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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괌」 지진 교민피해 없어/총영사관 건물만 손상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괌지진사태와 관련,『총영사관 부속건물 일부가 약간의 손상을 입었다는보고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 교민이나 여행객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정확한 재산피해는 현재 조사중이어서 파악되지 않고있다』고 덧붙였다.
  • 브라질이민 30돌/교민들 기념행사

    【상파울루 연합】 한국인들의 브라질 이민 30주년을 기념하는 교민행사가 5일부터 김정순 상파울루주재 한국총영사와 김상인 한인회장,고령의 1차이민대표,상파울루 시관계자 등 각계인사와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파울루시 파레시스소재 교민회관과 아넴비 대극장,파가엥부 경기장 등 시내 곳곳에서 다채롭게 펼쳐지고있다. 5일밤(한국시간) 개막된 이번 행사에는 특히 국내주부들로 구성된 한국여성합창단과 전통문화예술연구원 회원 등 70여명이 참가해 교민사회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한편 6일 상오 상파울루시내 아넴비대극장에서 진행된 교민 위로행사에서는 축하사절단으로 참가한 한국여성합창단원들이 우리 가곡과 민요,이탈리아 전통음악 등을 부른데 이어 한복 패션쇼까지 곁들여 교민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 임정선열 5위 상해 천묘식 이모저모

    ◎국화에 싸인 영정주의 애국가 울러펴져/북한 자극않게 행사규모 대폭 축소/중국관리,“앞으로도 유해봉환 협조” ○…임시정부 선열 5위가 국내에 봉환되기에 앞서 5일 상오 중국 상해 만국공묘내에서 열린 천묘식은 애국가가 연주되는 속에 태극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32분동안 엄숙하게 거행. 만국공묘 한쪽에 설치된 제단에는 선열 5위의 영정과 옥함이 국화꽃속에 설치돼 경건한 천묘식 분위기를 한결 높여줬다. 이날 천묘식 식장에는 유해봉안에 따른 북한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김영삼대통령과 3부요인의 화환은 설치하지 않았으며 애국가 봉창도 생략. 천묘식은 유족및 각계대표의 헌화 및 분향으로 끝났는데 임시정부 선열 5위들이 한창 독립운동을 할 때 즐겨부르던 「애국지사의 노래」가 식종료후 은은하게 울려퍼지기도. 「양자강 깊은 물에 낚시 드리우고 독립의 시절 낚던 애국지사들」이란 가사에서는 참석자들의 콧등이 시큰할 정도. ○…천묘식을 마친 선열 5위의 영정 및 옥함은 곧바로 버스에 옮겨져 상해 강교국제공항으로 출발. 선열5위의 영정 및 옥함은 이날 아침 봉환단이 타고온 KE6146 특별기편에 실려 상오11시34분 서울로 향했다. ○…이번에 봉환된 박은식선생등 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묻혀있던 중국 상해시 만국공묘는 중국의 민족지도자 손문선생의 부인 송경령여사의 이름을 따 「송경령능원」으로도 불리는 곳. 만국공묘 외국인 묘역에는 6백여묘의 외국인 묘가 들어서 있는데 우리 애국지사 유해의 경우 임정요인 5위를 포함,모두 10여위가 있다. ○…이번 임시정부 요인 봉환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10만달러를 만국공묘관리사무소에 전달. ○…중국측과의 봉환협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북한측이 박은식·노백린·안태국선생등 3분의 고향이 황해도와 평남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북한으로의 봉환을 중국측에 강력히 주장,한때 협상의 암초로 작용.우리측은 이에대해 임정요인 5위의 유가족들이 국내에 모두 있는 점을 강조,중국측을 설득했으며 중국은 당초의 수락의사를 재확인해 주면서 대신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천묘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해 줄 것을 공식요청. ○…박은식·노백린·안태국선생의 묘가 지금까지 보존된 데는 한 독립운동가의 숨은 노력때문이었다. 지난 55년쯤 이들 3위의 유해가 원래 안치됐던 중국 상해의 정안사 공동묘지가 폐쇄되면서 무연고 묘로 분류돼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상해에 살고 있던 독립운동가 선우혁씨가 우여곡절끝에 만국공묘로 이장했다는 것. 선우씨는 안태국선생의 손녀사위로 당시 홍콩에서 무역중개상을 하던 이의석씨에게 연락,이장비 등을 융통받아 이장을 성사시켰다고. ○…선열 5위의 유해가 안장돼 있던 만국공묘관리처의 유국우소장(52)은 이번 유해봉환에 대해 『유족들의 요망에 따라 한국으로 유해를 봉환하게 됐다』면서 『이날을 위해 중국정부는 70여년간 선열들의 유골을 관리,보존해왔다』고 소감을 피력. 유소장은 『중국측은 인도주의적 입장과 중·한 양국간의 친선관계를 고려해 모든 봉환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같은 정신에 입각해 한국선열들의 유해봉환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 ○…유족대표들은 3일 상오11시 상해에 미리 도착,4일 가진 유해발굴과 화장식에 참석했는데 임정수립 74년만에 유해를 모시게 된 한이 복받친듯 목이 메이고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는 모습. 파묘작업은 유족대표와 윤해중 상해주재 한국총영사등이 참석,가랑비가 뿌리는 가운데 흰가운을 입은 중국인 인부들이 묘석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 발굴된 유골은 흰종이와 삼베가 깔린 목관에 모셔졌으며 목관은 붉은 천이 덮이고 그 위에 대형태극기가 덮여져 만국공묘에서 자동차로 20∼30분거리인 화장장 「용화빈의관」에서 화장됐다. ○…4일 상오8시30분부터 만국공묘 묘역에서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2시간가량 진행된 파묘식에서는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의 순으로 길이 80㎝ 폭 40㎝의 유골항아리가 발견됐으나 진흙과 빗물이 뒤범벅돼서 유족들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다. 박은식선생의 유골은 하나하나 발견됐으나 두개골부분은 바스러진 채 몇점 조각으로만 거두어졌으며 신규식선생의 경우에는 유골항아리에 세개의 구멍이 뚫린덮개가 그런대로 잘 덮인 상태로 발굴됐다. 그러나 노백린선생의 유골항아리는 깨진 채 발견됐으며 김인전선생과 안태국선생의 유해를 담은 항아리도 덮개가 없는 상태였으며 선열 5위의 유해는 오랜 풍상으로 모두 시꺼멓게 변색이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5위 봉환추진 일지 ▲5·27=김영삼대통령,방한중인 전기침중국외교부장에게 유해봉환을 제의 ▲6·3=중국정부,유해봉환 수락 ▲6·23=국무회의서 임정 선열5위봉환 국민제전계획확정및 국민제전위원회(위원장 황인성국무총리)구성 ▲6·29∼7·3=유해봉환 실무협의반 파견,이장절차와 의식관계등 합의 ▲7·30=「임정의 역사적 재조명」이란 주제로 학술회의 개최 ▲8·3=유족대표 상해도착 ▲8·4=상해 만국공묘에서 파묘및 화장 ▲8·5=만국공묘에서 한국식으로 천묘행사 거행.김포공항서 유해봉영행사,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 ▲8·5∼9=3부요인을 비롯한 시민·학생등 일반인 참배및 분향 ▲8·10=영결식및 유해안장
  • 미 시카고 세박 첫 출품작/1세기만에 대전 귀국전

    ◎의류·군사용품등 30점… 문예전시관서 우리나라가 세계박람회에 첫 출품한 전시품들이 꼭 1백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대전엑스포에서 다시 공개된다.엑스포조직위원회는 1893년(고종 30년) 미국 시카고박람회에 전시됐던 의류 및 군사·주거용품 30점을 최근 입수해 대회기간 박람회장 문예전시관에서 원형 그대로 선보인다. 1세기만에 빛을 보는 이 전시품들은 누비저고리·초혜(짚으로 만든 어린아이 신발)·대포·내갑(방탄조끼)·방석·채상(대나무상자) 등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30여점이다.특히 금속비늘이 내장된 내갑은 국내에서도 1점밖에 없을 만큼 매우 희귀한 것이며 초혜는 짚신과 달리 신발주위와 코를 칡으로 장식한 신발로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또 당시 브래지어인 가슴싸개,박쥐가 수놓아진 방석 등도 눈길을 끈다. 조직위가 이같이 특별전시회를 열게 된 데는 한 미국교포의 뜻하지 않은 제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지난 1월까지 시카고총영사관에서 공보관으로 일하던 공보처 박정호외보부장은 지난해 9월 이름을 밝히지 않는교포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시카고 자연사박물관의 창고안에는 수십여점의 한국문화품들이 보관돼 있다.전시관을 갖춰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렸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박물관에 우리 전시관을 만들려던 박씨는 곧바로 박물관을 찾아갔다.박물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창고에 들어선 그는 선반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게다가 이 들이 1백년전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 한국이 출품한 물건들이라는 설명을 듣고 박씨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언론인 출신인 그는 순간 대전엑스포를 떠올렸다.「1893∼1993년」,「첫 출품∼처음 유치」.곧바로 그는 우리 조직위에 연락을 한뒤 소장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조직위의 김용문문화행사본부장은 민속자료전문연구가들과 함께 지난 2월 미국을 직접 방문,진품임을 확인했다.1백년이 지났는데도 대부분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문화유산품들이었다.김본부장은 이미 우리가 기증한 것인만큼 되돌려받을 수는 없으나 엑스포 동안만이라도 한국국민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박물관쪽에 전했다. 박물관측도 지난 5월 대전엑스포의 성공을 위해 1백년만의 외출을 허용하겠다고 흔쾌히 알려왔다.단 항온·항습 및 경보장치가 완벽히 돼 있을 것,반드시 보험에 가입할 것,12월3일까지 시카고의 박물관으로 되돌려줄 것을 조건으로 덧붙였다.
  • 상해 총영사관 개관

    【북경=최두삼특파원】 지난해 8월 한중수교이래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14일 상해에서 개관돼 공식업무에 들어갔다. 상해국제무역센터 4층 2백60평에 자리잡은 이 상해총영사관에는 초대 총영사로 부임한 윤해중 전외무부 아주국심의관 등 외무부 관리 5명이 배치됐다. 외무부는 앞으로 중국측과 협의를 거쳐 광주·심양을 비롯,한국업체들이 많이 진출한 산동성 등지에도 총영사관을 계속 설치해나갈 방침이다.
  • 친일미국인 스티븐슨 저격/전명운의사 유해 봉환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지난 1908년 발생한 친일파 미국 정치인 스티븐슨 저격사건의 주인공으로 애국지사 1호인 전명운의사(1884∼1947)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만에 LA의 묘소를 떠나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12일 LA총영사관에 따르면 정부가 95년 광복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해외독립유공자 유해봉환사업에 따라 총영사관이 유족들과 협의,전의사의 유해송환계획을 이미 통보했으며 정부의 이장시기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의사는 『일본의 한국통치는 한국국민들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라는 망언을 한 당시의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슨을 1908년3월23일 샌프란시스코의 페리정거장에서 저격했으나 불발로 그치고 뒤이어 장인환의사가 스티븐슨을 저격했다. 전의사는 97일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뒤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살다 1929년 LA로 이주,1947년 63세를 일기로 숨졌으며 이스트LA 갈보리 천주교묘원에 안장돼왔다.
  • 한국미 넘치는 「1일 백악관」/클린턴숙소 미 대사관저

    ◎1백43칸의 ㄷ자 한옥/73년에 구실 헐고 신축/카터·레이건·부시등 이용 중구 정동 10 미대사관저가 결국 「1일 백악관」의 자리를 차지했다.클린턴 미대통령이 숙고 끝에 방한 1박2일의 숙소로 대사관저를 택한 것이다.그런 점에서 당초 예정된 하얏트호텔이 돌발적인 가스폭발 사고로 「1일 백악관」의 자리를 잃은 것은 다소 불운한 셈이다. ○내부 서양식으로 덕수궁 후문 쪽에 자리한 대사관저는 뛰어난 풍광으로 이름난 1백43칸(2백57평) 규모의 한옥식 ㄷ자형 건물. 기와지붕,용마루,대들보,기둥,창문등 모든 것이 조선건축 양식이다.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정원 포석정 본떠 특히 관저 기와는 경북 고령에서 손으로 찍어 만든 기와를 얹었고 서까래는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사용했다.가능한한 한국적 정취를 풍기는 것이 좋다는 73년 신축공사 시작 당시 하비브대사의 건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을 처음 사용한 미대통령은 지난 79년 박정희대통령시절 방한한 지미 카터대통령.그가 조깅을 한 정원도 운치가 뛰어나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경주 포석정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교관이면 실내 연회장은 행사가 있을 때면 가끔 볼수 있으나 침실등 실내까지 들어가본 사람은 거의 없다.대사관 직원은 『특급 호텔 수준』이라며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첨단 통신및 보안,경호시설의 설치가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전했다. 새 주인이 될 레이니대사는 아직 부임하지 않고있으나 준공된 새 건물의 첫 주인은 스나이더대사.73년 11월 건물이 낡아 새로운 한옥 건물을 짓자는 건의는 하비브대사가 했으나 정작 새 주인은 스나이더대사가 되는 기연의 건물이기도 하다. ○경호시설등 완벽 미대사관저 역사는 구옥시절까지를 합쳐 모두 1백9년.1884년 최초의 주한 공사로 임명된 푸트장군이 한림(정5품)민계호의 저택을 1만냥에 사들여 공사관겸 관저로 쓰기 시작했다.이 구관저는 키가 몹시 컸던 푸트공사가 낮은 천장 때문에 행사때 모자를 쓰고 다닐수 없는 불편을 겪자 최초로 본국에 수리를 건의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는,목재 기둥에 화려한 파티복이 걸려낭패를 본 외교관의 부인이 있었다는 등의 일화를 갖고있다. 따라서 역사로 볼때 미대사관저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지켜본 「한국내 미국」인 셈이다.일제 때는 총영사관으로 격하되기도 했고 8·15해방,6·26전쟁,5·16,12·12,5·18등 항상 우리역사의 중심에 있어왔다. 구옥의 귀빈으로는 아이젠하워대통령,덜레스국무장관등이 있고 신옥은 카터,레이건,부시대통령의 「1일 또는 2일 백악관」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왔다.평소에도 한·미관계의 산실로 자리,손색이 없었다.
  • 주호치민 총영사관/새달 15일 개설

    【호치민시 연합】 베트남의 호치민(구사이공)시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오는 8월15일 구월남 한국대사관 자리에 개설된다.
  • 13곳중 5곳 소유 “카지노대부”/“숨은 거물” 전낙원씨는 누구

    ◎연매출 1천억대… 국내 총액의 절반 카지노업계에 대한 사정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이 업계 거물로 알려진 전낙원씨(66)에게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씨는 국내 13곳의 카지노업체중 5곳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채 이를 바탕으로 건설·기계·금융업체를 설립,재계에서 숨은 거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카지노는 국내 최대규모의 서울 워커힐호텔카지노를 비롯,부산 파라다이스,경주 코오롱,제주 그랜드·신라등 5개이며 외국지점으로는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 사파리호텔카지노도 소유하고 있다. 또한 국내 5개업체외에 다른 카지노 3∼4개도 실질적으로 그의 영향력아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그는 명실상부한 국내 「카지노업계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한 업소당 한해에 수백억원씩 나오는 순이익을 바탕으로 부산 파라다이스비치호텔과 부산남문면세점,파라다이스도고호텔,제주파라다이스호텔등 호텔 3곳을 소유하고 있으며,금융회사인 파라다이스흥업상호신용금고,건설회사인 우경건설,국내 최초의 스프링쿨러회사인 극동스프링쿨러,등 바코드 판독기제조회사인 파라다이스박슨등 10여개 업체를 「파라다이스 체인」으로 묶어 경영하고 있다. 국내 기업중 자기이름을 영어화한 「파라다이스」자가 붙으면 전씨소유의 회사로 보면 틀림없을 정도이다. 그는 이같은 재력을 바탕으로 정·재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분을 쌓아 고위인사치고 그를 모르면 화제에 끼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슬롯머신계의 정덕진씨는 그와의 세력판도싸움에서 밀려나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로비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씨는 함경북도 무산출신의 국내 1세대 개척교회목사인 전주부씨(91년 작고)의 1남5녀중 외아들로 지난 1927년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출생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전씨는 23세때 6·25가 터지자 누나인 유명한 수필가 전숙희씨(74·전PEN클럽회장)의 남편인 육군제1통합병원장의 소개로 미군 부대군속으로 일하다 군수물자조달사업을 하면서 인천에서 운수업을 시작,카지노와 연결된다. 운수업에서 돈을 쥔 그는 지난 67년 현 올림프스호텔소유자 유화렬씨의 권유로 이호텔 카지노를 공동으로 운영,1년뒤에는 매제 김성진씨(56·파라다이스투자개발사장)와 함께 워커힐 호텔카지노운영권을 따내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그는 계속 카지노업체의 확장을 꾀했고 이 과정에서 누나 숙희씨가 고 육영수여사와 친분이 있는 덕에 고위층과 연계,카지노가 외화획득에 획기적인 사업임을 주장해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같은 친교를 바탕으로 5공당시 올림픽유치과정에서 아프리카국가들이 한국을 지지하는데 숨은 역할을 해 지난 89년에는 주한 케냐 총영사로 발령되기도 했고 이를 계기로 케냐의 나이로비에는 파라다이스카지노가 설립되기도 했다. 미국영주권을 갖고있는 그는 최근 들어 검은돈으로 돈을 거머 쥐었다는 비난을 의식,지난 89년 자기 호를 따 우경문화재단을 설립,문화사업도 시작했고,90년에는 계원조형예술대학을 설립,교육사업에 정열을 쏟는 한편 문인·예술인들에게도 지원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시절 한때 서울 종로통의 주먹이었던 이정재의 총애를 받기도했다는 그는 1백80㎝의 키에 훤출한 용모를 갖춰 주먹세계에서도 널리 알려져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카지노업계 보호에도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북핵 평화적 해결” 공감대 확인/전기침 중외교부장 방한결산

    ◎북의 특사제안 의도 우회적 파악/새달 2일 미·북회담에도 영향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은 지난해 8월24일 수교 이후 꾸준히 발전돼온 양국 관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북한핵문제라는,한·중 양국이 북한과 각각 맺고 있는 서로 다른 관계때문에 해결의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 의견의 완전한 일치를 볼 수 없는 사안이 놓여 있기는 했지만 전부장과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이번 회담 결과에 똑같이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회담 당사자들의 성공작이란 공통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 새롭게 합의하거나 타결을 지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전부장이 지적한대로 해운협정의 체결 뿐이다.밝힐 수 없는 합의사항이 있는지는 몰라도 전부장의 방한 성과는 양국이 그동안 외교경로를 통해서 구축해온 기본인식의 일치를 재확인하는 선인 것 같다.양국 당국자들의 발표는 「북한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적극 지지」등 지금까지 되풀이됐던 외교적 수사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시급한 과제인 항공협정도 『조속한시일내에 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기존의 합의를 반복하는 수준에서 일단락됐고 총영사관 설치문제 역시 여전히 노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로 남았다.중국지도자의 연내 방한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전부장의 방한은 그러나 앞으로 북한의 행보가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지,그동안 중국의 대북 설득이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지,그러한 효과가 미·북한 접촉과 남북대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의 기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다.한장관은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북한은 서로 의사를 교환하는 관계』라고 밝혀 중국측으로부터 북한측의 메시지를 간접 전달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했다.또 정부가 통일관계장관 전략회의를 1차 회담 이후로 하루 연기한 것도 중국측으로부터 먼저 평양의 분위기를 탐색해내자는 의도였다. 전부장의 방한은 6월2일로 예정된 미·북한 접촉과 앞으로 재개될 남북대화에 있어 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부장의 이번 한국행은 북한핵문제의전개과정에서 차츰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낼 전망이다.또 일천한 양국의 정상적 관계를 단시일내에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부산­심양·광주 총영사관 개설/한­중 외무 합의

    ◎항공협정도 조기 체결키로 한승주 외무부장관과 방한중인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은 27일 상오 제2차 회담을 갖고 동북아지역을 포함한 아·태지역의 양자·다자간 안보협력 협의의 중요성에 관해 인식을 같이 했다. 이날 회담에 배석했던 신기복 외무부제1차관보는 『한장관은 역내 다자안보체제 발전에 관해 언급했고 전부장은 지역안보를 위한 양자·다자간 협의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했다』고 전했다. 양국 외무장관은 또 한중 정책협의의 채널을 다변화시키기로 합의하고 외교경로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키로 했다. 양국 외무장관은 인적·물적 교류 증대에 발맞춰 심양 광주에 한국총영사관을,부산에 중국총영사관을 추가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총영사관의 조속한 교환 설치를 위해 공동 노력키로 했다. 이와함께 항공협정의 조속한 체결 필요성에 합의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이 문제를 타결키로 했다.
  • 주불가리아 대사 김흥수씨를 임명

    정부는 25일 주불가리아대사에 김흥수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을 임명했다. ◇김 대사 약력=▲서울·54 ▲연세대 행정학과 ▲주샌프란시스코영사 ▲공보관 ▲주시애틀총영사 ▲영사교민국장
  • 대사 3명 임명/주프랑스 장선섭/남아공 최상덕/에티오피아 공선섭

    정부는 17일 주프랑스대사에 장선섭 전외무부 의전장,주남아공대사에 최상덕 전외무부 중동아국장,주에티오피아대사에 공선섭 전외교협회 사무총장을 각각 임명했다. ◇장 주프랑스대사 ▲서울·58세 ▲서울법대 ▲주사우디공사 ▲주바베이도스공사 ▲미주국장 ▲주미공사 ▲주덴마크대사 ▲의전장 ◇최 주남아공대사 ▲서울·50세 ▲서울대 언어학과 ▲주에티오피아참사관 ▲주호주공사 ▲주사우디공사 ▲중동아국장 ◇공 주에티오피아대사 ▲경북 월성·54세 ▲서울대 외교학과 ▲주수리남참사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주카이로부총영사 ▲외교협회 사무총장
  • 「5·18」 미 망명 윤한봉씨 7월 귀국/광주 형에 전화

    ◎“17일 LA영사관에 여권신청”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지명수배된 16명 가운데 유일한 실제인물인 윤한봉씨(46)가 정부의 광주 관련자들의 수배해제방침에 따라 귀국한다. 윤씨는 13,14일 이틀동안 형 광장씨(광주시 동구 서석동)와 2차례 국제전화를 통해 『합법적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LA 현지서 펼쳐온 민족민주운동을 마무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귀국은 2개월뒤나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13일 총리실에 자신이 결성한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한겨레운동민족연합」등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정부측이 안전귀국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를 냈으며 『오는 17일 귀국의 첫 단계로 LA총영사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윤씨는 내란주요임무종사등의 혐의로 계엄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되자 1년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4월30일 외항선원으로 위장,마산항에 정박중이던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윤씨는 미국에서 LA 「민족학교」 「한청련」등을 결성,활동을 해오다 87년 미정부의 망명허가를 받았다. 74년 전남대 농대 재학중 민청학련사건의 전남북 책임자로 구속됐던 윤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년남짓 복역하고 풀려난뒤 77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다시 구속되는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 대사 5명 임명

    ◎주스웨덴 채의석/싱가포르 손명현/주리비아 김승호/주예멘 조규태/주네팔 성정경 정부는 4일 주스웨덴대사에 채의석 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주싱가포르대사에 손명현 외교안보연구위원 국제경제연구부장,주리비아대사에 김승호 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을 임명했다. 또 주예멘대사에는 조규태 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주네팔대사에는 성정경 외교안보연구원연구관이 임명됐다. ◇채대사 ▲전북 옥구·59세 ▲서울대 행정학과 ▲중남미과장 ▲주불참사관 ▲주카메룬대사 ▲주튀니지대사 ▲주유엔 차석대사 ▲뉴욕총영사 ◇손대사 ▲서울·56세 ▲미브라운대 ▲주미대사관 경제협력관 ▲경제기획원 비서실장 ▲〃 통계국장 ▲주미대사관 경제공사 ◇김대사 ▲전남 보성·57세 ▲여권3과장 ▲동부아프리카담당관 ▲주불참사관 ▲주중앙아프리카대사 ▲주코트디부아르대사 ◇조대사 ▲서울·52세 ▲서울대 국문과 ▲주일대사관 일등서기관 ▲문화교류과장 ▲통상3과장 ▲주카라치총영사 ◇성대사 ▲충남 예산·49세 ▲주일대사관 일등서기관 ▲동아프리카과장 ▲주노르웨이참사관 ▲주파키스탄공사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7·끝)

    ◎지령회복의 정당성/서울신문기원은 1904년 7월18일/「항일선봉」·「친일곡필」 모두 인정해야 정직/최고의 역사… 오늘로 28764호인셈/45년 혁신속간땐 지령 계승… 59년 41년간의 족적 삭제 서울신문은 조국광복과 함께 매일신보의 지령을 계승하여 속간되었다.또한 일제시대 통감부 기관지이던 매일신보는 한말의 구국지이자 민족대변지이던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계승해 발행된 신문이다.따라서 서울신문은 그 뿌리를 한말 최대의 구국민족지이던 대한매일신보에 두고있는 셈이다. 서울신문의 뿌리 대한매일신보(이하 신보)는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런던의 크로니클 통신기자였던 영국인 배설(ErnestThomasBethell)과 한말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겸 우국지사 양기탁등 민족진영의 인사들이 합세해 창간했다. 창간 날짜는 1904년 7월18일이다. ○일 국권위협에 맞서 이 무렵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되어 고문정치를 통한 외교 및 내정을 간섭하는등국운이 풍전등화 상태에 놓이던 시기였다.신보는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창간되어 통감부의 기관지로 매수되기까지 일제의 온갖 회유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국권수호운동에 앞장서온 것이다. 신보의 국권수호를 위한 언론구국운동은 동시대 다른 신문과는 현저히 다를만큼 특징적이었다. 창간호부터 항일논조로 일관,갖가지 폭로 고발기사로 사라져 가는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횃불을 당겨온 것이다.일제의 황무지개관권 요구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한반도 침략음모를 널리 알린 일이며 황성신문의 정간 및 장지연의 구속사건 대서특필,일제의 날조와 허위를 폭로한 고종의 밀서사진 전재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뿐만이 아니다.민족지들의 방향을 주도하는 일방 친일지와 친일파,매국노와 친일매국단체에 대해서도 준엄하고 통렬한 규탄을 서슴지 않았다. 신보의 언론구국운동은 이러한 비판 및 고발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애국투쟁정신을 고취하는데에도 매우 적극적 이었다.고종량위반대·정미7조약반대의 시위운동고취를 비롯해 장인환,전명운의 친일미국인 스티븐스(통감부 고문)처단과 안중근의 이등박문처단을 애국의사의 애국투쟁으로 보도,민족의 분발과 투쟁운동의 치성을 고취한 것이다. ○국채보상운동 주도 또 백년대계의 교육구국운동이며 의병운동,그리고 국권회복을위한 애국계몽운동에까지 나서 선각민족언론으로서의 소임을 적극 전개한 점도 빼놓을수 없다.특히 애국계몽운동의 하나인 국채보상운동은 직접적인 대국민캠페인을 통한 거족적 국민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신보의 언론구국정신을 한눈에 가늠케 하는 것이다. 신보가 이처럼 과감한 구국운동을 전개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의 발행인이 외국인이어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은때문이다.그러나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등 애국민족투사들의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와 운동을 주도했다는데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국권수호운동을 펼치던 신보는 그러나 일제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풀이 꺾이기 시작했다.그리고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영국총영사 헨리보나르와 통감부의 회유 및 압력을 받아 끝내 통감부에 매각되기에 이른다.국권회복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종언을 고한 것이다. 이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그뒤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틋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 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대한」의 두자를 잘렸다.결국 「대한」을 빼앗겨버린 「매일신보」는 일제의 의도대로 통감부의 기관지로 변신된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 이 날짜의 사설제목 「동화의 주의」가 상징하듯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이하 매신)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첨병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당초 매신은 총독부 일문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운영되었으며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를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가 위주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고 식민통치의 모순을 은폐하는 한편 일제에의 복종과 충성을 강요한 것이다. 민족말살을 호도,한국과 일본을 순치의 관계로 묶어서 주장한 민족동화의 논리는 물론 식민통치의 기반구축을 위해 사회환경의 일본식 개량 또한 부추겼다.또 식민경제수탈을 위해 산업의 개량과 일본경제체제로의 예속화,그리고 한국의 자주성 및 전통문화를 단절시키기위한 문화말살에도 앞장섰다.이밖에도 학교와 사회,가정에 이르기까지 「황국신민화」를 위한 식민지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독립운동 탄압에 가세하는등 식민논리로 일관했다. ○해방조선 대변자임 매신은 이처럼 각 방면에 걸쳐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이를 선전하는등 총독부 기관지로서의 대변역활을 수행한 것이다. 이와같은 일제옹호논조는 매신이 기구를 확대해 경성일보에서 분리,1938년 4월16일 독립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개제해 출발한(지령은 매신을 계승)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그리고 매신은 지난날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 「서울신문」으로 거듭 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된 것이다.서울신문으로의 개편작업이 본격화하기는 1945년 11월10일 미군정청이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리면서였다. 이날이 바로 치욕의 매신이 종간된 날로서 지령은 제13737호로 돼있다.그뒤 새로운 간부진용이 구성돼 매신의 시설과 사옥은 물론 6백여 사원을 그대로 흡수,「서울신문」제호의 혁신호를 이땅에 선보였다.초대 사장은 지조 높은 선각언론인이자 애국지사인 위창 오세창이었다. 이날이 1945년 11월22일(발행날짜는 11월23일)이었으며 지령은 매신을 그대로 계승해 제13738호로 기록되어 있다.이 발행호수는 서울신문이 매일신(신)보의 발행기록 12276호와 그 이전 대한매일신보의 발행기록 1461호를 합친 숫자를 기준삼아 지령을 계산한데 따른 것이다.이는 매일신(신)보가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계승한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였다.이에따라 서울신문은 이 두신문의 종합지령을 승계한 제13738호로 기록하게 된것이다.서울신문이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의 계보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속간된 것이다. 이 지령은 1959년 3월22일까지 그대로 계승,제18214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서울신문은 지금 이 지령을 쓰지않고 있다.59년 3월23일 당시 사장이던 고 손도심이 근대 신문사에 대한 자체적인 사적평가를 진행하고 회사전체의 의견을 종합,그동안 사용해오던 구지령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이에따라 1945년 11월23일자로 된 속간호를 제1호로 기산,이날짜(1959년 3월23일)의 지령을 제4477호로 쓰게됐다 ○속간호 1호로 기산 서울신문은 이로써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로부터 이어온 지령 13737호와 41년의 역사를 스스로 잘라버렸다.그러나 이는 서울신문 역사의 기원을 그르치는 사실왜곡에 다름 아니었다.근대사에 각기 공과 과의 지울수 없는 족적을 남긴 두 신문과 서울신문의 맥락은 앞에서 보듯 연면히 이어져온 때문이다.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서울신문이 스스로 도려낸 구지령을 되찾아 바로 잡는 것은 역사에 정직하기 위한 길이다.이는 서울신문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언론사의 재정립이라는 면에서도 그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따라서 서울신문 역사의 기원은 1904년 7월18일 제1호로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이날을 기준으로 역산하면 서울신문의 역사는 현존하는 한국의 신문중 가장 오래인 89년이 된다.그리고 잘라버린 지령 13737호를 다시 이으면 오늘 1993년 5월5일자로 제28764호가 되는 것이다
  • 전기침 25일께 방한/북핵관련 한·중 외무회담 개최

    전기침 중국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오는 25일쯤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양국 정기 외무장관회담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핵문제,항공협정 체결문제,총영사관 설치문제등 양국 관심사가 논의될 예정이다. 이번 한·중외무장관회담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마감시한인 6월12일을 앞두고 북한의 태도변화 여부에 따라서는 중국의 입장변화 가능성도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한편 전부장은 방한기간동안 중국 고위관리로는 처음으로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지방의 산업시설도 시찰할 예정이다.
  • 사건후의 파장(4·29폭동 1년… 그 뒤의 LA:중)

    ◎폭동보다 더 절망적인 복구작업/1천만불 성금 분배싸고 한때 대립/미 정부의 융자기금도 대상 제한적/보험인식 부족… 보상받은 업소는 33%뿐 「4·29」폭동은 LA일원에서 53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2천4백여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1천4백여채의 건물이 전소되거나 반파돼 7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또 1만1천5백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가운데 한인은 사망1명,부상12명등의 인명피해와 2천2백89개 업소에서 모두 3억9천9백50만달러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엄청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민족 특유의 상부상조정신이 발휘됐다.LA 뉴욕 시카고 등지의 교민사회는 물론 다른 나라의 교민까지 성금대열에 참여,무려 9백여만달러(본국모금액 4백45만달러 포함)가 모금됐다.그러나 성금배분을 놓고 교민사회가 한때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성금관리체계가 총영사관,피해자협회,한미구호기금재단,몇몇 언론사등으로 사분오렬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데다 그 용도를 놓고 이견이 속출했기 때문이다.소액이라도 고루 분배하자는 측과 교포발전을 위해「종자돈」으로 쓰자는 쪽이 맞서다가 결국 가구당 3천달러씩 지급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다.그러나 1백70여만달러는 아직 모 신문사,한미구호기금재단측이 분배를 하지 못한채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복구 자금이 연방정부차원에서 최대한 지원될 것』이라며 연일 홍보에 앞장섰던 미정부의 약속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한 것도 한인사회의 일체감을 깨는 악재가 됐다.교민들은 사실 성금의 분배보다도 피해복구자금으로 자신들이 든 보험회사의 보험금,중소기업육성자금(SBA),연방정부재해구호기금(FEMA)등에 기대를 걸었었다. SBA융자금은 일시불이 아니라 몇차례 나눠 주었고 월 매상의 5∼6배 하던 가게의 권리금은 인정해주지 않았다.단지 재고와 장비가격만을 인정,융자액을 책정했다.그 결과 많은 한인들이 거액의 권리금을 날리는 또 하나의 수모를 겪었다.말하자면「한국식으로 가꿔온 일터손실을 미국식으로 보상」받음으로써 정신적인 고초까지 겪게된 것이다.. FEMA는 18개월간 지급되도록 돼있으나 폭동발생 8개월만인 지난해 말로 사실상 마감해버렸다.SBA융자를 일부 받고 있기 때문에 미연방정부자금이 이중으로 지급될 수 없다는 것이 당국자의 해명이었다. 현지언론들은 SBA융자금마저도 자금이 바닥이나 앞으로 몇달간은 융자가 어렵다고 전하고 있다. 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우리 교포들이 자기「몫」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싼 보험료탓으로 부실보험회사를 선택했거나 보험약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가입한 결과였다. 화재로 전소된 업소 1백72곳 가운데 32.69%만이 화재특약에 가입,가까스로 보상근거를 찾았다.그러나 이들 가운데서도 보험금을 타낸 가입자는 44.55%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폭동피해실태조사위원회(KAIAC)가 최근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한인피해자의 27.8%만이 영업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조사대상자 1천5백39명의 49%는 영업재개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전소된 리커상및 마켓 1백72곳 가운데 다시 영업을 시작한 곳은 단 1곳 뿐이다.그것도 흑인지역이 아닌 곳에서라는 것이 식품상피해자협회측의조사내용이다. 일부 흑인단체나 정치인들,흑인주민들이 나서 조직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들은 리커상이나 마켓이 주에서 주류판매허가를 반드시 얻어야한다는 주법을 악용,한인들의 영업재개를 정치적으로 막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미 주정부로부터 주류판매허가를 받아놓은 4개 한인업소에 대해 LA시의회가 영업허가를 내주지 말도록 만장일치로 가결하는「제도폭력」도 발생했다. 현재 패해자식품상협회는 남의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려 쓰면서 백방으로 재기의 길을 찾고 있으나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 협회의 한 간부는『염치없는 요구지만 본국의 재산반입이나 친지들로 부터의 자금반입을 위해 해외송금길이라도 터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 불안한 교민사회/남미에 「반한움직임」 확산

    ◎“탈세·불법고용” 아르헨 언론서 첫 비판/한인업소 단속… 브라질서도 문제 제기/“차별 아니냐” 불만속 대사관선 “법준수” 집안 단속 아르헨티나의 한인교포사회가 불법체류 외국인의 고용비리와 비인간적 착취등과 관련,당국의 집중조사를 받고있는 가운데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인교포사회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3국출신 노동자고용 비리문제가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22일 전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찬가지로 4만여명의 한인교포가 주로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파울루 한인교포사회에서는 아직 제3국출신 불법체류노동자들의 고용비리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아르헨티나 한인교포사회 사태와 관련,현지언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상파울루의 한인교포들이 고용하고있는 제3국노동자들은 주로 볼리비아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있다.상파울루에서도 일단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경우,아르헨티나에서 처럼 상당한 파급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따라 상파울루주재 한국 총영사관측은 현지언론이 한인사회의 고용비리등에 대한 집중취재에 나설것에 대비,설득력있는 해명자료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르헨티나정부의 관계부처 합동조사반은 지난 20일 한인촌안의 교포의류공장및 식당,식품점등에 대해 집중적인 현장조사를 벌인데 이어 21일과 22일에도 한인촌에서 떨어져있는 의류도매및 소매상점가의 한인교포상점들을 대상으로 불법고용 실태및 탈세여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다. 아르헨티나주재 한국대사관측과 교민회는 22일 각기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모든 한인교포업소들이 현지관계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작업환경과 종업원에 대한 처우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줄것 등을 촉구했다.
  • 대물림의 꿈(외언내언)

    「나의 영혼은 신에게 바치며 나의 육신은 땅에 바치며 나의 유산은 내 혈연에 남기노라」 1594년 천재적 건축가 시인 화가인 미켈란젤로는 그의 생애를 마감하면서 자신(영혼)을 3등분하여 세 자녀에게 맡기고 죽었다. 대체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거액의 재물을 남기기도하고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를 물려주기도 한다.또 도자기나 공예등 기술을 전승시켜 가업을 잇게 하기도 한다. 며칠전 이창호 시카고 총영사의 장녀가 제27회 외무고시에 합격,우리나라 외교사상 최초의 부녀외교관으로 탄생됐다. 이렇게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자녀는 「나도 아버지 처럼」「어머니 처럼」되고자 한다.아버지가 교수면 나도 교수,변호사이면 나도 변호사,특히 예능계열에선 2대·3대에 걸친 화가 음악가들이 얼마든지 있다.물론 누구나가 자녀들에게 자신의 일을 권고하거나 이끄는 것은 아니다.나는 딱딱한 과학자이니 오히려 내 딸은 예술가가 됐으면,내 직업은 골치 아프고 발전이 없으니 내 자식만큼은 다른 직업을 가져줬으면 하는 수도 있다.그러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다면 내 아이도 나와같은 직업을 택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어릴때부터 부모의 독특한 기술를 지켜보면서 그 숨결까지도 느낄 수 있는 자녀가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가. 전남 보성의 옹기장이 이학수씨는 9대째 옹기를 굽고있고 유명한 보부상인 개성상회는 3대째.2대째이던 한창수씨는 「재산을 잃더라도 신용을 잃지말라」던 부친의 정신까지 이어받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것은 부모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를 자신의 평생직업으로 삼는데 망설임이 없을 때의 예이다. 딸들을 의사로 만들어 「의사일가」를 이루고 싶었던 함기선씨의 경우는 딸들에게 무리하게 의과지망을 강요,그 과정에서의 부모의 비양심을 물려받아 악순환의 되풀이나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완전한 교육을 자녀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훌륭한 유산」이라던 영국시인 토머스의 말이 새삼 김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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