고. 그 둘의 대비가 김태리 배우의 무심한 얼굴에 그대로 배어나와 포스터 앞을 지나는 것만으로 울컥울컥했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어머님이 부검 전에 손이라도 한 번 만지게 해달라고 울부짖는 장면, 아버님이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속으로 꾹꾹 누르며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으실 땐, 보는 이의 맘도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연희의 말처럼 나 하나 움직인다고 세상이 바뀔까, 무기력했던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생각에 뜻을 접었던 이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한열처럼 ‘마음이 너무 아파’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작은 그러나 개인이 감당하기엔 태산만큼 큰 용기를 냈었지요. 그 용기들이 모여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고요.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영화 ‘1987’ 보기 전 알아야 할 단어들 ‘호헌철폐’부터 ‘최루탄’까지

    영화 ‘1987’ 보기 전 알아야 할 단어들 ‘호헌철폐’부터 ‘최루탄’까지

    압도적인 몰입감, 배우들의 열연, 강한 울림까지. 완벽한 3박자를 갖춘 영화로 호평을 받고 있는 ‘1987’(감독 장준환,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작 우정필름)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 중, 중요하지만 지금은 생소할 수 있는 단어들을 풀이했다. #1. 호헌철폐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것(호헌)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하라는 뜻. 전두환 정권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고, 국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군부정권이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화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1987년 4월 13일에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선언했다. (4.13 호헌조치) 이 조치를 거두라는 것이 바로 ‘호헌철폐’. 영화 ‘1987’ 속 시위행렬이 외치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4.13 호헌조치에 맞선 6월 항쟁의 구호였다. #2. 보도지침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거의 매일 내렸던 기사 작성에 관한 가이드라인. 1987년 9월, 해직된 언론인들이 만든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폭로함으로써 처음 알려졌다. ‘1987’ 영화 속 일간지 사회부장(고창석)이 사건의 취재를 지시하며 칠판에서 지우는 내용이 바로 이 ‘보도지침’이다. #3. 간선제(↔직선제) 간접선거제도.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선거인단’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실상 이 ‘대통령선거인단’은 전두환 세력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후계자를 지목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무의미한 선거제도였다. 장충체육관에 모여 진행되어 ‘체육관선거’로도 불렸다. 이에 반발하여 국민들이 요구했던 것이 ‘직선제’, 즉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접선거제도이다. #4. 정의구현사제단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회복, 사회정의실천 등을 위해 천주교 사제들이 결성한 종교단체. ‘1987’ 영화 속 사건의 진범 명단이 바로 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름으로 명동성당에서 발표된다. #5. 백골단 1980~1990년대 학내 시위자들과 시위 군중들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들. 대부분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이 주류로 구성되었으며, 흰색 헬멧에 청자켓 복장 때문에 백골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1987’ 영화 속 연희(김태리) 모녀를 붙잡아 강제로 차에 태우는 흰색헬멧-청자켓 차림의 이들이 바로 백골단이다. #6. 남영동 대공분실 군사독재시기 경찰청 산하의 기관으로,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곳이다. ‘1987’ 속 투옥중인 민주인사가 적은 비밀서신을 몰래 외부로 전달하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이 끌려가 고문당하던 장소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2005년까지 ‘보안분실’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로 운영 중이다. #7. 최루탄 최루제를 넣어 쏘는 화학무기. 최루제는 주로 눈을 따갑게 만들고 통증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일시적인 실명 현상을 일으키는 화합물이다. 군사독재시기 시위 진압용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최루탄에서 분사되는 최루액이나 최루가스가 피부, 호흡기 등으로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눈물과 콧물이 분비되며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탄알이 직접 사람을 가격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1987’ 속 시위장면이나 언론사 사무실 안에서 하얀 가스를 일으키는 탄알이 바로 최루탄이다. 장준환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김윤석-하정우-유해진-김태리-박희순-이희준 등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으로 1987년 그해를 고스란히 담아낸 ‘1987’은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안보리 ‘美 예루살렘 선언’ 거부 결의 착수

    안보리 ‘美 예루살렘 선언’ 거부 결의 착수

    상징적 조치… 美고립 심화될 듯 팔, 두 번째 ‘분노의 날’ 시위 이스라엘 총격에 수백명 부상 ‘휠체어 활동가’ 등 4명 사망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 거부 결의에 착수했다. 이스라엘 군경은 반미·반이스라엘 집회 참가자 등 팔레스타인인 4명을 사살했다. 1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이집트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거부하는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 이사국들에 돌렸으며, 이르면 18일 표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결의안은 예루살렘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돼야 하며, 예루살렘 지위와 관련한 최근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또 ‘예루살렘의 특징이나 지위, 인구 구성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어떤 결정이나 행동도 법적 효력이 없으며 무효로 철회돼야 한다’는 문구와 ‘모든 회원국은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여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문구 등도 포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 정부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거나 비난 또는 비판하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FP는 유엔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15개 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14개국은 대부분 결의안에 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거부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안보리의 이번 결의안은 상징적인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는 반미·반이스라엘 정서가 격화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무슬림 금요 합동예배 이후 시작된 두 번째 ‘분노의 날’ 시위에서 팔레스타인인 3명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2명은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경계 지역에서, 1명은 예루살렘 북부의 시위 현장에서 숨졌다. 부상자는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자지구 접경지 사망자 중에는 2008년 이스라엘군 공습에 하반신을 잃은 시민활동가 이브라힘 아부 투라이야도 포함됐다. 휠체어를 타고 집회에 나선 그는 팔레스타인의 대(對)이스라엘 집회의 상징적 존재였다. 사망 이틀 전에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동영상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시온주의(이스라엘 민족주의) 점령군에게 고한다”면서 “이 땅(팔레스타인)은 우리 땅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예루살렘 선언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투라이야의 장례식은 가자에서 열렸다. 팔레스타인인 수천명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아시라프 알키드라 가자 보건당국 대변인은 “이스라엘군이 저격수를 현장에 배치하고 최루가스를 무차별적으로 쏘고 있다”면서 “정체불명의 최루탄이 경련, 구토, 기침, 심장기능 이상 등 증세를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팔레스타인인 1명은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 외곽의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경찰에게 흉기를 휘두르다 이스라엘 경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사망한 남성은 폭탄 벨트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 이후 유혈 충돌, 이스라엘군 공습 등으로 숨진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현재 텔아비브에 있는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다고 밝혀 범이슬람권의 분노를 사고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팔레스타인 간다는 펜스… 팔 “트럼프 대리인 오지 마라”

    팔레스타인 간다는 펜스… 팔 “트럼프 대리인 오지 마라”

    이달 예정 아바스 수반 회담 취소 밝혀 하마스 “인티파다에 불붙여 맞설 것” 알카에다 등 제2의 9·11가능성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데 대한 반발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와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미국에 대한 환멸과 절망감이 종국에는 2001년 ‘9·11 테러’와 같은 대규모 무장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 ‘파타’의 지브릴 라주브 총재는 7일(현지시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달 말로 예정됐던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문을 거론하면서 “파타의 이름으로 트럼프의 대리인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며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회담이 취소될 것임을 밝혔다. 친(親)이스라엘 성향의 펜스 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결속을 강화하고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등도 찾아 새로운 중동정책을 설명할 예정이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이날 연설을 통해 “미국이 지지하는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 정책에는 우리가 새로운 ‘인티파다’(민중봉기)에 불을 붙이지 않는 한 맞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니야는 “모든 하마스 소속원에게 어떠한 새 지시나 명령에도 따를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해 뒀다”며 무장투쟁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하마스는 금요 합동 예배를 위해 많은 팔레스타인 무슬림이 모이는 8일을 ‘분노의 날’로 선포했다. 아랍권 민중봉기를 통칭하는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반(反)이스라엘 투쟁을 의미한다.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해 1987년 12월부터 약 6년간 지속됐다. 2000년 9월 이스라엘 극우파 정치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성지 템플마운트를 방문하자 발발한 2차 인티파다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이 잇따랐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서 로켓포가 발사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서 폭발했다”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군이 ‘테러 단체’의 가자지구 내 초소 두 곳을 공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무력 충돌에 따른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옹호해 온 아바스 수반의 입지도 위축되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2국가 해법’이라는 평화적 합의를 통해 독립국을 수립하려던 팔레스타인의 몽상이 사라지게 됐다”면서 “팔레스타인의 젊은층은 이스라엘이 만든 정착촌과 차단벽 등으로 자신들의 토지가 잠식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자란 세대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며 대규모 무장봉기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이슬람지하드(PIJ)도 새로운 무장투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도 성명을 내고 모든 대원에게 협력해 팔레스타인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팔레스타인 라말라와 헤브론, 베들레헴, 나불루스 등 요르단강 서안 도시들과 가자지구에선 팔레스타인 시위대 수천 명이 곳곳에서 이스라엘군·경찰과 충돌했다. 이스라엘군은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이스라엘군이 고무총과 최루탄, 물대포 등으로 진압에 나서면서 요르단강 서안에서 49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팔 ‘예루살렘’ 대치… “2명 총격 사망”

    이·팔 ‘예루살렘’ 대치… “2명 총격 사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한 데 반발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7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시위를 벌이던 팔레스타인 청년을 두 눈을 가린 채 연행하고 있다. 반미 시위대 2명이 이스라엘군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가운데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이스라엘군이 고무총과 최루탄, 물대포 등으로 진압에 나서면서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만 최소 4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 정파 하마스는 8일을 ‘분노의 날’로 선포하고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촉구했다. 헤브론 EPA 연합뉴스
  • 김정숙 여사 생일 “최고의 선물”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김정숙 여사 생일 “최고의 선물”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11월 15일 김정숙 여사의 생일을 맞아 5년 전인 2012년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아내 김정숙 여사의 생일을 축하하며 올린 글이 주목받고 있다.당시 문 대통령은 “오늘 아내의 생일입니다”라며 “지방에 와 있느라, 생일 아침을 쓸쓸하게 혼자 맞이했을 겁니다.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편치 않은 날이지만 아내와 처음 만났던 때 제 인생의 축복입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같은 날 김정숙 여사는 이 사실을 모른채 유쾌한 매력을 뽐냈다. 김정숙 여사는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 강동원씨가 제대했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이제 곧 현빈씨도 제대한다면서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삐 살았네요. 더 멋진 배우로 만나길 기대할게요!”라는 글을 올렸다.잠시 후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 축하 글을 확인한 김정숙 여사는 “제겐 최고의 선물이네요!”라는 글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경희대 캠퍼스 커플로 김정숙 여사가 대학교 2년 후배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정숙 여사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정숙 여사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 대통령을 찾았다. 김정숙 여사는 남자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리고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19살에 5.18 민주화운동 참가…“광주교도소 시신 수습, 처참”

    19살에 5.18 민주화운동 참가…“광주교도소 시신 수습, 처참”

    19살의 나이로 5.18 민주화운동 참가했다 체포됐던 박상옥씨는 당시 광주교도소에 대해 “아우슈비츠 같은 처참함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광주에 고립된 상황을 타지역에 알리기 위해 빠져나가려다 계엄군에 붙잡혔다.박상옥씨는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당시 광주역 광장에서 포박을 당한 뒤 전남대학교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군용 탑차에 실려 포승줄에 일자로 엮어져 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시민들을 탑차 안에 밀어넣고 잠근 후 군인들이 지붕으로 올라와 최루탄을 집어넣고 다시 뚜껑을 닫고 비닐천막을 씌웠다. 그 상태에서 누군가는 밟히고 쓰러졌다”면서 처참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 상태로 가면 머지않아 죽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는 박씨는 “살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묶여 한밤 중 교도소로 갔다. 너무 매워 눈을 뜰 수 없었고 교도소에 도착했을 땐 차 안에서 질식사한 사람이 두세 명 나와 함께 탄 사람들이 시신 수습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명령에 따라 짚으로 짠 가마니에 시신을 돌돌 말아 묶어 수습했고, 그 일은 모두 광주교도소 앞마당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이후 교도소 창고에 수용됐다는 그는 “기름 담는 드럼통을 반으로 갈라 가두고 그곳에 대소변을 보게 했다. 잠도 재우지 않고 군화발로 밟혀 벗고 뛰어다녔다.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보다 더 처참했다”고 떠올렸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당시 행방불명된 광주 시민들은 82명. 하지만 실제 실종자 수는 정확한 집계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옛 광주교도소 부지는 5.18 당시 실종자들 암매장 장소로 지목이 됐고 곧 발굴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박씨는 이 소식을 접하고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하며 책임자 처벌도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이 위로가 됐으면, 5.18 민주화운동 그 정신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꼭 좀 밝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홍준표, 한미 FTA 개정에 “나를 이완용에 비유하고…지켜보겠다”

    홍준표, 한미 FTA 개정에 “나를 이완용에 비유하고…지켜보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5일 한국과 미국이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착수에 사실상 합의한 것과 관련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면서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홍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1년 10월 한미 FTA 비준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때 통진당이 최루탄을 터트리고 나를 매국노 이완용에 비유했다”며 “반드시 재협상해서 독소조항을 제거하겠다고 하던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그렇게 하는지 지켜보자”고 적었다. 이어 “만약 국익을 손상시키는 협상을 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그들이 말하는 독소조항 개정이 이루어지고 국익을 증진시키는 협상을 해올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흑인 쏜 백인 경관 무죄… “흑인 생명도 중요” 불복종 시위

    美 흑인 쏜 백인 경관 무죄… “흑인 생명도 중요” 불복종 시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흑인 운전자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전직 백인 경찰관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흑인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유혈 사태 이후 약 한 달 만에 또다시 흑백갈등이 재현될 조짐이다.1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세인트루이스 시내에서 시위대 1000여명이 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 등의 구호를 외쳤고, 시위대 일부는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공격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연행하는 과정에서 33명이 붙잡혔고 경찰관 11명이 다쳤다고 NBC방송이 전했다. 이어 이날 낮에도 200~300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웨스트카운티 체스터필드몰 등지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에 물건을 던지는 등 시위를 이어 갔다. 이날 연행된 사람의 숫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시위는 2011년 백인 경관 제이슨 스토클리의 흑인 운전자 총격 사건 판결 때문에 불거졌다. 스토클리는 마약거래 검문 과정에서 의심 차량을 멈춰 세운 뒤 차 안으로 총을 쏴 흑인 앤서니 라마 스미스를 숨지게 했다. 스토클리는 스미스가 총을 갖고 있어 방어 차원에서 발포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스토클리는 1급 살인 및 불법무기 사용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 사건을 심리한 순회법원 티모시 윌슨 판사는 15일 “경관이 자기 방어 차원에서 행동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합리적 증거가 없다”며 스토클리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스토클리는 배심원 재판 대신 판사 재판을 택했다. 이번 사건은 과거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을 유발한 로드니 킹 사건이나 미주리 소도시 퍼거슨에서 흑인 소요 사태를 불러일으킨 마이클 브라운 사건과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미 언론은 평가했다.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은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에릭 그레이튼스 미주리 주지사는 “폭력과 기물 파손은 시위가 아니라 범죄”라며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한편 이날 록밴드 U2의 콘서트 등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3개의 공연이 취소됐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또 다른 세상… 70석 ‘광장’에 나가다

    또 다른 세상… 70석 ‘광장’에 나가다

    “나는 비로소 세상과 다시 만나기 위해 매일 저녁 광장에 나가서 커피를 나누어 주었소.”연출가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를 한국 이야기로 완전히 바꿔 쓴 연극 ‘노숙의 시’(17일까지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 2장의 첫 대사다. 이 연극에서 질곡의 근현대사를 겪은 60대 노숙인 ‘무명씨’를 연기하는 배우 명계남(65)의 실제 경험담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겨울 토요일마다 열린 촛불 집회에서 매번 지인들과 함께 1000여잔의 커피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그들과 눈을 맞췄다. 뜨거운 광장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한 그는 요즘 저 대사처럼 또 다른 세상과 뜨겁게 만나고 있다. 작은 숨소리마저 귀에 닿는 70여석의 소극장이 ‘광장’이다. 올해로 배우 인생 44년째에 접어든 그는 “멋있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연극을 처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1973년 대학 연극반에서 작품 준비를 하던 도중 계엄령이 나서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학교 앞 다방에 모여서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동물원 이야기’입니다. 저의 연극 데뷔작이죠. 아직까지 대사를 기억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배우를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에요. 연극이 지닌 생명력, 관객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이거든요.” 지난해 연극 ‘황혼’에 이어 연희단거리패와는 두 번째 작업이다. 동갑내기인 이윤택 연출가의 ‘러브콜’ 덕분에 인연이 시작됐다. “이윤택 선생이랑 작업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매번 엇갈렸어요. 그러다가 연희단거리패가 매년 여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저의 모노극 ‘콘트라베이스’라는 작품을 2013년에 공연했는데, 마침 이 작품을 보신 이 선생이 제게 나중에 작품을 함께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저야 불감청고소원이었죠(웃음).” 다른 요소들을 거의 배제한 채 언어만으로 극을 이끄는 이번 작품에서 명계남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는 A4용지 1장 분량이 넘는 대사를 막힘없이 술술 쏟아낸다. 저 많은 걸 다 어떻게 외웠을까 싶지만, 명계남은 배우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직접 경험한 광장에서의 ‘놀라운 기억’ 덕분에 연기가 “자신에게 달라붙기 쉬웠다”고. “지난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 완전한 절망은 없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최루탄이나 돌멩이 없이 촛불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산을 움직이는 것이 경이로웠죠.” 작품의 내용이 촛불 시위와 근현대사의 비극에 관한 것인 만큼 평소 뚜렷한 정치적 소신을 밝혀온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에 기대를 안고 오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극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지만 상징과 은유를 통해 표현한 만큼 특정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예술은 세상의 고민을 잊게도 하지만, 우리가 딛은 세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을 되새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이번 연극은 광장의 혁명에 대해, 광장에서 촛불을 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주머니와 학력의 크기에 상관없이 촛불을 들었던 정신처럼 서로를 적대시 하지 말고 생명, 화합, 치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자는 거죠.” 명계남과 이윤택의 남다른 ‘케미’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우선 17일 서울에서 공연을 마친 뒤 새달 밀양에서 ‘노숙의 시’ 특별 공연을 이어 간다. 내년에는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파우스트 박사의 선택’과 오페라 ‘꽃을 바치는 시간’에서도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이 아닌 공연장을 찾아 연극을 보는 것에 대해 이 선생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좀 더 정통적인,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해보자는 이야기도요.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이라든지 관객들이 보통 접하기 힘든 것들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싶어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 아직 젊거든요. 하하하.”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오늘의 눈] 5·18 왜곡 넘어 모독… 이번엔 진상 규명되길/최치봉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5·18 왜곡 넘어 모독… 이번엔 진상 규명되길/최치봉 사회2부 기자

    신록이 짙푸른 계절이었다. 광주 금남로 인근 도서관 창문 틈으로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퍼졌다. 눈물을 흘리며 책가방을 싸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며칠 전으로 기억된다. 고교 2년 때 중간고사를 대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마주한 5·18이었다. 이후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는 거리의 대학생 형들을 따라 자연스레 시위대에 섞였다. 20일 저녁 불타는 방송사 앞길에서 온몸이 피로 물든 청년이 업혀가는 것을 봤다. 계엄군의 장갑차에 깔렸다고 했다.다음날인 21일 점심 무렵 내가 탄 트럭이 동구 지산동 법원 앞 사거리를 지날 때 몇몇 노인들이 길을 막아섰다. 당시 전남도청과 불과 1㎞쯤 떨어진 곳이었다. 돌이켜보니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시각이었다. 콩 볶는 듯한 총소리, 아우성, 울부짖음이 시내를 물들였다.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때 입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때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냈다. 기자가 된 이후 5·18 관련 취재를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사안은 여전히 미궁이다. 당시 실권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와는 무관하다”며 발뺌이고, 헬기 기총소사, 공군 전투기 출동 대기명령 등에 관한 증언과 반박이 난무하고 있다. 극우 보수단체의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도를 넘어섰다. 이들은 지금도 5·18에 빨갱이와 폭도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광주 시민을 모독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방부에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시민들도 “이번만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진상규명 활동 가운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가 그나마 5·18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문건으로 꼽힌다. 이 보고서는 전군지휘관 회의와 5·17조치,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모습, 계엄군의 작전·상황일지 등 당시 광주의 속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자위권 발동과 관련한 주요 지휘관 회의 내용 등도 들어 있다. 군이 작성한 ‘전투상보’ 등에서는 당시 상황을 왜곡하거나 축소·조작한 흔적도 일부 밝혀졌다. 그럼에도 발포 명령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이번에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기밀로 분류한 존안자료 등을 정밀검토할 경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공산은 크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고백·사죄하고 피해자가 용서하는 모습이 역사에 기록되는 날을 바랄 뿐이다. cbchoi@seoul.co.kr
  • ‘썰전’ 유시민 “전두환, 범죄자가 자기 범죄 사실 부인하는 수준”

    ‘썰전’ 유시민 “전두환, 범죄자가 자기 범죄 사실 부인하는 수준”

    ‘썰전’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17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유시민 작가,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전두환 회고록이 법원으로부터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책의 33곳을 5.18 관련 단체에서 왜곡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허위사실로 인정돼 가처분 결정이 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람들은 믿고 싶은걸 믿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측근들은 5.18 민주화 운동이나 80년 상황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틀에서만 본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수준”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5.18 관련 재판이 많았다. 전두환 씨 본인이 내란목적 살인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거기서 거의 다 인정된 내용이고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해 유죄선고 받은 재심 재판에서 관련 사실이 다 인정됐다. 범죄자로 중형을 선고 받았으나 대통령이 사면해준 분들이다. 자기의 범행을 지금와서 부정하고 있는거다. 그러고 싶으면 친구들끼리 할 일이지 왜 책에 썼냐”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데모’ 경험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서울의 봄이 있었다. 당시 내가 대학교 3학년이었다. 5월 13일 서울에서 가장 큰 데모가 있을 때 내가 맨 앞줄에 섰다. 시청앞에서 백골단이 갑자기 덮치는 바람에 최루탄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이 실명 직전까지 갔다”고 밝혔다 유 작가는 “시청 앞 나도 거기 있었다. 해산할 때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거다’ 했다. 학생 대표들이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각 학교 앞에서 시위하자고 약속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시위를 못했는데 전남대 학생들은 전남대 앞에서 시위를 한거다. 거기서부터 충돌이 빚어졌고 도시 여러 군데에 군인을 투입하고 사태가 커진거다”고 말했다. 그는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대규모 발포가 이뤄졌다. 집단발포 전까지는 시민군 손에 무기가 없었다. 최초로 무기 탈취가 이뤄진 화순 파출소 무기고 탈취시간과 비교하면 그 무기조차도 도청앞까지 갈 시간이 안된다. 사실 관계가 밝혀져서 역사 기록으로 인정된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북한군 소행이라고 전두환 대통령이 회고록에 적었다. 지난해 신동아 인터뷰 보면 북한군 특수군 600명 이야기가 나오니까 들은 적 없다고 나온다. 회고록이 북한군이 와서 뭘 했다는건 사후에 이야기를 듣고 그럴듯 하니 자기들 입장에서 쓴거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만약 그랬다면 5.18 당시 전두환씨가 국군보안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중앙정보부장이다. 북한군 600명인가가 들어왔으면 자기는 뭐했냐. 그런걸 회고록에 왜 썼냐. 요즘 ‘나 바보에요’ 하는게 유행이냐”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케냐 대선 유혈 충돌… 시위대 1명 사망

    지난 8일(현지시간) 치러진 케냐 대선에서 2007년과 2013년에 이어 또 ‘개표 조작’ 논란이 일어나 10년 전 유혈 사태가 재현되고 있다. 9일 케냐 선거관리위원회(IEBC)에 따르면 대선 90% 이상 개표 결과 재선을 노리는 우후루 케냐타(55) 현 대통령이 762만 표(54.5%)를 얻어 624만 표(44.6%)에 그친 라일라 오딩가(72) 후보를 140만 표 차로 앞서, 사실상 재선이 확실시된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득표율 5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오딩가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결과는 가짜다. 조작된 것이다. 신뢰할 수 없다”며 “해커가 선거 데이터베이스에 침투해 오류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오딩가 후보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자 그의 지지자들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케냐 남부 키시 카운티에서는 개표 결과에 반발하는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 과정에서 1명이 총탄에 맞고 숨졌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서부 키수무 지역에서도 시위대 수백명이 폭동 진압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을 발사했고 시위대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맞섰다. 케냐 내무장관 대행은 폭력 사태 확산을 우려해 소셜미디어 등에 허위 정보를 올리며 선동을 하는 이들을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세네갈 축구 경기장 붕괴 적어도 57명 사상

    세네갈 축구 경기장 붕괴 적어도 57명 사상

    15일(이하 현지시간)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뎀바 디오프 스타디움 담장이 무너져 8명이 목숨을 잃고 적어도 49명이 다쳤다. 프로축구 스타드 드 음부르와 유니언 스포티브 오우아캄의 리그컵 결승 직후 참사가 벌어졌다. 정규시간 90분을 1-1로 비겨 들어간 연장 전반 음부르가 득점에 성공해 2-1로 이긴 직후 패배에 격분한 원정 팬들과 홈 팬들이 충돌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 원정 팬들이 최루 가스를 피해 달아나다 사람이 깔리는 일이 일어났고 담이 무너지기에 이르렀다. 일부 팬들은 달아나며 돌들을 경찰과 다른 팬들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현지 APS 통신은 앰뷸런스들과 소방차들이 현장에 급파됐다고 전했다. 친구를 잃고 사람들을 경기장 바깥으로 대피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던 체이크 마바 디오프는 AF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너무나 갑자기 담이 쓰러졌다. 담이 곧장 사람들을 덮쳤기 때문에 몇몇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맥키 살 세네갈 대통령 대변인은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선거 캠페인을 16일 잠정 중단하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 책임질 이들을 문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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