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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마지막황제 ‘쉼터’ 어디냐

    ◎니콜라이2세 무덤연고권 싸고 2개주 7년째 논쟁/페테르부르그주­역대 왕족 묻힌 혁명도시에 매장해야/예카테린부르그주­유골 발견된 역사적 장소… 반출불가 “러시아 마지막황제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이 묻힐 곳은 어디냐.” 올해로 7년째를 맞은 이 논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페테르부르그주와 예카테린부르그주가 각각 자신들의 ‘연고권’을 주장,무덤유치를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러시아정부는 보리스 넴초프 제1부총리를 위원장으로 ‘니콜라이2세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망경위,유골확인 등에 대한 정밀조사를 진행중이다.또 내년 2월중 조사가 끝나는 대로니콜라이2세 및 가족들의 유골을 페테르부르그주로 가져가 봉분할 것을 결정해놓고 있다. 문제는 유골의 진위를 정밀 조사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유골을 옮기라는 옐친 대통령의 포고령에 예카테린부르그주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예카테린부르그 지방법원은 최근 “유골의 소유권은 주에게 있으므로 다른 주로의 반출을 금한다”고 주정부의 ‘반출금지청원’을 받아들였다.이어 주정부는 유골이 안치돼 있는 ‘이파티예브가’에 경찰력을 동원,유골을 운송해 가져가려는 연방검찰측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연방검찰도 주정부의 반출금지조치에 맞서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혁명도시’ 페테르부르그는 소위 로마노프왕가부터 니콜라이2세 이전까지 역대왕 일가들이 이곳 피터요새(페트로파블로브스크)에 묻혀 있음을 강조한다.반면 예카테린부르그주는 러시아혁명 1년후인 1918년 황제 일가족이 예카테린부르그로 끌려온 뒤 이곳에서 총살됐다는 역사적인 이유를 들어 연고권을 주장한다. 이들 두 주가 서로 ‘마지막 황제의 쉼터’가 되겠다고 나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러시아 전지역에서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러시아민족주의 물결 때문.소속 주 주민들은 ‘과거로의 회귀’는 ‘러시아의 영광’이며 무덤유치에 실패하면 이는 주지사가 정치를 잘못하는 것으로까지 생각하려 든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마지막 황제 논쟁’은 발굴된 시신이 진짜 니콜라이2세와 그가족의 것이냐였다.이 숙제는 거의 풀렸다.러시아 정부는 지난 91년 예카테린부르그주 이웃 한 무명묘에서 유골들을 발굴,이후 영국의 올더마스톤 과학수사연구소와 미국의 국방연구소에 DNA테스트와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똑같은 결과를 얻어냈다.발굴 유골들은 니콜라이2세 본인과 부인 알렉산드라,그리고 딸 3명의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1남4녀 가운데 아들과 막내딸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 서울신문 국제전략연,본사발행 98년판 북한인명사전 증보자료 분석

    ◎군·당 실세 20인 올 활동 두드러져/김정일 수행·핵심요직 포진 권력기반 구축 앞장/군부 2차례 승진·농업­경제분야엔 문책성 인사 김일성의 3년 탈상(7월8일)과 김정일의 당총비서 승계(10월8일)가 있은 올해 북한에서는 권력구조의 개편없이 김정일과 핵심요직에 포진한 김의 측근 실세들이 지난해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또 고위직 인사이동면에선 강성산의 지병으로 지난 2월부터 총리대리체제가 지속되고 인민무력부장,당국제담당비서 등 핵심요직이 공석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군부중시로 군쪽에는 2차례 대규모 승진인사가 있었으나 당정쪽은 빈자리가 메워지는 수준에 머물렀다.그리고 농업당당비서인 서관희의 총살형설이 나도는 가운데 농업 및 경제분야의 도당 책임자 상당수가 실정에 따른 문책인사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일 공식행사 57회 참석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본사 발행 98년판 북한인명사전의 증보자료에 의거,주요인물들의 올해 활동상황과 인사내용을 분석한 결과 김정일과 부주석 이종옥을 비롯 당정군주요인사 30명이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이 가운데 군 총정치국장인 차수 조명록,당비서 계응태 등 김정일의 최측근 심복 20명의 활동이 더욱 두드려졌던 것으로 나타났다.먼저 김정일의 활동상황을 보면 새해 첫날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한 것을 시작으로 총비서직을 승계한 이후 지난 11월 하순 제163부대 여성해안포 중대를 시찰한 것까지 모두 57회의 공식행사에 참석했다.이는 지난해의 46회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으로,김정일은 올해 민생현장 시찰은 외면한 채 지금까지 군관련 행사에만 무려 37회나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활동이 아주 활발했던 북한 실세 20명의 당정군 분포를 보면 ▲군에서는 이을설(원수·호위사령관),조명록,김영춘(차수·총참모장),김일철(차수·인민무력부 제1부부장),현철해(대장·총정치국부국장),박재경(대장·총정치국부국장),김하규(대장·포병사령관) 등 7명,당에서는 계응태(공안담당),전병호(군수담당),한성용(공업당담),최태복(교육담당),김국태(간부담당),김기남(선전담당),김중인(근로단체담당),김용순(대남당당),장성택(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9명,정에서는 김영남(부총리 겸 외교부장),홍성남(총리대리),백학임(사회안전부장) 등 3명,그리고 기타분야에서는 김정일의 친위조직인청년동맹 제1비서 최용해 등이다.이들은 군부대시찰 등 김정일의 나들이에 자주 수행하거나 주요행사를 주관하여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시는 등 김정일체제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반면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 등은 예우차원에서 권력서열만 높을뿐 주요정책결정 등 핵심적인 일에서는 점차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성택 8월이후 활동 전무 한편 김정일의 매제로 실세중의 실세로 알려진 장성택이 지난 7월19일 김정일의 잠수함 8003호 승선시찰에 수행한 이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이와 관련,최근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장이 모종의 자금수수와 관련,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정군 고위직의 인사이동을 보면 당에서는 황장엽 망명사건이후 국제부장이 현준극에서 김양건으로 교체됐고 사회문화부장도 이창선에서 강관주로 바뀌었다.정무원쪽에서는 사망으로 자리가 빈 수산부장 등이 새 인물로 바뀌었다.군부에서는 해군사령관인 김일철이 차수로 승진하면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 됐고 해군사령관에는 김윤심이 임명됐다.그러나 지방에서는 농업과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이 상당수 문책,교체됐다.도당 행정경제위원장은 함북의 경우 김충일에서 박수길로 바뀌는 등 3명이 경질됐으며 도단위 농촌경리위원장 6명도 교체됐다. 서울신문사가 발행한 북한 인명사전은 북한의 당정군 요인을 비롯 노동·사회단체·문화계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주요인물 1만6천4백여명의 활동사항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으며 98년판에는 새 인물 2백여명의 자료가 추가됐다.
  • “북 군사쿠데타 일어날 것”/황장엽씨 평통회의 강연

    ◎95년 군수공장 노동자 2천명 아사소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운영위원 합동회의에서 강연을 통해 김정일체제를 비판하고 북한의 경제위기와 식량난,전쟁 도발 가능성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황씨는 “북한에서 ‘일어나는 것’(반체제 봉기)은 실패할 경우 총살되기 때문에 쉽지 않으며 무장한 부대가 일어나지 않는 한 (성공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결국 군대가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범죄자들이 총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항복하지 않는 사례로 민심 이반실태를 소개한 뒤 “(지금은) 대중적으로 일어나지 못할 뿐이나 (앞으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수공업 실태에 대해서는 “군수공장은 자강도에 많은데 해안가도 아니고 팔아먹을 것도 없어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누워있다”면서 “조금만 더 가면 군수공업도 마비상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기술급수가 높은 북한의 군수공장 노동자는 (당국이) 키워온 사람들인데도 지난 95년 무려 2천명이 굶어 죽었다는 얘기를 당비서에게서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4분기에 군대식량이 모자라 농민식량 3개월분을 떼서 갔다줬고 당 비서들도 2백㎏씩 장마당에서 사서 (군에) 보내줬다”고도 설명했다. 황씨는 서관히 당 농업담당비서의 총살설과 관련,“서비서는 당에서 비판을 받은뒤 최고검찰소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얼마후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서관히가 죽었다’고들 했고 나도 망명할 때 그가 죽은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봉원의 총살설에 대해서는 “이는 정직한 사람인데도 새 지도부가 자꾸 (잘못을) 들춰냈다”면서 “공개총살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나 대열정리의 전초전으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군대의 기강해이에 대해서는 군대 관리자의 말을 인용,“제일 걱정은 군대가 도덕관념이 없어진 것”이라면서 “특별대우를 받는 호위국 군인도 도둑질을 하는데 다른 군인들은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북한의 가장 큰 이해가 걸린 나라는 일본이지 미국이 아니다”면서 “북한은 일본으로부터는 1백억달러의 배상금을 받고 조총련 재산을 가지려 한다”고 설명했다.
  • 북,18명 공개 총살/서관희 농업담당비서·군장성 등 포함

    ◎일 교도통신 보도 북한 권력서열 26위인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가 지난 9월 중순 평양시내에서 공개 총살당했다고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이 6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북한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면서 김정일 당총비서의 친위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간부 3명,군 고위장성 1명,도지사급 인사 3명,김정일 총비서 측근인 최용해 청년동맹 중앙제1비서의 부하 1명 등 17명도 함께 처형됐다고 밝혔다. 이와관련,일본의 교도통신은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말을 인용,서비서 등의 처형식은 평양 중심가인 ‘통일거리’ 부근의 얕은 언덕 위에서 2만∼3만명의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재판을 진행한 뒤 이뤄졌다고 전했다. 외교소식통은 “서비서는 54년부터 농업정책을 담당해온 농업정책의 사실상 최고 책임자”라면서 “북한은 그에게 ‘미 제국주의자와 남조선의 괴뢰로 북한의 농업을 체계적으로 파괴해온 간첩’이라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처형했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서비서의 처형은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비서와의 친분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같이 처형된 군간부와 도시자급 인사등도 간첩죄가 적용됐으며 청년동맹의 간부 3명은 부정축재 등의 혐의를 받았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지난 7월부터 대검열사업을 실시,내부단속을 꾀해 왔다”면서 “이번 처형은 10월8일 김정일 총비서 취임을 앞두고 농업정책 실패의 책임전가,흔들려온 체제의 내부단속,주민불만 억제 등 다목적용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서비서의 처형소식에 대해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더글러스 쿠츠소장은 “그만한 일이라면 내가 듣거나 보았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바 없다.일본기자들로부터 비슷한 전화를 받아 이상하게 여겨 직원들에게도 확인해 보았으나 안다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처형설을 부인했다.
  • 귀순 장인숙씨 일가 3명 기자간담

    ◎“김정일,월경주민 무조건 총살 지시”/한국지원 식량 비급안돼 주민들 불만 토로/“유동인구 통제” 철도규율 인민무력부 이관 북한은 최근 극심한 식량난으로 탈북자가 늘어나자 김정일이 국경을 넘는 주민들을 무조건 총살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주민들에게는 풀취식까지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식량난에 따른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철도규율업무를 사회안전부(철도안전부)에서 인민무력부로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귀순한 장인숙씨(56·여·함북 온성군 온성탄광노동자구 55반),장씨의 아들 정용씨(27·온성종이공장 노동자)와 정남씨(24·청진철도국 선로공) 등 일가족 3명은 12일 서울 덕수궁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밝혔다.이 자리에는 지난 90년 8월 먼저 귀순한 장남 정현씨(32)도 참석했다. 정용씨는 “김정일이 지난 5월쯤 국경수비대에게 국경을 4m만 벗어나면 무조건 총살하라고 지시했다”며 “이 때문에 국경경비대가 불법 월경자들에게 사격을 가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남씨는 “지난 5월 식량난에 따른 유동인구의 증가로 문란해진 철도규율을 확립하라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그동안 사회안전부가 담당해온 철도규율 업무를 인민무력부로 이관시켰다”면서 “인민무력부에서 군관 및 하전사를 800명씩 선발했으며,함북 온성군의 경우 군관 1명,하전사 2명이 한조로 편성된 3개조가 평양행 열차에 탑승해 승차권 및 여행증명서 검열 등 단속업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대북식량 지원과 관련,“북한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식량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전혀배급되지 않자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용씨는 “중앙당은 지난 7월 ‘밥을 먹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풀을 발효시켜 당분으로 만드는 ‘만경대균1호’라는 효소를 온성군 일대 2백여개 공장에 보급,점심으로 풀떡을 만들어 먹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 일가족은 지난 90년 8월 장남인 정현씨(32)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공업대학에 유학중 한국으로 귀순하자 평양에서 함북 온성군 탄광지역으로 쫓겨나 생활하다가 지난달 초 북한을 탈출했다.
  • 전·노씨 사과 전제돼야 사면문제 제의/김 총재 일문일답

    25일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기자회견은 기아사태 등을 포함한 경제난의 해소책 제시와 이른바 ‘색깔론’의 정면돌파에 초점을 맞췄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다. ­경제난 해소를 위해 여야 3당 대선후보간 회동을 제의할 의향은. ▲회동보다는 지난번 경제영수회담때 구성한 경제대책위원회를 활성화해 해소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기아자동차 인수와 관련한 삼성의 보고서 파문에 대한 견해는. ▲정치적 입장 표명을 삼가겠다.기아는 자동차 전업회사로 살려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을 건의할 생각은. ▲본인들의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지속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이회창 파일’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당에는 ‘이회창 파일’도,리스트도 없다.여당이 우방국가(한국전 당시 미군함정 총살논란)까지 끌어들이는 몰상식한 일을 해 우리도 할 수 없어 한 것이다.
  • 법정으로 치닫는 여야 색깔공방

    ◎신한국­‘안기부 프락치’ 발언 명예훼손 고소/국민회의­‘함상 총살’ 미에 질의서 쟁점화 시도 오익제씨 월북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정치권의 ‘색깔공방’이 23일 여야간 맞고소 사태로 이어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여야간 공방전도 전선이 확대되고 있진 않지만,강도는 어느때보다 강하다. ▷신한국당◁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과 이사철 대변인 정형근 정세분석위원장 등은 김대중 총재와 정동영 대변인 등 국민회의 관계자 4∼5명을 오는 25일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맞고소키로 했다. 이대변인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 직후 “국민회의가 우리당 정위원장을 ‘안기부의 프락치’‘한국 메카시즘의 대명사’ 등으로 비난한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대변인은 이어 논평을 통해 “국민회의가 개인이 임의로 작성한 메모를 내놓고 6·25 당시 김총재의 해상방위대 근무사실을 주장하며 좌익활동 경력을 부인한 것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면서 국민회의가 김총재의 해상방위대 활동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송인명당시 목포경비부사령관의 증언록을 반박했다. 앞서 강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야당고발에 대해 의연하고 대범하게 맞서겠다”면서 “터무니없는 공격에 대해서는 우리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강경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강총장은 특히 “여당이 최대한 인내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야당이 지금 하는 것을 보면 도에 지나친다”며 공세수위를 높였다. ▷국민회의◁ 국민회의는 이날 신한국당의 맞고소 전략을 예상한 듯,특별한 논평없이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면 되는 일”이라고 애써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러나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신한국당 이대변인을 겨냥,집중타를 퍼부었다.표적은 이대변인 최근 제기한 ‘김총재에 대한 미군 함상 총살의혹’ 문제였다. 장성민 부대변인은 이날 “이 문제는 한미 우호관계를 해치는 일이며 외교적으로 심각한 마찰이 우려된다”며 이대변인의 발언취소와 사과를 촉구했다.이어 “미대사관의 부인으로 이미 허위사실로 증명됐음에도 이대변인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외교를 파탄내자는 의도가 아니냐”고 공격했다. 국민회의측은 나아가 오는 25일 이대변인의 발언에 대한 미 대사관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 정치쟁점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한편 김대중 총재와 오익제씨의 전화통화 및 면담의혹 등에 대해 김충조 사무총장은 “김총재는 오씨와 만난적도 직접 전화통화도 한 적이 없었다”며 “선거때마다 악용해온 용공음해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 여야 색깔공방 끝이 안보인다

    ◎신한국­대변인 해임 요구에 “월북없게 집안단속을”/국민회의­미 대사관 해명 힘입어 명예훼손 고소 강공 오익제씨 월북을 둘러싼 여야간의 ‘색깔공방’이 갈수록 과열·혼탁 양상을 띄고 있다. ○…신한국당은 안기부가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히는 등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이사철 대변인이 주공격수로 나서,대야 공세를 계속했다.이대변인은 21일 성명을 통해 “오씨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국민회의가 우려하는 색깔론 시비를 막고 국민을 현혹한 행위에 대해 사죄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홍문종 부대변인도 이날 국민회의의 이사철 대변인 해임촉구에 대해 “남의 집 잔치상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기전에 오익제같은 월북자가 생기지 않고,남조선 명함을 돌리는 당원이 없도록 자기집안 단속부터 잘하라”고 비난했다. 이대변인은 지난 19일 일본 월간지 ‘중앙공론’과 ‘정계’등을 인용,“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6·25 당시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미 해군함상에서 총살되기 직전,미 정보기관에 근무하던 동향 친구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주장한데 대해 미 대사관측이 “전쟁포로 처형목적으로 미군함이 사용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과 관련,“자료를 토대로 김총재의 해명을 촉구한 것이며,추가 자료가 입수되면 발표하겠다”고 해명했다. ○…국민회의는 6·25 당시 김총재의 공산당 활동 의혹을 제기한 신한국당 이사철 대변인의 해임을 촉구했다. 박홍엽 부대변인은 “미 대사관측의 부인으로 이대변인의 성명이 허위날조된 것으로 판명됐다”며 “이는 그동안 신한국당이 제기한 8대 의혹 등의 온갖 용공음해가 모두 허위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공세수위를 높였다.이어 “제1야당 총재를 용공음해하기 위해 없는 사실을 날조하는 신한국당 행위는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역공을 취했다. 또 강삼재 총장과 이사철 대변인,정형근 의원을 당과 김대중 총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데 이어 이날 “이회창 대표는 외교적으로 중대한 과오를 저질러 국가의 위신을 추락시킨 이대변인을 해임시키라”고 촉구,강공전략을 구사했다.
  • 일군 중립국 스위스인도 학살/스위스 정부문서 첫 발견

    ◎2차대전중 어린이 등 12명 살해 【도쿄 연합】 2차대전중 일본과 일본 점령지에 있었던 중립국 스위스 국민에 대해 일본 군대와 경찰이 학살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보여주는 스위스 정부문서가 발견됐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4일 보도했다. 1945년 4월27일자 스위스 외무부 정치국 문서에 따르면 당시 필리핀에서 스위스인 18명이 전투에 휘말려 사망했으나 이중 12명이 “일본군의 언어도단적인 방법으로 살해됐다”는 것이다. 이 문서는 구체적으로 일본군이 젊은 부부와 생후 수개월된 아기를 총살해 불태웠으며 ▲스위스인 부자가 수류탄으로 살해됐고 ▲방공호안에서 여성 1명과 3살 및 9살짜리 어린이를 포함한 6명의 스위스인 시체가 발견됐으며 ▲이외에 일본군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수백명(국적불명)의 시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문서는 또 주일스위스공사관의 정보를 인용,“일본경찰이 재일 스위스인을 무차별 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는 일제 침략전쟁중 연합국 국민에 대한 일본군의 인권침해 행위는 많이 지적돼 왔으나 중립국 스위스 국민에 대한 침해 행위는 알려진게 없었다면서 이번 문서 발견으로 일본의 은폐돼온 전쟁책임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게 됐다고 전했다.
  • 이 대표 아들 병역 공방 팽팽한 줄다리기

    ◎여 “진실밝혀 맞대응” 야 “은폐 의혹”/여­“정치공세 불용” DJ 군경력 다시 거론/야­“실무진 착오 운운은 명백한 허위 보고”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두아들 병역면제 의혹과 관련,국방부가 30일 국회에 제출한 병적기록표 사본 내용이 고건 총리의 국회 본회의 답변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 ‘병역시비’는 새국면에 접어들었다.그러나 야권은 사본 자체의 조작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서 병역 공방은 여전히 계속될 전망이다. ○‥신한국당은 국방부의 병적기록표 사본 제출을 계기로 ‘병역공방’이 일단락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야권이 제기한 사본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공세를 위한 공세일뿐”이라고 일축했다.당 지도부는 국방부의 자료 제출로 수세에 몰리던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고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총력대응태세를 갖췄다.신한국당은 향후 국민회의 등 야권이 이대표의 두아들 병역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 야당 공세에 정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대선 정략에 더이상 말려들수 없다는 판단때문이다.경우에 따라서는 김대중 총재의 병역기피 의혹을 다시 들고 나와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이다.김충근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김대중 총재는 6·25 당시 용공부역자로 숨어지내다 체포돼 총살형 직전의 운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희태 원내총무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를 마친뒤 “진실을 공적인 자료로 밝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대응책”이라면서 “진실규명을 두려워 하는 것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라고 말했다.지도부는 또 당의 조직망을 가동,국방부가 제출한 병적기록표 내용을 들어 이대표 자제의 병역면제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기로 했다. ○…야권은 이날 이대표 공격을 계속했다.두 아들의 병역문제 등을 내세워 전방위 공세를 펼쳤다.특히 이날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대표 아들들의 병적기록표 사본을 검토,사본의 조작 가능성을 최종 점검키로 했다. 국민회의는 병적기록표 폐기문제에도 고리를 걸었다.국방부가 이를 폐기했다고 답변한 것은 실무진의 착오 때문이라고 발표한 것 역시‘허위’라고 주장했다.천의원이 이날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보고한 내용을 근거로 했다. 보고 내용은 이렇다.“지난 3월10일 한 민원인이 찾아와 이대표와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 자제의 군 면탈에 부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제보를 했다.같은달 26일 국방부에 자료를 요청했다.4월 중순 국방부 자료에 의해 이고문 자제들의 면제사유는 명백했다.그러나 이대표 자제들은 체중미달만 확인됐다.4개월동안 10여차례 요청한 결과 여러 단계의 구두보고,설명,문서제출 등을 거쳐 7월1일 서면보고가 이뤄졌다.그러나 94∼96년 자료만 있었다.자료에는 키179㎝이상 면제자가 94년 징병검사 대상 40만명중 2명,95년 40만명중 1명 등 3명뿐이었다.공식문서를 재요구하자 지난 21일 국방장관 관인이 찍힌 문서로 관련문서가 폐기됐다는 문서가 왔다” 천의원은 “이는 실무진이 실수할 상황이 아니며 국방부장관과 병무청장이 이대표에게 줄서기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자 두 아들의 병역기피를 은폐 조작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살만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 임시국회 막판 진통/야 이 대표 아들 병역문제 공세로 산회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 두 아들의 병역면제 등에 대한 야당측 공세에 맞서 신한국당측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병역문제를 제기,여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관련기사 5면〉 여야는 제184회 임시국회 폐회를 하루 앞둔 29일 본회의에서 소속 의원 12명이 나선 5분 자유발언과 대변인단 논평 등을 통해 두 사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야당측은 이날 본회의에서 이대표 두 아들의 병적기록카드 폐기여부등과 관련,고건 국무총리와 김동진 국방장관의 본회의 출석을 요구해 표결에 들어갔으나 신한국당측 반대로 부결됐다. 야당측은 또 이날 의원총회와 의원간담회 등을 갖고 이대표가 전날 TV토론에서 두 아들 병역문제를 해명한데 대해 기만행위라고 규정짓고 고의감량 여부 및 판정과정의 부정개입 의혹 등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신한국당 김충근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회의 김총재는 6·25때 공산당원으로 미 해군 함정에서 총살형 직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워싱턴 투데이지가 보도한데 대해 진실을 고백하라”고 반격했다. 신한국당측은 이날 행정규제기본법과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 등 53개 법안과 ‘국군의료부대의 서부사하라 유엔평화유지군 파견연장 동의안’등 안건을 처리하려 했으나 야당측의 거부로 정회사태를 빚다가 폐회일인 30일로 처리가 미뤄졌다. 이에 앞서 무소속 박태준 당선자와 신한국당 오장섭 당선자는 첫 등원,의원선서를 했다.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Ⅲ

    ◎획일적 계획경제 체제가 경제파탄 초래/‘죽도록 일해봐야 소용없다’ 인식 일반화/김정일 “개혁·개방하면 망한다” 맹신 ▷북한 경제분야◁ ○경제난 원인 북한경제가 파탄상태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물질적으로 자극을 무시하고 정치적 자극을 우선시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죽도록 일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일반화 되었으며 생산물 가격을 수요와 공급,그리고 가치법칙을 무시한채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획일적인 계획경제 체제에 연유함.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요인으로는 67년이래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지속적 추진으로 군수공업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민수부문과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김부자 개인 독재정치의 후과로 비경제적인 대기념비 창조물건설 등에 너무 많은 재원을 낭비함으로써 자원을 탕진한데다 소·동구권 붕괴로 이들로부터의 원조중단과 경화결제 요구에 따른 수입 원자재 획득이 곤란한 점 등을 들수 있음. ○경제난 실상 북한의 현 경제는 일제시대 보다도 더악화된 ‘마비상태’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함. 완충기(’94∼’96)는 기만에 불과하고 차기 경제개발계획 수립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우선은 지속되고는 마이너스 성장을 정지시키는 것이 급선무임. ○경제통계 과장 실태 공산주의의 제일 나쁜 점은 진실성이 없다는 점으로 당의 이익과 선전,주민 사기양양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대외발표를 기만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임. 예산계획 수립시 각부서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 예상 획득량을 기준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계획자체가 과장되고 있음.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외에 공표하는 예산은 규모가 크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연말에 재정부가 당비서회의에 보고하는 것보다 항상 2배이상 과장되며 매년 그 과장 정도가 점점 커지고 있음. ○아편생산 및 판매 실태 북한에서는 80년대부터 양귀비를 ‘백도라지’라고 명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재배를 권장하고 있으며 마약제조·밀매는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군·보위부·안전부 등에서 주로 관여하고 있음. 아편정제는 청진 나남제약 공장에서하고 있고 기술부족으로 제품의 질이 아주 낮으며 무역상사 등을 통해 밀매하고 있음. 94.6 정무원 마약담당 책임일꾼은 “동남아 사람들로부터 좋은 종자와 재배방법을 입수하고 판로를 개척할 것”을 지시한바 있으며 96년에는 러시아에서 북한인이 아편을 판매하다 적발되어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음. ○최근 식량난 실태 평양지역은 96년에 1일 300g 정도의 식량을 배급하였으나 지방은 배급을 중단한지 오래이며 부족식량은 신주의 등 국경지역을 통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곡물을 구해 충당하고 강냉이죽에 풀을 섞어서 연명하고 있음. 96.12 중앙당은 곡물생산량 부족에 따라 “3개월은 국가에서,3개월은 수입 양곡으로,3개월은 직장자체 해결,나머지 3개월은 개인이 자체 조달”하도록 방침을 수립한 바 있음. 95년 홍수피해 이전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자존심을 앞세우면서 “항일 빨치산때 풀뿌리를 캐먹었는데 어디가서 구걸을 할것인가”라고 말한 바 있음. 그러나 식량난 해결을 위한 아무런 대책이 없게 되자 외부에 홍수피해를 구실로 대외원조를 요청하게 된 것으며 일부지역에 대해서는 배급실태를 확인할 수 있으나 사전에 다 조작해놓아 정확한 분배감독이 불가능함. ○개혁·개방 문제 김정일은 “개혁·개방하면 사회주의가 망한다”고 매일 말하고 있으며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비난을 많이 함. 김용순·김가남·김국태·한성룡 등 당비서들은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나 이를 이야기하면 반동으로 취급 당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함. 중국식 농협개혁은 비판받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 견학후에도 나쁜 점만 보고하고 있음. 작년에 실시한 분조관리제 개선안은 농민들이 자주 제기하던 문제로서 일정량만을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농민들이 나누어 갖는 제도로서 새로운 개혁조치가 아니라 과거부터 있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것에 불과하며 과거 10년간의 평균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여 목표량을 산정하였으나 비료를 주지않아 생산목표를 달성한 농장은 10개 미만임. ○북한·중국간 경제협력 관계 김정일은 중국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부하들의 중국 모방을 사대주의로 매도하는 등 중국과의 경제협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음. 한편 최근 중국측은 북한에 대해 신규거래에 앞서 기존거래에서 발생한 빚을 먼저 갚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임. 중국측은 “북한 봉화화학 공장에 대한 원유공급 계약기간(20년)이 95년 종료되었으니 재계약을 하려면 빚을 다 갚고 하라”고 요구한바 있으나 실제 원유공급 중단 여부는 불분명함. ▷북한 사회분야◁ ○주민의식 성향 북한주민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김부자의 말·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환상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김정일을 옹호·보위하고 총폭탄이 되는 것”을 삶의 근본적인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음. 북한은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관계만이 존재하고 개인간 횡적관계는 철저히 차단된 봉건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음. 그러나 경제난이 악화되면서 일반주민 뿐만 아니라 주민 통제를 담당하고 초급 당 간부·안전원마저도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한 식량구입에만 매달리고 있음. 최근 당간부 등 핵심계층과 대학생들 사이에서“폐쇄정치는 망국의 길,개혁·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나 아직 김정일의 잘못을 직접 거론하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 ○인권탄압 실상.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핵문제·화학무기에 이어 다음에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말한바 있으며 북한에는 인권관련 법률을 형식상으로 만들어 놓았을뿐 인권자체가 없다고 보아야 함. ‘통제구역’은 56.8 발생한 ‘8월 종파분자사건’(최장익·윤공흠 등의 반김일성 음모)에서 유래한 것으로. 김일성이 “종파분자들은 머리꼭대기까지 잘못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간벽지로 보내 격리시켜 살게해야 한다”고 언급한바 있음.최초로 통제구역이 설치된 지역은 58년말 평남 북창군 소재 득장 탄광 이었으나 그 이후에 평양 승호리 등 여러곳에 설치하였으며 처음에는 종파분자만을 통제구역에 보내다가 나중에는 김부자 비난 등 정치범들을 수용하였음. 60년대경 김일성이 “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고 지시함에 따라 함남 정평군에 난쟁이수용소를 설치하여 집단 수용하고 있음. 최근에는 공개처형이 전국에서 집행되고 있는데 92년도에 주민들이 공무중인 안전원들을 구타하자 김정일이 “이제부터는 총소리를 내야겠다.안전원에 손을 대면 무조건 쏘아버려라”고 지시함에 따라 확대되었으며 95년에 외화벌이 명목으로 포르노영화를 만든 것이 문제가 되어 영화부문 간부와 배우등 7명이 평양형제산 구역에서 30만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공개총살된 바 있음. ○범죄만연 실태 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도덕성이 무너져 각종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적 궁핍이 주원인이지만 젊은사람들이 군대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것만을 배워온데에도 원인이 있음. 범죄자 수용시설로는 각 도에 교화소가 한개씩 있고 시·군안전부에는 ‘구류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용인들은 대규모 토목공사 또는 공장지역에 강제노동인력으로 동원되고 있음. 평양시의 경우 보통강구역에 수천명 수용규모의 제8교화소가 있으며 평북도 신의주 교화소는 여자죄수만수용하는데 미상시기에 남신의주로 이전하였음. 한편 북한당국은 범죄예방·처벌을 위해 각 단위마다 ‘법무생활 지도위원회’를 설치하였는데 군의 경우 군 당책임비서·행정경제위원장·보위부장·안전부장·검찰소장 등으로 구성되며,동위원회에서 모든 범죄자를 처리하고 있음. ○당간부 생활 및 동향 감시실태 김국태·김기남·조명록·김영춘·김용순·이하일·이창선 등 김정일 핵심측근들은 중앙당사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들의 아파트는 일반아파트 2채를 통합한 호화 주거지임. 정치국 후보위원·부총리급 이상은 차량을 지급해 주고 있는데 부총리급은 벤츠 280형·정치국 위원은 벤츠 380형임. 〈동향감시 실태〉 당 간부들에 대한 감시는 일반주민들보다 더 심하며 심지어 집에 도청장치까지 해놓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음. 당 간부들의 조직생활은 군대보다 더욱 심한데 점심시간에 1분만 늦어도 생활총화시 자아비판을 하도록 하고 있음. 이같이 고위간부들에 대해 엄격한 감시·통제를 하는 것은 김정일이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많은 대상으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임.
  • “북 7∼10월 전쟁 발발 소문”/귀순 두가족 회견

    ◎한국서 보낸 쌀 구경도 못해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오는 7월∼10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유포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군복무 연한을 10년에서 13년으로 연장하고 이른바 「성분 불량자」까지 징집하고 있으며,지난 3월 중순에는 국가안전보위부·사회안전부·인민무력부 등 전 병력이 동원되는 종합작전 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전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북한에는 굶어 죽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야간에 전선·전화선을 끊어 중국 밀수꾼에게 팔아 넘기다 붙잡혀 공개 처형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2일 서해상을 통해 귀순한 김원영(57)·안선국씨(47) 가족 14명은 22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귀순 가족들은 『북한 학생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숫자가 학급 당 최고 50%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다』면서 『상당수 학생들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부모들의 권유로 장마장(시장)에서 돈벌이에 나서고 있고일부 교사들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어 한 교사가 두 학급을 가르치는 예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김씨 등은 또 『95년부터 한달에 가구당 60㎏ 정도 나오던 식량 배급마저 중단됐으며 햇곡식이 나오는 9월이나 10월에 쌀 10㎏을 받는 게 고작』이라고 말하고 『탈출하기 직전에도 굶어죽는 주민을 2명이나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전쟁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어 권력을 승계하면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시기는 7월∼10월로 소문나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을 견디다못해 전기 및 전화용 동선을 훔쳐 중국 밀수꾼에 팔아넘기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으며 지난 3월에 남자 1명,5월에 군인 2명 여자 1명 등 모두 4명이 공개 총살됐다』고 폭로하고 『북한은 지난해 10월에 주민 소요에 대비,기존의 시 안전부 순찰대를 모체로 각 도 안전국에 기동순찰대를 창설해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북 쌀지원 문제와 관련,『쌀이 들어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번도 배급받은 적이 없다』면서 『남한과 미국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까봐 두려워 쌀을 주며 달래려 한다고 선전하다 있다』고 말했다.
  • “군 강경파 권력 독점”/러 극동첩보기관 북 정세 보고내용

    ◎경제정책 실패·황 망명으로 당 약화/김정일 게릴라전에 자신감… 군 공감/불만세력 조직력 결여… 폭동 어려워 식량위기에 몰리고 있는 북한이 위험한 행동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도쿄신문은 10일 북한내의 움직임에 대한 러시아 극동지역 첩보기관의 보고서를 인용 「김정일체제 등장 이래 노동당과 인민군,첩보기관 등 3대 권력기관간 균형이 무너지고 정권유지를 위해선 전쟁도 불사한다는 군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다음은 이 기사의 요약. ▷인민군◁ 김일성 주석이 죽은 직후 김정일비서와 군의 관계는 군 간부 일부가 김의 승계에 강하게 반대해 좋지 않았다.특히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오부장의 후임인 최광원수도 김과 관계가 악화돼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최광 원수는 현재의 군사력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패한다고 보았다. 이후 김비서의 주변에는 조명록 군총정치국장 등 차세대 군간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이들의 영향인지 모르나 김정일은 게릴라전 준비를 전조직에 지시하는 등 강경노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95년 5월에 내린 지시에서 김은 『한미와의 전쟁에서 80%의 국민이 죽어도 남은 20%의 국민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강한 무기를 가진 소국은 대국을 격파할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첩보기관◁ 고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동지가 소련의 KGB를 본따 만든 조직으로 체계는 KGB 그대로다.50년대는 사회안전부의 보안국이었지만 73년에 국가보위부로서 주석직속의 기관이 됐다. 국경경비대와 12만명의 특수부대가 있는 외에 스파이를 동원해 전국민이 국가지령에 따르는가 여부를 체크하는 방첩국이 있다.하지만 이 조직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그 증거는 국경경비대가 최근 군으로 이관됐다는 점이다.황장엽 비서를 비롯,외교관의 망명 등이 급증,실정이 쌓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88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훈련을 받은 직원이 많은 등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했지만 소련 붕괴후에는 이것이 없어졌다.황비서 망명사건후 나홋카 주재 북한 총영사관에서 러시아어를 할줄아는 직원 전원이 본국으로소환됐다.이들의 망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노동당◁ 경제난이 심화되며 이에 대한 문책 등으로 당의 힘도 약해졌다.대신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은 군인.김정일 비서와 늘 행동을 함께 하는 측근 보좌관은 조명록 원수를 비롯해 김영춘 총참모장,현철해 대장,김하규 대장,박재경 대장 등 대부분이 군간부가 점하고 있다.국가의 안정을 위해 의지할 곳은 군뿐이라는 김정일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이 보고서는 김정일 측근들은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김정일은 게릴라전에 자신을 보이고 있다.게릴라전의 주력이 지난해 잠수함 사건을 일으킨 특수부대다.또한 지하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해서 전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은 주민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성공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전하고 있다.92년에 육군의 한 연대가 폭동을 일으켰지만 전원이 체포돼 병사는 총살,장교는 산 채로 가솔린으로 태워 죽였다.그 위 중국 국경부근에서 기아폭동이 있었지만 생존자 전원이투옥됐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미군은 공중폭격,포격 등으로 평양 등을 전멸시킬수 있지만 지하시설 공략은 어렵다.걸프전때 미군은 특수부대를 제외하고는 이라크영토에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지상군을 투입할 수 없다.북한영토로 특수부대를 투입하더라도 체첸분쟁처럼 대단히 어려운 게릴라전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동숭아트센터,현대사 재조명 시리즈 1편 「나,김수임」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 재조명/총살형 선고받은 여간첩의 사랑·슬픈인생/윤석화·한명구 출연… 복식의 시대상도 재현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은 누구인가. 1912년 개성에서 태어나 1950년 6월 총살형을 선고받고 사라져간 「여간첩」 김수임.후세에는 「여간첩」이라는 수식어로만 알려져있지만 실제 그녀의 행적은 어떤 이념이나 주의를 좇아가기 보다는 한 연인을 향한 해바라기 삶 그 자체였다. 이같은 김씨의 일생을 되짚어보는 연극 「나,김수임」이 오는 29일부터 6월8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 동숭아트센터가 한국현대사 재조명 시리즈 1편으로 마련한 「나,김수임」은 「덕혜옹주」「세종 32년」 등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정복근이 대본을 쓰고 정씨의 콤비 연출가 한태숙이 연출한다.또 김수임역은 뮤지컬 「명성왕후」이후 1년여만에 돌아온 윤석화가,수임의 연인 이강국역은 「세종 32년」에서 세종으로 열연한 한명구가 연기한다. 이와 함께 50년대 신여성들의 패션을 이끌었던 디자이너 노라노씨가 연극의 여자양장을 맡고 무형문화재 11호 박선영씨가 한복을 만들어 시대적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할 계획이다. 1953년,6·25가 끝나고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날.시인 모윤숙이 폐허가 된 서울에서 친구 김수임을 회상하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한다.3년전인 50년 6월19일 김수임은 군사법정에서 총살형을 선고받았다.그러나 바로 6·25가 터지는 바람에 그의 총살형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김수임의 죄목은 지명수배된 공산주의자인 애인 이강국을 3·8선 너머로 탈출시키고,동거중이었던 미국 헌병사령관 비어드 대령의 직위를 이용해 수집한 정보를 북에 넘겨주었으며,사형선고를 받은 남로당원 이중업까지 북으로 탈출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객관적 기록뒤에는 수임의 슬픈 인생이 숨겨져 있다.의붓아버지에게 겁탈당한 불우한 유년기를 거쳐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을 졸업한뒤 공산주의자 이강국을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해 그녀도 간첩으로 몰려 사라져간 짧은 인생살이가.
  • 40대 남,30대 자매 권총살해/본인은 자살/치정관계 추정

    분당신도시 한 아파트에서 자매와 40대 남자 등 3명이 권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4일 하오 1시5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청구아파트 609동 502호 정영숙씨(33·여) 집에서 정씨와 언니 련숙씨(37),영숙씨와 내연관계인 우상근씨(40) 등 3명이 숨져 있는 것을 연숙씨의 남편 이종남씨(39)가 발견했다. 발견 당시 련숙씨는 부엌 식탁 옆에,우씨와 영숙씨는 찬장 앞에 각각 쓰러져 있었다.정씨 자매는 이마에 1곳씩,우씨는 이마 2곳에 총알을 맞은 상태였다.
  • 중 “10여명 부상” 이례적 신속 발표/버스폭발후 북경 표정

    ◎범인에 현상금… 경찰력 5∼6배 증강/소수민족 갈등증폭·후속테러 대비 북경에 테러 비상이 걸렸다.7일 밤 북경 중심가 서단에서 발생한 차량폭발사고로 경찰 등 당국이 북경전역에서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공안경찰은 특히 이례적으로 사고발생 하루만인 8일 중국 국영TV를 통해 이 사건이 사제폭탄 2개에 의한 것으로 10여명이 다쳤으며 범인에 대해 현상금을 건다는 내용의 공식발표를 해 사태에 대한 중국당국의 긴장감을 더해줬다. 특히 동쪽 국제호텔에서 동단,천안문,중남해,서단에 이르는 장안대로변에는 평소보다 5∼6배나 많은 경찰이 배치돼 순찰을 강화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주요 교차로 주위엔 경찰 기동타격대의 중형버스와 순찰차들이 세워져있고 버스 정류장마다 공안경찰들이 배치돼 불심검문하는 등 긴장된 모습이다. 이 사건은 치안 경계령이 내려진 전인대기간중 하루 58만여명의 시민이 드나드는 시내 중심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국당국을 경악시켰다.그러나 무엇보다 중국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을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발생한 민족분리운동과 연속선상에서 보기 때문이다.90년대초부터 표면화된 위구르족주도의 신강분리독립운동이 갈수록 고조돼 등소평사후 한족과 55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중국의 민족단결을 무너뜨리고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게 중국당국의 걱정이다.사고 지점서 1㎞여 남짓 떨어진 청와대격인 중남해주위 경비를 이례적으로 강화하고 주변 통행차량을 일일이 검문하는 것도 요인암살 등 후속 테러에 대한 대비라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90년초 위구르족과 키르키즈족 지도자 50명이 반혁명역도로 총살당한뒤 92년 우루무치,93년 카시카르의 폭탄테러를 비롯,95년 호탄의 무장폭동,올2월초 카자흐스탄접경의 이닝시 유혈폭동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등사망직후인 지난달 25일 우루무치에서 차량 폭탄테러로 7명 사망,60여명 부상에 이어 1일에도 경찰건물을 겨냥한 폭탄테러가 있었다.지난해엔 3천명의 위구르족 등이 체포되고 수백명이 처형 또는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다. 실크로드의 끝부분에해당되는 동과 서의 접경지역인 신강지역의 민족분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유전개발등 개발붐속에서 한족들의 유입이 확대되고 옛 소련이 분열과 인근 회교국들의 회교근본주의 등의 영향때문이다.
  • 논란빚은 원고내용/이용삼 의원­88년 간첩 서경원에 돈받아

    ◎허대범 의원­DJ 6·25당시 공산당원이었다 25일 통일외교안보분야의 대정부질문에 앞서 여야간 논란이 됐던 신한국당 이용삼,허대범 의원의 질문원고중 문제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용삼 의원=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88년 8월 간첩 서경원이 밀입북하여 북한으로부터 받아온 5만달러중 1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그런 전력 때문인지 사상문제만 나오면 「용공음해」니 「용공조작」이니 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우리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도급 인사 가운데 공산주의 전력이 있는가 또는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언행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허대범 의원=김총재는 간첩 서경원사건,문익환목사 밀입북사건,92년 대선 당시 주사파가 포함된 운동권 연합체와의 정책연합,김일성 조문론 파문 등 국민들로부터 안보위해 전력과 색깔에 대해 강한 의혹을 받은 바 있다.일본 월간잡지 「정계」의 96년 2월호에는 『김총재가 6·25전쟁 시 공산당원이었고,당시 체포된 450여명과 함께 미해군 함정에서 총살형이 되기 직전 미 해군 정보부에 있던 고향친구 김진하의 조언으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내용이 실렸다.미국 『워싱턴 투데이」의 1면(95년 8월24일자)에도 크게 보도된 것이다.또한 해군본부 역사문헌 어디에도 없는 목포 경비부 예하 해상방위대에서 부사령관으로 근무했다고 하는 미확인 군경력을 자랑하는 김대중 총재는….
  • 망명결심후 황 비서의 메모·서신내용 요약

    ◎“주체사상 학설 왜곡… 독재 무기로 활용”/“평화통일 앞당길 수만 있다면 희생 각오” 황장엽은 지난해 망명결심을 굳힌뒤 자신의 심경과 남북에 대한 상황인식 등을 담은 문건을 11월 10,13,15일 등 세차례에 걸쳐 작성,중개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월간조선이 입수,공개한 이들 문건을 요약한다. 〈11월10일자〉 1.원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석의 이름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히기 위해 창시된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 학설은 왜곡되어 독재의 무기로 이용되고,남의 청년학생들을 기만하는데 이용되었다. 지금 짬짬이 써놓은 글은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생각을 그대로 쓰지 못한 점도 있고,방조자도 없이 짬시간에 쓰다보니 논리적으로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당면하여 이남의 주사파 학생들과 지하조직 일군들을 계몽시켜 그들이 북의 가짜 주체사상 선전에서 해방되어 진짜 주체사상을 체득하도록 하는데 참고자료로 이용할수 있을 것이다. 2.남한에서 정치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다.지금 얼마 남지않은 여생,가능하다면 주체사상을 더 알기쉽게 정리하여 조국인민에게 남기고 싶다. 3.거사는 신중히 하기 바란다.(북한은)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왔다는 것,사람들이 다년간 오염되고 기만당하여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잠수함사건 가지고 회담하자는 것,4자회담 참가 가능성 있다는 것 다 거짓임.절대 기회 걸지 말것. 5.명년 7월에 가서는 이문제를 단행할 것이 예견됨.그러면 할일 없게됨. 〈11월13일자〉 우리 민족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원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앞당길수 있다면,그리고 세계 력사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다 산 자기생명을 버리는 것은 더말할 것도 없고 가족과 동지들의 가슴아픈 희생까지 각오하고 있다는 것.경제가 파탄되고 통치기반이 약화됨에 따라 당국의 경계와 질투심이 더욱 고조됨.당국은 금년 5월9일을 계기로 나의 사상이 자기의 통치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나에 대한 감시를 집중하고 있음.그러므로 현직에 그냥 머무러있는 것은 기대할수 없음.늦어도 6개월이내로 결론이 내릴 것같이 생각됨. 지금 지위에서 물러나서도 안전하게 살수 있다면 큰 다행이지만 나와같은 요직에 있다 물러나면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고 있음.당국이 꾸며낸 자료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규탄받고 죽는 것보다는 그전에 자결함이 여로모로 유리함. 2월에 큰 행사가 있으므로 그때까지 나를 리용하고 소문내지 않고 내적으로 처리하려고 할수 있음. 그러나 어느때 문제가 제기될지는 예측할 수 없음. 〈11월15일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혼자 희생되여도 후회할 것이 없음.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길밖에 출로가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전쟁을 미리 방지하거나 일어나는 경우 손실을 최대한으로 주리겠는가.학생들과 지하조직의 역할을 어떻게 저지시키겠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문제로,민족의 운명문제로 제기됨.한편 전쟁준비를 마지막으로 다그치면서 군단장들까지 검토하는 조건에서 우리 지위가 안전하다고 볼수 없음.당국이 지금 대체로 다 파악하고 더 활동정형을 감시하기 위하여 손쓰지 않을수도 있음.그러므로 명년 2월에 가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 그 기회를 리용함이 제일 중요할 것같이 생각됨. 지금 허다한 사람들을 마구 총살함을 폭로하면서 반체제인사들을 교환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는 것이 좋을 것같이 생각됨.그들(남의 반체제인사)은 북에 오면 다 개조되든가 죽게 됨.그러나 기만당한 상태에서 남에 있으면 위험한 존재임. 민족의 운명이 지켜질수 있도록 무거운 짐 지고 잘 다녀오시오.
  • 김송죽 소설 「번개치는 아침」(송화강 5천리:17)

    ◎북만일대 조선족 삶과 투쟁 생생히/비적의 약탈에 맞서 결성한 무장지위대/후일 공산군부대 편입… 국민당군 토벌나서/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반동으로 찍혀/중국 문혁시기 혹독한 핍박·고초겪어 흑룡강성 화천면 성화향 성화촌에 사는 김송죽 선생(59)은 퇴직교원이다.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하얼빈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가있다.그래서 두 내외가 넓은 한족식 집을 지켰다.그는 80년대 초에 처녀작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을 발표한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장편실화 「혈전」을 내놓았다.이미 문명을 얻은 그는 요즘 「관동의 밤」이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처녀작 「번개치는 아침」은 그의 부친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광복직후 조선족부대가 비적과 싸운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국민당군 별동대 성격의 비적은 광복직후 북만일대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공산당을 적으로 싸워야했던 당시 국민당에 북경에서 먼 북만은 사실상 통치지역 밖이었는지 모른다.그런 탓에 국민당을 돕는답시고 나선 별동대속에는 만주국시절 헌병이나 경찰관도끼여있었다는 것이다. ○피땀어린 농토 등지고 유랑 그리고 실제 국민당 비호를 받았다.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상장 사문동과 제1집단군 총사령 상장 이화당,국민당 동북 정진군 총지휘 중장 장우신이 별동대를 조종했다.당시 그들의 횡포를 고발한 노래말에 「사(사문동),이(이화당),장(장신우)은 불지르고 살인하니」라는 내용이 들어갈 정도였다.북만일대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공산당이 일찍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이 불타버리고 주검이 들판을 덮었다.더구나 조선족은 늘 사냥의 대상이 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그런 일로 해서 조선족들은 피땀으로 일군 땅을 버리고 다시금 유랑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이 무렵 조선족 선각자들이 일어났다.무장자위대를 만들어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그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산당 군부대에 속속 편입되었다. 그러한 무장자위대 가운데 맨 먼저 공산당 군부대에 편입한 조선독립대대는 1945년 11월25일 연안에서 주덕해와 손을 잡았다.조선의용군 제3지대로 개편한 조선독립대대는 다음해 4월28일 하얼빈에서 국민당군과 싸웠다.하얼빈이 국민당군 손에서 떨어져나오자 당기관과 발전소,송화강철교,비행장 경비를 담당했다가 국민당군 토벌에 나섰다.1946년 9월2일 하얼빈시 향방구 사리툰전투에서는 제3지대 소속 조선족 21명이 전사했다. 김송죽 선생의 부친이자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모델 김병념은 광복직후 동북민주연군에 참가했다.제1연대 조선족대대인 제2대대 5중대 1소대에 배속되었다.소대에서 3반장 직책을 맡은 그는 1946년 가을 대대를 따라 흑룡강성 화남현 발전소로 이동했다.그해 11월6일 주변정찰을 나갔다가 국민당군 병력과 교전이 붙었다.그 전투에서 김병념은 대대참모 김해정 등과 함께 전사했다.그리고 얼마뒤인 11월20일 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사문동이 붙잡혔다.사문동은 12월23일 벌리현에서 총살되었다. 김송죽 선생은 소년시절을 부대에서 보냈다.부친 김병념이 전사한 이후에도 모친이 부대 재봉대에서 군복을 짓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영내에서 살았다.그러다 부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친과 함께 벌리현에 남았다.할아버지 김석길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요,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다. ○소년시절 군부대서 생활 할아버지 김석길은 1884년 평남 수난 태생이었는데,1912년부터 계몽운동에 참여했다.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연고로 지명수배를 받자 제자 9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집안과 휘남을 거쳐 왕청에 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북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1925년 신민부에 들어갔다.1928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파견한 의란현에서 이도강 등에 4개의 학교를 세웠다. 김송죽 선생이 스무살 나던 해인 1958년에 할아버지 김석길은 흑룡강성 화남현에서 세상을 떴다.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민족의사들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항일운동을 했으면서도 공산당이 이끈 투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배제되었다.오늘날 흑룡강성 항일열사 가운데 민족독립운동가는 한 사람도 없다.물론 김석길 같은 분들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손들은 오히려 모진 핍박을 받았다.더구나 문화대혁명시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어야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송죽 선생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유로 반동민족주의자가 되었다.그의 죄목은 반동민족주의자 말고도 역사반혁명분자의 아들,반혁명집단의 두목,반당분자,반사회주의분자 등 10가지에 이르렀다.부친 김병념이 국민당군과 투쟁한 사실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부친이 광복전 강제로 끌려가 철도경호대에 있었다는 사실만 들추어 혁명열사가 계급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김송죽 선생 자신이 써놓았던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원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비적토벌을 내용으로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으나,김동철·김해정이 조직한 조선족부대를 문제로 삼았다.김동철과 김해정은 본래 항일연군 8군에서 일제와 싸웠다.그러다 1939년 군장 사문동이 일제에 투항하자 숨어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조선족부대를 창설했던 것이다.그 뒤에 동북민주연군 제1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던 조선족부대가 1949년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반동으로 몰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북한을 수정주의로 보았던 터라 조선족부대는 반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 틈틈이 습작 그는 옹골진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모진 매를 맞고 이른바 돌림투쟁을 숱하게 당했다.그래도 푸른 대나무처럼 곧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자신의 이름(송죽)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감옥생활 4년을 버티었다.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소설 「번개치는 아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1965년 탈고하고 하얼빈 조선족문화관에 원고를 보내놓은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문학수업은 어떤 의무감에서 이루어졌디요.청소년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리 독립운동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서 그걸 언젠가 정리한다는 생각을 했습네다.할아버지 유언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과 비적의 횡포를 역사로 기록하라는 것이었디요.할아버지한테 듣고,어렴풋하나마 어려서 실제 보아왔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설을썼던 것이외다.1957년 벌리중학을 나와 농사일 틈틈이 그런 꿈을 키우면서 실제 습작을 해왔디요.할아버지 유언과 내 꿈은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졌습네다』 김송죽의 「번개치는 아침」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원고를 탈고한지 꼭 18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그에게는 물론 가족사를 문학적으로 정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한 대서사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요즘 탈고한 장편소설 「관동의 밤」도 북만의 독립운동사를 형상화한 것이다.자그마치 75만자나 되는 작품을 출판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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