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충돌 2라운드
검찰총장 탄핵안 무산과정에서 불거진 한나라당-자민련간의 충돌은 10일 정당사에서 전례 없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조부영(趙富英)·김용채(金鎔采) 부총재,변웅전(邊雄田) 총재비서실장,김학원(金學元) 총무,정진석(鄭鎭碩) 대변인 등자민련 주요당직자 20여명이 이날 오전 10시 45분쯤 당 소형버스를 타고 항의차 한나라당사에 도착한 것이다. 6층 부총재실로 안내하려던 장광근(張光根) 수석부대변인과 한차례 고성을 주고받아 더욱 격앙된 채 7층 총재실로 몰려간이들은 김무성(金武星) 비서실장실에게 “언제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조를 파기했느냐”,“이회창(李會昌) 총재가 김종필(金鍾泌) 총재더러 ‘기교와 변신의 귀재’라고 했는데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느냐”고 따지며 이 총재와의면담과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총재의 일정이 있는 만큼,사전 약속도 없이 오셨으니 총장을 만나 설명해달라”면서 “그간우리도 많이 참아왔는데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이렇게 오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민련 김학원 총무 등은 “총재를 비롯,총장과 대변인·부대변인이 있지도 않은 얘기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이 너무저열해서 참을 수 없어 경위를 따져야겠다”, “오죽했으면기본 의전을 생략한 채 왔겠나”, “‘자민련은 없앨 당’이라거나 ‘공당이 아니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한 이 총재의 인격이 의심스럽다”는 등 목청을 높였다.
비난이 이어지자 김 실장은 “이렇게 격분한 상태에서는면담을 주선할 수 없다”면서 “‘쇼’하러 온 것밖에 더되느냐”고 맞섰고,남경필(南景弼) 부실장도 “김종필 총재가 이 총재에게 ‘바카야로(바보)’라고 했을 때 우리도 가야 했나”라고 응수했다.
김기배 총장은 “임금님도 없으면 욕한다고 하지 않느냐.
큰 정치 하자.섭섭한 마음에서 그랬다”며 무마를 시도했으나 자민련 의원들의 공세는 계속됐다.분위기가 점점 격해지고 면담 성사가 불가능해지자 자민련 의원들은 “이 총재가떳떳지 못하니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며 35분여만에 발길을 돌렸다.
이지운기자 jj@.
■한·자, ‘견원지간’ 되나.
검찰총장 탄핵안처리 무산 이후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반목이 노골화되고 있다.최근 한·자 균열은 쟁점 현안을 둘러싼 이견 표출의 수준이 아니라 양당 수뇌의 정국인식과대선 전략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자민련과 김종필(金鍾泌) 총재를 상대로 직설화법을삼가던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한·자 대치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 총재와 김 총재간 이례적 상호비방이 정치권 지각변동이나 여야 3당간 관계변화를 상징적으로 시사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있다.
이 총재는 검찰총장 탄핵안이 무산된 직후 한 언론사와의전화 인터뷰에서 “자민련 총재가 탄핵에 공조하겠다는 언명을 공론화했다가 태도를 바꿔 투표에 불참했다”면서 “공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쾌감을 피력했다.
이 총재는 또 “지난주 대전지역 행사 때문에 한·자 공조가 물건너갔다는 얘기는 소아병적인 것”이라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3김’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이 총재가 국정쇄신을 요구하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몰아붙인데 이어 김 총재에게도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한나라당이 자민련 소속 의원의 영입작전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총재도 이 총재의 속내를 감지한 듯 10일 확대당직자회의에서 “국회법 절차도 모르는 사람이,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사람이,신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이 나라 대통령이된다고 하고 있다”며 “국민이 불쌍하다”고 일침을 놓았다.그러면서 “애초 탄핵안 문제로 한나라당과 공조 틀을유지한 바 없음에도 이 총재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며 정색하고 반박했다.
박찬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