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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기자 피살설... 빈살만 냉혹한 민낯 드러나나

    사우디 기자 피살설... 빈살만 냉혹한 민낯 드러나나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비판해 온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일주일 전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실종됐다. 터키 정부는 카쇼기가 사우디 정부에 살해당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개혁적 성향의 차기 군주로 알려졌던 빈살만 왕세자의 냉혹한 전제군주적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8일(현지시간) CNN 등은 카쇼기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빈살만 왕세자를 꾸준하게 저격했다는 점, 그가 지난 2일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사건의 배후에 빈살만 왕세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초대형 탈석유 프로젝트 ‘비전 2030’을 기획하고, 여성의 운전을 전격 허용하는 등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가차 없는 권력자이기도 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11월 부패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왕족을 포함해 수백명의 정·재계 인사들을 구금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든 이슬람 고위 성직자를 체포했다. 사우디 검찰이 현재 이들에 대한 사형 구형을 준비하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3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카쇼기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카쇼기는 총영사관을 방문한 당일 한 시간 안에 건물에서 나왔다. 카쇼기는 총영사관 건물에 없다. 총영사관 수색을 요청한다면 받아들이겠다”면서 “카쇼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만약 사우디에 있다면 내가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 리나 카팁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책임자는 “반체제 인사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태도를 보여 주는 사건”이라면서 “반대파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빈살만 왕세자의 패턴에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사라 레아 윗슨 휴먼라이트워치 중동 담당 이사는 “빈살만 왕세자 억압 통치가 더욱 심화된 것”이라면서 “만약 카쇼기가 안전하게 총영사관을 떠났다면 사우디 정부가 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살만 왕세자와 친분이 두터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카쇼기 사건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매우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이스탄불에서 발생한 만큼 사우디와 터키의 외교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는 ‘카쇼기가 총영사관을 떠났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면서 “보안 카메라도 없느냐. 그가 제 발로 총영사관을 나갔다면 총영사관은 영상으로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카쇼기는 지난 2일 이혼 확인서류를 받으러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이후 로이터통신 등은 복수의 터키 정부 관계자를 인용, 카쇼기가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암살조에 의해 피살됐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한·중 지방정부 교류회의 재개의 참뜻/이강국 중국 시안 총영사

    [월요 정책마당] 한·중 지방정부 교류회의 재개의 참뜻/이강국 중국 시안 총영사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한동안 중단됐던 한·중 지방정부 교류 회의가 지난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에서 열렸다. 송나라 때 서하 왕조가 흥했던 곳이며,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이곳에 이슬람 식품인 ‘할랄푸드’ 인증기관을 두고 아랍 국가와의 통로로 지정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이곳은 서북지역 사막지대에 있지만 황하가 가로질러 흘러 예로부터 벼농사를 지으며 풍요로움을 자랑했다. 온통 바위산 투성이의 허란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깊숙한 계곡에 들어가면 수많은 암각화를 볼 수 있다. 현대 예술의 거장이자 중국의 국민화가 한메이린(82)이 이곳 암각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교류 회의는 양국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2002년부터 열렸다. 주로 국제교류 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참석하는데, 제1회 교류회의는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에서 25명이 참가한 소규모로 열렸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규모가 커져 2012년 제10회부터 200명이 넘게 참여해 명실공히 양국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교류 회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건너뛰고 올해 열린 제15회 교류회의는 그간 못 만난 아쉬움을 떨쳐내듯 중국말로 ‘러랴오’(熱鬧·떠들썩한)한 분위기 속에서 그야말로 양국 간 우의가 어우러진 한마당이었다. 환영만찬 식전 행사 때였다. 중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인 ‘오나라’가 울려 퍼지며 분위기가 살아났다. 양국 인사들의 만찬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교류의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잔을 부딪치며 인사하고 격의 없이 담소를 나눴다. 노영민 주중대사가 이백과 두보의 주옥같은 시들을 직접 써서 중국 인사들에게 건네주자 탄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개막식 축사에서 왕허산 닝샤후이족자치구 부주석은 “교류와 상호 방문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두더원 중국 외교부 외사관리사 부사장은 “두 나라 지방정부가 서로 손잡고 교류를 강화해 한·중 관계가 멀리 발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나가자”고 역설했다. 조선족 출신인 오일환 중국 정법대학 교수는 ‘한·중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 발표에서 양국 관계를 심도 있게 분석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양국 지방정부 대표들이 지방정부 간 우수 교류사례를 발표하고 심도 있는 토론도 이뤄졌다. 이번 교류 회의는 지속가능한 지방 교류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최근 양국 관계 경색으로 중단됐다가 재개됐다는 점에서 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한·중 양국은 수천년 동안 면면이 이어져 온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교류해 왔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하고 정서적으로도 잘 통하는 관계다. 이러한 바탕 덕분에 두 나라 관계는 1992년 8월 수교 이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최근 사드 등 정치적 이유로 한·중 교류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을 계기로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양국 간 교류 협력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어느 누구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한ㆍ중 지방정부 교류 회의가 지속적으로 열려 정치, 경제, 문화, 관광, 교육 등 다채로운 ‘배’로 구성된 한·중 협력의 ‘대선단’이 드넓은 교류의 바다를 활기차게 항해하는 힘찬 동력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왕실비판’ 사우디 언론인 실종 아닌 피살?...총영사관에서 살해팀 15명 동원 보도

    ‘왕실비판’ 사우디 언론인 실종 아닌 피살?...총영사관에서 살해팀 15명 동원 보도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 들어간 이후로 행방이 묘연했던 반정부 성향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공관에서 계획 살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쇼기는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는 글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국내외 매체에 기고해 왔으며 지난해 9월부터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서 체류해왔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WP 등 외신들은 익명의 터키 당국자들을 인용해 카쇼기가 총영사관에서 15명의 암살 팀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됐으며 이후 시신이 공관 밖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독일 dpa통신은 카쇼기의 지인 발언을 인용해 범인들이 카쇼기를 살해 후 사체를 토막 냈다고 보도했다. 터키 경찰은 카쇼기가 혼인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해 영사관에 들어간 날 사우디 국적의 15명이 비행기 2대에 나눠 타고 이스탄불에 도착해 영사관을 들어갔다가 이후 출국했다고 확인했으며 이들의 신원을 파악 중이다. 사우디 측은 이날 카쇼기 피살 의혹 보도가 나오자 강경하게 부인하며 로이터 등 취재진에게 영사관 내부를 공개했다. 앞서 빈 살만 왕세자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카쇼기가 총영사관 도착 직후 그곳을 떠났다고 주장하며, 터키 측에 영사관 수색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터키와 사우디 양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한 카쇼기 실종 사건이 실제로는 사우디 정부가 의도적으로 꾸민 피살 사건으로 드러나면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WP는 사우디 당국이 그동안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백 명을 구속했다고 보도했다. 카쇼기가 당국의 제거 대상에 오른 것은 그가 수십년간 일간 알와탄의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지배계급과 가까이 지낸 데다, 빈 살만 왕세자를 겨냥해 공개적으로 비판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카쇼기는 WP에도 사우디 주도의 예멘 공습과 빈 살만 왕세자가 단행한 숙청 등 정권과 왕실의 강압을 비판하는 기고를 실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금지 기어오르다’ 중국 관광지 엉터리 한글표기 시정요구

    ‘금지 기어오르다’ 중국 관광지 엉터리 한글표기 시정요구

    ‘금지 기어오르다→넘어가지 마시오’ ‘고공에서 낙하하다 물건 머무를 마시오→낙석주의’ ‘관행객 센터→관광안내센터’ 중국 우한 총영사관에서는 한글날을 앞두고 중국 당국에 관광지와 유적지 한글안내판 오류를 수정 요청했다고 7일 밝혔다.우한 총영사관은 후베이성과 후난성, 허난성, 장시성 등 중국 화중지역 4개 성에 한글 표기 오류 시정을 촉구하는 편지를 지난 9월 초에 이어 두 번째로 보냈다. 우한 총영사관 측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장자제와 타이항산, 징조우 고성(관우사당) 차마전 등의 한글 안내문 오류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글 오류 수정작업을 우한 총영사관이 지원하거나 한글 전문기관을 소개하겠다고 제안했다.우한 총영사관은 중국어 한글 표기 오류 형태로 인터넷 번역기로 중국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잘못되거나 안내판 제작과정에서 오탈자와 맞춤법 실수가 일어난 경우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문법과 문맥에 맞지 않아 한국인들의 헛웃음을 자아내는 사례도 많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한 호텔 1층 면세점에서는 한글로 ‘맨세점’ 등 대형 간판을 내걸고 ‘안전 수출’ 등과 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훼손하거나 한글을 배우는 중국인에게 혼란을 주는 내용도 많다고 제시했다. 김영근 우한 총영사는 “우리 국민이 즐겨 찾는 중국 내 일부 관광지와 유적지 한글 안내판 오류가 방치된 실정”이라며 “중국 관련 당국도 안내판 교체작업 등을 할 때 바로잡겠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다스는 MB 것” 판단되면 중형 불가피…뇌물 유죄 시 최소 징역 10년 이상

    “다스는 MB 것” 판단되면 중형 불가피…뇌물 유죄 시 최소 징역 10년 이상

    “형님과 처남이 33년 전 설립해서 아무 탈 없이 경영해온 회사를 검찰이 나서서 저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법원은 과연 어떻게 판단할까. 5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에서 가장 주목되는 쟁점은 “다스는 누구의 것인가“ 꼽힌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최후 진술을 통해 “다스 소유권과 관련한 검찰이 제기한 혐의 내용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16가지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을 밝힌다. 재판부가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진짜 주인이 이 전 대통령이었다고 판단하면 이 전 대통령은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991년부터 2007년까지 다스 법인자금으로 339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 총 349억여원에 이르는 횡령 혐의도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주였음이 밝혀지면 유죄로 판단될 수 있다. 횡령죄의 양형기준은 횡령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기본 5~8년형, 가중 시 7~11년으로 권고되지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는 50억원 이상 횡령한 경우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으로 중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다스 경리직원의 횡령금 회수이익을 고의로 빠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2008년 다스 법인세 31억 4554만원을 포탈한 혐의(특가법상 조세)도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범죄다. 검찰은 다스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실소유주한 게 맞고, 특히 다스 미국소송은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과 김재수 전 LA총영사 등 청와대 관계자들이 관여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지배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 측은 “다스 관계자들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재임 기간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 7억원 상당을 받고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공직임명 대가로 22억원,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4억원을 받는 등의 뇌물 혐의도 더해져 있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의 뇌물 액수만 총 110억원대에 이른다. 검찰은 지난달 6일 결심공판에서 “전례가 없는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며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재산은 지금 살고있는 논현동 집 한 채가 전부이고 검찰이 주장하는 그런 돈을 알지 못한다”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뉴스 분석] 해외공관 폐쇄성에 기강 해이… 성 비위로 번진 ‘엘리트 갑질’

    작년 외무공무원 징계건수 절반 성비위 ‘원스트라이크 아웃’ 도입에도 근절 안 돼 본부와 떨어진 환경에 문제제기 힘들어 외교관들의 성범죄가 줄지어 터져 나오면서 국민의 혈세로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들이 국위 선양은커녕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외교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무공무원 징계건수는 12건으로 이 가운데 6건이 성희롱과 성폭력 등 성 비위 문제였다. 이 중 5등급 외무공무원은 커피숍 등에서 16차례나 여성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돼 강등 처분을 받았다. 또 다른 고위 공무원은 총영사로 재직하면서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갑질을 일삼았다. 최근 외교관 2명이 성 비위 문제로 귀국 조치당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7월 주파키스탄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이 대사관 직원에게 자신의 집에 망고가 많으니 나눠 주겠다고 하고 부른 뒤 강제로 끌어안는 등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이 한국으로 귀국해 잠시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 외교부는 이 고위 외교관을 소환한 뒤 징계 의결을 요구한 상태다. 주인도 대사관에서도 같은 달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한 공무원이 동료직원이 거부 표시를 했음에도 자신이 머무는 호텔에서 술을 마시자고 강요해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2015년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대사의 위력에 의한 직원 성폭력 및 성추행 사건, 2016년 칠레 주재 외교관의 현지 여학생 강제추행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외교부는 지난해 7월 성 비위로 징계받은 재외공관장은 징계 수위를 불문하고 공관장 재·보임을 금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외무 공무원의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부 공무원이 성 비위로 징계받은 건수는 2014년 1건, 2015년 2건, 2016년 7건, 2017년 6건, 2018년 10월 현재 4건이다. 외교관들의 성 비위가 잦은 이유는 해외에서 근무해 기강이 해이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작은 공관에서 소수의 공무원끼리 어울리다 보니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를 형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저개발국에서 더 성 비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우월의식과 갑질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강경화 장관은 내신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적은 인원의 공관에 본부의 관심을 확실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며 “공관 직원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계속 검토하며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끊임없는 외교부 성 비위…지난해 징계 12건 중 절반이 ‘성 문제’

    끊임없는 외교부 성 비위…지난해 징계 12건 중 절반이 ‘성 문제’

    외교부 공무원들의 성 비위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외교부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은 사건의 절반은 성 문제였고, 최근에는 해외 주재 중인 외교관이 성 비위 문제를 저질러 귀국 조치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에서 제출받은 4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외무공무원 징계 건수는 모두 12건인데 이 중 6건이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에 따른 것이었다. 세부적인 징계 사례를 보면, 한 외무공무원은 커피숍 등에서 16차례나 여성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다 적발돼 강등 처분을 받았다. 또 다른 고위공무원은 총영사로 재직하면서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하고 직원들에게 사적 업무를 시키는 ‘갑질’을 일삼아 징계를 받았다. 여성 감사반원 앞에서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부하직원과 불륜 관계를 맺은 외무공무원 사례도 있었다. 또 국회 외통위 소속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외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해외 주재 외교관 2명이 부하직원을 성추행·성희롱을 한 혐의로 적발됐다. 파키스탄 대사관 소속인 외교관 A씨는 지난 7월 초 부인이 한국으로 귀국해 집을 비운 사이 대사관 여직원을 집으로 불렀다. “망고가 많으니 나눠 주겠다”며 직원을 집으로 부른 그는 저녁식사 후 영화를 보며 계속 술을 권했고, 끌어안는 등 신체접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달 주인도대사관의 B씨는 행정직원에게 자신이 머무는 호텔 방에서 와인을 마시자거나 차를 마시자고 지속적으로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현재 소환 조치돼 대기발령 상태에서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외교부 공무원의 성 관련 비위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는 동시에 주재국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사전예방에 최선을 다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해외서도 한국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어요”

    “해외서도 한국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어요”

    “해외에서도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김하나(42)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 관장은 최근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2018 세계한인차세대 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김 관장은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시작해 북미 지역에서 한인 최초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UBC) 아시아도서관장이 됐다. ‘독도지킴이’로도 불리는 김 관장은 2008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독도 관련 도서 분류의 주제어를 ‘독도’에서 ‘리앙쿠르 록스’로 바꾸려는 계획을 보류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김 관장은 독도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미 의회도서관에 독도 주제어를 삭제하려는 계획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작성해 이를 극적으로 보류시켰다. 그는 토론토 총영사관과 미 워싱턴DC 주재 한국대사관에 관련 소식을 알렸고 미디어에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 회원들의 뜻을 모았다. 김 관장은 “당시 북미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 한국학자료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다”며 “미 의회도서관에서 독도 주제명을 리앙쿠르 록스로 바꾸는 제안서가 들어왔는데 심의기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관장은 2009년 한국·캐나다 문화 및 역사적 자원을 위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표로 한 ‘한국·캐나다 문화 및 역사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 관장은 한국 문화와 문학을 현지 사회에 홍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캐나다 주류사회가 선정하는 ‘최우수 이민자’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 관장은 당시 75명의 후보 가운데 유일한 한인 후보였다. 김 관장을 비롯한 24개국 80여명의 한인들은 재외동포재단이 9월 하순에 열었던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석했다. 특히 경영, 법조, 예술, 의료,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차세대 한인 리더들은 참가자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내외 동포 간 교류 확대의 장이 됐다. 이들은 방한기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주최 환영 만찬과 이낙연 국무총리 예방, 각종 포럼과 토크콘서트, 안보·문화 체험 등을 가졌다. 김 관장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시는 한인들을 만나게 돼서 기쁘다”며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석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네크워크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사진 재외동포재단 제공
  • 첫 재판 앞둔 김경수,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 인정되면 집행유예 나올 듯

    첫 재판 앞둔 김경수,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 인정되면 집행유예 나올 듯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첫 재판이 21일 열린다. 댓글조작 공범이 인정돼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로 금고형 이상이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게 되면 지사직을 상실하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성창호)는 21일 오전 10시 김 지사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재판부는 특검팀이 함께 기소한 드루킹 일당 재판을 함께 진행해 병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상 법원은 공소제기 3개월 이내 1심 선고를 해야 한다. 김 지사는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 등을 위해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대선 후에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측근을 앉혀달라 청탁하자 센다이 총영사를 제안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받고 있다. 특검은 선거법에서 금지한 ‘이익제공 의사 표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는 사실 관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앞서 특검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이 기각하며 “공모관계 성립 여부 및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혀 유죄가 인정될지 미지수다. 특검의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면 김 지사는 징역형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는 주로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 등에서 연관검색어를 조작한 경우 적용된다. 특정 업종과 관련된 단어를 연관검색어에 나타나게 하거나 연관검색어 순위를 조작하는 광고서비스 관련 업체 직원들이 기소된다. 식당, 병원, 학원 등을 광고하기 위해 ‘맛집’, ‘성형수술’, ‘꽃배달’, ‘토익’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특정 상호나 업체명이 연관검색어에 나타나게 조작하는 것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과거 판례를 보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연관검색어 순위를 조작해 약 33억원의 수익을 올린 전직 프로게이머 일당에 대해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비슷한 수법으로 네이버 검색어 조회수나 블로그 방문자 수를 늘리는 조작을 한 일당도 징역 4~10개월에 집행유예 1~2년을 선고했다. 대출업체에서 의뢰받아 검색어 순위를 조작한 일당도 징역 1년 6개월~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드물지만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도 있다. 경쟁업체가 포털사이트에 덜 노출되도록 사이버공격한 소셜마케팅업자에게 법원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김경수 측 “댓글조작 몰라” 전면 부인

    김경수 측 “댓글조작 몰라” 전면 부인

    드루킹 측, “노회찬 의원에 돈 전달한 적이 없어”‘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 측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 지사의 변호인은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사건의 범죄사실은 무죄라는 것이 기본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 지사는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에는 정식 공판과 달리 피고인이 직접 재판에 출석할 의무가 없다. 김 지사의 변호인은 “김 지사는 드루킹 등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운용해 각 포털사이트의 댓글 순위를 조작한다는 사실을 몰랐고,이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리상으로도 과연 (댓글조작) 행위가 죄가 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면서 특검 측이 구체적인 업무방해 방법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변호인은 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지방선거의 선거운동과 관련해 드루킹에게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공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바 없으므로 무죄를 주장한다”고 밝혔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쯤부터 올해 2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 등을 위해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불법 여론조작을 벌였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특검은 또 김 지사가 지난해 6월 드루킹과 6·13 지방선거까지 댓글 조작을 계속하기로 하고,같은 해 연말 드루킹의 측근을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에 앉히겠다고 제안한 것을 두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 지사 외에도 검찰과 특검이 여러 차례에 걸쳐 기소한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 드루킹 일당이 김 지사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500만원을 건넨 뇌물공여 사건, 고(故) 노회찬 의원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위반사건 등에 대한 공판준비절차도 함께 진행했다. 이런 혐의로 검찰과 특검이 기소한 피고인은 김 지사와 드루킹을 포함해 모두 12명이다. 이날 공판준비기일에는 김 지사와 김 지사의 전 보좌관을 제외한 10명이 출석했다. 드루킹 측은 댓글 조작 범행과 관련해서는 매크로(자동프로그램)를 이용한 일부 댓글 조작 내용을 제외한 대부분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반면 고 노회찬 의원에게는 돈을 전달한 적이 없고,김 지사의 전 보좌관에게 500만원을 전달한 것은 사실이나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이 없어 무죄라고 주장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양기탁 구속·의연금 횡령 의혹에 화병 난 베델 ‘하늘나라로’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양기탁 구속·의연금 횡령 의혹에 화병 난 베델 ‘하늘나라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1907~1908년 영국 법원에서 두 차례 재판을 받았다. 그가 중국으로 복역하러 간 사이 일제는 양기탁을 구속하고 베델에게도 국채보상 의연금 횡령 의혹을 덧씌웠다. 결국 베델은 신보를 살리고 자신의 명예도 회복하려 동분서주하다가 스트레스로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양기탁 구속으로 국채보상운동 동력 약화 베델이 1908년 6월 영국 법원의 두 번째 재판으로 구속돼 상하이에서 3주 금고형을 마친 다음날인 7월 12일. 한 일본 경찰이 밤늦게 서울 광화문 대한매일신보사 사옥을 서성거렸다. 신보 건물이 영국인 치외법권 지역이어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양기탁(1871~1938)에게 “잠깐 물어 볼 말이 있다”며 밖으로 불러 냈다. 건물 안에 있던 양기탁이 무심코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경찰은 그를 체포했고 곧바로 경시청에 가뒀다. 국채보상 의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신보의 두 기둥인 베델과 양기탁에 대한 일제의 역습이었다. 일본은 베델이 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양기탁을 구속해야 한다고 봤다. 베델이 조선에 있을 때 그를 구금하면 분명 영국 정부에 도움을 청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일본은 베델이 구속됐다가 조선에 오기 직전 양기탁을 잡아들였다. 통감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도 양기탁 구속 이틀 뒤인 14일 돌연 해외로 휴가를 떠났다. 그가 이번 일에 간여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려는 의도였다. 일본은 양기탁이 조선인이기에 베델 말고는 어느 영국인도 그의 신병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영국 총영사 헨리 코번(1871~1938)은 이 사건이 영국인 소유 신문사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이를 묵과하지 않았다. 양기탁은 구속됐다가 구타 등으로 다쳐 병원에 이송되던 중 탈출해 신보사로 숨었다. 일본은 양기탁의 인도를 요구했지만 코번은 이를 거부하고 그에 대한 고문을 끝까지 막았다. 결국 양기탁은 코번의 도움 덕분에 인도주의적 환경에서 재판을 받아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번은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외교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총영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그해 8월 런던으로 돌아갔다. 6개월쯤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교관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당시 49세였다.●금고형 이후 달라진 여론… 당황한 베델 베델은 7월 11일 금고형을 마치고 17일 조선에 돌아왔다. 하지만 불과 몇주 사이에 자신을 바라보는 조선인들의 시선이 크게 차가워졌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그와 양기탁에게 도덕적 타격을 입혀 신보와 KDN을 무력화하려던 일제의 공작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가 조선에 들어올 무렵부터 한국인이 운영하던 친일 신문들은 일제히 “베델과 양기탁이 국채보상 의연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다룬 기사를 쏟아냈다. 신보를 통해 자신의 무고함을 해명하고 국채보상금 총합소에서 나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일본에 협력하는 친일 매체들이 만들어낸 ‘파렴치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 국채보상운동은 한계가 명확했다. 국민들의 순수 모금만으로 조선의 1년치 국가 예산에 맞먹는 1300만원을 모으겠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졌다. 설사 모금운동이 일본에 위협이 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하더라도 일본은 언제든 ‘화폐개혁’ 카드를 꺼내 그간 모은 의연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불안감이 내재된 상황에서 베델과 양기탁의 국채보상금 횡령 의혹까지 생겨나자 운동의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 둘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 커졌다. 실제로 8월 10일에 열린 국채보상금 총합소 특별위원회에서 회계감사 이강호는 “베델이 의연금 운영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조선인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박했다. 지금보면 적반하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베델의 횡령 의혹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베델은 자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같은 달 27일 열린 의연금 총합소 평의회에 직접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서 인생 최악의 굴욕감을 맛봤다. 그가 감옥살이를 하고 온 사이 평의회 의장 자리를 한석진 국민신보 사장이 차지하고 있어서였다. 국민신보는 한국인이 창간한 대표적인 친일지이자 매국단체 일진회(1904~1910)의 기관지였다. 1907년 7월 고종이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왕위를 순종에게 넘기자 시위 군중들이 이 신문사의 사옥과 인쇄 시설을 부수기도 했다. 일진회는 항일단체로 출발했지만 단체 간부들이 대거 일본에 매수돼 친일단체로 탈바꿈했다. 그런 신문사의 사장이 국채보상 총합소의 최고 책임자가 됐다는 것은 사실상 국채보상운동이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갔음을 뜻했다. 그간 친일 행적을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인물이 되레 조선의 독립을 돕다가 감옥까지 다녀온 자신을 비난하며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모습에서 끝없는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일부 조선인들이 자신을 ‘의연금에 손을 댄 좀도둑’으로 취급하는 상황에 모멸감도 컸을 것 같다. 이에 대해 베델의 부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은 베델 사후인 1910년 8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베델)은 그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조선인을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저 일본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운명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中 언론 “베델, 횡령 실토” 의도적 오보 8월 30일 중국 일간지 ‘노스차이나 데일리뉴스’가 “베델이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를 자백했다”는 기사를 냈다. 도쿄 특파원이 일본 당국자의 말을 듣고 쓴 기사였다. 해당 기사는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서 발행되던 영자 신문에 빠르게 퍼졌다. 당시 조선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사였던 베델은 이 기사 하나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조선 독립운동가’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다. 베델은 곧바로 중국 법원 등에 이 신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확인 결과 해당 기사는 일본 국민신보 기자가 영자신문 특파원을 가장해 쓴 것이었다. 일본의 공작이었다. 베델은 소송에서 이기며 자존심을 회복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신뢰는 크게 무너진 뒤였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잃었다. 일제의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독주와 담배로 달랜 탓이 컸다. 평소에도 몸을 돌보지 않던 성격이었던데다 오랜시간 명예훼손 소송과 신보 재정 지원에 나섰던 탓에 그는 이듬해인 1909년 5월 1일 심장 팽창 증세로 숨을 거뒀다. 겨우 서른일곱살이었다. 영국 출신 역사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은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조선을 구하려고 했던 이유를 이른바 ‘젠틀맨’(올바른 일에 목숨을 거는 신사도 소유자) 정신에서 찾았다. 코웰은 “베델은 당시 최고 수준의 학교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고, 영국 성공회 전도사의 딸인 어머니로부터 ‘올바름의 추구’라는 종교적 가치도 전수받았다. 이것이 훗날 조선에서 그의 삶을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서울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으로 간 김기림 기념비 日에 건립… 평화 추구한 시인 재평가 되길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으로 간 김기림 기념비 日에 건립… 평화 추구한 시인 재평가 되길

    시인 김기림(金起林)의 기념비가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학 구내에 11월 30일 건립된다. 김기림 시비는 그가 다닌 서울 보성고(송파구 방이동)에 있으나 일본에 기념비가 건립되기는 처음이다. 일제 시대 교토의 도시샤대학을 다닌 윤동주(1917~1945) 시인의 기념비가 1995년 2월, 정지용(1902~?) 시인의 시비가 2005년 12월 도시샤대학 구내에 건립된 바 있다. 김기림이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다닌 도호쿠제국대학은 일본 제국주의의 관료 양성을 위한 도쿄·교토제국대학과는 달리 연구 중심의 대학을 표방하고 연구의 자유가 비교적 존중된 학교였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남기정 교수에 따르면 유대인 사상가 카를 뢰비트가 1936년부터 5년간 나치스를 피해 도호쿠대학에 재직했을 정도다. 1922년에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센다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기림이 도호쿠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아인슈타인에 있을 것이라고 남 교수는 추정한다.기념비 건립은 몇 년씩 걸리던 윤동주, 정지용 때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센다이에서 김기림을 생각하는 한·일 시민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김기림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진 게 지난해 11월. 남 교수를 중심으로 김기림 연구의 권위자인 김유중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진원 서울시립대 교수, 고선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 등이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사업회가 기념비 건립준비위원회로 전환한 것은 지난 6월이다. 기념비 건립에 관심을 보인 외교부가 지원에 나서고, 도호쿠대학에서 협력 의사를 밝히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준비위에 각계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다음은 기념비 건립위원회 한국 측 대표인 남기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 →일본 정치 전공이다. 시인 김기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2년 도호쿠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우연히 김기림이 영문학과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살짝 흥분한 적이 있다.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그가 평화를 중심으로 사고한 ‘평화주의자’임을 알게 됐다.→김기림 기념비가 윤동주 기념비, 정지용 시비와 다른 점은. -윤동주는 한국 문학사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뒤 일본에 시집이 번역됐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희생된 시인이기 때문에 과거를 반성하는 일본 시민들이 ‘윤동주 읽기’를 전국적으로 전개했고, 평화운동의 상징적 의미로 읽혔다. 그에 비해 김기림은 일본에서는 덜 알려진 존재다. 센다이 지방에서 김기림을 일찍이 알고 공부한 아오야기 유코 같은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가 김기림을 읽는 모임을 만들고 자료를 축적해 책도 냈다. 기념비는 김기림을 일본에서 발굴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즉 윤동주, 정지용 시비는 이미 알려져 있던 한국 문학가를 일본적 맥락에서 재평가하고 기리는 뜻이었다면 김기림 기념비는 그의 일본 행적, 문학적 성과를 드러내는 출발점이다. →도호쿠대학의 협조는 어느 정도인가. -부지 제공을 비롯해 대단히 협조적이다. 우에키 도시야 부총장이 7월 11일 서울에 왔을 때 김기림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기념비 건립까지 생각하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보다 3개월 전인 지난 4월 센다이총영사관에서 공공외교 차원에서 도호쿠대학을 방문했는데 그때 이미 한·일 교류에 많은 관심을 총장부터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얘기가 빨랐다. 당시 도호쿠대학 측은 김기림의 학적부도 찾아서 보여줬다. 아쉽게도 졸업 논문은 센다이 폭격 때 불타고 없어진 듯했다. →부지는 결정됐나. -후보지 세 곳을 대학 측에서 제시했는데, 우리가 현장 답사해 보니 벚꽃 두 그루가 있는 개방적인 풀밭이 있었다. 여기가 더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 전 도호쿠대학 측이 “좋다”는 허가를 해줬다.→기념비 디자인은 누가 하는가. -시인 이상에 조예가 깊은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에게 상의를 했더니 관심을 보여줬다. 김 교수는 이상을 알아 봐준 김기림에 관심이 있다는데, 기념비에는 그의 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일정은. -10월에는 기념비를 발주하고 11월 29일 센다이에서 전야제를 가진다. 30일에는 기념비 제막식에 이어 ‘김기림과 평화’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센다이 시민 중심의 ‘문학의 밤’ 행사도 개최한다. 김기림이 한·일 시민사회를 가깝게 하는 상징이 되어 기념비가 세워진 뒤에도 모임을 갖고 연구가 진전이 됐으면 한다. 또한 남북 문인들이 김기림을 생각하는 기회도 마련됐으면 좋겠다. →기념비 건립의 의미라면. -김기림은 시도 시이지만, 많은 평론을 썼다. 해방 공간에서 시가 문학사에서 갖는 역할이 크지만, 김기림은 평론가로서, 경세가로서의 모습도 갖고 있다. 일본에 의해 굴절되지 않은 조선의 모더니즘을 그만큼 고민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왜 지금이냐’ 는 의미도 중요한데, 한반도의 그 시기를 살았던 지성인, 지식인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잣대로 평가한다. 이념적 잣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무시하거나 과도한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이 평화 프로세스를 전개하면서 해야 할 것은 분단 정권 수립 이후 지나치게 양극단으로 가 있었던 부분들을 바로잡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통일과 화해로 가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양극단 사이에 난 좁은 길에서 평화를 추구했던 김기림을 평가했으면 한다. 그는 정치적 주의·주장을 떠나 민족의 안팎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분열과 분단을 극복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marry04@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항일 기사’ 베델 고소… 英 두 번째 재판 후 中 감옥 수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만든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는 조선에서 신문 이상의 위상을 누렸다. 국채보상운동(1907~1908)을 주도했고 항일단체 신민회(1907~1911)의 산파도 맡는 등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국제 여론에 민감했던 일본은 자신들이 벌이던 만행이 신보와 KDN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되는 사실이 매우 불편했다. 결국 베델을 조선에서 내쫓기로 하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베델, 英·日 모두에 ‘눈엣가시’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의 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에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전후해 일본이 그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잘 묘사돼 있다. 일본이 조선에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1904년)하고 화폐개혁을 강제(1905년)할 때 베델은 신보와 KDN을 통해 음모를 폭로한다. 이때마다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나 탁지부(재정을 담당하는 중앙관청)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는 베델의 기사에 화를 내고 괴로워한다. 아래는 베델이 실제로 1907년 9~10월 신보와 KDN에 게재한 항일 관련 기사의 일부다. “서울 용산에서 한 조선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부인을 데리고 일본군 병영을 지나갔다. 이때 한 일본 군인이 장난삼아 이들에게 총을 쐈다. 탄환이 여인의 옆구리를 관통해 아이 엄마가 즉사했다. 아이의 한쪽 손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일본군군 병영에 뛰어 들어가 장교에게 항의했지만 되레 길거리로 쫒겨났다.”(KDN 9월 3일자) “수원에서 10여㎞ 떨어진 곳에서 일본군과 조선 의병 간 전투가 벌어졌다. 30명의 의병이 일본 군대에 포위돼 대부분 잔인하게 사살됐다. 일본군 장교는 분이 덜 풀린 듯 생포한 이들을 모두 끌어내 목을 베었다.”(KDN 9월 26일자) “한국 국민들이여! 독립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 않은가? 미국과 그리스, 이탈리아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라. 지금 이들 세대가 누리는 행복은 바로 조상들의 피로 얻은 것이다.”(신보 10월 1일자)일본은 베델이 신보와 KDN을 창간할 때부터 진의를 의심했다. 그가 반일 논조를 고수하는 이유가 신문 창간 자금이 고종에게서 나왔기 때문일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서 그가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종과 러시아가 재정지원에 나서기 좋을 만한 신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학계에는 베델이 러시아 스파이였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베델 연구 1인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일본은 베델과 러시아 간 연관성을 찾고자 전방위적으로 나섰지만 어떤 증거도 잡아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日, 본격적인 베델 추방 공작 추진 1906년 12월 영국 ‘트리뷴’지에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고종의 칙서가 게재됐다. 영국기자 더글러스 스토리가 목숨을 걸고 문서를 공개한 것이다. 그러자 베델도 이듬해 1월 신보와 KDN에 이 기사를 전재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렸다. “조선이 일본에 자발적으로 외교권을 넘겼다”고 주장해 온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베델은 일본뿐 아니라 고향인 영국에서도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1902년에 맺은 영일동맹(영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이권을 함께 나눠 갖고자 체결한 조약)으로 두 나라가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때여서 그의 행보는 영국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였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면 그를 조선에서 추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공작을 시작했다.일본은 1898년 태국에서 ‘태국자유신문’이라는 영자지를 발행하다가 추방된 J J 릴리라는 영국인 사례를 베델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폈다. 릴리가 영국 정부의 동의하에 추방됐기 때문에 베델도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릴리 추방 당시 영국 하원이 이를 정쟁화했던 경험이 있어 영국 정부로서는 선뜻 베델의 추방을 묵인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영국 외무부는 베델을 굳이 추방까지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신보와 KDN이 재정난으로 휴간과 복간을 반복해 가만 내버려두면 곧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영국의 불확실한 입장 등을 감안해 베델을 직접 추방하려던 계획을 접고 영국 사법당국에 그를 고소해 처벌받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국 외무부는 “가능한 한 일본의 희망을 충족시켜 주겠지만 영국인이 조선에서 누리는 치외법권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재판에 나섰다.●첫 번째 재판 ‘치안 방해’ 혐의 6개월 근신형 베델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은 1907년 10월 14일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법정에서 열렸다. 한국인과 영국인, 일본인이 참석한 동북아 최초의 국제재판이었다. 일본은 “베델이 신보를 통해 조선인들의 폭동을 선동한다”면서 “신보의 논설이 그대로 의병대의 창의문으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주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1871~1938)이 판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베델에게 적용된 혐의는 ‘치안 방해’였다. 코번은 베델의 행동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본국의 제국주의 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재판은 오전 11시에 시작돼 오후 4시 30분에 마무리됐다. 다음날 아침 코번은 베델에게 6개월 근신형을 명하고 보증금 300파운드를 납부하게 했다. 통감부 일간지 서울프레스는 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고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베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첫 재판 판결 뒤 베델은 항일 논조를 더욱 강경하게 이어 갔다. 1908년 3월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1851~1908) 암살 사건 등을 대서특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영국에 “베델을 추방해 달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영국은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그를 다시 한 번 재판정에 세웠다. 이번에는 기존 ‘치안 방해’ 혐의에다가 ‘공금 횡령’을 추가했다. 그가 국채보상운동 과정에서 모은 의연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죄목이었다.●‘공금횡령’ 혐의 추가 두 번째 재판선 실형 두 번째 재판은 1908년 6월 15일부터 3일간 서울 주재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렸다. 이 재판은 미국 AP통신이 직접 참관하며 취재할 정도로 국제적 관심이 컸다. 이번에도 영국총영사 코번이 판사로 나섰다. 재판 마지막 날인 18일 코번은 베델에게 3주간 금고형(6개월 근신 포함)을 판결했다. 첫 실형이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시설이 없었다. 결국 영국은 베델을 중국 상하이에 있던 영사관에 마련된 감옥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틀 뒤인 20일 베델은 서울역에서 기차로 인천에 이송됐다. 판결 이후 장기간 서울에 있으면 군중이 몰려와 반대 시위에 나설 것을 우려해서였다. 당시 인천과 상하이 간 정기배편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 군함 ‘클리오’호가 단 한 사람을 데리러 인천에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첫 번째 재판 때만 해도 별 반응이 없던 서울프레스는 이번에는 부록까지 발행하며 판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상징적이나마 베델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났던 것 같다. 서울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상하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일본 홋카이도 6.7 강진…39명 실종되고 전역 300만가구 정전

    일본 홋카이도 6.7 강진…39명 실종되고 전역 300만가구 정전

    6일 새벽 일본 홋카이도에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해 현재까지 1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실종됐으며 130여명이 다쳤다. 홋카이도 전역의 약 300만 가구에 정전이 발생했고 곳곳에서 단수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신치토세 국제공항이 폐쇄되고 신칸센 운행이 중단되는 등 교통도 마비상태에 빠졌다. 이번 지진과 관련해 아직까지 우리 국민의 피해는 접수된 게 없으나 최종 확인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제21호 태풍 ‘제비’가 오사카 등 서일본을 할퀴고 간지 이틀 만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본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일본 기상청은 이날 오전 3시 8분 홋카이도 남부에서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쓰나미(지진해일)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최고 진도는 아비라초의 ‘6강(强)’으로 관측됐다. 최대도시인 삿포로시에서도 진도 5강의 진동이 관측된 것을 비롯해 홋카이도 전역은 물론 인근 아오모리현 등에서도 흔들림이 느껴졌다. 기상청은 정전 등으로 관측 데이터가 들어오지 않은 일부 지역의 경우 진도 7의 진동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진도’는 일반적인 지진 에너지의 크기를 뜻하는 ‘규모’와 달리 실제 흔들림의 정도를 나타내는 일본의 자체 기준이다. 0(평상시)부터 1, 2, 3, 4, 5약, 5강, 6약, 6강, 7까지 10단계로 구성돼 있다. 6강은 사람이 기어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으며, 고정되지 않은 가구 대부분이 움직이거나 쓰러지는 것이 많아지는 정도를 나타낸다.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하다.NHK에 따르면 오전 11시 기준으로 1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실종됐으며 13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도마코마이시에서 82세 남성이 자택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아쓰마초에선 주택 5채가 무너져 주민이 매몰됐다. 삿포로시에서도 주택 2채가 붕괴했으며 무로란시에선 석유 관련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홋카이도 내에 있는 모든 화력발전소가 멈춰서면서 전역 295만 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홋카이도전력은 수력발전소를 가동해 화력발전소에 전원을 공급, 운전 재개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정상화 시기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도마리무라에서도 진도2가 관측돼 원자로 3기가 모두 운전 정지됐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는 상태라고 홋카이도전력은 밝혔다.이번 지진으로 인한 교민과 관광객 등 한국인의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현규 삿포로총영사는 오전 “현 시점에서 우리 국민의 인명 및 재산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하루 10편 정도의 항공편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는 만큼 앞으로 피해신고가 들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기상청은 “향후 1주일 정도는 최대 진도 6강(强) 정도의 지진에 주의하고 특히 2~3일 사이에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하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진 활동에 주의하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진 발생 1분 만인 오전 3시 9분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관저대책실을 가동하고 긴급대응에 나섰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진 발생 20여분 만인 오전 3시 30분 피해 및 복구 상황 등에 대한 1차 브리핑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일본 간사이공항에 고립된 5000여명 버스·배로 탈출

    일본 간사이공항에 고립된 5000여명 버스·배로 탈출

    일본 간사이공항이 태풍 ‘제비’로 인해 폐쇄됐다. 공항이 위치한 인공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는 인근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과 부딪혀 끊어진 상태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4일 간사이공항에는 이용객 3000명과 직원 2000명이 고립돼 있다.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 따르면 이들 중 한국인 50여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측은 5일 버스와 배를 통해 고립됐던 사람들을 육지로 탈출시키고 있다. 110인승 정기선 3편을 15~20분 간격으로 운항하고, 버스는 파손된 다리 일부를 거쳐 인근 육지인 이즈미사노까지 운행 중이다. 외교부는 이날 일본을 강타한 제21호 태풍 ‘제비’로 인해 한국민 1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공항에 고립된 이들에 대해선 고베·요코하마·후쿠오카 등 인근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외교부 본부 및 주오사카 총영사관은 대사관 홈페이지 및 SNS 등을 통해 현지 교통 정보와 일본발 항공편의 증편·증석 관련 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간사이공항은 현재 제1터미널 지하와 주기장, 전기 설비가 있는 기계실 등이 침수됐다. 이에 더해 활주로 2개가 폐쇄돼 공항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또 공항과 육지를 잇는 다리(길이 3.8㎞)가 강풍에 휩쓸린 유조선(길이 89m·2천591t)과 충돌하면서 파손됐다. 특히 항공기 이착륙에 필요한 통신설비 등이 물에 잠겨 복구하는 데 장기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MB 청와대, 용산참사 덮으려 ‘연쇄살인범 강호순 이용’ 지시

    MB 청와대, 용산참사 덮으려 ‘연쇄살인범 강호순 이용’ 지시

    경찰특공대, 안전장비 없이 등 떠밀려 투입김석기 등 당시 경찰 지휘부 책임 부인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용산 재개발구역 철거 세입자들을 경찰이 무력 진압해 6명이 숨진 이른바 ‘용산 참사’ 논란을 덮기 위해 연쇄살인마 강호순을 적극 홍보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 특공대는 소화기와 안전매트, 크레인 등 경찰과 철거민의 안전을 지켜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경찰 지휘부에 등을 떠밀려 무리한 진압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를 비롯한 경찰 수뇌부는 진압 작전이 위험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발뺌하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5일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심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이모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 이 행정관은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 행정관은 구체적인 홍보방침도 지시했다. 즉각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온라인 홍보팀을 활용해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 전경 등의 연인원 ▲수사와 수색에 동원된 전의경의 수기 등을 언론에 퍼트릴 것을 지시했다. 이 행정관은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으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라”고 강조했다.군산연쇄살인 사건은 2009년 초 경기 서남부 지역 등에서 10명의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강호순이 붙잡힌 사건을 말한다. 당시 언론은 피의자의 얼굴과 신원을 일찌감치 공개하고 검거 수사관의 인터뷰를 실었으며, 일부에선 강호순의 가족사진을 입수해 보도하는 등 치열한 보도 경쟁을 벌였다. 자연스레 용산 참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용산4구역 상가세입자들이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있는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시작하자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 등이 이튿날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고 철거민 9명과 특공대원 21명이 다친 사건이다.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는 사건 전날 현장을 둘러본 뒤 “백주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어찌 이런 일이…이런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 우리 경찰의 임무가 무엇이냐”고 말하며 경찰특공대장을 격려했다.이후 진압작전이 실행됐으나 계획과 달리 현장에는 대형크레인 2대 대신 소형크레인 1대가 투입됐고 낙하사고를 예방할 에어매트는 설치되지 않았다. 유류화재를 진압할 화학소방차 대신 일반 화재 진압용 펌프차 2대만 동원됐다. 특공대원들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전 예행연습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특공대 제대장은 작전을 연기해달라고 상부에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당시 서울청 경비계장은 “겁 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밑에서 물포로 쏘면 될 거 아냐”라고 나무랐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특공대가 옥상에 1차 진입하자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하고 망루 일부가 무너지면서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1차 진입 후 후퇴한 특공대 제대장은 특공대장에게 “저항이 격렬하다”고 보고했으나 경찰 지휘부는 추가 진입을 재촉했다.2차 진입에서 결국 옥상과 망루에 가득찬 유류성 인화물질이 폭발하며 큰 불이 났고 인명 참사가 발생했다. 조사위는 “2차 진입 강행은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며 “1차 진입 후 유증기 등으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 점 등을 파악해 적절히 지휘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당시 서울청 지휘부의 이같은 조치가 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각종 여론조사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이는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지시가 발단이 돼 이뤄진 조치로 드러났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용산참사 후 사퇴했다. 이후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주일본 오사카 총영사관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경북 경주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조사위는 “당시 경찰지휘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였다”며 “그런데도 김석기 청장을 비롯한 당시 경찰지휘부는 용산 참사 진상 규명에 협조하지 않고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美 캘리포니아주 ‘도산 안창호의 날’ 제정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매년 11월 9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선포하고, 도산 선생이 남긴 정신적 유산을 이어 가기로 했다. 1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의회 상·하원 공동으로 추진돼온 ‘도산 안창호의 날 제정 결의안(ACR 269)’이 지난달 28일 상원 전체회의에서 찬성 39, 반대 0, 기권 1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하원은 지난달 13일 통과됐다. 이로써 도산 선생의 탄생일인 11월 9일을 올해부터 ‘도산 안창호의 날’로 선포하게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미 국적이 아닌 외국인의 업적을 기리는 날이 제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역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결의안은 캘리포니아 주하원 소속 최석호 의원을 비롯, 샤론 쿼크 실바 의원, 짐 패터슨 의원, 호세 메디나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총영사관 관계자는 “도산 선생은 한인들의 미 이민사에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캘리포니아의 ‘도산 안창호의 날’ 제정을 계기로 도산 선생의 리더십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주하원은 지난달 13일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안창호 선생은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애국지사 중 한 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1878년 태어난 그는 한국인들에게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특검 별건’ 백원우·송인배 사건, 직권남용·정치자금 규명 가능할까

    ‘특검 별건’ 백원우·송인배 사건, 직권남용·정치자금 규명 가능할까

    검찰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검팀으로부터 이관받은 백원우·송인배 비서관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면서 향후 어떤 결론이 날지 주목받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들 비서관에 대한 혐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신응석)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를, 서울동부지검은 송인배 정무비서관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아직 사건을 수사 부서에 배당하지 않았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27일 대국민 보고에서 백 비서관이 도모 변호사를 만난 정황에 대해 ‘사건은폐’는 아니라면서도 ‘직권남용’ 혐의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직권을 남용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특검 관계자는 “청와대 비서관이 도 변호사를 부른 것 자체가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도 변호사는 드루킹이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오사카 총영사 후보로 추천한 인물로, 댓글조작 공범 및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검팀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압수수색 당일인 지난 3월 21일 백 비서관이 도 변호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이틀 뒤인 23일 청와대에서 면담을 진행한 것이 사건을 은폐할 목적이었다고 의심하고 조사를 벌여왔다. 법조계에선 도 변호사가 인사청탁 대상자였던 만큼 직권남용 피해자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특검팀이 사건 은폐를 목적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백 비서관이 도 변호사를 직권을 남용해 부른 것이라고 보긴 힘들것”면서 “차라리 특검팀이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걸었던 공직선거법상 이익제공금지 위반 혐의 연장선상에서 수사하고 결론을 내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 비서관이 강금원 회장이 운영한 골프장 웨딩사업부 이사로 등록돼 매달 300만원씩, 도합 2억원을 받은 정황도 증거 부족으로 입증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전혀 일을 하지 않고 급여만 받은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성립되겠지만, 명확한 물증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 측은 “공개적으로 이사로 등록돼 급여를 받았다는 건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특검 “김경수, 드루킹과 8800만번 댓글 조작한 공범”

    특검 “김경수, 드루킹과 8800만번 댓글 조작한 공범”

    “대선·지방선거 겨냥해 활동”…12명 기소 사실 확인 땐 현 정부 정통성 시비 불가피 “김정숙 여사는 불법적 활동 몰랐다” 결론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와 함께 지난해 대선, 올해 지방선거를 겨냥해 포털 댓글 조작을 벌였다고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결론 내렸다. 특검은 또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김 지사의 요청에 따라 드루킹이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한 도모 변호사를 지난 3월 면담한 직권남용 의혹에 대해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관련 기록을 검찰에 넘겼다.특검팀은 27일 대국민 보고를 열고 지난 7월 27일부터 이어져 온 60일 수사 결과 김 지사와 드루킹 등 12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특검팀은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경제적 공진화 모임)과 공모해 2016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7만 6000여개 댓글에 8800여만회의 공감·비공감 클릭을 눌러 댓글을 조작하는 데 공모했다고 결론지었다. 특검팀은 김 지사의 경우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드루킹에게 지방선거운동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돕는 대가로 도 변호사에게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공직선거법의 이익제공금지 규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특검 주장대로 사실관계가 확정될 경우 현 정부의 출범 과정을 놓고 정통성 시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특검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경공모, 혹은 드루킹의 대선 당시 조직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의 불법 댓글 활동 등을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김 여사가 대선 경선 연설회 중 ‘경인선도 가야지’라는 동영상이 나오며 의혹이 불거지긴 했지만, 대선 후보 배우자가 단순히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은 것만으로 불법행위에 연루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보고를 끝으로 막을 내린 특검 수사를 놓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 지사나 청와대 관계자 등 핵심 여권 인물에 대해서 신병 확보 및 혐의 특정에 실패하고, 특검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 수사 연장 신청을 포기하면서 ‘빈손 특검’이라는 오명이 생겼다. 불법 정치자금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허 특검은 이날 “수사 기간 중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에 대해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허 특검은 또 “정치권에서 수사에 대해 지나치게 편향적인 비난이 계속된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다만 여론 왜곡을 위해 댓글 조작을 하는 외곽단체가 개입하는 정치권의 선거철 생태계가 드러난 점은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드루킹은 특검 수사에서 2007년 대선 당시 ‘댓글 기계’를 운영했다는 정보를 들어 킹크랩을 개발했다고 털어놓는 등 여야 양쪽에서 모두 여론 왜곡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정황을 시사한 바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필리핀 세부서 20대 한국인 남성 총 8발 맞고 사망

    필리핀 세부서 20대 한국인 남성 총 8발 맞고 사망

    필리핀 세부에서 20대 한국인 남성이 총격으로 숨졌다. 외교부는 “26일 오후 6시 17분(현지시간) 세부 프린스코트 모텔 2층 복도에서 우리 국민인 20대 남성이 권총을 맞고 사망했다”고 27일 밝혔다. 피해자는 머리·가슴·손 등에 8발의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 수사 당국은 모텔의 경비원이 사건을 최초 신고한 직후 목격자를 확보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현지 수사 당국은 필리핀인 한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해 뒤를 쫓고 있다. 이 당국자는 “주세부 총영사관은 사건 인지 직후 담당 영사 및 코리안 데스크에 파견 근무 중인 한국인 경찰관을 사건 현장에 파견해 필리핀 수사 당국과 긴밀히 공조하는 한편, 사건에 대한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체류 중인 피해자의 유가족에 연락해 유가족의 신속한 필리핀 입국 및 국내로의 시신 운구 준비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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