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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카와 불법 총기소지가 만나면? 아르헨 18세 소녀 총기사망

    셀카와 불법 총기소지가 만나면? 아르헨 18세 소녀 총기사망

    총기류 불법 거래와 소지가 가능해진 아르헨티나에서 10대의 어설픈 총기 조작이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러시안 룰렛' 셀카를 찍으려던 아르헨티나 소녀가 권총이 발사되면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관광도시 마르델플라타에서 최근 벌어진 사건이다. 평소 셀카를 즐겼던 말레나 아코스타(18)는 19일 오후(현지시간) 친구와 함께 권총을 갖고 있는 동네 남자동생을 찾아갔다. 16살 미성년자인 이 동생은 평소 권총을 갖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러시안 룰렛 셀카를 찍게 권총을 빌려달라는 말에 동생은 거리낌없이 보관하고 있던 권총을 꺼내보였다. 동생은 총을 잘 다루는 자신이 총탄을 모두 빼야 안전하다면서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탕' 총구는 불을 뿜으면서 큰 사고가 났다. 권총을 달라고 했던 아코스타가 등에 총을 맞고 고꾸러진 것. 아코스타는 인근 라스에라스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총상을 입은 환자가 들어오자 병원이 사건을 신고하면서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다. 총기사고가 총을 갖고 있던 동생과 동행했던 친구의 증언을 종합하니 총기사고가 맞았다. 고의성은 없어 보였다. 충격적인 건 16살 소년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총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경찰이 캐묻자 한동안 침묵하던 소년은 "동갑내기 친구가 잠시 맡아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털어놨다. 다만 소년은 아직 총기를 맡아달라고 한 친구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경찰은 "총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총을 갖고 다니는 10대를 이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면서 "불법거래가 이뤄지는 총기류 암시장을 뿌리 뽑아야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빅뱅뉴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미국 텍사스 오스틴서 총격…“두곳서 희생자 여러명 가능성”(2보)

    미국 텍사스 오스틴서 총격…“두곳서 희생자 여러명 가능성”(2보)

    31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텍사스주 주도인 오스틴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잇따른 총격 사건으로 미국이 ‘테러 공포’를 떨치지 못하는 분위기다. AP통신, dpa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3시쯤 오스틴시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최소 1명이 사망했다. 현지 신문인 아메리칸 오스틴-스테이츠맨은 사망자가 30대 여성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경찰은 트위터를 통해 주민들에게 외출을 삼가고 시내로 접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역 방송 KXAN은 긴급 의료진의 말을 인용해 총상을 입은 이들이 오스틴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며, 범인이 이동하며 총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현지 공무원들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스틴 시내 각각 다른 곳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여러 피해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도 같은 구역 내 두 곳에서 각각 총격이 발생했다며 현 시점에서 두 곳은 안전한 상태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오스틴-트래비스 카운티의 긴급의료서비스 기관도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건에서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국 샌디에이고서 또 경찰 1명 피격…용의자 검거(종합)

    미국 샌디에이고서 또 경찰 1명 피격…용의자 검거(종합)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 샌디에이고 시에서 28일 오후 11시(현지시간)쯤 총격사건이 발생해 경관 1명이 숨지고 다른 경관 1명이 크게 다쳤다. 총에 맞은 용의자는 경찰에 검거돼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9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총격은 전날 밤늦게 샌디에이고 시 남동부 사우스크레스트 지역에서 발생했다. 조직폭력배 진압 전담반 소속인 두 경관이 검문을 위해 차량을 도로에 세운 직후 총격이 벌어져 경관들은 곧바로 응급 지원 연락 무전을 쳤다. 지원 인력이 도착했을 때 이미 쓰러진 경관들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명은 숨을 거두고상체에 총상을 입은 다른 경관은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당시 경관들이 차량을 세운 이유와 용의자가 경관을 상대로 총을 쏜 동기 등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샌디에이고 경찰은 헬리콥터와 경찰견, 특수기동대(SWAT)팀을 동원해 29일 날이 밝기 전까지 인근 주택가를 집중적으로 수색했지만, 용의자를 추가로 검거하진 못했다. 지난 7일 텍사스 주 댈러스, 17일 루이지애나 주 배턴 루지에서 각각 군인 출신 흑인 용의자의 매복 조준 사격으로 경관 8명이 피살돼 경찰의 안전 문제가 대두한 상황에서 또 경관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망하거나 다친 경관들을 집계하는 미국 경찰추모기금의 29일 현재 자료에 따르면, 올해 근무 중 피살된 경찰은 6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3명)보다 많다. 특히 총에 맞아 숨진 경관은 지난해 19명에서 79%나 증가한 34명에 달한다. 또 다른 집계를 보면, 미국 전역에서 7월 한 달에만 숨진 경관은 20명에 이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끊이지 않는 경찰관 총상 사망사고, 파출소 근무 경찰관 숨진 채 발견

    끊이지 않는 경찰관 총상 사망사고, 파출소 근무 경찰관 숨진 채 발견

    경기 안산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3일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쯤 안산시 상록구 반월파출소 뒤편 주차장에서 이 파출소 소속 A(42) 경사가 머리 부위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시신 발견 당시 A경사 주변에는 그가 평소 소지하고 다니던 3.8구경 권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탄피는 현장에서 약 12m 떨어진 곳에서 나왔고, 총기에는 장전한 5발 중 4발이 남아 있었다. 당일 야간 근무조(전날 오후 6시∼이날 오전 7시)였던 A경사는 순찰을 마치고 전날 오후 11시 45분께 파출소로 복귀했다. 그런데 약 10분 뒤에 파출소 주차장에서 총소리를 들은 동료 직원들이 주차장으로 달려나갔고,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A경사를 발견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주차장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는 없지만, 경찰은 당시 현장에 다른 사람이 없었던 점, A경사 손에 화약 반응이 나온 점 등을 감안해 A경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경사는 평소 관리대상도 아니었고 동료와 불화도 없었다”면서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해왔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총기에는 첫발이 공포탄으로 장전돼 있지만, 실탄이 먼저 발사되도록 조절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경사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이송해 부검를 의뢰한 한편, 최근 A경사가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다는 동료들의 진술을 토대로 자살 동기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최근 경찰 내에서는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5시 45분쯤 경기 용신시의 한 아파트에서 경기 광주경찰서 소속 B(42) 경사가 상관으로부터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지난 3월 22일 낮 12시 35분쯤에는 서울 동대문경찰서 소속 휘경파출소 2층 숙직실에서 C(47) 경위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독자의 소리] 4·19혁명 영혼부부 오늘도 울고 있다/유연경 서울 도봉구 쌍문2동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민주묘지에 산책을 갔었다. 둘러보다 1묘역 B구역에 있는 한 묘소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묘비에 김태년·서현무라는 이름과 사진이 함께 있었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여기 묻혀 있었지만 실제 부모의 가슴이 무덤이 아닌가 싶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누굴까. 묘역 입구에 설치된 표지석에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둘의 이름은 땜질판에 적혀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김태년과 서현무는 당시 중앙대 약학과 3학년, 법학과 2학년 학생으로 함께 희생됐다.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1960년 11월 15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서현무양은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대 선두에 섰다가 경찰에 끌려가 폭행과 고문을 당하고 이틀 만에 석방됐다. 행상하는 홀어머니에게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고통을 버티다 친구의 손목시계를 팔아 병원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두 달 뒤 싸늘한 죽음을 맞이했다. 김태년군은 4월 19일 내무부 앞 시위 도중 총상을 입고 중앙대 6명의 희생자 중 첫 사망자였다. 이렇게 숭고한 두 젊은 청춘의 죽음이 땜질돼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눈에 거슬렸다. 이 역사의 성지를 관리하는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하루빨리 표지석을 제대로 바로잡아 김태년·서현무를 기리는 데 아낌이 없기를 바란다. 이 두 영혼을 편안히 쉴 수 있게 하는 것도 산 자의 몫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김경희 서울 강북구 수유1동
  • 시리아 내전 봉쇄된 마을의 ‘마지막 의사’, 총 맞아 숨졌다

    시리아 내전 봉쇄된 마을의 ‘마지막 의사’, 총 맞아 숨졌다

    시리아와 레바논 접경지역인 자바다니 마을. 한 70대 노인이 병원에서 아들의 집으로 향하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는 정부군과 이를 돕는 헤즈볼라에 의해 포위된 자바다니 마을에 남은 마지막 의사였다. 의사 모하마드 쿠스는 지난 달 저격을 당해 사망했으나 그의 죽음은 계속되는 시리아의 원조 봉쇄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고 AP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UN에 따르면 5년 넘게 내전 중인 시리아에선 포위된 지역 내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와 관련된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으며 거의 50만 명에 이르는 거주민들이 포위 돼 갇혀 있지만 이중 30%만이 올해 구호물자를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정부군에 의해 포위당한 상태고 20만명 정도는 다에시(IS)에 붙잡혀 있다. 한 때 산악휴양지로 인기가 있던 자바다니 지역의 상황은 시리아 전역에서 시리아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잔인한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쿠스 의사는 내전에 휩싸이기 전엔 마을의 문화센터에서 시를 낭송하곤 했던 관대하고 실력 있는 외과의사였다. 보안부대가 2011년 반정부 시위대를 무참히 탄압하기 시작한 후 의사는 조용히 다친 시위대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안부대는 시위대를 치료한 의료진들을 추적하여 잡아냈으나 그는 붙잡히지 않았다. 2012년엔 반군과 공동 전선을 펴는 자유시리아군(FSA)이 정부군을 쫓아냈다. 3년 뒤 마지막 의사가 마을을 떠났을 때 쿠스 의사는 수술실을 지키기 위해 마을로 갔다.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비영리의료구호단체 ‘시리아•미국 의사회(SAMS)의 한 봉사자가 반군에게 쿠스 의사가 빈자리를 메우도록 설득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행하게도 이후 레바논 헤즈볼라가 정부군의 편에 서서 반군을 마을에서 격퇴시킴으로써 쿠스 의사는 가장 철저하게 포위된 지역 중 한 곳에 갇히게 됐다. 헤즈볼라는 마을 주변에 폭탄을 매설하고 저격수를 배치시켜 누구도 마을에 들어오거나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쿠스 의사는 500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계속해서 치료해왔고 지난달 25일 길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 관계자는 통신과 인터뷰에서 정부나 헤즈볼라 저격수에 의해 사살됐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사망하고 며칠 후 총상을 입은 환자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가 없어 그가 고통속에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고 덧붙였다. 윤나래 중동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피자 주문에… 파리테러범, 고향집 근처서 붙잡혔다

    피자 주문에… 파리테러범, 고향집 근처서 붙잡혔다

    예상 깨고 벨기에서 127일간 은신예전집 500m 떨어진 곳에서 검거 체포 직전까지 이웃과 함께 있어 제2의 대형테러 모의 중 붙잡혀조사까지 최대 2개월 걸릴듯 추레한 차림의 20대 청년은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동공은 풀렸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총상을 입은 다리를 절며 경찰에 끌려 나왔다. 체포되기 직전 그의 곁에는 1명의 여성과 2명의 남성, 어린이 몇 명이 함께 있었다. 이웃 친지와 동네 형,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었다. 불과 4개월여 전 파리 생드니의 축구장 인근에서 연쇄 테러를 도와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유럽 역사상 가장 촘촘했던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무려 127일간 신출귀몰했던 ‘11·13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26)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서부 몰렌베이크의 고향 집 인근 은신처에서 붙잡혔다. 기나긴 도주극은 유달리 빈번한 피자 주문과 유리잔에 남긴 지문 탓에 결국 막을 내렸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유럽 테러범의 온상인 몰렌베이크는 당초 가장 유력한 은신처로 지목받았다. 그러나 집중적인 수사에도 행적에 대한 단서가 나오지 않자 경찰은 유럽의 제3국으로 도주했거나, 배후인 이슬람국가(IS)의 ‘본거지’ 시리아로 건너갔을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압데슬람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그동안 단 한 번도 벨기에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붙잡힌 곳은 고향집에서 불과 500m 떨어진 아파트였다. 벨기에 일간 라 리브레는 압데슬람의 체포 소식을 전하며 100채가 넘는 가옥을 뒤진 벨기에 경찰의 승리이자 동시에 굴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어떻게 감쪽같이 몸을 숨길 수 있었을까. 가디언에 따르면 압데슬람은 파리 테러 직후 수시간 만에 승용차를 타고 벨기에로 유유히 돌아왔다. 이후 신출귀몰했다. 이튿날 브뤼셀 북부 스하르베이크의 한 아파트에 몸을 숨겼고, 이곳에서만 무려 3주간 기거하는 등 은신처를 수없이 옮겨 다녔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스하르베이크의 은신처를 급습했지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현지 언론은 “압데슬람이 동료와 친지 등 주변의 광범위한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낱 같은 단서가 발견된 곳은 브뤼셀 남부 포레스트의 한 아파트. 지난 15일 경찰이 이 아파트를 뒤지는 과정에서 2명의 용의자가 지붕을 타고 도망쳤다. 이곳에 있던 유리잔에선 압데슬람의 지문이 나왔다.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 갔다. 한 아파트에서 빈번하게 피자 주문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잠복 근무를 통해 조력자들과 함께 있는 압데슬람을 급습했다. 사회 소외계층과 무슬림이 밀집한 몰렌베이크 주민 일부는 체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취재진을 가로막고 욕설을 퍼부으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프랑스 국적인 압데슬람은 벨기에 태생으로 브뤼셀에서 트램 기술자로 일해 왔다. 지난해 11월,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 인근 연쇄 폭탄테러 때는 12개의 기폭장치와 15ℓ의 사제 폭탄을 만들어 친형인 이브라힘(31) 등 다른 3명의 자폭 테러범에게 전달했다. 프랑스 법무부는 “압데슬람이 테러범들을 경기장 근처에 데려다 주고 자신도 자폭하려 했으나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다”면서 “최근 제2의 대형 테러를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의 체포로 IS와 유럽 개별 조직들의 연관관계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활짝 열릴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으나 압데슬람이 프랑스로의 이송을 거부해 본격적인 조사까지 최대 2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윤길자 그 년 죽는 건 봐야 하는데...” 숨진 딸 따라 떠난 ‘영남제분’ 피해자 어머니

    “윤길자 그 년 죽는 건 봐야 하는데...” 숨진 딸 따라 떠난 ‘영남제분’ 피해자 어머니

    “윤길자년, 그 년 죽는 건 꼭 봐야한다고... 그 년 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오래 사셔야 한다고 했는데...” 지난 21일 새벽 1시 30분. 하진영(39)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짤막한 글 한 편을 올렸다. 이 글에는 경기 하남시 마루공원 장례식장 정보도 첨부됐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였다. 하씨는 “어머니는 딸을 잃고 나서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에게 내색하지 않으시려 노력하셨지만 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이라며 “전 오늘 밤 지금 이 시간에는 손자 손녀와 즐겁게 놀고 푹 주무시고 계셨을...어머니의 방에서 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하진영씨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피해자 하지혜(사망 당시 22세)씨의 친오빠다.  사건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16일 하남 검단산 등산로에서 얼굴과 머리 부분에 여러 발의 총상을 입고 팔이 부러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열흘 전 실종 신고된 하지혜씨였다. 수사 결과 영남제분 류원기(69) 회장의 아내 윤길자(71)씨가 총기 살인사건의 배후로 드러났다. 윤씨는 판사인 사위 김모(43)씨와 이종사촌 여동생인 하씨의 사이를 불륜관계로 오해하고 조카와 그의 고교 동창에게 1억 7500만원을 주고 살인을 지시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난 20일 하씨의 어머니 설모(64)씨가 하남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하남경찰서 등에 따르면 설씨의 시신은 어머니 혼자 사는 집을 방문한 아들 진영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집 거실에서는 절반쯤 남은 소주 페트병과 빈 맥주 캔, 빈 소주병과 막걸리 병 등이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는 없었고, 부검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단 영양실조에 따른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으로는 작지 않은 신장 165cm의 설씨의 사망 직전 체중은 38kg까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설씨의 삶은 딸이 잔인하게 살해된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설씨의 남편은 “아내만 보면 딸 얘기가 나와 견디기 어렵다”며 2006년 따로 나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아들도 결혼으로 분가하면서 하남 집에는 설씨 혼자 남았다. 설씨는 딸의 생명이 끊어진 검단산을 보며 딸을 잊지 않기 위해 홀로 하남에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진영씨는 “어머니는 평소에 뜨거울 것 같으니 죽으면 절대 화장 시키지 말고, 죽는 것 또한 겁이 난다고 하셨다”면서 “그런데 당신 마음 아픈 게 결국 몸이 버티질 못했다. 억울하게 당한 일, 자식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으로 이길 수가 없었다”라고 슬픈 심정을 토로했다.   한편, 지혜씨 살인을 청부한 윤길자씨와 살인범들은 모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하지만 윤씨는 2007년 부터 유방암과 우울증, 당뇨 등 12개의 병명이 적힌 진단서를 발급 받아 2013년까지 교도소가 아닌 대학병원 ‘호화 병실’에서 생활해왔다. 검찰 수사 결과 남편 류원기 회장이 윤씨 주치의 박병우(56) 세브란스 병원 교수에게 1만 달러를 주고 허위 진단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두 사람을 구속기소했지만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고, 2심에서 류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박 교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테러에 맞선 ‘의로운 죽음’

    테러에 맞선 ‘의로운 죽음’

    케냐와 파키스탄에서 극단주의 테러에 맞서다가 희생당한 의인들의 사연이 전해져 지구촌을 숙연하게 했다. 20일(현지시간) 파키스탄 탈레반 소속 무장 괴한 4명이 이날 오전 북서부 차르사다에 있는 바차칸대학에 난입, 무차별 총격을 가해 교수와 학생 등 최소 20명이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학교에는 학생과 교직원 등 3000명 이상이 머물고 있었다. 괴한들이 기숙사, 강의실 등을 돌며 총을 난사한 가운데 한 교수가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권총을 들고 테러범에게 맞서다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인공은 화학을 가르치는 시에드 하미드 후사인(34) 교수. 그는 총성이 들리자마자 제자들에게 건물 안에 있으라고 당부한 뒤 권총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던 그는 결국 테러범의 총격에 쓰러졌다. 현장에서 그가 테러범과 맞서던 모습을 목격한 학생들은 “후사인 교수가 총에 맞아 쓰러지자 테러범들이 행정실로 들어갔고, 그 틈을 타 우리는 달아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영국에서 유기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사인 교수는 이 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파키스탄 네티즌들은 후사인 교수의 사망 소식을 트위터에 올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케냐에서는 기독교인을 골라내 살해하려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맞서다 총상을 입은 무슬림이 지난 18일 한 달여 만에 사망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북부 만데라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살라 파라는 지난해 12월 21일 수도 나이로비에서 만데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타고 있었다. 당시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바브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그가 탄 버스를 납치하고 60여명의 승객을 내리게 하더니 무슬림만 버스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파라는 다른 무슬림 승객들과 함께 “기독교인을 죽이려면 우리 모두 죽여라”라고 외치며 테러범들에게 저항했다. 시간이 지체될까 우려한 괴한들은 도주하려던 승객 2명만을 사살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파라의 용감한 행동이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은 셈이다. 괴한들이 버스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손과 엉덩이에 총격을 입은 파라는 이튿날 나이로비의 케냐타 국립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 왔으나 결국 생을 마감했다. 다섯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이달 초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한 병상 인터뷰에서 “무슬림 형제들에게 부탁하건대, 기독교인들을 잘 돌봐 줘라. 그래야 기독교인들도 우리를 잘 돌볼 것이다. 서로 돕고 더불어 평화롭게 살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케냐 경찰은 그의 시신을 고향 만데라로 옮길 때 특별기를 제공하는 등 의인의 죽음에 예우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9·11과 파리 테러서 생존… 두 번의 기적男 매슈

    9·11과 파리 테러서 생존… 두 번의 기적男 매슈

    지난 13일 파리 테러 당시 바타클랑 극장의 참사현장에서 총을 맞은 남성이 죽은 척 있다가 목숨을 건졌다. 기적같은 일의 주인공인 미국인 매슈(36)는 2001년에 미국 뉴욕 9·11 테러 때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22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매슈는 파리 테러 당시 가장 많은 89명의 사망자가 나온 바타클랑 극장에 미국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공연을 보러 갔다. 부인과 같이 가기로 했지만 두 아이를 돌볼 보모를 찾지 못해 부인은 집에 남았고 혼자 콘서트장을 찾았다. 총소리가 나자 매슈는 “미국인의 본능”으로 출구로 뛰기 시작했다. 뛰다가 다리에 총을 맞아 쓰러진 그는 죽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다가 테러범들이 발사를 잠시 멈출 때마다 아주 조금씩 기어서 출구로 향했다. 매슈는 “나는 죽은 척 연기했다. 총소리가 멈출 때마다 온 힘을 다해 1㎝씩 기어서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윽고 손이 닿을 거리에 문이 보였고 그는 한 손가락씩 문을 잡아 밖으로 나왔다. 매슈가 밖으로 나왔을 때 인근에서 사건 현장을 촬영하던 르몽드 기자 다니엘 프세니가 그를 구해줬다. 매슈는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긴다고 느꼈지만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면서 “그저 머릿속으로 ‘사랑합니다, 나의 천사님’이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매슈를 구하려다 프세니의 팔에도 총알이 박혔다. 그들은 간신히 바타클랑 극장 인근에 있던 프세니의 자택으로 피신했다가 몇시간 후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매슈는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14년 전 9월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바로 앞길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매슈는 “당시 업무 회의를 하러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항공기가 건물을 들이받는 것을 보고 맨해튼의 절반을 가로질러 전력질주해 달아나 살아났다”면서 “하지만 바타클랑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 1000배는 더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필리핀서 이슬람 반군 피랍 열달… 앙상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버지

    필리핀서 이슬람 반군 피랍 열달… 앙상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버지

    지난 1월 필리핀에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하부 조직으로 추정되는 아부사야프에 의해 납치됐던 한국인 홍모(74)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외교부가 1일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 1월 피랍됐던 홍씨가 필리핀 삼보앙가에서 발견됐다”며 “현지에서 필리핀 당국과 홍씨의 가족들이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는 지난 1월 필리핀 민다나오섬 삼보앙가시 부근 소도시 수라바이에 있는 아들의 집을 방문했다가 경찰복 차림으로 무장한 괴한이 홍씨를 포함한 한국인 5명에 대한 납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홀로 납치됐다. 범인들은 납치 한 달 뒤인 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피랍된 홍씨의 사진과 함께 5억 페소(약 121억원)의 몸값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필리핀 경찰은 이들과 석방 교섭을 벌였다. 필리핀 현지 언론은 홍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10시 30분쯤(현지시간) 필리핀 남부의 마을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면서 홍씨의 몸에 총상과 같은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장기간 납치된 상황에서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 듯하다고 경찰과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홍씨는 SNS 사진에서도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오 마이 베이비(SBS 토요일 오후 5시) 리키 김과 태남매의 마지막 하와이 여행기가 방송된다. 아빠 리키 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하와이 민속촌을 방문하게 된 태남매는 다소 낯선 모습의 원주민과 함께 하와이 원시생활 탐방에 나섰다. 아들 태오는 원주민의 ‘불 실력’에 감탄하며 곧바로 직접 불 피우기에 도전하고 맨손으로 나무를 타는 등 실력을 선보인다. 한편 임효성·유수영의 딸 라희, 라율 쌍둥이 자매가 낚시터를 찾으며 남다른 해산물 사랑이 그려진다. 한창 ‘먹방’에 물오른 라둥이는 낚싯대에 고기가 한 마리씩 낚일 때마다 입맛을 다시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남다른 식욕을 자랑한다. ■TOP밴드 3(KBS 2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TOP밴드가 새롭게 돌아왔다. 2012년 시즌2 이후 3년 만에 화려하게 다시 돌아온 TOP밴드는 록부터 재즈,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밴드 음악을 통해 대중과 함께한다. 과연 지난 시즌 밴드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총상금 1억원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이 시작된다. ■처용 2(OCN 일요일 밤 11시) 안개꽃 한 다발을 손에 든 하얀 원피스의 여성이 사망한 채 발견된 ‘밀실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귀신 보는 형사 윤처용과 여고생 귀신 한나영은 피해자의 시체 주변을 떠도는 검은 기운을 느낀다. 한편 현장을 본 분석관 정하윤은 15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음에도 미제로 남겨졌던 17년 전 연쇄살인 사건을 떠올리는데….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왜? 이유 알고보니..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왜? 이유 알고보니..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사진 = 서울신문DB (허원근 일병 사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일병 사건’ 결국 미스터리로… 대법 “사인 불명”

    ‘허일병 사건’ 결국 미스터리로… 대법 “사인 불명”

    전체 길이가 99㎝인 M16 소총의 총구를 자기 몸 쪽에 놓고 양쪽 가슴에 각각 한 발, 머리에 한 발 등 모두 세 발을 쏴 자살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의문을 둘러싸고 31년간 진실 규명 시도가 이어져 온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의 실체는 결국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 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 책임은 기각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 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허 일병 사망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꼽힌다. 1984년 4월 2일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당시 22세)은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가슴과 머리에 3발을 쏴서 자살하기 어려운 점, 현장 사진에 피가 거의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타살된 뒤 시신이 옮겨졌다는 의혹이 짙었지만 군은 자살로 결론 냈다. 이후 이 사건의 결론은 여러 차례 뒤집혔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당시 중대원 전모씨가 “술에 취한 하사관이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내무반에서 허 일병을 쏴서 죽였다. 중대원들이 동원돼 시신을 옮기고 물청소로 핏자국을 지웠다”고 진술한 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의문사위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부터 특별조사단을 꾸린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전씨를 제외한 다른 중대원 모두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내밀었다. 그러나 2004년 2기 의문사위가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고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그간의 자살 사례 등으로 볼 때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가슴과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허 일병의 부친은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 군이 확인 사살을 해 놓고 자살로 꾸며 냈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의문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판결 나온 배경은?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의문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판결 나온 배경은?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의문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판결 나온 배경은?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양측의 공방은 이어졌고, 결국 논쟁은 법정으로 갔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군 부실조사로 자살-타살 알 수 없어” 31년 전 무슨 일이?

    허원근 일병 사건 “군 부실조사로 자살-타살 알 수 없어” 31년 전 무슨 일이?

    허원근 일병 사건 “군 부실조사로 자살-타살 알 수 없어” 31년 전 무슨 일이?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원근 일병 사건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했다. 다만 허원근 일병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원근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네티즌들은 “허원근 일병 사건, 안타깝다”, “허원근 일병 사건, 대체 왜 부실 조사했나”, “허원근 일병 사건, 이런 일이 많았지”,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이든 타살이든.. 군에 문제가 있으니까 부실조사 한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SBS 방송 캡처(허원근 일병 사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결국 못 가렸다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결국 못 가렸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며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원심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원심 확정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며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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