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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맣게 잊혀진 금통위원 1인

    까맣게 잊혀진 금통위원 1인

    ‘기억 속에 사라진 1인.’ 청와대와 한국은행, 대한상공회의소가 애써 잊고 있는 듯하다. 잊어도 괜찮다면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 1명을 줄여도 좋지 않을까. 국민 세금을 아낄 수 있으니 ‘낙하산 인사’보다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행 국정감사가 다가오면서 ‘공석 1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야당이 국감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자리가 6개월째 공석이다. 한국은행 설립 이후 6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다.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금통위는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한은 총재와 부총재, 기획재정부·한은·금융위원회·대한상의·전국은행연합회의 장이 추천한 5인으로 이뤄진다. 기관 추천인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난 4월 대한상의가 추천한 박봉흠 전 금통위원이 물러난 뒤 상의는 아직까지 새 금통위원을 추천하지 않고 있다. 대한상의 측은 “금통위원 추천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추천권에 대한 메커니즘을 모르고 비판하지만 상의도 금통위원 추천과 관련해 운신의 폭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먼저 나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엔 청와대에 의중을 한번 타진해 봤지만 돌아온 메시지는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금통위원을 낙점해온 청와대는 서두르지 않고 있다. 선거와 개각 등으로 새 금통위원에 대한 후보군 정리가 안 된 탓이다. ‘주요 20개국(G20) 서울회의’ 이후 논공행상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는 말만 무성하다. 아직 느긋함이 엿보이지만 이성태 전 총재 시절 거의 사문화된 열석 발언권을 활용할 정도로 금통위에 관심이 많았던 것과 사뭇 대비된다. 청와대의 이런 태도에는 의장을 포함한 금통위 6인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 금통위 의장인 김중수 한은 총재마저 ‘장기 공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 청와대가 급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또 친(親)정부 성향의 인물이 적지 않다 보니 기준금리를 둘러싼 표 대결도 자신한다. 정부 인사 가운데 금통위원만 후순위로 밀린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통위원이 이런 푸대접을 받을 정도로 위상과 역할이 약하지는 않다. 예우는 차관급으로 전용차(체어맨)와 기사, 전담 비서가 제공된다. 연봉은 세전 기준으로 3억원대이며 한은이 만들어내는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이른바 금융계의 ‘황태자’로 불리는 명예직이다. 전직 장관들도 마다하지 않는 자리다. 또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중대과실로 한은에 손해를 끼친 때에는 금통위원에게 연대 배상책임을 묻는다. ‘6인 금통위’는 지난 6개월간 별다른 사고 없이(?)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기준금리를 결정해 왔다. 1명이 부족하다 보니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지난 7월에는 금통위 본회의가 김 총재와 강명헌 금통위원의 출장으로 의결정족수(5명)를 채우지 못해 회의가 연기되기도 했다. 새 금통위원의 임명 지연으로 정부도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금통위원의 임명 방식을 바꾸자는 여론도 적지 않다. 국회엔 금통위원의 기관 추천을 폐지하고, 인사청문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은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장성아카데미 사회교육 역할 톡톡

    장성아카데미 사회교육 역할 톡톡

    교육을 통한 지역혁신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21세기 장성 아카데미’가 지난 16일로 개설 15주년을 맞았다. 장성아카데미는 1995년 9월15일 이건영 국토개발연구원장의 첫 강연을 시작으로 15년간 매주 목요일 한 차례씩 675회까지 열렸으며 주민과 공무원의 의식변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주 강의에 회당 300~400명의 수강생이 참여해 현재까지 수강 연인원만 25만명을 넘어섰다. 장성군의 인구가 5만여명임을 감안하면 주민 1명이 5회 이상 교육을 받으면서 지방자치와 국내외 각 분야의 추세를 읽는 교양강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5년 동안 지역 수장인 군수가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만큼 내용이 알차고 깊이가 있는 데다 각 분야의 ‘태두’격인 강사를 모시면서 유명세를 탄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다. 장성 아카데미는 민선 1기인 1995년 고 김흥식 군수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맞춰 주민과 공무원의 의식을 바꾸자’는 취지로 개설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이를 언급하면서 “교육이 주민 의식과 세상을 바꾸고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후 우리나라 대표적 사회교육 브랜드로 자리잡으면서 각 지자체의 견학 열풍도 불러왔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친 강사진만 살펴봐도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용섭·정동영 국회의원,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손욱 농심 회장, 신재철 LG CNS 사장 등 전·현직 장·차관과 각계 유명 인사를 아우르고 있다. 군은 아카데미 개설 이후 혁신 사례 등을 포함, 모두 252개 분야에서 133억여원의 시상금을 받는 등 이 프로그램이 재정 확충에도 효자 노릇을 했다고 밝혔다. 또 이런 교육을 토대로 전국 처음으로 문화사업인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해 이목을 끌었고, 초청강사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기업 유치 등 각종 현안 해결에 이용되기도 했다. 글 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씨줄날줄] 사진과 정치인/최광숙 논설위원

    “거기서 찍어, 다 나와.”, “한 번 더 찍어.”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상가에서 사진을 찍느라 떠들썩한 소동을 벌였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나경원 의원도 조문 사진을 홈피에 올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초상집에서도 사진 인증샷을 받으려고 난리치는 이들이 정치인이다. 정치인과 함께 사진을 좋아하는 직업을 꼽으라면 연예인이 아닐까 싶다. 연예인은 국민의 인기를,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살다 보니 그들에게 사진은 어떤 것보다 위력이 크다. 다만 연예인의 사진이 주로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찍히는 ‘수동형’이라면, 정치인의 사진은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능동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치인은 선거철이면 메시지가 담긴 사진을 찍으려고 안달한다. 유권자 앞에 큰절을 올리는 사진은 식상할 정도다. 친서민 행보를 한다며 운전기사들과 밥 먹고, 점퍼 차림으로 시장을 돌고, 어린이를 안고 웃으면서 찍는 사진들은 ‘안 봐도 비디오’가 됐다. 사진 한 장으로 표현되는‘ 정치인의 쇼’. 질릴 때도 됐건만 이들의 사진 사랑은 멈출 줄 모른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시절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호남에서 4선을 지낸 한 정치인은 사진을 찍을 때는 분명 안 보였는데 현상해 보면 항상 김 전 대통령 옆에 서 있어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지역민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DJ와 가까운지를 그는 사진 속에서 증거를 남기고자 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3김(金) 사진만큼 선거 때 잘 팔린 경우가 없을 것이다. 3김과의 친분 과시가 곧 영남, 호남, 충청권에서 당락을 가르다 보니 출마자들은 너도나도 3김과 찍은 사진을 홍보책자에 선보였고, 선거 사무실에도 대문짝하게 사진을 뽑아 걸어놓았다. 그땐 그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이 ‘전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경주 보선에서 무소속 출마한 정수성 후보가 박근혜 의원 사진을 걸고 선거운동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친박계 성향인 그는 공천을 받지 못하자 대신 ‘박심(朴心)’을 강조하는 사진으로 선거를 치뤘다. 사진의 위력 덕분인지 그는 금배지를 달았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어제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한 발언이 바뀌면서 거짓말 논란 등으로 여론이 나빠졌지만 그는 버텼다. 그런 와중에 박 전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은 그를 한방에 물러나게 했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사진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을.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열린세상] 젊은 국무총리에게 거는 기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젊은 국무총리에게 거는 기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 교수

    “40대의 젊음과 패기로 변화와 쇄신의 문화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김태호 국무총리 임명동의 요청 사유서에 적힌 내용이다. 김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내세운 ‘세대교체’, ‘소통’, ‘친서민’의 가치와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우선 올해 나이 48세로 국무총리로서는 파격적으로 젊은 나이다. 40대가 국무총리로 내정된 것은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후 39년 만이다. 김 후보자의 친화력도 화제다. 경남 지역에서 “김 후보자의 형님이 800명, 아버님이 1000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 한다. 소장수인 빈농의 아들이라는 출신 성분도 좋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문제는 김 후보자가 외견상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국정운영 3대 기조에 안성맞춤인 인물임을 입증하는 일이다. 우선 나이만 젊다고 세대교체의 가치에 적합할 순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사고가 늙은 젊은이도 있고, 사고가 젊은 늙은이도 있다. 진정 젊은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구태정치의 관습을 과감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계파정치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태호 지명자의 발탁에 대해 일부에서는 차기 대권경쟁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한다. 박 전 대표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친이계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충분히 그럴 법한 해석이다. 김 지명자 입장에서도 거대계파를 등에 업고 가는 것이 차기대권 경쟁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없지만 설사 계파정치가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그 유혹을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한다. 계파정치에 몸을 위탁하는 순간 젊은 늙은이가 되어 버리고, 국민들은 그를 외면할 것이다. ‘소통’의 방식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도지사 시절 동네잔치에서 머리 숙여 술 따르고 도민들을 ‘형님, 아버님’으로 만드는 대단한 친화력을 보였다 한다. 도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일화다. 겸손하고 따뜻한 인간미로 마음의 벽을 허물면 소통과 화합이 한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하기는 버거운 방식이다. 더구나 상대가 마음의 문을 걸어 닫고 한자리에 있기조차 거부한다면 소통의 기회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소통으로 사회통합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 정부를 불신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다가서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20, 30대의 이탈현상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몇 해 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10대 청소년들의 반란은 유례없던 현상이었다. 김 후보자의 첫 번째 소통 대상은 이들 인터넷 세대가 돼야 할 것이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친화력만으로는 인터넷 세대의 공감을 얻기는 부족하다.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네트워크와 문화코드에 대해 우선 이해해야 한다. 이미 세상은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사회로 가고 있고, 인터넷이 만들어 낸 네트워크 세상이 사회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는 사회적 지위에 의해 주어지는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다. 조직의 리더라 하여 무작정 그 말에 따르지 않는다. 다음 아고라와 같은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국무총리나 초등학생이나 똑같은 한 명의 네티즌일 뿐이다. 누구든 보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리더로서 인정받는다. 김 후보자가 인터넷 세대의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 방식의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출신 성분만으로 친서민 지도자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재래시장을 찾아가 국밥을 먹으며 상인들의 고충을 듣는 모습은 그간 너무 많이 봐와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다. 겉치레가 아닌 마음을 주는 친서민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그간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집단들과 갈등을 빚는 일도 생길 것이다. 40대의 젊음과 패기가 대통령의 뜻보다는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는 데 더욱 빛을 발하여야 할 것이다.
  • “김태호 총리후보자 지·덕 겸비… 훌륭한 대통령 후보”

    “김태호 총리후보자 지·덕 겸비… 훌륭한 대통령 후보”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와 덕을 갖춘 인물”이라면서 “훌륭한 대통령 후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다음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국민이 매력을 느낄 만한 후보들이 많이 나오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또 “이재오 의원은 부인할 수 없는 개국공신이고, 이명박 대통령과 파트너십을 가진 인물”이라면서 “몸을 숨기지 말고 차라리 전면에 나서 좋은 방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제 한나라당 내에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면서 자신이 만든 대표적인 친박근혜계 모임인 ‘여의포럼’을 곧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회동에 기여할 만한 역할이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터뷰는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취임 100일을 맞는다. 초기 35일간 사실상 당 대표와 사무총장직까지 1인3역을 맡았다. 무엇을 느꼈나. -사실 외로웠다. 비상대책위는 80점 정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했다. 분수를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당대회를 잘 치르고, 재·보선 승리 기틀도 마련했는데, 당에서 김 원내대표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 아닌가. -정당은 원래 그런 거다. 1988년 통일민주당 창당 때 군사정부의 집요한 방해를 받았다. 집안 망할 각오를 하고 내 명의로 극비리에 당사를 마련했는데, 당시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행사장에서 ‘김영삼 총재의 기밀성에 두 손 들었다.’고 격려하고는 끝이더라. →김태호 총리 후보가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그럴 만한 경륜을 갖췄다고 보나. -국회의원 3선 정도 하면서 호평받고, 광역단체장 한두 번 성공적으로 하면 다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지도자라는 게 보편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국민적 화합을 유도하면 되는 거다. 스타가 자꾸 탄생해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는 밑에 스타를 많이 만든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이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된 것도 본선보다 흥미로운 예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도 성숙해 가는 거다. 민주주의 룰로 선거를 치르고, 진 사람은 깨끗하게 승복해 이긴 사람 돕고, 그래서 정권 잡으면 권력을 나누는 게 민주주의다. →김태호 후보자와 가깝다. 그는 어떤 스타일인가. -일단 매력이 있다. 우선 사람이 시원시원하고 구김살이 없다. 세상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대응해서 정면승부하는 스타일이다. 소통에 아주 장기가 있다. 인간관계라는 게 사심 없이 얘기하면 모든 게 다 통하지 않나. →한나라당 시·도지사 출신 김태호, 김문수, 오세훈 세 사람 중 누가 대중성이 더 뛰어나다고 보나. -글쎄 그걸 비교하는 것은…. →이재오 의원이 돌아왔는데. -실세가 자꾸 숨어 있으려 해 본들 숨어지겠나. 몸집이 큰데. 그러니 차라리 전면에 나서서 좋은 방향의 역할하는 게 제일 좋다. ‘옛날의 이재오’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랜 시련기를 겪고 외롭게 지낸 시간이 있어 좋은 방향으로 많이 변했다. 좋은 방향으로 갈 거라 기대한다. 만약 일부의 우려대로 간다면 ‘깽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킹메이커’ 이재오 의원이 스스로 킹이 되려 할까. -모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막을 이유도 없고. 경쟁을 피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건 요행을 바라는 거다. →이번 내각은 이재오 내각이라는 평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김태호 후보자도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 아닌가. 누구의 꼭두각시 노릇하고 그러면 (정치적으로) 죽는 거다. →김태호·이재오 조합을 친박계에서는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다. -친박계에 불리해진다고 하는지 모르지만, 경쟁 안 하고 어떻게 하나.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친박계가 당을 따로 차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분열은 공멸이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공천이다. 대통령한테도 얘기했다. “6·2지방선거 진 것도 공천 잘못이고, 이 역시 지난 18대 총선 때 공천 후유증이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총선 때 너무 인위적으로 물갈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초선들이 대거 들어왔고, 전임자 사람들을 교체하려고 무리한 공천, 잘못된 공천을 해서 지방선거를 진 것 아닌가. →2012년 총선의 공천권은 누가 행사해야 하나. -공천권은 아무도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잡아서는 안 된다. 나경원 특위위원장한테는 인위적인 물갈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상향식 공천이 돼야 한다. 일정 정도 중진의 정치력이 있어야 정치도 잘 풀리는 거다. 정당개혁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공천개혁이다. →김영삼 정권 때 이른바 9룡을 키웠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번에는 성공할까. -다시 얘기하지만 분열을 막는 게 중요하다. 당시 진 것은 이인제의 탈당 때문 아닌가. 이수성, 이홍구 이런 분들도 뛰쳐나가지 않았나. 결국 민주주의 정신의 문제다. →2012년 대선에선 무엇이 이슈로 작용해 승부가 나겠는가. -우선 ‘구도’가 중요하지 않겠나. 경제는 계속 좋아질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초반 촛불시위로 힘을 잃고 보궐선거, 지방선거 등에서 참패하고 레임덕이 올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이미 바닥을 쳤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벌써 경기과열을 걱정할 정도가 아닌가. 다만 보수가 분열하면 필패다. →주류 내부의 친이 간 다툼이나 친이·친박 간 갈등이 해소될까. -지금 한나라당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권 재창출이다. 재·보선, 지방선거 등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나라당이 친이·친박 나눠서 싸우는 거 보고 국민들이 지겨워한 것이다. 어찌 됐거나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대립돼 있는 형국을 깨야 한다. 그래서 친이가 사라지고 소분열되면서 친이재오, 친김문수, 친정몽준 이런 식으로 갈라져 친박과 경쟁해야 정상 아닌가. 계파의 벽이 국민들에게는 분명하게 보인다. 그걸 허물어야 한다. 계파의 중심적 인물들에게 호소하려 한다. 내가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술 먹기 좋아하는데, 친이 의원들과는 못 어울렸다. 당내 분위기가 그랬다. 그동안 맨 친박 의원들과만 어울리고 다녔다. 이걸 치유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 정책 서클 몇 개 만들어서 친이·친박을 의도적으로 섞는 것도 방법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겠나. -‘여의포럼’이 오는 18일 중국 간다. 상하이 엑스포 보러. 가면 대화할 시간이 많다. 거기서 해체하자고 호소할 계획이다. 반대도 많을 것이다. ‘여의포럼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정치현안 얘기한 적 없고 정책 얘기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할 수 없다. 우리끼리라도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해체하고 친이 사람들 넣는 거다. 안 되면 내가 탈퇴하고 정책모임을 만들 생각도 있다. →유정복 의원이 장관 된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대통령이 장관 하라고 할 때는 화해 제스처로 하는 거다. 작년 5월에 박희태 대표가 이 대통령 재가를 받아 나를 원내대표로 추천했다. 그때 받았으면 친이와 친박 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후속 인사로 박영준 국무차장의 거취가 관심사다. -솔직히 박영준을 잘 모른다. 과연 그 사람이 그렇게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공무원 인사를 주물렀을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정도다. 그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권력이 기형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야당에서 정치인으로서 훌륭하다고 느끼는 분 있나. -내 파트너….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좋다고 해 줘야지(웃음). →보수대연합이 맞나. 중도보수통합이 맞나. 선진당과의 통합은. -중도보수로 가야 한다. 선진당은 어찌 됐거나 충청을 대표하는 당이다. 충청도는 주로 우측에 서 있다가 이제는 딱 중도에 서서 왔다갔다 하는데, 충청도를 이회창 대표가 잡았다가 놓치고 있는 과정이다. 이게 한나라당으로 안 오고, 민주당 쪽으로 자꾸 쏠리니까 잃으면 안 되니까 안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선진당과 통합하는 것이, 예를 들어 1+2가 3이 되면 좋은데 2.5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면 좀더 보고 있는 것이 옳다. →친박계와 동교동계가 접촉 중이라는 보도가 있던데. -정치는 생물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질적 효과가…. 이지운·김정은·허백윤기자 jj@seoul.co.kr
  • 마흔여덟 리더십, ‘소통’의 아이콘으로

    마흔여덟 리더십, ‘소통’의 아이콘으로

    “도대체 김태호가 누구야?” 8일 발표된 이명박 정부 3기 내각의 명단을 보며 적지 않은 국민들이 수군거렸다. 설마했던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만큼 파격적 발탁이라는 얘기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1962년 8월21일생이다. 올해 48세다. 좋게 말하면 연부역강(年富力强)이고, 심하게 말하면 ‘애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3공화국 시절인 1971년 만 45세로 11대 총리에 취임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39년만에 탄생하는 40대 총리다. 정부 수립 이후 정식 취임한 총리 가운데 40대는 초대 이범석(1948년·47세), 4대 백두진(1953년·44세), 9대 정일권(1964년·46세) 등이 있었다. 40대 총리는 일단 세계적 흐름과도 맞는다. 김 후보자는 경남 거창에서 성장한 ‘풀뿌리 정치인’이다. 서른여섯에 도의원, 마흔에 거창군수, 마흔두 살에 경남도지사가 됐다. 젊지만 지방행정 경험은 풍부하다. 김 총리 후보자의 측근들은 그가 서민적이고, 소통에 능하며, 꿈이 큰 정치인이라고 얘기한다. 2002년 군수 선거에 나서 유세장에 도착했을 때 “소장수 아들이라던데…”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김 후보자는 큰 목소리로 “구산마을 소장수 김규성의 아들 태홉니다.”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그는 최연소 군수에 당선됐다. 김 후보자는 남들이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던 시절 오히려 농촌으로 ‘하방(下放)’시켰다. 거창군수를 거쳐 경남지사에 당선돼 아들과 딸을 창원으로 전학시켰다. 하지만 ‘도지사의 아들·딸’이라는 급우들의 눈총 등을 싫어하는 자녀가 창원 학교 생활을 그만두고 거창으로 되돌아가려고 졸랐다. 이에 김 후보자는 흔쾌히 부인 신옥임(46)씨와 함께 자녀들을 거창으로 돌려보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민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갖게 됐다. 김 후보자는 역발상의 필요성도 자주 강조한다. 지사 시절 집무실에는 거꾸로 된 대한민국 지도가 걸려 있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남해안이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세계로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도의원과 경남지사에 당선될 때도 모두 초반의 어려운 판세를 모두 뒤집고 최연소로 당선되는 저력을 발휘했다. 김 후보자의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모든 세대와 잘 통하는 ‘비디오형’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186㎝ 키에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호감가는 얼굴형을 가진 데다가 연설도 잘한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나 ‘선배’라고 부르며 돈독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고 한다. 이른바 소통에 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총리 지명으로 대권 구도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지사 시절에도 이틀 이상 서울에 머무른 주가 많았다. 딱히 서울에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서울에 올 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그는 오래전부터 중앙정치를 꿈꿔왔다. 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친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당시 김 의원의 집은 ‘민주산악회’의 본산이었다. 이어 이강두 전 의원의 선거 캠프에 우연히 합류, 당선에 기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친박계 한 의원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하는 등 벌써부터 견제가 시작됐다. 서울 김규환·창원 강원식기자 khkim@seoul.co.kr ■김태호 총리 후보자 간담회 “사회의 막힌 곳을 뚫어내는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겠다.” 김태호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8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김 후보자는 “세대 간의 문제, 지역의 문제, 이념적 갈등 문제 등이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이러한 구조를 풀어가고 통합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 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대·지역·이념의 갈등 풀것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직 요청 언제 받았나. 총리로서 주문받은 역할이 있는가. -이틀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총리직 임명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오늘 아침 대통령과의 조찬을 통해서 최종 확인했다. MB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친서민 정책, 소통의 문제 등에 있어 역동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40대 젊은 총리가 39년만에 탄생했다. 발탁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은 무엇보다 20~30대 청년층이 상실감에 빠졌다. 소 장수 아들로 태어난 배경없는 촌놈인 제가 도의원과 군수를 거쳐 최연소 지사를 두 번이나 했다. 저를 발탁한 배경에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회의 땅인지, 용기를 갖고 뛰면 일반 서민들도 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의 희망과 가치의 메시지를 전달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MB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소통과 친서민 정책 등에 있어 김태호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토대가 된 듯 싶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각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정의감이 꿈틀거리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서민정책과 소통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가치를 성공시키고자 대통령을 잘 보필하고 정부의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이재오 신임 특임장관과의 역할 분담은. -앞으로 여러 가지 정책 사안이나 국가적 이슈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지혜를 모아 정부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중지를 모으겠다. 서로 마음을 열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 아니면 깃털하나도 안 나와 →검찰에서 무혐의 내사 종결 처리를 했지만 후보자는 한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았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언론에 관련 기사가 300개 이상이더라. 분명한 것은 2010년 대한민국 수준에서는 죄가 있으면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죄가 있는데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떠나갈 듯 시끄러워도 진실이 아니면 깃털 하나도 안 나올 것이고, 깃털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前대통령들 ‘자서전 충돌’

    前대통령들 ‘자서전 충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통해 충돌했다. 충돌의 이유는 대북송금특검. 두 전 대통령은 서로에게 무한 신뢰와 존경을 보냈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자서전을 쓸 때까지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셈이다. 30일 출간된 ‘김대중 자서전’에는 대북송금특검법을 끝내 거부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이 짙게 묻어난다. 반면 지난 4월 발간된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보면 노 전 대통령의 항변이 잘 나타난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2003년 4월22일) 노 대통령과 부부 동반 만찬을 했다. 노 대통령이 ‘현대 대북 송금은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몹시 불쾌했지만 ‘대북 송금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습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나와 국민의정부 대북 일꾼들을 의심했다.”고 서운해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했지만 무작정 수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김 대통령께서 ‘실정법 위반이 혹시 있었다고 해도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면 나도 ‘통치행위론’을 내세워 수사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4억달러 문제를 사전에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고 하셨다.”고 밝혔다. 문제의 4억달러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대는 1억달러에 대한 또 다른 대가를 북으로부터 얻었다. 현대가 4억달러를 북에 송금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화를 냈지만, 4억달러의 대가로 돌아오는 일곱 가지 사업 내용을 보니 수긍이 갔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특검은 송금의 절차적 위법성 문제만 정확하게 수사했다. 다른 것은 손대지 않아 남북관계에도 큰 타격은 없었다. 박지원 실장 등을 형이 확정되자마자 사면했다. 김 대통령도 나중에는 이해를 하셨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대북송금 수사를 둘러싼 갈등에서 나타나듯 대통령의 자서전은 한국 정치를 제대로 비교할 수 있는 소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불행한 말로로 인해 제대로 된 자서전을 남기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과 정반대 진영에서 배출된 전·현직 대통령의 진솔한 자서전이 나온다면 현대사 입체 비교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서전에는 두 전직 대통령이 인물과 사안을 놓고 어떻게 평가하고 고민하는지도 잘 드러난다.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고별 오찬장에서는 내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 주었다. 이해력, 판단력,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평가도 비슷했다. “듣던 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북에서 만난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그리고 홀로 유연했다.” 둘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특별한 관계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총선 당시 허삼수 후보와 맞붙었던 부산 선거를 회상하며 “김영삼 총재가 ‘허삼수 후보는 반란을 일으킨 정치군인입니다. 국회가 아니라 감옥에 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1990년 3당 합당 이후부터 ‘김영삼과 결별했다.’고 못 박았다. “통일민주당의 합당결의대회장에서 주먹을 쥐고 외쳤다. ‘이견 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3당 합당을 언급하며 “민심에 대한 쿠데타이자 야합의 주역이 김영삼씨였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민주투사’ 김영삼은 이렇게 사라졌다.”고 했다. ‘김대중 자서전’에는 권노갑 고문에 대한 애틋함도 엿보인다. 그는 2001년 당시 민주당의 내분을 회고하며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정치 일선에서 손을 떼는 게 좋을 듯했다.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을 보내 간곡하게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내 뜻을 거부했다. 수십 년 동지의 의중을 물어본다는 게 얼마나 비루한가.”라며 안타까워했다. ‘운명이다’에도 최측근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모든 일을 함께 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것은 그저 해 본 소리가 아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재·보선 후폭풍] 기로에선 보수대연합론

    ■與 단독개헌선 20석 부족 “힘받는 것 아니냐” 분석에 한나라당이 7·28 재·보선에서 5석을 추가하며 기존 167석에서 172석으로 몸집을 불렸다. 이번 재·보선에서 3석을 건진 민주당과는 기존 83석차에서 85석 차이로 격차를 더 벌렸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172석, 민주당 87석, 자유선진당 16석, 미래희망연대 8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2석, 진보신당 1석, 국민중심연합 1석, 무소속 7석으로 바뀌었다. 오는 8월 말로 예정된 미래희망연대와의 완전 합당 때는 한나라당의 의석 수가 180석으로 또 불어난다. 미래희망연대 관계자는 29일 “이미 양당의 전당대회에서 합당이 의결됐고, 당의 재무적·법률적 사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 절차가 마무리되는 8월 말까진 합당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180석 확보로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218석)에 이어 사상 두 번째 거대 정당이 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거대 정당에 국민들이 반감을 갖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180석이 단독 개헌선인 200석에 20석이 모자란 수치라는 점이 국민들을 긴장시킬 수도 있다. 재·보선 승리 뒤 처음 열린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가 일제히 ‘겸손, 겸허’를 언급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안상수 대표는 “한나라당이 서민의 정당 국민의 정당으로 거듭나서 희망을 드릴 수 있도록 한층 더 분발하겠다.”는 말로 승리 소감을 대신했다. 한편으로는 커진 몸집이 정책 추진에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개헌론도 힘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의원은 “힘의 불균형은 어찌 됐건 여론의 견제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견제 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더 많이 양보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정국 대응 속도가 둔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선진당, 충남텃밭마저도 완패 “추동력 잃은 것 아니냐” 우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험로’에 내몰린 것 같다. 자유선진당이 7·28 재·보선 충남 천안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다. 지난 6·2지방선거 충남도지사 선거에 이은 연패다. ‘맹주’를 자처했던 충남 민심에게서조차 외면당하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까지 흔들리는 위기에 놓였다. 박선영 대변인은 29일 “한나라당 김호연, 민주당 박완주 후보 모두 지난 18대 총선에도 출마해 박상돈 전 의원에게 석패했을 정도로 지역 내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선진당으로선) 어려운 싸움이란걸 알고 있었다.”며 “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이 땅의 정치풍토를 바르게 바꾸고 선진화하기 위한 대장정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에게 직면한 위기를 부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전당대회 때 전국정당화를 선언하며 쇄신의 첫걸음으로 권위의 상징이던 ‘총재’ 직함을 스스로 떼냈다. 하지만 6·2지방선거 패배 뒤 맞은 이번 재·보선에선 전국 8개 선거구 가운데 천안을에만 후보를 내고 텃밭사수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전국 정당화는 고사하고 충청 특히 충남에서의 입지를 재고해야 할 판이다. 그가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만함과 방자함에 빠져 국회를 유린시킬 때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며 내세웠던 ‘제3당론’은 선거 패배로 폐기처분 위기에 몰렸다. 이 대표가 지방선거 뒤 내세웠던 ‘보수대연합론’ 역시 한나라당의 재·보선 완승이라는 사정 변경에 따라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해석도 흘러나온다. 이에 박 대변인은 “보수대연합론은 보수의 각성을 촉구한 차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보수대연합을 한나라당과의 합당으로 바라보는 일각의 해석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이 대표의 왜소해진 정치적 입지를 방증한다. 이 대표로선 돌파구 모색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안상수·정세균 “재보선 양보하시죠”

    안상수·정세균 “재보선 양보하시죠”

    한나라당 안상수 신임 대표가 16일 취임 인사차 민주당 정세균,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를 잇달아 방문했다. 두 상견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안 대표는 정치이념이 엇갈리는 정 대표와는 뼈 있는 농담을, 보수대연합의 ‘파트너’가 될 이 대표와는 화기애애한 덕담을 주고받았다. 먼저 안 대표와 정 대표는 첫 만남에서 ‘큰 정치’, ‘경륜 있는 정치’를 강조하며 상생 정치를 다짐했다. 하지만 화제가 7·28 재보선으로 넘어가자 신경전이 펼쳐졌다. 안 대표는 “우리한테도 몇 석 남겨 줘야 살지 않겠느냐. 당 대표 되고 바로 목 떼려고 하지는 않겠죠.”라고 말했다. 이에 정 대표는 “한나라당 의석이 176석으로 늘어났는데, 개혁 진영이 100석은 되어야 심리적 균형이라도 잡을 수 있다. 크게 양보해 달라.”고 맞받았다. 특히 정 대표는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빗대 “어떤 후보는 당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던데 (안 대표는) 그냥 당사에 계속 계시라.”고도 했다. 반면 안 대표는 이 대표와의 상견례에선 과거 인연 등을 되짚으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안 대표는 “1996년 신한국당이 창당되면서 이 대표가 먼저 입당하고 보름 후에 내가 따라서 입당했다.”면서 “이 대표가 10년 가까이 모시는 동안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정치를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총리 떼고 변호사할 때 안 대표가 선동해서 정치에 입문했다.”면서 “집권여당 대표로서 힘든 일 많겠지만 서로 감싸면서 잘할 것”이라고 덕담했다. 안 대표와 동행한 원희목 비서실장과 조해진 대변인도 각각 이 대표의 대선 공약위원, 총재 보좌역을 맡았던 인연를 소개했다. 이에 안 대표가 “(이 대표를) 도로 모셔갈까요.”라고 운을 뗐고,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선진당으로)들어오시죠.”라고 화답했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오전 자택을 찾은 안 대표에게 “내각책임제는 우리나라에서 망한 제도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한 그런 실패한 제도를 다시 할 필요는 없다.”며 현행 대통령제 유지를 당부했다. 홍성규·강주리기자 cool@seoul.co.kr
  • 경제-정몽구·윤증현·안철수·김중수 두각, 문화·체육-박지성·김연아 공동1위

    경제-정몽구·윤증현·안철수·김중수 두각, 문화·체육-박지성·김연아 공동1위

    정치 및 외교 분야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가장 많은 사람으로부터 파워엘리트로 지목됐다. 전체 응답자 106명(일부는 무응답도 있었음) 중 37명이 박 전 대표를 지목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2명으로 두 번째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전 세계 192개 회원국을 거느린 최대 국제연합체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21명이 파워 엘리트로 꼽았다. 차기 대권 후보군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 중에서는 김두관 경남지사(7명), 김문수 경기지사·정세균 민주당 대표·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각 5명) 순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4일 최고위원에 당선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4명으로 여성 중 2번째였으며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자 3명,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내정자·오세훈 서울시장·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각 2명씩이었다. 경제·산업·과학 분야에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을 꼽은 응답자가 43명으로 가장 많았다. 재벌총수 가운데서는 이 회장에 이어 정몽구 현대차 회장(21명), 최태원 SK 회장(6명), 구본무 LG 회장(4명) 순이었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도 13명으로 높은 지명도를 과시했다. 정부 관료 중에서는 경제정책의 사령탑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7명),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각 3명),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내정자·진동수 금융위원장·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임종용 재정부 차관(각 2명) 순이었다. 문화·체육계에서는 월드컵 축구 첫 원정 16강 진출의 주역인 박지성 선수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가 각각 33명으로부터 최고 스타 대접을 받았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도 22명으로부터 지목을 받았다. 이어 현 정부 문화·방송 정책을 이끌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18명),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13명), 김인규 KBS 사장(10명)이 연이어 상위권에 자리했다. 허정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도 각각 6명의 지목을 받았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신촌신사’ 맹 행안은 누구

    언론인 출신의 행정안전부 수장이다. 1946년 서울 출생, 경복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합동통신에서 기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기자 시절엔 ‘특파원 전문’이었다. 연합통신 런던특파원, 국민일보 워싱턴특파원, SBS 워싱턴특파원을 거쳤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SBS 8시뉴스 앵커로 얼굴을 널리 알렸다.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한 건 96년, 15대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서다. 이후 2008년까지 16, 17대 3선을 지냈다. 1997~1998년 당 대변인, 1999~2000년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 2004~2005년 국회 산자위원장, 2005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 요직을 섭렵했다. 당내에선 중도보수파로 분류됐다. 2005년 야당 정책위의장으로 정책정당화 추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 5·31 지방선거 땐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에 도전했다 현장투표에서 100표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뒤져 오세훈 당시 후보에게 고배를 들었다. 이후 7월 보궐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송파갑) 후보로 재도전해 국회의원 임기 내 같은 지역구에서 두 번 당선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8대 총선 공천 땐 현역 물갈이 바람 속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 간사를 맡았다.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기용되며 재기해 지난해 8·31 개각 때 대통령 정무특보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구성도 주도했다.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며 사퇴한 이달곤 전 장관의 뒤를 이어 4월15일 행안부 수장으로 취임했다. ‘신촌신사(新村紳士)’라는 별명답게 의원시절 백봉신사상을 수상한 경력도 빠질 수 없다. 부인 채승원(64)씨와 2녀.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대통령 약점 보완·국면전환용 많아

    대통령 약점 보완·국면전환용 많아

    역대 정권은 어떤 기준으로 국무총리를 낙점했을까? 정권의 성격과 개각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통령의 정치적인 약점을 보완하거나 국면전환용 카드로 쓰인 경우가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깜짝발탁된 김상협 총리가 대표적인 경우다. 문교부 장관,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던 그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정통성이 부족했던 전두환 대통령의 끈질긴 구애로 총리를 맡은 경우다. 학원가의 민주화운동이 정점에 달해 사회불안이 극심하고,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1982년 하반기 김 총리는 군사정권이 국면전환을 꾀하기엔 최상의 카드였다. 그러나 최초의 호남 출신(전북 부안) 총리가 된 그의 기용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을 초대총리로 임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직선을 통해 당선됐지만, 여전히 ‘군사정권’이라는 색깔을 지우기 어려웠던 노 대통령은 5공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 화해무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문민색채를 덧칠할 필요성이 컸다. 김영삼 정부에서 초대 총리가 된 황인성 총리는 호남 출신(전북 무주)으로, 부산·경남(PK) 정권에서 지역 안배 덕분에 기용된 것으로 볼수 있다. 때문에 그는 국정 운영에 있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김영삼 정부 초기 감사원장으로 일할 때 율곡비리 감사 등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총리로 발탁됐다. 하지만 이회창 총리는 당시 통일안보 조정회의 상정안건의 총리승인을 요구하며 김영삼 대통령과 맞서다가 취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1995년 12월 총리로 취임한 이수성 전 서울대 총장은 이미 대립각을 형성하기 시작한 이회창 전 총리를 견제하고, 집권 후반기 내각을 무난히 관리할 수 있다는 복합적인 필요성에 의해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 때 초대 총리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DJP연합으로 야권 단일화 후보를 낼 때부터 이미 총리를 맡기로 예정돼 있었다. 자민련 총재를 지낸 박태준·이한동 총리의 임명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2년 7월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로 지명한 것은 인사파격으로 여겨진다. 장 전 총장은 부동산 투기·위장전입 문제로 국회인준 동의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어 당시 50세의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총리로 지명한 것도 ‘세대교체’를 통한 새로운 인물 찾기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언론 사주를 총리에 기용함으로써 당시 언론과의 불편했던 관계를 해소하려는 목적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김종필 총리 이후 근 30년 만에 50대 초반의 ‘젊은 총리’를 내세웠지만, 그 역시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하고 낙마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파격적인 인사실험을 한 것은 아들들의 비리와 연관된 정국을 벗어나고 국면전환을 꾀하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노무현 정부가 초대 총리로 ‘행정의 달인’인 고건 전 총리를 기용한 것은 개혁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보수층을 껴안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내내 ‘코드인사’를 강조해 왔기 때문에 당시 ‘386’ 실세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노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고건카드’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를 참여정부의 2기 총리로 기용한 것은 ‘일하는 총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한 이해찬 총리는 당시 참여정부의 개혁과제인 부패청산, 정부혁신을 진두지휘하며 ‘실세총리’로서의 위상을 과시했지만, ‘골프파문’으로 2006년 3월 총리가 된 지 1년9개월 만에 물러났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바뀐 것은 없다” 서남표 개혁 계속

    “바뀐 것은 없다” 서남표 개혁 계속

    역시 결론은 개혁이었다. 서남표 KAIST 총장이 2일 극적으로 연임에 성공, 14대 총장으로 재선임되기까지는 두 차례의 반전이 있었다. 먼저, 총장 선임과 관련, 지난달 7일과 14일 두 차례 회의를 연 KAIST 총장후보선임위원회가 5명의 후보자 가운데 이사회에 추천할 3명을 추려내지 못한 것이 첫 고비였다. ‘서남표식 개혁’이라는 브랜드의 주인공인 서 총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학교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서 총장 스스로도 “연임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반전은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이뤄졌다. 당초 팽팽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16대2의 압도적 지지로 그의 연임이 성사됐다. 소통부재·독단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저간의 상황을 고려하면 뜻밖의 결과였다. 오전 11시에 열린 이사회에서는 정관을 고쳐 총장후보선임위 추천이 불가능할 경우 이사회에서 직접 총장을 선임한다는 근거 조항을 마련한 뒤 서 총장에 대한 신임을 일사천리로 결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개입을 우려해 시간차를 두지 않겠다는 이사회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사회 직후 서 총장은 “바뀐 것은 없다.”며 개혁을 계속 이끌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지난 한 달 동안 KAIST 안팎에서 빚어진 찬반논쟁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교수·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이 소통부재에 대해 지적하는 쪽과 이를 방어하는 쪽으로 나뉘어 과학적인 근거와 논리, 정치적 자원까지 총동원해 맞불을 놨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개혁의 주체였던 서 총장이 이제 개혁대상이 된 것인가.”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왔다. 서 총장식 개혁에 반대하는 교수들은 “성과주의에 매몰돼 질적인 발전을 도외시하고, 외형적인 팽창과 외부 과시적인 형태로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 총장이 ‘온라인 자동차사업’과 ‘모바일 하버(움직이는 부두) 사업’에 자원을 집중배분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서 총장 쪽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세계에서 처음으로 하는 것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학점이 3.0 미만이면 장학금으로 지급했던 등록금을 다시 환수하도록 2007년에 도입한 ‘성적부진학생 등록금 징수제도’는 학생들의 반감을 부추겼다. 학생들은 “1년 등록금이 1500만원 시대가 열렸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서 총장 쪽에서는 “그렇게 등록금을 내야 하는 학생이 전체의 2%에 불과하다.”면서 “이 학생들은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학내 영어 공용화 조치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이슈였다. 서 총장 쪽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보면 한국어 수업과 영어 수업의 만족도가 비슷하게 나타난다.”면서 “학생들이 영어 수업에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반박했다. 서 총장에 대한 이런 비판은 ‘독단’과 ‘소통부재’로 압축됐다. 서 총장 취임 당시인 2006년 더 타임스의 세계대학평가에서 198위이던 KAIST가 지난해 69위로 상승한 점이나 2006년 1004건이던 기부건수가 2007년 2158건, 2008년 3091건, 2009년 3324건으로 늘어났다는 성과도 ‘소통부재’라는 단어 앞에서 힘을 잃었다. 서 총장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를 역임하며 미국 제조업을 키우고, 1991년 6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미국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역임하면서 교수진 40%를 새로 임명하고 교과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성과를 올렸을 때만큼 힘들었다는 것이다. 힘겨운 과정을 거친 뒤 “국민들의 마음 속에 대학 개혁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소회를 정리한 서 총장이 향후 4년간 개혁과 소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해외 미디어시장 ‘지각변동’

    해외 미디어시장 ‘지각변동’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던 미국,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와 방송이 인수·합병(M&A) 대상이 되면서 해외 미디어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메이저 미디어그룹들이 광고 한파와 누적된 적자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자 전례 없는 위기감 속에서 새 주인을 찾아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르몽드 좌파 컨소시엄에 매각 佛정치권 촉각 경영난에 처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28일(현지시간) 좌파 성향의 기업인 컨소시엄에 팔렸다. 르몽드는 이날 경영감독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이 컨소시엄에 회사의 지배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 컨소시엄에는 패션디자이너인 고 이브 생로랑의 동성연인이었던 피에르 베르제, 라자르 투자은행의 최고경영자(CEO) 마티외 피가스, 인터넷 사업자 자비에 니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3명은 사회당 골수 후원자로 유명하다. 르몽드의 매각에 프랑스 정치권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3명이 향후 차기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최근 르몽드의 에릭 포토리노 발행인을 만나 이 컨소시엄에 주요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에 반대한다는 입장까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선 국내 최대의 종합케이블 방송사업자(SO)인 컴캐스트가 미국내 최대 방송그룹인 NBC 유니버설 인수를 추진하면서 미국 방송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거대 방송사가 케이블업체 방송사업자에 먹히는 상황이 눈앞의 일로 다가온 것이다. 방송업계 초유의 일이다. 컴캐스트가 NBC를 소유하게 되면 막강한 시장파워로 경쟁 방송사들을 위협할 것으로 뉴욕타임스(NYT)는 내다봤다. 방송 편성권과 배급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될 경우 방송업계의 지형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광고시장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해 결국 다른 방송사들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영난 뉴스위크도 매물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최근 매물로 나왔다. 1961년 뉴스위크를 인수한 워싱턴포스트(WP)가 2007년 누적 적자가 4000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지난 5월 매각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미디어 그룹인 ‘서던 미디어그룹’이 인수를 추진했으나 워싱턴포스트가 인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 뉴욕타임스를 보유한 뉴욕타임스 컴퍼니도 지난해 3월 심각한 자금난으로 맨해튼 본사 건물을 2억 2500만달러에 매각했다. 앞서 161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미디어 재벌 ‘트리뷴’도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해 12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트리뷴은 시카고 트리뷴과 LA타임스 등 신문 12개와 방송사 23개를 운영하며 미국 여론을 주도해 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어윤대 KB금융지주회장 내정자 단독 인터뷰

    어윤대 KB금융지주회장 내정자 단독 인터뷰

    어윤대(65) KB금융지주 회장 후보는 “KB금융지주를 영국계인 스탠다드차타드(SC) 금융그룹과 같은 메가뱅크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KB지주 업무에 대한 우선순위는 KB금융 경영 합리화, 인수·합병(M&A), 그리고 사업다각화”라면서 “임기내에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초를 닦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언론이 너무 앞서나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관심을 끌고 있는 강정원 행장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잘하셨지 않느냐.”는 언급 외에는 향후 인사에 대한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어 회장 후보는 16일 밤 서울 부암동 자택 근처 커피숍에서 30분 남짓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KB지주의 앞날과 후보 과정에서의 이런저런 소회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민감한 질문이 이어질 때면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의식한 듯 말을 아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후보로 나선 데 대해서는 “행복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어 후보는 인터뷰를 하기 전에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어 후보와 김 교수는 15년여 전 정부가 증권산업 발전방안을 만들 때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이 2006년 만든 친목모임인 ‘빅뱅클럽’의 멤버다. →지난 15일 회장 후보로 결정된 직후 어떻게 지냈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일정도 많고 여기저기서 전화도 많이 받는다. 오늘 아침에는 내일(17일) 서울 태평로의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조찬 모임을 오늘로 착각해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이 없다. →KB금융 회장직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보고 있나. -언론 보도는 하나도 안 본다. 인터넷은 하루에 대여섯 번 들어가는데, 대개 메일 확인만 한다. 내가 내용을 아는 기사는 비판이나 비방하는 기사들이고, 내가 내용을 모르는 기사는 오보다. 왜 이렇게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두 마디만 듣고 그게 전체인 것처럼 부풀려서 소설을 쓰는 기사들이 많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오보인가. -‘KB금융+우리금융+산은금융’이 합병될 가능성이 높다는 등 KB금융의 향후 계획에 대한 내용들이 그렇다. 앞서 내정 직후 기자들과 얘기하면서 “세계 50위권 은행이 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지주사 회장으로서 의사결정의 우선순위는 다른 금융사를 살 수 있는 자본이 있는지, 다음으로 그것이 그 지주사의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지, 마지막으로 규모가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만큼 커지는지 등이다. 이런 우선순위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KB금융 경영 합리화, 그 다음이 인수·합병(M&A), 마지막으로 사업 다각화”라고 했다. 이 내용들은 내 임기 3년 동안 다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내 임기 동안 이런 일들이 이뤄지도록 기초만 다져놓고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론이 너무 앞서나가는 감이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수위원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 수많은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민간 금융기관인 KB금융 회장 자리로 가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의지대로 움직인 게 아니다. 총리후보부터 시작해서 장관 등으로 내려왔는데, 큰 흐름에 따라 나도 모르게 흘러온 거다. (KB금융 회장직이) 행복한 선택은 아니었다. 용감한 선택이었다. 내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방금 전에도 이름도 모르는 고려대 교우 한 분이 전화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더라. →지난해 9월 이후 KB지주가 많이 흔들렸다. 지난해 4·4분기와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이 신한금융지주에 뒤지는 등 실적도 부진했다. 조직을 추스를 복안은 무엇인가. -직원들 사이에 불신과 무력감이 퍼져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조직이 많이 무너져내렸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할 것이다. 인사를 통해 그걸 보여주면 된다. 내정 직후 ‘변화’를 강조했다. KB금융이 확고한 1등 금융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확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서로 믿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변화를 위한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가 되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이다. 그런데 변화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어 후보의 등장으로 금융권 이슈로 다시 부상한 M&A와 관련,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회장과의 친분 등에 대해 관심이 높다. -내가 아직 내정이 결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삼각관계에 얽힌 것은 아니다. 물론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친하다. 하지만 사적인 것은 사적인 것이고 공적인 것은 공적인 것이다. →그동안 ‘메가뱅크(초대형 은행)론’을 역설했는데, 해외에서 롤모델을 찾는다면. -해외에서 성공하고 있는 많은 금융그룹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스탠다드차타드 금융그룹을 꼽겠다. SC금융그룹은 2001년도만 해도 KB금융과 자산 규모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훌륭한 전략을 갖고 적확하게 실행한 결과다. KB금융도 세계 50위 은행인 SC금융그룹(자산 4351억달러·약 522조원)처럼 키우겠다. 열심히 노력하겠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KB금융지주의 앞날은] “사업다각화 위해 우리은행 인수 검토”

    [KB금융지주의 앞날은] “사업다각화 위해 우리은행 인수 검토”

    어윤대(65)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장이 15일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에 내정됐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만장일치 찬성을 얻었다. 17일 마지막 검증 절차를 거쳐 이사회에 추천되며, 다음 달 13일 임시주총을 통해 정식으로 취임한다. 당초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고려대(경영학과) 인맥으로 ‘MB(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이란 부담스러운 악재도 어 위원장의 경력과 파워를 넘어서지 못했다. 어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분류되는 대통령 직속기관 위원장인 데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말 한국은행 총재 선임 때에도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KB금융 회추위가 마지막 후보 면접이 끝난 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어 위원장을 회장 후보로 결정한 것만 봐도 대세는 한참 전에 기운 셈이었다. 면접을 앞두고 후보 간 팽팽한 대결을 감안하면 싱겁게 끝난 게임이었다. 어 위원장은 이날 후보 지명이 결정된 뒤 서울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영 합리화를 통해 효율을 높여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금융 인수 의향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은행이 국민은행보다 사업 다각화가 잘 돼 있어 시장에 나오면 조건을 보고 인수전 참여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매각이 추진되고 있는 외환은행에 대해서는 “증권, 투신을 갖고 있지 않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현금이 5조~6조원 정도 필요해 현실적으로 인수도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또 “KB금융을 금융계의 삼성전자로 키울 것”이라며 내실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나·우리 등 고대3인방 역할 관심 어 위원장은 고려대 총장과 국제금융센터 소장, 국가브랜드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특유의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고려대 총장(2003~2006년) 시절에는 3500억원의 학교 발전기금을 유치했다. 삼성, 포스코, LG 등 대기업의 후원을 이끌어 내 학교 캠퍼스를 탈바꿈시킨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어 위원장이 KB금융 회장에 강한 의욕을 보인 것은 본인의 순수한 주장과 엇갈리는 대목도 있다.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민간기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부터 장관직보다 돈을 더 주는 민간 금융회사에 더 매력을 느꼈다는 설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민간 금융회사는 1억원 남짓 되는 장·차관 봉급과는 비교도 안 된다. 전직 장관 출신이 민간 금융그룹 회장으로 가면서 받은 첫 월급을 두고 부인이 1년치를 받아왔느냐고 물었다는 얘기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얼마 전 금융 공기업 사장으로 있는 모 인사도 금융회사 사장으로 옮겼는데 연봉이 전보다 5배가량 많다고 털어놨다. ●10억대 연봉·스톡그랜트 등 20억 넘어 KB금융도 마찬가지다. 회장의 1년치 보수가 10억원대 중후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영 실적에 대한 상여금 성격인 ‘스톡 그랜트’까지 포함하면 연간 20억원이 넘어설 수도 있다. 수억원대 업무 추진비는 별도다. 국내 금융권의 수장이란 상징성도 있다. KB금융 회장은 총 직원 2만 7568명, 자산 규모 325조 6000억원(3월 말 기준)으로 웬만한 대기업을 압도하는 국내 최대 금융그룹 수장이란 상징적 의미도 있다. 특히 최대 자회사인 국민은행은 자산 273조 8000억원으로 국내 은행 중 확고한 1위를 지키고 있다. 또 국민은행은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지점을 갖고 있다. KB금융 내부에서는 어 위원장의 선임을 일단 반기고 있다. “현 정권에서 힘 센 사람이 왔으니 외풍을 충분히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직원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근무 경험이 없다는 것은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금융회사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국내 최대 금융기관의 수장이 됐다는 것은 부정적”이라면서 “앞으로 당면한 인수합병이나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처지는 수익성을 높이기에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용장형… 조직개편 진통 가능성 어 위원장에게 코 앞에 닥친 과제는 지난해 9월 전임 황영기 회장 사퇴 이후 9개월간의 최고경영자(CEO) 장기 공백 상태로 망가진 조직을 추스르고 새로운 경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석인 지주회사 사장과 계열사 사장들의 거취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이달 초 KB금융이 지주 회장에게 계열사 사장 인사권을 갖도록 정관을 바꾸면서 회장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졌다. KB금융 계열사 중 3월 결산법인인 KB생명과 KB자산운용, KB선물 등은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장을 선임하게 된다. 이것이 사실상 회장 후보로서 첫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뷔무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 지주 손익 기여도의 90% 이상이 은행에 몰려 있는 KB금융의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손질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 위원장은 덕장보다는 용장에 가깝다. 괄괄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거칠게 다그치는 편이다. 같이 일해 본 부하직원들 가운데는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를 강한 자신감의 표출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 2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제회의에서 한 다국적기업 회장과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KB지주 회장 후보로 결정된 어 위원장의 역량은 앞으로 펼쳐질 금융권 재편의 회오리 속에 1차적으로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어 회장 선임으로 국내 4대 금융지주 중 3곳의 수장이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앞으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고려대 3인방’과 어떻게 역할을 정립해 나갈지도 관심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출생 및 학력 1945년 경남 진해. 경기고-고려대 경영학과 학사·석사-미국 미시간대 경영학 박사 ●대학·학계 경력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국제경영학회장, 한국금융학회장, 한국경영학회장, 고려대 총장 ●공직 경력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 국제금융센터 소장, 공적자금관리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산학협력총연합회 공동대표, 한·미 FTA 국내대책공동위원장,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장
  • ‘화합형 박희태’ 후반기 국회의장에

    ‘화합형 박희태’ 후반기 국회의장에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6선의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이 사실상 확정됐다. 여야는 7일 의원총회와 워크숍을 각각 열고 18대 국회 의장단 후보와 16개 상임위 위원장, 2개 특별위 위원장 후보를 내정했다.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박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추대했다. 또 여당 몫 국회부의장에는 4선의 정의화 의원을 뽑았다. 박 의원은 이윤성 의원이 경선 직전 사퇴해 무투표 추대 형식으로 당선됐고, 정 의원은 이해봉·박종근 의원과 경선을 벌여 참석의원 156명 가운데 97명의 지지로 뽑혔다. 민주당도 오후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의원 워크숍을 열고 3선의 홍재형 의원을 야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확정했다. 홍 의원은 이날 결선 투표에서 5선 박상천 의원과 똑같이 39표를 얻었지만, ‘연장자 우선 원칙’이라는 당 규정에 따라 부의장에 오르는 행운을 안았다. 홍 의원과 박 의원은 똑같은 1938년생이지만 홍 의원의 생일이 3월, 박 의원의 생일이 10월로 홍 의원이 7개월 빠르다. 한나라당은 또 상임위원장 후보 11명을 확정했다. 국회 운영위원장은 김무성 원내대표가 당연직으로 맡고 ▲정무위원장 허태열 ▲기획재정위원장 김성조 ▲국방위원장 원유철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정병국 ▲정보위원장 정진석 의원 등으로 결정됐다. 외교통상통일위, 행정안전위, 국토해양위, 예산결산특별위, 윤리특별위 등 4개 위원회는 2년의 위원장 임기를 1년씩으로 나눠 2명이 차례로 맡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외통위는 원희룡 의원이 앞으로 1년간 위원장을 맡고, 2년차 위원장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행안위원장은 안경률 의원이 먼저 맡고, 이인기 의원이 다음 1년을 맡기로 했다. 국토해양위원장도 송광호 의원과 장광근 의원이 번갈아 맡기로 했다. 예결위원장은 이주영, 윤리위원장은 정갑윤 의원이 우선 맡고 다음 1년은 맞교대하기로 했다. 민주당에 배정된 6명의 상임위원장도 확정됐다. ▲법사위원장 우윤근 ▲교육과학기술위원장 변재일 ▲농림수산식품위원장 최인기 ▲지식경제위원장 김영환 ▲환경노동위원장 김성순 ▲여성위원장 최영희 의원 등이다. 보건복지위원장은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이 맡는다. 국회의장 후보인 박 의원은 “법을 잘 만들뿐만 아니라 법을 잘 지키는 국회가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며 ‘법치(法治) 국회’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관록을 ‘노마지지’(馬之智·늙은 말의 지혜)에, 자신의 성품을 ‘유능제강’(柔能制剛·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에 빗대며 원만한 국회 운영을 약속했다. ‘화합형’ 정치인으로 꼽히는 그는 1961년 13회 사법시험에 합격, 부산고검장까지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부터 17대까지 경남 남해·하동에서 내리 5번 당선됐으며, 지난해 10·28 경남 양산 재선거에서 6선 고지에 올랐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과 민자당 대변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부총재, 최고위원, 대표 등을 섭렵했다. 부의장 후보로 선출된 정의화 의원은 “제가 신경외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자부하는데 외과의에 필요한 결단, ‘이글스 아이’(Eagle’s eye·환부를 정확히 찾아냄)로 필요할 때는 결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물갈이 바람’을 타고 전문가 영입 케이스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탄탄한 지역 기반으로 부산 중·동구에서 내리 4차례 당선됐다. 민주당 몫 부의장으로 선출된 홍재형 의원은 “여당의 독선적인 국회 운영을 막고,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의 디딤돌을 놓겠다.”고 밝혔다. 이창구·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씨줄날줄] 복장(福將)/곽태헌 논설위원

    보통 군 고위관계자들을 평가할 때 으레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이라는 말이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용맹스러운 용장보다는 머리 좋은 지장이 좋고, 지장보다는 부하들을 감싸주는 덕장이 더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덕장보다 더 좋은 것은 복장(福將)이다. 말 그대로 복이 많고 운이 좋은 장수다. 지혜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용감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전쟁만 하면 이긴다. 운 앞에는 장사가 없다. 지나친 운명론인지는 몰라도 관운(官運), 재운(財運)이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선거에서도 운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 돈봉투 선거라는 말처럼 돈이 중요했다. 조직도 중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람’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바람 앞에는 선거운동이 필요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의 김대중(DJ) 후보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 통일민주당의 김영삼(YS) 후보에 이은 3위에 그쳤다. DJ가 기사회생한 것은 다음해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황색바람’이었다. 평화민주당은 70석을 차지하며 통일민주당(59석)을 누르고 제1야당이 됐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의 ‘충청도 핫바지론’을 업고 자민련 후보들이 충청권을 사실상 싹쓸이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잘해야 50석 정도를 예상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열린우리당의 함량미달 후보들에게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때 초선의원만 108명. 이들은 탄핵바람을 타고 금배지를 거저 얻은 ‘탄돌이’, ‘108 번뇌’로 불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이명박(MB) 대통령의 당선에 따른 정권교체 바람이 이어지면서 능력과 관계없이 한나라당에는 88명의 초선의원, 소위 ‘MB 칠드런(children)’이 나왔다. 며칠 전 끝난 6·2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심판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야당 광역자치단체장과 시장·군수·구청장이 쏟아졌다. ‘탄돌이’ 상당수가 2008년 선거에서 금배지를 달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요행은 여러번 오지 않는다. 잘나서 당선된 게 아니라 운 때문이었다는 겸손함도 없고 분수를 알지 못하면, 그 다음 선거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게 어디 선거뿐이랴.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하토야마·오자와 동반 사퇴] ‘빅2’ 정치자금 의혹·후텐마에 발목… 日 정국 회오리

    [하토야마·오자와 동반 사퇴] ‘빅2’ 정치자금 의혹·후텐마에 발목… 日 정국 회오리

    │도쿄 이종락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2일 전격 사임했다. 지난해 9월16일 취임한 지 260일 만이다. 역대 총리 가운데 다섯번째 단명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중의원·참의원 양원 총회에 출석해 사의를 표명했고, 직후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도 당직 사퇴를 선언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자금 탈루 의혹에 이어 후텐마 기지 이전 논란과 사민당의 연립정부 이탈 등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면서 당 안팎으로부터 거센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민주당은 4일 총리를 선출한 뒤 7일 조각을 단행하기로 했다. 후임 총리로는 민주당 대표를 지낸 간 나오토 부총리 겸 재무상이 유력하게 거명되는 가운데 오카다 가쓰야 외상,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간 부총리는 이날 오후 “(차기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오전 중·참의원 의원총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재임 기간의 회한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퇴진을 불러온 발단으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정치자금 의혹을 꼽았다. 후텐마 문제와 관련, 그는 “언젠가는 일본의 평화를 일본인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시기를 추구해야 하며, 미국에 계속 의존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반년간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옮기려)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천안함 사태도 언급했다. 사건이 터진 뒤 미·일 양국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불가결하게 됐고, 따라서 후텐마 기지도 오키나와 안에서 옮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한 것. 하토야마 총리는 “어떻게 해서든 일·미 간의 신뢰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통한 심정을 꼭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하토야마의 퇴진에 민주당 분위기는 “참의원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일색이다. 이시이 하지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오늘 총리의 사퇴가 참의원선거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겼다. 와타나베 고조 전 중의원 부의장도 “오늘의 하토야마 총리는 만점”이라며 하토야마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야당인 자민당은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직접 신임을 물어야 하는 만큼 조속히 중의원을 해산하라.”고 촉구했다. 한국과의 우호 관계 구축에 힘썼던 하토야마 총리가 물러남에 따라 향후 한·일관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8월에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총리의 과거사 사과 담화나 전후보상법안 처리 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간 부총리 등 민주당 인사들이 대부분 과거사 청산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jrlee@seoul.co.kr
  • [지방선거 D-5] 서울시장 군소후보 3인 유세 동행 르포

    [지방선거 D-5] 서울시장 군소후보 3인 유세 동행 르포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 대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양강 체제가 굳어진 상태다. 당세가 약하고 선거자금도 빠듯한 군소후보들이 믿을 수 있는 건 두 다리와 목청뿐이다. 26~27일 유세 현장에서 만난 자유선진당 지상욱, 진보신당 노회찬, 미래연대 석종현 후보는 공약을 알리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느라 벌새처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유선진당 지상욱 후보 지난 26일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 지 후보는 좀체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한 집도 거르지 않고 찾아가는 일명 ‘저인망식 유세’ 때문이었다. 옆에서 손목시계를 힐끔거리던 참모는 애가 탔다. “빨리빨리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다음 일정이 수두룩한데…” 지 후보는 아랑곳 않고 한약방과 노점상을 구석구석 오가며 상인들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그는 “인지도가 뒤처지는 상황에서 왔다 갔다는 시늉만 할 수는 없다.”면서 “한 명이라도 더 만나 눈을 맞춰야 한다.”고 초조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 후보는 지상욱이라는 본명보다 ‘심은하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들은 “부인도 같이 나오면 찍어주겠다.”며 관심을 보였다. 영화배우 심은하씨가 적극 선거운동을 펼치면 지지율 자릿수가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 후보는 부인의 ‘후광’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제 정치 철학과 비전으로 이기고 싶다.”고 했다. 대신 심씨는 ‘그림자 내조’를 택했다. 잦은 연설로 목이 아픈 지 후보를 위해 매일 새벽 오미자차와 레몬꿀차를 보냉병에 담아 들려보낸다.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유세현장을 매일 찾는다. 선거운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지 후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채소를 팔던 노점상의 한 노파는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을 위해서 이제 젊은 사람이 큰 일을 해야 한다.”며 한 표를 약속했다. 27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함께 종로, 신촌, 용산 등을 누비며 유세 연설을 한 지 후보는 “200년만에 가장 젊은 총리를 탄생시킨 영국처럼 노회한 정치인 대신 참신하고 깨끗한 후보인 저를 뽑아달라.”면서 “‘북풍’, ‘노풍’과 같은 정치싸움 대신 ‘행복풍’을 전달해 드리겠다.”고 호소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 노 후보의 하루는 오전 7시30분쯤 서울 여의도역 앞에서 시작됐다. 대부분 대학생들로 이뤄진 선거운동원과 함께 나온 그는 출근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정치 구호보다는 “반갑습니다.”“노회찬입니다.” 등 일상적인 인사로 시민들을 맞이한 그는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아침 인사 내내 특유의 친근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그을린 얼굴에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투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지만 좀처럼 지지율 상승의 기회가 보이지 않기 때문. 그런 그가 확실한 기회로 생각하는 것은 TV토론이다. 노 후보의 토론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지난 12일 MBC 100분토론 이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예정된 토론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후보는 시민들과의 스킨십에 더 초점을 두고 움직였다. 낮 12시쯤 직장인들이 밀집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점심 번개유세’를 가졌다. ‘번개유세’는 노 후보가 직접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과 약속을 잡고 함께 만나는 모임이다. 평소 이동 중에도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과 소통한다는 노 후보는 팔로워(follower·메시지 수신자)가 5만여명에 달한다. 오후 3시쯤 SK브로드밴드 노조를 방문했던 노 후보는 이어 방화동 방화사거리에서 다시 시민들과 만났다. 이후 노 후보는 영등포역, 신도림역 인근에서 퇴근 인사 및 집중 거리 유세를 펼치고 오후 8시쯤에야 하루 일정을 끝마쳤다. ●미래연합 석종현 후보 석 후보도 여느 때처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전 8시30분부터 지하철 여의도역과 홍대입구역에서 출근길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후에는 불공정한 언론 보도를 시정해 달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오후 9시까지 목동·신정·화곡역 주변을 돌며 유세활동을 펼친 뒤 숨가쁜 하루를 마감했다. 강병철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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