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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하타내각 총사퇴/중원 불신임안 가결우려 전격 결정

    ◎금주초 후임 선출… 하타 재옹립할듯 【도쿄=이창순특파원】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25일 자발적인 내각총사퇴를 전격 발표,일본정국은 다음 총리선출·내각구성등 긴박한 상황으로 급변했다. 하타총리는 내각불신임안이 중의원본회의에서 가결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국회상정 직전인 이날 상오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안정된 정권구성이 중요하다.국내외적으로 격동의 시기에 국회해산은 정치공백을 초래하고 정치개혁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내각총사퇴를 발표했다. 하타총리의 내각총사퇴 결단에 따라 소수연립정부의 하타내각은 출범 2개월이 채 못돼 무너지게 됐으며 일본정국의 초점은 후임총리선출과 새로운 내각구성으로 옮겨졌다. 차기총리 선출은 오는 27일부터 이번 국회가 끝나는 29일 사이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후임총리후보로는 현단계에서는 하타총리가 가장 유력해 제3기 연립정부의 새로운 「하타내각」이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연립여당은 이날 하오 대표자회의를 열어 전날까지 지속해온 사회당과의 정책협의를 중단키로 결정했다.또 이와함께 새로운 정권구성과 후임총리 선출을 위한 각 당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연립여당은 중의원 선거제도를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정치개혁을 무산시키는 선거관리내각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도 25일 기자회견에서 『각당의 당수는 모두 총리후보의 자격이 있다』고 밝혀 하타총리의 재옹립 가능성을 시사하고 『연립정부와 정책및 정권구성 협의를 적극 추진하겠다』며 연정복귀에 의욕을 나타냈다. 한편 자민당도 정권구성을 위한 당수회담을 요청하는 등 정권탈환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하타 통화 김영삼대통령은 25일 사퇴의사를 밝힌 하타 쓰토무(우전자)일본총리와 20분동안 전화통화를 갖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하타총리는 이날 저녁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한·일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고 김대통령은 이에대해 감사의 뜻과 함께 총리직 사퇴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청와대 주돈식대변인이 밝혔다.
  • 새 연정의 주도권 잡기 의지/일 하타,왜 내각총사퇴 택했나

    ◎「불신임」 피하고 사회당복귀 유도/“정치개혁 포류막자” 집념 엿보여/새 총리선임 각 정파 접촉 부산… 자민재집권 어려워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가 25일 내각총사퇴를 전격발표함에 따라 소수연립정부로 불안한 출범을 한 하타내각은 결국 2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단명으로 막을 내렸다. 하타총리는 자민당이 제출한 내각불신임안이 이날 정오 중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될 가능성이 높은 긴박한 상황에서 내각총사퇴를 결단했다.일본정국은 이에따라 새 총리선출과 차기정권 구성,정계재편 등 많은 변수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하타총리가 자발적인 총사퇴를 결단한 배경에는 ▲안정된 새 연립정부구성의 주도권 행사 ▲국회해산에 의한 정치적 공백방지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기 전에 총사퇴 선택 ▲정치개혁을 완결시키기 위한 강한 집념 등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타총리는 비록 사회당과의 정권구성협의가 24일 사실상 결렬됐지만 사회당이 요구한 자발적 총사퇴를 결단할 경우 사회당과 손을 잡고 새로운 「하타정권」 구성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타총리는 또 내각불신임안 통과에 의해 국회해산·총선을 선택할 경우 현행 중선거구제에서의 총선이 되어 소선거구·비례대표제의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결과가 될 뿐만아니라 7월초의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정치·경제개혁 등 많은 과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정치공백이 생기게 되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타내각의 총사퇴에 따라 일본정국의 초점은 다음 총리는 누가 될 것이며 새 정권은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로 옮겨지고 있다.하타총리는 사회당의 연정복귀를 통한 안정된 제3기 연립정권 구성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도 25일 기자회견에서 『하타내각의 총사퇴는 사회당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전제하고 연립정부와 정책및 정권구성협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혀 연정복귀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야당인 자민당도 정권탈환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자민당은 새로운 정권구성을 위해 사회당,신당 사키가케 등을 비롯 각당의 당수회담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무라야마위원장이 『현단계에서 사회당과 자민당의 연립정부는 생각할 수 없다』고 밝힘에 따라 자민당의 정권탈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내에는 그러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가 자민당의 일부세력과 손을 잡는 이른바 보·보연립의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하고 있는 등 새 정권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를 점치기에는 아직 불투명한 면이 남아 있다. 일본정국의 최대 초점인 다음 총리후보로는 현단계에서는 하타총리가 가장 유력하다고 할수 있다.자민당 일부와 신당 사키가케 등에서는 무라야마 사회당위원장을 총리후보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일단 총사퇴한 총리를 재옹립하는데 대한 반대의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하타총리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오는 29일 끝나는 이번 국회회기내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 총리선출을 둘러싸고 다양한 물밑접촉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변수는 남아 있는 실정이다.
  • 법으론 “2인자”… 권한행사엔 “한계”/총리의 역할­법과 현실사이

    ◎시대필요 따라 실세·얼굴마담 넘나들어/“탈권위시대… 법고쳐 총리 없애자” 여론도 이회창전국무총리의 전격경질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내각제 요소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순수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부통령의 권한을 의전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내각제에서는 국왕이나 대통령이 의전 의미에서 국가수반이고 총리가 실질적 국가정책을 집행한다. 이원집정부제도 아니면서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국정을 관장할 수 있도록 어정쩡하게 구성된 법체계를 가진 나라는 우리말고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대통령이 실제에 있어 순수대통령제에 비해 권한이 약한 것도 아니다.권위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신대통령제」라고 불릴 정도로 더 막강한 권한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총리」라는 자리가 왜 필요했는가.정치학자들 대부분은 타협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정권의 기반이 약한 정부에서 반대파에게 자리를 준다든지,정통성이 없을 때 총리를「얼굴마담」으로 삼아 이미지를 보완하려는 목적이 강했다.지역별 안배에도 일조를 했다.대통령이 영남출신이면 총리는 호남 또는 이북출신이라든지 하는 식이다. 정치적 절충에 따라 임명된 총리는 「정치총리」,정통성 보완이면 「방탄총리」등으로 불렸다.돌격총리,경제총리,실무총리등 여러 분류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법에 부여된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대통령과 가까우면 「실세」요,그렇지 못하면 「허세」로 불렸다.그만큼 총리라는 자리가 비정상적으로 운용되었던 것이다. 헌법과 정부조직법은 총리에게 행정 각부의 통할권과 중앙행정기관의 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부여하고 있다.「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행정부 2인자의 권한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헌법은 또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총리가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새정부는 총리의 각료임명 제청권을 절차상으로나마 갖춰 주려 노력했다.이회창씨라는 깐깐한 인물을 총리로 앉힌 것도 총리에게 전과 다른 「역할」을 주려는 의도로 파악되었다.실제 「외치는 대통령,내치는 총리」라는 구도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판사출신인 이전총리가 「법대로」를 내세워 내치는 물론,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생각되던 외교·안보와 심지어 정보계통까지 장악하려 하자 통치권과 단박에 마찰을 빚었다. 법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 있어 청와대와 이전총리 사이의 틈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더구나 문민시대에 있어서는 방탄도,얼굴마담도,또 실세총리도 모두 존재필요성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을 모두가 간과했던 것 같다. 탈권위시대에서 이전총리와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는 헌법을 고쳐야 한다.「총리」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절차와 반향이 복잡하므로 우선 정부조직법을 손질할 수도 있다. 헌법의 총리에 관한 규정을 「선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실제 하위법에서나마 총리의 역할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정부 부처통폐합때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회창총리 경질 「숨은곡절」/21일의 「불만 발언」 청와대 만류에도 강행/내각 「경기고 9인방」 잦은회동 주도 눈총 22일의 국무총리경질은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간여가 직접원인이었다.그러나 이 사건은 도화선의 역할을 했을뿐 실제로는 그 이전에 누적된 김영삼대통령의 불신과 불만이 전격경질이란 대폭발을 일으켰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대통령이 총리경질을 마음속에 굳힌 것은 조정회의 결과를 승인받으라는 이회창전총리의 발언이 대서특필된 22일자 조간신문 가판을 본 21일 밤.김대통령은 이날밤 나티신 캐나다총독내외를 위한 공식만찬이 끝난뒤 관저로 돌아가 신문을 보고 박관용비서실장과 이원종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감정을 폭발시켰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상오 박실장은 이총리의 발표가 있을 것이란 소식을 접하고 『그런 발표는 곤란하다』는 견해를 총리실에 전달했었다.이에 총리비서실장이 청와대의 우려와 함께 발표를 중단하도록 이전총리에게 간곡하게 권유했으나 거부당한 뒤의 일이다. 전격경질이 있은 22일도 김대통령은 발언에 대한 해명이 있고 앞으로의 처신을 조심하겠다는 뜻만 밝힌다면 4개월만의 총리경질은 가능하면 피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이전총리는 대통령의 질책을 승복하지 않았다. 이전총리와 청와대의 불협화는 어쩌면 총리발탁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당시 이회창감사원장의 이름을 총리후보로 제시했을때 참모들은 『독특한 성격때문에 마찰이 일어날 것이고 통치권행사에 부담이 될 것』이란 점을 들어 완곡한 반대를 표시했었다.그러나 김대통령은 『나와 주례회동을 할 때는 언제나 깍듯하다.염려하지 말라』고 참모들을 설득했다. 청와대가 총리에게 기대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현안에 대한 짐을 나눠지고 자신에게 상처가 나더라도 현안이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전에 맞부닥쳐 달라는 것이었다.그러나 이전총리는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정을 통괄한다」는 헌법86조 2항에 집착,너무 매끄럽게 처신한다는게 청와대쪽 불만의 기초였다. 청와대가 이전총리의 취임후부터 주목한 부분이 「대통령급 의전」과 내각내의 소내각운영에 대한 의구심이다.청와대는 이전총리가 주도한 내각내 9명의 경기고출신들의 잦은 회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이들 가운데 일부 장관은 대통령보다 이전총리를 위해 일한다는 볼멘소리가 청와대의 참모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달 중순 민자당의 한 핵심인사와 이전총리측은 오페라 살로메공연 관람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은 바 있다.당에서 이전총리의 의전과잉으로 지목하는 사례이다.당시 방한중이던 중국의 오학겸부주석이 살로메의 관람을 원하자 당측에서는 총리와 비서실장,행조실장 몫으로 6자리가 예약된 로열석가운데 4자리를 할애해 주도록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었다.이에 뒷좌석을 예약하고 확인까지 했으나 총리의전을 위해 취소당했다는 것이 당쪽의 주장이다. 대통령의 방일·방중기간중 자신과 친한 한 장관을 안보회의 멤버로 집어 넣은 일은 청와대로 하여금 이전총리를 결정적으로 다시 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이어 UR이행계획서 수정파문을 둘러싼 이전총리의 사과거부,안보조정회의 승인요구순으로 청와대와 이전총리는 점차 함께 하기 어려운 사이로 관계를 악화시켜나갔다. 조계종사태의 수습을 위해 폭력에 관한 수사를 대통령이 지시했음에도 이전총리가 상무대사업공사대금의 조사를 함께 하도록 일방적으로 지시했던 일도 청와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총리 퇴임회견/“다시는 공직 맡지 않겠다”/내가 시퇴의사 표명,수리된것/개혁 꼭 성공해야… 실패땐 불행 이회창전국무총리는 23일 『다시는 공직과 인연을 맺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전총리는 이날 상오 출입기자실에 들러 이임인사를 하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공직을 다시 맡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분명한 어조로 이같이 답했다. ­스스로 물러난 것인가 아니면 경질된 것인가. ▲내가 사퇴의사를 표명해 수리된 것이다. ­어제 청와대에 갈 때 사임할 생각이 있었나. ▲사의 표명은 서면이 아닌 구두로 해도 된다.사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황영하총무처장관에게 사직서를 써서 청와대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전에도 사의를 나타낸 적이 있나. ▲지난번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농산물개방 이행계획서의 수정 파문으로 김양배농림수산부장관의 해임이 논의될 때 총리로서 보고절차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책임이 있지 않느냐 해서 물러날 뜻을 비친 적이 있다.그러나 그때는 대통령이 만류해서 사의를 철회했었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대통령의 권유로 감사원장 취임 때부터 정부의 개혁에 적극 참여해왔다.나는 지금 물러나지만 개혁정책은 올바른 방향에서 성공해야 하고 또 그러리라 믿는다.그렇지 못하다면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재임기간동안 아쉬웠던 점은. ▲물문제등 여러가지 돌발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 수습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됐다.차분하게 당면과제가 아닌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단계에 들어갔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에게 충고 또는 건의하고 싶은 사항은. ▲청소년정책과 교육등 몇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주면 고맙겠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앞으로의 거취는. ▲변호사사무실을 차리든지 생활방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직에 복귀할 의향은.▲다시는 공직과 인연을 맺을 생각이 없다. ­대법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올 가능성도 있는데. ▲공직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 합리적이고 온화한 「화의 정치가」/새 일총리 내정 하타 쓰토무

    ◎오자와와 신생당 창당… 정치 개혁/69년 입문한 9선… 내각요직 역임 「미스터 정치개혁」.일본의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임총리(58)의 별명이다.그만큼 개혁의지가 강한 정치지도자다. 그는 원래 가네마루 신(김환신)전자민당부총재가 총애하여 「난세의 오자와,평시의 하타」라고 했을 만큼 보수본류의 유망주로 간주되었으나,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만은 큰 열의를 보여 보수진영 사람치고는 별난 존재였다. 그는 자민당 선거제도조사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미스터 개혁」이란 별명을 얻는다.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정권 시절 정치개혁법안이 폐기되어 개혁이 좌절되자 당시 대장상(재무장관)을 그만두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전자민당 간사장과 함께 「정치개혁의 기수」로서 보수 아성인 자민당을 탈당,신생당을 창당했다. 그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정권 탄생때도 총리후보로 거론됐었다.그러나 정치동지이자 오랜 친구인 오자와 신생당 대표간사의 호소카와 총리 옹립으로 부총리겸 외상에 취임했다.호소카와정권 시절 그는 외상직에 전념하며 당은 오자와에 맡겨 당수로서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일 보도된 요미우리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61%가 이미 이때 그를 총리 적임자라고 응답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총리 진출에 대해서는 상당한 국민적 합의가 되어 있었다. 「하타 총리」의 출현은 바로 정치 스타의 출현을 뜻하기도 한다.정치인의 개성적 이미지가 별로 먹히지 않던 일본 정치무대가 바뀐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정치개혁,쌀시장개방등 중요한 국면에서 오자와가 「악역」을 맡는 바람에 「선인」의 이미지가 강하다.그러나 이미지 뿐만은 아니다.실제로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격이며,서민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정치가다.그는 지난 68년 정치에 입문하며 『평범한 시민감각을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라고 강조했다.58년 성성대학을 졸업한 그는 10년간 버스회사에 근무하며 「역사산보 버스여행」등을 기획,직접 가이드역을 맡는등 평범한 샐러리맨을 경험했다. 그는 지난 69년 부친의 뒤를 이어 당선된 2세의원으로 9선이다.오자와,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전자민당 간사장등과 함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전총리의 직계.그는 농수산상 2회,대장상·외상등을 역임,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일본의 관료들은 「그렇게 좋은 각료는 없다」고 평가한다. 그의 온화한 성품과 조정능력을 배경으로하는 「화의 정치」가 심각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연립여당의 균열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지 주목된다.그의 외상시절 「하타외교」라고 불릴만한 독특한 컬러는 없었다.적도 없지만 그만큼 자기의 색깔도 특별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평이다. 그는 미국상원의원들과 정기적으로 두나라 관계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는등 워싱턴과의 대화 통로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한국에는 별로 지인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호소카와 전총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과거사를 솔직히 반성하여야 한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 하타내각 25일 출범/일 연립여당/후임총리 확정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하타 쓰토무(우전자)부총리겸 외상(58)이 25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의 후임으로 취임,연립정부의 제2기정권인 「하타내각」이 출범한다. 하타외상은 25일 열리는 중·참의원 본회의 총리지명투표에서 총리후보로 출마,고노 요헤이(하야양평)자민당총재와 경쟁하지만 연립여당의 의석수가 과반수를 넘기 때문에 하타의 당선이 확실시된다.하타외상은 총리로 선출된 뒤 곧 조각에 착수,이날 「하타정권」을 발족시킨다. 연립여당은 이에 앞서 22일 당수회담을 열고 하타외상을 후임총리후보로 옹립하기로 정식결정했으며 회담에는 호소카와전총리(일본신당)를 비롯,하타 신생당당수,사회·공명·민사당등 당수 5명과 참의원 민주개혁연합대표가 참석했다.그러나 「각외협력」을 결정한 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하타외상은 이날 당수회담이 끝난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고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와타나베/총리출마 포기·자민 잔류

    ◎“연정과 시각차 커 제휴 어렵다”/오늘 하타 총리후보 추대 방침/연정 【도쿄 연합】 자민당 이탈 움직임으로 정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 미지웅)전 부총리가 18일 회견을 통해 『현 연립 여당과는 안보문제 등에서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커 제휴가 어렵게 됐다』고 말함으로써 탈당을 비롯한 총리 출마를 사실상 단념할 것임을 시사했다. 와타나베 전 부총리는 이날 하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자민당 총재와의 두번째 회담에 이어 파벌 회의를 가진 후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와타나베 전 부총리는 고노 총재와 3번째 회담을 갖고 자민당에 남을 뜻을 공식으로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와타나베 전 부총리의 자민당 탈당 및 총리출마 움직임으로 유동적인 상황을 보였던 일본정국은 연립여당의 주도아래 하타 쓰토무(우전자) 신생당당수 겸 외상을 총리로 추대하는 방향에서 수습의 가닥을 잡게 됐다. 연립 여당은 18일 대표자 회의에서 신 정권의 정책 방향에 합의를 본 다음 당수회담을 열어 총리지명 선거 후보자를 결정할방침이었으나 북한 핵개발 의혹에의 대응과 세제개혁을 놓고 신생,공명당및 사회당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19일 다시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 연립 여당은 이날중 정책 합의와 함께 하타외상을 총리 후보로 선출하고 중·참양원은 빠르면 20일 본회의를 열어 차기 총리를 지명할 계획이어서 신내각은 21일이후 발족할 전망이다.
  • 자민 재분열… 연립 여당까지 “흔들”/제2 정계개편 임박한 일정국

    ◎와타나베,탈당통해 차기총리 적극 모색/오자와의 신연정구상과 일치… 빠른 행보 일본 정국은 15일 자민당 일부의원들의 탈당이 연립여당을 동요시키는등 다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이런 가운데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 부총리 겸 외상을 총리후보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연립여당과 자민당내에서 부상하고 있다. 와타나베 전외상은 일본정계의 최대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와 지난 10일 밤 극비회담을 하는등 긴밀한 접촉을 하며 다음 총리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와타나베 전외상은 경우에 따라서는 자민당을 탈당,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와타나베 전외상이 다음총리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지금은 연립여당이 일단 하타외상을 다음총리로 옹립하기로 하고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정도 찬성분위기 오자와 신생당대표간사는 당초 와타나베 전외상을 다음총리로 옹립하려 했다.오자와는 와타나베 전외상을 총리로 옹립할 경우 자민당 일부세력이 그를 따라 탈당,자민당이 재분열됨과 동시에 정책결정의 걸림돌인 사회당과 신당사키가케등을 연정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연립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전외상도 외교·안보등 기본정책과 국가관이 같은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며 신생·공명당등과의 연대를 시사해 왔다.와타나베 전외상은 북한의 핵문제등 외교,안보,개헌의 필요성,세제개혁,보수양당제등 정책과 이념에서 오자와와 공통인식을 갖고 있다.와타나베는 또 자신의 건강(암이라는 설이 있음)과 나이(70세)를 고려할 때 지금이 마지막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와타나베 전외상을 지지하는 자민당의원이 많지 않을 경우 그의 총리 꿈은 사라지게 된다.와타나베 전외상은 사회당(74명)과 신당사키가케(15명)등이 연정에서 제외될 경우 이를 보충할 수 있는 거의 1백여명의 지지가 필요하다.그러나 2백14명의 자민당의원중 와타나베파는 46명에 불과하다.다른 파벌은 일부 젊은 의원을 제외하고 와타나베 전의원 움직임에 냉담하다. ○추종자 적으면 곤란 신생당과 공명당내에도와타나베 전외상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더라도 하타외상을 다음총리로 옹립하고 와타나베 전외상과는 정책면에서의 연대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와타나베 전외상이 총리의 보장 없이 이러한 정책협조만을 위해 탈당이라는 결단을 내릴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자민당은 이미 재분열을 시작했다.자민당의 가노 미치히코의원(총무회장 대행)등 5명의 개혁파의원들은 15일 탈당계를 제출했다.이들은 와타나베 전외상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탈당했지만 와타나베 전의원과 가까운 오타 세이이치 의원등 중견·소장파의원들로 구성된 「리버럴스」의 5명도 탈당할 방침이다. ○자민개혁파 이탈 자민당의 재분열이 본격화될 경우 이는 일본정계의 제2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연립여당내에도 신당사키가케가 내각에는 참여하지 않고 「각외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등 연정체제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 “자민에 정권 못준다”… 다시 결속/일연정 하타총리 선택의 배경

    ◎“와타나베론 새체제 구성 어렵다” 판단/오자와파워 우려… 사회·민사 반발 변수 일본의 하타 쓰토무(우전자)부총리겸 외상(신생당 당수)이 호소카와(세천호희)총리의 뒤를 잇게될 전망이다. 일본정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호소카와총리의 후계선출을 둘러싸고 분열양상을 보이며 대혼돈상태에 빠졌던 연립여당이 정권유지를 위해 현체제를 깨뜨려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타외상을 후임총리로 옹립키로 대체적 의견조정을 하고 있기때문이다.물론 자민당의 와타나베 미치오 전부총리겸 외상이 여전히 총리자리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등 변수는 남아있다.그러나 「하타총리」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정치적 능력과 함께 깨끗하고 서민적 성향을 지닌 하타외상은 지난해 8월 호소카와정권 출범때도 유력한 총리후보로 등장했었다.그러나 당시 정계 최대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는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호소카와 일본신당대표를 총리로 옹립했었다.오자와는 이번에는 와타나베 전외상을 후임총리로 옹립하려했다. 와타나베 전외상 카드는 오자와의 신생당과 공명당등이 사회당과 신당사키가케등을 버리고 자민당 일부와 새로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오자와는 이 기회에 정책결정의 걸림돌인 좌파세력을 몰아내고 자민당의 분열을 유도하는 일석이조를 노리려했다. 그러나 와타나베 전외상이 사회당과 신당사키가케등을 대체할수 있는 1백여명의 자민당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선데다 역으로 사회당·신당사키가케등이 자민당내 좌파동조세력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오자와 대표간사는 연립정부 물갈이 계획을 일단 유보했다.물갈이 보다는 우선 정권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생·공명당과 심각한 대립를 보였던 사회·민사당등도 연정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지는등 붕괴위기를 맞자 하타외상을 축으로 현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그 배경에는 사회·민사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야마기시 아키라 회장의 연립유지 요청이 깔려있다는 지적이다.물론 사회당등은 처음부터 연립체제는 유지되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사회·민사당등도 하타외상 개인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다.그러나 하타외상이 총리가 될경우 신생당이 당·정을 독점하고 오자와의 영향럭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이때문에 사회당등은 하타외상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정책결정의 투명성확보 ▲민주적 의사결정 ▲신생·일본신당등이 주도하는 교섭단체 「개혁」을 중심으로하는 여당의 재편움직임 동결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오자와에 강한 알레르기적 저항감을 갖고 있는 사회당 좌파의 일부와 신당사키가케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연립여당은 자민당에 정권을 뺏기지않기 위해 일단 현체제유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심각한 내부균열은 불안요인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예산안 심의,일·미 마찰,세제개혁,북한문제등 많은 현안이 쌓여있는 현상황에서는 대장상·농수산상등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하타외상이 적임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 반쪽 당수회담… 벼랑에 선 일연정/후임총리 옹립 난항 계속

    ◎자민도 「정권탈환」 태세… 대혼돈 가능성 연립정부가 후임총리 선출을 둘러싼 대립으로 분열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이 「정권탈환」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등 일본 정국은 대혼돈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연립여당은 지난 8일 호소카와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발표이후 연일 후임총리 선출을 위한 회담을 가졌으나 구체적 인선작업에는 들어가지도 못한채 대립만 증폭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당은 지난 10일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 대표간사 주도로 후임총리가 선출되는 것을 견제하기위해 지금까지의 대표간사·서기장급의 대표자회의 대신 당수급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민사당·신당사키가케 대표들은 사회당 제의에 따라 11일 열린 당수회담에 참석했다. 그러나 대표자회의를 주도해온 신생·공명당과 일본신당은 이를 거부,연립여당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연립여당의 분열은 신생당과 공명당이 호소카와 총리의 일본신당이 새로 만든 「개혁」이라는 국회교섭단체에 참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사회당·신당사키가케·민사당일부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벼랑에 이른 느낌이다. 물론 현재의 연립정부 형태로 계속 정권을 유지하는 문제를 최우선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아 현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신당사키가케 대표인 다케무라 마사요시 관방장관은 11일 새로운 정권의 발족을 위한 「기본정책」을 밝히는등 새로운 연립정부 구축을 위한 독자적 행동을 개시했다. 오자와 신생당대표간사와 대립관계에 있는 다케무라 관방장관은 『자민,비자민당 구분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말한후 자민당의 개혁세력및 사회·민사당과의 연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현상태의 자민당과는 손을 잡지않겠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다케무라장관의 이러한 구상은 자민당 개혁세력과 연대,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자민당도 지금까지의 관망자세에서 벗어나 「정권담당」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자민당은 곧 정권구상을 밝히고 신당사키가케등과의 연대를 적극화할 방침이다.자민당의 이러한 적극적인 움직임으로후임총리의 선출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게 됐다. 총리후보로는 하타 쓰토무 부총리겸 외상,자민당의 와타나베 전부총리겸 외상,다케무라 관방장관,가이후 도시키 전총리,고노 요헤이 자민당총재,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현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중의원 투표에서 과반수(2백55석)를 차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일 후임총리 선정 난항/연립여당 의견 양분/주말께 결정될듯

    【도쿄=이창순특파원】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의 갑작스런 사임후 연립여당대표들은 8일에 이어 9일에도 후임 총리선정을 협의하기위해 회담을 가졌으나 결론을 내지못하는등 난항을 겪고 있다. 여당대표들은 이날 하오 2시부터 회담을 갖고 후임 총리인선을 위한 조정작업을 협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못하고 10일 상오 11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는 대표자회의후 기자단질문에 『예산안을 빨리 성립시키기위해 다음주에는 새로운 내각을 발족시키고 새로운 총리에 의한 시정연설도 할수 있도록 한다는데 여당대표들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음 총리로는 하타 쓰토무 부총리겸 외상과 자민당의 와타나베 미치오 전부총리겸 외상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자민당의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다케무라 마사요시 관방장관(신당사키가케 대표),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등의 이름도 등장하고 있다. 연립여당은 그러나 후임총리 인선을 둘러싸고 신생·공명·일본신당과 사회·민사당·신당사키가케등과의 대립이심화되는 2극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총리후보 인선은 내주말에나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일 정국 다시 “개편 소용돌이”/호소카와 사임과 향후 정국

    ◎연정 존립여부가 최대 관심/당파간 이견… 후임 총리 결정 어려울듯 일본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가 8일 전격 사임을 발표,일본정국이 큰 혼란에 빠졌다.호소카와총리의 사임으로 일본정계의 초점은 다음 총리가 누가 될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으나 복잡한 정치역학관계로 후임총리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소카와총리는 이날 임시각의와 기자회견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그는 『사가와 규빈(좌천급편)그룹으로부터 차입금과 장인 명의의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 주식매입문제로 국회가 예산심의에 들어가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으며 자신의 개인자금 운영과정에서도 법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임을 결단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운송회사 사가와 규빈그룹은 가네마루 신(김환신)전자민당부총재의 거액 정치자금 스캔들의 장본인이며 「가네마루사건」은 자민당의 몰락과 호소카와정권 탄생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치개혁을 강조해 온 호소카와총리도 결국 사가와 규빈그룹과의 돈거래등개인적 의혹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호소카와총리의 사임은 자민당 전략의 승리라는 면도 있다.자민당은 예산심의를 담보로 호소카와총리와 사가와 규빈그룹과의 거래를 끝까지 추궁,그를 사임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일부에서는 연립정권의 내분및 국회 공전등과 관련,호소카와총리가 사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예측도 있었다.그러나 그의 사임은 일반적인 예상보다 빨랐다. 호소카와총리의 사임으로 관심의 초점은 다음 총리와 연립정부형태및 정계재편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유력한 다음 총리로는 현재 하타 쓰토무(우전자)부총리겸 외상(신생당 당수)이 거론되고 있다.하타외상은 연립정권 탄생때도 유력한 총리후보로 거론됐었다.연립여당내에는 하타외상을 후임총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하타외상이 총리가 될 경우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대표간사가 이끄는 신생당과 공명당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는 경계감으로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등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민당의 일부를 연립여당에 참여시키며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자민당 와타나베파 회장(전외상)을 총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와타나베 전외상은 오자와 신생당대표간사와 가까우며 호소카와정권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대응을 해왔다.와타나베 전외상이 총리가 될 경우 자민당의 분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정치평론가는 또 자민당이 다른당과 연대정권을 잡으면 고노 요헤이 자민당총재의 총리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한다. 다음 총리의 결정은 연립정부의 형태와 제2차 정계개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사회당은 연정의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신생당·공명당등에서는 이 기회에 외교·안보등 중요정책이 다른 사회당을 배제하고 자민당의 일부를 끌어들여 연립형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정치의 이러한 복잡한 역학관계로 다음 총리결정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또 다음 총리체제가 정국을 이끌어나갈 내각이 될지 곧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준비하는 선거관리내각이 될지도 불분명하다. 일단 호소카와총리시대는 8개월만에 막을 내리고 있다.그의 등장은 일본신화를 창조한 자민당 장기집권를 무너뜨린 일본정치의 구조적 대전환이었다. 참신한 이미지의 호소카와총리는 시대의 변화와 국민들의 높은 지지속에 화려한 출발을 했다.그는 여론의 힘을 배경으로 정치·경제·행정개혁을 추진해왔으며 자민당정권이 할 수 없었던 정치개혁·쌀시장개방등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다.하지만 호소카와총리가 추진해온 「책임있는 변혁」의 일본개조는 미완성의 작품으로 끝나게 됐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기동력 강화를 위한 일본의 국가개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이 총선 우파연합 압승/최종집계/상·하원 945석중 521석 획득

    ◎차기총선에 베를루스코니 확실/의석수 좌익 진보동맹·중도연 순 【로마 로이터 AP 연합】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 자유동맹이 이탈리아 총선에서 하원 6백30석중 과반수를 넘는 3백66석을 차지하는등 상·하양원에서 압승을 거둔 것으로 29일 최종개표 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지난 2년간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척결운동 즉「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로 홍역을 치른 이탈리아 정치무대는 신생정당들과 새로운 인물들로 대폭 물갈이하게 됐으며 특히 보수적인 「자유동맹」은 많은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정국이 크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개표결과 전 공산계가 주도하는 좌파 진보동맹은 2백13석을,중도동맹은 46석을 얻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나머지 5석은 군소 정당들에 돌아갔다. 우파 자유동맹은 상원에서도 총 3백15석중 과반수에 불과 몇석 못미치는 1백55석을 얻었으며 좌파 진보동맹이 1백22석,중도동맹이 31석을 각각 획득하고 나머지 7석은 군소정당이 차지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자유동맹이 앞으로 일부 군소정당 후보와무소속 후보를 영입해 상원에서도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언론재벌로 정치입문 2개월만에 일약 이탈리아 차기 총리후보로 부상한 베를루스코니는 우파의 압승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은 분열된 국가를 화합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그는 자신이 이끄는 「전진 이탈리아당」 당사에서 지지군중들에게 우파동맹을 망라하는 정부를 구성하는데 최우선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한편 우파의 승리가 확실해지면서 밀라노증권시장에서는 정국안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때문에 주가가 급상승했으며 달러화에 대한 리라화의 가치도 회복세를 나타냈다. ◎이 우익정권 탄생 배경·전망/중산층서 급진좌파 외면/기업인에 경제난 해결 기대/보수파 군소세력 동거 난세 27,28일 양일간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결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연합인 「자유동맹」이 상·하원에서 모두 압승을 거둠으로써 전후 45년간 장기집권해 온 기민당을 대체할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번 총선에서 이탈리아 국민들이 「자유동맹」에표를 몰아준데는 몇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로 이탈리아 국민들의 전통적인 공산주의 혐오정서를 들 수 있다. 좌파가 집권할 경우 정치적 불안정과 함께 사유화정책의 전면 재조정등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한 중산층의 표가 「자유동맹」에 몰림으로써 우파 승리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좌파연합」은 당초 뿌리깊은 이탈리아의 부패구조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간주되었으나 총선전 급진 공산주의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중산층에게 외면당한 것이다. 다음으로 엄청난 재정적자와 살인적인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베를루스코니의 경제문제 해결능력에 큰 기대감을 갖고있다는 사실도 우파 승리의 요인이 됐다고 볼수있다. 베를루스코니의 재벌당이 집권할 경우 정치권의 부패를 촉진할 것이라는 좌파의 비난이 잇따랐으나 이탈리아 국민들은 오히려 실물경제에 밝은 재벌출신이 각종 경제현안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총선승리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념이 다른 세력의연합체라는 점에서 「자유동맹」의 앞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차기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이번 총선에서 제3당으로 전락한 기민당의 후신인 중도파와 협력하는등 「자유동맹」내 3개 세력이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치게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탈리아내 대표적 재벌인 베를루스코니의 등장으로 「마니 폴리테」가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가 대부분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누구인가/한때 클럽가수… 건설업서 큰돈벌어/80년대 언론재벌 부상… 3대기업인 이탈리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자유동맹」의 지도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57)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재벌이며 정계입문 2개월의 정치신인. 젊은시절 한때 클럽의 가수로 활동하는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나 60년대초 건설업에 뛰어들면서 큰 부를 쌓았으며 80년대 중반 언론으로 눈을 돌려 3개의 민영 TV방송 채널과 최대 판매부수의 잡지인 파노라마지,밀라노의 일 지오르날레지등을 소유하게된 것을 비롯,이탈리아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엄청난 부동산,최고 명문 축구팀인 「AC밀란」,최대의 출판사등을 소유한 이탈리아 3대 재벌의 총수로 성장했다. 기업인 출신으로 3개 정파를 연합,이번 총선에 뛰어들어 「유럽의 로스 페로」로 비유되기도한 그는 기업경영식 선거전략과 함께 자신이 소유한 언론매체를 적절히 이용,새로운 이탈리아의 지도자로 부상하는데 성공했으나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은 아직 미지수다.
  • 독 총선 앞두고 폭로전 가열/기민­사민당 분단시절 “헐뜯기”

    ◎“구공산당과 밀착” 지적에 “훼손 공작” 반격 올해 10월 총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를 앞두고 있는 독일 정가가 최근 여야간에 폭로전과 정치공세로 달아오르고 있다. 폭로전의 주요내용은 제1야당인 사민당(SPD)의 대통령후보인 요하네스 라우,총리후보인 루돌프 샤핑등이 동·서독 분단시절 동독 공산당과 밀착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벨트등 독일 언론들은 최근 구동독정권 내부자료들을 인용,『사민당이 분단시절 동독공산당과 구소련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선거지원을 모색해 왔고 72년 하원선거 당시에는 소련의 협력아래 독일공산당과 15개 선거구에서 공조체제를 갖추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대해 집권 기민당(CDU)측은 사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악영향을 미쳤다고 비난하면서 과거 동독공산당과의 밀거래등 모든 진상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정치공세를 가하고 있다. 기민당의 공격을 받은 사민당측은 「출처와 진실여부가 의심스러운 자료들」「더러운 정치공세」라고 맞받아치면서 『사민당의 이미지 훼손을 노린 저급한술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여야간의 정치공방은 기민당이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인기급락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선거패배가 점쳐지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즉 기민당의 「정치공작」 가능성에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 호소카와/「결단」의 정치로 일 개혁 선도/취임 6개월 중간 결산

    ◎쌀개방·정개법제정 반대뚫고 성취/“국민에 호소” 주효… 역대 최고 지지율 「일본국민들은 나에게 혁명가이기를 기대한다」.9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는 외국지도자들과 만났을때 이같이 말하곤 했다. 일본은 호소카와총리가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크게 변하고 있다.그러나 이말은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의 어려움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일본과 같이 안정된 사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38년간의 자민당정권의 붕괴와 정치개혁등은 「제2의 명치유신」이라 할만큼 구조적인 큰 변화다. 일본의 개혁을 선도하고 있는 호소카와총리.그가 6개월동안 자주 써온 말은 「결단」이라는 표현이다.호소카와총리는 자민당정치가 하지못했던 정치적 결단을 단행하고 있다.그 대표적인 것이 쌀시장의 부분개방과 정치개혁. 쌀시장 부분개방의 경우 사회당의 반대가 매우 강했다.그러나 호소카와총리는 UR협상기간을 하루 남기고 「새벽 기자회견」을 통해 쌀시장의 부분개방을 결단했다.정치개혁도 국회회기 하루를 남긴 지난달 28일밤 고노 효헤이 자민당총재와의 마지막 담판을 통해 협상안을 만들어냈다.그의 이러한 정치스타일은 반대론이 강한 사회당으로부터 마지막 단계에서의 양보를 얻어내는데 효과적이었다. 호소카와총리는 자민당 총리와는 다른 정치철학과 스타일을 갖고 있다.그는 국민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보통사람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여론정치를 하고 있다.그는 이러한 정치스타일과 개인적 매력으로 일본정치사상 처음인 70%이상의 높은 지지율를 유지하고 있다.요미우리신문이 6일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바람직한 총리후보로 호소카와총리가 2위와 큰차이로 단연 1위를 차지,가장 인기있는 정치가임을 여전히 입증하고 있다. 호소카와총리는 최대의 과제였던 정치개혁법이 만들어져 장기집권의 길이 열렸다고 할수 있다.그러나 정치개혁이라는 구심력이 없어져 정권기반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이번의 「복지세 파동」이 그 좋은 예라 할수 있다. 호소카와총리는 오자와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와 다케무라 마사요시 관방장관과 삼각축을 형성하며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오자와의 정치력에 의존하며 오자와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여왔다.호소카와총리는 경기부양책,예산편성,미·일정상회담등 많은 현안을 안고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치개혁의 본격화및 경제·행정개혁등 국가개조이다.호소카와총리는 오자와와 함께 「일본개조」를 단행하고 있다.
  • 개혁인사 당정에 전면배치/김 대통령,집권2기 새진용 인선 착수

    ◎민주계 크게 부상 전망/국제화 추진력 갖춘 사람 중용/당3역 등 대상… 청와대수석 일괄사표 김영삼대통령은 다음주초로 예정된 당정개편을 통해 추진력을 겸비한 개혁세력을 대거 등용,집권2기에 대비할 방침인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당정개편에서는 김대통령의 의중에 밝고 개혁의지로 충만한 민자당의 민주계 인사들이 당과 정부,청와대의 전면에 전진배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이회창신임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개각문제를 협의했으며, 하오에는 김종필 민자당대표와 주례회동을 갖고 당의 개편문제를 논의했다. 박관용비서실장등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이에 앞서 김대통령에게 일괄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민자당은 이날 김대통령에게 당직자들의 일괄사표를 제출하려던 방침을 바꿔 제출시기를 18일 임시국회가 끝난 이후로 미뤘다. 이번 당정개편에서 민자당은 김종필대표체제를 유지하되 정책위의장·사무총장·원내총무등 당3역을 모두 바꾸고 내각은 10∼12개 부처장관을 교체,일하는 당정체제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은 우선 2∼3개 수석비서관이 보다 개혁적인 인사로 대체될 전망이나 농림수산담당 수석비서관직의 신설과 일부 수석비서관의 자리바꿈등으로 실제 개편폭은 이보다 더 클 가능성이 많다. 이번 개편에서는 이경식경제부총리와 한완상통일부총리가 경질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임 부총리후보로는 민자당의 강경식의원과 한승수주미대사가 거명되고 있다. 지방자치제 단체장선거에 대비,내무부장관에는 역시 민자당의 최형우의원이 유력시되고 있다. 김덕용정무1장관은 유임될 것으로 여겨진다. 김대통령은 내각개편은 오는 20일,청와대와 당은 내각개편과 같이 하거나 하루 늦은 21일쯤 개편할 예정이라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이날 밝혔다. 김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이날 당정개편 방향과 관련,『지난번 내각의 경험을 거울삼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다는 각오로 일할 수 있는,추진력 있고 개혁성이 강한 인물들이 주로 등용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이번에도 지역안배등은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고위 당국자도 『이번 당정개편의 인선은 국제화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지속적으로 개혁추진이 가능한 사람,업무추진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중용하게 될 것』이라면서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이같은 기준에 따라 대폭이 아닌 범위에서 교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주말 “개각준비” 지시/김 대통령 총리경질 뒷얘기

    ◎“소문나면 효과 반감된다” 철저히 보안/15일 주례독대때 이 신임총리에 통보 ○…김영삼대통령은 전면개각을 결심한 직후부터 이회창감사원장을 새 총리로 생각했으나 워낙 철저한 보안속에 작업을 진행시켜 청와대 관계자들도 극소수를 빼곤 발표직전까지 인선내용을 몰랐을 정도. 청와대의 민정비서실이 김대통령으로부터 개각자료를 준비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은 지난주말로 알려진다.새 정부출범후 10개월 남짓 지났으므로 인선과 관련한 기초자료는 광범위하게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정리하기만 하면 되었다는 것. 김대통령은 그러나 총리후보에 대해서 일체 언급을 하지않아 측근들도 궁금해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김대통령이 이신임총리에게 총리임명의사를 전달한 것은 15일 상오 10시에 이뤄진 감사원장과의 주례독대 때였다는 관측.이날 독대는 평소와 비슷하게 1시간 남짓 진행됐으나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한 듯 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신임총리를 따로 불러 독대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총리임명등 개각과 관련한 소문이 나갈까봐 일부러 주례회동을 택해 인선을 통보했을 것』이라고 말해 김대통령이 보안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음을 시사. 이 관계자는 『김대통령은 이번주초 개각에 대한 결심을 굳히고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이 타결된 15일부터 정기국회회기가 끝나는 18일 사이를 단행시기로 잡은 것같다』고 설명.그는 이어 『김대통령이 개각직전까지 현상태에서의 개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은 보안이 되지않으면 개각의 효과가 반감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번 총리경질의 보안유지와 단행시점이 성공적이라고 자평.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이감사원장을 총리로 발탁한 이유는 내년부터 자신은 국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내치의 상당 부분을 강직한 이신임총리에게 위임하겠다는 포석으로 이해된다』고 피력. ○…황인성전총리는 UR문제가 쟁점화되면서 몇차례 김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14일 UR대책관련 청와대보고 때 다시 사의를 밝혔다는 후문. 이에 16일을 총리경질 D­데이로 잡은 김대통령은 15일 저녁 박관용비서실장을 황총리에게 보내 총리직 사임의사를 수락할 뜻을 전했고 황총리는 16일 아침 김대통령과 조찬회동을 가진 뒤 정식으로 사퇴서를 제출. 이번 총리경질은 워낙 「007작전」식으로 단행되어 인선예측이 모두 빗나갔는데 관가및 재계에서는 이날 낮까지 김선홍기아자동차회장,김기환무역진흥공사이사장등 경제계 인사와 고흥문·박권상·현승일씨 등이 총리후보로 거명되기도.
  • 영국:상/“다시 세계로” 제조업 살리기 총력(세계의개혁현장:32)

    ◎금리·세율 낮춰 투자욕구 촉발 런던 서부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 뉴 몰던. 이 마을 한가운데는 COMET,DIXON 등의 이름을 가진 전자상가가 자리잡고 있다. 모든 종류의 전기·전자제품이 골고루 갖춰진 명실상부한 전자백화점이다. 매장을 둘러보니 역시 소니·히타치·JVC 등 일본제품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삼성·김성 등 한국 전자제품도 간간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그런데 정작 「Made in UK」제품은 후버세탁기와 BT전화기가 고작일뿐 다른 제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때 전 세계 제조분야 무역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세계를 향해 호령했던 영국경제의 「처량한」 오늘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전통적 산업인 석탄·철강·조선공업의 쇠퇴와 이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이 첨단산업쪽보다 서비스산업에 치중돼 이뤄지다보니 제조업의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는게 영국 경제계 인사들의 진단이다. 특히 80년대 후반 호황을 누렸던 영국경제는 악화일로를 걷다 끝내는 적신호 앞에 머물고 말았다.그런 가운데지난 91,92년 2년간마이너스 성장에도 불구,사회보장비는 평균 3.7%씩 늘어났다.특히 제조업자들의 수입은 대부분 높은 세금과 임금으로 지출돼 이문이 박했다.덩달아 가격경쟁력이 떨어졌고 수출도 기를 펴기 어려웠다.실업률 역시 가쁜 숨을 쉬며 상승커브를 그렸다. 이런 상황에서 92년 대처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존 메이저 총리가 제조업 회생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메이저 정부는 지난 5월 경제정책의 실패로 차기 총리후보 물망에 올랐던 라몬트 재무장관이 퇴진하는 곤욕을 치렀다.초장부터 메이저 정부에게 「위기상황」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럴수록 메이저 총리는 경제문제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피하려 하지 않았다. 케네스 클라크 후임 재무장관을 비롯한 새 경제팀은 인플레및 예산증가 억제기조는 계속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의욕적인 정책으로 정면돌파작전에 나섰다.이른바 성장과 고용을 핵심으로 한 현실경제 개혁에 불을 당겼던 것이다. ◎공장부지 무상대여로 외자 유치/올 성장 1.5%로 마이너스 탈출 경제팀은 우선 김이를 10%에서 6%로 낮추는 작업부터 시작했다.기업의 금융부담 감소와 소비증대를 위한 조치였다.이와함께 제조업의 세율도 과감하게 인하,기업들의 투자 마인드를 부축했다.그 결과 금년초부터 판매및 생산이 증가세로 반전되고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는 말했다. 나아가 부동산경기가 활발해지고 실업률이 감소하는 등 경기가 오랜 불황의 터널에서 탈출,서서히 기운을 되찾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지난해 9월 ERM(유럽통화제도)에서 탈퇴함으로써 파운드화의 하락을 유도,수출증진을 도모했다.경제팀은 또 국내의 자생적인 제조업 기반이 약한만큼 해외투자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정부가 자국내에 들어오겠다는 외국기업에 공장부지를 무상으로 대여하는 파격적인 호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뿐만아니라 은행융자조건을 완화하고 대출 상한액도 크게 늘렸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와관련,『점차 일본 등 많은 외국기업들이 EC통합에 대비,이미 영국에 진출했거나 영국진출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낙관했다. 요즘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관련 잡지나 서적을 읽다보면 「영국은 불황의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는 표현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선지 영국 경제인들은 한때 EC2유국으로 전락할뻔 했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이제는 경제회복에 힘입어 종전처럼 독일·프랑스와 함께 유럽을 이끌어 갈 리더의 위치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 예측기관들도 이미 회복세에 들어간 영국경제가 이 흐름을 계속 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레이치 웨스톤 보수당정책연구실장은 『영국경제가 일단 안정성장의 궤도에 진입한만큼 올해 1.5%,내년 2%내외의 성장률을 나타낼 것』이라고 언급,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 일 재계의 정치헌금 폐지/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지난달 29일 비자민세력이 자신을 연립정부 총리후보로 옹립하자 『「하늘의 뜻」으로 알고 엄숙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일본재계에는 호소카와총리가 말하는 「하늘의 뜻」과 유사한 「하늘의 소리」가 존재해왔다.재계의 총본산인 경제단체연합회(경단연)가 각 기업에 할당하는 정치헌금 고지서가 바로 재계의 「하늘의 소리」다.경단연이 기업규모에 따라 할당하는 정치헌금액은 「절대적 명령」이었다. 경단연은 냉전구조하에서 「자유주의경제의 보험료」로 정치헌금을 내왔다.경단연이 정치헌금단체·「국민정치협의회」 등을 통해 자민당 등에 제공한 정치헌금은 매년 1백30억엔(약1천억원)이나 됐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헌금이 내년부터 없어지게 됐다.경단연이 정치헌금을 전면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경단연은 냉전붕괴로 자유주의경제를 지키기 위한 헌금이라는 명분이 없어진데다 정경유착과 관련한 국민들의 강한 비난을 의식,정치헌금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경단연의 정치헌금폐지방침은 호소카와정권의 「깨끗한 정치」실현을 위한 정치개혁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연립정권은 정경유착의 상징인 기업헌금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단연이 정치헌금을 폐지한다고 해서 정경유착구조가 당장 무너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이 시점에서 일본사회가 서둘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비교적 떳떳했던 경단연 정치헌금보다 10배 이상이나 많은 「검은 돈」이 막바로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던 자민당의 금권정치구조를 무너뜨리는 일일 것이다. 정치에는 어느 나라나 돈이 들게 마련이다.그러나 일본의 부패한 금권정치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이같은 정치풍토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연의 정치헌금폐지는 정권교체와 함께 경제계도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그 상징성이 크다.정권교체와 함께 점차 투명해지고 있는 일본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시사는 없을까.
  • 오자와와 함께 연정 실세/부총리겸 외상 하타 쓰토무(뉴스인물)

    9일 결성된 일본의 새 내각에서 부총리겸 외상을 맡게 된 하타 쓰토무(우전자·57)신생당 당수는 연정의 구성원을 통틀어 각료직 수행경험을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대장상,농상을 역임한 이같은 각료직 경력은 행정경험 부족이라는 약점을 안고 출범한 새 내각에서 그의 위상을 더욱 높여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때 총리후보로 유력시됐을 정도로 당파를 초월해 신망이 높을뿐 아니라 『일본이 대통령제를 택한다면 틀림없는 대통령감』이라는 평을 들을만큼 대중적 인기도 높다.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의회차원의 사과결의와 일본의 「국제공헌」증대를 주장해온 그는 9일 가진 외상으로서의 첫 기자회견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도쿄 태생이며 중의원 9선경력을 갖고 있는 2세 정치인.세이조가쿠엔(성성)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 일,비자민연정 출범 난항/총리선출 6일이후로 연기

    【도쿄=이창순특파원】 38년동안 지속된 자민당 일당지배를 종식시키는 일본의 사회당·신생당·공명당·일본신당등 7개당에 의한 비자민 연립정권 출범이 6일 이후로 연기됐다. 지난달 18일 실시된 총선거에 따라 일본의 새 총리를 선출하고 중의원을 구성하기 위한 일본 중의원이 5일 하오1시 소집 공고됐으나 의장선출등과 의사일정등을 둘러싸고 비자민측과 자민당이 첨예하게 대립,예정보다 8시간여 늦게 개회돼 총리선출과 원구성등을 6일이후로 연기키로 했다. 이에 따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 지명이 6일 이후로 늦어졌으며 일본 왕의 벨기에 국왕 문상을 위한 출국으로 본격적인 비자민 연정은 일왕이 귀국하는 9일 이후가 될 전망이다. 양측은 이날 상오부터 밤늦게 까지 마라톤식 절충을 벌였으나 자민당측은 ▲원내 비교 제1당인 자민당에서 중의원의장이 나와야 하며 ▲회기를 20일로 결정해 신임 총리의 소신표명을 들어야 하고 ▲비자민측의 원내 교섭단체 대표를 한명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비자민측은 서기장급 대표자회의를 열어 ▲의장은 마땅히 집권여당(비자민)이 맡아야 하며 ▲자민당측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표를 통해 의장을 선출하겠다고 맞섰다. 수차례에 걸친 절충끝에 양측은 일단 5일밤 개회는 하되 중의원 의장과 총리선출을 6일 이후로 연기키로 하고 6일상오 10시부터 교섭단체 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호소카와 총리후보는 이날 조각구상을 본격화하는 한편 중의원 의장선출을 둘러싸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것과 관련,실력행사를 통해 비자민측의 의사를 관철시키라고 강경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호소카와 총리후보는 또 자민당측이 여야가 1대1로 의사일정을 협의하자고 제의한데 대해 이는 과거 자민당 정권이 써왔던 방법으로 나쁜 이미지가 있다고 지적,교섭단체 대표들간에 결론을 내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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