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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순사건 피해 접수 35%뿐… 신고 기한 늘려야”

    여순사건 특별법에 따른 신고 접수일이 올해 말로 1개월 밖에 남지 않았지만 피해 접수가 희생자의 35% 수준에 그쳐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29일 여순10·19범국민연대에 따르면 여순 사건으로 수감 중 6·25 전쟁으로 곧바로 총살당하거나 보도연맹 등에 학살된 희생자는 2만여명에 이른다. 지난 1949년 전남도 후생복지국이 발표한 자료만 해도 희생자가 1만 2000여명으로 기록돼 있어 이를 기준으로 해도 60%에 지나지 않은 수치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여순사건 발생 73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지난해 1월 21일부터 신고 접수가 시작됐다. 하지만 사건 당시 목격자들과 유족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유족들이 고령이어서 접수 부진이 예상되는 만큼 수차례 대안을 세우라고 요구했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28일 현재 순천·여수시 등 전남 22개 시군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7124건에 그쳤다. 더구나 여순사건 특별법에는 당시 총상 등을 입고 부상 후유증을 겪다 접수 전에 숨진 사람들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순10·19범국민연대와 여순항쟁전국유족총연합 등은 “여순사건 시발점이었던 제주 4·3의 경우 7차례 기간이 연장됐다”며 “제주 4·3의 희생자가 3만명이었지만 1만 4000여건이 접수된 것처럼 여순사건도 최소한 9000건은 접수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경필 여순10·19범국민연대 사무처장은 “아직도 신고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고, 지리산 자락 희생지역인 경남 하동군 등에서는 접수가 잘되지 않은 상황이다”며 “내년 10월까지의 중앙위원회 조사기한도 더 연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10월 6일 진상조사를 개시했다. 희생자 신고·접수 7124건 중 1545건인 22%만 사실조사를 거쳐 실무위원회 심의를 완료했으나 최종적으로 중앙위원회 심의가 결정된 사건은 겨우 6%인 434건에 불과하다.
  • 거리에 내걸린 ‘스파이 시신들’…“배신자에 자비는 없다” 하마스 경고 [포착]

    거리에 내걸린 ‘스파이 시신들’…“배신자에 자비는 없다” 하마스 경고 [포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하마스 축출 작전에 협조한 혐의를 받던 팔레스타인인 2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 ABC뉴스 등 외신의 2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는 전날 오전 서안지구 난민캠프에서 공개 처형식을 진행했다. 처형된 남성 두 명은 하마스 공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스라엘 측에 협조한 혐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한 팔레스타인 경찰은 “해당 남성 두 명이 지난 6일 하마스를 향한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습 당시 이스라엘군을 도왔다가 제보에 의해 적발됐다”면서 “각각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남성”이라고 말했다. ABC뉴스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팔레스타인의 한 기자는 “두 남성은 거리에서 하마스에 의해 총살됐으며, 이후 난민캠프 주민들이 두 남성의 시신을 구타하고 짓밟았다”면서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은 송전탑에 매달린 두 남성의 처참한 시신을 바라봤다”고 전했다. 이어 “두 남성은 하마스의 총에 맞은 뒤 병원으로 옮겨지지도 않았다. 송전탑에 걸렸던 시신은 이후 아무렇게나 던져졌다”고 덧붙였다. 하마스는 “제보에 의해 이스라엘을 도운 두 남성을 체포하고 처형했다”면서 “우리가 그들(처형된 남성 2명)에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이스라엘을 돕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처형당한 두 남성 중 한 명의 가족은 “우리는 ‘악의적인 손가락’을 후회없이 잘라냈을 뿐”이라면서 하마스의 추가 보복이 두려운 듯 사망한 자와의 관계를 부인하기 위해 애썼다. ABC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는 협박 또는 이스라엘에서의 취업 허가, 입국 허가를 약속하는 방법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해 왔다. 이스라엘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적발돼 처형된 남성들과 관련해 신베트 측은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ABC뉴스는 “온라인에는 처형당한 두 남성이 눈을 내리깔고 이스라엘에 협조한 혐의를 인정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유포됐다”면서 “이들은 이스라엘 정보 관리들에게서 돈을 받고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일각에서는 가자지구에서의 분쟁이 심화하면서 이스라엘 협력자에 대한 더욱 극단적인 처벌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가자지구 서안지구에 본부를 둔 툴캄 여단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헤 협조한 어떤 정보원이나 반역자에 대해 면제는 없다”면서 “그들을 찾아내고 있으며, 찾은 뒤에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처벌을 예고했다. 이어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협력한 사람은 12월 5일까지 나서서 회개해야 한다”며 자수를 권하기도 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24~25일 서안지구에서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8월 서안지구의 한 세차장에서 이스라엘인 부자가 사망한 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제니 난민촌에 진입했으며, 29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 과정에서 8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 [포착] 당장이라도 쏠듯…파푸아 반군, 납치 조종사 새 영상 공개

    [포착] 당장이라도 쏠듯…파푸아 반군, 납치 조종사 새 영상 공개

    인도네시아 파푸아 반군이 뉴질랜드 조종사를 납치한 지 10개월 정도 지난 가운데 그가 등장하는 새로운 동영상이 공개됐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서파푸아 민족해방군(TPNPB)이 뉴질랜드 조종사 필립 메르텐스(37)를 위협하는 새 동영상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약 48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TPNPB 반군들이 앉아있는 메르텐스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총기로 살해할듯 위협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긴 것. 특히 영상에서 TPNPB의 리더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메르텐스를 두 달 안에 총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대해 뉴질랜드 외무부 측은 해당 영상에 대해 알고있다고 밝혔지만 영상이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 등 관련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인도네시아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메르텐스의 안전한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메르텐스는 지난 2월 7일 인도네시아 항공사 수시 에어의 경비행기를 파푸아주 은두가 지역 파로 산악 공항에 착륙시킨 직후 TPNPB에 납치됐다. 이들이 메르텐스의 석방 조건으로 내건 것은 파푸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다. 파푸아는 호주 북부 뉴기니섬의 서쪽 지역으로 동쪽의 독립국 파푸아뉴기니와 달리 인도네시아 영토다. 서뉴기니는 1961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선포했지만, 인도네시아는 군을 동원해 강제 점령했고, 1969년 자국에 편입시켰다. 이후 파푸아에서는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TPNPB는 각종 테러를 일으키며 무장 반군 활동을 하고 있다.    
  • 마약 유통 혐의 한국인 2명 등 18명, 베트남서 사형 선고받아

    마약 유통 혐의 한국인 2명 등 18명, 베트남서 사형 선고받아

    베트남에서 마약을 유통한 한국인 2명 등 1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12일 현지 매체인 VN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전날 호찌민 가정청소년법원은 A(63)씨와 B(30)씨 등 한국인 2명과 중국인 C(58)씨, 베트남인 15명 등 모두 1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16㎏ 상당의 마약류를 유통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2000년부터 16년 동안 출입국 관련 법률을 위반해 한국에서 여섯 차례나 수감됐다. 2019년 베트남에 정착한 뒤 한국으로 화강암을 수출하는 사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2020년 초 중국인 C씨를 만나 마약 유통을 시작했다. 또 한국 교도소에서 만난 B씨를 불러들인 뒤 애인과 함께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2020년 7월에 껏 라이 항구에서 한국으로 선적할 화강암 판에 마약류를 숨겼다가 공안에 체포됐다. 공안은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40개가량 압수했다.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호찌민으로 마약을 반입하면서 대부분은 현지에서 유통하고 일부는 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언론은 A씨가 한국에서 경찰로 재직하다 규정 위반으로 면직당했다고 보도했는데 한국 경찰청은 “확인 결과 A씨는 경찰로 재직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마약 범죄에 강하게 대처한다. 마약류를 반입하다 적발되면 2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헤로인 600g 이상이나 2.5㎏이 넘는 필로폰을 소지하거나 밀반입하다가 적발되면 사형에 처한다. 헤로인 100g 이상이나 다른 불법 마약류 300g 이상을 제조하거나 유통하다가 걸려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지난해 베트남에서 마약 범죄로 사형이 선고된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이들의 집행이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는데 베트남에서는 2013년부터 총살 대신 독극물 주사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 필리핀 라디오 앵커 생방송 중 괴한 총격에 사망 [여기는 동남아]

    필리핀 라디오 앵커 생방송 중 괴한 총격에 사망 [여기는 동남아]

    필리핀의 한 라디오 앵커가 생방송 도중 괴한의 총격에 사망했다. 당시 라디오 방송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 중이었고, 시청자들은 끔찍한 총격 사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5일 가디언에 따르면, 후안 후말론(57,남)은 이날 오전 5시 반경 미사미스옥시당탈주 칼람바의 자택 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모닝쇼를 진행하다 괴한의 총격에 사망했다. 범인은 청취자인 척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후안을 향해 두 발을 쐈다고 경찰은 전했다. 범인은 생방송 화면에 잡히는 것을 교묘히 피한 뒤 후말론의 금목걸이를 낚아챈 뒤 밖에서 대기 중이던 공범의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후말론은 병원으로 이송 중 숨을 거뒀다. 경찰은 주변 일대의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토대로 범인의 신원 파악에 나섰다. 또한 이번 범행이 언론인을 상대로 한 정치적 목적과 관련이 있는지에 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필리핀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언론인이 근무하기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언론자유 감시단체인 필리핀 전국 언론인 연합은 “후말론은 1986년 이후 필리핀에서 살해된 199번째 언론인”이라고 밝혔다. 1986년은 민중항쟁으로 민주주의가 복원된 해이다. 당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이 민주화 항쟁으로 무너지면서 그와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언론인 학살 사건은 2009년 남부 마긴다나오 주에서 발생했다. 마긴다나오주 주지사 선거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당시 주지사였던 안달 암파투안이 반대파 세력을 총살하는 과정에서 언론인 32명을 포함해 총 58명이 숨졌다. 필리핀 농촌 지역에서는 선거 경쟁과 관련한 대량 학살이 종종 발생하며, 이 과정에서 언론인의 희생도 뒤따르고 있다. 법 규제가 허술한 시골에서는 무면허 총기와 민간 부대가 활개를 치면서 언론인에 대한 안보 우려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이번 총격 사건을 강력히 비난하며 “국가 경찰에 살인자를 신속히 추적, 체포하고 기소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성명에서 "기자들에 대한 공격은 우리 민주주의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며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람들은 행동의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❿ 1922.10.31 무솔리니, 39세에 총리 등극베니토 무솔리니(1883.7.29~1945.4.18·이탈리아)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독일), 도조 히데키(1884~1948·일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 3대 인물로 유명하다. 셋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3형제 중 맏아들 무솔리니는 아버지의 대장간에 나가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름도 멕시코의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1806~1872)를 따라 지었다. 집에선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았다. 1902년 무솔리니는 병역을 피해 스위스로 이민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머물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조르주 소렐(1847~1922),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사상을 깨우쳤다. 그곳에 망명해 있던 안젤리카 발라바노프(1878~1965),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같은 러시아 마르크시스트도 만났다. 1904년 스위스는 무솔리니를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무솔리니는 1905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1908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트렌토로 가서 노동당 서기에 올랐다. 정치 신문 ‘라보니레 델 라보라토레’(노동자의 미래) 편집진도 맡았다. 1910년엔 고향인 포를리로 돌아가 주간지 ‘로타 디 클라세’(계급 투쟁)의 편집진이 되었다. 이후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11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점령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탄했다가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석방된 뒤 무솔리니는 사회당에서 전쟁을 지지한 수정주의자와 정쟁에서 승리해 기관지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에 선임됐다. 무솔리니는 2만명이던 기관지 독자를 10만명으로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9개월 뒤 수류탄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1917년 8월 병상에서 전역한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죽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19년 3월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200여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파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이탈리아 투쟁 결사)를 창립했다. 모든 사회 계급의 구분과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이념에 국가 부흥을 염원하던 국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21년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창당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더욱 힘을 얻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은 1922년 10월 27일 로마 진군을 감행했다. 당내 준군사 조직인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로 루이지 팍타(1861~1930)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만 39세였다. 2014년 취임한 마테오 렌치(1975.1.11~현재) 전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했다. 7개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했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걸리적거리는 모든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8년엔 파시스트당을 뺀 정당 활동은 금지됐다. 같은 해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대신했다. 이탈리아 제국은 스스로를 신로마 제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팽창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파시즘은 결국 에티오피아를 침략한다. 또 반종교주의, 특히 반가톨릭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공군 전투비행단 선발대를 스페인으로 파견했다. 이탈리아군은 1939년까지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탈리와와 프랑스, 영국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즉각 참전하진 않았다. 1940년 들어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승전으로 곧 종전을 맞을 것으로 판단해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6월 무솔리니는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후 일본 제국이 진주만 사건을 일으키자 이번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전황은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대대적인 후퇴가 계속됐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 이탈리아는 패배를 눈앞에 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폭격으로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곡물 수급난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1943년 들어 무솔리니의 선전술은 더 이상 국민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그들은 바티칸 라디오나 라디오 런던을 들으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1925년 이래 최대의 파업이 벌어졌다. 또한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와 토리노는 공습을 피해 노동자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멈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로 인해 이를 묵인하는 무솔리니를 대놓고 반대했다. 일찍이 무솔리니는 아프리카 전선과 튀니지에서 패퇴하자 히틀러에게 서부 전선으로부터 공격해 오는 연합국과의 전쟁에 집중해달라고 간청했다. 아프리카와 튀니지를 얻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겨눌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본토이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며칠 후 무솔리니는 해외 군대의 회군을 지시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7월 19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무솔리니와 회동했다. 무솔리니는 더 이상 독일의 말만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솔리니는 이날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안에서마저 무솔리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회에서 19 대 7로 가결됐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869~1947)는 무솔리니를 왕궁으로 불러 해임을 통고했다. 무솔리니는 왕궁을 나오자마자 근위대에 의해 체포됐다. 호텔에 연금됐던 무솔리니는 9월 12일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72명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독일군은 왕가와 내각인사를 체포하고 무솔리니의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데려와 회동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국가를 재건하기를 바라면서 독일군이 밀라노, 제노바, 투리노 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동의한 무솔리니는 9월 23일 살로에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망명 정부의 수반에 오른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반한 파시스트 대의회의 요인들을 처형했다. 이 무렵 무솔리니는 1928년 출판한 자서전의 개정판 ‘나의 흥망’ 집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45년 4월 패전을 예감한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1912~1945)와 함께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탈출할 참이었다. 그런데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에게 체포됐다. 무솔리니는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 장교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튿날 발레리오(실명 왈테르 아우디시오) 대령은 두 사람을 총살했다. 시신은 29일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옮겨졌다.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들이 처형된 자리였다. 숱한 군중의 발길질에 짓밟힌 두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 그레나다를 아시나요…자칭 ‘세계 경찰’ 미국이 침공한 초소국 [지구촌 소사]

    그레나다를 아시나요…자칭 ‘세계 경찰’ 미국이 침공한 초소국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사건 10걸 ❼1983.10.25 미군 ‘갑작스런 격노’ 작전반세기 전인 1983년 미국 군인들이 카리브해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 그레나다로 쳐들어갔다. 작전명 ‘갑작스러운 격노’(Urgent Fury)엔 해병대 병력 2000여명을 포함한 7300여명이 기습 공격을 펼쳤다. 그레나다는 면적이라고 해야 344㎢로 서울시(605㎢)의 절반 남짓이다. 인구도 우리나라 소도시 수준인 11만여명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그레나다는 1974년 독립국으로 인정을 받았다. 독립 이후 그레나다 수상에 오른 에릭 게리(1922~1997)는 비밀경찰을 동원해 잔혹한 독재 정치를 실행했다. 이런 과정에 외국자본과의 유착으로 실업률과 빈곤률이 급상승해 대중의 불만을 키웠다. 그러던 중 1979년 자유와 복지, 교육 등을 외치는 ‘신보석 운동’(New Jewel Movement) 세력이 무력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뜨렸다. 결국 모리스 비숍(1944~1983) 변호사가 새 수상으로 취임해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했다. 새 정부는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를 해산하며 영국식 민주주의를 비난하고 상공회의소 건립과 복지, 교육, 관광산업 등을 추진해 국민 지지를 받으며 근대화 사업에 착수했다 주변국과 충돌하던 그레나다는 공산권에 접근했다.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유엔의 비난 결의안에 쿠바와 함께 반대하고 공산권 국가들과 군사협정 맺는 등 적극적인 친소, 친공산권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제2의 쿠바’를 걱정하던 미국과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그레나다에 대한 강경책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만큼 서방의 압박이 매우 거셌다. 1983년 10월 13일 비숍 정권은 급진적 레닌주의자였던 버나드 코드(1944~현재) 부수상을 지지하는 군부에 의해 감금됐다. 미국은 10월 15일 비숍 수상을 구출하기 위해 바베이도스 정부에 협조를 의뢰했지만, 19일 비숍 수상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로 내전이 발생했다. 도주하던 비숍 수상과 각료들은 군에 체포돼 총살을 당했다. 코드 부수상은 혁명군 평의회 정부를 수립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20일에는 미국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을 필두로 한 특별상황팀이 그레나다 침공계획을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레이건 대통령도 이를 승인하면서 침공 준비를 본격화했다. D데이인 25일 새벽 5시 30분쯤 미 해병대 8연대 2대대 병력은 CH-46과 CH-53 헬기에 탑승한 채 펄스 공항을 기습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레나다 진영은 오래 버티지 못했으며 화력 지원에 나선 쿠바 병력도 이튿날 항복했다. 27일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사망자는 미군 19명, 그레나다 69명(민간인 24명 포함)이었다. 파견된 쿠바군 중에서도 24명이 전사했다. 양측을 합쳐 9000명도 안 되는 병력이 동원된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1984년 12월 그레나다에선 카리브 평화유지군의 감시 하에 민주적인 선거를 치렀다. 이를 통해 신국민당 하버트 브레이즈(1918~1989)가 집권했다. 직후엔 레이건 전 대통령이 그레나다를 방문하기도 했다. 미군은 그레나다에 1985년 6월까지 주둔했다. 그해 7월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이유로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무더기로 불참했다. 이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서구권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비난하며 보이콧한 데서 되돌아 온 부메랑이었다.
  • “최대 피해 입은 키부츠 사람들, 팔레스타인과 공존 꿈꾸었다” “하마스,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

    “최대 피해 입은 키부츠 사람들, 팔레스타인과 공존 꿈꾸었다” “하마스,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

    “인질 제때 안 구해” “정부 믿자”이스라엘 내부에 두 가지 여론 집 근처에 미사일 15발 쏟아져휴교령에 생필품 동난 경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키부츠(농업공동체)에서는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꿈꿨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신문은 이스라엘 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평화를 기원하는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키부츠 자원봉사를 하러 이스라엘에 간 뒤 현지 여성과 결혼해 27년째 살고 있는 김제완 이스라엘 히브리대 한국학과 교수는 21일(현지시간) 보복에 나선 유대인들의 여론을 전했다. 김 교수는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정부가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간 국민을 제때 구하지 않은 것에 분노와 하마스 응징에 나선 정부를 믿어 보자는 두 가지 여론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키부츠 사람들은 가자지구에 사는 아랍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고 더불어 잘 살자고 말했는데 이번 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며 “키부츠에 살던 일가족이 깡그리 살육당해 아랍인들을 위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게 돼 버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팔레스타인에 친화적이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하마스 공격의 최대 피해자가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7일 이후 집 근처에 미사일 15발이 날아왔다”며 “가장 가까운 미사일은 400m 옆에 떨어졌다”고 현지의 불안한 정세를 설명했다. 이어 “이번 공격으로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 때 3~4년에 걸친 자살폭탄테러 희생자들에 맞먹는 숫자가 불과 하루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마스 공격 이후 모든 일상을 멈추고 세이프룸(안전방)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뉴스를 보며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1990년 걸프전 발발 이후 모든 집에 일정 두께 이상의 벽과 철제문을 갖춘 세이프룸을 의무적으로 설치했다.수도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리숀레지온에 살고 있는 아브라하미 노아(46) 이스코넷 대표는 “어떻게 아이들을 불에 태우고,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총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웃을 수 있냐”며 “하마스는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노했다. 이스라엘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노아 대표는 예비군으로 징집된 남편 얼굴을 열흘 넘게 보지 못했다. 그의 남편은 가자지구에 비해 안전한 서안지구에 있지만 혹시라도 지상전이 시작되면 더 위험한 곳에 갈 수도 있다며 태산 같은 한숨을 쉬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노아는 “아이들이 엄마 곁에서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이 원래 개학날이었지만 두 번에 걸쳐 휴교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11월 초까지 학생들이 집에 머물러야 한다. 주변 식료품점의 생필품이 동난 경우도 많다.
  • “하마스, 딸 친구 납치”, “하마스, 게임처럼 전쟁” 안전방서 전쟁 종식 기원하는 이스라엘인들

    “하마스, 딸 친구 납치”, “하마스, 게임처럼 전쟁” 안전방서 전쟁 종식 기원하는 이스라엘인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계속 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인들은 모든 일상을 멈추고 세이프룸(안전방)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숨 죽인 채 뉴스를 지켜보며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996년 키부츠(농업공동체) 자원봉사를 온 뒤 이스라엘 여성과 결혼해 27년째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김제완 이스라엘 히브리대 한국학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스라엘 내부 여론은 ‘전쟁 전 안보를 공언했던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간 200여명의 국민들을 제때 구조하지 않고, 구조 요청을 했음에도 최소 수시간 동안 방치한 일에 대해 분노하는 쪽’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무분별하게 테러한 하마스 응징을 위해 정부를 일단 신뢰하자’는 두 여론으로 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막절 연휴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7일 갑자기 공습 경보가 울린 뒤 예루살렘예술고등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세이프룸에서 뉴스를 보고 있을 때 딸의 단짝 친구 미아 라인버그(17)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총성이 들렸고, 전화는 끊어졌다. 김 교수는 “그날은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라 키부츠에 있는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발표한 명단에는 딸의 친구의 이름이 있었다. 딸과의 통화는 납치 직전 마지막 통화였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인근 키부츠인 니르 이츠하크에서 납치된 미아는 어머니 가브리엘라 라인버그 등 가족 5명이 함께 의자로 무거운 철제 문을 열리지 않게 하려고 버텼으나 하마스에 붙잡혔다고 전했다. 모두 아르헨티나 이민 가정인 이들은 30년간 키부츠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돌봤다. 김 교수는 “키부츠 사람들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가자지구에 사는 아랍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고, 더불어 함께 잘 살자고 말하던 사람들이 이번 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며 “그런데 많은 키부츠 사람들이 일가족이 깡그리 살육을 당해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7년간 전쟁과 테러의 위험에서 얼마나 가까웠냐’는 질문에 “지난 7일 이후 집 근처로 미사일 15발이 날아왔다. 가장 가까운 미사일은 400m 옆에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99년 제2차 인티파다 발발 당시 자전거를 타고 예루살렘 마하네 예후다 재래시장에서 계란 한판을 사고 떠나고 10분 뒤 자살폭탄테러가 터져 수십명이 사망했던 사건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전쟁은 인티파다 때 3~4년에 걸쳐 자살 폭탄 테러로 희생된 사람 숫자가 불과 하루만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모든 시민들이 전쟁과 테러의 트라우마 속에 산다”면서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시간 안에 멈춘 상태로 살거나 그 트라우마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두 부류로 갈린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아주 어릴 때부터 미워하도록 만드는 학교 교육이 계속되는 한 서로를 향한 증오의 시선을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며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가 되어야 평화가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스라엘 사람들은 공습 경보가 울리면 최소 30초~최대 1분 30초 안에 가까운 대피소 혹은 집안 세이프룸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사일 파편이 집안으로 튀어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90년 걸프전 발발 이후 건축법이 개정돼 모든 집에 철제문, 25㎝ 두께 이상의 외벽, 창문이 있는 벽은 30㎝ 내벽은 20㎝ 기준을 충족한 세이프룸을 의무 설치해야 한다.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리숀레지온에 살면서 이스라엘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아브라하미 노아(46) 이스코넷(한국문화원)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소셜미디어 상에 하마스의 인질 유린 영상이 퍼지는 것에 분노했다. 그는 “어떻게 아이들을 불에 태우고,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총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웃을 수 있냐”며 “하마스는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15일 개학이 예정됐던 이스라엘에서는 현재 두 번에 걸쳐 휴교령이 내려져 11월 초까지는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언제 다시 개교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1살, 10살, 6살 아이를 기르고 있는 노아는 “아이들이 엄마 곁에서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집 근처에서 이따금 친구들과 놀지만 멀리 나갈 순 없다.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부모들의 돌봄 부담이 가중된 상황이다. 노아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집 근처 마트에 가기도 어려운데다 주변 식료품점에 가면 생필품이 이미 동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군에 징집이 많이 됐다보니 물류가 원활하지 않고, 집집마다 최소 3일치의 식료품을 구비해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예비군으로 징집된 그의 남편은 열흘 넘게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남편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소식을 전해듣고 있다. 현재 그의 남편은 가자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쪽 배치돼 있지만 혹시라도 지상전이 시작되면 가자지구 내부 등 더 위험한 곳에 투입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2년 전까지 한국에 살았던 그는 텔아비브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지만 전쟁으로 당분간 이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는 “BTS, 블랙핑크를 사랑하고 한국의 로맨틱 드라마를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면서 “내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 “10대 청소년도 공개처형”…지켜보던 北주민 실신했다

    “10대 청소년도 공개처형”…지켜보던 北주민 실신했다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발표된 후 북한에서 공개 처형이 증가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12일(현지시간) 도쿄신문은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 증언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 공개 처형되는 인원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매년 10여명 정도였으나, 지난 1년간은 1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가 대유행 때에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공개 처형을 크게 줄였으나, 코로나19 종식을 공식화하면서 인적 교류가 늘어나자 공개 처형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공개 처형은 본보기로 보여줘 주민들의 공포심을 부추기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다.도쿄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하순 중국 국경과 접한 양강도 혜산 비행장에서는 남성 1명이 마을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됐다. 이 남성은 전시 물자인 의약품을 몰래 유출한 혐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8월에는 같은 비행장에서 남성 7명과 여성 2명이 총살됐다. 당시 비행장 주변에는 2만명에 이르는 주민이 집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북한 당국이 보유한 소 2000마리를 부정한 방법으로 구입한 뒤 식육 처리해 팔아넘긴 혐의를 받았다. 특히 최근엔 10대 청소년이 공개 처형되는 사례도 있었다. 북한은 2020년 12월 한국 드라마, 음악 등 ‘한류’의 시청·유포를 금지하는 ‘반동사상문화비난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을 저촉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김일성 초상화 손가락질 임신부 공개처형”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나 공개처형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임신부와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당사자 동의 없는 생체실험까지 자행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통일부가 2017∼2022년 탈북한 탈북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해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는 이처럼 심각한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과 열악한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국경지역에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결 처형하는 사례들이 지속해 수집됐다. 특히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다고 한다. 이 여성은 당시 임신 6개월이었는데,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됐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북한에서 총살은 처형 대상자를 기둥에 묶은 후 머리, 가슴, 다리에 3발씩 총 9발을 발사하는 방식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도쿄신문은 “북한은 공개처형 확대로 주민 공포심을 부추겨 통제를 강화한다”며 “강제로 처형 장면을 본 북한 주민 중에는 실신하거나 불면증, 실어증에 시달리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 [김천식의 통일직설] 안보정세 급변과 ‘인식 지체’의 무서움/통일연구원장·전 통일부 차관

    [김천식의 통일직설] 안보정세 급변과 ‘인식 지체’의 무서움/통일연구원장·전 통일부 차관

    우리 사회에는 안보정세에 대한 미신과 선동이 상당히 많다. 문재인 정부 때 좋았던 남북 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 와 파탄 났다는 말이나 미국, 일본에 기울어지는 일방적 가치 외교가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이 그런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남북 관계는 문 정부 때 이미 파탄 났다. 2018년 잠깐 반짝했던 남북 대화는 2019년부터 일절 열리지 않았다. 북한은 그때부터 문 대통령을 오지랖이라거나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니 하면서 온갖 욕설로 조롱했다. 우리 공무원을 총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웠다. 개성에 있던 연락사무소는 폭파했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한 것도 문재인 정부 때이며 문 정부 내내 쉼없이 핵무력을 고도화했다. 정상회담이나 실무회담을 몇 차례 했지만 남북 관계는 더 나빠졌다. 북한은 예술단 파견 같은 쉬운 일도 거부하는 등 판문점선언이나 9·19 군사합의를 지킬 생각이 애초 없어 보였다. 문 정부의 정책 실패는 북핵 문제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의 결과였다. 북한의 핵무력이 이미 완성된 현실에서는 신뢰 프로세스나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한 스스로 밝혔듯이 체제 문제다. 평화와 협력을 통해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북핵 문제의 본질과 맞지 않고 핵무력 완성 이전의 해법이다. 북한은 핵 포기 의사가 없는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옹호하면서 북핵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대북 제재부터 풀어 주고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칭 핵보유국 지위에서 핵군축 회담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핵무기로 남한 지역을 점령하고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이를 위한 군사작전 연습까지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힘으로 북한의 핵전쟁 도발을 억제하고 북한이 결국은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걸 잘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이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에서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국제질서의 변화다. 탈냉전과 세계화 시기에는 세계가 국경과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협력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복리를 증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10년대 접어들면서 강대국 간 행태가 변했고 이제 전략적 체제 경쟁을 선언했다. 가치와 체제 경쟁을 본질로 하는 냉전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2017년부터 본격화됐다. 그런데 정부는 ‘탈냉전’으로 외교를 하고 남북 관계에 접근했다.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북한의 무시는 물론 미일중, 유럽 등 어느 나라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했다. 지금은 가치, 안보, 경제의 3중 네트워크가 재편되는 추세다. 국제사회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고 있다. 한때 전략적 모호성이나 전략적 균형을 주장하는 것이 그럴듯해 보였으나 지금은 철 지난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의미한다. 지금 가치 지향의 국제질서에서 그러한 태도는 불신받고 배척되며 국익을 파괴한다. 그동안 우리는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바탕으로 안보를 지키고 국력을 키웠으며 민주화를 달성했다. 지금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나라들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권위주의거나 전체주의에 가깝고 대외 팽창을 추구한다. 자유주의 국가들이 현상 변경 세력의 도전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자유주의 연대가 깨진다면 세계는 핵 가진 무법 국가들이 날뛰는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며 국민은 자유를 상실할 수 있다. 경제적 번영도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자유주의 국가들과 연대하는 것이 국익을 해치는 일인가.
  • “갓난아기 참수, 영유아 40명 총살”…대학살 수준의 하마스 만행 [포착]

    “갓난아기 참수, 영유아 40명 총살”…대학살 수준의 하마스 만행 [포착]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적인 이스라엘 공습으로 양측에서 2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한 가운데,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아기와 어린이까지 무참히 살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 생존자들은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아기와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끌고 가 한 장소에 모은 뒤 무차별하게 살인을 저질렀다고 입을 모았다. 이스라엘 매체인 i24 뉴스도 10일 키부츠 현장을 방문한 뒤 “온 가족이 총에 맞아 침대에 쓰러져 있거나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됐다. 현장을 동행한 한 (이스라엘) 군인은 참수당한 아기들의 시신을 목격했다”면서 “이 마을에서만 영유아 및 어린이 시신 40구가 한꺼번에 실려나갔다”고 전했다. 참수된 아기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영유아 및 어린이 시신에서는 총살의 흔적이 발견됐다.현지 언론은 “거리에는 하마스 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들도 있었으며, 길에서 시신이 썩는 냄새가 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전했다. 끔찍한 지옥이 된 키부츠는 가자지구 국경에서 불과 약 5㎞ 떨어진 곳으로,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다. 취재진과 현장을 동행한 이스라엘군 소속 이타이 베럽 소령은 취재진에게 “침실과 대피소에 있는 아이들과 이들 부모의 시신을 보며 테러리스트들이 그들을 어떻게 살해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서 “이것은 전쟁도, 전쟁터도 아니다. 대학살이자 테러 행위”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이어 “수십 년간 군인으로 살면서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면서 “어릴 적 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지만, 내 눈으로 그 장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소속 기자와 이스라엘 주재 특파원은 하마스가 휩쓸고 간 이스라엘 남부베에리 키부츠에서 생존한 주민들을 직접 만났다.현지의 한 남성은 “겁에 질려 있던 나의 90세 할머니가 거실에서 총 두 발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12살짜리 딸을 잃었다”면서 “거리에는 불타버린 집과 자동차, 부서진 가구들과 시신들이 널려있다”고 말했다. 30대의 또 다른 시민은 “그들(하마스 무장대원)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학대하고 모욕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면서 “80세 할아버지가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납치되는 모습을 직접 봤다. 15세 소년과 그의 부모로 이뤄진 가족은 대피소에 숨어 있었지만, 하마스는 그들이 대피한 곳에 불을 질러 죽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희망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생존자들 키부츠는 하마스에 의한 끔찍한 지옥으로 변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사람들은 당국이 제공한 호텔에 모여 지내고 있다. 호텔 로비에서 한 할머니가 흐느껴 울자, 한 여성이 다가가 다정하게 그녀를 쓰다듬었다”면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현재의 분노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듯 서로 즐겁고 놀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이어 “밝은 색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나타나 젊은이들을 즐겁게 했고, 플루트 연주자는 차분한 멜로디를 연주했다. 다른 지역 주민들이 기부한 옷과 장남감이 담긴 상자가 호텔 로비를 가득 채웠다”고 덧붙였다.하지만 이미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인질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가 납치한 민간인이 15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외신은 이중 4명이 이미 하마스에 의해 살해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저녁 하마스 군사조직인 알카삼 여단의 아부 우바이다 대변인은 공식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거주지를 폭격할 때마다, 사전 경고없이 이스라엘 민간인 포로를 한명씩 처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전례 없는 무력을 사용해 하마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 살해 위협은 이스라엘에게 큰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 韓드라마 몰래 보는 北주민…“북한, 얼마나 억압적인지 알 수 있어”

    韓드라마 몰래 보는 北주민…“북한, 얼마나 억압적인지 알 수 있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북한의 문화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 3일자 독일 매체 ‘베를리너 차이퉁’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 시청이 북한 주민 인식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언급했다. 김 장관은 “탈북자 등 증언에 따르면 60%가 넘는 북한 주민들이 천국의 계단을 봤다”면서 “드라마를 통해 북한 주민들은 자유 속에서 사는 삶이 어떤지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북한 사회가 얼마나 독재적이고 억압적인지 그 차이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 정권은 현재 한국 드라마 시청에 대한 처벌을 재차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또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 땅에 떨어진 재벌 딸(손예진)이 북한군 장교(현빈)에 구조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도 언급했다. 그는 “이 드라마가 한국인들이 북한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드라마 속에서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같고 우리와 같이 사고한다는 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북한과의 접촉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며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코로나19로 3년 넘게 국경을 봉쇄하고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 K문화에 빠진 북한…韓드라마 유포한 주민 ‘공개처형’도 북한에서 주민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은 한국 드라마 또는 영화 등을 시청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인권단체 국민통일방송(UMG)과 데일리NK는 올해 북한 주민 50명을 전화로 인터뷰한 후 ‘북한 주민의 외부정보 이용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주민 50명 가운데 49명(98%)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 콘텐츠를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조사 대상 주민들이 외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북한 주민보다는 외부 접촉에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일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외국 영상을 보느냐’는 질문(복수 응답)에 96%가 한국 드라마·영화, 84%가 중국 드라마·영화, 68%가 한국 공연, 40%가 한국 다큐멘터리, 24%가 미국 등 서방 드라마·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해외 영상을 얼마나 자주 보느냐는 질문에는 ‘매주 1번 이상’이 28%, ‘매달 1번 이상’은 46%였다. 1명은 ‘거의 매일’ 본다고 답했다. 4명 중 3명꼴로 월 1회 이상 해외 영상을 보는 셈이다. ‘한국이나 다른 해외 영상 콘텐츠를 본 뒤 달라진 점’으로는 79.2%가 ‘한국 사회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답했다. 56.3%는 ‘한국식 화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고, 39.6%는 ‘한국 옷 스타일을 따라 했다’고 했다. 북한 정권은 해외 콘텐츠를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는다. 이에 북한은 2020년 12월 남측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 외부 문물 유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적발된 북한 학생 7명이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고, 해당 드라마가 들어있는 USB 장치를 판매한 주민은 총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 “생체실험” vs “고통없어”…사형수 선호 ‘질소가스 처형’ 논란

    “생체실험” vs “고통없어”…사형수 선호 ‘질소가스 처형’ 논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첫 ‘질소가스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다. 이를 두고 질소가스 처형이 “생체실험과 다름없다”는 의견과 “고통이 없어 인간적”이라는 의견이 부딪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앨라배마주 검찰은 같은 달 25일 사형수 케네스 유진 스미스(58)에 대한 사형 집행일을 정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다. 이 요청서에는 질소가스 주입을 통해 그를 처형할 것이라는 계획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질소가스 처형은 사형수에게 순수 질소만 흡입시켜 저산소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흡입하는 공기는 78%가 질소로 이뤄져 있는데, 순수하게 질소만 흡입하면 저산소증으로 사망한다. 앨라배마주는 독극물 주사에 필요한 약물이 부족해지자 2018년 질소를 이용한 처형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미국에서는 앨라배마를 비롯해 오클라호마, 미시시피 3개 주가 질소가스 주입을 통한 사형을 허용하고 있으나 실제 집행된 적은 아직 없다. 앞서 주 사법당국은 지난해 11월 스미스에게 독극물 주사로 사형을 집행하려 했으나 치사량을 투여할 적절한 정맥을 찾지 못하면서 집행이 취소됐다. 이후 독극물 주사가 잔인한 형벌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8조를 위반한다는 스미스의 주장을 대법원이 받아들이자 주 당국이 질소 처형 방식을 들고나온 것이다. 스티브 마샬 주 검찰총장은 성명을 통해 “스미스가 무고한 여성 엘리자베스 세넷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받은 후 거의 35년 동안 사형 선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스미스는 1988년 3월 1000달러(약 182만원)를 받고 동료와 함께 목사의 아내를 살해했다. 살인을 사주했던 목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동료는 2010년 사형이 집행됐다. “생체실험” vs “오히려 인간적인 방식” 이러한 계획이 알려지면서 질소가스 사형을 반대하는 측은 “생체실험과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형제를 반대하는 한 단체는 “이전에 사용된 적이 없는 방법으로 인체를 실험하는 것은 끔찍한 생각”이라면서 “앨라배마는 완전히 입증되지 않고 사용된 적 없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처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찬성하는 측은 오히려 이런 방식이 “인간적이고 사형수들의 고통을 줄인다”고 주장한다. 스미스를 비롯한 사형수들도 약물주사보다 질소가스 방식을 통한 죽음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한 사형수는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느끼며 죽기 싫지만, 질소가스는 어렸을 때 치과에서 맡은 마취가스와 비슷해 훨씬 낫다”며 질소가스 처형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형제도를 존치하고 있는 미국의 대다수 주는 약물주사를 통해 사형을 집행하고 있으나, 일부 주는 사형수의 고통 경감 차원에서 전기의자, 총살 등 대체 방안을 허용하고 있다. AP통신은 “질소가스 처형법의 합헌성을 둘러싼 새로운 법적 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 젤렌스키, 부정부패 근절에 강한 의지 “전시에는 반역죄와 같아”

    젤렌스키, 부정부패 근절에 강한 의지 “전시에는 반역죄와 같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부정부패 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공유한 자국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다음 주쯤 전시 부정부패 행위를 반역죄와 같은 중범죄로 규정해 처벌을 강화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부정부패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정의”에 직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정의)은 총살형이 아니다. 스탈린 주의도 아니다”며 “증거가 있다면 그 사람은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줄곧 공공 및 정치 부문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패감시 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크라이나는 세계 180개국 가운데 116위에 올라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지원하는 서방의 신뢰를 얻고 유럽연합(EU) 가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젤렌스키 대통령도 뇌물 등 부패를 척결하는 것이 러시아를 물리치는 것은 물론, 이후 수십억 달러가 들어갈 전후 복구작업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 병무청장 가족이 스페인에 수백만 달러 상당의 차와 자산을 보유하는 등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당 병무청장을 즉각 해임하는 한편 전국 병무청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도록 했다. 이어 지난 11일에는 감사 결과 부정 축재나 징병 대상자의 국외 도피 알선 등 권한 남용 사례들이 드러났다면서 전국 병무청장 전원을 해임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검찰은 전국 모병사무소 200여 곳에 대한 일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고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실은 지난 21일 밝혔다. 우크라이나 검찰 감독 아래 경찰과 공동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도 금전을 대가로 징집 대상자들의 병역 회피를 지원해온 지방 병무청장 등 관계자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SBU는 지난 26일 성명에서 “이 4명의 관리들은 금전을 대가로 징집 대상자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병역 회피를 위한 병무용 진단서를 허위 발급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비용은 인당 최대 1만 달러(약 1300만원)로 금액은 병역 해결을 위한 기간과 이용자의 재정 능력에 따라 달라졌다”고 밝혔다.
  • 내년엔 가족 품으로 돌아갈까… 삼밧구석 아이들 유해 유전자감식 돌입

    내년엔 가족 품으로 돌아갈까… 삼밧구석 아이들 유해 유전자감식 돌입

    제주4·3 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7∼10세의 어린이 유해 2구가 발견돼 운구제례를 거행한 가운데 유가족 채혈을 통해 DNA 확인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18일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동광리에 행방불명된 분(유아동 행방불명)들이 있어 지금 받고 채혈을 받는 상황인데 어린이 유해 2구가 나와 시료를 채취해 10월까지 유가족 채혈(유전자 감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시간이 흐를수록 유해 부식 정도 심해져 정확한 감식 어려워… 유해발굴 장소서 숟가락도 나와 올해 유가족 채혈 DNA 확인 절차는 10월말 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 검사를 실시하게 될 경우 내년 상반기에는 최종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2구 모두 머리뼈(두개골) 중심으로만 남아 있고 팔·다리·몸통 등 사지골은 확인되지 않았다. 두개골의 치아상태로 볼때 7~10세로 추정된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4·3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조사를 통해 지난 7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4·3희생자 추정 유해 2구를 수습했다. 지난 17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주관으로 운구 제례를 거행했다. 발굴 현장은 마을 주민 제보자의 증언을 기준으로 조사대상지를 선정했고 발굴은 올해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에서 추진 중인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감식’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조사팀 관계자는 “시료 상태나 유가족 채혈이 발굴된 두개골에서 뼈를 잘라 시료 채취했을 때 상태가 안 좋으면 DNA를 맞추기 어려워 현재로선 감식이 성공을 거둘 지 미지수”라며 “시간이 갈수록, 70년이 흐르고, 75년이 흐르면서 부식정도가 더 심해져 정확한 감식이 어려워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3월 마을 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아직도 지형이 바뀌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조사 발굴을 하게 됐다”면서 “70여년 전 제주4·3 당시 어린이들이 희생된 후 묻힌 상태에서 나중에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개간하다가 유해가 나와 근처로 옮겨놨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 동네 큰넓궤 동굴에 숨어 지낸 적 있어 4·3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는 마을 사람은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숟가락 2개도 나와 희생자라고 판단해 잘 묻어줬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밧구석 46가구 사는 등 임씨 집성촌…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로 영화 ‘지슬’의 소재로 동광리는 4-3 시기 현재의 동광 육거리를 중심으로 무등이왓(130여가구)과 조수궤(10여가구), 사장밧(3가구), 간장리(10여가구), 삼밧구석(46가구)의 5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중산간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증순 이후 증산간 마을에 대한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이 실시되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됐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됐다. 4·3평화재단의 지역별 피해현황 자료와 4·3연구소 자료를 보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1425번지 일대 동광리 하동인 삼밧구석은 삼을 재배하던 마을이라 하여 삼밧구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4-3 시기 46가구의 주민들이 살던 마을로 임씨 집성촌이었다. 호주로는 강무학, 김여생, 김철규, 변갑출, 변기칠, 양맹호, 이갑문, 이영길, 이정학, 이태옥, 임경화, 임공숙, 임두칠, 임문숙, 임성산, 임승수, 임오생, 임원년, 임원현, 임해생, 임화명, 홍방언 등이었다. 동광리의 큰넓궤와 도엣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동광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동광리 주민들은 큰넓궤에서 40 ̄50여 일을 살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고 말았다. 곧 토벌대는 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년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굴 안으로 대피시킨 후 이불 등 솜들을 전부 모아 고춧가루와 함께 쌓아 놓고 불을 붙인 후 키를 이용하여 매운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토벌대는 굴속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 때문에 굴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했다. 그러다 토벌대는 밤이 되자 굴 입구에 돌을 쌓아 놓고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철수했다. 토벌대가 간 후 근처에 숨어 있던 청년들이 나타나 굴 입구에 쌓여 있는 돌을 치우고 주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피하도록 했다. 그러나 굴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갈 곳이 막연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옷이나 신발 모두 변변치 않았지만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이들은 영실 인근 볼레오름 근처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잡혀 서귀포로 갔다. 이들은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 큰넓궤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지나면 5m 정도의 절벽이 나오고, 이곳을 내려서면 이 굴에서 가장 넓은 장소가 나온다. 바닥이 제주도 현무암 그대로여서 울퉁불퉁해 위험하다. 이곳을 지나면 토벌대의 총알을 막으려고 쌓아 놓은 돌담이 한 쪽에 쌓여진 곳이 있고, 양쪽으로 깨진 그릇 파편들을 볼 수 있다. 이곳부터 굴이 좁고 낮아져 조금 가면 약 30m 정도 기어들어가야 하는 곳이 나온다. 이 굴에서 가장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다. 이곳만 지나면 굴은 다시 높아져 다니기 쉬우며 그 안에는 이층굴도 나오고 좀 넓은 곳이 나온다. 삼밧구석 등의 학살 사건은 오멸 감독의 4·3 영화 ‘지슬’의 소재가 됐다. #현재까지 유전자감식 작업통해 413구 유해 발굴…141명 유족의 품으로 마을터는 동광육거리에서 오설록 방면 서쪽으로 약 900m 떨어진 곳으로 이곳 큰길가 마을터 입구에는 2005년 4월 3일 세운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서 있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동광리(간장리)에 성을 쌓고 살기 시작한 이후 삼밭구석은 재건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개간된 밭들 사이로 드문드문 서 있는 빈 집터의 대나무만이 지나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제주4·3희생자 유족회(회장 김창범)는 유해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 감식을 거쳐 희생자의 이름을 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한편 현재까지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감식’ 사업을 통해 413구의 유해를 발굴하고 141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 확보한 8억 7000만 원(전액 국비)으로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유가족 채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유족들의 한을 해소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 뱃놀이하던 17세 소년, 경찰 오인 사격에 숨져 [여기는 동남아]

    뱃놀이하던 17세 소년, 경찰 오인 사격에 숨져 [여기는 동남아]

    필리핀의 17세 소년이 용의자로 오인당해 경찰이 쏜 총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래플러를 비롯한 필리핀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보타스시 앨런 경찰서장은 지난 2일 경찰이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오인 발사한 총에 17세 소년 A군이 숨졌다고 전했다. 총기 사용 전 구두 경고조차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앨런 경찰서장은 “지난 2일 바랑가이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용의자를 쫓는 중 용의자가 보트에 탑승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보트에는 A군과 친구가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갑작스러운 경찰들의 출동에 놀란 A군은 보트에서 뛰어내려 헤엄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용의자로 착각해 아무런 구두 경고도 없이 총을 발사했다. 당시 보트에 그대로 남아있던 친구는 A군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경찰이 쫓던 용의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실제 용의자는 나중에 체포돼 북부경찰지구(NPD)에 체포 수감됐다. 당시 A군이 있던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 6명은 직위 해제되어 나보타스시 경찰서에 구금됐다.  A군의 부모는 경찰 6명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필리핀 경찰(PNP) 작전 매뉴얼 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무력을 사용하기 전 반드시 구두 경고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아무런 구두 경고도 없이 총을 발사했다. 앨런 경찰서장은 “당시 경찰들은 피해자를 겁주기 위해 총을 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경찰 내무감찰국이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편 이같은 경찰의 무분별한 총기 사용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경찰들에게 지나친 총기 사용을 허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경찰들에게 “마약 사범을 보는 즉시 사살하라”면서 초법적 ‘즉결 처형’을 허용했고, 경찰은 마약사범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모조리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후 경찰들은 마약사범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권총을 겨누는 사건이 빈번해졌다. 지난 2020년 12월 전직 경찰 요넬 누에즈카는 무고한 시민 둘을 총살했다. 크리스마스 주간 폭죽을 터뜨린 25살 청년을 체포하려 하자 청년의 모친이 막아섰고, 누에즈카는 그 자리에서 즉시 권총으로 모자를 사살했다. 당시 현지 주민이 촬영한 영상이 SNS에 일파만파 퍼져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누에즈카는 수감된 지 1년 만에 감옥에서 사망했다.  이어 2021년 5월에도 경찰이 무고한 여성을 총기로 살해하는 영상이 퍼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경찰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52세 여성의 목에 총을 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사건에 앞서 해당 경찰은 숨진 여성의 아들과 주먹 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순천대학교 10·19 연구소, ‘나는 아버지 얼굴을 몰라요’ 증언집 발간

    순천대학교 10·19 연구소, ‘나는 아버지 얼굴을 몰라요’ 증언집 발간

    국립 순천대학교 10·19 연구소가 여순사건을 다룬 증언집 ‘나는 아버지 얼굴을 몰라요’을 발간했다. 지난 2019년도부터 해마다 발간하고 있는 증언집은 지난해에는 2권을 연달아 발간한 탓에 올해에 이르러 벌써 여섯 권째다. 지난 7일 출고한 증언집에는 10·19 당시 부모형제를 잃고 살아온 유족 열여덟 분의 통한의 세월이 담겨 있다. 이들 사연은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네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내가 살아 온 사연을 소설로 쓰면 한 권으로는 택도 없어, 대하소설 정도는 각오해야 돼”라고 하는 한 서린 사연이 담겨 있다. 일반인이 겪는 보편적 삶의 정서를 넘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국가폭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숭엄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이번 증언집에는 아버지에 관한 사연이 특히 많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두 아들과 끌려간 이후 행적을 알 수 없는 권판옥 씨(권용렬 씨의 부친), 좌익으로 몰려 쫓겨 들어온 동생을 숨겨준 죄명으로 총살당한 김창길 씨(김귀암 씨의 부친), 산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박홍엽 씨(박근영 씨의 형)의 구슬픈 내용이 실려 있다. 또 동네 모임에 참석한 것을 빌미로 군경이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회유해 한국전쟁 발발시 대구형무소에서 희생된 박인철 씨(박종영 씨의 부친), 반란군과 동조자라는 이유로 끌려가 총살당한 박종태 씨(박홍수 씨의 부친), 학생운동을 한 이력으로 끌려가 전주형무소에서 총살당한 송정용 씨(송택주 씨의 부친) 이야기도 눈물 젖게 한다. 큰아들이 좌익사상에 경도되는 바람에 작은아들과 끌려가 총살당한 신일용 씨(신영철 씨의 부친), 야학을 해 남로당원으로 몰려 총살당한 정춘식 씨(정병환 씨의 아버지), 젊다는 이유로 11명의 마을 젊은이들과 끌려가 희생당한 정우석 씨(정정애 씨의 아버지)도 있다. 느닷없이 잡혀가 애기섬에 수당된 최두성 씨(최쌍자 씨 아버지), 보도연맹에 가입하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이후 행방불명된 허만진 씨(허규구 씨 아버지)의 아픔도 생생하다 . 부모를 동시에 잃거나 일가족이 동시에 희생당한 경우도 있다. 최규명 씨는 좌익 활동을 하던 사람과 얽혀 아버지 최정행 씨가 산사람들에게 밥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어머니 정야매 씨를 한꺼번에 잃었다. 최낙환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3형제가 동시에 목숨을 잃은 뒤 할머니와 어머니가 남은 두 형제를 각각 맡아 키우면서 겪는 불행한 삶을 소개하는데 그의 사연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제시한다. 그 외 14연대 군인이었던 신민호 씨(신환식 씨의 작은아버지), 빨치산의 심부름을 해주었다는 혐의로 6명의 젊은 친구들과 집단 총살당한 김도암 씨(이세형 씨의 외할아버지), 이유없는 죽음을 당한 순천사범학교 학생이었던 전형선 씨(전창환 씨의 작은아버지)의 사연도 소개된다. 최관호(법학과 교수) 10·19연구소 소장은 발간사에서 “내 자식을 죽인 자들을 이 사회가 엄벌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내 자식, 내 부모님, 내 형제를 묻은 이 손으로 뺨이라도 때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든 국가가 그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최소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라도 밝혀줘야 한다”며 “그것이 끊어져서 떨어진 창자를 주워 들고서라도 살아야 했던 그들에 대한 이 사회의 최소한의 속죄다”고 강조했다. 한편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에서는 지난 14일 ‘10·19와 증언 기억 공감’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앞으로도 추념창작집 ‘해원의 노래’, 잡지‘시선 10·19’, 학술집‘진실과 공감’이 차례로 발간될 예정이다.
  • 반쪽 옆엔 숨은 진실…혹은 더 역한 진실

    반쪽 옆엔 숨은 진실…혹은 더 역한 진실

    1948년 어느 을씨년스러운 봄날, 마흔 살을 갓 넘긴 한 여성이 중국 베이징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다른 죄수를 ‘대타’로 총살해 1978년까지 생존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동양의 마타 하리’로 불린 가와시마 요시코였다. 중국 만주족의 공주 출신이면서 일제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 처형의 이유였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 자체는 변화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한데 이면의 해석에는 여러 이견이 자리한다. 새 책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이 짚어 보려는 것도 수면 아래 헤엄치는 진실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조국과 동포를 배신하고 권력의 편에 섰던 세 부역자의 생을 추적해 실체적 진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춰낸다. 저자는 이를 위해 나치 친위대 수장 하인리히 힘러의 마사지사였던 ‘사탄의 닥터’ 펠릭스 케르스텐, 남장을 즐기고 양성애자 성향을 보였던 청나라 공주 아이신줴뤄 셴위(가와시마 요시코), ‘절멸 수용소’로 가는 유대인 동포에게 돈을 뜯은 ‘동족 포식자’ 프리드리히 바인레프 등 여러 겹의 삶을 보여 준 인물들을 골랐다.저자가 셋을 끄집어낸 이유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이 지난 세기의 가장 끔찍한 시기를 어떻게 살아 냈는지 가장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전쟁 시기에 일어나는 부역과 저항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서사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악한 일이 선한 의도로 행해질 수 있고, 악한 사람이 간혹 선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영웅 서사 역시 상대적 악마화에 따른 결과물일 수 있다. 가령 케르스텐은 유대인 학살 주모자인 힘러의 몸과 마음을 보살폈지만 훗날 유대인 구출을 돕기도 했다. 바인레프 역시 돈을 받고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고, 요시코도 청조의 부흥을 위해 일본에 협력한 측면이 있다. 셋 중 누구도 완전히 타락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공공 영역에서 활약하는 이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성인보다는 죄인으로 상상하는 게 더 쉽지 않냐”며 “이 세 명에 대입해 봄으로써 부역의 문제를 반추해 보자”고 말한다.진실이 억압돼 있거나 진실을 말하기에 위험한 상황에서는 각종 음모론과 상상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허언증 환자나 신분 세탁자로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전쟁은 이상적인 배양접시가 돼 준다. 중요한 정보들이 가짜뉴스로 치부되고 인터넷상 집단 상상력에서 기인한 기획과 음모론을 다수의 시민이 믿는 요즘, 책에 나오는 세 인물의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현재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달리 말해 전쟁이 만들어 내는 환경이 요즘 세상의 환경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저자는 “정치적 논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끊임없이 음모론적 상상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물리적뿐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산다”고 했다. 책의 주인공들처럼 아슬아슬한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거다. 현재의 평가는 후세가 하겠지만, 지금 발 디딜 곳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해야 한다. 이 책의 미덕은 그 판단을 위한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 푸틴 굴욕 어디까지…“프리고진 처형해야” 측근·언론도 한목소리로 비난

    푸틴 굴욕 어디까지…“프리고진 처형해야” 측근·언론도 한목소리로 비난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모스크바 입성 턱밑에서 진격을 멈춘 ‘1일 쿠데타’ 이후, 프리고진을 처형해야 한다는 강력한 목소리가 러시아 고위층과 언론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강경파 민족주의자인 안드레이 구률로프는 프리고진의 쿠데타 이후 “그의 머리에 총을 쏴 처형시켜야 한다. 이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쿠데타에 가담한 용병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며, 프리고진은 벨라루스 정부 중재 아래 크렘린궁과 바그너그룹이 맺은 합의에 따라 러시아를 떠나 벨라루스로 갈 것으로 보인다.구률로프 의원은 러시아 국영 채널인 로시야-1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 및 (바그너 그룹 공동 설립자인) 드미트리 우트킨을 총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룔로프 의원은 푸틴 정부의 선전가로도 유명하다. 푸틴 대통령의 지척에서 그의 입이 되어 주었던 측근조차 프리고진과 쿠데타 관계자를 처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은 현실은 그만큼 러시아 고위층이 이번 사태에 큰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언론 전문가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우리는 러시아가 침공받았을 경우 경계 태세를 취할 수 있는 방어 계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하게 지지해 온 극우 민족주의 정교회 언론인 차르그라드도 사설을 통해 “정치적으로 봤을 때 기존 세력의 균형은 이미 깨졌다”면서 “악명 높은 ‘크렘린 탑’이 흔들리고 있다. 누군가는 떠나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동맹국들은 프리고진의 용병 군대가 하루 만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약 1000㎞를 진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러시아군의 군사력에 의심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일부 국가는 이미 선긋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24일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대통령실은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전적으로 러시아 내부 문제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옛 소련권 국가인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전통적 우호 관계에 있는 국가로, 러시아와 경제, 군사 등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중요한 외교적 경제적 협력자로 꼽혀온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다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크렘린궁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지도부의 조치에 전폭적인지지’를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시 푸틴 대통령에게 ‘상식’에 따라 행동할 것을 촉구하면서 ‘러시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가능한 한 빨리’ 모색하는 것을 돕겠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는 “이란 역시 성명에서 러시아의 법치주의를 지지한다면서도 이번 쿠데타를 ‘러시아 내부 문제’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한편 프리고진은 ‘1일 반란’을 끝으로 박수와 환영을 받으며 유유히 러시아를 떠났지만,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24일 쿠데타가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를 통해 수습된 뒤 푸틴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잠적설까지 나온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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