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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위안화 SDR 편입] 금융굴기 지렛대 확보한 中…달러화와 ‘통화 전쟁’ 시작됐다

    [中 위안화 SDR 편입] 금융굴기 지렛대 확보한 中…달러화와 ‘통화 전쟁’ 시작됐다

    중국 위안화가 단번에 세계 3대 통화에 오르며 기축통화의 대열에 합류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오직 상품생산에 매진했던 중국이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던 금융에서도 굴기(?起·우뚝 섬)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달러화와 위안화 간 치열한 ‘통화 전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서 집행이사회를 열어 위안화의 특별인출권(SDR) 기반통화(바스켓) 편입을 결정했다. 편입 시점은 내년 10월 1일부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위안화의 SDR 통화 편입은 중국이 세계경제로 통합되는 중대한 이정표”라고 밝혔다. 위안화 편입 비율은 10.92%로 정해졌다. 달러(41.73%), 유로화(30.93%)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율로 엔화(8.33%)와 파운드화(8.09%)를 제쳤다. 중국 인민은행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중국과 세계의 승리로 세계 화폐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강(易鋼) 인민은행 부행장 겸 국가외환관리국장은 “위안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는 없을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 실행을 위해 금융 개혁·개방을 더 힘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은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위안화의 국제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가 흔들리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중국은 올해 초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은행(WB)에 대항하는 새로운 국제은행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설해 이미 국제 금융 질서에 균열을 낸 바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미국의 맹방들도 ‘G2’ 경쟁 구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이 달러를 기반으로 자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양적 완화에 나서고 경기가 회복되면 국제 경기와 무관하게 금리를 올리는 행태를 막으려면 규모의 경제를 갖춘 중국이 대항마가 돼야 한다는 계산 때문이다. SDR 편입을 계기로 위안화 약세가 가속화하고 이달 중으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미·중 갈등이 일차적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위안화 위상 강화로 다양한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전 세계의 위안화 수요가 늘어나 금융이 안정화된다.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과 연기금, 국부펀드 등에서 위안화 자산 비중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위안화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의 1.1%에서 5년 후에는 5%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3조 5255억 달러)도 줄일 수 있어 환율 리스크와 관리 비용에서 자유로워진다. 국제 교역에서 위안화가 널리 쓰이면 중국 기업과 소비자는 환전 부담을 던다. 위안화 표시 국채 및 회사채 발행도 쉬워져 금융경색에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위안화의 국제화는 ‘양날의 칼’이다.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금융시장을 더 개방하라는 시장의 압력이 거세질 게 뻔하다. 위안화가 진정한 기축통화가 되려면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과 함께 투자자들의 사법 시스템, 중앙은행 독립성 등에 대한 신뢰가 담보돼야 하는데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49%… 아베 인기 회복

    49%… 아베 인기 회복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율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TV도쿄의 지난 27~29일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이 10월 하순의 조사보다 8% 포인트 오른 49%였다고 닛케이가 30일 전했다. 반대는 6% 포인트 떨어진 36%였다. 무당파층의 내각 지지율도 지난달 14%에서 27%로 높아진 것도 주목된다. 지난 5~6월 집단자위권 등 안전 보장 관련 법안을 둘러싸고 국회 심의에서 여야 대립이 거세지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지지 응답자들은 (아베 총리가) “안정감이 있다”(36%), “국제 감각이 있다”(32%), “지도력이 있다”(31%) 등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 10월 임기 3년의 집권 자민당 총재로 재취임한 뒤 지지율까지 회복해 아베 총리는 일단 장기 집권의 안정적인 길로 접어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보 법안 강행 처리로 생긴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향후 이 같은 지지율 추이가 헌법 개정의 분수령이 될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베 총리가 지난 9월 안보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뒤 자세를 바꿔 경제 중시 정책을 일관적으로 강조한 것이 지지율 회복의 힘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월 개각을 한 뒤 “일억 총활약 사회”의 실현 등을 내걸고 경제살리기에 모든 힘을 쏟겠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특히 최근 ‘관민 대화’ 등을 통해 민간 기업에 적극적인 임금 인상 및 설비 투자 등을 요구하면서 ‘경제 총리’란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같은 경제활성화를 겨냥한 활동과 입장에 대해 “지지한다”는 응답이 46%로, “지지하지 않는다”의 38%를 웃돌았다. 도쿄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아베노믹스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흔들리며,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 압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민은 정치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일단 아베 총리를 재신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안정감과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당 지지율은 자민당이 37%로 민주당 8%, 공산당 5% 등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가 지난 2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기 타결하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합의한 것에도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64%는 “평가한다”고 답했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21%에 불과했다. 파리 연쇄테러 등 국제적으로 테러 위협이 높아지고, 시리아 사태 등을 둘러싼 미·러 갈등이 고조되면서 안보 불안을 부채질하는 상황도 “강력한 미·일 동맹을 축으로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아베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프로축구 K리그 리저브리그 내년에 부활

    2000년 시작해 2012년 폐지됐던 프로축구 2군리그가 내년에 부활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총재 권오갑)은 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2015년 5차 이사회를 열어 내년부터 2군리그인 리저브리그(이하 ‘R리그’)를 운영하기로 했다. 23세 이하(챌린지는 22세 이하) 의무 출전 정책에 따른 선수들의 안정적인 K리그 적응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라고 연맹은 밝혔다. 2000년 시작한 뒤 2012년 폐지됐던 R리그가 재개되면 구단 산하 유소년 클럽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통한 유소년 육성 효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고 연맹은 설명했다. 23세 이하 국내 선수는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으며 23세 이상은 외국인 포함 최대 5명으로 제한한다. 또한 산하 유소년이나 우선 지명 선수는 해당 구단의 R리그 경기 출전에 선수 수 제한을 받지 않으며, 테스트 선수도 대한축구협회(KFA)에 등록된 23세 이하 선수를 대상으로 2명까지 가능하다. 리그 운영 취지에 따라 외국인 선수 테스트는 금지하며, 향후 23세 이상 선수의 수도 점진적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연맹은 덧붙였다. 연맹 이사회는 또 신인선수 선발 방식이 드래프트에서 자유선발로 변경됨에 따라 육성지원금 규정도 변경했다. 자유선발 신인선수는 계약조건에 따라 자유선발 S등급(계약기간 5년, 계약금 최고 1억 5000만원, 기본급연액 3600만원, 팀당 3명), 자유선발 A등급(계약기간 3~5년, 계약금 없음. 기본급연액 2400만~3600만원. 인원 무제한), 자유선발 B등급(계약기간 1년, 계약금 없음. 기본급연액 2000만원. 인원 무제한)으로 나눠진다. S등급은 육성지원금이 2500만원이며, 자유선발 A등급과 우선 지명 선수는 1년차 기본급의 50%를 육성지원금으로 산정한다. 우선지명선수는 계약기간 5년에 계약금 1억 5000만 원과 기본급연액 3600만원인 경우와 계약기간 3~5년, 기본급연액 2000만~3600만원(계약금 없음)인 선수로 나눠진다. 자유선발 B등급은 육성지원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챌린지구단은 이 금액의 50%로 산정한다. 해당 구단이 육성지원금을 기한 내 지급하지 않으면 지급 시점까지 신규 선수의 등록이 금지된다. 변경된 육성지원금 규정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구단의 광고 수익 증대를 위해 유니폼 규정도 바뀐다. 유니폼 후면에 더욱 많은 광고를 유치할 수 있게 됐으며, 광고의 위치나 수량, 크기는 구단이 결정해 연맹의 승인만 거치면 된다. 또한 유니폼 후면의 선수명 표기 여부도 구단 자율로 바꿔 배번 상단에도 광고를 붙일 수 있게 했다. 아울러 내년 K리그 주니어는 올해 지역별 2개 조로 운영하던 방식과 동일하게 운영되며, 내년부터 서울 이랜드 FC의 18세 이하(U-18) 팀이 새롭게 참가해 모두 23개 클럽 산하 U-18팀들이 경쟁한다고 연맹은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부고]

    ●김철주(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병주(법무법인 동인 변호사)곤혜(대전 매봉중 교사)씨 부친상 김태준(통계청 서기관)씨 장인상 27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779-1526 ●정해융(전 주에콰도르 대사)씨 부인상 승욱(삼육대 교수)은주(전 삼육대 교수)은경(경희대 교수)씨 모친상 이우철(불국사납석 대표)씨 장모상 김수연(싱가포르국립대 교수)씨 시모상 2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 30분 (02)2258-5940 ●박치문(한국기원 부총재)씨 모친상 26일 서울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30분 (02)2072-2011 ●이광구(전 월간바둑 편집장·바둑평론가)씨 별세 27일 부천성모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30분 (032)340-7300 ●신성대(신한생명 정보보호본부 상무)성재(자영업)효성(SK건설 부장)씨 모친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5시 30분 (02)3010-2262
  • 세계태권도연맹, 요르단 시리아 난민촌 태권도 아카데미 첫 개관

     세계태권도연맹(WTF)이 난민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기 위해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촌에 태권도 아카데미를 세운다.  WTF는 27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촌 ‘자타리 캠프’에 태권도 아카데미를 세우고 다음달 2일 개관식을 한다”며 “이번 개관식에서 공연을 선보일 WTF 태권도 시범단원 13명이 26일 요르단으로 떠났다”고 밝혔다.  자타리 캠프 태권도 아카데미 개관은 WTF가 태권도박애재단 공식 출범에 앞서 시범사업으로 추진해 온 것이다. 조정원 WTF 총재는 지난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2015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전 세계 난민촌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태권도박애재단 설립 계획을 밝혔다. 조 총재도 29일 요르단으로 출국해 개관식을 지켜볼 예정이다. 개관식에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사촌동생인 라쉬드 엘 하산 왕자(요르단태권도연맹회장)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단원 중 홍시영(21) 사범은 시범공연 후 요르단에 남아 2개월간 머물며 4명의 현지 지도자와 함께 난민촌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칠 예정이다. 난민촌에 지속 가능한 도장을 만들고, 태권도가 어린이들이 삶의 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 WTF의 구상이다. WTF는 난민들에게 나눠줄 태권도복 300벌과 티셔츠 300장, 백팩 등도 준비했다.  WTF 관계자는 “이번 요르단 태권도 아카데미 개관을 시작으로 태권도박애재단의 활동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라며 “내년 1월 15일에는 사범단과 의료진이 네팔로 출국해 태권도 교육과 의료 봉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좌절한 젊은이에게 믿음 주는 친구된 것이 샤오미 성공비결”

    “좌절한 젊은이에게 믿음 주는 친구된 것이 샤오미 성공비결”

    중국의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小米)는 매년 4월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인 ‘미펀제’(米粉節)를 연다. 샤오미를 응원하는 팬들이 보내온 사진들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팬들에게 본사 사무실과 물류센터 등을 보여 주는 ‘오픈데이’에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0년 작은 스타트업(창업기업)으로 시작한 샤오미는 ‘중국의 애플’이라고 불리며 세계 5위권의 스마트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미펀’(米粉)으로 불리는 팬덤 문화가 성공 비결로 꼽힌다. 하지만 류더(劉德) 샤오미 공동창업자 겸 부총재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성공 비결로 꼽는다. “인민대회당에서 표를 던지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의 기회가 줄어 중국 젊은이들의 좌절이 큽니다. 샤오미의 철학은 그런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주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류 부총재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온 더 로드-샤오미 창업 스토리’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류 부총재는 “5년 전만 해도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를 구매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라면서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결제하고 스마트폰을 사게 만드는 힘은 바로 신뢰에 있다”고 말했다. 샤오미에 대한 팬들의 신뢰는 끊임없는 소통에서 나온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들기 전에 운영체제(OS) ‘MIUI’를 먼저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내놓지 않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완성해 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이 소프트웨어에 반영되는 걸 본 이용자들이 우리의 팬이 됐고 그들이 우리의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은 소수의 스마트폰 마니아를 초점에 둔 것으로, 이들이 샤오미 제품의 홍보 지원군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팬들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정수기, 전동스쿠터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며 ‘샤오미 생태계’를 넓혀 나가고 있다. 류 부총재는 “샤오미의 슬로건은 ‘젊음, 젊음, 젊음’(年輕, 年輕, 年輕)”이라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성비 높은 제품을 통해 과학기술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다시 한번 명복 빌어”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박 대통령은 발인 예배가 끝난 뒤인 오후 1시 5분쯤 검은색 코트 차림으로 빈소에 도착했다. 이병기 비서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현기환 정무수석이 함께했다. ●김현철 “많이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 대통령은 빈소 밖에 대기 중인 영구차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관이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도열병이 관을 운구차에 싣는 모습을 지켜보다 영정 사진이 다가오자 목례했다. 관을 실은 영구차의 트렁크가 닫힌 뒤 고인의 차남 현철씨 등 유족들과 함께 영구차 앞으로 다가가 거듭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박 대통령은 두 손으로 현철씨 손을 잡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다시 한번 명복을 빌고 영결식이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라며 위로했고 현철씨는 “몸도 불편하신데 와 주시고 많이 신경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했다. 박 대통령은 현철씨로부터 다른 유족을 소개받고서는 “애 많이 쓰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유족들은 “편찮으신데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前대통령 발인 때와 ‘오버랩’ 박 대통령은 영구차가 움직일 때 마지막으로 고인을 향해 목례하고 영구차가 장례식장을 벗어나 국회 영결식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길지 않은 8분여의 시간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때 신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발인제에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영정이 영결식장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것과 오버랩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야외 활동 자제를 권유한 주치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병원 방문을 결심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표하기 위해 운구 행렬이 출발하기 직전에 빈소인 서울대병원에 다시 가서 김 전 대통령과 영결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위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7박 10일간의 순방에서 지난 23일 귀국한 지 엿새 만인 29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등에 참석하기 위해 5박 7일간의 해외 순방길에 다시 오른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히치하이킹, 인도 경제] 中 성장률을 추월하다

    [히치하이킹, 인도 경제] 中 성장률을 추월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한은 본관에서 열린 경제분야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인도가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스탠리 피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의 말을 전했다.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준 콘퍼런스에서 피셔 부의장이 ‘전환기의 아시아 신흥국’을 주제로 발표하던 중 인도를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뒤 제조업 육성 정책 및 해외 투자유치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영국, 싱가포르, 일본 등 인도에 활발한 투자를 벌이던 국가뿐 아니라 중국, 대만 등 우리의 제조업 경쟁국까지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5회에 걸쳐 모디노믹스 현장을 살피고 한국 기업이 인도에서 취할 수 있는 성장기회를 탐색해본다. ●인도국제무역박람회 45개국 7000여개 부스 성황 “130년 전통의 독일 회사가 만든 세제를 써 보세요.” “아프가니스탄의 최고 인기 스낵을 먹고 평가해 보세요.” “다목적 펌프 필요 없으세요? 동영상 보면서 익혀 보세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국제무역박람회(IITF). 27일까지 2주간 계속되는 박람회장에는 7000여개에 달하는 전시 부스가 설치됐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45개국에서 참여했다. 박람회장인 프라가티 마이단의 연면적은 9만 4300㎡로 서울 코엑스(4개홀·3만 5287㎡)의 2.8배에 달한다. 이번 박람회에 많을 땐 하루 10만명이 방문한다. 전시공간 자체가 거대한 도시이자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올해로 35회째를 맞은 박람회장은 지금의 인도 경제를 웅변하고 있었다. 1885년 설립돼 유럽·북미·아시아 등지에 판매선을 확보한 독일 세제업체 자이츠는 인도의 제조업 육성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에 부응해 지난해 인도에 생산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 짓는 등 본격 현지화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케냐 등지의 의류·식품 회사들은 “정치적·사회적으로 교류가 활발한 인도 시장을 개척해 우리 상품을 파는 게 유일한 활로”라고 입을 모았다. 20여년 전 앞다퉈 중국으로 진출했던 각 국의 중장비 회사들은 지난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뒤 인프라 투자에 열을 올리는 인도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메이크 인 인디아’ 선포… 7개월 새 22조원 투자 2008년 금융위기, 올해 가시화된 중국 경기 둔화의 여파로 선진국부터 신흥국까지 침체를 보이는 가운데 인도는 유일하게 예외의 지표를 보이는 국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초 올해와 내년에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5%씩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보다 13년 늦게 1991년부터 개방의 길을 걸었던 인도가 1999년 이후 19년 만에 성장률 측면에서 중국(6.8%)에 앞서는 ‘골든 크로스’를 이뤄내는 셈이다. 인도를 향한 세계는 구애 경쟁을 펴고 있다. 인도 산업통상부는 모디 총리가 ‘메이크 인 인디아’를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인도에 197억 달러(약 22조 6000억원) 규모의 해외직접투자(FDI)가 유입됐다고 집계했다. 전년 같은 기간 FDI 투입액인 134억 달러보다 48% 증가했다. ●한국은 1년 사이 14.7% 투자 줄여 일본, 중국, 대만 등 한국의 제조업 경쟁국의 행보는 특히 빨랐다. 국제무역연구원은 2014~2015 회계연도 중 한국의 대인도 투자가 1억 47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4.7% 감소한 반면 중국은 299.0% 늘어난 4억 9500만 달러를, 일본은 21.3% 증가한 20억 84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경쟁국에 비해 최근 한국의 인도 투자가 주춤한 데 타당한 이유가 없지 않다. 세계은행(WB)의 기업환경평가 순위에서 인도는 189개국 중 130위다. 인도에서 법인을 세우려면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고, 교통·통신·전기 등 인프라는 여전히 열악하다. 그러나 열악한 인프라는 한국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일본, 중국 등의 기업이 열악한 기업환경을 감수하며 인도에 투자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中 절반도 안되는 인건비 매력적 최동석 코트라 서남아지역본부장은 “미래 전망 수치에 답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수의 측면에서 인도는 향후 세계 최대시장이 될 예정이다. 현재 약 13억명인 인도의 인구는 2060년 16억 4400만명으로 늘어난다. 이때가 되면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인도인이다. 또 지난해 인도의 시간당 제조업 평균 노동비용은 0.92달러로 3.52달러인 중국의 4분의1 수준에 머물렀다. 역으로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100곳이 인도 안에 연구개발(R&D) 시설을 두고 매년 공대생을 50만명씩 배출할 정도로 고급 인력풀이 갖춰진 곳 또한 인도이다. 최 본부장은 “이제 인도를 빼고 세계 경제를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일본 역시 1990년대엔 선제적으로 진출한 한국 기업에 밀려 인도 시장에서 무더기로 철수했다가 재정비 과정을 거쳐 다시 진입했다는 점을 반면교사 삼아 한국 기업들이 두 번째 인도붐을 붙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뉴델리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류더 샤오미 부총재 “샤오미의 성공 비결은 신뢰”

     중국의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小米)는 매년 4월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인 ‘미펀제’(米粉節)를 연다. 샤오미를 응원하는 팬들이 보내온 사진들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팬들에게 본사 사무실과 물류센터 등을 보여 주는 ‘오픈데이’에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0년 작은 스타트업(창업기업)으로 시작한 샤오미는 ‘중국의 애플’이라고 불리며 세계 5위권의 스마트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미펀’(米粉)으로 불리는 팬덤 문화가 성공 비결로 꼽힌다. 하지만 류더(劉德) 샤오미 공동창업자 겸 부총재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성공 비결로 꼽는다. “인민대회당에서 표를 던지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의 기회가 줄어 중국 젊은이들의 좌절이 큽니다. 샤오미의 철학은 그런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주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류 부총재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온 더 로드-샤오미 창업 스토리’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류 부총재는 “5년 전만 해도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를 구매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라면서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결제하고 스마트폰을 사게 만드는 힘은 바로 신뢰에 있다”고 말했다.  샤오미에 대한 팬들의 신뢰는 끊임없는 소통에서 나온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들기 전에 운영체제(OS) ‘MIUI’를 먼저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내놓지 않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완성해 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이 소프트웨어에 반영되는 걸 본 이용자들이 우리의 팬이 됐고 그들이 우리의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은 소수의 스마트폰 마니아를 초점에 둔 것으로, 이들이 샤오미 제품의 홍보 지원군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팬들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정수기, 전동스쿠터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며 ‘샤오미 생태계’를 넓혀 나가고 있다. 류 부총재는 “샤오미의 슬로건은 ‘젊음, 젊음, 젊음’(年輕, 年輕, 年輕)”이라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성비 높은 제품을 통해 과학기술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서동철 칼럼] 낭만이 있던 정치를 떠나 보내며

    [서동철 칼럼] 낭만이 있던 정치를 떠나 보내며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서거한 직후 TV에 비친 빈소의 표정은 뭔가 모르게 드라마적인 데가 있었다. 한다 하는 정치인들이 다투어 찾아와 ‘나는 그의 정치적 아들’이라거나 ‘그는 나의 정치적 대부’라고 고인을 추모하는 장면부터가 현실이 아니라 영화적 설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YS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의원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빈소에 들어서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보스’를 정성을 다해 추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눈물도 흘리지 못했을까’하며 회한에 잠길 지경이었다. 일종의 ‘시대착오’를 느끼게 한 것은 빈소의 표정뿐만이 아니다. YS의 삶을 다룬 보도가 쏟아지면서 공(功)을 부각시켰든, 과(過)를 강조했든 보고 읽으며 ‘우리 정치에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YS가 오랜 민주화 투쟁에 이어 3당 합당이라는 도박으로 대통령에 오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YS의 인생역정이라고 해봐야 별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TV에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장면이 비치고 있건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뜻밖이었다. 오늘날 정치판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로망’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반독재 투쟁 시절 당시 YS 모습이 오늘날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유는 있다. 야당 총재 시절 YS의 반정부 발언을 날것 그대로 언론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고 했다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발언이 곧바로 보도가 이루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쓰러질 것”이라고 했던 ‘예언’도 당시에는 직접 들을 수 없었을 개연성이 크다.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한 사람에게 YS의 용기는 부럽고도 고맙다. 한편으로 “서슬 퍼런 시절 주변을 움직이게 한 것은 YS의 인간미”라는 회고도 인상에 남는다. 측근이 실수를 저지르면 “한강물에 뛰어내려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상도동 집에 가면 YS는 늘 ‘밥 묵고 가래이’, ‘고생 많재’라며 다독여줬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미와 더불어 YS의 시대를 낭만의 시대로 기억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는 유머집이다. “고생하던 부인이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는 덕담에 “집 사람은 절대 세컨드 아이다”했다는 유머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당시는 일간신문에서 대통령 부인의 사진을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잘못 썼다고 담당기자가 사표를 내는가 하면 대통령 부인의 이름이 발매된 신문도 아닌 교정지에서 한 자가 틀렸다고 시말서를 써야 했던 시대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YS는 못 말려’가 나온 것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4월 초순이었다. 문화부 출판담당 시절 책이 나왔음을 알리는 간담회에 참석한 인연이 있다. 유머집에는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불참에 YS가 “장관들이 대통령과 회의하는데 부장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노”라고 일갈하는 대목도 있다. 안기부가 아니고 다른 기관이었다면 충분히 했을 만한 실수라고 시중에서는 키득댔다. 실제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자 “차씨”라고 한 적도 있다. 이 유머집은 출판사의 모험이 아니었다. 출판사가 YS 측근과 소통하며 만든 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정치 홍보 전략이지만, 오늘날의 정치 문화라면 용납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YS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외환위기를 초래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나회를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회고도 이제는 가볍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평가는 이제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싸울 때는 싸우고 웃을 때는 웃는 인간미 있는 정치마저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낭만이 있는 정치가 이루지 못할 꿈이어서야 되겠는가.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영웅적 지도력’ 아닌 협치의 시대… 진영 탈피한 통치능력 절실

    현대 한국 정치사의 두 거두,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양김(兩金) 시대’가 막을 내리며 “영웅적 리더십의 시대는 갔다”고 한다. 민주화·산업화 기반이 닦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는 안착했지만, 2015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 사회 갈등에 허덕이고 있다. 포스트 양김 시대로 접어든 지 13년째, 대한민국이 갈망하는 새로운 리더십은 무엇일까. YS 정부에서 최장수(2년 7개월) 공보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5일 “지난 시절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의 자기 희생적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면서 “공동체나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니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도덕적 권위가 모두 땅에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현 19대 국회는 말로만 혁신을 외칠 뿐 여야 간 소통·통합은 외면한 채 서로 ‘상대 눈에 든 티끌’ 탓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이제는 한 사람의 영웅적 지도자가 사회를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닌 뉴 거버넌스, 협치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어 “국가와 시민사회, 사회 각 영역 간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훈련이 되어 있질 않다”고 지적했다. 이념 투쟁에 얽매였던 세대들이 국회로 활동무대만 옮겼을 뿐 사고의 전환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입법부 설득 없이 전형적으로 혼자 끌고 가는 리더십”이라고 꼬집었다. YS가 노동법 날치기 처리 등 정국 경색의 고비 때마다 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통해 돌파했던 사례도 회자된다. YS는 집권 시절 10차례 영수회담 테이블에 나왔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런 통 큰 소통이야말로 오늘날 복원해야 할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YS는 정치적 난제를 국회를 통해 풀려고 했던 의회주의자였다”면서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여야를 초월한 해법을 모색했던 점이야말로 현재 정치권에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YS·DJ 모두 국민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여야 모두 진보·보수의 이분법적이고 진영지향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무조건 이끌고 가는 지도자상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보듬을 줄 아는 ‘코디네이트(coordinate) 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YS의 유지인 ‘통합과 화합’은 곧 상대방을 인정할 줄 아는 공감과 같은 뜻”이라고 강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양김의 리더십이 위기 돌파 리더십이었다면, 앞으로는 평시 상황을 관리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 ‘위기관리형 리더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사태 같은 국가적 재난에 신속 대응하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영웅과 별개로 ‘전 계층을 아우를 사회의 큰 어른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YS의 정치적 후예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포용하고 소통했던 그의 리더십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차기 지도자 욕심만 낼 게 아니라 민주주의 3.0 시대에 걸맞은 소통의 리더십을 실현하기 위해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런 희생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큰 장작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YS는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정치인 스스로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배종찬 리서치 앤 리서치 본부장은 “정치·경제·사회적 성숙기에 접어들수록 전문화되고 훈련된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의 일자리, 고령화 세대의 복지 등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정무와 통치능력을 동시에 갖춘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맡아 행정능력을 키우는 형태가 새 리더십의 훈련 형태로 부각될 전망이다. 미국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간파했던 지도자로 꼽힌다. 배 본부장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어젠다가 무엇인지 꿰뚫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민심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한 예가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인사]

    ■여성가족부 ◇과장급 <전보>△권익지원과장 조용수<승진>△다문화가족지원과장 윤강모 ■해양수산부 △지도교섭과장 임영훈 ■대한적십자사 ◇신임△부총재 김춘호◇재선출△부총재 김선향 ■사학연금공단 △상임이사 변호석 ■MBC △드라마R&D센터장 김도훈△드라마해외제작부장 박홍균
  •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는 ‘방명록 정치’가 한창이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남긴 메시지에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다. ‘사자성어형’, ‘업적 칭송형’, ‘명복 기원형’, ‘에피소드형’ 등 그 형태도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남다른 메시지를 남길까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여권 인사들은 대체로 김 전 대통령이 ‘큰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역사의 거인, 영면하소서’라고 남겼다. 박찬종 변호사는 ‘直情徑行(직정경행·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나타냄)의 신념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길 없는 곳에 새 길을 열고 문 없는 곳에 큰 문을 여신 시대의 큰 별께 바칩니다’라고, 홍준표 경남지사는 ‘담대함으로 대한민국을 개혁하신 업적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야권 인사들은 주로 ‘민주화’라는 업적을 기리는 데 초점을 뒀다.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각하의 정치 역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24일 ‘영원한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 땅에 민주화의 역사를 만든 큰 별’이라고,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은 ‘고인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은 국민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천정배 의원은 ‘군정 종식의 역사적 위업을 남기신…’ 이라며 민주화를 강조했다. 여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지금은 야권에 몸담고 있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민주 정신과 개혁 정신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는 방명록 글귀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인물 됨됨이를 동시에 칭송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도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 낸 우리 시대 거인’이라고 쓰며 양쪽을 아울렀다. 방명록은 개성 넘치는 내용들로 넘쳐났다. 수천명이 펜을 잡았지만 똑같은 글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로 강렬한 울림을 던졌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선대 정치인들의 투쟁과 희생의 산물임을 잊지 말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단 네 글자에 압축해 담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일으킨 천하장수’라고 표현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통합과 화합의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며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전 대통령의 좌우명을 인용해 ‘大道無門(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이름 외에 가장 짧은 메시지를 남긴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만 썼다. 일반 시민인 박종숙씨는 애도의 편지로 방명록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저를 정계로 이끌어 주셨던 각하. 감사합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아침에 가면 사모님의 시래깃국, 밤에 가면 대통령님의 와인을 주셨던 상도동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라고 추억담을 기록했다. 이 밖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 방명록 작성을 하지 않은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부고] DJ정부 국정원장 지낸 신건 前 의원

    [부고] DJ정부 국정원장 지낸 신건 前 의원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 전 의원이 24일 오후 6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74세. 신 전 의원은 최근 2~3개월 동안 폐암 투병을 해왔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암세포가 전이되며 병세가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전주 출신인 신 전 의원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검사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뒤 18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사법부와 행정부, 입법부를 두루 거쳤다. 1997년 대선 전에 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총재의 법률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과 국가정보원 1·2차장 등 요직을 맡았다. 신 전 의원은 국정원장 때 불법 도청을 지시·묵인한 혐의로 기소돼 2006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되기도 했다. 2009년 전주고 후배인 정동영 전 의원과 ‘무소속연대’를 결성해 전주 완산갑 재선거에 도전해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총선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재선에 실패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02-3010-2631)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소화묘원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칩거 끝내고 나온 손학규 “한식구니까…”

    24일 오후 2시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2일 비보를 접한 뒤 칩거생활을 하던 전남 강진 흙집에서 한걸음에 올라온 손 전 상임고문은 전날도 밤 11시까지 ‘상도동계’ 출신 전·현직 의원들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 지난해 정계 은퇴 이후 1년 4개월여 동안 강진에 칩거했고, 최근 새정치연합 비주류를 중심으로 ‘손학규 역할론’이 불거진 뒤로는 언론 접촉을 극도로 피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손 전 고문은 “한 식구니까…”라고 했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손 전 고문은 1993년 김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손 전 고문은 영결식 때까지 구기동 자택에 머물면서 빈소로 출퇴근할 계획이다. 35년간 김 전 대통령을 보필한 ‘상도동 비서실장’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빈소에서도 변함없이 ‘주군’ 곁을 지켰다. 6·25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으로 김 전 대통령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민주자유당 총재 시절에는 보좌역으로,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 수행실장이 됐고, 퇴임 이후에도 전직 대통령 비서관(1급) 자격으로 곁을 지켰다. 지난 22일 빈소를 찾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끝까지 아버지를 모시던 충신은 어디 갔느냐”며 그를 찾았을 정도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과 홍인길 전 총무수석, 표양호 전 비서관도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공보비서로 연을 맺은 뒤 42년간 함께한 이 전 수석은 집 전화번호 끝자리가 ‘0003(영삼)’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비서밖에 못 한 사람이라 빈소에 들어갈 수 없다. 접객실에서 손님을 맞는 게 할 일”이라며 접객실에 머물렀다. 1979년 신민당 총재 비서로 인연을 맺은 홍 전 수석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함께 첫날부터 조문객을 맞이하는 상주 역할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통치 있을 뿐 정치가 없다” DJ납치사건 때 성토

    “통치 있을 뿐 정치가 없다” DJ납치사건 때 성토

    “이번 해운공사 문제는 지난 금융계 부정 사건과 마찬가지로 전 국민이 주의 깊게 우리 국회의 처리와 우리 정부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첫 당선 후 1954년 10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첫 발언이다. 20대 정치 신인 김영삼은 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해운공사와 조선공사, 조선운수 등 ‘3공사 부정사건’을 추궁하며 “책임을 지라”고 일갈했다. 고향인 경남 거제의 영향 때문인지 국회 회의록을 통해 본 김 전 대통령의 과거 국회 회의 발언 중에는 해운이나 어업과 관련된 것들이 눈에 띈다. 더불어 정권의 정치 테러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야당 투사의 모습과 3당 합당으로 여당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의 모습 등이 그의 국회 회의 발언에 함께 투영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3선개헌 반대투쟁이 한창이던 1969년 김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 전반에 관한 질문에서 “4·19보다 더 무서운 사태가 올 것”이라고 3선개헌을 반대했다. 그는 “박정희씨가 정권을 잡은 후에 경제발전을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한다”면서 “다만 잘사는 사람이 있다면 박정희씨 주위에 몇 사람의 부자를 만들어 놓은 것 이상에는 발전한 것이 없다, 나는 이렇게 단정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확신한 듯 “여기 서 있는 김영삼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발언 이후 며칠 뒤 ‘초산 테러’를 당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 국회 질의에서는 당시 김종필 총리를 상대로 “통치가 있을 뿐 정치가 없다”면서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000불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체통과 귄위가 상실되었을 때 아무 소용도 없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3당 합당 직전인 1989년 10월 12일 교섭단체 연설은 2개월여 뒤 있을 정치적 대사건을 예고하는 듯하다. 김 전 대통령은 “내년부터 전개될 90년대는 금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10년이자 대망의 2000년대를 준비하는 시기”라며 “90년대를 대비하기 위해 구정치의 낡은 유산을 모두 청산해야 한다. 남루한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당 합당을 끝낸 1990년 연설에서는 야당을 달래고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수차례 반복하며 정치적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해 2월 26일 뒤숭숭한 분위기의 본회의장 연단에 선 그는 “민주자유당 창당에 대한 평가는 가까이는 92년 선거를 통해 나타날 것이요, 길게는 후일의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야당을 의식한 듯 “오랫동안 야당에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결코 소수 의견을 무시하거나 묵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특히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와는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해 온 사이”라고 강조했다. 1992년 10월 13일 김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 전 국회의원으로서 한 마지막 교섭단체 연설은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저는 지금 새로운 책임으로 인해 스스로 의사당을 떠나지만 마음은 이곳에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숙해질 의회정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면서 떠납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사설] 노동개혁 제때 못해 겪은 외환위기서 교훈 얻길

    올 정기국회 회기를 불과 2주 남겨 놓고도 여야는 쟁점 현안을 두고 평행선 대치만 계속하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그리고 무상보육 예산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은 쌓였는데 26일 본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심지어 며칠 전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후광을 서로 내년 총선에서 활용하려고 새로운 정쟁을 벌이는 판이다. 여야 모두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통합과 화해라는 유지의 속뜻이 정략보다 민생을 앞세우라는 주문임에도 이를 외면하는 형국이다. 그러잖아도 출범 초부터 무한 정쟁으로 생산성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19대 국회다. 그런데도 26일 본회의에 올릴 안건마저 확정하지 못한 채 여야 지도부는 민생과 무관한 입씨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그의 정치적 아들”이라거나 “나의 정치적 대부”라는 등 YS의 이미지를 차용하기에 급급한 것도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민망한 일이다. 물론 “이들은 정치적 아들이 아니라 유산만 노리는 아들”(이종걸 원내대표)이라는 식의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비아냥도 정쟁에 찌든 소아병으로 비치는 건 마찬가지다. 해는 저물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아궁이에 불을 지필 요량은 않고 길거리에서 삿대질만 하고 있는 꼴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맨날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제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위선”이라며 또다시 국회의 입법 지연 사태를 맹비난했겠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은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가 부도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몰리기까지 김 전 대통령과 당시 내각의 경제관리 실패 책임이 가장 크긴 하다. 다만 노동법 개정을 결사반대했던 당시 야권이나 노동계의 책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1996년 12월 문민정부는 노동법을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야당인 국민회의의 반대를 뚫고 날치기 처리한 뒤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러나 1997년 3월 새 노동법을 처리했으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구제금융을 주지 않겠다는 IMF의 압력에 굴복, 결국 법안을 재개정해야 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데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되풀이할 순 없다. 이는 노동계도 각별히 유념해야 할 명제다. 노사정위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이나 민중 총궐기를 부르짖는 민주노총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에 대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그 이전에 이들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들이 급증하는 까닭부터 음미해 봐야 한다. 합산해도 10%도 안 되는 가입률로는 대표성은커녕 양대 노총이라는 용어 자체가 외람될 정도다. 두 단체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소수 정규직 노조만 쳐다보지 말고 고용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과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려는 청년층부터 먼저 제도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여야와 노동계가 9·15 노사정 대타협 정신을 살려 5대 법안을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절충해 내기를 당부한다.
  • 독일 슈미트 전 총리, 함부르크에서 영면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이 23일 함부르크 미헬 교회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수도 베를린이 아닌 함부르크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것은 슈미트 전 총리의 유언 때문이었다. 고인은 2010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미헬 교회에서 영면에 들기를 생전에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참석자가 1800명에 달한 장례식에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옌스 슈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등 뿐 아니라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인사들이 참석했다. 고인이 총리를 지내던 1974~1982년 프랑스 대통령이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등이 슈미트 전 총리를 배웅했다. 한국에서는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참석했고, 이경수 주독일대사를 대신해 장시정 함부르크 총영사가 정부 대표로 조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어려운 과업에 맞닥뜨려서 옳다고 생각하면 정치적 결과가 따르더라도 최고의 희생을 각오한 채 책임을 다했던 권위있는 인물”이라고 고인을 회고한 뒤 “그의 타계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리 테러를 거론한 메르켈 총리는 “동기는 다르지만 테러가 여전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며 테러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92세인 키신저 전 장관은 “양심 없는 정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던 고인의 전 총리 어록을 인용하며 독일어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완벽주의자이며 분위기 있고 끝없이 탐구하고 영감이 풍부하며 항상 신뢰할 수 있었던 특별한 친구”라고 슈미트 전 총리를 기억했다. 시민들도 추도글을 남기며 슈미트 전 총리를 기억했다.  독일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슈미트 전 총리는 오일쇼크, 환율 위기 등 경제적 위기 뿐 아니라 적군파 테러, 구소련의 핵미사일 유럽향 배치 등 안보 위기 속에서 타협의 묘수를 이끌어내왔다. 유로화 체제의 초기 제안자이기도 하다. 총리직을 떠난 뒤엔 시사주간지 차이트의 공동발행인으로 변신, 현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지난 7월 서울신문 창간 111주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란 질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0.3%에 불과했다. 박정희(33.6%)·노무현(29.3%) 전 대통령은 물론 ‘숙명의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12.8%)에 한참 못 미쳤다. 전두환(1.8%) 전 대통령에 못 미쳤고 이명박(0.9%)·노태우(0.5%)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광복 70주년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김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한 뒤 고인에 대한 평가는 ‘과’(過)보다 ‘공’(功)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분위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야권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화의 큰 산”(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긍정 일색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추모 열기나 삼삼오오 빈소와 분향소를 찾는 일반 조문객들을 보면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통령’보다는 민주화 투쟁과 금융실명제 등 개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모적 정치 갈등이 심한 데다 사회의 큰 어른, 원로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 정치군인들을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정부)도 불가능했고, 그런 측면들이 뒤늦게 평가받는 것”이라며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가 뚜렷한 상황에서 고인 같은 자유주의자가 설 땅은 없었다. 그래서 저평가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고인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하지 않는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여전히 3당 합당의 충격은 물론 임기 중 외환위기 초래, 차남 현철씨의 국정 농단 등이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한편으로 잠시 미뤄 놓은 것뿐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 따른 객관적 평가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시대적 소명을 완수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첫 정권 교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 경제 살리기,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의 혁신”이라면서 “동시에 시대적 소명에 걸맞은 인재풀을 등용했는지, 핵심 공약 사항을 완수했는지 등을 따져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념에 치우쳐 평가해서는 안 된다. 호불호에 따라 사적 감정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평가가 이뤄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모든 전직 대통령은 공과가 있다. 쿠데타처럼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자로 선출한 국민이 있고 제도적 적통성을 가진다”며 “사후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뜻하는 ‘양김(兩金) 시대’ 이후 통합·화합의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양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고 불가피하게 보스 정치나 정치의 사유화 측면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리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양성과 다원성의 기반 위에서 협의성을 높이는 소통형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총재나 제왕적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권을 손에 쥐고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다원화된 원내 시스템의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독재자의 딸” 독설 퍼붓다가 2012년 대선 지지 ‘지독한 애증’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영면에 든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조문했다. 박 대통령이 예를 갖춰 애도를 표했지만 그동안 두 사람은 악연에 가까웠다. 정치적 앙숙 관계가 대를 이은 탓이 크다. 1998년 2월 대통령직 퇴임을 계기로 일선 정치 현장을 떠난 YS와 같은 해 4월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박 대통령 사이에 직접적 연결 고리는 없다. YS 입장에서는 정적이자 박 대통령에게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갈등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YS는 대통령 퇴임 직후인 1999년 김대중 정부의 ‘박정희 기념사업’ 지원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근혜 부총재는 “자신이 하면 옳다고 주장하고 남이 하는 것은 부정하는 반사회적 성격의 인물이 다시는 정치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맞받아쳤다. YS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YS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MB)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이어 YS의 측근들도 잇달아 ‘MB 지지’를 선언하면서 결국 박 대통령은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YS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도 김문수 후보를 격려하면서 경쟁 상대였던 박 대통령을 “칠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시 대선을 8개월여 앞두고 치러진 총선에서는 YS의 차남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탈락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당의 수장인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이때 YS가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철씨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무자비한 정치 보복”이라면서 탈당했다. 그러나 YS는 2012년 대선 직전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도 당선 직후 YS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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