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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혁명가라면 인간을 사랑해야 부친은 존엄성·용감함 직접 보여줘”

    “진정한 혁명가라면 인간을 사랑해야 부친은 존엄성·용감함 직접 보여줘”

    쫓겨다니던 혁명가 체 게바라는 변장을 하고 가족을 찾았다. 당시 다섯 살이던 딸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52)에게도 ‘아버지 친구’라고 둘러댔다. 평소 붉은 와인에 물을 섞어 마시던 체 게바라는 정체가 탄로날까 봐 와인만 마셨고 딸에게도 그냥 ‘꼬마’라고만 불렀다. 그러자 꼬마 알레이다가 쪼르르 달려가 와인잔에 물을 부었다. “아저씨, 우리 아빠는 와인에 물을 섞어 마셔요.”라며. 딸과 체 게바라는 그렇게 교감했다. 알레이다는 “엄마, 비밀인데 저 아저씨가 날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수줍게 말했다고도 했다. 체 게바라는 얼마 후인 1967년,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체포돼 총살당했다. ●“버려졌다는 느낌 받은적 없어” 중년이 된 알레이라는 “아빠가 변장하고 찾아온 그 밤이 평생 나를 지켜줬다.”면서 “짧았지만 사랑을 듬뿍 느꼈기 때문에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웃었다. 알레이다가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모를 털어놨다. 한·쿠바교류협회(AICC)와 쿠바국제우호협회(ICAP)의 초청으로 방한한 알레이다는 30일 서울대 가온홀에서 ‘나의 아버지 체 게바라’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아버지는 진정한 혁명가라면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치, 박치이면서도 자장가를 불러주던 체 게바라의 자상한 모습과 그가 탱고를 추던 기억, 썰렁한 유머감각 등을 소개했다. 알레이다는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본인의 삶으로 직접 증명하셨다.”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용감함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처럼 소아과 의사가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쿠바에서는 의사가 봉사직인데 어렸을 때부터 국민의 애정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은혜를 갚는 방법으로 이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자장가·탱고 추던 기억 등 소개 한편 체 게바라 사후 45주년 기념으로 제작돼 지난 2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체 게바라: 뉴맨’에는 볼리비아의 군사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새로운 문서 자료는 물론 체 게바라의 생전 육성과 가족, 친구들의 증언이 녹아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이·팔 휴전 불발… 힐러리, 긴급 중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정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 외교 활동에 나섰다. 반 총장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나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 공격을 즉시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정전 협상 중재를 위해 급파된 클린턴 장관도 라말라에서 아바스 수반과 정전 협상의 중재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을 차례로 만나 미국은 이·팔 간 교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 교전이 8일째로 접어든 21일 사상자만 속출하고 있다. 이날 낮 12시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국방부 청사 인근에서 버스 한 대가 굉음과 함께 폭발해 17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AP·AFP통신이 보도했다. 경찰은 “폭발의 원인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가자지구의 정부청사 등에 무차별 공습을 가해 이날 팔레스타인인 9명이 숨졌다고 AFP통신이 밝혔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46명으로 늘었다. 앞서 20일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에 협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주민 6명에 대한 공개 총살이 자행됐다. 가자지구 중심부 가자시티 라드완 지역에서 얼굴에 복면을 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부역자로 알려진 주민 6명을 한 명씩 총살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하마스 산하 무장조직 이제딘 알카삼 여단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하마스 대원과 로켓 발사 장소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게 하마스 측 주장이다. 이날 한때 정전 임박 소식이 흘러 나왔으나 이스라엘이 일부 조건에 반대하면서 합의는 불발됐다. 하마스 측은 ‘공은 이스라엘에 넘어갔다.’는 입장이다. 이집트 카이로에 파견돼 있는 하마스 협상팀은 “21일까지 휴전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정부가 휴전 제안에 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사마 함단 하마스 대변인은 “(중재자인) 이집트는 교전 종식을 위해 미국의 확실한 지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 레게브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은 “외교적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타임아웃’(일시적 휴전)엔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아래 살지 않는 새로운 현실을 원한다.”고 밝혔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비공개 협상에서 하마스의 휴전 의지를 판단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로켓포 발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단체 하마스에 군사적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란 의회의 알리 라리자니 의장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팔레스타인 국민들과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하마스에 경제적·군사적 지원했다”고 밝혔다. 한편 90%의 명중률을 자랑하며 하마스발 로켓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 아이언돔에 미국이 뒷돈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2010년 아이언돔 개발 비용으로 2억 500만 달러(약 2200억원)를 지원했으며 올해도 이미 7000만 달러를 대줬다. 추가 지원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아이언돔 제조업체 ‘라파엘어드밴스드디펜스시스템’은 미사일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밤낮 없이 공장을 ‘풀가동’ 중이다. 지난 14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아이언돔 5개 포대에서 발사된 미사일 수는 360발에 이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비우티풀Biutiful>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뷰티풀Beautiful을 스페인식으로 받아 적은 것이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발달해 온 스페인 사람들의 직관성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역사를 관통하며 무엇이든 스페인식으로 소화해 버리는 그들의 당당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800년 이슬람이 남긴 것 Sevilla 세비야 Cordoba코르도바 Granada그라나다 유럽에서 몇년을 살 수 있다면 그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이다. 언젠가 긴 여행의 중반에서 스페인에 눌러 앉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시 스페인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한달 반 정도였지만 마드리드 이남의 도시들은 가보지도 못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그대로 머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의 남쪽이었다. 세비야Sevilla,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Granada. 이슬람 세력이 지배했던 800년 동안 가장 번성했던 도시들, 스페인 친구들도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했던 그 도시들이었다.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이 태양인지 파란 하늘인지 알 수 없었다. 세비야의 강에 뜬 유람선도 오후의 난반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도시의 유람선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지만 세비야는 내륙으로 무려 87km나 들어와 있는 과달키비르강江의 상류 도시다. 그래도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강이 깊고 넓었기 때문에 도시는 중요한 무역항으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강변 산책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황금탑Torre del Oro도 13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작한 기점도 이곳이었고, 콜럼부스가 머물면서 항해를 준비했던 곳도 세비야였다. 그렇게 중요한 도시를 이슬람에게서 되찾은 스페인은 그 세를 과시하고 싶었다. 1248년 모든 부와 권력을 집중해서 지은 세비야 대성당은 지금도 세계에서 3번째로 크고,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가장 크다. 성당에 안치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무덤은 그 어떤 왕의 무덤보다 화려하다.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의 네 모서리를 메고 있는 모습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생 아버지의 업적을 정리하고 연구했다는 아들 페르난도 콜럼부스의 무덤도 성당 안에 있다. 고딕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을 헤아려가며 성당을 둘러보느라 지친 사람들은 오렌지 나무가 도열한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모스크의 연못이 있던 곳이었다. 아직 여력이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이슬람 사원의 탑을 개축한 히랄다 종탑Torre de la Giralda에 올라갔다. 땀 흘려 쟁취한 98m 높이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은 그만큼 달콤했다. 세비야 대성당에 비하면 코르도바의 대성당Cordoba Mezquita은 모스크의 원형에 더 가깝다.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은 이슬람 제국은 6세기에 지어진 성 빈센트 바실리카를 허물고 그 자리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 ‘메스키다’를 세웠다. 4,000여 개의 기둥이 시야를 가리고 천장도 낮지만 사실은 세비야 대성당보다 면적이 넓다. 한번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성당으로 용도가 바뀐 이후에도 큰 훼손 없이 사용되다가 카를로스 5세에 이르러 200개의 기둥을 뽑아내고 돔을 설치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정교한 아랍 문양에 푹 빠져 있다가 뒤로 돌아서면 화려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이 펼쳐진다.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거점은 그라나다였다. 알바이신의 언덕 위에 거대한 아랍인 주거지역이 먼저 형성되었고 1238년에 왕과 귀족들의 거주지로 아람브라Alhambra궁전이 만들어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한 아람브라궁전은 아랍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데 이름만 듣고 우아한 하나의 건물을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맛보게 된다. 평균 관람 시간만 무려 3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은 요새이자 수천명의 귀족들이 살았던 주거지였다. 아람브라는 사실 건축학적인 가치보다는 치수의 지혜, 높은 지대까지 물을 끌어 사용했던 아랍인들의 발달된 관개 기술이 돋보이는 장소다. 지금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궁전 곳곳의 분수와 샘, 연못은 이슬람세력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람브라를 찾는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나스리드 궁전Nasrid Palaces은 재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일행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군주의 별장이자 정원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 때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꽃향기가 전달되는 높이까지 계산해서 디자인했다는 그 정원에서 아름다운 알바이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언젠가 스페인에 살게 된다면 바로 저 마을을 선택하게 될 것만 같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람브라 궁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관개기술의 발달이다. 고지대에 세워진 요새임에도 항상 물이 풍부했다 2 <아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던 코르도바의 거리 음악가 3 투우와 플라멩고로 유명한 세비야의 투우장 돈키호테로 살어리랏다 Toledo톨레도 Consuegra 꼰수에그라 성서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답은 우기기 나름이다. <이솝우화>, <그림 형제 동화집>이 단골로 언급되고 <안네의 일기>나 <영웅문>도 유력한 후보인데다가 지인 중 한 명은 쥘 베른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페인에 오니 그 ‘정답’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년가 지은 <돈키호테Don Quijote>로 모아지고 있었다(원제는 <재기 발랄한 향사鄕士 라만차의 돈키호테>다). 그러면 또 하나의 질문. <성서>와 <돈키호테>의 공통점은? 끝까지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캐릭터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탐독하던 ‘키호테’라는 사람이 급기야 자신을 기사라고 착각하며 볼품없는 말 로시난데, 시종 산초 판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그의 착각 속에서 벌어지는 일.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슈렉>처럼 반전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유쾌한 풍자소설이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사실 52장의 전편 중에서 초반에 불과하고 속편까지 출판됐다. 저자 세르반테스의 삶은 키호테의 ‘착각일지라도 행복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부상을 입은 그는 귀국길에 해적에게 잡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드 근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605년 소설 <돈키호테>를 발표했다. 작품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인세 계약을 하지 않아 돈을 벌지 못했다. 후에 그는 74장 분량의 돈키호테 속편을 발표했으나 이듬해인 1616년에 기구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은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인데 우연히도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같은 날 사망했다. 소설 <돈키호테>의 주 무대는 지금의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이다. 도시를 이동하다 보니 우연히도 ‘루타 데 돈키호테’, 즉 ‘돈키호테의 길’이라는 테마여행코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푸른 기와를 이고 있는 하얀 회벽집들이 인상적인 작은 마을 푸에르토 라피세Puetro Lapice에는 돈키호테가 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던 여관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가 있다. 벽에는 ‘돈키호테가 이곳에서 묵고 나서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만족스럽게 걸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붙어 있었다. 돈키호테는 이곳에서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동물의 내장을 넣은 달걀부침’를 시켜 먹었다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라만차 와인을 즐긴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바닥을 깊게 판 넓은 저장고와 대형 와인통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묵어 가는 손님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한 팬심으로 기념품을 구입하는 손님들로 마을 전체의 생업은 세르반테스에게 단단히 빚을 지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해서 싸움을 벌였던 그 풍차들은 콘수에그라Consuegra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낡은 풍차일 뿐이지만 주변의 광활한 평원과 어우러져 스페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풍경이다. 실제로 돈키호테 소설의 배경이 된 풍차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지만 풍차의 모양은 거기서 거기인 반면, 풍경은 콘수에그라가 최고인지라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훼손된 상태로 오래 방치된 듯한 이슬람의 콘수에그라 성은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더 멋진 그림을 기대해도 좋다. 돈키호테가 로시난데를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그 ‘카스티야라만차’주의 주도는 톨레도다. 우리로 말하면 경주쯤 될까, 8~15세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다. 현대식 건물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는 아랍 군주의 거주지였던 알카사르를 정점으로 고깔 모양으로 층층이 퍼져 있고, 타호 강Rio Tajo이 그 주변을 휘감아 돌면서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었다. 도시로 들어가기 전 멈춰선 전망 포인트에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풍경에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고딕성당이라고 불리는 톨레도 대성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종교를 강요하거나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톨레도는 ‘스페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유적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성당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귀중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은 물론 고야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으며 화려한 제단 장식이나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성체현시대는 이미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스페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갱신되는 흥분이 모험에 나선 돈키호테의 마음이었을까. 끝없는 메세타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의 대고원를 원 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이 더 깊어지기 전에 라만차를 떠나야 했다.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도시 톨레도 ▶travie info 벤타 델 키호테 세르반테스가 이용했던 여관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됐다.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했고, 직접 만드는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2층은 객실이었지만 지금은 투숙객을 받지 않는다. 주소 EI Molino, 4 Puetro Lapice(Autovia de Andalucia) 문의 926-57-6110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1시(바), 오후 1시∼오후 5시, 오후 8시∼밤 12시(레스토랑) 찾아가기 마드리드 남부 버스 정류장 Estacion de Autobus Sur 역(지하철 Mendez Alvaro 역)에서 Jaen 방면으로 가는 버스 이용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Puetro Lapice에서 하차. 버스 시간 문의 91-530-4800 1, 5 돈키호테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관 ‘벤다 델 키호테’의 오래된 나무 대문과 와인저장고가 있는 바bar 2 푸에르토 라피세 마을에서는 다양한 돈키호테 기념품을 구입 할 수 있다 3 톨레도 대성당의 성모상 4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소 모양의 대형 간판들을 종종 스쳐 지나간다 6 돈키호테가 괴물로 착각하고 결투를 벌였던 꼰수에그라의 풍차들 고야의 빛과 그림자 Madrid마드리드 Zaragoza 사라고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 마치 단거리 경주에 나서듯 신발끈을 동여매고 속사포로 설명을 난사하는 가이드 수피아씨를 따라다녀야 했다. 그곳의 수많은 보물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년의 <개The dog>였다. 고야의 다른 그림과는 다른 화풍으로 의혹을 사기도 했던 이 그림에는 모래 언덕 위로 목만 빼꼼이 내놓은 휑한 눈의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마치 노년의 고야 그 자신처럼 말이다. 최후의 고전주의 작가이자 최초의 현대작가로 불리우는 그의 예술적 전이는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민군을 총살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1808년 5월3일The Third of May 1808>에서 시작된다. 초상화를 잘 그려서 왕실 화가로 이름을 날린 고야는 이 작품을 계기로 민중 화가로 추앙받게 된다. 하지만 노년에 고야의 삶은 암울했다. 마흔 중반에 청각을 상실했으며 노후에 마드리드 근처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고야가 자신의 집에 그린 벽화들은 마치 귀신을 본 듯 공포에 질린 표정의 검은 군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블랙 페인팅’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다. 그중에서도 <자기 아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 새턴Saturn devouring his Child>은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후기 작품 중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고야의 고향이 바로 사라고사다. 사라고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돌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태풍이라도 왔나 싶을 만큼 퍼붓던 비는 10분 후 거짓말처럼 개이더니 하늘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야의 삶처럼 빛과 어둠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그런 날씨였다. 사라고사에 있는 고야의 생가, 사라고사 뮤지엄, 이베르카 카몬 아즈나르 뮤지엄Ibercaja Camon Aznar Museum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바로크 스타일의 필라르 대성당Basilica del Pilar에 있는 레지나 마티럼Regina Martyrum돔의 천장화 역시 고야의 작품이다. 이 성당에는 기도를 이루어 준다는 옥으로 된 성모상이 있는데, 그 앞에서 깊은 슬픔에 잠긴 한 노부부를 만났다. 그 처연한 표정은 사연 모르는 이방인들까지 숙연하게 만들 만큼 날카로운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 감정이 지금 내 방에 걸려 있는 고야의 <개>를 볼 때마다 오버랩되곤 한다. 사라고사의 랜드마크이자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인 필라르 대성당. 고야가 그린 천장화를 볼 수 있다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산 Montserrat 몬세라트 Barcelona 바르셀로나 누군가 볼 때마다 시루떡이 연상된다고 했던 몬세라트Tot Montserrat는 톱니바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바위산이다. 4,000만년 전에 융기된 해발 1,200m 산의 모습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바위투성이 산의 정상부에 베네딕트수도원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곳이 유서깊은 기도장소였기 때문이다. 1,000년 전부터 시작된 순례의 행렬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검은 성모상 ‘라 모레네타’가 발견되면서 더욱 길어져서 지금까지도 끊어질 줄 모른다. 두어 시간 거리인 바르셀로나에 살았던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 Cornet, 1852~1926년도 틈만 나면 모세라트를 찾아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몬세라트에 와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아예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몬세라트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족대성당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다. 스페인 교회 건축 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폴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1년 반 후에 안토니 가우디의 손에 넘겨진다. 그후 43년 동안 가우디는 역사에 길이 남을 독창적인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일생을 쏟아 부었다.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 내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마치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로 뻗어 올라간 듯한 모습의 기하학적인 기둥들이다. 직선이 아니라 자연물의 형상, 그 곡선만을 사용한 가우디 원칙들이 반영된 결과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 구엘 공원Pavellons Guell 등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에서 그 고집스러운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기업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신자들의 헌금으로만 세우기 원했기에 재정 문제는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죽고 말았지만 성당은 아직도 그의 청사진에 따라 무려 130년 동안 여전히 ‘공사 중’이다. 전체 공정 중 절반 정도가 완성되었을 뿐이라지만 몇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내부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어 지난 2010년 7월에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모시고 축성식을 가졌다. 15년내에 완공하는 것이 바르셀로나 시의 계획이다. 1 가우디는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물의 형상과 곡선만을 사용했다.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구엘 공원 2 몬세라트 산에서 내려온 기운이 한데 모여 정점을 이룬다는 성당 안뜰 3 가우디는 몬세라트의 기괴한 모습에서 착안해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디자인했다 취재협조 에미레이트항공 www.emirates.com 페가수스 코리아 02-733-3441 ▶travie info 1 아람브라 안에 있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 2 스페인식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 몬세라트Tot Montserrat 몬세라트로 올라가는 꼬불꼬불 산악도로의 전면 도로는 10km, 후면도로는 13km다. 주말에는 주차장이 만원이 경우가 많으므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 수도원에는 뮤지엄,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그리고 호텔까지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에스꼴라니아라는 소년합창단Cor de I’Escolania으로도 유명한데 미사 시간을 맞춰서 가면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문의 (0034)93-877-77-77 www.montserratvisita.com Travel to Spain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면 두바이를 경유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로 여행할 수 있다. 인천-두바이 구간을 운행하는 에어버스 A380 기종은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최첨단, 초대형 기종. 인천-두바이 구간은 9시간 30분, 두바이-마드리드 구간은 8시간, 두바이-바르셀로나 구간은 7시간 가량 걸린다. 문의 02-2022-8400 www.emirates.com 두바이 시티투어 두바이에서 스톱오버를 신청해서 두바이 시티 투어(42달러), 사막 투어(99달러) 등을 경험하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된다. 에미레이트항공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정보와 스톱오버 안내책자를 다운받을 수 있다. 투어 문의 아라비안 어드벤처 +971-4-303 4888 aadops@emirates.com 스페인 일주상품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는 ‘스페인·포르투갈+바르셀로나 일주 10일’ 여행패키지 상품이 10월부터 10개 여행사 연합으로 시판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출발하는 이 상품은 11월 말까지 239만원의 특가로 한진관광, 투어2000, 레드캡투어, 투어몰, 자유투어,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하나투어, 온라인투어, 롯데관광에서 예약할 수 있다. 야디네스 알베르토Jardines alberto 그라나다의 유서 깊은 카르멘(정원과 채소밭이 있는 별장식 하우스)을 개조한 레스토랑으로 야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커피 한잔과 함께 피오노노Pionono라는 그라나다의 전통 디저트도 별미다. 아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헤네랄리페 입구 쪽에 위치해 있다. 3가지 코스에 와인이 곁들여 나오는 세트메뉴는 30~45유로. 주소 Paseo de la Sabika nº 1, 18009 Granada 문의 (0034) 958-221-661 www.jardinesalberto.es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Parador de Granada 그라나다의 아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로 스페인 국영 호텔 중 최고로 알려져 있다. 그라나다 수복 후 세워진 수도원 건물의 고풍스러운 멋과 특별한 위치 때문에 여행자들이 꿈꾸는 숙소지만 객실이 40여 개밖에 되지 않아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아람브라와 그라나다의 야경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주소 Real de la Alhambra, s/n, 18009 Granada, Spain 문의 (0034) 958-22-1440 www.parador.es 팔라시오스Palacios 5kg 정도의 크기으로 자란 새끼 돼지로 만드는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Cochinillo를 먹을 수 있는 곳.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팔라시오스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호스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싱글 요금은 30~45유로, 더블룸은 50~80유로 사이다. 주정강화와인인 셰리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계란 노른자를 이용한 디저트인 플란Flan도 맛볼 수 있다. 주소 C/Navarro Ledesma, 4 45001 Toledo 문의 (0034) 925-28-0083 www.hostalpalacios.net 안달루 라 토레 데 오로Andalu la Torre de Oro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 있는 투우 테마의 바Bar. 가게 안에는 스타 투우사들의 사진과 희생된 소의 머리 박제 그리고 스페인 생햄인 하몬이 같이 걸려 있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주소 Er 26 de la Plaza Mayor Calle del Arcode Triunfo, 28012 Madrid 영업시간 오전 10시∼새벽 2시 문의 (0034) 913-66-5016 La Torre del Oro 타블라오 엘 팔라시오 안달루스Tablao El Palacio Andaluz 세비야 최고의 플라멩고 디너쇼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공연은 하루 두 차례, 매일 저녁 7시와 7시30분에 시작되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며 와인이 곁들여진 코스 정찬이나 타파스를 선택할 수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일부 장면도 플라멩고로 선보인다. 문의 (0034) 954-534-720 www.elpalacioandaluz.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5)독립운동가 ‘김립’ vs 그를 비난한 ‘김구’

    [선택! 역사를 갈랐다] (35)독립운동가 ‘김립’ vs 그를 비난한 ‘김구’

    1922년 2월 8일 수요일이었다. 중국인들이 위안샤오제(元宵節)라고 부르는 정월 대보름날을 사흘 앞둔 때였다. 상하이 거리는 음력 설을 맞아 불꽃놀이로 들떠 있었다. 북쪽 외곽의 중국인 밀집 지구인 자베이(閘北) 구역 바오퉁루(寶通路)도 그랬다. 네 남자가 둘씩 짝지어 걷고 있었다. 인텔리풍의 30~40대 남성들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앞선 두 사람이 커브를 돌아 추장루(虬江路)로 접어든 이후에 다른 두 사람이 길모퉁이를 꺾어 돌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잠복해 있던 네 명의 양복 입은 청년들이 튀어나왔다. 둘은 앞을 가로막고, 둘은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멀찌감치 뒤를 가로막았다. 앞길을 가로막은 두 청년이 양복에 손을 집어 넣었다. 시커먼 쇠뭉치를 꺼내 들었다. 권총이었다. 탕, 탕, 탕…. 습격자들의 목표는 한 사람이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길거리에 쓰러졌다. 앞머리칼이 반쯤 벗겨진, 중국 옷을 입은 중년 신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래도 총성은 계속됐다. 중국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살자의 시신에서 12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다. 상하이에서 발간되는, 중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일간지 선바오(申報)는 사건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피습자 한국인 양춘산(楊春山)이었다. 양춘산은 ‘한국 독립당의 중요 분자’인데, 종래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 살다가 중국 관할 구역으로 이사한 지 불과 3, 4일밖에 안 되는 상태였다고 한다. 나이는 44세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이었다. ●김립, 북간도·상하이 등 오가며 해외독립운동 활발 양춘산이란 이름은 중국인으로 위장하기 위한 가명이었다. 본명은 따로 있었다. 바로 김립(立)이었다. 김립은 1919년 11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에 취임했다. 임시정부의 재정과 인사를 비롯한 모든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거물급 인사였다. 비서장은 국무원 각부 차관회의를 주재했다. 임시정부의 운영 전반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가진 직책이었다. 김립은 1920년 9월 15일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구(九)는 그의 죽음에 대해 짤막하게 논평했다. 통쾌하다는 말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백범일지’를 보면 “정부의 공금 횡령범 김립은 오면직(吳冕稙), 노종균(宗均) 등 청년들에게 총살을 당하니 인심은 잘했다고 칭찬하며 통쾌해 하였다.”고 한다. 불과 1년 5개월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상관이자 혁명 동지였던 사람에게 그처럼 독설을 퍼붓는 이유는 피살자를 ‘정부의 공금 횡령범’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었다. 김구만이 아니었다. 임시정부의 최상급 지도자들도 김립을 규탄했다.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 신규식(申圭植)을 비롯한 6인의 각부 총장들이 연명으로 발표한 1922년 1월 26일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고’ 제1호를 보자. 그에 따르면 김립은 이동휘(李東輝)와 더불어 온 나라 사람들이 규탄할 만한 죄를 지었다고 한다. ●‘양춘산’ 가명으로 中 입국… 12발 총탄 맞고 피살 김립은 극형에 처해야 할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해당 구절을 읽어 보자. “김립은 이동휘와 서로 결탁하여 드디어는 국가 공금을 횡령하여 개인 주머니를 살찌우고 같은 무리를 불러 모아 공산이란 미명하에 숨어서 간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은 국가 공금을 횡령하여 자기네 당(공산당)만을 위해 사용한 점에 있었다. 이동휘는 그 범죄를 교사한 자로 지목되었다. 국무총리 재임 중에 소련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김립으로 하여금 횡령케 했다는 것이었다. 1919년 임시정부 설립 때부터 경무국장에 취임한 김구는 재임 5년 동안 20여명의 요원을 거느리며 경찰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독립국가의 보통 경찰행정과는 달랐다. 경무국의 주요 임무는 일본의 정탐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의 투항 여부를 정찰하는 데에 있었다. 살벌하고도 냉엄한 비밀경찰의 임무였다. 김구가 지목한 오면직과 노종균은 바로 그 경무국 소속의 비밀 요원이었다. ●김구 말대로 임시정부 공금 횡령범이었나 김립은 과연 공금횡령범이었는가? 암살 집행의 사유가 된 이 문제는 여태까지 객관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과연 사실에 부합한 것인지 확증된 적이 없었다. 한번 따져 보기로 하자. 김구가 말하는 ‘정부 공금’이란 소련 정부가 제공한 무상원조 60만 금화루블을 가리킨다. 이른바 모스크바 자금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60만 금화루블은 2012년 오늘의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소련은 이 자금을 두 차례에 걸쳐 제공했다. 첫 번째로는 1920년 9월 박진순(朴鎭順)에게 40만 금화루블이 인도되었고, 두 번째로는 1921년 9월 베를린 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하여 한형권(韓馨權)에게 20만 금화루블이 제공되었다. 어느 경우든 간에 자금 제공처는 소련 외무부였다. 문제의 핵심은 이 자금의 처분권자가 과연 누구냐 하는 데에 있었다. 김립이 피살될 당시 현장에는 3인의 동료가 함께 있었다. 김철수, 유진희, 김하구가 그들이다. 다들 상하이파 공산당의 간부들이었다. 이 중에서 특히 김철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현장 수습을 다른 동료들에게 맡기고 신속히 모스크바 자금이 예치되어 있던 은행으로 가 남은 자금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 놓는 일을 수행했던 사람이다. 또한 김립에 이어 당의 재정부장으로 취임하여 모스크바 자금을 직접 관리했다. 그래서 김철수는 다른 누구보다도 모스크바 자금의 내막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 자금이 결코 임시정부 공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 외교를 수행한 박진순과 한형권은 둘 다 한인사회당의 전권대표 자격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인사회당과 그 계승자인 상하이파 공산당이 그 자금을 관리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소련 옛보고서 “상하이 공산당 횡령근거 없다” 결론 김철수의 주장은 임시정부측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구는 무고하게 한 독립운동가를 처형한 셈이 된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가? 소련 정부는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거액의 자금을 주었던 것일까? 우리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료들이 최근 구 코민테른(국제공산당) 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되었다. 국제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비서 쿠시넨이 1922년 5월 11일자로 작성한 훈령이 눈길을 끈다. 이 문서에는 문제의 40만 루블과 20만 루블이 모두 상하이파 공산당에 지급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자금의 결산 보고 의무도 상하이파 공산당에 부과되어 있다. 또 다른 기록이 있다. 국제공산당은 모스크바 자금의 정산 실무를 극동공화국 외무대신 얀손에게 위임했는데, 그가 주도한 자금결산규명위원회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은 1922년 8월 18일이었다. 이 보고서도 모스크바 자금의 수령자를 상하이파 공산당으로 지목했다. 보고서 결론에 따르면 상하이파 공산당의 자금이 사적으로 유용되었다는 여러 가지 악평은 소련 영토 내의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근거가 없다고 한다. 요컨대 코민테른 문서들은 어느 것이나 다 모스크바 자금의 처분권자가 한인사회당과 그 후계자인 상하이파 공산당이라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김철수의 주장이 객관적으로도 실제에 부합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명 김익용…‘입헌’의 한 글자 따 김립으로 개명 김립의 본명은 김익용(翼瑢)이었다. 그가 김립이라고 자임한 것은 대한제국 시절이었다. 전제군주제 하에서는 근대적 개혁과 독립의 보존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두 명의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있었다. 두 청년은 입헌제도 수립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를 기념하여 그들은 설 립(立)자와 법 헌(憲)자를 한 글자씩 나눠 가졌다. 김익용은 김립이 되었고, 또 한 청년은 본래 자신의 성명인 허헌(許憲)의 의미를 재규정했다. 김립은 나라가 망한 뒤로는 해외로 망명하여 계속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북간도, 연해주, 흑룡주, 베이징, 상하이를 분주하게 오가던 그를 가리켜 일본 헌병대는 ‘배일흥한(排日興韓)을 기도하는 유력자’라고 지목했다. 그는 뛰어난 지능과 조직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사(策士)이자 재주와 인물이 제1류의 인물이라고 지목했다. 그랬던 김립이 ‘공금 횡령범’이라는 불명예 속에 지금도 갇혀 있다. 사후 90년 동안 김구가 찍어 놓은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의 과정에서는 임시정부 공금 횡령자라는 낙인 때문에 그의 서훈 상신이 번번이 기각되고 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를 억누르고 있는 허위의 낙인을 지워 내고, 그 자리에 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국화를 독립운동의 제단에 놓아야 할 때이다.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 쿠코츠키의 경우·내 남편이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쿠코츠키의 경우(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들녘 펴냄)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작가인 러시아 출신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설집. 러시아 부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40년에 걸친 구 소련과 러시아의 다양한 역사적 변화를 다루는 한편, 가족의 의미와 인간의 내면을 종교·심리·사회적 상황 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장엄하게 그려냈다. 울리츠카야는 가족을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적 산물로 여기고, 이념을 우선시하며 이데올로기를 위해 친아버지를 고발하는 인물을 영웅으로 추앙했던 소비에트 시대를 가족의 가치를 붕괴시킨 배반의 시대로 규정한다. ●내 남편이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정승재 지음, 책마루 펴냄) 11년째 소설을 쓰는 정승재 장안대 행정법률학과 교수가 9년간 집필한 단편소설 8편을 그러모았다. 대표 단편인 ‘내 남편이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는 풍자소설이다. 화자인 ‘부인’은 대형마트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남편을 대통령에 출마시키기 위해 로또에 당첨되는 터무니없는 ‘꿈’을 꾼다. 연봉 2800만원의 중소기업 이사인 ‘남편’은 “조폐공사에서 돈을 마구 찍어 모든 국민에게 1인당 5억원씩 나눠주겠다”, “대통령 퇴임 때 인터넷 투표를 해 50%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스스로 총살당하겠다”는 식의 역시 터무니없는 공약을 되뇌인다. 자전적이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 [주말 영화]

    ●셜록 홈즈와 나(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셜록 홈즈(마이클 케인)와 그의 파트너 왓슨(벤 킹슬리)은 영국의 범죄를 해결하는 최고의 명콤비다. 홈즈는 천재적인 탐정이며 왓슨은 그의 듬직한 조수로 세상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짓에 불과하다. 진짜 수사를 진행하고 추리를 하는 것은 왓슨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 천재인 척하는 홈즈는 왓슨이 고용한 주정뱅이 배우다. 사실 왓슨은 전도유망한 학자였으나 호기심에 사건 수사를 했다가 학계에 발붙일 곳이 없어지고, 재미 삼아 쓰는 탐정소설마저 큰 인기를 끌자 얼굴마담 격인 홈즈를 고용해 뒤에서 모든 일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목을 받는 것과 여자를 좋아하는 홈즈는 사고를 몰고 다니고, 그런 인기 많은 홈즈에게 왓슨은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다. ●청담보살(KBS2 토요일 밤 11시 25분) 청담동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미녀 보살 태랑.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에 억대 연봉까지,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그녀지만 스물여덟 전에 운명의 남자를 만나야만 액운을 피할 수 있는 사주를 타고 났다. 자신의 액운을 피하기 위해 운명의 남자를 이곳저곳 찾아보던 어느 날. 태랑은 운전 중 운명의 남자를 알아보게 해 주는 줄 목걸이를 찾다가 그만 우연히 길가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줍고 있던 찌질남 승원을 치고 만다. 그런데 그 사건현장에서 오매불망 첫사랑 호준을 만나게 된다. 한편 우연히 보험서류에서 본 승원의 출생일을 보고 태랑은 승원이 자신의 운명의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는 수 없이 태랑은 승원과 사귀기로 마음먹으며 운명과 사랑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EBS 토요일 밤 11시)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데미언과 테디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걷는 형제다. 테디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유격대 지휘관인 반면, 데미언은 그런 싸움에 승산은 없다고 보고 영국으로 떠나려 한다. 그러나 출발 직전 친구가 총살당하는 장면과 영국군의 횡포를 목격한 뒤 마음을 바꿔 테디와 함께 독립전쟁에 참여한다. 한편 지역 지주가 자신의 하인이자 공화국군의 일원인 크리스를 협박해 공화국군 정보를 영국군에게 넘긴다. 이로 인해 테디가 속한 여단 전체가 체포된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군인 조니의 도움으로 병사들은 모두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데미언은 죽마고우 크리스를 사살하고 만다. 한편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훗날 더 큰 일을 도모하더라도 협정에 순응하자는 정규군과 당장 아일랜드를 통일해 자치 국가를 이루자는 공화국군으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해진 가운데 테디는 전자, 데미언은 후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 공산체제 체념한 사람들의 기막힌 얘기들

    공산체제 체념한 사람들의 기막힌 얘기들

    ‘중국의 모옌(57)이냐, 일본의 하루키냐’며 지켜보던 2012년 노벨문학상은 지난 11일 중국의 소설가 모옌에게 돌아갔다. ‘대체 모옌이 누구냐?’ 싶지만 장이머우 감독의 토속성이 강한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라고 하면 무릎을 딱 치며 감탄사를 연발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안다’는 우쭐한 기분의 표현이겠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은 각 출판사의 판매 부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영나 문학동네 해외1팀 부장은 “한국 독자들이 영미 작가를 선호하기 때문에 ‘대박’작품은 없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 체념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환상과 꿈과 농담으로 버무려져 있다.”고 했다. 모옌의 작품이 대중성이 높지 않다고 해도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창비,문학동네, RHK, 민음사 등 각 출판사는 작품마다 최소 1쇄 2000부 정도를 더 찍는다. 1955년 생으로 수수가 붉게 타는 듯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산둥성 가오미현 출신의 모옌은 1981년 문단에 데뷔한 이래 30년간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쉬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내놓지만, 국내에 번역·출판된 작품은 10개 안팎이다. 인터넷 서점이나 교보문고 등에서 한 달 동안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할인 판매전에 돌입하니, 모옌 연구에 들어가보자.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문학동네 펴냄)는 표제작을 포함해 3편의 중편소설을 모았다. 표제작의 주인공 딩 사부는 정년을 한 달 앞두고 공장에서 해고당하자, 엉뚱한 생계대책을 세운다. 숲 속에 버려진 폐차를 개조한뒤 연인들에게 장소를 빌려주는 ‘아담한 휴게소’를 차린 것이다. 딩 사부가 생계와 숲 속의 차 안에서 들려오는 온갖 교성 사이에서 위태로운 생존의 줄타기를 한다는 웃기지만 울고 싶은 이야기다. 문학동네에서는 ‘달빛을 베다’도 추천작이다. ‘인생은 고달파 1·2’(창비 펴냄)에서 고밀 동북향의 지주였던 서문뇨는 중국의 토지개혁이 진행되자 악덕 지주로 낙인 찍혀 1950년 총살당한다. 염라대왕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한 끝에 환생을 약속받았지만, 나귀, 소, 새끼돼지, 개, 원숭이 등으로 태어났다. 2001년 1월 1일 새벽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난 남천세는 5살이 되던 해 자신의 윤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지난 50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났던 각종 격변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입혀서 기괴하고 황당무계하며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능청스럽게 펼친다. RHK에서는 ‘풀 먹는 가족 1·2’와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2’를 2007년에 발간했는데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열띤’ 판매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특히 ‘풀 먹는 가족’은 콜롬비아의 노벨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마르케스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송명주 RHK 문예1팀장은 “모옌이 민중의 밑바닥 삶을 유쾌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측면에서 김기덕 영화감독의 작품 코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중국 여배우 공리가 생각나는 ‘붉은 수수밭’의 원작소설인 ‘홍까오량 가족’(문학과지성사 펴냄)은 고량주 양조장집 아들에게 팔리 듯 시집가던 따이펑리옌의 삶을 192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그려놓았다. ‘개구리’(민음사 펴냄)는 최근 작품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조카가 일흔이 넘은 고모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고모는 젊은 시절 실력 있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살아 있는 보살이자 삼신 할멈’이었으나 공군 조종사인 약혼자가 타이완으로 망명하면서 ‘반역자의 약혼녀’라는 꼬리표를 단다.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탓에 고모는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강요받는데,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들여다본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피랍 529일… “선원들 살고 싶다는 절규 외면 말라”

    피랍 529일… “선원들 살고 싶다는 절규 외면 말라”

    500일 넘게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있는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의 4명의 한국인 선원 가족들은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선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피랍 선원 가족 30여명은 “해적들로부터 ‘인질을 총살하겠다’는 협박을 받으면서도 오직 협상이 타결되기만을 숨죽여 기다려 왔지만 영상 속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본 뒤 더는 견딜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며 국민과 정부의 관심을 요청했다. 이들은 “협상을 하는 선주는 해적들이 정치적 이슈를 포기하지 않아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협상이 어렵다고 했고,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선원들의 건강상태는 알 수 없지만 생존해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지 이날로 528일이 됐다. 지난해 4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제미니’호의 다른 국적 선원 21명은 지난해 11월 말 풀려났지만 한국인 선원 4명은 1년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 억류돼 있다. 가족들은 기자회견 후 외교통상부를 방문, 김성환 장관과 만나 정부 측의 적극적인 대응을 호소했다. 김 장관은 주로 가족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가족들에게 송구스럽다. 정부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아프간 남자, 바람난 딸 2명 총살 ‘충격’

    아프간 남자, 바람난 딸 2명 총살 ‘충격’

    아버지가 두 딸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했다. 아버지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딸을 자식으로 키울 수 없다며 두 딸을 향해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끔찍한 사건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 나드 알리 지구에서 발생했다. 에페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5살과 16살 된 두 딸은 우연히 알게 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통역관을 따라 최근 집을 나갔다. 그러나 4일 만에 가출을 후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따뜻하게 맞아줄 줄 알았던 아버지는 그러나 손을 내미는 대신 총을 집어들었다. 바람이 나 집을 나갔던 자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버지는 총을 쏴 두 딸을 살해했다. 현지 경찰은 아버지를 긴급체포하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최근 22살 여성이 간통 혐의로 공개처형됐다. 총살 장면은 인터넷에 올라 국제사회의 비판과 규탄이 빗발쳤다. 사진=에페통신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불륜女 직접 처형하는 탈레반 영상 파문

    불륜女 직접 처형하는 탈레반 영상 파문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직접 총살하는 끔찍한 영상이 언론에 공개됐다. 최근 해외의 한 언론에 의해 입수된 이 영상은 3분 짜리로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은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있고 한 남자가 다가가 총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특히 수백명의 남자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환호하는 장면이 담겨있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영상 속 한 남자는 “알라는 우리에게 부정을 저지르지 말라고 했다.” 면서 “알라의 방식대로 즉결 심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아프카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국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수사를 경찰에 지시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사살된 여성은 나지비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탈레반 지휘관의 부인”이라면서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러 가혹한 처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지난 8일 “탈레반이 피의 학살을 했다.” 면서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아프칸에서는 이같은 학살이 탈레반의 규율에 따라 종종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비정부기구인 휴먼 라이츠 와치(Human Rights Watch)의 2012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아프칸에서는 90%의 여성이 강제 결혼을 포함해 적어도 생애 한번은 성적, 물리적 ‘지옥’을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뉴스팀    
  • “이승만 집권 때도 독립운동가 수감했다”

    “이승만 집권 때도 독립운동가 수감했다”

    서울 통일로 ‘서대문형무소’는 1905년 을사늑약 때일제가 만든 경성감옥이었고 1912년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이 형무소의 신세를 졌다.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다 떠난 서대문형무소에는 누가 수감됐을까? 왜 곧바로 일제의 악행을 고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직행하지 못했을까? 김삼웅(69) 전 독립기념관장은 4일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관 무궁화홀에서 열리는 ‘이승만 집권기의 서대문형무소’란 학술대회에서 ‘1948~1959년 서대문형무소’란 제1주제 논문을 통해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들의 변천사를 밝혔다. 김 전 관장은 “1948~1959년 12년은 이승만의 1인 통치와 자유당의 전횡기였다.”면서 “1949년 1월 반민특위의 검거활동으로 서대문형무소가 악질적 친일파인 소설가 이광수, 일제경찰관 노덕술 등 친일파로 가득했지만, 겨우 1개월 만인 그해 2월 15일 이승만이 반민특위 활동을 비난하고 반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으로 서대문형무소가 다시 독립운동가들로 가득 차게 됐다.”고 탄식했다. 소설가 이광수는 수감 2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고, 노덕술은 이승만 대통령이 “경찰의 기술자이며 경험자이므로 그를 제거하고는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석방을 요청하던 중 그해 6월 6일 반민특위가 와해되자 풀려났다. 1949년 6월 ‘국회프락치사건’이 발생했다. 신의주 등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약수 의원과 반민법 제정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노일환·서용길 의원 등 13명의 의원이 체포됐다. 김 전 관장은 “헌병사령부 산하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이들을 심하게 고문해 ‘자백’을 받아 냈다.”면서 “당시 헌병대에는 친일경찰 김정채, 윤우경, 최운하, 김호익 등이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노일환은 재판 과정에서 “남로당 가입 사실과 남로당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는 자백이 고문을 못 이긴 허위 자백”이었다고 진술했다. 즉 반민특위 활동이 와해된 후 서대문형무소에는 일제강점기와 비슷하게 독립운동가들이 가득해졌다는 것이다. 1947~1954년 제주 4·3사건으로 2530여명이 일반재판 및 군정재판, 군법회의 등을 통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중 16~30세 여자 수감자 70여명이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됐다. 제주도에는 형무소가 없어서 전국 각지 형무소에 분산·수감된 탓이다. 김 전 관장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하기 위해 특별히 여사(女舍)를 지어서 관리했기 때문”이라면서 “6·25전쟁으로 이 중 일부는 인민군에 편입되거나 여맹에 들어갔고, 또 일부는 잡혀서 총살됐다.”고 설명했다. 6·25전쟁 직후부터 3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는 북한군이 사용했다. 반공·친미 인사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을 투옥하고, 후퇴할 때는 대량 학살하거나, 북으로 끌고 갔다.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이승만 정부는 서울시민 중 북한군에게 협조한 부역자들을 색출해 서대문형무소에 가두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민은 대략 145만명이었고, 이 중 40만명만이 피란을 떠났다. 김 전 관장은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라디오방송을 거듭하다가 한강다리를 폭파시켜 피난도 못하게 해 놓고는 잔류한 서울시민을 부역자로 모는 것은, 임진왜란 때 한성을 떠난 선조나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 갔던 처자를 ‘환향녀’라며 비난했던 인조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사형에 처해진 사람은 다소 줄었지만, 당시 부역자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자는 867명에 이르렀다. ‘종로의 협객’ 김두한은 1947년 4월을 시작으로 1954년 5월, 1965년, 1966년 ‘국회오물투척사건’ 등으로 4차례 수감됐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임, 변절 발언 해명하고 진실된 사과 보여 달라”

    “임, 변절 발언 해명하고 진실된 사과 보여 달라”

    “거짓이 아닌 진실된 사과를 보여 달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4일 탈북자와 자신에 대한 폭언으로 물의를 빚은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에게 던진 말이다. 하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과라는 건 진실이 기반돼야 의미가 전달되는데 임 의원의 사과는 진실됐다고 볼 수 없다.”며 거듭 해명을 요구했다. 하 의원은 특히 “나 개인보다 탈북자에 대해 왜 변절이라 했으며 누구를 변절한 것인지를 명확히 해명하고 사과하는 게 이번 파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한 임 의원의 설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임 의원의 취중 발언 중 나를 비난한 맥락은 내가 그동안 탈북자들을 돕는 북한인권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면서 “즉 처음에는 내가 변절자인 탈북자들을 지원했다고 비난해 놓고 오후 보도자료에서는 내가 새누리당에 갔기 때문에 변절자라고 말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전날 오전 11시에 임 의원에게 받은 해명 전화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하 의원은 이어 “내가 새누리당에 갔기 때문에 변절자라고 했다면 그날 새누리당 얘기가 나왔어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면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정치성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요셉씨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당시 상황을 두고도 “임 의원이 격앙됐던 이유는 백씨의 총살형 발언 때문이 아니라 그 학생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탈북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하 의원과 임 의원은 1990년대 중반까지 민주·통일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다. 두 의원 모두 86학번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한 점도 같다. 임 의원은 1989년 학생 신분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차 평양을 방문했다가 3년 5개월 징역형을 받았고 하 의원도 1991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조국통일위원회에 있다가 밀입북 사건에 연루돼 감방에 다녀왔다. 두 의원은 1993년부터 고 문익환 목사가 운영하는 통일운동단체 ‘통일맞이’에서 만나 막역하게 지냈으나 문 목사가 사망한 뒤 1995년 하 의원이 북한인권 운동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됐다. 하 의원은 “그 뒤로 임 의원과 교류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임 의원이 비판한 ‘전향’에 대해 하 의원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이후,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으로 일관된 삶이라고 자부해 왔다.”면서 “오히려 지금 이 순간까지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 참상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국내 종북세력이야말로 역사와 조국을 배신한 변절자”라고 반박했다. 하 의원은 임 의원의 재사과 여부를 지켜본 뒤 향후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임수경 ‘막말’에 전전긍긍… 갈라진 당심

    임수경 ‘막말’에 전전긍긍… 갈라진 당심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 학생에게 취중 폭언을 한 데 대해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서둘러 논란 확산 차단에 나섰지만 당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임 의원은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19대 개원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 행사 중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논란은 저의 불찰로 인한 것이며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한 상처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공개 사과했다. 임 의원은 “그날 새로 뽑은 보좌진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탈북대학생 백요셉씨가) 제 보좌관들에게 ‘북한에서는 총살감’이라는 이야기를 해 감정이 격해졌다.”면서 “변절자라는 표현 역시 학생운동을 했던 하태경 의원을 향한 것이었지 탈북자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임 의원은 “제 소신과 생각이 그렇지 않다. 북한 이탈 주민들이 잘 정착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지 않은 채 시급히 자리를 떴다. 이러한 임 의원의 태도는 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해명은 전날 자료를 다시 읽는 수준에 그쳐 진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와 기자들과의 만남 등에서 잇따라 임 의원을 두둔하며 사태 진화에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박 비대위원장은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어찌 됐건 임 의원이 사과했고, 해명했다. 당으로서 따로 조치를 취할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임 의원은 탈북자 생활에 대해 존경심과 협력하는 자세를 갖고 있고, 변절자 발언은 당시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한 하 모 의원이 새누리당에 간 것이 변절자라는 의미였다.”고 옹호했다. 모두발언에서도 “민주당은 임 의원에게 신뢰를 보낸다. 임 의원이 솔직하게 사과했고 앞으로 신중하겠다고 했으면 충분한 석명이 됐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도 “(임 의원의 발언은) 폭언이 아니라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는 임 의원의 막말 파문이 통합진보당의 ‘종북 의원’ 논란과 맞물려 당에 악영향을 미칠까 경계하고 있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한길 후보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일부 사실 관계만 보더라도 (임 의원의 발언이) 매우 잘못된 언동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당 차원에서 사실관계 전모를 파악할 것이고, 거기에 합당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 의원은 지난 1일 종로의 한 주점에서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와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을 향해 욕설을 섞어 “개념 없는 탈북자, 변절자”라며 거칠게 비난, 막말 논란을 낳았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사설] 탈북 대학생에게 날린 임수경 의원의 막말

    한때 ‘통일의 꽃’으로 불렸다. 40여일간 북한에 머무르기도 했다. 지금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단 임수경 의원이다. 그가 탈북자 출신 대학생인 백요셉 탈북청년연대 사무국장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야,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라.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백씨가 어제 페이스북에 공개한 내용이다. 임 의원은 북한인권운동가 출신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에게도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는 섬뜩한 말을 했다고 한다. 무엇에 씌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상식 이하의 막말을 할 수 있을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인은 고사하고 자연인으로서도 기본이 안 된 사람이 앞으로 국회의원 행세를 하고 다닐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임 의원은 사태가 불거지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신입 보좌관 면접자리에서 보좌관에게 총살 운운한 학생을 꾸짖은 것이 전체 탈북자 문제로 비화됐다고 해명했다. 하태경 의원과도 방식이 다를 뿐 탈북주민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대한민국에 정착하도록 노력하는 측면에서는 관심사가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임 의원이 정말 탈북자를 ‘변절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해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스스로 인권, 나아가 통일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되돌아보기 바란다. 최소한의 자질과 품격도 갖추지 못한 ‘하질(下質) 선량’들이 활개치는 한 우리 정치의 미래는 없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국민이 이들 ‘문제의원’의 일탈을 감시하는 불침번이 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부정경선 당사자로 종북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도, 안하무인의 임 의원도 모두 비례대표 출신이다. 이참에 비례대표제도가 과연 전문성 내지 직능대표성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는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대표가 남발되는 양상이다.
  • “탈북자 XX들… 하태경은 변절자 죽여버린다” ‘통일의 꽃’ 임수경 의원의 막말

    “탈북자 XX들… 하태경은 변절자 죽여버린다” ‘통일의 꽃’ 임수경 의원의 막말

    민주통합당 임수경(비례대표) 의원이 탈북자 출신 대학생과 전향한 북한인권 운동가 출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에게 “탈북자 새끼, 변절자” 등 막말을 쏟아내 파문이 일고 있다. 탈북자 출신 대학생인 백요셉 탈북청년연대 사무국장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일 저녁 서울 종로구 모 식당에서 남성 2명과 술을 마시던 임 의원을 우연히 만났다.”며 당시 상황을 공개했다. 백씨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임 의원을) ‘통일의 꽃’으로 알고 있었고 대학 과 선배라 용기를 내 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런데 웨이터가 임 의원 보좌관들의 요구로 내 휴대전화 사진을 마음대로 지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보좌관에게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백씨에 따르면 임 의원은 이에 웃으며 “내게 피해가 갈까 봐 보좌관들이 신경 쓴 것이니 이해하라.”고 말했다. 백씨는 농담으로 “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 어디 수령님 명하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합니까?”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표정이 변한 임 의원이 자신에게 폭언을 쏟아냈다는 게 백씨의 주장이다. 임 의원이 자신에게 “야,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라.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것이다. 백씨는 페이스북에서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까지 ‘김일성, 김정일을 반역했다는 민족 반역자’ 소리를 들으며 노동당에 대한 죄의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수백만 동포들이 굶어 죽고 맞아 죽는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 김일성주의를 버린 하태경 의원을 변절자라고 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논리인가.”라고 개탄했다. 임 의원의 폭언을 녹취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논란이 인터넷을 통해 번지자 임 의원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모든 논란은 제 불찰로 인한 것이고 부적절한 언행으로 상처를 입었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오해를 풀고 사과했으며 백씨에게도 별도로 직접 사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임 의원은 “그날 상황은 새로 뽑은 보좌진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탈북 청년이 내 보좌관들에게 ‘총살감’이라는 말을 해 감정이 순간 격해져서 나온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변절자’ 표현도 학생운동, 통일운동을 함께 해 온 하 의원의 새누리당행을 지적하는 것이었을 뿐 탈북자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자신의 트위터에도 “정책으로 일하게 해 주세요.”라며 정치적 논란을 차단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임 의원은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민주당도 응분의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김 대변인은 “하 의원과 백씨가 대체 ‘누구’를, ‘어디’를 변절했다는 것인지 변절의 ‘내용’을 분명히 밝히라.”면서 “힘없는 대학생을 향해 인격적 모독은 물론 ‘몸조심하라’며 협박까지 내뱉은 언사는 국민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공격했다. 하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별로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임 의원은 한국외대(용인캠퍼스) 4학년 때인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 40여일간 북한에 머무르다 돌아온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통일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복권된 이후 방송위원회 남북교류추진위원회 위원, 월간지 기자 등으로 활동했다. 이재연·최지숙기자 oscal@seoul.co.kr
  • 임수경, 탈북대학생에게 “변절자 XX 죽여버리겠다” 파문

    임수경, 탈북대학생에게 “변절자 XX 죽여버리겠다” 파문

    민주통합당 임수경(비례대표) 의원이 탈북자 출신 대학생과 전향한 북한인권운동가 출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에게 “탈북자 새끼, 변절자” 등 막말을 쏟아내 파문이 일고 있다. 탈북자 출신 대학생인 백요셉 탈북청년연대 사무국장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일 저녁 서울 종로구 모 식당에서 남성 2명과 술을 마시던 임 의원을 우연히 만났다.”면서 당시 상황을 공개했다. 백씨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임 의원을) ‘통일의 꽃’으로 알고 있었고 대학 과 선배라 용기를 내 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런데 웨이터가 임 의원 보좌관들의 요구로 내 휴대전화 사진을 마음대로 지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이에 ”보좌관에게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덧붙였다. 백씨에 따르면 이에 임 의원은 웃으며 “내게 피해가 갈까 봐 보좌관들이 신경 쓴 것이니 이해하라.”고 말했다. 백씨는 “알겠습니다.”라고 수긍한 뒤 농담으로 “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 어디 수령님 명하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합니까?”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백씨는 이때부터 표정이 변한 임 의원이 자신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이 자신에게 “야,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라.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것이다. 백씨는 이런 임 의원의 폭언을 녹취했다고 밝혔다. 백씨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까지 ‘김일성, 김정일을 반역했다는 민족 반역자’ 소리를 들으며 노동당에 대한 죄의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수백만 동포들이 굶어 죽고 맞아 죽는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 김일성주의를 버린 하태경 의원을 변절자라고 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논리인가.”라고 개탄했다. 임 의원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먼저 저의 발언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면서 “모든 논란은 저의 불찰로 인한 것이고 제 부적절한 언행으로 상처를 입었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 의원과 이날 오전 전화를 해서 오해를 풀고 사과의 뜻을 전했으며 백씨와도 별도의 자리를 통해 직접 사과의 말을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 의원은 “다만 그날의 상황은 새로 뽑은 보좌진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탈북 청년이 제 보좌관들에게 ‘북한에서는 총살감’이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나온 발언이었다.”면서 “‘변절자’라는 표현 역시 저와 학생운동, 통일운동을 함께 해 온 하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간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었을 뿐 탈북자분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임 의원은 앞서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도 글을 올려 “하 의원과는 방식이 다를 뿐 탈북 주민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대한민국에 정착하도록 노력하는 측면에서는 관심사가 같다.”고 해명한 뒤 “정책으로 일하게 해 주세요.”라며 정치적 논란을 차단했다. 하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별로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임 의원은 한국외대(용인캠퍼스) 4학년 때인 1989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 40여일간 북한에 머무르다 돌아온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통일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복권된 이후 방송위원회 남북교류추진위원회 위원, 월간지 기자 등으로 활동했다. 이재연·최지숙기자 oscal@seoul.co.kr
  • 한국, 표현의 자유 크게 후퇴…北, 김정은체제 후 인권 악화

    국제앰네스티가 24일 “지난해 한국의 인권상황이 한층 악화됐다.”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 세계 155개국의 인권상황을 담은 ‘2012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연례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지난 1년간의 세계인권 관련 이슈와 상황을 정리한 인권현황 자료다. ●“언론사파업·SNS 감시가 방증” 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람이 135명에 달하는 등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개인과 단체를 표적으로 삼는 사례가 점점 늘어났다.”면서 “특히 정부가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밀접하게 감시하면서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앰네스티는 현재 진행 중인 언론사 파업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는 사례로 꼽았다. 앰네스티 관계자는 “파업 중인 언론사의 기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공정보도와 중립성 확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한번에 4~5곳의 언론사가 같은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北, 수용소 6곳에 20만명 구금” 앰네스티는 북한의 인권상황과 관련,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면서 “사법적 판단 없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1월 권력이양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가 200명 이상의 관료를 구금했으며, 일부는 처형당했고 다른 일부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을 우려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7월 남북대화에 참여했거나 주도한 관료 30명이 총살형에 처해지거나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당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현재 요덕수용소 등 6곳의 정치수용소에 최대 20만명이 구금되고, 수천 명이 최소 180곳의 기타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北 부총참모장·인민무력부 부부장 숙청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 확립 과정에서 군부 고위급 인사들의 숙청설이 제기됐다. 대북 소식통은 21일 “김정은이 지난 1월 김 위원장 사망 후 기강 확립을 위해 ‘애도 기간에 허튼짓을 한 놈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이 발각돼 총살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은 성추문을 일으킨 혐의로 체포돼 총살당했다는 정보가 있고,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여자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당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시리아는 달아날 수 없는 도살장”

    “살인자들(시리아 정부)이 중세처럼 민간인 포위와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달아날 곳 없는 도살장이다.” 시리아의 반군 거점도시 홈스를 탈출한 외국 기자들은 3일(현지시간) 바바 아무르 지역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스페인 일간 엘문도의 자비엘 에스피노자는 CNN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바바 아무르 지역은 최악”이라면서 “그곳 주민들은 식량과 물, 의약품 등을 전혀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로 엄청난 비극”이라면서 “인도주의가 비참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폴 콘로이는 “남자, 여자, 아이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희생되고 있다.”면서 “군사적 표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민간인을 겨냥한 맹폭이 이뤄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전쟁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며 시리아 정부군의 무자비한 ‘학살극’을 규탄했다. 앞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홈스에 투입된 정부군이 집집마다 수색해 주민들을 한 줄로 세운 뒤 총살하고 있다고 밝혔다. 홈스의 바바 아무르 지역은 최근 반군이 퇴각하기 전까지 4주 가까이 정부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곳이다. 지난달 22일 마리 콜빈 등 2명의 서방 기자가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이들과 함께 포격을 당한 프랑스 기자 에디스 부비에르는 정부군이 서방 언론인들을 ‘조준 공격’했다고 전했다. 부비에르는 콜빈 등 2명이 정부군의 포격에 즉사했으며 본인은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 반군의 도움을 받아 야전 병원으로 피신했다고 덧붙였다. 에스피노자는 반군이 정부군의 공격에 더 이상 저항할 방법이 없어 바바 아무르 지역에서 ‘전술적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현지인 등의 증언을 인용, 이 지역에서 한달간 적어도 700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유혈 사태가 악화되면서 최대 2000명의 시리아 주민이 국경 너머 레바논 북부로 탈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주재 유엔난민기구(UNHCR) 장 폴 카발리에리 부대표는 4일 로이터통신에 “현재 1000~2000명 정도의 시리아인이 레바논으로 이동 중”이라며 “현장에 있는 우리 팀과 현지 당국에서 들은 정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서방의 시리아 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온 중국은 유엔·아랍연맹 공동특사 주도의 정치적 대화와 이를 통한 평화적 해결, 조건 없고 전면적인 휴전,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폭력 행위 중단 등을 포함한 ‘시리아 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6개항’을 외교부 사이트에 올렸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커버스토리-위기의 탈북자] 북한 끌려가면 ‘지옥’

    [커버스토리-위기의 탈북자] 북한 끌려가면 ‘지옥’

    강제로 북송당한 탈북자는 북한에서 어떻게 처리될까. 모두 반동분자이지만 급이 있다. 북한 당국은 탈북자를 3개 부류로 나누고 있다. 중국 친척집에서 머물거나 중국에 거류하는 탈북자는 ‘불법월경자’, 중국에서 장사나 밀수를 하는 장사꾼은 ‘밀수자’, 남한행을 시도하다 걸린 탈북자는 ‘월남도주자’라고 부른다. 월남도주자는 반동족 배신자로 1급 정치범이다.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장세율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는 “중국에서 북송된 사람은 최하의 경우 정치범 수용소로 가고 일부는 주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형을 당한다.”고 말했다. 최근 처벌이 더 강화됐다. 특히 김정은이 뒤를 이으면서 북한 당국은 지난 1일부터 주민들에게 “탈북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형까지 하는 엄중처벌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북송은 곧 죽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다음 달 23일까지 애도기간을 갖고 있다. 이때 일어나는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해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보는 상황이다. 탈북자에겐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얘기다. 장 대표는 “북한에서는 가뜩이나 탈북이 큰 범죄인데 심지어 이 기간에 탈북했으니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면서 “북한에서 탈북자를 죽여 놓고도 안 죽였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잡힌 탈북자는 무조건 북송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는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소속 탈북자 50여명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중지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북송이 어떤 의미인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제북송 중단해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한 여성 탈북자는 “석달 전 12살 아들이 북으로 끌려가는 것을 눈앞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울부짖다가 혼절했다. 박상한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9명이 북송됐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살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투쟁을 계속해 강제 북송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안동환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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