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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TA ‘4생결단’] 검·경, 허위사실 유포땐 구속수사… 시민단체 “정당한 의견 봉쇄”

    검찰·경찰청 등 공안당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와 관련,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자를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한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민사소송에 대해 법률 지원까지 한다고 밝히는 등 이른바 ‘FTA 괴담’ 확산을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시민단체는 정당한 의견을 막는 처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임정혁 검사장)는 7일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경찰청·외교통상부·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FTA 비준 반대 불법집단행동 대비 공안대책협의회’를 개최했다. 회의에서 검찰은 불법·폭력시위 주동자와 과격 폭력행위자, 국회 진입자 등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철저히 대처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자 등을 사법처리할 방침임을 분명히 밝혔다. 임 공안부장은 “SNS, 인터넷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퍼뜨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매체의 파급효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과 중대성 등을 고려해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맹장수술을 받으면 의료비가 900만원이 되고, 감기약은 10만원이 된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으로 도망가고 관여자들은 국민이 잡아서 총살했다’는 등의 내용이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지는 일은 FTA에 관한 정당한 비판과 반대를 넘어선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 같은 조치는 유언비어로 일부 국민들이 반대 집회에 참여하거나 폭력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해서다. 이번 FTA 반대 시위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점도 공안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불러왔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한·미 FTA 관련 조항에 대한 허위사실이 확대 재생산되는 모양새는 ‘광우병 괴담’이 번졌던 2008년과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게 공안당국의 판단이다. 시민단체는 이에 대해 “인터넷상의 정당한 토론마저 옥죄는 방침”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김미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장은 “틀린 내용이 있다면 정부가 적극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설명하면 되는데 검찰의 힘을 빌려 칼을 들이대면 인터넷상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규 한국진보연대 민생국장은 “국민의 우려와 주장을 공권력으로 막는다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 발상”이라면서 “한·미 FTA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는 토론만이 국민적 반발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안석·김소라기자 ccto@seoul.co.kr
  • 밟히고 잘리고… 독재자 시신 수난

    밟히고 잘리고… 독재자 시신 수난

    스스로 ‘아프리카의 왕’이라 칭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시신이 정육점 냉동창고 바닥에 나뒹구는 신세로 전락하면서 세계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폭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분노에 죽어서도 조롱거리로 유린당한 사례는 이전 독재자들에게도 반복돼온 역사였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가 대표적인 예다. 무솔리니는 1945년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스위스로 도주하다 이탈리아 유격대에 붙잡혀 즉석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이후 두 사람의 시신은 밀라노로 보내져 시민들에게 얼굴 형태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밟혔다. 로레토 광장의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리는 수모도 겪었다. 무솔리니가 죽은 지 64년이 지난 2009년 11월 말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무솔리니의 뇌 일부분과 혈액을 1만 5000유로를 최초 가격으로 정해 매물로 내놓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이베이 측은 죽은 사람의 신체 일부는 경매에 부칠 수 없다며 해당 경매를 삭제했다. 1989년 민중봉기로 축출돼 총살형을 선고받은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와 아내 엘레나는 160여 발의 총탄 세례를 맞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의 시신은 지난해 차우셰스쿠의 자녀들이 신원 확인을 요청하면서 다시 파헤쳐지기도 했다. 빈민층의 사생아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1919~1952).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죽은 그녀의 시신은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인 페론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아르헨티나 군부에 의해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떠돌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코가 부러지고 발이 손상되는 등 심하게 훼손됐다. 후안 페론 대통령도 사망한 뒤인 1987년 손이 잘려나갔다.독일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무솔리니의 처형 소식을 전해들은 다음 날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 전 측근들에게 시신을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총살·교수형·자살… 독재의 끝은 비참했다

    총살·교수형·자살… 독재의 끝은 비참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21일 무아마르 카다피처럼 전제 권력을 휘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세계 각국의 독재자 15명을 정리해 보도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아직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MB “박근혜 어릴 때 부모잃어 유머감 없어”

    MB “박근혜 어릴 때 부모잃어 유머감 없어”

    “한낱 농담에 불과한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기에 유머감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6년 3월 7일 서울시장 재임 시절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중 2006년 3월 8일자로 작성된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만남’에 따르면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더 진지하게 일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인해 박근혜 대표와 있었던 갈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처럼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된 또 다른 문서에서 이 대통령은 “후세인과 잘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6년 11월 20일 다시 버시바우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중동 건설 사업을 하면서 후세인을 잘 알게 됐다.”면서 “후세인이 한 장성을 총살하는 것을 봤고, 이후로 후세인과의 관계를 끊었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카다피 정권 몰락 계기로 본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카다피 정권 몰락 계기로 본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역사 속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의 말로를 되돌아본다. ●차우셰스쿠 등 도피중 처형 22년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하며 김일성을 모방해 우상화 작업에 혈안이 돼 있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전 대통령은 1989년 카다피처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을 시도했다. 하지만 평소 정권에 불만이 많았던 군은 총부리를 차우셰스쿠에게 돌렸고, 북한으로 도망치려다 붙잡힌 그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됐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따라 도망쳤던 베니토 무솔리니 전 이탈리아 총리 역시 유격대에 붙잡혔다. 메제그라라는 마을에서 페타치와 함께 처형당한 무솔리니의 시신은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매달렸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고향인 티그리트에서 숨어지내다 미군에 체포된 지 3년만인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소모사 부자, 암살도 대물림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전 니카라과 대통령은 20년 독재 후 1956년 암살 당했다. 그 자리를 두 아들이 잇따라 차지, 소모사 일가는 1979년까지 62년간 니카라과를 지배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도 1980년 암살당해 권력뿐 아니라 죽는 방식까지도 대물림했다. 독립 이후 정권 전복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조제프 카빌라 현 대통령은 아버지 로랑 카빌라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가였으나 변절, 독재를 하다 2001년 쿠데타 과정에서 암살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이 17년간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정치적 이유로 살해된 이들이 공식적으로만 3197명이고, 1000여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8년 뒤인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석방돼 귀국했다. 칠레에 돌아와서는 가택연금됐고 2006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20세기 가장 부패한 지도자’로 꼽히는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재직 중 부패혐의로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물러난 뒤 10년간 은둔생활을 하면서 빼돌린 돈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피노체트·밀로셰비치 감옥행 ‘발칸의 도살자’라 불렸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연방 대통령은 2000년 실각한 뒤 2001년 4월 세르비아에서 체포됐다. 1999년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에 의하여 전쟁범죄와 학살죄, 반인도적범죄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됐으며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프리카의 히틀러’로 불리는 이디 아민 전 우간다 대통령 역시 망명 생활 중 사망했다. 집권 기간 동안 전체 1000만명 인구 중 정적 등 최소 30만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79년 반군에 쫓겨 리비아로 도피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갔다. 죽는 날까지 우간다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엄청난 낭비벽으로 더욱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1986년 2월 부정선거가 발목이 잡혀 집권 21년 만에 하와이로 쫓겨났다. 3년 뒤 가족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 이타적인 동물인가.’  이 질문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현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순수하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1976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의 이 이론은 여전히 생물학계의 주류로 각광받고 있다. 도킨스의 이론은 결코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이자 기계’ 정도로 요약된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존의 원칙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갖고 있으며 유전자는 이에 맞춰 프로그램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흔히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남을 위한 희생정신과 이타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타성은 수많은 학자들이 진화생물학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이번 주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 & What)에서는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공개재판을 열었다. 피고석에는 역사상 가장 ‘이타적인 과학자’로 꼽히는 러시아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가 앉았다.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를 떠돌며 종자를 모았지만, 정작 본인은 감옥에서 굶어죽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인간의 근원에 대한 왕성한 탐구욕을 보여 온 영화 ‘혹성탈출’ 속 원숭이들의 영웅 시저가 검사로 나서 바빌로프의 이타적 유전자를 기소했다. 바빌로프의 변호는 그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녹색혁명의 아버지’ 노먼 빈센트 볼로그(1914~2009)가 맡았다. 시저 니콜라이 바빌로프. 1887년 모스크바 출생. 작물학자이자 식물유전학자, 수집가, 탐험가. 맞는가? 바빌로프그렇다. 시저법정에 섰는데도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보통 피고인석에 서게 되면 죄를 지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모두 긴장한 모습이게 마련인데. 바빌로프 2년 정도 수용소와 법정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보다는 오히려 분위기나 의자가 편하다. 시저당신이 왜 여기에 불려 왔는지 죄목을 알고 있나. 바빌로프잘 모르겠다. 시저당신은 유전자의 법칙을 거스른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핵심 토대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유전자는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의 일생은 이 이론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자리의 배심원 앞에서 그걸 입증해 보이겠다. 당신의 집안은 꽤 부잣집이었다. 당신의 부모는 당신이 섬유공장을 물려받기를 원했는데 왜 따르지 않았나. 바빌로프우리 가족이 부유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세 명의 형제들을 어려서 병으로 잃었다. 그 때문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형제들은 당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과 의학을 통해 이 같은 불행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누나 둘은 의사와 세균학자, 형은 물리학자, 난 식물학자가 됐다. 시저다른 형제들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당신은 식물학인가. 당시에는 식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빌로프사실 의사가 될지 식물학자가 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입학 직전 러시아에 최악의 흉년이 닥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시저당신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분명 의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었나. 잘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식량을 걱정해서 식물학자가 됐다는 사실부터 아이러니하다. 과학적 발견으로 인류의 고통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 아닌가. 바빌로프그게 나의 가장 큰 희망이었다. 난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이 발견을 어떻게 농사에 활용할 수 있을까.’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또 작물의 질병과 전염병 때문에 생겨나는 기아, 사망, 이주, 사회불안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시저그래서 결국 당신은 가족조차 버리고 먼 길을 떠났다. 1916년에 처음 파미르 고원으로 ‘페르시아 밀’을 찾아 떠난 이후 1933년까지 115차례나 소위 ‘종자찾기 여행’을 했다. 첫 여행을 떠날 때는 신혼이었고, 아들이 태어났는데 안아 줄 시간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얼마나 숭고한 여행이었기에 가족도 팽개쳤던 건가. 바빌로프작물이 지닌 질병면역력을 찾기 위해 지구상에 어떤 식물이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알고자 했다. 농작물이 잘 자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날씨의 영향도 있고, 병충해가 생겨서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인간이 생산성이 높다거나 하는 이유로 한 가지 작물에만 집착하면 그 작물에 병충해가 생길 경우 모두 굶어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양한 생물을 키울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위에 강한 작물, 추위에 강한 작물, 생산성은 낮은 대신에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적절하게 섞어서 키운다면 어떤 경우에도 기아를 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작물의 근원을 찾아야했다. 밀, 벼, 콩 등이 처음 태어난 곳을 찾는다면 그곳에서 가장 강하게 자란 품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저그래서 도대체 품종을 얼마나 모은 것인가. 바빌로프정확하지는 않지만 5대륙을 모두 돌면서 나와 동료들이 모은 종자와 덩이줄기가 14만 8000개에서 17만 5000개 정도 될 거다. 당연히 모두 땅에 심는 순간 자랄 수 있는 발아 가능한 종자들이었다. 시저그동안에 당신은 이혼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를 구한다는 목표 아래 결국 가족을 잃은 건데, 만족하나. 바빌로프아내 에카테리나와 아들 올레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종자여행을 위해서 말을 배울 시간도 부족했다. 시저전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몇 개 국어나 할 수 있나. 바빌로프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틴어는 기본이고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나 페르시아어까지 배웠다. 땅과 씨앗의 진정한 주인은 농부들이고, 종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 안다. 그들의 말로 대화하는 것이 종자여행의 핵심이었다. 시저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오로지 씨앗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았고, 그 결과 가족을 잃었다. 심지어 국가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스탈린 체제의 농업학자들은 당신이 지나치게 많은 종자를 가져와 방치했기 때문에 식량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가뒀다. 재판에서 총살형을 선고받았고, 물론 다행히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량을 모은 당신이 감옥에서 굶어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잖은가. 당신은 뭘 위해 일한 건가.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면, 당신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 아닌가. 심지어 당신의 제자들은 연구소의 종자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가 세계대전 중에 봉쇄된 도시에서 굶어 죽었다. 이 또한 당신의 책임 아닌가. 바빌로프…. 볼로그바빌로프의 성과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뒤를 이었던 내가 좀 더 보충하고 싶다. 병충해에 강하고, 식량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당신의 목표였다. 맞는가. 바빌로프그렇다. 그것만이 인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볼로그현재 러시아의 경작지 80%에서 바빌로프가 세운 연구소의 종자에서 개발된 품종을 키우고 있다. 불과 80년이 지나지 않아 수천년을 내려온 농업의 뿌리를 바꾼 거다. 종류는 1000가지가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물다양성은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화두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살포한 덕분에 땅은 피폐해졌고 새로운 병충해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결국 식물학자와 농업학자들은 80년 전 바빌로프가 주장했던 생물다양성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시저바빌로프의 노력들이 실제로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인가. 볼로그나 역시 바빌로프의 여행에서 연구의 기본을 얻었다. 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밀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고, 병충해에 강한 앉은뱅이 밀을 얻었다. 이 밀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했다. 시저그 덕분에 당신은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평생 아쉬움 없이 연구를 하고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바빌로프는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희생만 한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정황상 바빌로프의 유전자는 유죄가 분명하다. 볼로그시저 당신은 ‘이기적 유전자’의 가장 큰 함정에 빠져 있다. 바빌로프가 이타적이냐 하는 질문에 당신은 ‘그렇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실제로는 바빌로프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주장하는 유전자 설계론의 핵심은 유전자가 자신이 속한 종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유전자를 위해 행동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는 이타주의자들은 결국에는 생존을 위해 교묘하게 이타성으로 위장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빌로프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하는 대신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프로그램된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까지 버릴 수 있는 이타성이 바로 지독한 이기적 유전자의 증거다. 오히려 바빌로프야말로 ‘이기적 유전자’ 그 자체가 아닌가. 바빌로프이기적 유전자니 이타적 유전자니 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난 그냥 내 머리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죽는 순간까지 내가 모은 종자들에 대해 걱정했는데, 그 덕분에 인류가 기아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됐다니 기쁘다는 생각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게리 폴 나브한·강경이/아카이브)  이타적 유전자(매트 리들리·신좌섭/사이언스북스)  이타적 과학자(프란츠 부케티츠·도복선/서해문집)  기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스코트 킬맨·이순주/에이지21)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이상임/을유문화사)  생각의 역사2(피터 왓슨·이광일/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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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서 보내준 쌀 한 톨도 먹어본 적 없어”

    “남한서 보내준 쌀 한 톨도 먹어본 적 없어”

    “남한은 쌀과 밀가루를 (북에) 보내주지만 우리는 한 톨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28년간 수감됐던 탈북자 김혜숙(49)씨가 12일 국회에서 수용민들의 인권 침탈상을 생생히 공개했다. 김씨는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에 출석해 이같이 증언하고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공개 총살이 가장 많았으며 한 달에 70∼80명이 총살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수감돼 있던 평안남도의 18호 북창 정치범수용소 내부 시설과 함께 수감자 공개처형 모습 등을 담은 대형 그림들과 자료집을 준비해 당시 생활을 10여분간 자세히 설명했다. 김씨는 “1975년 2월 말 부친이 월남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려 어머니와 여동생 둘, 남동생 한 명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다.”면서 “13살에 들어간 이후 2002년 8월까지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28년간 살았다. 그곳에선 아직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용소에선 보위원 안전원들이 뱉은 가래침을 입을 벌려 집어넣고는 삼키지 않으면 있는 매 없는 매를 다 맞아야 했다.”고 증언했다. 극심한 식량난의 실상도 전했다. 그는 “강냉이 몇 알에 산나물, 나무뿌리를 먹고 살았다.”면서 “남한에서는 새 쌀을 보내주는데 보위원들이 빼앗아 먹고 남은 건 시장에 판다는 걸 다 안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동생 셋은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이날 회의 참석은 당 북한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은재 의원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中공안 ‘즉결처형’ 적법성 논란

    중국 공안이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카스(喀什)시 연쇄 흉기 난자 사건의 용의자들인 멤티에리 티리왈디(29)와 투르손 하산(35)을 1일 오후 시 외곽 옥수수밭에서 발견해 사살했다. 공안은 10만 위안(약 1650만원)씩의 현상금을 내걸고 지명수배한 뒤 이들을 뒤쫓고 있었다. ●“재판없이 현장 총살 월권” 지적 이들이 현장에서 총기류 등으로 무장한 채 완강히 저항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카스시 정부는 2일 웹사이트를 통해 “공안기관이 체포 과정 중 현장에서 총살했다.”고만 밝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도 ‘즉결 처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범죄자들인 만큼 적법한 판단이라는 지지 의견과 함께 “재판 절차 없이 현장에서 총살할 수는 없다.”며 공안의 월권 행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앞서 중국의 중앙아시아 쪽 관문인 카스에서는 지난달 30일과 31일 이틀간 연쇄 흉기 난자 사건이 발생해 19명이 숨지고 42명이 부상당했다. 신장자치구 공안 당국은 이번 사건을 파키스탄 내의 과격 위구르 이슬람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조직적 테러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잔인한 범죄자 처분 적절” 지지 하지만 세계위구르대회 등 해외 위구르인 단체들은 “위구르인에 대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차별이 이런 사건을 불러오고 있다.”며 “위구르인들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구르족 용의자들에 대한 현장 즉결 사살이라는 중국 공안의 인명 경시 행위가 더 극단적인 위구르족 저항을 부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한편 카스 시내에 계엄이 선포돼 무장 병력이 대거 배치된 가운데 많은 주민들이 추가 테러 발생 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몽둥이 등을 들고 다니고 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2009년 우루무치 유혈 시위 사태 때도 몽둥이, 쇠파이프, 칼 등을 들고 다니는 주민들이 많이 목격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평양에 부는 바람/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열린세상] 평양에 부는 바람/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평양에 여러 바람이 어지럽게 불고 있다. 첫번째 바람은 돈바람이다. 최근 평양 중심지에 흉물스럽게 서 있던 유경호텔 외관이 유리로 말끔히 단장되었다. 지난 1987년 착공되었으나 105층 건물 콘크리트 뼈대만 세웠을 뿐 자금난으로 20년 동안 방치되던 것이 중동기업인 오라스콤의 지원으로 외장공사를 마무리하여 내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화려하게 장식할 기념비적 건축물로 등장하였다. 평양 중심으로 53만명의 가입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 평양의 경제사정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는 사례다. 평양 거리가 밝아졌고 환해졌다는 전언이 늘고 있고 42층 초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10만호에 달하는 현대식 주택이 건설되고 있는 걸 보면 돈바람이 불고 있는 건 맞는 말 같다. 두번째 바람은 중국바람-동풍이 불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1년 사이 중국을 세번이나 방문했지만 더욱 많은 중국 고위층 방문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 2009년 가을 원자바오 총리를 필두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지도급 고위 간부들이 평양을 방문하여 긴밀한 협조와 소통을 과시하고 있다. 북한의 세습구도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청하는 등 대(代)를 이어 양국·양당 간 우의를 계승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후진타오·김정일 정상회담 합의문이나 북·중 우호조약 50주년 기념행사를 보면 양국 간 교류협력은 역대 최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나선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황금평과 위화도 개발사업을 비롯해 북·중 무역의 상승 등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그만큼 평양에는 중국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셋째, 서방세계로부터 서풍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다. 북한은 2차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 특히 서방세계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를 3년 만에 재개하였다.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지원조건을 엄격히 규정하긴 했지만 세계식량기구(WFP)의 권고에 호응함으로써 향후 미국 등 국제사회의 동참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표적인 서방언론인 AP통신의 평양지국 건설을 합의했고 로이터통신의 24시간 영상물 송출에도 합의했다. 앞으로 서방의 다양한 정보가 유입되고, 북한 실정이 서방세계로 실시간 전달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인 코카콜라와 KFC가 조만간 평양에 1호점을 개설한다는 보도는 평양에 서풍도 강하게 몰아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네번째 바람은 평양발 피바람이다. 김정은 후계구도는 세습에 의한 권력이양이지만 아버지 김정일과 아들 김정은을 둘러싼 권력 암투의 서막이 피바람을 불러오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의 최측근인 오극렬이 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은 물론 정치국에도 진입하지 못했고, 후계구도의 핵심권력기구인 당중앙군사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 첫번째 이상 조짐이었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가시화되는 시점에 최고권력기구인 당조직 지도부 부부장들인 이제강·이용철의 급사, 박남기·주상성 등 김정일시대 주역들의 석연치 않은 퇴장, 그리고 류경 보위부 부부장의 총살설 등 수십명의 최고위 간부들이 숙청되는 피바람은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면서 수면 아래서 세차게 불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은 김일성의 주체사회, 동토의 왕국으로 무풍지대였다. 그러나 3대세습에 접어들면서 평양에는 갖가지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고 있다. 이들 바람은 저마다 발원지를 달리하면서 시시때때 변하고 있다. 돈바람과 동풍, 서풍처럼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할 순풍이 있는 반면, 피바람처럼 한반도 전체를 위기상황으로 몰고갈 수도 있는 폭풍도 있다. 여기에 남풍-한류도 평양에 서서히 불어올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어느 바람이 순풍이고, 어떤 바람이 재앙을 가져올지 선택은 북한주민의 몫이지만 바람은 결국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풍이 모든 바람을 제압할 수 있는 맞바람이 되도록 우리의 대북정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 [깔깔깔]

    ●마지막 소원 한순간의 실수로 살인자가 된 최불암. 사형집행을 앞두고 집행관이 물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 “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까?” “그래, 그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마지막 소원이니 제가 원하는 방법으로 죽여주십시오.” “네가 원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전기의자? 가스실? 교수형? 아니면 총살?” “아니요. 저는 늙어서 죽는 게 소원입니다.” ●참새 최불암 참새와 최주봉 참새가 전깃줄에 앉아 있다. 때마침 나타난 포수가 그 둘을 보았다. 포수는 둘 중 못생긴 참새를 쏴서 잡기로 했다. 그래서 최불암 참새를 총으로 쐈다. 그러자 최불암 참새가 하는 말. “좀 있으면 이주일이 올 텐데….”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8)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8)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시’ 일부) ●시인의 영원한 근원은 사랑과 자연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2). 열 살의 네루다는 사랑하는 새어머니를 위해, 뭔지도 모르면서 운율 있는 편지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열네 살, 그는 잡지 ‘달려라-날아라’에 시들을 게재하고, 이듬해 두 차례 백일장에서 수상한다. 열아홉, 네루다는 드디어 첫 시집 ‘황혼 일기’를, 이듬해에 출세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판했다. 이 모든 건 두 뮤즈, 자연과 여성 덕분이다.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다.”(‘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자연에 둘러싸여 보낸 유년기,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 사이를 전전하며 보헤미안처럼 살았던 그의 삶은, 시에서 통합되어 생생하고 뜨거운 형상이 된다. 요컨대 네루다는 자연과 여성을 통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샘솟는 사랑을 고스란히 다른 이들에게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모든 시는 일종의 연애편지다. 그 시를 통해 촉발받지 않을 수신자는 없었다. 20세기 칠레의 사랑은 이 한 명의 시인에 의해 불 붙어 활활 타올랐다. 1936년은 네루다의 생에 있어 일종의 변곡점이다. 자연에 대한 찬탄과 더불어 사랑, 외로움, 우울 등을 노래하던 네루다는 이 시기 ‘가슴 속의 스페인’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듬해 ‘반파시즘 세계작가 대회’를 조직하고, 잡지 ‘세계 시인들은 스페인 민중을 지지한다’를 발간하며, 반파시즘 예술가와 지성인 단체 ‘문화 수호를 위한 칠레 지식인 동맹’을 창설한다. 대체 1936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2년 전인 1934년으로 가야 한다. 이 해에 그는 두 명의 운명적 상대를 만난다. 스페인 시인 로르카, 그리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성 델리아. 첫 번째 부인과 결혼 생활 중이었지만, 네루다는 스무 살 연상에 지적이고 아름다운 델리아로부터 헤어날 수 없었다. 그의 지인들은 훗날 네루다가 공산당원이 된 것도 전투적 공산주의자였던 델리아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한다. 또 한 명의 운명적 인물 로르카와는 시, 정치, 그리고 시답잖은 농담을 함께 나누며 그야말로 ‘절친’이 된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즘 진영에 의해 로르카는 총살당하고 만다. “스페인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작가들을 알고 지냈는데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화파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공화국은 스페인에서 문화, 문학, 예술의 부활을 의미했지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여러 세기에 걸친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폭발적인 시 세대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이들의 육체적 파괴는 나에게 한 편의 드라마였지요. 내 삶의 한 부분이 통째로 마드리드에서 끝났어요.”(애덤 펜스타인, ‘파블로 네루다’) ●“대낮 광장에서 읽는 시가 돼야 한다” 네루다의 ‘첫 번째 프롤레타리아 시’는 이로 인해 탄생한다. 시는 사건 당일로부터 두 달 후 잡지에 실렸고, 훗날 스페인 내전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시집 ‘가슴속의 스페인’에 수록된다. 그해 가을, 네루다는 정치 집회에서도 이 시를 낭송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네루다는 군중이 밀집한 광장으로 나간다. 바야흐로 ‘광장의 시인’의 시간이 열린 것이다.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그는 짐작만 하던 독자들의 얼굴을 드디어 마주본다. 그의 이름이 불리자 모자를 벗는 청중들, 그의 시를 들으며 눈물 글썽이는 노동자, 그의 시를 함께 외우는 학생.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수천만 문맹자들이 존재했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불행이지만 시인의 입장에선 행운일 수 있었다. 네루다는 자기에게 독자를 창조할 임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의 연애편지는 이제 민중을 향해 쓰이기 시작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천만 개의 검은 눈동자 앞에서 시를 낭송하는 네루다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듣도 보도 못했지만 강하게 마음을 때리는 낯선 언어는 광산 노동자들을 네루다의 독자로 변모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내가 연애시를 쓰고 있을 때 말야, (…) 그때 그들은 나한테 말했어 : “당신 참 굉장하군요, 테오크리투스! (…)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보려고 광산의 갱 속으로 다녔지. 그리고 내가 나왔을 때, 내 손은 쓰레기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고, 나는 손을 들어 그걸 장군들한테 보여주며 말했지 : “나는 이 죄악의 일부가 아니오.” 그들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고, 인사도 하지 않았고, 나를 테오크리투스라고 부르는 것도 그만두었고, 결국 나를 모욕하기에 이르렀으며 전 경찰력으로 하여금 나를 체포하도록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주로 형이상학적 주제에 매달리는 걸 계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카라카스에 있는 미겔 오테로 실바한테 보내는 편지’ 일부) ●인간 소외와 고립을 낳는 관계가 그의 주적 네루다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으며, 스스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고, 체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었다, 무엇도 아닌 시를 통해. 그의 시는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고,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1945년 3월, 네루다는 광산 노동자들의 지역 타라파카-안트파가스타의 상원의원으로 당선된다. 이 또한 그의 큰 자랑거리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표를 받았고, 그들의 형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같은 해 7월에는 드디어 칠레 공산당에 가입한다. 물론 이때도 시 쓰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그는 9월부터 ‘마추픽추 산정’의 집필을 시작했고, 1947년에는 ‘지상의 거처’ 제3권을 출간했으며, 그 외에도 강연문이나 칼럼 등을 써댔다. 매일 일정 시간 글을 쓰고 읽는 것은 도망자 생활에서도 포기되지 않았다. 1948년 1월, 상원 연설에서 그가 강경하게 날린 정부 비판은 다음 달 ‘국가원수 모독죄’라는 죄명으로 발급된 체포영장으로 돌아왔다. 네루다의 망명 생활은 이때부터 3년에 걸쳐 지속된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숨겨주고, 먹을 것을 주고, 재워 주고, 차를 태워 주었다. 이 시기 그의 시는 점점 더 어두워졌고, 때론 분노 때문에 시로서 덜 익은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였기에 동시대 사람들은 울었다. 그들은 네루다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연애편지 쓰는 네루다와 혁명시인이자 공산당원인 네루다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소재가 무엇이건 그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해인 1971년, 초로의 노인이 되어서도 우리의 가능성은 사랑에 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사랑을 막는 사회, 서로 간 소외와 고립을 낳는 관계는 그의 주적(主敵)이다.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안에 있는 한, 사물과 인간 사이의 소외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라고 썼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혁명이란 다양한 관계를 개발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그런 면에서 네루다의 모든 시는 마르크스스의 혁명론과 근거리에 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그로 하여금 떨어진 밤(栗)을 기리며, 언덕 같고 이끼 같은 여자를 그리며 노래하게 했다. 그가 시에서 던진 빛을 통해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물은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었고, 그만큼 세계는 확장될 수 있었다.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도 시인의 사랑은 지속된다. 오히려 그의 사랑은 다른 존재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확장되었다. 심화되는 갈등 속에서 어린 학생과 노동자들은 총탄과 고문으로 죽어갔고, 전세계적으로 파시즘이 들끓었다. 그러니 이를 고발하지 않는 시를 쓰기란 불가능했다. 네루다는 소로코의 봉기자들, 죽은 의용병, 학살당한 사람들을 노래했다. 그의 공감, 그것이야말로 곧 사랑이고 혁명이고 또 시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 아픔에 견줄 만한 우주도 없다’(‘점’(點) 전문) 안명희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빈라덴 최후 순간 비무장”… “가족이 보는 앞에서 총살”

    오사마 빈라덴 사살이 정당했느냐는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당초 발표했던 사살 당시 상황과 전혀 다른 사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처음엔 빈라덴이 여성을 방패막이 삼아 총을 들고 저항했다고 설명했지만 하루 만에 그가 비무장 상태였다고 번복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군이 빈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기름에 불을 부은 형국이 됐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빈라덴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을 인간방패로 이용한 (치졸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불과 하루 뒤 그가 네이비실과 마주한 순간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빈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설명이 하루 만에 뒤집힌 이유에 대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美 빈라덴 가족 등 16명 체포” 미 정부가 오락가락한 정황을 되짚어 보면, 애초 작심하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면 언론의 폭로도 없었는데 스스로 하루 만에 설명을 뒤집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빈라덴에 대한 악감정과 사살을 정당화하려는 의욕이 앞서면서 미국 측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해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장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사살해야 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카니 대변인은 “가능하다면 그를 생포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상당한 정도의 저항이 있었고, 그곳에는 빈라덴 외에도 무장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빈라덴이 있던 방에는 무장한 다른 인물이 없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받자 “당시는 매 순간 언제라도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특수부대 요원들은 고도의 전문성에 입각해 현장 상황에 대처했다. 빈라덴은 저항했기 때문에 사살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빈라덴이 어떻게 저항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하면서 “저항할 때 무기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백악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애초부터 사살을 목표로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생포했을 경우 재판 등 신병처리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 수 있고, 빈라덴을 구출하기 위한 테러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차라리 사살하는 게 속 편하다고 계산했을 법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빈라덴이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관계를 폭로할 것을 우려, 사살했다는 설도 나돈다. 이와 관련,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우리는 빈라덴이 생포 작전에서 저항할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빈라덴이 사살될 공산이 큰 것으로 가정했다.”고 말해 사살 쪽에 무게를 두고 작전을 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 해명과는 또 다른 증언이 나와 파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는 4일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군이 빈라덴을 생포한 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일 미군의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빈라덴 딸(12)의 진술에 따르면 미군은 1층에 있던 빈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 앞에서 사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무장하지 않은 상대방을 사살한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미군이 작전을 종료한 뒤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시신 네 구를 수습하고 여성 2명과 2∼12세 어린이 6명을 연행했다고 알아라비야는 보도했다. 현지 일부 매체는 파키스탄 당국이 모두 16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관리는 이들 대부분이 빈라덴의 가족으로 현재 이슬라마바드 인근 라발핀디의 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미군은 이미 빈 라덴과 아들의 시신을 헬기에 싣고 이륙한 뒤였다고 파키스탄 관리들은 전했다. 또 다른 한 관리는 ”은신처에는 벙커나 도피용 터널이 전혀 없었다.“면서 ”세계 최고의 수배 인물이 이런 곳에 살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다.”라고 말했다. ●“은신처에 벙커·터널 없어” 미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당장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미군 작전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고 세실리아 말스트룀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도 빈라덴을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의 국제법 전문가인 게르트 얀 크놉스도 2001년 체포돼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섰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빈라덴 역시 법의 심판에 맡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켄트대학의 닉 그리프 교수는 나치 전범들도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며 미군의 작전은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은 초법적인 사살”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서울 강국진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취사병/이춘규 논설위원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 ‘두 친구’에는 취사병(炊事兵)이 나온다. 작품은 모파상 자신이 1870년 20세의 나이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썼다. “총살된 (낚시광)두 사람의 시체가 강물 속에 가라앉자 발사명령을 내렸던 장교는 어망 속 물고기를 보고 미소지으며 취사병을 부른다. 살아 있을 때 튀겨야 맛이 좋을 거라며 태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운다.”라며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인간의 위선을 그렸다. 취사병. 병사용 음식 조리를 담당하는 사병이다. 고대 이후 전쟁이 있는 곳에는 취사병이 있었다. 역할에 비해 평가는 인색한 편이었다. 사병은 물론 부사관·장교들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병과지만 애환이 적지 않다. 일반 병사들이 쉬는 휴일에도 소임인 밥을 짓느라 쉴 수가 없다. 계절에 상관없이 다른 병사들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한다. 연합·독립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격 등 기초군사훈련도 받아야 한다. 박성진은 경험담을 토대로 ‘취사병 X파일’이란 책을 출간해 취사병의 애환을 소개했다. 혹한기 훈련은 모든 병사들에게 쉽지 않다. 혹한 속에 치러야 하는 전투 대비 훈련으로 준비과정부터 훈련, 취침 등 모두가 힘들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밥을 짓는 취사병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성진은 취사병 생활을 밝고 긍정적으로 그렸다. 끈끈한 우정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 등 추억과 향수로 채색했다. 취사병의 처지와 인식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었다. 1960~70년대 배고팠던 시절 취사병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병들에게는 최고의 보직이었다. 3년 동안이나마 마음껏 배 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어떤 부대는 유난히 굶주림에 민감한 사병을 취사병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절대빈곤이 사라지고 의식주 문제가 뒷순위로 밀리자 한동안 취사병은 기피 보직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요리사 지망생이 늘면서 군복무 중 특기를 살리려는 취사병이 인기 보직으로 떠올랐다. 육군이 그제 병영식탁에 올릴 표준요리 조리법 책자를 펴냈다. 신출내기 취사병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단다. 고된 훈련 후 피로에 입맛이 텁텁해진 병사들의 식욕을 돋워주는 소스의 비결 등이 담겨 있다. 오이지·숙주·장아찌류 등 11가지 식재료가 식단에서 사라진 대신 새로 급식 중인 굴·소갈비·낙지 등 15가지 재료를 소개해 ‘병영 식단’의 변화상도 알 수 있게 했다. 취사병의 애환이 좀 더 줄어들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자유’라는 말은 남한에서 처음 들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김혜숙(49·가명)씨는 “행동과 생각까지 어느 하나 자유가 없었던 북한의 실상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는 겉보기에 평범한 마을같지만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뚫린 곳이라고는 하늘뿐이었다. 그는 “보위부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배고픔과 주민 간의 불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인정한 최장기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인 김씨가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신고센터를 찾아 북한 당국과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상대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침해 실상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개인 자격으로 신고센터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관리소 들어가서 처음 본 게 공개총살 → 정치범 수용소는 어떤 곳인가. -내가 있던 곳은 평안남도 북창군에 있는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였다. 평양에서 180리쯤 들어간 산골이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은 남한에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14호 관리소, 18호 관리소 이런 식으로 부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민이라고 한다. 18호 관리소에만 2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 중에 보위부 사람, 병사들, 관리원, 당 사람들 빼고 나면 1만 7000여명 정도가 이주민이었다. →수용소 하면 감옥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그런가. -관리소는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18호 관리소는 끝에서 끝까지 100리 정도 된다. 마을 주변을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뚫린 곳은 하늘뿐이다. →13살 때부터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1975년 우리 5남매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전부 수용소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안 돌아오길래 집 나간 줄만 알았지 남조선으로 갔다는 건 알지 못했다. →28년 만에 수용소를 나오게 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가. -13살 때 관리소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도 다 죽고 없으니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김씨의 아버지는 관리소로 온 직후 보위부에 끌려 갔고, 어머니는 농장일을 하다 1979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0년 넘게 토끼, 닭, 돼지를 길러서 당 일꾼들에게 바치고 ‘모범일꾼’ 평가를 받아 2002년 2월 16일 해제받았다. →수용소에 처음 가서 받은 인상은. -거기서 처음 본 게 공개 총살이었다. 사람 매달아 놓고 총으로 쏴 죽인 뒤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실어 갔다. 개 죽은 걸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가슴이 계속 할랑대고 공포감에 질려 견디기가 어려웠다. →수용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굶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았다. 배급이란 게 강냉이만 주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일곱 식구가 한달에 7.5~8㎏을 받았으니…. 강냉이도 다 젖은 걸 줘 놔서 말려놓으면 절반으로 줄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파랗다는 건 모두 뜯어먹고, 한달에 딱 하루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입산증을 받아 산에 가서 도토리나무 잎을 뜯어다 먹곤 했다.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주민끼리 감시 →열악한 상황에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는가. -관리소 주위 철조망에는 전기가 흐르는데 멀리서도 ‘징~’ 하고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전원들이 순회하면서 철조망 주위에서 발자국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바로 색출해서 총살한다. 28년을 살면서 도주하는 사람은 못 봤다.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나. -주민들끼리 서로 경계하는 것이다. 3세대를 한 조로 묶어 서로 감시하게 했는데, 서로 말하는 걸 듣고 쪽지에 적어서 한달에 한번씩 담당 지도원 방에 넣어 줘야 했다. ‘어떤 동무가 몇날 며칠에 무슨 말을 했다.’고 아주 자세하게 적어야 한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생활해야 했다. →노동생활은 어땠는가. -학교 졸업하면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무조건 탄광일을 해야 했다. 남자들은 돌 깨고, 여자들은 석탄 캐고…, 마흔 살만 넘으면 진폐증으로 쓰러져들 나갔다. 나도 열 일곱살 때부터 탄광에서 일했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인데, 말이 8시간이지 막장에서 나와 또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막장에 들여놓고 하다 보면 16시간이 훌쩍 갔다. →그래도 수용소 안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뒀는데…. -결혼이라고 자유는 아니다. 남자는 30살, 여자는 28살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고, 그것도 일을 잘해야지만 승인을 해줬다. 초급당, 보위부, 관리과장, 행정부서장 이렇게 단계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고, ‘누구누구는 일 잘했으니 결혼 승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공표한다(김씨의 남편은 2001년 4월 탄광에서 얼어 죽었고, 2명의 자녀는 수용소를 나온 뒤 2003년 수해 때 사망했다). →인권과 자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근 30년 동안 ‘불복종하면 죽인다.’는 말만 듣고 살다가 자유란 말을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자유란 내가 제주도 가고 싶으면 가고, 강릉 가고 싶으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글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연극리뷰] ‘아미시 프로젝트’

    [연극리뷰] ‘아미시 프로젝트’

    당신의 가족이 이름 모를 사이코패스로부터 억울한 총살을 당했다 치자. 당신이라면 그 사이코패스를 용서할 수 있을까. 어렵다. 내게 작은 상처를 준 사람도 용서하기 힘든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피붙이 가족을 잃게 한 사이코패스를 진정으로 용서하기란…. 그런데 새로운 문명을 완강히 거부한 채 18세기의 검은 모자와 검은 양복을 입고 마차를 이용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아미시(Amish·메노파 교도로서 계율이 엄하고 지금도 18세기 그대로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죽인 사이코패스를 진정으로 용서한다. 2011 신촌연극제 ‘여기가 진짜 대학로’ 개막작인 연극 ‘아미시 프로젝트’는 2006년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아미시 총기 사건과 살해범을 용서함으로써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아미시 이야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렸다. ‘아미시 총기 사건’은 2006년 10월 2일 아미시 마을의 전교생 26명인 초등학교에 정신 이상자가 침입, 총으로 학생들을 쏘아 5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다. 범인은 현장에서 자살했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더는 안전한 곳이 없다.’라는 자괴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아미시들의 사건 이후 행동이다. 이들은 아이를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살인자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그의 가족을 위로했다. 작품에는 평범한 우유배달원에서 살인범으로 변한 에디, 희생자인 아미시 소녀 안나와 벨다, 살인범의 미망인 캐롤, 아미시가 아닌 일반 주민(빌 노스, 세리, 아메리카) 등 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허구의 인물, 픽션(Fiction)이다. 하지만 작품 내용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다. 원작자 제시카 디키는 “작품을 만들면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떻게 두어야 할지 상당한 고민을 하였고, 결국 이같이 나누게 됐다.”고 밝혔다. 연극을 보는 내내 관객은 두 명의 순수한 아미시 소녀 안나와 벨다를 만나게 된다. 범인 에디가 ‘향기 나는 꽃’으로 정의한 두명의 소녀는 관객으로 하여금 순수와 믿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준다. 에디의 부인 캐롤이 쏟아내는 숱한 감정들도 연극을 보는 내내 관객을 긴장시킨다. 4월 10일까지 서울 신촌 더스테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2만~3만원. (02)312-9940.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무엇이 부동산 개발정보인가/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무엇이 부동산 개발정보인가/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이른바 ‘부적절한 재테크’로 구설에 시달리던 4성 장군이 결국 사표를 던졌다.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이 8년 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근처에 부지를 매입해 6층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일대의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건물값이 3.8배나 뛰었다고 한다. 이게 정권 내부에서 눈총을 받은 모양이다. 과연 그렇다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피격 등으로 어수선한 군 분위기를 쇄신하려고 사람만 바꿀 일이 아니다. 군사기밀에 속하던 군 시설물 고도제한 관련 정보유출 혐의로 수사를 할 사안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황 총장이 국방부 대변인 시절에 문제의 건물을 매입했다는 2002년에 필자는 국방부 출입기자였다. 매일 아침 황 대변인과 인사를 나누던 사이다. 물론 기자라는 속성상 그리 먼 관계도, 그렇다고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다. 초점은 용산 일대의 부동산값이 앞으로 크게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국방부 공무원은 물론 출입기자들도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근처의 미군 기지가 이전하고 국방부가 새 청사와 직원용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니 “우리 기자들도 함께 투자 좀 합시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한쪽에서 “그럴 여윳돈이 있어야 투자를 하지.”라는 쇳소리도 들렸다. 고도제한 완화라는 것도 그렇다. 서울시에서 고도제한 관련 업무는 고집과 관록이 엿보이는 공무원이 수십년째 담당하고 있다. 고도제한 완화는 장기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필자가 “김포공항 주변의 고도제한 완화는 주민들 숙원인데, 좀 풉시다.”라고 말을 건넸더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라는 외마디가 돌아왔다. 아뿔싸, 이것도 뒤집어 보면 고도제한 관련 정보를 유출한 것인가. 부동산 담당 기자라면 누구나 김포신도시, 일산 식사지구 일대 아파트값이 장기적으로 오른다는 사실을 안다. 합정동과 당산동, 자양동 등이 투자유망 지역이라는 말을 주변에 귀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처음 들었다면 혹할지 몰라도 그 동네 부동산중개업소에 가서 떠들면 사람들이 웃는다. 필자가 새삼 고백을 하자면, 이게 진짜 부동산 개발정보일 것이다. 서울시가 둔촌동 보훈병원 앞에 지하철 9호선 역사를 짓기로 결정한 것에는 당시 이해식 강동구청장의 하소연을 들은 필자가 이 계획의 책임자에게 부탁한 점이 반영됐다고 감히 생각한다. 서울시에선 지하철 역사의 추가 지정을 놓고 후보지들을 검토하고 있었고 마침 정부도 보훈병원을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 있었으니, 이때가 투자의 적기였을 것이다. 사실 이것도 “오를 대로 올랐다.”는 핀잔만 들었다. 서울시에 출입하던 모 신문사 기자는 신혼집을 고르며 도심의 전세아파트로 갈지, 번동의 옛 드림랜드 앞에 값싼 아파트를 하나 살지 고민을 했다. 그 기자는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번동의 낡은 아파트를 샀는데, 불과 몇 달 후 공원부지 매입 계획이 갑자기 확정되면서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고 좋아했다. 운 좋은 그 젊은 기자가 훗날 “당시 출입기자로서 개발정보를 빼내 투기를 했다.”고 의심을 받는 게 마땅한가. 에르빈 로멜(1891~1944)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침공과 아프리카 사막전, 노르망디 방어작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나치 독일군의 육군 원수였다. 그는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광적으로 변한 아돌프 히틀러를 불신했지만 일부 장교들의 히틀러 암살 계획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틀러의 의심을 샀고 자동차 사고를 가장한 처형을 당하고 만다. 역전의 용사는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전사하거나 작전 실패에 책임이 있다면 스스로 총살형을 각오하고 있다. 그럼에도 거친 사막에서 전차대를 귀신처럼 지휘하며 적을 곤경에 빠뜨렸던 백전노장에게 한낱 교통사고가 뭔가. 모두 한심한 일이다. kkwoon@seoul.co.kr
  • “시라가와 사망시간 맞춰 윤봉길의사 형집행 한 듯”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이후, 의거 대상이었던 상하이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가와의 영전에 바치기 위해 순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일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위치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해 윤 의사 동상에 참배한 뒤 이같이 말하면서 그 근거로 ▲윤 의사의 사망 장소 ▲총살 시간대 ▲시라가와에 대한 일본의 신뢰 등을 꼽았다. 박 의장은 “일제는 윤 의사를 상하이 군법회의에 사형을 언도한 뒤 굳이 일본 9사단이 위치한 가나자와로 이송, 하루만에 총살형에 처했는데 이는 윤 의사의 폭탄에 의해 숨진 시라가와가 9사단장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의사의 총살 시간은 오전 7시 27분으로 시라가와 사망 시간(상하이 시간 오전 6시 25분) 직후였다.”면서 “상하이와 일본 본토와의 1시간의 시간차를 염두에 두면 일제가 시라가와 사망시간과 윤 의사 총살 시간을 일부러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시라가와가 일제 강점기 시절 상하이를 완전 진압했고 일왕이 아끼던 명장이었음을 감안하면 윤 의사를 가나자와까지 강제 안치해 시라가와의 영전에 윤 의사를 바치겠다는 목적이 아니었겠느냐.”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추석특집 김영임의 굿 스페셜(KBS1 오후 9시40분) 17년 동안 효(孝)를 주제로 공연을 펼치며 70만 관객 몰이에 성공한 경기민요 명창 김영임.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에 선사하는 국악인 김영임의 풍성한 선물. 40년 동안 오직 국악 한길만 걸어온 김영임과 함께하는 감동의 시간이 80분 동안 펼쳐진다. 온 가족이 함께 희로애락을 느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멕시코에서 신이라 추앙받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로 인해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일들, 그리고 그의 치유를 통해 기적같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 신이라고 불리는이 남자는 누구일까?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중국의 한 병원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애쓰는 일본군들. 그들이 찾는 물건의 정체는. ●이웃집 웬수(SBS 오후 8시50분) 영실은 창밖만 내다보고 있고, 우진은 그녀에게 돈을 건네며 잘 먹었다 하고는 자리를 뜬다. 자리를 닦던 영실은 갑자기 울컥하고, 마침 들어오던 하영은 영실에게 선물이라며 쇼핑백을 건넨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쇼핑백 속 상자를 열어보던 영실은 그속에 칵테일 드레스가 들어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국영화특선 유령(EBS 오후 11시) 해군 엘리트 장교 이찬석은 자신의 상관이자 잠수함 장보고의 함장인 이태준을 살해한다. 군사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총살형을 당한다. 상처의 고통으로 눈을 뜬 찬석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그곳을 탈출하려던 찬석은 물 위로 경외롭게 부상해 있는 핵잠수함 한 척을 발견한다. ●OBS초대석(OBS 오전 6시55분) 제45회 전국기능경기대회 홍석운 운영위원장을 초대하여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대해 자세히 들어본다. 45회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이전 대회와 다른 점부터 수상내역, 그리고 기타 주목할 만한 행사 및 내용에 대해 자세히 전해준다. 우리의 기술력과 국제기능올림픽에서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에 대해 들어본다. ●휴먼다큐 사랑 ‘내게 남은 5%’(MBC 오후 9시45분) 야맹증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망막색소변성증(RP)이라는 희귀병으로 시력상실은 물론, 치료방법조차 없다는 기막힌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개그맨 이동우씨는 대부분의 시력을 잃어 정상인의 5% 수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전하는 아주 특별한 희망 메시지를 들어본다.
  • 美 66세 여성 집요한 노력 끝에 한국전 참전 오빠 유해 60년만에 찾아

    美 66세 여성 집요한 노력 끝에 한국전 참전 오빠 유해 60년만에 찾아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빠의 유해를 60년 만에 찾아낸 미국 여성이 있어 화제다. 미국 일간 새크라멘토 비 인터넷판은 13일(현지시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상병 찰스 휘틀러의 유해가 유가족의 집요한 노력 끝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60년 만에 유해를 찾아낸 주인공은 휘틀러 상병의 여동생 메리 미첼(66)이다. 켄터키주 클로버포트시 집으로 오빠의 사망통지서가 날아든 것은 그가 6세이던 1950년 11월. 그날 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이후 어머니와 9남매의 관심에서 오빠는 점점 잊혀져 갔다. 미첼이 오빠의 사망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2000년. 그는 “세상사람들에게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리는 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마치 무슨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오빠의 유해를 찾는 데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2004년 주위 권유로 자신과 가족들의 DNA 샘플을 당국에 제출했고, 결국 오빠의 유해를 찾게 됐다. 휘틀러 상병은 평안북도 운산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된 뒤 한 농부의 집에 감금돼 있다가 북한군에게 총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포로들의 시신을 묻었던 농부가 2004년 미군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사령부(JPAC)가 이끄는 미·북 공동발굴팀에 그 사실을 보고하면서 휘틀러 상병의 행방이 밝혀질 수 있었다. 휘틀러 상병은 지난 3일 한국전 참전용사 등 수백 명이 도열한 가운데 부모가 묻힌 고향의 묘지에 안장됐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자이언트’ 송경철 건설귀신 관심집중…“죽어? 안 죽어?”

    ‘자이언트’ 송경철 건설귀신 관심집중…“죽어? 안 죽어?”

    SBS 월화극 ‘자이언트’ 최근 방송분에 등장한 연기자 송경철에 드라마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송경철 이전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했던 손병호와 박노식이 극중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 시청자들이 송경철의 퇴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경철은 극중 삼청교육대 471번, 건설의 달인 남영출 역으로 출연했다. 강모(이범수)가 삼청교육대에서 근로봉사대로 옮겨져 도로를 뚫는 공사에 투입됐으나 시간에 쫓기게 된 상황서 조언해주는 인물로 나왔다. 건설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 ‘건설귀신’으로 불린다. 이번 송경철의 등장에 시청자들은 주인공 강모가 건설업계서 성공이 예고된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이전 조연들이 죽음으로 퇴장한 것과 달리 송경철은 살아남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한편 송경철 이전에 등장했던 조연 연기자들 중 손병호는 대륙건설 홍기표 회장을 맡아 열연했으나 황정식(김정현)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박노식의 경우엔 삼청교육대 534번 박충권 역으로 출연, 심야에 개별행동하다 총살당하는 인물로 나왔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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