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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駐 모로코대사 주철기씨

    정부는 30일 주 모로코대사에 주철기(朱鐵基) 주제네바 차석대사를,주밴쿠버 총영사에 강병일(姜炳一) 전 통상교섭본부 통상지원국장을 임명했다.주제네바 차석대사엔 이재길(李栽吉) 전 다자통상지원국장을 발령했다. 강 총영사와 이 차석대사는 외교통상부 출범과 함께 경제부처에서 통상교섭본부에 합류했으며 최근 외무공무원법 개정으로 직렬이 외교통상직으로 통합됨에 따라 재외공관장으로 임명된 첫 사례다. ◇주철기 대사▲강원도 원주(53) ▲서울대 서양사학과 ▲외무고시 6회 ▲중미과장,국제경제국장 ◇강병일 총영사▲서울(50) ▲서울대 경영학과 ▲행정고시 11회 ▲행정조정실 제2행조관실 심의관, 통계청 통계조사국장
  • 베를린 한국총영사관 폐쇄

    [프랑크푸르트 남정호특파원] 동서냉전 현장의 산 증인격인 베를린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개관 27년만에 문을 닫는다. 독일 행정부와 의회가 오는 9월1일부터 베를린에서 집무를 시작하고 한국대사관도 이에 맞춰 베를린으로 이전함에 따라 베를린 총영사관은 이달말 대사관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지난 73년 1월 1일 개설된 서베를린 총영사관은 90년 10월 독일통일 이후베를린 총영사관으로 개칭됐으며 공관 관할지역도 옛 동독지역으로 확대됐다. 베를린 총영사관은 지난 4월 함부르크 총영사관 폐쇄에 따라 관할지역이 늘어나 독일의 16개주중 10개주를 관장해왔다. 김승의(金勝義) 베를린 총영사는 24일 총영사관 폐쇄를 앞두고 관저에서이임 리셉션을 개최했다.김총영사는 이임 연설에서 한국과 독일간 우의증진을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독일측 참석 인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베를린시대 개막과 함께 한·독 관계가 더욱 발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헤어비히 하제 베를린 주의회 의장은 답사를 통해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한 힘과 의지를가지고 남북문제를 풀어갈 경우 머지않아 통일을 이룩할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리셉션에는 하인리히 룸머 연방 하원의원,하르트비히 피펜브록 독일경제협회장,한스 마이어 훔볼트대학 총장 등 베를린의 정치·경제·문화계 인사 350여명이 참석했다. njh@
  • 「獨수도 베를린 이전」새달1일 첫 閣議“21세기 출발”

    오는 9월1일 독일의 새로운 21세기,이른바 ‘베를린 공화국’시대가 시작된다.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민주주의헌법의 태동,히틀러의 나치즘과 독재,1·2차 세계대전을 통한 군국주의,그리고 동·서독 분단으로 대표되는 냉전 등세계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응축한 도시 베를린.지난 89년 베를린 장벽이무너진 뒤 시작된 ‘베를린 천도(遷都)’라는 세기적인 대역사가 종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3일 베를린 집무에 들어가는데 이어 다음달 1일 베를린 첫 내각회의를 주재한다. 독일 의회도 6일 제국의회(Reichstag)의사당에서 전체회의를 개최,바야흐로 통일독일의 수도이자유럽의 중심지로서의 베를린 재탄생을 공표한다. “과거를 보려면 로마로,미래를 보려면 베를린으로 오라” 베를린 시 홍보국장 볼커 하세메르시는 10년의 대역사 끝에 거듭나는 베를린을 이렇게 자랑했다.91년 베를린 수도 이전을 결정한 뒤 독일 정부가 베를린에 쏟아부은 비용은 200억 마르크(약 12조 2,000억원).옛 동독지역의 떼를 벗기고 미래의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베를린은 그야말로 거대한 공사장이었으며 아직까지 크레인 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다.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에는 향후 수년이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 16개 부처 가운데 수도이전을 총괄한 교통부가 지난 6월말 50여년 본시대를 마감하고 베를린으로 이사한데 이어 10개 부처도 거의 이사를 끝냈다.150여개 외국 공관,언론기관 각종 이익단체도 이사에 여념이 없다. 본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인구는 수만명이다.일부 부처가 본에 남아 과도형태를 유지하긴 하지만 6,000명의 정부 관료와 그 식솔,그리고 국회의원 669명,보좌진 3,400여명 등이 베를린으로 옮겨 간다. 여기에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에 근거지를 둔 많은 기업들과 21세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속속 향하고 있다. 지난 5월 선출된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이미 베를린의 새 대통령관저에머물고 있으며 슈뢰더 총리는 오는 2001년 새 총리관저가 완성될 때까지 옛동독 호네커 전 총리 관사에 임시로 기거한다. 베를린은 세계 유명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로젠조 피아노,노먼 포스터 경 등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새 베를린 건설에 참여했다.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베를린 장벽 서쪽에 위치한 제국의회 건물. 1894년 바이마르 민주 헌법이 탄생한 곳이자 히틀러가 선전포고를 한 곳이며 45년 연합군에 대한 독일 패전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제국의회 건물을새단장한 주인공은 건축 거장,노먼 포스트 경.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상징한 유리 돔,그대로 보존해놓은 과거 전쟁의 흔적들은 벌써부터 관광명물로 각광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거장 로젠조 피아노가 지휘한 포츠담 광장엔 8억달러 규모의 소니 복합단지,다임러 벤츠 본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새 베를린은 유럽 전통양식을 고수하라는 건축규제 탓에 구태와 혁신이 어정쩡하게 얽혀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천도의 의미 베를린 천도는 통일 독일의 숙원사업이자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후 지속돼온 통일과정의 마무리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독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특별하다.비록 한때나치와 냉전시대의 무대로 독일 역사중 치욕의 한부분이 됐지만 독일과 독일인에게 베를린은 ‘영원한 수도’ 그 자체이다. 1871년 독일이 첫 통일된때부터 2차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수도였으며 그이전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베를린은 늘 독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이번 ‘베를린 천도’에 독일 전체의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일부 유럽국가에서 독일이 베를린 천도로 다시 권위주의,패권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에 영향받고 있다. 특히 최근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몇몇 국가들에서는 베를린 천도를 곧 ‘동진정책’의 하나로 보면서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편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는 얼마전 본시대를 마감하는 의회연설에서 “독일은 신장된 국력을 함부로 과시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우리는 새로운 수도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지 새로운 공화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베를린 천도를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미묘한 입장을 배려했다. 이경옥기자 ok@ - 베를린한인회 교포중심 될듯 베를린 남정호특파원 주독 한국 대사관및 교민사회도 베를린 시대를 맞는 채비에 한창이다. 지난 6월 시내 중심가인 티어가르텐 남쪽 독일철도보험회사의 7층 건물중 4,5층(500평 규모)을 임대,막바지 사무실 개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 대사관은 독일 연방정부 및 의회 이전에 맞춰 오는 9월 1일부터 베를린 청사에서 업무를 공식 개시한다.베를린 주재 총영사관은 대사관 이전과 함께 폐쇄되고 본에는 영사업무 등을 관장하는 대사관 분관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기주(李祺周)대사는 “베를린 천도 이후 독일의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위상과 외교 정책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적절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독일 주재 문화홍보원도 베를린으로 확장 이전한다.교민사회의경우도 활동의 중심이 프랑크푸르트 등 중부 독일권 한인회에서 베를린 한인회(교민 3,000여명)로 옮겨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외교·통상 완전한 ‘한몸’ 되나

    외교통상부가 출범 1년6개월여만에 명실공히 외교와 통상의 통합부서로 출범케 됐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외무공무원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경제부처에서 전입한 행정직 공무원도 재외공관근무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당장 9월부터 기존 행정직 5명이 재외공관근무에 나선다.제네바차석대사,밴쿠버총영사를 비롯해 몬트리올,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유럽연합(EU) 등으로나간다. 이에따라 그동안 통상교섭본부의 불안한 위상과,행정직과 외무직의 ‘한집안 두살림’도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외교통상직이 신설됨으로써 기존 외무고시의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외교통상부측은 기존 고시과목에 경제·통상관련 과목을 2∼3개 추가할 계획이다. 고시변경은 수험생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내후년이나 돼야 시행될 전망이다. 또 기존 행정직의 공관근무가 가능해진 이면에는 외교직의 불만도 있을 수있다.통상교섭본부 소속 인원들이 경제·통상 업무가 많은 공관만 나가다보니 자연스레 ‘온탕’공관만 나가기 때문이다.따라서‘냉온’을 반복하는기존 외교직들은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 이와함께 경제부처에서 온 6·7급 공무원들은 이번 직렬통합에서 제외돼 여전히 일반행정직으로 남는다.이들은 외무행정으로 전환할 경우 공관근무는가능하지만 승진이 늦어 전환을 희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따라서 외교통상부에는 여전히 외교통상직,외무행정직,일반행정직 등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16일 “당초 지난해 끝내야할 직렬통합작업이 올초 조직개편분위기속에서 전혀 진행되지 못했다”면서 “제도의 통합이 본격화된만큼앞으로 문제점도 시간을 두고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정아기자 seoa@
  • [기고] 기회의 땅 알래스카

    우리나라는 수해가 지나간 뒤 본격적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모두가 지쳐있는상태다.이런 더위 속에서 알래스카를 연상만 해도 서늘한 한기를 느낄 것 같다.겨울에는 엄청난 양의 눈과 북극 바람으로 매우 춥고 여름에는 너무도시원해서 누구든지 신선함을 느끼는 지역이다.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의 말로 ‘큰 땅’이라는 의미다.위도상 북위 60도와 70도상에 폭넓게 걸쳐있는 북극권이다.면적은 152만㎢로 우리 한반도의 7배다.원유,가스,금,아연,석탄 등 지하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알래스카는 130여년 전 미국이 제정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구입했다.당시 러시아는 모피의 주요 공급원인 물개가 멸종 상태에 빠져 경제적 가치가없다고 판단했고 크리미아 전쟁 후유증으로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었다.그러나 이후 유전은 물론 금광 등 지하자원들이 속속 발견됨에 따라 ‘기회와 행운의 땅’이 되었다. 알래스카의 최대 도시인 앵커리지는 지난 30여년간 북극권의 관문이었다.중국및 옛 소련과의 관계개선 이후에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화물기의 미주노선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고 있다.아울러 녹용과 천혜의 관광지로도 우리에게 유명한 지역이다. 우리 동포들도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증가되어 왔으며,현재 우리동포들의인구는 6,000여명에 이르고 있다.이들은 미 전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과마찬가지로 주로 호텔업과 부동산,식당,식품점,세탁소 등의 업종에 열심히종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동포에 대한 보호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중요성과 엄청난 지하자원,수산자원 등과 관련한 경제협력 개발 차원에서 80년에 앵커리지 총영사관을 설치했으나 97년 IMF사태로 인한 정부예산 절감차원에서 지난 3월 말앵커리지 총영사관을 폐쇄하였다. 알래스카는 우리에게 특히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현재 베링해와 알래스카만에서 많은 수산회사 소속의 어선들이 명태,대구,오징어 등을잡고 있으며 연간 2억여달러어치 원유와 2,000여만달러의 석탄 등을 비롯, 4억8,000만달러의 천연자원과 수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알래스카는 자원을 판매하는 데서 나오는 자본을 주된 기반으로 현재 인접국인 러시아의 사할린과 경제협력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할린 개발 계획이 구체화될 경우 2차 세계대전 중 이곳으로 징용간 약 4만여명에 달하는 동포와 그 후손들의 우수한 인력을 활용하면 우리 한민족의 근면성 등에 비춰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또 서북미와 러시아 북동부를 포함한 광대한 환태평양 지역에는 무궁무진한지하자원과 수산자원이 있으며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 인근 국가들이 치열한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일본은 서북미의 포클랜드,시애틀,밴쿠버,앵커리지와 동부 러시아의 나홋카,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등 지역에 7개의 총영사관을 설치하고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겨우 시애틀,밴쿠버,블라디보스토크 3군데에 총영사관이있을 뿐이다.자원 확보 외교에 뚜렷한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점점 첨예화되는 21세기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선진국 대열에 끼기 위해선 무엇보다 산업의 원동력인 자원확보가 제일 중요하다.북태평양 지역에의 활발한 진출이 요망되는 이유다. [孫薰 주 시애틀 총영사]
  • 외교통상부 인사

    외교통상부는 14일 외교정책실장에 함명철(咸明澈) 주체코 대사를,의전장에 손상하(孫相賀) 주상하이 총영사를 임명하는 등 본부 실·국장급 11명에 대한 인사를 했다. ▲북미국장 송민순(宋旻淳)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중남미국장 조규형(曺圭瀅) 경수로기획단장 특별보좌역 ▲아중동국장 조영재(曺永載) 총리비서실 비서관 ▲조약국장 황용식(黃龍植)정책기획관 ▲다자통상국장 정우성(丁宇聲)주벨기에·유럽연합(EU) 공사 ▲국제기구정책관 최종무(崔鍾武)주영공사 ▲정책기획관 이호진(李浩鎭)공보관 ▲공보관 장철균(張哲均)주중공사 ▲주중공사 이규형(李揆亨)국제기구정책관오일만기자 oilman@
  • 瀋陽영사사무소 내일 개소

    주중 한국대사관 선양(瀋陽)영사사무소가 오는 8일 개소식을 갖는다. 선양영사사무소는 총영사관의 전단계로서 주중대사관의 분관형태로 개설되며,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지역 주민을 상대로 여권 및 비자발급 업무를 해주고,현지에 진출한 교민과 기업체를 보호·지원하게 된다고 6일 외교통상부가 밝혔다. 동북3성에는 상사·업체의 직원과 가족,유학생 등 모두 2만3,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빈 방중에 따른 후속조치로선양영사사무소 개설을 적극 추진,지난 1월 사무소 설치에 관한 합의각서를중국정부와 교환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北, 마카오 공작거점 이전 물밑작업 진행

    북한이 동아시아 공작거점을 마카오서 홍콩으로 옮길 준비에 나섰다고 산케이(産經)가 홍콩발로 30일 보도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북한에 흘러 들어가는 군사기술의 창구로서,일본은군사목적으로 전용가능한 일본제품의 북한 수출의 루트로서 홍콩이 악용되지 않을까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는 12월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는 마카오는 북한 공작원의 오래된 동아시아 교두보.마카오에 주재하는 50여명의 북한인이 ‘조광무역’ 등 9개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마카오 정청 관계자는 “북한계 기업의 홍콩진출 준비가 활발히 이뤄지고있다”며 “정청은 이들 기업을 24시간 감시하면서 한국 일본 등 관련국과정보교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활동거점을 옮기려는 것은 홍콩이 국제금융 센터로서 다양한 정보와 물자를 확보하기 쉬운 입지조건을 갖췄기 때문. 북한은 그동안 공작활동이 손쉬운 홍콩진출을 줄기차게 시도해왔으나 번번이 영국 당국에 거부당해왔다. 그러나 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최근 북·중 관계가 회복되면서 북한은 10월 전후 북한 총영사관 개설과 고려항공 여객기의 홍콩취항도 계획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많은 나라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특히 미 국무부는 “북한은 미사일 원재료인 특수강을 중국에서 수입하려고 하고 있다”고 홍콩을 거점으로 한 군사기술이나 원재료의 수입을 우려하고 있다. 홍콩특별행정구(SAR) 당국도 오랜 세월 쌓아 올려진 국제금융센터으로서 홍콩의 명성이 북한의 공작거점 이전으로 손상되지 않을까 내심 속타는 모습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北 홍콩영사관 설치

    북한과 중국은 지난 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홍콩주재 북한총영사관 개설에 관한 협정에 조인했다고 북한 중앙방송이 4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주재 조선총영사관 설치에 관한 조·중두 나라 정부사이의 협정이 1일 베이징에서 조인됐다”고 전하고,주창준(朱昌俊) 중국주재 북한대사와 중국 외교부의 양원창(楊文昌) 부부장이 두 나라 정부를 대표해 각각 협정문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중국에 총영사관을 설치한 것은 지난 86년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주재 총영사관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제2공화국과 張勉](26) 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中)

    초대 주미대사로서 큰 공을 세운 장면(張勉)은 1951년 1월28일 귀국해 2월3일 국무총리에 취임한다.이 무렵 이승만(李承晩)대통령과 국회는 상극이라할 만큼 알력이 심해 장면 총리는 양쪽을 융화·조정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아울러 ‘국민방위군 사건’‘거창 양민학살 사건’ 해결에 앞장섰고,그해 11월에는 파리 제6차 유엔총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장면이 이승만 아래에서 총리직을 수행하는 동안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그렇지만 정치적 위상은 한층 높아져,이승만을 몰아내고 그를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50년 6월19일 개원한 2대 국회는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됐다.자유당 창당 전이라 공인된 여당이 없었고 친(親)이승만 계열 의원은 대한국민당 24명을 비롯해 57명에 불과했다.반면 야당의원은 27명,무소속은 의원 정수의 60%인 126명에 달했다. 2대 국회는 개원 엿새 만에 6·25를 맞아 사망·납치·행방불명된 의원이 35명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의원 대다수가 이승만의 ‘서울 사수(死守)’ 발언을 믿었다가 큰 곤욕을 치른 데다 이승만의 독재 성향이 이미두드러져 의회에서는 반(反)이승만 기류가 주를 이뤘다. 당시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였고 이승만의 임기는 52년 7월23일까지였다.국회에서 재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자 이승만은 51년 말두 가지 방안을 추진한다.하나는 여당을 만드는 것이고,또 하나는 대통령직선제로 개헌하는 것이었다. 여당 창당작업은 그러나 두 갈래로 나눠졌다.무소속 의원 중심의 원내자유당과 5개 사회단체를 뼈대로 한 원외자유당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록했다.이가운데 원내자유당은 이승만의 뜻과는 달리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은밀히추진하면서 대통령으로 장면을 추대하기로 야당과 합의한다. 당시 원내자유당을 이끈 오위영(吳緯泳)은 회고록에서 “일부 정치인들이이박사의 영구집권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실정에서 재야의원들은 대부분강력한 야당을 조직해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적인 지도자를 추대하자는 중론이 대두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승만정부가 발의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52년 1월18일 찬성 19,반대 14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했다.이어 개헌 정족수에 맞춰의원 123명의 서명을 받아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했다.4월 이 무렵 장면도 총리를 사임했다. 국회는 6월2일 제2대 대통령을 뽑기로 계획을 세웠다.그 날이 되면 장면은새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내각책임제 개헌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터였다. 하지만 반격이 시작됐다.‘부산정치파동’이 발생한 것이다.이승만이 경남과 전남북에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날인 5월25일 계엄군은 버스로 등원하는의원들을 연행했다.그리고는 경찰이 국회를 포위한 상태에서 대통령직선제개헌안을 강제로 통과시켰다.이때 개정한 헌법이 ‘발췌개헌’이다. 부산정치파동후 장면은 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의 고문으로 들어앉아 정치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을 듯이 보였다.그러다 55년 9월 통합야당인 민주당이 출범하자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오위영을 비롯해 김영선(金永善)·홍익표(洪翼杓)·이상철(李相喆) 등 신파의 핵심세력이 52년 그를 대통령으로추대하려던 원내자유당계였다. 장면은 56년 정·부통령 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해 이기붕(李起鵬)을 누르고 당선됐다.국민의 투표로 검증받은 권력서열 2위가 된 것이다.더구나 이승만이 81세의 고령이어서 유고시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는 부통령이란 위치는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부통령 재직 4년은 장면이 회고록에서 ‘죄없는 죄인’이라고 표현할 만큼 험난한 세월이었다.이승만은 강력한 정적으로 떠오른 그를 견제하느라 상식 밖의 행동을 예사로 했다.가령 56년 8월15일 열린 정·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은 내외 귀빈을 전부 소개하면서 정작 그 자리의 공동 주인공인 장면을 무시했다.남산 국회의사당 기공식에서는 다른 초청객의 자리는 준비하고도 부통령 좌석은 마련하지 않아 장면이 그냥 돌아갈 정도였다. 이 시기 장면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그에대한 암살 기도와 외국 원수와의 만남을 방해한 사례다. 부통령 취임 한달여 만인 9월29일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장면은 김상붕(金相鵬)이 쏜 총에왼손을 맞았다.이 저격사건의 배후는 김종원(金宗元)치안국장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나돌았지만 훗날 장면정부 아래서 속개된 재판에서도 관련자는 김상붕,그에게 총을 준비해 준 이덕신(李德信·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준 최훈(崔勳) 등 세 사람으로 한정됐다.장면은 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파헤치는 대신이들을 감형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고 딘 디엠 베트남대통령이 공식 방한한 날은 57년 9월18일이었다.디엠의맏형은 가톨릭 사이공교구 대주교였고 본인도 독실한 신자였다.게다가 장면과는 미국에서 만나 돈독한 우정을 쌓은 사이였다. 디엠은 장면을 만나려고 했으나 이승만정권은 그의 방한 사실조차 장면에게 알리지 않았다.디엠은 개인적으로 노기남(盧基南)대주교에게 전화해 일요일 첫 미사때 명동성당에 들르겠다며 장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장면과 디엠은 결국 주교관 2층 노대주교 방에서 몰래 만나 우정을 재확인할수 있었다. 외국원수에 대한 의전마저도 무시할 정도로 장면을 철저히 배제한 이승만의 폭거는 4월혁명으로 쫓겨날 때까지 계속됐다. 장면이 순화동 부통령 공관에서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던 그 무렵을 이철승(李哲承)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지만 민주 염원의 상징으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회상하면서 “장박사가 사실은 남달리 외유내강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장면은 총리·부통령을 거치면서 국가지도자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했다. 그런 까닭에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물러나자 민심은 당연히 장면에게로쏠리게 됐다. 이용원기자 ywyi@**前비서관 李聖模·李泓烈씨가 본 장면 장면(張勉)에게는 10여년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한 비서관이 두 사람 있다. 이제는 70대가 된 이성모(李聖模·72)씨와 이홍렬(李泓烈·77·미국 거주)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장면이 주미대사로 활동한 50년대 초부터 66년 타계하기까지 때로는 함께,때로는 엇갈리며 그의 곁을 지켰다.이들이야말로 가족이나 정계의 동료보다도 장면의 모든 것을 더 가깝게,더 오랫동안 지켜본 증인들이다.그들이 밝힌,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몇 토막을 소개한다. 이성모씨는 1951년 초 피난지 부산에서 장총리를 만난다.경찰관으로 경호업무를 맡은 그는 인품에 감화해 곧 경찰복을 벗고 비서로 들어간다.그가 직접 본 부산 피난 시절 장면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다. “장총리는 꼭 집에서 점심을 들었다.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다가 모친(黃누시아)이 등 찢어진 삼베옷을 입은 것을 보고 흉하니 갈아입으라고 말씀드렸다.그랬더니 모친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자네가 이 나라 총리 맞는가. 지금 피난민이 곳곳에 우글거리는데 잘먹고 편히 있는 내 걱정할 땐가.’장총리는 무릎을 꿇고 한 시간이나 빌었다.모친 지시대로 범일동 고아원에 가아이들을 돌본 다음에야 용서받았다.장총리 부모도 매우 훌륭한 인격자였고,그는 부모 말씀에 절대 복종했다.” 이홍렬씨는 50년 4월 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 부영사 때 장면 주미대사를 알게 된다.51년 총리로 내정된 장면의 부름으로 함께 귀국해 총리실 파견근무를 했고 그 인연으로 비서관이 된다. “장총리를 10여년 모셨는데 화내는 모습을 딱 한번보았다.60년 12월이었다.청와대로 전화하라고 해서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이재항(李載沆)씨를 바꿔주었다.장총리가 통화를 몇분 하더니 화난 표정에 목소리가높아졌다.대통령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이재항씨가 자꾸 핑계를 대며 안바꿔주는 모양이었다.전화를 끊은 장총리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로군’하고혼잣말을 했다.그것이 그분이 할 줄 아는 가장 험한 욕이었다.” 이홍렬씨는 장면이 돈 문제에도 담백했다고 밝혔다. “51년 총리 시절 파리에서 열린 제6차 유엔총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가게돼 있었다.떠나기 열흘 전쯤 한국은행 총재가 나를 불렀다.‘외교활동을 하려면 가외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면서 돈가방을 주었다.얼핏 봐도 100달러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일단 거절하고 돌아와 말했더니 ‘잘했다’는 한마디뿐 더는 말이 없었다.돈을 챙기는 데는 관심이 전혀 없어 쿠데타후 명륜동자택으로 돌아가서는 생활비가 없을 정도였다.” 이성모·이홍렬 두 비서관은 군사정권 아래서 고된 삶을 살았다.이성모씨는 장면 집안일을 돌보는한편 정치에도 뛰어들었다.민주당 재건에 참여,섭외부장·조사부장을 역임했고 경북 영주·봉화 지구당위원장으로서 6·7대 총선에 출마하지만 거듭 실패했다.이후 사업을 하면서 장면 추모모임인 ‘운석회’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 이홍렬씨도 5·16쿠데타후 장면을 곁에서 모시다가 그의 타계후 정치에는일절 발을 끊고 생활인으로 돌아갔다.지난 88년 도미해 로스앤젤레스에 자리잡은 그는 본지에 ‘제2공화국과 장면’ 연재가 시작되자 일부러 두 차례 귀국해 증언하고 자료를 제공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용
  • “윤봉길의사 체포사진 가짜 아니다”-노스차이나∼’지서 확인

    매헌 윤봉길(尹奉吉)의사가 거사후 체포되는 모습을 담은 일본신문 사진이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반박하는 당시 신문기사 자료제시와 유족·전문가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연합뉴스는 중국 베이징 특파원발로 ‘윤봉길의사 거사후 체포사진 가짜 의혹’을 첫보도 했다. 이어 이를 반박하는 유족 발언이 일부 신문에 보도되자 약 한달후인 23일 거듭 가짜임을 주장하는 기사를 내보냈다.이 주장은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 강효백(姜孝伯) 영사의 제보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강 영사는 윤의사의거 이틀 뒤인 1932년 5월 1일자 오사카아사히심붕(大阪朝日新聞)의 ‘호외’ 1면 하단에 실린,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인물은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윤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강 영사는 거사당시 윤의사는 25세였으나 사진속의 인물은 35∼50세로 보이며, 거사직후 일본군의 폭행으로 정신을 잃고 진흙탕에 쓰러졌던 사람치고는 옷차림이 너무 말쑥한데다 모자까지 든 점 등을 들어 이 사람은 당시현장에서 체포된 한인 8명 가운데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또한 23일 기사에는 상하이 의대 정형외과 전문가팀 등의 ‘골상학적 비교분석’ 결과를 근거자료로 추가했다. 그러나 유족및 학계에 따르면 문제의 ‘호외’ 2면에 실린 사진과 이보다 하루 앞선 4월 30일자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지 게재 사진은 모두 동일하며 바로 윤의사로 확인된다.‘노스 차이나…’지는 거사 직후 윤의사가 끌려가는 사진과 함께 “이날 한국인으로 보이는 회색 코트를 입은 한 청년이체포되었는데 이름은 ‘Im Fung Kee’,나이는 25세,불란서 조계(租界)에 있는 한 세탁소의 점원인 그를 군중들이 린치를 하자 일본 헌병이 그를 군중들로부터 구해냈다”고 전하고 있다. 또 ‘호외’ 2면에 실린 ‘끌려가는’ 사람의 모습은 헝클어진 머리에 우측뺨에 피를 흘리고 있어 ‘노스 차이나…’에 실린 기사내용·사진과 일치한다.결국 석 장의 사진의 주인공은 모두 동일인으로 그가 윤의사임을 입증하고 있다. 최서면 한국연구원 원장은 “당시 사진전송 기술이 좋지않아 오해의소지가있지만 윤의사가 분명하다”며 “이봉창 의사도 체포당시 사진은 실제보다훨씬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고 밝혔다. 또 윤의사의 동생 윤남의(84)씨도 “측면사진이긴 하나 형님의 모습이 분명하다”며 “한인 8명이 체포된 것은 윤의사 피체후의 일”이라고 반박했다.
  • 부분개각 금명 단행 가능성…부처 직제개편안 확정따라

    정부가 17일 각 부처 직제개편안을 확정,발표함에 신설 기관장 인선과 개각이 금명간 뒤따르게 된다. 정부는 일단 20일 국무회의에서 직제개정안을 의결하고 빠르면 21일 또는 24일 공포절차를 거친뒤 신설 기관장 임명과 후속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신설되는 중앙인사위원장(장관급)에는 김광웅(金光雄)·오석홍(吳錫泓)서울대교수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또 기획예산처 장관에는 진념기획예산위원장과 정덕구(鄭德龜)재경부차관등이 검토되고 있으며,국정홍보처장(차관급)에는 언론인 출신 인사들과 윤형규(尹逈奎) 주 오사카 총영사,오효진(吳效鎭)공보실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신설기관장 인선과 함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필요에 따라 부분적인 개각을 단행할 수도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외교부 감축 최소화 로비 치열

    외교통상부는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조직축소 최소화를 위해 행자부와 청와대를 상대로 강력한 ‘로비전’에 돌입했다. 현재 행자부가 공식으로 요구한 감축안은 9개 재외공관 및 2개국 축소,80명선의 인원 감축 등이다. 특히 60명에 달하는 특 1,2급에 대한 10% 이상의 감축여부도 관심사다.외교부는 외교업무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형평성’이란 획일적인 잣대로 외교부의 인원과 직제,재외공관을 축소하려한다고 반박한다.더욱이 지난해 20개의 해외공관을 줄인 상황에서 추가 감축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때문에 홍순영(洪淳瑛)장관을 비롯한 외교부의 고위당국자들은 일제히 “21세기 글로벌시대의 국가이익은 해외에서 찾을수 밖에 없다”며 “해외공관과 인원축소는 국가이익의 창출 가능성을 봉쇄하는 결과가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외교부측은 “공관 1개를 폐쇄하면 연간 30만∼40만달러의 비용이 줄어들지만 폐쇄 여파로 인한 수출과 투자 감소액은 비용 감소의 수십배에 달한다”고 주장한다.지난해 8월 현지 대사관이 폐쇄된 우루과이의 경우폐쇄직전 1년간 7,239만달러의 수출을 기록했지만 그후 현재까지 수출액은 1,700만달러로 급락했고 볼리비아의 경우도 1,000만달러의 수출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전했다.중남미나 아프리카의 경우 재외공관 자체가 현지 진출 중소기업의 ‘방패막이’가 되는 상황에서 수출이나 경협의 상당한 위축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있다. 외교부는 대사관이 아닌 총영사관 3∼4곳 감축과 40명선의 인원 감축안을갖고 행자부측과 최종조율을 시도하고 있다. 오일만기자
  • 北, 홍콩에 총영사관-中國과 하반기 개설 합의

    북한과 중국이 올해 홍콩 주재 북한 총영사관을 설치키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외교소식통은 11일 “북한이 지난해부터 중국측에 홍콩 주재 총영사관 개설을 지속적으로 요청했고 양국이 베이징(北京)에서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최근 개설에 잠정 합의했다”며 “시기는 올 하반기가 될 것”이라고밝혔다. 오일만기자 oilman@
  • 中 전역서 反美시위 격렬…유고 中대사관 오폭 항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베이징 베오그라드외신종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에 항의하는 반미 시위가 8일에 이어 9일 중국 전역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등 유고사태가 새로운 긴장 국면을맞고 있다. 중국 대학생 2만여명은 이날 젠궈먼와이(建國門外)에 있는 베이징(北京) 주재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나토군의 유고연방 주재 중국 대사관 폭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앞서 지난 7일 밤(현지시간) 나토군기가 베오그라드 시내를 집중 폭격하는과정에서 중국 대사관에 3발의 미사일을 오폭,관영 신화(新華)통신 기자 등모두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나토의 중국 대사관 공격은 중국의 주권을 침범하는 횡포이자 외교관계 협약 및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을 짓밟는 행위”라고항의하고 8일 새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미 국무부는 남서부 청두(成都)의 미국 영사관 건물이 방화당하고 상하이(上海) 주재 영사관이 공격당하는 등 시위가 격화되자 10일부터 이틀간 중국주재 미 대사관과 4개 총영사관을 잠정 폐쇄한다고 8일 발표했다. 중국 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토는 9일 새벽 유고 제3의 도시 니스를 공격하는 등 공습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8일 팅커공군기지에서 중국 대사관 오폭은 ‘비극적인 실수’라고 유감을 표명했으나 공습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미 셰이 나토 대변인도“유고의 연방(무기)조달 및 공급이사회 건물이당초 공격목표였으나 인접한 중국 대사관이 잘못 공격을 받았다”면서“고의적인 공격이 아니었지만 끔찍한 사고로 인한 인명손실에 깊이 사과한다”고말했다.그러나“나토의‘동맹군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hay@
  • [세계로 나가자]해외일자리 안내/국제프로그램(1)

    대졸 고학력 구직자들이 30만을 넘어섰다.재학생들도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 채 무작정 어학연수를 떠나려 한다.그러나 능력있고 진취적인 젊은이들에게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어학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여름방학을 이용할 수도 있고 더 장기간도 가능하다.단,원하는 시간에 나가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대한매일은 이같은 취지로 우리 젊은이들이참가할 수 있는 국제프로그램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워킹홀리데이는 어학연수,해외여행,현지취업이라는 3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워킹 홀리데이의 무게중심은 여행,연수에서 취업쪽으로 옮겨져 휴학생뿐 아니라 졸업생,감원된 젊은 직장인 등도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워킹 홀리데이는 ‘여행을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관광취업비자’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이 비자는 현지에서 합법적으로 노동권을인정받게 되는 일종의 특혜성 비자다.우리나라와 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는 호주,캐나다,일본,뉴질랜드이다. 비자는 만18세∼25세(제한적으로 만30세까지도 가능)의 젊은이를 대상으로발급되며 평생 1회에 한해서 발급 혜택이 주어진다.실제 체류기간이 1년이며 발급 이후 12개월 이내에 해당국에 입국해야 한다. 특히 일본과는 지난해 10월 비자협정이 체결됐고 이번달부터 시행되고 있다.일본은 서비스산업이 발달해서 음식점,선물가게,쇼핑몰,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 요원을 수시로 채용하며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신문배달과 광고지 배포도 할 수 있다. 올해는 5월에 한번만 모집해서 1∼3차까지의 심사를 거쳐 일본대사관(서울)에서는 750명,일본총영사관(부산)200명,(제주)50명으로 약 1,000명에게 9월중순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해 줄 예정이다.일본 비자 1차 심사 신청은 다음달 3일∼17일까지이며 일본대사관 또는 일본총영사관에 제출하면 된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조건은 만18∼25세까지의 나이제한이다.또 ‘일을 한 경험’을 요구하고 있어 학생의 경우는 6개월 이상,직장인은 1년 이상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캐나다는 식품산업,공공보건과 관련된 업종에 취업하려는 사람에 한해서 의료검진을 요구한다.신청자는 3개월 범위 내에서 영어 및 불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건설,엔지니어링,의료,법률과 관련된 업종의 취업은 제한될 수도 있다. 올해 뉴질랜드 비자 신청은 다음달 1일∼10일까지 이며 우편접수된 서류중추첨을 통해 200명을 선별한다.각국의 비자는 같은 조건이면 선착순으로 발급되는 경우가 많아 워킹 홀리데이 협회 등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정보습득에서 유리하다. 각국 대사관이나 워킹홀리데이 협회(02-723-4646,웹사이트 www.workingholiday.co.kr)에 문의하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국제이민기구 한국사무소장 이정혜씨 제네바에 본부를 둔 IOM(국제이민기구) 한국사무소장으로 선발된 이정혜(李貞慧·33)씨는 “막상 이 일을 맡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첫소감을 밝혔다. 1952년 설립,2차대전 이후 국제 난민 수송 및 본국귀환 등 인도적 차원에서의 난민 이주문제를 지원해온 이 기구는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협력기관으로 소련으로부터 유태인 이주,베트남 난민 정착,이라크 난민 귀환사업 등을 지원해왔다. 서울대 인류학과 출신으로 하와이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동서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맡았던 이 소장은 “이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던 차에 모집공고를 보고 응하게 됐다”며 “이 시점에 한국에 IOM 지부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한국에서의 업무는 점증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과 조선족들의 정착및 귀환문제 등이 될 것이라는 이 소장은 “앞으로 북한의 상황변화에 따라탈북자문제 혹은 북한으로부터의 대대적인 난민문제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강조했다. 여의도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어 이 달부터 업무를 개시한 이 소장은 “업무파악 후 직원도 뽑을 예정”이라며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언어도 중요하지만 열린 사고방식이므로 미리 목표를 세워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창구기자 **
  • 외교부 고위직 43명 승진인사

    외교부는 6일 孫明鉉주스웨덴대사를 특2급에서 특1급으로 승진시키는 등 모두 43명의 내부 승진인사를 지난달 31일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특1급은 孫대사를 포함 4명,특2급 은 吳正一 주폴란드대사 등 6명이다.외무관리관(1급)은 黃富弘 주네팔대사 등 10명,이사관(2급)은 金中宰 구주국심의관 등 12명이며 부이사관(3급)은 姜大鉉 아·태국 과장 등 11명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金大中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승진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다른 부처에서는 “현재 정부 구조조정 등 부처 슬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외교통상부가 서둘러 고위직 인사를 단행한 것 아니냐”며 인사 배경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승진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특1급 ▲주스웨덴대사 孫明鉉▲본부 金錫鉉▲주뉴욕총영사 許利勳▲주프랑스대사 權仁赫 ◇특2급 ▲주폴란드대사 吳正一▲주덴마크대사 權寧民▲본부 金在燮▲주아르헨티나대사 慶昌憲▲주콜롬비아대사 金昇永▲통상교섭조정관 鄭義溶▲주네팔대사 黃富弘▲주국제연합대표부대사 曺昌範▲주베네수엘라대사 張東哲▲주제네바국제연합사무처대사 朱鐵基▲주피지대사 林大澤▲본부 崔勝浩▲본부 權鍾洛▲주코스타리카대사 金永植▲본부 趙庸河▲본부 李泰植
  • 외교관·비상계획관 직급 내린다

    일반 공무원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특정직 공무원들의 직급이 조정될 전망이다. 기획예산위원회는 26일 정부 조직개편안의 확정에 따라 대사·총영사·공사등 외교관과 각 부처 비상계획관의 직급을 하향 조정,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관은 1급보다 위에 있는 특1급과 특2급 공관장 66명을 포함,130명에 달하는 1급이상 외교관을 파견국과의 외교관계 등을 감안해 직급을 하향 조정해 정원을 감축하거나 특1,2급을 하나의 직급으로 합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또 외무고시가 내년부터 폐지돼 행정고시의 외교통상직으로 합해지면 직급도 일반공무원과 같은 방식으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부처별로 예비군동원,소집,비상시 부처조직을 관할하는 비상계획관도 국장급으로 둘 필요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직급을 현재의 2∼3급에서 3∼4급으로 내릴 계획이다. 법원과 검찰의 직급 인플레 문제는 다음달에 구성될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추진한다.현재 초임검사나 판사들이 받는 급여(본봉)는 일반공무원 3급(부이사관) 수준으로 이는 일반공무원이 행정고시 합격후 평균 20년 지나야 받을 수 있는 것이어서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권력기관일수록 직급 인플레가 심하다며 여건상 급여를 당장 줄이기 힘들면 일부를 수당으로 돌려 점진적으로 일반공무원과 형평을 맞추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 개편안 주요내용

    정부조직 2차 개편안 기능조정 및 운영시스템 혁신방안을 간추린다. ▒국정홍보기능 강화 분산돼 있는 국정홍보 기능을 종합화·체계화하기 위해 국정홍보처(차관급)를 신설한다.국내외 홍보를 일원화하고 국정홍보처장이정부대변인 역할을 수행한다.총리공보기능은 총리비서실로 이관한다.언론관리 기능은 통제가 아니라 인허가 등 지원 업무만 한다. ▒중앙인사위원회 설치 대통령 직속으로 중앙인사위원회를 신설한다.1∼3급의 고위공무원 채용과 승진에 대해 공정·투명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심의·의결한다.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그 기준에 맞춰 대통령에게 임용 제청하며,중앙인사위는 기준 준수여부를 심의한다.소청심사위원회는 행정자치부에 존치한다. ▒경제정책조정 및 예산기능 보완 헌법상 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구성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다.경제현안 중심으로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해 재정경제부장관이 주재한다.당면 현안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한다.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을 통합해 기획예산처로 개편한다.공공부문 개혁과 예산,재정운영,재정관련 기획·조정회의를 담당한다. ▒중앙기능의 지방이양 교육부의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를 대폭 지방에 이양한다.교육부 조직과 기능을 교육자치에 대비한 구도로 개편한다. 자치경찰제를 실시하되 구체적인 추진시기 및 방법은 경찰개혁위원회 보고서 내용을 반영해 결정한다. 부처별로는 행정자치부 교육부 농림부 등 7개 부처의 23개 기능을 우선적으로 지방에 이양하고 부처별로 자치단체 이관 대상기능을 추가로 검토한다. ▒정부기능의 외부위탁(아웃소싱)·민영화 행정자치부의 정부청사 조경과 식당·매점관리 기능 등 18개 기관의 38개 기능을 대상으로 추진한다. ▒집행기능의 책임운영기관(에이전시)화 조달청 등 17개 부처,25개 기관을책임운영기관화 검토대상으로 선정,우선 올 하반기부터 10개 기관을 선정해시범운영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재정경제부 외국인 투자유치 기능은 산업자원부로 이관한다.금융기관 설립 인허가권과 특수은행의 건전성 감독권을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한다.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은행연합회 농수축협중앙회 등 자율규제 기관에 대한 감독기능을 금융감독위원회로 넘긴다.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국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넘긴다. ▒법무부 중립적 인사로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4∼8월 구성해운영한다. ▒행정자치부 육지 소규모 어항 개발사업은 해양수산부로 이관한다.지역신용보증조합 관리지원 기능은 중소기업청으로 이관한다.도심철도 이설사업 지원기능을 철도청으로 넘긴다. ▒농림부 농과계 대학교 지원기능을 농촌진흥청으로 넘긴다. ▒산림청 야생조수 관련 정책 및 연구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한다. ▒농촌진흥청 대구사과연구소·나주배연구소를 국립 지방대로 넘기고,해외병해충 관련기능의 농림부 이관을 검토한다. ▒산업자원부 지역통상 협력기능을 축소한다.방문판매·할부거래 등 소비자보호기능을 공정거래위원회로 넘긴다.추가로 남북경제협력 대비 기능을 통일부로 이관하는 것을 검토한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 안전정책 기능을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넘긴다. ▒개방형 임용제도 퇴직·승진·전출 등 공석을 충원하는 방식으로 하되 2000년말까지 실국장급 30%를 개방형으로 임용한다.개방형의 적용범위,대상직위,임용대상자의 자격기준,임용자의 신분,계약기간,보수,성과평가 등 세부추진방안은 신설될 중앙인사위에서 마련한다. ▒인사·조직·예산의 부처 자율성 제고 외무·행정고시를 통합해 외무공무원을 통상 전문가로 육성한다.고시 시험과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차관보나 담당관 등을 장관 직속기관 등으로 운용한다.대사·총영사·공사 등 외교의 직급을 하향조정한다.각 부처 비상계획관 도 직급도 2∼3급에서 3∼4급으로 낮춘다. ▒부패방지제도 강화 정부기능과 사업의 민간이양 추진,행정절차 간소화 및원스톱서비스 체제구축,민원업무 전산처리범위 확대로 인한 공무원 재량권축소,행정정보공개,예산집행 공개,정책실명제 등 ‘사전적’ 부패방지시스템을 구축한다.‘사후적’으로는 뇌물의 실체와 대가성 기준,단순선물과의 구분 등 뇌물의 개념을 구체화해 명확한 처벌기준을 마련한다.시민감사청구제도의 활성화와 부정,비리센터운영 및 몰수·추징금 일부를 장려금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리와 부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등의 활동도 지원한다. ▒복식부기제도 도입 정부 재정활동의 효율성,투명성,책임성 제고차원에서복식부기제도를 도입한다.중앙정부는 정부회계제도개선추진협의회를 구성해내년중 특별회계에 적용하고 2003년부터 일반회계까지 복식부기 적용을 확대한다.지방자치단체도 광역·기초단체의 유형별로 시범 실시한 뒤 2002년까지 전 지자체로 확대한다. ▒정보기술(IT)활용제고 전자결재를 의무화해 2000년부터 부처간 전자문서를 교환하고 50인 이상 모든 공공기관은 2000년말까지 웹사이트를 개설한 뒤정보공개목록을 작성해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고객헌장제도 확대 시범 실시중인 소방·우편·교육 등 10개 분야외에 검찰청과 병무청,조달청,국민병원 등 대민서비스기관 단위로 고객헌장을 시행한다. ▒국민권리구제절차 개선 행정심판 기능,조정·중재 담당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충처리위원회와 법률구조공단도 인사와 예산상 독립을 보장하고 조사·시정권고와 법률상담·소송대리 등 고유기능을 강화한다.
  • 오사카 한국문화원 어제 개원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간사이(關西)지역 중심인 오사카(大阪)에서 17일 한국종합정보센터인 한국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이날 개원식에는 辛鉉雄 문화관광부차관과 李協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야마다 이사무(山田勇) 오사카부(府)지사,이소무라 다카후미(磯村隆文) 오사카시장 등 양국정부와 문화예술계 인사 2백여명이 참석했다. 오사카 총영사관 내에 위치한 3층으로 약280평에 전시장,도서실,비디오시청실,컴퓨터 검색실,영상실 등을 갖춘 종합정보센터 기능을 하게된다.오사카지역에는 현재 재일동포 65만명중 절반 가량인 30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일찍부터 문화원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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